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Z까지 다양한 노동이야기] 놀이로 아픈 마음과 몸을 치료하는 놀이치료사를 만나다 / 2019.01

놀이로 아픈 마음과 몸을 치료하는 놀이치료사를 만나다

- 놀이치료사 박선영 님 인터뷰 

나래 (선전위원) 


놀이로 '치료'를 한다는 사실, 많이 낯설다. 치료 행위는 보통 약물치료, 물리치료 등으로 이해된다. 병을 낫기 위해선 필요한 치료이지만, 만약 아동의 마음이 아프다면? 방법은 달라진다. 놀이를 매개로 마음이 아픈 아동과 가족, 더 넓게는 우리 사회 전체가 건강할 수 있도록 노력하는 이들이 바로 놀이치료사다. 지난 1월 2일 박선영(가명)님을 만나 놀이치료사가 어떤 일을 하는 사람인지 자세한 이야기를 나누었다.

▲ 박선영 님의 일터 [출처: 박선영]


박선영님은 30대 초반으로 2012년에 대학원을 졸업하고 바로 일을 시작해, 2017년 출산과 함께 1년 6개월 가량 육아휴직을 한 뒤 다시 복귀해 놀이치료사로 일하고 있다. 여성에게 출산과 육아는 곧 경력단절로 이어져 불안함이 크기도 하지만, 다행히 당시 일했던 기관에서 4대 보험을 들어줘 출산 및 육아휴직을 사용할 수 있어 안정적으로 아이와 시간을 보낼 수 있었다.

덕분에 주변 놀이치료사의 부러움을 샀던 경험도 동시에 떠올렸다. 실제 취업포털 사람인이 '300인 미만 규모 기업'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육아휴직을 사용한 여성 노동자의 비율은 47%로 채 절반이 되지 않았다.

"어렸을 때부터 아이들에게 관심이 많아서 유치원 교사가 꿈이었어요. 사회복지학과에 입학했는데 공부하면서 뭔가 나랑 잘 안 맞는 다는 생각이 우선 들더라고요. 저는 일대 다수가 힘들어요. 일 대 일, 일 대 소수는 편한데 말이죠. 그래서 제 꿈을 찾으려고 이런저런 워크숍에 참여해봤어요.

마침 대구에서 재활심리학회 워크숍이 열려 참여했어요. 그 중 3시간짜리 한 과목이 놀이치료였죠. 놀이로 아이들을 변화시킬 수 있다는 점이 확 끌리더라고요. 그때부터 놀이치료를 해야겠다고 생각하고, 많이 알아봤어요. 저에게 터닝포인트였죠."


프리랜서로 감춰진 놀이치료사의 노동조건

놀이치료사의 하루는 오후에 시작된다. 보통 아이들이 어린이집, 유치원 마치고 치료를 받으러 오기 때문이다. 주로 만나는 아동의 연령은 아주 어린 경우는 15개월부터 초등학교 고학년까지다. 치료 40분, 부모상담 10분 총 50분 동안 일을 마치면 10분의 휴식 시간이 주어진다.

하지만 제대로 쉬진 못한다. 치료 기록을 남겨야 하고, 장난감 정리, 다음 상담 준비도 연이어 해야 하기 때문이다. 1시간 마다 상담 하나를 하는 셈이다. 보통 하루 4~5건을 하는데, 그러다 보면 어느새 하루가 간다.

전문적 지식과 기능이 요구되기 때문에 기본적으로 대학원에 진학해야 한다. 일을 하는 동안에도 필요한 자격증 취득, 세미나 참가 등 밀도 높은 공부와 경험이 필요하다. 그러나 직무에 대한 높은 요구에 비해 안정적 일자리는 찾기 어렵다.

일반적으로 놀이치료사는 계약직, 파트타임으로 일하는 경우가 대다수다. 만약 본인이 정규직으로 취업하길 원해도 애초에 파트타임, 프리랜서 등 형태의 구인만 한다. 그렇다 보니 임금은 상담 건당 보수를 책정하고, 4대 보험엔 가입되지 않는다. 심지어 지역마다 치료비용도 다르다.

"저희는 정해진 임금 가이드라인이 없어요. 임금인상도 거의 없죠. 5백 원 올리기도 힘들어요. 자격증 하나 더 따면 본인이 요구해요. 안 받아주면 나와요. 개인이 협상하는 거에요.

게다가 지역마다 책정 비용도 달라요. 서울은 1건당 3~4만 원, 경기도의 한 지역은 센터장들끼리 맞춰 2만2천 원으로 정해졌어요. 강원도의 경우 2만5천 원~3만 원까지 준다고 하더라고요. 차이가 많이 나죠. 심지어 1건당 1만5천 원 받는 분도 봤어요."


아동의 주체적 힘을 길러주는 놀이치료의 매력

"저는 놀이라는 매개를 가지고 아동이 지니고 있는 발달적ᄋ심리적 어려움을 해소하도록 역할을 해요. 최적의 발달을 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거죠. 놀이치료가 끌렸던 이유는 바로 스스로 힘을 갖게 한다는 점이었어요. 치료사는 조력자인거죠. 제가 강제로 아동을 이끄는 것이 아니라 놀이치료 안에서 스스로 성장하는 힘을 갖게 해주는 거예요. 그게 굉장히 매력이 있고, 지금도 좋아하는 점이예요."

아동의 주체적 힘을 길러주는 놀이치료. 그렇다면 놀이가 어떻게 치료로 작용하는 걸까? 인터뷰 전 사진을 통해 본 놀이실의 색이 눈에 띄었다. 푸른 바다색부터 강렬한 빨간색 장난감까지 색이 다채로웠다. 다채로운 공간에 발을 디딘 아동과 놀이치료사 간의 치료 과정을 물었다.

"처음에 아동이 오면 놀이실을 설명해줘요. 여기서는 너가 하고 싶은 대로, 마음대로 놀이를 하는 곳이고 소중한 곳이라고도요. 참고로 발달치료와 심리치료는 방식이 달라요. 심리치료의 경우 아동 주도적으로 아동이 선택하는 놀이를 읽어주고 반영해주고 촉진시켜줘요. 놀이실 안에서 아동이 존중 받는다는 느낌을 갖게 하죠. 거의 아동이 선택한 놀이를 하고 그 흐름을 끌고 가는 식이에요.

반면 자폐, 지적장애 등을 대상으로 하는 발달 놀이치료의 경우 치료사가 먼저 적극적으로 놀이를 제안하고 아동 스스로 할 수 있게 해요. 두 치료 방식이 다르죠. 아동의 상태가 다르니까요. 그래서 예민한 치료사는 심리치료와 발달치료를 중간에 섞어서 하지 않아요. 왜냐면 본인의 치료 태도가 흐트러진다고 생각해서요.

치료 과정을 좀 더 구체적으로 설명하자면 만약 아동이 나무를 꺼내요. 그럼 제가 '어? 나무 장난감을 꺼냈네'라고 하면서 그 놀이를 그대로 읽어줘요. 마치 스포츠 중계를 하듯요. 그러면서 아동 스스로 생각할 수 있게 하고, 의미가 없는 것은 의미를 부여해주는 거죠.

놀이 중에 좌절감을 느낄 수도 있는데 충분히 좌절감을 느꼈지만 다시 할 수 있다는 것을 알려줘요. 사실 부모와 지낼 때 그런 것들을 놓칠 때가 많거든요. 놀이치료사는 그런 것들을 다 들여다봐주죠. 아동에게 수용해주는 느낌을 주는 거예요."


아동의 상태와 양육자의 노력, 환경에 따라 케이스 마다 다르긴 하지만 짧으면 6개월에서 길면 2~3년 동안 치료를 한다. 심리치료의 경우 아동이 치료 과정에서 이뤄지는 것들을 빠르게 빨아드리고, 자기를 드러내는 친구들의 경우 치료가 빠르게 진행된다. 반면 자신을 드러내지 않고, 감추는 친구들의 경우 더 기다려준다. 발달 놀이치료의 경우 길게 5년 동안 치료를 한 아동도 있다고 했다.

박선영님은 무엇보다 놀이치료는 치료를 받는 아동도 중요하지만 부모의 역할도 굉장히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7~8년 동안 많은 아동과 부모를 만나면서 경험한 사실이다.

"부모가 엄청 중요해요. 저는 일단 어머니에게 어떤 점이 아이를 키우는데 힘든지 들어봐요. 사실 기술이 부족해서 자녀와의 관계가 저해되는 것도 있거든요. 만약 그런 양육팁을 알면 '그래서 그랬구나'가 되는 거예요. 그래서 양육팁을 알려주기도 해요.

치료 방향도 사실 부모가 어느 정도 정하는 것이거든요. 갑자기 치료를 중단할 수도 있어요. 그래서 저 같은 경우는 부모 상담 때 숙제처럼 부모에게 어떤 것들을 해달라고 내줄 때가 많아요. 이번 주는 이런 것들을 해보면 어떻겠냐고 제안하는 거죠. 당연히 성실히 하는 부모가 치료 결과도 좋아요.

그렇기 때문에 처음부터 얘기를 하는데, '놀이치료 시작할 때 어머님이 함께 해야 하고, 본인은 1주일에 40분을 만나지만 어머니는 그 외 시간을 엄청 많이 보내고 있기 때문에 어머님이 변하지 않으면 안된다. 그러면 치료는 시작할 필요가 없다'고 강하게 얘기해요. 같이 해야 한다는 점을 강조하죠."


성대 결절에 걸리는 치료사들

문제와 어려움을 해결하기 위해 어렵게 치료실 문을 두드린 사람들이기 때문에 치료사 입장에서 치료를 할 때, 사람을 항상 마주해야 하는 일의 어려움이 있진 않은지 궁금했다.

"아직도 치료에 대한 부정적 편견이 있다는 점이 가장 힘들어요. 본인 아이 치료하는 걸 비밀로 해달라고 하기도 하죠. 저는 처음에 병원에서 일을 배웠는데, 거기서는 한 아동이 여러 치료를 받는 경우가 많았어요. 발달장애 아동의 경우 많이 그래요.

그런데 사설센터에 와보니 협업하는 과정이 없더라고요. 세 명의 치료사가 한 아동을 치료하는데 서로 지원하고 소통하지 않는 거죠. 각자 하는 거죠. 물론 치료 영역이 다르긴 하지만 같이 할 수 있는 방향이 분명 있을 텐데 그런 체계가 없는게 아쉬운 점이에요. 아동들이다 보니 어린이집, 유치원, 학교 등 다양한 공간에 가는데 그런 곳들과 연계되면 치료에도 훨씬 좋을 텐데, 우리나라에선 그렇게 하지 않아요.

만약 어린이집에 연락해 아동 생활이 궁금하다고 물어보면 반응이 반반이에요. 어떤 선생님은 받아주기도 하지만, 반면에 완전 싫어하고 정보를 줄 수없다고 해요. 업무 외 일로 취급하기 때문이죠. 사실 맞기도 하고요. 하지만 아쉽죠. 조력자가 필요하고 같이 하는 회의나 과정이 필요한데 말이에요.

그리고 아무래도 사람을 상대하는 일이다 보니 어려움이 있긴 해요. 그래서 주변 놀이치료사들과 교류를 통해서 많이 풀어요. 동시에 노력도 하죠. 치료를 해주기도 하지만 자기 문제가 있기도 하거든요. 그런데 그런 것들이 치료에 엮이면 안되기 때문에 주의하기 위해 자기 분석이란 걸 받기도 해요. 일종의 상담이죠."


어려운 점도 있겠지만 보람에 찼던 경우도 많다고 했다. 치료를 마치고 종결할 때 뿌듯한데 바로, 아이들이 주는 기쁨이라고 했다. 처음 만났을 때 소통이 잘 안됐는데 종결할 때 최소한의 사회 규칙을 알게 되는 등의 변화를 함께 할 때의 경험을 떠올리기도 했다.

기쁘고 보람찬 경험, 어렵고 힘든 점을 이야기 하면서 놀이치료사가 많이 겪게 되는 신체적 건강의 어려움은 없는지 물었다.

"우스갯소리로 항상 앉았다 일어나기 때문에 나이 더 들어서 무릎 아프겠단 이야기를 하기도 해요. 무엇보다 직업적으로 말을 많이 하기 때문에 목이 정말 아파요. 특히 언어치료사의 경우 성대 결절을 많이 겪어요. 그래서 저도 목이 안다치게 하려고 노력해요. 직업적으로 말을 크게 하고, 또박또박 하려는 직업적 습관이 모두 있죠."

"노동환경이 바뀌어야 부모도, 자녀도 행복할 수 있어요"

박선영님이 그동안 일 해오며 최근 두드러지는 문제 사례는 바로 아동의 영상물 중독이다. 자녀와 놀아주기 힘들고, 어려운 부모의 조건에서 아동의 영상물 노출은 하지 않기 어렵다. 부모의 장시간 노동, 교대근무, 심야노동은 바로 부모와 아동이 보내는 절대적 시간을 줄인다. 그렇기 때문에 아동과 부모의 개인적 문제로만 치부하고, 접근하는 것이 아니라 노동 측면을 잘 살펴봐야 한다고 강조했다.

"환경적 요인이 바뀌어야 해요. 상담하면 보통 어머님들이 많이 오세요. 아버님들이 오는 경우는 굉장히 적죠. 어머님만 아이를 보는 경우 주 양육자의 스트레스도 증가해요. 만약 아버지들의 노동시간이 줄어들면 양육에 함께 할 수 있기 때문에 확실히 양육의 질은 높아질 거예요."

마지막으로 하고 싶은 말을 묻자 "놀이치료사가 치료사로서 신념을 제대로 지킬 수 있도록 모두가 노력하면 좋겠어요"라는 자신의 다짐을 전했다.

[A~Z까지 다양한 노동이야기] 고공 위의 노동자, 타워크레인 기사를 아십니까? / 2018.12

고공 위의 노동자, 타워크레인 기사를 아십니까?

건설기계 타워크레인 기사 김주호, 윤원경, 김영호 님 인터뷰

재현 상임활동가


이번 일터는 세상의 모든 건축물을 만드는 데 있어서 '꽃'이라 할 수 있는 타워크레인 기사 노동자들을 만났다. 건설 현장에서 중요한 역할을 함에도 타워크레인 기사들은 제대로 쉬지도 못하고, 오히려 생명의 위협을 느끼고 일하면서 여성이라고, 노가다 꾼이라고 차별받고 있다.

인터뷰는 지난 11월 14일 건설노조 경기남부타워지부 사무실에서 경기도 안산시 선부동 아파트 건설현장에서 일하는 김주호 님, 경기도 안성 아파트 건설 현장 윤원경 님, 경기도 의왕시 백운호수 근처 아파트 건설 현장 김영호 님과 진행하였다. 


김주호 "타워크레인이라는 장비는 아파트를 예로 들면 아파트 주거 건물, 상가, 주차장 등 전체 건설 현장 작업에 필요한 장비, 자재를 작업자와 작업 공간에 운반하는 기계예요. 저희는 그 장비를 운전하는 기사고요. 건설 현장에 타워크레인이 없으면 일 자체가 안 돌아간다고 봐야 해요. 한 현장에서 몇 개의 타워크레인이 필요하냐는 질문도 많이 받는데요, 하나의 타워크레인이 보통 반경 50m~70m를 담당해요. 아파트로 따지면 한 동 정도가 되고요. 건설 현장 규모가 크면 더 많은 타워크레인이 필요하고요."
 

화장실 갈 시간도 없는 일상

김주호 "제가 지금 일하는 현장은 집에서 10km 정도 떨어져 있어요. 이게 타워크레인 기사 치고 아주 가까운 거리에 있는 거예요. 아침에 일어나는 것부터 따져보면 새벽 5시에 기상해서 출근 준비하고, 5시 반에 집에서 나와요. 운전해서 6시에 현장 도착하면 아침 식사하고 6시 반에 대기실에 가요. 기기서 작업복 갈아입고 차 한 잔 마시면 7시죠. 아침 조회 갔다가 7시 20분 정도에 작업해야 하는 타워크레인으로 올라가요. 올라가면 7시반 정도고 그때부터 점심 먹기 전까지 쭉 작업해요. 보통 점심은 11시 반부터고 13시까지 밥 먹고 쉬어요. 13시부터는 오후 4시 반까지 쭉 작업하고요. 4시 반부터는 대기실에 와서 씻고 옷 갈아입고 5시에 퇴근해요. 퇴근하고 저는 운동을 워낙 좋아해서 헬스장으로 가거나 밖에서 런닝 하다가 집에 들어가요. 술 약속이 있거나 특별한 일이 없으면 밤 10시 전에는 자려고 해요. 출근할 때는
특별 할 것 없이 매번 똑같이 반복해요."


타워크레인 기사들은 근로계약서상으로나 실제 현장에서나 점심 식사 외에 공식적인 휴식 시간이 있거나 마땅한 휴게 공간이 없다고 한다. 더 큰 문제는 생리 현상을 해결할 시간도 없다는 것이다.

윤원경 "화장실 가는거 만큼은 최대한 대기실에서 해결하려고 하는데 그래도 종종 도저히 시간이 없을 때가 있어요. 그래서 대부분 여성 타워크레인 기사들은 최대한 물을 마시지 않으려고 해요. 어떨 때는 하루에 종이컵만큼도 물을 마시지 않을 때가 있어요. 그래서 여성 타워크레인 기사들은 방광염으로 고생해요."

반복되는 실업과 취업 속에서 불안정한 삶

김영호 "저희는 대부분 건설회사에 직접고용되어 있지 않고 원청에 파견돼서 일해요. 건설회사가 공사할 때 타워크레인 임대사랑 장비 대수, 임대료, 인건비가 얼마인지 계약하거든요. 계약을 마치면 임대사에서 원청 건설 현장으로 저희를 보내서 일하는 거죠."

윤원경 "이런 타워크레인 임대회사 100여 개 정도 있는데요. 너무 많아서 노동조합에서는 개별 임대회사와 일일이 협의할 수가 없어요. 그래서 임대회사도 협의회를 만들고 거기 대표가 노동조합과 교섭을 해서 전반적인 타워크레인 기사 임금이나 복지 등 처우를 상의하고 결정해요."

이렇다 보니 민주노총 조합원은 단체협약으로 정한 표준 임금이 있어서 어떤 현장에서 일하던지, 경력이 어떠한지 관계없이 같은 급여를 받는다. 반대로 노동조합이 없는 개별 타워크레인 기사들은 1:1 노사 계약을 통해 결정되기 때문에 상대적으로 부당한 대우를 받는 경우가 많다고 했다.

김영호 "타워크레인 노동자들은 여름휴가도 같이 정하거든요. 그게 8월 둘째주 월요일이에요."

타워크레인 기사들이 쉬면 건설 현장은 다 같이 멈춘다고 한다. 공사에 필요한 장비를 운반할 수 없기 때문이다. 결국 전국의 건설 현장은 8월 둘째 주에 다 멈춘다.

윤원경 "임금에 관해서 이야기하고 싶은게 있는데요. 주변분들 이야기를 들어보면 타워크레인 기사들이 고액의 임금을 받는다고 말씀하셔요. 그런데 사실 그렇지 않거든요. 저희가 주 52시간으로 한 달 일해 받는 기본급이 전체 월급에서 50%예요. 거기에 평일에 연장 노동하고 주말에 일하고 연휴에 일하고 상여금을 받는 게 나머지 50%고요. 그런데 왜 너희는 월급도 많이 받는데 맨날 투쟁하냐는 이야기를 들을 때는 속상해요."

효율 만능주의에 위협받는 타워크레인 기사


김주호 "아무래도 안전 문제죠. 작업자, 신호수 모두 안 다치는 게 중요한데 일하다 보면 장비로 작업자를 친다던가, 크레인에 자재 결속이 안 돼서 떨어질 것 같다던가, 신호수와 소통이 안 돼서 사고가 날수 있거든요. 그럴 때는 정말 머리카락이 쭈뼛쭈뼛서요."

타워크레인 기사들은 이미 건설현장은 작업자들이 개별적으로 조심조심 일해서 사고를 예방할 수 있는 정도를 넘어섰다고 말했다.

김영호 "타워크레인 위에서 일하면 아래쪽에 시야 확보가 안 되거든요. 그래서 신호수 사인하고 무전기로 말하는 내용을 따라서 일해야 하는 데 그때 어려움이 있어요. 무전기는 현장에서 여러 사람이 같이 사용하다 보니까 자주 혼선이 오거든요. 그러다 보면 신호수 말이 안 들릴 때가 있어요. 그리고 요즘엔 건설회사에서 비용을 줄인다는 이유로 아주 기본적인 한국말이 가능하면 이주노동자들에게 신호수 업무를 시키는데, 그분들이 무슨 말을 하는지 전혀 못 알아들을 때가 있어요."

윤원경 "지금 상황은 타워크레인 기사나 신호수가 자기가 알아서 잘해서 해결할 수 있는 게 아니에요. 현장은 무조건 최소 비용으로 최대 효과를 내는 것만 관심이 있으니까 두 명이 해야 할 일을 한 명이, 전문적인 일은 비전문가가 하면서 결국 사고 위험이 높아지는 거죠."

높아지는 건물만큼이나 올라가는 노동강도

윤원경 "다들 그런 생각 안 들어요? 예전보다 일이 더 많아지고 바빠지지 않았나요? 예전에는 타워크레인 기사가 하는 일이 지금처럼 많지 않았거든요. 지금은 20개월 하던 공사를 12개월에 다 끝내야 하니까 하루에 해야 할 업무량도 많아지고 속도도 빨라졌어요."

김영호 "맞아요. 지금은 건설 현장에서 타워크레인의 역할이 90% 정도 되는 것 같아요. 예전에는 작업자 인력으로 했던 일들도 이제는 전부 타워크레인에 의지해서 하거든요."

그래도 노동조합이 있기에 소중한 변화들이 일어났다.

윤원경 "저희가 몇 년 전만해도 일요일에 쉬는 건 꿈도 못 꿨거든요. 매번 출근했어요. 게다가 돈도 안 받고요. 지금 생각해 보면 대체 그걸 왜 했는지 모르겠는데요. 노동조합을 만들자고 처음 이야기가 나왔을 때 제일 큰 요구가 일요일은 쉬자였어요. 결국 노동조합을 만들고 일요일에 쉬는데 '아! 이게 정말 작은 행복이구나'라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그때부터 노동조합의 중요성을 깨닫고 작업자들이 요구하는 안전문제, 노동조건 문제 이런 것을 바꾸려고 싸우게 된 것 같아요."

"제가 하는 일이 자랑스러워요"

김영호 "가끔 아내랑 아이랑 현장에 와서 제가 일하는 것도 보고 끝나고 같이 밥도 먹고 그래요. 며칠 전에도 아들이 그러더라고요. 친구들한테 자기 아빠가 타워크레인 탄다고 하니까 어떻게 그렇게 높은 데서 일하냐고 너무 멋있고 부럽다고 했다고요. 아무래도 그런 얘기 들을 때 자부심도 느끼고 좋아요."
 

김주호 "저는 밖에 나가서 일해서 번 돈으로 아내랑 딸이 한 달 먹고 살고 조금 남으면 저축도 할 수 있어서 다행이라고 생각은 하는데, 자부심은 글쎄요. 대한민국 중년 남자들이 다들 그렇지 않나요? 내가 하는 일에 보람을 느끼고 그럴 분이 몇 명이나 있겠어요."

윤원경 "제가 사회에 나왔을 때 대부분 여성이 은행원이나 회사 경리로 일하다 결혼하면 그만두거나 못했거든요. 그래서 저는 결혼하고도 할 수 있는 일하려고 타워크레인 기사가 되었는데 지금까지 후회하지는 않아요. 다만 사회적으로 건설 일하는 사람에 대한 인식이 바뀌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은 해요. 세상에 모든 건축물은 노동자들의 손으로 만들었는데 왜 그걸 만든 노동자들은 노가다라고 비하하고 무시하는지 모르겠어요."

타워크레인 기사의 건강과 안전을 위해 꼭 필요한 권리

김영호 "며칠 전에 비가 많이 왔는데 계속 일을 시키는 거예요. 제가 지금 사용하는 타워크레인은 모터가 중심인 기계라서 열을 식혀주는 펜이 있는데 거기에 물방울이 들어가면 고장 나거든요. 그래서 현장 관리자한테 지금 작업 중지해야 한다고 말했는데 어떻게 멈추냐고 하더라고요. 지금 작업 중지하면 인건비는 인건비대로 주고 일은 일대로 못하니까 강행하겠다는 거죠. 이럴 때 정말 답답해요."

날씨 상황에 따라 타워크레인 기사는 물론 동료 노동자들의 건강을 위해 작업을 중지하고 싶어도 전혀 그럴 수 없는 상황이라고 한다.

윤원경 "눈이 오거나 바람이 불거나 이런 악천후 때는 정말 작업하기 어렵거든요. 그런데 아직도 매뉴얼 상 작업을 중단할 수 있는 기준이 모호하다 보니까 현장에서 관리자와 작업자 판단이 다 달라요. 현장 관리자들은 타워크레인 기사들이 꼬장 부려서 작업 못 하게 한다고 뒷돈 달라고 일부러 그러냐고 매도하고 우리는 현장관리자들이 노동자 안전이나 건강에 대해서 무책임하다고 비판하고요."

여전히 여성 노동자 앞에 놓인 장벽

윤원경 "예전과 많이 바꼈다 해도 여전히 여성 노동자들이 고용에 있어서 피해를 보는 문제는 남아 있다고 생각해요. 원청에서 타워크레인 기사를 채용해야 하는데 똑같은 경력이나 기술이라도 여성이면 아무래도 한 번 더 고려하더라고요. 노동조합에서 여성 노동자 권리를 위해서 같이 싸우고는 있는데 여전히 우리 앞에 놓인 장벽을 매일 실감해요."

효율성과 바꿀 수 없는 타워크레인 기사의 건강과 안전

윤원경 "저는 건설회사, 임대사, 작업자 모두 인식을 개선하기 위한 노력이 필요한것 같아요. 최소한의 효율만큼 작업자들 모두 건강하고 안전하게 일할 수 있도록 하는 게 얼마나 중요한지 깨달았으면 해요. 또, 타워크레인 기사들이 혼자 일하는 작업 특성 때문인지 서로 잘 몰라요. 그래서 개인적인 어려움이나 고민도 모르고 서로 안부 묻고 교류하고 그런 게 부족한 것 같아요. 앞으로는 서로 어울리면서 그렇게 지냈으면 해요."

김영호 "중장비를 운전하기 때문에 위험한 업무를 하고 있고 실제 사고도 자주 일어나니까 안전하게 일하는 게 최선이 아닐까 생각해요."

김주호 "저는 동료들이나 후배들이 고지혈증, 혈압, 당뇨 이런 약 먹는 경우가 많으니까 운동 많이 하라고 얘기하고 싶어요. 다 같이 건강하게 잘 지냈으면 좋겠어요."

[A~Z까지 다양한 노동이야기] 어둠이 내린 학교는 누가 지킬까 / 2018.11

어둠이 내린 학교는 누가 지킬까

[인터뷰] 학교 야간당직 경비 노동자 이한수 님 인터뷰                                                                                                                                                          나래, 한국노동안전보건연구소 상임활동가 

학생과 여러 노동자로 북적이는 낮의 학교. 하지만 어둠이 내린 학교를 홀로 지키는 이들이 있다. 바로 학교 야간당직 경비 노동자들이다. 밤의 학교를 지키는 학교 야간 당직 노동자들은 어떤 일을 할까? 많은 사람이 잘 알지 못한다. 가리워진 이들을 만나기 위해 인천의 한 초등학교에서 일하는 이한수(가명) 님을 지난 10월 25일 만났다.
 
과로 권장하는 근로기준법
 
학교 야간 당직 경비 노동자들은 감시·단속적 노동자다. 근로기준법 제62조에 따라 노동시간, 휴게 및 휴일 등 규정이 적용되지 않는다. 한마디로 무방비 상태다. 이한수 님은 오후 3시 30분에 집을 나서 일터인 학교로 향한다. 오후 4시 정도에 학교에 도착하면 바로 행정실로 향한다. 당직 근무 일지를 받기 위해서다. 오후 5시가 되면 학교 문을 잠그기 시작한다. 하지만 완전히 문을 다 잠그는 때는 밤 9시 30분 정도다. 학교 체육관을 지역 주민에게 개방하기 때문에 배드민턴을 치고 가는 사람들이 다 나가는 시간에 맞출 수밖에 없다. 최종 문을 닫는 시간은 밤 10시다. 문을 닫고 들어와 한 번 더 점검한다. 일을 마치고 밤 10시 40분 쯤 잠자리에 든다. 하지만 잠을 깊게 자기 어렵다. 간혹 비상벨이 울리기도 하고, 문이 1cm만 열려 있어도 작동되지 않는 세콤 때문에 몇 번씩 잠자리에서 일어나야 한다.
 
그렇게 긴장한 상태로 잠자리에서 일어나면 새벽 5시 30분이다. 씻는 일은 뒷순위다. 우선 학교 문을 열어야 한다. 그렇게 문을 다 열고 나면 겨우 씻을 수 있다. 문단속만 하지만은 않는다. 보이는 데를 쓸고 청소한다. 교감, 교사분들이 학교가 깨끗해졌다며 인사도 건넨다. 오전 8시가 되면 집으로 향한다. 여름, 겨울방학 때도 학교는 개방하기 때문에 독같이 근무한다. 이렇게 평일엔 꼬박 16시간을 교대 근무 없이 혼자 일한다. 주말은 이틀 내내 48시간 혼자 학교에 있다. 용역 소속 당시 2일 중 하루는 유급 휴무였지만 올해 9월 1일부터 교육감에게 직고용되고 나서 모든 휴일이 무급제로 전환됐다. 겨우 2일 가족, 친구들과 보낼 수 있는 시간도 이젠 없다.
 
"무급으로 쉴 수는 있죠. 그런데 열악한 처우에서 이틀을 무급으로 쉬면 임금을 더 못 받아요. 그러니깐 다들 쉬지 못해요. 이번 달 기준으로 평일 하루 소정근로시간이 6시간이고 22일 일한거로 하면 총 132시간이에요. 주말은 하루 소정근로시간이 9시간으로 되어있고 8일 계산하면 총 72시간이죠. 한 달 총 204시간 일 한 것으로 돼서 사대보험 제하면 월 140여만 원 을 받아요. 대체 근무자를 세워서 쉬려고 해도 이 분들 일당이 6만 원, 이틀로하면 총 12만 원이죠. 이 돈이 지금 임금에서 빠지게 되면 임금이 확 줄어요. 용역소속일 때보다 더 나빠진 거죠."
 
누구를 위한 정규직화죠?
 
정부는 지난 7월 공공부문 비정규직 정규직화 가이드라인을 발표하며 용역 소속의 간접고용 노동자를 직고용하라고 했다. 인천교육청 역시 이 가이드라인을 따랐다. 하지만 무늬만 직고용일 뿐 이한수 님이 체감하는 긍정적 변화는 적었다. 오히려 악화된 부분에 아쉬움이 크다.
 
"올해 추석 연휴가 길었잖아요. 용역 소속일 땐 명절 때 학교에 너무 오래 있으니깐 하루 쉴 수 있게 대체 근무자를 보내줬어요. 그런데 올해 직고용으로 바뀌고 나선 단 하루도 쉬지 못하고 학교에 있었어요. 직고용되고 나서 부풀었던 마음을 꺼트린 거죠. 전과 같든지 아니면 더 나아져야 하는데 그렇지 않아요.
 
그리고 무엇보다 일하는 시간을 제대로 인정받지 못하고 있다는 점이에요. 평일 16시간, 주말 24시간을 학교에 있고 일을 하는데 인정해주는 시간은 평일 6시간, 주말 9시간이에요. 나머지 10시간, 15시간 인정 못 받고 있어요. 전부 인정해달라고도 안 해요. 최소한 절반이라도 인정해줘야 하는 거 아닌가요?"
 
학교 야간 당직 노동자가 하는 일을 사람들은 잘 모른다. 하지만 이한수 님이 없는 학교는 상상을 못 한다. 소소하게는 학생들 잃어버린 물건을 찾아주는 것부터 다쳐서 밴드를 찾는 학생들에게 밴드를 붙여주는 것까지 여러 가지다. 밴드도 일부러 보건실에 가서 부탁해 받아오기까지했다.
 
학교 야간당직 노동자로 지키고 싶은 자부심 
 
노동시간조차 제대로 인정받지 못하지만, 학교 야간당직 경비 노동자로서 자부심은 단단하다.
 
"제가 경비를 해야겠다고 생각한 건 3년 정도 됐어요. 맨 처음 교육받고 나간 곳이 아파트예요. 학교보다 아파트 경비 일이 돈을 더 벌어요. 그런데 그럴 수밖에 없더라고요. 잠을 3시간밖에 못 자요. 돈을 더 주긴 하지만 아주 사람을 잡아요.

학교는 우리 집이란 생각이 들어요. 이렇게 큰 건물에 나 혼자밖에 없어요. 그런 책임감이 있죠. 어떤 사람은 무섭지 않냐고도 물어요. 나는 무섭지 않다, 자신 있다고 대답하긴 하는데 실제 근무를 해보니깐 무섭긴 해요. 밤에 아무것도 없고, 큰 건물에 혼자 있으니 말이죠. 헤드라이트 들고 학교 한 바퀴 돌 때 내가 이 큰 건물을 다 지킨다는 생각, 뿌듯함이 있어요. 또 그런 마음이 없으면 학교에서 근무 못 하겠더라고요."
 
자부심을 꺾는 노동환경
 
하지만 요즘 들어 자꾸 자부심을 꺾는 일이 있어 속상하다.
 
"노동시간을 제대로 인정 못 받는 게 정말 속상합니다. 그리고 본래 맡은 업무 외의 것을 자꾸 요구할 때도 그렇고요. 직업에 귀천이 없다고 하는데 그렇지 않은 경험을 할 때가 있어요."
 
자는 공간도 문제다. 당직실이 있기는 하지만 시설이 좋지 않다. 여름엔 모기가 너무 많아서 괴롭다. 겨우 몸을 누울 수 있는 공간이 있는 정도다. 에어컨이 있지만, 작동이 잘 안되서 얘기를 하니 그때서야 리모컨을 줬다. 처음 들어갔을 때 충격이었다. 이불이 너무 지저분하고, 새까매서 도저히 잘 수가 없다 싶어 얘기하니 세탁을 해줬다. 하지만 너무 오래된 이불이라 더는 쓸 수 없어서 바꿔 달라고 하니 그때 새 이불을 학교에서 사줬다. 지금은 바꾼이불을 덮고 지내고 있다. 모든 게 얘기를 해야 그제야 겨우 들어주는 식이다. 정기적으로 관리를 해주거나 미리 물어봐 주는 경우가 드물다. 이한수 님은 밥 먹는 것도 문제라고 입을 열었다.
 
"우리는 나가서 사 먹을 수가 없어요. 학교에 있어야 하잖아요. 그래서 보통 도시락을 싸 오거나, 급식소에서 조그만 통에다 먹을 걸 담아서 줘요. 아니면 김치만 갖다 놓고 간단히 해 먹는 정도죠. 탕비실도 없어요. 화장실에서 겨우 쌀 씻어서 제가 집에서 밥솥 하나 가져왔는데 거기다 해먹고 그래요.
 
교육감 직고용이 되면서 식대로 13만 원이 나와요. 용역 소속일 땐 식대가 없었거든요. 그런데 나와서 좋지가 않아요. 식대가 나온다는 이유로 1끼당 3,100원~3,500원을 식대에서 빼요. 학교 행정실에서 급식실에서 밥을 받아먹냐고 묻길래 그렇다고 하니깐 식대를 빼야 한다고 하더라고요. 그전에는 그렇게 하지 않았거든요."
 
종교 활동도 못하는 학교 야간당직 노동자의 고충 
 
이한수 님은 기독교 신자다. 하지만 학교 야간당직 경비 일을 하게 되면서 주말에 교회에 나가지 못하고 있다. 1인 교대근무제, 무급 휴일로 인해 종교 생활도 하지 못하고, 가족, 친구 등 사회적 관계가 전부 끊겨 버려 속상하다고 했다.
 
"원래 교회를 다녔어요. 그런데 학교 일 시작하고선 주일을 못 지키고 있죠. 너무 마음이 쓰여요. 종교 생활도 못 하게 돼서 안타깝죠. 그리고 원래 친목회가 몇 군데 있었어요. 그런데 이젠 다 끝났죠. 못해요. 겨우 같은 일 하는 사람들끼리 친목회 만들자고 하고 있는데, 어려움이 크죠. 아내하고도 쉬는 날엔 근교로 놀러 가기도 하고 그랬는데 무급 휴일이 되고 나선 그것도 못 하고 있어요. 많이 아쉬워하죠."
 
일하다 다치면 건강이 아니라 해고 걱정
 
"회사는 상급 단체가 없는 자체 노동조합이 대표노조에요. 시설 쪽이랑 주차 업무노동자가 민주노총 공공운수노조 조합원이고요. 노동조합은 5~6년 전에 일하면서 부당한 것도 많고 처우는 나빠지다 보니까 한마음이 돼서 만들었어요. 저는 그때부터 지금까지 쭉 조합원이었어요."
 
이길섭 님은 얼마 전까지 용역 업체 소속이다 보니 2~3년에 한 번씩 업체가 바뀌면서 고용 승계 불안, 원청과 용역 업체 간 책임 소재 떠넘기기 등으로 인해 하루도 마음 편할 날이 없었다고 말했다.
 
"더 큰 문제는 이전에는 회사가 대표노조도 아니고 요구를 들어주는 것도 아니지만 그래도 개별 교섭도 해왔고 우리가 목소리라도 낼 수 있었는데 최근에 정규직으로 전환하고 나서는 개별교섭을 해야 할 법적 책임이 없다 보니 전혀 응하지 않고 있어요. 그래서 저희가 지속해서 이 문제를 요구하고 있어요."
 
또, 노동조합은 같은 시설관리 업무 노동자 중 일부가 감시단속적 업무라는 이유로 근로기준법 63조에 의해 노동시간, 휴게, 휴일에 관한 근로기준법 적용이 제외 되는 문제를 제기하고 있다.
 
"여기서 일하기 전까지는 노동조합에 대해 이야기만 들어봤고, 회사에서 일하다 억울한 일이 있다고 해도 어떻게 일일이 이야기하나 했었는데 결국 노동자가 자기 권리를 찾기 위해서는 노동조합이 있어야한다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대기업도 경총으로 목소리 내고 중소상인들도
협회가 있잖아요. 그렇다면 노동자들도 노동조합이 있어야죠."
 
명절때라도 쉬면 안될까요? 
 
노인빈곤율이 높은 우리나라에서 60~70세의 고령 노동자들에게 실업은 곧 삶의 불안으로 이어진다. OECD 한국경제보고서에 따르면 2016년 기준 우리나라 노인 빈곤율은 48.6%로 OECD 평균(12.4%)의 4배에 달한다. 한국을 포함 호주 35.5%, 일본 19.4%, 그리스 15.8%,
미국 14.6% 등 5개 국가만이 OECD 평균을 웃도는데 그중에서도 우리나라 노인빈곤율은 압도적으로 높다. 하지만 가계의 노후 준비는 미흡하다. 연금의 소득대체율은 39.3%에 머물고, 사적연금 가입률은 24%에 불과하다. 그렇기 때문에 저임금에 힘든 일이어도 꾹 참고 버틴다. 하지만 이제 조금씩 목소리를 모으고 있다. 이한수 님 역시 꼭 노동환경이 바뀌어야 한다고 마지막으로 강조했다.
 
"모두 똑같이 고생하는데 뭐라고 제가 얘기하겠어요. 그나마 용역 소속일 때보다 고용이 안정화된 건 다행이에요. 하지만 다른 것들은 아직 갈 길이 멀었죠. 정부와 교육청에 꼭 하고 싶은 말이 있습니다. 열악한 환경에서 일하는 학교 야간당직 경비 노동자들의 처우 개선이 필요합니다. 마음 놓고 건강하게 이틀만이라도 유급으로 제대로 쉴 수 있으면 좋겠어요. 그리고 최소한 명절 때라도 하루, 이틀 정도라도 쉴 수 있도록 여건을 만들어주면 좋겠습니다."

[A~Z 다양한 노동 이야기] 작품 뒤에 보이지 않는 사람들 / 2018.10

작품 뒤에 보이지 않는 사람들

 - 예술의전당 시설관리 노동자 이길섭 님 인터뷰

 재현 선전위원장

 

 이번 <일터>는 세계적 수준의 공연 종합예술기관이라고 할 수 있는 예술의전당에서 일하는 노동자를 지난 920일에 만났다. 예술의전당 시설관리 노동자들은 시민들이 세계적 수준의 공연과 작품을 관람할 수 있도록 밤낮 보이지 않는 곳에서 묵묵히 일하고 있다. 그런데 최고의 작품과 달리 이길섭 님이 일하는 업무 환경은 최악이었다.


한국 최고의 종합예술기관 시설관리 노동자로 살아가기

저는 20039월에 입사해서 지금까지 15년 동안 시설관리 업무를 하고 있어요. 시설관리 분야는 기계, 전기, 방재, 제어, 통신, 영선실로 크게 나누는데 저는 기계 파트를 담당하고 있어요. 업무는 서예관, 오페라극장, 한가람미술관, 디자인 미술관, 음악당까지 예술의전당 전체 건물 시설을 관리해요.”

우리가 예술의전당에서 공연이나 작품을 관람할 때 필요한 전기, 조명 등은 물론 냉난방, 환기 등 쾌적한 환경이 갖춰진 것은 바로 이길섭 님 같은 분들의 노력 덕분이었다.

기계 분야는 주로 시설물과 기계 등을 유지보수하고, 전기 분야는 전체 조명 등을 유지보수해요. 방재는 화재 예방을 위한 스프링쿨러 등 유지보수하고, 제어 분야는 고객 민원에 따라 전체를 컨트롤 하는 업무를 해요. 통신은 전체 통신, 전화선 등을 유지보수하고, 영선실은 계단, 소파 등 고객이 이용하는 편의시설에 대한 유지보수업무를 하고 있어요.”

무늬만 정규직 전환

올해 71일부터 정규직으로 전환됐어요. 예전에는 경비, 미화, 시설 관리 등 행정직이 아닌 이상 용역업체 소속이었는데 문재인 정부가 공공부문 비정규직 정규직화 이야기를 하면서 저희한테도 그 영향이 미쳤어요. 문제는 전환하면서 이전 근속연수도 보장하지 않고 연차나 휴가, 처우 문제 역시 신규채용 형태가 되었어요. 동료 대부분이 여기서 10년 이상 근무했는데 결과적으로 임금은 똑같고, 이전에 있던 연차가 더 줄었고, 하계휴가는 아예 없어졌어요.” 

문재인 정부의 1호 공약인 공공부문 비정규직 정규직화는 사회적으로 큰 반향을 일으켰다. 그러나 이후 모든 공공기관은 청와대 눈치를 살피며 한정되어있는 예산과 인력으로 비정규직의 정규직화 계획을 발표했다. 그 결과 예술의전당 시설관리 노동자처럼 지난 경력, 복지 및 처우 등에 있어서 제대로 인정받지 못하고 정규직으로 전환되었다.

객의 편의를 맞추기 위한 노력

“9시에 출근해서 사무실에서 업무 회의를 해요. 조회 같은 거죠. 조회에서 오늘 어디 기계가 고장 났으니 고치라든가 정기점검을 하라든지 업무 지시를 받아요그러면 서예관에서 각종 공구를 챙겨서 현장에 나가서 일해요. 오전 업무가 11시반에 끝나는데 이때까지 일을 마치면 오후에 다른 일을 하고 그렇지 않을 때는 밥 먹고 지속해서 그 업무를 마쳐요. 중간에 고객한테 민원을 받거나, 비상이다, 그러면 그쪽 일에 투입돼요.”

이길섭 님은 예술의전당 시설이 30년이 되다 보니 기계 고장은 물론 냉방으로 인해 천장에서 물이 떨어지는 등 각종 고장 및 점검할 일이 많다고 했다.

 각종 모터 베어링, 벨트, , 펌프 점검하거나 교체하고 필터 청소하거나 교체하는 일을 주로 해요. 매주 수요일은 안전점검의 날이라 전체 기계를 가동하고 상황에 따라 점검해요. 월별, 분기별로 정기 점검하는 경우도 있고요. 일이 제일 바쁠 때는 아무래도 주간에 공연이 잘 없으니까 그때 점검하는 일을 제일 많이 해요. 유명한 공연을 한다고 했을 때는 점검이나 교체보다 냉난방, 로비 조명 등 정비를 많이하고요.”

 4일에 한 번은 밤새며 일해

 제가 있는 기계 분야는 12명이 21조로 일해서 총 6개의 조가 있어요. 교대는 주간 주간 숙직 비번 이런 순서로 돌아요. 주간은 9시 출근해서 18시에 퇴근하고 숙직은 아침 9시에 퇴근해서 다음날 아침 9시에 퇴근해요. 이때 퇴근하면 하루 비번이 생겨요.”

이길섭 님은 통상 다른 시설 관리 업무에서 맞교대나 3교대 근무를 하는 경우보다 지금이 훨씬 건강에 좋다고 말했다.

일하는 조건이 그렇게 나쁘지는 않은데 아무래도 숙직 근무할 때는 여러 가지로 힘든 거 같아요. 저녁 6시에 다들 퇴근했는데 다음 날 아침까지 남아서 벌어지는 일을 다 해야 하고 대기시기간도 긴장을 풀기 위해서 담배나 커피를 평소보다 더 하는 것 같아요.”

숙직 근무 시 새벽 1시부터 4시까지는 규정상 쪽잠을 자는데 휴게 시설을 갖추지 않아 탈의실 바닥에서 쉰다. 

언제나 도사리는 위험

기계를 만지는 게 일이라 늘 위험에 노출돼요. 특히 천장에서 작업할 때 추락 사고가 잦아요. 올해 초에도 동료가 기계 점검하려고 사다리를 높이 타고 일하다 추락해 뼈가 다쳐 산재 요양을 나갔었어요기계가 바닥에 있어서 넘어질 위험도 있고 감전 위험도 많아요.”

그렇다면 일하다 다쳤을 때 신속하고 적절한 조치가 취해지는지 궁금했다. 

일하다 다치면 사무실에 있는 구급함에서 간단히 조치하는 게 다예요. 뼈라도 부러져야 산재처리를 해요. 그때도 비급여 치료를 많이 받아야 하는데 회사에서 법적으로 산재처리 했으니 다른 책임은 없다고 아예 모른척하더라고요. 그래서 저희가 올해 동료 산재 요양 기간 중에 비급여 치료비도 지원해달라고 3일간 투쟁을해서 지원을 받았어요. 사다리도 조금 더 안전한 거로 바꾸고요.”

노동조합을 무시하는 회사와의 싸움

회사는 상급 단체가 없는 자체 노동조합이 대표노조에요. 시설 쪽이랑 주차 업무노동자가 민주노총 공공운수노조 조합원이고요. 노동조합은 5~6년 전에 일하면서 부당한 것도 많고 처우는 나빠지다 보니까 한마음이 돼서 만들었어요. 저는 그때부터 지금까지 쭉 조합원이었어요.” 

이길섭 님은 얼마 전까지 용역 업체 소속이다 보니 2~3년에 한 번씩 업체가 바뀌면서 고용 승계 불안, 원청과 용역 업체 간 책임 소재 떠넘기기 등으로 인해 하루도 마음 편할 날이 없었다고 말했다.

더 큰 문제는 이전에는 회사가 대표노조도 아니고 요구를 들어주는 것도 아니지만 그래도 개별 교섭도 해왔고 우리가 목소리라도 낼 수 있었는데 최근에 정규직으로 전환하고 나서는 개별교섭을 해야할 법적 책임이 없다 보니 전혀 응하지 않고 있어요. 그래서 저희가 지속해서 이 문제를 요구하고 있어요.”

 , 노동조합은 같은 시설관리 업무 노동자 중 일부가 감시단속적 업무라는 이유로 근로기준법 63조에 의해 노동시간, 휴게, 휴일에 관한 근로기준법 적용이 제외되는 문제를 제기하고 있다.


여기서 일하기 전까지는 노동조합에 대해 이야기만 들어봤고, 회사에서 일하다 억울한 일이 있다고 해도 어떻게 일일이 이야기하나 했었는데 결국 노동자가 자기권리를 찾기 위해서는 노동조합이 있어야 한다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대기업도 경총으로 목소리 내고 중소상인들도 협회가 있잖아요. 그렇다면 노동자들도 노동조합이 있어야죠.”

늘어나는 업무량과 어려움

“2003년에 입사했을 때랑 비교해보면 관리해야 할 카페, 레스토랑 등 편의시설이 많아지면서 전기나 냉난방, 통신 등 관리해야 할 일 역시 늘어났어요. 게다가 전체적으로 노후화되서 손봐야 할 것도 많은데 전체 인력은 줄었어요. 처음에는 이 정도로 타이트하지 않았는데 시간이 갈수록 업무량이 늘고 빠듯해요.” 

그렇다면 지금의 근무 환경을 바꿔야 한다면 어떤 점을 가장 먼저 해야 할지 물었다.

전체적인 근무 환경을 바꿔야 할 것 같아요. 인력도 충원하고 처우도 개선하고요. 경영하는 사람들이 노동자들은 내가 고용한 거니까 시키는 대로 해야 하고 무조건 이윤을 남기기 위해서 물불 안 가리는 것 같은데 그런 점도 바뀌어야죠.”

현장직도 당당한 노동자

아주 비좁은 공간에 들어가서 사고를 감수하면서 작업해야 할 때 힘들어요. 힘든과정이지만 고장 난 기계를 고치면 그때 보람이 있어요. 제가 고등학교 때부터 기계 고치는 걸 좋아했거든요. 지금까지도 하고 싶은 일을 하니까 즐거워요. 그리고 한국 예술을 대표하는 곳에서 일한다는 자부심도 있고요.”

이길섭 님은 인터뷰를 마치며 현장에서 일하는 사람들에 대한 사회적인 인식이 아쉽다는 이야기를 전했다.

한국 사회가 사무직하고 현장직에 대한 차별이 있잖아요. 요즘은 조금 나아졌다고는 하는데 그래도 아직 부족한 것 같아요현장에서 땀 흘려 가면서 고생하는 분들이 많은데 이런 분들에 대한 사회적인 인식이 개선되어서 노동에 대한 정당한 대가를 받았으면 해요.”

[A~Z까지 다양한 노동이야기] 스마트폰 수리하는 여성 엔지니어의 하루 / 2018.09

스마트폰 수리하는 여성 엔지니어의 하루

삼성전자서비스센터 이유숙 님 인터뷰

재현 선전위원장

이번 A-Z는 많은 사람이 전화, 문자 연락부터 카메라, SNS, 게임, 인터넷뱅킹 등까지 사용하는데 필요한 스마트폰 수리 노동자 이유숙 님을 만났다. 인터뷰는 1년 중 많은 야외 활동가 휴가 등으로 인해 가장 일이 바쁘다는 8월에 진행하였다.

 


스마트폰 수리 노동자의 하루

“저는 삼성전자서비스 동인천 센터에서 애니콜 수리 업무를 하는 이유숙이라고 해요. 쉽게 말해 스마트폰 수리 엔지니어인데 제가 일하는 파트를 애니콜이라고 부르고 있어요. 우리 센터에는 스마트폰뿐만 아니라 TV, 청소기, 컴퓨터도 고치고 있어요.”

이유숙 님은 아침 9시부터 18시까지 점심시간 1시간 빼고 하루에 20명~30명 정도 고객을 상대한다고 한다. 특히 동인천 센터는 다른 지역에 비해 많은 고객이 찾는 곳이라고 한다. 그렇다면 업무 중에서도 제일 많이 하는 일이 어떤지 물어보았다.

“아무래도 간단 고장 업무가 제일 많아요. 충전이 안 되거나, 폰에 이상이 있어서 전원을 껐다 켜야 한다든가 하는 업무도 많고요. 기계가 고장 난 거 뿐만 아니라 소프트웨어 문제로 방문하는 분들도 많아요.”

이유숙 님은 카카오톡에서 사진이 열리지 않아서 고쳐달라는 고객, 불량 어플을 삭제해달라는 고객 등을 하루에도 수없이 만난다고 한다. 한편, 아무래도 제일 많이 방문하는 고객은 액정이 깨져서 오는 분들이라고 한다. 

“여름엔 사람들이 바깥 활동이 많아지니까 휴가에서 스마트폰을 떨어뜨리는 분들도 많고 더운 곳에서 과열로 인해 오작동하는 경우고 있고요. 여름에도 8월이 제일 바빠요. 6월에서 8월까지 이름을 성수기라고 보고요. 반대로 2~4월은 그나마 비수기인 것 같아요.”

서비스센터는 간단 점검은 기본 무상으로 처리하기 때문에 고객은 무상으로 서비스를 받는다고 한다. 다만, 자재를 사용해서 수리해야 하는 경우엔 소비자보호원에서 정한 가격에 맞춰 고객이 비용을 지급한다고 한다.

노동 시간과 휴가 시스템

“서비스 센터는 아침 9시에 오픈하는데 우리는 8시 40분까지 출근해요. 아침에 조회도 있고 업무 준비도 해야 하거든요. 그래서 우리가 하루 30분씩 고정 연장수당이 있어요. 퇴근은 18시인데 바로 퇴근해요. 6시 즈음 되면 콜 전화를 안 받거든요. 특별한 경우가 아니면 1주일에 3~4번은 바로 퇴근하는 것 같아요. 예전에 노동조합을 만들기 전에는 팀장님한테 눈치가 보여서 정시 퇴근을 못 했어요. 연장 근무를 해도 왜 연장 근무를 했는지 굉장히 까다롭게 심사해서 줬거든요.”

휴식의 경우 토요일에 정상 근무를 해서 일요일과 평일 1일 대휴를 쓰고 있지만, 이 역시 개인 약속이나 모임 등과 관계없이 매월 초 무조건 정해야 해서 어려움이 있다고 했다. 여름 휴가도 따로 없어서 기본 연차에서 사용하게 하는데 회사가 상황이 어렵다고 노동자들에게 9월부터 연말까지 남은 연차를 사용하도록 권장하고 있다고 한다.

우연한 기회로 시작하게 된 일

“사람들이 대학 때 전공인으로 아는데 그건 아니고요. 무역 전공하고 관련 회사에서 일을 했는데 결혼하고 아이 낳으면서 그만뒀어요. 그러다 2010년도에 입사를 했는데요. 시에서 직업 교육 많이 하잖아요. 그거 교육 받다가 일하게 됐어요. 입사할 때 조건이 운전할 줄 알고 IT 관련 업무에 대해 경력이 있는 사람을 원했는데, 제가 사실 몇 년 동안 남편이랑 PC방을 했었거든요. 그때 경험을 많이 인정해줬어요. PC방이 프렌차이즈 회사라서 기술직 사원이 돌아가면서 지원해주고 그랬는데 제가 성격상 남한테 뭐 맡기고 그런 거를 안좋아해서 매일 그분 귀찮게 물어보고 공부하고 그랬거든요. 그래서 여기까지 왔죠. 다시 직장 구할 때는 고정적으로 월급 받는 직장에 가고 싶었는데 삼성이라고 해서 좋아했는데, 그때는 우리가 협력업체 일줄은 몰랐어요.”

이유숙 님은 당시 첫 월급으로 120만 원정도를 받았다고 한다. 그런데 문제는 당시 외근직으로 TV, 컴퓨터를 고칠 때라 차 기름값 내고 밥 먹고 그러면 50~60만 원정도 남았다고 한다. 이유숙 님께 여성으로서 기술직 일을 한다는 게 쉽지는 않았을 것 같은데 그 점은 어떠했는지 물었다.

“2010년에 조두순 사건이 있었잖아요. 그래서 고객들이 여성 엔지니어가 오면 편해하고 좋아할 거로 생각해서 30명을 뽑았어요. 삼성 연수원에서 3개월 합숙하고 27명이 졸업해서 전국으로 흩어졌는데 지금은 3명이 남아있고 외근 일하는 사람은 1명이에요. 저도 작년 9월부터 내근직으로 옮겼거든요. 혼자 남으신 분은 이제 세탁기를 열고, 에어컨을 수리한다고 하는데 저는 냉장고나 에어컨 수리를 힘이 부족해서 못 하겠더라고요.”

여성이라는 이유로

이유숙 님은 여성이라서 할 수 없는 일들도 있기에 차별당하는 일도 잦았다고 한다. 

“아무래도 여자들은 차별당하는 경우가 많았어요. 혼자 냉장고를 뒤집어서 수리해야 하는데, 제가 그걸 혼자 할 수는 없거든요. 그래서 너는 냉장고 일 못 받으니까 남자들인 지저분해서 안하고 싶어하고 돈도 안 되는 더러운 일을 저한테 시켰죠. 같이 1시간 일하는데 남자들은 한 시간 일해서 2~3만원 받고 저는 5천원 받았거든요.”

이유숙 님은 여자라고 해서 남성과 다르지 않게 매일 피나는 교육을 해왔다고 말했다. 연수원 시절 아침 9시부터 저녁 18시까지 매일 시험을 봤고 입사해서도 매월 공부는 기본이고, 1년에 2차례 국가고시처럼 시험을 봤다고 한다. 그러나 최근삼성전자서비스센터 노동자들이 노동조합을 만들고 진짜 사장이 삼성이라고 주장하면서 교육을 주관해왔던 삼성전자가 직고용을 회피하기 위해 그룹 차원으로 진행했던 교육과 시험이 중단된 상황이라고 한다.

업무가 바뀌면서 변화한 것

“외근 업무를 할 때는 여자라 힘든 게 많았는데 내근일 때는 그런 건 많이 없어졌어요. 그런데 무조건 고쳐달라고 하는 고객들이 있어서 힘든 거 같아요. 무조건 고치라고 소리를 지르거나 아무래 우리가 고칠 수 없는 상황이라고 해도, 대화가 안 되는 분들이 있거든요. 카카오톡에서 사진이 안 보이는데 어떻게 하냐고 물어봐서 업데이트해 보라고 했더니 그걸 왜 자기가 하냐고 네가가 하라는 거에요.”

수많은 고객과 겪은 일들

고객을 상대하는 일이다 보니 이런 상황에서 뭔가 일하는 사람이 결정할 수 있는 구조나 방식이 있는지 물었다.

“지금은 일단 고객이 말도 안 되는 걸로 이야기를 하면 안 된다고 계속 말하고요. 그래도 이야기가 잘 안 되면 팀장 상담을 유도해요. 그러면 팀장도 우리랑 비슷하게 이야기를 하고 그래도 대화가 안 되면 우리 센터는 수리를 거부할 테니 매장에서 퇴장해달라고 하고. 그래도 안 되면 경찰 부르고요. 모든 센터가 그런 건 아니고 우리 센터 팀장님이 많이 배려해주는 데다 요즘 갑질이다 뭐다 사회적인 분위기도 있고 그래서 조금 나아지는 것 같아요.”

이유숙 님은 예전에는 무조건 목소리 큰고객이 이기는 분위기였다고 한다.

“사실 고객들을 이렇게 만든 건 삼성이에요. 옛날에는 소리 지르면 무료로 수리해줬 거든요. 돈을 깎아주기도 하고요. 요즘이야 경찰 부른다지만. 소리를 지르거나 제품을 그냥 던진다거나 하는 분들은 예전에 삼성이 어떻게 했는지 다 알고 길들여진 거에요. 삼성가서 일단 소리지르면 다해줄 거야 라는 인식이 팽배거든요.”

누군가에게 필요한 사람이라는 기쁨

“일하면 가장 즐거운 건 아무래도 월급 받을 때죠.. 웬만한 제 나이 여자들보다 많이 받는 게 사실이기도 하고, 또 월급이라는게 단순히 돈에 문제가 아니라 나 의 능력치를 평가받는 느낌이 있어서 좋은 거 같아요. 내가 100만 원, 200만 원, 300만 원받는다가 아니라 내가 지금 300만원을 받는다는 것이 사회에서 300만 원짜리 능력이 있구나라는 인정받는 생각이 들어요. 자기만족도 있는 것 가고요. 사실 노동조합 활동을 하는 것도 자기만족이 있거든요. 예전에는 사람들이 대화하면 아줌마라고 무시하거나 소외는 있었는지 노동조합을 하면서 나름 동등한 것도 있고 내가 아는 것을 피력 할 수 있는 기회를 얻기도 하고, 나의 단점을 커버해주기도 하거든요. 그리고 누군가 나의 도움이 필요하고, 내가 누군가를 도울 수 있다는 게 좋을 것 같아요. 스스로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능력도 많이 생겼어요.”

그렇다면 누구보다 일에 대해 즐거움도 많고 만족도도 높은 이유숙 님이 일할 때 원칙 같은 게 있을지 궁금했다.

“글쎄요 저는 최대한 고객 입장에서 생각하려고 노력하는 것 같아요. 회사에서 말하는 조건에 부합한다면 최대한 무상으로 서비스를 해드리고 가급적 친절하게 수리하려고 노력하는 편이에요. 일 많이 하는 분들은 한번 일할 때 평균 10분 정도 하는데 저는 고객이랑 대화도 많이 나누고, 웬만한거 물어보면 다 답해 드리려고 하거든요. 그래서 일을 많이 못 하고 월급이 적기는 한데 그래도 앞으로도 이렇게 일하려고 해요.”

이유숙 님은 이러한 원칙을 견지하면서 앞으로 오래 건강하게 일하고 싶다는 포부도밝혔다.

“앞으로 저는 적어도 10년 이상은 더 일하고 싶어요. 아이가 조금 지나면 다 크는데 그때는 저의 만족을 위해서 직장을 다니는게 필요할 것 같아요. 노동조합 만들고 힘들었지만 회사도 조금씩 바뀌고 있고요. 예전에는 우리가 회사한테 아무 말도 못 하거나 말을 해도 듣지를 않았는데 지금은 우리들의 목소리를 들어주는 귀는 생긴 거 같거든요.”

[A~Z까지 다양한 노동 이야기] 편의점 알바, 누가 쉽다고 하나요? / 2018.08

편의점 알바, 누가 쉽다고 하나요? 

- 20대 편의점 아르바이트 노동자 안지완 님 인터뷰 

나래 한국노동안전보건연구소 상임활동가



▲  청년이 많이 이용하는 편의점은 아르바이트 청년들이 많은 사업장이기도 하다. 알바노조의 2013년 2월 28일 '점주와 알바를 착취하는 대기업 프랜차이즈 규탄' 알바5적 기자회견 모습. (출처: 알바노조) 

길거리를 지날 때마다 꼭 한 번은 마주하게 되는 편의점. 간단한 간식류부터 도시락, 생필품, 비상약 등 생활 전반에 필요한 물품을 파는 곳으로 기능한다. 국내 5대 편의점 프랜차이즈 점포 수가 올해 3월 4만 개를 넘어섰다. 그 수많은 편의점에는 '아르바이트 노동자'들이 있다. 계산할 때 말고 그들을 제대로 마주한 적이 없었다. 최근 최저임금 논란으로 다시 주목받은 편의점 아르바이트를 하는 안지완(23)씨를 지난 7월 29일에 만났다.

"대학생이고 다음 학기 휴학 예정입니다. 아르바이트는 생활비 벌려고 시작했어요. 학교 다니면 부모님이 생활비로 30만 원씩 주셨는데, 지금은 휴학 중이라 안주시거든요. 그래서 집 근처 편의점 아르바이트를 하게 됐어요. 이제 편의점 야간 아르바이트를 한 지 한 달 좀 넘었네요. 밤 11시부터 아침 9시까지 일하는데 물건 진열하고, 물류가 들어오면 정리하고 상품을 채워놔요. 유통기한 지난 음식도 확인해서 폐기하고, 청소하죠. 요즘엔 편의점에서 닭도 튀겨요. 그거 청소도 하고, 기름도 갈고. 도대체 누가 편의점 아르바이트가 태만하다고 하는지 모르겠어요."

아르바이트 노동자들을 향한 차별적이고 편견 어린 시선에 대해 안지완씨는 안타까움이 가득한 목소리로 답했다. 아르바이트를 얼마나 해봤냐고 물으니 생각 이상으로 많은 경험이 있었다.

"수능 끝나고 바로 시작했어요. 10대에서 20대로 넘어가는 사이에요. 휴학, 방학, 재학 중 가리지 않고 했어요. 전에 다른 편의점에서 6개월 정도 일을 했어요. 그전엔 파리바게뜨 4개월, 이자카야 술집 3개월, 단기 호텔 아르바이트, 인천공항 물류아르바이트도 했어요. 물류 일은 10시간 일하고 더 하면 1.5배 시급을 더 쳐준다고 했는데도 너무 힘들어서 거부했어요."

주변 친구들 대부분이 아르바이트를 한다고 한다. 다들 등록금 대출을 갚아야 하는 상황이다. 부모님에게 용돈을 받더라도 물가 상승을 감당하기 힘들다. 연애는 꿈도 못 꾼다. 사람을 만나는 것 자체가 모두 '돈'이다. 지금까지 해본 아르바이트 중 어떤 일이 제일 힘들었는지 궁금했다. 체력적으로 힘들었던 공항 물류 아르바이트일 거라고 예상했는데 의외의 대답이 돌아왔다.

"이자카야 술집이 제일 힘들었어요. 여성을 성적 대상화시켜요. 술집에서 아르바이트한다는 이유로 소위 '술집 여자'가 돼요. 손님들이 '아가씨 이리 와봐요', '술 좀 따라줄래요' 이래요. 거기에 대처 못 하는 사장이 있고, 2차 가해 하는 사장도 있었죠. 다른 직원들도 마찬가지고요. 그게 너무 싫었어요. 몸이 힘든 것보다 스트레스가 심했어요. 그래서 편의점 아르바이트를 하게 됐죠.

파리바게뜨도 힘들기로 유명해요. 빵 이름을 다 외워야 해요. 음료도 만들고 여름엔 빙수도 만들고요. 그런데 아르바이트를 그만둘 상황이 생겼는데 사람 구할 때까지만 해달라는 게 2~3주가 넘었어요. 근로계약서를 봐도 강제노동할 이유는 없거든요. 그래서 안 나갔죠. 13만 원을 못 받은 상황이었는데 굳이 사장이 직접 와서 받아가라는 거예요. 아마 뭐라고 하고 싶었던 거겠죠. 문자로 계좌 알려주고 보내 달랬더니 직접 오라고 하더라고요. 고용노동부에 신고했죠. 그리고 13만 원을 받았어요. 그 13만 원이 뭐라고요."


시간외근로 사각지대에 놓여있는 편의점

아르바이트 포털 '알바몬'은 지난 5월 4일 '아르바이트생 1106명 대상으로 갑질 경험에 대한 설문조사' 결과를 발표했다. 그결과 '알바 근무 중 갑질 피해 경험이 있다'는 응답이 전체의 81%에 달했다. 1위는 반말 등 인격적인 무시(57.1%)였고, 불합리한 요구나 부당한 지시(47.2%), 감정노동 강요(40.7%), 폭언(28.6%) 등이 뒤를 이었다.

높은 갑질·폭력 경험에 비해 대응 방식은 소극적일 수밖에 없다. '그냥 참는다'는 응답이 57.2%로 가장 높았고 '지인에게 심정을 털어놓는다'가 18.8%, '관련 단체에 신고하거나 도움을 요청한다'는 답변은 1.9%에 그쳤다. 관련 법을 잘 모르기도 하고, 두렵기도 한 여러 상황이 복잡하게 얽히며 아르바이트 노동자들에 대한 노동권 · 인권 침해는 더욱 공고해진다.

안지완씨는 용기를 내어 노동부에 신고해 마땅히 받아야 할 임금을 받았지만, 그 과정이 쉽지만은 않았다. 사장이 출퇴근 기록부를 조작하지 않을까, 본인이 가진 유일한 증거는 문자밖에 없는데 이걸로 증명될까 걱정도 되고 겁도 났다. 그런 어려움은 지금도 마찬가지다.

"지금도 주휴수당, 야간수당 못 받아요. 수습 3개월 일 하는 거로 계약했거든요. 이미 6개월 동안 편의점 아르바이트를 했는데 또 수습인 거죠. 지금 6700원 받아요. 편의점주가 그러더라고요. 정부가 임금 올리는 건 맞지만, 귀족 노동자를 탓해야지 우리같이 힘든 자영업자에게 책임을 떠넘기면 어떡하냐고요. 그래서 저에게 미안하지만, 수습으로 3개월 일해달라고 하더라고요. 그나마 바로 집 근처라 교통비 아끼는 셈 치고 하는 거예요."

주 15시간 일하는 경우 주휴수당 적용 대상이다. 하지만 편의점주는 운영이 힘들다는 이유로 주휴수당을 주지 않는다. 게다가 야간수당조차 받지 못한다. 시간외근로의 경우 5인 이상 사업장에만 적용되기 때문에 편의점은 사각지대에 놓여있다. 따져보면 실제로는 아르바이트 노동자가 5인이 넘을 거라고 추측은 하지만 소용없다. 명백히 야간근무를 하는데도 정당한 대가를 받지 못하는 것이다.

"언제 잘릴지 모른다고 항상 느껴요. 저 아니어도 할 사람이 많은 거죠. 하지만 저는 이 일을 안 하면 생활이 불가능해요. 하다못해 등록금이라도 내야 해요. 그러니 사장 협박이 잘 먹히죠. 좋은 사장이 있을 수없다는 걸 아르바이트 하면서 느꼈어요. 그래서 아르바이트하면서 성추행, 성차별적 말을 들었을 때 뭔가 제기하기가 힘들어요. 제기해도 반응이 '좀 참지 그러냐'거든요.

사실 제기해본 적도 있어요. 너무 화가 났거든요. 그런데 사장이 '네가 술 취한 사람한테 가면 안 됐다, 오라고 해도 무시했어야지' 그러는 거예요. 또 어떤 사람은 칭찬이랍시고 '네가 섹시해서 그렇다'고 한 적도 있어요."


외모 평가, 성적 발언, 신체접촉 등은 아르바이트 노동자들이 흔하게 겪는 문제 중 하나이다. 한 조사에 따르면 5명 중 2명이 근무 중 성희롱 피해를 겪었다. 특히 여성과 남성 비율이 9:1 정도로 여성 아르바이트 노동자들의 피해가 극심하다. 성폭력 문제에서도 고용주, 정부는 전혀 힘이 되지 못한다. 혹시 안전대책이 있는지 물었다. 아르바이트 노동자들의 안전, 건강 문제는 본사에 전혀 중요한 문제가 아님을 알 수 있었다.

편의점 노동자들이 자기 몸을 지킬 수 있었으면 

"얼마 전에 점장이 발주를 잘못해서 제 담당 시간에 상자 30개가 들어왔어요. 물류 노동자분이 저한테 오늘이 마지막이냐, 사장한테 밉보인 게 있냐고 할 정도로 말도안 되는 상황이었죠. 진열대에 있는 상품말고도 창고에 물건을 옮겨요. 라면은 천장 문을 열어 넣어야 해요. 사다리 타고요. 맨 처음엔 밤에 일하는 게 익숙하지 않아 눈 초점이 흐려지고 머리가 띵하더라고요. 그 상태로 올라가니 떨어질 수 있겠단 생각이 들었어요. 휘청하면 끝장나겠다는 느낌이요. 잠을 잘 못 자니까 자꾸 어디 앉으면 나도 모르게 중력이 빨아들이듯 자요. 눈 뜨면 내가 잠을 잔 건지 모르게 피곤해요. 잔다고 해도 몰아서 자요. 눈도 되게 아프고요. 24시간 눈을 뜨고 있으니깐요. 현실감각도 없어지고 멍해져요.

폭력도 비일비재하죠. 일 시작하기 전에 사장에게 비상벨이나 전화기를 30초 이상 놓으면 경찰 호출 되는 게 잘 되냐고 물었는데, 사장이 그런 일 없을 거라는 거에요. 고장 난 지 한참 됐다고요. 다른데도 비슷할 거에요. 혹시나 통화가 돼도 위급한 상황이 정확히 어떤지 경찰이 구체적으로 설명하라고 요구한대요. 일촉즉발인 상황에서 그게 가능한가요."


한국 사회에서는 '아르바이트 노동'에 대해, 임시직, 젊은 층이 한때 하는 일, 생활비가 아니라 용돈 벌이, 고생해도 되는 일이라는 인식이 강하다. 노동력을 제공하고 임금을 받아 생활을 유지하는 자는 모두 '노동자'임에도 색안경을 끼고 보는 것이다. 안지완씨에게 우리 사회가 아르바이트 노동을 어떻게 바라보는지 직접 체감한 경험이 있는지 물었다.

"생활비라고 전혀 생각 안 하는 것 같아요. 우리 나이 또래 청년들 말고도 수많은 사람이 아르바이트 노동으로 생계를 이어가요. 아르바이트 노동 역시 사회적으로 필요한 일을 사회적으로 해내는 거죠. 그런데 이걸 왜 쉬운 일로 생각하는 걸까요? 사회를 직시하면 차별을 정당화할 수 있는 기제를 기업이 얼마나 잘 이용하는지 알수 있어요."

아르바이트 노동 문제는 청년 세대의 대표적 문제이기도 하다. 안정적인 직장에서 일하고 싶어도 이미 나쁜 일자리가 노동시장을 잠식한 지 오래다. 그 문제를 지금의 청년 세대는 잘 알고 있다.

"이 사회에서는 장시간 노동을 할 수밖에 없어요. 제 주변 대부분이 150~180만 원 사이를 벌겠지 생각해요. 200만 원 이상 벌어야 하는 조건이면 장시간 노동을 하는거예요. 내 삶을 150~180만 원 사이에 맞출 생각을 하죠. 식비를 이만큼 쓰고, 외식을 몇 번 할 수 있겠다는 생각을 지금부터해요."

마지막으로 편의점을 이용하는 손님들과 편의점 아르바이트 노동자에게 하고 싶은 말을 물었다.

"편의점 노동자는 가게가 아무 일 없이 24시간 유지될 수 있게 하는 업무를 해요. 손님들이 그 이상 요구해서는 안 되고, 그럴 이유도 없어요. 그리고 편의점 노동자들이 자기 몸을 지킬 수 있으면 좋겠어요. 4대 보험도 안 되고, 산재 처리도 어렵잖아요. 모든 노동자가 4대 보험 적용이 될 수있도록 정부가 노력해야 해요. 4대 보험 들면 임금 줄어든다고 노동자가 스스로 포기하게 만드는데 그런 문제가 안 생기게 해야죠. 모두가 안전하게 일 할 수 있고, 정규직이든 비정규직이든 아르바이트 노동자든 다치지 않게 하는 건 당장 이뤄져야 해요. 위험요소는 어느 직업에나 있는 거잖아요."


[A~Z까지 다양한 노동이야기] 저희는 영어하는 기계가 아니에요 / 2018.07

저희는 영어하는 기계가 아니에요

- 국제회의 통역사 전소희 님 인터뷰

재현 선전위원장


최근 한반도를 비롯해 전 세계가 평화의 길에 큰 관심을 가지고 있다. 4.27 판문점 남북정상회담과 6.12 북미 정상회담을 진행하는 동안 언론은 방대한 양의 기사를 쏟아냈다. 그 과정에서 각국 정상들 못지않게 ‘그림자’들이 주목을 받았다. 바로 통역사이다. 어느 때보다 중요하고 역사적인 순간이기에 각국 정상과 그들의 입에 전 세계가 주목했다. 이번 <A~Z까지 다양한 노동이야기>는 통역사로 일하는 전소희 님을 지난 6월 26일에 만났다.


사람들에게 정확한 메시지를 전달해야 하는 역할

“한국에서 통역사는 주로 한국어를 영어로, 영어를 한국어로 통역하죠. 때로는 번역일도 하고요. 통역과 번역 중에 더 많이 하는 일은 대중없어서 뭐라 딱 말하기 힘들어요. 통역한다고 했을 때 방식도 다양해요. 정상회담이 열리는 걸 보면, 각 정상 옆에 앉아서 통역하는 사람들이 있잖아요. 그분들은 어떤 장비나 기계 없이 한 사람 말이 끝나면, 다른 사람에게 통역해서 전달하는데 그걸 순차통역이라고 해요. 

순차통역은 정확도가 높다는 장점이 있어요. 그게 아니면 강연이나 포럼에서 외국인이 발제 할때 바로 통역해서, 청중들이 사용하는 통역기로 말을 전달하는 동시통역 방식이 있어요.”

통역사들은 현장에서 직접 일을 하는 경우도 많지만, 방송이나 언론에서 통역을 요구받는 일도 많다. 전소희 님도 얼마 전 북미 정상회담이 진행되는 동안 3일간 한 방송사에 출근해서 통역 일을 전담했다.

“방송국에서는 트럼프가 하는 말을 국민에게 바로 전달하고 싶으니까 저희 같은 통역사들을 섭외해요. 방송사에는 장비가 있으니까 트럼프가 현장에서 하는 말을 바로 듣고 즉각 통역해서 아나운서, 기자, 시청자에게 바로 전달하죠. 이럴 경우엔 장비가 굉장히 중요한데 방송국은 좋은 장비를 사용하는 편이에요. 그런데 가끔 무슨 이유인지 모르겠는데 시끄러운 잡음이 들린다던가, 단어가 중간중간 하나씩 안 들린다던가, 버퍼링이 발생하고. 그럴 때면 스트레스가 극심하죠. 뉴스는 생방송이니까 편집도 불가능하거든요. 스트레스를 이렇게 받는 날은 머리도 아프고 몸도 힘들어요. 게다가 온종일 소음을 차단하기 위해서 비좁은 부스에 들어가 있는데 거기에서 이어폰 끼고 초집중을 하니까 피곤하죠.”

전소희 님은 그나마 이번 북미 정상회담은 시차가 크지 않은 싱가포르에서 해서 다행이지, 다른 해외에서 정상회담이 있었으면 그 나라 시차를 맞춰서 일하느라 밤낮도 바뀌면서 생체리듬이 완전히 무너져힘들다고 했다.


업무를 위해 수 많은 준비가 필요한 통역사

“통역하는 분야 역시 엄청 다양해요. 어느 특별한 한 분야가 없죠. 통역사들이 한 분야에서만 일해도 먹고 살 수 있을 만큼 충분한 수요가 없거든요. 그래서 일이 들어오는 대로 다해요. 정말 도저히 감당하기가 어려울 거 같다 그럴 때만 가끔 거절해요. 우리 같은 프리랜서들은 어떤 시기에는 일을 쉬엄쉬엄하면서 아이도 돌보고 그러고 싶을 수 있잖아요. 그런데 통역사는 그게 불가능해요. 한번 거절하면 일이 안들어오거든요. 일 자체도 성수기, 비수기 이렇게 딱 나뉘어서 성수기 때 부지런히 일해야 1년을 먹고 살 수가 있어요.”

통역사들은 다양한 분야를 그것도 외국어로 많은 사람과 국가 정상 등에게 정확한 언어와 뜻으로 전달해야 하기 때문에 공부하는데 상당히 많은 시간이 필요하다.

“공부를 정말 많이 해야 해요. 그런데 문제는 대체로 일을 줄 때 어떤 분야, 주제인지 자세히 알려주지 않는 경우가 더 많아요. 그런 게 참 어렵죠. 보통은 제가 속한에이전시에서 문자로 일이 있는지 알려주거든요. ‘○월 ○일 ○시 장소 : ○○○’ 이렇게요. 일정표 확인하고 시간이 된다고 하죠. 정 못할 거 같으면 안 된다고 하고요.

그리고 나면 나중에 에이전시에 의뢰한 회사 쪽에서 연락을 줘요. 어떤 주제로 할 거고, 자료는 언제까지 줄 수 있고 이런 거 저런 거 미리 숙지해 달라 이렇게요. 그러면 그때부터 공부를 해야 돼요. 그나마 다행인 건 공부가 어렵고 쉽고를 떠나서 자료를 미리 주는 게 제일 좋거든요. 그런데 많은 곳에서 자료를 행사 당일 현장에서 줘요. 이런 상황도 예측이 불가능하죠. 한 달정도 먼저 주는 곳부터, 며칠 전에 주는 곳, 현장에서 주는 곳까지 다양하거든요. ”


급변하는 상황을 대처하며 일해야 하는 어려움

“하루 스케줄도 상황에 따라 너무 달라요. 보통 행사들을 생각해보면 이렇겠네요. 통역이 있는 날은 보통 오전 9시에 행사를 시작하니까 오전 8시까지 현장에 가요. 가서 발표자랑 관계자분들과 인사하고, 동시통역일 경우에는 장비를 체크하죠. 현장에서 새로 들어오는 자료도 있으니 파악하고 있고요. 동시통역으로 진행하는 경우에는 혼자서 오랫동안 할 수가 없어서 두 명의 통역사가 같이하거든요. 시간은 20~30분씩 교대로요. 두 명이 행사 시작해서 점심 먹을 때까지 쭉 교대하면서 통역하고 점심 먹어요. 물론 식사도 제대로 못 먹는 경우가 더 많아요. 오후에 들어오는 자료도 봐야 하고 새롭게 변하는 내용도 많고 그래서요. 오후에 일 시작하면 역시 교대로 오후 5~6시까지 일을 하고 마치면 진이 다빠지죠. 하루에 일을 얼마나 하는지도 상황에 따라 달라요. 1시간부터 시작해서 반나절, 온종일 뭐 이렇게요.”

전소희 님은 통역사들이 일하는 동안 굉장한 집중력을 발휘하다 보니 힘이 드는데 일하는 시기 자체도 몰려있어서, 일이 바쁜 시기에 체력 소모가 더 크다고 어려움을 토로했다.

“아까도 이야기했지만 일을 하는 시기가 몰려있어요. 여름, 겨울에는 일이 거의 없고 봄, 가을에 일이 다 몰려있죠. 사람들 생각이 다 비슷해서 공휴일, 샌드위치 연휴, 날씨가 궂은날 이런 날에는 행사를 피하잖아요. 그리고 나면 날짜가 몇 개 안 나오니까 일하는 시기도 요일도 몰려 있어요. 전체적으로 1년 달력으로 보면 절반은 일하고 절반은 일이 없는 거 같아요.”

통역사 중 일부는 일이 없는 비수기 때 책 번역 일을 하는 경우가 있다고 한다. 전소희 님도 그러한데 번역일은 일하는데 들어가는 시간이 긴 데 비해서 그 시간이 보장되지 않는 경우가 많고, 비용 역시 적어서 일하지 않게 된다고 말했다.


열악한 처우에서 일하는 통역사

“프로젝트나 당일 행사에 따라서 다르겠지만 6시간 일한다고 하면 90만 원 정도 받아요. 이 중 세금 떼고 에이전시에 수수료 내고 그러면 많이 깎여요. 만일 방송국이나 언론사에서 동시통역 한다 그러면 페이를 조금 더 받아요. 페이를 떼먹거나 깎아 달라는 경우는 정말 잘 없는데 가끔 에이전시에서 안주거나 일 끝나고 몇 주 지나서 돈을 주는 경우가 있어서 그때 페이가 얼마였는지 메모를 잘해야 해요.”

전소희 님에 노동조건이나 환경에 있어서 어려운 점은 무엇인지 물었다.

“아무래도 오랫동안 고도로 집중 해야 하니까 그 점이 가장 힘들어요. 집중하는 게 정신적인 측면이라면, 물리적인 측면은 귀를 잘 보호해야 해요. 어쨌든 소리가 안 들리면 통역을 못 하니까 늘 귀를 보호해야 하죠. 그리고 스트레스 때문인지 몰라도 두통이 심해요. 통역사들 대부분이 두통을달고 살아요. 내용이 어려울 때 스트레스도 많이 받아요. 특히 의학, 제약 이 분야는 정말 어려워요. 물리적으로 부스에서 일할 때 평수가 1평도 안 되는데 바람이 아예 안 통해서 답답한 것도 있어요. 전혀 쾌적하지가 않거든요. 다른 나라랑 비교해서 조금 그렇지만 유럽은 통역사들 협회가 있는데 거기는 입김도 세고 유럽 사회 제도나 문화가 있어서 통역사들 부스 환경과 노동조건을 이렇게 조성해야 한다는 강제조항이 있어요. 크기는 어느 정도 해야 하고 환풍기가 반드시 있어야 한다. 이런 걸 정하는 거죠.”

반면 한국은 통역사들이 조직되어 있지않고 그들의 노동에 대한 사회적인 인식이 낮다 보니 강제하는 조치가 없다. 결국 한국의 통역사들은 현장 환경에 맞추거나 주최 측에 항의하는 등 개인적으로 문제를 해결해야 하는 상황이다.

“일이 몰릴 때가 정해져 있으니까 이때는 밤새워서 일하고 과로하고 이럴 때가 힘들죠. 무엇보다 제일 힘든건 점심 먹고 쉬는 것부터 시작해서 모든 상황을 내가 통제할수 없다는 게 제일 스트레스에요. 내가 일을 잘한다고 일이 잘되는 것도 아니고요. 정말 내가 흥미가 있고 잘 알고 있는 주제라고 해도 말을 이상하게 하는 사람이 있으면 너무 힘들어지는 거죠. 본인이 발표를 못 해놓고 일이 안 풀린다고 통역사를 탓하는 사람들도 많아요. 저를 전혀 고려 안 하고 자기가 하고 싶은 말을 굉장히 빨리하는 사람도 있고요. 그럴 때가 아주 힘들죠.”

전소회 님은 통역사가 아무리 업무 준비를 오래 하고 경력이 쌓이더라도 상황이 꼬이면 스스로 어떻게 할 방법이 없다고했다.


우리는 기계가 아니라 사람입니다 

“프리랜서의 유일한 장점 중 하나라고 해야 하나요? 지루해질 일이 없다는 거예요. 일이 따분하지가 않죠. 제가 내용을 충분히 이해하고 발표자랑 저랑 빙의가 돼서 소통을 잘했다, 그럴 때도 기뻐요. 반면에 발표자랑 저랑 동문서답하고 있고 내용 숙지가 안 되고 그러면 힘들죠. 그리고 아무래도 프리랜서니까 자유로운 게 있죠. 일이 성수기에 몰려서 힘들기도 한데 반대로 비수기는 한가하니까 넉넉하게 공부도 하고 쉴 수 있는 시간도 있고요.”

앞으로도 통역사들이 즐겁게 보람을 가지고 일하기 위해서 어떤 점이 바뀌어야 할지 물었다.

“기본적으로 통역사를 기계 취급하는 사람들이 많아요. 저 방구석에서 일하거나, 단추 하나 누르면 알아서 내용이 나오니까 또 하나의 기계 취급을 하거나 투명인간이라고 생각하는 걸 바꿔야겠죠. 외국은 행사를 주최하는 책임자나 사회자들이 공식적인 자리에서 통역으로 수고한 스태프에게 인사를 꼭 해요. 그런데 한국이 주최하는 행사에서는 그러는 경우가 거의 없어요. 그리고 외국은 통역사 중에 남성들이 많은데 한국은 절대다수가 여성이에요. 왜 그럴까요? 아무래도 우리가 하는 일이 별로 중요하지 않은 일로 취급되고, 페이도 많지 않고, 열악한 환경이라 그런 거 같아요. 남성들은 아무래도 더 좋은 환경에서 일할 기회가 많잖아요.”

인터뷰를 읽는 독자와 통역사를 꿈꾸는 사람들, 관계자들에게 마지막으로 전하고 싶은 말을 물었다.

“글쎄요 방금 말씀드렸듯이 통역사들을 단추 하나 누르면 자동으로 영어 하는 기계가 아니라는 점을 알아줬으면 해요. 앞으로 오랫동안 이 일을 해야 하고 싶거든요. 그리고 통역사들이 조금이라도 인간답게 일할 수 있는 환경이 갖춰졌으면 해요.”

[A~Z까지 다양한 노동이야기] 82년생 김지영의 또 다른 이야기 / 2018.05

82년생 김지영의 또 다른 이야기

- 컴퓨터 그래픽과 캘리그라피 디자이너 이현진 님 인터뷰

재현 선전위원장


이번 'A-Z 다양한 노동이야기'가 만난 사람은 컴퓨터 그래픽 디자이너로 활동했고 지금은 캘리그라피 작가로서 새로운 출발을 시작하는 이현진 님이다. 이현진 님은 디자인 노동자로 겪었던 어려움, 한국의 남성 중심적이고 전체주의적인 문화로 인해 겪었던 상처, 사회적으로 큰 반향을 일으킨 소설 <82년생 김지영>과 같은 나이의 여성으로서 느끼는 여러 고민을 솔직하게 들려주었다. 이 인터뷰는 지난달 18일 서울역 인근 카페에서 진행했다. 

나를 소개한다면




"제 이름은 이현진이고요 아도르 캘리그라피 작가로 활동 중이에요. 아도르라는 이름도 많이 궁금하실 텐데, 어도얼이라는 고어에요. 러브라는 뜻인데 사람들이 편하게 아도르라고 불러서 지금 이름으로 사용하고 있어요. 컴퓨터 그래픽 디자이너가 돼야겠다 생각한건 아버지가 표구사를 하셨거든요. 그 영향도 받고 재능도 물려받은 것 같아요. 무엇보다 386 컴퓨터 시대가 되고 컴퓨터로 그림을 그리는 일이 멋져 보여 컴퓨터 그래픽 디자이너가 돼야겠다 마음먹었고 대학에서 시각디자인을 전공했어요."

이현진님은 본인을 소개하면서 지금껏 주어진 상황에서 창의적으로 재미있게 살아가려고 노력하는 사람이라고 말했다. 인터뷰를 진행하는 내내 어려운 상황을 지나왔던 이야기를 들으며 어떤 의미로 이 말을 해주셨는지 알 수 있었다.

사람들에게 치였던 회사 생활

"저는 15년 동안 컴퓨터 그래픽 디자이너로 일했어요. 규모 있는 회사 디자인팀에서도 있었고 작은 에이전시 회사에도 있었고요. 회사 생활이 쉽지는 않았어요. 한국은 집단주의 사회잖아요. 그래서 저처럼 혼자 일 잘하는 사람을 싫어해요. 저는 항상 동료나 상사한테 미움을 받았어요. 저를 좋아하는 사람은 좋아하지만 반대로 생각하는 사람은 '나댄다'고 싫어하더라고요. '제발 일 좀 적당히 하자, 왜 그렇게 혼자 튀냐' 그런 얘기를 많이 들었어요. 개의치 않으려고 했지만 그래도 당연히 상처가 됐어요."

이현진님은 계속해서 사람들과 관계가 틀어지면서 본인 탓이 아닌데도 나중에는 자신을 탓하게 될 정도로 마음에 상처가 생겼다.

"저는 회사 다닐 때 마지노선이 2년이었어요. 그러다 보니까 어느 면접장에선제가 계획적으로 2년마다 그만두는 거냐고 물어보더라고요. 만약에 제 성격에 문제가 있었으면 한 달도 못 버티고 그만뒀겠죠. 이런 상황이 서른 살부터 작년까지 계속 됐어요. 저는 잘못한 게 없는데, 억울한데 결국에 나만 회사를 그만두고 도망 나오니까 나한테 문제가 있는 건가 싶었죠. 한국은 참 이상한 게 무조건 회사에서 오래 버티는 자가 칭찬을 받는 것 같아요. 그런데 저는 일도 못 하면서 무능력하게 회사에 오래 버티고 있는 게 사회의 악이라고 생각하거든요. 그런데 그런 사람이 정말 많아요. 흔히 말하는 꼰대들이죠."

회사를 다니는 많은 노동자들이 이현진님에 이야기에 공감하고 다들 그런 경험들이 한 두 번쯤은 있을 것 같다.

"맞아요, 정말 많아요. 그리고 정말 본인 문제가 아닌데 당사자는 그렇게 생각하기가 쉽지 않아요. 본인이 '내 탓이 아니다'를 깨닫지 못하고 인정하지 못하면 이 고민이 계속되는거죠. 저는 회사에서는 사람들과 관계가 좋지 못했지만, 밖에만 나오면 제 실력을 다들 인정해주는 거예요. 그래서 오랜 시간 끝에 결심해서 밖으로 나오기로 했죠."

마지막으로 다녔던 회사는 남성 상사에게 여성이라는 이유로 차별까지 받았었다고 한다.

"남자 상사들이랑 후배 여자 직원이 저를 왕따 시켰어요. 저를 어떻게든 회사에서 내보내려고 그랬다는데 처음에는 왕따 당하는 줄도 몰랐는데 나중에 막내 직원이 저한테 이야기를 해주더라고요. 그런데 왕따를 시키는 이유는 없데요. 그런데 이번에도 또 이런 일을 겪게 되니까 '아 회사에서 일을 잘 하면 그저 더 많은 일이 올뿐이고 열심히 하면 동료들에게 왕따를 당하겠구나' 이런 생각이 들더라고요. 게다가 하루는 남자과장이 회의실로 불러내더니 자기한테 좀 싹싹하게 굴 수 없냐고 그러는 거예요. 그래서 저 되게 싹싹한데 모르시냐고 물었더니 아니 여자답게 웃으면서 상냥하게 대해 달라는 거죠. 너무 화가 나서 당신 딸이 나중에 회사 다니는데 남자 상사한테 이런 이야기 들으면 어떨 것 같냐고 따지니까 또 그런 뜻은 아니래요. 결국, 그 일로 회사 생활을 정리하기로 했어요."

컴퓨터 그래픽 디자이너의 삶

"디자인 쪽은 3D도 아니고 4D라고 봐야 해요. 어느 회사나 디자이너 인건비를생각 안해줘요. 최소한의 인권도 보장해주지 않는 회사도 태반이고요. 저녁 있는 삶도 어렵죠. 회사는 마감 끝나서 조금 쉴만하면 일을 들고 오고, 퇴근이 6시인데 5시 반에 담당자한테 연락 와서 디지안 수정하고 퇴근하라고 연락 오고요. 일은 많이 하는데 돈은 또 안돼요. 제일 어려운 부분이죠. 십 년을 일해도 대기업 초봉도 안돼요. 그리고 갑인 회사에서 요청하는 디자인을 만드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을이다 보니 갑에서 요청하는거에 일일이 맞춰주는 스트레스가 있어요."

어려운 일도 많았지만 그래도 15년이라는 시간 동안 디자이너로서의 삶을 포기하지 않았던 이유가 무엇인지 궁금했다.

"저는 일을 너무 좋아했어요. 스트레스를 많이 받는데 결과적으로 이거 아니면 다른건 없었던 거예요. 저의 언어, 회사가 원하는 언어를 시각적으로 만드는 작업이 너무 좋았어요. 사실 사람들이 오해하는 부분이 있어요. 디자인이라는 게 새로운 걸 만드는 거라고 생각하는데 그렇지 않아요. 디자인은 사람들이 모르고 지나치는 것들 혹은 관찰하지 않는 것을 조합
해서 하나의 작품으로 탄생시키는 작업 같은 거예요. 그래서 디자이너는 관찰력이 좋아야 한다고 생각해요. 또 하나 디자인은 재배치가 중요한 것 같아요. 닌텐도 게임기가 나왔을 때 대중들이 그랬죠. 어떻게 이 게임기를 만들게 되었냐고요. 그랬더니 닌텐도 사장이 그런 말을 했죠. '사람들이 손쉽게 들고 다닐 수 있는 무엇과 게임을 합쳤다' 그말이 굉장히 인상적이었고, 의미하는게 있다고 생각해요."


캘리그라피 작가로 새로운 출발

이현진님은 회사 생활을 하면서 병행했던 캘리그라피 작가 활동을 본격적으로 시작하기로 했다. 그리고 이번에 회사에서 겪었던 이야기를 소재로 작품을 만들고 전시하는 행사를 준비하고 있다.

"제가 소설 <82년생 김지영>과 같은 나이거든요. 그래서 여성으로서 회사에서 일하면서 겪는 고민과 고충을 2015년부터 카카오 그룹에서 운영하는 브런치라는 곳에 글을 썼어요. 그랬더니 이번에 만년필을 만드는 회사에서 제 이야기를 소재로 작품을 전시해보자고 이야기가 돼서 진행하고 있어요."

어떤 이야기가 사람들에게 공감을 불러일으켰는지 궁금했다.

"제일 인기 있던 글이 '싹싹하게 굴지마' 인데 아까 저를 조용한데로 불러내서 자기한데 싹싹하게 굴면 안 되냐고 했던 남자 과장하고 나눴던 이야기인데요. 많은 사람이 공감해줬는데 사실 씁쓸하기도 했어요. 많은 사람이 이런 이야기를 들으면서 사는구나 그런 마음이 들었죠."

몸과 마음이 지칠 수밖에 없는 디자이너의 일상

아무래도 오랜 시간 작업을 하다 보니 아픈 곳은 없는지, 최근 과로와 일터 괴롭힘으로 사망한 웹디자이너의 이야기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는지 물어보았다.

"저는 목이랑 허리 디스크 있고요. 터널증후군은 기본이에요. 근육 주사도 맞고 MRI, 위내시경 검사도 정기적으로 받아요. 디자인 할 때는 한 번 자리에 앉으면 5∼6시간 이렇게 작업을 하거든요. 이렇다보니 거의 모든 병이 다있다고 보면 돼요. 웹디자이너분이 자살했다는 이야기는 지금 처음 들었는데요. 저도 스타트업 회사에서 일해 봤는데 그런데는 대부분 사장이 스티븐 잡스 병 걸린 애들이 많아요. 젊은 꼰대라고 해야 하나 어린 나이에 한 번 성공을 해봐서 그런가 자기가 천재인 줄 알고 다른 사람 말도 잘 안듣죠. 진짜 디자이너가 일하는 환경이 빨리 바뀌어야 할것 같아요."

디자이너의 삶이 바뀌려면 어떤 변화가 필요할까

"디자이너의 일에 대해서 가치를 인정해주지 않는 게 가장 문제예요. 이쪽 업계에서 하는 말이 남산에서 돌 던지면 맞는 사람이 디자이너라고 할 정도로 많은 디자이너가 일하고 있거든요. 그런데 현장은 너무 열악하죠. 그래서 일단은 디자이너에 대한 인식, 디자인 일에 대한 가치를 생각하는 사회 인식이 바뀌어야 할 것 같아요."

마지막으로 캘리그라피 작가로써 언제까지 활동할 생각인지 물었다.

"재미있어서 하는 일이니깐 죽을 때까지 해야죠. 좀 거창하게 말하면 제가 붓을 들 수 있을 때까지 하고 싶어요. 그리고 <82년생 김지영> 소설이나, 미투운동이 사회적 이유가 되고 있는데 이런 문제들이 계속해서 이슈가 되기를 바래요. 남자든 여자든 이 문제에 심각성을 알았으면 해요."


* 아도르 캘리그라피
@adore_calligraphy, 
brunch.co.kr/@adore

[A~Z까지 노동이야기] 모든 노동자는 자기를 돌볼 시간이 필요해요 / 2018.03

모든 노동자는 자기를 돌볼 시간이 필요해요

- 컨벤션기획 노동자 백진슬 님 인터뷰

이나래 상임활동가


교복을 입고 학교에 다니던 시절 가끔씩 설레는 마음으로 친구들과 서울행 지하철을 탄 적이 있다. 옹기종기 모여 내부로 들어가 연신 감탄을 했다. 내 키의 몇 십배나 되는 높은 천장과 화려한 조명, 북적이는 사람들 속에서 정신없이 돌아다녔던 곳. 코엑스, 킨텍스 등 이름으로 더 익숙한 바로 컨벤션 센터였다. 이번 <일터>가 만난 다양한 노동이야기의 주인공은 바로 컨벤션 기획을 하는 백진슬 님이다. 올해 입사 4년 차로 전공을 살려 일하고 있다는 그를 지난 2월 20일 한 카페에서 만나 이야기를 나누었다.


“혹시 마이스 산업이라고 들어보셨나요? MICE산업은 회의(Meeting), 포상관광(Incentives), 컨벤션(Convention), 전시회(Exhibition)의 머리글자를 딴 용어로, 폭넓게 정의한 전시·박람회와 산업을 말해요. 한국에서도 강조하는 산업 중 하나죠. 그중 컨벤션이 주로 모든 걸 다 포함한다 할 수 있어요. 흔히 생각하는 미술전 같은 건 아니고, 코엑스나 킨텍스 같은 데서 맨바닥에 부스를 짓고 참가 기업사들을 모집해서 비즈니스 대 비즈니스, 비투비로 전시할 때도 있고, 기업과 소비자가 만나는 비투씨 퍼블릭 전시할 때도 있어요. 그 전시회를 만드는 걸 컨벤션 기획이라고 해요. 말 그대로 기획이긴 한데, 분야가 컨벤션인 거죠.”


생소한 분야인 컨벤션 기획이 무엇이냐 묻는 말에 상세하게 소개를 해주는 백진슬 님은 많은 사람들이 컨벤션 기획을 생소해 하고, 많이들 어려워한다며 아쉬워했다. 본인은 대학에서 전공을 하면서 컨벤션 기획이라는 것에 대해 어렵게 느껴져 1년간 휴학을 하기도 했지만, 대학교 1학년 때부터 우연한 기회로 베이비페어(임신출산육아박람회) 진행요원으로 아르바이트를 하게 되면서 자연스레 지금의 직장, 베이비페어 전시기획팀에 입사를 하게되었다.

“많은 분이 대부분 미술품 전시를 생각해요. 그래서 지원자 전공이 예체능이 많죠. 컨벤션이란 단어가 생소하게 느껴질 수도 있지만, 또 자주 들어보는 단어기도 하거든요. 코엑스에선 매주 전시가 열려요. 목, 금, 토, 일 4일간요. 한 번씩은 가보셨을텐데, 컨벤션으로 얘기를 하고, 그걸 ‘기획한다.’ 라고 생각하면 어려워하세요. 구체적으로 설명하자면, 저희가 전시를 여는 거예요. 해당 장소를 대관해서 거기에 우리가 하나부터 열까지 다 만들어요. 예를 들면 우리 회사에서 언제부터 언제까지 전시를 열거라고 홈페이지와 이전 참가기업에 안내하면 신청을 하고, 자리를 배정하죠. 그리고 준비해서 전시회를 열게 돼요.”

컨벤션은 서울에서는 코엑스, 킨텍스 등에서 많이 열리지만, 그 외 지역에서도 다양한 분야와 규모로 열린다. 그렇기 때문에 출장도 제법 잦다. 특히 전시 특성상 시뮬레이션이나 예행연습이 안 되기 때문에 상황에 대비하기 위해 백진슬 님은 보통 전시장과 가까운 곳에 상주한다고했다. 그게 마음도 편하고, 긴급 상황에 대처하기 쉽기 때문이다.

“전시회에 참여하는 기업과 관람객들의 요구는 달라요. 예를 들어, 제가 맡고 있는 전시회로 설명드리자면, 관람객은 필요한 상품을 눈앞에서 만져보고, 저렴하게 사고 싶어 해요. 기업은 좋은 값으로 물건을 팔고 싶어 하죠. 그런 요구를 파악하는 게 필요해요. 하다못해 각자가 느끼는 온도도 다르거든요. 밖에 있다 들어온 관람객은 춥다고 느끼지만, 계속 안에서 일하는 사람들은 덥다고 느껴요. 그런 세밀한 부분들까지 조율이 필요해요.”

전시를 준비하는 과정과 전시가 이뤄지는 동안 높은 긴장이 요구된다. 굉장히 예민해지고, 본의 아니게 스스로 압박감을 주기 때문에 노동시간과 휴식시간의 균형이 중요하다. 그렇기 때문에 백진슬 님이 다니는 회사는 대표님의 ‘업무시간이 무작정 길다고 능률이 오르는 것이 아니다’라는 철칙 덕분에 노동시간은 짧고 휴식시간은 길게 운영된다고 했다. 평소 오전 9시까지 출근하고 1시간 정도의점심시간을 가진 후 오후 5시에 퇴근을 한다. 전시가 없는 기간에는 좀 더 이른시간에 퇴근하기도 하고, 얼마 전 매서운 한파가 찾아왔던 날은 더 일찍 퇴근하기도 했다고 했다.

지금 다니는 직장의 직원 규모는 15명인데, 분야별로 최소 2~3명, 4~5명이 팀을 꾸리고 평소 일을 하고 전시회 때 필요한 인원은 진행요원 등 아르바이트를 구한다. 그러다 보니 분야별로 꾸려진 팀원들 간의 협력이 매우 중요하다. 

“하나로 똘똘 뭉칠 수밖에 없어요. 제 주변 컨벤션기획에 종사하는 분들도 그렇고요. 그래야 전시가 잘 준비되고 문제없이 끝날 수가 있거든요. 그렇지않으면 어려워요.”

그렇기 때문일까. 회사를 그만두는 일이 흔치 않다고 했다. 한 동료의 경우 최근둘째 키울 때도 육아휴직을 쓰고 다시 복직했다. 눈치를 주는 건없다. 물론 5명이 하던 일을 4명이 하면 힘은 들지만, 평소의 업무량이 부담되지 않기 때문이다. 평소 육아휴직, 연차를 써도 커버가 될 수 있도록 서로 배려해주는 문화가 존재해 안정적으로 직장을 다닐 수 있다.

“물론 전시를 더 많이 기획하고 업무를 늘릴 수 있죠. 그러려면 인원도 더 필요하고, 야근도 해야 해요. 그런 회사들도 있죠. 그런데 저희는 조금 더 안전하고, 완성도가 높을 수 있게 하자는 주의라서무리하지 않아요.”

백진슬 님이 맡고 있는 전시 분야는 임신출산육아 분야로 저출산 영향을 받긴 하지만 한 가정에 아이 한 명만 키우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한 아이에게 소비가 집중되는 경향이 커졌다고 했다. 

“한 아이를 키우려면 성인 8명이 필요하단 말이 있어요. 외할머니, 외할아버지, 친할머니, 친할아버지, 엄마, 아빠, 이모, 삼촌이요. 그러니 아이가 관심 있어 하고 재미있어하는 게 있으면 최신판 장난감과 도서를 사주죠. 출산율은 저하 돼도, 한 아이에게 정말 좋은 걸 해주려고 해요. 그러니 임신출산육아 시장은 쉽게 사라지진 않을 것 같아요. 그래도 요즘 전반적으로 시장이 안 좋아서 전시업계도 힘들다고 해요. 특히 제가 하는 베이비페어는 관람객들의 실제 구매가 이뤄지기 때문에 굉장히 예민해요. 제가 입사하기 전에 있었던 일이지만 메르스 사건이 영향이 컸어요. 임산부들과 어머니들은 미세먼지, 날씨, 온도 등에 굉장히 예민할 수밖에 없거든요. 그래서 그런 것들도 꼼꼼히 확인해야 해요.”

컨벤션 기획 일을 하면서 보람차거나 기억에 남는 에피소드가 있는지 물었다. 

"보람찰 때는 제가 진행요원일을 할때는 느끼지 못했던 건데요. 전시장 셋팅할 때 맨바닥에서 시작해요. 하루, 이틀만에 장치물이 셋팅되죠. 바닥재가깔리고, 그 다음날 전시에 참여하는 업체의 물건이 들어와요. 그게 단 2일 만에 뚝딱 이뤄지죠. 관람객들이 전시를 다 하고, 전시의 마지막 날 당일에 모든 참가기업사와 장치사가 철수를 해요. 그때 바닥이 정말 더럽거든요. 대부분 이사갈 때 필요 없는것들은 다 버리고 가잖아요. 그런 것처럼 정말 철거를 한 전시장 바닥이 지저분하거든요. 저는 그걸 매 전시때마다 사진을 찍어둬요. 하기 전에 제일 깨끗한 공간, 하고 나서 제일 더러웠던 공간. 그게 기분이 되게 오묘하더라고요. 뭔가 뿌듯하고, 개운해요. 아무 탈 없이 사흘동안 잘 했을때요. 더 기분이 좋을땐 참가했던 기업사들이 수고했다고, 다음에도 같이해보자고 말할때에요. 이렇게 얘기할 때 우리가 준비한 전시에 만족하고 갔구나 싶어서 행복해요.”

마치 그때의 기억을 생생하게 떠올리듯 백진슬 님의 얼굴엔 미소가 지어졌다. 자기 노동에 대한 가치와 보람, 자부심을 느낀다는 건 그렇게 소중하고 아름다운 일이란 걸 백진슬 님과의 인터뷰를 통해 새삼 깨닫게 됐다. 물론 좋은 일만 있는 건 아니다. 졸업까지 한 학기를 앞두고 입사한 회사에서 20대 초년생이 일하기란 쉽지 않았다. 특히 진행요원들과의 오해가 불거져 마음 고생 했던 때를 생각하면 아직도 마음이 아프고, 속상하다고 했다. 그때 어린 나이의 여성이어서 더 고생했단 생각이 한편으로 들었다고 했다.

“저희 어머니도 저에게 하신 말이 날이 갈수록 화장이 진해진다고요. 그런데 저에겐 불가피한 일이기도 해요. 뭔가 그렇게 조금 더 선명하게, 또렷한 인상을 줘야 할 것 같아서 화장도 화려하게 하게 돼요. 머리도 원래 길었는데 짧게 잘랐어요. 물론 지금 제 머리가 저는 마음에 들어요. (웃음) 사람을 대하는 게 되게 어렵더라고요.” 

그에게 마지막으로 하고 싶은 말, 컨벤션 기획 노동을 하는 노동자들이 행복한 일터가 어떤 풍경이었으면 하는지 물었다.

“많은 분이 컨벤션 기획을 너무 어렵게 생각하세요. 대학에서도 컨벤션 학과가 사라지고 있거든요. 문화예술경영, 관광경영으로 통합되고 있는데 개설되는 수업을 보면 프랜차이즈, 외식 이런 쪽이에요. 벽이 높게 느껴질 수 있지만, 현장에 와서 다시배워야 하거든요. 현장만의 용어가 있고 그렇게 움직여요. 모든 일은 배우는 거니까요. 사실 저는 지금 일에 만족하는 편인데, 후임이 들어오면 저도 동등하게 대하고 싶어요. 아까 말한 것처럼 팀원들 간의 분위기가 좋아야 노동자들도 즐겁게 일 할 수 있거든요. 더러 야근도 많이 시키고, 막무가내 스타일인 회사도 있을거에요. 그런 사람들 혹은 회사의 분위기 때문에 고생하는 선배들도 봤구요. 모든 회사에서 사람이 사람답게 대우 받아야해요. 그리고 본인을 아껴줘야 하고요. 그러기 위해선 일에만 매이도록 하는 장시간 노동이 아니라, 자기를 위한 시간이 보장되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바로 자기를 돌볼 시간이요.“

당당하게 자기 노동에 자부심을 느끼고 앞으로 나아가는 백진슬 님이 순간 반짝이게 보였다.

[A-Z까지 다양한 노동이야기] 후암동에서 食(식)빵과 함께 - 빵 만드는 오너 셰프 이유나 님 인터뷰 / 2018.02

후암동에서 食(식)빵과 함께

- 빵 만드는 오너 셰프 이유나 님 인터뷰

재현 선전위원장


이번 일터가 만난 이유나 님은 서울 후암동에서 빵을 만들고 판매하는 오너 셰프였다. 이유나 님은 오래도록 좋아하는 빵을 만드는 일을 하고 싶다고 했는데 그러기 위해 어떠한 노동과 일상을 보내고 있는지, 좋아하는 일을 하는데 있어서 개인적으로나 사회적으로 어려움은 없는지 자세한 이야기를 들어보았다. 인터뷰는 지난 1월 22일 월요일 빵집 인근에서 진행하였다.


좋아했던 빵을 만들기 위해 준비했던 시간

“저는 원래 음악을 전공했는데, 졸업을 앞두고 미래에 대한 고민을 하며 여행을 다니다가 다른 삶도 살아보고 싶었어요. 제과에 관심이 많던 터라 대학졸업을 하고 한국에서 ‘르 꼬르동 블루’를 다니게 되었어요.”

르 꼬르동 블루란 프랑스 본교와 여러 나라에 분교를 가지고 있는 프랑스 요리, 제과, 제빵 전문 학원인데 이유나 님은 여기서 제과 공부를 마치고 관련된 일을 하다가 좀 더 심도 있게 일을 배우기 위해 캐나다로 워킹홀리데이를 떠났다. 그러다 마침 다운타운의 큰 빵집에서 함께 운영하는 비스트로에서 일을 하면서 빵에 대해 관심을 가지게 되었다.

“정말 혼자 아무도 없는 곳에 빈손으로 영어 이력서만 몇 십장 준비해서 캐나다로 떠났어요. 그러다 괜찮아 보이는 곳에 무작정 들어가서 일자리가 있는지 물었어요. 정말 운 좋게 취직이 되었고 몇 번의 해프닝 끝에 집도 구했어요. 함께 일하는 빵팀, 제과팀, 요리팀 친구들 대다수가 퀘벡사람들이라 그런지 서투른 저의 영어에 대해 크게 개의치 않아했고, 밥은 잘 먹고 다니는 지 힘든 건 없는지 걱정해주고 많이 챙겨줬어요. 캐나다에 가기 전에 한국 가로수길 레스토랑에서 1년 넘게 막내 일을 해서 그런지 일은 하나도 힘들지 않았어요. 워킹비자가 끝날 때쯤에는 제가 원하면 취업비자를 알아봐주겠다고 했는데 제가 혼자 있기에는 외로워서 돌아가겠다고 했어요. 그 시절 생각하면 내가 꿈을 꿨었나 싶어요. 한국에 다시 돌아와서는 유명한 빵집을 돌며 맛보고 그중에 가장 마음에 드는 개인 빵집에 문을 두드려서 취업하게 되었어요.”

우리가 흔히 아는 파리바게트나 뚜레쥬르 같은 프랜차이즈와 달리 개인 빵집은 빵을 만들기 위한 준비부터 만드는 과정, 판매까지 한곳에서 이뤄진다. 때문에 그곳 직원들은 권위와 실력을 겸비한 셰프에게 빵에 대해 배우는 것은 물론 판매 등 가게 운영 전반에 대해서도 배움의 기회를 얻게 된다.

“어디서 일을 하느냐에 따라 조금씩 과정이 다른데 제가 처음으로 일한 빵집은 저희 업계에서 알만한 사람은 아는 셰프가 있는 곳이었는데 취업하고 2년 넘게 빵은 만져보지도 못했어요. 오래토록 그 가게의 미래와 함께 성장할 사람이라는 검증을 마친 사람만이 주방으로 들어올 수 있다면서 손님과의 소통에 집중하는 모습을 보이라고 했었죠. 그 당시 저희 직원들 모두 정말 열심히 일했어요. 다음날, 다 다음날까지 빵 예약은 넘쳐났고 판매는 맨투맨 시스템이라 손님 한 분 한 분 서비스에 신경을 많이 썼어야 했어요. 쉬는날에는 시장조사를 다니며 셰프님께 고서를 써 내야 했고 항상 모든 것에 대한 피드백을 서로 쏟아내고 받아들이는 시간을 보냈어요. 그러다 번아웃 된 직원들이 하나둘씩 그만두고 저 역시 그곳을 나오고 로테이션이 확실히 되는 빵집으로 취업을 하게 되었어요.”

이유나 님은 두 곳의 빵집에서 5년의 시간을 보낸 후에 2015년 5월 후암동에 [후암동 食빵]이라는 식사 빵을 만드는 빵집을 열었다. 함께 근무했던 동료들 중에도 본인들의 가게를 운영하는 친구들이 있어서 서로 도움을 주고받고 있다.


후암동에서 꿈을 펼치다

“학창시절에 부모님께서 준비해주시는 밥만 받아먹다가 외국에 나갔을 때 직접 밥을 차려 먹어보니 삼시세끼 차려먹는 것이 여간 힘든 일이 아닌 거예요. 특히 한식이 손이 많이 가더라고요. 아침식사로라도 빵으로 대신해보니 간편했어요. 그래서 저는 밥 대신 식사로 먹을 수 있는 식사빵에 관심이 가고 만들게 되었어요.”

이유나 님은 다양한 맛을 연구하면서 후암동食빵 에서만 맛 볼 수 있는 식사빵을 만드는 데 많은 노력을 기울였다.

“일반적으로 빵에 관심이 없으신 분들은 치아바타 나 깜빠뉴(컨트리브레드) 등의 유럽 빵들을 조금 생소해 하더라고요. 그래서 누구나 친숙한 식빵 틀에 넣어서 치아바타食빵, 시골食빵 등등 이런식으로 개발했어요. 건강한 아침식사를 위해 상대적으로 저온에서 장시간 발효를 하여 소화가 잘 되는 식사빵이 되도록 하고 있어요.”

후암동 동네는 어떤 곳인지, 주로 어떤 분들이 빵집을 찾아오는지 물었다.

“후암동은 남산아래 서울 한 중심에 있지만 고즈넉한 분위기를 가진 동네에요. 오래사신 터줏대감 같은 어르신들도 많고 교통편이 좋다보니 새로 유입된 젊은 가족들도 많고요. 연령대를 불문하고 많은 분들이 찾아주세요.”


후암동에서의 하루

“일단 새벽 4시에 일어나서 출근해요. 낮 12시에 가게를 오픈하려면 5시에는 본격적으로 일을 시작해야 되거든요. 전날 반죽을 해서 저온발효 해 놓은 빵도 있고요, 전날 계량해둔 재료들로 당일 반죽을 하는 빵도 있어요. 반죽을 하고 1차 발효, 2차 발효, 분할, 벤치타임, 성형, 최종발효 등등 중간 중간 짬날 때 크로와상 제품도 만들고 하면 12시까지 정신이 하나도 없어요. 12시에 가게 오픈을 하고 손님응대를 하면서 최종 발효만 남은 빵들을 2~3시 까지 차례로 구워요. 빵이 다 나오는 3시부터는 식빵 틀을 닦고 발효실이나 오븐을 청소하고 다음날 계량과 프렙을 준비해요. 그러면 해가 지고 매장 청소를 하고 빵이 다 팔리면 바로 퇴근하고 빵이 남으면 늦게까지 손님을 기다리기도 해요. 보통 8시에 끝나는 편이에요.”

이유나 님은 쉬는 날을 제외하곤 보통 15시간씩 일했다. 직원을 채용해서 교대로도 일해 봤지만 여러 문제로 인해 계속해서 그럴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하루에 문 열고 있는 시간을 생각하면 제 생각에 2명이 교대로 일하면 될 것 같거든요. 이전에는 직원분이 있어서 제가 새벽에 나와서 빵 만들고 낮에 그분과 교대를 했는데 지금은 휴무를 늘리고 혼자 일하고 있어요."


허리에서부터 전해지는 고통

“일하면서 무거운 걸 많이 들어야 할 일이 많은데 이점이 가장 힘들어요. 제가 이쪽 일을 하면서 허리가 많이 안 좋아졌는데요 밀가루포대 라던가 무거운 걸 요령 없이 무조건 허리힘으로만 들어서 그랬던 것 같아요. 10여 년간 주방에서 일을 하다 보니 손목 무릎 안 아픈 곳이 없어요.”

이유나 님은 노동과정에서 겪는 어려움도 있지만 여성이라는 이유로 겪는 또 다른 어려움이 있다고도 했다.

“저처럼 결혼과 맞물려 있는 여성들이 1인 가게를 운영하기에는 굉장히 힘든 거 같아요. 저한테는 후암동 食빵이 자아실현의 공간인데 주변에서는 올해 나이가 몇이냐, 애는 언제 낳을꺼냐 이런 거만 물어보고 관심을 가지세요. 남성들과 달리 여성들은 가정을 꾸리게 되고 아이가 생기면 최소 몇 년은 일을 하기 힘들기 때문에 정말 신중한 고민이 필요하거든요”


일과 삶 균형을 맞추기 위한 노력

“쉬는 날도 바빠요. 밀린 빨래해야죠, 물리치료 받으러 병원도 다니고요, 은행일도 봐야하고요. 가게에서 사용하는 포장지에 도장도 찍어야 해요.”

이유나 님은 지난 3년간 쉼 없이 달려온 끝에 요즘 영업일을 주 4일(화~금)로 변경하면서 일과 삶의 균형을 맞추고 있다.

“저는 일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충분히 쉬는 것도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그런데 가게를 오픈할 때 휴무를 정하려고 하니 사람들이 다 말리는 거예요. 가게가 자리 잡을 때까지 하루도 못 쉰다는 생각으로 일해야 한다고요. 결국 그 얘기에 설득되어 첫해엔 주6일을 영업했어요. 사실 하루 쉰다 해도 영업을 쉬는 것이지 가게는 나와서 다음날 반죽과 프렙 등을 준비하고 들어가야 해요. 무튼 그러고 나서 가게를 운영해보니 손님이 없는 요일이나 특정 시기가 있잖아요. 그래서 두 번째 해에는 주5일 영업을 했어요. 그 당시엔 후암동 食빵 이라는 책을 작업 중이라 판매는 직원과 함께 했어요. 그러고 최근에 날이 추워지면 손님도 줄고 해서 주4일 영업으로 파격 결정했어요.”

요즘 이유나 님은 소비를 줄이고 나에게 휴식이라는 시간을 투자하는 게 낫겠다는 마음으로 휴일을 보내고 있다.

“지금은 제가 몸을 혹사하면서 일하고 싶지 않아서 이렇게 결정을 했는데 사실 부양할 가족이 없으니까 가능 한 것 같아요. 만약 책임져야하는 자녀나 부모님이 계신다면 아무리 쉬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아도 선뜻 이렇게 쉬겠다고는 못 했을 것 같아요."


오래도록 빵을 곁에 두었으면

인터뷰 마지막으로 이유나 님에게 이 일을 길게 하고 싶다고 했는데 10년 뒤 후암동 食빵은 어떤 모습일 것 같은지를 물었다.

“글쎄요. 저도 요즘 고민이에요. 요즘 들어 혼자 운영해 가는 것이 버거운 감이 없지 않아 들어서요. 우물 안 개구리가 되는 것 같기도 해요. 추상적으로 10년 후에 시골에 작은 빵집을 운영하고 싶어요. 저는 꼭 내 가게를 해야 되는 건 아니라서 좋은 곳이 있다면 하나의 구성원으로써 사람들과 복작대며 일하고 싶기도 해요.”

가게운영의 책임, 육체적인 부담, 여성으로서 결혼과 출산의 압박 등으로 인해 결코 쉽지 않겠지만 오래도록 이유나 님이 좋아하는 빵을 손에서 놓지 않기를 진심으로 바래본다.

[A-Z 다양한 노동이야기] 내 꿈은 좋은 선생님이 되는 거예요 - 영어 학원 선생님 인터뷰 / 2018.01

내 꿈은 좋은 선생님이 되는 거예요

- 영어 학원 선생님 인터뷰

재현 선전위원장


이번 일터가 만난 피터 님은 비록 어릴 적 원했던 학교 선생님은 아니지만, 학원에서 아이들을 가르치며 함께 호흡하는 영어 선생님으로 일하고 있다. 우연한 기회에 아르바이트로 시작했지만, 어느덧 5년 차에 접어든 피터님의 이야기를 2017년 12월28일 한 카페에서 직접 만나 들어보았다.


꿈과 현실의 간극이 컸던 시기

안녕하세요. 제 이름은 피터고요, 올해로 33살이에요. 학원에서 5년째 초. 중. 고 아이들에게 영어를 가르치고 있어요.

피터님은 고등학교를 다닐 때부터 선생님의 꿈을 키웠다고 한다.

제가 고등학교를 일반 학교가 아닌 대안 학교에 다녔는데요. 졸업할 때 선생님이 너는 나중에 훌륭한 영어 교사가 될 거라고 기대하신다고 했었거든요. 대학교 졸업할 때 즈음 학교 선생님으로 오라는 연락도 받았고요. 그만큼 저를 잘 아는 선생님도 그렇고 저도 그렇고 아이들을 가르치는 선생님이 하고 싶었던 것 같아요.

피터님은 꿈을 이루기 위해 대학에서 영문과를 전공하고, 교직 이수를 받아 학교로 가고 싶어했다. 그러나 비민주적인 대학과 부조리한 사회에 눈을 뜨게 되면서 교직의 꿈은 접어야만 했다.

영문과에 교직 이수가 과정이 있어서 공교육을 고민했는데 학생운동하고 학생회 활동하다 보니까 공부를 못했어요. 그러다 졸업을 해야 하는데 저한테 남은 건 벌금뿐이더라고요. 그래서 벌금 갚으려고 알바를 시작한 게 학원 선생님이었는데 이게 업이 돼서 5년을 했네요.


저녁 없는 삶

피터님은 악착같이 돈을 벌기 위해 제대로 된 휴가나 휴일도 없이 5년을 일했다고 한다.

학원이라는 곳이 아무래도 열악하잖아요. 특히 학원은 저녁 늦게까지 일하고 주말에 출근을 많이 해요. 월차, 연차, 휴가 같은 것도 없고요. 일할 때 근로계약서를 쓰기는 하는데 계약서 자체가 4대 보험 되는 거 빼고는 대부분 원장님에게 유리한 조항들이거든요. 예를 들면 다른 학원에서 일하지 않는다, 과외를 하지 않는다, 이런 조항만 있는 거예요. 그나마 있는 4대 보험도 학원에서 들어준다고 하면 고맙기는 한데, 이게 또 4대 보험을 들면 월급이 줄어서 웬만하면 안 하려고 해요.

그나마 월급에 더해서 성과에 따른 인센티브제도가 있었다고 한다.제가 가르치는 반에 학생들이 늘어나면 학원마다 조금씩 다르기는 한데, 학생 한 명 당 얼마 이렇게 인센티브를 받아요. 저는 한 명당 3만 원씩 받았던 것 같아요.


반복되는 시험과 씨름하는 학원 선생님의 하루 

저는 초, 중, 고를 다 가르치니까 오후 2시에 출근해서 밤 9시나 10시 돼야 퇴근했어요. 2시에 출근하면 원장님하고 선생님들이 학원 운영이나 학생들 학업 관련해서 회의를 해요. 그리고 나면 수업 준비를 하고 3시 반이나 4시 정도부터 초등학생들 수업을 시작해요. 그 다음부터는 중학생, 고등학생들을 가르쳤어요.

날마다 조금씩은 다르지만 대개 하루 3~4번 정도의 수업이 있다고 했다. 그나마 수업이 없는 경우에 교육과 관련해서 연구하고 고민할 수 있는 시간이 주어진다고 했다.

학생들에게 가르칠 교재를 연구하는 거예요. 혹시 모르니까 앞에 진도를 나가야 할 부분을 확인하기도 하고, 문제를 직접 풀어보기도 하고요. 만약 모르는 게 있으면 답을 찾아보고 하는 거예요. 학생들 수업 끝나면 교실 가서 간단하게 청소도 해야 하고요. 수업을 안 해도 일은 끊이지 않았던 것 같아요.

이러한 일상 시기를 거쳐 시험 기간이 되면 학원과 선생님들은 긴박하게 움직이게 된다고 한다.

시험 기간에는 주말이 아예 없어요. 보충 수업도 해야 하고 자습 감독도 해야 하니까요. 근데 이렇게 일해도 돈은 못 받아요. 요즘엔 워낙 경쟁이 치열하니까 어느 학원에서 주말에 다 무료로 보충해주고 공부시켜준다고 하는데 우리 학원이라고 어떻게 가만히 있겠어요. 경쟁에서 뒤처지지 않으려면 학원비도 안 받고 무료로 노동해요. 기출문제들 모아서 알려주고 문제 풀이해주고, 뒤떨어지는 아이들 있으면 나머지 공부시키고 정신없이 돌아가요. 시험 끝나면 원장님이 수고했다고 따로 몇십 만 원 챙겨주실 때가 있어서 그날만 기다리면서 버텨요.


학생뿐만 아니라 늘 평가받는 선생님

어쨌든 시험은 피할 수 없다 보니 결국 시험 점수에 따라 학원 선생님들도 평가받고 영향을 많이 받을 것으로 예상하였다.

처음 이 일을 시작했을 때는 열정을 가지고 아이들을 가르치려고 하고, 너무 공부해라 잔소리하기 보다는 학생들과 친밀하게 관계도 맺고, 공부 좀 못해도 된다고 생각했는데 이게 안 되더라고요. 아이를 학원에 보낸 부모님들은 시험 성적 안 나오면 바로 학원을 바꾸거나 원장님께 항의하거든요. 그럼 원장님은 선생님들을 이른바 쪼는 거에요. 이렇다 보면 선생님들이 압박을 안 받을 수가 없어요. 시험 끝나면 아이들이 그만두고 바뀌는 게 눈으로 확확 보이니까, 학원이 어려우면 저는 돈을 못 벌게 되니까 아이들에게 공부하라고 잔소리를 계속하게 돼요.


그래도 누군가를 가르칠 때 느끼는 행복감

아이들을 가르치는게 부담도 되는데, 그래도 아이들이 공부를 해서 성적이 오를 때 그럴 때 가장 보람을 느끼는 것 같아요. 스승의 날 이럴 때 손편지 써주고, 선물주고 그러면 아이들은 형식적으로 했을지도 모르지만 저는 정말 고맙더라고요. 학원을 그만둔 친구들이나, 이전에 다녔던 학원 아이들한테 연락왔을땐 정말 고맙더라고요. 그리고 학원 그만 뒀을 때 학부모들이 과외는 따로 안하냐고, 아이들이 선생님 너무 좋아하는데 아쉽다, 그런 이야기를 들으면 그래도 내가 아이들을 잘 가르쳤구나 싶은 생각이 들어요.

반대로 일하면서 원장님, 학부모, 학생들과의 관계에서 오는 스트레스나 어려움도 있었을 것 같은데 어떨 때 그런 생각이 드는지 물었다.

이게 영어라는 게 하루아침에 되는 것도 아니잖아요. 그래서 저는 이왕 공부하는 거 재미있게 하자 그런 생각이거든요. 그런데 학부모들은 일단 무조건 성적을 올리기 위해서 비싼 돈 내고 아이들 학원으로 보내는 거니까 그 기대를 충족시켜야 한다는 부담이 있어요. 그러다 보면 저도 모르게 성적이 안 오르는 학생에게 화를 내거나 짜증을 낼 때가 있어요. 정말 그러면 안 되는 건데, 가끔 이런 제 모습을 보면 이제는 이 일을 그만둬야 하나 그런 생각도 들어요. 특히 선생님과 학생은 분명한 권력 관계가 있는 거니까 이런 점을 분명 경계해야 되거든요.

최근엔 피터님이 같이 일하는 동료 여선생님들이 남자 학생들이 가하는 각종 성폭력, 성희롱 등으로 인해 수치스러움을 느끼고 힘들어 하는걸 볼 때 어떻게 대처해야 할지, 이 문제를 어떻게 해야 할지 고민이 깊어진다고 한다.


결국 몸은 아프고 건강을 점차 잃어가는 학원 선생님

이 일을 하다 보니까 스트레스를 많이 받아서 그런지 대상포진이 온 적 있어요. 의사 선생님이 스트레스를 많이 받을 때가 있었냐고 물어보더라고요. 진짜 학원 선생님들의 비애가 뭐냐면요 아파도 출근해야 하는 거예요. 우리는 쉴 수가 없어요. 아프면 아픈 데로 참고 해야 해요.

피터님은 몸이 아픈 것뿐만 아니라 저녁 없는 삶에 대해 어려움과 고층도 매우 크다고 말했다.

제가 5년 만에 일을 잠깐 그만두고 영국으로 여행을 다녀왔는데요. 저녁에 노을을 보는데 너무 예쁜 거예요. 그리고 한국에 다시 돌아와서 노을을 보는데 여기도 너무 예쁜 거예요. 그때 내가 이렇게 예쁜 저녁노을도 못 보고 살았다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왜곡된 사교육 시장의 한복판에서 드는 고민

지금의 사교육은 학부모에게는 너무 큰 부담을 주고 학생들은 억압시키잖아요. 잘못된 영어 교육 방식도 참 문제고 학원 선생님을 하고는 있지만 뭔가 바꿔야 할 것도 많고 고민도 있는데 당장 저 혼자 바꿀 수 있는 것도 아니라서 이점이 늘 어려운 것 같아요.

그래서 피터님은 전체 교육제도의 변화가 필요하지만, 당장 사교육을 없앨 수 있는 게 아니라면 학원 선생님들의 노동조건이 잘 갖춰져서 휴가도 쓰고, 아프면 병원도 갈 수 있고, 학부모나 학생들이 갑질해도 자신을 지킬 수 있는 권리가 보장되는 사회가 되었으면 좋겠다는 바람을 전했다.

[A-Z 노동이야기] 영원히 기억될 프로젝트를 남기고 싶어요 / 2017.12

영원히 기억될 프로젝트를 남기고 싶어요

- 홍보대행사 AE 김서영님 인터뷰

재현 선전위원장

 

언제나 클라이언트의 필요와 요구를

충족해야 하는 홍보대행사

저는 홍보대행사에서 일하는데요. 기업이나 공공기관에서 홍보를 해야 하는 모든 역할과 내용을 컨설팅해요. 그중에서도 구체적으로 저는 AE(Account Executive)역할을 하고 있어요. 회사 클라이언트와 소통하면서 홍보대행과 관련한 전체 모든 일을 총괄하는 역할을 하죠. 1년에 보통 4~5개 정도 회사랑 일하는데, 회사 관련 언론 모니터링부터 시작해서 보도자료 만들고, 홍보물이나 각종 행사 기획도 하고 인터넷이나 오프라인에 광고가 필요하면 광고대행사 통해서 직접 광고를 배치하는 일 등등을 해요.”

예전에는 홍보할 수 있는 매체가 주로 언론사밖에 없었는데 요즘엔 인터넷이나 SNS가 발달해서 홍보대행사에서 집중하는 매체도 이쪽으로 빠르게 변화하고 있다고 한다.

“AE가 하는 일 중에 가장 중요한 역할은 제안서를 쓰는 거예요. 매년 봄에 기업이나 공공기관에서 홍보 관련해서 입찰 공고를 내거든요. 그럼 이때부터 회사 클라이언트가 원하는 홍보 방향에 맞게 제안서를 쓰기 위해 제품이나 정책에 대한 공부를 시작해야 해서 준비할 게 많아요. 공부를 해야 만일 공공기관이라고 했을 때 그 정책이 왜 잘 알려지지 않았는지 원인을 찾고,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핵심적인 어떤 메시지와 방법이 필요한지, 홍보를 위한 효과적인 매체나 수단은 뭘지 이런 걸 분석하고 예상할 수 있거든요.” 

AE들은 제안서 채택 여부에 따라 회사의 1년이 좌지우지되기 때문에 1년 농사를 시작하는 마음으로 일을 한다고 했다. 

일하다 보니 야근도 밥 먹듯이 하고 가장 바쁘게 지내요. 그래서 이때가 가장 힘든데 늘 그때가 벚꽃이 지거든요. 그래서 우리끼리 매년 하는 말이 벚꽃이 떨어지는 걸 보니 제안서를 쓸 때가 됐나보다 이런 푸념을 늘어놔요. 친구들하고 약속이 있어도 나 이번에 제안서 쓰는 시즌이라 아무래도 못 나갈 것 같아이런 이야기만 반복하게 되고요. 그리고 꼭 이때가 아니어도 공공기관에서 종종 긴급입찰이라고 해서 7~10일 정도 시간만 주고 제안서를 받을 때가 있어요. 일반적으론 40일 정도 시간을 주는데 이때는 회사에서 발등에 불이 떨어졌으니 진짜 급하게 써야 해요. 문제는 애초에 계획에 있던 일이 아니잖아요? 그래서 원래 예정에 있던 일은 그대로 하면서 야근하거나 주말에 출근해서 그 회사에 대해서 처음부터 공부하고 1주일 만에 제안서를 쓰는 거예요.“

이쯤에서 무조건 긴급입찰에 참여해야 하는 것인지, 제안서를 쓰자, 쓰지 말자 선택하는 기준에서 AE에게 권한이 있는 것인지 궁금했다. 

무조건 모든 긴급입찰을 다 해야 하는 건 아니에요. 그렇지만 회사를 운영하기 위해서 최소한 벌어야 하는 연간사업비가 있잖아요. 그걸 맞추려면 제안서를 안 쓸 수가 없어요. 그리고 회사도 회사인데 결국 그 일을 하게 되면 저 스스로 커리어에 도움이 되는 거잖아요. 성과가 있으면 연말에 인센티브도 있으니까 시간이 부족해도 그 일을 하게 되는 경우가 자주 있어요.”

 

일상이 되어버린 야근과 주말 출근

여기에서 일하는 사람들은 대부분 비슷할 텐데 야근도 워낙 자주 하고 주말에 출근하는 일도 생각보다 많아서 내가 하는 일은 노동강도가 높은 일이라고 생각해요. 그런데 야근과 관련해서 이게 참 애매하고 어려운 것 같아요. 왜냐면 회사에선 스스로 야근 안 하고 싶으면 6시 퇴근 시간 맞춰서 일 끝내고 집에 가라고 하거든요. 대신 내가 일을 다 못 마치니까, 결과물이 없으면 평가나 성과에 안 좋으니까 하는 거죠. 그리고 제안서를 쓰거나 뭔가 집중해서 해야 하는 일은 낮에 하기가 어려워요. 이때는 회사 클라이언트나 같이 협력해서 일해야 하는 광고, 행사업체들이랑 조율하면서 일상 업무를 해야 하거든요. 만약 회사나 공공기관에서 클라이언트도 예상 못 한 이슈가 터져서 내일까지 해결해달라고 우리한테 전화가 오면 현장에 가서 사실관계 확인하고 기자나 SNS 등에 알려야 하거든요.” 

그래서 결국 AE들은 제안서를 쓰는 일처럼 긴 시간 집중이 필요한 일들은 저녁이나 주말에 몰아서 하게 될 수밖에 없다고 한다.

 

사람이 하는 일에 대해 저평가하는 사회

일하면서 속상할 때는 기업이나 공공기관에서 우리와 같은 일하는 사람들 인건비에 대한 개념이 부족하거나 없을 때인 것 같아요. 우리는 재료를 사서 상품을 만드는 일이 아니잖아요. 홍보 기획을 하는데 비용이 얼마가 드는지 시간은 얼마나 들었는지 필요한지 정해진 답이 있거나 증명하기가 어렵거든요. 그리고 우리가 아무리 만족할만한 기획을 했다고 해도 결국엔 회사 클라이언트의 필요나 취향, 선호도에 따라서 합격이든 아니든 결정되거든요. 그래서 제가 밤새도록 고민하고 준비했든 아니든 회사 클라이언트가 별로라고 저평가하면 그만이에요. 사람들이 우리가 만들어내는 무형의 가치를 인정하는 거에 너무 인색한거죠. 그래서 매번 계약할 때마다 인건비 좀 깎아주시죠 이 말이 자동으로 나오나 봐요." 

이러한 경우가 유독 한국만 있는지 해외에서는 어떻게 평가받고 있는지 궁금했다. 

제안서를 낼 때 한 회사뿐만 아니라 많은 회사가 제안서를 낼 거 아니에요. 그러면 외국 같은 경우엔 기획을 채택하지 않더라도 제안서를 제출해준 회사에 최소한의 보상을 하고 있어요. 제안서를 쓰기 위해 일했던 사람들이 있고 자료를 만들든 디자인을 만들든 비용이 들어갔을 거 아니에요. 그 수고에 대해 답례를 하는 개념인 거죠. 우리도 광고 시장이 호황일 때는 있었다고 하는데 요즘은 홍보 대행사가 워낙 많으니까 너희 아니어도 입찰할 회사 많다, 우리는 그 내용으로 안 할 건데 돈을 왜 줘야 하냐 그렇게 이야기해요. 근데 우리가 제출한 내용이 좋든 안 좋든 맞든 아니든 그 회사 사업에 도움이 될 만한 다양한 아이디어를 제공한 거잖아요. 적어도 우리가 한 곳을 결정하는데 비교 대상 역할이라도 한 거고요.”

 

일을 처음 시작했을 때 마음을 잊어버리게 되는 요즘

제가 이 일을 하게 된 건 그때는 몰랐는데 요즘 고등학교 때 선생님 영향을 많이 받았다는 걸 새삼 느끼고 있어요. 언젠가 선생님들이 대학교에서 <송환>이라는 독립영화를 상영하는데 보러 가고 싶은 사람은 야간자율학습 빼줄 테니까 가도 된다고 안내해주셨어요. 그 영화가 비전향 장기수에 관한 내용이었는데, 왠지 그 영화를 보면 뭔가 세상에 비밀을 알게 될 것만 같은 느낌이 들더라고요. 그래서 친구들이랑 같이 영화를 보러 갔는데 그때 아니 사람이 이렇게 사는 세상이 있구나! 그런데 세상이 어떻게 이럴 수 있지? 내가 어떻게 이런 걸 모르고 살았을까 충격이 엄청 컸어요. 그때까지 살면서 이렇게 마음이 힘들었던 적이 없었던 것 같아요. 그때부터 대학에 가서 다큐멘터리 감독을 하고 싶어서 방송반 활동을 하면서 꿈을 키웠는데, 졸업을 앞두고 문득 현실에 벽이 높다는 걸 느끼겠더라고요. 그래서 어떤 일을 하더라도 공익에 도움이 되는 일을 하려고 했는데 기업이나 공공기관에서 그게 이미지 포장이든 뭐든 광고를 통해 이런 역할을 하잖아요. 그래서 자연스레 이쪽에서 일을 시작하게 됐는데 벌써 7년이란 시간이 흘렀어요. 요즘엔 직업관이라고 해야 하나 생각을 많이 하게 돼요. 처음 시작했을 땐 뭔가 의미 있는 일을 하고 싶었는데, 일에 치이면서 바쁘게 살다 보니 기업이나 공공기관이 해야 할 사회적 책임이나 역할을 내가 대신 때워주고 있는 건가 그런 생각이 들더라고요. 일에서 의미를 못 찾겠으니까 몸도 마음도 더 힘들어지고 그냥 월급이나 받자 사람이 이렇게 되더라고요.” 

그래서일까. 김서영 님은 요즘 사회적인 가치를 우선하고 그 가치를 같이 실현할 수 있는 조직이나 사람과 같이 일해보고 싶다는 고민이 깊어지고 있다고 한다. 

이런 생각을 들게 한 시발점이 노동강도에요. 하루 24시간 중에 저를 위해 쓰는 시간이 절대적으로 부족하더라고요. 저 스스로 에너지가 있어야 일에 결과물도 좋을 텐데 지금은 영 그렇지 못해요. 한편으론 그동안 너무 일을 통해서만 자아실현을 하려고 했나 그런 고민도 들어요. 요즘 워라벨(일과 삶의 균형을 뜻하는 신조어, Walk and Life Balance)이 중요하다는 이야기가 많이 되고 있는데 저한테도 절실한 이야기인 것 같아요.” 

 

힘들어도 이 일을 계속하는건

일에 대해 자부심도 있고 기쁨도 있어서일 거에요. 제가 기획한 홍보가 지하철이나 라디오 광고로 나오고 이런 결과물이 나왔을 때 가장 기쁜 것 같아요. 우리가 하는 일은 사람과 협업이 중요한데 다 같이 과로하고 힘들지만 서로 잘 알고 이해해주고, 서로서로 인정해줄 땐 뿌듯하기도 하고요. 가장 힘들었을 땐 내 생활이 없을 때겠죠. 2주 동안 계속 야근해봐요. 일하는 시간이 길어서 신입들이 들어오면 1년 정도 다니다 그만두는 경우가 자주 있어요. 일을 통해 재미를 찾거나 자부심을 느끼거나 성취감을 느끼는 사람들만 남는 거죠. 그리고 저희 일이 늘 촉각을 다투다 보니 시기도 중요하고 마감도 지키면서 완벽해야 하는 부담이 있어요. 기사로든 온라인으로든 세상에 알려지고 나면 주워 담지 못하잖아요. 그래서 저 같은 경우엔 평일엔 항상 몸이 많이 긴장되어 있어요. 작은 것 하나에도 예민해지고요. 이럴 때 그나마 숨 좀 쉬고 싶을 땐 여행을 가요. 우리 회사가 출퇴근이나 연차 휴가 이런 게 자유로운 편이라 프로젝트가 끝나거나 일을 어느 정도 마무리했을 때 여행 갈 수 있게 시간을 보장해주거든요. 그리고 3년마다 유급으로 안식월 휴가를 줘요. 그나마 이런 시간을 회사가 보장해주니까 다들 재충전하고 힘내서 일하는 것 같아요.”

 

앞으로의 계획과 바람

저는 끝까지 이 일을 잘 해내고 싶어요. 일은 힘들지만, 항상 일할 때 이 생각해요. 사람이 평생 살면서 뭔가를 남기잖아요. 그래서 저는 뭔가 프로젝트를 하나 남기고 싶은 마음이 들어요. 그리고 오늘 인터뷰 나오면서 이 이야기는 꼭 하고 싶었는데 요즘 4차 산업혁명이다 뭐 다 그러는데 저는 오히려 사람이 할 수 있는 일, 사람이 할 수밖에 없는 일에 대해 사회적으로 가치 평가가 높아져야 한다고 생각해요. 얼마 전에 제주에서 특성화고 현장실습생 문제가 또 불거졌잖아요. 일하다 사람이 죽었다는 소식을 볼 때면 너무나 슬프고 마음이 아파요. 그래서 어쩔 땐 외면하고 싶은 마음도 들어요.” 

[A-Z 노동이야기] 화면 밖에서 방송을 만드는 사람들 / 2017.10·11

화면 밖에서 방송을 만드는 사람들

- 방송작가 황민주 님 인터뷰

재현 선전위원장


우연한 기회에 방송국 조연출로 알바를 하면서 방송작가의 꿈을 키웠다던 황민주님은 지난 3년간 방송국에서 일했다. 최근에는 현장에서 일하는 방송작가 노동자의 노동인권을 위해 ‘공정노동을 위한 방송작가 대나무 숲’를 운영하며 온오프라인 할 것 없이 활동하고 있다. 이번 일터에서는 황민주님이 짧다면 짧고 길다면 긴 방송작가 생활 3년을 어떻게 기억하고 있는지에 대해 자세한 이야기를 들어보았다.

방송작가는 어떻게 시작하게 되었나요.

"대학에서 언론 정보학을 전공했는데 정작 학교 다닐 때는 전공을 살릴 생각이 없었어요. 부모님도 공무원 시험을 준비했으면 좋겠다고 강하게 권유하셨거든요. 그래서 학교 휴학하고 시험 준비를 했는데 도저히 못할 것 같아서 공부는 정리하고 학교 복학 전까지 등록금 마련하려고 알바를 구했어요. 그때 마침 한 파견업체에서 제 전공을 보더니 방송국에 자리가 있으니 오라고 해서 그때부터 1년 반 동안 방송국에서 뉴스 송출하는 조연출 알바를 했어요. 왜 뉴스 진행할 때 앵커가 보는 카메라 화면을 프롬프터라고 하잖아요 그걸 만들었어요.

그리고 뉴스에 필요한 영상 틀어주고 그 밑에 자막 넣고, 앵커 뒤에 있는 배경화면에 맞는 사진이나 영상도 찾고요. 한 달 일해서 받는 월급은 150만 원 정도였는데 그것도 제가 새벽 4시까지 출근이라 하루 교통비 1만 5천 원이 포함된 거였어요. 사실상 최저임금도 못 받으면서 일한 거죠. 그렇게 일하면서 제가 예전부터 글 쓰는 걸 좋아해서 그런지 조연출 일보다 옆에서 방송 작가가 하는 일이 재미있어 보이더라고요. 그때부터 방송 작가가 되기로 했어요."

그 뒤로 황민주님은 KBS 구성작가 협의회 홈페이지에 구인구직 글이 올라오는 걸 보고 이력서를 보내며 일을 찾았다. 이곳 홈페이지가 방송 작가 구인구직이 제일 활발한 곳이기 때문이다. 지상파 3사에서 운영하는 아카데미에서 구성작가 반 수업을 듣지 않는 이상 대부분은 방송사나 외주제작사가 작가의 이력서를 보고 직접 계약하는 형태로 작가 일을 시작한다.

"제가 보낸 이력서를 보고 KTV라고 국가에서 운영하는 정책방송원 방송국에서 연락이 와서 휴먼다큐 프로그램에서 일하게 됐죠. 서울에서 세종시까지 출퇴근 하는 게 힘들어서 6개월 정도 막내 작가로 일했어요. 그다음엔 MBC에서 1년 가까이 일하고, 채널 A에서 1년 반 정도 일했고 입봉도 여기서 했어요."

- 방송국에서 하루 동안 어떤 일을 하나요.
"KTV 방송은 수요일에 한 번 30분 동안 방송했기 때문에 주 단위로 일을 했어요. 방송내용이 다른 사람들을 위해 의미 있는 일을 하는 일반인들을 조명하는 다큐멘터리였어요. 그래서 방송을 하는 수요일부터 금요일까지는 다음 방송 아이템을 찾거나 사람을 섭외했어요. 섭외가 확정되면 전화로 사전 인터뷰하고 어떠한 내용으로 촬영하면 좋겠다는 구성안을 촬영팀에 작성해줘요. 촬영팀은 그대로 주말 내내 영상 찍어서 월요일에 제작팀에 줘요.

그 다음날부터 막내작가들은 촬영한 걸 프리뷰라고 해서 영상에 있는 모든 상황을 말로 풀어요. 누가 등장했다 어떤말을 했다 등등요. 그걸 보고 제작진이 방송에 나갈 영상을 대략 편집한 가편집본을 만들면 저희는 자막 입히고, 더빙하고 작업을 마치죠. 1주일 내내 이렇게 방송을 만들면 수요일 오전에 부장급 임원들이랑 시사회를 열고 수정 의견 있으면 반영해서 저녁에 방송을 내보내요. 그렇게 방송 끝나면 다시 아이템 찾고 지난주에 했던 일을 반복하고요."

황민주 님은 매주 계속되는 방송에 문제가 생기지 않도록 하기 위해 최소 10개 이상의 아이템을 확보하려고, 퇴근하거나 주말에도 아이템 찾기를 쉴 수 없었다고 한다.

"MBC에서는 창사특집 방송이었는데 청년을 주제로 해보자는 것 외에 세부적인 내용이 없어서 방송 제작보다는 가장 처음 기획부터 같이했어요. 그때는 아이템 회의 정말 많이 했는데 하면서 허탈했던 기억이 있어요. 피디나 조연출분들이 요즘 불안정한 청년들, 3포 세대 청년들 취재해보자면서 누가 좋을지 고민하는데, 사실 자기들 눈앞에 방송 작가들이 있잖아요. 최저임금 받으면서 주말도 없이 일하는데 저희가 그렇게 일하는 건 당연하다고 생각했나 봐요. 아무튼, 그래서 기획이 정해지면 방송에 필요한 출연진, 대역배우, 소품, 광고까지 모든 섭외를 다 하는 게 중요했어요. 

채널A에서는 오후 시간대 뉴스 프로그램에서 일했어요. 주간에 있던 뉴스들에 이슈가 된 몇 개를 선정해서 집중적으로 분석하는 방송이었죠. 그때는 점심시간 전까지 주요뉴스를 선정하는 게 중요해서 아침에 늘 쫓기며 일했던 것 같아요. 출근하자마자 회사 내부 홈페이지에서 기자들이 이슈들 발제한 자료 읽고, 오늘 청와대, 국회 등에서 어떤 주요 뉴스가 있는지, 자료를 받으려면 어느 기자에게 연락하면 되는지 확인하고 현장에 연락해서 자료 요청하고 인터뷰를 받고 그랬었죠. 그리고 나서 생방송 때 전체적인 영상을 어떻게 구성할지 스케치해서 제작팀에 넘기고, 앵커한테 순서지랑 대본 주고, 패널한테는 예상 질문과 답변할 때 참고해야 할 자료를 정리해줬죠. 방송 시작하면 작가 몇 명은 부조정실이라고 하는데 거기서 방송을 송출하고 몇 명은 스튜디오에서 앵커랑 패널들한테 진행 상황 알려주고, 속보 있으면 안내하고 그렇게 하루 일을 마무리했어요."

- 일하면서 가장 어려웠던 건 뭐였나요.
"처음 조연출 알바 할 때 세월호 참사가 있었어요. 그때는 저뿐만 아니라 다들 너무 슬퍼해서 평점심을 유지하고 방송하는 게 힘들었죠. KTV에서 일할 때는 일을 해도 해도 끝이 없어서 답답했어요. 일반인들 섭외하는 것도 어려웠고요. 제가 만약 섭외를 못 하면 선배 언니들이 "너가 설득력 있게 말을 못 해서 그런 거라"고 혼낼 때는 서럽기도 하고요. 채널 A에 있을 때는 촛불 정국이라 뉴스가 너무 많았잖아요. 일도 많은데다 박근혜랑 태극기 부대 쳐다보면서 일하는 게 힘들어서, 그때는 진짜 영혼은 집에 두고 몸만 출근해서 기계처럼 일했던 것 같아요. 그리고 방송 작가들은 다 공감 할 텐데 전화하는 일이 어려웠어요. 생판 모르는 사람한테 방송을 출연해달라고 전화하고, 인터뷰도 해야 하는데 용기가 안 나더라고요. 그래도 방송 작가는 전화로 일 시작해서 전화로 일 끝나니까 꾸역꾸역했던 것 같아요. 아 그리고 뉴스 프로그램을 하다 보니까 온갖 시사 문제를 이해하고 내용을 쫓아가는 일도 처음엔 쉽지 않더라고요."

- 방송 작가에 대한 처우는 어떠했나요.
"어디를 가나 막내 작가는 대부분 최저임금 못 받아요. 2~3년 정도 지나야 그나마 최저임금 받으려나요. 여기는 돈이 진짜 안 돼서 서울에서 혼자 살면 월세 내고 남는 것도 없어요. 그리고 만일 방송 촬영을 마쳤어도 방송국에서 내부 사정으로 방송을 못 하거나 안 하잖아요 그걸 방송이 죽는다고 하는데 그랬을 때 우리는 주급을 못 받아요. 내부 사정으로 방송이 죽었는데 그 피해는 방송 작가들이 받는 거예요."

그래서 방송 작가들은 월드컵이나 올림픽 때 경제적으로 제일 어렵다고 한다. 이 기간이 되면 각 방송사는 2~3주 정도 기존 방송 편성을 죽이고 스포츠 경기로 채운다. 이렇다 보니 방송 작가들 세계에서 월드컵이나 올림픽은 불청객 취급을 받는다.

- 그런데도 이 일을 계속하는 이유는 무엇인가요.
"사건은 슬픈 내용이었는데 개인적으로 보람 있었던 기억이 있어요. 얼마 전에 아파트 주민이 외벽 청소하던 노동자 생명줄을 끊어서 죽인 일이 있었잖아요. 제가 사건사고 담당이라서 소식 접하고 유족분에게 전화로 인터뷰를 요청했어야 했는데, 그때 너무 죄송하고 미안해서 머뭇거렸거든요. 그러다 전화를 걸었는데 유족분이 흔쾌하게 인터뷰에 응해주시고, 방송 이후에도 직접 전화를 주셔서 언론 보도 때문에 너무 큰 도움 받았다고 고맙다고 말씀하시는 거예요. 그때 내가 하는 일이 누군가에게 작은 도움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하니까 기쁘더라고요."

- 일하면서 다치거나 아프면 어떻게 해결하나요? 그리고 현장에서 가장 먼저 바뀌어야 할 점은 뭐라고 생각하나요.
"아무래도 컴퓨터 작업이 많으니까 목, 어깨, 손목 이런 데가 늘 아파요. 그런데 산재는 신청도 어렵고 승인받는 것도 어렵잖아요. 저희는 산재보험료를 안 내는 사람들도 많거든요. 정규직으로 일하면 무급으로라도 병가 내고 쉬려고 할 텐데 방송 작가는 99%가 비정규직이니까 병가 내고 쉬는 건 불가능하죠. 지금 당장 꼭 바꾸고 싶은 거는 다운 계약서를 써보는 거예요. 방송 작가들이 평균 6개월이나 1년에 한 번씩 프로그램이나 방송사를 바꾸게 되거든요.

그런데 단 한 번도 제대로 된 계약서를 써본 적이 없어요. 제가 정책방송원에서 일 할 때도 거긴 정부기관인데 계약서를 안 쓰더라고요. 그러니까 정확히 내 월급이 얼마인지 노동조건은 어떠한지 몰라요. 제가 MBC에서 일하게 됐을 때 조연출한테 월급이 얼마냐고 물어보니까 "근데 그걸 왜 물어보세요"라고 답을 하더라고요. 노동부도 우리는 노동자가 아니고 개인사업자라서 보호해줄 수 있는 방법이 없데요. 정권 바뀌고 나서는 노동자성을 인정받을 만한 자료를 찾아오라고는 안내하는데 앞으로 어떻게 될지는 모르겠어요."

그래서 황민주 님은 방송 작가들 스스로 어떤 조건과 환경에서 일하고 있는지 알 수 있고, 부당한 대우를 받았을 때 항의할 수 있도록 근거가 되는 표준 계약서가 필요하다는 이야기를 강조했다.

- 마지막으로 하고 싶은 말씀은.
"사실 방송 작가들이 열악하게 일하는 거 모르는 사람은 없잖아요. 그렇지만 방송 작가들 이 일을 너무 하고 싶어서 시작했거든요. 일하면서 자부심도 느끼고 즐겁게 살고 있고요. 그런데 한쪽에선 방송 작가들이 너무 불쌍하고 열정 페이 받으면서 일하는 사람으로 비치는 것 같아서 마음이 복잡해요.

어떨 땐 열악한 환경이 알려지면 좋겠다는 마음과 우리가 불쌍하게 여겨지는 것 같아서 괜히 불편한 마음 사이에서 늘 왔다 갔다 하게 돼요. 그래서 요즘 생각하는 게 다른 사람들이 우리가 불쌍하다고 생각하는게 아니라 방송 작가들 스스로 어떠한 마음으로 어떠한 환경에서 일하고 있는지, 변화가 필요한 건 무엇인지 말하고 알리는 게 너무나 필요하다는 생각이 들어요. 그렇게 되도록 더 많은 작가들을 만날 거예요."

[A-Z 노동이야기] 음식의 종합예술가, 푸드스타일리스트 / 2017.9

음식의 종합예술가, 푸드스타일리스트

- 푸드스타일리스트 김아름 님 인터뷰

재현 선전위원장


바야흐로 먹방의 시대다. 방송과 SNS에선 언제든 음식을 먹는 장면과 그 음식을 아주 저렴하고 쉽게 만드는 영상들이 수없이 방영된다. 이러한 먹방 컨텐츠가 최근 인기가 점차 줄고는 있지만 1인 가구와 혼밥족에게 여전히 상당한 영향력을 미치고 있다. 이번 일터가 만난 김아름 님도 그 영향력을 매일 같이 확인하며 일하고 있다.


▲ 화려한 조명 뒤에 보이지 않는 푸드스타일리스트 


본인 소개 부탁드려요

“안녕하세요. 저는 김아름이고요 컨텐츠 회사에서 1년 차 푸드스타일리스트로 일하고 있어요. 컨텐츠 회사란 말이 익숙하지 않을 수 있는데 SNS에서 음식 만드는 영상이 나오는 회사들은 다 컨텐츠 회사라고 생각하시면 돼요. 먹방부터, 요식업, 구매대행, 책 발간 등 다양한 사업을 하고 있어요.”

요리사를 할 수도 있었을텐데 이 일을 하게 된 계기가 있나요?

“고등학생 때부터 요리를 좋아해서 대학 진학을 푸드스타일리스트학과로 했어요. 본격적으로 공부하고 졸업해서 처음엔 레스토랑에 매니저로 취직해서 일했어요. 레스토랑 운영과 관련해서 전반을 배울 수 있어서 좋았는데 일이 너무 힘들고 저랑 맞지 않는 것 같아서 그만두고 무역 회사에서 사무직으로 일했어요. 그런데 몸은 편해도 너무 무료하니까 다시 하고 싶은 일을 찾고 싶어서 고민하다가 지금 이 회사에서 푸드스타일리스트로 일을 하게 되었어요. 요리사를 할 수도 있었을 텐데 굳이 이 일을 하게 된 건 요리도 기본 잘하면서, 음식과 함께 공간을 연출하면서 다양한 소품을 사용하고, 사진과 영상도 촬영하면서 종합적으로 일을 할 수 있어서 저랑 맞고 재미도 있겠다고 생각했어요. 푸드스타일리스트는 일할 수 있는 분야도 다양해요. 요리책을 만들기도 하고 호텔, 웨딩홀, 출장뷔페, 파티룸 등에서 음식 세팅하는 일을 푸드스타일리스트가 하거든요. 방송이나 광고, 음식점 메뉴판에 들어가는 사진이나 영상을 제작하는 일도 하고요.”

지금은 회사에서 주로 어떤 일을 하고 있고, 운영은 어떻게 하나요?

“이 회사가 10대~20대층을 주 타깃으로 SNS, YouTube 채널에서 음식 만드는 방송을 하다 보니, 그 음식을 정하고 만들기 위한 레시피와 재료 준비를 하고 직접 만들어요."

김아름 님의 회사와 비슷한 컨텐츠 회사가 요즘 매우 많아지다 보니 경쟁이 아주 치열하다고 한다. 그래서 푸드스타일리스트들은 동영상 조회수나 좋아요와 공유 횟수, 댓글 반응 등에 굉장히 민감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방송할 때 보는 사람이 나중에 혼자서 만드는 법을 따라 할 수 있도록 쉽게 만들어요. 그래야 사람들이 직접 요리를 하게 되고, 그러면 외식업계 광고주나 회사에서 저희 회사에 광고를 문의하고 계약하죠. 그다음부턴 저희가 요리를 정하고 레시피를 만들 때 계약을 한 회사 제품을 사용해요. 요리를 할 때 사람들이 사고 싶은 마음이 들게 하거나 계속 그 제품을 노출해서 판매에 도움이 되게 하는 거죠.”

사회적으로 1인 가구가 증가하면서, 이른바 혼밥으로 간편하게 먹을 수 있는 음식에 대한 요구가 높아지다 보니, 각종 컨텐츠 회사와 외식업계 이러한 방송을 통해 시장을 창출하고 수익을 내고 있었다.

출근해서 퇴근까지 일과가 어떻게 되나요?

“집에서 아침 5시에 일어나요. 준비해서 나가면 5시 반이고 버스랑 지하철 타고 한시간 반 정도 가요. 회사 근처에 도착하면 헬스장 가서 운동하고 씻고 10시에 출근해요. 출근하면 오늘 어떤 요리를 할 지 확인하고 스튜디오에 가서 냉장고 확인하고 없는 재료가 있으면 회사 차 끌고 재래시장, 백화점 등에 가서 장을 봐요. 회사 도착하면 12시쯤 되고 장바구니 들고 스튜디오로 가요. 저희는 어차피 요리할 때 음식 맛보고 먹어야 하니까 점심을 따로 안 챙겨 먹어요. 1시쯤 되면 이제 요리를 해요 하루에 4~5개 정도 만드는데 평균적으로 저녁 8~9시가 돼야 끝나요. 그나마 쉬운 요리가 많아서 빨리 끝난다고 해도 7시에요. 이렇게 촬영하는 게 1주일에 한 두 번 정도 돼요.”

김아름 님은 요리를 마쳐도 일이 끝이 아니라고 한다. 뒷정리하는데 만 1시간 정도 걸리고 사무실에 올라가서 업무 일지 쓰고 영수증 정리해야 퇴근하는 것이다. 그렇다면 요리가 없는 날은 어떻게 일과를 보낼까?

“보통 금요일에 긴 회의를 해요. 회사에서 방송 반응이 어땠는지 SNS 좋아요 횟수, 댓글 반응 같은거 정리해서 피드백을 주거든요. 그럼 그거 평가하면서 다음 한주는 어떤 요리를 할지 레시피는 뭐로 할지 논의해요. 요리를 정하는 방식은 회의 때 푸드스타일리스트 각각 한 명씩 레시피를 제출하고 이건 어떤 층이 좋아할 것 같고, 이렇게 하면 더 간단할 것 같다 등등 설명을 해요. 그 음식이 채택되면 미리 손질해야 할 재료 같은 게 있으면 준비해서 방송을 대비하죠.”

레시피 연구하면서 스트레스를 많이 받을 거 같아요?

“그나마 촬영이 없을 때 레시피를 연구하니까 몸은 살짝 여유가 있는데 정신적으로 스트레스가 상당해요. 주로 대부분 먹방 TV에 나와서 사람들이 알 만한 거, 방송에서 입체적으로 보이기 쉬운 치즈 요리를 많이 연구하는데 사실 워낙 먹방이 많고 오래되면서 사람들이 식상해 하는 게 있어요. 그런데다 저희는 광고 계약 한 회사 제품을 사용해서 레시피를 만들어야 하니까 요리에 제한이 많아요.”

상황이 이렇다 보니 최근 이 회사는 최근 해외에서 유명한 음식을 구매대행 하거나 레스토랑을 운영하는 등 새로운 수익 모델을 만들고 있다고 한다.

“요즘엔 요리하는 것도 계속하면서 회사에서 낸 레스토랑메뉴를 음식으로 만들고 사진이랑 영상 촬영하는 일이 많아요. 그리고 책도 내려고 해서 그거 작업하고 있고요. 사실 이런 게 회사한테 수입이 되니까 일할 때 시간을 많이 쏟게 되는데, 방송은 돈은 별로 안 돼도 회사 인지도가 쌓이는 거니까 그것대로 해야 하거든요. 이러니 매일 새벽에 퇴근하고 회사 간이 침대에서 쪽잠 자고 일어나서 헬스장 가서 씻고 다시 일하고 이 루트를 반복하고 있어요."

일하면서 속상했던 점은 없나요?

"아무래도 다치거나 아플 때 마음이 안 좋죠. 요리하면서 손에 물이 많이 닿으니까 주부습진, 포진 이런 게 심해요. 약 바르고 고무장갑 끼고 별 방법을 써봐도 손에 물이 들어오니까 내가 이렇게까지 일을 해야 하나 싶어요. 그리고 매일 서서 일하니까 허리도 아프고 부종이 너무 심해요. 집에 와서 꼭 족욕을 하는데 그런데도 안 풀려요. 다리에 쥐가 나니까 새벽에 자다가 깬 적도 많고요. 공간 연출할 때 무거운 나무판 같은 거 들고 다니고, 시장도 한꺼번에 많이 보니까 그 무게도 부담이 돼요.

아픈 거 말고는 아무래도 같이 일하는 동료들 나잇대가 저랑 비슷하다 보니 또래 친구들보다 일을 못 한다는 생각이 들 때 속상해요. 선의의 경쟁이라고 해야 하나 그런게 없지 않아 있거든요. 살이 계속 찌는 것도 짜증이 나고 스트레스에요. 일하면서 음식 맛보고 해야 하니까 입사해서 지금까지 살이 8kg 나 쪘어요. 내 능력으로 최선을 다했는데 남들이 그건 아니라고 질책 할 때도 힘들고 속상해요. 이럴 때 친구들한테 속 시원히 마음에 있는 이야기하고 싶은데 친구들은 대부분 학교에 다니니까 공감도 안되고 제가 회사 힘든 이야기를 하면 하루 이틀이면 들어주지만 제가 매일 그러니까 이젠 듣기 싫어하죠."

반대로 일하면서 즐거웠던 적은 언제에요?

"누구나 다 아는 방송이나 책에서 제 손이 나올 때 기쁘고 뿌듯해요. 음식점 갔을 때 메뉴판에 제가 만들고 촬영한 음식이 있으니까 자부심이 느껴지더라고요. 그런 재미라도 있어야죠. 그리고 촬영할 때 어려운 요리인데 뭔가 쉽게 척척 될 때가 있어요. 자주는 없는데 그럴 때가 기쁜 것 같아요. 말하고 나니 속상한 게 더 많네요."

사람들이 푸드스타일리스트라는 직업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 것 같아요? 그런 인식이 불편하거나 그렇지는 않나요?

“대부분 신기해하거나, 우와 그런 것도 있어요! 와 멋있다 대박이다!는 이야기를 가장 많이 듣는 것 같아요. 어떤 분들은 요리 엄청 잘하겠네! 이렇게 말씀하시는데 그럴 땐 속으로 조금 찔려요. 요리를 기본 하는 거지 요리사처럼 그렇게 잘하는 건 아니거든요. 아 연세가 있으신 분들은 결혼해서 남편 밥 하나는 잘하겠다고 1등 신붓감이라는 이야기를 하세요. 특히 회사에서 청소하는 아주머니들이 저만 보면 매번 그 말씀을 하세요.”

5년 뒤나 10년 뒤에는 어떻게 살고 있을 것 같아요?

"글쎄요 이 일은 계속할 것 같은데 지금 회사에 있을지는 모르겠어요. 신생 회사라서 체계가 계속 바뀌고 자리도 불확실해서요. 동료들도 이 회사는 한 번 쯤 경험해보고 더 큰 회사를 가거나 프리랜서로 일하려고 해요. 지금도 일을 하고 있는데 앞으로 뭐 해먹고 살지 이걸 진짜 많이 생각해요. 지금 일이 워낙 힘들고 만족도가 떨어져서 그런지 이 생각을 계속하게 돼요. 그리고 독립도 하고 싶어요."

마지막으로 하고 싶은 이야기가 있어요?

"인터뷰 하다 보니 대학 입학할 때 이 일을 너무 하고 싶어서 자기소개서에 큰 포부를 쓰고 면접 보고 했던 기억이 떠올랐어요. 지금 일이 조금 익숙해지면서 나태해진 게 없지 않아 있는데 인터뷰하면서 그때의 포부 자신감을 다시 찾아가는 느낌이 들어요. 고맙습니다."

여행을 좋아하는 아름 씨는 언젠가 반드시 세계일주의 꿈을 이루고 싶다고 한다. 많은 사람에게 유익하고 즐거움을 주는 푸드스타일리스트로써 꼭 성공하길 바라며 원하는 세계일주의 꿈도 꼭 이룰 수 있기를 늘 응원하겠다


[A-Z 노동이야기] 우리 일터부터 좋게 만들어요! / 2017.8

우리 일터부터 좋게 만들어요!

- 노동인권 시민단체 활동가 복성현 님 인터뷰

문영 한노보연 실습 학생

시민단체 파견근무를 하고 있다는 복성현 활동가 말에 먼저 떠오른 것은 SNS의 시민사회활동가 대나무숲페이지였다. SNS에는 임금님 귀는 당나귀를 외친 대숲에서 따온 ○○대숲 페이지가 흔하다. 시민사회 활동가 대숲도 그 중 하나다. 활동가들의 장시간 노동, 저임금, 감정노동과 여러 소진 문제를 터놓는 글들이 종종 익명으로 게시되며, 활동가들이 기명 또는 익명으로 공감의 댓글을 단다.

저는 제 일자리에 굉장히 만족하고 있어요.

올해 4월부터 서울시 아르바이트 청년 권리지킴이로 시민단체 우리동네노동권찾기에서 파견근무를 하는 복성현 활동가는 환하게 웃으며 얘기했다. 그래서 지금은 힘든 얘기가 하나도 없단다. 지금 일하는 곳 말고, 작년부터 올해 3월까지 특성화고교 현장실습으로 취직해서 일했던 곳의 이야기를 주로 풀어내겠다는 그를 말렸다.

복성현 활동가는 이전 직장은 제가 활동하던 동아리에서 말하는 노동과 너무 괴리감이 커서, 그만두고 일자리를 찾다가지금의 단체에서 활동을 시작하게 되었다고 했다. 지금 일터의 어떤 요소들 덕분에 일자리를 떠올리는 것만으로도 환하게 웃음꽃이 피는지 하나하나 들어보았다.

우리의 노동부터 좋게 만들자이런 분위기가 있어요.

"제 시간이 많이 늘어났다고 느껴요. 업무도 제시간 안에 할 수 있는 정도지만, 많으면 미뤄라! 이렇게 말씀하시거든요. 전에 세무사 사무실에서 일했을 때는 야근을 많이 했어요. 신고가 몰려서 바쁜 기간에는 야근을 계속했죠. 한 달에 일주일은 한 것 같아요. 지금은 오전 9시 출근, 저녁 6시 퇴근인데 사실 칼퇴라는 말도 되게 이상해요. 퇴근은 제때 하는 게 맞잖아요. 칼퇴도 지금은 잘 돼서 그 외의 시간도 제 시간으로 쓸 수 있어요.

일하는 중에도 그래요. 그 전에는 회사에 있는 동안엔 일해야 한다, 세무사님이 이런 게 있으셨거든요. 개인 SNS나 인터넷을 아예 못 하고 업무시간에 다른 일 하는 걸 싫어했어요. 그래서 할 일을 다 하고 일하는 척도 했어요. 바쁠 땐 계속 일이 몰렸고요. 실수를 안 하기 위해서 열심히 일하고, 열심히 하고 싶지 않아도 일이 많아서 열심히 하게 되고, 그랬었죠. 지금은 제가 할 수 있는 만큼만 받고, 그래서 잘 처리해낼 수 있어요. 사업 하다가 어쩔 수 없이 야근하게 되면 다른 시간에서 빼 주세요.

보통 일주일에 주말 이틀이 제 시간이잖아요? 회사에 얽매여 있을 때 주말에는 아 또 회사 가면 이거 해야 해. 하기 싫어.’ 이런 생각이 되게 많았는데, 지금은 주말에는 뭐 하고 놀지?’ 이렇게 생각이 들어요. 그래서 물리적인 시간은 비슷할 텐데도 느끼는 시간이 되게 다르더라고요."

임금 부분에서는 어땠을까. 이전에는 최저임금보다 못 받았었다고 했다.

"7시간 근무에 115만 원이었는데 일단 기본 일하는 게 8시간이었거든요, 그러면 최저가 안돼요. 그것 때문에 싸웠어요. 제가 자취를 안 했는데, 만약 자취했으면 그 돈으로 생계를 이어갈 수 없었을 것 같아요. 지금은 제대로 나와요. 160만 원. 이 정도면 생활은 그래도 가능하죠."

동료와의 관계도 물었다. 함께 일하는 동료 한 명, 한 명을 헤아리는 얼굴엔 웃음이 떠나지 않았다. 지금 직장에서 일하기 전에는 대표라는 직함이 강압적일 것이라는 편견이 있었다고 했다. 이전에는 상사들로부터 여러 이유로 혼났다. 배우지 않고 익숙하지 않은 일에 서툴러서, 고졸로 취업했으니 대졸보다 더 조심하고 꼼꼼해야 한다며 챙겨준다는 이유로. 지금은 경험 많은 동료들이 잘 챙겨주고, 배울 것도 많다고 했다. 힘든 일이 없다고, 힘들다면 사이가 너무 좋아서 같이 노느라 힘들다며 함빡 웃는다.

일이 좀 더 일상이고 삶 같아요. 이 일로 제가 더 발전할 수 있을 것 같거든요.

"제가 저희 단체에서 맡은 주 업무는 재정이에요. 그리고 단체 사업인 고졸 노동인권 동아리 운영을 돕는 보조일을 하고, 노동인권 교육도 고등학교로 나가고 있습니다. 원래 제가 회계만 하는 걸로 여기 들어왔어요. 교육 나가서 얘기도 해주고 싶었는데, 제가 부족할까봐 걱정됐었어요. 처음엔 보조강사로 같이 나갔고, 노동인권교육 강사 양성 과정을 마치고 나니까 수업도 할 수 있게 되더라고요. 강사 양성 과정 듣는 시간도 업무 시간에 다 포함됐고요. 일을 잘 해내는데, 새로 경험하고 배우는 것도 항상 많아요. 저는 엄청난 경험을 하고 있다고 생각해요. 나가서 친구들 보는 것도 좋고, 강의하기 위해서 제가 항상 공부하니까요. 이전 회사는 제가 그냥 돈 벌러 간 곳, 그렇게 느껴졌는데 지금은 좀 더 제 일상이고 삶 같아요."

복성현 활동가는 단체사업으로 진행하는 고졸취업동아리 처음처럼을 매우 아낀다. 자신이 고등학교 때 가입해 활동했던 동아리다. 작년 10월에 만들어져 이제 2기를 모집하고 있다고 했다. 학교에 노동인권교육을 오셨던 활동가분을 통해 알게 됐고, 친구들과 함께 놀면서 나오다보니 어느덧 단체의 할동가가 되어 고등학교로 인권 교육을 나가고 있다.

"처음엔 친구들도 만나는 재미로 나갔었는데 종종 배우거나 다른 활동도 해요. 노동인권교육도 듣고요. 노동절에 같이 강의 듣고 행진도 하고, 캠페인도 했어요. 누가 어떤 내용을 배우고 싶다고 의견을 내면 알아보고 가능하면 자리를 만들어요. 친구들이 연애강의 듣고 싶다고 했었거든요. 그래서 자리를 만들어서, 서로 사람 대 사람으로 관계를 어떻게 맺어야 하는지를 배우고, 이야기도 많이 나눴어요. 얘기하면서 알게 모르게 많이 배우는 것 같아요.

동아리에서 노동에 대한 얘기를 듣다보니 , 내가 하는 노동도 이상한데’, 이런 인식도 생겼고, 친구들에게도 그거 잘못 된거야’, 얘기해주다보니까 친구들 인식도 높아졌고요. 같이 캠페인도 다니게 됐어요."

노동인권단체 활동가들 역시 동아리 소속으로, 모임이 있을 때 함께 모여 이야기를 나눈 경험이 목성현 활동가에게 노동에 대해 돌아볼 계기가 됐다. 직접 일하기 전 학교에서 한 번 들었던 노동권 강의는 사실 거의 기억에 남지 않는다고 회상한다. 현장실습으로 취업해서 일하며 친구들을 만나면, 갓 취업한 친구들 사이에서 오가는 이야기는 거의 일자리의 힘듦에 대한 토로다.

그런 이야기들을 동아리 모임에서 활동가들과 나누며 노동에 대한 인식이 싹텄다. 노무사를 대상으로 준비한 노동 강사 양성 프로그램을 동아리에서 함께 듣기도 했다. 프로그램 성원들의 청소년 인권 감수성을 높이는 계기도 되었다. 동아리 구성원 중에서 노동인권 강사 활동에 관심이 생긴 친구가 있다고 한다.

"저는 이런 동아리가 되게 좋은 것 같아요. 친구들 인식부터 올려야, 사회가 노동에 대한 감수성이 높아질 텐데, 이 학생들이 노동자가 되는 거잖아요. 노동권에 대한 얘기를 접할 수 있는 기회가 많았으면 좋겠어요. 저도 동아리를 안 했다면 내 권리가 침해당하는 걸 모르고 있었을 거예요. 학교에선 기업가 정신 교육이런 걸 과목으로 넣는다고 하는데 다들 사장이 되는 것도 아니잖아요."

고등학교로 노동인권교육을 나가면 동아리 처음처럼에 대한 안내도 한다. 동아리에 관심을 보이고 가입 의사를 밝히는 분들도 있다. 그 친구들이 백성현 활동가는 참 반갑다. 특성화고는 곧 현장실습 명목으로 취업을 나갈 시즌이다. 취업을 나가면 오직 회사를 위한 시간밖에 없고, 회사에 얽매여 있다는 느낌을 받을 친구들을 생각하면 너무 안타깝고 화가 난다고 했다. 오래 살지는 않았지만 그런 사회를 만든 게 미안하다고, 한 톤 낮은 목소리로 말을 잇는 성현씨의 말투에 무게가 실린다. 일을 나가게 될 여성들을 떠올리며 회사에서 여성들이 커피타오기 등의 잡일을 맡게 되는 것을 당연하게 여기지 말았으면 좋겠다는 말도 덧붙였다.

인터뷰를 마무리하며, ‘노동이 스스로에게 돈벌이만 뜻하기보다는 경험이자 새로운 것을 배운다는 의미가 크다는 백성현 활동가에게 앞으로 하고 싶은 일을 물었다. 활동도 더 하고 싶고, 사진도 해보고 싶고, 동물 커뮤니케이션도 해보고 싶어요. 해보고 싶은 건 많아요.” 다 할 수 있지 않을까요라는 필자의 물음에 다 할 수 있는 사회가 됐으면 좋겠어요.”라고 백성현 활동가는 답했다. 우문현답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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