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Z 노동이야기] 약 만드는 사람들 /2017.07

약 만드는 사람들

- 제약공장 베테랑 A씨 인터뷰



정경희 선전위원



약병에 가득 담긴 영양제를 보면 어떻게 만들어졌을까보다는 이것을 먹으면 내 몸이 어떤 효과를 보게 될지, 혹여나 후유증은 없을지에 대한 생각이 앞서기 마련이다. 약국에 빼곡히 진열된 약과 건강보조식품도 다른 상품과 마찬가지로 공장에서 제조되고 있다.


15년 넘게 약 만드는 일을 하고 있다는 A씨. 지난 6월 23일 그녀를 처음 만난 것은 치료실에서였다. 아팠던 얘기를 하며 흘러내리는 눈물을 닦기조차 힘들었던 A씨. 그녀가 해왔던 일에 대한 이야기를 몇 개월이 지나고서야 자세히 들을 수 있었다. 지금부터 경기도 화성시 소재 제약회사에서 일하고 있는 A씨가 전해주는 약을 만드는 사람들의 노동이야기에 귀 기울여보자.


전자회사에서 기계 보는 일을 하던 A씨는 지인의 소개로 비교적 보수가 괜찮았던 제약회사에서 일하게 되었고, 어느덧 15년째 몸담고 있다. 제약공장에서 이루어지는 전반적인 업무 중 투피스 방진복, 마스크, 모자, 손 소독을 하고 일하는 멸균실의 작업과정을 먼저 들어 보았다.


"원료실에서 제조할 약에 들어가는 원료를 각각 만들고, 혼합실에서 이 원료들을 혼합해요. 그런 다음 제조할 약 모양으로 찍어내는 타정 과정을 거치고, 이 약이 큰 봉지에 쌓이면 무거워요. 큰 약봉지를 4시간 동안 10번 정도 들어서 기계에 갖다 부어요. 기계가 소분하면 약에 따라 다른 라벨을 작업자가 걸어줘야 해요. 쳐서 원료의 함량이나 모양 등을 선별해요. 선별된 약을 모아서 큰 봉지에 담긴 약을 소비자들이 받을 수 있도록 100정이면 100알씩 나누는 소분과정을 거치는데 포장하는 게 달라요. 병 포장도 있지만, 플라스틱에 비닐이 입혀져서 한 알씩 까먹게 되어있는 PTP 포장을 하죠."


제약회사라고 하면 텔레비전에 나오는 것처럼 자동화가 되어서 지나가는 약만 검사하는 줄 알았는데 들어보니 자동화라고 해도 작업자의 손이 많이 간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그날 작업량은 혼합된 약의 양에 따라 결정이 돼요. 기계로 할 때는 4시간에 1만 개 정도, 사람이 할 때는 4천 개 정도 뽑죠. 요즘은 기계화가 돼서 그 전보다 수월하긴 한데 기계가 병에 약을 소분하면 실리카겔과 비닐을 넣고 뚜껑을 일일이 닫아줘야 하는 반자동화예요. 라벨이 제대로 붙어있는지 사람이 일일이 검사하고 케이스에 넣어야 해요. 기계에서 약이 적거나 많은 경우에는 계정기를 흔들어줘야 합니다. 약이 100개면 100개에 맞는 마름모, 동그라미, 길쭉한 모양 등의 100개의 구멍에 약이 각각 맞게 들어가게끔 흔들어주는 거죠. 

그래서 자동화지만 손목과 손가락, 어깨에 무리가 가는 일이 많아요. 멸균실은 청정지역이라 먼지가 있으면 안 되고, 화장, 액세서리도 하면 안 돼요. 복장 자체가 답답하고, 기계에서 나오는 소리가 엄청 시끄러워요. 멸균실에서 소분과정 중 약을 부을 때와 기계에서 하루에 2만 개의 약이 떨어질 때 약가루가 계속 날려서 마스크는 하지만 그것으로 다 차단이 안 되니 목도 아프고 비염을 앓고 계신 분도 많죠."


단순 반복 작업이라 언뜻 쉬워 보이지만, 계속하니 그렇지 않다고 한다. A씨가 15년 동안 주로 근무했던 곳이 멸균실 밖 포장작업이어서인지 더욱 생생한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다.

"한 겹씩 포장이 이루어진 상태에서 멸균실 밖으로 물건이 나오면 또다시 병 포장이나 소케이스에 10개씩 담아서 설명서를 넣어요. 요즘은 이 약을 누가 언제 어떻게 만들었는지 정보를 넣는 바코드로 된 태그 작업(RFID)을 하고 라면상자 크기의 상자에 100정, 30정씩 넣어서 개수 확인하고 회사 로고와 약 번호 그리고 약에 대한 설명이 적힌 라벨을 다시 붙이고 상자를 들어서 옮기죠. 무게는 4kg 정도 되는 것부터 시럽제의 경우 25kg 정도 돼요. 4시간 동안 40~50상자는 들어 옮기는 것 같아요."


A씨가 멸균실 밖 포장작업 중 가장 힘들었던 것은 지금은 자동화로 없어졌지만 몇 년간 계속해 온 수축작업이라고 한다.

"수축이라고 해서 병 안에 약을 보호하기 위해 비닐을 집어넣고 거기에 설명서 넣어 코팅하듯이 기계에서 비닐을 씌워서 10개씩 포장하는 작업을 했는데 가장 힘들었어요. 기계화되기 전이었으니 둘이서 4시간에 4천 개, 온종일 7천~8천 개 하고 나면 녹초가 됐어요. 

그 일을 했던 사람들은 다들 힘들어 했고 저도 그때 몸이 많이 망가진 것 같아요. 제약회사가 일정한 온도를 유지해야 하는데 약이 굳어져야 하니 기계에서 나오는 열 때문에 엄청 더워요. 그리고 일일이 손으로 눌러서 비닐을 씌워줘야 하니 손가락, 손목, 어깨가 멀쩡하지 않았죠.

자동화 이후에 비닐 작업은 없어졌는데, 그래도 기계에서 병이 나오면 라벨이 잘 붙어있는지 확인해야 하고, 주사제라 크기가 작으니 한 번에 다섯 개정도 일일이 병을 들어서 봐야 해요. 8시간에 2만개를 들어서 보려고 하면 반복적 동작 때문에 손가락, 손목에 무리가 많이 느껴져요."


근무시간이나 휴식시간, 휴게 공간에 관해 물었는데 뜻밖의 사실을 알게 되었다.

"아침 8시 출근해서 오후 5시에 퇴근해요. 5년 전 안정된 기계화가 되기 전에는 잔업이 정말 많았는데 지금은 거의 줄었어요. 잔업이 많을 때는 거의 매일 했어요. 돌아가면서 일주일에 두 번씩 보통 저녁 9시나 9시 30분까지 했죠. 점심시간은 낮 12시부터 오후 1시까지인데 식사하고 탈의실 바닥에서 쉬죠. 작업 중간에 휴식시간은 없어요. 아침 8시부터 12시까지 4시간 꼬박하는 거죠. 화장실은 중간에 교대로 갔다 오는데 대타로 일해 줄 사람이 없으니 화장실에 가면 동료가 힘들어져요. 보통은 반장들이 그 역할을 하는데 우리 회사는 이상하게 반장이 없어요. 그래서 동료들끼리 미안해서 서로 눈치 보여 자주 못 가고, 화장실 안 가려고 일하는 중간에 물을 아예 안 마시는 분들도 계세요."


인간의 생리현상조차 해결할 수 없는 전근대적인 작업조건이 한 번쯤은 들어봤을 제약회사에서 이루어지고 있다는 사실에 경악스러웠다. 휴게 시간도 없이 4시간을 연속으로 반복작업 하는 것은 근골격계 부담이 될 수밖에 없고, 이것은 전적으로 사업주의 책임이다. 그런데도 이런 행태가 행해지는 현실을 개선할 방법은 없을지 물었을 때 그녀는 쓴 미소를 지었다.


"부서장 밑에 남자 관리자들이 있지만, 자신들은 여유 있게 일하면서 저희의 편의는 안 봐주더라고요. 전반적인 제약회사 분위기가 관리자는 대부분 남성인데, 일반 여성 작업자를 대하는 태도가 강압적이고 보수적이라고 하더라고요. 우리 회사는 여자 반장도 없으니 더 심하고요. 작업자들의 생각이 뭉쳐져야 바뀔 텐데 사업주의 친인척들이 곳곳에 포진해있어 힘들 거예요. 많은 제약회사가 소규모로 시작해서 점점 커지면서 친인척으로 관계되는 사람들이 들어오게 되는데 우리 회사도 예외가 아니에요. 그래서 아마도 노동조합 같은 낌새가 있다면 색출해서 그 사람은 사직해야 할 거예요. 제가 입사하기 전에 이런 움직임이 있었는데 회사 문 걸어 잠갔다 하더라고요."


테니스 엘보, 손목터널증후군 같은 근골격계 질병을 자연스럽게 말씀하시는 것으로 봐서 주변에 근골격계 질환을 앓고 계신 분들이 많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동료 중 몸이 아프면 어떻게 하시는지 물었는데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대부분 손목터널증후군 같이 한 번쯤은 들어본 질병이고, 많이 아파서 일 못 하겠으면 그만두죠. 저도 일하다 허리를 다친 적이 있었는데 부서장이 와서 대놓고 산재 신청할 생각은 하지 말라고 하더군요. 밥줄 끊길까 봐 못했어요. 몇 년 전에 산업안전공단 같은 데서 한번 조사하러 나온 적이 있었어요. 그분이 이 작업을 이렇게 계속했냐고 묻더라고요. 그래서 15년째 이렇게 하고 있다고 대답했더니 깜짝 놀라던데요."


개선할 것이 너무나 많은 현실에서도 약을 만드는 일에 보람을 느낄 때는 언제인지 여쭤봤다.

"전문의약품을 주로 만들어서 많지는 않지만, 약 만드는 기계장비가 비싸서 한 제약공장에서 만든 약이 여러 제약회사나 상품명으로 나가는 경우도 있거든요. 제가 만드는 약이 광고로 나오고 가끔 그 약 먹고 효과 봤다는 얘기를 들을 때 기분이 좋죠. 처음에는 심혈관질환이나 간질환 환자들이 먹게 되는 약을 만든다는 사실에 나름 뿌듯하기도 했고, 이 약이 다 팔리는 걸 보면 세상에 아픈 사람들이 정말 많다고 생각했어요. 그래서 아프지 말고 건강해야겠다고 생각한 적이 있었는데 이 일을 하면서 제 몸이 이렇게 아프게 되었죠."


마지막으로 이 글을 읽는 독자에게 한 말씀 부탁드렸다.

"단순반복적인 작업이지만 그 과정에서도 꼼꼼하게 봐야할 것이나 노하우가 축적되는 경력에서 나오는 나름의 전문성이 있어요. 그런데 여성 작업자는 10년이 되면 호봉도 오르지 않고, 진급의 기회도 없어요. 남은 건 통증뿐이죠. 그래서 요즘 우울할 때도 있지만, <일터>처럼 건강하게 일할 권리를 알려나가는 사람들이 있고, 이것을 공감하는 이들이 있다는 사실이 반갑고 제게는 희망이 되는 것 같아요. 부끄럽지만 산재보상보험법이라는 것도 처음 알았거든요. 저처럼 아파하는 제약공장 노동자도 건강하게 일할 수 있는 날이 왔으면 좋겠어요. 쉬어가며 일해서 아프지 않고, 건강하게 계속 일할 수 있었으면 좋겠어요."


한국에 「산업안전보건법」 제24조 제1항 제5호 및 「산업안전보건기준에 관한 규칙」 제656조 제1호에 따르면 근골격계 부담작업 2항에는 '하루에 총 2시간 이상 목, 어깨, 팔꿈치, 손목 또는 손을 사용하여 같은 동작을 반복하는 작업'을 명시하고 있다. 산재보상보험법에는 정당한 절차를 밟아 아프면 치료받을 권리도 보장되어 있다. 

그러나 이것을 현실화시키는 문제는 또 다른 과제라는 것을 절실히 느낀다. 사람들의 병을 치료하는 약을 만드는 제약회사에서 기본적인 법도 지키지 않으며 노동자를 병들게 하고 있는 이 불편한 진실을 우리 사회는 묵과할 것인가. 제약회사에 몸담고 있는 이들과 이 글을 읽는 우리에게 던지는 질문이다.



[A-Z 노동이야기] 서로 다름을 이해하고 함께 어우러지는 '노란 들판' /2017.06

서로 다름을 이해하고 함께 어우러지는 '노란 들판'

[A-Z까지 다양한 노동이야기] 노란들판 나해니, 조수안 팀장 인터뷰


정경희 선전위원



지난 5월 24일 장애인과 비장애인이 함께 일한다는 가치를 10년 넘게 실현해오고 있는 서울 성북구에 위치한 사회적 기업 노란들판에서 일하는 나해니, 조수안 팀장을 만났다.


-노들 야학에서 시작되었다는 노란 들판 설립과정이 궁금하다.

"노들 장애인 야학에서 수업 후 교사와 학생의 뒤풀이 자리에서 검정고시를 거치고 사회에 나가도 취업이 안 되는 현실을 한탄하니, 이알찬 교사가 야학에 일터를 만들어보자고 제안해서 시작하게 되었어요. 현수막이라면 장애인도 할 수 있겠지라는 생각에 2006년 3월 노들 장애인 야학 자립작업장으로 시작했어요. 교사, 동문, 학생 세 명이 시작하며, 이 알찬 교사가 수원에 있는 바다의별 직업재활센터에서 일주일 동안 숙식하며 업무 흐름을 배워온 거죠. 


2006년도에 사회복지공동모금회사업으로 실사기계 한 대를 들여와서 일당백으로 고생을 많이 했는데, 너무 급한 상황이면 현수막 출력기 걸어놓고 기계 밑에서 자고 다음 날 새벽에 현수막 마감해서 들고 나가서 시공했다고 하더라고요. 그러면서 10년이 흘렀는데 현재는 직원이 18명이고 장애인고용공단에서 지원하는 근로 지원, 활동보조인까지 합하면 22명이 일을 하고 있고, 이 중 장애인은 관악지역자활센터 인턴까지 8명이 일하고 있어요."


- 노란 들판에서 현수막이나 인쇄물이 제작되기 위해서 어떤 작업과정을 거치게 되나?

"먼저 홈페이지, 메일, 웹하드를 통해 주문접수가 되면 사무팀에서 고객 응대를 해서 납기일, 디자인 문구, 사이즈 등을 파악해 작업지시서를 적어 접수해놓으면 디자이너들이 자기 폴더로 가져가요. 그러면 서버로 소통하는데 디자이너가 가져가는 순간부터는 디자이너와 근로지원인의 몫이에요. 수정과정을 거쳐서 완성되면 작업팀 폴더에 넣어놔요. 작업팀이 출력 기계로 뽑고 작업지시서에 적힌 배송방법이나 기일을 지켜서 퀵이나 택배로 발송하는 시스템이에요. 인쇄 쪽도 마찬가지로 디자이너가 고객과 소통해서 최종 협력인쇄소로 넘기는 시스템이죠."


- 여러 작업과정 중 가장 힘든 과정은 어떤 것인가? 

"다들 힘든데 아무래도 출력, 마감, 시공, 배송, 포장을 하면서 몸을 많이 사용하고 서 있는 작업팀이 힘들 것 같고, 디자이너의 경우 목, 어깨, 허리, 팔 통증이 많이 있어요. 작업이 많을 때는 야근도 하게 되면서 장시간 앉아서 작업을 하니까 오십견 진단 받으신 분도 계세요. 뇌성마비 특성상 디스크가 많은데 디스크로 물리치료 받는 분들도 계시고요."


- 일하시다 아픈 거니 산재라 할 수 있는데 어떻게 처리하시나?

"출퇴근 중, 사무실에서 미끄러져 넘어진 경우가 있어서 산재 처리를 했어요. 시공 나갔는데 강당 문이 닫혀 있길래 아무도 없는 줄 알고 사다리 놓고 올라가서 시공하던 중 갑자기 강당 문이 열리면서 사람들이 우르르 나와서 사다리가 그대로 넘어간 사고가 있었는데, 다행히 다치지는 않았지만 다들 너무 놀랐었어요. 예방하려고 노력은 하지만 예상치 못한 경우가 가끔 발생해요."


- 사고뿐 아니라 일상적으로 누적되는 질환에 대한 예방을 위해 어떤 것을 하고 계시나?  

"아직은 안 하지만 일하는 중간에 스트레칭 체조를 할 필요가 있을 것 같아요. 작업팀에서 열 재단을 할 때 코팅된 원단이 녹으면서 유독한 연기를 흡입할 수밖에 없는 상황인 것 같아서 공기청정기를 계속 돌리고는 있지만, 걱정이 돼요. 그 부분만 국소 배기 장치를 설치해야하는데 건물구조상 고려를 못하고 있는 부분이 있어요. 그래도 여러 가지로 많이 노력을 해야 할 것 같아요."


- 2009년도부터 함께했다는 경영지원팀 나해니 팀장님의 역할이 궁금하다.

"사회적 기업 관련 사업보고, 지원사업 제안과 관련된 각종 보고, 사업비 신청 등 전반적 행정업무를 하고 있어요. 종이 인쇄물 견적 내고 초기상담을 하는 일이 매일 하는 업무고요. 고정적으로는 못하지만 해야 하는 일 영업, 사회적 경제 네트워크 회의가 있을 때 참여하는 일을 하고 있어요. 제가 외부 인터뷰를 많이 하는 이유가 노란 들판 대표님이 노란 들판 야학 상근을 하시고, 대표대행 하시던 경영 이사님이 성북구 마을 사회적 경제센터의 센터장을 맡으면서 노란 들판은 현재 팀장 공동운영으로 가고 있어요."


- 여러 가지 일을 맡고 계신데 힘든 점은 어떤 것이 있는지?

"5년 차까지 인건비를 지원해주는 정부의 지원이 2011년에 끊기면서 노란 들판의 매출로만 운영을 해야 했어요. 납기일을 맞춰야 하는데 노동력은 한계가 있으니까 일을 많이 할 수 있는 사람에게 일이 몰렸어요. 그 과정에서 힘든 시기가 있었죠. 제 역량을 벗어나는 일을 책임을 지고 감당해야 했어요. 노란 들판의 가치에 공감해서 일을 시작했지만, 육체적으로 너무 힘드니 무력감이 오고, 정신적인 우울감도 오더라고요. 지난 3년간 5명의 청년을 채용하면서 일이 많이 나뉘어졌어요. 지금 가장 힘든 것은 물리적으로는 일이 많이 몰릴 때이고(일이 없는 것보다는 훨씬 낫지만), 정신적으로는 주문이 몰려서 디자이너들이 야근을 오래 해야 하는 상황을 보는 것이 가장 힘들어요. 개인적으로는 팀장으로서 당연히 가져가야 하는 책임이지만 가끔 무겁게 느껴질 때에요. 이거는 어쩔 수 없이 지혜와 노력을 통해 계속 감당해 나가야 하는 것 같아요."


2006년 사회복지공동모금회 중증장애인 취업 지원프로그램으로 참가하셨던 세 분이 모두 지금까지 함께하고 계신데 그 중 한 분으로 청각장애를 갖고 있는 조수안 디자인팀장의 역할과 힘든 점도 들어보았다.


"사무팀이 접수를 하고, 고객의 요청을 반영하여 디자인을 잘하고자 노력해요. 근무시간 내내 컴퓨터 앞에서 일해요. 일을 오래 하다 보니 자세가 좋지 않아요. 허리가 아프고 어깨도 아파요. 퇴근 후와 토요일마다 병원에 가서 물리치료 받아요. 일하다 스트레칭을 해야 하는데 시간이 촉박하다 보니 잘 안 돼요. 일할 때 가장 힘든 점은 디자인을 했는데 고객의 마음에 들지 두려움이 있죠. 그리고 어려운 점은 의사소통이 제일 어려워요. 디자인 수정할 때 어떻게 말해야 할지 몰라서 고민이 쌓이는데요. 혼자 스트레스받아요. 회식이 몇 번 있는데 사람들이 먼저 다가와서 뭐 때문인지 물어보기도 해요. 그러면 반은 풀려요."


- 8시 30분부터 10시 30분 사이에 본인이 출퇴근 시간을 정하는 선택적 근로 시간제를 적용하고 있는 이유가 궁금하다.

"8시 30분에 시작한 사람은 5시 30분에 퇴근하고, 가장 많은 이들이 근무하는 시간은 10시부터 7시까지에요. 10시 출근 7시 퇴근 근무 시간제를 시작한 이유는 장애인 직원이 많다 보니 9시 출퇴근 시간에 걸음이 늦으신 분도 있고 해서 대중교통이 붐비는 시간을 피해서 1시간을 더 늦췄어요."


- 다른 기업에서 보기 드문 내부프로그램이 적지 않다고 들었는데 간단히 소개해주신다면.

"초창기부터 10년 동안 일한 직원들의 체력이 방전 되고 있었어요. 초창기 멤버 중 일의 과부하로 지친 직원들을 대상으로 7-3-7 제도를 만들었어요. 7년 이상 근무한 사람은 3개월 전에 공지하고 회사와 같이 조정을 하면 7개월의 무급휴직을 쓸 수 있는 제도예요. 직원들의 행복을 위한 행복위원회라고 있어요. 그달의 생일자 문화상품권 챙겨주기, 전반적인 간식거리, 사무용품, 소모품 등을 관리하고 구매하는 일을 맡는데요. 직원이 3명씩 두 달마다 돌아가면서 하니 살림살이가 어떻게 돌아가는지 자연스럽게 알 게 돼요. 회식비용이 초과되면 다른 비용에서 줄여야 하는 걸 알게 되고, 다른 사람의 행복을 위해 자신이 조금은 희생하는 경험을 해보면서 서로 챙겨주는 문화가 자리 잡는 것 같아서 긍정적인 평가가 있어요. 


청각장애인과 소통을 위해서 일주일에 한 번씩 선생님 모시고 수화도 배우고, 전화를 받는 분은 점심시간에 30분을 더 쉴 수 있게 해드리고 있어요. 물리치료나 작업치료가 필요한 뇌성마비 장애인의 경우 근무시간에 치료받을 수 있게 하고 있어요. 직원 내부역량 강화교육으로 디자이너 한겨레문화 센터 교육비 지원이나 통역이 가능하도록 노란 들판 디자이너에게 맞춤 교육계획을 짜서 4회 차 진행했는데 반응이 매우 좋았어요. 물론 휴식시간도 가능한 보장하려고 해요. 샌드위치 데이에 쉬고, 생일에는 강제로라도 휴가를 써야 해요. 올해부터 1월 비수기에 5일씩 재충전 휴가를 팀원이 돌아가며 가졌는데 반응이 매우 좋았어요."


- 이렇게 좋은 제도를 실현하려면 현실적으로 급여는 어느 정도 받는지 궁금해진다. 

"임금제가 직급수당이 있고, 업무의 힘든 정도에 따라 업무수당이 있어요. 기본급이 있고 년차가 올라갈수록 3만원씩 느는 게 있고요. 매년 초에 성북구 생활임금과 최저임금을 놓고 기본급을 책정해요. 생활임금에 가깝게 책정을 하려고 노력하고 있지만 보통 일터의 노동자들보다 많이 받지 못해요. 풀타 임 근무자를 기준으로 평균임금이 약 180만 원 정도 돼요. 작년에 임금체계 논의를 하고 설문조사도 했었는데 60%는 만족하고, 40%는 부족하다고 느꼈어요."


- 앞으로 노란 들판이 성장해 나갈 방향과 일터 독자들에게 하고 싶은 말씀은. 

"한국사회에서 장애인이 살기 너무 힘들잖아요. 교육, 생활, 기본소득, 취업 등 해결해야 할 과제들이 많은데 지금 시점에서 노란 들판이 할 수 있는 일을 계속 논의하며 고민해나가고자 해요. 내부적으로는 새로 들어온 청년들과 오래 일한 장애인분들이 서로 이해하고 어우러지면서 노란 들판이 지향하는 바를 잘 실현해가는 것이 있고, 외부적으로는 부설기관으로 장애인 노동상담센터를 만들어서 장애인 노동권에 대한 세미나, 취업과정에서 곤란을 겪을 일에 대한 상담을 해보고자 하는 희망이 있어요. 


노란 들판 고객의 60%는 시민사회단체인데 노란 들판을 유지시키는 힘이에요. 그런데 노란 들판이 어떻게 일하고 있는지 대부분 잘 모르세요. 그래서 노란 들판의 얘기를 할 수 있는 창구로 블로그를 만들었어요. 소소한 이야기들이 많이 올라오고 있어요. 블로그에 들려주시면 좋겠고, 장애인과 비장애인이 같이 일하는 일터가 어떤 모습으로 일이 굴러가고 있는지 관심을 가져주시면 좋겠어요."


청각장애를 갖고도 10년간 노란 들판에서 함께하고 있는 조수안 팀장은 장애인도 용기를 내면 당당하게 일할 수 있다는 말을 남겼다. 장애인이 자신감을 갖고 비장애인들과 평등한 일터를 만들어가는 노란 들판의 물결이 세상 곳곳에 퍼져나가길 바란다.



[A-Z 다양한 노동이야기] 호두과자 세 개 /2017.5

호두과자 세 개

- 화성시 방문건강관리센터 조미순 선임간호사 인터뷰

 


정경희 선전위원


보건소 하면 청결하고 안정적인 이미지가 먼저 떠오른다. 더구나 지역주민의 건강을 위해 보건소는 여러 역할을 담당하고 있는데 그중 하나가 방문건강관리 사업이다. 화성시 보건소에서 방문건강관리센터 소속으로 10년째 일하고 있는 조미희 선임간호사를 만났다.

 

- 다양한 간호의 영역 중 방문건강관리는 무엇이고, 지역사회에서 이루어지는 방문건강관리는 누구에게 무엇을 하는 것인지 궁금했다.

“방문건강관리사업은 국가에서 하는 사업이에요. 병원은 치료와 처치 중심이라면 지역사회 방문건강관리는 질환관리와 합병증 예방, 재활을 목적으로 지역사회의 취약계층 중 건강문제가 있는 분들이 주 대상이에요. 화성시는 방문간호사가 19명이에요. 한 간호사당 350가구를 관리하죠. 매주 방문 드리는 가구는 이 중 6~7% 정도 되고, 대부분 1~3개월마다 주기적으로 방문해서 만성질환이나 건강문제가 더 악화하지 않고 잘 관리되고 있는지 모니터링하고 건강문제에 따른 질환 관리교육, 필요할 때 타 기관 연계를 주로 하고 있어요.”

 

- 방문간호와 어떤 계기로 인연을 맺게 되었는지 여쭤봤다.

“간호대를 졸업하고 종합병원에 3년 정도 다녔는데 3교대 주기의 벽이 너무 크더군요. 신체 리듬이 깨지고, 그에 따른 업무 부담이 커지면서 그만두고 잠깐 일할 곳을 찾던 곳이 지역사회 보건소였어요. 처음에는 난임 지원 분야 10개월 기간제로 채용되었는데, 같은 시기에 방문간호 쪽에서 채용한 간호사 선생님이 개인 사정으로 근무를 못 하게 되어 대신 방문간호 업무를 권유받아 시작하게 되었어요.”

 

- 그럼 졸업하고 3년 뒤니까 아직 20대였는데 힘들지는 않았는지 궁금해진다.

“방문 간호하면 은퇴하신 선생님이 하는 분야 정도로 인식하고 있었는데 제 나이가 스물일곱이었으니 주위에서는 만류하는 편이었죠. 시작할 때는 3교대가 아닌 규칙적인 패턴으로 일할 수 있는데 만족을 느꼈지만, 차츰 병원에서 함께 일했던 동료 간호사들은 점차 좋은 자리로 올라가고 있는 것에 비해 열악한 취약계층의 가정을 방문하면서 힘들게 일하는 것이 비해 보이는 성과가 없는 저 자신이 무척 초라해 보이더라고요. 스스로 이전 동료들보다 뒤처진 것 같고, 취약계층은 마음에 공허함이 많은 편이라 그런 부분을 껴안아줘야 하는데 젊은 패기만으로 방문간호에 임했던 저는 힘든 벽에 부딪히는 느낌이었어요.”

 

분명히 필요한 손길이기에 그 손을 놓을 수가 없었다

10년째 방문간호를 하고 있고, 지금은 선임간호사로 열아홉 명의 방문간호사를 아우르고 있지만, 힘든 시기를 넘길 수 있었던 몇 번의 계기가 있었다고 한다. 그중 하나를 들어보았다.

“송산이라는 곳 아세요? 30분 넘게 차를 운전해야 갈 수 있는 외딴집 하나가 있었어요. 고혈압이나 당뇨 같은 만성질환은 주기적으로 체크하면서 모니터링 해야 하는데 이곳은 마을버스도 다니지 않아 방문간호사가 직접 찾아가 주기적으로 체크해 드려야 하거든요. 할머니께서 귀가 잘 안 들리시는 데다 아드님을 일찍 여의셔서 며느님과 함께 힘들게 생활하고 계셨어요.

그러던 어느 겨울날 제가 갔을 때 근처 어르신 몇 분이 모여 민화투를 치고 계시더라고요. 여느 때와 같같이 건강 체크를 해드리고 건강교육을 하는데 할머니께서 자꾸 부엌을 왔다 갔다 하시는 거예요. 다른 어르신이 정신없게 왜 왔다 갔다 하냐고 핀잔해도 그냥 웃기만 하시고요. 업무를 마치고 집을 나서는 저를 배웅해주시려는지 할머니께서 쫓아 나오셨어요. 감기 드니 얼른 들어가시라고 했지만, 한사코 차 있는 곳까지 따라 나오시더라고요. 그리고 무언가를 주머니에서 슬쩍 꺼내서 제 손에 꼬옥 쥐여 주시는 거예요. 뭔가 펴보니 호두과자 세 개였어요.

할머니께서는 고마운 마음을 표현하고 싶었지만, 할머니께는 호두과자가 세 개뿐이라 다른 분 몰래 주려고 추운 날씨에 여기까지 나오셨구나 생각하니 마음이 뭉클하더라고요. ‘감사합니다. 또, 올게요.’하며 할머니를 꼬옥 안아드렸습니다. 어떻게 보면 사소한 일화지만 그 호두과자 세 개로 그간 젊은 패기로만 임했던 방문간호업무에 대한 생각을 360도 바꾸는 계기가 되었어요. 이후 ‘또 올게요.’라고 약속한 말을 지키기 위해 매일 감사하는 마음으로 방문을 다니게 되었어요. 마음으로 대상자를 대하게 되고, 함께 울고 웃었던 경험이 쌓여 10년 넘게 방문간호를 할 수 있었던 것 같아요.“

 

- 보통 방문간호 업무의 일과는 어떤지요.

“오전 9시부터 6시까지 8시간 근무를 하고 계시고 권역마다 사무실이 따로 있는데 10시~10시 30분까지 대상자와 연락을 하면서 방문스케줄을 짜요. 이후에는 권역 대상자의 가정에 출장을 나가서 업무를 하고, 4시 30분에서 5시 사이에 복귀해서 대상자 서비스 제공 내용을 시스템에 입력이나 서류 작업을 하죠. 보통 5~6시간은 외근을 한다고 보면 돼요. 하루에 방문하는 가정은 5~6가정 정도 되는데, 방문하면 그동안의 건강문제 점검하고 새롭게 생긴 문제는 없는지 그날의 활력 징후나 만성질환의 정도가 어떻게 변화되었는지를 체크해요. 그리고 대상자에게 필요한 건강교육이나 투약관리를 하는데 보통 대상자의 건강문제에 따라 다양한 서비스가 제공되기 때문에 업무 일과를 간단명료하게 정리하기가 쉽지 않아요.”

 

불안을 느낄 때 동행방문 필요해

- 방문간호에 있어서 어려움은 어떤 것이 있는지 궁금했다.

“현장과 행정의 두 가지가 있는데, 현장 차원의 어려움이라면 아무래도 알코올 의존증이나 정신질환자 등 다양한 건강문제를 가지고 있는 취약가정을 직접 방문하다 보니 불안전성에 노출돼 있거든요. 안전에 대한 매뉴얼이 있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지침 수준이고 현장에서는 각기 다른 특이한 상황이 있기 마련이에요. 이런 경우 경험이 오래되신 선생님은 대처할 수 있지만, 신규 선생님은 당황하거나 두려워하는 안전에 관한 문제가 발생하거든요. 물론 개인의 성향에 따라 위험성을 달리 느끼기도 하지만 개인의 책임으로 돌릴 수는 없는 중요한 문제입니다. 이렇게 문제점이 확인되는 가정은 동행방문을 한다든지, 지침 차원에서 배제 대상자로 둘 것인지, 아니면 타 기관과 연계하여 관리할 것인지에 대한 지침이 명확하게 나와 있지 않아서 어려워요.”

 

- 방문간호 업무 중 겪는 심리적 불안감, 감정적 소진 같은 문제는 어떻게 해결하시는지요.

“공식화되어 있는 건 없어요. 아직까지는 대상자와 안전에 대한 심각한 문제는 일어나지 않았지만, 혹시라도 대상자가 키우는 개한테 물리거나 방문하면서 다칠 수 있는 부분에 대해서 상해보험에 따로 가입하고 있어요. 하지만 나머지 부분에 대한 대책이 없기 때문에 개선이 필요한 사항입니다. 감정적 소진은 분기별로 한 번씩 모든 선생님이 모여서 워크숍 형태로 동료끼리 서로 소통하고 힐링하는 기회를 만들고는 있어 도움이 되고 있어요. 대상자의 건강을 책임지고 있는 방문간호사가 먼저 심신이 건강해야 하므로 정말 중요하고 필요한 사항이죠.”

 

적절한 인원충원이 선행돼야 질적 서비스 유지 가능해

- 화성시의 경우 취약계층이 5만 명이라고 하는데 방문간호사 한 명당 몇 세대를 맡고 있고, 질적인 서비스를 위해 적절한 가구 수는 몇 세대나 된다고 생각하시는지요.

“전에는 한 방문간호사당 500가구를 맡았던 적이 있어요. 그러면 건강 체크만 하고 돌아와야 해서 질적인 서비스를 제공하기가 힘들어요. 저희의 경우 현재 350가구로 맞춰놓은 상태지만, 사실 질적인 서비스로 대상자의 만족도를 높이기 위해 200~300가구 정도가 적절하고 이를 위해서는 방문간호인력 더 필요한 상황입니다. 화성시는 점점 인구가 증가하므로 방문간호수요를 충족시키기 위해 매년 1~2명 방문간호 인력을 증원하고 있지만, 아직도 부족한 상황이죠.”

 

기간제, 위탁이라는 이름으로 비정규직 가속화

- 일하실 때 느끼는 어려움 중 행정적인 어려움이라면 어떤 것인지요?

“지자체에서 모든 인력을 정규직화하기에는 어려운 구조적 문제가 있나 봅니다. 그래서 연속적인 사업을 진행할 때 인력구성에 어려움이 있어요. 보건소뿐 아니라 읍면동 주민자치센터 등도 마찬가지일 거라 생각해요. 특히 방문간호의 특성상 대상자를 1년만 관리하고 끝나는 게 아니라 건강문제가 해결되지 않는다면 계속 관리를 해야 하죠. 방문간호가 처음에는 기간제 형태로 진행이 되었는데 2년 이상 근무할 수 없어 방문건강관리사업을 민간위탁체계로 바꾸게 되었어요. 사실 민간위탁체계가 연속적으로 일할 수 있다는 장점은 있지만, 인력고용체계는 1년 단위로 재계약을 하는 계약직 체계이긴 마찬가지죠. 등록대상자의 건강을 책임 있게 관리하고 지속해서 지켜봐야 하는 상황인데 고용이 안정되지 않는다면 업무 책임감이라는 게 상실되기 쉬워요. 하지만 저희 방문간호사들은 열악한 조건 속에도 책임감을 느끼고 근무하셔서 존경스럽고, 어떻게 보며 안타까워요. 빨리 방문간호사의 노력의 대가가 고용안정으로 인정받았으면 좋겠어요.”

 

안정적 고용보장으로 방문간호 이루어지길 

- 급여책정이나 인상은 어떻게 되는 건가요.

“민간위탁사업이 워낙 다양하기 때문에 사업지침 등에 따라 급여체계는 달리 이루어져요. 그래도 저희는 다른 시에 비해 급여체계가 좀 더 나은 편이지만 역시나 급여 인상의 한계점과 안정적인 고용보장이 되지 않아서 매년 이직이 발생되고 있어요. 올해도 두 분이 그만두셨거든요. 고용하는 입장이나 건강관리를 받는 대상자 입장에서는 매우 안 좋죠. 대상자의 건강력에 대해 구체적으로 누구보다 잘 아시는 경험과 노하우가 풍부한 방문간호사가 그만두게 되니... 이런 부분들은 행정적인 차원에서 더 채워져야 할 부분이에요.”

 

취약계층의 건강문제는 복합적인 해결이 필요할 때가 있는데 이는 여러 기관과 기구의 구조적 인프라 구성이 촘촘하게 이뤄져야 가능하므로 화성시 지역사회보장협의체 총무를 맡으며 함께 하고 있다는 그녀를 만나니 우리 사회안전망을 만드는 희망이 보여 든든했다

[A-Z 다양한 노동이야기] 건설노동자라고 불러주세요 /2017.4

‘건설노동자’라고 불러주세요

 


정경희 선전위원



수원의 한 아파트 건설현장 출입구에서 마중 나온 김창규 님을 만났다. 김창규 님은 형틀목수이자 건설노조 경기중서부 조합원이기도 하다. 출입구에서 멀지 않은 곳에 1, 2층으로 쌓여 있는 컨테이너 박스들이 보였다. 그 사이로 들어가 녹슨 간이계단을 따라 2층 컨테이너 박스로 올라가니 조합원들의 휴식 공간이자 탈의실이기도 한 사무실이 나타났다.

 

회사 월급으로 자식 키우기 힘들어 형틀목수 시작 


조금 있으면 외손자를 보게 될 그는 형틀목수 일을 시작한 지 20년이 넘었다. 어떤 계기로 시작하게 되었는지 궁금했다.

 

“안산에서 회사를 다녔는데 월급이 짜서 자식들 키우기 힘들더라고요. 88년도에 건설 붐이 한창 성행했던 때라 새벽 컴컴한 시간에 시작해서 저녁 컴컴한 시간에 끝날 만큼 일이 많았고, 월급이 회사 다닐 때보다 많아서 목수 일을 배우게 되었어요. 이 일을 시작할 때는 30대라 젊어서 힘든 줄 모르고 했는데 이제는 골병이 많이 들었죠.”

 

보통 하루 일과는 어떻게 되시는지요?

 

“집에서 보통 새벽 5시에 출발해요. 가면서 동료들 태우고 6시쯤 현장에 도착해요. 아침식사하고 체조하고 간단한 조회하고 현장에 가면 7시 정도 돼요. 점심시간 1시간이고, 참시간이 30분씩 있는데 대부분 참 먹고 담배 한 대 피울 정도 쉬어요. 어쩔 때는 참 시간을 쉬지 않고 끝나는 시간을 앞당기기도 하죠. 그렇게 일마치면 저녁 6시쯤 됩니다.”

 

아파트 공사의 기초와 마무리 하는 형틀목수

 

노동조합을 가입한 후 5년 전부터 줄곧 아파트 건설현장에서 일하고 있지만 그 전에는 아파트보다 주택이나 연립 짓는 곳에서 일을 했었다고 한다. 아파트 공사를 할 때 형틀목수는 어떤 일을 주로 하는지 물었다.

 

“아파트 뿌리라고 할 수 있는 파일을 박고나면 철근 넣고 기초 매트를 치는 것을 시작하는 거죠. 그리고 지하주차장과 본 건물의 지하층을 만드는 거죠. 나머지 본 건물은 알폼 조립공이라 불리는 작업자들이 옥탑 바로 아래층까지 반복해서 올리는 작업을 하게 되는데 굉장히 힘들어서 대부분 이주노동자들이 작업을 해요. 힘든 일에 비해 돈이 적어서 젊은 사람들이 안 들어오니 대부분 50살 넘은 사람들이 많아요. 내국인 형틀 목수는 1층 출입구까지 작업이 끝나면 관리동 같은 부속건물을 지으러가요.”

 

이주노동자도 건설노조 중서부지부 조합원

 

가끔 접하는 이주 노동자와 한국인 노동자의 갈등은 사소한 오해와 문화적 배려의 부족 때문만은 아니다. 이주노동자의 존재가 자신의 일자리를 빼앗고 임금하락을 부추기는 요인이라 생각하는 한국인 노동자들의 인식을 바꾸어 내는 방법은 없을지 궁금했는데 그의 말 속에서 답을 찾을 수 있었다.

 

“이주노동자 중 합법적으로 국내에서 일하고 있는 분은 저희와 똑같이 건설노조 경기중서부 조합원으로 가입해서 일하고 있어요. 사업주들은 비용 아끼려 이주노동자를 선호하는데 노동조합 가입해서 함께 싸우면 그런 꼼수는 더 이상 안 통하겠죠. 저희 팀에도 이주노동자 조합원이 있는데 팀의 책임자로서 작업이 잘못됐을 때 지적을 하면 차별한다고 생각할까봐 걱정이 되고, 한국인 작업자들과 갈등이 생길까 노심초사하는 게 있죠. 한국인 노동자들이 무심코 던진 말에도 상처를 받을 수 있으니까요.”

 

형틀목공 일을 하면서 가장 힘들었던 작업과정을 물었더니 뜻밖에도 현장에서 일할 때는 느끼지 못했던 힘듦이 있다고 했다.

 

“워낙 이 바닥에서 잔뼈가 굵어져서인지 기술적으로 힘든 것은 별로 없는데 현장에 들어와서 노조를 거부하는 원청과 최하위 하도급이라 할 수 있는 회사 사람들과 갈등을 빚을 경우가 주로 힘들죠. 그 사람들은 떡 주무르듯 마음대로 할 수 있는 이주노동자나 불법체류자가 들어오면 대 환영이나 우리처럼 노동법을 들고 나오는 노조가 들어오면 싫어라 하죠. 그리고 제일 힘든 것은 항상 노상에서 일해야 하니 여름에 덥고, 겨울에 추운 날씨예요.“

 

직업성질환 요인 넘쳐나지만 사고성 재해 아니면 힘들어

 

20년 넘게 건설현장에서 일하시면 사실 종합적인 근골격계 질환에 걸리지 않았을까 싶다. 필자도 그래서 이렇게 질문드렸다. 어디부터 골병이 들던가요?

 

“허허~ 허리가 가장 먼저 신호가 왔어요. 물론 쌓여서 안 좋아지는 건데 대부분 구르거나 뚝-해야 입원해서 치료를 받는 게 대부분이죠. 어깨 무릎 할 것 없이 집에서 며칠 놀면 온몸이 쑤셔요. 사실 모두 다 가는 귀 먹은 사람이 많아서 그런 건데 서로 못 듣는다고 불편해 해요. 건축 일하는 사람들이 가래를 많이 뱉어요. 시멘트 속에는 양잿물이라는 성분이 있어요. 그 물에 손을 담그면 물집이 생겨서 터지고 짓물러버려요. 그런 게 바닥에 굴러다니다 말라서 먼지가 돼 바람이 불면 날아다니다가 호흡기로 들어오는 거죠. 그런데 아직 이런 것으로 산재를 받은 경우는 없어요. 대부분 사고로 다치고 부러지면 보상을 받는 거죠.”

 

살 사람도 죽게 만드는 119 돌려보내기

 

매우 많은 위험이 도사리고 있는 건설현장. 그동안 많은 사고를 겪으셨을 텐데 혹시 기억에 남는 사건이 있는지 물었다.

 

“오야지 밑에서 주택 짓는 일을하다가 주춤하더니 철근이 쌓여져 있는 곳에 거꾸로 떨어져 버렸어요. 다행히 정신은 안 잃고 머리가 핑 돌더라고요. 1년 정도 치료받고 나았죠. 동료들이 119에 신고한다고 하니, 119에 신고하면 사고 건으로 등록이 돼서 벌금이 나오고 산재건수도 올라가게 되니 사장이 막았어요. 그래도 동료들이 119를 불러서 결국 병원에 갔고 1년에 걸쳐서 나은 적이 있죠. 보통 큰 회사의 경우는 오는 119도 돌려보내고 회사지정병원 응급차를 부르거나 자기들 차로 병원에 태우고 가죠. 그래서 이런 아파트 공사장에서 떨어지면 살 확률이 높은 사람들도 죽게 되는 거죠. 얘네들은 사람목숨을 아깝게 생각 안 해요.”

 

법을 지켜야 우리의 안전도 지킬 수 있어요

 

이 현장에서 그리 멀지 않은 다른 현장에서 얼마 전에 배선공이 떨어져서 사망하는 사고가 있었고, 사망사건을 접하는 것은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다. 이런 죽음의 행진을 막으려면 어떻게 해야 된다고 생각하는지 물었다.

 

“건설법을 지켜야죠. 하도급 철폐 내걸고 있는데 원청에서 하도급이 4, 5단계까지 내려오고 가장 마지막 하도급 현장에서는 일반공(일명 잡부)까지 하도급을 주죠. 그러면 팀장들이 팀원들을 데리고 들어와서 그것을 받는 거죠. 그러다보니 땡겨먹기 위해서 부실공사하고 안전시설을 안 하고 그런 것을 빼야 남으니까, 서로 하도급 받으려고 경쟁하면서 제 살 깎아먹는 거죠. 저단가로 넣고 이윤을 남겨야하니 결국 불량자재 쓰고 불법체류자 같은 저임금 노동자로 인건비 낮추는데 그 피해는 결국 누구에게 오느냐면 노동자에게 오죠. 그 집을 노동자들이 사서 살게 되니까요. 그러니까 원청의 자본가는 돈만 벌어먹지 우리의 안전과는 거리가 먼 사람이에요. 불법하도급 하면 안 되고 직접고용 직접시공을 해야 해요. 그렇게 되면 노동자들 작업복, 6개월에 한 번씩 안전화 지급받고, 작업마치고 깨끗하게 샤워하고 적정한 인건비도 받을 수 있다고 봐요.”.

 

인터뷰 내내 분명히 느낄 수 있었던 것은 노동조합 활동에 상당히 고무돼 있다는 것이다. 이렇게 적극적으로 노동조합 활동을 하게 된 계기는 무엇이었는지 궁금했다.

 

“그 전에는 노동조합에 대해 부정적이었는데 노동조합 활동은 먼저 시작한 동료가 자기 권리를 주장할 수 있어서 좋다며 권유해줘서 시작했어요. 처음에는 집회에 가도 불안하고 대오 맨 뒤에서 무대도 잘 안 보이데 있곤 했죠. 그런데 사람다운 대우도 못 받으면서 일해 주고 돈도 많이 뜯기고 여러 어려움이 있을 때 노동조합에 함께 하니 훨씬 안정적이고 든든해요. 또, 현장에 노동조합이 있어서 업주들이 비조합원들에게 저지르는 불법을 예방하는 효과도 있다고 느껴요. 평소 부정적인 비조합원들도 저희가 임금인상이 되면 같이 올라가니 내놓고 동조는 안 해도 필요성은 느끼는 거죠.”

 

자신이 일해서 번듯하게 지어진 높은 아파트 앞을 지날 때 고생은 했지만 기분이 좋아진다는 그에게 앞으로의 계획을 들어보았다.

 

“제 나이 쉰여섯인데 노동조합에 늦게 들어왔어요. 앞으로 길어야 10년은 할 수 있겠죠. 남은 시간동안 노동조합 활동 열심히 하고 싶어요. 약자는 뭉쳐야 싸울 수 있으니까요. 노동조합 상근자들과 조합원들 챙기면서 활동 열심히 하면 나중에 우리 아들딸들도 서민으로 살아갈 건데 좀 더 살기 좋아지지 않을까 생각해요.”


마지막으로 꼭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건설노동자라고 불러줬으면 좋겠어요!! 자본가들이 만들어 냈죠. 비인간적인 대우를 받는 노가다, 일꾼, 인부라는 말이 듣고 싶지 않아요. 그러기 위해서는 하도급을 철폐해야 하고, 적정임금제를 도입해야 하는데 저희 건설노동자들 열심히 싸울 때 관심 가져주셨으면 좋겠어요!”

 

인터뷰를 마치고 현장에 왔으면 직접 봐야한다며 안전모를 쓰게 하고 직접 22층 작업 현장에 데려가셨다. 일어설 때마다 철커덩 흔들리고 사방이 한 장의 철창으로만 만들어진 간이 엘리베이터를 타고 22층까지 올라가는 동안 엄청난 위험 앞에 허술하기 그지없는 안전장치에 의지해 일하는 건설노동자의 아슬아슬한 마음을 조금이나마 느낄 수 있었다

 

 

 

 

 

[A-Z 다양한 노동이야기] 삼각산 재미난 학교에서 산나물을 만나다 /2017.3

삼각산 재미난 학교에서 산나물을 만나다

- 대안학교 교장 인터뷰 -

 


정경희 선전위

 


동네 할아버지께 길을 여쭈었더니 알려주신 곳은 가정집인 줄 알고 지나쳐 왔던 대문이었다. 교문에 붙어있는 ‘삼각산 재미난 학교’라는 간판을 보고서야 내 머릿속에 자리한 학교에 대한 고정관념을 알아차릴 수 있었다. 산나물이라 불리는 이상훈 교장을 인터뷰하는 내내 얼마나 좁은 교육관으로 아이들은 양육하고 있었는지 반성하게 되었다. 이렇게 고정관념을 넘어서는 학교와 어떻게 연을 맺게 됐을까.

 

“이 동네에는 98년에 공동육아가 생겼고, 아내가 좋은 어린이집이 있다고 해서 우리는 2000년에 이사를 왔어요. 그때 저는 가끔 나타나는 동네 아저씨였죠. 한창 비정규직 조직화 활동으로 바쁠 때는 아빠로서 해야 할 일에 대한 배려를 많이 받았어요. 그래서 활동을 그만둔 후 그동안 외상값 갚는다는 심정으로 어린이집에서 일했는데 그러면서 일상에서 협업하고 연대하는 것들이 중요하다는 것을 새삼 느끼게 되었어요.”

 

산나물은 95년 서울지하철 노조에서 활동 후, 99년부터 2006년까지 공공운수노조 공공부문 비정규직 노동자 조직화 활동을 했다고 한다. 불안정노동이 일상화돼버린 요즘, 길고도 치열했던 그의 활동 이야기를 듣는 동안 여러 가지 울림을 받았다. 아쉽지만, 지면상 간단히 소개한다.

 

“월요일 아침에 나가서 토요일 저녁에 집에 들어왔어요. 전국의 투쟁 사업장들 농성에 파업에 구속되고 다치고 침탈당하는 일의 반복이었는데 그렇게 10년 가까이 살았죠. 동지가 제 눈앞에서 분신해서 죽고, 가정이 파괴되는 걸 보니 감당이 안 되는 거예요. 그리고 싸우다 보니, 자본이 이윤율 하락의 마지노선으로 인건비를 줄이기 위해 공장을 중국으로 옮기는 등 끝내 양보하지 않는 걸 보면서, 비정규직 싸움이 개별 사업장의 문제로 풀어갈 수 없다는 것을 뼈저리게 느끼게 됐죠.”

 

현장에서 직접 비정규직 노동자가 되어 조직화를 시도해보았지만 여의치 않았고, 투쟁현장과 일상에서의 괴리감으로 힘들었던 시기를 지나, 어깨너머로 학교를 만드는 일에 참여하게 되면서 교육의 문제가 중요하다는 것을 느끼게 되었다고 한다.

 

“소비는 대자본 유통에 종속돼 있고, 일상은 피폐화돼 있는데 그런 것들을 협동하고 연대해서 공동으로 해결하는 노력이 필요하다는 생각을 하게 됐어요. 학교 또한 노동시장에 종속돼 있죠. 결국, 노동시장의 변화 없이는 학교가 변하지 않는 거죠. 대안학교도 노동시장에서 자유롭지 않은 것은 마찬가지예요. 우리는 불안하고 힘든 노동시장에 몸담고 있고, 거기서 번 돈으로 여기에 보내면서, 단지 제도권 학교 싫으니 대안학교에 보낸다는 생각은 근대화된 학교 틀에서 벗어나지 않다는 문제의식을 느끼게 되었어요. 자식의 삶 문제 즉 일상의 먹거리, 생필품, 생활문화 변화를 함께 만들어야 한다는 거죠.”

 

아이들의 학교가 어른들의 삶을 변화시키다. 

2009년부터 시작했고, 삼각산 재미난 학교 출신 졸업생 부모들이 핵심적인 역할을 하고 있다는 마을활동에 대해 들어보았다.

 

“배움은 관계에서 일어납니다. 가정을 벗어난 아이들이 만나는 사회는 이웃이고 마을이잖아요. 학교가 마을이고 마을이 학교라던 간디 선생님의 실천을 시도하는 거죠. 무엇이 필요한가 생각하다가 사람들이 마음 편하게 믿을 수 있는 밥집 하나쯤은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해서 학부모와 교사, 마을주민들이 돈을 모아 친환경 농산물 마을식당을 만들었죠.

엄마 아빠가 늦은 일이 있으면 ‘마을식당 가서 밥 먹고 있어라.’고 믿고 말할 수 있는 곳. 학교는 일정 정도 합의와 동의가 있어야 보내지만, 마을식당은 문턱이 없잖아요. 먹고 싶은 사람들이 오면 되니까요. 새로운 커뮤니티가 생긴 거죠. 그러다 보니 누구는 마을 카페, 누구는 마을 목공소를 만들고, 나는 음악을 좋아하는데 밴드를 해보자 이러면서 커뮤니티 공간이 생기고 관계가 만들어지더니, 여기서 생긴 또 다른 필요를 해결하기 위해 새로운 공간을 만들고 그 공간이 더 많은 사람에게 확장되면서 공간과 관계의 변증법이 벌어진 거죠.“

 

아이들이 변하려면 결국 어른이 변해야 하니 아이들을 위해 학교를 만들었지만 결국 실제 어른들의 학교가 되었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삼각산 재미난 학교는 마을공동체 활동의 훈련소같이 예비활동가를 길러내는 역할을 하게 되었지만, 뜻밖의 어려움을 겪기도 했다고 한다.

 

“학교가 내부 갈등으로 학생 수가 절반으로 줄었죠. 학교 설립부터 함께 했던 선임 교사들은 상처를 받아서, 또 도의적 책임으로 떠나게 돼요. 교장도 책임을 지고 임기 중에 떠났지요. 마을활동의 핵심인 학교의 뿌리가 흔들리는 상황에서 교장 공모를 했어요. 이런 마을 형 대안학교의 교장은 통합적 리더십이 필요하거든요. 학교 경영도 해야 하고, 교육적 비전도 제시해야 하고, 추상적 수준이 높으면서도 구체적인 역할도 해야 하는 어려운 역할이더라고요. 아무도 안 오죠. 그때 제가 목공소 일하면서, 마을법인의 상임이사였거든요. 몇몇 부모들과 교사들이 마을법인에서 학교 운영을 책임질 수밖에 없으니, 저더러 교장을 하라고 하더군요. 거절할 수가 없었죠. 임기가 4년이니 올해가 마지막이에요.”

 

모든 관계와 공간이 배움의 현장이다. 

한국의 교육이 실제 삶과 앎이 괴리되고 있는데, 학교 안에서 그렇지 않은 순환적인 배움을 만드는 것뿐 아니라 모든 관계와 공간이 배움의 현장이 될 수 있다는 것을 구체적으로 밝혀내고 실천해보고자 노력 중이다.

 

“제가 직접 하는 수업은 목공 수업밖에 없지만 아이들과 관계 맺기, 부모와 파트너쉽을 만들어가는 활동을 하면서 마을과 연결해나가는 코디네이터 역할을 합니다. 그 과정에서 교육이 깊고 넓어지길 바라죠. 서울시의 다양한 지원 사업이 생기면서 상대적으로 더욱 주목받게 되었고, 우리 활동이 강북구 외의 다른 구에도 확장되고 있죠. 마을공동체가 자립적인 경제구조를 만들어가는 것이 사실은 매우 적극적인 반자본적 실천이죠. 대자본과 독립적인 유통구조를 만들기 위해, 더 많은 사람이 일상에서 실질적인 협력과 연대하기 위해 어떻게 해야 할지 구체적인 삶의 문제를 가지고 커뮤니티적인 생각을 하게 되는 것이죠.”

 

정해진 교과서를 쓰지 않는 삼각 산재미난 학교의 일과는 8시 45분에 시작하여 3시에 마친다. 1시 반 이후에는 마을도서관이 되어 동네 아이들 누구나 올 수 있고, 오후 6시까지 아이들이 상주한다고 하니 교사들이 힘들지 않을까 궁금했다.

 

“도서관 사서 교사는 10시에 출근해서 6시까지 근무해요. 실제 아이들을 만나는 생활교사들은 회의나 행사로 그렇지 않은 날도 있지만, 아침 8시에 출근해서 4시에 퇴근해요. 저희가 정해진 교과서를 쓰는 게 아니라서 교사들이 수업을 담당하지 않은 시간에는 계속 교과연구를 해야 해요. 마을의 다양한 공간과 관계들이 교육과정의 살아있는 재료가 되는 것이니까 사람들을 만나려면 활동에 직접 참여도 해야 하죠. 학생마다 다른 관심, 다른 흥미 모두를 교사가 다 채워줄 수는 없겠죠. 그러다 보면 서로 연결해 줘야 하기 때문에 늘 열려있어야 교재연구가 가능하죠. 6년 만근을 하면 10개월간 유급 안식 휴가가 있어요. 급식교사는 6년 만근에 5개월 유급 안식 휴가가 있어요.”

 

교사나 학부모나 문제를 평화적으로 해결해본 경험이 많지 않기 때문에 선생님들이 가장 힘들어하는 시간은 학부모를 만나는 시간이라고 한다.

 

“아이들과는 소통이 잘 되지만 부모들은 다양하잖아요. 갈등이 발생했을 때 서로 생각이 다르면 인정해주고 평화적으로 해결해본 경험이 많지 않죠. 일상적인 협동을 통해서 사회적으로 의미 있는 변화를 만들어 본 경험이 없는 세대들이니까, 정체성이나 가치관을 공동체적으로 모아나가고 공감하는 과정에서 갈등이 있죠. 교사나 학부모들도 문제를 평화적으로 해결해나가는 것이 늘 일상적인 자기 과제고 훈련의 내용이기도 하죠.”

 

대안적 삶에 대한 고민이 대안 교육의 첫 출발

코흘리개에 오줌 지리던 애가 커서 술 사달라고 하면서 여자친구 얘기, 인생 얘기할 때 가장 큰 보람을 느낀다는 이상훈 교장에게 마지막으로 대안학교나 대안 교육에 관심이 있는 분들께 한 말씀 부탁드렸다.

 

“정규직 비정규직 할 것 없이 노동시간이 길잖아요. 고용관계가 불안정하고 늘 삶에 지쳐있죠. 자신의 삶, 자신과 가까운 주변을 차분하게 둘러보는 시간이 필요한데 우리 노동자들은 사람으로서 가장 소중한 이 활동을 할 시간이 없어요. 그래서 보수화되는 거거든요. 피곤하니까 자신의 삶을 생각하지 않아요. 자본가들이 원하는 것이죠. 어른인 당신이 어떤 삶을 살고 싶은지 먼저 스스로 물어보라고 말하고 싶어요. 대안적 삶을 살고 싶은가? 그래야 아이가 대안 교육을 받을 수 있고 대안 교육적 환경을 만들 수 있어요.

비싼 수업료 냈으니 내 자식 잘 키워주세요. 저는 기존대로 따로 살 거예요.” 라는 분들은 이중적인 것이죠. 대안적인 삶을 함께 일굴 것이냐. 그런 식구가, 가족이, 동지가 될 것이냐가 중요하다고 봐요. 대안 교육에 관심이 있다면 내 삶에서 대안은 무엇인지 질문해보고 나는 그렇게 살지 못했지만 아이는 그런 대안적 삶을 살기 바라는 마음으로 자연스럽게 이어졌을 때 구체적으로 생각하는 것이 좋습니다.“

 

[A-Z 다양한 노동이야기] 언젠가 모든 사람에게 솔직한 PD가 되고 싶어요! /2017.2

언젠가 모든 사람에게 솔직한 PD가 되고 싶어요! 

- 방송국 프리랜서 조연출 한별 님 인터뷰


재현 선전위원장

 


방송의 세계는 굉장히 화려하면서서 사회적으로 미치는 힘과 영향력 역시 상당하다. 그러한 이유로 많은 사람이 방송 일을 해보고 싶다는 꿈을 갖는데, 이번 일터가 만난 한별 님도 방송을 연출하는 PD(Producer, 프로듀서)를 꿈꾸며 조연출 일을 하고 있다. 공중파에서 더는 예전처럼 정규직 신입 PD를 뽑지 않고 대부분 열악한 영세 외주 제작사에서 시작해야 하는 어려운 조건이지만, 한별 님은 누구보다 즐겁게 꿈을 향해 한 발자국씩 내디디고 있었다.

 

영세한 외주 제작사에서 시작할 수밖에 없는 환경이다 

“어렸을 때부터 막연하지만, PD가 되고 싶다는 꿈을 꾸다가, 대학 때 전공하면서 습작에 불과하지만, 영상을 제작하면서 이 일에 한 발짝 다가선 것 같아요. 졸업하고서는 국가에서 운영하는 아카데미에 다니면서 일을 더 배웠어요. 그러다 여행 프로그램을 제작하는 외주 회사에 입사하면서 조연출 생활을 시작했죠. 지금은 방송사랑 프리랜서로 계약을 맺고 일하고 있고요.”

 

많은 사람이 방송국 PD가 되려면 언론고시를 준비해서 방송사 공채에 합격하는 것밖에 없다고 생각하지만, 사실은 그렇지 않다고 한다. 


“방송을 꿈꾸고 있는 청년들이 방송사에서 공채로 인력을 많이 뽑지 않다 보니, 외주 제작사로 들어가 방송을 시작하는 경우가 많아요. 워낙 외주 제작사에서 방송을 많이 만들기 때문에 처음부터 외주 제작사에 들어가고 싶어 하는 사람들도 있고요. 저도 처음에는 공채 생각을 안 한 건 아니에요. 무엇보다 안정적이라는 것이 큰 장점이잖아요. 그런데 지금 일을 병행하며 완벽하게 준비하기가 쉽지 않고, 외주 제작사에서도 충분히 배울 기회가 많아서 공채 를 준비하지 않는 것에 대한 아쉬움은 크게 없어요.”

 

한별 님은 지금까지 여행 프로그램을 시작으로 아침 방송을 거쳐 현재 동물 관련 쇼양 (쇼 +교양) 프로그램을 하고 있다고 한다. “


“여행 프로는 제가 처음 입사한 외주 제작사에서 제작하는 프로그램이었는데 10년 차 이상의 경력이 있는 분만 PD를 할 수 있었어요. 평소에 해보고 싶던 프로그램을 하게 된 것이라 아주 즐겁게 일했는데 회사 사정상 제가 ‘입봉’을 할 수가 없는 상황이 다 보니 결국 이직을 해야 했죠. 그래서 입봉이 빠르다는 아침 방송을 하는 제작사에 들어갔어요. 그런데 제작되는 시스템이 제가 생각하던 것과 많이 달랐어요. 솔직히 말하면 못 버텼다고 할 수 있겠죠? (웃음) 그래서 이대로는 방송이라는 자체에 흥미를 잃을 것 같아서 다른 회사로 이직하게 되었죠. 다행히 지금은 재밌게 일하고 있죠. 그래서 조금 돌아가더라도 내가 하고 싶은 프로그램을 해야겠다고 생각해요.”

 

방송국 일은 늘 월화수목금금금이다 

“매일 매일 다른데 촬영하는 날은 하루 종일 촬영만 해요. 얼마 전에 촬영 팀이 (PD, 카메라 감독, 조연 출) 지방으로 1박 2일 출장 다녀왔는데, 아침 6시 반 에 출발했어요. 전 그 전날 미리 장비 챙기고, 숙직 실에서 자는 거죠. 그리고 새벽에 출발해서 지방에 도착하자마자 종일 촬영했죠. 밥은 밤 10시에 촬영 마치고 먹거나, 잠깐의 휴식 시간이 주어질 때 먹곤 해요.

촬영을 다 마치면 숙소 들어와서 종일 촬영한 메모리카드 파일을 컴퓨터나 외장하드에 백업해요. 그리고 메모리카드 포맷하고, 다음날 다시 촬영하고 백업하는 걸 반복하죠. 사실 촬영하고 돌아오면 이제부터 제 일이 시작되는 거나 마찬가지죠. 백업한 파일들을 영상으로 작업할 수 있도록 변환하는데 이게 시간과의 싸움이거든요. 그리고 같은 시간에 촬영한 부분을 맞추는 작업인 ‘싱크 맞추기’를 시작해요. 가끔 박수를 치거나 슬레이트를 치는 게 다 이것 때문인 거죠. 그리고 이제 PD님이 편집을 시작하고, 편집이 끝나면 작가님들이 그 영상을 가지고 자막과 내레이션용 원고를 쓰기 시작하죠. 그 뒤에 자막과 더빙, CG 등 모든 후반작업이 끝나면 방송 전에 심의위원이 최종 검토하고 방송이 나가게 되요.“

 

한별님이 하는 방송은 총 5팀이 팀당 4명 (PD, 메인작가, 서브작가, 조연출)씩 구성해서 5주에 1번 방송을 담당한다고 한다. 이 이야기를 듣고 꽤 사람이 많다는 생각이 들었는데 완전 착각이었다.

 

“첫째 주는 기획회의를 하고 아이템을 찾아요. 그럼 서브 작가님이 몇 백통 전화 할 걸요. 둘째 주에 는 그렇게 섭외가 된 사례자 가정들에 답사를 가게 되죠. 가서 방송이 가능하겠다 싶으면 촬영을 시작 하죠. 이렇게 촬영을 시작했다가도 중간에 파토 나게 되는 경우도 있어요. 다행히 촬영이 끝나면 메모 리카드를 백업하고 싱크를 맞춰요. 셋째 주는 PD님 이 편집을 시작하시는데, 이때 추가로 촬영을 나가기도 해요. 그리고 넷째 주에는 저는 서브 작가님과 예고편을 만들고, 피디님과 작가님이 편집하신 영상으로 전체 팀 시사를 합니다. 이때 나온 의견들로 수정과 보완을 해서 가 편집본을 만드는 거죠. 다섯 째 주는 가 편집 끝내놓고 자막 넣고 최종 수정해서 방송 나가는 거죠. 그러면 다시 첫째 주로 돌아가죠. 인터뷰 하는 지금이 넷째 주인데 이틀 동안 밤새서 예고편 만들고, 다섯째 주 넘어가기 전에 잠깐 틈이 있는 날이에요.”

 

즐거운 방송일이지만 늘 열악한 환경이다

“주요 방송국에서 계약직들도 그렇지만 특히 외주 제작사 쪽은 정말 열악해요. 대개 조연출 처음 시작 할 때 월급을 80~120만 원에서 시작해요. 계약서도 거의 안 쓰고 4대 보험도 안 들죠. 물론 외주도 정규직으로 채용하는 곳이 있긴 하지만 드물어요. 초봉도 많아 봐야 150만 원 정도일 거예요. 일하는 시간에 비례하면 최저시급도 안 되는 수준이죠. 예전에 선배 PD님께서 20년 전 조연출 할 때 100만 원 받았다고 하셨는데, 제가 외주에 있을 때 120만 원 정도 받았으니 20년 동안 만원 씩 오른 셈이네요." 


급여만 열악한 게 아니라 제대로 쉬는 것도 어려웠다. 한별님이 1년 넘게 일하면서 제대로 쉬어본 날이 작년 올림픽 때 방송이 쉬면서 이례적으로 있었다고 한다. 만일 정말 쉬고 싶으면 일을 그만두고 쉴 수 있다고 말했다.

 

“방송사에서 1년 동안 얼마나 일하고 있는지 조사를 해서 결과를 발표했는데 저희 팀의 조연출들이 일하는 시간이 대략 3,600시간 정도 나왔어요. 저희 팀은 촬영도 많아서 매일 밤새고 주말도 없거든 요. 이렇다보니 친구들은 한 달에 한두 번 쉴 때 만 나는데, 그것도 언제 쉴지 모르니까 ‘너희들 되는 시간에 만나고 난 일찍 퇴근 하면 갈게’ 그렇게 해서 만나요. 친구들을 만나도 늦은 시간까지 술 마시기도 그래요. 다음날 아침에 또 일찍 촬영하고 일하고 그래야 하니까요. 그래서 집에 가서 가족들과 술 한 잔 하거나 쉬는 편이죠. 사실 아빠는 제가 매일 늦게 까지 일하고 집에 자주 안 들어와서 이 직종에 대해 좋지 않게 생각하세요. 그래도 제가 원해서 하는 일이니까 그러려니 하시는 거죠.”


지난 1월 7일 OECD(경제개발협력기구)에서 발표한 국가별 1인당 연간 노동시간 결과 한국이 2,113시간으로 멕시코, 코스타리카에 이어 3위를 기록했고, 독일은 평균 1,371시간으로 노동시간이 가장 짧았다. 그런데 방송 업계는 3,600시간이라니 독일인 연간 2명이 일하는 시간을 방송 업계 노동자 1명이 다 해치운 거다. 아무리 즐거운 일이지만 늘 월화수목금금금 같은 일상에 박봉이다 보니 일자리는 남아돈다고 한다. 미디어잡 홈페이지나 1,000명 정도 모여 있는 카카오톡 단체방에서 PD(조연출)를 구하는 공고가 매일 끊이지 않는 것이다. 

 

그렇지만 더 즐겁게 더 잘하고 싶은 마음이 든다.

“힘들 때도 있지만, 제가 하고 싶은 일을 한다는 점에서 매일이 즐거워요. 특히 제가 처음 이 일을 시작 하고 스크롤 (방송 제작한 사람들 이름이 자막으로 나오는 것에 제 이름 올라갈 때 정말 말할 수 없을 정도로 기뻤죠. 최근에는 스크롤 올라가는 것에도 무뎌지긴 했지만요. 가끔 그때 기뻐했던 기분을 생각하곤 해요. 요즈음에는 소소하지만 제가 만든 예고편 영상의 반응이 좋을 때 뿌듯하죠. 반대로 힘들 었던 점까진 아니고 하나의 에피소드가 있는데, 최근에 저보다 더 큰 개한테 바짓가랑이를 물렸어요. 사람을 물어서 문제가 된 개였는데 (웃음). 훈련하느라 줄을 풀어 놨더니 촬영하던 저를 문 거예요. 저는 촬영도 계속해야 하고, 으악! 하고 반응하면 더 세게 앙 물을 것 같아서 가만히 있었어요. 다행이 멍만 살짝 들고 크게 물리지 않아서 다행이었는데, 정말 무서웠어요.”


모두에게 솔직한 PD가 되고 싶다

"방송이라는 것이 어떤 프로그램을 시청하는 시청 자들에게 제작자의 의도를 여과 없이 보여주는 거 잖아요. 그럼으로 다수의 사람들에게 피드백도 받을 수 있고요. 그런 점에서 매력이 있다고 생각했어요. 그래서 내 생각을 가장 솔직하게 담을 수 있는 다큐멘터리를 만드는 PD가 되겠다고 생각하고요. 그리고 솔직히 지금 한국이 언론의 자유를 보장하 지 못하잖아요. 지금이 5공화국 때보다 더 심한 것 같은데 이렇게 언론탄압이 심하다보니 방송에 대한 사람들의 불신도 하늘을 찌르고 있죠. 그렇지만 요즘 시국처럼 많은 사람들이 세상일에 끊임없이 관심을 갖는다면 조금은 더디더라도 언론의 자유도, 국민의 알 권리도 모두 충족할 수 있는 방송들이 나오지 않을까요. 모두가 함께 풀어나가야 할 과제라고 생각해요."

 

언젠가는 조금 더 나은 환경을 만드는데도 노력해야 할 것 같다

“한낱 조연출이라 뭘 말한다고 달라지지 않을 수도 있지만 그래도 한 마디 한다면 예전에 한 방송 프로 그램에서 최저임금도 못 받고 사는 청년들 취재를 한 걸 봤어요. 그런데 그 프로그램을 제작하는 막내들조차 최저임금도 받지 못하고 있었죠. 솔직히 지 금은 제가 뭘 바꿀 수 있진 않지만, 그래도 제가 조 금 더 성장해서 내 목소리를 낼 수 있을 즈음에는, 내 뒤를 이을 후배들은 조금이라도 나은 환경에서 꿈을 펼쳐가라고 말할 수 있게 노력해 봐야하지 않을까 싶어요.”

 

 

 

 

[A-Z 다양한 노동이야기] 행복한 보육이 시작되는 길목 /2017.1

행복한 보육이 시작되는 길목

 


정경희 선전위원



아이 봐준 공은 없다는 옛말이 있다. 아이를 돌보는 일이 그만큼 쉽지 않음을 단적으로 드러내는 말이다. 13년째 어린이집에서 아이 돌보는 일을 하고 계시는 이수현 선생님을 뵙고 진솔한 얘기를 들었다.

 

초보 교사도 베테랑 관리원장도 겪어야 하는 하루일과

이수현 선생님은 학교를 졸업할 때까지도 주변에서 아이를 접할 기회가 없어서 아이를 돌보는 일에 대한 자신감이 없었지만, 우연한 기회에 어린이집 초보 교사 생활을 시작하셨다고 한다.

 

교과서에서는 아이의 행동이나 발달이 이렇게 진행될 거라고 배웠지만, 아이들은 한 명 한 명이 모두 다르거든요. 처음엔 벽에 부딪히는 느낌이었어요. 어디로 튈지 모르는 공과 같은 아이에게 적응하는 기간이 필요했고, 예전 같지 않아서 부모님께도 맞춰야 하는 게 힘들었죠.”

 

지금은 관리원장을 맡고 계실 정도로 베테랑이 되셔서 가급적이면 선생님들이 8시간 근무를 하도록 노력하고 있지만 일이 생기면 그렇지 못할 때도 있다고 한다. 보육 교사의 하루는 어떤지 들어보았다.

 

"보통 아침 8시에 출근해서 청소부터해요. 그러다 아이들이 오기 시작하면 교실에서 아이들과 하루 일상이 시작되죠. 950분부터 아이들 손 씻기고 간식 먹이고 나면 첫 수업을 시작해요. 두 시간 수업을 마치면 아이들 점심시간에 선생님들도 같이 드세요. 점심시간은 굉장히 스피드하게 갈 수밖에 없는 게 눈으로는 아이들 보면서 밥 먹고, 다 먹으면 아이들 양치를 시켜주고, 먹은 자리 뒷정리까지 하셔야 하기 때문에 따로 점심 식사나 티타임은 전혀 가질 수가 없죠.”

 

정신없이 점심시간을 보내고 나면 곧바로 오후 일과가 시작된다고 한다.

 

오후일과는 연령별로 좀 달라요. 4세까지는 보통 낮잠을 자기 때문에 낮잠시간에 일하세요. 5세부터는 바깥활동까지 3시에 정규수업이 끝나면 종일반 친구들은 남아서 통합수업을 하죠. 정규수업을 마친 아이들과 함께 오후 간식을 먹고 정리하고 차량 한번 갔다 오시면 4시 반 정도죠. 남아있는 친구들 을 챙기기도 하면서 선생님들이 돌아가며 다음 날 수업준비, 일지 쓰기, 부모님 문자나 전화가 온 것 대응하고 나면 6시에요. 그럼 청소하고 6시 반에서 7시에 퇴근하는 거예요.”

 

힘들고 빠듯한 하루 일과중 가장 보람을 느끼는 때가 언제인지 여쭤보았다.

 

아이들이 울지 않고 집에 돌아갔을 때죠. 아이들이 돌아갈 때 찡그리거나 아프고 가면 그게 다음 날까지 선생님 마음에 남아있어요. 엄마가 오셨을 때 엄마 오늘 재미있었어.’ 하고 가는 애들, 가기 전에 안아주는 애들이 있을 때 좋죠. 하루를 그 아이가 잘 보냈다는 뜻이니까요.“

 

점심시간은 전쟁을 치르는 시간

언론에 나오는 아동학대 사건들 중 식사와 관련된 내용이 종종 등장하는 이유가 1시간이 안 되는 시간에 이 많은 일을 해야 하는 업무 부담문제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서로 예민해지는 건 사실이에요. 먹기 싫어하는 아이는 밥을 던지기도 하니까요. 어머니들이 편식하지 않게 잘 먹이기를 원하니까 선생님들이 억지로 먹인 경우도 있지 않나 싶어요. 예전에는 원장님이 잔반 많이 나오는 반에는 지적하기도 했거든요. 그런데 요즘은 오히려 어머니들이 먹기 싫어하면 줄여 달라 하시고, 저희도 싫어하는 반찬은 적게, 좋아하는 반찬은 많이 주며 유도를 해서 먹이려 노력하죠.”

 

점심시간이 선생님들에게는 전쟁을 치르는 시간이라고 한다. 그래서 소화제를 드셔야 하는 선생님들도 있다고 하는데 편안한 마음으로 점심을 드실 현실적인 방법은 정말 없는 것인지 궁금했다.

 

점심시간을 개선하는 방법은 경기도에서 평가인증을 통과했을 경우 파견해주는 4시간 보조교사제를 활용하는 거죠. 그런데 순번을 너무 많이 대기해야 해요. 나이가 어린 반의 경우 누가 한 명을 먹여주기만 해도 도움이 많이 되니, 보조교사가 절실히 필요해요. 그러면 선생님도 좀 더 여유 있게 식사를 하실 수 있고 아이에게도 더 신경을 쓰고 돌아볼 수가 있겠죠.”

 

탄력보육은 아이들이나 보육 교사 모두에게 독

보육 교사 1인당 만 0세는 3, 1세는 5, 2세는 7명 정원이나 탄력보육으로 인원을 초과할 수 있는데 만 1세는 6명까지, 2세는 9명까지 볼 수 있다고 한다.

 

“2015년에 초과 보육을 안 하겠다고 했었는데 원장님들이 강하게 항의하고 난 다음에 2년만 유예를 주겠다고 한 거죠. 초과한 2명에 대한 정부의 지원금은 절반만 나와요. 그래도 원장님들한테는 그것이 크니 대부분 다 하시죠. 교사 입장에서는 5월 초까지 적응하는 시기에 아이 한두 명 더 느는 것이 힘드니 너무 하신 거죠. 정부는 초과보육에 대한 지원금을 차라리 간식비나 난방비, 교재 도구를 늘려주는 것으로 해 줬으면 좋겠어요. 아이를 늘리는 건 너무 안 좋은 방향이에요.”

 

CCTV와 맞춤형 보육의 그늘

아동학대가 사회적 주목을 받으면서 대안으로 모든 어린이집에 CCTV를 달았다. 그런데 일선에서 이것으로 인한 단점도 만만치 않아 보였다.

 

어머니들 입장에서는 ‘CCTV를 봐야 하는 거 아니에요?’ 하시는데, 당연히 보여드려도 문제가 없는데도 불구하고 무심코 하시는 말씀이 힘들어요. 요즘에는 애가 한두 명이니까 우리 애는 절대 안 그래요. 선생님이 잘못 보셨어요.’ ‘우는 데는 이유가 있을 거예요.’ ‘선생님이 안 보신 것 아니에요?’ 교사를 믿지 못하고 심하게 말씀하시면 속상하죠. 저희가 본다고 보지만 아이들은 눈 깜짝할 사이에 문제가생기거든요.”

 

박근혜 정부 들어서 오후 3시 이후에는 필요한 아이들에 대해서 맞춤형 보육을 하겠다고 했다. 일선 현장에 얼마나 맞춰진 정책인지 여쭤 보았다.

 

원의 입장에서 싫죠. 매번 클릭해서 올리고, 등원일지도 써야 하고, 맞춤형 프로그램도 따로 짜야 하는데 실질적으로 그 프로그램을 다 돌릴 수 있는 것도 아니에요. 30분 있다 가는 아이도 있고, 한 시간 있다가 가는 아이도 있는데 그 아이마다 다 맞춰서 짜줄 수가 없어요. 엄마들 입장에서는 연장할 때마다 일일이 선생님들께 얘기해야 하니까 눈치 아닌 눈치도 보시게 되고, 또 일찍 가는 아이의 엄마는 원의 수입을 줄게 할까 봐 미안해하시기도 하고, 연장되는 부분에 대해서는 바우처로 따로 결제를 하셔야 하는 불편함이 있어요. 누구를 위한 정책인지 모르겠어요.”

 

정신은 안정제로 몸은 깁스로 버티는데 겨우 기본급 받지요

별난 학부모들뿐 아니라 재원생 받는 시기, 입학생 받는 시기에는 특히 선생님들의 스트레스가 심하다. 이석증을 앓은 적도 있는데 불안해서 안정제를 갖다 놓기도 한단다.

 

한 선생님은 자기가 불안하고 스트레스 받는 이유를 모르겠다고 해서 병원에 다녀오셨어요. 그런데 그 당시가 선생님 반 아이 중 많이 물리고, 때리는 아이의 어머니와 트러블이 굉장히 심했던 시기였든요. 일요일 저녁에는 심장이 쿵쾅거리고 금요일 저녁에는 안정기에 접어드는 패턴을 보이다가 결국 아이가 원을 그만두고 나서야 선생님이 안정을 찾는 경우도 있었어요.”

 

2주 이상 입원치료를 할 정도가 돼야 병가가 가능하고, 그렇지 않을 경우 병원에 가는 시간 내기도 힘든 조건이라고 한다. 일하다 다쳐도 산재는 엄두도 못 내는 상황에 대해 들어보았다.

 

어린 반일수록 스킨십도 많이 해주고 안아주고 달래줘야 하니 허리통증이 제일 많고, , 손가락 인대가 안 좋으세요. 인대가 찢어져서 팔에 반 깁스하고 일하시는 선생님도 계시는데 정형외과를 안 가본 선생님이 없을 정도예요. 산재에 대해서 저희끼리는 얘기해요. 그런데 산재를 요구했을 때 해 주시는 원장님도 안 계실뿐더러 인정받은 사례도 없으니 답답하죠.“

 

4대 보험을 떼면 기본급 1,180,950. 거기에 경기도에서 평가인증을 통과하면 나오는 처우개선비 50만 원이 대부분 보육 교사의 급여라고 한다. 근무시간이나 노동 강도를 고려하면 턱없이 부족한 급여라는 생각이 들었다.

 

행복한 보육이 시작되는 길목에서 필요한 것들

어머니들이 아이를 원에 보낸다고 했을 때는 선생님을 좀 믿어주시면 좋겠어요. 선생님들의 말을 한 번이라도 귀 기울여 들어주셨으면 좋겠어요. 저희도 인간이기에 스트레스 주면 받거든요. 인격을 지켜주셨으면 해요. 원장님들도 마찬가지세요. 식비많이 나왔다고 싫은 소리하고, 커피나 차도 안 사주시는 분들 계세요. 자신의 이권보다 교사와 아이들을 먼저 생각해 주시면 좋겠어요. 정부에서는 원장의 이권에 영향 받지 않는 보육이 이루어지도록 보육 교사에게 인력 지원이라든지, 교육의 기회를 직접 지원하여 보육의 질을 높였으면 해요.”

 

인터뷰를 마치고 돌아오는 길. 내 아이를 맡아주셨던 선생님께서도 이렇게 힘들게 일하셨다고 생각하니 마음이 착잡해지는 건 어쩔 수 없었다. 양육서에는 흔히 엄마가 행복해야 아이도 행복하다고 말한다. 그렇다면 보육 받는 아이가 행복하려면 누가 먼저 행복해져야 하겠는가? 이제 더는 보육 교사의 희생에 기대는 보육이 아닌 건강하고 행복한 보육을 위해 보육 교사 삶의 질이 필연적으로 개선돼야 한다는 것을 느낄 수 있는 시간이었다

 

 

[A-Z 다양한 노동이야기] 느긋하게 다니는 버스를 꿈꾸며 /2016.12

느긋하게 다니는 버스를 꿈꾸며

- 시내버스 운전사 엄도영님 인터뷰




정경희 선전위원


버스가 왜 이렇게 다니지?

시내버스는 쉽게 이용할 수 있는 대중교통 수단이다. 버스를 타면 여러 풍경도 보고, 상념에도 잠기고, 가끔 졸아도 되는 여유를 누린다. 하지만 직접 운전하시는 분은 어떠실지. 주유소 일을 하시다 2009년도부터 평택에서 7년째 시내버스를 운전하시는 엄도영 님을 만났다.


“입사해서 1년 정도 일을 하는 동안 ‘버스가 왜 이렇게 다니지?’ 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운전을 해보니까 교통법규를 위반하면서 빨리 달려야 하더라고요. 노선을 혼자 운행하는 게 아니어서 배차 간격도 고려해야 하거든요. 배차 시간도 맞추고 너무 짧게 보장된 휴식시간을 늘리기 위해 그렇게 운전하는 거죠. 그런데 이렇게 달리는게 저한테는 힘들더라고요.”


당시 한국노동조합총연맹 소속 전국 자동차 노동조합이 있었는데 조합원들이 노조에 배차시간을 운전기사의 근무환경을 고려해서 조정하라는 요구를 누누이 해왔다고 한다. 그러나 노조는 전혀 반응이 없었고, 오히려 사고가 나서 그만두는 동료들을 계속 봐왔다고 한다.


“사망 사고가 3년에 2건 정도 있었어요. 이렇게 하다가는 내가 죽겠다는 생각이 들었죠. 우리 애들도 학생이고 가족들도 버스를 타는데 이런 운전은 아닌 것 같다고 생각하고 있었는데, 선배들이 복수노조 만들자고 제안해 왔어요. 그래서 ‘신호위반 하기 싫어서 노조를 탈퇴한다.’하고 민주노조에 가입했어요. 당시 선배들은 과속, 신호위반, 임금 때문만은 아니었고 18년 동안 해온 조합장을 바꿔보자는 생각도 있었죠.”


강경한 민주노조 조합원은 일당백

회사를 그만둘 때 조합원들이 월급에서 20만 원씩 모아서 주는 전별금을 포기하면서 236명 중 13명으로 시작하였다고 한다. 만만치 않았을 민주노조 설립 무용담을 잠깐 들었다.


“처음에 너무 힘들었죠. 한국노총 조합원들은 사고 나면 무마되는데 민주노조 조합원들은 그렇지 않았죠. 제 운전 습관대로 교통법규를 지키며 다녔더니 한 달 반 정도는 아침만 먹고 점심 저녁을 못 먹으며 일했어요. 저쪽 노조에서 회유해서 한 명을 빼 갔어요. 그래서 12명이 1년 7개월 정도 버텼죠. 한국노총 노조 위원장 선거가 있었고 우리 측과 연대한 후보가 당선되었죠. 그런데 그쪽에서 우리 조합원 중 사고로 해고된 분이 계셨는데 복직시켜 줄 테니 민주노조 없애라 하더라고요. 민주노조 안에는 사측에 보고하는 불량 조합원도 있었지만, 어처구니가 없었죠. 내부논의를 한 끝에 두 명이 남고 나머지는 한국노총으로 가는 것으로 결론을 냈어요. 결국, 해고자 복직은 안 시켜줬죠.”


그런데 마지막 남은 둘 중 한 분이 지난 5월에 회사를 사직하셔서 지금은 홀로 민주노조를 지키고 계신다고 한다. 머지않아 의기투합하실 분 만나실 것 같다고 한다. 그때까지 잘 이겨내시리라 믿습니다.


“강경한 민주노조의 힘은 일당백이에요. 두 명이 있어도 꿀릴 게 없더라고요. 그런데 지금은 힘들어요. 활동시간도 보장 못 받고, 쉬는 시간에 조합비로 다니죠. 둘이 있을 때는 같이 나눌 수 있었는데 혼자니까 아무래도 활동영역이 좀 좁아졌죠. 다행히 얼마 전 10년 전에 잃어버렸던 친구를 찾은 듯한 사람을 만났어요. 기뻐서 어제는 잠이 잘 오더라고요.”


줄어드는 회사수입을 휴식시간을 줄여서 만회?

매년 자가용 신규 등록 대수가 늘어나면 승객은 줄어드니까 버스회사는 수입이 줄지만, 시청에 운행 신고한 6회전을 운행해야 시에서 보조금을 받으니 배차시간을 무리하게 짜고 이것은 짧은 휴식시간으로 운전기사들이 고스란히 감내한다고 한다.


“1회전을 갔다 와서 대기실에서 쉬고 있으면 사무실 배차하는 사람이 와서 앞 차 나갔으니 나가라고 해요. 그러면 한국노총 조합원들은 대부분 나가요. 저희는 안 나갔죠. 한 노선을 1회 운행하면 시간이 2시간 50분에서 3시간 걸리는데 최소 15분은 쉬어야 하지 않냐고. 시청에도 요구하고 시민단체에도 알리고 해서 많이 바뀌었죠. 지금은 운행시간이 3시간 10분으로, 휴식시간은 30~40분으로 늘어났어요.”


휴게실은 식당과 연결된 장소에 고작 짧은 평상이 있었고 식당에는 쥐가 다녔다고 한다. 그런데 민주노조에서 지적하고 요구하니 많이 개선되었다고 한다.


“컨테이너 박스 한군데 금연실은 누워서 쉴 수 있게 대형 TV를 만들었고, 다른 곳은 탁자에 깔끔하게 유리도 깔아놨어요. 영업소 식당에서 한 분이 식중독에 걸린 적이 있었죠. 시청 식당 위생 분야에 고발했더니 일주일 뒤에 바닥 새로 다 깔아주고 페인트 작업 해주고 주기적으로 점검도 하겠다는 약속을 받았죠.”


문제를 덮으려다 늘어나는 안전사고

차에 이상이 발생하면 정비사가 부족해서 바로 정비 안 되기가 일수라고 한다. 이럴 경우 예비 차를 운전해야 하는데 상태가 워낙 불량해서 상태 안 좋은 예비 차를 가지고 나가나 문제가 있는 자기 차를 가지고 나가나, 둘 중 하나는 사고의 위험을 두고 운전하게 된다고 한다.


“운행 중 시장에서 타이어가 터지는 사고가 난 적이 있어요. 그 전전날 타이어 마모가 심해서 교체해달라고 했는데 타이어가 없다고 안 바꿔줬어요. 알고 보니 회사에서 결제를 안 해줬다더군요. 이 사고로 뒷바퀴 올라오는 부분에 앉았던 여성승객이 다리를 다쳤고, 철판이 뚫리면서 서 있던 승객들에게 파편이 튀어서 네 명이 병원에 실려 갔어요. 이 사건을 계기로 민주노조에서 문제를 제기했더니 지금은 타이어는 잘 교환을 해 주고 있어요. 문제를 해결하려 하지 않고 문제를 제기하면 너만 조용히 하면 된다는 식이니 사고예방이 더 안 되는 거죠.”


아파도 찍히고 리스트 올라가니 참아

1회전 운전하는데 보통 3시간 정도 긴장된 상태로 앉아계셔야 하니 근골격계 질환이 많으실 것 같다. 아프면 어떻게 해결하시는지도 궁금했다.


“가장 힘든 건 무릎, 허리, 어깨, 목 아픈 사람이 많아요. 에어쿠션이 중요한데 10대 중 6대는 불량이에요. 방지 턱을 넘어갈 때 허리가 전기 통한 듯 찡한 기분이 들 때가 있거든요. 그럴 때 디스크 걸리지 않을까 걱정돼요. 그런데 대부분 산재 신청하면 찍히고 리스트에 올라가니까 조용히 다닌다는 생각이죠. 산재 신청은 최근에 그만둔 동지가 교통사고 나서 했었어요. 저도 목 디스크 초기로 산재신청 때문에 입원했는데 병원에서 안 좋아하더라고요. 그래서 결국은 산재 신청 못 했죠. 대부분 개인적으로 치료하고 있죠.”


이 밖에도 위장병, 치질, 기관지염 등 여러 질환으로 불편함을 호소하시는 분들도 계신다고 한다.


“새벽 5시부터 아침 식사를 주는데 이른 순번에 나온 기사들이 먹어요. 점심은 9시 반부터 1시나 2시까지, 저녁은 5시부터 8시까지고. 아침 6시에 아침을 먹은 사람이 한 번 돌고 오면 9시예요. 그때 점심을 먹지 않고 한 번 더 돌고 나면 점심을 놓치게 되니 아침 먹은 지 3시간 만에 점심을 먹어야 해요. 식사를 불규칙하게 먹으니 위장병도 심한 편이죠. 치질도 심해요. 버스 의자가 비닐로 돼 있어 추울 때는 얼음판이죠. 시트에 보통 열선이 들어가 있는데 돈을 아끼려고 옵션에서 그걸 빼요. 환풍기가 고장 난 상태에서 많이 다녀요. 특히 여름에 에어컨 많이 켜는데 겉에만 청소를 하고 필터는 청소를 안 해줘요. 타이어에서 나오는 먼지나 미세먼지가 심하니 마스크를 쓰고 다니기도 하죠. 밤에는 자동차 브레이크 등이 요즘 LED로 나와서 눈이 너무 부셔요. 그래서 시각적으로 많이 피곤하죠.”


서로 존중하며 존대어를 썼으면

일하다 보면 승객들에게 받는 스트레스도 만만치 않을 것 같다. 본인 실수로 넘어져도 버스 안에서 다치면 인사사고로 처리한다니 취객들은 각별히 주의해야 할 것 같다. 진상 승객들에게 겪은 에피소드 하나 소개할까 한다.


“춥고 더운 날씨에 연세 드신 분들 오래 기다리시면 힘든 것 알아요. 그런데 타실 때 버스요금 동전을 던져요. 그럼 튀어서 요금함에 다 안 들어가도 그냥 들어가시라고 했는데 자리에 앉으셨어도 계속 투덜대고 거기에다 옆에 계신 분들도 거들면서 버스가 늦게 왔다고 운전기사에게 막말했을 때 좀 서운하더라고요.”


버스 완전공영제로 시민 안전과 버스노동자 안전 함께 만들어 가요

서울시는 버스 준공영제 이후 교대근무도 하고, 근무시간이나 급여가 타 지역에 비해 개선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시민의 발이 되어주는 중요한 역할에 비해 근무조건이나 처우는 어떤지 또 어떤 방향으로 개선되어야 하는지 들었다.


“서울은 준공영제로 저희랑 월급이 30만 원 정도 차이가 나는 것으로 알고 있어요. 한 달에 13개 만근을 했을 경우 세금 떼고 213만 원정도예요. 1년이 지나면 근속수당 만원이 더 붙는 것 말고는 없어요. 월급이 적으니 일을 더 하고 싶은 사람이 있을 것 아니에요. 하루 근무시간이 16~18시간이고 다음 날 자기 쉬어야 하는데 특근을 하면 다음 날은 자기 순번이니 또 근무하면 3일을 연속으로 일하는 거죠. 그러면 그 운전기사가 제정신으로 도로를 다닐 수 있겠어요? 꼭 돈벌이가 아니더라도 실질적으로 버스가 좋아서 하는 사람들도 있어요. 좀 더 느긋하게 다니는 버스, 출퇴근하는 사람들을 같은 공간에서 많이 만나고 그 사람들의 안전을 책임져야 하니까 나름대로 긍지가 있죠."


소신 있게 일하시는 분들이 자기 삶을 보장받을 수 있는 근무환경은 시민의 안전을 위해서 무엇보다 중요하다는 것을 다시 한번 느낀다. 엄도영 님의 바람처럼 좀 더 느긋하게 다니는 안전한 버스는 버스를 운영하는 주체가 어떻게 하느냐가 중요하고 이것은 버스 완전공영제로 가까이 갈 수 있지 않을까 싶다.



[A-Z 다양한 노동이야기] 꿈을 좇아서 사는 게 행복해요 /2016.11

꿈을 좇아서 사는 게 행복해요

- 게임회사 프로그래머 김현진 님 인터뷰

 


정경희 선전위원



20167월 한국콘텐츠진흥원이 전국의 만 10~65세 시민 3,000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를 바탕으로 한 2016 게임 이용자 실태보고서를 발표했다. 이 보고서에 따르면 20157월부터 최근까지 67.9%가 게임 (온라인, 모바일, 패키지,콘솔 등)을 이용한 것으로 나타났다. 이만큼 많은 사람들에게 게임은 굉장히 친숙하고 밀접한 취미 생활이 되었다. 게임을 어떤 방식으로 하는지에 대해서는 모바일 게임이 60.2%로 가장 높게 나타났고 그 다음으로 온라인 게임(38.4%)이 뒤를 이었다. 

스마트 기기의 보급과 함께 기존 온라인 게임이 대세던 게임 시장에서 판도가 모바일 게임으로 확 바뀌면서 이쪽 시장은 이른바 '기회의 땅'이라고 불렸다. 소규모 게임 업체들이 적은 자본금이지만 톡톡 튀는 게임 기획으로 성공신화를 써 온 것이다. 그러나 모바일 게임 시장이 커지고 경쟁이 심화되면서 이제 더 이상 소규모 업체들이 성공하기란 쉽지 않게 되었다. 충분한 자본력은 물론 사람들이 많이 쓰는 메신저 플랫폼을 발판 삼아야 게임이 성공할 확률이 높아지게 되었다.

이번 A-Z가 만난 게임회사 프로그래머 김현진(가명) 님 역시 2012년부터 이 일을 시작해서, 올해 3월 지금의 회사로 왔다. 현재 이곳은 스타트업 회사(신생회사)로 내년 첫 모바일 게임 런칭을 목표로 분주하게 움직이고 있다.

 

게임을 좋아하다 보니 직업이 되었다

원래 게임을 엄청 했죠. 지금도 많이 하고요. 어렸을 때부터 오락실 다니고, 중고등학교 때 한창 PC방이 생기면서 주구장창 게임을 하고 다녔어요. 그러다 제가 집안 사정으로 대학에 못가고 스무살 때 1년을 놀다가 프로그램 쪽으로 배워둔 게 있었는데 학점은행제를 통해 본격적으로 배우면서 이쪽 일을 해야지 확신이 들었죠. 그리곤 군대 갔다 와서 바로 취업을 했죠.”


취미 생활을 직업으로 하다 보니 아무래도 업무와 게임을 즐기는 것이 구분하기 쉽지 않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사람마다 다 다른 것 같은데 가급적 게임은 즐기려고만 해요. 물론 직업이 모바일 게임을 만드는 거니까 신규 게임이 나와서 시장에서 잘 나간다고 하면다 해보죠. 저희가 만들려는 게임이랑 장르가 비슷한 게 나왔다 싶으면 그것도 해보고요. 게임을 하면서 이걸 어떻게 만들었을까, 생각을 하게 되죠. 그나마 다행인건 프로그래머들을 비하하는 건 아닌데, 논리적인 코딩을 짜야하는 사람들이라 그런지 대체로 성향이 단순하다고 해야 하나 그래서 일과 게임도 구분을 잘 하는 것 같아요. 그런데 기획자들은 수많은 게임을 보면서 왜 이렇게 만들었을까, 잘 안됐으면 뭐 때문에 안됐을까 생각을 많이 해야 하고 그러다보니 두통을 달고 사는 것 같아요.”

 

게임회사의 하루

아침에 10시까지 출근해요. 이점이 마음에 들죠. 집에서 판교까지 한 시간이 걸려서 8시 반쯤 나서서 가요. 회사 도착하면 판교 근처에 커피 마실 때가 많아요. 그래서 직원 분들과 오전에 커피 마시면서 잡담도 하고 일 얘기도 상의해요. 그리고 회사 들어오면 각자 맡은 일들을 하죠. 대개 게임회사는 기획, 프로그램, 그래픽 크게 세 파트로 나눠져 있어요.

 

"제가 하는 프로그램 일은, 그래픽 팀이 게임 전체 기획에 맞게 캐릭터를 만들면, 그 캐릭터를 실제 움직이게 하는 일을 해요. 쉽게 말해서 캐릭터에 생명을 불어넣는 일이라고 보면 되죠. 아 그리고 제가 프로그램 일도 하면서 클라이언트 파트장도 맡고 있어요. 클라이언트라면 실질적으로 게임을 진행하는 로직을 만드는 일을 하는데 거기 책임자인거죠. 제 일뿐만 아니라 파트원들 능력이나 업무 속도에 따라 일을 분배해줘야 하고, 잘하고 있는지 체크해야 하고 그런 게 일을 하는 것보다 더 힘든 것 같아요.“

 

게임회사는 야근과 과로의 상징과도 같은데 실상은 어떠할까?

아무래도 대체로 야근을 하죠. 그렇다고 일이 없는데 눈치를 봐야 해서 야근하고 그런 문화는 없어요. 물론 회사마다 조금씩 다르겠지만요. 게임 런칭을 앞두고 있는 지금 같은 시기는 항상 야근이죠. 런칭하면 수입과 직결된 문제라 버그도 잡아야하니까요. 특히 서버 프로그램 관리하는 분은 게임을 런칭하면 초반엔 거의 집에 못 간다고 보면 돼요. 몇 분이서 교대로 돌아가면서 일을 하죠. 초창기에 테스트가 완벽하면 모르겠지만 그것도 쉽지 않고, 예상보다 접속자가 많아지거나 하면 서버가 어떻게 될지 몰라서 만일에 사태에 대비하기 위해 늘 사무실에서 24시간 교대로 돌아가요.”

 

그래도 주말만큼은 보장 받는다

 

지금 회사 분위기가 제가 볼 때 나쁘지 않아요. 평일은 어려워도 웬만하면 주말을 지켜주려고 하거든요. 입사해서 지금껏 공휴일에 출근하게 딱 1번이에요. 사장님 마인드에 따라 결정되죠. 게임회사 사장들이 대체로 젊은 축에 속하는데 본인들이 처음에 엄청 고생하면서 일했는데, 그게 싫어서 회사를 차리는 사람들을 많이 봤는데요. 본인이 주말에 일하기 싫은걸 아니까 억지로 직원들에게 주말에 출근해서 일하라고 시키지 않죠.”

 

그러나 이른바 꼰대 마인드 내가 예전에 다 해봐서 아는데” “내가 젊을 땐 몇 날 며칠씩 밤을 새봤다인 분들은 일을 오래 해야 좋은 결과물이 나온다고 생각해서 그런 회사들은 주말에도 어김없이 출근한다.

 

동료들 중에 일을 오래하고 스트레스를 너무 많이 받아서 두통약을 달고 살다가 못 이겨서 일을 포기하고 다른 일을 시작하게 된 사람을 봤어요. 손목이 아파서 수술 때문에 일을 그만둔 사람들도 있고요. 워낙 장시간 일을 하니까 몸이 피로하단걸 느끼고요. 그런데 아침에 출근해서 퇴근하면 11, 12시니까 운동을 할 시간도 없어요.”

 

수많은 게임회사들이 사라진다

게임 런칭 했다 망해서 자금 사정으로 문 닫는 경우가 태반이죠. 만일 자금력이 조금 있어서 버틴다고 해도 3~4년이고요. 회사가 문을 안 닫아도 직원들이 한 회사를 오래 다니지 않아요. 게임회사들이 이직에 대해서 자유로운 게 있어서 자기 몸값을 올리기 위해 이직하거나 프로젝트에 따라 하고 싶은 게 있으니 이동이 자유로워요. 신입 직원들도 들어오면 대개 1~2년 안에 나가는 사람이 진짜 많죠.”

 

판교에 밀집해 있다 보니 이쪽 업계 바닥이 좁은데 이직도 많다 보니 회사도 그렇고 일하는 사람들도 소문에 굉장히 민감하다고 한다

 

이직을 많이 하다보니까 사람 뽑을 때 대개 경력을 보잖아요. 그러니까 이전 회사에 물어봐요. 일은 잘하냐? 성격 괜찮냐? 체크가 들어가는 거죠. 만일 업계에서 재수 없으면 소문 잘못나서 일을 못하게 되는 경우도 있어요

 

게임업계에서도 외주화가 판을 친다

게임 실패가 회사에 미치는 영향이 상당하기 때문에 최근 규모가 있는 게임 회사의 경우 위험부담을 덜기 위해 자회사, 계열사 형태로 외주를 주는 경우가 흔하다고 한다.

 

만일 해당 게임이 망하면 자회사 자체를 해체시키는 경우가 종종 있어요. 그러면 직원들은 그 회사의 다른 자회사를 알아보거나 다른 회사로 이직을 준비하죠. 원래 회사는 만일 게임이 망해도 자신들에게는 손해는 크지 않고 자회사나 계열사가 책임자가 뒤집어 쓰죠.“

 

나이 들어서도 들어서도 이 일을 하고 싶다

정규직이긴 한데 정년은 의미가 없어요. 지금 생각으론 이 회사 있을 때까지는 있으려고 해요. 그나마 다른 파트들은 감각도 중요한데 프로그래머들은 기획이나 그래픽과 달라서 기술적인 능력이 더 중요해서 조금 더 길게 할 수도 있고요. 하지만 그래도 마흔 정도에는 결론 나는 것 같아요. 회사를 차리든지, 전체를 총괄하는 피디가 되거나, 아니면 현장에서 계속 프로그램 일을 하든지요. 만일 이 업계를 떠난다면 닭 튀기겠죠. 우스갯소리로 다들 그 얘기해요 나이 먹으면 기술도 없고 할 수 있는 건 치킨집 차리거나 커피숍을 하거나 선택지가 이것밖에 없다고요.

 

그러나 이 일을 선택한 걸 후회하지 않는다고 한다.

 

저는 하고 싶은 일을 하고 있죠. 게임 개발하는 게 재밌거든요. 돈을 많이 벌지는 못해도, 친구들 보면 일단 먹고 살아야 하니까 꾸역꾸역 취업해서 일하는 데 저는 제가 하고 싶은 일을 선택해서 지금껏 꾸준히 해나가니까 거기서 오는 자부심을 느껴요. 일하는 것도 보람 있고요. 저희는 주기적으로 빌드를 뽑아요. 게임 실행파일을 확인하는 건데요. 이때 버그가 없으면 진짜 좋죠. 웬만해선 한 번에 될 때가 없거든요 그런데 한 번에 되고 투자자한테 보내서 확인받았는데 문제가 없고, 수정 의견도 없을 때가 일할 맛나죠. 반대로 버그도 많고 뭐 하나 고쳐도 해결이 안되고 그럴 땐 프로그래머로서 자존심도 상하고 스트레스를 받죠.”

 

사람들이 내가 만들 게임하는 걸 보고 싶다

실력을 더 쌓아서 지금은 실무 개발자인데 팀장도 되고 테크니컬 디렉터, 기술 감독도 되고 피디도 해보고 싶어요. 프로그램 관련해서 강연도 다니고 싶고요. 게임 런칭이야 당연히 제일 하고 싶어요. 내가 만든 게임을 사람들이 지하철이나 버스에서 하는 걸 보고 싶어요.”

 

마지막으로 김현진 님은 게임업계에 대한 부정적인 시선을 거둬달라는 부탁의 말씀을 전했다.

 

이쪽이 야근도 많고 주말 출근도 잦고 시간도 없는건 맞는데 너무 부정적인 시각으로 보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여기 있는 분들은 모두 꿈을 좇아서 오는 사람들이거든요. 힘든 조건에서 일하기는 하지만 다들 즐겁게 일하고 있으니 좋게 봐주었으면 좋겠어요. 그리고 힘들어도 끝까지 꿈을 포기하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주변에 힘들어서 포기하는 사람들을 많이 봤거든요. 저도 중간에 일을 그만뒀을 때 이 길이 내 길이 맞나 많은 생각들을 했었는데 그때 포기하지 않길 참 잘했다고 생각하거든요.

 

 

[A-Z 다양한 노동이야기] 안전하지 않은 안전매니저들 /2016.10

안전하지 않은 안전매니저들

 

 

 

정경희 선전위원

 

 


집밖에 나가있는 동안 가스 불을 끈 기억이 나질 않아 안절부절 할 때가 종종 있다. 믿을만한 이웃집이나 관리사무소의 신세를 지더라도 확인을 해야 안심이 될 만큼 가스는 생활에 유용하지만 위험하기 때문에 정기점검이 중요하다.
가스 관리는 대부분 가가호호 방문하여 검침, 점검, 고지서 송달업무를 하는 안전매니저에 의해 이루어진다. 사생활을 중요하게 생각하는 요즘 집집마다 방문을 하는 업무가 쉽지만은 않을 것 같다. 생각이 이 쯤 되니 안전매니저들의 안전은 어떤지 궁금해진다.
○○도시가스 고객센터에서 10년, 15년 넘게 안전매니저를 하고 계신 정화숙 님과 공순옥 님을 만났다. 예전에는 ○○도시가스 직영에 소속돼 있었다고 한다. 그런데 통상적으로 서울도시가스 본사에서 퇴직해 나가는 관리자들에게 지분을 주어 개인사업자로 지역고객센터를 관리하도록 함에 따라, 떨어져 나온 개인사업자에 소속돼 있다가 이번에 4개 개인사업자가 법인으로 합쳐지면서 ○○도시가스 고객센터에 근무하게 되었고 현재 33명이 함께 일한다고 한다.

 

“여태 저희가 정규직인 줄 알고 있었어요. 얼마 전에 알게 되었는데 근속수당이 없기 때문에 1년 계약직이라 하더라고요. 같은 일을 10년 넘게 하고 있는데도 정규직이 아니라니 할 말이 없었어요. 대부분 1년 단위로 재계약이 이루어져요."

 

PDA에 나타나지 않는 업무와 어려움들

공식적인 사무실 출근은 한 달에 한 번. 대부분 PDA로 자료를 받아서 처리하는데 보통 6개월간 1인당 3,400세대수를 맡는다고 한다. 가구 방문 횟수는 고지서 송달과 검침으로 한 달에 한 번씩, 안전점검으로 6개월 동안 나눠서 한 번씩 방문해서 한 가구를 6개월 동안 13번 방문하게 된다. 그러니 그 구역에 대해서 빠삭하게 잘 알 수밖에 없고 가끔 통장님들이 도움을 청하기도 할 정도라고

 

“안전점검이 첫 달이 10%고, 다음 달이 20%면 한 달에 700세대를 해야 해요. 하루에 50세대를 완료하려면 150번 정도 세대 방문을 다녀야 가능해요. 고객들이 집에 많이 계신 시간을 골라 돌아다니니 그 시간에는 노동강도가 강해지고 업무시간이 일정할 수 없죠. 그것을 서울시에서 감안해줘야 하는데 시간만 따지는 거예요. PDA를 통해서 시간 안에 몇 집을 하는지만 계산하더라고요. 그런데 PDA에 나타나지 않는 것도 있거든요. 고지서 일일이 보내지. 고객님께 문자 보내지. 방문을 했는데 사람이 없는 경우는 메모를 남겨두기 때문에 아무리 늦은 시간이라도 전화 받아야하지.”

 

안전매니저들은 수도나 전기처럼 검침과 고지서 송달로 끝나는 것이 아니고 안전점검을 해야 한다. 큰 휴대폰 3배정도 되는 무게의 PDA를 업무 내내 들고 다니면서 하는 일이 만만치 않은 듯했다.

 

“점검이 10납기에 몰려있는 경우는 2,3일 안에 다 끝내야 하기 때문에 배낭에 고지서를 가득 넣어 매고서 한 손에는 PDA를 들어야 해요. 왼쪽 손부터 어깨까지 무리가 가서 통증을 많이 호소해요. 검침하러 다니다 보면 거미줄도 너무 많아요. 풀숲을 헤치고 다녀야 할 때도 있고, 높은 곳은 올라갔다 뛰어내리다 다리를 다치기도 하고, 난간에 매달려서 아슬아슬하게 하는 경우도 있고, 4,5층 빌라의 경우 나머지 층은 완료됐지만 꼭대기 층이 남았다면 4,5층을 계속 몇 번씩 오르내려야 하는데 일하는 내내 걸어야 하니 다리도 돌아가면서 안 아픈 곳이 거의 없어요. 요즘 애완견들 많이 키우니 개한테 물리는 경우도 다반사죠. 그런데 조금 할퀴거나 긁히는 건 말도 못해요. 피가 줄줄 나고 살점이 뜯어질 정도는 돼야 회사에서 치료비 받는 거죠. 사냥개에 물려서 7cm 꿰맨 사람도 있어요.”

 

일하시다 다치면 당연히 산재로 처리하시냐는 질문에 뜻밖의 대답이 돌아왔다

 

“산재는 아주 크게 다쳤을 때 부러지거나 누워있어야 할 때나 처리하죠. 산재를 하더라도 우리는 한 달 이상 쉬지 못해요. 취업규칙에 한 달 이상 쉬면 퇴사하게 돼 있어요. 이 지역은 나만 알아서 다른 사람이 하는 게 쉽지가 않아요. 그래서 그만두라는 거죠. 일하다 다치면 일은 누가 대신해 줄 지부터 생각해요. 내가 힘드니까 동료들에게 해달라는 말을 하기도 미안한 거예요. 동료들이 대신 도와 줄 때 예전에는 회사에서 점심값을 줬어요. 그런데 지금은 안 줘요. 다친 사람이 알아서 부담하라는 거죠. 회사에서 전혀 책임지지 않겠다는 거죠. 몸이 아파서 수술을 하려고 해도 검침기간을 피해서 해야 해요.”

 

점검 완료 99.9%를 위해 견뎌야하는 것들

수리나 설치기사는 고객이 원해서 하는 예정된 방문인 반면 안전점검은 고객이 원치 않은 방문이기 때문에 막무가내로 문을 닫아버리거나 못마땅해 하고 푸대접받기 일쑤라고 한다. 보통 마지막 달인 6월에 고객들과 부딪히는 일이 많다고 한다.

 

“처음에 갔더니 다음에 하겠다고 했어요. 그런 분들 많으니까. 지나가다 불이 켜져 있어서 노크를 하고 가스점검 왔다고 하니 안한다고 하는데 왜 자꾸 귀찮게 하느냐고 대번에 XXX 욕을 하더라구요. 그래도 계실 때 하시라고 달랬더니 신경질 내며 문을 열어주어서 금방 끝나는 건데 그렇게 화를 내시냐고 했어요. 키도 엄청 크고 체격도 있는 아들뻘 되는 사람이 나를 내려다보면서 한 대 칠 것처럼 손을 올리더라고요. 화를 참고 점검을 마치고 나오는데도 계속 서서 욕을 하고요. 얼마나 서러웠던지... 이런 일을 책으로 쓰라고 하면 몇 권은 쓸 수 있을 것 같아요.”

 

안전매니저님끼리는 얘기를 들으면 공감이 된다고 하셨다. 어떤 상황이었겠구나! 아마도 이렇게 얘기만 들어서는 못 느끼실 거라며 사무실에서도 잘 모른다고 했다.

 

“점검하는데 집중하다 보면 뒤에 누가 왔는지 모르는 사이에 가슴을 슥 만지는 남자들도 있어요. 팬티 입고 나오는 것은 다반사구요. 너무 당황하니까 처음에는 대처하는 게 잘 안되죠. 그러니까 이건 젊은 사람들이 할 수 없는 일이에요. 나이 먹은 주부들이나 견디면서 하죠. 낮에 사람이 없어서 저녁에 갔는데 아저씨가 하는 말이 아들하고 둘만 있는데 성추행 당하면 어쩌게 여길 들어오겠냐는 거예요. 그래도 나는 점검률 99.9%를 맞추기 위해서 해야 하니까 들어갔죠.”

 

상황이 이 정도이면 스스로를 지킬 수 있는 실질적인 방법이 강구돼야 하고 감정노동관련 치유 프로그램이 절실히 필요해 보였다.

 

“그런 프로그램이 있다면 진짜 하고 싶어요. 스트레스를 정말 많이 느끼거든요. 예전에 수도검침원이 성폭행을 당해서 사망한 사건이 있었어요. 그래서 요구를 해서 나온 게 있어요. 호루라기 허허~. PDA에 누르면 회사 사장이나 상무에게 연락이 가는 프로그램을 만들었는데 오작동이 잘 돼요. 연락이 된다고 해도 현장에 오기까지 거리가 얼만데 이미 상황 끝나죠.”

 

외주화와 부당한 대우에 안전매니저들 뿔났다

일선에서 어려움이 많은데도 센터에서는 최저임금에 준하는 급여뿐 아니라 각종 안내문 뿌리는 일, 제휴 카드 신청서 받기 등 잡일을 많이 시켰고 정규직으로도 인정하지 않아 불만이 쌓여가고 있었다. 결국 그러한 불만들이 노동조합 결성을 고민하게 된 결정적인 계기가 되었다고 한다.

 

“1,200세대 신규아파트 입주가 시작되자 사설업체들과 경쟁이 붙어서 우리보고 아파트에 나가서 타이머를 팔면서 가스렌지 연결 신청서를 받으라는 거예요. 물론 본 업무는 모두 하면서, 하루 일당 3만 5천원 줄테니 하루씩 돌아가면서 하라는 거죠. 힘들었지만 회사에서 요구하니 열심히 했죠. 그래서 4~5천만 원을 벌었다는데 추석 때 행정과 민원기사들만 20만원씩 더 주고 우린 원래 받기로 한 일당만 준 거예요. 고생은 우리가 다 했는데 인정을 너무 안 해주니 안 되겠다 싶어서 노동조합을 결성하게 된 거죠. 33명 중 26명이 노조를 결성해서 교섭 중이고 교섭대표로 4명이 들어가고 있어요.”

 

털어서 먼지 하나도 안 나기 때문에 노조 결성해도 어쩔 수 없다고 우리 끼리 안에서 얘기하자고 회유 반 협박 반 하는 사장의 말에도 끄떡하지 않는다고, 협상 대상은 일단 센터 사장이고 서울도시가스 그 다음은 서울시가 될 것이라며 자신있게 말씀했다.

 

“사실은 서울시가 모두 관할해야 하는데 서울도시가스로 분할하고 여기서 또 외주화시켜서 교섭도 그렇게 하는 거죠. 지하철도 스크린 도어 정비를 외주에 맡긴 거잖아요. 사실 구의역 사고 보면서 얼마나 공감했는지 몰라요. 가방에서 컵라면, 빵 나온 것 보고. 우리도 검침이나 고지서 송달하러 나갈 때는 아침부터 나가는데 주택가라 음식을 사먹을 수 없으니 떡이나 빵을 싸가지고 가요. 남한테 보여주기 싫어서 주택가 구석이나 아파트 꼭대기층 계단에서 쪼그리고 앉아 먹어요. 먹으면서도 내 자신이 비참해요. 음식점이 밑에 있는데 맨날 걷는 게 지겨운데 거기까지 걸어가서 먹고 현장으로 다시 올라가야 하는 게 힘들고 시간도 걸리니 자투리 시간에 먹는 거죠.”

 

혼밥, 혼술이란 말이 유행하는 것처럼 1인 가구가 늘어나고 사회생활로 인해 빈 집이 많아지는 추세라 앞으로 일은 더 힘들어질 것 같다고 안전매니저분들은 입을 모았다. 앞으로 바람은 일한 만큼 정당한 댓가를 받고, 현재 담당하는 3,400세대에서 3,000세대로 줄고, 근본적으로는 서비스 질을 보장하기 위해 2,500~2,600세대로 일의 양으로 줄이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다. 또한, 본사에서 검침일정 등을 잡을 때 현장에서 일하는 사람들의 여건을 배려하는 것을 이루어나가겠다고 한다. 안전매니저의 바람들이 현실화되고 동시에 안전매니저의 안전이 보장되어 결국 시민의 안전이 보장되는 사회가 될 수 있기를 바란다. 일터 독자들부터라도 집에 방문하는 안전매니저를 친절하게 대해주는 건 어떨까

 

[A-Z 다양한 노동이야기] 인천공항엔 유령이 있다? /2016.09

인천공항엔 유령이 있다?



정경희 선전위원 



인터뷰 가는길 시커먼 굴뚝이 즐비해 삭막하기 그지없는 공단을 지나 탁 트인 넓은 바다가 펼쳐졌다. 대형 화물선이 지나다닐 만큼 깊은 바다 위로 해무에 가려 끝도 보이지 않은 구부정한 다리를 건너노라니, 부유층의 전유물로 만들어진 메가로폴리스로 가기위해 어두운 우주에 놓인 은하철도를 건너던 철이가 떠오른다. 저 다리를 건너면 뭔가 다른 제3의 세계가 펼쳐질 것만 같은 느낌이 들었다. 알파벳과 숫자를 보고 커다란 케리어를 밀고서 바쁘게 움직이는 사람들로 가득한 그 곳은 먼지 하나라도 용서받지 못할 만큼 깨끗했다. 도대체 이런 청결함은 어떻게 유지되는 것일까? 이곳에서 일하는 사람들은 어떤 생각일까? 밀려오는 궁금증을 안고 정명선 님을 만났다.


환경 미화원일이 부끄러웠던 시절도 있었다


▲ 인천공항에서 일하는 정명선님.

공항에서 일하기 전 그는 지역 활동을 했었다. 아내가 몸이 좋지 않아서 일을 해야 했고, 당시 40대 초반 애매한 나이인지라 직장을 구하기가 쉽지 않았다고 한다. 이일저일 하면서 보내던 중 공항에 다니는 분의 소개로 청소 일을 시작하게 되었다.


“처음에는 꺼렸어요. 40대 초반 아직은 젊은 나인데 청소를 한다는 게 어색했고, 남들이 볼까봐 부끄러웠어요. 빨간 고무장갑을 끼고 일하다보니 내 모습을 남들에게 보여주기 싫었어요. 일을 하다 공항에서 아는 사람과 마주치게 되면 처음에는 얼굴 보기를 기피했어요. 그러다 시간이 지나고 ‘이게 내 직업이구나!’ 라는 걸 느끼면서 아는 사람 만나도 떳떳하게 인사하고, 서로 이해하면서 그렇게 변하더라고요.”


환경 미화원일은 고정 3교대 근무로 돌아간다. 오전 조는 아침 7시부터 오후 3시 반, 오후 조는 1시 반부터 밤 10시, 야간 조는 밤 10시에 시작해서 다음 날 아침에 끝나는 특수 일근형태다. 고정 근무다 보니 야간 조는 1 년 내내 야간에만 일하다 보니 건강이 가장 큰 문제다. 주간과 야간에 하도 달라서 근무와 관련해서 개선을 하려고 하지만 쉽지 않다고 한다.


“10여 년 동안 야간조만 하는 분들이 있어요. 주간조에 비해서 30만원 정도 더 벌거든요. 그 돈이면 아이들 학원이라도 하나 더 보낼 수 있으니까 야간조 일을 하는데, 그분들 보면 주간조 일하는 분들보다 더 피곤해 보이고 늘 피곤해 보여요. 출근할 때도 보면 주간조는 밝은 표정으로 출근했다 퇴근할 때 지쳐서 퇴근하는데, 야간조 분들은 출근할 때부터 항상 표정이 지쳐있어요. 밤에 일하고 낮에 자려면 잠이 잘 안온다고 하더라고요. 어쩔 땐 잠을 자려고 술도 한잔씩 하는데 그래도 잠을 푹 자는 건 어렵데요.”


골골대며 일하는 환경 미화원들

인천공항 이용객이 41% 증가하는 동안 환경 미화원은 0% 증가했다는 기사가 문득 떠올랐다. 일하다 힘들 때 휴식시간이나 휴게장소는 보장돼 있는지 궁금해졌다.


“오후조의 경우 1시 반부터 일을 시작하는데 3시에 간식시간 10분이 있고, 5시 반이나 6시 반에 저녁을 먹어요. 쉬는 시간이 따로 정해져 있진 않고 자기가 요령껏 쉬어야해요. 환경 미화원들을 위한 휴게 공간도 따로 정해져 있지 않아요. 오후조 같은 경우 락카룸이 동쪽에 있고, 일하는 곳은 서쪽에 있다보니, 서쪽에서 락카룸으로 쉬러가다가 휴식시간이 끝나기 때문에 로비 의자나 사람들 눈에 안 보이는 매장 뒤에서 쉬죠. 인천공항에서 일하는 사람들 전체가 이용하는 휴게실이 있기는 한데, 공간이 워낙 부족해서 거기서 쉬는 것도 어려워요. 물마시는 것도 어려워서 요즘처럼 더울 때는 화장실 앞에 있는 음수대를 이용하거나 손님들이 주거나 버린 생수로 목을 축이곤 해요.”


평균연령이 55세이다 보니 근골격계 질환자들도 많다고 하셨는데 몸이 아프거나 일하다 다쳐도 자신이 잘못해서 다쳤다고 생각해서 보통 개인이 비용이 비용을 들여 치료를 받는다고 한다.


“체크인하는 다용도실이라는 데가 있어요. 그 곳이 넓거든요. 계속해서 돌고 돌면서 일을 하니까 다리나 발목이 아파요. 화장실 청소할 땐 앉았다 일어섰다를 반복하고, 쪼그려 앉거나 서서 변기나 거울을 닦으니 무릎 아프신 분도 많죠. 공항 바닥 청소할 땐 한쪽 손으로는 카트를 밀고, 한쪽 손으로는 기름걸레 밀면서 가야하니까 어깨 아픈분들도 많고요. 면세구역엔 에어사이드라는 곳이 있는데 거기는 건물이 10년 넘어서 그런가 환기구는 있는데 꽉 막혀서 화장실뿐 아니라 건물 안 자체에서 공기 순환이 안 된다 하더라고요. 그러다보니 거기에서 일하는 분들은 겨울 내내 비염, 감기를 달고 살아요. 고객들처럼 어쩌다 하루에 한두 번 들어가는 거야 순간이지만, 우린 하루 종일 그곳에 머물러야 하잖아요. 그래서 건강에 좋지 않아요.”


비정규직 간접고용으로 일하는 환경미화원들

정명선 님은 민주노총 공운수노조 인천공항지역지부 환경지회 사무장 역할도 맡고 있다. 현재 인천공항 제1여객 터미널 종사자 약 7천명 가운데 6천명이 하청업체 비정규직으로 간접고용문제가 심각한 수준이라고 했다


“동료들 중에 14년, 15년 이렇게 다닌 사람들이 있는데 다니는 동안 회사는 네다섯번 계속 바뀌었어요. 퇴직금은 업체가 바뀔 때마다 정산해서 받았고요. 별다른 이유가 없는 고용은 승계됐지만 늘 고용에 대한 불안이 있죠. 또 간접고용이다 보니 회사에 노동조건 개선에 관해서 요구를 하면 이건 자기들이 들어주기 힘드니까 공항공사에 이야기를 하라고 해요. 공항공사에 가서 요구를 하면 우리 직원이 아니니 회사에 가서 얘기하라고 하고요. 우리를 아무도 책임지지 않는 구조에 있는거죠”


현재 비정규직 약 7천 명중 2천 명 정도가 노동조합으로 조직되어 있다보니 조장이나 매니저 같은 중간 관리자들이 일하는 사람들을 함부로 하는 게 없어졌다고 한다. 그러고보니 노동조합을 만들게 된 계기도 궁금해졌다.


“급여명세서를 보니 시간외 수당이 안 맞는 거예요. 몇몇 사람들이 의심을 가지고 노동청을 찾아가 문제가 있다는 것을 알게 되고 지하 교육실에 모이기로 했어요. 회사 사람들 만나서 해명을 요구했는데 회사에서 답을 못하더라고요. 그래서 사람들이 일을 안하고 복도에 모여있었어요. 이후에 출근한 오후 조와 야간 조 모두 합세하여 1박 2일 동안 농성아닌 농성을 하게 됐죠. 그런데도 회사 중간관리자는 엉터리 같은 설명만 하더라고요. 그러다 공공운수노조 인천공항지부 간부들에게 도움을 요청했고 지원을 해줬어요. 이후에 교섭단을 꾸리고 다음 날 아침 회사랑 교섭을 해서 농성을 풀었고, 체불임금투쟁이 벌어졌으니 제대로 싸우려면 노동조합을 만들어야 한다고 해서 가입을 했죠. 당시 환경 미화원이 터미널 건물에 430명, 탑승동 건물에 110명 정도가 가입했어요.”


미화원들이 유령인가?

어떤 영화에서 ‘미화원들은 유령이다.’ 라는 대사가 있는데 미화원들은 정말 유령 취급 받을 때가 많다고, 일터 독자들이 환경 미화원에게 관심을 가져주었으면 한다는 당부의 말씀도 해주셨다.


“분명히 양변기와 소변기가 분리돼 있는데 소변을 양변기에 보시는 분이 계세요. 그러면 주변에 소변이 다 튀죠. 겉으로 투덜대면 민원 올라가서 안 되니 속으로 투덜대면서 청소하죠. 화장실 금연인데 아직도 담배 피우시는 분들 있어요. 화장실 변기에 물티슈는 버리지 말라고 돼 있는데 꼭 버려서 막히게 만들고요. 특히 최근에 리모델링한 개선 화장실의 경우는 배관이 좁아서 그런지 더 잘 막히거든요. 카트를 밀고 청소하는 분들도 남들은 꺼리는 오물을 늘 치워야 하니까 힘들어요. 그래도 누군가는 해야 하는 일이니 하고 있어요.”


세계공항서비스평가에서 12년째 1위를 자랑하는 인천공항. 그러나 정작 이용객과 공항에서 일하는 노동자들의 안전과 운영에 대한 책임은 회피하고자 비정규직/간접고용을 양산하고, 제대로 된 휴게 공간 하나 보장하지 않고 있으니 속 빈 강정일 뿐이다. 인천공항에 빈 속을 꽉꽉 채우기 위해 오늘도 힘든 노동과 노동조합 화동으로 분주한 정명선 님을 뵙고 나니 기계적으로 보이던 인천공항에도 따뜻한 사람의 온기가 있음을 느꼈던 시간이었다.


[A-Z 노동이야기] 15년차 기계장인 지헌 씨 이야기 /2016.8

15년차 기계장인 지헌 씨 이야기



정경희 선전위원 



지헌 씨는 전문대학을 졸업한 고 자동차 부품회사 사무직으로 일하다 기계 가공 일을 배우며 소위 남들이 말하는 공돌이를 선택했다. 몇 차례 회사를 옮기기는 했지만 15년째 같은 일을 하는 지헌 씨는 덩어리에 불과했던 소재를 가공을 해서 이 사회에 필요한 물건으로 만들어내는 장인으로 자부심을 갖고 일하고 있었다. .

 

저들이 마음대로 해고하지 못할 무기가 없더라구요

전문대 건축학과 2년제를 다녔어요. 졸업하고 나면 보통 설계실에서 일하는데 건축사무실에서 설계하는 선배들을 보면 3~4년 일해도 월급이 130~140만원으로 박봉이어서 미래가 불확실하더라고요. 그래서 다른 진로를 생각하다가 자동차 부품회사 사무직으로 2년 정도 일했는데 회사가 어렵게 되자 감원을 했어요. 이때 보니까 인사처에서 차장, 과장급들에게 전화해서 며칠까지만 나오고 짐싸라고 통보하는 걸 보니 다음엔 나도 저렇게 되겠구나 하는 위기감이 느껴졌어요. 동시에 저렇게 안되려면 저들이 마음대로 해고시킬 수 없는 무기를 가져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때 마침 같이 일하던 형이 기계 일 배울 사람 좀 알아봐 달라고 해서 선뜻 제가 가겠다고 했죠. 안산 시화 공단에 있는 조그만 회사에 들어가서 사상이나 도장 같은 기초적인 일을 배우기 시작했어요.”


10년 정도 일을 하고서야 큰 기계를 잡을 수 있었다는 지헌 씨는 공업고등학교나 산업대학원에서 이론부터 체계적이고 전문적으로 배우는 것이 아니었기 때문에 기계를 능숙하게 익히는데 오랜 시간이 필요했다고 한다.


보통 기계는 공고나 산업대학교, 기술교육원에서 배우는 분들은 이론과 실습 위주로 배우지만 현장에서는 일을 하면서 기계를 배워야 하니까 간단한 일부터 시작돼요. 처음 공장에 들어가서 기계로 작업하는 걸 보기 때문에 눈으로 익히는 과정은 초등학생이라고 보면 되고요, 중학교 과정 정도 되면 조그만 기계도 한 번 만져보고 도면 보는 방법, 측정 공구 사용하는 법도 배워요. 지금처럼 큰 기계를 맡는 과정은 대학교 과정이라고 보면 되요. 이쯤되면 도면 해석은 물론이고 어떤 물건을 가져다주면 관리자들은 몰라도 기술자들은 어떻게 만들면 되겠다는 것을 알아채죠. 10년 정도 넘으면 자유자제로 물건을 가공을 할 수 있어요.


아는 지인이 이 일을 하겠다고 하면 말리고 싶어요

육체적으로 더 편한 직장을 포기하면서 자신이 선택한 일이고, 지금은 숙련의 경지에 이르렀지만 젊은 사람이 이 일을 시작하겠다고 하면 권하고 싶지 않다고 했다.


“88올림픽 당시에는 일이 참 많았어요. 그땐 기계를 다루는 사람들이 대기업 과장만큼 월급을 받았으니까요. 그런데 그 때 이후로 인건비가 오르지 않아서 지금은 많이 받는 게 아니에요. 솔직히 기계 일을 다른 사람 특히 젊은 사람들에게 권하고 싶진 않네요. 일을 배우는데 걸리는 시간만큼 다른 일을 한다면 충분히 급여로 보상받을 수 있으니까요. 예전에는 공돌이라고 무시했지만 요즘은 인식이 많이 개선이 돼서 도자기를 빚는 사람처럼 장인으로 인정 받기도 하잖아요. 그런데 일을 배우는 기간에 비해 금전적인 대우는 많이 올라가지 못했어요. 그래서 적극적으로 추천은 못하겠네요.”


지헌 씨도 처음 시작할 때 6개월마다 급여를 10만원씩 올려 받았다고 한다. 일이 힘드니 그것이 동기부여가 돼서 견뎌낼 수 있었다고 하는데 초봉을 110만원부터 시작했다고 하니 올려줬다고 해도 정당한 댓가를 받은 것인지 의심스럽다.


처음 들어오면 잔업까지 포함해서 하루 12시간 정도 일을하면 월 160~170 정도 받을 거예요. 작은 회사들이 많은데 하루 종일 서서 일하고 먼지도 많고 그라인더 작업하고 나면 팔도떨리고 손도 떨리는데 다른 더 쉬운 일을 해도 그 정도 급여는 받잖아요. 사실 젊은 사람들이 와도 멀리서 일을 바라보기만 하고 가버리는 친구들도 꽤 있어요. 회사는 작고 환경은 더럽고 그래서 요즘 젊은 사람 보기가 힘들어요.”


지헌 씨가 하는 일은

힘든 일은 이주 노동자들이 대부분 맡아서 하고 젊은이들은 회피한다는 일의 과정이 궁금해졌다. 지헌 씨가 근무하는 회사에서는 주로 동을 취급하는데 보통 기계가공을 하는 곳에서는 철, 비철, 스테인레스 등의 소재를 사와서 부품이나 물건으로 만들어 철강회사나 반도체 업체에 납품하게 된단다.


주조반에서 동을 녹여서 수냉함이 흐르는 물건의 틀을 만들어요. 수냉함은 물건의 입구와 출구가 있어서 물이 들어가서 물건의 열을 식혀주는 역할을 하는 거예요. 주물반에서 물건을 청소해요. 그 다음 쇼트를 한번 쳐요. 쇼트란 작은 쇠구슬 알갱이로 된 곳에 물건을 집어넣고 때려주는 거예요. 가공반으로 내려오면 기계에서 가공을 하게 되는데 주물반에서 물건이 완벽하게 만들어져서 나오지 않거든요. 가공반에서 다듬고 구멍도 내주고 하죠. 용접반에서 물이 새면 안 되니 구멍 난 곳은 용접으로 때워 주죠. 사상반으로 가서 용접으로 지저분해진 곳을 그라인더로 갈고 깨끗하게 다듬죠. 그 다음 물을 담아서 새는 곳이 없는지 수압 테스트를 해요. 이 물건이 제철소에 들어가면 굉장히 높은 고열에 시달려요. 그래서 최대한 자유롭게 많은 물이 흘러줘야 빨리 식을 것 아니에요. 빨리 식지 않으면 열 압력 때문에 물건이 터져버리거든요. 그러면 사람이 다칠 수 있고, 기계가 망가질 수도 있기 때문에 반드시 수압 테스트를 해줘야 해요. 주물 작업을 할 때 끓는 철은 아주 천천히 부어야 해요. 빨리 붓게 되면 안에 기공이 생기게 되고, 이것이 나중에 열을 받으면 팽창해서 터져 버려요. 마지막으로 주물 상태를 확인해 보죠. 주물의 두께가 잘 나왔는지 기공은 없는지 확인해 보고 출하를 하게 되죠.”


이 작업과정 중 지헌 씨가 일하는 과정은 가공반이다. 프레스나, 밀링, 보링은 소재를 테이블에 고정시켜놓고 기계에 공구를 끼워서 상하좌우로 파주거나 깎아서 모양을 만들어 주는 방법인데 이 중 지헌씨는 보링기를 이용해 동을 가공한다고 한다.


보링이라는 말이 구멍이라는 뜻이잖아요. 보통 구멍을 뚫어주는 것이라고 생각하는데 사실은 다목적 기계예요. 선반도 되고 밀링도 되고 테이블 자체가 굴러가요. 그렇기 때문에 상하좌우 범용에서 쓰는 전천후 기계라고 보시면 돼요. 기계를 하다보면 단계가 있거든요. 예를 들면 물건의 거친 부분을 다듬는 사상을 하거나 구멍을 파면 까칠까칠한 부분이 살아나는데 이것을 다듬어 주는 면칠을 하게 되죠. 철을 깎으면 마찰이 일어나서 소재도 그렇고 공구도 열을 받아요. 소재의 열을 식히기 위해 물에다 절삭유를 타면 우유처럼 하얗게 변해요. 절삭유는 10:1로 물에 희석해서 쓰기 때문에 오래 쓰는데 가공을 할 때 테핑유는 좀 비싸서 꼭 필요한 경우만 써요.”


앗 뜨거워하면서 털어요. 그러면 빨개요

손이나 다리를 삐거나 다치기도 하고 지헌씨도 물건을 잘못 들어 손가락이 부러진 적도 있다고 한다. 철을 깎을 때 나오는 먼지뿐 아니라 주물반은 먼지가 많아서 저녁에 보면 눈과 입을 빼고는 다 새까맣고, 목이 칼칼하고 마른 느낌이 많이 든다고 한다. 또 천정에서 물건을 나르는 호이스트 등 현장에 위험은 얼마든지 있다고 하는데 가장 흔한 사고는 화상이라고 한다.


흔하게 다치는 것은 화상이에요. 나무 깎을 때 톱밥이 날리듯이 기계로 깎을 때도 날려요. 기계의 회전이 빠르면 빠를수록 멀리 빨리 날아가고 이것이 얼굴에도 달라 붙어요. 그럼 엄청 뜨겁거든요. 앗 뜨거워하면서 털어요. 그러면 빨개요. 화상을 입은 거죠. 심한 경우는 6개월에서 1년까지 가고, 작은 것은 한 달 정도 가요.”


사장님이 기름 묻은 장갑을 빨아 쓰래요. 그러면 포상하겠다고.

지헌 씨 회사는 여느 회사 못지않게 잔업이 많다. 그래서 일이 지겨울 때도 있지만 어느 정도 월급을 가져가려면 잔업을 해야 하니 쫓기듯이 일을 하게 된단다. 그래도 월급이 제 때 나오면 다행이다. 요즘 가장 힘든 것은 열심히 일하는데도 월급이 제때 안 나오는 것이다.


회사가 어려워서 월급이 제 때 안 나와요. 그나마 현장은 조금 빨리 주는 편이고 관리자들은 더 늦게 줘요. 사장과 임원진들은 법인 차량, 법인 카드 등으로 누리면서 살아왔는데, 회사가 어려워지면 경영진들이 경영관리의 책임을 지고 누리던 것을 내려놔야 되잖아요. 그런데 오히려 현장을 더 어렵게 만든단 말이에요. 절약차원에서 현장에 30개씩 지급하던 장갑을 스물다섯개로 줄였어요. 장갑에 절삭유나 기름이 묻으면 바꿔줘야 해요. 그렇지 않으면 습진이 생기는 것 처럼 피부가 안 좋아지거든요. 장갑 하나에 200원인이고, 일하는 사람이 25명 정도 되요. 그래봤자 한 달에 3만원 아끼는 건데, 그걸 아껴요. 그리고 사장님이 기름 묻은 장갑을 빨아 쓰래요. 그러면 포상하겠다고요.”


이렇게 어려운 환경에서도 자신이 만든 물건이 반도체 LCD, 제철소에 들어가서 활용된다고 생각하면 보람을 느낀단다. 생활 속에서 필요한 것을 어디 가서 살 수도 없어서 가족이나 주위 분들이 기계를 잡고 있는 지헌 씨에게 만들어달라고 할 때는 나만이 해 줄 수 있는 거라 뿌듯하단다. 천상 기계장인 지헌 씨. 결혼할 준비도 해 놨고 선을 50번도 넘게 봤지만 아직 좋은 인연을 만나지 못했다는 지헌 씨. 자신의 선택이 잘했다는 것을 확인받는 앞날이 펼쳐지기를 기대한다.

 

[A-Z 노동이야기] 에어컨 고치느라 땀 닦을 시간도 없는 수리기사 이야기 /2016.7

에어컨 고치느라 땀 닦을 시간도 없는 수리기사 이야기

- 삼성전자서비스 A/S기사 정희섭 씨 인터뷰


정하나 선전위원

  


예년보다 여름이 빨리 찾아온 올해, 이미 6월부터 더위가 기승이었다. 이렇게 날씨가 사람이 견디기 힘들 때, 요즘처럼 너무 덥거나, 반대로 너무 추운 시기가 전자제품 A/S 기사들이 발바닥에 땀 나게 뛰어다녀야 하는 성수기이다. 오늘 만난 정희섭 씨는 삼성전자서비스 센터에서 만 5년 수리기사로 일하고 있다. 냉장고, TV, 에어컨 등 삼성전자에서 나오는 가전제품은 모두 맡아서 수리한다. 센터 내근직도 있지만, 희섭 씨 같은 경우는 온종일 A/S를 요청하는 고객들을 집을 일일이 방문하며 일하는 외근직이다.


이곳 서비스센터가 첫 직장이신가요? 어떻게 이 일을 시작하게 되셨는지?

. 여기가 제 첫 직장이에요. 인천에 모 전문대 전자과를 다니다 졸업할 때쯤, 학교에서 여기 가라고 막 홍보를 하더라고요. 당시 삼성전 정규직이라고 했으니 얼마나 인기가 좋았겠어요!그래서 경쟁률도 엄청났었는데... 알고 보니 청년 인턴제라는 정부 청년 일자리 사업 중 하나로 정부 지원금(인건비) 받아 사람을 뽑는 그런 자리였었고, 정규직이라고 했지만, 원청 삼성전자 소속이 아니라 삼성전자서비스 센터의 직원이 되는 그런 자리였지요그러니까 처음에는 인턴으로 시작한 것이고, 햇수로 6년째 일하고 있는 지금도 갑(삼성전)-(삼성전자서비스)-(각 지역 서비스센터)을 지나 의 위치로 고용이 되어 있는 거. 학교도 어떻게 보면 거짓말을 한 것인데... 전문대학들이 취업률 85% 이상 실적을 채우려고 난리인데 우리 학교도 그랬던 거 같아요.”

 

첫 번째 정식 사회생활이었는데, 일은 어떠셨나요?

... 정말 적응이 안 되더라고요. 몸 힘든 거는 둘째 치고, 저희는 고객방문 하는 서비스 기사잖아요. 그러다 보니 감정노동이 제가 상상했던 것 이상으로 심하더라고요. 고객들에게 친절하게 대하는 그 자체가 힘들다기보다, 회사가 매뉴얼을 가지고 감정노동을 엄격하게 아니 혹독하게 관리하는데 그게 너무 이상하고 지금도 사실 불편해요. 저만의 생각은 아닌, 저랑 같이 입사한 동기가 50명이었는데 지금 저 하나 남았거든요.”

 

감정노동에 대한 회사 노무관리가 엄격하다 하셨는데, 자세히 말씀해주세요.

저희가 수리를 위해 방문하고 나서 2~3일 정도 지나면 고객한테 전화를 해요. 아마 삼성제품 사용하시는 분들은 받아본 적 있으실 거에요. A/S 받은 이후 불편한 점이 다시 발생하지는 않았는지 물어본다고 하지만, 실은 수리기사의 품행에 대한 질문을 하고 1점에서 10점까지 점수를 책정하는 거죠. 평가점수가 10점이 안 나오면 바로 회사로부터 크고 작은 조치를 받아요. 매일 서비스 평가 점수 수치화해서 공개하는 것은 기본이고요. 저희도 기본적으로 9시에 업무 시작해서 저녁 6시가 퇴근인데요, 매일 아침 830분 조회를 해요. 그때 10점이 아닌 사람들은, 그러니까 9점만 받아도 몇 년 전까지만 해도 반성문 쓰고 여러 사람 앞에서 왜 그 점수를 받았는지 상황 설명하고, 롤플레잉(고객-기사 역을 연기하면서 서비스 매뉴얼 학습)도 하고 그랬어요. 저녁에 퇴근하고 서비스 점수 높이기 위한 대책 회의 같은 것도 하고 말이죠. 노동조합 생기고 나서 반성문 쓰는 거 등 비인격적이고 너무 가학적인 조치는 없어지긴 했는데 아직도 조합원이 한 명도 없는 센터에서는 악행을 고수하고 있을지도 모르는 일이에요. , 개인별 서비스평가 공개하는 건 아직도 매일 합니다.”

 

삼성전자서비스 A/S 기사들이 지켜야 하는 서비스 매뉴얼. 이에 따라 1~10점의 점수를 받는다. 

출처 : 미디어충청


그런데, 고객들이 저평가 하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사실, 물건이 고장 나면 기분이 안 좋기 마련이죠. 그런데 이런 경우가 있어요. 물건을 산지 얼마 안 되셨는데 고장이 나서 A/S를 부르신 분들. 제가 그랬어도 기분은 많이 안 좋았을 거예요. 그럴 땐 저희 기사들이 아무리 고객 응대 매뉴얼대로 해도 좋은 점수를 주진 않더라고요. 기분이 안 좋으니 그렇겠죠. 저희도 고객마다 다 기준이 다른 것이니 10점을 안 줄 수 있다고는 생각해요. 평가 자체보다, 이것을 가지고 노동자들을 비인격적으로 관리하려고 하는 회사 정책이 더 문제라고 봐요. 그리고 가끔... 진상고객들도 좀 있긴 해요. 저도 어리버리하고 과잉친절 하던 입사 초기에는 좀 이상한 분들을 많이 만났어요. 제가 좀 쉽게 보여서 그랬는지도 모르겠어요. 물건 던지고 폭력적인 언사 하는 분들은 정말 자주 만나고요, 한번은 감금을 당해서 경찰에 신고해서 나온 적도 있었어요. 아마 마음이 아프셨던 분이었던 것 같긴 하지만... 많이 놀랐죠.”

 

일 하시면서 힘든 때도 많으셨을 테지만, 기억에 남는 기분 좋았던 일, 보람되었던 일은 없으셨나요?

.... 글쎄요. 일이라는 게 그렇게 즐겁고 재밌고.. 그렇진 않잖아요?!아 한번 그런 적은있어요. 가끔 원청(삼성전자) 직원들이 나와서 수리를 하는 물건이 있는데, 그분들도 못하는 걸 저희가 고치는 경우가 있어요. 아마 현장 경험이 많아서 가능한 거 같네요. 좀 뿌듯하더라고요. 그 외에는 딱히.... 저희 일이라는 게 너무 건당 요금, 건당 시간에 메여있어서... 상 조급하게 힘들게 일해서 더 좋은 경험이 없는지도 모르겠네요.”

 

A/S 건수 당 수리 시간도 정해져 있나요? 하루에 몇 건 정도 처리 하시나요?

가전제품 수리는 하절기에는 정말 일이 많이 들어오죠. 예전(노조 설립 전)에는 7~8월 두달 중 딱 하루 쉬고 밤 12시까지 꼬박 일했었는데, 요즘에는 그렇게 살인적으로는 일 배분 못 하게 했어요. 성수기 기준으로 하루 최대 12~13건 정도 처리합니다. 그런데 수리 한 건50분 안에 처리하도록 되어 있어요. 말이 50분이지 사실 앞뒤 이동시간 빼면 한건 당 20~30분밖에 안 남죠. 이 시간 동안 제품도 제대로 고쳐야 하고, 서비스 매뉴얼에 있는 데로 고객에게 설명도 자세히 친절하게 해야 해요. 시간 안에 처리하지 못해서 다음 수리 건이 있는 장소에 몇 분이라도 늦게 되면 계속 센터에서 문자 오고, 시간 왜 못 지키냐고 하고 난리가 난답니다. 저희가 수리하기 위한 공구를 여러 개 들고 다녀요. 기본적인 공구박스, 용접기계, 요즘같이 에어컨 수리가 많을 때는 냉매 가스랑 측정하는 기계 등등 개인별 차이는 있겠지만 한 30kg씩 이고 지고 방문해야 하는데, 무거워도 저는 무조건 한 번에 다 들고 가요. 왔다 갔다 하면 시간 뺐기니까요. 대부분 수리기사들이 이렇게 일하다 보니 손목 나가고 무릎 아프고, 디스크 수술한 사람들도 굉장히 많아요.”

 

최근, 에어컨 수리하시다가 추락해서 돌아가신 노동자 분 이야기가 기사화 된 것을 보니 시간이 없어서 안전장비도 제대로 착용하기 어렵다고 하던데?

맞아요. 최신 아파트들은 에어컨 공간이 내부에 따로 있지만, 그런 곳은 많지 않고 대부분 건물 외벽에 실외기를 설치하잖아요. 에어컨을 설치할 때는 스카이차라는 걸 불러서 하기 때문에 비교적 안전하게 작업 할 수 있는데, 수리할 때는 따로 요청해야지만 쓸 수 있어요. 평소에는 안전모랑 안전로프 같은 걸 착용하고 하게 되어 있는데, 시간도 부족할 뿐 아니라 아파트 베란다 쪽에 보면 이 안전로프를 걸 수 있는 공간/고리 같은 게 있는 곳이 거의 없어요. 이동시간 제외한 20~30분 안에 안전장비 잘 착용하고, 로프 걸 데 찾아서 걸고 수리 시작하는 게 기사들 입장에서는 아주 쫄리는 일이지요. 하지만 워낙 사망사고까지 일어날 수 있는 위태한 지경이니 저나 조합원들은 위험한 공간에서의 작업은 고객에게 사정을 말하고 일단 고소작업용 스카이 차가 오고 나서 일하는 게 맞다고 생각해요. 성수기에는 스케쥴 맞추기가 어렵긴 하지만 그래도 스카이차 오는 시간으로 일정 조정해서 작업 합니다.”


일한 지 5년이 지나, 이제 수리 일 자체는 손에 익었으나, 쉴 때 쉬고 건강하게 일하고 싶다는 희섭 씨. 기본급이 전혀 없고 건당 수수료만으로 임금을 채웠을 때는 동료들이 마치 신들린 것처럼 위험해도, 힘들어도 모두 무릅쓰고 일하는 걸 보면서 이건 아니라고 생각했단다. 기본급이 생겨서 이제 생명을 걸고, 신들린 듯 일하지 않아도 생계를 안정적으로 유지 할 수 있어 다행이라는 희섭 씨는, “건 당 수수료이니, 건 당 수리시간이니 하는 건당땡땡땡, 이거 완전히 없어졌으면 좋겠다고 했다. 사람이 죽고, 무리하게 일하고, 안전장비 하나 착용하지 못하는 현실이 이 건 당 시스템때문이라고, 서비스품질 1위를 위시하며 노동자를 비인격적으로 다루는 회사의 가학적인 노무관리도 바로 이 때문이라고 그는 힘주어 말하며 인터뷰를 마쳤다.

[A-Z 노동 이야기] 파킹도 파견으로 /2016.6

파킹도 파견으로

- 발렛파킹 하는 알바 노동자, 지훈 씨 (가명) 인터뷰


정하나 선전위원



20대 지훈(가명)씨는 안 해 본 알바가 없는 '알바통'이다. 주차요원, 택배 상하차, 편의점 등등 다양한 투잡, 쓰리잡을 하면서 학업을 병행했다. 지금은 대학을 졸업하고 공무원 시험 준비를 하면서 알바를 한다. 요즘에 그가 선택한 알바는 발FP파킹, 주차 대리 알바이다. 주중에는 학원을 다니며 공무원 시험 준비를 해야 하기 때문에, 주말에만 일한다. 그가 일하는 동네는 강남. 서울 안에서도 강남 도심은 주차난이 심한 곳이라 발레파킹이 아주 흔하다. 지금 지훈씨는 자동차 판매점이 들어가 있는 빌딩의 주차장에서 하루 10시간에서 12시간 정도, 주차 대행 서비스를 하고 있다.


큰 호텔도 발레파킹은 외주


"서울이 주차공간이 아주 부족하잖아요. 요즘에는 외제차도 많아져서 차의 크기도 커졌고, 차량도 엄청 많지요. 공간이 협소하다보니 주차대행해주는 일도 많아진 거 같아요. 강남은 발레파킹 안 이용하면 주차는 거의 꿈도 못 꾼다고 보시는 게 맞아요. 카페나 음식점 같은 곳에서 주차 대신 해주는 거 많이 보셨죠? 그 가게에서 주차 알바로 직원을 한명 뽑아서 그 일을 시키는 게 아니라, 이것도 다 하청이고 파견이에요. 주차대행 업체에서 호텔이나 병원, 큰 음식점 같은 사업장이랑 계약을 맺는 거예요. 저희는 주차대행업체에 속해있긴 하지만, 대리운전이나 퀵서비스 노동자들처럼 개인사업자로 계약이 되어 있어요."


지훈씨는 주차 일을 꽤 일찌감치, 대학생일 때부터 시작했다. 운전에만 자신 있는 사람이라면 어렵지 않게 일을 할 수 있고, 당시 시급 7~8천 원 정도로 최저시급보다 훨씬 많이 주는 일이라서 좋았다. 그가 처음 들어가 약 3년간 일했던 곳은 서울시내 특급호텔로 유명한 ○○호텔이었다. 호텔 안에 필요한 여러 업무가 그렇듯, 주차장 발레파킹 일도 외주화 되어 있었다. 주차장에서 호텔손님들의 차를 받던 지훈씨는 그 호텔의 보안경비, 환경미화, 로비 접객(벨보이) 업무를 외주계약으로 맡았던 업체에 소속되어 일했다.


"그 호텔에는 하루에 적어도 (차량) 1500대가 드나드는데, 호텔 건물 안에 있는 주차장에는 300대만 수용할 수 있었거든요. 대략 500대 정도는 다른 주차장을 써야 했어요. 그래서 근처에 다른 큰 건물이나 대학교 등의 주차장을 쓸 수 있게 호텔이 계약을 맺어놓지요. 발레파킹하는 사람들은 호텔 주차장에서 차를 끌고 나와 이동해야 했죠. 근데 만약 그러다가 사고가 나면 어떻게 되는지 아세요? 다 주차일하던 사람이 물어내야 해요. 그나마 호텔은 주차장 안에서 사고가 나면 업체(혹은 호텔)랑 사고 낸 (주차)운전자랑 같이 부담하게 되어 있어요. 우리가 부담하는 게 한 30만 원 정도? 재해보험이 들어있어서 그렇다나 봐요. 그렇지만 건물 밖의 다른 주차장으로 이동하다가 도로에서 사고 나면 전부 운전자가 책임지는 시스템이었어요. 주차장 안에서 보장되는 보험만 해도 큰 데에서 일하니까 들어 있었던 거지, 예전에 어떤 병원 쪽에 파견 나가 일했을 때는 아무것도 없었어요. 파킹 파견해주는 업체가 영세하면 보험을 하나도 안 들어 놓기 때문에, 사고 나면 운전한 알바가 다 독박 쓰게 되는 거죠."


시간에 쫓기는 주차 대행 노동자


차는 많고, 주차공간은 적은 서울의 도로사정으로 인해, 주차 알바는 시간에 매우 쫓기는 편이다. 손님이 많이 몰리는 시간대에는 1시간 동안 20-30대씩 차가 들어오기도 한단다. 빠르게 주차를 하고 다음 차를 맡으려 하다보면, 도로 이동시 과속하지 않고는 손님들 편의를 맞추기 힘들다. 하물며 식시시간 같은 건 제때 챙기기 어렵다.


"남들 밥 먹는 시간이 제일 바쁘죠. 바로 직전에는 갈빗집에서 일했어요. 거기는 정말 딱! 식사 시간 때가 제일 바쁜 곳이잖아요. 아침 9시에 출근하면 점심은 오후 3시쯤, 저녁은 8시 이후에나 먹을 수 있었어요. 거기서 일할 때 저는 일부러 저녁은 걸렀어요. 허겁지겁 밥을 먹고 금방 또 뛰어다니고 그러면 속이 부대껴서 다음날까지 힘들어서 말이죠. 휴게시간은 따로 있지는 않고 손님들 없는 시간에 짬짬이 알아서 쉬는 거죠. 일하는 12시간 내내 바쁜 건 아니니까요. 지금 일하는 자동차회사 건물 주차장은 그래도 같이 일하는 사람들끼리 식사시간을 서로 챙겨주는 분위기예요. 그러고 보니 지금 일하는 데가 임금체불도 안 되고, 분위기도 좋고... 여러모로 나은 점이 많네요."


지훈씨는 호텔 주차장 일을 관두고 2년 정도 쉬다가, 갈빗집에서 다시 올해부터 주차대행 알바를 시작했다. 돈이 급해 시작한 알바였건만, 너무 영세한 업체였던 탓인지 임금체불이몇 번이나 있었다. 이 갈빗집은 전용 주차공간이 협소해서 도로변에 손님들 차를 세워놨다가 빈자리가 생기면 주차대행 노동자들이 차를 차곡차곡 주차장으로 옮겨놓는 방식이었다.


"강남일대에 비상등 켜놓고 승용차들이 쭉 세워져 있는 거 보셨나요? 이게 백이면 백, 주차장 없어서 발레파킹 하는 사람들이 도로가에 임시로 세워둔 차들이에요. 제가 일했던 갈빗집도 손님들 차가 넘치니 도로에 세워뒀었죠. 그런데, 일하는 사람이 부족하니 식당 손님 차량을 빨리 빨리 효율적으로 관리하지 못하는 일이 많았어요. 그러다 손님 차에 주차위반딱지가 붙으면 이걸 주차 대행업체에서 다 물어줘야 해요. 예를 들면 식당은 한 달에 주차업체에 2천만 원을 통으로 주고, 거기서 인건비나 과태료 등을 다 알아서 처리하도록 하는데, 이 식당은 손님들 주차위반 딱지 값만 한 달에 400만 원 어치가 되다보니... 주차업체 사장이 자기 쓸 거 빼면 직원 3명에게 월급주기도 빠듯했던 거죠. 나중엔 사장이 자기가 더 적게 가져간다고 투덜대기도 할 정도였는데, 결국 월급이 밀려서 그만두게 되었어요."


지훈씨가 예전에 일했던 호텔 같은 경우는 큰 보안회사에서 주차 업무도 맡기 때문에 임금체불은 거의 없었다. 그러나 많은 주차 대행 업체들이 영세하고, 노동자와 편법적으로 계약을 맺거나 일의 대우를 부당하게 하는 경우도 많다고 한다.


비오는 날 비 맞고, 눈 오는 날 눈 맞고


주차 대행 일을 하면서 가장 불편하고 힘든 일은 아무래도 좋지 않은 공기를 마셔야 하는 게 아닌지 싶었다. 대부분의 건물 주차장이 지하에 있고, 지상에 발FP파킹 노동자들을 위해 따로 휴게/대기공간을 만들어 놓는 곳은 거의 없기 때문이다. 자동차 배기가스도 많이 마셔야하는 곳이니 더욱 그러리라 예상됐다.


"지하에서 자동차 배기가스 계속 맡으며 일하는 것도 안 좋고요, 그리고 담배냄새도 정말 많이 맡게 돼요. 일 끝나고 코풀면 정말 시커~~~멓게 나오고 그래요. 기관지가 늘 안 좋은 편이고요. 미세먼지도 장난 아니잖아요. 자동차 외관에 있는 먼지나 기름때도 그렇고. 하루에 몇 십 대씩 자동차 문을 열고 닫고 하면 손도 어느새 새카맣게 더러워져 있다니까요. 자동차 자체가 매연덩어리이니까... 어쩔 수 없죠 뭐. 처음에 일했을 때는 피부에 두드러기도 나고 그랬는데 지금은 몸도 좀 익숙해졌나봐요."


또한, 지훈 씨의 표현대로 "비오는 날 비 다 맞고, 눈 오는 날 눈 다 맞는" 일 환경이다. 차가 들어오면 신속하게 타고 내려야 하고 많은 차량을 옮겨 다녀야 하니 우산을 쓰기 힘들기도 하고 번거롭기도 하다. 그러나 예민한 손님들은 몸이 젖은 채로 자기 운전석에 앉아 시트가 지저분해 지는 것에 대해 항의를 하기도 한다.


"서비스 쪽은 왜, 이러저러한 고객들이 있다 보니 항의를 받는 게 가장 피곤한 일이잖아요. 주차 일도 마찬가지예요. 비오는 날 시트 젖는다고 뭐라고 하는 손님, 마음대로 운전석 조정했다고 뭐라고 하는 손님, 차 안에 있는 블랙박스 영상 확인하고 주차하러 갈 때 과속한 거 아니냐고 따지는 손님들... 다양해요. 아 제가 당한 좀 악질적인 사례인데요, 어떤 손님이 예전에 자기가 긁혀온 자국을 저보고 했다고 덤터기 씌우려고 한 적이 있었어요. 결국 블랙박스 다 확인해서 제가 한 일이 아니라는 걸 다 밝혔지만 기분 나쁘죠. 저희는 이런 억지 쓰는 경우를 미연에 피하려고, 차타기 전에 차량 외관을 한번씩 체크해요. 긁힌 자국 있거나 찌그러진 부분 있으면 미리 찍어놓고 타지요. 나중에 괜한 문제 생기지 않도록."


젊은 사람들 중에는 흔히 손 댈 수 없는 외제차를 보는 맛에 이 일을 취미삼아 '알바'로 하는 사람도 있다지만, 대부분의 발레파킹 노동자들은 구조조정이나 은퇴 후 제2의 생업으로 택한 고연령자나, 다른 곳에서 쉬이 취업을 하지 못하는 전과자들이 많다. 강남 주변에는 고가의 외제 승용차도 많아 항의나 사고가 생기면, 대부분의 주차대행 노동자들에게 여간 곤혹스러운 일이 아닐 터. 다행히 지훈 씨는 지금까지 몇 년간 발레파킹 일을 하면서 사고가 난적은 한 번도 없다.


"제가 지금 일하는 건물에 자주 오시는 단골 손님이 있으세요. 그분이 몰고 다니는 차가 6억 짜리인데요. 워낙에 운전이 미숙한 분이라, 다른 건물 가는데도 일부러 저희 일하는 주차장까지 찾아와 차 맡기시는 손님이죠. 사실 고가차량 차주들은 사고 나면 서로 부담스러우니까 웬만하면 발레파킹을 안 맡기거든요. 그만큼 이분이 아주 특이한 케이스이죠."

[A-Z 노동 이야기] 프리미엄 고급 독서실의 최저임금 알바 이야기 /2016.5

프리미엄 고급 독서실의 최저임금 알바 이야기

 

 

 

정하나 선전위원

 

 

 

 

요즘은 독서실도 프리미엄 시대이다. <응답하라 1988>의 덕선이가 다니던, 더는 그런 독서실이 아니다. 호텔 비즈니스 코너 같기도 하고, 가로수길 카페 느낌도 난다. 하지만 예나 지금이나 독서실엔 모름지기 총무가 있기 마련. 프리미엄 독서실 총무는 프리미엄급 노동을 하고 있는지 궁금해진다. 상근 직장생활을 하다가, 독서실 총무로 일하게 된 지 5개월이 된 영 씨는 다른 독서실 알바들과 사정이 비슷하다. 준비하는 시험, 하고 싶은 공부가 있어서 그간 풀타임으로 하던 일을 그만두고, 비교적 시간 선용을 하기 수월할 거 같은 ‘독서실 알바’를 알아보았다고 한다.

 

“공부하시는 분 환영”의 함정

 

“독서실 알바는 주로 공무원 시험이나 임용고시, 취업 자격 준비하는 사람들이 많이 찾는 자리에요. 인터넷에 검색해 보세요. 알바 구인 사이트들 보면 공부하는 사람들에게 좋은 일자리라며 선전해요. 다른 독서실은 안내데스크 있는 창구 뒤편을 총무들이 쓰는 방으로 하고, 별일이 없으면 거기서 접수도 받고 공부도 할 수 있게 하지요. 제가 일하는 독서실 같은 경우는 안에 있는 좌석을 하나 따로 줘요.”

 

그렇다. 독서실 알바를 택하는 사람들은 조용하고 면학 분위기가 조성된 일터에서 일도 하고 공부도 할 수 있기에 이 일을 택한다. 실제로 일하다 보면, 이것저것 독서실 공간 정리하고, 민원 처리해야 할 게 많긴 하지만, 그래도 그 외 근무시간 중의 ‘대기시간’이 독서실 총무들에게는 개인 공부를 할 수 있는 시간으로, 채용공고 때부터 공식화된 근무조건이다.

영 씨가 일하는 독서실은 <응답하라 1988>에 나오는 거 같이, 남녀 실로 구분되어 쭉 칸막이 책상이 붙어있는, 그런 전통적인 독서실 스타일과는 약간 다르다. 프리미엄 독서실을 표방하고 있는 만큼, 방도 여러 가지 타입(등급)으로 나누어져 있다. 부스형으로 만들어져 사방이 막혀있고 좌석마다 문이 달려있는 1인용 좌석, 칸막이 책상에 사물함이 달린 지정좌석, 별도 예약 없이 이용하는 자율좌석 이렇게 3종류가 있다. 이 독서실에서는 총무들에게 1인용 책상 칸 하나를 제공해 준다.

 

“독서실 총무알바가 하는 일이 거의 비슷비슷할 거예요. 회원 오면 등록받고 좌석 지정해 주는 일, 오픈이나 마감 때 청소하거나 문고리나 프린터기, 전등 수리 등 자잘한 시설 관리를 하지요. 독서실 알바들이 시급 2-3천 원도 못 받고 일하는 경우도 허다한데, 그 이유가 일이 비교적 수월한 데다가 공부할 공간을 받기 때문인 거 같아요. 근데, 조금 이상한 거 같아요. 최저임금이라는 것은 ‘무슨 일을 하더라도 노동자에게 최소한 이만큼은 꼭 줘야’ 한다고 법으로 정해놓은 거잖아요. 제가 일하는 곳은 최임보다 조금 더 주고 있는데요, 이 일 찾을 때 검색해 보니까 아파트 상가 같은 데에 딸려 있는 독서실 같은 데에서는 정말, 최임 절반이나 1/3만 주고 일 시키더라고요. 노동법 관리 감독이 안 되는 사각지대인 것 같아요."

 

집에서 걸어 다닐 수 있는 가까운 독서실도 있었지만, 버스 타고 15분 정도 가야 하는 곳을 다니는 이유는 이 독서실이 최저임금보다 약 250원 정도 더 시급을 쳐주기 때문이었다. 이곳이 프랜차이즈 법인에서 운영하는 체인점 독서실이라서 법적기준을 준수하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독서실도 야간노동의 현장. 교대제로 돌아간다.

 

최저임금과 공부준비 외에 영 씨가 이 알바 자리를 택한 또 다른 이유가 있다.

 

"독서실 관리일도 교대제로 근무 스케쥴이 돌아가는 곳이라, 때로는 오전 시간을, 때로는 오후 시간을“저희는 3교대로 돌아가요. 오픈 조는 8시 반에서 14시까지, 미들은 14시부터 19시 반까지, 그리고 마감 조가 19시부터 새벽 1시 반까지 예요. 오픈-미들-마감 이렇게 돌고, 하루 쉬고 다시 돌아가는 것이죠. 마감일 때는 사람들이 다 퇴실하고 청소하고 가야 하니, 한 2시쯤 나오게 되지요. 저랑 교대로 일하는 총무들이 3명 더 있는데, 다른 분들은 택시를 타고 들어 가지만 저는 심야버스가 있어서 그거 타고 집에 가요. 물론 좀 피곤하긴 하지만... 다음날 쉬니까요. 예전에 직장생활 하면서 하루 종일 사무실 안에서 10시간, 12시간씩 있었던 거에 비해서는 지금이 나은 거 같아요. 요즘처럼 날씨가 따듯하고 좋은 계절이면, 해가 떠 있을 때 뭔가 나가서 하고 싶다는 생각을 하잖아요. 근데, 막상 일하다 하루가 다 가고, 주말에는 힘들어서 뻗어있고. 물론 지금 하는 일은 임시직 알바이고, 내가 자율적으로 시간을 온전히 조절할 수 있는 건 아니지만요.”

 

교대제나 심야노동이라고 하면 밤새도록 돌아가는 주야 맞교대의 제조업 공장을 떠올리곤 한다. 그러나 이처럼 한국사회에서 교대제는 곳곳에서 찾아볼 수 있다. 쉽게 볼 수 있는 24시간 편의점은 물론이고, 밤 11~12시까지 열려있는 대형마트/슈퍼마켓도 2개 조 이상으로 돌아간다. 우리가 자주 이용하는 멀티플렉스 상영관에서도 심야 영화를 보고 나오면 자리를 정리하거나 청소를 하는 노동자들이 아직도 일하고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영 씨가 일하는 곳은 오픈-미들-마감의 3개 시간대로 분할되어 일하는 3교대의 순환형(정해진 근무시간대를 순차로 근무하는 형태) 교대제를 택하고 있다. 24시간 운영은 아니고 새벽 1시 반에 폐문하긴 하지만, 3일에 한 번 마감 조 교대가 돌아오는 날은 교대제로 인한 심야노동을 하게 되는 것이다.

 

‘시끄럽다’는 컴플레인, 조용히 시켜야 하는 업무

 

독서실은 조용한 분위기가 필요한 곳이니 소음을 관리하는 게 총무의 중요한 일 중 하나이다. 하지만 결국 그 소음을 발생시키는 사람도 독서실 소비자이고 장기 이용권을 끊은 회원이다 보니, 알바 영 씨의 입장에서는 시끄럽게 하는 사람에게 주의를 주는 눈치가 보이는 어려운 일이다. 연필을 사각거린다든지, 책장을 좀 힘차게 넘긴다든지 사소한 행동이 아무래도 독서실에서는, 그리고 독서실 알바에게는 큰일이 되는 것이다.

 

“최임주는 곳 중에서는 육체노동 부하가 있거나, 고객 대면 감정노동 많이 해야 하는 서비스업 쪽 일이 많은데, 여긴 일종의 서비스업이지만 그렇다고 고객 응대 업무나 감정노동을 막 빡세게 해야 하는 건 아니긴 해요. 다른 곳보다 가격이 좀 비싸다보니 성인 이용객이 많아요. 그게 무슨 시험이든 취업 준비하는 분들이지요. 청소년들보다 소음에 굉장히 민감해서 시끄럽다는 컴플레인이 많은 편이에요. 이걸 처리하는 게 저는 좀 어렵더라고요. 한번 가서 말씀드리고 바로 수정되면 좋은데, 안 그러면 컴플레인이 계속되고 저는 가서 똑같은 말하기 눈치 보이고... 저한테 말하다가 정 안 되면 메모를 써 붙이기는 분들도 있는데 그러다 감정 상해서 싸운 분들도 계셔요. 난감하죠.”

 

영 씨가 어려워하는 일 중 또 하나는 화장실 청소였다. 건물 2개 층을 쓰고, 좌석수가 125개 정도가 되다 보니, 가정에서 보다 훨씬 자주 청소해야 한다. 그 일 자체가 힘들다기보다, 혹은 화장실이라는 공간이 더러워서라기 보다, 공공장소를 너무나 아무렇지도 않게 더럽게 사용하는 이용객들에 화가 나서 그 일이 어렵다.

 

“누군가가 치운다는 생각을 왜 안 할까요? 그렇게 더럽게 해 놓고 나 몰라라 하는 건 잘못된 거 같아요. 다 같이 사용하는 공간이니 관리할 책임 역시 모두에게 있는 것이죠. 책임의 정도가 다를 수 있긴 해도 말이지요. 돈 받고 고용된 사람에게 모든 책임을 전가하는 게 맞는 걸까, 누군가 내가 다 못하는 부분까지 대신해 이 공간을 깨끗하게 관리해주고 있구나가 아니라, 돈 받고 일하는 거면서 ‘왜 안해?’ 이렇게들 생각하나, 별별 생각을 다 하면서 불쾌해지는 거죠.”

 

최저임금 알바 노동자이자, 미래를 준비하며 일하는 청년 노동자 영 씨. 학자금 대출만 없다면 다음 진로를 준비하는 지금, 굳이 알바 하지 않고, 공부에 집중할 수 있었을 것이다. 학자금 대출 없는 세상, 알바 없는 세상에서 살고 싶다던 그녀는 이렇게 마지막 말을 남겼다.

 

“최저임금 받는 일자리 중에서 그래도 독서실 총무 알바는 노동조건이 나은 축이라고 생각해요. 아 물론 최저임금 안 주는 곳도 있긴 하지만요. 우리 독서실은 근태 보너스라고 하면서 출퇴근 시간 정확히 지켜서 근무한 시간이 20~25시간 정도 채워지면 수당을 따로 챙겨주는 것도 있으니까요. 사실 주휴수당을 사장님이 이상하게 왜곡해서 주는 거 같긴 한데, 그냥 참고 있어요. (웃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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