[만평] 무전유병 유전무병...? / 2019.11

특집3. 노동자 건강 불평등, 노동조합의 참여로 시작하기 / 2019.11

노동자 건강 불평등, 노동조합의 참여로 시작하기

[인터뷰] 공공운수노조 전국교육공무직본부 유청희 노동안전보건부장

 

나래 상임활동가

 

유령에서 인간으로!’라는 울림 넘치는 구호를 외치는 노동자들이 있다. 바로 학교 비정규직 노동자들이다. 어떤 환경과 조건이 그들을 유령으로 만들었고, 스스로 인간임을 선언할 수밖에 없었을까. 또 차별과 불평등은 노동자들의 건강과 생활에 어떤 문제를 야기하는지 이들의 목소리에 귀 기울여 볼 필요가 있지 않을까? 라는 고민에서 인터뷰를 기획했다. 지난 1031일 노조 회의실에서 유청희 노동안전보건부장을 직접 만나 이야기를 나눴다. 마침 이날은 노동개악과 탄력근로제 저지를 위한 민주노총 결의대회가 있었던 날이기도 했다.

유청희 노동안전보건부장은 노조 활동을 시작하기 전 회사에도 다니고 이주노동자 한국어 자원봉사도 하는 등 다양한 이력을 가지고 있었다. 특히 이주노동자 자원 활동은 그에게 차별, 불평등에 대해 곱씹어볼 수밖에 없는 소중한 경험이기도 했다. 현재는 전국교육공무직본부에서 노동안전보건활동을 전담하고 있다. 1년 반 동안 해온 활동들을 돌이켜 보면 폭풍 같은 시간이기도 했지만, 하루하루 쉽지 않았다며 지난날을 되새겼다.

 

비정규직 양산하는 학교의 실상

 

전국에 약 40만 명의 학교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있다. 그들이 노동조합을 만들고 나서기 전까지 학교엔 비정규직이 존재하는지조차 몰랐다. 왜냐면 학교라는 곳은 당연히(?) ‘평등이라는 가치를 가르치고 직접 실현하는 공간으로 여겨졌기 때문이다. 하지만 실상은 달랐다. 그 어느 공공기관보다 더 많은 비정규직 노동자를 양산하고 있었다.

 

“직종이 매우 많다. 최소 잡아도 20~30개 정도다. 세부적으로 나눠 잡으면 100개 이상으로 잡기도 한다. 언뜻 생각하면 학교에 교사만 떠올리기 쉽지만, 비정규직 노동자 직종이 이렇게 많다. 거기에 지역마다 명칭이나 처우도 각기 다르다 보니 100개 이상까지 나오는 것이다.”

 

올해는 전국교육공무직본부가 창립 10주년을 맞이한 해이기도 하다. 2009우리는 유령이 아니다를 외치며 학교 비정규직 문제의 심각성을 드러냈고, 그동안 부당함을 이야기하지 못했던 노동자들이 노동조합이란 조직으로 뭉친 것이다. ‘모든 학교비정규직을 교육공무직으로! 노동존중 평등학교, 비정규직 없는 세상으로! 평등하고 차별 없는 학교 만들기! 아프지 않고 일할 권리, 안전하고 건강한 학교를!’은 노조 창립부터 지금까지 노동조합의 핵심적 요구이며 동시에 존재 이유이기도 하다.

 

“이 요구는 노조를 만든 이유이기도 하고, 노조가 존재하는 이유 그 자체다. 우리 노조뿐만 아니라 다른 비정규직 노동자들에게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마침 오늘 인티뷰를 준비하면서 동료들과 이야기를 나눴다. 다들 분노에 차서 이야기했다. 교사의 경우 방학 중 임금이 당연히 나오지만, 다수의 비정규직 노동자들은 방학 중 근무가 없어 임금이 나오지 않고, 이 때문에 생계에 어려움도 겪는다.”

 

학교 비정규직 노동자들은 방학 중 최소 생활을 할 수 있도록 보장해달라는 요구를 하고 있다. 방학 중 근무가 없어 임금이 지급되지 않는 학교 비정규직 노동자는 급식실 조리사와 조리원, 특수교육 실무사, 교무 실무사, 전산 실무사 등 10개 직종 안팎에 이른다. 전체 학교 비정규직의 절반 이상을 차지하는 규모임에도 이들의 처우 개선은 여전히 더디다. 방학 중에 생계를 위한 일을 하고 싶어도 학교장에게 겸직허락을 얻어야 하는 데 쉬운 일이 아니다. 고용과 임금의 불안정성은 이처럼 삶의 불안정으로 이어진다.

 

”임금과 처우 모든 면에서 차별을 받고 있다. 정규직 임금의 60%를 받고 있다. 우리의 요구는 80%이다. 또 하나의 중요한 사례는 바로 호칭이다. 선생님, 실장님 다양한 호칭이 있지만 학교 급식 노동자에게 아무도 그런 호칭으로 부르지 않는다. 아줌마로 부른다. 교무·행정 실무사의 경우에는 차 심부름 문제가 한창 논란이 됐었다. 학교 비정규직 노동자라면 누구나 흔히 경험한 사례들이다. 그런데도 노동조합의 싸움으로 많은 것들이 바뀌었다.

 

사실 정규직의 80% 임금을 요구하는 것도 고민이 든다. 최근 공정성이 이슈가 되지 않았나. 노동을 어떻게 평가하느냐에 따라서 가치가 달라진다. 그렇다면 학교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노동은 정규직의 60%만 인정받을 수 있는 것인가. 사람들은 시험이 공평함의 기준이라고 여긴다. 하지만 정말 그 시험이 공평한지 되물어야 한다. 사실 노동자들끼리 공평함, 고정성을 두고 싸울 일이 아니라고 생각한다. 직업과 노동에 대한 이해가 있어야 하고, 공정성에 대해 사회적으로 정교하게 논의를 하는 식으로 구조를 제대로 만들고 설계해 나가야 한다.”

 

아프다는 이야기하는데 필요한 용기

 

노동조합이 가장 앞장서서 바꾸고 있는 것에는 임금과 처우 문제 말고도 바로 노동안전보건 문제가 있다. 자신이 아프다는 것을 이야기하는데 이들에겐 다른 무엇보다 바로 용기가 필요하다. 일 때문에 아프다는 것을 증명하기엔 학교 비정규직 노동자에게 쌓인 차별과 불평등의 장벽이 너무나 높다. 한 연구 결과에 따르면 비정규직 여성 노동자의 고혈압 유병률이 정규직 여성 노동자보다 1.4배 높다. 비정규직 여성 노동자의 경우 고용 불안정 등의 이유로 더 많은 스트레스에 시달리기 때문이라는 분석이다.

 

“조합원들이 아프다는 말을 잘못 한다고 생각할 때가 있다. 노조 교육을 하러 가면 산재 신청 실무의 경우 인기가 굉장히 높다. 질문이 정말 많다. 가려는 강사를 붙잡고 세세하게 물어본다. 현실에서의 문제는 이들이 아프다고 말하기 위해선 ‘용기’를 내야 한다는 점이다. 내 질병과 사고가 업무 때문이라고 말하는 것도 용기가 필요한 게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현실이다. 최근 <당신이 숭배하든 혐오하든>이라는 책을 읽었다. 여성의 몸이 어떻게 차별받아왔는지에 대한 내용이 담긴 책이다. 인상적이었던 내용은 심장의 경우에도 여성이 더 아프다는 것이다. 여성은 아파도 아프다는 이야기를 잘 하지 않는다는 거다. 밤에 굉장히 아파도 119 부르는 걸 폐 끼치는 거로 생각해서 참고, 다음 날 아침에 응급실에도 안 가고 외래에 가서 치료를 받는다는 것이다. 그렇게 여성들은 살아왔기 때문에 자기가 필요한 걸 잘 이야기하지 못한다.

 

그런데 우리 노조의 경우 중년 여성들이 대다수다. 산재 신청하는 것에 대해서 지금까지 입사할 때 교육을 받은 적도 없다. 학교에 얘기하기보다 노조에 얘기하는 것을 더 친숙하게 여길 거다. 그만큼 학교라는 공간은 이들에게 안전한 공간, 평등한 공간이 아니다. 이런 여러 가지 불평등, 학교에서 유령 취급당하고 학교에서 아줌마로 불리는 분들이 이런 식으로 불평등과 차별을 경험해오지 않았나 싶다.”

 

노동자의 참여가 건강 불평등 해결의 열쇠

 

노동조합이 만들어져 10년이라는 긴 시간을 보내오며 쌓아온 결실이 이제 조금씩 빛을 보고 있다. 2017년 학교 비정규직 중 급식 노동자를 대상으로 산업안전보건법 적용 대상으로 인정받으며 드디어 산업안전보건위원회가 가동하기 시작한 것이다. 그전까진 법의 적용 대상조차 아니었다. 노조가 생기고 학교에서의 차별 경험이 얼마나 건강에 유해한지를 밝히는 활동을 통해 어렵게 만들어낸 성과다. 현재 17개 각 지역 교육청들이 시간 끌기를 해온 바람에 이제야 몇 개 지역에서 회의를 1~2차례 진행했다. 그런데도 노동자 참여가 건강 불평등 문제를 해소할 수 있는 아주 소중한 징검다리란 것을 조금씩 경험하고 있다.

 

“참여라는 것은 노조 활동의 기본이다. 제가 자주 하는 얘기가 있다. 급식실에 높이 조절되는 조리대 같은 게 들어오면 어떨지 생각해보자고 말이다. 지금이 어떤 시대인가. 자율주행차가 다니고, AI가 바둑을 두는 시대다. 그런데 학교 급식실이나 여성들이 일하는 곳, 비정규직이 일하는 곳을 보면 놀라우리만큼 발전이 안 되어 있다. 사실 기술이 발전하지 못한 게 아니고 ‘하지 않는 것’이다. 여성들이 선택할 수 있는 직업이 많지 않고 직장에 다니더라도 여러 기회를 박탈당한다. 학교 급식실의 경우도 경력단절 된 분들이 많이 가는데 이들이 일하는 곳은 시설 개선이란 게 없다. 노동자 참여가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것이 바로 이런 지점이다. 일하는 사람이 직접 자기 일터를 돌아보고 무엇이 필요한지 이야기할 수 있을 때 그때 바로 변화가 일어난다.”

 

유청희 노동안전보건부장은 노동자의 건강 불평등 문제를 사회적으로 제기하고 실천해나갈 중요한 단위가 바로 노동조합이라고 강조했다. 이들이 외친 구호는 여전히, 어쩌면 앞으로도 유효할 것이다. ‘평등해야 건강할 수 있다는 것을 몸소 보여주기 위한 여정을 하고 있는 학교 비정규직 노동자들에게 우리는 어떤 연대의 손길을 내밀 것인지 그 고민부터 함께 시작해야 하지 않을까.

 

특집2. 노동자들의 건강 불평등 해소를 위한 제도, 근로자건강센터 / 2019.11

 노동자들의 건강 불평등 해소를 위한 제도, 근로자건강센터

- 서울근로자건강센터 정최경희 센터장 인터뷰

 

박기형 상임활동가

 

건강 불평등 문제를 다룰 때, 우리가 흔히 놓치기 쉬운 것은 특정 집단이나 계층이 속한 공간이 어디냐는 것이다. 지역 간 보건의료 서비스 격차, 시스템 부재에 따른 문제를 지적하는 목소리는 오래전부터 있었다. 그런데도 공간상의 위계가 건강 격차를 낳는 것은 또 다른 지점이 있다.

바로 일하는 곳에 따라 건강 진단 및 관리를 받는 수준이 달라지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 내가 일하는 작업장·사업장의 노동환경·조건이 어떠한가가 나의 건강 수준에 많은 영향을 끼침에도, 건강불평등 해소를 논의할 때는 일하는 공간에서의 건강관리 서비스 및 시스템을 개선 및 강화하려는 노력은 부족한 것이 현실이다.

그러나 우리 사회에 이러한 노력이 전혀 없었던 것은 아니다. 노동자들 간의 건강 격차를 해소하기 위한 대표적인 제도로 근로자건강센터(이하 근건센)’10여 년 전부터 시행하고 있다. 앞으로 노동자들의 건강 불평등 개선에 있어 근건센의 역할에 대해 지난 1028일 서울 근건센의 정최경희 센터장을 만나 얘기를 나눠보았다.

 

안전보건체제 사각지대인 소규모 사업장 지원 사업의 중요성

 

근건센은 안전보건 관련 법 제도에서 사각지대에 놓인 50인 미만 사업장 노동자의 건강관리를 지원하기 위해 제도화되었다. 소규모 사업장은 산업안전보건법 제3조 안전보건관리 체제 규정에서 면제됨에 따라 노동자의 안전보건 문제를 관리할 담당자가 부재하다. 그래서 노동자의 안전과 건강을 증진하기 위해서는 외부의 지원을 받아야 하지만 현실적으로 소규모 사업장의 재정 상황에 비춰볼 때, 민간기관에 비용을 지불하기에는 여러 어려움이 있다. 근건센은 소규모사업장 노동자의 건강불평등을 해소하기 위해 다양한 프로그램을 진행하고 있다. 구체적으로는 공단에서 안전보건관리를 위한 비용 및 물품이나 의료적 지원을 해왔다.

 

“서울 근건센에서 하는 사업은 크게 두 개로 나눠집니다. 사업장에 나가서 하는 이동업무와 노동자들이 센터에 내방했을 때 하는 업무입니다. 주요 사업으로는 뇌심혈관계 질환 및 근골격계질환 예방관리, 고혈압·당뇨·과로 등 직업병 관련 상담 및 건강검진, 직무스트레스 평가 및 감정노동자 상담·치유, 작업장 위험성평가와 안전보건 정보제공 및 상담 등이 있어요. 예컨대, 만성질환의 경우 진단을 하고, 노동자 스스로 관리할 수 있도록 정보를 제공하고, 관리계획을 함께 세우는 걸 돕는 식이죠. 공공기관이나 기업에서 운영하는 콜센터에서 하청업체를 통해 고용되어 일하는 콜센터 직원들에게 근건센을 통해 집단으로 상담 및 관리를 요청해오기도 했어요. 이 경우엔 직무스트레스 조사나 감정노동 관련 상담을 진행했었죠. 일터괴롭힘이나 직장갑질에 대해서도 상담을 했었고요.

 

다른 한편, 산업위생기사도 센터에 상주하고 있어서, 소규모 사업장에 직접 나가서 작업환경을 점검하고 향후 개선 및 관리에 대해 컨설팅도 해드리고 있어요. 현재 서울 근건센에서 새롭게 준비하고 있는 사업은 개인 보호구 착용 관련 교육 프로그램입니다. 사업장 단위별로 작업환경 개선을 지원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설비 개선 등은 비용과 시간이 들기 때문에 영세한 소규모 사업장에서는 컨설팅을 해드려도 실제로 실행에 옮기기가 어려운 경우가 많아요. 그럴 경우에는 차선책으로라도 보호구를 잘 착용하는 것이 중요하죠. 물론 보호구 착용은 안전보건 조치에서 최후의 수단이죠. 그렇지만 가장 효과적인 수단이기도 하잖아요. 더구나 노동자들에게 보호구가 잘 지급되지 않는 경우도 많고, 보호구가 있더라도 어떻게 착용해야 할지, 착용한 채로 어떻게 일해야 할지 잘 모르는 분들도 많아요. 나아가 어떤 보호구가 더 좋은지 정보도 없으시고요. 그런 점에서 노동자들이 스스로 보호구를 잘 활용하고, 자신과 작업장 환경에 맞는 적합한 보호구를 고를 수 있도록 도와드리려고 해요. 다른 근건센에서 하고 있기도 해서, 이를 도입해서 시도해보려 합니다.”

 

서비스 제공 과정에서 마주하는 문제, 의무 또는 유인의 부재

 

근건센 사업의 핵심적인 문제는 지원 서비스를 주고받는 과정이 잘 이뤄지지 않는다는 점이다. 소규모 사업장을 제도적으로 포괄하기 위해선 지원 프로그램에 노동자들이 각자 알아서 찾아오는 방식이 아닌 소규모 사업장 단위인 집단으로 접근할 수 있어야 한다. 예컨대, 근건센과 소규모 사업장이 MOU 등 협약을 체결해 집단 수준에서 진단 및 관리를 받는 방식이 더 효과적일 것이다.

이러한 집단적 관리방식의 일환으로 사업장 건강주치의프로그램이 마련되었지만, 이용률은 그리 높지 않다. 이는 근건센의 지원 서비스를 받는 이들에게 참여할 유인이 적기 때문이다. 소규모 사업장의 사업주는 안전보건 관련 문제를 책임지고 관리해야 할 의무를 지지 않으려 한다.

노동자들이 근건센의 프로그램을 이용하도록 하기 위해서는 사업주의 협조가 중요한데, 시간과 비용을 들여 할 정도의 관심과 열의가 있는 사업주가 아닌 이상, 일정 정도 이윤손실을 감수하면서 노동자들이 건강검진과 상담을 받도록 해주는 사업주는 거의 없다. 노동자가 필요하거나 방문하고 싶어도 찾아갈 시간을 내지 못하는 문제 해결이 시급하다. 노동자들 또한 근건센의 효용에 대한 인식이 없고, 사업장 내 안전보건에 대한 문제의식이 낮아서 근건센을 이용하려는 욕구 또한 적다.

출처 : 서울근로자건강센터 홈페이지

 

“그나마 안전보건 문제에 관심이 있는 사업주가 있는 사업장이라면 모를까, 집단으로 노동자들을 만나기란 쉽지 않아요. 노동자가 자신의 건강을 걱정해서 상담받고 싶어서 여기저기 수소문해보다가 혼자 찾아오는 경우도 꽤 됩니다. 서울 근건센의 경우 아파트형 공장으로 되어 있어서, 근건센이 있는 빌딩과 그 주변에서 근무하시는 분들이 아름아름 찾아오세요. 여전히 근건센이 있다는 것, 근건센을 통해 건강관리를 받을 수 있다는 것도 모르는 분들이 많은 상황이죠. 그래서 근건센의 활동을 소규모 사업장 노동자들에게 더 많이 알려야 해요. 그래도 긍정적인 점은 근건센 프로그램에 대한 만족도가 높다는 거에요. 센터가 있는 빌딩의 환경미화원분들이 오셔서 집단 프로그램을 받고 계신데, 처음에는 잘 모르셨다가 프로그램을 받고는 건강이 개선된 분들이 많으세요. 만족도가 높으신 거죠. 그런데도 문제는 이분들조차 센터에 시간 내서 오시는 게 힘들다는 거예요. 정말 센터가 있는 지역 인근에서 오시는 것이죠. 그나마도 짧은 점심시간 활용해서 오세요. 만약 오전 오후 업무 시간에 내방하시는 분들은 그나마 사업장의 재정적, 시간적 여유가 있는 곳에서 일하시는 분들이에요. 일반 소규모 민간 사업장에서는 거의 오지 못하세요.”

 

개인이 알아서 찾아오는 경우도 많지만, 집단 서비스 제공을 위해 센터에서 직접 대상 사업장들에 연락도 돌린다. 하지만 사업장에서는 민간 회사들의 판촉이라 여겨서 일방적으로 끊어버리는 경우도 다반사다. 만약 특수건강검진 사후관리를 하라고 안전보건공단에서 명단이 내려와 대상 사업장에 공문을 보내고 연락하면, 그나마 성공률이 20% 정도다. 그때야 비로소 사업장에 방문해서 현장에서 직접 건강진단 및 상담 등을 진행할 수가 있다. 어렵사리 사업장에 가더라도, 일하다 나온 노동자들에게 충분한 서비스를 제공하기란 쉽지 않고 노동자 입장에서도 다시 일하러 가야 하는 상황이 불편할 수밖에 없다. 결국 소규모 사업장에도 안전보건 관리 의무를 부과하거나 노동자 건강관리에 따른 각종 유인을 제공해야 하며, 노동자들에게 유급으로 시간을 보장해줘서 근건센을 방문할 수 있도록 하는 노동환경 또한 조성되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앞으로의 과제들, 운영시스템 체계화 및 인력·예산 확충

 

현재 전국에 21개 센터, 21개 분소가 있고 2020년 운영 10주기를 앞두고 있지만, 아직도 근건센의 운영을 기획 및 조정하는 중앙 근로자건강센터가 없다. 정부가 시행 중인 다른 센터 사업의 경우엔 광역 단위 이상의 규모를 갖춘 경우에 중앙관리조직을 두고, 시군구 규모를 가진 경우엔 광역관리조직을 두고 있다. 다양한 사업들을 평가 및 조정, 근건센 관련 데이터를 취합 및 생산, 기존 사업 개선 및 신규 사업 기획을 중앙부처 관료나 공단 직원 몇 명이 전적으로 부담하는 것은 근건센 운영의 효율성을 저해하는 일이며, 그들에게도 과중한 업무를 부과하는 일이다. 만약 안전보건시스템 구축 차원에서 근건센의 역할을 제대로 정립하고 장기적인 로드맵을 갖추려 한다면, 중앙관리조직을 두는 게 필수적이다.

 

“근건센 모델에 대해 많이 고민해요. 그때 제가 떠올리는 건 보건소예요. 노동자들의 보건소가 근건센이어야 하지 않을까요? 공공보건 영역에서 시민들에게 직접적으로 서비스를 제공하는 곳, 그들을 직접 만날 수 있는 창구죠. 정부의 손발 역할을 하는 곳이란 말이죠. 근건센도 노동안전보건 영역에서 손발의 역할을 한다고 생각해요. 그렇다면, 두뇌와 심장도 있어야 하겠죠. 그게 중앙관리조직일 테죠. 하지만 중앙관리조직을 갖추는 것만큼 중요한 게 손발이 제대로 역할을 할 만큼 충분한 인력과 예산이 확보되고 있는가를 돌아봐야 해요. 보건소와 근건센의 인력 및 예산을 비교해보면 명확히 드러나죠. 더구나 21개 센터와 21개 분소가 있다고 하지만, 우리나라 소규모 사업장 숫자에 비하면 턱없이 부족한 실정이에요. 센터의 양적 확대뿐만 아니라, 지역 간 배치 또한 적절하게 조정될 필요가 있을 것 같아요. 나아가 위치한 지역의 특성에 적합하게 특성화된 프로그램을 갖춰야겠죠. 장기적으론 보건소처럼, 아니 모세혈관과 같이 노동안전보건 영역에서 건강관리 서비스를 촘촘하게 제공하는 역할을 해야 하지 않을까요?”

 

이를 위해 센터 운영의 체계를 갖추는 것만큼이나 인력의 질적 역량도 높아져야 하지만, 민간위탁 방식의 센터 운영은 고용 안정성을 저해하여 인력 확보를 어렵게 한다. 우선 운영기관이 위탁사업을 지속하기 어려운 사유가 발생할 경우 재지정에서 탈락할 수 있어, 안정적 고용을 보장할 수 있는 위탁운영 기관이 적으며, 근건센을 제대로 운영할 만큼의 전문성을 갖춘 위탁운영 기관 또한 한정되어 있다. 더구나 수년째 예산 증액이 잘 이뤄지지 않고 있어서 임금상승이 정체되고 있어서 인력 유출이 쉽고 유입은 어려운 실정이다. 장기적 고용의 필요성이 확인되는 지점이다. 민간위탁 방식의 시범사업 형태에서 벗어나, 고용 책임성 및 사업 전문성을 확보하고 소규모 사업장 대상의 안전보건 사업을 양적으로 확장하고 질적으로 강화하기 위해서는 공공 조직화, 즉 공단 직영 형태로 점차 전환하고 장기적으로는 독립법인을 설립하는 방향으로 나아가야 한다는 요구가 나오고 있다.

 

“근건센의 현재와 미래에 대해 날카로운 문제 제기가 많은 건, 우리 사회에서 근건센의 역할이 중요하기 때문이라고 생각해요. 일하는 사람들의 건강 불평등 해소라는 지향을 하기 때문이 아닐까요. 노동안전보건 영역에서 제도적으로 보호받지 못하는 소규모 영세 사업장의 노동자들, 법제도의 사각지대에 놓여 자신들의 안전과 건강을 위협받는 이들에게 직접 다가갈 수 있는 창구로서 더 잘해보고 싶은 마음인 거죠. 근건센이 설립되면서 내세웠던 목표, 가치를 실현하기 위해서는 아직 갈 길이 멀어요. 그렇지만 여러 사람이 머리를 맞대고 고민하는 만큼, 근건센이 우리 사회의 건강 불평등, 건강 격차 해소에 더 많이 기여할 수 있을 거로 생각합니다.”

 

특집1. 건강 불평등과 노동 / 2019.11

건강 불평등과 노동

 

조성식 회원, 직업환경의학 전문의

 

사회적 불평등의 결과, 건강 불평등

 

크게 본다면, 사회 부정의(不正義)는 살인이다. Social injustice is killing on a grand scale.” (WHO, CSDH, 2008)

 

건강 불평등이란 건강 상태가 사회 집단 간에 평등하지 않다는 의미이다. 그래서 이 용어는 사실 각 사회구성원들의 건강이 평등해야 한다는 지향을 내포한다. 그런데 만약 건강 불평등이 지향하고 있는 이 의미를 제거한다면 건강 불평등은 사회 집단 간에는 건강 격차가 존재한다는 단순한 말이 될 것이다. 국제 학회에서는 윤리적이고 도덕적 의미를 내포하는 건강 형평성 (health equity)’이란 용어를 더 많이 사용한다. 국제 건강형평성학회에서는 건강 형평성을 사회적, 경제적, 인구학적 또는 지리적으로 정의된 인구집단 간 하나 또는 그 이상의 측면에서 건강상의 잠재적으로 개선 가능한 체계적 차이의 부재로 정의한다.

 

건강 불평등은 여러 가지 측면에서 관찰할 수 있는데, 그 중에서 가장 극적인 건강 격차를 확인할 수 있는 건 국가 간의 건강 격차이다. 저개발 국가와 이미 산업화된 국가를 비교하면 수명이 수십 년의 차이를 보인다. , 한 국가 내에서도 어떤 지역에 살고 있는지에 따라 건강 불평등이 존재한다. 예를 들어 같은 대도시이더라도 서울 시민의 건강 수준이 부산 시민의 건강 수준보다 더 좋다. 최근 연구 결과에 의하면 부산 시민의 평균 수명이 서울 시민의 평균 수명보다 2년 더 짧다고 한다. 뿐만 아니라 같은 도시 안에서 좀 더 작은 구 단위나 동 단위로 건강 수준을 살펴봤을 때 격차가 확인된다. 쉽게 상상할 수 있듯이 서울의 경우 강남 3구의 건강수준이 강북 지역의 건강 수준보다 더 좋고, 부산의 경우에도 수영구나 남구의 건강 수준이 서구나 사하구의 건강수준 보다 좋다. , 같은 지역 사회 내에서 다양한 사회경제적 조건에 따라 건강 수준의 차이가 존재하는 것이다. 그리고 대체로 높은 사회적 지위의 사람들이 낮은 사회적 지위의 사람들보다 건강하다. 교육을 많이 받은 사람들이 더 건강하고, 자산을 많이 가지거나 소득 수준이 높은 사람들이 가난한 사람보다 더 건강하다.

 

건강 형평성이라는 단어가 격차의 양상과 격차 개선의 가능성을 보여준다면, 건강 불평등을 보다 비판적인 의미에서 사용하는 사람들은 격차가 존재하는 원인과 격차를 개선하기 위한 과제를 드러내는 것에 더 주목한다. 이들은 집단 간의 건강 격차가 자연스러운 현상이 아니라 불평등한 사회적 구조로 기인한다고 인식한다. 그리고 건강 불평등이 정의롭지 않은 사회임을 보여주는 지표라고 생각하며, 건강 격차를 줄이고 모두가 건강한 사회를 추구하는 일을 중요한 사회적 과제로 설정한다. 이러한 비판적인 의미에서의 건강 불평등 개념에 비추어볼 때, 건강격차는 정의롭지 않고 불평등한 사회적 관계에서 발생하는 것이며, 그렇기에 건강상의 평등은 사회적 구조, 사회적 관계를 변화시킬 때에만 실현가능하다.

이런 점에서 2008년 세계보건기구(WHO)에서 발간한 보고서(“한 세대 안에 격차 줄이기”)에는 공정하지 않은, 정의롭지 않은 권력, , 자원의 분배에서 건강 불평등이 발생하고 있고 이를 개선하는 것이 건강 불평등을 줄이는 근본적인 원칙이라고 천명하고 있다. 이 세 가지 원칙에 입각해서 볼 때, 건강 불평등을 근본적으로 해소하는 일은 질병이 생겼을 경우 공평한 의료이용을 보장하는 보편적 의료보장제도를 구축하고, 그것을 넘어서는 공정한 사회적 관계를 만들어가는 걸 요구한다.

▲   과연 건강, 그리고 건강한 삶을 만들기 위해 필요한 각종 자원은 모두에게 평등하게 주어지는가?

 

원인의 원인을 제대로 보자

 

그렇다면, 보다 구체적인 수준에서 건강 불평등 문제의 원인을 살펴보자. 우선적으로 건강을 유지하려면, 충분한 먹을거리와 의복 그리고 안정적인 주거환경이 필수적이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이를 충족시키기 위해서는 일정한 수준의 물질적 자원이 필요하다. 그렇기 때문에 소득 불평등은 건강한 삶을 영위할 수 있도록 해주는 자원의 불평등을 야기할 수 있다.

식습관, 흡연, 음주, 운동과 신체 활동 등의 생활습관 역시 건강 유지에 중요하다. 이는 동료집단의 문화에 영향을 받으며, 사회에서의 지위에 따라서도 생활습관이 다르다. 문제는 생활습관이 개인의 선택인 것처럼 비춰지지만, 사실은 개인의 자유로운 의지에 따른 선택이 아닌 강제된 상황에서의 비자발적 선택이라는 점이다. 각자가 처한 노동환경, 노동조건, 작업장 문화 등에 따라 건강에 유해한 생활습관을 갖게 된다. 교대제, 장시간 노동, 야간노동, 휴게시설 및 휴게시간 부족, 연차 사용 제한, 건강검진 미보장 등이 노동자 개인이 자신의 건강관리 습관을 형성하는 데 미치는 영향을 무시해선 안 된다.

 

보다 자세히 말해, 건강 불평등은 단순히 국가 간, 지역 간에만 나타나는 문제가 아니다. 소득과 학력 등의 사회적 지표와 건강 수준의 지표 간의 연관을 고려할 때, 우리는 노동자의 건강 불평등에 대해서도 세심한 주의를 기울여야 한다. 노동자의 건강 불평등과 가장 관련성이 높은 요인은 바로 노동조건과 노동환경이다. 사람들은 노동 시장에 참여함으로써 소득을 얻고 자아 정체성을 형성한다. 사회에 만연한 소득 불평등은 건강을 유지할 수 있는 자원 배분의 불평등을 야기하는데, 여기서 핵심은 생활 임금 이하의 저임금 문제다. 저임금·불안정 노동에 종사하는 사람들은 건강을 유지 및 관리할 수 있는 자원의 부족을 겪을 가능성이 크다.

그리고 안전하지 않은 작업환경에 따라 사업장 간 건강 불평등도 심각하다. 어떤 사업장들에선 안전설비와 보호장비가 잘 마련되어 있고, 안전점검과 보건관리가 일상적으로 이뤄지는 데 반해, 다른 사업장들의 경우엔 기계설비에 압착되거나 높은 곳에서 추락하거나 유해화학물질에 노출되는 등의 각종 사고위험이 상존하며 뇌심혈관계질환이나 근골격계질환 등 각종 질환에 걸릴 위험이 높고 이에 대한 관리가 제대로 이뤄지지 않는다. 이러한 사업장 안전보건 수준은 대기업과 중소기업 등의 사업장 규모별 또는 직종별·산업별로 상당한 차이를 보인다. 이런 상황에 대한 조사가 통계나 자료로 자세히 정리되어 있지는 않은 상황이다. 그럼에도 우리는 노동자들이 겪는 노동안전보건 상의 문제를 건강 불평등의 차원에서 재규정할 수 있다.

이런 접근의 연장선에서 사회적 지위에 따라 느끼는 직무 스트레스의 정도와 같은 사회 심리적 문제 역시 건강 불평등과 관련되어 있다. 사회적으로 낮은 지위의 노동자들은 직무에 대한 낮은 통제력을 느낄 가능성이 크고, 노력에 비해 보상이 부족할 수 있다고 느낄 가능성 역시 크기 때문이다. 요약하면, 이 같은 건강 불평등이 발생하는 기저의 원인은 사회적 불평등이라 할 수 있다, 그런 면에서 사회적 불평등을 원인의 원인이라고 한다.

 

건강한 삶, 차별 없이 누려야 할 모두의 권리

 

현재 단편적인 뉴스로만 보도되고 있지만 산재 사망을 비롯한 중대한 산업재해는 소규모 영세업체에서 일하는 노동자, 비정규직 노동자, 하청업체에서 일하는 노동자들에서 빈발하고 있다. 이는 일하면서 발생할 수 있는 위험이 권한과 자원이 부족한 불안정·비정규직·하청 노동자들에게 떠넘겨 지고 있다는 것을 의미하며, 우리는 이를 위험의 외주화라고 정의하여 문제제기하고 있다.

노동자의 건강 불평등을 해결하기 위해서는 노동환경과 노동조건을 개선해야 한다. 대표적인 예로 태안화력발전소 비정규직 노동자 고 김용균 씨 산재 사망사건은 정의롭지 않은 사회적 환경에서 발생한 것, 이른바 사회적인 타살이라고 할 수 있다. 우리 사회에서 빈발한 중대재해, 각종 산재사망사고는 사회적 불평등을 야기하는 요소들이 고착화되어 노동자의 사망으로까지 이어지게 되는 건강 불평등의 고리들을 파악할 수 있게 해주며, 이러한 부정의한 상황들을 극복하기 위해서는 사회불평등의 근본원인이 무엇인지 밝혀내고 그것들을 개혁해나가기 위한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

 

건강은 누구나 다 누려야할 가치이며 권리다. 하지만 사회적 불평등에 의해서 누구나 그 같은 권리를 누리지 못하는 것은 안타까운 현실이다. 재차 강조하자면, 건강할 권리를 누리기 위해서는 사회적 불평등을 줄여야한다. 노동자간의 임금 격차를 줄여하고 그러기 위해선 최저임금이 생활의 최저선이 아닌 건강한 생활을 유지할 수 있는 다양한 자원을 제공할 수 있어야 한다. 더 나아가 일터를 바꿔 나갈 수 있는 노동자의 기본적인 노동안전보건 권리인 알 권리, 참여할 권리, 거부할 권리를 적극 보장하는 것 역시 노동자들의 건강 불평등을 줄여 나가는데 중요한 열쇠다.

또 안전과 관련해서는 누구나 다 안전하고 건강에 해롭지 않은 환경에서 일할 수 있어야 한다. 비정규직, 소규모 영세사업장에서 일하는 사람들뿐만 아니라 여성, 이주, 청소년, 고령, 장애, 성소수자 노동자 등 사회적 약자로 불리는 이들 역시 배제 되거나 차별 당하지 않고 충분히 안전한 노동환경을 보장받아야 한다.

물론 건강 불평등은 당장 해결하기 어려운 과제지만, 앞으로도 이를 줄이기 위한 지속적인 사회적 노력이 필요하다. 잊지 말아야 할 것은 유럽에선 이미 각종 법제도를 마련하고 이를 제대로 작동시켜 노동자의 건강 불평등을 오래전부터 충분히 줄여왔다는 점이다. 우리도 사회적으로 관심을 갖고서 안전보건체계를 제대로 구축하고 및 실효성 있게 집행한다면 노동자의 건강불평등을 해소해나갈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