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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 간 「일 터」/[문화로 읽는 노동] 구) 노동시간 읽어주는 사람

[9월_문화로읽는노동] 저 너머의 굴뚝은 언젠가 찾아온다_극단고래의 17번째 작품, 연극 <굴뚝을 기다리며> 저 너머의 굴뚝은 언젠가 찾아온다. 극단고래의 17번째 작품, 연극 박기형 선전위원 연극 의 막이 오르고, 두 사람이 절뚝이며 무대 가운데로 걸어 나온다. 그들의 이름은 누누와 나나. 누가 누구인지, 내가 나인지, 나는 여기 왜 여기 있는지 잊은 듯 너는 누구냐며 서로의 이름을 묻다가, 스스로를 가리키며 부르는 이름. 마치 언어유희와 같은 이름을 가진 누누와 나나는 굴뚝의 좁은 난간 사이를 위태롭게 절뚝이며 돌아다닌다. 그때 갑자기 누누가 발이 아프다며 주저앉는다. 나나는 누누의 발을 낫게 하려고 어디가 아픈지 묻는다. 하지만 누누는 이 발이 아프다고 물으면 저 발이 아프다고 답하고, 저 발이 아프냐고 물으면 저 발이 아프다고 답한다. 나나가 재차 발이 왜 아프냐고 묻자 누누는 신발(작업화)이 작은 것 .. 더보기
[8월_문화로읽는노동] 당신은 그것을 가지고 갈 수 없다- 돈만 아는 저질들을 향한 풍자와 해학: 영화 ⟨우리들의 낙원⟩(1938) 당신은 그것을 가지고 갈 수 없다(You can’t take it with you). - 돈만 아는 저질들을 향한 풍자와 해학: 영화 ⟨우리들의 낙원⟩(1938) 김소형 문화사회연구소 금융 자본가인 안소니 커비가 노리고 있는 것은 전쟁물자인 군수품이다. 감독인 프랭크 카프라는 영화 이후, 전쟁(제2차 대전, 1939~1945년)이 다시 시작되리란 걸 알았다는 듯이, 영화 도입부는 군수업으로 사업을 확장해가며 탐욕에 눈이 먼 사람으로부터 이야기가 시작된다. 그리고 우리 모두가 예상한대로 영화의 주인공은 그런 자본주의에 대해 비판적인 삶을 견지해나가는 어느 마을의 정신적 지주인 반더호프이다. 영화 (1938)은 자본주의적인 삶의 양식으로부터 벗어나 있는 반더호프와 그의 가족에 관한 이야기다. 기존에 퓰리처상.. 더보기
[7월_문화로읽는노동] “이렇게도 노동재해를 이야기할 수 있구나”- 판 드라마 <야드> 관람기 “이렇게도 노동재해를 이야기할 수 있구나” - 판 드라마 관람기 올해 통영국제음악제에서는 ‘야드’라는 공연이 무대에 올랐다. 조선소 노동자의 산재 사고를 소재로 한 임채묵 작가의 단편소설을 바탕으로 한 작품이었다. 출연진은 단 한 명, 판소리꾼이자 ‘이날치 밴드’의 보컬 안이호 씨였다. 안이호 씨는 소설 속 이야기 위에 소설을 읽은 자신의 감상과 해설을 덧붙여 새로운 작품을 만들어냈다. 연기도 하고, 소리도 하고, 춤 혹은 몸동작도 한다. 연극, 뮤지컬, 판소리, 뭐라고 불러야 적당할지 모르겠다. 그래서 제작진도 판소리와 드라마를 합쳐서 ‘판 드라마’라는 이름을 붙인 모양이다. 남의 눈으로 본 내 노동은 어떨까 시작을 알리는 공이 울리고 공연장이 칠흑처럼 어두워졌다. 무대 저 멀리 커다란 화물용 엘리베이.. 더보기
[일터6월호_문화로 읽는 노동] 텅 비고 지옥처럼 추운 저 땅으로 노동자들은 모두 함께 간다 - 〈체르노빌〉, 노동계급의 자부심이 세상을 바꿀 때 텅 비고 지옥처럼 추운 저 땅으로 노동자들은 모두 함께 간다 - 〈체르노빌〉, 노동계급의 자부심이 세상을 바꿀 때 강남규 문화사회연구소 운영위원 재난이 드러낸 사회의 한 단면 어떤 점에서 재난은 한 사회의 총체다. 그 사회의 민낯이 낱낱이 쌓여 하나의 재난을 이룬다. 그래서 하나의 재난을 자세히 해부하는 일은 곧 한 사회를 들여다보는 일과 같다. 그런 의미에서 체르노빌 원자력 발전소 폭발사고를 다룬 미국 드라마 〈체르노빌〉(2019)을 본다는 것은 당대 1980년대 후반 소련의 실상을 들여다보는 일인 셈이다. 원전 폭발이라는 (당시로서는) 전대미문의 재난은 소련 사회의 모순과 허술함을 빈틈없이 폭로했고, 〈체르노빌〉은 그것들을 천천히 그리고 깊게 조명한다. 그러나 재난은 또한 동시에 한 사회의 선한 면을.. 더보기
[일터5월_문화로읽는노동] 스폰지밥은 내 친구일까 [일터 5월호_문화로 읽는 노동] 스폰지밥은 내 친구일까 시간이 흐를수록 ‘지금은 맞고 그때는 틀린 것’ 또는 ‘그때는 맞고 지금은 틀린 것’이 생긴다. 과거에는 이상하다고 여겨진 것들이 지금 와서 다시 보면 지극히 정상적인 것으로 판명되기도 하고, 현재 옳다고 받아들여지는 가치들이 과거에는 잘못된 것으로 평가되기도 한다. ‘그때는 맞고 지금은 틀린 것’의 대표적인 예는 아기공룡 둘리의 고길동이다. 만화 속 고길동은 보고픈 엄마를 찾아 헤매는 가엾은 둘리를 타박하고 괴롭히는 악역으로 묘사된다. 그렇다면 고길동은 오늘날에도 여전히 악역일까. 인터넷 커뮤니티에서는 둘리의 만행을 정리한 밈(meme, SNS 등에서 유행해 다양한 모습으로 복제되는 패러디물을 이르는 말)들이 심심치 않게 발견되며, 둘리를 보고 .. 더보기
[문화로 읽는 노동] 세상의 해고에 맞서는 불굴의 투쟁: -영화 <나는 나를 해고하지 않는다>가 보여주는 노동의 모든 문제들 / 2021. 04 [문화로 읽는 노동] 세상의 해고에 맞서는 불굴의 투쟁: -영화 가 보여주는 노동의 모든 문제들 김상민 문화사회연구소 소장 누군가 늦은 밤 지방 소도시로 장시간 자동차를 운전해간다. 새벽녘 임시 숙소에서 전형적인 사무직 노동자 복장 한 여성이 빨대 꽂은 팩소주를 마시면서 절망인지 분노인지 알 수 없는 어떤 감정에 가득 차있다. 주인공인 그녀는 무슨 이유인지 지방 하청업체에서의 1년간의 시한부 파견 근무를 명령받았다. 이 장면에서 나는 언젠가 사무직 여성 노동자가 오지에 있는 현장으로 파견 발령이 났으나 개의치 않고 그 상황을 극복해 최고의 현장 노동자가 되었다는 뉴스를 본 적이 있다는 것이 떠올랐다. 아니나 다를까 영화 의 이태겸 감독이 이 영화를 만들기로 결심한 것도 바로 그 뉴스 때문이라고 한다. “.. 더보기
[문화로 읽는 노동] 이 치열한 무기력을 / 2021. 03 [문화로 읽는 노동] 이 치열한 무기력을 - 제니퍼 M. 실바의 책 채은 선전위원 세대를 구분하는 단어들이 있다. 그 시절을 특징짓는 '공통적인 것'들을 추상화시켜 만들고는 입으로 전하고 온갖 얘기에 널리 사용되었다. 예를 들어, X세대, IMF세대 뭐 이런 것들 아니던가. 참 명쾌하다. 단어 하나로 상당히 많은 것들을 이야기하고 있으니 말이다. 그 단어만 떠올려도, 그 시절의 정치, 사회, 문화, 경제를 한 순간에 군더더기 없이 느끼게 된다. 나도 이젠 옛날 사람이 되어서 내 시절을 구분 짓는 그 단어를 들을 때마다 '아~ 나 때는 말이지~'가 저절로 나오려고 한다. 아! 당연히 '라떼'를 시전하지는 않는다. 볼품없어 보여서 말이다. '라떼'는 그래도 괜찮았던 걸까? 나는 IMF 사태 때 학창 시절을 .. 더보기
[문화로 읽는 노동] 영화 <이리나 팜>, 성노동과 사회적 낙인에 대한 우회적 질문 / 2021.02 [문화로 읽는 노동] 영화 〈이리나 팜〉, 성노동과 사회적 낙인에 대한 우회적 질문 윤성호/문화사회연구소 연구원 난치병에 걸린 손자, 병원에서 희소식을 알려준다. 호주의 병원에서 치료해주겠다는 것. 그러나 영국에서 호주까지 항공권, 숙박, 입원비 등의 경비가 없다. 이미 손자의 병원비를 위해 집도 팔고 많은 부채에 아들과 며느리도 변변찮은 수입으로 벅차다. 집도 수입도 저축도 없어 거부당하고 기술경력도 자격도 없어 일자리를 구할 수도 없다. 그렇게 낙심하며 길을 걷다가 '호스티스 구함'이라는 손으로 쓴 전단지를 보고 매기는 구멍이 뚫린 벽에 들어온 남성의 성기를 자위시켜주는 윤락업소에서 자발적으로 성노동자가 된다. 매춘 혹은 성노동은 늘 사회적 빈곤의 서사와 함께한다. 가용할 자원이라곤 육체밖에 없는 사.. 더보기
[문화로 읽는 노동] 예술하라, 노동이 아닌 것처럼- 웹툰 <정년이>가 보여주는 예술노동의 명암 [문화로 읽는 노동] 예술하라, 노동이 아닌 것처럼- 웹툰 가 보여주는 예술노동의 명암 박범기 문화사회연구소 연구원 자신이 좋아하는 일을 하면서 돈도 벌 수 있다면, 그것만큼 좋은 게 또 있을까? 하지만 그렇게 좋아하는 일을 하면서 돈을 버는 이들이 얼마나 있을까? 노동이란, 자신을 상품으로 환원하면서 자신을 파는 일에 다름 아니다. 예술은 자신을 표현함으로써 자신을 드러내는 일이지만, 이러한 예술 행위 역시 스스로의 생계를 위해서 돈을 번다는 점에서 노동의 범주에서 벗어날 수 없다. 동시에 예술은 자기표현이라는 점에서 노동으로서 쉽게 인정되지 않는다. 웹툰 는 주인공 정년이가 국극배우가 되기 위해서 노력하는 과정을 보여주고 있다. 국극은 1950년대 크게 인기를 끌었던 대중문화 장르이다. 모든 배우가 .. 더보기
[문화로 읽는 노동] 로봇이 간병을 한다면?! - 시네마틱드라마 <간호중>이 던지는 돌봄 노동의 미래 이미지 / 2020. 09 [문화로 읽는 노동] 로봇이 간병을 한다면?! - 시네마틱드라마 이 던지는 돌봄 노동의 미래 이미지 김성윤 문화사회연구소 연구원 근미래의 대한민국. 오늘날 누구나 예상하고 있는 것처럼 그곳에서는 로봇이 인간의 노동을 대신하고 있다. 그것도 돌봄 노동을 말이다. 로봇이 만족할 만한 수준의 돌봄 노동을 할 수 있는가에 관한 문제는 여전히 논쟁적이긴 하지만, 1999년작 으로부터 시작해서 원제 로 더 잘 알려진 최근의 (2013)에 이르기까지 로봇이 인간의 신체를 어르고 감정을 매만질 수 있다는 상상력은 꾸준히 제기되고 있다. 영상 콘텐츠 플랫폼 웨이브에서 스트리밍하고 MBC를 통해 방영되기도 한 (SF8, 2020)의 첫 번째 이야기, 도 바로 이런 맥락을 담고 있다. 이 시네마틱 드라마의 기저에 깔린 질문.. 더보기
[문화로 읽는 노동] 흰둥이가 또 다른 흰둥이에게 건네는 위안-만화 『흰둥이 1』. 윤필. 창비. 2016. / 2020. 08 [문화로 읽는 노동] 흰둥이가 또 다른 흰둥이에게 건네는 위안-만화 『흰둥이 1』. 윤필. 창비. 2016. 박채은 선전위원 너나 할 것 없이 우울한 시절이다. 인류 역사에 길이 남을 신종 바이러스의 출현이 가져다준 우울이랄까. 세상은 마치 망가진 세탁기처럼 기이익 힘겨운 소리를 내며, 겨우 돌아가는 것 같다. 반복되는 낮은 소음이 그다지 불청객만은 아닌 듯 온통 차분해지고 가라앉아버린 모종의 분위기 속에 그동안 켜켜이 쌓여 있던 거짓의 환호와 행복들이 하나둘씩 벗겨져 가고, 애써 감춰왔던 그러나 마주해야만 했던 진실들이 드러났다. 어쩜 이렇게나! 불평등하기 짝이 없을까. 흰둥이의 시선이 머무는 자리 코로나19 이후 더욱 극명히 드러난 우리 사회의 민낯을 마주했다. 매체의 지면 곳곳을 온통 불평등과 관련.. 더보기
[문화로 읽는 노동] 그 노동자는 왜 복직투쟁에 나섰나 다큐영화 <그림자들의 섬> / 2020.07 [문화로 읽는 노동] 그 노동자는 왜 복직투쟁에 나섰나 다큐영화 강남규 / 문화사회연구소 운영위원 시간은 기억을 남기고, 기억은 감정을 만든다. 더 많은 시간은 더 많은 기억을, 더 많은 기억은 더 많은 감정을 남긴다. 이 감정이라는 것이 복잡미묘하다. 소위 '합리적 이성'으로는 이해하기 어려운 행동도 어떤 감정적 상황에서는 '그럴 수밖에 없는' 무엇이 되곤 한다. 이해하기 어려운 얘기는 아니다. 사소하게는 헤어진 애인과의 기억이 남아있다는 이유로 특정한 음식을 먹지 않는다든지, 뭐 그런 것들 있지 않은가. 그런데 이런 얘기가 남의 얘기가 되면 어쩐지 이해하기 어려운 것이 된다. 별다른 동질성이 없어서 감정이입 할 구석조차 없는 남의 얘기라면 더욱 그렇다. 노동자가 그렇다. 국민 대다수가 노동자이지만, .. 더보기
[문화로 읽는 노동] 자본주의 발전 시기 여성노동의 면면을 드러내다: 영화 「영자의 전성시대」/ 2020.06 [문화로 읽는 노동] 자본주의 발전 시기 여성노동의 면면을 드러내다: 영화 「영자의 전성시대」 김대호 / 회원 30~40대의 경우 제목은 들어봤지만 못 본 사람들이 많을 것이고, 20대의 경우 제목도 들어본 적이 없었을 것이다. 혹여 제목을 들어본 사람은 1990년대 SBS에서 방송했던 예능 프로그램의 한 코너에서 개그맨 이영자와 홍진경이 버스 안내양으로 나와 그 시절 잘나간다는 연예인들을 버스 승객(게스트)으로 맞아 웃음을 주는 프로그램으로 알고 있는데, 이 프로그램의 기원은 소설이 원작인 영화 이다. 영자의 수난시대 영화 에서는 그 시대를 상징하는 대표적인 청춘남녀가 주인공이다. 동생들의 학비와 가족의 생활비를 벌기 위해 시골에서 상경하여 청계천 철공소 사장의 집에서 가사도우미로 일을 하는 영자(배우.. 더보기
[문화로 읽는 노동] 상공인들의 노동을 찾아서 : 청계천 사람들의 노동을 기록한 작가들의 사진 / 2020.05 상공인들의 노동을 찾아서 : 청계천 사람들의 노동을 기록한 작가들의 사진 최혁규 문화사회연구소 노동자라고 하면 어떤 이미지가 떠오르는가? 우리는 노동자를 어떻게 상상하는가? 지금까지 우리 사회는 노동자를 어떤 방식으로 재현해왔는가? 노동자를 기록한 대부분의 사진은 노동 현장을 포착하거나 노동자들이 연대하여 투쟁하고 있는 모습을 담았다. 전자든 후자든 포토제닉한 순간을 담아내기 위해 노동자의 손과 표정 그리고 땀을 사진적 표현의 중심에 놓곤 한다. 이를 통해 투박하고 강인한 노동자의 모습을 담아내면서 일종의 숭고미를 그려낸다. 이는 비단 노동자라는 대상을 다룰 때만이 아니라, 노동이라는 행위를 사진 이미지로 기록해 보여주고자 할 때 흔히 취하게 되는 전략이다. 노동자에 대한 지배적인 재현과 상상 노동자의 .. 더보기
[문화로 읽는 노동] 있는 그대로 바라봐주기 – SBS 드라마 <스토브리그> / 2020.04 있는 그대로 바라봐주기 – SBS 드라마 채은 선전위원 스토브리그는 프로야구에서 한 시즌이 끝난 뒤 다음 시즌이 시작되기 전까지 계약 갱신, 트레이드 등이 이루어지는 시기를 가리킨다. 난롯가에 둘러앉아 여러 가지 정보와 소문이 오가는 것을 비유적으로 표현한 말이다. 명쾌하고 정확한 몸값 필자는 꽤나 야구광이다. 한동안은 야구 경기 일정에 맞춰 삶을 계획하기도 했을 정도였고, 특히 우승팀을 가리는 진승부가 벌어지는 일명 ‘가을야구 시즌’에는 거의 야구에만 빠져있을 정도였다. 야구는 모든 것을 숫자로 표현하는데, 예를 들면, 타율, 타석, 타수, 득점, 안타, 2루타, 3루타, 홈런, 볼넷 등을 통해 각 선수의 능력치를 숫자로 표현하고 이는 명쾌하고, 정확하고, 객관적이다. 이러한 야구의 특징은 다음과 같은..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