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월호_다양한노동이야기] 부스 안팎, 그 어디에도 없는 요금 징수원의 안전_부산일반노조 공무직지부 시설공단지회 김혜수 지회장 인터뷰

부스 안팎, 그 어디에도 없는 요금 징수원의 안전

부산일반노조 공무직지부 시설공단지회 김혜수 지회장 인터뷰

 

박시윤 상임활동가

 

부산 수영구에 위치한 광안대교는 국내 최대 규모의 해상 복층 현수교로, 밤에는 아름다운 조명으로 광안리를 밝히는 부산의 대표 명물이다. 광안대교로 진입하기 위해선 우선 요금소 부스를 거쳐야만 한다. 광안대교를 찾는 많은 이들이 교량이나 고속도로의 요금소를 일상적으로 지나치지만, 부스 안 노동자의 노동환경에 대해선 깊게 생각해보지 못했을 것이다. 광안대교 요금소를 지키는 요금 징수원 노동자들은 어떤 환경에서, 어떠한 방식으로 일할까? 광안대교의 요금 징수원은 약 90명으로, 50대 노동자의 비중이 가장 높고 열에 아홉은 여성 노동자다. 이들의 노동이 어떤 모습인지, 부산일반노조 공무직지부 시설공단지회 김혜수 지회장을 만나 이야기를 들어봤다.

 

요금소는 지금 업무와의 전쟁

 

종일 차량이 이동하는 광안대교에선 요금소 역시 24시간 운영된다. 이 때문에 요금 징수원은 43교대 근무를 하며, 24시간 내내 자리를 지키고 있다.

 

저희의 주된 업무는 광안대교를 통과하는 차량의 대교 통과요금을 받는 일이에요. 자동차 중에서 통행료 면제 스티커나 카드가 부착된 경우가 있는데, 이걸 일일이 눈으로 구분해서 징수해야 해요. 이외에도 통행료 미납요금이 고지서로 나갈 수 있도록 하는 기록 업무나 교통카드 충전, 길 안내도 맡고 있어요. 하루에 부스 하나당 3천에서 4천 대의 차량을 다루는데 한 번 엉키면 혼란이 발생할 경우가 많고, 민원 발생의 소지가 될 우려도 있죠. 그래서 요금소 안에선 항상 전방주시를 하는 터라, 일하는 내내 긴장할 수밖에 없어요.

 

수 천대의 차량을 처리하다 보면 요금을 내지 않고 통과하는 도주 차량이 적게는 50, 많게는 120대 정도로 발생해요. 도주 차량은 차량번호를 파악한 뒤 우편으로 고지서가 발송하는데 해당 업무는 미납팀이 담당하고 있지만, 일차처리는 요금 징수원이 현장에서 맡고 있어요. 간혹 일하다 실수가 생기면, 뒤에 오던 다른 차가 도주 차량으로 처리될 수도 있어서 늘 조심해야 해요. 민원 응대도 요금 징수원의 업무 중 하나인데요, 광안대교의 경우 BC·롯데·농협 등 일부 카드만 사용할 수 있어서 이와 관련된 불편 호소도 종종 들어오곤 합니다.”

 

짧게는 몇 초, 길어봤자 1분 이내. 요금 징수원은 차량이 요금소에 머무는 단시간 내에 차량번호 파악, 하이패스 및 면제 카드 유무 확인, 도주 차량 발생 시 정보 수집, 이전에 미납된 요금 등 수많은 정보를 확인해야 한다. 통행료 부과 과정에서 조금이라도 지체되면 뒤따라오던 차량이 빵빵거리며 압박을 주기도 한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부스 안에서 일하는 2시간 동안 한시도 긴장을 늦출 수 없는 것은 물론이거니와 잠시 숨을 돌릴 여유조차 없다.

 

쉴 수 없는 휴식 시간

 

“2시간 근무당 40분 휴식 시간이 있어요. 이걸 하루에 3번 하는 구조죠. 40분 안에 화장실도 가고 식사도 해야 하는데, 휴게실까지 왔다 갔다만 해도 20분이 소요되니까 시간이 턱없이 부족해요. 직고용되면 모든 게 나아질 거란 기대는 잘못된 생각이었죠. 직고용되기 전엔 2시간 근무당 1시간 휴식 시간이었는데, 오히려 정규직 전환이 되면서 인원과 휴식 시간이 감소했어요. 모든 게 돈의 기준에 따라 바뀌고, 현장의 특수성이 고려되기엔 우리 사회가 노동 존중을 기반으로 해 성장한 사회가 아니란 걸 입증하는 현실이었습니다.

 

일하면서 이동 시간이 많기도 하고, 휴게실에 별도의 식당도 없어서 싸 온 도시락을 데워먹어야 해요. 항상 시간이 빠듯해 마음이 급하고 식사도 빨리 끝내느라, 소화불량에 걸리는 사람도 많죠. 휴식 시간에 화장실을 가지 못했거나 배탈이 나는 등 긴급한 상황이 생기기도 하는데, 인력이 부족하니 쉬고 있는 사람을 불러내요. 불려 나온 사람은 쉬지도 못하고, 휴식 시간도 그대로 끝나 버려요. 그러면 해당 근무자의 피로도가 높아지고, 그건 또 도미노 현상처럼 퍼져나가고 되고요. 그래서 그런 일이 생기지 않게 늘 음식 조심, 컨디션 조절을 합니다. 이외에도 노동자의 근속연수가 높기도 하고, 50대가 대부분이어서 근골격계질환도 심각해요. 순환기질환이나 호흡기질환도 많고 전반적으로 건강 상태가 좋지 못하죠.”

 

일하러 갈 때마다 차에 치일까 노심초사

 

야간근무할 때면 잠을 거의 못 자요. 집이 멀었던 직원이 있었는데, 오전 730분에 일을 마치고 귀가하다가 졸음 때문에 사고가 나는 경우도 있었어요. 교통사고의 위험도 커요. 요금소 부스를 올라갈 때 부산항의 경우에는 아치형으로 된 통로가 있다고 해요. 그런데 여기는 별도의 통로가 없어서 차량 사이를 지나다녀야 하거든요. 이동하는 구간에 횡단보도가 있긴 하지만 법적으로 정해진 횡단보도는 아니에요. 길을 건널 때마다 눈에 잘 띄는 조끼를 입고, 불이 들어오는 비상봉을 흔들기도 하는데 날이 밝을 때면 이마저도 표시가 잘 나진 않아요. 이렇게 늘 조심해서 길을 건너지만 차에 치이는 사고가 발생할 때도 있죠.”

 

실제로 부스로 향하는 길은 교량 기둥에 시야가 가로막혀 차량이 오는지도 잘 보이지 않았다. 또한 달려오는 차량도 마찬가지로 부스 사이를 이동하는 사람을 확인하기 어려운 구조였다. 교대근무를 하는 요금 징수원은 해당 길을 건너는 일도 잦아, 길을 건널 때마다 치이진 않을지 걱정하며 차량 통행이 드문 시간에 조심해 건너곤 한다. 요금 징수원이 시달리는 건 비단 일상적인 교통사고의 위험뿐만이 아니다. 좁디좁은 공간에서 같은 자세로 오랜 시간 일하는 탓에 각종 질환에 시달린다.

 

일단 2시간 동안 좁은 공간에서 한 자세로 앉아서 일하느라 허리가 아파요. 변비나 비뇨기계 질환, 자궁근종이 많이 발생하고요. 관리자가 정규직 전환이 되기 전까지는 병가가 많지 않았는데, 최근 들어선 왜 이렇게 병가가 많이 생기냐는 거예요. 정규직 전환 이후 인원이 줄어들어 상대적으로 시간 내 노동 강도가 높아졌고, 여유 인력이 부족해 연차 사용도 자유롭지 못하니 병에 걸리기 더 쉬워진 거죠. 점점 더 몸이 버티기 힘드니까, 돈을 더 벌 수 있다고 해도 연장근무를 많이 하지 않으려 하기도 하고요.”

 

숙명처럼 여겨지는 감정노동의 굴레

 

요금이 1,000원인데 수중에 있는 돈이 900원밖에 없다며 너무 죄송하다고 양해를 구하는 손님이 있었어요. 이때 대신 100원을 내드리기도 하죠. 그러면 다음에 올 때는 더 많은 돈을 주고 가시기도 해요. 물론 요금보다 더 많이 주신 경우에도 무조건 공단으로 입금해야 하고, 간혹 정산이 맞지 않아 돈이 부족할 때면 노동자가 충당해야 해요. 나중에 관련해서 문제가 발생할 수도 있어서 사비로 메꾸는 거죠.

 

고객 중에서 네가 나와서 받아 가라라고 하거나 찢어진 돈을 주는 경우, 500원인데 5만 원을 주는 사람, ‘배 째라라며 요금을 주지 않는 경우도 많아요. 카메라로 직원의 얼굴을 촬영한다든지, 고의로 거짓 민원을 넣는 일도 있죠. 그리고 반말하는 사람, 욕설하는 사람도 아직 있고요.”

 

감정 노동자에 대한 사회적 인식도 바뀌고 관련된 보호법이 제정되면서 예전보다 고객의 폭언이나 폭행 등의 문제가 줄어들긴 했지만, 여전히 고객의 갑질은 존재한다. 고객 응대가 주된 업무 중 하나인 요금 징수원 역시 하루에 만나는 수천 명의 고객에게 친절해야 한다. 일하면서 고객에게 상처를 받더라도 당장 해소할 방법이 없을뿐더러 이 일을 하기 위해선 당연히 감수해야 하는 것으로 여겨지고 있다. 감정노동으로 인한 피해로부터 노동자를 보호할 수 있는 체계는 여전히 필요하다.

 

그래도 요금소를 지나는 짧은 찰나에 고생이 많다며 요금 징수원의 노동에 공감하고, 그들의 고됨에 위로해주며 고마움을 전하는 고객들이 있어 매일 똑같이 반복되는 것 같지만, 매일 새롭다라고 한다.

 

광안대교를 매일 지나가야 하는 사람이 많아요. 그중에선 우리더러 고생한다고 인사하거나 박카스를 챙겨주는 분도 있어요. 새벽 두 시쯤 장사 나가는 어르신은 잠을 못 자면서 일하는 고단함을 안다며 껌이나 초코바, 김밥을 챙겨주시기도 해요. 음식이나 음료를 받아도 부스 안에서 먹을 순 없어요. 하지만 함께 건네주는 손길에 담긴 그 마음과 표정, 눈인사에 힘들었던 몸이 확 가벼워지고 보람을 느끼곤 하죠.”

 

노동조합의 길을 선택한 까닭

 

정규직 전환 이전에 용역으로 관리되고 있을 당시 현장 관리소장의 지나친 갑질과 비리가 있었다. 심한 횡포를 견디다 못한 직원들이 말 그대로 폭발하기 직전이었을 때, 현 정부의 공공부문 정규직 전환이 이뤄지기 시작했다. 이를 계기로 부산일반노조 공무직지부 시설공단지회가 설립됐다. 당시 조합원들은 서울에 본사를 두고 있던 용역회사의 회장을 부산으로 불러내, 단체협약을 맺고 임금체계를 잡아가는 등 시설공단의 잘못된 용역 수주 비리와 싸웠다. 장장 3년간의 치열한 투쟁 끝에 20204, 정규직 전환이 이뤄졌고 마침내 문제 많던 소장과도 끝을 볼 수 있었다.

 

정규직 전환 투쟁을 하면서 몸으로 습득한 게 있어요. 사소한 두루마리 휴지 하나도 쟁취하려 노력하지 않고선 우리에게 당연히 주어지는 게 없다는 거예요. 저희가 소수노조이다 보니, 어용인 대표노조에 의지해 나가야 하는 현실이 불만족스럽고 빛이 보이지 않을 때도 있어요. 하지만 그럴 때마다 이 길이 맞는 거라고, 바른길로 가고 있다고 서로 위로하며 쉬지 않고 나아가고 있습니다.”

 

 

 

[9월_동아시아과로사통신] 정부기관의 인력남용으로 인한 과로사, 감찰원으로부터 시정요구 받아

정부기관의 인력남용으로 인한 과로사, 감찰원으로부터 시정요구 받아

 

황이링(Hwang Yiling), OSHLink

 

2021818, 감찰원은 고용주의 보호 의무와 책임을 이행하지 않고 법령에 따라 필요한 안전 보건 조치를 취하지 않은 신베이시(新北市) 진산(金山) 구청에 대해 시정을 요구하는 감찰위원의 안건을 통과시켰다. 아울러 신베이시 정부에 관련 직무 과실 인원의 처분을 요구하였다. 이번 시정요구는 지난해 진산 구청에서 근무했던 29세 직원의 과로사가 발단이 되었다.

 

2020년 당시 29세의 천지아웨이(陳嘉緯)는 신베이시 진산 구청에서 언론홍보 업무를 담당했다. 업무내용에는 기관신문 연락담당, 뉴미디어팀 팀장, 구청 공식 페이스북 계정 운영 및 관리 등이 포함되었다. 작년 84일 오후 63, 천지아웨이는 구청 공식 페이스북 계정에 구청장의 공식 일정 활동에 대한 글을 업데이트한 후, 7시쯤 집에 돌아와 먼저 샤워를 하고 이어서 업무 관련 홍보영상을 편집할 예정이었다. 그런데 뜻밖에도 그는 욕실에 들어가서 줄곧 나오지 않고 문을 두드려도 아무런 반응이 없었다. 가족들이 뭔가 이상한 느낌이 들어서 문을 세게 당겨 열어보니 그는 이미 바닥에 쓰러져 호흡과 맥박이 없는 사망한 상태로 발견되었다.

 

천지아웨이의 생전 근무 시간을 확인해보니, 그가 장기간에 걸쳐 초과 근로를 했음이 드러났다. 사망 전 6개월 동안의 월 평균 초과 근로시간은 89시간에 달하였고, 그 중 2개월은 초과 근로시간이 100시간이 넘었다. 가족들 역시 그가 밤늦게까지 일을 하는 경우가 잦았고, 어떤 때는 점심시간에 도시락을 먹을 시간조차 없어서 밤참으로 먹어야 했다는 점을 지적했다. 놀랍게도 이렇게 과중한 업무를 감당하던 그의 월급은 겨우 27,000위안(한화 약108만원)에 불과했다. 행정기관은 고용주의 입장이 되어서 오히려 노동 착취에 앞장서며 저임금 과로를 조장했다.

 

사건 발생 후 사회적 관심이 일었고, 감찰위원 역시 적극적으로 조사에 착수했다. 1년여의 조사 끝에 2021818일 조사보고서가 발표되었고, 행정기관이 다음과 같은 과실을 범한 사실이 적발됐다.

 

1. 임시직에게 팀장직 업무를 담당하게 하였다.

 

천지아웨이는 진산구청의 계약직 직원으로, 정식 공무원이 아니었다. 201711월부터 "직무 대리인"이라는 이름으로 임용되어서 사망 전 총 28개월 동안 다섯 차례의 대리직무전환을 거쳤다. 대리한 직무는 계속 바뀌었어도 실제로는 모두 동일한 언론홍보 업무였다.

 

관련 법규정에 따르면 계약직은 각 기관의 행정계약에 의해 기간제로 고용되는 인력을 지칭하며 사무 업무, 간단한 행정 혹은 기술업무를 처리하고, 팀장 직무를 담당하거나 겸임할 수 없다. 그러나 천지아웨이가 임용되기 전에, 언론 연락담당은 사무처장(구청장 다음으로 높은 고위 관리자)이 담당했으며, 202074일 이후에는 원래 천지아웨이가 맡았던 뉴미디어팀의 팀장 역시 사무처장이 담당했다. 그가 담당했던 업무 내용이 모두 고위 관리자의 직무임이 분명했다. 행정기관은 인력을 남용하여 임시 인력으로 하여금 팀장급의 과중한 업무를 수행하게 했다.

 

2. 고용주의 보호의무과 책임을 다하지 않았다.

 

천지아웨이는 정부 기관의 임시직으로 근로기준법의 보호를 받지 못했지만 <산업 안전 보건법>의 보호범위에는 포함되었다. 고용주는 교대근무, 야간근무, 장시간 근무 등 업무에 대해 질병 예방을 위해 필요한 안전 보건 조치를 취해야 한다. 하지만 구청은 적극적으로 효과적인 조치를 마련하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그가 장기간 야근을 하도록 만들어 과로사에 이르게 함으로써 법적 보호 의무를 심각하게 위반했다.

 

3. 야근 수당 상한은 있고, 근로시간 상한은 없는 제도의 허점

 

정부에 고용된 계약직은 근로기준법의 적용대상이 아니므로 많은 규범을 공무원법령으로 준용하고 있다. 그러나 공무원은 국가 공무법상 직무관계에 기반하므로 초과 근로시간의 상한에 대한 명시적인 규정이 없고 연장 근로수당 청구 상한선만 정해져 있어 인위적으로 관리를 하지 않으면 장시간노동 문제가 쉽게 발생한다. 게다가 계약직은 정식 공무원과 동일한 보호와 혜택을 받지 못하면서도 동일한 규범과 요구 사항이 적용되어 그 권익의 피해 가능성이 더 크다.

 

또한 공무원법이 비록 많은 복지제도의 보장면에서 근로기준법보다 우수하지만 주로 사후 보상의 개념에 치중되어 있으며, 사전 예방 부분은 관련 법규가 미흡하다. 특히 산재보상제도는 여전히 시혜적 사고방식에 머물러, 사후관리를 위한 복지제도만 있을 뿐 예방개념이 결여되어 관련 사고가 반복적으로 발생할 수 밖에 없다. 실제로 과로와 같은 직업상병의 발생 가능성을 낮추기 위해서는 관련 통계 자료와 사례 분석을 통해 위험 요인을 찾아내어야 전반적인 개선이 이루어질 수 있다.

 

위에서 언급한 많은 부정행위에 대해, 감찰원은 이번 조사 보고서를 통해 신베이시 진산 구청에 대해 시정안을 전달하고 신베이시 정부에 관련 부정행위 인원에 대한 처분을 요구하고 개선방안을 전달했다. 동시에 현행 법규상 공무원에 대한 합당한 근로시간 규정이 부족하고, 공무제도가 사고 후 보상에 치중하고 과로 등 직업상병의 예방을 소홀히 하는 문제에 대해, 정부 기관에 관련 인원의 기본 권익 보장을 개선하기 위해 연구토론 및 개선할 것을 요구했다.

 

[9월_현장의목소리] 게임 개발자가 행복해야 게임하는 사람들도 행복합니다._스마일게이트 노동조합 SG길드(smile gate guild)지부장 차상준 인터뷰

게임 개발자가 행복해야 게임하는 사람들도 행복합니다.

_스마일게이트 노동조합 SG길드(smile gate guild)지부장 차상준 인터뷰

 

장영우 선전위원장

 

국내 게임산업 시장은 지난 10여 년간 급성장해왔다. 2010년 게임시장은 7.8조 규모였는데, 2020년 기준 17조 규모까지 늘어났다. 앞으로도 모바일게임을 필두로 성장세가 지속될 전망이다. 하지만 게임을 만드는 노동자들의 업무조건은 과거에 머물러 있었다. 프로젝트 단위로 채용돼 상시적 고용불안에 시달리고, 야근수당 등 법정수당을 기본급과 구분하지 않는 포괄임금제로 인해 야근과 장시간 노동이 만연했다. 노동자들의 과로사와 자살이 잇따른 적도 있었다. 열악한 노동현실에 대응하기 위해 IT업계 노동자들은 하나둘씩 노동조합을 설립하기 시작하였다. 판교의 중견 게임회사인 스마일 게이트 노동자들은 20189월 노동조합을 설립하였다. 노동조합이 설립되고 3년째, 어떤 변화가 일어났는지 알아본다.

 

노동조합을 만들게 된 계기는 무엇입니까?

 

게임업계는 2018년 주 52시간을 앞두고 선택적 근로시간제를 도입하려 했습니다. 게임 개발과정에서 특정시기, 예를 들면 게임을 출시하는 시기, 이후 업데이트 하는 시기에 업무가 집중이 되는데요. 야근도 많이 했습니다. 선택적 근로시간제는 노동시간을 조절해서 일이 몰리는 특정시기에는 업무시간을 늘리고, 업무가 줄어들게 되면 쉬자는 취지입니다.

선택적 근로제를 도입하려면 근로기준법에서 근로자대표와 합의를 해야 합니다. 저는 당시 근로자 대표로 선출이 되었습니다. 근로자대표로 뽑힌 다음날 회사는 선택적근로제 동의에 관한 문서를 들고 와서 일방적으로 서명하라고 내밀더라고요. 근로자대표로 회사와 협의를 진행할 거로 생각했는데 그게 아니었던 겁니다. 일단 내부적으로 혼란이 있을 것으로 보아 그 문서에 서명을 했는데 향후에도 이런 식으로 진행되면 안 된다고 판단했습니다. 이후 논의결과 근로자대표라는 제도 자체에 문제가 있어 노동조합이 필요하다는 결론을 내렸습니다. 넥슨도 비슷한 시기, 비슷한 이슈로 노조가 만들어 졌습니다.

 

최근 한 유명 대선 후보가 주 120시간을 이야기 하면서 선택근로시간을 이야기했는데요, 어떻게 생각하세요?

 

저희 개발자 커뮤니티에서도 저 발언으로 활발하게 논의했었는데요, 다들 놀랬습니다. 이미 게임업계는 앞에서 언급한 이유로 선택적 근로시간제도를 많이 도입하고 있습니다. 법을 판단하고 집행했던 분이 현실과 근로기준법을 제대로 알지 못한 게 아닌가 하는 의구심이 드는 비상식적인 발언이었다고 봅니다. 무엇을 더 이야기하고 싶었던 걸까요? 사용자들은 주 52시간이 부족하다는 이야기를 많이 하니깐 노동자들도 더 일하고 싶은데 일을 못하게 한다는 표현을 하고 싶었던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듭니다. IT업계는 창작과 연결되기 때문에 투입한 '근무시간=성과'로 이어지는 제조업 분야가 아닙니다. 그런데 자리 오래 앉아 있고 야근 많이 하면 좋은 인재라는 구시대적 인식이 있어요. 예전에는 업무시간으로 평가했다면 이제는 업무의 효율을 고민할 때가 되었습니다. 개인이 아닌 대통령 후보의 발언이라고 보기에는 많이 미흡했다고 봅니다.

 

노동조합이 만들어지기 전과 후의 차이는요?

 

한국의 게임산업은 단시간에 급성장 했습니다. 초창기에는 20대 매니아들이 골방에서 라면 먹으며 밤새 게임을 만들었지요. 저도 예전에는 그런식으로 밤샘 작업을 했었습니다. 이렇게 게임개발에 성공한 사람들이 현재 경영자가 되었는데 여전히 라떼마인드를 못 버리고 있는 거예요. IT업계가 양적으로는 빠른 성장을 거쳤지만 그 과정에서 노동을 살펴보진 않았습니다. 저희가 속해 있는 민주노총 화학섬유노조에서 같이 연구를 수행했던 분들이 우리나라의 과거, 현재의 모든 노동문제를 IT업계에서 다 볼 수 있다고 할 정도였어요. 노동조합이 만들어진 뒤에야, 포괄임금제와 권고사직 문화가 사라지고 주 52시간 노동시간제가 정착되었습니다.

하지만 주 52시간제가 도입이 되고도 실제로는 지켜지지 않는 경우가 있었습니다. 그래서 작년 자체적으로 실태조사를 했고, 실제로 주 52시간을 넘긴 케이스를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이에 대해 회사에 문제제기를 하였으나 해결되지 않아 고용노동부에 근로감독을 신청 했었지요, 마침 그때 국정감사를 하게 되고 언론 등 사회적 관심이 집중되어, 근로감독까지 받게 되었어요. 지금은 회사가 주 52시간을 초과하는 노동시간에 대해서는 컴퓨터를 끄는 방식으로 관리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노동조합이 만들어지고 고용이 안정되었습니다. 그간 게임개발 업계는 권고사직 문화가 있었습니다. 게임회사에서 동시에 여러 개의 게임개발 프로젝트가 진행되고 있는데요. 작은 스타트업 기업이 여러 개 있는 셈이에요. 게임의 성공은 아이돌의 성공과 비슷해서 대부분의 개발된 게임은 실패로 끝나고 단 1개의 게임만이 성공하는 식이에요. 그러면 실패한 프로젝트는 공중분해되고 게임을 만든 사람들은 권고사직 당했습니다. 우리 회사를 포함한 다수의 게임업 종사자 대부분이 그럼에도 불구하고 권고사직에 동의를 하고 있었습니다. 근로기준법 등에 대해 배운 적이 없으니깐요. 회사가 나가라고 하면 당연히 나가야 되는 줄 알았어요. 게임업에 오래 종사한 분들은 권고사직은 한두 번은 경험했다고 봐야돼요. 사직당하고 이직하는 게 여기선 자연스러운 일이었습니다. 우리 회사 직원 근속연수가 2~3년 밖에 안 됩니다. 다른 게임회사도 5년 넘어가는 경우가 별로 없습니다. 저는 입사한 지 10년이 넘었는데, 드문 경우지요. 젊을 때는 이직이 어렵지 않지만 나이가 들고 부양해야 할 가족이 있으면 쉽지 않습니다. 노동조합을 만들고 직원들에게 정규직의 의미에 대해 설명했어요. 정규직은 기한을 정하지 않은 정규계약으로, 경영상 심각한 위기나 특별한 이유가 있지 않은 한 정년까지 고용을 보장받을 수 있다는 것을요. 그 설명을 듣고 다들 권고사직에 사인하지 않아도 괜찮은 건지 의아해했어요. 그동안 게임 개발자 머리속에는 노동조합은 없었고 권고사직에 사인을 해왔으니까요. 노동조합이 생기고 난 뒤, 권고사직 문화도 많이 사라지고 고용이 안정화되었다고 봅니다.

아직까지는 회사에서는 대립적인 노사관계를 원하진 않고 대화로 해결하려는 편입니다. IT 업계에서는 언론에서 미치는 이미지와 여론에 민감한 편이거든요. 더구나 우리 회사는 그간 노동이슈로 국정감사를 2번이나 받았기 때문에 노동조합에 대해 비상식적인 무시나 억압은 아직까진 없는 편으로 보입니다.

 

회사의 조직 분위기는 어떠한지?

 

게임을 개발하는 다양한 직종의 성과를 객관적으로, 일률적으로 평가하기가 어렵습니다. 그러다 보니 윗사람의 주관적인 평가에 의존하게 되고 상관에 함부로 할 수 없는 구조가 되버렸습니다. 상사가 마음에 들지 않으면 최하 평가 주는 식으로요. 그래서 최근 네이버 갑질 사건도 생겼다고 봐요. 서로 호칭만 으로 존중하면 뭐합니까? 밖에서는 IT업계라고 하면 수평적이고 자율적이라고 막연하게 생각할 수 있지만 실제로는 수직적입니다. 문제 해결을 위해 공동대책위 차원에서 논의하고 있는데요. 인사고과는 업무의 범위라고 간주되어 직장 내 괴롭힘 금지법을 적용할 수가 없다고 합니다. 직장 내 괴롭힘 금지법의 한계라고도 보여지는데요. 사례를 더 찾고 해결방법을 고민 중입니다.

 

노동조합에서 더 하고 싶은 일은요?

 

저는 게임을 좋아했고 게임업계에서 일 한지 오래되었는데요, 게임잡지 기자, 게임방송국에서 일해보고, 프로게이머도 해 보았습니다. 첫 회사에서는 회사 사규, 취업규칙을 정리하는 업무를 했는데요, 그걸 보면서 근로기준법을 처음 보았습니다. 그리고 법과 현실에 대해 생각을 하게 되었고요. 적절한 시기에 좋은 사람들을 만나 노동조합을 만들게 되었습니다.

노동조합에서 앞으로 하고 싶은 일은 많은데요, 우선 일하다가 아픈 사람이 생기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일하다가 아픈 분들을 많이 봤습니다. 앞으로도 게임산업이 더 성장할 것으로 보이는데요, 다음 젊은 세대들이 건강하게 일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 주고 싶어요. 그간 산재신고가 잘 안되고 있었는데요. 산재문제도 관심을 가지면 사례가 나올 거라고 봅니다. 이상적으로 들리겠지만 즐겁게 일할 수 있으면 좋겠어요. 내가 즐거워야지 남이 즐길 수 있는 게임도 잘 만들 수 있어요.

또 공정하게 성과가 분배가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IT업계에서는 임원과 직원의 임금격차가 큽니다. 게임업계 평균임금이 높다고 보도되잖아요. 하지만 실제로는 임원 급여가 워낙 높으니 전체 평균도 높아진 착시효과가 있어요. 그리고 이직이 잦다보니 업계간 연봉도 비슷한 편인데요. 올해 초 IT업계가 똑같이 연봉을 인상했어요. 회사는 성과에 대한 정보를 공유하려 않고 우리 회사의 실적을 기반으로 연봉을 정하기보다는 옆에 회사와 임금을 비슷하게 맞추려는 경향이 있어요. 정보와 의견이 투명하게 공개되는 것, 이런 일을 하는 것이 저의 과제라고 봅니다. 앞으로 해야 할 게 많네요.

 

 

 

 

 

 

 

 

 

 

 

 

 

 

[9월_문화로읽는노동] 저 너머의 굴뚝은 언젠가 찾아온다_극단고래의 17번째 작품, 연극 <굴뚝을 기다리며>

저 너머의 굴뚝은 언젠가 찾아온다.

극단고래의 17번째 작품, 연극 <굴뚝을 기다리며>

 

박기형 선전위원

 

연극 <굴뚝을 기다리며>의 막이 오르고, 두 사람이 절뚝이며 무대 가운데로 걸어 나온다. 그들의 이름은 누누와 나나. 누가 누구인지, 내가 나인지, 나는 여기 왜 여기 있는지 잊은 듯 너는 누구냐며 서로의 이름을 묻다가, 스스로를 가리키며 부르는 이름. 마치 언어유희와 같은 이름을 가진 누누와 나나는 굴뚝의 좁은 난간 사이를 위태롭게 절뚝이며 돌아다닌다.

그때 갑자기 누누가 발이 아프다며 주저앉는다. 나나는 누누의 발을 낫게 하려고 어디가 아픈지 묻는다. 하지만 누누는 이 발이 아프다고 물으면 저 발이 아프다고 답하고, 저 발이 아프냐고 물으면 저 발이 아프다고 답한다. 나나가 재차 발이 왜 아프냐고 묻자 누누는 신발(작업화)이 작은 것 같다고 한다. 그러자 나나는 신발이 작은 게 아니라 발이 커서 그런 거라고 말한다. 발이 큰 건지 신발이 작은 건지를 두고 한참을 얘기한다. 객석에서는 웃음이 터져 나온다.

자꾸만 질문과 답이 비켜나면서, 대화는 도돌이표처럼 맴돈다. 통하지 않은 말들은 굴뚝 너머 공중으로 흩어지고 만다. 그 가운데 시간은 자꾸만 흘러간다. 무의미한 하루하루의 반복. 그때, 누누가 나나에게 묻는다. 우리는 대체 여기서 무엇을 하고 있느냐고. 저 너머를 바라보며, 나나가 대답한다.

 

우린 굴뚝을 기다리고 있지.’

 

연극 <굴뚝을 기다리며>는 크게 두 축으로 구성된다. 중심이 되는 축은 앞서 소개한 누누와 나나의 이야기다. 다른 한 축은 누누와 나나가 지내는 굴뚝으로 손님이 한명씩 찾아오면서 펼쳐진다. 홀로 굴뚝을 청소하는 노동자 청소와 굴뚝청소를 담당하는 AI로봇 미소’, 배달라이더 이소의 방문이다.

본 연극이 오마주한 사무엘 베케트의 희곡 <고도를 기다리며>의 두 주인공 블라디미르와 에스트라공 또한, 시덥잖은 얘기를 하염없이 주고받는다. 중간마다 누군가 그들을 방문하고 다시 떠난다. 그러다 그들의 대화는 언제나 고도에 대한 기다림으로 귀결된다. “오늘은 고도가 올까? (글쎄, 어쨌든 기다려보자고.)” 관객들 사이에선 고도가 누군지 또는 무엇인지에 관한 수많은 논쟁이 오갔다. 하지만 제목에서도 드러나듯, 두 희곡과 연극 모두에서 우리가 마주하는 건 다름 아닌 기다림이다.

 

기다림, 그 치열한 몸짓

 

흔히 기다린다고 하면, 누군가 저 멀리 무언가를 바라보며 가만히 서 있는 이미지를 떠올리곤 한다. 옛 설화에서 떠난 사람을 기다리는 망부석의 이미지랄까. 그래서 기다림은 정적이고 수동적인 것으로 받아들여진다. 그러나 정말 기다림은 아무것도 하지 않은 채 멈춰 서있는 걸까? 철학자 고병권은 저서 다이너마이트 니체에 관한 한 강연에서 니체가 선악의 저편에 논의한 것을 빌어 다음과 같이 말했다. “니체는 가만히 있는 것은 기다리는 게 아니라고 말해요. 문이 열리기를 기다리는 사람은 가만히 있지 않고 두드립니다. 열매를 기다리는 사람은 씨앗을 심어요. 기다림은 중요해요. 기다림이 없으면 사건이 없어요. 그 점에서 기다림은 실천입니다.”

기다림이 적극적인 몸짓인 이유는 뭘까? 기다림은 언제나 바람을 품고 있기 때문이다. 망부석처럼 떠난 임이 돌아오기를 바라고, 지금보다 나은 세상이 오기를 소원하는 것 등등. 기다리는 사람은 자신의 기대와 소원 등이 장래에 실현되길 바란다. 그래서 기다림은 여기와는 다른 저기, 현재가 아닌 미래를 바라보는 것이다. 우리는 자신의 바람을 이루기 위해, 저 너머를 향해 끊임없이 행동한다.

본 연극의 작가이자 연출가인 이해성 님은 블랙리스트 사태 당시 광화문 광장 캠핑촌에서 함께했던 유성, 쌍용차, 콜트콜텍, 파인텍 등 고공농성을 했던 해고노동자들의 이야기를 듣고 작품을 구상하게 되었다고 한다. 2018년 겨울, 426일에 걸친 세계 최장기 고공농성이었던 2018파인텍 투쟁15일간 연대하면서, 이 투쟁을 모티브 삼고 고공농성투쟁의 당사자들의 일기와 이야기를 반영해 구체화시켰다. 이에 비춰볼 때, 누누와 나나가 굴뚝에 올라간 이유가 극 중에 밝혀지지 않지만, 추정해볼 수 있다. 부당한 정리해고에 맞서 노동권을 지키기 위함이라고.

굴뚝 위에서 굴뚝을 기다리는 삶도 아래의 삶과 별반 다르지 않다. "올리고, 내리고, 뒤집고, 넘기고올리고, 내리고 뒤집고, 넘기고" 아침에 일어나 씻고, 점심엔 운동하고 밥 먹고, 저녁엔 사람들과 소통을 하고 잠을 청한다. 그렇게 매일 같은 일상을 보낸다. 그럴 때 지루함의 끝에 뒤이어 찾아오는 고립감. 홀로 있다는 생각이 문득 드는 순간, ‘우리의 바람이 정녕 이뤄질 수 있을까?’하는 의구심이 연이어 떠오른다. 품고 있던 기대는 쉬이 흔들린다. 그러다가도 어느 날 굴뚝 아래 사람들이 출근하고 퇴근하는 모습을 바라보며, 굴뚝에 올라온 이유를 되새긴다. “우린 굴뚝을 기다려야 해.” 흔들리고 다잡는 일의 무한한 반복. 어쩌면, 우리 삶의 실존적 면모일테다.

 

기다림의 형태

 

수십 미터에 이르는 굴뚝은 생을 걸고 올라가야만 할 정도로 높다. 하지만 여전히 그들은 보이지 않는다. 그래서 이들은 혹시나 여기가 너무 낮아서 우리를 찾지 못하는 걸까?’라는 의구심을 갖는다. 하지만 자신의 발아래를 보면 까마득하기만 하다. 지루하고 무의미한 기다림을 그만두고서, 이 위험하고 고독한 곳에서 벗어나 저 아래로 내려가고 싶기도 하다. 도대체 우리는 왜 여기 있는 것일까? 인간답게 살고 싶다는 외침이 정녕 이 높은 곳에서도 들리지도 보이지도 않는 것일까? 그래서 누누와 나나는 굴뚝의 높이를 두고 우습고도 씁쓸한 다툼을 벌인다.

 

여기는 높은 곳. (여기는 낮은 곳인데.) 아니야. 여기는 높은 곳이야. (아니야, 여기는 낮은 곳이라니까?) ······ 여기는 너무 높아. (아니야. 여긴 너무 낮아.) 너무 높다니깐? (너무 낮다니깐?)”

 

우리는 살면서 더 높은 곳에 올라가길 바란다. 하지만 그 바람, 즉 기다림의 형태는 누누와 나나의 것과는 사뭇 다르다. 남들보다 높은 곳에서 남들이 누리지 못하는 것을 누리고 싶다. 그러니 내가 속한 여기는 여전히 낮다. 내가 기다리는 건, 저 너머로부터 찾아올 굴뚝이 아니라, 이 굴뚝이 더 높아지는 거다.

더 많은 자산·소득을 갖고자 하는 열망으로 가득 찬 기다림들. 각지의 랜드마크를 자처하며 경쟁적으로 짓고 있는 초고층 빌딩들. 어쩌면, 오늘날 난쟁이가 쏘아올린 공은 그 수많은 높은 곳들에 가려 손쉽게 사라지고 있는 게 아닐까.

누누와 나나는 굴뚝 위에서 굴뚝을 기다린다. ‘굴뚝이 혹시나 우리를 찾지 못할까 전전긍긍한다. 여기서 굴뚝은 가장 단순하게는 누누와 나나의 복직으로 이해될 수 있다. 하지만 필자는 또 다른 굴뚝은 아닐까 상상해본다. 굴뚝처럼 높은 곳에 올라 여기 사람이 있다고 외치는 또 다른 이들을 기다리는 일이 아닐까. 누누와 나나의 굴뚝만이 아니라, 사람답게 살고 싶다는 바람을 간직한 수많은 이들의 굴뚝 말이다.

극의 말미에 나나는 굴뚝에 서서 무대와 객석 저 너머를 응시한다. 언젠가 저 너머에서 찾아올 굴뚝을 기다리며. 아마도 막이 내리고, 나나는 다시 똑같은 굴뚝 위의 일상을 보낼 것이다. 어쩌면 어느 날 굴뚝 아래로 내려와 일상을 보낼지도 모른다. 그 모든 순간, 언젠가는 굴뚝이 반드시 찾아올 것이라는 기대를 잃지 않을 수 있을까. 수없이 흔들리는 가운데서도 굳건히 버틸 수 있을까. 저 너머 굴뚝이 있을 것이라는 믿음, 또 다른 굴뚝이 함께 이 땅에 있음을 인지하는 것으로부터 시작할 수 있을까.

그러나 각자도생의 길만 남은 듯한 오늘날, 우리는 나만의 기다림외에는 다른 곳을 바라볼 여유도 없는 것일지 모르겠다. 또 다른 굴뚝이 있음을 알고도, 우리가 딛고 있는 이 자리가 올라가기만을 바라고 있는 건 아닐는지. 그러면, 이 자리에 찾아올 또 다른 굴뚝을 향한 기다림이란 정녕 불가능한가? 나아가 또 다른 굴뚝이 우리를 찾도록 하려면, 우리는 어떤 기다림의 형태를 만들어가야 할까?

 

 

 

[9월호_연구리포트] 2021 한국 과로사•과로자살 발생 현황 이슈페이퍼

2021 한국 과로사과로자살 발생 현황 이슈페이퍼

 

장향미 회원, 노동시간센터

 

2020년도 한국 과로과로자살 현황

동아시아과로사통신은 한국(한국노동안전보건연구소), 대만(OSHLink), 일본(POSSE) 세 국가의 노동안전보건분야 시민단체가 과로사과로자살의 현황을 파악하고, 이에 함께 대응하고자 만든 네트워크입니다. 올해부터는 각 국의 매년 과로사과로자살 현황과 산재 승인율을 추적을 목적으로 한 이슈페이퍼를 발간하고자 합니다. 그리고 이번 연구리포트 코너에서는 지난 2015~2020년 과로사과로자살 발생건수 및 산재승인율 변화 추세를 다루고 있는 한국의 이슈페이퍼를 싣습니다.

 

1. 2020년도 업무상 뇌심혈관계 질병과 사망(과로사 추정), 정신질환, 자살(과로자살) 산재

현황

2020년 업무상 뇌심혈관계 질병에 대한 산재 판정건수는 2,429, 승인건수는 929건으로 승인율은 38.25%이다. 이 중 사망자수는 273명으로 나타났다. 업무상 정신질환에 대한 산재 판정건수는 581, 승인건수는 396건으로 승인율은 68.16%이다. 업무상 자살에 대한 산재 판정건수는 87, 승인건수는 61건으로 승인율은 70.11%이다.

[1: 업무상 뇌심혈관계 질병, 정신질환, 자살 통계(2020)]

케이스

질병
총계(질병+사망) 사망
산재신청 승인 승인율 산재신청 승인 승인율
업무상 뇌심혈관계 질병 2,429 929 38.25% 670 273 40.75%
업무상 정신질환 581 396 68.16% - - -
업무상 자살(과로자살) 87 61 70.11% 87 61 70.11%

(자료출처 : 근로복지공단)

 

2. 업무상 뇌심혈관계 질병과 그로 인한 사망(과로사) 발생 현황

산재 인정을 받은 뇌심혈관계 질환 사망자수(과로사)2015149명에서 2019292명으로 매년 늘어나고 있다. 2018년 뇌심혈관계 질환의 산재 승인률이 41.28%로 전년대비 8.72%으로 상승하였는데, 이는 정부가 과로사 인정 기준을 완화한 영향이 크다. 2020년 뇌심혈관계 질환의 전체 산재 승인건수는 929건으로 전년대비 26.56% 줄었으나, 산재 승인 사망자수는 273명으로 전년대비 6.51% 감소한 것으로 나타나 상대적으로 과로사가 차지하는 비중은 오히려 더 늘었다.

[2: 업무상 뇌심혈관계 질병(2015-2020)]

케이스


연도
총계(질병+사망) 사망
산재신청 승인 승인율 산재신청 승인 승인율
2015 1,970 482 23.45% 585 149 25.47%
2016 1,911 421 22.03% 577 150 26.00%
2017 1,809 589 32.56% 576 205 35.59%
2018 2,241 925 41.28% 612 266 43.46%
2019 3,077 1,265 41.11% 747 292 39.09%
2020 2,429 929 38.25% 670 273 40.75%

(자료출처 : 근로복지공단)

 

3. 업무상 정신질환 및 자살(과로사) 발생 현황

최근 6(2015~2020) 업무 관련 정신질환 및 자살의 산재 신청 및 승인건수는 꾸준히 늘어나는 추세이다. 업무 관련 정신질환 산재 인정률 또한 201538.18%에서 202068.16%로 증가하였고 업무 관련 자살 산재 인정률도 201537.29%에서 202070.11%로 증가하였다. 2018년 업무 관련 정신질환 및 자살 승인률이 전년대비 각각 15.85%p, 22.86%p 증가하였는데, 질병판정위원회 심사위원 구성의 변화와 함께 심사과정에서 판정 요건의 해석을 종전보다 폭넓게 해석함으로써 승인률이 전체적으로 높아진 영향에 따른 것이다.

[3 : 업무상 정신질환 발생 현황(2015-2020)]

케이스




연도
총계 승인질병상세
산재신청 승인 승인율 우울증 적응장애 급성 스트레스 장애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 불안장애 기타
2015 165 63 38.18% 17 13 9 14 2 8
2016 183 85 46.45% 14 21 5 25 4 16
2017 213 126 59.15% 52 32 8 21 1 12
2018 268 201 75.00% 72 53 15 36 5 20
2019 331 231 69.79% 66 78 15 39 13 20
2020 581 396 68.16% 113 162 23 55 19 24

 

[4: 업무상 자살(과로자살) 발생 현황(2015-2020)]

케이스




연도
총계 승인질병상세
산재신청 승인 승인율 우울증 적응장애 급성 스트레스 장애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 불안장애 기타
2015 59 22 37.29% 13 2 - - 2 5
2016 58 20 34.48% 7 - - - 1 12
2017 77 44 57.14% 34 - 2 2 2 8
2018 95 76 80.00% 49 2 3 1 3 18
2019 72 47 65.28% 25 1 5 - 2 14
2020 87 61 70.11% 41 1 1 - 3 15

(자료출처 : 근로복지공단)

 

4. 통계분석

1) 업무상 뇌심혈관계 질병과 그로 인한 사망

산재 인정을 받은 뇌심혈관계 질환 사망자수(과로사 추정) 는 2015년 149건에서 2019년 292건으로 매년 늘어나고 있다. 2018년 정부가 과로사 인정 기준을 완화하면서 이전 대비 과로사의 산재 승인율이 높아진 영향도 있다. ‘만성 과로’의 경우 기존에는 발병 전 12주 동안 업무시간이 1주일 평균 60시간 초과하는 경우 업무와 질병의 연관성이 크다고 봤다. 2018년 개정된 고시에서는 기준 시간(52시간)을 추가하고, 업무 부담이 가중될 수 있는 조건을 추가되었다. 또 과로 시간을 산출할 때 야간근무는 주간근무 시간의 30%를 가산하도록 했다.

과로사 승인률이 높아졌다고 해도 전체 업무상 질병 승인율이 60% 정도인데 반해 최근 6년간 뇌심혈관계 질병에 대한 산업재해 신청자 3,767명 중 과로사 인정을 받은 노동자는 1,335명으로 과로사 인정률은 여전히 35%로 절반 수준에 불과하다.

장시간 노동을 줄이기 위한 목적으로 2018년 7월1일부터 300인 이상 사업장과 공공기관에서 주52시간 근무제(주 40시간+연장근로 12시간)가 시행되었고, 2020년1월1일부터 50인 이상 300인 미만 사업장, 2021년7월1일부터 5인이상 50인 미만 사업장까지 적용범위가 확대되었다. 그러나 2018년~2020년 기간 동안 매년 300명에 가까운 과로사 사망자수가 발생하였으며 과로사는 여전히 줄지 않고 있다.

지난 7월 17일 세계보건기구와 국제노동기구는 2000년~2016년 194개국의 장시간 노동으로 인한 뇌심혈관계 질환 사망자 실태를 분석한 공동연구보고서를 발표하였다. 보고서에 따르면 2016년 한국에서 10만 명당 5.9명이 장시간 노동에 의해 사망했다고 밝혔는데, 한국 통계청 자료에 대입했을 때 뇌심혈관계 질환 사망자는 2,610명으로 계산됐다. 해당 보고서의 수치를 통해 짐작컨대, 현재 산재 인정 통계에 잡히지 않는 과로사 사망자수는 더 많을 것으로 추정된다.

 

2) 업무상 정신질환과 자살

최근 6년(2015~2020년) 업무관련 정신질환 및 자살의 산재 신청 및 승인건수는 꾸준히 늘어나는 추세이다. 업무 관련 정신질환 산재 인정률 또한 2015년 38.18%에서 2020년 68.16%로 증가하였고 업무 관련 자살 산재 인정률도 2015년 37.29%에서 2020년 70.11%로 증가하였다. 2018년을 기점으로 산재 승인률이 올라갔으나 산재 신청의 문턱은 여전히 높다.

<OECD 보건통계(Health Statistics) 2021>에 따르면 한국은 인구 10만 명당

자살사망자가 24.7명으로, OECD 평균인 11명 보다 2배 이상이며 OECD 국가 중 가장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또한 2019년 한국 자살사망자수는 13,799명이며 2019년 경찰청 변사자통계에서 직장 또는 업무상의 문제로 사망한 사람은 598명으로 나타났다. 그러나 2019년 업무상 자살 산재 신청건수는 72건으로, 경찰청 변사자 통계의 직장 또는 업무상 문제로 사망한 598명과 비교했을 때 업무관련 자살의 산재 신청건수는 약 12%로 여전히 매우 낮다.

코로나19가 장기화됨에 따라 정신건강 악화와 자살 위험이 크게 증가하고 있다. 지난 7월4일 보건복지부가 발표한 2021 자살예방백서에 따르면, 2020년 자살사망자 수는 잠정치 기준 13,018명으로 2019년보다 감소한 것으로 나타났다. 그러나 전문가들은 코로나19로 인한 경제, 사회적 영향이 본격화되는 2~3년 후 자살 증가 가능성을 예측하고 있다. 1998년 무렵 한국이 겪었던 IMF 시기에는 경제위기로 인해 직장을 잃거나 사업이 어려워지는 등의 어려움을 겪는 이들도 많았지만, ‘회사의 어려움’을 이유로 진행된 구조조정 끝에 남은 이들의 업무상 부담 역시 늘어났던 시기였다. 당시 한국의 자살율은 급증했다. 코로나의 영향이 가시화되는 시기, 그러한 과거 경험이 반복될 수 있다. 과거에 대한 학습을 바탕으로, 과로사•과로자살이라는 사회적 재난에 미리 대비해야 한다.

 

 

[9월호_특집3] 노동자 참여, ‘제대로 된’ 위험성평가의 시작

노동자 참여, ‘제대로 된위험성평가의 시작

 

김다연 상임활동가

 

본 인터뷰는, 노동자들이 직접 참여한 위험성평가를 진행한 경험이 있는 KB오토텍과 신한발브의 이야기를 담았다. 두 사업장은 위험성평가를 1년에 한 번 해야 하는 형식적인 책무가 아니라, 일상적인 노동안전(이하 노안)활동에 위험성평가를 녹여내 운영하고 있었다. 이들이 위험성평가를 지회의 노안사업으로 정착시키기 위해 해 온 노력과 운영방식, 개선점에 대한 고민에 대해 살펴보고자 한다.

 

1. 금속노조 충남지부 KB오토텍지회 박종국 명예산업안전감독관 인터뷰

 

위험성평가는 언제부터 진행하셨나요?

2016년에 위험성평가를 노조에서 직접 해보려고 했고, 현장의 위험요인 조사와 위험성 평가까지 마쳤으나 사측의 노조파괴 시도로 중간에 무산됐습니다. 그러다 2018, 2019년에 걸쳐 노조에서 처음으로 개선과정까지 포함한 위험성 평가 전체 절차를 진행했어요.

물론 이보다 먼저, 사업장 내에서 활동하는 안전보건지킴이를 구성했어요. 산업안전보건공단에서 운영하는 안전보건지킴이 사업을 차용한 건데요. 20188월 산업안전보건위원회(이하 산보위)에서 안전보건지킴이를 공식적으로 운영할 것을 사측과 합의하고, 30명 정도를 뽑았어요. 6시간의 활동 시간을 확보해서 2시간은 구성원 전체 회의 및 교육을 진행하고, 나머지 4시간은 사업장 안전보건과 관련한 현장의 의견들을 수렴하고 개선하는 데 활용했습니다.

이렇게 했던 이유는, 1년에 1회 하는 위험성평가만으로 사업장의 안전보건에 관한 실질적인 문제들이 제대로 드러나지 않아서예요. 사업장의 유해위험요인을 발견하고 개선하는 일을 일상적으로 해보려고 안전보건지킴이 제도를 도입한 거죠. 위험성평가도 일상적 활동 중 하나예요. 또 이렇게 조합원들이 활동해야, 노안위원들도 지치지 않고 오래 갈 수 있기도 하고요.

이렇게 노안활동을 전개할 수 있었던 데에는 노안부의 노고가 커요. 조합원의 산재 대부분을 승인받기도 했고, 그 과정에서 우리가 아프거나 사고를 당하는 건 개인의 부주의 문제가 아니라 노동환경의 문제라는 이야기도 나누고요. 그러면서 노안부에 대한 조합원의 신뢰를 얻을 수 있었고, 이후 위험성평가를 포함한 일상적 노안활동도 조합원의 지지를 받으며 시행할 수 있었죠.

 

위험성평가 절차는 어떻게 되나요?

절차상으로는, 우선 위험성평가를 하면 위험성평가의 목표와 절차·수행 시기·협력 기관 등 관련한 모든 사항을 조합원과 공유합니다. 그리곤 부서마다 조사 날짜를 정한 뒤, 조사를 시행하죠. 이때 안전보건지킴이 위원들이 조사 과정을 이끌어가는 역할을 맡아요. 필요하면 노안위원과 협력 기관의 노안활동가가 참여해서 돕기도 해요. 하지만 위험유해요인을 찾고, 위험성 크기를 판단하고, 개선안을 도출하는 건 현장 노동자들입니다. 해당 공정을 가장 잘 아는 전문가는 현장 노동자이고, 그들의 이야기를 들어야 효과적인 개선을 도출할 수 있으니까요.

 

조사 과정에서 의견이 엇갈릴 경우, 어떻게 문제를 해결하나요?

처음엔 노안문제에 있어 더욱 민감한 노안위원 없이 조합원과 실행위원에게만 위험성평가를 맡길 경우, 사업장의 위험이 혹시나 축소되는 건 아닐까 염려가 되기도 했어요. 그래도 일단 1차 조사는 전적으로 맡기고, 자율적으로 진행하도록 했습니다. 만약 보충할 부분이 있다면, 노안위원이 의견을 내고 설득하거나 실행위원이 질문을 던지기도 했어요. 이를 통해 현장의 위험을 새롭게 확인할 수 있도록요.

부서별 논의를 할 때도, 서로 의견이 엇갈릴 때가 있어요. 누군 괜찮다 하고, 누군 위험하다고 하는 거죠. 이럴 땐 논의를 거친 뒤, 어떻게든 합의안을 도출해요. 서로 자기 의견을 조금씩 조정하고, 함께 만든 방안이어야 모두가 개선에 참여하거든요. 만약 누군가의 의견을 배제해버린다면, 그 사람은 해당 개선안에 동의할 수가 없겠죠. 그러면 개선과정이나 다음 위험성 평가에 참여하지 않을 테고요. 무엇보다도 위험성평가에 참여하는 이들이 자율성을 발휘할 수 있도록 그들의 의견을 존중해야 합니다. 그게 아니라면, 그냥 옛날처럼 전문가에게 맡기는 거나 다를 바 없죠.

 

위험성평가는 불이행 시 처벌 수위가 크지 않아, 실효성이 없는 제도란 평가도 있는데요.

물론 위험성평가를 안 할 때 받는 처벌 수위가 너무 낮긴 하죠. 하지만 위험성평가를 이행하도록 하는 다른 방안을 모색할 수도 있어요. 예를 들어 산보위에서 위험성평가 진행하기로 합의한 뒤, 불이행하면 산안법상 위반사항 해당해요. 이처럼 현장에서의 산안법상 위반사항을 근거로, 사측을 고소·고발할 수도 있죠. 저희의 경우엔 위험성평가를 단협의 조항으로 넣기도 했습니다. 위험성평가를 실시하지 않으면, 단협안 위반이 되도록요. 이외에도 가능한 여러 방법을 동원해 압박을 넣어, 위험성평가를 실시하도록 강제해야 합니다.

문제는 이것도 KB오토텍 노조가 힘이 있으니 가능하단 거죠. 또 저희는 그간 노안활동을 전개하면서 조합원과 소통을 해왔잖아요. 그 결과, 현장의 위험에 대한 노동자들의 전반적인 인식이 높아졌어요. 회사가 이걸 깨고 위험성평가를 하지 않거나, 제대로 시행하지 않는 것도 쉽지 않아진 거죠. 저희가 이렇게 되기까지 10년이나 걸렸어요. 사측의 노조파괴도 겪으면서요. 상황이 이러니 노조에 힘이 없거나 미조직 사업장 경우에는 위험성평가 진행 자체가 쉽지 않죠. 무엇보다도 위험성평가를 실시하지 않을 경우, 그 처벌 수위가 높아져야 할 필요성이 여기에 있습니다.

 

2. 금속노조 경기지부 화성지역지회 신한발브분회 김현호 사무장 인터뷰

 

위험성평가는 어떻게 시작됐나요?

당시 현장엔 절삭유가 여기저기 흐르고, 금속분진이나 오일 미스트, 소음, 안전조치 없는 중량물 취급공정 등 다양한 문제가 산재해있었습니다. 13~14년도 현장엔 연간 발생하는 재해만 50건이 넘었고, 그중에선 1~3달씩 요양해야 하는 사고나 질병을 경험하는 사례가 많았어요. 현장의 문제를 의식하던 중, 노안활동이 활발한 금속 경기지부로 넘어오게 되면서 본격적인 노안활동을 해야겠단 생각이 들더라고요. 이후 노안부장과 임원, 분회의 대의원으로 구성된 노안보건팀을 구성하면서 활동을 시작했죠.

노안보건팀은 생애전환기 검진과 격년 위암 검진을 위한 추가 휴가와 비용 지급을 단협안에 추가하고, 내실 있는 정기안전교육 실시, 안전 보호구 지급 요구 등 여러 사업을 진행했어요. 그중 하나가 공정별 현장 환경문제 및 위험도에 대한 체크리스트작성입니다. 위험성평가 제도를 활용한 건 아니었으나 위험성평가에서 주요하게 다루는 현장의 근골격계 유해요인, 사고성 재해 유발요인, 소음, 화학물질 등을 관리하는 활동을 시작한 거죠. 이를 바탕으로 2015년부턴 조합에서 기존에 노사협의회로 대체되던 산보위를 운영키로 사측과 합의했어요. 다음 해, 산보위는 일상적 노안활동을 위한 공식제도인 위험성평가를 실시하기로 했고, 그해 3분기 신한발브에서 위험성평가를 처음 실행하게 됐습니다.

 

어떤 방식으로 위험성평가를 구성했나요?

일단 구성원 내부적으로 위험성평가가 뭔지, 어떻게 진행되고 왜 필요한지를 잘 모르는 상태였어요. 위험성평가와 관련된 전반적인 교육이 필수적인 상황이었죠. 그래서 조합의 상집간부와 실행위원, 전체 조합원을 대상으로 해서 3번의 교육을 진행하게 됐습니다.

교육 이후, 노동자 의견이 반영된 위험성평가를 실시했어요. 조사는 두 가지 단계로 구성했고, 시트는 금속노조에서 만든 위험성평가 시트를 사용했습니다. 우선 실행위원과 작업자들이 함께 현장 라인을 돌며, 직접 사진과 영상을 찍어요. 그리곤 해당 공정의 위험유해요소나 개선안에 대해 여러 의견을 나누고, 시트를 작성하는 방식으로 진행했어요. 이때 위험성평가 진행에 필요한 실행위원은 사측에서 3, 노안보건팀에서 5인 해서 총 8명으로 구성했고요. 실행위원은 자신이 맡은 공정의 위험성평가를 진행하고, 서로 주마다 1회씩 만나서 함께 토의하곤 했습니다.

신한발브가 고안한 위험성평가의 구성은 해당 공정을 가장 잘 아는 작업자의 시선에서 유해위험요소를 찾아내는 동시에 실행위원이라는 제삼자의 눈을 통해, 교차관찰이 가능하다는 점이예요. 오래 일한 작업자는 그 공정의 전문가가 되기도 하지만, 자칫하면 작업 공정에 내재한 유해위험요소에 익숙해질 수도 있거든요.

위험성평가를 통해 실행위원과 작업자인 조합원이 서로 눈높이를 맞춰나가며 현장의 다양한 유해위험요소를 발견하고, 이들의 개선점을 찾고, 앞으로의 노안활동에서 염두에 둘 만한 지점을 파악할 수 있게 됐어요. 사측의 실행위원 역시 위험성평가를 통해 도출된 위험은 물론 현장의 개선이 필요하단 것을 인정하게 됐고요. 평가가 끝난 이후에는 정기안전 교육시간을 활용해, 조합원을 대상으로 결과 보고와 교육을 진행했습니다.

 

이후의 개선은 어떻게 이뤄졌나요?

단기간 내로 현장에 정말 많은 개선이 필요하단 사실을 사측과 공유하고, 설득하기 위해선 보고서 작성이 필요하다고 판단했어요. 일단 해당 공정의 유해위험요소와 위험성평가를 작성한 시트는 각 공정에 비치해뒀어요. 그리곤 노안보건팀에서 위험성평가를 토대로 한 별도의 보고서를 작성하고, 이를 설득의 근거자료로 활용했습니다.

현장의 모든 개선안이 한 번에 적용된다면 좋겠지만, 회사의 예산 사정상 그럴 순 없었어요. 개선이 필요한 여러 문제를 투자가 많이 필요한데 현재 예산에서 당장 가능하지 않아, 장기적으로 진행해야 할 문제 회사의 설비팀이나 법무팀을 통해 해결할 수 있는 문제 재료를 구매해 현장의 관리자나 작업자가 직접 개선할 수 있는 문제, 이렇게 세 단계의 범주로 나눴어요. 이를 바탕으로 개선 계획을 세운 뒤, 조금씩 개선해 왔죠. 이후 2018년 위험성평가 때는 산보위에서 조합 측 실행위원의 활동 시간을 보장받고, 회사의 예산안에서 별도의 현장 개선 사업 예산 항목을 편성하기도 했습니다.

 

제대로 된 위험성평가를 진행하려면요?

아무래도 개선안 실행을 위한 재원 확보가 어려우면, 위험성평가의 실효성이 떨어지는 게 가장 큰 문제 중 하나죠. 자원이 적거나 재정적으로 어려운 상황에 놓인 사업장은, 현장의 위험을 안다고 해도 실제 개선으로까지 이어지기가 어렵습니다. 지자체나 정부의 대출이 있긴 하지만, 대출요건 중 하나가 현재의 재정 상태여서 사실상 대출을 승인받기가 어려운 실정이에요. 업종에서의 경력이나 회사가 가진 영업력 등 다양한 요소를 자산으로 보고, 대출 여부 평가를 한다면 좋을 텐데 말이죠. 앞으로는 어려운 상황에 놓인 현장에서도 노안문제를 해결할 수 있도록 필요한 재원의 여러 지원책이 마련되면 좋겠습니다.

다른 하나는 저희가 위험성평가를 진행한 지 6년 정도가 됐는데요. 매년 실시하는 조사다 보니 공정에 큰 변화가 없는 이상, 사실상 내용에 큰 차이가 없는 경우도 많습니다. 조합원도 매년 똑같은 거 진행하는구나, 큰 변화 없는데 기존의 개선점을 추진하면 되는 거 아니냐는 반응을 보이기도 하고요. 현장의 위험을 발견하고 사고나 질병을 예방하기 위한 새로운 방법이 있을지, 더 해볼 수 있을 만한 것은 없을지 새로운 고민이 듭니다.

 

[9월_특집2] “노동자가 참여하는 위험성평가, 무엇이 어려운가요?”

노동자가 참여하는 위험성평가, 무엇이 어려운가요?”

 

최진일 회원, 충남노동인권센터 새움터 대표

 

최근 필자가 속한 금속노조 충남지부 노안위원회 자문단은 소속 지회들을 대상으로 노동안전보건활동 실태조사를 진행 중이다. 현장마다 진행되는 노동안전부장 및 담당 임원들과의 인터뷰에서는 성토대회라고 할 만큼 노안활동가들의 구구절절한 고충들을 확인하고 있다. 그리고 이번 인터뷰의 핵심적인 주제 중 하나가 바로 위험성평가. 특히, 금속노조는 올해 노동자가 참여하는 위험성평가를 핵심과제로 추진하면서 지속적으로 현장별 진행상황을 점검하고 있다. 금속노조가 추진하는 위험성평가의 프로세스를 요약하자면 1) 노동자참여방안을 포함한 위험성평가 실행안을 산업안전보건위원회(이하 산보위’)에서 합의하고 2) 현장노동자가 참여하는 실행위원회가 직접 위험성평가를 진행하는 것이다. 그러나 막상 금속노조가 추구하는 방식의 위험성평가가 진행되는 현장은 그리 많지 않다. 현장의 노안담당간부들은 위험성평가의 어려움을 어떻게 토로하고 있을까?

아직 인터뷰가 진행 중이기 때문에 통계화된 것은 아니지만, 가장 많은 대답은 교육의 부족이었다. 교육의 문제는 두 가지 측면에서 볼 수 있는데, 하나는 각 지회 노안담당자들에 대한 교육의 문제다. 노조 차원에서 위험성평가 교육을 심도있게 진행했지만 경험이 전무한 담당자들에게는 사업을 기획하고 집행하는 것부터 막막한 상황이라는 것이다. 또 하나는 간부나 담당자들만이 아니라 직접 위험성평가에 참여해야하는 노동자들에 대한 교육이다. 이는 또 다른 어려움으로 꼽힌 활동시간의 문제와 결합되어 있다. 조합원 모두에게 위험성평가의 취지와 참여방법을 알리는 교육시간, 주도적으로 위험성평가에 참여해야 하는 실행위원들에게 조사방법과 실행방법을 교육할 시간, 그리고 그들이 활동할 시간을 보장받는 것은 이를 처음 시도하는 현장에서는 높은 벽일 수밖에 없다. 이외에도 실제 변하는 것은 없이 매년 반복되는 평가 때문에 현장의 관심이 낮고 참여가 조직되지 않는다는 고민도 있었고, 몇몇 현장에서는 관리감독자 지위에 있는 조합원들과의 갈등 문제를 토로하기도 했다. 상당수 현장에서 조반장들이 조합원 범위에 포함되어 있는데 이들이 위험성평가에 대해 반대하거나 노동조합에 불만을 제기하는 일도 있다는 것이다.

 

위험성평가 설계도의 필수요소

이처럼 쉽지 않은 제대로 된 위험성평가를 실행하기 위해서는 완성된 모델을 제시하는 것 이상의 현실적인 고민들이 필요하다. 수 많은 실천과제들이 있겠지만 위험성평가에서 노동자가 주체가 되기 위한 기반을 어떻게 만들어 갈 것인지, 위험성평가를 설계함에 있어 고려해야 할 지점이 무엇인지, 나아가 현실적인 대안들은 없는지 간략히 정리해보고자 한다.

 

교육+α

금속노조 충남지부의 인터뷰에서도 드러나듯 충분한 교육을 보장받는 것은 가장 기본적으로 해결해야 할 과제이다. 여기에는 전체 조합원에 대한 교육, 담당 간부들에 대한 교육, 현장실행위원들에 대한 교육 등이 다층적으로 배치되고 실행될 수 있어야 한다. 그런데, 이처럼 교육을 배치하고 현장노동자들의 참여를 조직하는 것부터가 이미 사업의 일부이자 기획의 일부다. 경험이 없는 담당자들로서는 여기서부터 막히기 마련이다. 그들이 노동자가 참여하는 위험성평가의 전체적인 흐름과 핵심적인 차별점들을 체득하기 전까지는 이런 부분을 보완해 줄 장치가 필요하다. 방식은 여러 가지일 수 있다. 사업의 기획단계에서 상급단체 또는 지역의 노안활동가들의 지원이나 자문을 받을 수도 있고, 지역 내에서 경험이 많은 사업장 활동가들의 도움을 받거나, 그런 사업장에서 위험성평가가 진행되는 동안 견학과 체험을 통해 제대로 된 실전교육을 제공하는 것도 좋은 방법일 것이다.

 

활동시간의 확보

교육시간의 확보와 비슷한 맥락이지만 제대로 된 위험성평가를 수행하기 위해서는 교육시간 이외에 위험성평가를 위한 활동시간이 보장되어야 한다. 일반적으로 임원이나 노안간부들은 전임자로서 혹은 기타 노사합의를 통해 위험성평가 기간 동안 활동시간을 보장받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현장의 노동자들까지 포함하여 실행위원회을 구성하고 이들의 활동시간을 일정하게 보장하는 사업장은 손에 꼽을 정도다. 위험성평가의 주체가 노동자가 된다는 것은 단순히 의견을 제시한다는 것을 넘어 평가의 주체가 된다는 것이다. 따라서 제대로 된 위험성평가는 현장의 노동자들이 직접 위험성을 발견하고 평가하고 대안을 제시하는 것이며, 이를 위해서는 그들이 현장을 조사할 시간, 동료 노동자들과 토론할 시간, 평가시트를 작성하고 개선안을 고민할 시간이 반드시 필요하다. 물론 가장 이상적인 방법은 산보위를 통해 이러한 시간보장까지 포함하는 위험성평가계획을 합의하는 것이겠지만 현실적으로 이를 관철시키기 어려운 경우도 많을 것이다. 그렇다면 최대한 취지를 살려 부서별 실행위원을 선임하고 안전교육시간, 노동조합 교육시간 등을 최대한 활용하는 방법, 혹은 대의원 제도가 보장하는 활동시간이 있다면 대의원을 실행위원으로 선임하여 이를 활용하는 방안 등도 고민해 볼 수 있다.

 

노동자들을 위한 평가도구

대부분의 사업장에서는 안전보건공단의 표준을 따르거나 일부 변형하여 4M기법에 기반한 양식을 사용하여 위험성평가를 수행하고 있다. 그러나 4M기법은 사고원인분석을 위해 만들어진 것으로 재해예방을 위한 위험성평가와는 어울리지 않는 측면이 있다. 또한 기법만의 문제는 아니지만 이를 활용한 위험성평가가 지나치게 안전사고를 중심으로 진행되어 근골격계부담작업, 화학물질, 소음 등의 작업환경에 대해 다루지 못하는 경향이 크다는 점, 개선안을 결정하는데 있어 인적 요인이나 관리적 요인에만 집중하여 근본적인 개선이 이루어지기 어렵다는 점 역시 위험성평가의 실효성을 떨어트리고 있다. 무엇보다 이로 인한 현실적인 문제는 4M기법에 기반한 위험성평가도구가 현장의 노동자들이 다루기에는 직관성이 매우 떨어져 노동자참여를 가로막고 있다는 점이다. 이러한 문제에 대한 고민은 오래전부터 진행되어 왔고 한국노동안전보건연구소, 금속노조 등은 이를 극복하기 위해 사업장에 어울리면서도 현장노동자들이 쉽게 접근할 수 있는 방식의 평가시트를 개발하고 활용하고 있다. 이러한 사례를 바탕으로 산업별, 직군별로 효과적이고 접근성 높은 평가도구들이 개발되고 보급되는 것 역시 중요하다.

한편, 노동자들을 위한 평가도구의 도입은 위험성을 추정하는 단계만이 아니라 위험성을 발견하는 단계에서도 충분히 제공되어야 한다. 현장의 위험은 현장의 노동자가 가장 잘 알고 있다는 것은 분명한 사실이지만 때로는 그 익숙함으로 인해 알고 있는 위험요소라도 누락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과거 산재기록, 작업환경측정결과 등을 사전조사함으로서 노동자들에게 충분한 정보가 제공되어야 하며, 현장에 맞는 체크리스트 등을 통해 꼼꼼히 현장의 위험요소를 발굴할 수 있도록 도와야 한다.

독립성 보장과 개선안에 대한 검토

실태조사에서 언급되었던 관리감독자 조합원과 평조합원의 갈등은 위험성평가를 진행하는 과정에서 흔하게 발생할 수 있는 문제다. 비단 관리감독자 지위에 있는 조합원들과의 문제만이 아니라 노동자들 사이에서도 이견이 발생할 가능성은 얼마든지 있다. 현장에서 지위, 나이, 성별에 의한 권력은 모든 곳에 존재하며 위험성평가도 예외는 아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평가작업에 있어서는 실행위원들이 객관적이고 독립적인 판단을 보장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전체 조합원에 대한 교육을 통해 위험성평가의 취지를 정확히 이해하도록 하고 현장에서 평등한 토론을 통해 의견을 제시할 수 있는 분위기를 만들어야 주어야 한다.

한편, 위험성평가를 둘러싼 현장에서의 갈등은 개선방안의 선정과정에서 발생하기 쉬운데, 이는 대부분 근본적인 개선방안에 접근하지 못하고 차선, 차악을 선택함으로서 발생한다. 유해화학물질을 근본적으로 제거하는 대신 폭염속의 노동자들에게 방독마스크 착용을 강조하면 반발을 불러일으키는 것이 당연하며, 유해위험설비를 개선하지 않고 점검항목과 서류작업만 잔뜩 늘어나면 관리감독자는 위험성평가를 저주하게 될 것이 분명하다. 이를 방지하기 위해서는 근본적인 대안, 공학적인 대안을 우선시하는 위험성평가의 원칙을 충분히 교육하고 공유하는 과정이 필요하다. 또한 난해한 문제들에 대해서 충분한 시간을 두고 협의하는 과정을 거치며 필요하다면 전문적이고 기술적인 지원도 받을 수 있는 인프라가 구축되어야 한다.

 

다양한 시도와 실험의 공유가 필요

법이 보장하는 것은 고작 위험성평가에 노동자의견을 반영해야 한다는 선언적인 문구에 지나지 않는다. 하지만 우리가 추구하는 것은 단순한 의견의 반영을 넘어 노동자가 주체가 되고 주도하는 위험성평가를 현장에 뿌리내리게 하는 것이다. 그렇게 진행되는 위험성평가야말로 현장의 위험을 실효적으로 제거하고 재해를 방지하는 제 역할을 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노동자가 주도하는 위험성평가의 모범적인 모델을 실현할 수 있는 현장의 수는 지극히 제한적이다. 오히려 위험성평가 자체를 진행하지 않거나 회사의 안전관리자가 전담하는 현장, 혹은 외부 기관에 위탁하여 노동자들이 들러리에 지나지 않는 현장의 숫자가 압도적으로 많은 것이 현실이다. 이러한 현실을 감안하면 모범답안을 일률적으로 제시하는 것이 아니라 각 현장의 현실에 맞는 다양한 방식의 접근이 더 많이 시도되어야 하고 그 결과들이 노동안전보건운동의 장 안에서 공유되어야 한다. 물론, 이 과정에서 노동자가 주도하는 위험성평가를 노동안전부서만의 사업이 아니라 집행부 전체의 과제로 공유하는 것은 두말할 필요 없는 대전제이다.

 

[9월_특집1] 위험성 평가 제도의 문제점과 개선 방안은?

위험성 평가 제도의 문제점과 개선 방안은?

_위험성 평가 실태 조사 및 활성화 방안 연구를 중심으로

 

재현 운영위원, 민주노총 노동안전보건국장

 

위험성 평가 제도의 의미와 실태

위험성 평가는 일터에 있는 모든 유해·위험요인을 파악하여 발생 가능성과 중대성을 추정하여 평가하고, 감소 대책을 마련하고 개선하는 일련의 과정이다. 위험성 평가는 사후적 대책이 아닌 사전예방 조치로써 매년 모든 사업장에서 실시해야 하고 법에서 노동자의 참여를 보장한다는 특징이 있다.

위험성 평가를 포괄하는 현대적 의미의 안전보건 관리체계는 로벤스 위원회의 보고서에서 태동한다. 1970년대 초반 영국 정부 의뢰로 안전보건 문제를 조사했던 로벤스 위원회는, 위험은 이를 생산하는 조직이 가장 잘 알기에 스스로 위험을 관리하고, 책임져야 한다고 지적했다. 이에 근거해 안전 조직 시스템 개선, 경영진의 주도적 책임성 강화, 노동자 참여 강화를 안전보건 관리의 핵심 원칙으로 제시하였다. 더불어 국가는 기업이 준수해야 할 지침을 만드는 것이 아닌, 기업의 자율 규제를 위한 여건 조성을 맡아야 한다고 권고한다. 로벤스 보고서 이후 국가에 의한 지시적 위험 관리로부터 조직 스스로 위험을 통제하는 자율 규제적 관리로 안전보건의 패러다임이 전환되었다. 이러한 패러다임을 바탕에 둔 위험성평가는 영국을 시작으로 유럽 국가들에서 법으로 제도화 되었다.

반면, 한국은 2013년 로벤스 위원회가 주목했던 위험을 생산하는 기업과 그 일을 하는 노동자의 참여 강화를 통한 안전보건관리 체계 확립이라는 패러다임과 원칙은 배제하고, 국가의 일방적 규제가 아닌 노사 자율 관리차원으로 위험성 평가를 제도화했다. 제도 도입 당시부터 유럽 국가들과 달리 노사 힘 관계가 일방적으로 기울어진 상황에서 위험성평가가 취지에 맞게 운영 될 수 있을지 우려하는 전문가들, 현장 활동가들의 목소리가 높았고, 우려는 현실이 되었다. 현장에서는 위험성평가를 왜 해야 하는지 의미도 목적도 방향도 잃어가고 있다.

어려운 조건이지만 분명 유의미한 성과도 있었다. 금속노조는 위험성 평가의 목적과 취지를 현장에서 구현하기 위해 제도 도입 초기부터 현재까지 전 조직적 차원으로 대응하고 있다. 사측 주도로 진행되었던 위험성 평가 내용 검토를 시작으로 노조 차원의 현장 참여 방안을 내고 평가 도구와 기준을 만들었다. 이런 식으로 산별 교섭과 지침을 통해 현장에 강제하도록 하고 간부 및 조합원 대상 역량 강화 교육을 통해 위험성평가 기본 취지를 실현하기 위해 힘쓰고 있다. 민주노총은 이러한 현장 투쟁을 바탕으로 2018년 고 김용균 노동자의 죽음 이후 진행되었던 산업안전보건법 전부 개정 과정에서 위험성평가에 노동자 참여를 법적으로 명시하도록 하는 성과를 남겼다.

산업안전보건법
[시행 2020. 5. 26.] [법률 제17326, 2020. 5. 26., 타법개정]
36(위험성평가의 실시)
사업주는 건설물, 기계ㆍ기구ㆍ설비, 원재료, 가스, 증기, 분진, 근로자의 작업행동 또는 그 밖의 업무로 인한 유해ㆍ위험 요인을 찾아내어 부상 및 질병으로 이어질 수 있는 위험성의 크기가 허용 가능한 범위인지를 평가하여야 하고, 그 결과에 따라 이 법과 이 법에 따른 명령에 따른 조치를 하여야 하며, 근로자에 대한 위험 또는 건강장해를 방지하기 위하여 필요한 경우에는 추가적인 조치를 하여야 한다.
사업주는 제1항에 따른 평가 시 고용노동부장관이 정하여 고시하는 바에 따라 해당 작업장의 근로자를 참여시켜야 한다.

 

위험성 평가 관련 현장 실태 연구 결과

민주노총 부설 민주노동연구원은 위험성 평가와 관련해 현장 실태 조사를 하고 활성화 방안을 마련하기 위한 연구를 진행하였다. 연구에는 민주노총 산하 5개의 산별연맹(공공·금속·보건·서비스·화섬)이 참여하였다. 연구는 사업장 대상 설문 조사와 심층 면접 방식으로 진행하였다.

연구 개요
- 참여 대상 : 민주노총 산하 5개 산별연맹(공공·금속·보건·서비스·화섬)
- 참여 사업장 : 공공(24), 금속(67), 보건(27), 서비스(32), 화섬(41)
- 심층 면접 대상
: 금속노조 다스지회, 자동차부품사비정규직지회
: 공공운수노조 전국철도노도조합, 서울교통공사 노동조합
: 화학섬유연맹 엘지화학 대산 노동조합
: 보건의료노조 한림대의료원 지부

지금까지 위험성 평가를 실시한 적이 있느냐는 질문에 56%만이 매년 정기적으로 하고 있다고 응답하였다. 29.8%한 번도 안 했거나 잘 모르겠다고 답했다. 실시하지 않은 이유에 대해서 48.1%가 위험성 평가 제도를 몰라서라고 응답했고 24.1%가 노사 모두 위험성평가를 꼭 시행해야 하는지 몰라서라고 답했다. 노사 모두 위험성평가 필요에 대한 인식이 매우 낮다는 점이 확인된 것이다.

위험성평가 사전준비 단계(안전보건 정보수집, 교육, 일정/방법 수립 등 사전준비)부터 사업 결과 공유(조합원 설명회)까지 단계별로 노동조합 참여 수준을 묻는 질문에는 전체적으로 절반 정도가 노동조합과 합의 없이 일방적으로 사측에 의해 진행되었다고 답했다. 가장 높게 현장 조합원과 노동조합 참여로 노사가 공동으로 시행했다고 응답한 단계는 위험성 추정/결정이었다. 반대로 가장 낮은 응답을 보인 영역은 위험성평가 결과 공유였다. 위험성을 추정하고 결정하는 과정에서는 형식적으로나마 해당 작업자의 의견을 청취하고 있었다. 그러나 정작 평가 이후 개선 과정에서는 작업자 의견이 배제되거나 충분히 반영되기 어려운 조건으로 확인되었다.

산업안전보건법 개정으로 2020년부터 노동자 참여가 보장되고 난 뒤 이전과 달라진 점이 있는지도 물어보았다. 그 결과 대체로 5개 산별연맹에서 2019년 이전보다 높은 참여 수준을 보이는 것으로 나타났다. 특히 노동자 참여 수준이 높다고 볼 수 있는 노조와 합의 후 현장 작업자를 참여시켜 노사 공동으로 개선을 시행하고 있다는 응답은 보건의료노조를 제외한 4개 산별연맹에서 이전 연도 보다 5%~10% 이상 비율이 높아졌다.

가장 최근에 진행한 위험성 평가는 어떤 방식으로 되었는지 묻는 질문에 노조 참여 없이 사측 자체적으로 진행했다(26.3%), 사측이 결정한 외부기관에서 전체 진행을 알아서 했다(21.1%)는 답변이 있었다. 전체 비율을 합치면 47%로 노동조합의 참여가 매우 제한적인 것으로 확인된다. 현장 간부와 조합원 대상으로 위험성평가에 교육하고 단위사업장까지 활동 지침을 내리는 금속노조의 경우 노사 자체적으로 진행했다는 비율이 46%로 다른 산별보다 큰 차이를 나타냈는데 노동조합이 긴 시간 책임감을 가지고 조직적으로 대응했을 때 현장이 어떻게 달라질 수 있는지를 잘 보여주는 응답이었다.

위험성 평가는 장시간 노동과 교대제, 휴식시간과 휴게시설 등 근로조건, 화학물질, 사고, 근골격계질환, 직장 내 괴롭힘, 직무스트레스, 감정노동, 성희롱 등 성평등, 모성보호까지 현장의 모든 유해·위험요인을 파악해야 함에도 불구하고 대체로 사고, 근골, 화학물질 중심으로 평가된 것으로 나타났다. 여성 노동자의 감정노동, 정신건강 문제 등 사업장 특성에 맞게 평가가 되지 않고 있다는 점은 이후 노동조합 차원의 내용 마련과 대응이 중요하다는 점을 다시금 확인하게 한다.

위험성 평가 후 마련된 위험 개선 대책이 적절했느냐는 질문에 아니다에 가까운 응답이 나타났다. 위험 개선 대책이 적절하게 마련되지 않은 이유가 무엇인가를 묻는 질문(복수 응답)64%의 응답자는 사측의 의지부족을 꼽았다. 위험성 평가 후 마련된 위험 개선 대책이 잘 이행되는지를 묻는 질문에 절반은 제대로 안 되고 답하고 또 다른 절반은 제대로 되고 있다고 응답했다. 사업주의 책임성을 높이기 위해 위험성평가 관련 법칙을 강화해야 한다는 응답에 90%가 그렇다고 답한 부분은 사업주의 책임성을 명확하게 부여하는 방식으로 제도 개선이 필요하다는 점을 확인시켰다.

위험성 평가가 재해예방에 도움이 되느냐는 질문에 대해서는 80%가 그렇다고 응답했으며, 조합원들이 안전보건활동에 더 많이 참여할 것 같은지 묻는 질문에도 77%가 그렇다고 답했다. 법적으로 작업자 참여가 보장된 위험성평가 제도를 내실 있게 운영할 경우 사전 예방 안전 조치로써 위험성 평가가 의미 있게 활용될 수 있겠다는 가능성을 보여준 답변이었다.

 

위험성 평가 활성화 방안

위험성 평가의 내실화를 위해 현재 유명무실한 의무 조항과 별도로 위험성 평가를 이행하지 않았을 때, 위험성평가를 토대로 도출한 위험 감소대책을 이행하지 않았을 때 사업주 징벌과 같은 법적인 제재 조치를 명문화하는 것이 필요하다. 그래야만 사업주와 노동조합 모두 목적의식적으로 위험성평가를 책임 있게 수행할 수 있다.

위험성평가의 핵심 조항이라 할 수 있는 노동자 참여 조항을 보다 구체화하고 강화해야 한다. 현재 법 조항과 노동부 고시는 사측이 위험성 평가를 진행하고 개선하는 과정에서 의견을 개진하는 수준으로 참여가 보장되어 있다. 참여 주체, 실제 참여 방식과 권한 등을 구체적으로 강화하고 명시하는 것으로 개선되어야 노동자의 형식적 참여 문제를 극복할 수 있다.

현장에서도 사전 예방적 안전관리체계를 구축하는 차원으로 위험성평가를 제대로 활용하기 위해 방향을 세우고 전략을 마련해야 한다. 지금까지 사업장에서 진행되었던 위험성 평가에 대한 평가를 시작으로 산별연맹 현장에 맞는 평가 내용과 기준을 마련하고 조합원 참여 방안을 구체화해야 한다.

최근 중대재해기업처벌법 시행령 입법예고로 안전보건관리체계 구축 및 이행에 관한 조치의 구체적 내용 중 2호 유해·위험요인 확인점검 및 개선절차 마련과 이행상황 점검 관련 부분을 위험성 평가 실시로 갈음 수 있도록 하는 내용이 발표되었다. 지금의 위험성 평가제도는 노동자 참여가 법제화 되어 있으나 서류상의 형식적 운영이 만연해있어 보완 규정 없어 이 제도로 갈음 할 경우 경영책임자에 대한 면죄부로 전락할 것이다. 어느 때보다 위험성 평가의 중요도가 높아지는 만큼보다 면밀한 검토가 필요하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