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터6월_알아보자, LAW동건강] 감정노동 스트레스와 뇌심혈관질환의 업무상 관련성

감정노동 스트레스와 뇌심혈관질환의 업무상 관련성

조영훈 회원, 노무사

 

최근 콜센터상담노동자의 사인미상 사망 산재로 사건이 서울업무상질병판정위원회에서 인정받은바 있다(서울2020판정 제2144호). 아래 글은 필자가 해당 사건의 재해경위서에 작성했던 내용 일부를 발췌한 것이다.

1. 스트레스와 뇌심혈관계질환 사이의 관계

스트레스와 뇌심혈관계질환 사이의 관련성에 관한 최근 연구는 스트레스가 하나의 뚜렷한 메커니즘을 통해 질병을 일으키는 것이 아니라고 보고 있는 것 같으며, 다양한 스트레스 관련 인체 반응이 뇌심혈관계질환 발생에 기여하거나, 더 취약한 개인들에게서 질병 발생의 방아쇠 역할을 한다고 보는 듯하다.1) 혈관 내벽을 두껍게 하거나, 고지혈증이나 복부 비만이 증가하거나, 혈압이 높아지는 등의 만성적이고 장기적인 영향도 발생할 수 있다고 한다.2)

급성 스트레스가 심혈관계질환을 악화시키거나 유발하는 요인은 ⅰ) 심근허혈, ⅱ) 부정맥, ⅲ) 보다 위험한 혈전, ⅳ) 혈전형성의 위험성 증가 등으로 밝혀지고 있다.3) 한편 만성스트레스의 경우 ⅰ) 동맥경화를 촉진하거나, ⅱ) 만성적으로 부교감신경계를 억제하여 심박수 변이(HRV)를 감소시켜 동맥경화, 허혈성 심질환, 급성 심장사, 심근경색, 부정맥의 발현을 촉진시키거나 ⅲ) 인슐린 저항성을 증가시키고, ⅳ) 건강하지 못한 생활 습관을 유발한다고 알려져 있다.4) 이외에 <분노>하는 것이 급성심근경색증 발병의 유발인자가 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5) 사실 <분노>는 고객응대를 하는 콜센터 감정노동자에게서 자주 발생할 수 있는 감정 상태이다.

2. 「뇌혈관질병·심장질병 업무상 질병 조사 및 판정지침」상의 '정신적 긴장이 큰 업무'

근로복지공단의 「뇌혈관질병·심장질병 업무상 질병 조사 및 판정지침」에 따르면, 별표2의 <정신적 긴장을 동반하는 업무의 평가기준>에 열거된 구체적 업무 또는 사건에 해당하는 것이 있는지를 조사하여 ‘정신적 긴장이 큰 업무’에 해당하는지를 판단한다. 2021년 개정지침에서는 <별표4>를 신설하여 ‘정신적 긴장이 큰 업무’ 인정사례를 예시하고 있으나, 여전히 구체적이지 않으며, 콜센터상담노동자의 사례는 나와 있지 않다.

[별표2] 정신적 긴장을 동반하는 업무의 평가기준(부하의 정도를 평가하는 기준 부분 제외)

1. 발병에 근접한 시기에 정신적 긴장을 동반하는 업무와 관련된 사건   

사건
업무상 재해로 큰 상처나 병을 입었다
중대한 사고나 재해발생에 직접 관여하였다.
비참한 사고나 재해의 체험(목격)을 하였다.
중대한 사고(사건)에 대해 책임을 지게 되었다.
회사의 경영에 영향을 주는 중대한 업무상 큰 실수를 하였다.
업무에 관련하여 우법 행위를 강요 당했다.
업무목표를 달성하지 못하였다.
이동(전근, 배치전환, 비연고지 근무 등)이 있었다.
상사, 고객 등과 큰 트러블이 있었다.
심한 직장 내 괴롭힘이 있었다.
성희롱이 있었다.

2. 일상적으로 정신적 긴장을 동반하는 업무

구체적 업무
항상 자기 또는 타인의 생명, 재산이 위협 받을 위험성이 있는 업무
위험회피책임이 있는 업무
인명과 사람의 일생을 좌우할 수 있는 중대한 판단이나 처리가 요구되는 업무
극히 위험한 물질을 다루는 업무
회사에 중대한 손실을 초래할 수 있는 중대한 책임이 있는 업무
과도한 달성목표 또는 업무량이 할당되어있는 업무
정해진 시간(납기 등)대로 수행하지 않으면 안 되는 곤란한 업무
고객과의 큰 트러블이나 복잡한 노사분생의 처리 등을 담당하는 업무
주위의 이해나 지원이 없는 상황하의 곤란한 업무
복잡하고 곤란한 신규사업, 회사의 재건을 담당하는 업무

콜센터상담 업무는 위 지침 별표2의 <일상적으로 정신적 긴장을 동반하는 업무> 표에는 구체적 업무의 하나로 “회사에 중대한 손실을 초래할 수 있는 중대한 책임이 있는 업무”와 “고객과의 큰 트러블이나 복잡한 노사분쟁의 처리 등을 담당하는 업무”에 해당한다고 보인다. 콜센터 상담사로서의 업무는 상담사 혼자 회사를 대표해 고객과 전면에 서는 일로서, 업무처리능력 및 서비스 정도에 따라 기업이미지가 좌우될 정도로 회사에 중대한 손실을 초래할 수 있는 일이며, 업무 특성상 고객과의 트러블이 필수불가결하게 일어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3. 콜센터상담 감정노동에 따른 업무스트레스

콜센터 상담 업무는 전화가 걸려올 때 수동적으로 전화 상담에 임하게 되며, 언제 전화가 걸려올지 예측 불가능하다. 또 상시적으로 고객의 불만사항을 접수하거나 서비스를 제공하는 것으로, 이때 이미 격앙된 상태의 고객을 상대하는 경우가 많기에 폭력이나 폭언, 부당한 요구에 노출될 확률이 더욱 높다.6) 당연히 스트레스가 유발될 수 밖에 없는 근로형태다.

2012년 한국노동연구원에서 스트레스 정도가 높은 감정노동자 종사자인 판매원과 전화상담원을 대상으로 한 설문조사에 따르면, 피재자와 같은 전화상담원의 경우 68%가 고객으로부터 무리한 요구를 경험하였고, 인격을 무시하는 발언은 72.2%, 욕설은 65.5%, 성희롱은 32%로 판매직 근로자보다 높았다고 보고되고 있으며, 특히 전화상담원의 경우 통화가 실제 대면하지 않는 준 익명 성격을 띠기에 더욱 감정노동에 있어서 부정적 경험에 노출되기 쉬운 것으로 알려져 있다.7)

또한 직접적으로 산재법상 재해에 관한 내용은 아니지만, 상담 업무를 하는 직원에 대한안전보호의무의 위반을 이유로 사용자에게 손해배상책임을 인정한 판결(아래 표 참조)도 나와, 콜센터 고객응대 감정노동자가 처한 산업안전보건상의 위험성과 감정노동자에 대한 사용자의 보호 의무에 대해 법원이 확인한 예도 있다.8)

서울남부지법 2012가단25092,
선고일자 : 2013-06-21


'감정노동(Emotional labor)'을 수행하는 근로자의 경우 고객에게 즐거움 같은 감정적 반응을 주도록 요구되는 동시에 사용자로부터 감정 활동의 통제, 실적 향상 및 고객 친절에 대한 지속적인 압력을 받고 있어 이로 인한 우울증, 대인 기피증 등 직무 스트레스성 직업병에 심각하게 노출되어 있다고 할 것이다. 그러므로 감정노동자를 고용하고 있는 사용자로서는 고객의 무리한 요구나 폭언에 대하여 근로자를 보호할 수 있는 방안을 적극적으로 마련해야 하고, 발생 사안에 따라 적극적으로 대처할 수 있는 지침을 제공하여 근로자로 하여금 이를 활용할 수 있도록 해야 하며, 고객과 사이에 근로자 개인이 감당할 수 있는 수준 이상의 문제가 발생할 경우 관리감독자로서 개입하여 분쟁의 원인을 밝히는 등 중재역할을 다하여야 하고, 고객의 위신을 높이는 데에 지나치게 집중한 나머지 사실관계를 따져보지도 않은 채 근로자에게 무조건적인 사과를 지시함으로써 인격적인 모멸감을 주어서는 안 된다고 할 것이다. 또한 노동과정에서 식사시간, 화장실 가기 등 기본적인 생활상의 욕구를 만족시켜야 하고, 고객과의 분쟁이나 좋지 않은 일이 발생했을 때 또는 심리적인 휴식이 필요할 때 쉴 수 있는 자율성을 보장해야 하며, 노동과정을 고려하지 않은 과도한 업무량에 대하여는 이를 적정선에서 규제하여야 할 근로계약상 보호의무 내지 배려의무를 부담한다고 할 것이다.

또 대법원은 "사실관계에 나타난 바와 같이 망인이 담당하던 주된 업무는 민원인들로부터 심한 항의와 욕설을 듣기도 하는 민원상담 내지 민원처리 업무로서 그 업무의 양을 떠나 스트레스를 많이 받을 수밖에 없는 업무"라고 판단하여 대민 업무가 양적으로 과중하지 않더라도 업무 자체가 질적으로 스트레스를 강하게 유발하는 점을 고려한 바 있다.9)

4. 결어를 대신하여

이상에서 살펴본 바와 같이 콜센터 상담노동자의 업무는 일반적으로 감정노동을 수반할 뿐 아니라 상시적인 스트레스를 야기하는 업무로 뇌심혈관계질환과의 업무상관련성이 높다고 보인다. 미처 소개하진 못했지만, 사실 뇌심혈관계질환 사건의 산재여부 판단에서 가장 중요하게 보는 것은 모름지기 주당 업무시간의 길이다. 필자가 수행한 사건의 고인은 사망 전 주말에 재택상담근무를 계속해왔는데, 공단 재해조사 과정에서 이 시간을 업무시간으로 인정하지는 않았었다. 코로나19 이후 콜센터 상담사의 재택근로가 늘고 있는 상황에서, 공단이 재택근로시간을 업무시간으로 판단하는 데 소극적인 태도를 보이는 것은 문제라고 생각된다.


1) 최민, 「업무상질병판정위원회 뇌심혈관질환 평가 과정의 개선방안」, 『근로복지공단 뇌심혈관질환 심의과정의 쟁점과 개선과제』(2016), p. 47.에서 재인용.

2) 최민, 위의 보고서, 같은 쪽.

3) 조정진, 「직무스트레스와 심혈관계질환」, 『가정의학회지』제23권제7호(대한가정의학회, 2002. 7), pp. 842-3.

4) 조정진, 위의 논문, pp. 843-4.

5) 안전보건공간, 「뇌·심혈관질환의 직업적 위험 요인 이해」(2018.3), p. 24.

6) 김민정, 「감정노동 근로자의 업무상 재해에 대한 노동법적 보호 방안」, 『이화젠더법학』제6권 제1호(이화여자대학교 젠더법학연구소, 2014. 6.). p. 174.

7) 박찬임 외, 「서비스산업의 감정노동 연구 - 판매원과 전화상담원을 중심으로」(2012, 한국노동연구원), pp. 193-9 참조.

8) 김민정, 위의 논문, p. 175 참조.

9) 문무기, 「서비스산업 정신질환의 산재법상 법리」, 『법학논고』제41집(경북대학교 법학연구원, 2013). p. 174.

[알아보자, LAW동건강] 직장 내 괴롭힘 금지법의 변화는 현재진행 중/2021.5

[일터5월호_알아보자, LAW동건강]

직장 내 괴롭힘 금지법의 변화는 현재진행 중

 

지난 2021324일 직장 내 괴롭힘 발생 시 사업주 조치의무의 실효성을 확보하기 위한 근로기준법 일부개정안이 국회 본회의를 통과하였다. 정부에서는 개정법을 지난 413일에 공포하였고, 올해 1014일 시행을 앞두고 있다. 직장 내 괴롭힘 관련 조항이 개정된 이유는 2019716일 직장 내 괴롭힘 금지법 시행 이후 회사 내 괴롭힘 발생 시 조사 및 후속조치가 지나치게 회사 자율에 맡겨져 있다는 문제점을 해결하기 위해서였다. 기존 직장 내 괴롭힘 금지법의 문제점은 무엇이고 개정법은 어떻게 바뀌었을지 살펴보도록 하겠다.

2019716일은 직장 내 괴롭힘 금지법이 시행되는 날이었다. 그 전부터 직장갑질119 스탭으로 참여하여 채팅 및 이메일상담으로 노동자들의 괴롭힘 피해이야기를 들으며 하루 빨리 직장 내 괴롭힘 금지법이 시행되기를 기대하고 있었기에 상당히 뿌듯했던 기억이 난다. 이 법은 시민들에게도 관심사여서 직장 내 괴롭힘 금지법 시행일인 2019716일 포털사이트에서 직장 내 괴롭힘 금지법이 실시간 검색어 1위를 달리기도 했다

현행 직장 내 괴롭힘 금지법 내용

현행 직장 내 괴롭힘 금지법은 먼저 직장 내 괴롭힘의 개념을 도입하였고, 사용자 및 근로자에게 직장 내 괴롭힘 행위를 금지하였다. 누구든지 직장 내 괴롭힘 사실을 알게 된 경우 사용자에게 그 사실을 신고할 수 있으며, 사용자는 신고를 접수하거나 괴롭힘 사실을 알게 된 경우 조사의무를 부담한다. 사용자는 조사과정에서 피해노동자가 요청하는 경우 적절한 보호조치를 하여야 한다. 또한, 사용자는 조사 결과 직장 내 괴롭힘 사실이 확인되는 경우 피해노동자의 의견을 들어 행위자에 대한 징계 등의 조치를 하여야 하며, 신고자나 피해노동자에게 괴롭힘 신고를 이유로 한 불리한 처우를 하여서는 안 된다. 나아가 직장 내 괴롭힘 예방 및 발생 시 조치 등에 대해 미리 취업규칙에 정하여야 할 의무를 부과하였다.

현행 직장 내 괴롭힘 금지법의 문제점

그러나 기존 직장 내 괴롭힘 금지법은 시행 시부터 여러 가지 문제점이 지적되어 왔다. 첫 번째 문제점은 직장 내 괴롭힘 금지법의 적용 범위다. 직장 내 괴롭힘 금지가 규정된 근로기준법에서는 상시근로자수 5인 미만 사업장에는 적용되지 않는다. 한국 전체 사업체 중 5인 미만 사업체의 비중이 61.6%인 점을 감안하면, 이미 절반 이상의 사업장의 노동자들은 직장 내 괴롭힘 금지법의 보호를 받지 못한다. 또한, ·하청간 관계에서, 원청노동자가 하청소속 노동자에 대하여 근로기준법상 직장 내 괴롭힘 행위자로 인정되지 않기 때문에, 괴롭힘이 발생해도 직장 내 괴롭힘 행위로 인정되지 않는다. 특수고용 노동자의 경우에도 근로기준법상 근로자로 인정되지 않고 있기 때문에 이들에 대한 괴롭힘 행위 또한 직장 내 괴롭힘 행위가 아니게 된다.

두 번째 문제점은 직장 내 괴롭힘 발생 시 조사 및 조치 등의 권한이 회사에게 편중되어 있다는 것이다. 현행법에 따르면 직장 내 괴롭힘 발생 시 회사는 괴롭힘 사실을 조사하고 괴롭힘 사실 확인 시 행위자에 대한 징계 등의 조치를 하여야 하지만, 이를 소홀히 할 경우 처벌 조항이 없기 때문에 관련 조치를 취하는 데에 적극적이지 않다. 오히려 직장 내 괴롭힘이 만연한 회사이미지로 낙인찍히기 싫어서 피해노동자에게 행위자와 적극적인 화해를 종용하기도 한다. 직장 내 괴롭힘 행위자에 대한 별도의 처벌규정도 없는 상태에서 이러한 회사의 태도는 피해노동자에 대한 2·3차 가해로 나아가기도 한다.

세 번째 문제점은 사용자가 직장 내 괴롭힘 가해자일 경우이다. 직장 내 괴롭힘 발생 시 조사의무 및 행위자 처벌 등의 권한의 주체가 사용자로 되어 있다. 근로기준법상 사용자가 직장 내 괴롭힘 행위자인 경우, 조사가 객관적으로 이루어지지 않을 가능성이 높으며 이에 따라 행위자 징계에 있어서도 소극적일 수밖에 없다. 소규모 사업장이거나 친인척을 고용한 사업장에서 발생한 괴롭힘의 경우 관련한 문제점이 더 크게 부각되었다.

 

위와 같은 문제점으로 인해 직장 내 괴롭힘 상담을 하면서도 가장 많이 했던 답변이 직장 내 괴롭힘과 관련하여 1차적으로 조치 의무를 하여야 하는 곳이 회사이기 때문에 먼저 회사에 직장 내 괴롭힘 신고를 하셔야 합니다. 바로 노동청에 신고하셔도 회사에 권고 정도만 있을 것입니다.’였다. 그러나 답변을 하면서도 알고 있었다. 회사에서 괴롭힘에 대해 제대로 조사할리 없고 결국 노동청을 찾아가게 될 것인데, 노동청에서도 만족할만한 결과를 받아볼 수 없다는 것을.

개정 직장 내 괴롭힘 금지법 내용

현행 직장 내 괴롭힘 금지법이 현장에서 제대로 적용되지 않자, 직장 내 괴롭힘 관련 문제에 대한 사용자의 조치의무의 실효성이 확대되어야 한다는 요구가 증가하였다. 현장에서의 노력 덕분에 개정 직장 내 괴롭힘 관련 조항이 지난 324일 국회의 문턱을 넘게 되었다. 정부에서는 지난 413일 개정 법률을 공포하였고, 올해 1014일부터는 개정된 직장 내 괴롭힘 관련 조항이 시행된다. 개정된 내용은 다음과 같다.

조사과정에서 사용자의 객관적 조사의무 명문화: 기존에는 사용자가 직장 내 괴롭힘 행위의 신고를 접수하거나 인지하는 경우 사실 확인을 위한 조사를 실시하여야 하였으나, 개정법에서는 당사자 등을 대상으로 그 사실 확인을 위하여 객관적으로 조사를 실시하여야한다고 개정되었다.(근로기준법 제76조 제2)

사용자 및 사용자 친족이 직장 내 괴롭힘 행위자인 경우 과태료 부과: 기존에는 사업주 등 사용자가 직장 내 괴롭힘 행위자라 하더라도 별다른 처벌조항이 없었으나, 개정법에 따르면 사용자 및 사용자의 친족 등이 직장 내 괴롭힘 행위자인 경우 1천만원 이하의 과태료 부과 대상이 되었다.(근로기준법 제116조 제1항 신설)

직장 내 괴롭힘 조사 관련자의 비밀 유지 의무 명문화: 기존에도 직장 내 괴롭힘 조사에 관여한 사람들의 비밀유지 의무가 명문화되어 있지는 않았으나, 피해자 등에 대한 N차 가해 및 개인정보보호를 위하여 당연히 조사 관련자들의 비밀유지 의무가 있었다. 개정법에서는 이러한 비밀유지 의무를 명문화하여, 조사 관련자들에게 조사 과정에서 알게 된 비밀을 피해자의 의사에 반하여 누설할 수 없음을 규정하였다.(근로기준법 제76조의3 7항 신설)

객관적 직장 내 괴롭힘 조사 의무, 피해자 보호 및 가해자 징계 조치, 비밀 유지 의무 위반 시 과태료 부과: 개정법에 따르면 사용자가 직장 내 괴롭힘 조사를 객관적으로 실시하지 않거나, 피해노동자에 대한 적절한 보호조치 및 행위자에 대한 적절한 징계 등의 조치를 하지 않는 경우, 그리고 비밀 유지 의무를 위반하는 경우 500만원 이하의 과태료 부과 대상이 되었다.(근로기준법 제116조 제2)

개정법 시행 이전 발생한 직장 내 괴롭힘의 경우

1014일 직장 내 괴롭힘 관련 개정법이 시행되나, 실무상 혼란이 있을 수 있는 점은 1014일 이전에 행해진 직장 내 괴롭힘을 1014일 이후 신고하는 경우 개정법을 적용할 수 있을지 여부이다. 그러나 2019년 처음 직장 내 괴롭힘 금지 조항이 시행되었을 때와 마찬가지로 개정법의 부칙에서는 이 법 시행 후 발생한 직장 내 괴롭힘의 경우부터 적용한다.”고 규정하고 있어 직접적인 개정법의 적용은 1014일 이후 발생한 직장 내 괴롭힘 행위로 보인다. 다만, 1014일 전에 발생한 직장 내 괴롭힘 행위가 1014일 이후에까지 지속하여 발생하고 있는 것이라면 개정법에 따라 사용자는 객관적인 괴롭힘 조사 의무 및 비밀유지의무를 져야할 것이다.

사용자의 직장 내 괴롭힘 조치의무의 실효성이 확대된 직장 내 괴롭힘 관련 개정 조항이 시행될 예정임에도 불구하고 한계점이 있다. 현행법의 문제점으로 가장 먼저 지적된 5인 미만 사업장 및 원·하청 관계 및 특고노동자에게 발생한 직장 내 괴롭힘 문제이다. 개정법에서도 소규모 사업장 및 하청 노동자, 특고노동자들은 직장 내 괴롭힘 관련 조항의 적용에서 여전히 제외되어 있다. 국가인권위원회에서도 지난 331일 성명에서 개정된 직장 내 괴롭힘 관련 조항에 환영의 뜻을 표하면서도 가해자·피해자 간 접촉이 빈번해 괴롭힘 문제가 더욱 심각한 소규모 사업장은 이번 법 개정에서도 적용범위에서 제외되었다는 점을 지적하기도 하였다.

법에 있으니까 지키지를 넘어서야

직장 내 괴롭힘과 관련된 내용이 법에 명문화되고 실효성을 확보하기 위한 제도적 울타리가 만들어지는 것은 긍정적인 부분이다. 그러나 직장 내 괴롭힘은 법에 규정되는 것을 넘어 조직문화 차원에서도 중요한 문제이다. 조직 내 구성원들이 직장 내 괴롭힘이 무엇인지 알고 왜 하면 안 되는 것인지, 본인의 행동 중 반성해야 할 점이 무엇인지, 조직체계 중 직장 내 괴롭힘을 유발하는 지점을 발견하고 어떤 방향으로 바꿔나가야 할지 등이 조직차원에서 공유되어야 하고 학습되어야 한다. 단순히 법에 있으니까라는 생각에서 행복한 조직문화 만들기의 차원에서 직장 내 괴롭힘을 고민하였으면 좋겠다.

(박경환 회원, 노무사)

 

 

[알아보자, Law동건강] 직장 내 성희롱을 바라보는 시선 / 2021. 04

[알아보자, Law동건강]

직장 내 성희롱을 바라보는 시선

임혜인 회원, 노무사

직장 내 성희롱(이하 “성희롱”이라고 함)으로부터 안전한 일터를 조성하는 것. 성희롱 피해자를 보호하고 가해자에 대한 적절한 조치를 취하는 것. 이는 현대사회에서 너무나도 당연한 상식이다. 성희롱 가해자는 절대 해서는 안 될 행동을 한 나쁜 사람이며, 성희롱이 발생할 때까지 방관한 회사는 더 나쁘다는 점에 대해서 부정하는 사람 또한 없을 것이다.

그런데 실제로 성희롱이 발생하면 우리가 너무나도 당연하게 생각하던 상식이 단숨에 무너져버리고 만다. “문제를 키워 봤자 너만 손해다”, “당신이 참아야지 어쩌겠냐”는 식으로 피해자의 고통을 무시하는 언동은 2차 가해 유형 중 아주 귀여운 축에 속한다. “라떼는 이런 거 다 감수하면서 직장생활 했다.”며 피해자가 경험한 성적 굴욕감 등이 사회통념에 어긋나는 것임을 계몽하려는 노력은 아주 보편적인 반응이다. 심지어 피해자가 피해 사실에 대하여 적극적으로 밝히려고 애쓸수록, 이러한 노력은 피해자에 대한 공격으로 변모한다.

성희롱의 당사자는 가해자와 피해자이지만, 실제로 성희롱이 발생하면 가해자는 지워지고 오로지 피해자만이 당사자로 남는다. 법률 및 사회적으로 금지된 행동을 한 가해자보다 피해자에 대한 시선이 뜨겁다 못해 따갑기까지 하다.

성희롱 피해자를 바라보는 시선은 법원의 판단을 통해 재확인되기도 한다. 한 대학교수(이하 “원고”라고 함)가 제자를 수 차례 성희롱하여 징계 해임되자 본인의 행동이 성희롱이 아님을 주장하며 해임처분의 취소를 구하는 소송을 제기하였다. 이때 대학이 징계사유로 삼은 성희롱 사실은 다음과 같다. 

징계사유 1
1) 원고가 학과사무실에서 남자친구와 함께있던 피해자에게 “여기서 뭐하냐?”라며 뺨을 때리고, 이어서 “왜 남자랑 붙어서 있냐?”라며피해자의 뺨을 총 4대 때림

2) 피해자가 봉사활동을 위한 추천서를 받기 위해 친구들과 함께 원고의 연구실을 방문을 때 원고가 뽀뽀해 주면 추천서를 만들어 주겠다고 함

3) 수업 중 질문을 하면 원고는 피해자를 뒤에서 안는 듯한 포즈로 지도함

4) 원고는 피해자가 연구실을 찾아가면 “남자친구와 왜 사귀냐, 나랑 사귀자.”, “나랑 손잡고 밥 먹으러 가고 데이트 가자.”, “엄마를 소개시켜 달라.”고 하는 등 불쾌한 말을 많이 함.
... (중략)
징계사유 2

1) 원고는 피해자의 1학년 학기 초 수업시간에 피해자의 손을 겹쳐서 마우스를 잡고 피해자가 앉아 있는 의자에 같이 앉거나 자신의 무릎에 피해자를 앉히려 하였음. (중략)

2) 원고는 피해자를 연구실로 자주 불러 연애하자, 어머니를 소개시켜 달라.”고 하였으며, 또한 의자에 앉아 있을 때에는 원고의 다리 사이에 피해자의 다리를 끼워 움직이지 못하게 한 경우도 있었음

3) 피해자가 입고 있던 가슴부분의 남방 단추가 떨어지려 할 때 원고가 불필요하게 단추를 만짐

징계사유 3

1) 원고는 수업시간에 피해자를 뒤에서 안는 식으로 지도하고 불필요하게 피해자와 한 의자에 앉아 가르쳐주며 신체적 접촉을 많이 함

... (중략)

4) 학과 MT에서 원고가 아침에 자고 있던 피해자의 볼에 뽀뽀를 2차례 하여 피해자에게 정신적 충격을 줌

5) 원고는 장애인 교육 신청서를 제출하러 간 피해자에게 자신의 볼에 뽀뽀를 하면 신청서를 받아 주겠다고 하고, 다른 학생들도 자신의 볼에 뽀뽀를 하고 신청서를 제출하였다고 거짓말을 하여 피해자가 어쩔 수 없이 원고의 볼에 뽀뽀를 하였으며, 그 상황에서 원고가 피해자의 엉덩이에 손을 대려고 하자, 피해자가 자신의 가방을 이용하여 원고의 행위를 막음

원심 재판부는 원고에 대한 징계사유 중 대부분이 성희롱에 해당하지 않는다고 판단하며, 원고에 대한 해임처분이 부당하다고 판단하였다. 원심이 상기 징계사유를 부정한 요지는 다음과 같다.

징계사유 1-3을 부정한 이유

- 원고의 언동은 원고의 적극적인 교수방법에서 비롯된 것이 아닌가 의심되고, 이 부분 사건에서 드러난 정도의 접촉만으로는 이를 일반적이고도 평균적인 사람으로 하여금 성적 굴욕감이나 혐오감을 느낄 수 있는 행위에 이르렀다고 보기는 매우 곤란하다.

- 교수인 원고가 (중략) 소위 백허그 자세를 취하여 그와 밀착된 자세에서 어색한 타이핑을 시도하였다는 것은 쉽게 상상하기 어렵다. (중략) 익명으로 이루어진 강의평가에서 원고의 부적절한 신체접촉에 대한 언급이 없고 오히려 원고의 1:1 맨투맨 교육방식이 긍정적으로 평가된 점 및 나아가 소외 1조차 원고의 강의에 단점이 없다거나 재미있고 즐겁다고 평가한 점에 비추어 선뜻 납득하기 어렵다.

징계사유 1-2 및 1-4를 부정한 이유

- 원고는 강의뿐만 아니라 동아리 지도를 통하여 학생들과 격의 없고 친한 관계를 유지하였는데, 학생들과 식사를 함께 하거나 원고의 연구실에서 찾아오는 학생들과 자주 농담을 나누었으며, 일상적인 이야기는 물론 가족에 관한 이야기나 연애상담도 나누었다.

징계사유 3-1부터 3-5를 부정한 이유

- 소외 2는 최초 소외 1의 부탁을 받고 이 사건을 신고하게 된 것인데, 자신의 피해사실에 대하여는 형사고소 이후 조사를 거부하는 한편 소외 1에 대한 피해사실에 대하여는 증인으로 출석하여 자유롭게 진술하고 있는 것으로 보이는바, 과연 성희롱 내지 성추행 피해자로서의 대응이라고 볼 수 있을지 의문이다.

- 소외 2가 소외 1의 부탁을 받고 진술서를 작성한 것은 2014. 12. 17. 무렵인데 그 기재된 내용은 전부 2013년부터 2014년 전반기의 사실로서 소외 1의 권유 또는 부탁이 없었다면 소외 2에게 과연 한참 전의 원고 행위를 비난하거나 신고하려는 의사가 있었는지 의심스럽다.

- (중략) 자신의 신고로 인하여 원고가 해임까지 당하는 무거운 결과를 가져온 데 대한 책임추궁을 두려워하기 때문이 아닌가 의심된다.

- 소외 2는 소외 1, 소외 3과 함께 원고에 대한 형사고소를 하지 않을 것을 약속하는 각서를 작성하여 주는 대신 원고에게 자신들에 대한 법적대응을 하지 아니할 것을 요구... (중략), 통상 피해자가 단순히 가해자를 용서하는 합의를 하여주는 행동이라고 보기에는 이례적이다.

즉, 원심은 설령 원고가 피해자와 신체적 접촉이 있었다고 하더라도 이는 적극적인 강의 의욕에서 비롯된 불상사일 뿐이고, 징계사유에 포함된 언동 또한 피해자와 친밀하게 지내는 와중에 성희롱에 대한 고의 없이 이루어진 것을 피해자가 민감하게 받아들인 것에 불과하며, 피해자가 오랜 시간이 경과한 후에야 비로소 성희롱 사실을 문제 삼은 사실이나 법원에서 피해 사실을 자유롭게 주장하고 있는 모습 등에 비추어 일반적인 성희롱 피해자로서의 면모가 보이지 않는다는 것을 이유로 성희롱에 해당하지 않으며, 해임처분 또한 부당하다고 판단하였다. 이러한 원심의 판단은 성희롱에 대한 
전형적인 2차 가해 유형들과 상당히 유사하다.

그렇다면 우리는 직장 내 성희롱을 어떠한 시각으로 바라보아야 할까. 동일한 사건에 대하여 대법원은 성희롱 사건을 심리하는 방법에 대하여 다음과 같이 설명하며, 원심판결을 파기 환송하였다. 

대법원 2018. 4. 12. 선고 2017두7470 판결

법원이 성희롱 관련 소송의 심리를 할 때에는 그 사건이 발생한 맥락에서 성차별 문제를 이해하고 양성평등을 실현할 수 있도록 성인지 감수성을 잃지 않아야 한다(양성평등기본법 제5조 제1항 참조). 그리하여 우리 사회의 가해자 중심적인 문화와 인식, 구조 등으로 인하여 피해자가 성희롱 사실을 알리고 문제를 삼는 과정에서 오히려 부정적 반응이나 여론, 불이익한 처우 또는 그로 인한 정신적 피해 등에 노출되는 이른바 ‘2차 피해를 입을 수 있다는 점을 유념하여야 한다. 피해자는 이러한 2차 피해에 대한 불안감이나 두려움으로 인하여 피해를 당한 후에도 가해자와 종전의 관계를 계속 유지하는 경우도 있고, 피해사실을 즉시 신고하지 못하다가 다른 피해자 등 제3자가 문제를 제기하거나 신고를 권유한 것을 계기로 비로소 신고를 하는 경우도 있으며, 피해사실을 신고한 후에도 수사기관이나 법원에서 그에 관한 진술에 소극적인 태도를 보이는 경우도 적지 않다. 이와 같은 성희롱 피해자가 처하여 있는 특별한 사정을 충분히 고려하지 않은 채 피해자 진술의 증명력을 가볍게 배척하는 것은 정의와 형평의 이념에 입각하여 논리와 경험의 법칙에 따른 증거판단이라고 볼 수 없다.

대법원은 성희롱 사건은 교통사고와 같이 한 순간에 촉발하는 것이 아니고 사회적 구조와 같은 맥락에서 발현된다는 특성이 있고, 그 맥락에 구속될 수 밖에 없는 피해자의 입장을 ‘피해자의 시각’에서 바라보아야 함을 강조한다.

성범죄 피해 사실을 대외적으로 고발하는 미투 운동이 확산되며, 자신의 피해 사실을 적극적으로 고발하는 피해자들 또한 많아지고 있다. 피해자들은 점점 더 크게 목소리를 내며 가해자에 대한 강력한 처벌과 제도 개선을 요구한다. 그런데 이들을 바라보는 사회의 시선은 어떠한가. 여전히 사업장에 성희롱이 발생하면 피해자는 피해자답게 처신해야 그나마 원하는 조치를 사업장으로부터 받을 수 있다. 피해자가 피해 사실을 객관적으로 입증하지 못하면 피해자를 예민한 사람이라 가스라이팅 한다.

피해자의 시각으로 성희롱 사건을 바라보는 것. 성희롱으로부터 안전한 일터를 만들기 위한 첫 걸음이지만 그 발을 내딛기가 어렵기만 하다.

[알아보자, LAW동건강] 산업재해 승인 이후 맞닥뜨린 사회보험의 현실 / 2021. 03

[알아보자, LAW동건강]

산업재해 승인 이후 맞닥뜨린 사회보험의 현실

이성민 회원, 노무사

 

산업재해 비지정 의료기관에서 치료받으신 것이므로 요양비 지급은 가능하지 않다.”

산업재해로 인한 상병으로 치료받으신 것은 건강보험급여를 지급할 수 없다.”

재해자의 상병이 업무상 재해로 인정되었으나, 산업재해보상보험법(이하 산재보험법’)에 따른 요양비 청구가 가능하지 않으며, 건강보험 급여도 제한되었다. 심지어, 건강보험공단은 A에게 이미 지급하였던 건강보험 급여는 부정수급이므로 전액 환수조치 하겠다고 으름장을 놓고 있다. 어떤 상황일까?

이 사건 당사자인 A는 고등학교를 졸업하자마자 반도체와 회로기판을 생산하는 회사에서 오퍼레이터로 근무했다. 온갖 유해요인에 노출되는 열악한 작업환경 속에서 하혈 등 증상을 겪어왔던 A는 건강상 이유로 더 이상 일을 하기 어려워 퇴사했다. 그러나 일을 그만둔 A는 난소암을 진단받았다. A는 양쪽 난소와 자궁을 제거하는 몇 차례의 큰 수술을 받아야 했다. 항암치료도 병행했다. 2018A는 자신이 일했던 전자산업에서의 유해요인이 각종 암을 비롯한 질병을 유발할 수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그리고, 시민단체와 함께 난소암에 대한 산업재해를 신청하였고, 업무상 재해로 인정받을 수 있었다.

다행히 암은 재발하지 않았지만, 수십차례 실시한 항암치료는 A의 몸을 망가뜨렸다. 혼자 생활하던 A는 후유증으로 인해 수시로 찾아오는 고통을 견뎌내기 힘들어 산업재해 승인 이후에도 암 전문 요양병원에서 대부분 날을 입원하여 지냈다.

A는 통증과 불안감을 줄이고, 효과적으로 회복할 수 있는 요양병원을 수소문했다. 그러나, A의 생활반경 주변에 암 전문 요양병원은 그리 많지 않았다. 어렵게 찾은 병원에 입원하였고 2년의 흘렀다. A는 나중에야 입원한 요양병원이 산업재해 비지정병원이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어느 날, A는 건강보험공단으로부터 연락을 받았다. 건강보험공단 담당자는 말했다. “산업재해로 인한 치료 및 요양에 대해 건강보험 급여를 지급 할 수 없다. 당해 비용은 근로복지공단에서 지급해야 한다. 또한, 그동안 요양병원에 지급해온 건강보험 급여는 모두 부정수급이므로 모두 환수조치 할 것이다

A는 건강보험공단 담당자에게 비지정 의료기관에서의 치료이기에, 산업재해를 인정받았음에도 불구하고 당해 요양비를 근로복지공단에 청구할 수 없다는 점을 설명했다. 동시에 근로복지공단 담당자에게는 산업재해 환자가 비지정 의료기관에서 치료받는다면, 산재보험은 물론 건강보험도 적용되지 않는다는 사실을 누구도 알려주지 않았다고 호소했다. 어디서부터 잘못된 것일까?

산재보험법에 따라 지정된 의료기관에서의 요양

산업재해보상보험법은 근로자가 업무상 사유로 부상을 당하거나 질병에 걸린 경우 요양급여를 지급한다. , 당해 요양급여는 산재법상 지정된 산재보험 의료기관에서 요양한 경우에만 지급을 원칙으로 한다.

산업재해보상보험법 제40(요양급여)

요양급여는 근로자가 업무상의 사유로 부상을 당하거나 질병에 걸린 경우에 그 근로자에게 지급한다.

1항에 따른 요양급여는 제43조제1항에 따른 산재보험 의료기관에서 요양을 하게 한다. 다만, 부득이한 경우에는 요양을 갈음하여 요양비를 지급할 수 있다.

1항의 경우에 부상 또는 질병이 3일 이내의 요양으로 치유될 수 있으면 요양급여를 지급하지 아니한다.

1항의 요양급여의 범위는 다음 각 호와 같다. <개정 2010. 6. 4.>1. 진찰 및 검사2. 약제 또는 진료재료와 의지(義肢) 그 밖의 보조기의 지급3. 처치, 수술, 그 밖의 치료4. 재활치료5. 입원6. 간호 및 간병7. 이송8. 그 밖에 고용노동부령으로 정하는 사항

비지정 의료기관에서 요양에 대한 급여를 지급하는 예외적인 경우도 있다. 산재보험은 비지정 의료기관에서 응급진료 등 긴급한 요양, 공단이 정당한 사유가 있다고 인정하는 경우 재해자에게 요양비를 지급한다. 공단이 인정하는 정당한 사유중 대표적인 예는 산업재해 승인 전 실시한 비지정 의료기관에서의 요양이다. 이외 대부분의 경우 비지정 의료기관에서의 치료에 대해서는 요양비 지급이 이루어지지 않는다.

산업재해보상보험법 시행령 제38(요양비의 청구 등)

1. 법 제43조제1항에 따른 산재보험 의료기관(이하 산재보험 의료기관이라 한다)이 아닌 의료기관에서 응급진료 등 긴급하게 요양을 한 경우의 요양비

2. 다음 각 목의 어느 하나에 해당하는 요양급여에 드는 비용(산재보험 의료기관에서 제공되지 아니하는 경우로 한정한다.)

. 법 제40조제4항제2호 중 의지(義肢)나 그 밖의 보조기의 지급

. 법 제40조제4항제6호 중 간병

. 법 제40조제4항제7호의 이송

3. 그 밖에 공단이 정당한 사유가 있다고 인정하는 요양비

결국 산업재해 승인 이후의 재해자들은 산재보험 지정 의료기관에서의 요양이 사실상 강제된다. 건강보험에 비해 산재보험 지정 의료기관이 협소한 점을 고려한다면 재해자들의 의료선택권이 상당히 제한된다고 볼 수 있다. 가령 비지정 의료기관에서 치료받다 해당 상병이 산업재해로 인정된 경우, 산업재해 승인 이후의 치료에 대해 산재보험법상 요양비를 청구하려면 산재보험 지정 의료기관으로 전원해야 한다.

의료기관이 변경됨에 따라 당연히 재해자와 관계를 형성하여 상병을 치료해왔던 주치의도 바뀐다. 재해자는 새로운 치료 환경에 적응해야 한다. 물론, 근로복지공단이 재해자들을 위해 적절한 산재보험 지정 의료기관을 탐색하거나, 소개해주는 일은 거의 없다. 근로복지공단은 비지정 의료기관에서의 치료에 대해서는 요양비를 지급할 수 없다는 입장을 통보할 뿐 모든 부담은 재해자 스스로 해결해야 한다.

산재보험 비지정 의료기관에서의 치료와 건강보험 급여 제한

앞서 살펴본 A의 사례와 같이 산재보험법상 요양비 청구를 포기한 채 비지정 의료기관에서 요양하면 어떻게 될까? 산업재해로 인한 상병이라도 재해자에게 더 효과적인 치료와 안정적인 요양을 병행할 수 있는 의료기관을 선택할 수 있을 것이다. 다만 이 경우 산재보험은 물론 건강보험 급여 역시 지급이 제한된다. (2019년 기준 전체 건강보험 보장률은 약 64%, 특히 암환자 건강보험 보장률은 약 79%라는 점을 감안할 때, 건강보험 급여가 제한된다는 것은 상당한 의료비용 부담을 재해자가 오롯이 걸머진다는 것을 의미한다.)

국민건강보험법(이하 건강보험법’)은 건강보험 급여의 제한 사유를 법으로 규정하고 있다. 이중 업무 또는 공무로 생긴 질병부상재해로 다른 법령에 따른 보험급여나 보상(報償) 또는 보상(補償)을 받게 되는 경우건강보험 급여를 지급하지 않는다.

국민건강보험법 제53

공단은 보험급여를 받을 수 있는 사람이 다음 각 호의 어느 하나에 해당하면 보험급여를 하지 아니한다.

1. 고의 또는 중대한 과실로 인한 범죄행위에 그 원인이 있거나 고의로 사고를 일으킨 경우

2. 고의 또는 중대한 과실로 공단이나 요양기관의 요양에 관한 지시에 따르지 아니한 경우

3. 고의 또는 중대한 과실로 제55조에 따른 문서와 그 밖의 물건의 제출을 거부하거나 질문 또는 진단을 기피한 경우

4. 업무 또는 공무로 생긴 질병부상재해로 다른 법령에 따른 보험급여나 보상(報償) 또는 보상(補償)을 받게 되는 경우

그리고 다른 법령에 따른 보험급여나 보상(報償) 또는 보상(補償)을 받게 되는 경우에 대한 건강보험공단의 해석은 다른 법령에 의한 보험급여나 보상(報償) 또는 보상(補償)을 현실적으로 지급받은 경우뿐만 아니라 다른 법령에 정한 보험급여나 보상(報償) 또는 보상(補償)의 요건이 충족되어 보험급여를 받을 수 있는 경우 및 보상(報償) 또는 보상(補償)을 받을 수 있는 경우도 포함하는 개념으로 본다.

전술한 A의 사례에 비추어볼 때, A의 난소암은 산업재해로 승인되었으며 비지정병원이 아닌 지정병원에서 요양하였다면 산재보험에 따른 요양비를 지급받을 수 있었기에 건강보험 급여 제한 사유에 해당한다고 해석한다. 결론적으로 산업재해 승인 이후 비지정 의료기관에서의 치료에 대해서는 산재보험과 건강보험 모두 적용되지 않는다. 당해 치료와 관련한 모든 비용은 재해자가 부담하여야 한다.

산업재해 승인 이후에도 재해자들이 겪게 되는 어려움

산업재해 비지정 의료기관에서 치료받으신 것이므로 요양비 지급은 가능하지 않다.”

산업재해로 인한 상병으로 치료받으신 것은 건강보험급여를 지급할 수 없다.”

A는 계속하여 억울함을 호소하였으나 달라지는 것은 없었다. A에게 돌아온 근로복지공단과 건강보험공단의 답변은 간단했다. 건강보험공단은 비지정 의료기관에서의 치료를 선택하여 산재보험 적용을 포기하였으므로, 건강보험 급여가 제한되는 것은 당연하다고 이야기했다. 근로복지공단 담당자는 비지정 의료기관에서 요양한 A의 잘못이므로 구제할 수 있는 방법이 없다고 했다. 결국 A는 비지정 의료기관에서의 산업재해에 대해 요양하여 수천만원의 건강보험 급여를 부정수급한 자가 되었다.

A의 마음으로 생각해본다. 산업재해로 인정된 상병에 대해서도 비지정 의료기관에서의 치료에 대한 요양비를 지급하지 아니하는 현재의 산재보험 제도, 현실적으로 산재보험에 따른 보호가 불가능하지만 산업재해로 인한 치료이므로 건강보험의 적용 역시 일률적으로 배제된다는 건강보험공단의 논리, 이러한 행정에 대해 누구도 알려주지 않다가 2년이 지난 후 불쑥 이루어진 부정수급자로의 낙인과 환수 통보까지 어떤 내용도 쉽게 받아들이기 어렵다.

산재보험과 건강보험은 사회보험이다. 사회보험은 국민들의 안전과 건강을 위해 최소한의 사회적 안전망으로 기능해야 한다. 그리고 억울한 일이 생기지 않도록, 사각지대가 없도록 촘촘히 보호하고 작동해야 한다. A에게 산재보험과 건강보험은 신뢰할 수 있는 안전망이 아닌 고통스러운 경험이 되었다.

[알아보자, Law동건강] 탄력적 근로시간제의 문제점 / 2021. 02

[알아보자, Law동건강]

 

탄력적 근로시간제의 문제점

 

조영훈/회원, 노무사

 

 

1. 신설 탄력적 근로시간제

  대표적인 유연근무제 중 하나가 근로기준법 제51조의 탄력적 근로시간제이다. 탄력적 근로시간제는 말 그대로 노동자의 근로시간을 사용자의 입장에서 탄력적으로 활용하여 일정 기간의 평균 근로시간을 법정근로시간으로 맞추는 것을 허용하는 제도이다. 기본적으로 노동자가 아닌 사용자의 필요에 의해 노동자의 근로시간을 탄력적으로 늘리고 줄이는 제도이다
  2020. 12. 9. 고용노동부는 보도자료에서 “단위기간이 3개월 초과 6개월 이내인 탄력근로제 신설”한다고 밝혔다.2) 이 제도는 근로기준법 제51조의2에 반영되었다.

2. 탄력적 근로시간제의 문제점

  기존의 2주 단위와 3개월 단위 탄력적 근로시간제 역시 노동계에서 끊임없이 비판해왔다. 비판의 요지는 크게 건강권과 재산권의 측면에 있다. 먼저 이 제도가 노동자의 생체리듬을 깨고 특정 주에 장시간 노동을 하게 하여 뇌심혈관계질병, 정신질병 등의 과로성 질병을 일으킬 가능성이 크다는 점이다. 고용노동부 고시(제2017-117호)에 따르면 만성과로의 경우 발병 전 4주 동안 1주 평균 업무시간이 64시간을 넘거나 12주 동안 1주 평균 업무시간이 60시간을 넘으면 업무와 질병 간의 관련성이 강하다고 보고, 1주 평균 업무시간이 52시간을 넘으면 업무와 질병 간의 관련성이 증가한다고 평가한다. 단기과로의 경우 발병 전 1주일 이내의 업무량이나 시간이 12주 간의 1주 평균보다 30% 이상 증가되거나 업무 강도·책임 및 업무 환경 등이 적응하기 어려운 정도로 바뀐 경우를 말한다.3)
  그런데 기존 탄력적 근로시간제 하에서는 1주 근로시간이 2021. 7. 1. 이전에는 최대 80시간까지 가능하다. 근로시간에 관한 2018. 3. 20. 개정 근로기준법(15513호)이 5인 이상 사업장에도 적용되는 2021. 7. 1. 이후에도 최대 64시간까지도 근로시킬 수 있다. 탄력적 근로시간제로 특정주에 현재는 80시간까지, 2021. 7. 1. 이후에도 64시간까지의 장시간 노동을 용인하고, 특정주의 근로시간이 30% 이상 증가하는 것을 허용하는 것은 정부가 업무상 뇌심혈관계질환 산업재해를 사실상 방조하는 것 아니냐는 비판을 불러일으킨다.
  더욱이 신설 탄력적 근로시간제에 의해 6개월을 단위기간으로 하여 탄력적 근로시간제를 적용한 사업장의 경우, 12주 동안 52시간 근로가 가능하게 된다. 이는 뇌심혈관질병 인정 기준에 관한 고용노동부 고시(제2017-117호)에서 정한 업무와 질병 간의 관련성이 증가한다고 보는 경우에 해당한다.
  다음으로 2주 또는 3개월 이내 기간에서 평균 주40시간을 넘지 않으면, 연장근로가산수당을 지급하지 않아도 되는바, 실질임금이 저하된다는 문제점이 있다. 근로기준법 제56조는 연장근로 등에 대하여 통상임금의 100분의 50 이상을 가산하여 지급하게 규정하고 있다. 이에는 일일 근로시간이 법정시간인 8시간을 초과하는 경우 신체에 무리가 따르므로 그에 대해 가중보상을 해야 한다는 입법취지가 담겨있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탄력적 근로시간제 하에서는 특정주의 연장근로에 대해 근로기준법에서 정한 연장근로가산수당이 지급되지 않아 문제이다. 또한 근로시간을 줄인 특정주에 대해서는 평균임금의 70% 이상의 휴업수당이 지급되어야 할 것이나, 이 역시 탄력적 근로시간제 하에서는 지급되지 않아도 된다.

 

<표2> 탄력적 근로시간제 하에서의 1주 최장 근로시간4)

 

3. 신설 탄력적 근로시간제의 문제점

  3개월 초과 6개월 이내 탄력적 근로시간제가 시행되면 위의 문제점에 더하여 추가적인 문제가 발생할 것으로 예상된다. 가장 먼저 3개월 초과 6개월 이내 탄력적 근로시간제는 도입 요건이 완화되었다는 점을 지적하고 싶다. 기존의 탄력적 근로시간제는 근로일별 근로시간을 사전에 확정해야 한다. 그러나 신설 탄력적 근로시간제는 기간이 장기간임을 고려하여 기존의 ‘근로일별 근로시간’을 사전 확정하는 것에서‘주별 근로시간’을 사전 확정하는 것으로 기준이 완화되었다. 또 기존의 제도가 사전 확정한 근로일별 근로시간을 변경하려면 다시 근로자대표와의‘합의’절차를 거쳐야 하는 데 반해, 신설 제도는 근로자대표와의‘협의’만으로 변경이 가능하게 되어 사용자 입장에서 운신의 폭이 넓어졌다. 근로일별 근로시간은 2주 전에만 통보하면 되는 것으로 설정되었다. 이에 기존의 탄력적 근로시간제에 비해 신설 탄력적 근로시간제는 도입요건이 완화되어 탄력적 근로시간제의 도입률이 올라갈 것으로 보인다.   
  다음으로 임금보전방안과 관련한 문제이다. 기존 제도에서는 근로기준법 제51조 제4항의 임금보전방안의 강구가 어떠한 벌칙 규정도 없어 훈시규정에 불과하다고 비판받아온 점을 고려하여, 신설 제도에서는 동법 제51조의2 제5항에서 임금보전 방안 신고를 의무화하였다. 신설 제도에서는 임금보전방안 신고를 하지 않은 경우 사용자는 500만 원 이하의 과태료를 부과받게 된다. 그러나 이 또한 형사처벌 조항은 아니다. 
  임금보전 방안이란 탄력적 근로시간제 도입으로 이 제도가 도입되지 않았다면 받을 수 있었던 노동자의 연장근로수당 규모를 보전하는 방안을 의미할 것이다. 그러나 여기서의‘임금보전’이 탄력적 근로시간제가 도입되지 않았다면 받게 되는 연장근로수당 전체인지 혹은 일부인지가 분명치 않다. 극단적인 예로 탄력적 근로시간제로 손실된 임금이 100만원인데 이 중 사용자가 1원만 보전하는 방안을 마련하여 신고해도 임금보전 방안 신고를 준수한 것으로 고용노동부가 인정할 것인지 의문이다. 이와 같은 혼란을 방지하기 위해 임금보전의 구체적 기준이 법에 명시되어야 한다. 한편 임금보전방안도 근로기준법 제51조의2 제5항 단서에 의해 근로자대표와 서면합의하면 고용노동부장관에게 신고하지 않아도 무방하다. 이 역시 걱정되는 점이다. 
  한편 신설제도에서는 근로일간 11시간 휴식시간 보장 조치를 통해 노동자의 건강권을 보호하는 장치를 마련하였다고 하는데, 근로일간 11시간 휴식이라면 전날 22시에 퇴근하고 다음날 9시에 출근하는 것을 말한다. 이것이 과연 “충분한 휴식권의 보장”이라고 할 수 있을지 의문이다. 게다가 이조차도 근로기준법 제51조의2 제2항 단서에 의해 천재지변 등 대통령령으로 정하는 불가피한 경우에는 근로자대표와 서면합의하면 이에 따를 수 있다. 역시 걱정스러운 지점이다.

 

1) 현행 2주 단위와 3개월 단위가 있고, 2021. 4. 6.부터 근로기준법 개정으로 3개월 초과 6개월 이내 단위가 추가 시행될 예정이다.

2) 고용노동부, 노동조합법, 근로기준법, 고용보험법, 산재보험법 등10개 개정 법률안 국회 본회의 통과(2020.12.9.), 6.

3) 한편 위 고용노동부 고시의 기준에서 사용하는 업무시간이라는 개념은 근로시간보다 넓은 개념이다. 근로복지공단의 뇌혈관질병·심장질병 업무상 질병 조사 및 판정지침(지침번호2018-2)에 따르면 ““업무시간은 근로계약상의 근로시간과는 다른 개념으로 업무를 위한 준비 및 정리 시간을 포함하여 사용자의 지휘·감독 하에 놓여있는 시간을 의미한다.

4) 고용노동부, 유연근로시간제 가이드(2018.6.), 18; ‘52시간제라는 표현은 잘못된 표현이다. 근로기준법 제50조 제1항에서는 1주간의 근로시간을 40시간을 초과할 수 없다고 규정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위에서는 고용노동부의 해당 가이드에 적힌 문구 그대로를 인용한다.

 

[알아보자, Law동건강] 아파트 관리인의 ‘업무상 스트레스로 인한 자살’ 판례

[알아보자, Law동건강]

* 이번호부터 연구소 노무사 회원들이 노동 판례 리뷰, 현안 비평, 법제도 연구 등 노동안전보건 이슈를 다루는 코너를 시작합니다. 구독자 여러분의 많은 관심 부탁드립니다.

1. 들어가며

2020년 12월, 연구소 선전위로부터 <알아 보자, LAW동건강> 코너에 필자로 함께 하면 어떻겠냐는 제안을 받았다. 당시에는 나 혼자만 필자로 하는 게 아니라 다른 노무사 세 분과 함께 쓰는 것이라 부담이 없을 것이라 생각 하여 흔쾌히 하겠다고 했다. 그런데 막상 작성 하려다 보니, 주제 선정부터 난관이었다. 이 코 너의 첫 기고자이기도 해서 부담도 되었다. 고민에 고민을 거듭한 끝에 지난 2019~20년 업무상 정신질환 연구모임에 함께 하며 정신질환 산업재해에 대해 조금 들여다본 인연을 바탕으로, 업무상 스트레스에 따른 자살과 관련한 판례를 소개하고자 한다.

2. 사건의 경위

이 사건은 아파트 관리소장으로 재직하던 망인이 특정 입주민의 민원에 시달리다 2017.7. 사업주에게 사직 의사를 밝힌 이틀 뒤 자살한 사건*이다. 이후 유족이 근로복지공단(이하 ‘공단’)에 유족급여 및 장의비를 신청하였으나, 공단은 망인이 개인적, 경제적 문제, 정신적 취약 성 등 개인적 소인으로 자살한 것이라고 판단 하여 망인의 자살과 업무와의 상당인과관계를 인정하지 않았다. 유족은 공단의 처분에 불복하여 고용노동부 산재보험보상재심사위원회 에 재심사를 청구하였으나 기각 당하였고, 이후 유족급여 및 장의비 부지급처분 취소소송을 제기하였다.

* 입주민의 지속·반복적인 민원 제기로 인한 업무상 스트레스 등으로 우울증세가 유발 및 악화되어 자살에 이르게 된 것은 업무상 재해에 해당한다는 사례(서울행정법원 2020.9.18. 선고 2019구합 62826 사건) 

3. 사실관계

가. 망인의 업무 : 망인은 2011년 5월부터 아파트 위탁관리업체에 입사하여 LH 국민임대아 파트의 관리소장으로 근무해온 자로, 아파트의 LH 대응 및 입주민 민원처리를 총괄하였다. 주로 지자체 또는 LH의 지시사항 처리, 민원 해결 등 관리소장이 직접 담당하는 업무를 처리 하였다.

나. 망인의 업무상 스트레스 요인

① 이 사건이 일어난 아파트는 망인이 입사하기 전부터 국민임대아파트 전환 과정에서 LH와 입주민 사이에서 갈등이 있었으며, 이후에도 아파트 내 가건물 철거, 노인정 난방비 공 동부담, 동대표 선출 과정 등의 문제로 갈등이 지속적으로 발생하였다. 

② 특정 입주민 A의 지속적인 민원제기가 있었다. A는 수시로 관리사무소에 방문하거나 전화하여 층간소음이나 CCTV 관련 민원을 수 차례 제기하였다. A는 LH에도 직접 층간소음 민원을 제기하여, LH에서 최상층 끝집으로 이 사를 제안하기도 하였으나 A는 거절한 바 있고, 이후 LH는 망인에게 층간소음 관리위원회 를 구성하도록 하였다. 특히, 망인의 사망 이틀 전인 2017.7.20., 망인과 A는 1시간 가량 대화하였는데, 당시 A는 망인과 관련없는 LH직원으로부터 안내를 잘못 받은 부분에 대해 망인에게 삿대질하고 윽박지르며 질책한 것으로 확인되었다. 망인은 머리를 긁으면서 조아리듯이 어쩔 줄 몰라 하는 모습이었다.

다. 사건 발생 직전 상황 : 망인은 2017.7.20. A의 질책 이후 회사 대표에게 전화하여 사직 의사를 밝혔으나 대표는 만류하였다. 그러자 망인은 직원에게 책상서랍열쇠와 인장 등을 인계하고 일찍 퇴근하였으며 다음 날인 7.21. 결근한 뒤, 7.22. 새벽 자택 부근 산책로에서 나무 에 목을 매어 사망하였다.

라. 망인의 개인적 스트레스 요인 : 2017년 초 망인이 투자하고 있던 부동산에서 세입자와 의 문제로 법원 이야기가 오가는 등 법적 문제 가 있었다는 동료 직원 진술이 있다.

마. 망인의 정신건강의학과 진료 내역 : 망인은 2017.7.11. 및 2017.7.19. B정신건강의학과에 내원하여 진료를 받았고, ‘혼합형 불안 및 우울 장애, 비기질성 불면증’ 진단을 받았다.

4. 법원의 판단

법원은 공단과 달리, 망인은 입주민의 지속적이고 반복적인 민원 제기로 인한 업무상 스트레스가 개인적인 경제적 문제와 정신적 취약성 등의 요인에 겹쳐서 우울증세가 유발 및 악화되었고, 그로 인하여 정상적인 인식능력등이 결여되거나 현저히 저하된 상황에서 자살에 이르게 된 것이라고 하여, 유족의 손을 들어주었다. 특히, A의 잦은 민원과 이 과정에서의 A의 언행으로 망인이 극심한 스트레스 상황에 놓였 일터을 것을 인정하면서, 2017.7.20. 사직의사 표시 이후 다음 날 출근하지 않고, 집에서도 식사를 거의 하지 못하고 잠도 자지 못한 채 불안감을 호소하다 사망에 이른 점에서 2017.7.20. A 의 민원이 자살의 가장 직접적인 원인으로 작용하였다고 판결하였다. 또한, 망인의 정신건강 의학과 상담기록에서 부동산 문제가 있기는 하나 객관적으로 밝혀지지 않았고, 이 외에도 업무와 관련한 상담 내용도 있던 점을 고려하였을때, 2017.7.20. 상당한 업무상 스트레스가 복합적으로 작용하면서 개인적 소인의 발현에 영향을 미쳤을 것으로 보인다고 판단하였다.

5. 이 판결의 의미

2017년 이후 대법원은 자살의 산재인정 여부와 관련해, “업무상의 재해란 업무수행 중 그 업무에 기인하여 발생한 근로자의 부상·질병· 신체장애 또는 사망을 뜻하는 것이므로 업무와 재해발생 사이에는 인과관계가 있어야 한다. 그 인과관계는 이를 주장하는 측에서 증명하여야 하지만, 반드시 의학적·자연과학적으로 명백히 증명되어야 하는 것이 아니며 규범적 관점에서 상당인과관계가 인정되는 경우에는 그 증명이 있다고 보아야 한다.”고 판결을 내린 바 있다.

따라서 근로자가 극심한 업무상의 스트레스와 그로 인한 정신적인 고통으로 우울증세가 악화되어 정상적인 인식능력이나 행위선택능력, 정신적 억제력이 현저히 저하되어 합리적인 판단을 기대할 수 없을 정도의 상황에 처하여 자살에 이르게 된 것으로 추단할 수 있는 경우라면, 망인의 업무와 사망 사이에 상당인과 관계가 인정될 수 있고, 비록 그 과정에서 망인의 내성적인 성격 등 개인적인 취약성이 자살을 결의하게 된 데에 영향을 미쳤다거나 자살 직전에 환각, 망상, 와해된 언행 등의 정신병적 증상에 이르지 않았다고 하여 달리 볼 것은 아니다(대법원 2017.5.31. 선고 2016두58840 판결 참조).”의 입장을 견지하고 있다. 이 사건 또한 위와 같은 법리에 따라 망인의 자살과 업무와의 상당인과관계를 인정한 것이다.

이 사건에서 공단과 법원의 판단이 상반되는 지점은 망인의 부동산 문제를 바라보는 관점이다. 공단은 망인의 상담기록에서 주로 부동산 문제가 언급되고 동료 직원이 2017년 초 망인이 부동산 문제로 고충을 겪고 있다고 진술한 점을 토대로 부동산 문제로 인해 우울증세가 발현되어 자살하였다고 판단한 것으로 보 인다.

그러나 이러한 공단의 판단은 개인적 취약성이 있더라도 규범적으로 상당인과관계가 있는 경우 업무상 재해로 인정하는 판례의 입장과 다르게, 개인적 취약성을 산재 불승인에 대한 적극적인 근거로 활용하고 있다는 점에서 상당히 아쉬운 부분이다. 특히, 이 사건 공단의 불승인 처분 및 고용노동부의 재심사 청구 기각이 앞서 언급한 대법원 판결이 있었던 2017.5.로부터 1년 이상 지난 시점에서 이루어 진점을 생각해보면, 여전히 개인적 취약성에 대한 부정적 시각을 버리지 못하고 있다는 것 을 알 수 있다.

이 사건은 다행히 법원에서 원처분이 취소 되었으나, 취소되기까지 약 2년이라는 긴 시간이 소요되었다. 그러나 다른 유족이나 재해자도 똑같이 이 기간을 감내할 수 있을까. 산재를 신청하는 사람들에게 가장 이상적인 것은 공단에서 산재 인정이 되는 것이고, 이것이 ‘신속· 공정한 보상’을 목적으로 하는 산재보험의 취지일 것이다. 법원까지 가지 않더라도, 산재신청과정에서 규범적으로 업무와 재해 간 상당인과관계가 추단된다면 개인적 취약성의 여부와 관계없이 정당한 보상이 이루어졌으면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