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3회 경기지역 최악의 살인기업 선정식 기자회견(21.04.29)

[ 기자회견문 ]

2021년 제3경기지역 최악의 살인기업 선정식기자회견문

 

민주노총을 비롯한 시민사회는 2006년부터 꾸준히 살인기업 선정을 통해 산재사망이 기업에 의한 살인임을 강조해왔습니다. 또한 특별상으로 고용노동부, 국토교통부, 교육부 등을 선정해 정부기관과 서부발전, 한국마사회 등 공공기업이나 사회적 영향력이 큰 기업의 산재사고의 책임을 물어봤습니다.

경기지역에서도 2019년부터 경기지역 최악의 살인기업 선정식을 진행하며, 경기지역에서의 산재사망 현황을 시민사회와 함께 세상에 드러내고, 기업과 정부의 안전·보건 관리의 부실이 빚어낸 노동자의 죽음에 대해 책임을 묻고, 중대재해기업처벌법 제정의 필요성에 대한 한 목소리를 꾸준히 내왔습니다.

 

산재사망의 책임을 노동자 개인의 문제로 전가하고, 은폐하는 기업에 강력히 경고합니다.

오늘 제3경기지역 최악의 살인기업 선정식발표 기자회견은 경기지역 최악의 살인기업 특별상수상 기업인 쿠팡 물류센터 앞에서 진행합니다. 소리 없는 산업재해인 과로사로 인해, 사망에 이르는 노동자의 수가 꾸준하게 증가하고 있는 쿠팡과 물류업계에 경종을 울리기 위함입니다.

올해 경기지역 최악의 살인기업은 한익스프레스, 대우건설, 오뚜기물류서비스가 각각 1,2,3위로 선정됐습니다.

1위는 작년 오늘 (429) 38명을 희생시켜 최악의 산재참사를 만든 한익스프레스이며, 선정단 회의를 통해 최악의 살인기업으로 이견 없이 선정 했습니다. 2위는 대우건설로, 경기지역 3곳의 각기 다른 건설현장에서 각 1명씩 총 3명의 노동자의 목숨을 앗아갔기 때문에 2위로 선정했습니다. 3위는 오뚜기물류서비스로 물류 창고에서 발생한 화재참사로 5명의 노동자를 죽음에 이르게 했으므로 3위에 선정합니다.

이외에 경기지역 최악의 살인기업 특별상은 반복되는 노동자의 죽음에 산재예방 관리감독 책임을 지고 있는 고용노동부 경기지청’, 은폐된 산재로 책임을 회피하고 기업 이윤만 추구하는 쿠팡을 각각 특별상 대상으로 선정했습니다.

 

기업의 이윤보다 생명이 먼저다. 살인적인 노동강도를 멈춰라.

쿠팡은 건설업과 제조업에 비해서 드러난 산재사망자는 수는 적지만 살인적인 노동강도로 산재신청 건수는 1,000 건이 넘고 과로로 숨진 노동자가 지난 2년 동안 5명인 것으로 추정됩니다. 이런 노동자들의 희생으로 쿠팡은 미국 증시 상장을 하며 100조원 대의 명실상부한 공룡기업이 됐습니다. 그러나 살인적인 노동강도를 줄이거나 산재사고, 과로사를 줄이려는 노력은 보이지 않으며, 책임을 회피하는데만 급급합니다.

 

산재사고를 줄이기 위해서는 철저한 원인분석과 강력한 책임자 처벌이 필요합니다.

고용노동부는 올해 획기적으로 산재사고를 20% 줄이겠다고 합니다. 이것이 선언에 그치거나, 허언이 되지 않기를 바랍니다. 특히 이번 달인 4월 남양주 건설현장에서 2건의 화재사고가 있었습니다. 10일 간격을 두고 발생한 사건입니다. 그곳에서 산재사망을 줄이겠다고 호언장담한 고용노동부와 정부의 노력을 찾기는 어렵습니다. 관련 공무원과 기업에 철저한 책임을 묻지 않는 지금의 정부와 고용노동부의 행정과 태도로는 산재사망을 막기는 불가능합니다. 철저한 재해조사와 예방대책 수립을 위해서는 중대재해보고서를 공개하고, 재해조사가 제대로 이뤄졌는지, 대책 마련은 적합한지, 재해조사에 노동자 참여를 보장하고, 시민사회와 함께 머리를 맞대는 과정이 필수적입니다.

민주노총경기도본부와 중대재해기업처벌법제정 경기운동본부는 경기도와 고용노동부 경기지청에 다음과 같이 요구합니다.

 

하나. 경기지역 관급공사와 입찰에 있어 산재사망 다발기업의 참여를 금지하라.

하나. 경기고용지청은 산재 사망건수가 2건 이상인 기업에 근로감독을 실시하라.

하나. 고용노동부와 정부는 중대재해 보고서를 공개하라

 

 

2021429

민주노총경기도본부, 중대재해기업처벌법제정 경기운동본부

 

민주노총경기도본부

취 재(보도) 요 청

2020429()

조송자 교선국장 010-3322-0689

한창수 노안부장 010-9787-9903

경기도 수원시 팔달구 인계동 경수대로 566 031)268-9637 | FAX (031)268-9639

 

2021 3회 경기지역 최악의 살인기업 선정 기자회견

 

날짜

2021429().1230

장소

동탄쿠팡물류센터(경기화성시동탄물류113)

주관

민주노총경기도본부,중대재해기업처벌법제정경기운동본부

 

1. 취지

- 민주노총경기도본부는 죽지 않고 일할 권리 쟁취의 목표로 산재사망 기업 중 살인기업을 선정함.

- 2020년 산재사고로 882, 산재질병으로 11,180명이 매년 사망하는 가운데, 경기지역의 산재다발 기업, 사회적 책임을 회피하는 기업을 대상으로 선정함.

- 산재사고 예방관리 책임이 있는 고용노동부경기지청과 쿠팡을 살인기업 특별상으로 선정함

- 쿠팡은 2020년에만 과로사로 추정되는 5, 5명의 노동자가 사망해 특별상 대상으로 선정함.

- 경기지역은 ()건우의 한익스프레스 건설현장 사고가 최고 평점을 받았으나 2개 시공사, 원청의 본사가 천안과 서울에 위치해 쿠팡 동탄을 기자회견 장소로 정함.

 

2. 기자회견 진행 순서

[ 사회: 박세연 중대재해기업처벌법제정 경기운동본부 ]

 

구 분

발언내용

발언자

비 고

1

여는 발언

중대재해기업처벌법 한계 과제

최정명 본부장

민주노총경기도본부

2

현장발언1

산재사망실태와규탄,문제점

변문수 본부장

건설노조수도권남부본부

3

산재 유가족 발언

 

김도현

다시는

4

현장발언2

쿠팡 산재 과로사 실태와 규탄

김재천

공공운수노조 조직국장

5

경기지역 연대투쟁 단위 발언

경기지역 산재살인기업 규탄

송성영 공동대표

 중대재해기업처벌법제정 경기운동본부

6

선정결과 발표

최악의 살인기업 선정 취지 및 선정결과 발표

손진우

한노보연

7

기자회견문

기자회견문 발표

 

경기공동행동,경기운동본부

 

3. 주요요구

- 산재사망 다발기업, 경기지역 공공사업 입찰 금지하라!

- 경기고용지청은 쿠팡 특별근로감독 실시하라!

- 산재예방 기초자료, 중대재해 조사보고서 공개하라 !

- 모든 노동자에게 산재보험 적용하고 산재심사승인 제도 개선하라 !

- 죽지 않고 일할 권리 차별 없이 적용하라!

[성명서] 산재사망사고 대책을 마련하고 책임자를 처벌하라! (21.04.27)

산재사망사고 대책을 마련하고 책임자를 처벌하라!

남양주 오피스텔 화재사고 사망자를 애도하며

 

지난 24일 남양주의 오피스텔 공사현장에서 화재가 발생했다. 진화 과정에서 소방헬기가 동원되는 등 현장 상황이 급박하게 돌아갔다. 화마(화재)2층 실외기 작업 중 발생해 2시간 10분 만에 진화됐다. 그 과정에서 1명의 사망자와 17명의 부상자가 발생했다. 같은 지역의 화재사고가 난지 2주만에 다시 발생한 사건이다.

경기지역은 아니지만 18일 일요일 오전에는 대구의 아파트 공사현장에서 노동자가 현장에서 사망했다. 마찬가지로 주말에 발생한 인명사고였다. 화재와 주말이라는 공통점은 건설현장의 관리 구멍이 명확함을 시사한다. 화재안전수칙, 위험물 처리 수칙에 대한 관리감독과 현장점검이 제대로 되지 않고 있다. 무리하게 공사기간을 단축하고 안전설비를 제대로 갖추지 않는 산재현장은 여전하다.

유사한 산재사고가 계속 발생하는데도 관리감독하는 고용지청이나 유관기관은 뒷 수습도 제대로 못하고 있다. 중대재해처벌법이 제대로 작동할지도 의문이다.

우리는 이번 화재로 인해 운명을 달리하신 노동자의 명복과 부상자들의 쾌유를 기원한다. 우리 사회는 일터에 나간 가족과 친구들이 우리 곁으로 돌아올 수 있는지 조차 불투명한 상태다. 우리 모두가 일터에서, 삶터에서 죽음에 일상적으로 노출되어 있다.

한익스프레스 화재사고로 38명의 목숨을 잃은지 1년도 되지 않은 시점에서 유사 사건이 계속 발생되는 것은 고용노동부, 관계기관, 기업이 이윤보다 생명을 중시하지 않는 풍토가 계속되고 있음을 증명하고 있다.

우리는 일터에서 죽지 않고 집으로 되돌아 가고 싶다.

우리는 일상적 위험에서 자유롭고자 중대재해기업처벌법을 요구했다. 이를 정치권은 기만했다. 5인 미만 사업장 적용제외, 50인 미만 사업장 적용유예로 중대재해기업처벌법을 유명무실하게 만들었다. 그동안 고용지청과 책임기관에서 산재사망에 보여준 태도들은 이번 사건에 대한 재발방지에도 의심스럽게 한다. 고용노동부와 경기도는 이번 사건을 철저하게 조사하고 제대로 된 대책을 마련하라. 관리감독 관리기관과 해당 기업 책임자를 처벌하라.

2021. 04.27

민주노총경기도본부, 중대재해기업처벌법제정 경기운동본부

 

4.28 세계 산재 노동자 추모, 투쟁의 날 인증샷 공동행동

4월 28일은 세계 산재노동자 추모의 날입니다. 1993년 태국 장난감 공장 화재로 희생된 188명의 노동자를 기리기 위해 1996년 4월 28일 전 세계 노동조합 대표들이 촛불을 든 것을 시작으로 합니다. 

추모를 시작으로, 노동자 건강권 쟁취를 위한 행동까지 이어져야 합니다. 

이윤보다 노동자의 몸과 삶을,
더 안전하고, 더 건강하고, 더 편하게 
일할 수 있는 노동자 건강권 쟁취를 위해

한국노동안전보건연구소와 함께 전국 곳곳의 많은 분들이 인증샷 공동행동을 진행했습니다. 

민주노총 노안실, 민주노총 세종충남본부, 대전본부, 공공운수노조 전국교육공무직본부 경기지부, 금속노조 노안실, 금속노조 경기지부, 대충지부, 충남지부, KB오토텍지회, 건설노조,  건설노조 타워크레인분과 노안기획단, 정의당 강은미 의원, 공감직업환경의학센터, 향남공감의원, 향남약국, 김용균재단, 부산의 노동조합 활동가들을 비롯 한국노동안전보건연구소 회원/후원회원, 상임활동가 등 많은 이들이 함께 요구합니다. 

하나. 중대재해기업처벌법 하위령 제대로 제정하라!
하나. 중대재해조사 보고서 공개하라!
하나. 일하는 모든 이에게 건강권을 보장하라!

4월 건강권 쟁취 투쟁의 달 집회에 참석했습니다

 

2021년 4월 21일 세종시 정부청사에서 열린 4월 건강권 쟁취 집회에 한국노동안전보건연구소, 김용균재단이 함께 참여했습니다. 

[안내] 추모 한익스프레스 물류창고 신축현장 산재사망 1주기 추모행동

추모 
한익스프레스 물류창고 신축현장 
산재사망 1주기 추모행동

죽지 않고 일할 권리 보장하라 
- 안전한 건설현장을 위한 건설안전특별법 제정하라!
- 모든 사업장에 중대재해기업처벌법 전면 적용하라!

<주요 일정>

4월 26일 
11시 추모 주간 선포 기자회견 (한익스프레스 앞)
오후 산재사망 사진전 및 시민 분향소 (한익스프레스 앞)

4월 27일 
11시 산재사망 사진전 및 시민 분향소 (덕수궁 정동길)

4월 28일 
10시 2021 최악의 살인기업 선정식 기자회견 (세종문화회관 앞 계단)
오후 산재사망 사진전 및 시민 분향소 (덕수궁 정동길)

4월 29일 
11시30분 종단 기도회 (정부서울청사)
오후 산재사망 사진전 및 시민 분향소 (정부서울청사)
18시 한익스프레스 산재 참사 1주기 추모제 (서울고용노동청)

<일터> 통권 205호/ 2021.04

특집 04 만성질환 노동자의 자리

■만성질환자의 몸과 마음을 담은 사회제도, 있어?

■아픈 몸들은 외친다. 산재보험과 건강보험은 ‘잘 아플 권리’ 보장하라.

■질병권의 관점에서 만성질환자의 노동권을 이야기하기

지금 지역에서는 15

건강관리카드 집단발급 신청은 건강권 투쟁이다

알아보자, LAW동건강 17

직장 내 성희롱을 바라보는 시선

연구리포트 20

노동시간센터 연구동향 보고

동아시아 과로사 통신 23

일본 이주 노동자의 과로사

A-Z까지 다양한 노동 이야기 26

누군가의 상흔에 빚진 보통날

현장의 목소리 30

기나긴 10여 년의 투쟁을 돌아보다

노동안전보건활동가에게 듣는다 34

작은 사업장 노동자들과 하는 노동안전보건 활동의 보람

문화로 읽는 노동 38

세상의 해고에 맞서는 불굴의 투쟁

직환의가 만난 노동자 건강 이야기 42

반증의 삶 그리고 일

여성노동 건강 상식 46

생리, 아무도 소리 내어 말하고 싶지 않은 단어

유노무사 상담일기 더불어 여(與) 44

아파트 경비노동자의 24시간 격일제, 과연 감시적 노동에 해당하는가?

발칙 건강한 책방 50

침묵과 말의 세계를 횡단할 수 있을까?

이러쿵저러쿵 52

노동안전보건운동의 매력, 나와 동지들의 삶

안전보건동향 54

한노보연 이모저모 56

https://issuu.com/kilsh2003/docs/2021_4_-_

 

일터 2021년 0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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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평] 잘 아플 권리 / 2021. 04

[직업환경의사가 만난 노동자 건강 이야기] 반증의 삶 그리고 일 / 2021. 04

[직업환경의사가 만난 노동자 건강 이야기]

반증의 삶 그리고 일 

송윤희 회원, 직업환경의학 전문의

본 글은 영화 현장 노동자의 이야기를 담았으나 비교적 꾸준한 작업이 가능했던 숙련된 경력자의 이야기로, 전체 영화 현장의 노동을 대변할 수 없음을 밝힌다. 현장 노동의 문제와 노동자의 건강을 객관적이고 포괄적으로 들여다보는 것이 〈직환의가 만난 노동자 이야기〉 이지만, 필자는 이 글에서 매우 개인적이고 주관적인 시각으로 한 동료의 이야기를 담았다. 이는 현재 의사이면서 영화 각본, 감독의 일을 계속 추구하는 사람으로서 노동자이자 ‘친구’ 인 사람의 이야기를 하고자 했기 때문이다. 일터 독자들의 양해를 미리 구한다.

아주 오랜만에 한 ‘영화 노동자’를 만났다. 9년 전 나와 함께 영화 학교에서 졸업작품으로 단편영화를 쥐어짜 만든 촬영감독이었다. 그는 매우 건강해 보였고 잘살고 있는 듯했 다. 그와 같이 양고기를 먹으며 근황을 나눴다. 이제 40대에 들어서는 우리는 영화업에 계속 발을 담을 것인가, 아니면 다른 살 궁리도 같이 강구할 것인가를 고민하는 나이대가 됐다. 다행히도 그는 계속 촬영을 할 생각인 듯했다. 나는 이미 생계로써 의사로 일하고 있고, 다만 언제 과연 ‘감독 입봉’을 할 수 있을 것인가를 고민하고 있다. 그 말인즉슨, 우리 둘 다 아직 꿈의 ‘감독’ 직에 입봉하지 못 했다는 뜻이다. (이 짠한 문장에 침울하지 않아도 된다. 글을 끝까지 읽으면 그 이유를 알게 될 거다.)

우리가 흔히 아는 유명한 영화감독들과 A급 촬영·미술·조명·음악감독들을 영화계에서 는 ‘오야지’라고 부르는데, 그들은 이 분야에서 어느 정도 자리를 잡은 이들이다. 오야지 밑에서 노동과 기술을 제공하는 팀원들은 ‘언제까지 영화 일을 할 수 있을까?’를 고민하는 비정규 노동자들이다. 즉 아직 자기 이름(브랜드)으로 자리 잡지 못한 영화계 노동자들이다. 여전히 꿈을 꾸고 하고 싶은 일을 하고 있지만 불안한 청년, 아니 중년들이 어떻게 살아가는지 한 번 이야기 나누고자 한다.

한참 이야기가 무르익고 배도 불러오자 나는 솔직하게 궁금한 걸 물었다.

“K야 좀 실례일 수도 있는데, 궁금하다. 너 정도 경력이면 페이가 어떻게 돼?”
“회당 45~50만 원 정도요. 드라마랑 영화랑 비슷해요.”

나쁘지 않은 페이인 것 같았다. 그는 현재 제1 카메라맨이다. ‘퍼스트’라고도 하는 이 직무는 카메라 옆에서 계속 수동으로 초점을 맞추는 일이어서, 매우 숙련된 기술과 경력을 요구하는 업무다. 즉 가장 중요한 카메라 포커스 플레이어다. 얼핏 듣기에 일당이 꽤 괜찮은 것 같지만, 촬영이 보통 아침 7시에 집합하고 밤이 되어서야 끝나는 강행군인 걸 생각하면 꼭 그렇지만도 않다.

“그래도 이제 하루 촬영시간이 딱 정해져 있잖아.”
“네. 영화는 14시간이고요, 드라마는 16시 간이에요.”

나는 조금 놀랐다. 식사 시간을 빼고는 하루 12시간, 14시간의 장시간 노동이었다. 몇몇 기사를 보면 아침에 시작해서 저녁 먹을 즈음에 끝난다던데, 아마 그런 사례는 드물고 아직은 최대 허용 촬영시간을 다 써야 하는 현장이 많은 듯했다. 고(古) 이한빛 PD의 사건 이후, 지난 몇 년간 촬영 현장이 매우 좋아졌다고 해도 간신히 수면시간 정도를 확보해준 데 불과한 것이다.

“그럼 밤에 끝나면 영화사에서 택시비는 다 챙겨주는 거야?”
“아, 다 포함이에요. 식대랑 교통비 다요. 그래서 다음 날 촬영 있으면 근처에서 잠만 자고, 다음 날이 쉬는 날이면 택시 타서 집에 가고 그래요.”

예전에 다른 동료가 한 말이 기억났다. 그도 촬영팀이었는데, 촬영에 들어가면 짧게 군대 가는 느낌이라고 했다. 주변 지인들과 연락도 두절되고, 작품 촬영 말고는 모든 개인적인 일들이 멈추기 때문이라고 그랬다. 힘든 스케줄을 소화하고 있었음에도 다행히 K는 좋아 보였다. 1년에 들어가는 대략 두 개의 작품을 하 는 7~8개월이 아닌 때에는 운동과 자기계발을 한다고 했다. 작품을 할 때도 재미없다고는 했지만, 그래도 살아있는 생생함을 맛보고 있는 것 같았다. 영화 작업의 특성상 주기적으로 실직 상태가 되기 때문에 불안정할 수 있지만, K는 나름대로 그 상황에서 최선의 적응을 한 듯 했다.

요새 그는 조금 시야를 넓힌 것 같았다.

“전에는 영화에만 올인해야 한다고 생각했어요. 그게 맞다고, 그래야 한다고. 근데 세상이 넓잖아요. 영화만으로 먹고 살기는 힘든 것 같고...”

나는 그의 생각에 동의했다. 40대 초반에는 영화 현장이 괜찮을 수 있다. 어쩌면 40대 중후반까지도 버틸 수 있겠다. 그러나 50대, 60대 초반까지 현장을 지키는 기술 스태프는 매우 드물다. 아니, 거의 없다. 다들 아마도 K와 같은 나이대에서 여타의 살길을 조금씩 도모하기 시작하는 것 같다.

게다가 코로나 때문에 영화 산업이 많이 죽었다. 영화계의 앞날은 어찌 될지 걱정이 들었다.

“영화계는 어떻게 될지 몰라도, 영상 산업은 앞으로 훨씬 더 커질 것 같아요.”
“그래. 꼭 영화만 해야지, 하는 건 아닌 것 같아. 웹드라마도 할 수 있고, 뭐, 유튜브도 있고, 여러 OTT 플랫폼들이 생겨나니까 계속 버티자.”

5년 뒤 K는 어떤 일을 하고 있을까? 그가 상업 영화 촬영감독으로 입봉하게 된다면 더 바랄 게 없겠다. 그런데 만에 하나 아쉽게도 그 피라미드 오르기에 기회나 운이 닿지 않는다면, 제2의 바람은 그가 영화 현장에서든 어느 분야에서든 충분히 품위 있게 생계를 해결하면서, 동시에 이제껏 쌓은 영화 영상의 기술을 이용해 한 분야에서 자신의 이름(브랜드)을 지니는 것이다.

나는 그의 5년 뒤가 기대된다. 물론 불안정한 영화 노동자이기에 고민도 많을 것이다. 미래에 대한 고민을 10대, 20대를 넘어 40대까지 하는 건 살짝 서글퍼 보일 수도 있다. 그러나 어쩌면 그건 계속 내 인생을 도전하고 노력하고 있다는, 성장하고 있다는 반증이기도 하다. 그러니 아직 입봉을 못 한 40대 촬영감독과 영화 감독 지망생들의 근황에 침울하지 마라. 우리는 계속 도전한다. 실패해도 또 일어난다. 좋아하고 사랑하는 일을 하기 위해서.

[여성노동건강상식] 생리, 아무도 소리 내어 말하고 싶지 않은 단어 / 2021. 04

[여성노동건강상식]

생리, 아무도 소리 내어 말하고 싶지 않은 단어

조이 산부인과 전문의, 여성노동건강권팀

산부인과 진료실에 내원하는 환자들은 산모를 제외하면 생리와 관련된 증상과 질환이 원인인 경우가 많다. 산부인과 의사로 살면서 남들보다 몇백 배, 몇천 배 많게 입 밖에 내게 되는 단어가 ‘생리’일 것이다. 생리 (Menstruation), 즉 월경이란 가임기 여성의 자궁에서 호르몬의 작용으로 임신을 준비하기 위해 자궁내막을 두껍게 만들었다가 그 달에 수정과 착상이 발생하지 않는 경우 황체 호르몬 분비의 감소와 함께 자궁내막이 탈락하여 자궁 밖으로 배출되는 현상이다.

이처럼 생리는 말 그대로 건강한 여성에서 한 달에 한 번 일어나는 생리현상일 뿐인데, 우리는 왜 ‘그 날’, ‘마법’ 등의 단어로 생리를 표현하며 아무도 소리 내어 말하고 싶어 하지 않는 것일까? 생리라는 단어는 왜 터부시되어 왠지 부끄럽거나 떳떳하지 못한 단어가 된 것일까?

생리의 불편함에 대한 이해를 돕기 위해 생리혈이 배출되는 느낌을 말로 표현하려고 해도 쉽지 않다. 생리혈은 자궁에서 질을 통해 신체 밖으로 배출되는데 혈액은 공기와 접촉하면 정상적으로 굳는 특성이 있어서 생리혈로 배출되는 혈액은 완전한 액체보다는 조금 더 젤 형태에 가깝다. 인터넷에 돌았던 유머 중에는 ‘뜨거운 굴을 낳는 느낌’이라고 묘사된 바 있으며, 요새 아이들이 많이 갖고 노는 슬라임이나 달걀 노른자의 느낌에 가까워서 그 느낌이 유쾌할 수 없다.

종종 오해하는 경우가 있는데, 생리는 대소변처럼 조금이라도 참을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생리하고 싶은 날은 지정할 수 있는 것은 더욱 아니며, 주기가 매우 규칙적인 소수의 경우를 제외하자면 1~2일 정도의 주기 차이는 정상적으로 존재하기에 그 날짜를 완벽하게 예측하기도 어렵다.

이 글을 읽는 독자 중에는 이러한 자세한 묘사가 불편하거나 이 정도도 모르는 사람이 존재한다는 것을 믿을 수 없는 분들도 있겠으나 진료실에서 만나는 많은 수의 환자와 보호자들이 잘 모르거나 오해하고 있는 사실들임을 밝힌다. 더불어 궁금하더라도 입 밖으로 내어 묻기 어려워하는 환자와 보호자들도 많다.

출처 : Mashable India



월경과 관련된 질환들

월경은 매달 반복되는 생리현상이지만, 그 주기에 따른 여러 질환을 동반하는 경우도 있다. 생리통(Dysmenorrhea)은 생리 기간 중 다양한 경로와 강도로 느껴지는 통증을 말하는데, 이는 자궁내막이 탈락될 때 작용하는 프로 스타글란딘이라는 물질이 복부 혈관을 수축시키며 신경을 자극하여 발생하는 것으로 알려져있다. 생리통의 유무와 강도, 지속 기간은 개인차가 심하여 생리통이 없는 사람도 있고 생리 기간 내내 진통제 없이는 일상생활이 어려운 사람도 있다. 생리의 양과 생리 기간 역시 개인차가 크며, 이는 생리통과 관련이 있을 수도, 없을 수도 있다.

미국의 한 통계에 따르면, 여성의 20% 정도는 일상생활에 영향을 주는 정도의 생리통을 겪으며 유방통 및 두통, 설사 또는 변비, 몸살, 어지럼증, 구역감을 함께 겪는 경우도 있다. 흡연하거나 생리를 일찍 시작했거나 생리기간이 긴 경우 생리통의 정도와 관련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생리통이 심한 경우, 자궁내막증, 자궁선근증 등의 산부인과 기저질환을 의심할 수 있기에 진료가 필요하다.

규칙적인 생리주기란 28~30일을 의미하지만, 다수의 여성이 생리주기 자체의 불규칙함과 생리 기간이 아닐 때 발생하는 출혈을 호소한다. 이는 대부분 생리주기를 조절하는 에스트로겐과 프로게스테론, 난포자극호르몬, 황체 호르몬 등의 불균형 때문인데 이러한 호르몬 불균형의 원인은 스트레스, 저체중, 과체중, 극심한 다이어트, 영양 불균형, 불규칙한 생활, 야간 노동 등으로 매우 다양하다.

생리 기간뿐 아니라 생리 1주 전부터 생리 시작 직전까지 신체적, 정서적 증상으로 고통 받는 경우도 있는데, 이를 월경전증후군(PMS, Pre-Menstrual Syndrome)이라고 한다. 한 통계에 의하면, 정도의 차이는 있으나 월경을 하는 여성 중 75%가 월경전증후군을 호소하며 4~5% 정도는 일상생활에 어려움을 겪을 정의 증상을 호소한다고 한다. 월경전증후군의 증상은 집중력 저하, 건망증, 초조함, 예민함, 긴장감, 불안감, 급격한 기분변화, 분노조절 장애, 공격성 증가, 식욕 증가, 의욕 상실, 업무능력 감소, 유방통, 요통, 두통, 부종 및 체중증가, 과도한 수면, 불면증 등으로 다양하게 나타난다.

원인은 명확히 밝혀져 있지 않으나 프로게스테론의 비정상적 박동적 분비, 지나치게 높은 에스트로겐 레벨, 도파민 감소에 따는 프로락틴 분비 증가와 엔도르핀 및 세로토닌의 감소 등 호르몬 변화 및 이상이 증상을 유발할 수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따라서 피임약을 복용하여 호르몬 변화를 감소시키거나 우울증 약으로 쓰이는 세로토닌 재흡수 차단제 (SSRI)를 복용하는 것이 도움이 될 수 있다.

존재하지만 존재하지 않는 생리휴가

근로기준법에 따르면 5인 이상의 노동자가 근무하는 사업장의 여성노동자에 대해 월 1일의 생리휴가를 주도록 되어 있으며 이를 어길 때에는 5백만원 이하의 벌금이 부과될 수 있다. 생리휴가는 노동자가 청구하는 날에 무조건 줘야 하는 휴일로, 당일 청구해도 부 여하도록 되어 있다. 즉, 회사 측에서 생리휴가 사용 며칠 전 휴가원 제출 요구, 생리휴가가 가능한 요일의 지정 등을 통해 사실상 근로자의 자유로운 생리휴가 사용을 제한하는 행위는 규정상 인정될 수 없다.

생리휴가는 1953년 제정된 근로기준법에서 월 1회의 유급휴가로 규정되었으나 거의 지켜지지 않았다. 역사적으로 여성노동자들이 생리휴가 보장을 요구하기 시작한 것은 70년대 중반이다. 노동시간 단축이나 모성보호법 등의 법률의 제개정이 논의될 때마다 사업주들은 그 전제조건의 하나로 생리휴가 제도 폐지를 주장해 왔다. 이는 생리휴가 제도가 여성을 육체적으로 취약한 존재임을 증명하여 오히려 차별을 정당화하는 근거가 될 수 있다라든가, 여성을 재생산을 위한 도구로 취급함으로써 생리휴가가 여성비하에 해당한다는 식으로 그럴싸하게 포장되었지만, 실제로는 여성 노동자가 하루 동안 노동하지 않음에도 임금을 받으면, 그만큼 사업주의 이윤이 줄어들 것이라는 전근대적 경영관에 비롯된 주장이었다.

2004년 주 5일 근무제의 도입으로 1,000명 이상 사업장의 경우 생리휴가는 무급으로 전환되었으며 2012년부터는 20인 이상 사업장까지 확대되어, 실질적으로 한국의 생리휴가는 현재 무급휴가에 해당한다.

2014년에 시행된 한 조사(유한킴벌리&인 크루트 조사)에 따르면, 생리휴가가 무급휴가로 전환된 이후 76%의 여성이 생리휴가를 한 번도 쓴 적이 없으며 주변의 눈치 때문에 사용이 어렵다고 답했다. 당시 조사 결과에 따르면, 생리휴가를 사용하지 않는 이유에 대해 42%가 “상사에게 눈치가 보여서”를 꼽았으며 36%는 “주위에서 아무도 안 써서”라고 응답했다. 이에 대해 남성들은 “생리휴가는 다 꼼수”라고 응답했다.

생리휴가, 모두에게 온전히 보장되어야

생리는 말 그대로 생리적인 현상으로 많은 신체적 증상과 불편함을 유발한다. 생리휴가의 무급화 당시 경영계가 생리휴가 폐지를 주장하며 펼친 근거 중에는 “선진국에는 생리휴가가 없다”는 것이었는데, 이는 선진국에서는 생리 휴가를 특별히 제도화하지 않아도 노동자가 몸이 불편할 때 언제든지 쉴 수 있는 권리가 보장 되어 있으며, 그건 근무평가에 영향을 미치지 않기 때문임을 간과한 것이다. 즉, 생리휴가를 없애려면 생리휴가가 적극적으로 보장되고 그에 따른 비용을 기꺼이 부담할 수 있어야 한다.

2021년의 한국 사회에서 생리 중인 모든 여성 노동자들에겐 생리휴가라는 ‘사회적 배려’ 가 정당하게 보장되어야 한다.

[알아보자, Law동건강] 직장 내 성희롱을 바라보는 시선 / 2021. 04

[알아보자, Law동건강]

직장 내 성희롱을 바라보는 시선

임혜인 회원, 노무사

직장 내 성희롱(이하 “성희롱”이라고 함)으로부터 안전한 일터를 조성하는 것. 성희롱 피해자를 보호하고 가해자에 대한 적절한 조치를 취하는 것. 이는 현대사회에서 너무나도 당연한 상식이다. 성희롱 가해자는 절대 해서는 안 될 행동을 한 나쁜 사람이며, 성희롱이 발생할 때까지 방관한 회사는 더 나쁘다는 점에 대해서 부정하는 사람 또한 없을 것이다.

그런데 실제로 성희롱이 발생하면 우리가 너무나도 당연하게 생각하던 상식이 단숨에 무너져버리고 만다. “문제를 키워 봤자 너만 손해다”, “당신이 참아야지 어쩌겠냐”는 식으로 피해자의 고통을 무시하는 언동은 2차 가해 유형 중 아주 귀여운 축에 속한다. “라떼는 이런 거 다 감수하면서 직장생활 했다.”며 피해자가 경험한 성적 굴욕감 등이 사회통념에 어긋나는 것임을 계몽하려는 노력은 아주 보편적인 반응이다. 심지어 피해자가 피해 사실에 대하여 적극적으로 밝히려고 애쓸수록, 이러한 노력은 피해자에 대한 공격으로 변모한다.

성희롱의 당사자는 가해자와 피해자이지만, 실제로 성희롱이 발생하면 가해자는 지워지고 오로지 피해자만이 당사자로 남는다. 법률 및 사회적으로 금지된 행동을 한 가해자보다 피해자에 대한 시선이 뜨겁다 못해 따갑기까지 하다.

성희롱 피해자를 바라보는 시선은 법원의 판단을 통해 재확인되기도 한다. 한 대학교수(이하 “원고”라고 함)가 제자를 수 차례 성희롱하여 징계 해임되자 본인의 행동이 성희롱이 아님을 주장하며 해임처분의 취소를 구하는 소송을 제기하였다. 이때 대학이 징계사유로 삼은 성희롱 사실은 다음과 같다. 

징계사유 1
1) 원고가 학과사무실에서 남자친구와 함께있던 피해자에게 “여기서 뭐하냐?”라며 뺨을 때리고, 이어서 “왜 남자랑 붙어서 있냐?”라며피해자의 뺨을 총 4대 때림

2) 피해자가 봉사활동을 위한 추천서를 받기 위해 친구들과 함께 원고의 연구실을 방문을 때 원고가 뽀뽀해 주면 추천서를 만들어 주겠다고 함

3) 수업 중 질문을 하면 원고는 피해자를 뒤에서 안는 듯한 포즈로 지도함

4) 원고는 피해자가 연구실을 찾아가면 “남자친구와 왜 사귀냐, 나랑 사귀자.”, “나랑 손잡고 밥 먹으러 가고 데이트 가자.”, “엄마를 소개시켜 달라.”고 하는 등 불쾌한 말을 많이 함.
... (중략)
징계사유 2

1) 원고는 피해자의 1학년 학기 초 수업시간에 피해자의 손을 겹쳐서 마우스를 잡고 피해자가 앉아 있는 의자에 같이 앉거나 자신의 무릎에 피해자를 앉히려 하였음. (중략)

2) 원고는 피해자를 연구실로 자주 불러 연애하자, 어머니를 소개시켜 달라.”고 하였으며, 또한 의자에 앉아 있을 때에는 원고의 다리 사이에 피해자의 다리를 끼워 움직이지 못하게 한 경우도 있었음

3) 피해자가 입고 있던 가슴부분의 남방 단추가 떨어지려 할 때 원고가 불필요하게 단추를 만짐

징계사유 3

1) 원고는 수업시간에 피해자를 뒤에서 안는 식으로 지도하고 불필요하게 피해자와 한 의자에 앉아 가르쳐주며 신체적 접촉을 많이 함

... (중략)

4) 학과 MT에서 원고가 아침에 자고 있던 피해자의 볼에 뽀뽀를 2차례 하여 피해자에게 정신적 충격을 줌

5) 원고는 장애인 교육 신청서를 제출하러 간 피해자에게 자신의 볼에 뽀뽀를 하면 신청서를 받아 주겠다고 하고, 다른 학생들도 자신의 볼에 뽀뽀를 하고 신청서를 제출하였다고 거짓말을 하여 피해자가 어쩔 수 없이 원고의 볼에 뽀뽀를 하였으며, 그 상황에서 원고가 피해자의 엉덩이에 손을 대려고 하자, 피해자가 자신의 가방을 이용하여 원고의 행위를 막음

원심 재판부는 원고에 대한 징계사유 중 대부분이 성희롱에 해당하지 않는다고 판단하며, 원고에 대한 해임처분이 부당하다고 판단하였다. 원심이 상기 징계사유를 부정한 요지는 다음과 같다.

징계사유 1-3을 부정한 이유

- 원고의 언동은 원고의 적극적인 교수방법에서 비롯된 것이 아닌가 의심되고, 이 부분 사건에서 드러난 정도의 접촉만으로는 이를 일반적이고도 평균적인 사람으로 하여금 성적 굴욕감이나 혐오감을 느낄 수 있는 행위에 이르렀다고 보기는 매우 곤란하다.

- 교수인 원고가 (중략) 소위 백허그 자세를 취하여 그와 밀착된 자세에서 어색한 타이핑을 시도하였다는 것은 쉽게 상상하기 어렵다. (중략) 익명으로 이루어진 강의평가에서 원고의 부적절한 신체접촉에 대한 언급이 없고 오히려 원고의 1:1 맨투맨 교육방식이 긍정적으로 평가된 점 및 나아가 소외 1조차 원고의 강의에 단점이 없다거나 재미있고 즐겁다고 평가한 점에 비추어 선뜻 납득하기 어렵다.

징계사유 1-2 및 1-4를 부정한 이유

- 원고는 강의뿐만 아니라 동아리 지도를 통하여 학생들과 격의 없고 친한 관계를 유지하였는데, 학생들과 식사를 함께 하거나 원고의 연구실에서 찾아오는 학생들과 자주 농담을 나누었으며, 일상적인 이야기는 물론 가족에 관한 이야기나 연애상담도 나누었다.

징계사유 3-1부터 3-5를 부정한 이유

- 소외 2는 최초 소외 1의 부탁을 받고 이 사건을 신고하게 된 것인데, 자신의 피해사실에 대하여는 형사고소 이후 조사를 거부하는 한편 소외 1에 대한 피해사실에 대하여는 증인으로 출석하여 자유롭게 진술하고 있는 것으로 보이는바, 과연 성희롱 내지 성추행 피해자로서의 대응이라고 볼 수 있을지 의문이다.

- 소외 2가 소외 1의 부탁을 받고 진술서를 작성한 것은 2014. 12. 17. 무렵인데 그 기재된 내용은 전부 2013년부터 2014년 전반기의 사실로서 소외 1의 권유 또는 부탁이 없었다면 소외 2에게 과연 한참 전의 원고 행위를 비난하거나 신고하려는 의사가 있었는지 의심스럽다.

- (중략) 자신의 신고로 인하여 원고가 해임까지 당하는 무거운 결과를 가져온 데 대한 책임추궁을 두려워하기 때문이 아닌가 의심된다.

- 소외 2는 소외 1, 소외 3과 함께 원고에 대한 형사고소를 하지 않을 것을 약속하는 각서를 작성하여 주는 대신 원고에게 자신들에 대한 법적대응을 하지 아니할 것을 요구... (중략), 통상 피해자가 단순히 가해자를 용서하는 합의를 하여주는 행동이라고 보기에는 이례적이다.

즉, 원심은 설령 원고가 피해자와 신체적 접촉이 있었다고 하더라도 이는 적극적인 강의 의욕에서 비롯된 불상사일 뿐이고, 징계사유에 포함된 언동 또한 피해자와 친밀하게 지내는 와중에 성희롱에 대한 고의 없이 이루어진 것을 피해자가 민감하게 받아들인 것에 불과하며, 피해자가 오랜 시간이 경과한 후에야 비로소 성희롱 사실을 문제 삼은 사실이나 법원에서 피해 사실을 자유롭게 주장하고 있는 모습 등에 비추어 일반적인 성희롱 피해자로서의 면모가 보이지 않는다는 것을 이유로 성희롱에 해당하지 않으며, 해임처분 또한 부당하다고 판단하였다. 이러한 원심의 판단은 성희롱에 대한 
전형적인 2차 가해 유형들과 상당히 유사하다.

그렇다면 우리는 직장 내 성희롱을 어떠한 시각으로 바라보아야 할까. 동일한 사건에 대하여 대법원은 성희롱 사건을 심리하는 방법에 대하여 다음과 같이 설명하며, 원심판결을 파기 환송하였다. 

대법원 2018. 4. 12. 선고 2017두7470 판결

법원이 성희롱 관련 소송의 심리를 할 때에는 그 사건이 발생한 맥락에서 성차별 문제를 이해하고 양성평등을 실현할 수 있도록 성인지 감수성을 잃지 않아야 한다(양성평등기본법 제5조 제1항 참조). 그리하여 우리 사회의 가해자 중심적인 문화와 인식, 구조 등으로 인하여 피해자가 성희롱 사실을 알리고 문제를 삼는 과정에서 오히려 부정적 반응이나 여론, 불이익한 처우 또는 그로 인한 정신적 피해 등에 노출되는 이른바 ‘2차 피해를 입을 수 있다는 점을 유념하여야 한다. 피해자는 이러한 2차 피해에 대한 불안감이나 두려움으로 인하여 피해를 당한 후에도 가해자와 종전의 관계를 계속 유지하는 경우도 있고, 피해사실을 즉시 신고하지 못하다가 다른 피해자 등 제3자가 문제를 제기하거나 신고를 권유한 것을 계기로 비로소 신고를 하는 경우도 있으며, 피해사실을 신고한 후에도 수사기관이나 법원에서 그에 관한 진술에 소극적인 태도를 보이는 경우도 적지 않다. 이와 같은 성희롱 피해자가 처하여 있는 특별한 사정을 충분히 고려하지 않은 채 피해자 진술의 증명력을 가볍게 배척하는 것은 정의와 형평의 이념에 입각하여 논리와 경험의 법칙에 따른 증거판단이라고 볼 수 없다.

대법원은 성희롱 사건은 교통사고와 같이 한 순간에 촉발하는 것이 아니고 사회적 구조와 같은 맥락에서 발현된다는 특성이 있고, 그 맥락에 구속될 수 밖에 없는 피해자의 입장을 ‘피해자의 시각’에서 바라보아야 함을 강조한다.

성범죄 피해 사실을 대외적으로 고발하는 미투 운동이 확산되며, 자신의 피해 사실을 적극적으로 고발하는 피해자들 또한 많아지고 있다. 피해자들은 점점 더 크게 목소리를 내며 가해자에 대한 강력한 처벌과 제도 개선을 요구한다. 그런데 이들을 바라보는 사회의 시선은 어떠한가. 여전히 사업장에 성희롱이 발생하면 피해자는 피해자답게 처신해야 그나마 원하는 조치를 사업장으로부터 받을 수 있다. 피해자가 피해 사실을 객관적으로 입증하지 못하면 피해자를 예민한 사람이라 가스라이팅 한다.

피해자의 시각으로 성희롱 사건을 바라보는 것. 성희롱으로부터 안전한 일터를 만들기 위한 첫 걸음이지만 그 발을 내딛기가 어렵기만 하다.

[노동안전보건활동가에게 듣는다] 작은 사업장 노동자들과 하는 노동안전보건 활동의 보람 - 파주병원 노동자 건강증진센터 이진우 센터장 인터뷰 / 2021. 04

[노동안전보건활동가에게 듣는다] 

작은 사업장 노동자들과 하는 노동안전보건 활동의 보람 

- 파주병원 노동자 건강증진센터 이진우 센터장 인터뷰

장영우 선전위원장

1년여 전까지는 민주노총 노동안전보건실에서 다양한 산별 노동자들에게 교육하고, 집회를 기획하며 법 제정·개정, 대정부 투쟁을 하는 활동가였던 이진우 동지. 어느새 새로운 직장에서 직업환경의학 의사로 또 다른 노동안전보건 활동을 하고 있다. 이번 일터 4월 ‘노동안전보건 활동가에게 듣는다’ 코너는 벚꽃이 피기 시작하는 어느 봄날 저녁 서울의 한 카페에서 경기도의료원 파주병원 노동자건강증진센터 센터장이자 연구소 회원이기도 한 이진우 동지를 인터뷰하였다.

출처: 한노보연

지금은 직업환경의학 의사로 노동자건강증진센터장이신데, 전에는 다양한 곳에서 활동하셨었죠?

안녕하세요, 이진우입니다. 직업환경의학과 의사이고 1년 전부터 파주병원 노동자건강증진센터에서 일하고 있습니다. 그전에는 사회진보연대에서 노동안전보건 활동을 하다가 2016년부터 4년간 민주노총 노동안전보건실에 있었습니다. 2015년부터 5년간 중대재해기업처벌법제정연대 사무국장 역할도 했었고, 작년 초부터 현재 직장으로 옮겼습니다.”

크게 볼 때 노동안전보건 활동이라는 면에서는 유사하지만 직장의 성격도, 하는 일도 상당히 다른데요. 어떻게 현재의 일을 하게 되었나요?

민주노총 노동안전보건실에서 일할 때 다양한 업종의 노동안전보건 활동에 관심이 있었어요. 어느 정도 성과가 있었던 것도 있고요. 하지만 여러 영역 중에서 작은 사업장에서의 노동안전보건 활동을 진행하는 게 쉽지가 않더라고요. 50인 미만 사업장에는 보건관리자를 선임해야 할 의무도 없고, 노동부의 근로자건강센터도 전국에 23개 밖에 없어서 충분하지 않고요. 그렇게 작은 사업장에 대해 어떤 노동안전보건 활동을 할 수 있을까라는 고민을 했었고, 개인적으로 새로운 일터를 찾아보다가 지인의 소개로 여기에서 일하게 되었습니다.”

이진우 동지가 주목했듯 소규모 사업장은 산업재해 예방이 잘 이루어지지 않는 곳이다. 2019년에는 국내 산업재해 노동자 10만여 명 중 76.5%가 50인 미만 사업장의 노동자들이었다는 씁쓸한 통계가 있다. 작은 사업장은 안전보건 규제의 많은 부분에서 제외되고 있고, 노동부는 근로자건강센터 형식으로 소규모 사업장 노동자의 건강을 관리하고 있다. 그런 면에서 경기도의료원 파주병원의 노동자건강증진센터는 근로자건강센터와는 또 다른 운영 형태로 소규모 사업장들을 지원하고 있고, 이곳에서 소규모 사업장 노동자들에게 실시하는 사업들은 큰 의미가 있다.

작은 사업장 노동자 안전보건 지원 사업

파주병원 같은 공공병원 자체가 별로 없고, 또 그 병원에서 노동자건강증진센터를 운영하는 것도 의미가 있어 보입니다. 노동자건강증진센터에 대해 간단히 소개해주세요.

현행 산업안전보건법에서는 50인 미만 사업장은 보건관리자를 선임할 의무가 없어서 노동자의 건강관리가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는 한계가 있습니다. 그래서 경기도에서는 50인 미만 사업장 노동자와 비정규직 노동자, 자영업자, 소상공인 등을 대상으로 포괄적인 산업보건서비스를 제공하는 우리 회사 건강주치의 사업을 시작하게 되었습니다특수건강진단과 사후관리로 노동자들의 건강을 관리하고 사업장 위험성평가를 통해 작업장 환경개선컨설팅도 지원합니다. 집중사례관리를 통해 통합적인 노동안전보건서비스를 제공하고 하는데요. 이 사업은 경기도가 전국에서 처음으로 시행하는 사업으로, 현재 도지사의 공약이기도 했습니다.

2019년에 경기도 노동자 건강증진조례가 통과되어 사업이 시작되었고, 올해 예산은 약 11억입니다. 현재 경기도 의료원 6개 병원 중 파주병원과 수원병원에서 주치의 사업을 위탁받아 센터를 운영하고 있습니다. 센터 정원은 총 18명입니다. 위험성평가팀에 산업위생기사 2, 사례관리팀에 간호사·사회복지사·심리상담사 등 4, 나머지 노동자건강진단팀입니다파주센터가 포괄하는 지역은 파주, 고양, 양주, 김포 등 경기 북부입니다. 아무래도 파주가 중점 지역입니다. 파주엔 16개의 산업단지가 있는데요, 많이들 아시는 출판단지 사업장들과 LG디스플레이 하청업체를 비롯한 작은 사업장이 많아요. 그리고 이주노동자들도 여러 사업장에서 일하고 있습니다.”

이진우 동지가 노동자건강증진센터에서 하는 활동은 간간이 기사를 통해서도 볼 수 있었다. 작년 여름, 대리기사들이 생애 최초로 특수건강진단을 받았다는 기사가 났었고, 그 검진은 바로 파주병원 노동자건강증진센터에서 진행한 것이었다. 경기도가 도입한 ‘우리 회사 건강주치의 사업’을 통해 소규모 사업장과 특수고용 노동자들까지 혜택을 받게 된 것이다. 사업장에서 건강관리를 받는 것이 거의 불가능한 특수고용 노동자들이 건강진단을 받게 되어 흐뭇해하던 기사 인터뷰에 나 역시 흐뭇해졌던 기억이 난다.

노동자건강증진센터에서의 노동안전보건활동

들어보니 소규모 사업장 노동자들에게는 꼭 필요한 노동안전보건 지원일 것 같습니다. 그 외에도 노동자들이 지원받을 수 있는 것에는 어떤 것들이 있을까요?

지자체에서 노동자 건강을 지원해주는 최초의 모델이라 의미가 있다고 봅니다. 그래서 잘 운영하는 게 중요합니다. 작년, 올해 일정 정도 가시적인 성과가 나고 다른 의료원에서도 설립이 된다면 서로 상승효과를 기대할 수 있을 거 같아요. 여러 연구에서 특수건강진단을 받아야 하는 사업장 중에서 실시율이 10%도 되지 않는다고 합니다. 나머지 90%의 작은 사업장 노동자도 건강진단을 받는 게 중요한데 민간기관에만 맡겨서 해결될 일은 아니라고 봅니다. 공공기관이 노동안전보건 서비스를 제공하고 사업주를 교육하는 역할을 하도록 활성화해야 하는 것이 좋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실행 주체 중에서는 지자체가 먼저 나서야 하고요.

그동안 특수 고용노동자는 사업주가 없으니까 건강관리의 사각지대에 방치되었습니다. 그래서 경기도에서 이 노동자들을 위한 건강주치의 사업을 하려고 하는 것입니다. 택배 노동자 같은 경우 CJ, 한진은 계약을 맺은 검진기관에서 건강진단을 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고용관계가 명확하지 않은 상태에서 하는 건강진단이라 한계가 있습니다. 건강진단 결과가 노동자의 고용을 저해할 우려도 있고요. 공공병원에서 이들에게 건강진단을 수행한다면, 노동자들에게 실제 도움이 되는 건강관리 사업을 진행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의미 있는 사업을 많이 하고 있고 노동자들이 많이 찾아오면 좋겠지만, 처음 하는 사업이라 검진 대상자를 찾기 쉽지 않을 것 같은데요?

파주는 노동조합 조직화가 경기 남부에 비해 아직 부족합니다. 노조와 연계하여 사업을 진행하는 것 플러스 알파가 필요했습니다. 그래서 파주와 고양시 비정규직 노동자지원센터와 업무협약과 사업논의를 하면서 돌파구를 찾고 있습니다. 지역의 상공회의소에도 찾아가서 사업설명을 하고 업무협약을 맺기도 했습니다. 50인 미만 사업장 중에서도. 상공회의소에 속해 있는 사업장이 많으니까요. 여러 산업단지의 사무국장님들도 찾아가기도 하고, 시의원과 도의원에게 찾아가 설명회도 진행했습니다. 작년 한 해 정말 여러 곳을 찾아다니며 사업 설명을 하고 홍보를 했습니다.

일반 노동자들의 특수건강진단은 사업주의 의무라서 진행이 되지만, 특수고용노동자들에 대한 건강진단은 그렇지 않아 노동자들을 직접 찾아다니고 있습니다. 사업주를 통할 수 없으니 지역의 활동가분들 소개를 통해 진행하기도 하고, 노동조합을 통해 진행했습니다. 지난 4년간 노동조합에서 활동했던 경험들이 많은 도움이 되었습니다. 작년에는 대리운전노조, 라이더유니온, 건설노조 특수형태 고용직 노동자 89명에게 건강진단 지원을 했습니다.

레미콘 공장 같은 경우 출장으로 레미콘 노동자들 휴게실에서 건강진단을 했습니다. 사측에 미리 양해를 구하는 과정도 필요했습니다. 특수형태 고용직 노동자 입장에서는 하루 일당을 빼면서까지 병원에 건강진단을 받으러 오기가 쉽지 않은 상황이라, 직접 찾아갔습니다. 이렇게 새로운 사업을 만들어가면서 일하다 보니, 함께 일하는 센터 직원들에게도 미리 양해를 구하고 설득해야 하는 과정도 중요했습니다.”

지자체에서 하는 노동자 안전보건 지원사업이 잘 알려지기만 한다면 더 많은 사업장에서 노동자건강진단을 신청하거나 안전보건 지원을 요청할 것 같지만 지금까지는 사업장에서 직접 문의하는 경우가 많지는 않은 듯했다. 혹은 그보다, 사업주들이나 노동자들이 건강하고 안전하게 일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인식이 부족하고, 사업장 안전보건을 위해 관리가 필요하다는 것도 아직 널리 인식되지 못 하기 때문인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예전에 하시던 일과는 달라서 하지 않던 일도 해야 할 텐데요, 일하면서 어려운 점은 없을까요?

새로운 사업이라 아직 홍보가 부족합니다. 기관들뿐만 아니라 사업장 하나하나에 방문해서 설득하는 과정들을 꾸준히 해야겠지요. 센터 내에 다양한 전문 직종 선생님들이 계시고, 각자 전문성이 있어서 각 팀과 각자의 업무들을 조율하는 것도 제가 잘해야 하는 일이에요. 노동자 건강증진센터는 우리회사건강주치의 사업을 하는 것이 기본이고, 파주병원 내에 있기 때문에 병원 구성원으로서 해야 하는 일도 있습니다. 파주병원이 코로나전담병원이라서, 방역이나 선별진료 업무 등에 협력했습니다. 그러다 보니, 하고 싶은 사업을 많이 못 한 아쉬움은 있습니다.

이 사업 위탁은 3년마다 갱신되는데, 우리 센터 직원들은 2년 계약만 가능한 비정규직 형태로 고용되어 있습니다. 꼭 해결해야 할 문제입니다하지만 확보된 예산으로 열악한 환경의 노동자에게도 건강증진 사업을 기획하고 진행할 수 있다는 점은 자율성이 있는 편이라 좋습니다.”

이진우 동지와 인터뷰를 하고 나니 전체 노동안전보건 활동 중에서 예전에는 A라는 톱니바퀴에서 활동을 했다면 지금은 C라는 활동을 하고 있다는 인상을 받았다. 자리와 역할이 바뀌었지만, 여전히 노동자 건강과 안전을 위해 활동하고 있고, 더 큰 질병이 나기 전에 예방한다는 면에서 의미가 있어 보였다. 쓰지 않던 근육을 써가며 신청을 받기 위해 먼저 사람들에게 제안하기도 하는 등 쉽지 않은 일도 하고 있지만, 이진우 동지 얼굴에 활기가 보여 마음이 놓이기도 한다. 소규모 사업장 노동자들, 제도적으로 보호받지 못 하는 특수고용노동자들의 건강과 안전을 위해 활동하는 이진우 동지에게 응원을 보낸다.

 

[A-Z 다양한 노동이야기] 누군가의 상흔에 빚진 보통날 - 전국건설노동조합 송전지부 이충구 전국지부장 인터뷰 / 2021. 04

[A-Z 다양한 노동이야기] 

누군가의 상흔에 빚진 보통날

- 전국건설노동조합 송전지부 이충구 전국지부장 인터뷰

한재영 상임활동가

혹시 휴대폰 배터리를 충전할 때마다 사용되는 전기의 행방을 떠올려 본 적 있는가? 아마 없을 것이다. 숨 쉴 때마다 공기의 존재를 구태여 알아차리지 않듯이, 전기는 이미 우리에게 너무나도 당연한 존재이기 때문이다. 새삼스럽기까지 한 질문을 던지는 까닭이 있다. 이유를 말하기 전에 앞서, 질문이 하나 더 있다. 지상으로부터 100m가량 치솟은 곳에 올라가 본 적이 있는가? 있다면 잠시 머무는 게 아니라 대여섯 시간 동안 머문 적이 있는가? 앞선 질문의 답과 마
찬가지로 아마 없을 것이다.

여기에 숨결 하나마다 전기를 떠올리고, 듣기만 해도 아득해지는 높이가 일상인 이들이 있다. 바로 송전탑을 오르내리는 ‘송전 전기원’의 이야기다. 낮게는 30m 높게는 100m에 이르는 높이에, 얼기설기한 철골로 이뤄진 송전탑 위에서 행해지는 노동을 떠올리기란 쉽지 않다. 지난3월 10일, 대림역 인근의 건설노동조합 사무실에서 송전지부 이충구 지회장을 만나 허공을 밟아가며 일하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어보았다.

허공을 밟으며 일하는 사람들
송전탑은 현 전기공급체계에서 널리 활용되는 시설이지만 동시에 그만큼 꺼려지기도 하는 존재다. 송전탑 주위에는 수만 볼트의 고압전기가 흐르고 있어 매우 위험하기도 하지만, 그보다는 고압전기가 주위 환경이나 인체에 부정적인 영향을 주지 않을까 우려하기 때문이다. 이 때문에 송전탑 대부분을 사람들의 눈길이 닿지 않는 곳에 세우다 보니, 최악의 조건에서 작업이 이뤄진다.

“송전탑은 주로 사람들이 오가지 않는 오지나 야산에 세워요. 상황이 이렇다 보니, 일하는 노동자에게도 최악의 현장입니다. 화장실이 급하다고 50~100m 되는 높이를 올라갔다 내려오기는 어렵죠. 그래도 소변이면 밑에 있는 사람들한테 말하고 상공에서나마 해결하는데, 대변은 어쩔 수가 없죠. 그런데 현장 주변에 이동식 화장실이나 간이 화장실도 없어서 불편할 때가 많죠. 이동시간 때문에 식당에 가기 어려우니, 점심도 흙바닥에 앉아 도시락으로 대충 때워요. 어느 계절이고 일하기에는 다 어려워요. 여름에는 폭염 아래에서 일해야 하고, 한겨울에는 산불 위험 때문에 불도 못 피우죠. 화재위험이 없는 고체연료를 사달라고 요구하지만, 비싸다는 이유로 매번 거절합니다.”

주변 지형이나 전압 크기에 따라 높이 역시 달라지지만, 고압 송전탑의 경우 평균 높이가 100m에 달한다. 통상적으로 아파트 1개 층 높이가 약 3m인 점을 고려하면, 사방이 뻥 뚫린 30층짜리 고층 아파트 꼭대기에서 작업하고 있는 셈이다. 게다가 송전탑을 오를 때에는 맨몸이 아니다. 매번 20kg에 육박하는 여러 장비에다가 개당 9kg에 육박하는 애자를 메고 송전탑을 오른다. 그들은 단 한 번의 헛길 질도 허용되지 않는 상공에서 철근을 조립하고, 전선을 연결한다. 감히 그 고단함을 헤아리기조차 어려웠다.

“온종일 위에 있다가 땅에 내려오면 멍해지면서 물먹은 솜처럼 몸이 무거워지는 느낌이 들어요. 송전탑 위에서 하는 일은 다양하죠. 송전탑 건설은 시작이고, 전선을 탑에 걸치는 연선 작업과 선을 잘라서 연결한 뒤 지상으로부터 적절한 높이까지 띄우는 긴선 작업이 있어요. 송전탑 유지보수작업도 있어요. 애자라고 하는 절연체가 있는데요, 보통 교체 주기가 30년이라고 해요. 하지만 오염이 심할 경우에는 그만큼 사용할 수 없죠. 아무래도 비바람이니 자외선이니 하는 온갖 외부환경에 노출되어 있다 보니 부식도 빠르고요. 그래서 주기적으로 애자를 물로 세척하거나 노후된 자재를 교체하는 등의 유지보수 작업을 해요.”

송전탑 위에서 찢기고 데인 몸과 마음
내리쬐는 햇볕에 무쇠나 다름없는 철근도 부식되는데, 하물며 그보다 연약한 사람의 피부가 성할 리 만무하다. 피부뿐만이 아니다. 허공에서 오직 상체의 힘으로만 철탑재를 내려치고 조립하다 보니 쑤시지 않는 데가 없다. 여기서 끝이 아니다. 여름에 햇볕이 있다면 겨울에는 칼바람이 있고, 골병은 추락과 세트처럼 묶여있다.

“사시사철 외부에서 하는 옥외작업이니만큼 기후조건에 영향을 많이 받을 수밖에 없어요. 폭염을 피할 그늘이 없을뿐더러 철탑이 달궈지면서 화상도 많이 입죠. 다량의 자외선에 장시간 노출되니 피부암 등 피부질환의 위험도 크고요. 한겨울도 괴롭기는 마찬가지예요. 겨울에 작업하면 온몸에 핫팩을 붙이고 가요. 그래도 종일 추위에 떨죠. 그러고서 숙소로 돌아오면 얼었던 얼굴이 그제야 녹으면서 벌겋게 달아올라요.

피부질환 외에도 어깨, 척추까지 완전 종합병원이에요. 송전탑을 보면 알겠지만, 발 디딜 곳이 하나도 없어요. 작업하는 내내 어디 모서리에다 발끝이나 발꿈치를 딛고 서서 미끄러지지 않게 온 힘을 줘야 해요. 평지에서 작업하면 물건을 들거나 잡아당길 때, 두 발을 바닥에 고정한 채 일할 수 있지만 우리는 그럴 수가 없는 거죠. 그렇게 무게중심도 못 잡고 팔 힘으로만 작업하다 보니 근육과 뼈 모두 성할 곳이 없어요. 제가 일한 지 30년이 다 돼가는데, 양쪽 회전근 모두 파열돼서 한동안 치료했는데 완치는 안 된 상태예요. 

예전에는 사망사고가 나도 다음날이면 일하러 나갔어요. 30년간 일하면서 눈앞에서 떨어져 죽은 동료만 3명이에요. 추락한 동료에게 겉옷 벗어다 덮어주고, 산에서 들고 내려오는 것도 다 했어요. 그래도 먹고 살아야 하니까 다음 날이면 또 송전탑을 올랐죠.”

송전 전기원의 노동은 그 자신의 생활을 가능하게 할 뿐만 아니라, 우리의 일상 역시 가능하게 한다. 이처럼 사회의 필수재인 ‘전기’를 제공하는 이들이지만, 정작 그들의 일상은 당연하지 않다. 2년 전부터 안전사고를 대비해 수평로프와 추락망 그물을 설치하기 시작했지만, 여전히 노동자의 안전보다 이윤이 앞서기 때문이다.

“무엇보다도 중요한 건 작업 공기(공사기간)를 느슨하게 잡는 거예요. 공기가 늘어나면 그만큼 소요되는 예산이 많기 때문에 무리하게 공기 단축을 하려고 해요. 그러다 보면 당연히 사고가 나죠. 안전 관리감독자 수도 늘려야 해요. 우리가 송전탑 하나를 작업 완성하고 다음 송전탑 작업을 하는 시스템이 아니거든요. 몇 개의 작업현장에서 일하는 거죠. 예를 들어 송전탑 10개를 작업한다고 했을 때, 한데 모여 작업하는 게 아니고 산봉우리마다 떨어져서 작업해요. 그럼 총 10개의 현장이 있는데 무슨 수로 소장 한 명이 모든 현장의 안전을 점검하고 관리할 수 있겠어요? 송전탑별로 관리자를 두거
나 아니면 송전작업은 보통 팀 단위를 이뤄작업하니 팀별로 관리자를 두는 게 맞죠. 하지만 현장의 안전은 작업자들에게만 온전히 맡겨놓고 있어요. 

송전작업은 안전벨트 하나만을 몸에 매달고, 온몸을 공중에 띄운 채 두 손으로 하는 작업이에요. 그 높은 곳에서 믿을 건 안전벨트 하나밖에 없어요. 그러니 자기 몸에 꼭 맞아야 하죠. 그런데 업체는 값싸고 허술한 안전벨트 하나 사서 던져주고, 제공했다고 서명받고 사진 찍으면 끝이에요. 그저 안전관리비 집행했다는 보고에 불과한 겁니다. 그리고 상용직이면 안전장비 관리 담당자도 있고, 때에 맞춰 교체도 할 건데 일용직이다 보니 그럴 수가 없어요. 보통 3일에서 7일 이렇게 짧게 여기저기 현장을 옮겨 다니는 일용직이다 보니, 안전벨트는 개인이 구매해서 사용하는 게 더 편해요. 현장에 갈 때마다 안전벨트를 받는다 치면 못해도 1t은 될 거예요. 한국전력공사(이하 한전) 측에서는 우리더러 안전장비 상태를 확인하라고 하는데, 작업장비의 상태나 교체 시기를 판단할 수 있는 기관이나 기준이 없어요. 그러다 보니 관리자나 개개인이 알아서 헤지거나 낡은 정도를 맨눈으로 판단하고 바꾸는 실정이죠.”

이 일이 우리를 먹이고 살리려면
지상 수십 미터 철탑에 오르는 것만이 송전 전기원의 고충은 아니다. 올려다보기만 해도 어질해지는 높이에서 벨트 하나에 몸을 맡기는 것도, 살이 익다 못해 근육이 찢어지고 뼈가 비틀어지는 것을 감내할 수 있는 이유는 ‘먹고 살기’ 위해서다. 그런데 이마저도 녹록지 않다.

“IMF 이후 계속 임금을 깎였죠. 10년 가까이 평균 노무단가가 30만 원이었는데, 몇년 전 노동조합이 생기면서 임금 인상이 이뤄졌죠. 문제는 작업일수예요. 1년 중 성수기보다 비수기가 더 많아요. 한전에서 발주하는데 1년 중 상반기에는 5, 6월 하반기에는 10, 11월에 주로 일이 몰려있어요. 

성수기보다 비수기가 더 많아, 이 일만 해서는 먹고 살기 어려우니 대부분 비수기 때 다른 일을 하러 가죠. 철골작업이나 건물 유리닦기, 전차선 작업 등 고공에서 할 수 있는 일이라면 뭐든 해요. 요즘에는 지자체에서 주력하고 있는 출렁다리 사업 현장에 자주 가요. 고공작업 외에 중량물 취급도 익숙하니 용광로 교체작업에 나가기도 하고요. 이마저도 여의치 않으면 인력소에서 용역을 구해 부족한 수입을 메꿔요.

현재 전국의 송전 전기원은 300명 정도 되는데 평균 연령이 50세예요. 한전에서 고시한 정년은 만 60세에서 지난 2월 17일 이후 만 65세로 늘었어요. 그렇다 해도 새로운 인력투입은 거의 없는 게 문제예요. 워낙에 일은 고된데 처우는 열악하고 일거리도 많지 않아서 그렇죠. 지금 상황을 보면 5년 후에는 70%, 8년 후에는 80%의 송전 전기원이 사라져요.”

노동조합은 송전 전기원의 열악한 처우 개선을 위해서 상용직 전환을 요구하고 있다. 한전 측의 발주금액을 늘리는 등의 방식을 통해, 한전 송전정비협력회사의 상용직으로 일할 수 있게 해달라는 것이다.

“현재 실제 시공인력은 턱없이 부족한데 자격증을 가진 사람은 1만 명 가까이 돼요. 대학생이나 포크레인 기사, 목욕탕 관리사까
지 자격증이 있어요. 현재 송전 관련 자격증이 민간자격증인 터라, 6주간 교육이 끝나고 자격증이 발급되면 자격증 브로커들이 
얼마간의 돈을 주고 그 자격증을 관리하는 거죠. 일부 전기 협력업체들은 이런 유령자격증을 동원해서 입찰에 참여해요. 국가자
격증으로 전환해 국가가 주관하고 관리해야 합니다. 

시공업체도 마찬가지예요. 시공능력이 없다면 입찰도 막아야 해요. 현재 송전작업은 지중배전이나 변전과 달리 전기공사업만 등록돼 있으면 누구나 입찰에 참여할 수 있어요. 전국의 전기공사업체만 해도 1만 7~8천 개는 되는데, 실제로 작업할 수 있는 업체는 100개도 채 되지 않아요. 이렇다 보니 온갖 페이퍼컴퍼니나 유령자격증이 난립하고, 불법 하도급이 남발하는 탓에 노동자들의 처우는 날로 열악해져요. 업체의 시공능력 검증을 제대로 하고, 이후에도 지속적인 관리가 필요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송전전문업체 등록제를 시행해야죠.”

인터뷰가 끝나갈 무렵, 쉬는 날 무엇을 하며 시간을 보내는지 물었다. 그러자 ‘취미는 사치’라는 답변이 돌아왔다. 송전 전기원의 삶에서 사치는 취미 하나만이 아니었다. 가족들과의 관계도 사치라 했다. 어디 그뿐이랴. 안전하게 일할 수 있는 작업환경, 고된 노동의 대가, 우리 사회의 필요한 빛을 책임진다는 자부심도 모두 사치다. 다른 사람들처럼 주말이면 가족들과 함께 꽃도 보고, 이런저런 이야기도 나누고 싶다는 송전 전기원들의 소망이 사치가 아닌 그저 보통날의 모양새가 되길 바란다.

[동아시아 과로사통신] 일본 이주 노동자의 과로사 / 2021. 04

[동아시아 과로사통신]

일본 이주 노동자의 과로사

마코토 이와하시 POSSE 활동가

 

1990년대에 한국에서 시작한 산업연수생제도는 일본의 제도를 그대로 가져와 적용한 것이었다. 일본과 한국은 이주노동자 고용 제도 측면에서 많은 부분을 공유하고 있고, 그 공유하는 부분은 안타깝게도 이주노동자들을 저임금 노동 영역에 머물게 하고, 업무 중 사고와 질병으로 이어지게 하는 지점이다. 이번 동아시아 과로사통신 기사에서는 일본 이주노동자들의 과로사 및 산재 사망 사고를 짚어본다. (편집자 주)

이주 노동자의 산업재해로 인한 사망과 과로사는 일본에서 새로운 현상이 아니다. 법무부에 따르면 2010년부터 2018년까지 기술 인턴으로 일본에 온 174명의 이주 노동자가 뇌심질환, 자살, 질병 사망, 산업재해 사망 등 다양한 이유로 목숨을 잃었다. 그중 1건은 동사였고, 174명 중 118명은 사망 당시 아직 20대였다.

기술이전이라는 포장
실질은 저임금 노동자 양산

국가가 후원하는 기술 인턴 교육 프로그램은 1993년부터 시행되고 있으며, 공식적인 목표는 중국, 베트남, 네팔 등 동남아시아의 노동자가 일본에서 3년에서 5년동안 해당 프로그램을 통해 일할 수 있도록 하여 개발도상국으로 기술을 이전하는 것이다. 그러나 이것은 실질적으로 고령화로 인한 노동자 부족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수단으로 활용되어 왔으며, 또 이로 인해 다수의 노동권 및 인권 침해 사건이 보고되고 있다. 

노동기준청의 조사 보고서에 따르면, 2019년에 조사를 실시한 약 70%의 사업장에서 불법 초과 근로, 미지급 임금 등 근로기준법 위반 사례가 다수 적발되었다. 이렇게 많은 위법 사례가 적발되는 주된 이유는 해당 프로그램이 
인턴(본질적으로 합법적인 노동자임에도 불구하고)이 다른 사업장으로 이직하는 것을 허용하지 않기 때문이다. 따라서 인턴이 탈출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 고국으로 돌아가는 것이기 때문에 고용주가 인턴을 착취하기에 상당히 용이하다. 하지만 인턴 노동자 대부분은 일본에 오기 위해 집을 팔거나 돈을 빌린 경우가 많아서 빚을 갚을 정도로 돈을 벌 때까지 고국에 돌아갈 수 없다. 

그렇기 때문에 많은 사람들이 극도의 저임금으로 엄청나게 긴 시간을 일하고 있다. 일본 기후현의 의류 사업장에서 일하는 중국인 인턴들은 몇 년 동안 휴일이 거의 없다시피 일하면서도 그 지역의 최저임금이 시간당 800엔이었을 당시 시간당 400엔을 받았다. 그들은 약 630만 엔의 초과 근로수당을 받지 못했다. 

지속되는 이주노동자 인턴의 산재 사망

지속적인 극도의 장시간 노동으로 인해 인턴 노동자들 가운데 과로로 인해 사망한 사건이 다수 발생하고 있다. 2010년부터 2017년까지 41명의 인턴이 뇌심혈관 질환으로 사망하거나 급사했다. 이 밖에도 14명이 자살했다. 이러한 경우 업무 관련 가능성이 상당히 높지만, 업무 관련성이 공식적으로 인정되기 위해서는 피해자(과로사의 경우, 피해자의 가족)가 정부에 보상 청구 신청서를 제출해야 한다. 또 노동자들이 신청을 했다고 해서 신청한 모든 사건이 과로사로 공식 인정받는 것은 아니다. 실제로 피해자 가족이 일본어로만 작성된 신청서를 현지 노동 기준청에 제출하는 것은 여전히 너
무나 어렵고 피해자 가족이 보상을 받는 경우는 극히 드물다. 

2014년부터 2017년까지 외국인 인턴 노동자 10만 명 중 평균 3.7명이 산업재해로 목숨을 잃었고, 일본인 노동자의 경우 10만 명 중 1.7명이 목숨을 잃었다. 이는 분명 외국인 인턴 노동자들이 일본인 노동자들보다 훨씬 더 위험한 환경에서 일하도록 강요당하고 있다는 것을 뜻한다. 

일본 정부의 책임 있는 자세 필요 

국제사회에서도 해당 프로그램을 규탄하고 있다. 깨끗한 의복 캠페인(Clean Clothes Campaign, 1989년 네덜란드에서 결성된 의류업계에서 가장 큰 노동조합 및 비정부 기구이며 의복 및 운동복 산업의 노동조건 개선에 중점을 둔 시민 사회 활동을 목표로 한다)의 동아시아 긴급 호소 코디네이터인 존슨 양(Johnson Yeung)은 “UN 인권 이사회는 수년간 기술 인턴 교육 프로그램(Technical Intern Training Program)을 비판해왔지만 일본 정부는 여전히 이주 노동자의 권리를 보호하고 프로그램을 개선하기 위해 필요한 조치를 취하지 않고 있다. 정부는 노동력 부족을 완화하기 위해 이주 노동자에 의존하고 있지만 착취 근절을 거부하고 있다.” 라고 지적하였다.

[기자회견] 산재보험 전면 적용! 안전운임제 전면 확대!화물연대본부 산재노동자 추모주간 선포 기자회견

산재보험 전면 적용! 안전운임제 전면 확대!

화물연대본부 산재노동자 추모주간 선포 기자회견

 

일시 : 2021419() 오전10

장소 : 서울지방고용노동청(서울)

[취지발언] 화물연대본부 이봉주 본부위원장

[투쟁발언] 공공운수노조 김태균 노동안전보건위원장

[정당발언] 정의당 강은미 국회의원

[시민사회단체발언] 한국노동안전보건연구소 이나래 상임활동가

[현장발언] 화물연대본부 김명섭 전북지역본부장

[기자회견문 낭독] 화물연대본부 박재석 사무처장

 

기자회견문

산재보험 전면 적용! 안전운임제 전면 확대!

화물노동자에게 권리를! 시민에게 안전을!

 

2020년 화물연대 조합원 중 사망자 30, 업무상재해사망 9명 추정

화물노동자는 사고 위험 높지만 산재가입대상에서 배제되어 있다.

 

2020년 화물연대 조합원 중 30명이 사망했다. 이 중 업무상재해사망은 9명 정도로 추정된다. 이를 사망만인율로 환산하면 4.5이다. 2020년 우리나라 전체 산재사망만인율은 1.09이다. 이에 비해 4배 가량 높은 수치이다. 전체 화물노동자에 대한 산재사망통계를 찾으려 했으나, 고용노동부의 2019년 산재통계에는 육상 및 수상운수업으로 묶여있어서 도로화물운송업만의 정확한 수치를 찾을 수 없었다. 화물노동자가 얼마나 죽고 다치는지 공식적인 통계 자체도 없는 것이다.

화물연대가 2014년부터 조합원 사망사고 통계를 축적하여 분석한 결과, 2020년 우리나라 전체 산재사망만인율이 1.09인데 비해 화물노동자의 산재사망만인율은 6.86으로 일반노동자의 6.2배가 넘는 수치로 나타났다. 고용노동부가 발표한 산업재해현황분석과 비교한 화물자동차운수업 6.9배와 비슷한 수치다. 도로뿐만 아니라 작업장 내에서 발생하는 상하차 과정 등의 사고가 빈번하지만, 대부분의 화물노동자에게는 산재가 적용되지 않아 산재통계로 화물노동자의 위험을 파악할 수조차 없는 실정이다.

화물노동자는 살인적인 장시간 노동, 열악한 노동조건, 위험한 도로환경 등 달리는 시한폭탄처럼 사고위험에 노출되어 있지만 여전히 대다수는 산재보험 가입대상에서 배제되어 왔다. 오늘 우리는 세계 산재노동자 추모의 날을 맞이해 화물노동자의 산재실태를 알리고 제도개선을 촉구한다.

 

화물노동자 산재보험 일부적용 시행했지만 20%에도 못미쳐,

전속성 기준 폐기하고 화물노동자 산재보험 적용 확대하라.

 

산재보험 적용확대에 포함된 화물노동자는 안전운임 적용 품목인 컨테이너, 시멘트와 안전운송원가 적용 품목인 철강재, 그리고 위험물질을 운송하는 화물노동자이다. 20207월부터 산재보험 의무가입대상으로 적용되고 있다. 그러나 전체 40만 화물노동자 중 산재보험이 적용되는 화물노동자는 75천여 명에 불과해 여전히 대다수 화물노동자는 산재보험 사각지대에 놓여있다.

최근 고용노동부는 그나마도 전속성 기준을 충족하는 사업장에 한해서 산재보험을 적용하겠다는 입장으로 돌아섰다. 화물연대와 산재보험 의무적용 관련 협의에서 했던 약속을 헌신짝처럼 내팽개친 것이다. 화물연대는 화물노동자의 업무 특성상 회차, 혼적이 많기 때문에 주사업장이 있는 경우에는 같은 품목에 대해서 산재보험 적용을 요구한 바 있다. 고용노동부 역시 이를 이행하겠다는 약속을 한 바 있다. 그러나 다시금 전속성 기준을 이유로 제도의 사각지대를 방치하다 못해 다시 늘리는 행보를 하고 있다. 고용노동부의 이 같은 대응은 75천여 명 중 실제 산재보험 의무적용이 가능한 화물노동자가 절반도 채 안되는 결과로 이어질 것이다.

화물연대는 전속성 기준으로 하더라도 지금 당장 적용이 가능한 품목과 차종을 이미 제시한 바 있고 정부는 화물노동자들의 산재보험 확대방안 마련을 약속한바 있다. 시급히 전속성 기준을 폐기하고. 화물노동자의 산재보험 확대 방안을 마련해야 한다.

 

도로와 시민의 안전을 위한 안전운임제,

화물노동자와 도로안전을 위해 제도개선이 필요하다.

 

화물연대는 출범 이후 18년 간의 제도개선 투쟁을 통해 안전운임제를 법제화했다. 2020년 첫 시행된 안전운임제는 화물노동자의 운임과 노동조건이 도로안전과 밀접한 관계가 있다는 점에 착안한 제도이다. 화물노동자가 위험한 운송형태로 내몰리는 근본적인 원인은 낮은 운임 수준과 이에 따른 장시간노동에 따른 것이다. 화물노동자가 안전하게 운송할 수 있기 위해서는 운임을 정상화하고 과로·과적·과속을 하지 않더라도 먹고 살 수 있는 소득수준을 보장받아야 한다. 그래야 도로의 안전이 높아지고 화물차 사고가 줄어들 수 있다.

안전운임제는 그 의의에도 불구하고 3년 일몰제라는 한계에 갇혀있다. 화물연대는 올해 안전운임제 일몰제 폐기를 중심으로 안전운임제 안착과 확대를 위한 투쟁에 전면적으로 나설 것이다. 지금까지 그래왔듯이 화물연대는 또 한번 한계를 돌파하고 화물노동자의 생존권을 쟁취하기 위한 한걸음을 내딛을 것이다. 정부와 정치권은 안전운임제 제도개선을 위해 적극적인 태도로 나서야 할 것이다.

모든 화물노동자의 안전뿐만 아니라 도로와 시민의 안전을 위해 안전운임제 확대가 필요하다. 화물연대의 도로안전을 위한 투쟁을 산재노동자들을 추모하고 기억하며 약속한다.

화물노동자의 노동안전 제고와 산재사고 감축을 위해 우리는 아래와 같이 요구한다.

하나. 정부는 산재보험법을 전면 개정해 전체 화물노동자에게 산재보험 적용하라!

하나. 정부는 화물노동자의 안전하게 일할 권리 보장을 위해 산업안전보건법에 화물노동자를 포함하라!

하나. 정부는 안전운임제 확대를 위한 법제도 개선에 나서라!

 

2021년 419

화물연대본부 산재노동자 추모주간 선포 기자회견 참가자 일동

[현장의 목소리] 기나긴 10여 년의 투쟁을 돌아보다 - 유성기업 영동지회 김성민 교육부장 인터뷰 / 2021. 04

[현장의 목소리]

기나긴 10여 년의 투쟁을 돌아보다 

- 유성기업 영동지회 김성민 교육부장 인터뷰

거니 회원, 보건의료학생 매듭

긴 시간동안 수많은 투쟁과 상처를 안고 온 유성노조 노동자들의 삶은 어땠을까. 그리고 지금의 심정과 향후 계획은 무엇일까. 지난 2월 2일, 수많은 질문의 답을 듣기 위해 유성기업 영동공장에서 금속노조 유성기업 영동지회 김성민 교육부장을 만났다.

노동과 투쟁의 하루일과
‘유성기업’하면 노조파괴부터 먼저 떠오른다. 회사와 국가는 잔인하게 노동자의 일상을 파괴해왔고, 자본은 자신이 짠 일정과 강도로 노동자를 유도하며 성과로 하루 일과를 점검했다. 이에 맞서 투쟁해온 유성노조 노동자들의 노동은 어떤 모습일까.

“주조부에서는 합금을 제작해요. 우선 쇠를 녹여서 쇳물을 만들고 니켈·망간·크롬 등을 섞어서 합금을 만드는 거죠. 금형 틀에다가 넣으면 동그랗게 나오는데, 이걸 생산부에 넘기면 가공을 시작해요. 면을 깔끔하게 만들고 피스톤을 왔다 갔다 한 뒤 검사하고 내 보내는 거죠.”

출처: 거니

현재 정비과에 소속돼 노동 중인 김성미 교육부장은 이전까지 노조간부로도 활동했다. 그 간의 투쟁이 어떤 식으로 전개됐는지 궁금했다.

“작년 12월 31일까지는 출근투쟁(이하 출투)을 했어요. 2011년 처음 투쟁할 때는 회사가 용역을 세우고, 매일 몸싸움 하는 게 일이다보니까 출투하기가 어려웠대요. 조합원들은 두려움이 없다는 건 거짓말이죠. 언제든지 해고될 수 있다는 공포가 있는 걸요. 2012년부터는 재정비하고 현장조직화를 했어요. 어용으로 넘어간 사람들을 금속으로 오게 하는 거죠. 2015년까지는 현장에서 싸우는 게 자주 있었어요. 그러다 2016년 3월에 한광호 열사가 목숨을 끊었어요. 이를 계기로 조합원들이 다시 투쟁해야 한다고 마음 먹고, 내부에서 관리자하고만 싸우는 문제를 넘어 사회화 투쟁으로 가는 것에 동의했죠. 한광호 열사가 돌아가신 날부터 서울 상경 투쟁을 시작했고, 투쟁은 시청과 양재동으로까지 이어졌어요. 2017~2019년 초까지 조를 짜서 농성한 양재동 투쟁 때는 현대차가 직접 개입한 걸 두고 볼 수 없다해서 새벽같이 출투하고, 농성장에 와서 아침 먹고 점심에는 대법원 가서 피켓 들고 그랬어요. 그러다 2016년 11월 산재인정을 받았고, 다음 해 2월에는 유시영 대표가 구속됐죠.”

심야노동 철폐와 주간연속2교대제
야간노동의 유해함은 모두 알고 있다. 다만 야간수당을 받아야만 하는 경제적 이유나 지금 당장의 즉각적인 피해는 없는 것처럼 보인다는 이유로, 우선순위에서 밀려났을 뿐이다. 그러나 정말 심야노동은 노동자의 몸에 아무런 영향을 끼치지 않았을까. 김성민 교육부장의 대답은 ‘아니었다’이다.

“야간작업에 들어가면서 괜찮다고 하는 사람은 본 적이 없어요. 저도 너무 힘들어서 3년 밖에 못 하겠더라고요. 야간작업에 들어 갈 때는 출근길에 누가 뒤에서 라이트를 조금만 비춰도 화가 났어요. 스트레스가 상당하니 사소한 일에도 화가 나는 거죠. 그리고 야간작업을 하면 패턴이 자주 바뀌니 만성 피로가 생겨요. 낮에 농사 일손을 돕는다거나 가족들하고 시간을 보내는 등의 다른 일 들은 아무것도 못했죠. 너무 피곤해서 퇴근하면 잠만 자게 되고 그러다 조금 있으면 출근해야 하고 그러니까요.”

유성기업에서는 야간노동으로 노동자가 사망했다. 함께하던 동료가 영영 눈을 뜨지 못하는 것을 보며, 노조는 노동시간 문제와 건강권을 연결한 투쟁을 전개했다. 그렇게 심야노동 철폐의 요구와 투쟁이 시작됐다.

“조합원 중 한 명이 야간노동을 마치고 돌아오는 버스에서 못 내렸어요. 차 안에서 돌아가신 거예요. 당시에는 산재고 뭐고 몰랐 어요. 50대였는데 죽을 수도 있구나 그런가 보다 했어요. 그러다 제가 지회장을 맡고 나서 29살짜리 조합원이 자다가 죽은 거예요. 산재 신청을 했는데 불승인 나면서 회사가 줬던 임금을 도로 뺏어갔어요. 그걸 갚기 위해서 3주 연속으로 야간에 들어갔었대요. 그렇게 들어가면 안 되거든요. 이후로 우리에게 숙제가 남았어요. 왜 사람들이 죽는 걸까, 우리는 뭘 해야 할까하는 숙제요.

심야노동이 문제라는데 그러면 어떻게 해야 하나 고민했죠. 저 역시도 야간노동을 안 한다는 게 상상이 안 됐거든요. 그러다 주간 연속 2교대제를 알게 되면서, 저도 공부하고 노조 사업에도 포함하기 시작했어요. 주간연속 2교대제의 핵심은 월급제와 심야노 동 철폐라고 생각해요. 2009년에 실물경제 위기가 오면서 야간 잔업도 없고 퇴근 시키더라고요. 그러면 월급이 80~100만원씩 줄어드는 거죠. 오히려 이때 주간연속 2교대제 논의가 탄력을 받았어요. 사람이 죽었을 땐 초반에 반짝하고 말다가 실질적인 임금이 줄어드니까 문제가 되는 거예요. 그래서 기본급 인상과 잔업 줄이기를 동시에 진행하면서 주간연속 2교대제를 요구했어요.”

노조파괴가 끼친 영향들
노조파괴로 개별화·파편화된 노동자들은 사측의 징계를 피하고자, 생존전략의 일환으로써 본인의 노동 강도를 증가시킬 수밖에 없었다.

“2011년에 생산수량이 20~30% 정도 증가 했어요. 노조가 깨지니까 어용으로 간 사람들이 회사에 잘 보이기 위해서 생산수량을 높일 수밖에 없었던 거죠. 거부하면 징계하겠다는 식으로 나오니까요.”

사측은 CCTV 설치를 비롯해 일상적 감시· 민/형사소송·임금 삭감 등 온갖 방법으로 조합원의 일상을 파괴했다. 이렇게 자행된 조직적이고 지속적인 탄압은 조합원들의 몸과 정신 모두에 비가역적인 악영향을 끼쳤다. 탄압의 결과는 장소를 가리지 않았고, 스트레스는 가족에게로의 폭력으로까지 나타나기도 했다.

“누구도 우리의 억울함을 해결해 줄 수 없다는 막막함이 가장 힘들었어요. 월급을 받았더니 이유도 없이 삭감돼 있는 거예요. 항의 하면 지금 일하는 시간이니까 쉬는 시간에 오라고 해요. 당연히 10분 안에 다 이야기 못하죠. 그런데도 쉬는 시간 끝나면 작업장 이탈이라고 하면서 가라 하죠. 노조파괴의 핵심은 법으로 가는 거예요. 해고자들이 대법원 판결을 받으려면 5년이 걸려요. 법으 로 해결하려면 굉장히 긴 시간이 걸려요. 그나마 버텨서 이기면 다행인데, 중간에 포기해버리면 회사가 이기는 거잖아요. 그러니 더 힘들죠.

CCTV 감시는 회사가 책임 전가를 위해서 일상적으로 하는 행동이거든요. 그래서 우리끼리 농담반 진담반으로 얘기하기도 했어요. ‘조용히 얘기해. 누가 있을지도 몰라’ 이런 식으로요. 스트레스 받으면 모든 일에 다 짜증이 나잖아요. 평소라면 안 그랬을 텐데 아 이들이 조금만 떠들어도 화내고, 가정폭력도 일어나고 그랬어요. 노조파괴가 사람도 파괴하고 가정마저 파괴했어요.”

떠난 사람들이 남긴 숙제
유성기업 노동자들은 고(古) 한광호 열사 를 비롯해 여러 동료를 떠나보냈다. 노조 대의원으로 활동했던 열사에게 회사는 수많은 소송과 징계, 폭행 등 갖은 탄압을 자행해왔다. 결국 2016년, 열사는 죽음으로 내몰렸다. 떠나간 사람을 안고 남긴 숙제를 풀어나가며, 투쟁을 지속하는 시간을 노조는 어떻게 보냈을까.

“제가 지회장을 한 번 더 맡았을 때 저희 간부가 지게차에 치여 죽었어요. 한광호 열사도 돌아가셨고요. 돌아가신 분들이 남기고 간 것들이 있었어요. 첫 번째는 심야노동이었고 두 번째는 재해에 의한 사고였죠. 누가 지게차에 치여 죽을 줄 알았겠어요. 그런 데 적재물은 2단으로 쌓았지, 사람이 지나갈 길은 없지 이런 상황이니 그렇게 된 거예요. 마지막으로는 정신적 재해였어요. 노조 파괴에 따른 스트레스 때문에 사람이 죽어 나가니까요. 그래서 해고자들 중 일부가 개별적으로 산재신청을 했어요. 문제는 굉장 히 오래 걸린다는 거예요. 그나마 한광호 열사 경우에는 빨리 나온 편이라고 하더라고요. 사람이 죽는 데에는 그 이유가 있는 거 고, 그 이유를 밝히고 해결하는 게 남아있는 사람들의 숙제죠. 이런 것들을 노동조합이 적극적으로 요구해야 한다고 생각해요.”

언제부터인가 우리 사회에서는 죽음과 고통의 역치가 너무나도 높아졌다. 산재사망은 그동안 내재된 문제들이 곪다가 터진 가장 극단적인 형태임에도 불구하고, 누군가가 단식을 하거나 죽어나가야만 겨우 이슈화 됐다. ‘자본주의 사회에서는 산재로 사람이 하루에 7~8명 죽는 것보다, 주식이 1% 내려가고 올라가는 게 훨씬 더 큰 문제다’는 김성민 동지의 말이 이를 단적으로 반영한다. 이러한 사회에 ‘감수성’과 ‘경종’이 갖는 의미는 무엇일까.

“예전에는 저 역시 이 정도 힘든 일은 좀 견뎌야지, 참고 일하면 안 되나? 이렇게 생각 하고 살았어요. 그러다 노동조합을 하면서 감수성이란 걸 배운 거 같아요. 평등 감수성, 성인지 감수성 이런 감수성을 가진 구성원을 키워내는 게 필요하다 생각해요. 누군가의 노동문제가 당장 내 문제라는 인식이 필요하다는 거예요. LG 트윈타워에서 투쟁하는 노동자들이 얼마나 힘들까 이런 생각과 감수성이 있어야 해요. 노동조합이 할 수 있는 것도 그런 거잖아요. 양재동 투쟁 때처럼요. 저기서 힘들게 투쟁한다더라 우리가 뭐라도 해야 하지 않겠냐 하는 생각을 자꾸 만들어주는 게 필요해요. 1등만이 옳고, 경쟁체제가 당연하다는 사회에 경종을 울릴 수 있는 것들을 계속해서 해나가는 거죠.”

투쟁의 의미와 이후의 과제
연대의 힘으로 버티고, 투쟁으로 이끈 변화들이 많다. 유성기업 노조 조합원들이 꼽는 가장 큰 변화는 무엇일까.

“가장 먼저 떠오르는 건 현장에서 자율적 행동이 가능하다는 거예요. 지금도 일하는 시간에 이렇게 인터뷰하고 있잖아요. 지금은 조합원들도 자율적 행동이 당연한 거라고 생각해요. 투쟁에서 졌으면 이렇게 못했을 걸요? 다음으로는 비록 조합원의 수가 절반 으로 줄어들었지만 노동조합을 끝까지 지켰다는 거죠.”

작년 연말에 이뤄졌던 합의안에는 감시카메라 철거와 부당노동행위 책임자 처벌·조합원 트라우마 심리 치유사업 지원·노조 간 차별 금지·민형사상 고소/고발 취하·주간연속 2교대제 도입을 위한 실행위원회 가동 등이 들어있다. 앞으로의 노조에게는 어떤 과제가 남아있을까.

“악은 징벌하고 선은 복을 받아야 하는데 안 되는 거잖아요. 이제 일상을 찾아가려고 하는데, 산 넘어 산이예요. 왜냐하면 어용을 극도로 싫어하는 사람도 있지만, 현장 조합원들 입장에서는 그래도 10년째 같이 일을 한 사람들이니 아예 얘기를 안 할 수는 없잖 아요. 이런 갈등을 치유하고 회복시키는 게 가장 어려운 일이라 예상해요. 이제는 주워 담는 게 필요한 거 같아요. 서로간의 감정싸움도 추스르고, 투쟁하면서 미뤄뒀던 치유도 노조가 담아야 할 때인 거죠.”

오래된 탄압은 노동자들을 만성적 긴장상태로 내몰았다. 그간의 묵은 감정을 추스르고 상처를 치유하며, 하고 싶은 것을 찾을 충분한 시간이 필요하다. 그들이 앞으로 꿈꾸는 소망이나 계획이 궁금했다.

“10년이나 지났잖아요. 항상 불안하게 살다 보니 아이들이 어떻게 컸는지도 잘 몰라요. 아직은 조합원들도 자기가 뭘 하고 싶은지 잘 모르죠. 그냥 얼마 안 있으면 정년퇴직인데 돈 벌어야지 그런 말들을 나누곤 해요. 지금 조합원들 평균 연령이 10년 뒤면 정년 퇴직을 할 때니까요. 아무래도 제일 하고 싶은 건 쉬는 거죠. 앞으로는 충분히 휴식도 취하고, 가족들하고 놀러 가고 그러고 싶어 요. 개인적으로는 지금 현장에 돌아온 지 1년 됐거든요. 1년 새에 조합원들하고 많이 친해졌어요. 임원하다보면 아무래도 그러기 힘드니까 지금의 일상이 좋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