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로 읽는 노동] 세상의 해고에 맞서는 불굴의 투쟁: -영화 <나는 나를 해고하지 않는다>가 보여주는 노동의 모든 문제들 / 2021. 04

[문화로 읽는 노동]

세상의 해고에 맞서는 불굴의 투쟁: 

-영화 <나는 나를 해고하지 않는다>가 보여주는 노동의 모든 문제들

김상민 문화사회연구소 소장

누군가 늦은 밤 지방 소도시로 장시간 자동차를 운전해간다. 새벽녘 임시 숙소에서 전형적인 사무직 노동자 복장 한 여성이 빨대 꽂은 팩소주를 마시면서 절망인지 분노인지 알 수 없는 어떤 감정에 가득 차있다. 주인공인 그녀는 무슨 이유인지 지방 하청업체에서의 1년간의 시한부 파견 근무를 명령받았다. 

이 장면에서 나는 언젠가 사무직 여성 노동자가 오지에 있는 현장으로 파견 발령이 났으나 개의치 않고 그 상황을 극복해 최고의 현장 노동자가 되었다는 뉴스를 본 적이 있다는 것이 떠올랐다. 아니나 다를까 영화 <나는 나를 해고하지 
않는다>의 이태겸 감독이 이 영화를 만들기로 결심한 것도 바로 그 뉴스 때문이라고 한다.

“당신 자리 여기 없습니다”
동기들 중에서도 제일 잘나가고 사내 모든 일에 일등이던 박정은 대리는 무슨 일 때문인지 알 수 없지만 권고사직을 종용받다가 타협으로 1년만 하청업체에서 일하고 돌아오라는 파견 명령을 받는다. 하지만 모든 걸 포기하듯 내려온 낙후된 지방 소도시의 송전탑 관리하청업체는 소장 포함 직원이 고작 네 명뿐이고, 그녀는 무엇을 해야 할지 도무지 알 수 없다. 원청에서 좌천되어 온 사무직 직원을 반기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사무직이던 정은은 작업관리대장을 만드는 등 자신이 할 수 있는 일들을 찾아보려고 하지만 돌아오는 동료들의 말과 시선은 차갑다. 

게다가 하청에서는 파견 노동자의 인건비까지 부담해야 하는 상황이 닥친다. 원청의 인원감축 방침은 원래 일하던 직원들의 일자리까지 위협한다. 파견 내려온 정은을 잘라내려는 목적이지만 근무평가 결과에 따라 누가 해고될지 모를 일이다. 급기야 원청은 평가관을 내려 보내 하청업체 평가를 실시한다. 

한편, 정은은 꿋꿋하게 자신도 현장 일을 하겠다고 결심하고 밤늦게까지 무거운 전기 작업 도구들과 혼자 씨름해가며 스스로 일을 배운다. 그러던 어느 날 함께 작업을 나가려고 하는 순간 자신이 입을만한 작업복도 없으며 심지어 현장 노동자들에게 특수 방전 작업복이 지급되기는커녕 그것을 자비로 구입해야 한다는 것을 알게 된다. 원청의 갑질과도 같은 평가과정, 노동자의 안전을 개인의 책임으로 전가하는 행태는 공공기관의 민영화와 다단계 하청구조나 노동자를 어떤 식으로 쥐어짜고 위험으로 내모는지를 극명하게 보여준다.

출처: 영화 <나는 나를 해고하지 않는다>

“여자가 일을 잘하고 못하고가 중요한 게 아냐, 아직도 모르겠어?”

정은이 자신의 일을 혹은 ‘자리’를 찾지 못하던 처음 며칠, 남성 동료들은 작업장 구석 칸막이 옆에 조그만 책상을 배치해둔다. 이미 원청에서도 자신의 자리를 뺏기고 사무실 바깥 복도 어딘가에 놓인 좁은 책상에 앉아서 일하던 그녀에게는 파견 명령을 받던 그 시간이 소환된다. 사무직 여성에게 현장직 남성들의 일이 주어질 리는 만무하고, 남성 동료는 자신들이 식사하고 난 자리를 치우는 것이 그녀의 일이라고 여긴다. 정은은 더욱 오기가 난다. 일을 주지 않는다고 지방노동위에 신고할 생각까지 한다. 

성별에 따라 해야 할 일의 종류를 구분하려던 남성 동료들의 잘못된 인식만큼이나 견고하게 여성을 노동 현장에서 차별하는 것은 바로 노동의 환경 자체다. 여성 노동자의 신체 사이즈에 적합하지 않게 만들어진 작업복, 작업 도구, 송전탑에 오르는 발판 사이의 폭조차도 남성 노동자의 신체에 맞추어져 있다. 모든 것이 여성 노동자를 작업의 환경으로부터 
배제하도록 만들어져 있다. 그래도 여성이 한 걸음도 그 안으로 들어설 수 없도록 만들어진 강고한 남성 중심의 노동 환경은 정은의 끈질긴 노력과 동료들의 수긍으로 조금씩 열리기 시작한다. 

“사는 게 그냥 알바에요”
동료 중 ‘막내’씨는 낮 시간에는 송전탑 관리 일을 하고 저녁에는 편의점에서 알바를 한다. 편의점이 끝나면 밤늦게 또 대리운전까지 한다. 아내 없이 딸 셋을 키우는 그는 적어도 쓰리잡 이상을 뛰고, 그러다보니 직장에 출근해서도 늘 피곤해 시간이 날 때마다 쪽잠을 잔다. 그런 것이 또 그의 근무평점을 낮추는 요인이 된다. 잠이 부족할 정도로 닥치는 대로 일을 하는데도 삶은 풍요해지지 않는다. 아니, 이미 불안정한 삶 자체는 끊임없이 알바와 부수입을 강제한다. 사는 게 알바와 다름없다.

그런 막내씨가 두려운 것은 일하다가 죽는 것이 아니다. “우리가 무서운 거는 해고예요. 해고되면 알바만 해야 되니까.” 죽음보다도 직장 없이 불안한 삶이 지속되는 것이 더 공포스럽다는 것은 그것을 겪어 본 이들, 그것을 겪고 있는 이들, 혹은 그것을 곧 겪게 될 이들이기에 알 수 있는 것이다. 해고는 죽음이라는 것을, 죽음보다 더한 고통과 두려움이 
따르는 것이라는 것을 우리는 알고 있다. “해고든 사망이든 그게 뭐가 달라요.”

“송전탑 위에서는 동료밖에 없어요, 동료를 믿어야지”
퇴근 후 편의점에서 늘 정은과 마주치던 막내씨는 원청의 실태 점검 평가 기간에 정은이 겪는 어려움을 알고 알바로 그녀에게 일을 가르친다. 평가에서 자신이 낮은 점수를 받고 해고될 수도 있는 상황이지만 동료를 위해 시간을 내고 노력을 아끼지 않는다. 고소공포증을 약까지 먹어가며 극복해보려는 정은은 처음엔 송전탑을 올려다보는 것만으로 숨이 막
힌다. 처음엔 동료의 작업이 다 끝날 때까지 1미터도 올라가지 못했지만, 막내씨 덕분에 고소공포증도 극복하고 일도 배우면서 삶의 활기를 조금씩 찾아간다. 

파견을 내려온 지 90일째 되는 날, 전기 작업을 하기 좋지 않은 흐린 날씨지만 응급상황이라 작업팀은 송전탑 작업에 나선다. 하지만 송전탑에 오른 막내씨는 그만 사고를 당해 사망하고 만다. 장례식장으로 걸려온 원청 동료의 전화는 근무평가가 낮은 막내씨만 제치면 정은이 직장에 남아있을 수 있다고 전한다. 하지만 정은에게 그의 죽음은 경쟁자가 
아니라 동료의 죽음이다. 동료의 죽음이자 나의 죽음. “우리가 제발 살 수 있게만 해달라”고 원청 관리자들에게 외치는 정은에게 파견이든 하청이든 구분은 의미가 없다. 오직 동료밖에 없다. 

“나는 나를 해고하지 않는다”
정전 때문에 장례식장에서 부패해가는 동료의 시신, 섬마을이라 가볍게 무시되는 전기의 혜택을 정은은 이제 두고 볼 수 없다. 그녀가 이미 해고되었다는 원청 관리자의 말은 이제 중요하지 않다. 해고 통보, 만류하는 소장, 흐린 날씨, 바람에 흔들리는 송전선, 이 모든 악조건을 뚫고 혼자의 힘으로 송전탑에 올라 기어코 전선을 연결해낸다. 그들이 나를 해고하
더라도, 자신은 결코 스스로를 해고하지 않을 것이라는 저 굳은 결심. 

통쾌한 복수나 반전을 보여주는 결말은 없다. 현실은 그렇지 않으니까. 이 영화에는 정말 노동의 현장에서 발생 가능한 다양한 종류의 문제들이 종합선물세트처럼 들어있다. 민영화, 권고사직, 하도급 파견노동의 차별, 노동자와 
노동자 사이의 무한 경쟁, 관리감독이라는 명분으로 이루어지는 본사의 갑질, 여성 노동(자)에 대한 왜곡된 인식, 불안정 노동으로 인한 불안정한 삶. 

정말 당장 포기하고 싶을 만큼 노동을 둘러싼 모든 문제들이 나를 둘러싸고 옥죌 때에도 나는 나를 포기하지 않겠다고 다짐하는 정은에게서 강철처럼 단련되는 삶의 의지, 노동의 의지를 읽는다. 그리고 매일 아침 그들이 외치던 
“우리는 생명, 우리는 빛”이라는 현장 구호는 노동과 삶의 가치를 스스로 드높이고 긍지를 갖게 만드는 주문이라는 생각이 든다. 노동과 삶의 가치를 무너뜨리고 손쉬운 해고를 가능하게 만드는 것들에 굴복하지 않겠다는 강한 의
지는 동료들과의 뜨거운 연대처럼 송전탑을 통해 저 멀리까지 이어진다.

[연구리포트] 노동시간센터 연구동향 보고 - 최근 직업환경의학에서 주목할 연구들 / 2021. 04

[연구리포트]

노동시간센터 연구동향 보고 - 최근 직업환경의학에서 주목할 연구들

김형렬 노동시간센터

노동시간센터에서는 <일터> 2021년 4~5월 2차례 걸쳐, 노동시간과 관련한 주요 연구, 정책 동향을 싣고자 한다. 최근 직업환경의학 분야에서 주목받았던 연구 세 편을 소개하고 한국 사회에 비춰볼 때, 참고하거나 논의할 거리를 나누고자 한다.

1. 비정규직의 건강이 더 나쁜가? - 호주 사례를 중심으로 [각주:1]

첫 번째 소개하려는 연구는 호주에서 진행한 비정규직과 정규직의 건강을 비교한 연구이다. 노동시간과 관련한 연구는 아니지만, 고용형태와 관련해서 우리의 예상을 빗나간 연구 결과와 그에 대한 해석을 함께 공유하고 싶다.

호주에서 진행된 몇 차례 연구에서 호주 비정규직들의 건강이 정규직에 비해 나쁘지 않거나, 오히려 건강한 것으로 조사되었다. 건강수준을 ‘SF-36’이라는 설문도구를 이용하여 조사하였는데, 육체적 활동, 통증, 활력, 사회적 기능 등에서 비정규직 노동자의 건강이 더 좋게 나은 것으로 평가되었다. 이러한 연구결과는 북유럽, 국내 연구에서 나온 결과와 반대로 나온 것이어서, 관련된 연구가 제대로 나온 결과인지, 호주만의 특성이 반영된 것인지, 추가적인 연구가 필요할 것으로 보인다.

이 논문에서는 호주에서 비정규직은 대부분 자발적 선택에 의한 것이고, 법에 의해 비정규직에게 임금을 더 지급하도록 되어 있는 규정에 주목한다. 호주에서는 동일한 노동을 하는 정규직에 비해 비정규직에게 20%의 임금을 더 주도
록 법에 규정되어 있다. 삶의 질의 측면에서 오히려 비정규직을 선택하고 있다는 해석이다. 고용의 안정 대신 임금을 더 주는 선택이 오히려 책임감은 적고, 스트레스가 적어 건강에 대한 부정적인 영향이 덜할 것이라는 이야기다.

설문도구가 아닌, 실제 건강의 차이가 나타날지 확인해 봐야 하는 것과 고용시장이 안정적인 상황과 그렇지 않은 시기에도 동일한 결과가 나타날지 등은 추가연구가 필요한 상황이다. 한국, 유럽의 여러 나라에서 이 연구의 결과를 근거로 고용안정과 임금의 트레이딩 논의가 가능할지, 우려 지점은 무엇인지 논의가 필요해 보인다.

건강영역
(기준집단: 정규직)
남자 여자
점수 Coefficient 95% 신뢰구간 점수 Coefficient 95% 신뢰구간
육체적 기능 0.55 -0.11 to 1.2 0.27 -0.26 to 0.8
통증 0.37 -0.35 to 1.1 0.9 0.25 to 1.54
일반적 건강 0.44 -0.07 to 0.96 0.41 -0.02 to 0.85
활력 0.53 -0.04 to 1.1 0.65 0.13 to 1.18
사회적 기능 1 0.28 to 1.73 0.58 -0.07 to 1.23
감정 1.81 0.73 to 2.89 1.24 0.24 to 2.24
정신건강 0.38 -0.15 to 0.9 -0.04 -0.51 to 0.42

표. 고용형태와 일반적 건강수준 (SF-36)

2. 과로사의 위험요인으로서 수면 부족 - 일본 트럭 운전 노동자 대상 연구 [각주:2]
두 번째 소개하는 연구는 일본의 트럭 운전자들의 과로 실태를 점검하여, 해당 노동자들이 수면 부족과 이로 인해 과로사의 전구증상인 피로의 위험에 처해있는 현실을 밝혀낸 연구이다.

본 연구에서는 과로사로 산재 승인된 사람들을 대상으로 사건 발생 전 전구증상을 중심으로 과로사위험상태를 정의하였다(Excessive fatigue symptom inventory). 일본 트럭 운전 노동자를 대상으로 과로사위험상태를 측정한 결과, 과로위험을 높이는 요인으로 수면, 노동시간 등의 관련성을 확인할 수 있었다. 본 연구의 결과는 수면시간이 짧을수록 과로사의 위험지표가 증가하는 양상을 보여주고 있다.

이 연구에서 매우 주목해야 할 연구내용은 다음과 같다. 과로사로 산재 승인된 분들의 의무기록 등을 찾아, 사건이 발생하기 전에 있었던 전구증상을 확인하였다. 그리고 이를 근거로 과로사 위험을 나타내는 설문 도구를 개발하였다. 26개의 문항으로 구성되어 있는데, 해당 문항들은 아래와 같다.

(1) 땀이 많아짐, (2) 요통, 어깨통증 (3) 얼굴홍조, (4) 흉통, 압박감, (5) 호흡곤란, (6) 반복적인 구토, (7) 빈맥, (8) 팔다리 감각소실, (9) 갑작스런 시각 상실, (10) 심한 두통과 어지러움, (11) 말이 어눌해짐, (12) 심한 치통, (13) 감정적인 다툼, (14) 갑작스런 의식 상실, (15) 멈추지 않은 코피, (16) 밤에 잠들기 힘듦, (17) 유의미한 체중 감소, (18) 수면이나 휴식을 취했음에도 회복되지 않는 피로감 (19) 졸음, (20) 화를 참지 못하고 욱하는 일이 자주 발생, (21) 식욕 상실, (22) 멈추지 않고 계속해서 직장을 그만두는 것에 대해 생각함, (23) 하루종일 잠을 잠, (24) 직장 끝나고 지쳐서 바로 잠이 듬, (25) 잠에서 일어나기 힘듦, (26) 일상생활 수행이 어려움

과로사가 이미 발생하면 대응할 수 없다. 이런 전구증상을 위험신호로, 빠른 대책을 마련하는 전략을 고민해볼 필요가 있다.

그림 1. 수면시간과 과로사 위험상태 관련성

이 연구에서 다른 트럭 운전 노동자들은 국내에서도 많은 연구와 정책 대안 등이 제시된 적이 있다. 이 연구가 진행된 일본은 직업 운전자에 대해 운전시간 제한을 두고 있는 나라이지만, 실제 트럭 운전 노동자들의 노동시간은 상당한 수준이었다. 한 달에 80시간 이상의 연장근무를 하는 노동자의 비율이 8.7%였다. 국내는 어떨까?

국내 화물 운송 노동자들의 실태를 조사한 한국교통연구원에 따르면, 2017년 기준 일반화물차 운전자들의 하루() 평균 노동시간은 12.7시간, 월평균 일수는 23.3일로 나타났다. 산술적으로 계산했을 때, 월평균 약 300시간(12.7시간×23.3)을 일하는 셈이다. 표준운임비 산정, (전속성 등의 문제로) 산재 적용의 어려움 등 우리나라 화물 노동자들의 문제도 해결을 위한 방안이 빨리 마련되어야 할 것이다.

3. 야간노동 건강문제를 줄이기 위한 스케쥴링 [각주:3]

세 번째 연구는 야간노동의 건강 문제를 줄이기 위한 교대제 스케쥴링에 대한 연구이다. 워크숍에 참여한 전문가들이 나눈 논의와 체계적인 분석 등을 토대로 야간노동의 위험에 분석을 근거로 한 개선방안을 제시하였다.

야간노동의 제한은 유방암, 손상예방이 주요 근거로 만들어졌다. 연속야간근무 최소화, 근무간 시간간격 충분한 제공, 야간근무 시간 최소화가 가장 중요한 관리 지점으로 설명하고 있다. 야간노동에 대한 위험 중 첫 번째는 야간근무 동안 졸음과 사고 위험 증가하므로, 이에 대한 관리를 중요하게 생각하고 있다. 연속 3일미만 야간근무, 교대근무 사이 시간은 11시간 이상으로, 근무시간은 9시간 미만으로 관리하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 유산예방을 위해서는 임신여성은 일주일에 1회를 초과하여 야간근무를 해서는 안 된다.

고혈압, 당뇨 유방암 등과 야간고정작업, 야간작업의 강도와 관련이 있다고 알려져 있고, 순방향 교대가 실험연구에서 생리적으로 더 적합하다고 알려져 있다. 연령증가와 수면장애가 특별히 관련이 있다는 근거는 없지만, 야간근무를 하는 경우에는 수면효율이 떨어져, 야간근무후 수면을 단축시킨다. 50세 이상에서는 야간근무와 빠른 업무복귀(근무와 근무 사
이 시간이 짧음)가 피로와 수면장애를 증가시킨다. 야간근무시 조명, 개인적인 선호도를 반영하여 교대 스케쥴 반영, 피로 관리 프로그램 제공, 피로 발견 기술 (집중력검사, 눈깜박 확인 등), 멜라토닌 공급 등이 논의되고 있다.

교대근무를 하는 이상 건강에 유해하지 않은 노동환경을 조성하는 일은 불가능한 것 같다. 역시 ‘좋은 교대제’는 없는 것이다. 그래도 교대근무를 해야 한다면, 여기서 이야기하는 야간근무 최소화, 고령, 임신노동자에서 야간노동을 제한하는 것은 최소한의 요구여야 되지 않을까 생각한다.

국내에는 야간노동에 대한 규정이 많지 않고, 그나마 청소년, 임신노동자에게 야간노동을 금지하는 규정이 근로기준법에 있다. 하지만 이 역시 본인이 동의하면 야간노동을 할 수 있도록 규정되어 있어서 실효성이 없다. 연속야간노동을 금지하는 규정은 아예 없다. 그래서 최근 물류노동자들이 연속 5-6일 야간 노동만 하는 경우가 매우 흔하고, 야간에 고정으로 근무하는 경우도 많다. 당장 이를 금지하는 규제방안을 만들어야 할 것이다.

  1. Is casual employment in Australia bad for workers’ health?”. Occup Environ Med 2021; 78:15–21. [본문으로]

  2. “Shorter sleep duration is associated with potential risks for overwork-related death among Japanese truck drivers: use of the Karoshi prodromes from worker’s compensation cases”. International Archives of Occupational and Environmental Health, published online. [본문으로]
  3. “How to schedule night shift work in order to reduce
    health and safety risks. Scandinavian Journal of Work”, Environment & Health; Stockholm Vol. 46, Iss. 6, 
    (2020): 557-569. [본문으로]

[일터4월_특집3] 질병권의 관점에서 만성질환자의 노동권을 이야기하기 / 2021. 04

[만성질환 노동자의 자리]

질병권의 관점에서 만성질환자의 노동권을 이야기하기

김다연 상임활동가

작년 성공회대 시설관리 용역업체는 ‘정년을 맞은 노동자도 “건강상 업무수행“에 문제가 없으면, 1년 단위로 촉탁연장 계약을 최대 3번까지 맺을 수 있다’는 골자의 단협을 깨고, 방광암으로 수술과 요양을 위해 2개월 병가를 사용했던 한 노동자를 해고했다. “건강한 육체”를 바탕으로 청소 업무를 할 수 없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이 노동자는 건강에 이상 없다는 의사 소견서도 제출했었다. 

질병 없는 “건강한 육체”를 도달해야 할 이상이자 노동자라면 갖춰야 할 기본값으로 여기는 사회의 노동시장에서는, 만성질환자들과 같이 회복하기 어려운 병과 함께 해야 하는 몸 혹은 아픈 적이 있는 몸(미래에 아플지도 모를 몸)은 그 자체로 결격사유다. 어릴 적 소아암 이력이 차별의 근거가 되기도 할 정도니. [각주:1] 아픈 이들은 자신의 질병, 질병 이력을 감추고 몸을 돌보기 위한 최소한의 요구도 쉬쉬한다. 설사 채용이 되어도, 건강한 육체도 병들게 할 만큼 과도한 근무 시간과 일의 양은 질병과 통증을 악화시키니 버텨내는 게 불가능하다.

이런 어려움은, 자신의 질병과 통증을 이기적인 핑계로 보는 동료들의 시선이 주는 두려움으로 배가된다. 아픈 이들은 타인의 기대에 부응해야 사정을 양해받고, 몸에 필요한 조치를 취할 수 있기에 자기 몸의 상태와 통증을 입증하고 설득해야 한다. 질병이 눈에 잘 띄지 않거나 질병명이 없는 경우는 더 쉽게 의심의 대상이 된다. 사회는 폭력의 피해자에게 ‘피해자다움’을 강요하듯, 아픈 사람에게도 ‘아픈 사람다움’을 강요한다. 

타인의 시선을 포함한 감당할 수 없는 노동조건은, 아픈 몸들을 노동에서 배제하고 노동권을 박탈한다. 이렇게 사회에서 몸이 오롯하게 받아들여지지 않는 경험들은, 아픈 이들이 질병과 질병을 앓는 자신을 스스로도 수용하기 어렵게 만든다. 

질병권, 아픈 몸을 기본값으로 하는 노동조건을 말하다

이런 한국 사회에서, 몇 년 전부터 질병과 함께 살아가는 이들이 자신의 질병 경험과 삶을 공적으로 드러내며 ‘잘 아플 권리’를 주장하는 “질병권” 운동이 일어나고 있다.

질병권이란, “(건강이 아닌) 질병을 중심에 배치하고, 아픈 몸을 사회의 기본 몸으로 설정하며, 질병을 겪는 상태도 삶의 ’정상적‘시기로 본다. 더 이상의 건강을 쟁취할 수 없는 아픈 몸을 인정하고, 모든 이가 건강을 삶의 최우선 목표로 두지 않을 수 있음을 존중” [각주:2] 받을 권리이다. 

질병권은 “아파도 충분히 회복할 수 있는 여건” 정도가 아니라, “취약하고 아픈 몸을 기본값으로 하는 사회”를 강조한다. 이런 사회의 노동권은 어떤 모습일까. 아픈 몸들도 ‘정상적으로 아프면서’ 무사히 일할 수 있게 하는 노동환경의 구성을 전제조건으로 할 것이다. [각주:3] 포인트는 건강한 몸에 기준을 둔 채 예외적으로 아픈 몸들을 특별히 배려하는 게 아니라, 애초부터 아프고 약한 몸에 맞는 노동환경을 설계를 주장한다는 점이다. 이는 ILO의 산업보건서비스의 원칙 중 노동자의 능력에 기준을 두고 노동조건과 노동환경을 맞춰야 한다는 ‘적응의 원칙’과 같은 맥락에서 읽을 수 있다. 

또한, 질병권 담론에서는 한 사회의 폭력과 배제와 차별과 극심한 경쟁과 과로와 오염된 환경과 같은 요소들은 몸에 질병과 통증으로 현현하지만, 아픈 몸에 대한 책임은 오롯이 개인에게 전가되는 현실을 비판한다. 이 역시 노동자의 몸과 마음을 해치는 노동조건을 변화시켜야 한다는 노동안전보건운동의 주장과 직결된다.

질병권의 관점에서 노동권을 볼 때, 더 주목할 점은 이제까지 사회에서 제대로 고려되지 않았던 “아픈 몸이라는 정체성”이다. 질병권에서는 건강중심 사회에서 소수자가 될 수밖에 없던 아픈 몸들이 바로 여기에 존재하며, 정당한 노동조건을 이야기할 때 이 몸들의 특수성을 배제해선 안 되고, 더 나아가 바로 이 아픈 몸이 사회의 기준이 되어야 함을 주장한다. 

이제까지 아픈 몸은 비생산적인 몸, 폐를 끼치는 몸, 독립적이지 못하고 의존하는 몸, 쉽게 주류에서 밀려나는 몸이기에 배제와 혐오의 대상이었다. [각주:4] 하지만 몸은 질병과 각종 통증을 포함한 변화에 늘 열려있기에, 아픈 몸 정체성은 누구나의 것이기도 하다. 질병권의 관점은, “취약한 몸”이라는 인간생명체의 본질적인 특성을 기준으로 노동조건을 구성해야 하며, 이는 건
강한 이들에게도 훨씬 유익하다고 말한다. 

그렇다면 넓은 스펙트럼의 아픈 몸 중, 기준이 되어야 할 ‘아픈 몸’은 무엇일까. 

“아픈 몸을 인정하는 것”(질병권 개념정의 일부)은, 몸 상태를 있는 그대로 수용하고 수용 받음을 의미한다. 결국 질병권에서 궁극적으로 지향하는 노동조건이란, 그 개개인의 특수한 몸의 조건과 경험들이 모두 존중받는 환경을 말한다. 이는 “정상적인 몸, 표준의 몸의 기준에 도전함으로써 정상성에 균열을 만들고 새로운 n개의 정상을 만드는 것이다” [각주:5]

동일노동의 기준
몸의 조건에 따라 생산량을 배분하면 비교적 건강한 몸이 더 많은 생산량을 소화하게 될 텐데, 이것이 역차별로 오인될 수 있다. “동일노동”을 계산하는 방식에 대한 재고가 필요하다. 익숙한 슬로건인 “동일노동 동일임금”에서, 동일노동은 무엇을 기준으로 하는가. 신체적(정신을 포함한) 차이를 고려하지 않은 동일한 시간/작업량과 같이 완전하게 동일한 조건
의 노동은 과연 평등한가? 적어도 한국사회에서 요즘 자주 이야기되는 평등이란, 이러한 기계적 평등에 머무는 듯하다.

“크론병 환자는 과로나 스트레스로 인해 염증이 심해지고, 장에 구멍이 뚫리기도 한다. (...) 크론병을 ‘딛고’ 성공하는 이들도 존재하겠지만, 그러기 위해서는 자신의 고통을 계속 외면하고 참아야 한다. 이는 목숨을 건 싸움이 된다.” [각주:6]

누군가에게는 피로감을 주는 일이 누군가에게는 목숨을 건 사투다. 겉으로 볼 때 동등해 보이는 노동조건은, 사람의 신체 조건에 따라 천차만별의 노동강도를 유발할 수 있다. 나에게 오는 신체적 부담의 관점에서, 이는 아픈몸에 대한 차별이다. 따라서 동일노동의 기준은 동일하거나 유사한 노동강도라는 관점에서 설정해야 한다. [각주:7]

노동현장은 돌봄현장이다
노동권은 천부적으로 태어나면서 부여되는 게 아니라, 노동을 할 수 있도록 보장하는 제도에서 생성된다. 그러니 아픈 몸의 노동권을 보장한다는 건, 일정 선 이상으로는 노동할 수 없고 때론 통증으로만 가득 차 몸을 돌보는 일에 전념해야 하면서도, 생존을 유지하고 사회관계망에서 배제되지 않으며, 자신의 능력을 발휘하기 위해서 노동을 원하거나 필요로 하는 복잡다단한 몸들의 욕망에 적극적으로 관심 갖고 여건을 만들어나가는 과정을 수반한다. 그렇게 세부적인 개별성을 고려할 때에서야, 아픈 몸들도 “동등한 인간”의 조건을 누리게 된다. 

아픈 몸이 가진 특수성에 주목하고, 그들에게 적합한 노동조건을 만들어내는 일은 ‘돌봄’ 그 자체이다. 노동현장은 돌봄현장이다. 하지만 법은 공식적인 강제력을 동원하여 최소한 지켜져야 할 것들이 지켜지게끔 할 뿐, 유연성을 발휘하기 어렵다. 세밀한 조정이 필요한 아픈 몸에 대한 제대로 된 노동권 보장을 위해서는, 상호 간에 ‘섬세한 눈길과 손을 가진 돌봄의 자세’로 몸을 대해주는 대인관계(방식)라는 제도가 때론 더 중요하다. 돌봄은 법이나 기타 규제로는 차마 파악할 수 없는, 상대방의 독특성을 이해하지 않고서는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물론 대인관계방식의 변화는 단순히 주체들의 마음
먹기에 기대어서는 안 되며, 돌봄을 가능하게 하는 덜 경쟁적인 사내 문화, 아픈 몸을 기준으로 한 넉넉한 인원 배치와 같은 조건들 역시 받쳐줘야 한다.

아픈 몸들이 함께 노동현장에 안녕히 존재할 수 있도록 돌보는 일이 곧 모두가 더 편하고 안전한 노동환경을 만드는 일이다. 우리가 아픈 이들의 각양각색의 질병 경험과 이들의 노동권에 대해 더 자주, 많이 듣고 말해야 할 이유이다.

 

  1. 조한진희, 기사 <건강 중심 세계의 질병 난민>, 비마이너, 2020.04.01 [본문으로]
  2. 조한진희(다른몸들), <우리 시대 건강권을 넘어, 질병권을 제안하다>, 2020한국문화인류학회 학술대회 자료집, 174p [본문으로]
  3. 물론, 아픈 몸들 중 전혀 일할 수 없는 몸도 있을 것이다. 질병권은 일하지 않을 권리 역시 동시에 주장한다.(조한진희(다른몸들), 2020, 175p 참고) [본문으로]
  4. <새벽 세 시의 몸들에게>에서는, 아픈 몸에 대한 혐오는 곧 인간이라면 마땅히 피해야 할 ”추함과 역겨움“을 ”’나‘의 현실에서 지우려는 욕구“로 본다. 돌봐져야 할 아픈 몸들은 의존할 수밖에 없는데, 이는 내가 차마 맞이하고 싶지 않은 ”비참한 상황“에 놓이게 하기 때문이다. 의존하지 않는 “독립적인 개인”이 바람직한 모델로 제시되고, 아픈 이를 위한 제대로 된 사회적 지원체계가 없는 상황에서 의존할 곳은 가족뿐이다. 그마저도 운이 좋아야 한다. 돌봄제공자(주로 여성가족구성원)와 집에 고립되어 질병과 경제적 어려움, 불안한 미래를 감당하며 생존 이외에는 생각할 수조차 없는 협소한 삶은 취약한 인간의 몸과 타인에의 의존을 혐오하게 할만큼 충분히 좌절스럽다. [본문으로]
  5. 조한진희(다른몸들), 2020, 174p [본문으로]
  6. 안희제, 『난치의 상상력』, 동녘, 2020, 94p [본문으로]
  7. 기저질환 환자의 경우, 주 52시간 이상 노동시 기저질환이 없는 이에 비해 심뇌혈관질환 발병률이 1.58배 상승한다는 연구결과가 있다. [본문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