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회견] 부산시 시장후보 중대재해 예방을 위한 정책과제 답변 기자회견

 

3월 22일 오전 11시에 부산시청앞에서 중대재해기업처벌법제정 부산운동본부 주최로 부산시장 후보들의 중대재해 예방을 위한 정책과제에 대한 답변 결과 발표 기자회견을 가졌습니다. 6명의 후보 중 4명 후보의 답변에 대한 내용 발표와 부산운동본부가 부산지역 중대재해 예방을 위한 요구를 제기하였습니다.

관련 자세한 내용은 아래 기자회견문을 참조바랍니다.

20210322 부산운동본부 기자회견문.hw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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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노동뉴스] 위험을 막을 작업중지권과 작업중지 명령(21.03.25)

중대재해 처벌 등에 관한 법률(중대재해처벌법)이 올해 우여곡절 끝에 국회를 통과했지만 연일 노동자들의 죽음에 대한 소식은 끊이지 않고 있다. 더욱이 산재 사망사고의 대부분은 중대재해처벌법 적용이 제외되는 5명 미만 사업장과 1년간 유예되는 50명 미만 사업장이 다수를 차지하고 있다는 점에 주목해야 한다.

우리나라 규모별·산업별 사업체 현황을 보면 50명 미만 사업장은 전체 410만개 중 405만여개로 98.8%를 차지하고 있다. 또한 고용노동부의 2019년 산업재해 발생현황에 따르면 업무상사고 사망만인율(노동자 1만명당 발생하는 업무상사고 사망자 비율)은 △5명 미만 사업장 1.00 △5명 이상 50명 미만 사업장 0.44 △50명 이상 100명 미만 사업장 0.35 △100명 이상 300명 미만 사업장 0.31 △300명 이상 1천명 미만 사업장 0.22 △1천명 이상 사업장 0.07이었다. 사업장의 규모가 작을수록 업무상사고로 사망하는 노동자가 많았다. 5명 미만 사업에서는 1천명 이상 사업장에 비해 무려 약 14.3배나 많은 노동자가 업무상사고로 사망했다.

출처 : 매일노동뉴스(www.labortoday.co.kr/news/articleView.html?idxno=202003)

 

위험을 막을 작업중지권과 작업중지 명령 - 매일노동뉴스

중대재해 처벌 등에 관한 법률(중대재해처벌법)이 올해 우여곡절 끝에 국회를 통과했지만 연일 노동자들의 죽음에 대한 소식은 끊이지 않고 있다. 더욱이 산재 사망사고의 대부분은 중대재해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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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노동뉴스] 화장실은 노동기본권이다(21.03.18)

손진우 한국노동안전보건연구소 상임활동가

여성에게 화장실이 남성과는 다른 의미의 공간이라는 것을 기존과 다르게 ‘감각화’하게 된 것은 10여년 전 기억 때문이다.

당시는 연구소 서울 사무실이 구로역 근방에 있었다. 열띤 회의를 마치면 매우 늦은 시간까지, 때로는 새벽까지 밀린 이야기를 나누느라 뒤풀이도 일처럼 할 때였다. 사무실 인근 구로역 가까이 가격도 싸고, 맛 좋기로 입소문 난 족발집이 있었는데 여성 활동가들은 그곳에 방문하기를 꺼렸다. ‘족발을 싫어하나?’라고만 생각했는데, 알고 보니 화장실이 문제였다.

‘잠깐 용변을 보는 공간이 집처럼 편안할 수 없는데, 너무 깔끔 떠는 거 아냐’라고만 생각했다. 그런데 막상 그 화장실을 다녀온 이후 생각이 바뀌었다. 화장실이 여성들에게 있어서는 용변을 해결하는 것만이 아니라, 안심하고 마음을 놓을 수 있는 공간이어야 한다는 것. 그 자체로 안전한 장소여야 한다는 것으로 말이다. 그 이후부터 내가 앞장서서 식사나 뒤풀이 장소를 찾을 때나, 수련회나 엠티 장소를 선택할 때도 우선 순위를 여성 화장실로 두게 됐다.

출처 : 매일노동뉴스 www.labortoday.co.kr/news/articleView.html?idxno=201870

 

화장실은 노동기본권이다 - 매일노동뉴스

여성에게 화장실이 남성과는 다른 의미의 공간이라는 것을 기존과 다르게 ‘감각화’하게 된 것은 10여년 전 기억 때문이다.당시는 연구소 서울 사무실이 구로역 근방에 있었다. 열띤 회의를 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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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월 시간센터 월례토론] 사회적 합의 이후 택배 노동의 현장, 얼만큼 달라졌나?

택배 노동자들의 줄이은 과로사 문제가 심각한 사회적 이슈로 대두되고 노동자들의 문제제기가 계속되자, 정부와 여당, 택배업계로 구성된 '사회적 합의기구'를 만들어 과로사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나섰습니다. 이후 택배과로사 대책 마련을 위한 사회적 합의안이 지난 설 이전에 마련되었습니다.

하지만 그 이후에도 또 다른 안타까운 노동자들의 사망 소식이 계속해서 들려오고 있는 실정입니다.

합의안이 실제로 현장에서 제대로 이행 되고 있는지, 그 현황을 함께 짚어보고자 합니다.

 

일시 : 2021.03.31() 저녁 7

발표자 : 화물연대본부 전략조직국장 강동헌

장소 : 서울 동작구 남부순환로 2019, 5

참가신청링크 : http://bit.ly/시간센터월례토론

참가신청기간 : ~03.28()까지

 

 

[기자회견문] 노동자의 희망버팀목이 되겠다는 근로복지공단실상은 지연되는 산재처리로 노동자에게 고통만 가중산재처리 지연 대책없는 강순희 이사장을 규탄한다!(21.03.18)

 

노동자의 희망버팀목이 되겠다는 근로복지공단

실상은 지연되는 산재처리로 노동자에게 고통만 가중

산재처리 지연 대책없는 강순희 이사장을 규탄한다!

 

산재 노동자의 치료받을 권리와 그 가족들의 삶을 보호할 의무가 국가에 있음을 표명하며 만들어진 것이 산재보험이다. 하지만 산재보험 제도의 근본 취지는 사라진 지 오래다. 국가가 책임지고 보호해야 할 산재노동자들은 십수년 째 무한정 지연되는 산재처리로 인해 치료받을 권리를 빼앗기고 생존권마저 위협당하고 있다.

근골격계 질병으로 산재 신청을 하고 승인 여부가 결정될 때까지 평균 4달 이상, 길게는 6달이 넘는 기간 동안 산재 노동자들은 모든 고통을 개인이 감수해야 한다. 제대로 된 치료를 받지 못해 병든 몸은 더 악화되고, 아프면 회사를 나가라는 사업주의 압박에 일자리를 잃기도 한다. 치료비에 생활비를 대출로 꾸역꾸역 메꾸지만 결국 버텨내지 못하고 산재 노동자 전체 가족의 삶은 파탄나고 만다. 이것이 근로복지공단 강순희 이사장이 말하는 노동복지허브의 실상인 것인가.

강순희 이사장과 근로복지공단이 표방하고 있는 비전은 그럴듯한 수식어로 가득하다. ‘일하는 사람들의 희망’,‘사회적 위험으로부터 일하는 삶을 보호하고 노동생애 행복을 지켜주는 희망버팀목’, ‘일하는 사람의 행복을 이어주는 세계적 사회보장 선도기관’. 그러나 지금 이 시간에도 지연되는 산재처리와 부당한 산재불승인 등 근로복지공단의 잘못된 행정으로 인해 피눈물을 흘리는 산재 노동자들은 허울뿐인 근로복지공단의 비전 앞에 또 다시 절망한다.

지난해 11월부터 산재처리 지연 대책을 촉구하는 투쟁을 시작한 금속노조는 수차례 근로복지공단의 역할을 촉구하며, 기다렸고 기회를 줬다. 근로복지공단 본부와 일선지사의 담당자들은 금속노조 앞에서는 하나같이 산재 노동자들의 고통이 심하다는 것을 공감한다고 고개를 끄덕였다. 심지어 강순희 이사장 역시 산재 처리 소요기간이 길어지고 있는 문제를 인식한다며 기간 단축을 위해서 다양한 노력을 하고 있다고 밝혀왔다. 그렇지만 역시 말뿐이었다. 넉 달의 시간이 지나도록 근로복지공단과 강순희 이사장은 이렇다 할 대책을 내놓지 않았다. 고작 내놓은 답변이 현재 4달이 걸리는 근골격계질병 산재 처리 기간을 3달로 한 달 가량 줄여보겠다는 것이었다. 형식적으로만 노동자들의 고통에 공감한다 말하며 아무 노력을 하지 않는 것이든, 문제를 알고 있지만 해결할 능력이 없는 것이든, 결국 근로복지공단은 산재노동자들의 피눈물을 또 다시 외면했고 더 큰 절망을 안겼다.

그렇게 근로복지공단이 내놓은 노력의 결과물은 고작 한 달 가량 처리기간을 단축시키는 것이다. 3달 만에 산재 승인 여부를 결정하면 산재 노동자들이 고통에서 벗어날 수 있나? 한 달 이상 병가를 내는 것이 불가능한 사업장이 한 둘이 아니다. 산재 판정을 받지 못한 상태에서 석 달씩 병가를 내고 안정적으로 치료를 받을 수 있는 노동자는 극소수에 불과하다. 근로복지공단은 아직도 산재노동자들에게 목숨을 걸고, 자신의 생존을 걸고 산재 신청을 하라는 무책임한 얘기를 하고 있는 것이다.

산재처리가 이렇게 길어질 이유가 무엇인가. 근로복지공단이 산재처리 기간을 단축할 수 있는 제도라고 자화자찬하고 있는 추정의 원칙이 도입됐지만 이미 여기저기 부위마다 골병이 들어 산재신청한 노동자의 복합 상병은 안된다며 제외시키고, 매우 협소한 질병과 엄격한 기준만을 제시하고 있어 정작 그 제도에 포함되는 노동자는 소수에 불과하다.

일하다 병들고 다친 것이 명확하다면 필요 없는 절차를 단축하고 빠르게 승인 처리 하면 된다. 승인처리를 단축시킬 수 있는 방법은 너무나 간단하다. 근로복지공단 담당자들이 사업주와 병원 등을 핑계 대며 세월아 네월아 지연시키는 재해조사를 신속하게 진행시키면 된다. 인력이 필요하다면 인력을 늘리고, 제도상 문제가 있다면 제도를 개선하면 된다. 추정의 원칙을 적극 확대하고, 심의 건이 밀려 처리가 늦어지고 있는 업무상질병판정위원회에 상정되는 건 자체를 줄이면 된다. 근로복지공단과 강순희 이사장이 정말 의지를 갖고 노력을 하고 있다면 못할 이유가 없다. 이미 어떻게 해야 처리기간은 단축시킬 수 있는지 방향은 나와 있고 노동자들은 수년 째 제도 개선을 요구해왔지만 근로복지공단은 알면서도 근본 해법을 외면해왔다.

강순희 이사장은 근로복지공단을 노동복지 허브로 만들겠다고 떠벌리고 있지만, 노동자들에게 근로복지공단은 절망과 분노의 대상일 뿐이다. 보호해야 할 노동자들을 외면하고 무대책으로 일관하는 강순희 이사장을 강력히 규탄한다. 금속노조는 이미 수차례 근로복지공단과 강순희 이사장에게 경고해왔다. 노동자들이 기다릴 수 있는 시간은 결코 길지 않음을 말이다. 한 해 산업재해로 고통받는 노동자가 10만 여 명이다. 그 노동자들의 고통과 절망을 더 이상 외면하지 말아라. 금속노조는 산재처리 지연 해결을 위한 근본 대책 마련을 다시 한 번 강력히 촉구한다. 이 문제를 해결할 의지와 능력이 없다면 강순희 이사장은 그 자리에 있을 이유가 없다. 근로복지공단과 강순희 이사장이 자신의 책무를 다하는 기관과 기관장이 될 것을 촉구하며, 이를 위해 금속노조는 전 조직적 힘을 모아 투쟁해 나갈 것이다.

2021318일 전국금속노동조합

 

[만평] 작은 사업장 = 작은 목숨값 / 2021. 03

[직업환경의사가 만난 노동자 건강이야기] 노동현장도, 건강검진 실시도 험난한 물류업계 / 2021. 03

[직업환경의사가 만난 노동자 건강이야기]

노동현장도, 건강검진 실시도 험난한 물류업계

김지원 후원회원, 직업환경의학 전문의

언제부터인가 우리는 스마트폰 쇼핑앱으로 터치 몇 번이면 새벽배송으로 제품을 받아볼 수 있게 되었다. 포털 사이트나 쇼핑몰에서도 주문만 하면 늦어도 다음날이면 문 앞에 택배 상자가 놓여 있다. 코로나 덕분에 가속화된 이러한 일상은 가히 물류의 혁신이라고 부를 만하다. 편리함에 우리 모두 길들고 있다.

물론 모두가 편리해 보이는 혁신 뒤에는 많은 물류 노동자들의 피와 땀이 있다. 미국 나스닥 상장을 추진한 기업의 경우 개별주문 확인과 소포장, 분류, 배송까지 수많은 인력이 상당량 수작업으로 진행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기존의 전통적인 대형마트와 백화점 등을 운영해온 대기업의 경우 좀 더 자동화와 전산화가 진행되었다고 알려져 있다. 사실 여기서 혁신이 더 지속된 미국의 아마존 같은 글로벌기업의 경우에는 로봇화, 자동화, 무인화가 이루어지면서 고용유발 증가량보다는 단순 인력 감소량이 커진다고 한다.

분류 업무를 하는 노동자들. 출처: 김지원



거절할 수 없는 제안을 했다

군포 복합 물류 센터로 향한다. 최근에는 곤지암, 이천 등 타 물류단지로 물량을 다소 뺏겨 규모가 줄어들긴 했지만 주로 서울 남부의 물류가 집결하는 곳이다. 물류 노동자들은 산재 사고나 근골격계 질환 등에 취약하다고 알려져 있고 최근에는 과로사 문제 등 뇌심혈관계 질환이 대두되기도 하였다.

또한 물류의 연속 선상에서 떠맡게 되는 부수적인 업무가 많고 장시간 야간노동을 하기 때문에 보건학적 관심이 필요한 직종이다. 관련 산업보건제도에 의해서도 야간작업은 특수건강진단의 대상으로 관리되기 시작하면서 일반건강진단뿐만 아니라 특수건강진단을 통해 뇌심질환과 수면장애, 위장관계 증상 등에 대한 정기적인 조사가 이루어지게 되었다.

물류센터 인력도급업체들의 건강진단 요청을 받게 되면 각오를 단단히 하게 된다. 패딩 조끼와 핫팩은 필수다. 일단 물류단지 건물들 자체가 윙바디 트레일러와 트럭 등의 박차를 위해 모두 뚫린 구조라 냉난방의 의미가 없고 건물의 안과 밖이 구별되지 않는다. 혈압과 채혈을 하는 장소는 그대로 외부환경에 노출되어 사실상 야외나 다름없고, 그나마 문진실이라고 내어주는 행정사무실이나 창고도 가건물에 가까운 판넬 구조라 전열기구의 도움을 받아 조금 나은 정도이다. 끊임없는 소음과 컨베이어 벨트의 진동은 덤이다. 부지런히 몸을 움직이는 현장 물류 노동자들은 이러한 추위와 더위에 익숙해진 터라 건강검진을 받으러 오게 되면 외려 '안 추우세요?'라고 병원 직원들에게 되묻곤 한다.

이러한 상황이니 특히 혈압측정의 신뢰성을 담보하는데 상당한 주의를 기울이게 된다. 뿐만 아니라 많은 인력도급 업체들이 야간 분류작업이 시작되는 오후 5시경에 검진을 요청하는데 노동자들에 대한 체계적인 관리 시스템이 부족한 편이라 건강진단의 기본인 '공복 상태'를 고지받지 않고 오는 노동자들이 많다. 오히려, 몸 쓰는 일을 하는 사람들인데 그때까지 공복을 하라는 게 말이 되냐며 채혈하는 병리사에게 화를 내기도 한다.

의사는 노동자들의 직업력 등을 먼저 확인하기 시작한다. 도급업체들을 통한 간접 고용이 일상인 분야이기 때문에 대부분 1년 미만 근무를 하거나 매년 재계약을 통해 입사와 퇴사를 반복하는 형태로 일하고 있다. 여기에 코로나로 인해 타격이 컸던 분야인 예술계, 관광업 종사자들이 물류센터로 많이 유입되고 있다는 뉴스를 현장에서 체감하게 되었다. 고용환경 변화의 풍랑 속에서 완충 역할을 해주고 있어 다행이다.

건강검진 후 결과 판정을 하다 보면 이들에게서 고혈압, 당뇨 등 만성질환이 발견되는 빈도가 높다. 특히 기존에 일반건강진단을 전혀 강제 받지 않았던 특수고용이나 프리랜서를 전전하던 노동자들이 이러한 물류센터에 적을 두게 되면서 비로소 확진 받는 사례가 많다. 사실 성적표를 읽지 않고 서랍 속에 넣어두는 학생처럼, 본인의 건강진단 결과서도 제대로 읽지 않고 치료나 추가검사를 받지 않는 사람도 많다. 다양한 직장을 전전하다 보면 때로는 좀 더 강한 보건관리 규제의 그물망에 들어왔다 나가기를 반복하는 것이다.

재검사를 사업장에 통보하면 일단 반응은 두 가지다. '멀어서 가지 않겠다. 그날 밥을 좀 먹고 와서 당이 높게 나온 것 같다. 왜 재검이 나오는 거냐. 귀찮다' 혹은 '그분 퇴사했다'이다. 사실 후자의 경우는 추가검사를 강제할 수단이 마땅치 않다. 마침 이 글을 쓰는 중, 근로자 공복혈당 수치가 당뇨 진단수치를 상회하여 확진검사가 필요하나 알아서 판정해달라는 근로자와 사업주의 '요청'이 있다는 내용을 행정 직원에게 전해 받았다. 서두에서 말한 기업 중 한 곳이었고, 마침 해당 회사 물류 직원 과로사 문제로 최근 논란의 중심에 있는 회사였다. 이에 나는 신중하게 단어들을 가다듬어 회사 담당자에게 전달하도록 하였다. 거절할 수 없는 제안을.

"...정당한 사유 없이 이 규정을 위반하는 경우, 건강진단을 하지 아니한 사업주의 경우 1천만 원 이하의 과태료가 부과되며(산업안전보건법 제72조 제4항 제5호) 건강진단을 하지 아니한 근로자의 경우도 300만 원 이하의 과태료가 부과됩니다. (산업안전보건법 제72조 제5항 제2호). 귀사의 경우 현재 과로사 문제로 사회적 문제가 대두되고 있으며, 노동자에 대해서 특수건강진단 등의 안전보건업무를 소홀히 하게 된다면 추후 책임문제가 발생할 수 있음을 알려드립니다."

[여성노동건강상식] 날 열받게 한 건 사회인데 왜 내가 약을 먹어야 하지? / 2021. 03

[여성노동 건강상식]

날 열받게 한 건 사회인데 왜 내가 약을 먹어야 하지?

권윤영, 회원, 정신의학과 전문의

일반적으로 타과 질환과 달리 원인 파악 및 치료과정에서 정신질환은 생물학적인 요인이 쉽게 간과되고 심리적-사회환경적인 요인에 의해(서만) 결정되는 것처럼 이해될 때가 있다. 외부적 스트레스로 인해서 병이 생겼고 그 병은 스트레스를 멀리하면 나아질 것이라는 식으로 말이다.

그에 비해 의료인은 생물학적인 요인에 초점을 맞추다 보니 '정신과에 가면 얘기도 안 듣고 약만 처방하더라.'라는 불만이 나온다. 정신건강 문제가 발생된 계기가 사회환경적인 요인이라고 해도 결국 질병이 발생하는 영역은 생물학적인 신체! 바로 우리의 뇌와 신경, 몸이다.

특히, 여성의 몸은 초경과 월경, 임신, 출산, 완경 등 생리적 변화가 늘 일어나며, 이에 따른 스트레스가 높다. 월경 전 불쾌기분 장애와 같이 여성에게만 나타나는 질환도 있고 주요 우울장애, 불안장애, 섭식장애, 외상 후 스트레스장애 등 남성보다 여성에게서 더 흔한 질환도 있다.

이런 남녀의 유병률 차이는 문화, 제도, 사회적 역할에서 기인한 면도 분명 있고 성별에 따른 뇌발달의 차이, 생리적 차이, 생물학적인 원인도 중요하게 작용한다. 결국 생물학적-심리-사회적 요인들을 각각 균형 있게 보고 다루는 태도가 정신건강 문제 해결을 위해 바람직하다. 

한국 성인 성별 정신장애 일년유병률(2016): 지난 1년 동안 한 가지 이상의 정신질환에 한 번 이상 이환된 적이 있는 비율. 출처: 보건복지부, 정신질환실태조사(이 조사는 2011년부터 시작되어 5년 주기로 실시되는 조사로 만 18세 이상 국민의 주요정신질환유병률을 추정하고 있다) 


약물치료는 최후의 방법? 

정신건강의학과에서 상담을 받는 것에 대한 거부감은 많이 없어진 것 같지만 약물치료에 대해서는 여전히 거부감이 크다. 정신과적 증상, 즉 우울, 불안, 불면, 악몽, 강박증, 대인 공포, 자살 생각, 환청, 망상 등은 신경 생물학적 원인(뇌에서의 세로토닌 조절 이상, 도파민 분비 조절 및 자율신경계 장애 등)과 환경적 스트레스, 심리적 어려움이 복합적으로 작용하는 경우가 많다. 환경적인 문제, 심리적 어려움이 첫 시작이었다고 해도, 그렇게 생겨난 스트레스는 신경전달물질, 호르몬 분비에 영향을 미쳐서 증상을 발생시키게 되고, 단순히 환경을 바꿔주거나 심리상담을 해주는 것만으로는 너무나 오래 걸리거나 해결이 안 되는 경우가 있다.

또한 환경, 심리적인 영향보다 신경 생물학적 원인이 제일 크게 작용하는 질환도 일부 존재한다. 그래서 약으로 신경전달물질, 호르몬 분비를 교정해주면 생물학적으로 불균형이던 뇌의 기능이 정상화되고 그에 따라 증상이 한결 가라앉게 돼서 상담치료, 인지행동치료 등 다른 치료들의 효과도 높아지게 된다. 즉, 약이 심리적 어려움, 환경 변화 등의 외부 스트레스 자체를 없애주지는 않지만 스트레스 상황에 대처할 수 있도록 증상을 완화시키고 준비시킬 수 있다.

정신과 약에는 주요우울장애나 불안 증상, 강박증에 쓰는 항우울제, 불안을 빠르게 가라앉혀 주고 수면을 도와줄 수 있는 항불안제, 기분이 너무 들뜨거나 너무 가라앉는 것이 반복적으로 나타날 때 기분의 안정을 도울 수 있는 기분안정제, 환청이나 망상 등의 현실감의 저하가 있을 때 쓸 수 있는 항정신병제, ADHD에 쓸 수 있는 중추신경자극제 등 종류가 여러 가지이다.

항정신병제를 꼭 환청이나 망상이 있어야만 쓰는 것도 아니며 때로는 불면을 다스리기 위해, 때로는 분노를 조절하기 위해 사용하기 때문에 약물은 정신과에 방문한 분의 특성에 맞춰 섬세하게 처방된다. 때로는 원래 고혈압약으로 발명된 약을 불안을 조절하기 위해 쓰기도 하고 약의 부작용을 방지하기 위한 목적으로 약을 쓰는 경우도 있다.

약물치료는 '하다하다 안되면 쓰는 최후의 방법'이라는 생각도 많이들 하신다. 약물치료 없이 상담만 받으면 정신과 문제가 경한 것이고, 약을 먹으면 정신과 문제가 심각한 것이라고 생각하기도 한다. 앞서 말했던 정신과 문제의 다양한 원인과 속성에 맞추어, 약을 초기에 사용하는 것이 도움이 될 경우, 초기부터 사용하고 약이 필요 없는 경우에는 쓰지 않기도 한다.

정신과적 문제가 지속되면 뇌기능 저하가 뒤따를 수 있기 때문에 약물로서 정신과적 증상을 완화시키는 것이 뇌기능을 향상시키고 보호하는 역할을 할 수 있다. 많은 양을 복용할 경우 부작용으로 인해 멍해 보이는 경우도 있지만, 이러한 증상도 약을 줄이거나 중지하면 대부분 호전된다.

의사에게 물어보세요

우울증, 주의력 결핍 과잉행동 장애 등에서 사용하는 약은 뇌에서 감정이나 주의집중력을 관장하는 신경전달물질을 조절해서 장기적으로 뇌의 신경망을 변화시키는 역할을 한다. 그렇기 때문에 약 먹을 때만 효과가 있다고 보기보다는 장기적으로 뇌 기능을 치료해주는 역할을 하는 약도 있는 것이다.

약을 복용하기 시작하면 중독성이 있어서 평생 먹어야 하는지도 많은 분들이 궁금해한다. 항우울제, 기분안정제, 항정신병제 등은 의존성과 전혀 상관이 없다. 최근 주의력 결핍 과잉행동장애 등에서 쓰는 중추신경자극제 역시 '약 성분에 마약성 물질이 있다, 중독이 된다더라'라는 루머가 많다. 하지만 주의력 결핍 과잉행동장애가 있는 환자들에서 경구 투여하는 약은 중독, 의존이 생기지 않을뿐더러 오히려 이 환자들이 술, 담배, 약물, 도박, 게임 등에 '쉽게 중독될 수 있는 성향'이 있는데 그 성향을 크게 줄여준다.

항불안제와 수면제 중 일부 약물이 내성과 금단 등의 의존이 생길 수 있지만 최근 개발된 약은 의존성이 낮아졌고 몸에 독성이 없어서 불안해하지 않아도 된다. 게다가 정신과 의사는 알코올 중독, 도박 중독, 마약 등 약물 중독 등등 '중독'을 치료하는 의사이다. 정신과 의사가 약물에 중독이 생기게 내버려 두지 않으니 임의로 더 먹거나 갑자기 끊지 말고 처방한 대로 먹으면 내성, 금단으로 고생하는 일은 없다.

그리고 특정 약에 중독이 될 것 같으면 그 약은 되도록 소량만 일시적으로 쓰거나 다른 약으로 대체해서 쓰는 것이지 평생 쓸 수 없다. 어떤 정신과 환자가 약을 거의 평생 먹어야 했다면 그것은 약에 중독되어서가 아니라 약을 중단하면 조절되지 않을 증상이 있거나 재발 위험성이 높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양극성 장애(조울병) 환자가 증상이 있으나 없으나 약을 먹지 않으면 조증이나 우울증이 다시 생길 가능성이 90% 이상이고 재발이 잦을수록 치료가 어려워진다거나 환자 및 보호자에게 손실이 많기 때문에 계속 약물을 복용하도록 안내하는 것이다.

제일 중요한 것은 정신과 의사와 약의 작용과 부작용, 약에 대해 드는 생각과 감정을 솔직하게 의논하고 모르는 것을 의사에게 직접 물어보면서 용법, 용량을 지키는 것이다. 약에 이런저런 의미를 너무 부여하지 말자. 그냥 중요한 치료의 한 축일 뿐이다.

[알아보자, LAW동건강] 산업재해 승인 이후 맞닥뜨린 사회보험의 현실 / 2021. 03

[알아보자, LAW동건강]

산업재해 승인 이후 맞닥뜨린 사회보험의 현실

이성민 회원, 노무사

 

산업재해 비지정 의료기관에서 치료받으신 것이므로 요양비 지급은 가능하지 않다.”

산업재해로 인한 상병으로 치료받으신 것은 건강보험급여를 지급할 수 없다.”

재해자의 상병이 업무상 재해로 인정되었으나, 산업재해보상보험법(이하 산재보험법’)에 따른 요양비 청구가 가능하지 않으며, 건강보험 급여도 제한되었다. 심지어, 건강보험공단은 A에게 이미 지급하였던 건강보험 급여는 부정수급이므로 전액 환수조치 하겠다고 으름장을 놓고 있다. 어떤 상황일까?

이 사건 당사자인 A는 고등학교를 졸업하자마자 반도체와 회로기판을 생산하는 회사에서 오퍼레이터로 근무했다. 온갖 유해요인에 노출되는 열악한 작업환경 속에서 하혈 등 증상을 겪어왔던 A는 건강상 이유로 더 이상 일을 하기 어려워 퇴사했다. 그러나 일을 그만둔 A는 난소암을 진단받았다. A는 양쪽 난소와 자궁을 제거하는 몇 차례의 큰 수술을 받아야 했다. 항암치료도 병행했다. 2018A는 자신이 일했던 전자산업에서의 유해요인이 각종 암을 비롯한 질병을 유발할 수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그리고, 시민단체와 함께 난소암에 대한 산업재해를 신청하였고, 업무상 재해로 인정받을 수 있었다.

다행히 암은 재발하지 않았지만, 수십차례 실시한 항암치료는 A의 몸을 망가뜨렸다. 혼자 생활하던 A는 후유증으로 인해 수시로 찾아오는 고통을 견뎌내기 힘들어 산업재해 승인 이후에도 암 전문 요양병원에서 대부분 날을 입원하여 지냈다.

A는 통증과 불안감을 줄이고, 효과적으로 회복할 수 있는 요양병원을 수소문했다. 그러나, A의 생활반경 주변에 암 전문 요양병원은 그리 많지 않았다. 어렵게 찾은 병원에 입원하였고 2년의 흘렀다. A는 나중에야 입원한 요양병원이 산업재해 비지정병원이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어느 날, A는 건강보험공단으로부터 연락을 받았다. 건강보험공단 담당자는 말했다. “산업재해로 인한 치료 및 요양에 대해 건강보험 급여를 지급 할 수 없다. 당해 비용은 근로복지공단에서 지급해야 한다. 또한, 그동안 요양병원에 지급해온 건강보험 급여는 모두 부정수급이므로 모두 환수조치 할 것이다

A는 건강보험공단 담당자에게 비지정 의료기관에서의 치료이기에, 산업재해를 인정받았음에도 불구하고 당해 요양비를 근로복지공단에 청구할 수 없다는 점을 설명했다. 동시에 근로복지공단 담당자에게는 산업재해 환자가 비지정 의료기관에서 치료받는다면, 산재보험은 물론 건강보험도 적용되지 않는다는 사실을 누구도 알려주지 않았다고 호소했다. 어디서부터 잘못된 것일까?

산재보험법에 따라 지정된 의료기관에서의 요양

산업재해보상보험법은 근로자가 업무상 사유로 부상을 당하거나 질병에 걸린 경우 요양급여를 지급한다. , 당해 요양급여는 산재법상 지정된 산재보험 의료기관에서 요양한 경우에만 지급을 원칙으로 한다.

산업재해보상보험법 제40(요양급여)

요양급여는 근로자가 업무상의 사유로 부상을 당하거나 질병에 걸린 경우에 그 근로자에게 지급한다.

1항에 따른 요양급여는 제43조제1항에 따른 산재보험 의료기관에서 요양을 하게 한다. 다만, 부득이한 경우에는 요양을 갈음하여 요양비를 지급할 수 있다.

1항의 경우에 부상 또는 질병이 3일 이내의 요양으로 치유될 수 있으면 요양급여를 지급하지 아니한다.

1항의 요양급여의 범위는 다음 각 호와 같다. <개정 2010. 6. 4.>1. 진찰 및 검사2. 약제 또는 진료재료와 의지(義肢) 그 밖의 보조기의 지급3. 처치, 수술, 그 밖의 치료4. 재활치료5. 입원6. 간호 및 간병7. 이송8. 그 밖에 고용노동부령으로 정하는 사항

비지정 의료기관에서 요양에 대한 급여를 지급하는 예외적인 경우도 있다. 산재보험은 비지정 의료기관에서 응급진료 등 긴급한 요양, 공단이 정당한 사유가 있다고 인정하는 경우 재해자에게 요양비를 지급한다. 공단이 인정하는 정당한 사유중 대표적인 예는 산업재해 승인 전 실시한 비지정 의료기관에서의 요양이다. 이외 대부분의 경우 비지정 의료기관에서의 치료에 대해서는 요양비 지급이 이루어지지 않는다.

산업재해보상보험법 시행령 제38(요양비의 청구 등)

1. 법 제43조제1항에 따른 산재보험 의료기관(이하 산재보험 의료기관이라 한다)이 아닌 의료기관에서 응급진료 등 긴급하게 요양을 한 경우의 요양비

2. 다음 각 목의 어느 하나에 해당하는 요양급여에 드는 비용(산재보험 의료기관에서 제공되지 아니하는 경우로 한정한다.)

. 법 제40조제4항제2호 중 의지(義肢)나 그 밖의 보조기의 지급

. 법 제40조제4항제6호 중 간병

. 법 제40조제4항제7호의 이송

3. 그 밖에 공단이 정당한 사유가 있다고 인정하는 요양비

결국 산업재해 승인 이후의 재해자들은 산재보험 지정 의료기관에서의 요양이 사실상 강제된다. 건강보험에 비해 산재보험 지정 의료기관이 협소한 점을 고려한다면 재해자들의 의료선택권이 상당히 제한된다고 볼 수 있다. 가령 비지정 의료기관에서 치료받다 해당 상병이 산업재해로 인정된 경우, 산업재해 승인 이후의 치료에 대해 산재보험법상 요양비를 청구하려면 산재보험 지정 의료기관으로 전원해야 한다.

의료기관이 변경됨에 따라 당연히 재해자와 관계를 형성하여 상병을 치료해왔던 주치의도 바뀐다. 재해자는 새로운 치료 환경에 적응해야 한다. 물론, 근로복지공단이 재해자들을 위해 적절한 산재보험 지정 의료기관을 탐색하거나, 소개해주는 일은 거의 없다. 근로복지공단은 비지정 의료기관에서의 치료에 대해서는 요양비를 지급할 수 없다는 입장을 통보할 뿐 모든 부담은 재해자 스스로 해결해야 한다.

산재보험 비지정 의료기관에서의 치료와 건강보험 급여 제한

앞서 살펴본 A의 사례와 같이 산재보험법상 요양비 청구를 포기한 채 비지정 의료기관에서 요양하면 어떻게 될까? 산업재해로 인한 상병이라도 재해자에게 더 효과적인 치료와 안정적인 요양을 병행할 수 있는 의료기관을 선택할 수 있을 것이다. 다만 이 경우 산재보험은 물론 건강보험 급여 역시 지급이 제한된다. (2019년 기준 전체 건강보험 보장률은 약 64%, 특히 암환자 건강보험 보장률은 약 79%라는 점을 감안할 때, 건강보험 급여가 제한된다는 것은 상당한 의료비용 부담을 재해자가 오롯이 걸머진다는 것을 의미한다.)

국민건강보험법(이하 건강보험법’)은 건강보험 급여의 제한 사유를 법으로 규정하고 있다. 이중 업무 또는 공무로 생긴 질병부상재해로 다른 법령에 따른 보험급여나 보상(報償) 또는 보상(補償)을 받게 되는 경우건강보험 급여를 지급하지 않는다.

국민건강보험법 제53

공단은 보험급여를 받을 수 있는 사람이 다음 각 호의 어느 하나에 해당하면 보험급여를 하지 아니한다.

1. 고의 또는 중대한 과실로 인한 범죄행위에 그 원인이 있거나 고의로 사고를 일으킨 경우

2. 고의 또는 중대한 과실로 공단이나 요양기관의 요양에 관한 지시에 따르지 아니한 경우

3. 고의 또는 중대한 과실로 제55조에 따른 문서와 그 밖의 물건의 제출을 거부하거나 질문 또는 진단을 기피한 경우

4. 업무 또는 공무로 생긴 질병부상재해로 다른 법령에 따른 보험급여나 보상(報償) 또는 보상(補償)을 받게 되는 경우

그리고 다른 법령에 따른 보험급여나 보상(報償) 또는 보상(補償)을 받게 되는 경우에 대한 건강보험공단의 해석은 다른 법령에 의한 보험급여나 보상(報償) 또는 보상(補償)을 현실적으로 지급받은 경우뿐만 아니라 다른 법령에 정한 보험급여나 보상(報償) 또는 보상(補償)의 요건이 충족되어 보험급여를 받을 수 있는 경우 및 보상(報償) 또는 보상(補償)을 받을 수 있는 경우도 포함하는 개념으로 본다.

전술한 A의 사례에 비추어볼 때, A의 난소암은 산업재해로 승인되었으며 비지정병원이 아닌 지정병원에서 요양하였다면 산재보험에 따른 요양비를 지급받을 수 있었기에 건강보험 급여 제한 사유에 해당한다고 해석한다. 결론적으로 산업재해 승인 이후 비지정 의료기관에서의 치료에 대해서는 산재보험과 건강보험 모두 적용되지 않는다. 당해 치료와 관련한 모든 비용은 재해자가 부담하여야 한다.

산업재해 승인 이후에도 재해자들이 겪게 되는 어려움

산업재해 비지정 의료기관에서 치료받으신 것이므로 요양비 지급은 가능하지 않다.”

산업재해로 인한 상병으로 치료받으신 것은 건강보험급여를 지급할 수 없다.”

A는 계속하여 억울함을 호소하였으나 달라지는 것은 없었다. A에게 돌아온 근로복지공단과 건강보험공단의 답변은 간단했다. 건강보험공단은 비지정 의료기관에서의 치료를 선택하여 산재보험 적용을 포기하였으므로, 건강보험 급여가 제한되는 것은 당연하다고 이야기했다. 근로복지공단 담당자는 비지정 의료기관에서 요양한 A의 잘못이므로 구제할 수 있는 방법이 없다고 했다. 결국 A는 비지정 의료기관에서의 산업재해에 대해 요양하여 수천만원의 건강보험 급여를 부정수급한 자가 되었다.

A의 마음으로 생각해본다. 산업재해로 인정된 상병에 대해서도 비지정 의료기관에서의 치료에 대한 요양비를 지급하지 아니하는 현재의 산재보험 제도, 현실적으로 산재보험에 따른 보호가 불가능하지만 산업재해로 인한 치료이므로 건강보험의 적용 역시 일률적으로 배제된다는 건강보험공단의 논리, 이러한 행정에 대해 누구도 알려주지 않다가 2년이 지난 후 불쑥 이루어진 부정수급자로의 낙인과 환수 통보까지 어떤 내용도 쉽게 받아들이기 어렵다.

산재보험과 건강보험은 사회보험이다. 사회보험은 국민들의 안전과 건강을 위해 최소한의 사회적 안전망으로 기능해야 한다. 그리고 억울한 일이 생기지 않도록, 사각지대가 없도록 촘촘히 보호하고 작동해야 한다. A에게 산재보험과 건강보험은 신뢰할 수 있는 안전망이 아닌 고통스러운 경험이 되었다.

[노동안전보건활동가에게 듣는다] 안전은 비용이 아니라 권리입니다 - 이상진 전 민주노총 부위원장 인터뷰 / 2021. 03

[노동안전보건활동가에게 듣는다]

안전은 비용이 아니라 권리입니다

장영우 선전위원장

이번 일터 3월 '노동안전보건 활동가에게 듣는다'는 지난 추운 겨울 국회 앞에서 중대재해기업처벌법으로 단식투쟁을 강행한 이상진 전 민주노총 부위원장님과 인터뷰하였다. 이상진 전 부위원장은 민주노총에서 노동안전 담당 임원으로 활동하며 여러 투쟁을 이끌었고, 지금은 임원 역할을 마치고 고향에 내려가 있다. 1월 초만 해도 그는 국회 앞에서 단식을 하며 중대재해기업처벌법 제정을 위한 싸움을 하고 있었는데, 벌써 한 시기가 끝났다고 생각하니 놀랍기도 하다.

한노보연 회원이기도 한 이상진 전 부위원장과 직접 만나 차 한 잔 마시면서 인터뷰를 진행했으면 좋았겠으나 지역적인 제약으로 그렇게 하지는 못 했다. 봄비가 종일 비가 내리던 3월 1일 저녁 화상으로 이상진 전 부위원장과 지금까지 노동조합 활동, 노동안전보건 활동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었다.

작년 12월 고 김용균노동자 사망 2주기 현장추모제에서의 이상진 동지 모습. 출처: 호나라



노동현장을 바꿔보겠다는 생각과 함께 만난 노동조합

그간 해왔던 활동을 끝없이 얘기할 수 있을 것 같았는데, 먼저 그가 일을 시작한 시기의 이야기를 들어보았다.

"코오롱 구미공장에서 1994년 입사해서 10년 일하다가 정리해고 되었는데 끝내 복직은 못했습니다. 최근까지 십 년 넘게 노동조합 활동을 했었습니다."

노동이란 우리가 삶을 유지하는 데 가장 기본적인 것이지만 노동에서 긍정적인 일을 떠올리기란 쉽지 않다. 일을 시작하면 수많은 부당함을 겪고 노동자의 권리나 안전보다는 기업의 이윤이 항상 우선순위에 올라있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이상진 전 부위원장 역시 그런 일들을 목격하고 자신과 동료들에게 '변화'가 필요하다고 생각하기 시작했다. 그는 그런 생각을 행동으로 옮겼고, 자연스럽게 노동조합 활동으로 이어졌다.

"거창하게 말하자면 계급모순에 눈을 떴다고 할까요? 노동조합에 관심 생겼고 2000년 밀레니엄 시기에 코오롱 노동조합에서 대의원이 되었습니다. 당시 제조업 현장은 환경이 참 열악했지만 대부분 노동안전의식이 별로 없었습니다. 그저 그러려니 했었지요. 하지만 제가 대의원이 되고 당연시 되었던 현장의 문제를 바꾸려고 노력 했습니다. 예를 들자면 국소배기장치를 만들고 안전장치를 새로 구비했었습니다. 이렇게 현장을 조금씩 바꾸니 조합원들이 좋아하였고 저는 보람을 느꼈습니다. 노동안전활동에 관심을 더 가지게 되었고요.

당시는 요통, 자상과 부상이나 손상은 공상처리 하는 게 관례였습니다. 하지만 사측에 산재처리를 요구했었고 현장 투쟁도 했습니다. 2004년에는 근골격계 집단산재 신청을 시도했어요. 결국 산재신청은 안되었지만 임단협에 우리의 요구가 반영이 되었고 현장에서 노동안전에 관심이 늘어났습니다. 하지만 이후 코오롱은 정리해고를 단행했었고 대부분의 노동자가 해고 되었습니다."

코오롱에서 일을 하고, 노동 조건을 바꾸려 열심히 발로 뛰기도 했지만, 회사는 구조조정이라는 카드로 노동자들을 결국 정리해고 했다. 정리해고에 반대하며 동료들과 회사를 상대로 싸운 뒤에 복직되지는 않았지만, 그는 화학섬유연맹의 임원으로, 그후 민주노총 부위원장으로 노동조합 활동을 이어갔다. 화학섬유연맹과 민주노총 임원으로 14년을 보냈다.

"노조활동 경험을 기반으로 중앙 노동조합에서 활동하게 되었습니다. 화학섬유노동조합위원장을 거쳐 민주노총 부위원장에 당선이 되었습니다. 올해 부위원장 임기를 마치고 지금은 부산에서 생활하고 있습니다. 제가 이른 나이에 중앙노조활동을 했었는데요, 이제는 저와 주위를 돌아볼 시간이 필요하다고 느껴 재출마는 하지 않았습니다. 지금은 거의 백수인데요, 집안에서 음식점을 운영하는데 도와주고 있습니다."

치열했던 투쟁의 순간들

이상진 전 부위원장은 대책위 참여 등 핵심적 활동을 한 투쟁이 여럿이다. 최근의 투쟁부터 꼽자면 중대재해기업처벌법 제정, 문중원 열사 투쟁, 김용균 열사 투쟁 등 바로 떠오르는 것만 해도 여러가지다. 특히 중대재해기업처벌법 제정 투쟁에 돌입하며 보낸 시간은 특별할 수밖에 없다. 국민들이 함께 해 법안 발의를 위한 10만 동의청원이 이루어진 것도 놀라운 일이었다. 그후 코로나19 상황에서 집회 한 번 하는 것도 어려웠기 때문에 여러가지 면에서 한계가 있는 상황이었다. 그렇지만 잇따른 노동자 사망 사건 등으로 노동자들의 분노가 모아졌고 그 추운 겨울 산재 유가족들과 노동계에서 단식까지 결의하며 투쟁의 열기를 높였다.

이렇게 단식 투쟁이라는 어려운 투쟁 전술을 택했을 때, 또 법이 제정되었을 때 그는 어떤 생각이 들었을지 궁금했다. 한편으로 그런 투쟁을 하면서 들었을 아쉬움도 있었을 것 같았다. 민주노총 부위원장으로서의 역할을 마치고 돌아봤을 때 가장 보람 있었던 순간을 꼽는다면 언제였을까?

"민주노총활동 중에서 제일 보람이 있었던 건 중대재해기업처벌법이 제정된 점이었습니다. 비록 이빨이 빠진 채 법안이 통과 되었지만 산재가 기업 범죄라는 것을 우리 사회가 인정했고 안전은 비용이 아니라 일하는 모든 이들의 권리라는 점을 우리사회가 배운 것이 이번 투쟁의 가장 큰 성과입니다.

저는 구의역 김군, 문중원 열사, 김용균 열사 대책위 활동을 했었는데요. 작년에 투쟁하는 게 쉽지 않았습니다. 우선 코로나로 인해 대중투쟁의 공간에 제약이 있었고, 민주노총은 지도부가 교체되어 안팎으로 어려운 시기였습니다. 하지만 민주노총은 2020년을 중대재해기업처벌법 제정 원년으로 만들겠다고 결의한 바 있었습니다.

이후 중대재해기업처벌법제정에 노동자와 시민 10만 명이 동의를 한 바가 있고 겨울에 선도적으로 유가족 분들이 단식을 결단하여 사회에 큰 반향을 일으킨 점은 운동이나 역사에서 큰 의미가 있었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단식하면서 국회에 잠시 머물다 보니 여당에서도 중대재해기업처벌법이 반쪽으로 통과된 데 대해 미안해하고 부담스러워 한다는 게 느껴졌습니다. 향후에도 기회는 열려있고 개입할 이슈는 많다고 봅니다.

하지만 중대재해기업처벌법은 특정 단체가 책임질 수는 없습니다. 단체들이 개별적으로 대응하는 방식으로는 어렵고 민주노총이 전적으로 할 수도 없습니다. 전국적인 연대가 갖추어져야 합니다. 운동본부 이름으로 형식적으로 모이는 것이 아니라 깊이 있게, 내실 있게 단체들을 규합해야 합니다. 하지만 각급 단체들이 조직 고유 업무가 바쁘다 보니 여력을 내기가 쉽지가 않습니다. 이 점이 고민입니다. 물론 한노보연도 고민하겠지만요.

지금은 여러 노동안전단체들이 좀 지쳐 있어 보여요. 하지만 내년 법 시행을 앞두고 올해가 중요합니다. 정부가 시행령으로 법을 훼손하는 것을 막아야 합니다. 많은 관심이 필요합니다. 노동안전단체가 각자의 활동을 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역량을 모아야 합니다."

더 넓고 깊은 노동안전보건 운동을 기대한다

노동안전보건 투쟁을 하면서 기대만큼 좋은 결과가 나온다면 물론 기쁘겠지만 자본의 반격으로 좌절하는 때도 많다. 또한 노동조합 역시 노동안전보건 투쟁을 끌어가기란 쉬운 일이 아니다. 투쟁의 성공 여부, 그리고 노동조합의 역량 등 그를 고민하게 했던 것들이 있을 것 같았다. 이상진 전 부위원장이 민주노총 부위원장 임기를 마치면서 떠오른 아쉬움은 무엇이었을까?

"뭐 딱히 떠오르진 않는데요, 개인적으로 가습기 살균제 같은 시민재해를 더 적극적으로 대응하고 싶었었는데 쉽지는 않았습니다. 그리고 산재현장 대응역량도 좀 강화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산재대응에 있어서도 총연맹이 체계적이고 선제적인 역량을 더 갖추면 좋겠다면 생각이 들었습니다.

민주노총은 16개 가맹조직과 16개 지역본부가 있어요. 하지만 가맹산하조직에 아직도 노안(노동안전)활동가가 없는 곳이 있어요. 현장의 관심이 부족한 조직도 있습니다. 하지만 예전이 비해서는 많이 나아진 편이라고 생각합니다. 예전에는 민주노총에 노안국 인원이 1명인 적이 있었습니다. 조합원은 70만인 큰 조직임에도 불구하고요. 심지어 당시 한국노총은 노안담당자가 3명이었습니다.

민주노총 총연맹에서는 노동안전국은 기피부서였습니다. 실무자가 산업안전보건법을 잘 알고 있어야 하는 전문적인 영역이거니와 산재사고 현장 대응에 급급하다보니 인력은 늘 부족했습니다. 쉽게 말해 막노동이었지요. 이런 점들로 인해 정책생산능력은 떨어졌었어요. 내부적으로 개선하려고 애를 썼습니다. 그래서 노동안전국이 노동안전실로 격상되고 상근자도 3명으로 충원했습니다. 앞으로도 더 인력을 확충할 계획입니다. 더 나아지겠지요."

노동안전보건 활동을 하면서 민주노총 노동안전 임원이라는 무게와 책임이 따르는 자리에서 여러 투쟁을 이끌어왔다. 밖으로는 노동자들이 다치고 아프고 죽어가는 현실을 바꾸기 위해서, 안으로는 노동안전보건 활동가 양성에도 애를 쓰면서. 노동안전보건 활동은 당위성 면에서 모두 공감하지만 그 활동을 짊어지는 사람은 적은 것이 현실이다. 그가 지금까지 몰두해온 노동안전보건 활동과 쉽지 않은 현실을 걱정하는 마음을 들을 수 있었다.

어떻게 지내냐는 물음에 고향에서 집안일을 돕고 있다는 이상진 전 부위원장. 지금은 노동조합 활동을 마치고 쉬어가는 기간이다. 지금까지 수많은 부당함에 맞서 싸워온 그가 앞으로 어떤 계획으로 어떤 그림을 그려나갈지 궁금해진다.

[A-Z 다양한 노동이야기] "우리가 열차를 달릴 수 있게 합니다" - 전국건설노동조합 전차선지부 배정만 지부장 인터뷰 / 2021. 03

[A-Z 다양한 노동이야기]

우리가 열차를 달릴 수 있게 합니다 

전국건설노동조합 전차선지부 배정만 지부장 인터뷰

박기형 상임활동가

 

막차에서 사람들이 내리고 역이 문을 닫는다. 텅 빈 정류장, 불이 꺼진 선로. 기차가 고요하게 잠든 사이, 분주하게 선로 위를 오가는 노동자들이 있다. 1971년 4월 지하철 1호선(서울역~청량리역) 착공 이후, 이들은 지난 50년간 전국 곳곳에서 전기 열차가 매일매일 빠짐없이 달릴 수 있게 선로와 설비를 설치·정비해왔다.

2020년 드디어 자신들의 권리를 실현하기 위해 전차선 노동자들이 모여 노동조합을 결성했다. 전국건설노동조합 전차선지부 배정만 지부장을 만나, 전차선 노동자들의 노동과정과 어려움, 노동조합을 만들게 된 계기를 들어보았다.

전차선 노동자들의 업무가 무엇인지 한마디로 말하면, 열차가 오가는 선로 위의 전차선과 주변의 시설물들, 즉 교류 2만5000v의 전기가 흐르는 전선과 관련 설비들을 설치·정비하는 일이다. 전기로 움직이는 전국의 모든 지하철과 열차는 전차선 노동자들의 노동 없이는 달릴 수 없다.

"전차선 작업은 크게 두 유형으로 나뉩니다. 하나는 기존 선로를 보수·정비하는 작업입니다. 다른 하나는 선로를 신설하는 작업이고요. 기존 선로를 작업하는 일은 지하철이나 열차가 운행을 멈춘 시간 동안에 이뤄집니다. 모든 차량이 차량기지로 들어간 이후인 새벽에 작업하는 것이죠.

신설 선로는 보통 낮에 작업하고요. 전차선을 선로 위에 깔기 위해서 땅을 고르고 전차선을 걸 빔과 빔을 지지할 구조물을 설치합니다. 이후에 전선을 깔고 전기가 흐를 수 있게 연결까지 합니다. 이 일을 마쳐야 비로소 전기가 공급됩니다. 우리가 열차를 달릴 수 있게 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죠."

하지만 그동안 전차선 노동자들의 노동은 늘 어둠 속에 가려져 있었고, 그랬기에 아무렇게나 방치되고 있었다.

출처; 전국건설노동조합 전차선지부



쫓기듯 일하는 건 일상

일하면서 가장 큰 어려움 중 하나가 바로 작업을 특정 시간 내에 마무리해야 한다는 압박이다. 신설 선로 작업의 경우에는 덜하지만, 기존 선로 작업의 경우에는 운행이 멈춘 시간 내에 '반드시' 작업을 마쳐야 한다. 열차가 정시에 운행을 시작할 수 있게 하려면 운행이 멈춘 3~4시간 내에 작업을 끝마쳐야 한다. 혹여 작업이 늦어질 경우엔 운행에 차질을 빚기 때문이다. 운행 중 고장이 난 경우도 마찬가지다. 

"EBS에서 하는 극한직업에 전차선 노동자들 나온 적이 있는데요. 그거 보셨다고 했죠? 그건 양반이에요. 평상시는 훨씬 심각해요. 정해진 시간 내에, 어떤 때에는 최대한 짧은 시간 안에 일을 마쳐야 해요. 그렇지 않으면, 열차 운행을 못하잖아요. 일을 마치고 선로에서 벗어난 지 몇 분도 채 지나지 않아서 열차가 쌩하고 지나가요. 일 마칠 때, '야, 빨리 내려와. 열차 온대' 소리치면서 허겁지겁 정리할 때가 많아요. 그렇게 늘 무언가에 쫓기듯 일해요."

전차선 노동자들은 각종 중량물을 들고 나르고 세우는 일만 하는 게 아니다. 9~10m에 달하는 높은 곳에 올라가 전선을 깔고 연결해야 한다. 하지만 아무런 안전장비도 제공받지 못한다. 안전장비를 착용하는 것조차 '시간'과 '비용'이 드는 불필요한 일로 치부된다.

"전선을 까는 빔 위에서 안전장비도 없이 서서 작업하거나 매달려 있는 건 일상이에요. 정확히는 그렇게 안 하면, 일 못하는 사람 취급받아요. 처음 일 시작하면, 무서워서 두 발로 설 수도 없어요. 그러면, 밑에서 소장이 소리치고 난리 나죠. 빨리해야 하는데, 엉금엉금 기어 다니냐고 쌍욕 먹는 거죠. 일을 잘한다는 소리를 들으려면 둔감해져야 해요. 하지만 그렇다고 위험하지 않은 건 아니잖아요."

대부분의 정비 작업은 야간에 이뤄지지만, 헬멧에 다는 헤드랜턴도 자비로 사야 하는 현실에서 작업 현장에 조명 장비를 달아서 밝혀주는 건 사치와 다를 바 없다. 보이지 않으니 걸려 넘어지거나 장비에 몸이 끼이거나 부딪히는 일이 다반사다. 급하게 일하다 보니, 그 정도 다치는 건 일도 아니다.

고소 작업 시 안전은 뒷전

"이렇게 위험한 현장인데도, 노동조합이 없을 때는 사고조사조차 제대로 해본 적이 없어요. 노동조합 만들자마자 시작한 활동 중 하나가 바로 사고조사였어요. 평균적으로 볼 때, 1년 동안 13~15건의 산재사고가 있었던 걸로 추정돼요. 여기서 말하는 사고는 떨어져서 어딘가 부러지거나 끼여서 장애를 입는 정도의 심각한 건들만 포함한 겁니다. 그중 절반 이상이 추락사고에요."

언제나 고소 작업이 동반되다 보니, 추락의 위험이 늘 있다. 하지만 앞서 지적했듯이, 추락을 예방하기 위한 최소한의 안전조치도 취하지 않고 있었다. 무엇보다 추락사고의 대부분이 A형 사다리에서 발생한다는 점이 문제였다. 최근 노동조합에서 현 작업에서 A형 사다리를 아무런 조치 없이 사용하는 것은 위법하고, 노동자들을 위험에 내모는 것이라 문제제기하였다.

"최근까지만 해도, 한국전기철도기술협회에서는 작업현장 상황상 부득이하게 A형 사다리를 쓸 수밖에 없다고 변명했고, 노동부에서도 A형 사다리를 쓰되 감독자의 철저한 지시·관리 하에 안전조치 최대한 하고 사용하라고 회신했었죠. 그게 제대로 된 답변인가요? 노동조합 결성 후 지속해서 문제제기하니까, 그때서야 A형 사다리 사용을 규제하기 시작했어요. 하지만 여전히 적은 비용으로 작업을 빨리하겠다고 A형 사다리 쓰는 곳이 태반이지요."

또, 위험의 외주화

왜 소장과 회사에서는 위험한 A형 사다리를 고집하는 것일까? 바로 정해진 시간 내 최대한 빨리 많은 작업량을 해치우기 위해서다.

"최근까지도 현장에선 알루미늄으로 된 절연 FRP A형 사다리를 많이 쓰는데요, 거기다 연장식까지 붙여서 사용하기도 해요. 가벼우니까 둘이서 들고 나르고 위에선 한 사람 또는 두 사람이 올라가 작업하면, 이동시간도 단축하고 작업량을 많이 뽑을 수 있죠. 작업 인원도 많이 필요 없고요.

그런데 노동자 입장에서는 안전대조차 착용하지 않은 상태로 올려 보내니 위험하기 짝이 없죠. 노동자들이 정말 안전하게 일하려면 안전난간이랑 안전발판이 갖춰진 이동형 고소작업대를 사용해야 합니다. 하지만 공사비용이 올라간다고, 사람도 많이 써야 하고, 작업시간도 길어지니 거부하고 있는 거예요."

그렇다면, 왜 소장과 회사는 명백히 위험하다는 것을 알면서도 노동자의 안전을 내팽개치고 있을까? 여기서 우리는 또 다시 '위험의 외주화'라는 문제를 마주하게 된다.

"전차선 노동자의 90% 이상이 일용직입니다. 한국철도시설공단에서 공사를 발주합니다. 공개 입찰로 진행하죠. 하지만 정작 입찰된 회사들, 즉 원청에서는 실질적으로 시공능력이 없어요. 공사를 따기 위한 명의와 구색만 갖춰진 회사들인 거죠. 원청은 자격증, 담당 인력 등을 허위로 기재해두거나 문서상으로만 갖고 있을 뿐이에요. 입찰에 지원하고 공사를 따내기 위한 자격증만 범람하고 있어요.

대신 실제 시공은 다른 하청업자에게 넘겨요. 하청업자도 자기가 시공을 전담하질 않아요. 사업별로 시공기술이나 설비도 갖추고 있고 인력도 부릴 수 있는 소장, 기술자 등을 하청업자가 섭외하죠. 그러면, 이제야 우리 같은 일용직들이 각 팀에 불려갑니다. 이런 상황이니, 전차선 노동자들은 원청회사가 어딘지도 모르고 일하는 경우가 태반입니다."

모든 전차선을 설치하고 정비하는 일을 이들이 도맡고 있음에도, 이들의 노동조건은 열악하기만 하다. 한국철도시설공단과 전기사업소 등 산하 기관 및 사업장에서 정규직으로 채용된 기술직들이 있지만, 이들은 정작 간단한 점검만 할 뿐이다. 긴급한 사태가 터져도 대처할 역량이 없다. 결국 대처는 일용직으로 고용되는 전차선 노동자들이다.

어둠이 몸을 갉아먹지 못하도록

"단지 안전사고만 문제가 아닙니다. 전차선 노동자들의 직업병도 많이 알려지면 좋겠습니다. 우선 근골질환도 상당합니다. 무엇보다 허리가 많이 안 좋아요, 도지나를 차고 상부 9~10m에 달하는 높이의 설비를 오르내리는데 장비 무게만 10~13kg입니다. 거기다 철제 구조물을 당겨 올리고 조립하는 일도 하죠. 손목이나 팔꿈치도 닳고 닳습니다."

야간작업이 대부분인데, 작업일수는 불규칙적이다. 제조업 사업장의 교대제처럼 정기적 야간노동을 하는 게 아니다 보니, 수면장애를 겪는 사람도 많다고 한다. 평균 경력이 15~20년 되는 조합원들도 잠은 어찌하지 못한다고 말했다.

"아무래도 전선 작업을 하다 보니, 감전사고도 빈번합니다. 물론 사선으로 만들어서 일하긴 하지만, 전기를 죽였다고 해서 전선에 전기가 아예 사라지는 건 아닙니다. 남아있는 전류가 있어요. 어떨 때는 전선을 잡으면, 손에서 전선을 못 놓는 일이 많아요. 특히 흐리고 비 오는 날이면 심해요. 전력을 송출하는 철탑 근처에서는 유도 전력이 발생해서 예상치 못하게 감전되는 일도 종종 있어요."

또한, 옥외작업의 부담도 상당하다. 혹한기나 혹서기에 겪는 어려움은 말할 것도 없다. 차량운행을 위해서, 아무리 비바람이 심하게 불어도, 심지어 태풍이나 눈보라가 쳐도 작업해야 하는 일이 생기기도 한다. 그럴 때는 발주처 및 원하청과 현장 작업상황을 공유하고 노동자들의 의사를 반영해 작업개시 여부를 조정하거나 필요한 안전조치를 취할 수 있어야 하는데, 그런 일은 거의 없다.

아무리 궂은 날씨라도, 원하청은 무리하게 작업을 강행한다. 그래야 다음 입찰 때에 흠 잡힐 일도 없기도 하니까. 노동자들이 죽거나 다치는 것은 흠이 아니다. 주어진 공사량을 최소 비용으로 최대한 많이 해내는 게 미덕이다. 

"전국 각지에서 350여 명의 전차선 노동자들이 자기 몸을 바쳐가며 일하고 있습니다. 그중에서 320명이 넘는 전차선 노동자가 건설노조 조합원으로 가입했어요. 노동조건을 개선하고 안전하게 일할 수 있는 노동환경을 쟁취하기 위해 마음을 합쳐 노동조합을 만들게 된 것입니다.

지난 50여년 간 우리 전차선 노동자들이 대한민국의 발전에 큰 이바지를 한 사람들이잖아요. 하지만 정작 그림자로만 살고 있었죠. 우리가 기여한 바, 우리의 노동현실을 시민들이 잘 모르고 있습니다. 앞으로 전차선 노동자들이 사회적으로 존중받고 자신들의 권리를 실현할 수 있도록 전차선 지부가 열심히 활동을 만들어 가려고 합니다."

[행사안내] <그리고 우리가 남았다> 과로사/과로자살 가족, 동료, 친구 안내서 '북토크' (4/8)

과로사, 과로자살 노동자의 가족 그리고 동료와 함께하는 

<그리고 우리가 남았다> 저자 북토크

 

2021년 4월 8일 목요일 오후7시, 온라인 (ZOOM)

 

"우리의 목소리가 과로죽음을 미처 세상에 알리지 못하고 홀로 남겨진 이들의 회색빛 마음에 가닿아 한구석을 밝히길 바란다.

 

그런 희망으로 우리는 한걸음씩 나아가고 있다."

 

[이야기 손님] 

한국과로사/과로자살 유가족 모임 : 장향미

전국민주우체국본부 : 허소연

한국노동안전보건연구소 : 공유정옥

 

[사회]

한국노동안전보건연구소 : 이나래 

 

* 신청링크 

http://bit.ly/그리고우리가남았다

(신청자 분들께 한해 접속링크를 보내드립니다.)

 

* 문의

kilshlabor@gmail.com (한국노동안전보건연구소) 

[동아시아 과로사통신] 8%의 기적: 과로자살 사건이 행정법원에서 승소할 확률 / 2021. 03

[동아시아 과로사통신]

8%의 기적: 과로자살 사건이 행정법원에서 승소할 확률 

황이링(Huang Yi-Ling) 대만 OSHLink 활동가

2017년 2월 11일, D국제물류기업에서 13년 반 동안 근무해 온 윈윈(가명)은 언제나처럼 혼자서 새벽 4시가 넘도록 회사에서 야근했다. 퇴근 카드를 찍고 대문 밖 통로로 걸어 나가다가 약 1시간가량 깊은 생각에 잠겼다. 갑자기 몸을 일으키더니 120미터 높이의 담을 넘어 11층 높이에서 추락했다. 40살이 채 되기도 전에 그녀의 삶이 그렇게 끝났다. 이것이 건물 CCTV에 기록된 마지막 모습이었다.

윈윈은 2003년 회사에 입사했다. 업무 성과가 뛰어나 비서에서 시작해 승진을 거듭했다. 2013년 고객서비스 부서 책임자 자리에 오르며, 대만의 수출 화물을 차질없이 전 세계의 운송지점에 전달하는 일을 담당했다. 윈윈은 매일 아침 9시 반에 출근해서 늘 밤 10시 넘어서까지 일을 하고 퇴근했다. 금요일만 되면 더욱 극심한 야근지옥이었다. 늘 밤새워 토요일 새벽까지 일해야 했다. 날이 밝은 뒤에야 퇴근한 기록도 있었다.

최근 몇 년 새 그녀의 삶은 일밖에 남지 않았다. 사교활동이나 여가생활을 할 여력이 없었다. 일에 짓눌렸던 것이다.

가혹한 직업병 인정 기준

윈윈의 부모님은 노동보험국에 산업재해보상을 신청했다. 노동보험국은 심사 결과에서 '본 사건은 구체적인 업무스트레스 계기가 없고 연장 근로시간이 인정기준에 미치지 않는다', '당사자의 업무능력이 뛰어나고, 스스로에 대한 요구가 높으며 연장근로시간도 기준을 초과하지 않는다. 회사가 그를 높이 평가하여 줄곧 승진시켰고 고위 책임자는 부담이 무거운 편이 당연하다', '구체적인 업무스트레스 계기가 없고, 초과 근로, 인력 부족 등 정신적 업무 부하 정도가 中으로 強에 미치지 않아 인정기준에 부합하지 않는다'는 이유로 산업재해 신청을 반려했다.

쟁의심의를 다시 신청하였으나 마찬가지 이유로 반려되었다. 우리는 이 같은 결과에 승복하지 않고 계속해서 다른 증거를 찾았다. 유가족에게 윈윈의 휴대폰을 넘겨받아 이메일함에서 그녀가 매일 700통이 넘는 메일을 처리해야 했음을 알아냈다. 세상을 떠나기 하루 전에는 심지어 1154통에 달하는 업무메일을 받았다. 이를 증거자료로 첨부했고, 노동부에 계속 소원을 제기했다. 그러나 유감스럽게도 또다시 반려되었다.

8%의 기적, 희박한 행정소송 판정 결과

유가족은 마지막으로 법원에 행정소송을 제기할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사실 누구도 행정소송에서 유리한 결과를 얻을 거라는 자신이 없었다. 2019년 고등행정법원의 통계에 따르면, 총 3470건의 행정소송에서 승소건은 단지 291건뿐으로 승소율은 겨우 8%였다. 그래서 많은 사람이 행정법원을 '기각법원'이라고 조롱하듯 말한다.

윈윈의 사건은 약 1년 동안의 심리를 거쳐서 2019년 말 판결이 나왔다. 뜻밖에도 승소였다. 법원은 노동보험국에 대해 종전의 소원 결정을 파기하고 직업병 인정 여부를 다시 심사하라고 판결했다. 법관은 동료의 증언을 인용해 말했다. '고객서비스 부서는 오랫동안 회사에서 이직률이 가장 높은 부서였다. 가장 높았을 때는 이직률이 70%에 달했다. 해당 부서 직원들은 장시간 야근을 해야 했기 때문에 신입사원들이 버티기가 대단히 어려웠다.' '윈윈은 책임감이 매우 강한 사람이었다. 그녀는 신입사원들이 오래 버티지 못할까봐 걱정하면서 늘 자기가 일을 모두 끌어안았다. 그래서 장기간 업무 스트레스가 매우 컸다.'

여기에 일일 업무메일량 등 증거를 더해서 윈윈이 세상을 떠나기 전 1개월 동안의 연장 근로시간이 118시간에 달하는 것으로 추산함으로써, 노동보험국이 '구체적인 업무 스트레스 계기가 없다'라고 주장한 결과에 결함이 있다고 보았다. 그리하여 노동보험국은 피고로서 일방 패소한 뒤 윈윈의 사건을 처음부터 다시 심사하여 산업재해 인정으로 결과를 뒤집었고 산업재해 보험금을 지급하기로 했다.

사실 윈윈의 사건은 단순한 개별 사건이 아니다. 오늘날 업무 형태가 바뀜에 따라 일터 환경도 점점 복잡해지면서, 업무스트레스 역시 갈수록 과중해진다. 업무스트레스는 최근 널리 알려진 '과로사' 문제를 야기할 뿐만 아니라 우울증 등 정신질환을 일으킬 수 있어, 해결이 어려운 신종 직업병 문제가 되었다.

대만은 2009년에 '업무 관련 심리 스트레스 사건으로 인한 정신질환 참고 지침'을 제정하여 정신질환을 정식으로 직업병 보상의 범위에 포함시켰다. 그러나 2020년 말까지 11년 동안 겨우 47건만이 직업병으로 승인되었다. 그중 자살이 인정된 건은 고작 7건이다. 정신질환의 직업병 승인이 어렵고 심사기관의 태도가 상당히 보수적이라는 현실을 여실히 보여준다.

이번 승소 결과는 매우 드문 사례였다. 본 판결에서 '직업재해 보상보험급여의 목적은 가해자를 찾아서 그 책임을 부담지우는 데 있지 않고 산업재해가 발생한 후에 노동자 혹은 그 가족들의 생활을 보장하는 것이 주목적이다. 그래서 업무 스트레스로 정신질환을 앓다가 자살한 것은 그 인과관계의 판단을 비교적 느슨하게 해야 상기한 입법 목적에 부합할 수 있다.'고 명시하였다.

또한, 법원은 노동보험국이 심사 과정 중에 윈윈의 업무스트레스에 대해 임의로 평가하여 신청 결과에 영향을 끼치는 것이 타당하지 않다고 지적했다. 법원 역시 행정기관이 정신질환의 산업재해 인정이 지나치게 보수적이라고 판단한 것이다. 이를 계기 삼아 오랜 기간 보수적인 직업병 인정 태도를 타파할 필요가 있다. 나아가 과로와 업무스트레스에 대한 사회적 관심을 더 높일 수 있길 바란다.

[현장의 목소리] 기업-노동자 관계를 재설정하기 위한 투쟁. 일하는 이들의 무사한 삶을 위해 - 뉴코아노조 김석원 부위원장 인터뷰 / 2021. 03

코로나는 증가 추세에 있던 온라인 소비를 단번에 새로운 보편으로 이끌어냈다. 동시에 비대면 유통을 가능하게 하는 택배 노동자들의 심각한 노동강도와 과로사 문제가 사회적인 이슈로 대두되었다. 재편된 유통산업의 다른 한편에는, 오프라인 유통업체의 노동자들이 있다. 코로나는 오프라인 유통기업들에 내재한 각종 문제들을 희미하게 만들면서, '매출/이윤 하락, 기업의 경쟁력 약화'를 불러일으키는 불가항력적인 요소로 자리잡았다. 이는 구조조정의 좋은 핑계거리가 되었다. 국내 이랜드의 노동자들은 바로 이 흐름의 한 가운데에 있다.

이들의 이야기를 듣고자, 작년 하반기에 이랜드의 구조조정 움직임에 대항했던 뉴코아 노조의 부위원장 김석원 부위원장을 만났다. 그가 속한 뉴코아노조는 이랜드노조와 함께(뉴코아는 ㈜이랜드리테일로 2004년에 인수되었지만, 양 노조는 독립된 형태로 병존하고 있다.) 작년 10월, '신 구조조정 저지 공동대책위원회'를 결성해야 했다.

그 배경에는 작년 초부터 계속 진행되어온 사측의 "저강도 구조조정"이 있다.

뉴코아노조 김석원 부위원장


기업 분할, 매각, 그리고 '저강도 구조조정'

"사업부의 분할, 매각은 크게 보면 구조조정 방법 중 하나죠. 가장 고강도의 구조조정이 정리 해고라면, 사업부의 재배치나 분리, 매각 등은 상대적으로 저강도 구조조정이죠. 이런 저강도 구조조정은 웬만한 기업은 다 합니다. 꼭 사람을 직접 자르는 것만이 구조조정은 아니에요. 하지만 이 수준이 직원들이 납득할만한 수준이어야 하잖아요. 근데 이번 건은 현직 임원 1인이 독립적인 회사 "엠패스트"를 차려 킴스클럽 다섯 개 점포를 인수하고, 운영하겠다는 거였어요. 

하지만 다섯 개 점포를 운영하려면 적어도 50~100억 정도의 비용이 들어갑니다. 임원이래도 대기업처럼 임금 수십억 받는 것도 아닌 사람이, 이 사업을 과연 할 수 있냐는 의구심이 들 수밖에 없어요. 그렇다면 사실 회사가 계획을 짜고 음으로 지원을 해서 분리(매각)하는 것이 아니냐, 이게 전형적인 위장계열사 아니냐, 한 거죠. 그 회사가 정말 독립된 회사로 나가고, 이후 영업이 잘 안 되면 회사를 폐업할 수도 있잖아요. 그럼 이 직원들 집에 가야 합니다. 이 직원들을 이후에 이랜드리테일이 재채용할 것이냐? 아니죠. 이미 별개 회사의 직원들이니까.

재작년부터 킴스클럽 매각에 대한 이야기는 나왔으나 회사에 물어보면 '사실무근이다' 라고 답했었는데, 그 움직임이 작년 6~7월에 포착된거죠. 우선 공정거래위원회에 질의를 넣어봤어요. 보통 정부부처에 질의를 넣었을 때, 조건이 확실하지 않으면 확실하지 않다는 단서가 붙어요. '너네가 말하는 조건이 맞다면, 위장계열사일수도 있겠다' 이렇게 답이 와요. 그래서 판단하기가 어려웠는데, 그 와중에 회사가 9월에 전격적으로 다섯 개 점포 매각을 발표했어요. 그 후 킴스클럽 5개 점포 130여명 정도의 직원들이 이랜드리테일을 퇴사하고 엠패스트로 이직을 했죠. 10월 5개 점포가 매각되었어요.

하지만 엠패스트는 첫 번째 매각사례가 아니에요. 작년 초에 현직 임원이 가지고 나가는 형태로 물류센터를 매각한 게 첫 번째예요. 최근에 또 하나 터진 게, 이랜드엔 미쏘, 후아유, 티니위니 같은 자사 브랜드가 많아요. 이런 브랜드들은 로드샵도 많아서 영업관리 조직이 따로 있는데, 이 조직을 매각했어요. 작년부터 시도했는데 직원들이 대부분 이직을 거부해서 지지부진하다가 올 1월 초에 나갔어요. 이렇게 벌써 사업부 3개가 분리해서 나간 거예요. 그 뒤에도 모 임원이 킴스클럽 지점을 포함한 건물 5개를 아예 가지고 나가네 이런 소문들이 파다하게 돌았어요.

그래서 양 노조가 공대위를 꾸린 거예요. 그리고 10월 말부터 엠패스트로 나간 다섯 개 점포 중 본점 격인 목동점 앞에서 매주 월요일, 목요일 점심시간 1시간 반씩 피켓팅을 했어요. 12월 초에는 연대단위 꾸려서 진행했고요. 양 노조의 위원장들이 언론인터뷰도 하고, 외부 기고문도 내고. 본사 앞에서 기자회견도 하고요. 대략 3달 정도 했어요.

그리고 12월에 공정거래위원회에 위장계열사를 조사해 달라는 고발장을 넣었습니다. 회사를 계속 압박해 간 거죠. 여기서 위장계열사로 판정받으면, 회사가 어떤 계획을 가지고 있었는지는 모르겠으나 일단 앞으로의 구조조정 계획에 큰 차질이 생길 가능성이 높죠. 올해 설 직전에 회사에서 지금까지 분리, 매각 되었던 3개 사업부 제외하고 추가적인 형태의 분리나 매각은 없을 것이며, 그간 매각에 대한 유감표명을 할 테니 고발을 취하해달라는 제안이 들어왔어요. 노사 대표자의 서명이 들어간 취하서를 제출한 때가 2월 19일이었습니다."
 
그리고 같은 기간에 뉴코아/이랜드 양 노조는 이랜드리테일(위장계열사 고발) 뿐만 아니라 엠패스트를 대상으로도 투쟁을 해야 했다.

"위장계열사 판정이 될 수도 있지만, 위장계열사가 아니라고 기각될 수도 있어요. 그럼 엠패스트로 넘어간 5개 점포 조합원(양 노조 합쳐서 70여명)들을 위한 노조 울타리를 어떻게 쳐 줄 것인가, 고민이 많았죠. 그러다가 양 노조가 엠패스트 지부를 각각 만들고, 그 지부 소속의 조합원이 있으니까 회사가 나와서 단체협약을 우리(양 노조)와 맺자고 요구했어요. 처음에 회사는 우리는 이랜드리테일이랑 다른 회사다 하면서 교섭요구에 응하지 않았어요. 그래서 지방노동위원회에 시정신청을 넣었어요. 단협 맺자고 하는데 회사가 응하지 않으니 교섭절차를 지키게 해 달라고 요구했어요. 지노위에서 우리쪽 손을 들어줬어요. 그러니 회사는 이에 불응하고 중앙노동위원회에 이의신청을 넣었으나 기각당했지요. 일반적으로 단협이 있는 회사는, 회사가 급여를 지급할 때 체크오프(Check-off)라고 조합비를 공제해요. 엠패스트는 조합원의 조합비를 공제하지 않았으나 저희는 나간 조합원들에게 CMS로 조합비를 받았어요. 그래서 지노위에 저희가 조합비를 납부하는 조합원이 있다는 사실을 증명한 거죠. 결국 엠패스트는 조합의 실체를 인정할 수밖에 없었고 현재는 단체교섭을 위한 절차를 밟고 있습니다."

위기에 대한 책임을 갖고 있는 자와, 실제 책임을 지는자의 불일치

지속적인 저강도 구조조정 속에서, 양 노조는 공대위를 꾸려 투쟁을 이어갔고 결국 회사로부터 추가적인 매각은 하지 않겠다는 약속을 받아냈다. 엠패스트로 이직한 이들을 보호할 노조도 지켜냈다. 하지만 동시에, 김석원 부위원장은 저물어가는 오프라인 유통산업의 현실 역시 직시하고 있었다.

"오프라인 시대는 끝났어요. 타 업체들도 점포를 많이 정리하고 있고, 있는 점포에서도 사람을 줄이고 있죠. 앞으로 계속 오프라인 매장 숫자는 줄어들 거예요. 이미 온라인 쇼핑의 시대로 들어섰죠. 온라인유통의 기본은 물류예요. 물류센터를 짓고, 이 시스템을 가동하는데 사람들도 많이 필요하고요. 온라인 유통을 이랜드도 하고는 있지만, 매출 규모가 너무 작아요. 게다가 있는 점포도 무인계산대를 도입 하는 식으로 이미 사람을 줄이고 있어요. 하지만 이런 식의 전격적인 점포 매각에는, 노조에선 반발할 수밖에 없죠."

하지만 이랜드리테일이 과연 "경영상황 악화"를 단순히 소비방식의 변화나 시장상황, 유통산업발전법과 같은 정부의 규제만 탓할 수 있는가는 의문이다. 이런 의문 뒤에는 이랜드 그룹의 소유구조와 그에 따른 독특한 경영상 특징들이 있다.

"기업 오너들도 당기순이익에서 배당 많이 가져가야 보통 15~20% 가져가요. 하지만 이랜드는 작년 당기순이익의 90%를 주주 배당으로 가져갔어요. 이랜드그룹 중에 2개 회사를 제외하고 나머지는 상장이 안 되어 있어요. 그룹의 지주회사인 이랜드월드가 있고, 이랜드월드가 유통회사인 이랜드리테일의 지분 98%를 가지고 있죠. 그리고 이 이랜드월드의 주식 거의 대부분을 오너가 가지고 있고요. 주식회사라면 이사회도 하고, 주주들이 의결권 행사를 통해 서로를 견제할 수도 있겠지만, 이랜드는 이 부분에 본질적인 한계가 있어요. 게다가 이랜드처럼 기업공개를 하지 않은 회사는 경영정보에 대한 접근성에 한계가 있어 금융비용이 높게 들어갈 수밖에 없어요. 이것 때문에도 기업 활동에 제약이 발생하지요. 오너가 배당금을 그렇게 많이 가져가지 말고, 온라인 사업에 맞는 인프라를 구축하거나 해야 하는데, 그러지 않는 거죠."

높은 금융비용을 감당하면서도, 사업에 재투자할 수 있는 돈의 대부분이 오너의 주머니로 들아가는 상황. 사실상 오너의 결정으로, 시장에서 경쟁력을 갖출 수 있을만한 채비가 안 된 상태로 온라인 시대를 맞이하게 된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오프라인 유통업이 어렵다는 이유를 들어 구조조정을 한다는 것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까. "경영상의 어려움"을 언제나 노동자의 고통분담 방식으로만 해결해가는 것, 그리고 정작 사업의 큰 운영 결정을 하는 책임자들은 여전히 그대로 자신의 지위와 부를 누리는 것을.

'기업이 노동자를 먹여살린다'는 전도된 구조 

기업 활동에 필요한 그 어느 무엇 하나 노동 없이 이루어지지 않지만 도리어 기업에서는 마치 자신들이 있기에 노동자들이 먹고 살 수 있다는 시혜적인 방식으로만 노동자를 바라본다. 또한 기업은 사회 구성원들이 마련한 재원에서 나오는 정부의 각종 지원과 인프라를 이용한다. 애초부터 기업의 존립은 사회에 빚지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기업이 사회에 되돌려줘야 할 몫들은 일절 고려되지 않고 있다.

노동은 언제나 유한한 몸과 정신의 힘, 그리고 시간의 사용을 수반한다. 즉 노동자의 생명과 삶이 투여된다. 그렇게 그 자신과 기업, 사회를 먹인다. 노동자의 기여에 대한 인정은 기업이 이들을 대우하는 태도의 변화, 관계방식의 변화를 요구한다. 뉴코아, 이랜드 노조는 기업-노동자의 관계방식을 계속해서 달리하고자 하는 투쟁들을 이어가고 있다. 노동자들의 역할과 기여를 인정해야한다고, 기업의 유지와 성장은 노동자에 빚지고 있다고, 그러니 노동자들의 삶에 대한 책임에 할 수 있는 한 최선을 다하지 않으면 안 된다고 주장하면서.

[문화로 읽는 노동] 이 치열한 무기력을 / 2021. 03

[문화로 읽는 노동]

이 치열한 무기력을 - 제니퍼 M. 실바의 책 <커밍 업 쇼트>

채은 선전위원

세대를 구분하는 단어들이 있다. 그 시절을 특징짓는 '공통적인 것'들을 추상화시켜 만들고는 입으로 전하고 온갖 얘기에 널리 사용되었다. 예를 들어, X세대, IMF세대 뭐 이런 것들 아니던가. 참 명쾌하다. 단어 하나로 상당히 많은 것들을 이야기하고 있으니 말이다.

그 단어만 떠올려도, 그 시절의 정치, 사회, 문화, 경제를 한 순간에 군더더기 없이 느끼게 된다. 나도 이젠 옛날 사람이 되어서 내 시절을 구분 짓는 그 단어를 들을 때마다 '아~ 나 때는 말이지~'가 저절로 나오려고 한다. 아! 당연히 '라떼'를 시전하지는 않는다. 볼품없어 보여서 말이다.

'라떼'는 그래도 괜찮았던 걸까?

나는 IMF 사태 때 학창 시절을 보냈고, Y2K가 세상을 다 혼란스럽게 만들 것이라는 공포 속에서 '대학을 어디로 가느니, 마느니' 고민했었다. 97년 외환위기가 터졌을 때는 어느 날 같은 반 친구가 더이상 학교에 나오지 못하게 되는 경우가 꽤 있었다. 아버지의 사업이 부도가 나서 몰래 다른 곳으로 도망을 가는 경우가 심심치 않게 생기곤 했다.

우리집은 불행인지 다행인지 IMF 사태가 오기 전, 이미 어른들의 사업 실패로 가세가 기울었던 터라 마땅히 더 망해서 도망갈 곳도 없었다. 뭔가 실패에 있어서, 좀 더 앞선 일종의 선배가 된 것 같았다. "그래, 그래도 어쨌든 살아남기를..." 어제는 친구의 자리였지만 오늘은 주인을 잃은 그곳을 향해 마음속으로 말했을 뿐이었다. 그렇게 담담히 받아들였던 듯하다.

당시 함께 떠오로는 기억은 교대의 입시 점수 상향이었다. 그 당시 각광받는 직업은 '안정'을 담보하는 선생님이었다. 그래서 그 당시에 갑자기! 교대와 사범대의 인기가 하늘로 치솟았었다. 학생들 반 이상이 선생님이 되는 게 '꿈'이었던 기억이 생생하다.

돌이켜보면, 그래도 나름 치열하게 열심히 하면, '살 수는' 있었던 시절 같았다. 그러니까 그때는 어떻게든 대학을 가면 일자리를 얻을 수 있었고 - 물론 내 앞 세대(90년대 초중반 학번인 이들)보다 취업은 녹록지 않았고 대학 생활의 낭만, 소위 운동이니, 사랑이니, 이런 것보다 조금은 더 취업 걱정을 하던 시대였지만 - 그래도 꿈은 가져 볼 수는 있었던 시절이었다.

그래서 대학을 나름의 낭만을 간직하고서 다녔던 것 같다. 학점 따윈 상관없고, 고시라는 것도 준비해보고, 하고 싶은 활동도 하고. 그렇게 좌충우돌하는 가운데, '취업'의 초조함이라는 것은 없었던 것 같다.

불확실한 시대, 부유하는 노동자들

다시 돌아와 현재를 바라보자니 답답함부터 몰려온다. 자신의 '자리'를 마련하기 위해 노력하지만, 온갖 노력에 비해 돌아오는 결과는 참담하다. 안정적 일자리라고 불리는 것들에는 더는 여유가 없다. 거기에 가기 위한 경쟁은 날이 갈수록 치열해진다. 우리 사회의 중심에 닿지 못한 사람들이 주변부를 채운다.

불안정한 주변부에 놓인 사람들에겐 온전한 자리를 찾기란 불가능에 가깝다. 항상 들뜬 상태로 존재하는 화학원소의 전자들처럼 말이다. 둥둥 떠다니는 전자들이 다른 것과 결합하여 안정적 상태로 돌아갈 수 있는 것은 오직 화학물질의 세계에서나 가능한 일일뿐. 우리가 사는 세계에선 끊임없이 주변으로 밀려나며, 언제나 부유하는 삶을 살아가는 이들이 있다. 그리고 그들은 갈수록 점점 늘어만 간다.

<커밍업 쇼트 : 불확실한 시대 성인이 되지 못하는 청년들 이야기>라는 책은 한 치 앞을 내다볼 수 없는, 이 사회에서 살아갈 자리를 찾지 못해 부유하는 청년들의 모습을 연구 대상자들의 삶을 때론 멀리 때론 곁에서 조명하는 여러 인터뷰를 통해 치밀하고 꼼꼼하게 보여주고 있다.

부제처럼 불확실성이 날로 증대하는 시대에서 우리가 '어른'이라고 부르는 사회적 지위를 성취하지 못하는 실태를 담아낸다. 나아가 그들의 이야기를 통해 문제의 원인을 들춰내고 대안의 방향을 모색해보려 한다.

각자도생, 이 치열한 무기력을

작가는 이 책에 담긴 인터뷰 내용은 '평생 일터', 즉 생활 임금을 지급하고 차로 출퇴근 할 수 있으며 일상적 삶에 의미를 부여해주는 안정되고 예측 가능한 일자리를 찾고 유지하는 수많은 노력들로 가득 차 있다고 이야기한다. 노동계급 청년들은 증대하는 불확실성 앞에서 막중한 리스크를 감내하길 요구받는다.

하지만 노동계급 청년들은 무기력 상태에 직면한다. 질병, 가족 해체, 장애, 부상 등 예기치 못한 사회경제적 충격을 겪으며, 그때마다 휘청거릴 수밖에 없다. 그러나 사회의 안전망은 무너졌고, 연대의 끈은 사라졌다. 지금 여기서 살아남기 위한 해결책들은 각자의 몫으로 남겨질 뿐이다.

각자도생의 시대랄까. 물론 동시에 그 외 대부분의 경우엔 '정당한' 리스크만 감수하면, - 등록금을 마련하고 대출을 받거나 투자 목적으로 집을 사는 등의 - 안정된 삶을 누릴 수 있다고, 그렇게 계층 상승을 이룰 수 있다고 믿는다.

우리가 치르고자 하는 '정당한 리스크'는 분명 존재한다. 비록 각자마다 다르게 정의되고 경험될지라도 말이다. 내 미래를 위해 당연히 투자되어야 하는 비용이라고 '여겨야 마땅한 어떤 것'을 공정하게 지출했을 때, 충분한 대가나 보상이 돌아올 것이라는 기대가 우리 모두에게 있다.

그런데 바로 그 공정함이 무너지는 순간, 균열이 생긴다. 더 놀라운 것은 그럴 때 각자도생의 사회를 떠받치는 공정함이 흔들리는 게 아니라는 점이다. 역설적이게도 균열은 '너와 나의 편가르기'로 형상화된다.

"내가 너보다 더 많이 노력하고 더 많은 비용을 지출했는데. 너는 그렇게 안 하지 않았느냐.", "운이 좋아서냐. 아니면, 인맥, 혈연, 학력 덕분 아니냐. 여자라서 더 혜택받는 거 아니냐.", "시험을 보든 면접을 보든 경쟁을 치르고 거기서 승리해 자격을 획득하지도 않은 사람들에게 우리와 동등한 보상과 자격을 주는 게 말이 되냐." 등등. 자신이 들인 노력과 비용이 부정당했다며 화를 낸다.

물론 이런 반응이 이해가 안 될 일은 아니다. 여기서 개인의 문제로 치부하지 말고 사회구조적 문제로 해결해야 하니 서로 싸우지 말자는 식의 윤리적 수사는 잠시 접어두자. 오히려 직시해야 할 것은 억울하다 못해 치밀어 오르는 이 분노가 어디로, 어떻게, 왜 향하는가 하는 문제다. 우리의 감정은 보이지도 손에 잡히지도 않는 곳이 아니라, 바로 눈에 들어오고 손아귀로 움켜쥘 수 있는 사람을 향해 움직이는 경향이 있다.

곁에 있는 이들에게 손쉽게 온갖 공격과 비난을 가하게 되는 게 사람의 인지구조가 아닌가. 결국, 우리는 리스크 그 자체뿐만 아니라, 리스크를 감당할 때 겪는 박탈감과도 싸워야 하는 세대다. 성실하게 하루를 보내면 보람을 느낄 수 있는 시대가 아니기 때문에. 그렇게 우리는 서로에게 상처를 입히며 살아남기 위해 발버둥친다.

진창에 내팽겨쳐진 '공정'

"노동계급 청년들은 고등 교육 기관 같은 조직이 사회 통합과 계층 상승에 이바지하리라 기대하지만, 상호작용 실패를 연달아 경험하고는 자신의 미래를 빚는 바로 그 제도들을 불신하고 경계하게 된다. 일자리를 구할 수 있을지 확신할 수 없고 가족 관계는 깨지기 쉬우며 사회 안전망이 축소되고 미래가 불확실한 시대에 성인이 되는 것은 선택지가 없음을 받아들이는 과정이다."

사회가 요구하는 정상적인 어른의 모습이 있다. 이쯤 되면 취업해야 하고, 다음에는 결혼해야 하고, 집을 마련하고 아이를 낳고 기르고, 노후를 챙기는 등등. 인생의 정답이랄까. 그게 정말 이 사회에서 어른이 되기 위한 조건이라면, 그걸 차근히 밟아갈 수 있게 도와주는 것도 사회의 공적 책임이 아니던가.

이토록 심각한 취업난을 야기한 것, 결혼·출산·육아를 꿈꿀 수 없게 하는 가장 큰 걸림돌이 바로 우리 사회의 불평등, 불확실성이 아니던가. 이곳에서 성인이 되는 순간은 끝이 언제인지 모른 채 끊임없이 지연될 뿐이다. 청년에 멈춰버린 사람들을 외면하고 있는 건 누구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