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평] 잘 아플 권리 / 2021. 04

[직업환경의사가 만난 노동자 건강 이야기] 반증의 삶 그리고 일 / 2021. 04

[직업환경의사가 만난 노동자 건강 이야기]

반증의 삶 그리고 일 

송윤희 회원, 직업환경의학 전문의

본 글은 영화 현장 노동자의 이야기를 담았으나 비교적 꾸준한 작업이 가능했던 숙련된 경력자의 이야기로, 전체 영화 현장의 노동을 대변할 수 없음을 밝힌다. 현장 노동의 문제와 노동자의 건강을 객관적이고 포괄적으로 들여다보는 것이 〈직환의가 만난 노동자 이야기〉 이지만, 필자는 이 글에서 매우 개인적이고 주관적인 시각으로 한 동료의 이야기를 담았다. 이는 현재 의사이면서 영화 각본, 감독의 일을 계속 추구하는 사람으로서 노동자이자 ‘친구’ 인 사람의 이야기를 하고자 했기 때문이다. 일터 독자들의 양해를 미리 구한다.

아주 오랜만에 한 ‘영화 노동자’를 만났다. 9년 전 나와 함께 영화 학교에서 졸업작품으로 단편영화를 쥐어짜 만든 촬영감독이었다. 그는 매우 건강해 보였고 잘살고 있는 듯했 다. 그와 같이 양고기를 먹으며 근황을 나눴다. 이제 40대에 들어서는 우리는 영화업에 계속 발을 담을 것인가, 아니면 다른 살 궁리도 같이 강구할 것인가를 고민하는 나이대가 됐다. 다행히도 그는 계속 촬영을 할 생각인 듯했다. 나는 이미 생계로써 의사로 일하고 있고, 다만 언제 과연 ‘감독 입봉’을 할 수 있을 것인가를 고민하고 있다. 그 말인즉슨, 우리 둘 다 아직 꿈의 ‘감독’ 직에 입봉하지 못 했다는 뜻이다. (이 짠한 문장에 침울하지 않아도 된다. 글을 끝까지 읽으면 그 이유를 알게 될 거다.)

우리가 흔히 아는 유명한 영화감독들과 A급 촬영·미술·조명·음악감독들을 영화계에서 는 ‘오야지’라고 부르는데, 그들은 이 분야에서 어느 정도 자리를 잡은 이들이다. 오야지 밑에서 노동과 기술을 제공하는 팀원들은 ‘언제까지 영화 일을 할 수 있을까?’를 고민하는 비정규 노동자들이다. 즉 아직 자기 이름(브랜드)으로 자리 잡지 못한 영화계 노동자들이다. 여전히 꿈을 꾸고 하고 싶은 일을 하고 있지만 불안한 청년, 아니 중년들이 어떻게 살아가는지 한 번 이야기 나누고자 한다.

한참 이야기가 무르익고 배도 불러오자 나는 솔직하게 궁금한 걸 물었다.

“K야 좀 실례일 수도 있는데, 궁금하다. 너 정도 경력이면 페이가 어떻게 돼?”
“회당 45~50만 원 정도요. 드라마랑 영화랑 비슷해요.”

나쁘지 않은 페이인 것 같았다. 그는 현재 제1 카메라맨이다. ‘퍼스트’라고도 하는 이 직무는 카메라 옆에서 계속 수동으로 초점을 맞추는 일이어서, 매우 숙련된 기술과 경력을 요구하는 업무다. 즉 가장 중요한 카메라 포커스 플레이어다. 얼핏 듣기에 일당이 꽤 괜찮은 것 같지만, 촬영이 보통 아침 7시에 집합하고 밤이 되어서야 끝나는 강행군인 걸 생각하면 꼭 그렇지만도 않다.

“그래도 이제 하루 촬영시간이 딱 정해져 있잖아.”
“네. 영화는 14시간이고요, 드라마는 16시 간이에요.”

나는 조금 놀랐다. 식사 시간을 빼고는 하루 12시간, 14시간의 장시간 노동이었다. 몇몇 기사를 보면 아침에 시작해서 저녁 먹을 즈음에 끝난다던데, 아마 그런 사례는 드물고 아직은 최대 허용 촬영시간을 다 써야 하는 현장이 많은 듯했다. 고(古) 이한빛 PD의 사건 이후, 지난 몇 년간 촬영 현장이 매우 좋아졌다고 해도 간신히 수면시간 정도를 확보해준 데 불과한 것이다.

“그럼 밤에 끝나면 영화사에서 택시비는 다 챙겨주는 거야?”
“아, 다 포함이에요. 식대랑 교통비 다요. 그래서 다음 날 촬영 있으면 근처에서 잠만 자고, 다음 날이 쉬는 날이면 택시 타서 집에 가고 그래요.”

예전에 다른 동료가 한 말이 기억났다. 그도 촬영팀이었는데, 촬영에 들어가면 짧게 군대 가는 느낌이라고 했다. 주변 지인들과 연락도 두절되고, 작품 촬영 말고는 모든 개인적인 일들이 멈추기 때문이라고 그랬다. 힘든 스케줄을 소화하고 있었음에도 다행히 K는 좋아 보였다. 1년에 들어가는 대략 두 개의 작품을 하 는 7~8개월이 아닌 때에는 운동과 자기계발을 한다고 했다. 작품을 할 때도 재미없다고는 했지만, 그래도 살아있는 생생함을 맛보고 있는 것 같았다. 영화 작업의 특성상 주기적으로 실직 상태가 되기 때문에 불안정할 수 있지만, K는 나름대로 그 상황에서 최선의 적응을 한 듯 했다.

요새 그는 조금 시야를 넓힌 것 같았다.

“전에는 영화에만 올인해야 한다고 생각했어요. 그게 맞다고, 그래야 한다고. 근데 세상이 넓잖아요. 영화만으로 먹고 살기는 힘든 것 같고...”

나는 그의 생각에 동의했다. 40대 초반에는 영화 현장이 괜찮을 수 있다. 어쩌면 40대 중후반까지도 버틸 수 있겠다. 그러나 50대, 60대 초반까지 현장을 지키는 기술 스태프는 매우 드물다. 아니, 거의 없다. 다들 아마도 K와 같은 나이대에서 여타의 살길을 조금씩 도모하기 시작하는 것 같다.

게다가 코로나 때문에 영화 산업이 많이 죽었다. 영화계의 앞날은 어찌 될지 걱정이 들었다.

“영화계는 어떻게 될지 몰라도, 영상 산업은 앞으로 훨씬 더 커질 것 같아요.”
“그래. 꼭 영화만 해야지, 하는 건 아닌 것 같아. 웹드라마도 할 수 있고, 뭐, 유튜브도 있고, 여러 OTT 플랫폼들이 생겨나니까 계속 버티자.”

5년 뒤 K는 어떤 일을 하고 있을까? 그가 상업 영화 촬영감독으로 입봉하게 된다면 더 바랄 게 없겠다. 그런데 만에 하나 아쉽게도 그 피라미드 오르기에 기회나 운이 닿지 않는다면, 제2의 바람은 그가 영화 현장에서든 어느 분야에서든 충분히 품위 있게 생계를 해결하면서, 동시에 이제껏 쌓은 영화 영상의 기술을 이용해 한 분야에서 자신의 이름(브랜드)을 지니는 것이다.

나는 그의 5년 뒤가 기대된다. 물론 불안정한 영화 노동자이기에 고민도 많을 것이다. 미래에 대한 고민을 10대, 20대를 넘어 40대까지 하는 건 살짝 서글퍼 보일 수도 있다. 그러나 어쩌면 그건 계속 내 인생을 도전하고 노력하고 있다는, 성장하고 있다는 반증이기도 하다. 그러니 아직 입봉을 못 한 40대 촬영감독과 영화 감독 지망생들의 근황에 침울하지 마라. 우리는 계속 도전한다. 실패해도 또 일어난다. 좋아하고 사랑하는 일을 하기 위해서.

[여성노동건강상식] 생리, 아무도 소리 내어 말하고 싶지 않은 단어 / 2021. 04

[여성노동건강상식]

생리, 아무도 소리 내어 말하고 싶지 않은 단어

조이 산부인과 전문의, 여성노동건강권팀

산부인과 진료실에 내원하는 환자들은 산모를 제외하면 생리와 관련된 증상과 질환이 원인인 경우가 많다. 산부인과 의사로 살면서 남들보다 몇백 배, 몇천 배 많게 입 밖에 내게 되는 단어가 ‘생리’일 것이다. 생리 (Menstruation), 즉 월경이란 가임기 여성의 자궁에서 호르몬의 작용으로 임신을 준비하기 위해 자궁내막을 두껍게 만들었다가 그 달에 수정과 착상이 발생하지 않는 경우 황체 호르몬 분비의 감소와 함께 자궁내막이 탈락하여 자궁 밖으로 배출되는 현상이다.

이처럼 생리는 말 그대로 건강한 여성에서 한 달에 한 번 일어나는 생리현상일 뿐인데, 우리는 왜 ‘그 날’, ‘마법’ 등의 단어로 생리를 표현하며 아무도 소리 내어 말하고 싶어 하지 않는 것일까? 생리라는 단어는 왜 터부시되어 왠지 부끄럽거나 떳떳하지 못한 단어가 된 것일까?

생리의 불편함에 대한 이해를 돕기 위해 생리혈이 배출되는 느낌을 말로 표현하려고 해도 쉽지 않다. 생리혈은 자궁에서 질을 통해 신체 밖으로 배출되는데 혈액은 공기와 접촉하면 정상적으로 굳는 특성이 있어서 생리혈로 배출되는 혈액은 완전한 액체보다는 조금 더 젤 형태에 가깝다. 인터넷에 돌았던 유머 중에는 ‘뜨거운 굴을 낳는 느낌’이라고 묘사된 바 있으며, 요새 아이들이 많이 갖고 노는 슬라임이나 달걀 노른자의 느낌에 가까워서 그 느낌이 유쾌할 수 없다.

종종 오해하는 경우가 있는데, 생리는 대소변처럼 조금이라도 참을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생리하고 싶은 날은 지정할 수 있는 것은 더욱 아니며, 주기가 매우 규칙적인 소수의 경우를 제외하자면 1~2일 정도의 주기 차이는 정상적으로 존재하기에 그 날짜를 완벽하게 예측하기도 어렵다.

이 글을 읽는 독자 중에는 이러한 자세한 묘사가 불편하거나 이 정도도 모르는 사람이 존재한다는 것을 믿을 수 없는 분들도 있겠으나 진료실에서 만나는 많은 수의 환자와 보호자들이 잘 모르거나 오해하고 있는 사실들임을 밝힌다. 더불어 궁금하더라도 입 밖으로 내어 묻기 어려워하는 환자와 보호자들도 많다.

출처 : Mashable India



월경과 관련된 질환들

월경은 매달 반복되는 생리현상이지만, 그 주기에 따른 여러 질환을 동반하는 경우도 있다. 생리통(Dysmenorrhea)은 생리 기간 중 다양한 경로와 강도로 느껴지는 통증을 말하는데, 이는 자궁내막이 탈락될 때 작용하는 프로 스타글란딘이라는 물질이 복부 혈관을 수축시키며 신경을 자극하여 발생하는 것으로 알려져있다. 생리통의 유무와 강도, 지속 기간은 개인차가 심하여 생리통이 없는 사람도 있고 생리 기간 내내 진통제 없이는 일상생활이 어려운 사람도 있다. 생리의 양과 생리 기간 역시 개인차가 크며, 이는 생리통과 관련이 있을 수도, 없을 수도 있다.

미국의 한 통계에 따르면, 여성의 20% 정도는 일상생활에 영향을 주는 정도의 생리통을 겪으며 유방통 및 두통, 설사 또는 변비, 몸살, 어지럼증, 구역감을 함께 겪는 경우도 있다. 흡연하거나 생리를 일찍 시작했거나 생리기간이 긴 경우 생리통의 정도와 관련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생리통이 심한 경우, 자궁내막증, 자궁선근증 등의 산부인과 기저질환을 의심할 수 있기에 진료가 필요하다.

규칙적인 생리주기란 28~30일을 의미하지만, 다수의 여성이 생리주기 자체의 불규칙함과 생리 기간이 아닐 때 발생하는 출혈을 호소한다. 이는 대부분 생리주기를 조절하는 에스트로겐과 프로게스테론, 난포자극호르몬, 황체 호르몬 등의 불균형 때문인데 이러한 호르몬 불균형의 원인은 스트레스, 저체중, 과체중, 극심한 다이어트, 영양 불균형, 불규칙한 생활, 야간 노동 등으로 매우 다양하다.

생리 기간뿐 아니라 생리 1주 전부터 생리 시작 직전까지 신체적, 정서적 증상으로 고통 받는 경우도 있는데, 이를 월경전증후군(PMS, Pre-Menstrual Syndrome)이라고 한다. 한 통계에 의하면, 정도의 차이는 있으나 월경을 하는 여성 중 75%가 월경전증후군을 호소하며 4~5% 정도는 일상생활에 어려움을 겪을 정의 증상을 호소한다고 한다. 월경전증후군의 증상은 집중력 저하, 건망증, 초조함, 예민함, 긴장감, 불안감, 급격한 기분변화, 분노조절 장애, 공격성 증가, 식욕 증가, 의욕 상실, 업무능력 감소, 유방통, 요통, 두통, 부종 및 체중증가, 과도한 수면, 불면증 등으로 다양하게 나타난다.

원인은 명확히 밝혀져 있지 않으나 프로게스테론의 비정상적 박동적 분비, 지나치게 높은 에스트로겐 레벨, 도파민 감소에 따는 프로락틴 분비 증가와 엔도르핀 및 세로토닌의 감소 등 호르몬 변화 및 이상이 증상을 유발할 수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따라서 피임약을 복용하여 호르몬 변화를 감소시키거나 우울증 약으로 쓰이는 세로토닌 재흡수 차단제 (SSRI)를 복용하는 것이 도움이 될 수 있다.

존재하지만 존재하지 않는 생리휴가

근로기준법에 따르면 5인 이상의 노동자가 근무하는 사업장의 여성노동자에 대해 월 1일의 생리휴가를 주도록 되어 있으며 이를 어길 때에는 5백만원 이하의 벌금이 부과될 수 있다. 생리휴가는 노동자가 청구하는 날에 무조건 줘야 하는 휴일로, 당일 청구해도 부 여하도록 되어 있다. 즉, 회사 측에서 생리휴가 사용 며칠 전 휴가원 제출 요구, 생리휴가가 가능한 요일의 지정 등을 통해 사실상 근로자의 자유로운 생리휴가 사용을 제한하는 행위는 규정상 인정될 수 없다.

생리휴가는 1953년 제정된 근로기준법에서 월 1회의 유급휴가로 규정되었으나 거의 지켜지지 않았다. 역사적으로 여성노동자들이 생리휴가 보장을 요구하기 시작한 것은 70년대 중반이다. 노동시간 단축이나 모성보호법 등의 법률의 제개정이 논의될 때마다 사업주들은 그 전제조건의 하나로 생리휴가 제도 폐지를 주장해 왔다. 이는 생리휴가 제도가 여성을 육체적으로 취약한 존재임을 증명하여 오히려 차별을 정당화하는 근거가 될 수 있다라든가, 여성을 재생산을 위한 도구로 취급함으로써 생리휴가가 여성비하에 해당한다는 식으로 그럴싸하게 포장되었지만, 실제로는 여성 노동자가 하루 동안 노동하지 않음에도 임금을 받으면, 그만큼 사업주의 이윤이 줄어들 것이라는 전근대적 경영관에 비롯된 주장이었다.

2004년 주 5일 근무제의 도입으로 1,000명 이상 사업장의 경우 생리휴가는 무급으로 전환되었으며 2012년부터는 20인 이상 사업장까지 확대되어, 실질적으로 한국의 생리휴가는 현재 무급휴가에 해당한다.

2014년에 시행된 한 조사(유한킴벌리&인 크루트 조사)에 따르면, 생리휴가가 무급휴가로 전환된 이후 76%의 여성이 생리휴가를 한 번도 쓴 적이 없으며 주변의 눈치 때문에 사용이 어렵다고 답했다. 당시 조사 결과에 따르면, 생리휴가를 사용하지 않는 이유에 대해 42%가 “상사에게 눈치가 보여서”를 꼽았으며 36%는 “주위에서 아무도 안 써서”라고 응답했다. 이에 대해 남성들은 “생리휴가는 다 꼼수”라고 응답했다.

생리휴가, 모두에게 온전히 보장되어야

생리는 말 그대로 생리적인 현상으로 많은 신체적 증상과 불편함을 유발한다. 생리휴가의 무급화 당시 경영계가 생리휴가 폐지를 주장하며 펼친 근거 중에는 “선진국에는 생리휴가가 없다”는 것이었는데, 이는 선진국에서는 생리 휴가를 특별히 제도화하지 않아도 노동자가 몸이 불편할 때 언제든지 쉴 수 있는 권리가 보장 되어 있으며, 그건 근무평가에 영향을 미치지 않기 때문임을 간과한 것이다. 즉, 생리휴가를 없애려면 생리휴가가 적극적으로 보장되고 그에 따른 비용을 기꺼이 부담할 수 있어야 한다.

2021년의 한국 사회에서 생리 중인 모든 여성 노동자들에겐 생리휴가라는 ‘사회적 배려’ 가 정당하게 보장되어야 한다.

[알아보자, Law동건강] 직장 내 성희롱을 바라보는 시선 / 2021. 04

[알아보자, Law동건강]

직장 내 성희롱을 바라보는 시선

임혜인 회원, 노무사

직장 내 성희롱(이하 “성희롱”이라고 함)으로부터 안전한 일터를 조성하는 것. 성희롱 피해자를 보호하고 가해자에 대한 적절한 조치를 취하는 것. 이는 현대사회에서 너무나도 당연한 상식이다. 성희롱 가해자는 절대 해서는 안 될 행동을 한 나쁜 사람이며, 성희롱이 발생할 때까지 방관한 회사는 더 나쁘다는 점에 대해서 부정하는 사람 또한 없을 것이다.

그런데 실제로 성희롱이 발생하면 우리가 너무나도 당연하게 생각하던 상식이 단숨에 무너져버리고 만다. “문제를 키워 봤자 너만 손해다”, “당신이 참아야지 어쩌겠냐”는 식으로 피해자의 고통을 무시하는 언동은 2차 가해 유형 중 아주 귀여운 축에 속한다. “라떼는 이런 거 다 감수하면서 직장생활 했다.”며 피해자가 경험한 성적 굴욕감 등이 사회통념에 어긋나는 것임을 계몽하려는 노력은 아주 보편적인 반응이다. 심지어 피해자가 피해 사실에 대하여 적극적으로 밝히려고 애쓸수록, 이러한 노력은 피해자에 대한 공격으로 변모한다.

성희롱의 당사자는 가해자와 피해자이지만, 실제로 성희롱이 발생하면 가해자는 지워지고 오로지 피해자만이 당사자로 남는다. 법률 및 사회적으로 금지된 행동을 한 가해자보다 피해자에 대한 시선이 뜨겁다 못해 따갑기까지 하다.

성희롱 피해자를 바라보는 시선은 법원의 판단을 통해 재확인되기도 한다. 한 대학교수(이하 “원고”라고 함)가 제자를 수 차례 성희롱하여 징계 해임되자 본인의 행동이 성희롱이 아님을 주장하며 해임처분의 취소를 구하는 소송을 제기하였다. 이때 대학이 징계사유로 삼은 성희롱 사실은 다음과 같다. 

징계사유 1
1) 원고가 학과사무실에서 남자친구와 함께있던 피해자에게 “여기서 뭐하냐?”라며 뺨을 때리고, 이어서 “왜 남자랑 붙어서 있냐?”라며피해자의 뺨을 총 4대 때림

2) 피해자가 봉사활동을 위한 추천서를 받기 위해 친구들과 함께 원고의 연구실을 방문을 때 원고가 뽀뽀해 주면 추천서를 만들어 주겠다고 함

3) 수업 중 질문을 하면 원고는 피해자를 뒤에서 안는 듯한 포즈로 지도함

4) 원고는 피해자가 연구실을 찾아가면 “남자친구와 왜 사귀냐, 나랑 사귀자.”, “나랑 손잡고 밥 먹으러 가고 데이트 가자.”, “엄마를 소개시켜 달라.”고 하는 등 불쾌한 말을 많이 함.
... (중략)
징계사유 2

1) 원고는 피해자의 1학년 학기 초 수업시간에 피해자의 손을 겹쳐서 마우스를 잡고 피해자가 앉아 있는 의자에 같이 앉거나 자신의 무릎에 피해자를 앉히려 하였음. (중략)

2) 원고는 피해자를 연구실로 자주 불러 연애하자, 어머니를 소개시켜 달라.”고 하였으며, 또한 의자에 앉아 있을 때에는 원고의 다리 사이에 피해자의 다리를 끼워 움직이지 못하게 한 경우도 있었음

3) 피해자가 입고 있던 가슴부분의 남방 단추가 떨어지려 할 때 원고가 불필요하게 단추를 만짐

징계사유 3

1) 원고는 수업시간에 피해자를 뒤에서 안는 식으로 지도하고 불필요하게 피해자와 한 의자에 앉아 가르쳐주며 신체적 접촉을 많이 함

... (중략)

4) 학과 MT에서 원고가 아침에 자고 있던 피해자의 볼에 뽀뽀를 2차례 하여 피해자에게 정신적 충격을 줌

5) 원고는 장애인 교육 신청서를 제출하러 간 피해자에게 자신의 볼에 뽀뽀를 하면 신청서를 받아 주겠다고 하고, 다른 학생들도 자신의 볼에 뽀뽀를 하고 신청서를 제출하였다고 거짓말을 하여 피해자가 어쩔 수 없이 원고의 볼에 뽀뽀를 하였으며, 그 상황에서 원고가 피해자의 엉덩이에 손을 대려고 하자, 피해자가 자신의 가방을 이용하여 원고의 행위를 막음

원심 재판부는 원고에 대한 징계사유 중 대부분이 성희롱에 해당하지 않는다고 판단하며, 원고에 대한 해임처분이 부당하다고 판단하였다. 원심이 상기 징계사유를 부정한 요지는 다음과 같다.

징계사유 1-3을 부정한 이유

- 원고의 언동은 원고의 적극적인 교수방법에서 비롯된 것이 아닌가 의심되고, 이 부분 사건에서 드러난 정도의 접촉만으로는 이를 일반적이고도 평균적인 사람으로 하여금 성적 굴욕감이나 혐오감을 느낄 수 있는 행위에 이르렀다고 보기는 매우 곤란하다.

- 교수인 원고가 (중략) 소위 백허그 자세를 취하여 그와 밀착된 자세에서 어색한 타이핑을 시도하였다는 것은 쉽게 상상하기 어렵다. (중략) 익명으로 이루어진 강의평가에서 원고의 부적절한 신체접촉에 대한 언급이 없고 오히려 원고의 1:1 맨투맨 교육방식이 긍정적으로 평가된 점 및 나아가 소외 1조차 원고의 강의에 단점이 없다거나 재미있고 즐겁다고 평가한 점에 비추어 선뜻 납득하기 어렵다.

징계사유 1-2 및 1-4를 부정한 이유

- 원고는 강의뿐만 아니라 동아리 지도를 통하여 학생들과 격의 없고 친한 관계를 유지하였는데, 학생들과 식사를 함께 하거나 원고의 연구실에서 찾아오는 학생들과 자주 농담을 나누었으며, 일상적인 이야기는 물론 가족에 관한 이야기나 연애상담도 나누었다.

징계사유 3-1부터 3-5를 부정한 이유

- 소외 2는 최초 소외 1의 부탁을 받고 이 사건을 신고하게 된 것인데, 자신의 피해사실에 대하여는 형사고소 이후 조사를 거부하는 한편 소외 1에 대한 피해사실에 대하여는 증인으로 출석하여 자유롭게 진술하고 있는 것으로 보이는바, 과연 성희롱 내지 성추행 피해자로서의 대응이라고 볼 수 있을지 의문이다.

- 소외 2가 소외 1의 부탁을 받고 진술서를 작성한 것은 2014. 12. 17. 무렵인데 그 기재된 내용은 전부 2013년부터 2014년 전반기의 사실로서 소외 1의 권유 또는 부탁이 없었다면 소외 2에게 과연 한참 전의 원고 행위를 비난하거나 신고하려는 의사가 있었는지 의심스럽다.

- (중략) 자신의 신고로 인하여 원고가 해임까지 당하는 무거운 결과를 가져온 데 대한 책임추궁을 두려워하기 때문이 아닌가 의심된다.

- 소외 2는 소외 1, 소외 3과 함께 원고에 대한 형사고소를 하지 않을 것을 약속하는 각서를 작성하여 주는 대신 원고에게 자신들에 대한 법적대응을 하지 아니할 것을 요구... (중략), 통상 피해자가 단순히 가해자를 용서하는 합의를 하여주는 행동이라고 보기에는 이례적이다.

즉, 원심은 설령 원고가 피해자와 신체적 접촉이 있었다고 하더라도 이는 적극적인 강의 의욕에서 비롯된 불상사일 뿐이고, 징계사유에 포함된 언동 또한 피해자와 친밀하게 지내는 와중에 성희롱에 대한 고의 없이 이루어진 것을 피해자가 민감하게 받아들인 것에 불과하며, 피해자가 오랜 시간이 경과한 후에야 비로소 성희롱 사실을 문제 삼은 사실이나 법원에서 피해 사실을 자유롭게 주장하고 있는 모습 등에 비추어 일반적인 성희롱 피해자로서의 면모가 보이지 않는다는 것을 이유로 성희롱에 해당하지 않으며, 해임처분 또한 부당하다고 판단하였다. 이러한 원심의 판단은 성희롱에 대한 
전형적인 2차 가해 유형들과 상당히 유사하다.

그렇다면 우리는 직장 내 성희롱을 어떠한 시각으로 바라보아야 할까. 동일한 사건에 대하여 대법원은 성희롱 사건을 심리하는 방법에 대하여 다음과 같이 설명하며, 원심판결을 파기 환송하였다. 

대법원 2018. 4. 12. 선고 2017두7470 판결

법원이 성희롱 관련 소송의 심리를 할 때에는 그 사건이 발생한 맥락에서 성차별 문제를 이해하고 양성평등을 실현할 수 있도록 성인지 감수성을 잃지 않아야 한다(양성평등기본법 제5조 제1항 참조). 그리하여 우리 사회의 가해자 중심적인 문화와 인식, 구조 등으로 인하여 피해자가 성희롱 사실을 알리고 문제를 삼는 과정에서 오히려 부정적 반응이나 여론, 불이익한 처우 또는 그로 인한 정신적 피해 등에 노출되는 이른바 ‘2차 피해를 입을 수 있다는 점을 유념하여야 한다. 피해자는 이러한 2차 피해에 대한 불안감이나 두려움으로 인하여 피해를 당한 후에도 가해자와 종전의 관계를 계속 유지하는 경우도 있고, 피해사실을 즉시 신고하지 못하다가 다른 피해자 등 제3자가 문제를 제기하거나 신고를 권유한 것을 계기로 비로소 신고를 하는 경우도 있으며, 피해사실을 신고한 후에도 수사기관이나 법원에서 그에 관한 진술에 소극적인 태도를 보이는 경우도 적지 않다. 이와 같은 성희롱 피해자가 처하여 있는 특별한 사정을 충분히 고려하지 않은 채 피해자 진술의 증명력을 가볍게 배척하는 것은 정의와 형평의 이념에 입각하여 논리와 경험의 법칙에 따른 증거판단이라고 볼 수 없다.

대법원은 성희롱 사건은 교통사고와 같이 한 순간에 촉발하는 것이 아니고 사회적 구조와 같은 맥락에서 발현된다는 특성이 있고, 그 맥락에 구속될 수 밖에 없는 피해자의 입장을 ‘피해자의 시각’에서 바라보아야 함을 강조한다.

성범죄 피해 사실을 대외적으로 고발하는 미투 운동이 확산되며, 자신의 피해 사실을 적극적으로 고발하는 피해자들 또한 많아지고 있다. 피해자들은 점점 더 크게 목소리를 내며 가해자에 대한 강력한 처벌과 제도 개선을 요구한다. 그런데 이들을 바라보는 사회의 시선은 어떠한가. 여전히 사업장에 성희롱이 발생하면 피해자는 피해자답게 처신해야 그나마 원하는 조치를 사업장으로부터 받을 수 있다. 피해자가 피해 사실을 객관적으로 입증하지 못하면 피해자를 예민한 사람이라 가스라이팅 한다.

피해자의 시각으로 성희롱 사건을 바라보는 것. 성희롱으로부터 안전한 일터를 만들기 위한 첫 걸음이지만 그 발을 내딛기가 어렵기만 하다.

[노동안전보건활동가에게 듣는다] 작은 사업장 노동자들과 하는 노동안전보건 활동의 보람 - 파주병원 노동자 건강증진센터 이진우 센터장 인터뷰 / 2021. 04

[노동안전보건활동가에게 듣는다] 

작은 사업장 노동자들과 하는 노동안전보건 활동의 보람 

- 파주병원 노동자 건강증진센터 이진우 센터장 인터뷰

장영우 선전위원장

1년여 전까지는 민주노총 노동안전보건실에서 다양한 산별 노동자들에게 교육하고, 집회를 기획하며 법 제정·개정, 대정부 투쟁을 하는 활동가였던 이진우 동지. 어느새 새로운 직장에서 직업환경의학 의사로 또 다른 노동안전보건 활동을 하고 있다. 이번 일터 4월 ‘노동안전보건 활동가에게 듣는다’ 코너는 벚꽃이 피기 시작하는 어느 봄날 저녁 서울의 한 카페에서 경기도의료원 파주병원 노동자건강증진센터 센터장이자 연구소 회원이기도 한 이진우 동지를 인터뷰하였다.

출처: 한노보연

지금은 직업환경의학 의사로 노동자건강증진센터장이신데, 전에는 다양한 곳에서 활동하셨었죠?

안녕하세요, 이진우입니다. 직업환경의학과 의사이고 1년 전부터 파주병원 노동자건강증진센터에서 일하고 있습니다. 그전에는 사회진보연대에서 노동안전보건 활동을 하다가 2016년부터 4년간 민주노총 노동안전보건실에 있었습니다. 2015년부터 5년간 중대재해기업처벌법제정연대 사무국장 역할도 했었고, 작년 초부터 현재 직장으로 옮겼습니다.”

크게 볼 때 노동안전보건 활동이라는 면에서는 유사하지만 직장의 성격도, 하는 일도 상당히 다른데요. 어떻게 현재의 일을 하게 되었나요?

민주노총 노동안전보건실에서 일할 때 다양한 업종의 노동안전보건 활동에 관심이 있었어요. 어느 정도 성과가 있었던 것도 있고요. 하지만 여러 영역 중에서 작은 사업장에서의 노동안전보건 활동을 진행하는 게 쉽지가 않더라고요. 50인 미만 사업장에는 보건관리자를 선임해야 할 의무도 없고, 노동부의 근로자건강센터도 전국에 23개 밖에 없어서 충분하지 않고요. 그렇게 작은 사업장에 대해 어떤 노동안전보건 활동을 할 수 있을까라는 고민을 했었고, 개인적으로 새로운 일터를 찾아보다가 지인의 소개로 여기에서 일하게 되었습니다.”

이진우 동지가 주목했듯 소규모 사업장은 산업재해 예방이 잘 이루어지지 않는 곳이다. 2019년에는 국내 산업재해 노동자 10만여 명 중 76.5%가 50인 미만 사업장의 노동자들이었다는 씁쓸한 통계가 있다. 작은 사업장은 안전보건 규제의 많은 부분에서 제외되고 있고, 노동부는 근로자건강센터 형식으로 소규모 사업장 노동자의 건강을 관리하고 있다. 그런 면에서 경기도의료원 파주병원의 노동자건강증진센터는 근로자건강센터와는 또 다른 운영 형태로 소규모 사업장들을 지원하고 있고, 이곳에서 소규모 사업장 노동자들에게 실시하는 사업들은 큰 의미가 있다.

작은 사업장 노동자 안전보건 지원 사업

파주병원 같은 공공병원 자체가 별로 없고, 또 그 병원에서 노동자건강증진센터를 운영하는 것도 의미가 있어 보입니다. 노동자건강증진센터에 대해 간단히 소개해주세요.

현행 산업안전보건법에서는 50인 미만 사업장은 보건관리자를 선임할 의무가 없어서 노동자의 건강관리가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는 한계가 있습니다. 그래서 경기도에서는 50인 미만 사업장 노동자와 비정규직 노동자, 자영업자, 소상공인 등을 대상으로 포괄적인 산업보건서비스를 제공하는 우리 회사 건강주치의 사업을 시작하게 되었습니다특수건강진단과 사후관리로 노동자들의 건강을 관리하고 사업장 위험성평가를 통해 작업장 환경개선컨설팅도 지원합니다. 집중사례관리를 통해 통합적인 노동안전보건서비스를 제공하고 하는데요. 이 사업은 경기도가 전국에서 처음으로 시행하는 사업으로, 현재 도지사의 공약이기도 했습니다.

2019년에 경기도 노동자 건강증진조례가 통과되어 사업이 시작되었고, 올해 예산은 약 11억입니다. 현재 경기도 의료원 6개 병원 중 파주병원과 수원병원에서 주치의 사업을 위탁받아 센터를 운영하고 있습니다. 센터 정원은 총 18명입니다. 위험성평가팀에 산업위생기사 2, 사례관리팀에 간호사·사회복지사·심리상담사 등 4, 나머지 노동자건강진단팀입니다파주센터가 포괄하는 지역은 파주, 고양, 양주, 김포 등 경기 북부입니다. 아무래도 파주가 중점 지역입니다. 파주엔 16개의 산업단지가 있는데요, 많이들 아시는 출판단지 사업장들과 LG디스플레이 하청업체를 비롯한 작은 사업장이 많아요. 그리고 이주노동자들도 여러 사업장에서 일하고 있습니다.”

이진우 동지가 노동자건강증진센터에서 하는 활동은 간간이 기사를 통해서도 볼 수 있었다. 작년 여름, 대리기사들이 생애 최초로 특수건강진단을 받았다는 기사가 났었고, 그 검진은 바로 파주병원 노동자건강증진센터에서 진행한 것이었다. 경기도가 도입한 ‘우리 회사 건강주치의 사업’을 통해 소규모 사업장과 특수고용 노동자들까지 혜택을 받게 된 것이다. 사업장에서 건강관리를 받는 것이 거의 불가능한 특수고용 노동자들이 건강진단을 받게 되어 흐뭇해하던 기사 인터뷰에 나 역시 흐뭇해졌던 기억이 난다.

노동자건강증진센터에서의 노동안전보건활동

들어보니 소규모 사업장 노동자들에게는 꼭 필요한 노동안전보건 지원일 것 같습니다. 그 외에도 노동자들이 지원받을 수 있는 것에는 어떤 것들이 있을까요?

지자체에서 노동자 건강을 지원해주는 최초의 모델이라 의미가 있다고 봅니다. 그래서 잘 운영하는 게 중요합니다. 작년, 올해 일정 정도 가시적인 성과가 나고 다른 의료원에서도 설립이 된다면 서로 상승효과를 기대할 수 있을 거 같아요. 여러 연구에서 특수건강진단을 받아야 하는 사업장 중에서 실시율이 10%도 되지 않는다고 합니다. 나머지 90%의 작은 사업장 노동자도 건강진단을 받는 게 중요한데 민간기관에만 맡겨서 해결될 일은 아니라고 봅니다. 공공기관이 노동안전보건 서비스를 제공하고 사업주를 교육하는 역할을 하도록 활성화해야 하는 것이 좋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실행 주체 중에서는 지자체가 먼저 나서야 하고요.

그동안 특수 고용노동자는 사업주가 없으니까 건강관리의 사각지대에 방치되었습니다. 그래서 경기도에서 이 노동자들을 위한 건강주치의 사업을 하려고 하는 것입니다. 택배 노동자 같은 경우 CJ, 한진은 계약을 맺은 검진기관에서 건강진단을 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고용관계가 명확하지 않은 상태에서 하는 건강진단이라 한계가 있습니다. 건강진단 결과가 노동자의 고용을 저해할 우려도 있고요. 공공병원에서 이들에게 건강진단을 수행한다면, 노동자들에게 실제 도움이 되는 건강관리 사업을 진행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의미 있는 사업을 많이 하고 있고 노동자들이 많이 찾아오면 좋겠지만, 처음 하는 사업이라 검진 대상자를 찾기 쉽지 않을 것 같은데요?

파주는 노동조합 조직화가 경기 남부에 비해 아직 부족합니다. 노조와 연계하여 사업을 진행하는 것 플러스 알파가 필요했습니다. 그래서 파주와 고양시 비정규직 노동자지원센터와 업무협약과 사업논의를 하면서 돌파구를 찾고 있습니다. 지역의 상공회의소에도 찾아가서 사업설명을 하고 업무협약을 맺기도 했습니다. 50인 미만 사업장 중에서도. 상공회의소에 속해 있는 사업장이 많으니까요. 여러 산업단지의 사무국장님들도 찾아가기도 하고, 시의원과 도의원에게 찾아가 설명회도 진행했습니다. 작년 한 해 정말 여러 곳을 찾아다니며 사업 설명을 하고 홍보를 했습니다.

일반 노동자들의 특수건강진단은 사업주의 의무라서 진행이 되지만, 특수고용노동자들에 대한 건강진단은 그렇지 않아 노동자들을 직접 찾아다니고 있습니다. 사업주를 통할 수 없으니 지역의 활동가분들 소개를 통해 진행하기도 하고, 노동조합을 통해 진행했습니다. 지난 4년간 노동조합에서 활동했던 경험들이 많은 도움이 되었습니다. 작년에는 대리운전노조, 라이더유니온, 건설노조 특수형태 고용직 노동자 89명에게 건강진단 지원을 했습니다.

레미콘 공장 같은 경우 출장으로 레미콘 노동자들 휴게실에서 건강진단을 했습니다. 사측에 미리 양해를 구하는 과정도 필요했습니다. 특수형태 고용직 노동자 입장에서는 하루 일당을 빼면서까지 병원에 건강진단을 받으러 오기가 쉽지 않은 상황이라, 직접 찾아갔습니다. 이렇게 새로운 사업을 만들어가면서 일하다 보니, 함께 일하는 센터 직원들에게도 미리 양해를 구하고 설득해야 하는 과정도 중요했습니다.”

지자체에서 하는 노동자 안전보건 지원사업이 잘 알려지기만 한다면 더 많은 사업장에서 노동자건강진단을 신청하거나 안전보건 지원을 요청할 것 같지만 지금까지는 사업장에서 직접 문의하는 경우가 많지는 않은 듯했다. 혹은 그보다, 사업주들이나 노동자들이 건강하고 안전하게 일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인식이 부족하고, 사업장 안전보건을 위해 관리가 필요하다는 것도 아직 널리 인식되지 못 하기 때문인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예전에 하시던 일과는 달라서 하지 않던 일도 해야 할 텐데요, 일하면서 어려운 점은 없을까요?

새로운 사업이라 아직 홍보가 부족합니다. 기관들뿐만 아니라 사업장 하나하나에 방문해서 설득하는 과정들을 꾸준히 해야겠지요. 센터 내에 다양한 전문 직종 선생님들이 계시고, 각자 전문성이 있어서 각 팀과 각자의 업무들을 조율하는 것도 제가 잘해야 하는 일이에요. 노동자 건강증진센터는 우리회사건강주치의 사업을 하는 것이 기본이고, 파주병원 내에 있기 때문에 병원 구성원으로서 해야 하는 일도 있습니다. 파주병원이 코로나전담병원이라서, 방역이나 선별진료 업무 등에 협력했습니다. 그러다 보니, 하고 싶은 사업을 많이 못 한 아쉬움은 있습니다.

이 사업 위탁은 3년마다 갱신되는데, 우리 센터 직원들은 2년 계약만 가능한 비정규직 형태로 고용되어 있습니다. 꼭 해결해야 할 문제입니다하지만 확보된 예산으로 열악한 환경의 노동자에게도 건강증진 사업을 기획하고 진행할 수 있다는 점은 자율성이 있는 편이라 좋습니다.”

이진우 동지와 인터뷰를 하고 나니 전체 노동안전보건 활동 중에서 예전에는 A라는 톱니바퀴에서 활동을 했다면 지금은 C라는 활동을 하고 있다는 인상을 받았다. 자리와 역할이 바뀌었지만, 여전히 노동자 건강과 안전을 위해 활동하고 있고, 더 큰 질병이 나기 전에 예방한다는 면에서 의미가 있어 보였다. 쓰지 않던 근육을 써가며 신청을 받기 위해 먼저 사람들에게 제안하기도 하는 등 쉽지 않은 일도 하고 있지만, 이진우 동지 얼굴에 활기가 보여 마음이 놓이기도 한다. 소규모 사업장 노동자들, 제도적으로 보호받지 못 하는 특수고용노동자들의 건강과 안전을 위해 활동하는 이진우 동지에게 응원을 보낸다.

 

[A-Z 다양한 노동이야기] 누군가의 상흔에 빚진 보통날 - 전국건설노동조합 송전지부 이충구 전국지부장 인터뷰 / 2021. 04

[A-Z 다양한 노동이야기] 

누군가의 상흔에 빚진 보통날

- 전국건설노동조합 송전지부 이충구 전국지부장 인터뷰

한재영 상임활동가

혹시 휴대폰 배터리를 충전할 때마다 사용되는 전기의 행방을 떠올려 본 적 있는가? 아마 없을 것이다. 숨 쉴 때마다 공기의 존재를 구태여 알아차리지 않듯이, 전기는 이미 우리에게 너무나도 당연한 존재이기 때문이다. 새삼스럽기까지 한 질문을 던지는 까닭이 있다. 이유를 말하기 전에 앞서, 질문이 하나 더 있다. 지상으로부터 100m가량 치솟은 곳에 올라가 본 적이 있는가? 있다면 잠시 머무는 게 아니라 대여섯 시간 동안 머문 적이 있는가? 앞선 질문의 답과 마
찬가지로 아마 없을 것이다.

여기에 숨결 하나마다 전기를 떠올리고, 듣기만 해도 아득해지는 높이가 일상인 이들이 있다. 바로 송전탑을 오르내리는 ‘송전 전기원’의 이야기다. 낮게는 30m 높게는 100m에 이르는 높이에, 얼기설기한 철골로 이뤄진 송전탑 위에서 행해지는 노동을 떠올리기란 쉽지 않다. 지난3월 10일, 대림역 인근의 건설노동조합 사무실에서 송전지부 이충구 지회장을 만나 허공을 밟아가며 일하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어보았다.

허공을 밟으며 일하는 사람들
송전탑은 현 전기공급체계에서 널리 활용되는 시설이지만 동시에 그만큼 꺼려지기도 하는 존재다. 송전탑 주위에는 수만 볼트의 고압전기가 흐르고 있어 매우 위험하기도 하지만, 그보다는 고압전기가 주위 환경이나 인체에 부정적인 영향을 주지 않을까 우려하기 때문이다. 이 때문에 송전탑 대부분을 사람들의 눈길이 닿지 않는 곳에 세우다 보니, 최악의 조건에서 작업이 이뤄진다.

“송전탑은 주로 사람들이 오가지 않는 오지나 야산에 세워요. 상황이 이렇다 보니, 일하는 노동자에게도 최악의 현장입니다. 화장실이 급하다고 50~100m 되는 높이를 올라갔다 내려오기는 어렵죠. 그래도 소변이면 밑에 있는 사람들한테 말하고 상공에서나마 해결하는데, 대변은 어쩔 수가 없죠. 그런데 현장 주변에 이동식 화장실이나 간이 화장실도 없어서 불편할 때가 많죠. 이동시간 때문에 식당에 가기 어려우니, 점심도 흙바닥에 앉아 도시락으로 대충 때워요. 어느 계절이고 일하기에는 다 어려워요. 여름에는 폭염 아래에서 일해야 하고, 한겨울에는 산불 위험 때문에 불도 못 피우죠. 화재위험이 없는 고체연료를 사달라고 요구하지만, 비싸다는 이유로 매번 거절합니다.”

주변 지형이나 전압 크기에 따라 높이 역시 달라지지만, 고압 송전탑의 경우 평균 높이가 100m에 달한다. 통상적으로 아파트 1개 층 높이가 약 3m인 점을 고려하면, 사방이 뻥 뚫린 30층짜리 고층 아파트 꼭대기에서 작업하고 있는 셈이다. 게다가 송전탑을 오를 때에는 맨몸이 아니다. 매번 20kg에 육박하는 여러 장비에다가 개당 9kg에 육박하는 애자를 메고 송전탑을 오른다. 그들은 단 한 번의 헛길 질도 허용되지 않는 상공에서 철근을 조립하고, 전선을 연결한다. 감히 그 고단함을 헤아리기조차 어려웠다.

“온종일 위에 있다가 땅에 내려오면 멍해지면서 물먹은 솜처럼 몸이 무거워지는 느낌이 들어요. 송전탑 위에서 하는 일은 다양하죠. 송전탑 건설은 시작이고, 전선을 탑에 걸치는 연선 작업과 선을 잘라서 연결한 뒤 지상으로부터 적절한 높이까지 띄우는 긴선 작업이 있어요. 송전탑 유지보수작업도 있어요. 애자라고 하는 절연체가 있는데요, 보통 교체 주기가 30년이라고 해요. 하지만 오염이 심할 경우에는 그만큼 사용할 수 없죠. 아무래도 비바람이니 자외선이니 하는 온갖 외부환경에 노출되어 있다 보니 부식도 빠르고요. 그래서 주기적으로 애자를 물로 세척하거나 노후된 자재를 교체하는 등의 유지보수 작업을 해요.”

송전탑 위에서 찢기고 데인 몸과 마음
내리쬐는 햇볕에 무쇠나 다름없는 철근도 부식되는데, 하물며 그보다 연약한 사람의 피부가 성할 리 만무하다. 피부뿐만이 아니다. 허공에서 오직 상체의 힘으로만 철탑재를 내려치고 조립하다 보니 쑤시지 않는 데가 없다. 여기서 끝이 아니다. 여름에 햇볕이 있다면 겨울에는 칼바람이 있고, 골병은 추락과 세트처럼 묶여있다.

“사시사철 외부에서 하는 옥외작업이니만큼 기후조건에 영향을 많이 받을 수밖에 없어요. 폭염을 피할 그늘이 없을뿐더러 철탑이 달궈지면서 화상도 많이 입죠. 다량의 자외선에 장시간 노출되니 피부암 등 피부질환의 위험도 크고요. 한겨울도 괴롭기는 마찬가지예요. 겨울에 작업하면 온몸에 핫팩을 붙이고 가요. 그래도 종일 추위에 떨죠. 그러고서 숙소로 돌아오면 얼었던 얼굴이 그제야 녹으면서 벌겋게 달아올라요.

피부질환 외에도 어깨, 척추까지 완전 종합병원이에요. 송전탑을 보면 알겠지만, 발 디딜 곳이 하나도 없어요. 작업하는 내내 어디 모서리에다 발끝이나 발꿈치를 딛고 서서 미끄러지지 않게 온 힘을 줘야 해요. 평지에서 작업하면 물건을 들거나 잡아당길 때, 두 발을 바닥에 고정한 채 일할 수 있지만 우리는 그럴 수가 없는 거죠. 그렇게 무게중심도 못 잡고 팔 힘으로만 작업하다 보니 근육과 뼈 모두 성할 곳이 없어요. 제가 일한 지 30년이 다 돼가는데, 양쪽 회전근 모두 파열돼서 한동안 치료했는데 완치는 안 된 상태예요. 

예전에는 사망사고가 나도 다음날이면 일하러 나갔어요. 30년간 일하면서 눈앞에서 떨어져 죽은 동료만 3명이에요. 추락한 동료에게 겉옷 벗어다 덮어주고, 산에서 들고 내려오는 것도 다 했어요. 그래도 먹고 살아야 하니까 다음 날이면 또 송전탑을 올랐죠.”

송전 전기원의 노동은 그 자신의 생활을 가능하게 할 뿐만 아니라, 우리의 일상 역시 가능하게 한다. 이처럼 사회의 필수재인 ‘전기’를 제공하는 이들이지만, 정작 그들의 일상은 당연하지 않다. 2년 전부터 안전사고를 대비해 수평로프와 추락망 그물을 설치하기 시작했지만, 여전히 노동자의 안전보다 이윤이 앞서기 때문이다.

“무엇보다도 중요한 건 작업 공기(공사기간)를 느슨하게 잡는 거예요. 공기가 늘어나면 그만큼 소요되는 예산이 많기 때문에 무리하게 공기 단축을 하려고 해요. 그러다 보면 당연히 사고가 나죠. 안전 관리감독자 수도 늘려야 해요. 우리가 송전탑 하나를 작업 완성하고 다음 송전탑 작업을 하는 시스템이 아니거든요. 몇 개의 작업현장에서 일하는 거죠. 예를 들어 송전탑 10개를 작업한다고 했을 때, 한데 모여 작업하는 게 아니고 산봉우리마다 떨어져서 작업해요. 그럼 총 10개의 현장이 있는데 무슨 수로 소장 한 명이 모든 현장의 안전을 점검하고 관리할 수 있겠어요? 송전탑별로 관리자를 두거
나 아니면 송전작업은 보통 팀 단위를 이뤄작업하니 팀별로 관리자를 두는 게 맞죠. 하지만 현장의 안전은 작업자들에게만 온전히 맡겨놓고 있어요. 

송전작업은 안전벨트 하나만을 몸에 매달고, 온몸을 공중에 띄운 채 두 손으로 하는 작업이에요. 그 높은 곳에서 믿을 건 안전벨트 하나밖에 없어요. 그러니 자기 몸에 꼭 맞아야 하죠. 그런데 업체는 값싸고 허술한 안전벨트 하나 사서 던져주고, 제공했다고 서명받고 사진 찍으면 끝이에요. 그저 안전관리비 집행했다는 보고에 불과한 겁니다. 그리고 상용직이면 안전장비 관리 담당자도 있고, 때에 맞춰 교체도 할 건데 일용직이다 보니 그럴 수가 없어요. 보통 3일에서 7일 이렇게 짧게 여기저기 현장을 옮겨 다니는 일용직이다 보니, 안전벨트는 개인이 구매해서 사용하는 게 더 편해요. 현장에 갈 때마다 안전벨트를 받는다 치면 못해도 1t은 될 거예요. 한국전력공사(이하 한전) 측에서는 우리더러 안전장비 상태를 확인하라고 하는데, 작업장비의 상태나 교체 시기를 판단할 수 있는 기관이나 기준이 없어요. 그러다 보니 관리자나 개개인이 알아서 헤지거나 낡은 정도를 맨눈으로 판단하고 바꾸는 실정이죠.”

이 일이 우리를 먹이고 살리려면
지상 수십 미터 철탑에 오르는 것만이 송전 전기원의 고충은 아니다. 올려다보기만 해도 어질해지는 높이에서 벨트 하나에 몸을 맡기는 것도, 살이 익다 못해 근육이 찢어지고 뼈가 비틀어지는 것을 감내할 수 있는 이유는 ‘먹고 살기’ 위해서다. 그런데 이마저도 녹록지 않다.

“IMF 이후 계속 임금을 깎였죠. 10년 가까이 평균 노무단가가 30만 원이었는데, 몇년 전 노동조합이 생기면서 임금 인상이 이뤄졌죠. 문제는 작업일수예요. 1년 중 성수기보다 비수기가 더 많아요. 한전에서 발주하는데 1년 중 상반기에는 5, 6월 하반기에는 10, 11월에 주로 일이 몰려있어요. 

성수기보다 비수기가 더 많아, 이 일만 해서는 먹고 살기 어려우니 대부분 비수기 때 다른 일을 하러 가죠. 철골작업이나 건물 유리닦기, 전차선 작업 등 고공에서 할 수 있는 일이라면 뭐든 해요. 요즘에는 지자체에서 주력하고 있는 출렁다리 사업 현장에 자주 가요. 고공작업 외에 중량물 취급도 익숙하니 용광로 교체작업에 나가기도 하고요. 이마저도 여의치 않으면 인력소에서 용역을 구해 부족한 수입을 메꿔요.

현재 전국의 송전 전기원은 300명 정도 되는데 평균 연령이 50세예요. 한전에서 고시한 정년은 만 60세에서 지난 2월 17일 이후 만 65세로 늘었어요. 그렇다 해도 새로운 인력투입은 거의 없는 게 문제예요. 워낙에 일은 고된데 처우는 열악하고 일거리도 많지 않아서 그렇죠. 지금 상황을 보면 5년 후에는 70%, 8년 후에는 80%의 송전 전기원이 사라져요.”

노동조합은 송전 전기원의 열악한 처우 개선을 위해서 상용직 전환을 요구하고 있다. 한전 측의 발주금액을 늘리는 등의 방식을 통해, 한전 송전정비협력회사의 상용직으로 일할 수 있게 해달라는 것이다.

“현재 실제 시공인력은 턱없이 부족한데 자격증을 가진 사람은 1만 명 가까이 돼요. 대학생이나 포크레인 기사, 목욕탕 관리사까
지 자격증이 있어요. 현재 송전 관련 자격증이 민간자격증인 터라, 6주간 교육이 끝나고 자격증이 발급되면 자격증 브로커들이 
얼마간의 돈을 주고 그 자격증을 관리하는 거죠. 일부 전기 협력업체들은 이런 유령자격증을 동원해서 입찰에 참여해요. 국가자
격증으로 전환해 국가가 주관하고 관리해야 합니다. 

시공업체도 마찬가지예요. 시공능력이 없다면 입찰도 막아야 해요. 현재 송전작업은 지중배전이나 변전과 달리 전기공사업만 등록돼 있으면 누구나 입찰에 참여할 수 있어요. 전국의 전기공사업체만 해도 1만 7~8천 개는 되는데, 실제로 작업할 수 있는 업체는 100개도 채 되지 않아요. 이렇다 보니 온갖 페이퍼컴퍼니나 유령자격증이 난립하고, 불법 하도급이 남발하는 탓에 노동자들의 처우는 날로 열악해져요. 업체의 시공능력 검증을 제대로 하고, 이후에도 지속적인 관리가 필요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송전전문업체 등록제를 시행해야죠.”

인터뷰가 끝나갈 무렵, 쉬는 날 무엇을 하며 시간을 보내는지 물었다. 그러자 ‘취미는 사치’라는 답변이 돌아왔다. 송전 전기원의 삶에서 사치는 취미 하나만이 아니었다. 가족들과의 관계도 사치라 했다. 어디 그뿐이랴. 안전하게 일할 수 있는 작업환경, 고된 노동의 대가, 우리 사회의 필요한 빛을 책임진다는 자부심도 모두 사치다. 다른 사람들처럼 주말이면 가족들과 함께 꽃도 보고, 이런저런 이야기도 나누고 싶다는 송전 전기원들의 소망이 사치가 아닌 그저 보통날의 모양새가 되길 바란다.

[동아시아 과로사통신] 일본 이주 노동자의 과로사 / 2021. 04

[동아시아 과로사통신]

일본 이주 노동자의 과로사

마코토 이와하시 POSSE 활동가

 

1990년대에 한국에서 시작한 산업연수생제도는 일본의 제도를 그대로 가져와 적용한 것이었다. 일본과 한국은 이주노동자 고용 제도 측면에서 많은 부분을 공유하고 있고, 그 공유하는 부분은 안타깝게도 이주노동자들을 저임금 노동 영역에 머물게 하고, 업무 중 사고와 질병으로 이어지게 하는 지점이다. 이번 동아시아 과로사통신 기사에서는 일본 이주노동자들의 과로사 및 산재 사망 사고를 짚어본다. (편집자 주)

이주 노동자의 산업재해로 인한 사망과 과로사는 일본에서 새로운 현상이 아니다. 법무부에 따르면 2010년부터 2018년까지 기술 인턴으로 일본에 온 174명의 이주 노동자가 뇌심질환, 자살, 질병 사망, 산업재해 사망 등 다양한 이유로 목숨을 잃었다. 그중 1건은 동사였고, 174명 중 118명은 사망 당시 아직 20대였다.

기술이전이라는 포장
실질은 저임금 노동자 양산

국가가 후원하는 기술 인턴 교육 프로그램은 1993년부터 시행되고 있으며, 공식적인 목표는 중국, 베트남, 네팔 등 동남아시아의 노동자가 일본에서 3년에서 5년동안 해당 프로그램을 통해 일할 수 있도록 하여 개발도상국으로 기술을 이전하는 것이다. 그러나 이것은 실질적으로 고령화로 인한 노동자 부족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수단으로 활용되어 왔으며, 또 이로 인해 다수의 노동권 및 인권 침해 사건이 보고되고 있다. 

노동기준청의 조사 보고서에 따르면, 2019년에 조사를 실시한 약 70%의 사업장에서 불법 초과 근로, 미지급 임금 등 근로기준법 위반 사례가 다수 적발되었다. 이렇게 많은 위법 사례가 적발되는 주된 이유는 해당 프로그램이 
인턴(본질적으로 합법적인 노동자임에도 불구하고)이 다른 사업장으로 이직하는 것을 허용하지 않기 때문이다. 따라서 인턴이 탈출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 고국으로 돌아가는 것이기 때문에 고용주가 인턴을 착취하기에 상당히 용이하다. 하지만 인턴 노동자 대부분은 일본에 오기 위해 집을 팔거나 돈을 빌린 경우가 많아서 빚을 갚을 정도로 돈을 벌 때까지 고국에 돌아갈 수 없다. 

그렇기 때문에 많은 사람들이 극도의 저임금으로 엄청나게 긴 시간을 일하고 있다. 일본 기후현의 의류 사업장에서 일하는 중국인 인턴들은 몇 년 동안 휴일이 거의 없다시피 일하면서도 그 지역의 최저임금이 시간당 800엔이었을 당시 시간당 400엔을 받았다. 그들은 약 630만 엔의 초과 근로수당을 받지 못했다. 

지속되는 이주노동자 인턴의 산재 사망

지속적인 극도의 장시간 노동으로 인해 인턴 노동자들 가운데 과로로 인해 사망한 사건이 다수 발생하고 있다. 2010년부터 2017년까지 41명의 인턴이 뇌심혈관 질환으로 사망하거나 급사했다. 이 밖에도 14명이 자살했다. 이러한 경우 업무 관련 가능성이 상당히 높지만, 업무 관련성이 공식적으로 인정되기 위해서는 피해자(과로사의 경우, 피해자의 가족)가 정부에 보상 청구 신청서를 제출해야 한다. 또 노동자들이 신청을 했다고 해서 신청한 모든 사건이 과로사로 공식 인정받는 것은 아니다. 실제로 피해자 가족이 일본어로만 작성된 신청서를 현지 노동 기준청에 제출하는 것은 여전히 너
무나 어렵고 피해자 가족이 보상을 받는 경우는 극히 드물다. 

2014년부터 2017년까지 외국인 인턴 노동자 10만 명 중 평균 3.7명이 산업재해로 목숨을 잃었고, 일본인 노동자의 경우 10만 명 중 1.7명이 목숨을 잃었다. 이는 분명 외국인 인턴 노동자들이 일본인 노동자들보다 훨씬 더 위험한 환경에서 일하도록 강요당하고 있다는 것을 뜻한다. 

일본 정부의 책임 있는 자세 필요 

국제사회에서도 해당 프로그램을 규탄하고 있다. 깨끗한 의복 캠페인(Clean Clothes Campaign, 1989년 네덜란드에서 결성된 의류업계에서 가장 큰 노동조합 및 비정부 기구이며 의복 및 운동복 산업의 노동조건 개선에 중점을 둔 시민 사회 활동을 목표로 한다)의 동아시아 긴급 호소 코디네이터인 존슨 양(Johnson Yeung)은 “UN 인권 이사회는 수년간 기술 인턴 교육 프로그램(Technical Intern Training Program)을 비판해왔지만 일본 정부는 여전히 이주 노동자의 권리를 보호하고 프로그램을 개선하기 위해 필요한 조치를 취하지 않고 있다. 정부는 노동력 부족을 완화하기 위해 이주 노동자에 의존하고 있지만 착취 근절을 거부하고 있다.” 라고 지적하였다.

[기자회견] 산재보험 전면 적용! 안전운임제 전면 확대!화물연대본부 산재노동자 추모주간 선포 기자회견

산재보험 전면 적용! 안전운임제 전면 확대!

화물연대본부 산재노동자 추모주간 선포 기자회견

 

일시 : 2021419() 오전10

장소 : 서울지방고용노동청(서울)

[취지발언] 화물연대본부 이봉주 본부위원장

[투쟁발언] 공공운수노조 김태균 노동안전보건위원장

[정당발언] 정의당 강은미 국회의원

[시민사회단체발언] 한국노동안전보건연구소 이나래 상임활동가

[현장발언] 화물연대본부 김명섭 전북지역본부장

[기자회견문 낭독] 화물연대본부 박재석 사무처장

 

기자회견문

산재보험 전면 적용! 안전운임제 전면 확대!

화물노동자에게 권리를! 시민에게 안전을!

 

2020년 화물연대 조합원 중 사망자 30, 업무상재해사망 9명 추정

화물노동자는 사고 위험 높지만 산재가입대상에서 배제되어 있다.

 

2020년 화물연대 조합원 중 30명이 사망했다. 이 중 업무상재해사망은 9명 정도로 추정된다. 이를 사망만인율로 환산하면 4.5이다. 2020년 우리나라 전체 산재사망만인율은 1.09이다. 이에 비해 4배 가량 높은 수치이다. 전체 화물노동자에 대한 산재사망통계를 찾으려 했으나, 고용노동부의 2019년 산재통계에는 육상 및 수상운수업으로 묶여있어서 도로화물운송업만의 정확한 수치를 찾을 수 없었다. 화물노동자가 얼마나 죽고 다치는지 공식적인 통계 자체도 없는 것이다.

화물연대가 2014년부터 조합원 사망사고 통계를 축적하여 분석한 결과, 2020년 우리나라 전체 산재사망만인율이 1.09인데 비해 화물노동자의 산재사망만인율은 6.86으로 일반노동자의 6.2배가 넘는 수치로 나타났다. 고용노동부가 발표한 산업재해현황분석과 비교한 화물자동차운수업 6.9배와 비슷한 수치다. 도로뿐만 아니라 작업장 내에서 발생하는 상하차 과정 등의 사고가 빈번하지만, 대부분의 화물노동자에게는 산재가 적용되지 않아 산재통계로 화물노동자의 위험을 파악할 수조차 없는 실정이다.

화물노동자는 살인적인 장시간 노동, 열악한 노동조건, 위험한 도로환경 등 달리는 시한폭탄처럼 사고위험에 노출되어 있지만 여전히 대다수는 산재보험 가입대상에서 배제되어 왔다. 오늘 우리는 세계 산재노동자 추모의 날을 맞이해 화물노동자의 산재실태를 알리고 제도개선을 촉구한다.

 

화물노동자 산재보험 일부적용 시행했지만 20%에도 못미쳐,

전속성 기준 폐기하고 화물노동자 산재보험 적용 확대하라.

 

산재보험 적용확대에 포함된 화물노동자는 안전운임 적용 품목인 컨테이너, 시멘트와 안전운송원가 적용 품목인 철강재, 그리고 위험물질을 운송하는 화물노동자이다. 20207월부터 산재보험 의무가입대상으로 적용되고 있다. 그러나 전체 40만 화물노동자 중 산재보험이 적용되는 화물노동자는 75천여 명에 불과해 여전히 대다수 화물노동자는 산재보험 사각지대에 놓여있다.

최근 고용노동부는 그나마도 전속성 기준을 충족하는 사업장에 한해서 산재보험을 적용하겠다는 입장으로 돌아섰다. 화물연대와 산재보험 의무적용 관련 협의에서 했던 약속을 헌신짝처럼 내팽개친 것이다. 화물연대는 화물노동자의 업무 특성상 회차, 혼적이 많기 때문에 주사업장이 있는 경우에는 같은 품목에 대해서 산재보험 적용을 요구한 바 있다. 고용노동부 역시 이를 이행하겠다는 약속을 한 바 있다. 그러나 다시금 전속성 기준을 이유로 제도의 사각지대를 방치하다 못해 다시 늘리는 행보를 하고 있다. 고용노동부의 이 같은 대응은 75천여 명 중 실제 산재보험 의무적용이 가능한 화물노동자가 절반도 채 안되는 결과로 이어질 것이다.

화물연대는 전속성 기준으로 하더라도 지금 당장 적용이 가능한 품목과 차종을 이미 제시한 바 있고 정부는 화물노동자들의 산재보험 확대방안 마련을 약속한바 있다. 시급히 전속성 기준을 폐기하고. 화물노동자의 산재보험 확대 방안을 마련해야 한다.

 

도로와 시민의 안전을 위한 안전운임제,

화물노동자와 도로안전을 위해 제도개선이 필요하다.

 

화물연대는 출범 이후 18년 간의 제도개선 투쟁을 통해 안전운임제를 법제화했다. 2020년 첫 시행된 안전운임제는 화물노동자의 운임과 노동조건이 도로안전과 밀접한 관계가 있다는 점에 착안한 제도이다. 화물노동자가 위험한 운송형태로 내몰리는 근본적인 원인은 낮은 운임 수준과 이에 따른 장시간노동에 따른 것이다. 화물노동자가 안전하게 운송할 수 있기 위해서는 운임을 정상화하고 과로·과적·과속을 하지 않더라도 먹고 살 수 있는 소득수준을 보장받아야 한다. 그래야 도로의 안전이 높아지고 화물차 사고가 줄어들 수 있다.

안전운임제는 그 의의에도 불구하고 3년 일몰제라는 한계에 갇혀있다. 화물연대는 올해 안전운임제 일몰제 폐기를 중심으로 안전운임제 안착과 확대를 위한 투쟁에 전면적으로 나설 것이다. 지금까지 그래왔듯이 화물연대는 또 한번 한계를 돌파하고 화물노동자의 생존권을 쟁취하기 위한 한걸음을 내딛을 것이다. 정부와 정치권은 안전운임제 제도개선을 위해 적극적인 태도로 나서야 할 것이다.

모든 화물노동자의 안전뿐만 아니라 도로와 시민의 안전을 위해 안전운임제 확대가 필요하다. 화물연대의 도로안전을 위한 투쟁을 산재노동자들을 추모하고 기억하며 약속한다.

화물노동자의 노동안전 제고와 산재사고 감축을 위해 우리는 아래와 같이 요구한다.

하나. 정부는 산재보험법을 전면 개정해 전체 화물노동자에게 산재보험 적용하라!

하나. 정부는 화물노동자의 안전하게 일할 권리 보장을 위해 산업안전보건법에 화물노동자를 포함하라!

하나. 정부는 안전운임제 확대를 위한 법제도 개선에 나서라!

 

2021년 419

화물연대본부 산재노동자 추모주간 선포 기자회견 참가자 일동

[현장의 목소리] 기나긴 10여 년의 투쟁을 돌아보다 - 유성기업 영동지회 김성민 교육부장 인터뷰 / 2021. 04

[현장의 목소리]

기나긴 10여 년의 투쟁을 돌아보다 

- 유성기업 영동지회 김성민 교육부장 인터뷰

거니 회원, 보건의료학생 매듭

긴 시간동안 수많은 투쟁과 상처를 안고 온 유성노조 노동자들의 삶은 어땠을까. 그리고 지금의 심정과 향후 계획은 무엇일까. 지난 2월 2일, 수많은 질문의 답을 듣기 위해 유성기업 영동공장에서 금속노조 유성기업 영동지회 김성민 교육부장을 만났다.

노동과 투쟁의 하루일과
‘유성기업’하면 노조파괴부터 먼저 떠오른다. 회사와 국가는 잔인하게 노동자의 일상을 파괴해왔고, 자본은 자신이 짠 일정과 강도로 노동자를 유도하며 성과로 하루 일과를 점검했다. 이에 맞서 투쟁해온 유성노조 노동자들의 노동은 어떤 모습일까.

“주조부에서는 합금을 제작해요. 우선 쇠를 녹여서 쇳물을 만들고 니켈·망간·크롬 등을 섞어서 합금을 만드는 거죠. 금형 틀에다가 넣으면 동그랗게 나오는데, 이걸 생산부에 넘기면 가공을 시작해요. 면을 깔끔하게 만들고 피스톤을 왔다 갔다 한 뒤 검사하고 내 보내는 거죠.”

출처: 거니

현재 정비과에 소속돼 노동 중인 김성미 교육부장은 이전까지 노조간부로도 활동했다. 그 간의 투쟁이 어떤 식으로 전개됐는지 궁금했다.

“작년 12월 31일까지는 출근투쟁(이하 출투)을 했어요. 2011년 처음 투쟁할 때는 회사가 용역을 세우고, 매일 몸싸움 하는 게 일이다보니까 출투하기가 어려웠대요. 조합원들은 두려움이 없다는 건 거짓말이죠. 언제든지 해고될 수 있다는 공포가 있는 걸요. 2012년부터는 재정비하고 현장조직화를 했어요. 어용으로 넘어간 사람들을 금속으로 오게 하는 거죠. 2015년까지는 현장에서 싸우는 게 자주 있었어요. 그러다 2016년 3월에 한광호 열사가 목숨을 끊었어요. 이를 계기로 조합원들이 다시 투쟁해야 한다고 마음 먹고, 내부에서 관리자하고만 싸우는 문제를 넘어 사회화 투쟁으로 가는 것에 동의했죠. 한광호 열사가 돌아가신 날부터 서울 상경 투쟁을 시작했고, 투쟁은 시청과 양재동으로까지 이어졌어요. 2017~2019년 초까지 조를 짜서 농성한 양재동 투쟁 때는 현대차가 직접 개입한 걸 두고 볼 수 없다해서 새벽같이 출투하고, 농성장에 와서 아침 먹고 점심에는 대법원 가서 피켓 들고 그랬어요. 그러다 2016년 11월 산재인정을 받았고, 다음 해 2월에는 유시영 대표가 구속됐죠.”

심야노동 철폐와 주간연속2교대제
야간노동의 유해함은 모두 알고 있다. 다만 야간수당을 받아야만 하는 경제적 이유나 지금 당장의 즉각적인 피해는 없는 것처럼 보인다는 이유로, 우선순위에서 밀려났을 뿐이다. 그러나 정말 심야노동은 노동자의 몸에 아무런 영향을 끼치지 않았을까. 김성민 교육부장의 대답은 ‘아니었다’이다.

“야간작업에 들어가면서 괜찮다고 하는 사람은 본 적이 없어요. 저도 너무 힘들어서 3년 밖에 못 하겠더라고요. 야간작업에 들어 갈 때는 출근길에 누가 뒤에서 라이트를 조금만 비춰도 화가 났어요. 스트레스가 상당하니 사소한 일에도 화가 나는 거죠. 그리고 야간작업을 하면 패턴이 자주 바뀌니 만성 피로가 생겨요. 낮에 농사 일손을 돕는다거나 가족들하고 시간을 보내는 등의 다른 일 들은 아무것도 못했죠. 너무 피곤해서 퇴근하면 잠만 자게 되고 그러다 조금 있으면 출근해야 하고 그러니까요.”

유성기업에서는 야간노동으로 노동자가 사망했다. 함께하던 동료가 영영 눈을 뜨지 못하는 것을 보며, 노조는 노동시간 문제와 건강권을 연결한 투쟁을 전개했다. 그렇게 심야노동 철폐의 요구와 투쟁이 시작됐다.

“조합원 중 한 명이 야간노동을 마치고 돌아오는 버스에서 못 내렸어요. 차 안에서 돌아가신 거예요. 당시에는 산재고 뭐고 몰랐 어요. 50대였는데 죽을 수도 있구나 그런가 보다 했어요. 그러다 제가 지회장을 맡고 나서 29살짜리 조합원이 자다가 죽은 거예요. 산재 신청을 했는데 불승인 나면서 회사가 줬던 임금을 도로 뺏어갔어요. 그걸 갚기 위해서 3주 연속으로 야간에 들어갔었대요. 그렇게 들어가면 안 되거든요. 이후로 우리에게 숙제가 남았어요. 왜 사람들이 죽는 걸까, 우리는 뭘 해야 할까하는 숙제요.

심야노동이 문제라는데 그러면 어떻게 해야 하나 고민했죠. 저 역시도 야간노동을 안 한다는 게 상상이 안 됐거든요. 그러다 주간 연속 2교대제를 알게 되면서, 저도 공부하고 노조 사업에도 포함하기 시작했어요. 주간연속 2교대제의 핵심은 월급제와 심야노 동 철폐라고 생각해요. 2009년에 실물경제 위기가 오면서 야간 잔업도 없고 퇴근 시키더라고요. 그러면 월급이 80~100만원씩 줄어드는 거죠. 오히려 이때 주간연속 2교대제 논의가 탄력을 받았어요. 사람이 죽었을 땐 초반에 반짝하고 말다가 실질적인 임금이 줄어드니까 문제가 되는 거예요. 그래서 기본급 인상과 잔업 줄이기를 동시에 진행하면서 주간연속 2교대제를 요구했어요.”

노조파괴가 끼친 영향들
노조파괴로 개별화·파편화된 노동자들은 사측의 징계를 피하고자, 생존전략의 일환으로써 본인의 노동 강도를 증가시킬 수밖에 없었다.

“2011년에 생산수량이 20~30% 정도 증가 했어요. 노조가 깨지니까 어용으로 간 사람들이 회사에 잘 보이기 위해서 생산수량을 높일 수밖에 없었던 거죠. 거부하면 징계하겠다는 식으로 나오니까요.”

사측은 CCTV 설치를 비롯해 일상적 감시· 민/형사소송·임금 삭감 등 온갖 방법으로 조합원의 일상을 파괴했다. 이렇게 자행된 조직적이고 지속적인 탄압은 조합원들의 몸과 정신 모두에 비가역적인 악영향을 끼쳤다. 탄압의 결과는 장소를 가리지 않았고, 스트레스는 가족에게로의 폭력으로까지 나타나기도 했다.

“누구도 우리의 억울함을 해결해 줄 수 없다는 막막함이 가장 힘들었어요. 월급을 받았더니 이유도 없이 삭감돼 있는 거예요. 항의 하면 지금 일하는 시간이니까 쉬는 시간에 오라고 해요. 당연히 10분 안에 다 이야기 못하죠. 그런데도 쉬는 시간 끝나면 작업장 이탈이라고 하면서 가라 하죠. 노조파괴의 핵심은 법으로 가는 거예요. 해고자들이 대법원 판결을 받으려면 5년이 걸려요. 법으 로 해결하려면 굉장히 긴 시간이 걸려요. 그나마 버텨서 이기면 다행인데, 중간에 포기해버리면 회사가 이기는 거잖아요. 그러니 더 힘들죠.

CCTV 감시는 회사가 책임 전가를 위해서 일상적으로 하는 행동이거든요. 그래서 우리끼리 농담반 진담반으로 얘기하기도 했어요. ‘조용히 얘기해. 누가 있을지도 몰라’ 이런 식으로요. 스트레스 받으면 모든 일에 다 짜증이 나잖아요. 평소라면 안 그랬을 텐데 아 이들이 조금만 떠들어도 화내고, 가정폭력도 일어나고 그랬어요. 노조파괴가 사람도 파괴하고 가정마저 파괴했어요.”

떠난 사람들이 남긴 숙제
유성기업 노동자들은 고(古) 한광호 열사 를 비롯해 여러 동료를 떠나보냈다. 노조 대의원으로 활동했던 열사에게 회사는 수많은 소송과 징계, 폭행 등 갖은 탄압을 자행해왔다. 결국 2016년, 열사는 죽음으로 내몰렸다. 떠나간 사람을 안고 남긴 숙제를 풀어나가며, 투쟁을 지속하는 시간을 노조는 어떻게 보냈을까.

“제가 지회장을 한 번 더 맡았을 때 저희 간부가 지게차에 치여 죽었어요. 한광호 열사도 돌아가셨고요. 돌아가신 분들이 남기고 간 것들이 있었어요. 첫 번째는 심야노동이었고 두 번째는 재해에 의한 사고였죠. 누가 지게차에 치여 죽을 줄 알았겠어요. 그런 데 적재물은 2단으로 쌓았지, 사람이 지나갈 길은 없지 이런 상황이니 그렇게 된 거예요. 마지막으로는 정신적 재해였어요. 노조 파괴에 따른 스트레스 때문에 사람이 죽어 나가니까요. 그래서 해고자들 중 일부가 개별적으로 산재신청을 했어요. 문제는 굉장 히 오래 걸린다는 거예요. 그나마 한광호 열사 경우에는 빨리 나온 편이라고 하더라고요. 사람이 죽는 데에는 그 이유가 있는 거 고, 그 이유를 밝히고 해결하는 게 남아있는 사람들의 숙제죠. 이런 것들을 노동조합이 적극적으로 요구해야 한다고 생각해요.”

언제부터인가 우리 사회에서는 죽음과 고통의 역치가 너무나도 높아졌다. 산재사망은 그동안 내재된 문제들이 곪다가 터진 가장 극단적인 형태임에도 불구하고, 누군가가 단식을 하거나 죽어나가야만 겨우 이슈화 됐다. ‘자본주의 사회에서는 산재로 사람이 하루에 7~8명 죽는 것보다, 주식이 1% 내려가고 올라가는 게 훨씬 더 큰 문제다’는 김성민 동지의 말이 이를 단적으로 반영한다. 이러한 사회에 ‘감수성’과 ‘경종’이 갖는 의미는 무엇일까.

“예전에는 저 역시 이 정도 힘든 일은 좀 견뎌야지, 참고 일하면 안 되나? 이렇게 생각 하고 살았어요. 그러다 노동조합을 하면서 감수성이란 걸 배운 거 같아요. 평등 감수성, 성인지 감수성 이런 감수성을 가진 구성원을 키워내는 게 필요하다 생각해요. 누군가의 노동문제가 당장 내 문제라는 인식이 필요하다는 거예요. LG 트윈타워에서 투쟁하는 노동자들이 얼마나 힘들까 이런 생각과 감수성이 있어야 해요. 노동조합이 할 수 있는 것도 그런 거잖아요. 양재동 투쟁 때처럼요. 저기서 힘들게 투쟁한다더라 우리가 뭐라도 해야 하지 않겠냐 하는 생각을 자꾸 만들어주는 게 필요해요. 1등만이 옳고, 경쟁체제가 당연하다는 사회에 경종을 울릴 수 있는 것들을 계속해서 해나가는 거죠.”

투쟁의 의미와 이후의 과제
연대의 힘으로 버티고, 투쟁으로 이끈 변화들이 많다. 유성기업 노조 조합원들이 꼽는 가장 큰 변화는 무엇일까.

“가장 먼저 떠오르는 건 현장에서 자율적 행동이 가능하다는 거예요. 지금도 일하는 시간에 이렇게 인터뷰하고 있잖아요. 지금은 조합원들도 자율적 행동이 당연한 거라고 생각해요. 투쟁에서 졌으면 이렇게 못했을 걸요? 다음으로는 비록 조합원의 수가 절반 으로 줄어들었지만 노동조합을 끝까지 지켰다는 거죠.”

작년 연말에 이뤄졌던 합의안에는 감시카메라 철거와 부당노동행위 책임자 처벌·조합원 트라우마 심리 치유사업 지원·노조 간 차별 금지·민형사상 고소/고발 취하·주간연속 2교대제 도입을 위한 실행위원회 가동 등이 들어있다. 앞으로의 노조에게는 어떤 과제가 남아있을까.

“악은 징벌하고 선은 복을 받아야 하는데 안 되는 거잖아요. 이제 일상을 찾아가려고 하는데, 산 넘어 산이예요. 왜냐하면 어용을 극도로 싫어하는 사람도 있지만, 현장 조합원들 입장에서는 그래도 10년째 같이 일을 한 사람들이니 아예 얘기를 안 할 수는 없잖 아요. 이런 갈등을 치유하고 회복시키는 게 가장 어려운 일이라 예상해요. 이제는 주워 담는 게 필요한 거 같아요. 서로간의 감정싸움도 추스르고, 투쟁하면서 미뤄뒀던 치유도 노조가 담아야 할 때인 거죠.”

오래된 탄압은 노동자들을 만성적 긴장상태로 내몰았다. 그간의 묵은 감정을 추스르고 상처를 치유하며, 하고 싶은 것을 찾을 충분한 시간이 필요하다. 그들이 앞으로 꿈꾸는 소망이나 계획이 궁금했다.

“10년이나 지났잖아요. 항상 불안하게 살다 보니 아이들이 어떻게 컸는지도 잘 몰라요. 아직은 조합원들도 자기가 뭘 하고 싶은지 잘 모르죠. 그냥 얼마 안 있으면 정년퇴직인데 돈 벌어야지 그런 말들을 나누곤 해요. 지금 조합원들 평균 연령이 10년 뒤면 정년 퇴직을 할 때니까요. 아무래도 제일 하고 싶은 건 쉬는 거죠. 앞으로는 충분히 휴식도 취하고, 가족들하고 놀러 가고 그러고 싶어 요. 개인적으로는 지금 현장에 돌아온 지 1년 됐거든요. 1년 새에 조합원들하고 많이 친해졌어요. 임원하다보면 아무래도 그러기 힘드니까 지금의 일상이 좋아요.”

[문화로 읽는 노동] 세상의 해고에 맞서는 불굴의 투쟁: -영화 <나는 나를 해고하지 않는다>가 보여주는 노동의 모든 문제들 / 2021. 04

[문화로 읽는 노동]

세상의 해고에 맞서는 불굴의 투쟁: 

-영화 <나는 나를 해고하지 않는다>가 보여주는 노동의 모든 문제들

김상민 문화사회연구소 소장

누군가 늦은 밤 지방 소도시로 장시간 자동차를 운전해간다. 새벽녘 임시 숙소에서 전형적인 사무직 노동자 복장 한 여성이 빨대 꽂은 팩소주를 마시면서 절망인지 분노인지 알 수 없는 어떤 감정에 가득 차있다. 주인공인 그녀는 무슨 이유인지 지방 하청업체에서의 1년간의 시한부 파견 근무를 명령받았다. 

이 장면에서 나는 언젠가 사무직 여성 노동자가 오지에 있는 현장으로 파견 발령이 났으나 개의치 않고 그 상황을 극복해 최고의 현장 노동자가 되었다는 뉴스를 본 적이 있다는 것이 떠올랐다. 아니나 다를까 영화 <나는 나를 해고하지 
않는다>의 이태겸 감독이 이 영화를 만들기로 결심한 것도 바로 그 뉴스 때문이라고 한다.

“당신 자리 여기 없습니다”
동기들 중에서도 제일 잘나가고 사내 모든 일에 일등이던 박정은 대리는 무슨 일 때문인지 알 수 없지만 권고사직을 종용받다가 타협으로 1년만 하청업체에서 일하고 돌아오라는 파견 명령을 받는다. 하지만 모든 걸 포기하듯 내려온 낙후된 지방 소도시의 송전탑 관리하청업체는 소장 포함 직원이 고작 네 명뿐이고, 그녀는 무엇을 해야 할지 도무지 알 수 없다. 원청에서 좌천되어 온 사무직 직원을 반기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사무직이던 정은은 작업관리대장을 만드는 등 자신이 할 수 있는 일들을 찾아보려고 하지만 돌아오는 동료들의 말과 시선은 차갑다. 

게다가 하청에서는 파견 노동자의 인건비까지 부담해야 하는 상황이 닥친다. 원청의 인원감축 방침은 원래 일하던 직원들의 일자리까지 위협한다. 파견 내려온 정은을 잘라내려는 목적이지만 근무평가 결과에 따라 누가 해고될지 모를 일이다. 급기야 원청은 평가관을 내려 보내 하청업체 평가를 실시한다. 

한편, 정은은 꿋꿋하게 자신도 현장 일을 하겠다고 결심하고 밤늦게까지 무거운 전기 작업 도구들과 혼자 씨름해가며 스스로 일을 배운다. 그러던 어느 날 함께 작업을 나가려고 하는 순간 자신이 입을만한 작업복도 없으며 심지어 현장 노동자들에게 특수 방전 작업복이 지급되기는커녕 그것을 자비로 구입해야 한다는 것을 알게 된다. 원청의 갑질과도 같은 평가과정, 노동자의 안전을 개인의 책임으로 전가하는 행태는 공공기관의 민영화와 다단계 하청구조나 노동자를 어떤 식으로 쥐어짜고 위험으로 내모는지를 극명하게 보여준다.

출처: 영화 <나는 나를 해고하지 않는다>

“여자가 일을 잘하고 못하고가 중요한 게 아냐, 아직도 모르겠어?”

정은이 자신의 일을 혹은 ‘자리’를 찾지 못하던 처음 며칠, 남성 동료들은 작업장 구석 칸막이 옆에 조그만 책상을 배치해둔다. 이미 원청에서도 자신의 자리를 뺏기고 사무실 바깥 복도 어딘가에 놓인 좁은 책상에 앉아서 일하던 그녀에게는 파견 명령을 받던 그 시간이 소환된다. 사무직 여성에게 현장직 남성들의 일이 주어질 리는 만무하고, 남성 동료는 자신들이 식사하고 난 자리를 치우는 것이 그녀의 일이라고 여긴다. 정은은 더욱 오기가 난다. 일을 주지 않는다고 지방노동위에 신고할 생각까지 한다. 

성별에 따라 해야 할 일의 종류를 구분하려던 남성 동료들의 잘못된 인식만큼이나 견고하게 여성을 노동 현장에서 차별하는 것은 바로 노동의 환경 자체다. 여성 노동자의 신체 사이즈에 적합하지 않게 만들어진 작업복, 작업 도구, 송전탑에 오르는 발판 사이의 폭조차도 남성 노동자의 신체에 맞추어져 있다. 모든 것이 여성 노동자를 작업의 환경으로부터 
배제하도록 만들어져 있다. 그래도 여성이 한 걸음도 그 안으로 들어설 수 없도록 만들어진 강고한 남성 중심의 노동 환경은 정은의 끈질긴 노력과 동료들의 수긍으로 조금씩 열리기 시작한다. 

“사는 게 그냥 알바에요”
동료 중 ‘막내’씨는 낮 시간에는 송전탑 관리 일을 하고 저녁에는 편의점에서 알바를 한다. 편의점이 끝나면 밤늦게 또 대리운전까지 한다. 아내 없이 딸 셋을 키우는 그는 적어도 쓰리잡 이상을 뛰고, 그러다보니 직장에 출근해서도 늘 피곤해 시간이 날 때마다 쪽잠을 잔다. 그런 것이 또 그의 근무평점을 낮추는 요인이 된다. 잠이 부족할 정도로 닥치는 대로 일을 하는데도 삶은 풍요해지지 않는다. 아니, 이미 불안정한 삶 자체는 끊임없이 알바와 부수입을 강제한다. 사는 게 알바와 다름없다.

그런 막내씨가 두려운 것은 일하다가 죽는 것이 아니다. “우리가 무서운 거는 해고예요. 해고되면 알바만 해야 되니까.” 죽음보다도 직장 없이 불안한 삶이 지속되는 것이 더 공포스럽다는 것은 그것을 겪어 본 이들, 그것을 겪고 있는 이들, 혹은 그것을 곧 겪게 될 이들이기에 알 수 있는 것이다. 해고는 죽음이라는 것을, 죽음보다 더한 고통과 두려움이 
따르는 것이라는 것을 우리는 알고 있다. “해고든 사망이든 그게 뭐가 달라요.”

“송전탑 위에서는 동료밖에 없어요, 동료를 믿어야지”
퇴근 후 편의점에서 늘 정은과 마주치던 막내씨는 원청의 실태 점검 평가 기간에 정은이 겪는 어려움을 알고 알바로 그녀에게 일을 가르친다. 평가에서 자신이 낮은 점수를 받고 해고될 수도 있는 상황이지만 동료를 위해 시간을 내고 노력을 아끼지 않는다. 고소공포증을 약까지 먹어가며 극복해보려는 정은은 처음엔 송전탑을 올려다보는 것만으로 숨이 막
힌다. 처음엔 동료의 작업이 다 끝날 때까지 1미터도 올라가지 못했지만, 막내씨 덕분에 고소공포증도 극복하고 일도 배우면서 삶의 활기를 조금씩 찾아간다. 

파견을 내려온 지 90일째 되는 날, 전기 작업을 하기 좋지 않은 흐린 날씨지만 응급상황이라 작업팀은 송전탑 작업에 나선다. 하지만 송전탑에 오른 막내씨는 그만 사고를 당해 사망하고 만다. 장례식장으로 걸려온 원청 동료의 전화는 근무평가가 낮은 막내씨만 제치면 정은이 직장에 남아있을 수 있다고 전한다. 하지만 정은에게 그의 죽음은 경쟁자가 
아니라 동료의 죽음이다. 동료의 죽음이자 나의 죽음. “우리가 제발 살 수 있게만 해달라”고 원청 관리자들에게 외치는 정은에게 파견이든 하청이든 구분은 의미가 없다. 오직 동료밖에 없다. 

“나는 나를 해고하지 않는다”
정전 때문에 장례식장에서 부패해가는 동료의 시신, 섬마을이라 가볍게 무시되는 전기의 혜택을 정은은 이제 두고 볼 수 없다. 그녀가 이미 해고되었다는 원청 관리자의 말은 이제 중요하지 않다. 해고 통보, 만류하는 소장, 흐린 날씨, 바람에 흔들리는 송전선, 이 모든 악조건을 뚫고 혼자의 힘으로 송전탑에 올라 기어코 전선을 연결해낸다. 그들이 나를 해고하
더라도, 자신은 결코 스스로를 해고하지 않을 것이라는 저 굳은 결심. 

통쾌한 복수나 반전을 보여주는 결말은 없다. 현실은 그렇지 않으니까. 이 영화에는 정말 노동의 현장에서 발생 가능한 다양한 종류의 문제들이 종합선물세트처럼 들어있다. 민영화, 권고사직, 하도급 파견노동의 차별, 노동자와 
노동자 사이의 무한 경쟁, 관리감독이라는 명분으로 이루어지는 본사의 갑질, 여성 노동(자)에 대한 왜곡된 인식, 불안정 노동으로 인한 불안정한 삶. 

정말 당장 포기하고 싶을 만큼 노동을 둘러싼 모든 문제들이 나를 둘러싸고 옥죌 때에도 나는 나를 포기하지 않겠다고 다짐하는 정은에게서 강철처럼 단련되는 삶의 의지, 노동의 의지를 읽는다. 그리고 매일 아침 그들이 외치던 
“우리는 생명, 우리는 빛”이라는 현장 구호는 노동과 삶의 가치를 스스로 드높이고 긍지를 갖게 만드는 주문이라는 생각이 든다. 노동과 삶의 가치를 무너뜨리고 손쉬운 해고를 가능하게 만드는 것들에 굴복하지 않겠다는 강한 의
지는 동료들과의 뜨거운 연대처럼 송전탑을 통해 저 멀리까지 이어진다.

[연구리포트] 노동시간센터 연구동향 보고 - 최근 직업환경의학에서 주목할 연구들 / 2021. 04

[연구리포트]

노동시간센터 연구동향 보고 - 최근 직업환경의학에서 주목할 연구들

김형렬 노동시간센터

노동시간센터에서는 <일터> 2021년 4~5월 2차례 걸쳐, 노동시간과 관련한 주요 연구, 정책 동향을 싣고자 한다. 최근 직업환경의학 분야에서 주목받았던 연구 세 편을 소개하고 한국 사회에 비춰볼 때, 참고하거나 논의할 거리를 나누고자 한다.

1. 비정규직의 건강이 더 나쁜가? - 호주 사례를 중심으로 [각주:1]

첫 번째 소개하려는 연구는 호주에서 진행한 비정규직과 정규직의 건강을 비교한 연구이다. 노동시간과 관련한 연구는 아니지만, 고용형태와 관련해서 우리의 예상을 빗나간 연구 결과와 그에 대한 해석을 함께 공유하고 싶다.

호주에서 진행된 몇 차례 연구에서 호주 비정규직들의 건강이 정규직에 비해 나쁘지 않거나, 오히려 건강한 것으로 조사되었다. 건강수준을 ‘SF-36’이라는 설문도구를 이용하여 조사하였는데, 육체적 활동, 통증, 활력, 사회적 기능 등에서 비정규직 노동자의 건강이 더 좋게 나은 것으로 평가되었다. 이러한 연구결과는 북유럽, 국내 연구에서 나온 결과와 반대로 나온 것이어서, 관련된 연구가 제대로 나온 결과인지, 호주만의 특성이 반영된 것인지, 추가적인 연구가 필요할 것으로 보인다.

이 논문에서는 호주에서 비정규직은 대부분 자발적 선택에 의한 것이고, 법에 의해 비정규직에게 임금을 더 지급하도록 되어 있는 규정에 주목한다. 호주에서는 동일한 노동을 하는 정규직에 비해 비정규직에게 20%의 임금을 더 주도
록 법에 규정되어 있다. 삶의 질의 측면에서 오히려 비정규직을 선택하고 있다는 해석이다. 고용의 안정 대신 임금을 더 주는 선택이 오히려 책임감은 적고, 스트레스가 적어 건강에 대한 부정적인 영향이 덜할 것이라는 이야기다.

설문도구가 아닌, 실제 건강의 차이가 나타날지 확인해 봐야 하는 것과 고용시장이 안정적인 상황과 그렇지 않은 시기에도 동일한 결과가 나타날지 등은 추가연구가 필요한 상황이다. 한국, 유럽의 여러 나라에서 이 연구의 결과를 근거로 고용안정과 임금의 트레이딩 논의가 가능할지, 우려 지점은 무엇인지 논의가 필요해 보인다.

건강영역
(기준집단: 정규직)
남자 여자
점수 Coefficient 95% 신뢰구간 점수 Coefficient 95% 신뢰구간
육체적 기능 0.55 -0.11 to 1.2 0.27 -0.26 to 0.8
통증 0.37 -0.35 to 1.1 0.9 0.25 to 1.54
일반적 건강 0.44 -0.07 to 0.96 0.41 -0.02 to 0.85
활력 0.53 -0.04 to 1.1 0.65 0.13 to 1.18
사회적 기능 1 0.28 to 1.73 0.58 -0.07 to 1.23
감정 1.81 0.73 to 2.89 1.24 0.24 to 2.24
정신건강 0.38 -0.15 to 0.9 -0.04 -0.51 to 0.42

표. 고용형태와 일반적 건강수준 (SF-36)

2. 과로사의 위험요인으로서 수면 부족 - 일본 트럭 운전 노동자 대상 연구 [각주:2]
두 번째 소개하는 연구는 일본의 트럭 운전자들의 과로 실태를 점검하여, 해당 노동자들이 수면 부족과 이로 인해 과로사의 전구증상인 피로의 위험에 처해있는 현실을 밝혀낸 연구이다.

본 연구에서는 과로사로 산재 승인된 사람들을 대상으로 사건 발생 전 전구증상을 중심으로 과로사위험상태를 정의하였다(Excessive fatigue symptom inventory). 일본 트럭 운전 노동자를 대상으로 과로사위험상태를 측정한 결과, 과로위험을 높이는 요인으로 수면, 노동시간 등의 관련성을 확인할 수 있었다. 본 연구의 결과는 수면시간이 짧을수록 과로사의 위험지표가 증가하는 양상을 보여주고 있다.

이 연구에서 매우 주목해야 할 연구내용은 다음과 같다. 과로사로 산재 승인된 분들의 의무기록 등을 찾아, 사건이 발생하기 전에 있었던 전구증상을 확인하였다. 그리고 이를 근거로 과로사 위험을 나타내는 설문 도구를 개발하였다. 26개의 문항으로 구성되어 있는데, 해당 문항들은 아래와 같다.

(1) 땀이 많아짐, (2) 요통, 어깨통증 (3) 얼굴홍조, (4) 흉통, 압박감, (5) 호흡곤란, (6) 반복적인 구토, (7) 빈맥, (8) 팔다리 감각소실, (9) 갑작스런 시각 상실, (10) 심한 두통과 어지러움, (11) 말이 어눌해짐, (12) 심한 치통, (13) 감정적인 다툼, (14) 갑작스런 의식 상실, (15) 멈추지 않은 코피, (16) 밤에 잠들기 힘듦, (17) 유의미한 체중 감소, (18) 수면이나 휴식을 취했음에도 회복되지 않는 피로감 (19) 졸음, (20) 화를 참지 못하고 욱하는 일이 자주 발생, (21) 식욕 상실, (22) 멈추지 않고 계속해서 직장을 그만두는 것에 대해 생각함, (23) 하루종일 잠을 잠, (24) 직장 끝나고 지쳐서 바로 잠이 듬, (25) 잠에서 일어나기 힘듦, (26) 일상생활 수행이 어려움

과로사가 이미 발생하면 대응할 수 없다. 이런 전구증상을 위험신호로, 빠른 대책을 마련하는 전략을 고민해볼 필요가 있다.

그림 1. 수면시간과 과로사 위험상태 관련성

이 연구에서 다른 트럭 운전 노동자들은 국내에서도 많은 연구와 정책 대안 등이 제시된 적이 있다. 이 연구가 진행된 일본은 직업 운전자에 대해 운전시간 제한을 두고 있는 나라이지만, 실제 트럭 운전 노동자들의 노동시간은 상당한 수준이었다. 한 달에 80시간 이상의 연장근무를 하는 노동자의 비율이 8.7%였다. 국내는 어떨까?

국내 화물 운송 노동자들의 실태를 조사한 한국교통연구원에 따르면, 2017년 기준 일반화물차 운전자들의 하루() 평균 노동시간은 12.7시간, 월평균 일수는 23.3일로 나타났다. 산술적으로 계산했을 때, 월평균 약 300시간(12.7시간×23.3)을 일하는 셈이다. 표준운임비 산정, (전속성 등의 문제로) 산재 적용의 어려움 등 우리나라 화물 노동자들의 문제도 해결을 위한 방안이 빨리 마련되어야 할 것이다.

3. 야간노동 건강문제를 줄이기 위한 스케쥴링 [각주:3]

세 번째 연구는 야간노동의 건강 문제를 줄이기 위한 교대제 스케쥴링에 대한 연구이다. 워크숍에 참여한 전문가들이 나눈 논의와 체계적인 분석 등을 토대로 야간노동의 위험에 분석을 근거로 한 개선방안을 제시하였다.

야간노동의 제한은 유방암, 손상예방이 주요 근거로 만들어졌다. 연속야간근무 최소화, 근무간 시간간격 충분한 제공, 야간근무 시간 최소화가 가장 중요한 관리 지점으로 설명하고 있다. 야간노동에 대한 위험 중 첫 번째는 야간근무 동안 졸음과 사고 위험 증가하므로, 이에 대한 관리를 중요하게 생각하고 있다. 연속 3일미만 야간근무, 교대근무 사이 시간은 11시간 이상으로, 근무시간은 9시간 미만으로 관리하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 유산예방을 위해서는 임신여성은 일주일에 1회를 초과하여 야간근무를 해서는 안 된다.

고혈압, 당뇨 유방암 등과 야간고정작업, 야간작업의 강도와 관련이 있다고 알려져 있고, 순방향 교대가 실험연구에서 생리적으로 더 적합하다고 알려져 있다. 연령증가와 수면장애가 특별히 관련이 있다는 근거는 없지만, 야간근무를 하는 경우에는 수면효율이 떨어져, 야간근무후 수면을 단축시킨다. 50세 이상에서는 야간근무와 빠른 업무복귀(근무와 근무 사
이 시간이 짧음)가 피로와 수면장애를 증가시킨다. 야간근무시 조명, 개인적인 선호도를 반영하여 교대 스케쥴 반영, 피로 관리 프로그램 제공, 피로 발견 기술 (집중력검사, 눈깜박 확인 등), 멜라토닌 공급 등이 논의되고 있다.

교대근무를 하는 이상 건강에 유해하지 않은 노동환경을 조성하는 일은 불가능한 것 같다. 역시 ‘좋은 교대제’는 없는 것이다. 그래도 교대근무를 해야 한다면, 여기서 이야기하는 야간근무 최소화, 고령, 임신노동자에서 야간노동을 제한하는 것은 최소한의 요구여야 되지 않을까 생각한다.

국내에는 야간노동에 대한 규정이 많지 않고, 그나마 청소년, 임신노동자에게 야간노동을 금지하는 규정이 근로기준법에 있다. 하지만 이 역시 본인이 동의하면 야간노동을 할 수 있도록 규정되어 있어서 실효성이 없다. 연속야간노동을 금지하는 규정은 아예 없다. 그래서 최근 물류노동자들이 연속 5-6일 야간 노동만 하는 경우가 매우 흔하고, 야간에 고정으로 근무하는 경우도 많다. 당장 이를 금지하는 규제방안을 만들어야 할 것이다.

  1. Is casual employment in Australia bad for workers’ health?”. Occup Environ Med 2021; 78:15–21. [본문으로]

  2. “Shorter sleep duration is associated with potential risks for overwork-related death among Japanese truck drivers: use of the Karoshi prodromes from worker’s compensation cases”. International Archives of Occupational and Environmental Health, published online. [본문으로]
  3. “How to schedule night shift work in order to reduce
    health and safety risks. Scandinavian Journal of Work”, Environment & Health; Stockholm Vol. 46, Iss. 6, 
    (2020): 557-569. [본문으로]

[일터4월_특집3] 질병권의 관점에서 만성질환자의 노동권을 이야기하기 / 2021. 04

[만성질환 노동자의 자리]

질병권의 관점에서 만성질환자의 노동권을 이야기하기

김다연 상임활동가

작년 성공회대 시설관리 용역업체는 ‘정년을 맞은 노동자도 “건강상 업무수행“에 문제가 없으면, 1년 단위로 촉탁연장 계약을 최대 3번까지 맺을 수 있다’는 골자의 단협을 깨고, 방광암으로 수술과 요양을 위해 2개월 병가를 사용했던 한 노동자를 해고했다. “건강한 육체”를 바탕으로 청소 업무를 할 수 없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이 노동자는 건강에 이상 없다는 의사 소견서도 제출했었다. 

질병 없는 “건강한 육체”를 도달해야 할 이상이자 노동자라면 갖춰야 할 기본값으로 여기는 사회의 노동시장에서는, 만성질환자들과 같이 회복하기 어려운 병과 함께 해야 하는 몸 혹은 아픈 적이 있는 몸(미래에 아플지도 모를 몸)은 그 자체로 결격사유다. 어릴 적 소아암 이력이 차별의 근거가 되기도 할 정도니. [각주:1] 아픈 이들은 자신의 질병, 질병 이력을 감추고 몸을 돌보기 위한 최소한의 요구도 쉬쉬한다. 설사 채용이 되어도, 건강한 육체도 병들게 할 만큼 과도한 근무 시간과 일의 양은 질병과 통증을 악화시키니 버텨내는 게 불가능하다.

이런 어려움은, 자신의 질병과 통증을 이기적인 핑계로 보는 동료들의 시선이 주는 두려움으로 배가된다. 아픈 이들은 타인의 기대에 부응해야 사정을 양해받고, 몸에 필요한 조치를 취할 수 있기에 자기 몸의 상태와 통증을 입증하고 설득해야 한다. 질병이 눈에 잘 띄지 않거나 질병명이 없는 경우는 더 쉽게 의심의 대상이 된다. 사회는 폭력의 피해자에게 ‘피해자다움’을 강요하듯, 아픈 사람에게도 ‘아픈 사람다움’을 강요한다. 

타인의 시선을 포함한 감당할 수 없는 노동조건은, 아픈 몸들을 노동에서 배제하고 노동권을 박탈한다. 이렇게 사회에서 몸이 오롯하게 받아들여지지 않는 경험들은, 아픈 이들이 질병과 질병을 앓는 자신을 스스로도 수용하기 어렵게 만든다. 

질병권, 아픈 몸을 기본값으로 하는 노동조건을 말하다

이런 한국 사회에서, 몇 년 전부터 질병과 함께 살아가는 이들이 자신의 질병 경험과 삶을 공적으로 드러내며 ‘잘 아플 권리’를 주장하는 “질병권” 운동이 일어나고 있다.

질병권이란, “(건강이 아닌) 질병을 중심에 배치하고, 아픈 몸을 사회의 기본 몸으로 설정하며, 질병을 겪는 상태도 삶의 ’정상적‘시기로 본다. 더 이상의 건강을 쟁취할 수 없는 아픈 몸을 인정하고, 모든 이가 건강을 삶의 최우선 목표로 두지 않을 수 있음을 존중” [각주:2] 받을 권리이다. 

질병권은 “아파도 충분히 회복할 수 있는 여건” 정도가 아니라, “취약하고 아픈 몸을 기본값으로 하는 사회”를 강조한다. 이런 사회의 노동권은 어떤 모습일까. 아픈 몸들도 ‘정상적으로 아프면서’ 무사히 일할 수 있게 하는 노동환경의 구성을 전제조건으로 할 것이다. [각주:3] 포인트는 건강한 몸에 기준을 둔 채 예외적으로 아픈 몸들을 특별히 배려하는 게 아니라, 애초부터 아프고 약한 몸에 맞는 노동환경을 설계를 주장한다는 점이다. 이는 ILO의 산업보건서비스의 원칙 중 노동자의 능력에 기준을 두고 노동조건과 노동환경을 맞춰야 한다는 ‘적응의 원칙’과 같은 맥락에서 읽을 수 있다. 

또한, 질병권 담론에서는 한 사회의 폭력과 배제와 차별과 극심한 경쟁과 과로와 오염된 환경과 같은 요소들은 몸에 질병과 통증으로 현현하지만, 아픈 몸에 대한 책임은 오롯이 개인에게 전가되는 현실을 비판한다. 이 역시 노동자의 몸과 마음을 해치는 노동조건을 변화시켜야 한다는 노동안전보건운동의 주장과 직결된다.

질병권의 관점에서 노동권을 볼 때, 더 주목할 점은 이제까지 사회에서 제대로 고려되지 않았던 “아픈 몸이라는 정체성”이다. 질병권에서는 건강중심 사회에서 소수자가 될 수밖에 없던 아픈 몸들이 바로 여기에 존재하며, 정당한 노동조건을 이야기할 때 이 몸들의 특수성을 배제해선 안 되고, 더 나아가 바로 이 아픈 몸이 사회의 기준이 되어야 함을 주장한다. 

이제까지 아픈 몸은 비생산적인 몸, 폐를 끼치는 몸, 독립적이지 못하고 의존하는 몸, 쉽게 주류에서 밀려나는 몸이기에 배제와 혐오의 대상이었다. [각주:4] 하지만 몸은 질병과 각종 통증을 포함한 변화에 늘 열려있기에, 아픈 몸 정체성은 누구나의 것이기도 하다. 질병권의 관점은, “취약한 몸”이라는 인간생명체의 본질적인 특성을 기준으로 노동조건을 구성해야 하며, 이는 건
강한 이들에게도 훨씬 유익하다고 말한다. 

그렇다면 넓은 스펙트럼의 아픈 몸 중, 기준이 되어야 할 ‘아픈 몸’은 무엇일까. 

“아픈 몸을 인정하는 것”(질병권 개념정의 일부)은, 몸 상태를 있는 그대로 수용하고 수용 받음을 의미한다. 결국 질병권에서 궁극적으로 지향하는 노동조건이란, 그 개개인의 특수한 몸의 조건과 경험들이 모두 존중받는 환경을 말한다. 이는 “정상적인 몸, 표준의 몸의 기준에 도전함으로써 정상성에 균열을 만들고 새로운 n개의 정상을 만드는 것이다” [각주:5]

동일노동의 기준
몸의 조건에 따라 생산량을 배분하면 비교적 건강한 몸이 더 많은 생산량을 소화하게 될 텐데, 이것이 역차별로 오인될 수 있다. “동일노동”을 계산하는 방식에 대한 재고가 필요하다. 익숙한 슬로건인 “동일노동 동일임금”에서, 동일노동은 무엇을 기준으로 하는가. 신체적(정신을 포함한) 차이를 고려하지 않은 동일한 시간/작업량과 같이 완전하게 동일한 조건
의 노동은 과연 평등한가? 적어도 한국사회에서 요즘 자주 이야기되는 평등이란, 이러한 기계적 평등에 머무는 듯하다.

“크론병 환자는 과로나 스트레스로 인해 염증이 심해지고, 장에 구멍이 뚫리기도 한다. (...) 크론병을 ‘딛고’ 성공하는 이들도 존재하겠지만, 그러기 위해서는 자신의 고통을 계속 외면하고 참아야 한다. 이는 목숨을 건 싸움이 된다.” [각주:6]

누군가에게는 피로감을 주는 일이 누군가에게는 목숨을 건 사투다. 겉으로 볼 때 동등해 보이는 노동조건은, 사람의 신체 조건에 따라 천차만별의 노동강도를 유발할 수 있다. 나에게 오는 신체적 부담의 관점에서, 이는 아픈몸에 대한 차별이다. 따라서 동일노동의 기준은 동일하거나 유사한 노동강도라는 관점에서 설정해야 한다. [각주:7]

노동현장은 돌봄현장이다
노동권은 천부적으로 태어나면서 부여되는 게 아니라, 노동을 할 수 있도록 보장하는 제도에서 생성된다. 그러니 아픈 몸의 노동권을 보장한다는 건, 일정 선 이상으로는 노동할 수 없고 때론 통증으로만 가득 차 몸을 돌보는 일에 전념해야 하면서도, 생존을 유지하고 사회관계망에서 배제되지 않으며, 자신의 능력을 발휘하기 위해서 노동을 원하거나 필요로 하는 복잡다단한 몸들의 욕망에 적극적으로 관심 갖고 여건을 만들어나가는 과정을 수반한다. 그렇게 세부적인 개별성을 고려할 때에서야, 아픈 몸들도 “동등한 인간”의 조건을 누리게 된다. 

아픈 몸이 가진 특수성에 주목하고, 그들에게 적합한 노동조건을 만들어내는 일은 ‘돌봄’ 그 자체이다. 노동현장은 돌봄현장이다. 하지만 법은 공식적인 강제력을 동원하여 최소한 지켜져야 할 것들이 지켜지게끔 할 뿐, 유연성을 발휘하기 어렵다. 세밀한 조정이 필요한 아픈 몸에 대한 제대로 된 노동권 보장을 위해서는, 상호 간에 ‘섬세한 눈길과 손을 가진 돌봄의 자세’로 몸을 대해주는 대인관계(방식)라는 제도가 때론 더 중요하다. 돌봄은 법이나 기타 규제로는 차마 파악할 수 없는, 상대방의 독특성을 이해하지 않고서는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물론 대인관계방식의 변화는 단순히 주체들의 마음
먹기에 기대어서는 안 되며, 돌봄을 가능하게 하는 덜 경쟁적인 사내 문화, 아픈 몸을 기준으로 한 넉넉한 인원 배치와 같은 조건들 역시 받쳐줘야 한다.

아픈 몸들이 함께 노동현장에 안녕히 존재할 수 있도록 돌보는 일이 곧 모두가 더 편하고 안전한 노동환경을 만드는 일이다. 우리가 아픈 이들의 각양각색의 질병 경험과 이들의 노동권에 대해 더 자주, 많이 듣고 말해야 할 이유이다.

 

  1. 조한진희, 기사 <건강 중심 세계의 질병 난민>, 비마이너, 2020.04.01 [본문으로]
  2. 조한진희(다른몸들), <우리 시대 건강권을 넘어, 질병권을 제안하다>, 2020한국문화인류학회 학술대회 자료집, 174p [본문으로]
  3. 물론, 아픈 몸들 중 전혀 일할 수 없는 몸도 있을 것이다. 질병권은 일하지 않을 권리 역시 동시에 주장한다.(조한진희(다른몸들), 2020, 175p 참고) [본문으로]
  4. <새벽 세 시의 몸들에게>에서는, 아픈 몸에 대한 혐오는 곧 인간이라면 마땅히 피해야 할 ”추함과 역겨움“을 ”’나‘의 현실에서 지우려는 욕구“로 본다. 돌봐져야 할 아픈 몸들은 의존할 수밖에 없는데, 이는 내가 차마 맞이하고 싶지 않은 ”비참한 상황“에 놓이게 하기 때문이다. 의존하지 않는 “독립적인 개인”이 바람직한 모델로 제시되고, 아픈 이를 위한 제대로 된 사회적 지원체계가 없는 상황에서 의존할 곳은 가족뿐이다. 그마저도 운이 좋아야 한다. 돌봄제공자(주로 여성가족구성원)와 집에 고립되어 질병과 경제적 어려움, 불안한 미래를 감당하며 생존 이외에는 생각할 수조차 없는 협소한 삶은 취약한 인간의 몸과 타인에의 의존을 혐오하게 할만큼 충분히 좌절스럽다. [본문으로]
  5. 조한진희(다른몸들), 2020, 174p [본문으로]
  6. 안희제, 『난치의 상상력』, 동녘, 2020, 94p [본문으로]
  7. 기저질환 환자의 경우, 주 52시간 이상 노동시 기저질환이 없는 이에 비해 심뇌혈관질환 발병률이 1.58배 상승한다는 연구결과가 있다. [본문으로]

[일터4월_특집2] 아픈 몸들은 외친다.산재보험과 건강보험은 ‘잘 아플 권리’ 보장하라. / 2021. 04

[만성질환 노동자의 자리]

아픈 몸들은 외친다. 산재보험과 건강보험은 ‘잘 아플 권리’ 보장하라.

이종란 회원, 반올림 상임활동가

그동안 우리 사회에는 아픈 몸에 대한 고려가 없었다. 아파도 학교에 가야 했고, 아파도 일터에 나갔다. 그런데 코로나19 감염병 시대를 관통하면서 우리는 ‘아프면 쉴 권리’가 있다는 것을 배우고 있다. 처음엔 단지 감염병 전파로 인한 위험성을 차단해야 한다는 필요에서 시작된 의미겠지만, 점점 ‘아프면 쉴 권리’에 대한 사회적 필요성과 공감대는 커지고 있다.

‘아프면 쉴 권리’에서 좀 더 나아가 ‘잘 아플 권리’에 대한 주장도 큰 호응을 얻고 있다. 우리에게 익숙한 ‘건강권’이라는 개념 대신에, ‘질병권’이라는 개념으로, ‘잘 아플 권리’를 주장하고 있는 <아파도 미안하지 않습니다>의 저자 조한진희 님은, 아픈 몸으로 여러 해를 살다 보니 우리 사회의 제도가 ‘건강한 사람’을 기준으로 설계되어 있고, ‘아픈 몸이 들어설 자리가 없다’는 문제의식이 생겼다고 한다. 매우 공감 가는 말이다. 반올림에서 암이나 난치성 질환 피해자분들을 만나오면서도 ‘잘 아플 권리’가 얼마나 부족한지 느낄 수 있다.

아픈 몸으로 살아간다는 것은

아픈 이는 질병 자체가 주는 고통을 감내해야 하는 것 외에도 힘든 점이 많다. 아프면 일을 못 하니 치료비, 생계비 부담이 크다. 오랜 투병으로 인한 경제적 어려움, 돌봄의 문제는 본인을 넘어 가족 전체의 문제가 된다. 아픈 게 미안할 일이 아닌데도 가족에 대한 미안함에 눈물을 보인다. 혼자 살다가 아프면 요양병원에라 도 의지해야 한다. 오랫동안 투병생활을 하다가 기초생활 수급권자가 되는 경우도 적지 않다. 수급권자가 되면 의료보호 대상이 되므로 치료비 걱정은 줄지만, 빈곤으로 인한 은근한 차별을 당하며, 작은 일자리도 얻을 수 없다.

이처럼 아픈 몸으로 살아가다 보면 빈곤과 소외가 현실이 된다. 오로지 노동으로만 먹고 살게 설계되어 있는 현대사회 구조에서 장애인이나 아픈 몸들은 쓸모없는 사람 취급을 당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닌 것이다. 그나마 존재하는 사회보장제도는 부족하고 허술하다. 차별당하지 않은 사람이 차별의 개념을 이해하지 못 하듯이, 건강보험이나 산재보험이 아픈 사람이 겪는 어려움을 바탕으로 설계된 것이 아니면 제도는 겉 돌고 제 역할을 하지 못한다.

암이나 난치성 질환 등에 대해 산재 인정이 시작된 지 수년이 흘렀으나, 산재보험은 이들의 현실적 필요를 잘 흡수·포괄하지 못하고 있다. 이에 반올림에서 경험한 몇 사례를 공유하면서 개선의 필요성을 이야기해보겠다. 또한 암이나 만성질환의 경우 건강보험 영역에서의 보호가 중요하다. 따라서 최근 논의되는 건강보험 상병수당에 거는 기대로 글을 마무리해 보겠다.

난치성 질환, 암 피해자의 휴업급여 부지급 사례

은희씨(가명)는 루푸스 환자이다. 25년 전 삼성반도체 공장에서 일할 때 이 병이 발병했 다. 치료제가 없어 25년째 이 병과 함께 살아간다. 2019년 근로복지공단에서 산재 인정을 받았다. 루푸스는 신체 장기 침범이 주요 증상이다. 어느 날 갑자기 신체 장기 어디에서든 이상이 나타날 수 있다. 갑자기 중환자실에 실려 가기도 했고, 뇌경색이 와서 현재까지 후유증이 있다. 합병증으로 생긴 쇼그렌(건조증후군) 때문에 치아의 80%에 손상이 오고, 한쪽 눈은 궤 양이 생겨 각막 이식까지 받았다. 그나마 수급권자가 되어 병원비 부담은 덜었으나 생계의 어려움을 겪는다.

이런 은희씨에게 산재 인정은 큰 희망을 주었다. 시효가 남아있는 2011년부터 2019년까지 우선 8년 치의 휴업급여를 신청했다. 그런데 믿을 수 없게도 고작 76일 치의 휴업급여만 지급이 되었다. 류마티스 내과 통원치료 일만 지급된 것이다. 몸이 아파 집 밖에 나가지 못했던 시간들을 보냈음에도, 휴업급여가 거절된 이유는 무엇일까.

‘휴업급여’란 업무상 사유로 부상을 당하거나 질병에 걸린 노동자가 요양으로 취업하지 못한 기간에 대해 지급하는 보험급여를 말한다. 평균임금의 70%를 휴업급여로 지급한다. (산업재해보상보험법 52조) 여기서 ‘요양으로 취업하지 못했다’는 것을 ‘어떤 기준으로 판단할 것인가’의 문제가 남는다.

근로복지공단은 ‘요양급여 신청소견서’ 서식란에 주치의에게 통원치료 기간 중 환자의 취업이 가능한지 또는 불가능한지에 대한 의학적 소견을 묻는 체크박스를 만들었다. 어떤 설명도 없이 그 서식을 맞닥뜨린 주치의는 어떤 생각을 할까. 주치의는 산재보험 휴업급여 제도가 무엇인지 모른다. 그러니 자신의 소견으로 취업 불가능하다고 하면 환자가 노동시장에서 배제당해 생계의 위협을 받을까봐 우려한다. 나중에 알게 된 사실은, 주치의는 근전도 검사결과 떨림은 있지만 그래도 움직임이 양호하니 취업 가능에 체크했다고 한다. 그게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는 잘 몰랐다는 것이다.

휴업급여 지급 기준이 바뀌어야 한다

이렇게 아픈 노동자의 절박한 생존권이나 다름없는 휴업급여 문제를 결정하는 데에 있어, 주치의에게 아무런 설명도 없이 간편한 체크리스트 하나로 휴업급여 지급 여부를 결정하는 것은 부당하다. 또한, ‘취업할 수 없는 상태’를 ‘의학적 소견’으로만 판단하는 것도 재고되어야 한다. 의학적으로는 심각한 상태에 이르지 않으면 취업 가능하다고 판단할지 모른다. 그런데 현실적인 노동시장은 어떤가. 노동자들은 장시간 노동을 하고, 밤낮이 뒤바뀌는 힘든 교대근무를 견딘다. 아주 튼튼한 몸으로도 버티기가 힘들어 과로가 일으키는 여러 질병으로 고통 받는 것이 만연한 게 현실이다. 그럼에도 아픈 환자가 억지로 취업시장에 내몰리는 것은 부당하다.

은희 씨의 경우, 다행히 재심사 결정으로 8년 치의 휴업급여를 지급 받을 수 있게 되었다. 그러나 은희 씨만의 문제는 아니다. 반올림의 최근 사례만 해도 두 사례가 더 있다. 암이 재발한 림프종 피해자의 경우, 주치의는 요양급여신청서 소견서 란에 취업이 가능하다고 체크하였다. 암에 대한 두려움, 약해진 면역력으로 취업은 고사하고 어떤 일도 할 수 없는 상황임에도 주치의의 소견 때문에 휴업급여는 부지급 되었다. 마찬가지로 뼈로 전이가 된 폐암 피해자에게도 같은 이유로 휴업급여가 부지급 되었다.

암 만성질환자를 보호하는 보험급여가 마련되어야

건강보험은 암 환자에 대해 요양비 산정 특례를 두고, 총액의 5%만 부담하게 한다. 5년 동안은 적어도 이 특례가 적용된다. 그러나 산재보험은 직업성 암 환자에 대해 별다른 대책 같은 것이 없다. 암이나 만성질환에 맞는 보험 급여가 필요하다.

산재 보험급여 중에 상병보상연금 제도가 있긴 하다. 요양급여를 받는 노동자가 요양을 시작한 지 2년이 지났음에도 치유되지 않고 ‘중증’요양 상태인 경우에 상병보상연금을 지급한다(산재법 66조). 그러나 그야말로 중증의 경우만 지급하는 것으로는 보호가 미흡하다. 이 상태에까지 이르는 정도가 아닌 만성질환자들은 현실적으로 취업을 할 수 없는데도, 상병 보상연금을 지급 받을 수 없다. 휴업급여의 경우 요양을 시작한 지 2년이 지나면 계속 심사 대상에 오른다. 제도가 불안정한 것이다. 만성 질환자들을 폭넓게 보호하도록 휴업급여 및 상병보상연금 지급기준에 대한 재고가 필요하다.

산재 비지정 병원의 문제, 건강보험 요양비 부당 환수의 문제

산재 비지정 병원의 문제, 건강보험 요양비 부당 환수의 문제도 심각하다. 난소암을 진단 받은 장00님은 생사를 오가는 투병 과정에서 부득이 요양병원에 입원했고, 어렵게 산재가 인정되었다. 그런데 근로복지공단에서는 해당 요양병원이 산재 비지정 병원이므로 산재 요양급여 적용이 되지 않는다는 안내를 하지 않았다. 나중에서야 산재가 적용되지 않는다는 걸 알았지만 건강보험이 있으니 크게 걱정하지 않았다.

2년 뒤 갑자기 건강보험공단에서 청천벽력 같은 통보를 해왔다. 산재 노동자인데 건강보험이 적용된 것은 ‘부정수급’이니 이달 안으로 요양병원 치료비 1400만원을 반환하라는 것이다. 산재로도 처리가 안 되었는데, 건강보험 요양비마저 환수하겠다는 것이다. 어떻게 이런 일이 발생할 수 있을까.

산재노동자는 산재의료기관(지정병원)에서 요양하는 경우만 산재보험이 적용된다. 부득이 한 경우에 한해서만 사후 요양비 처리를 할 수 있다(산재법 제40조). 이러한 적용방식은 의료 기관 선택권에 대한 심각한 제약이자 기본권 침해에 해당한다고 생각한다. 장00 님의 사례처럼 돌봄이 꼭 필요한 환자가 요양병원을 이용하려 해도, 가까운 곳에 산재 지정병원이 있는 경우는 거의 없다. 심지어 국림암센터나 원자력병원도 지정병원이 아니다.

근로복지공단은 비지정병원의 요양에 대해서도 산재보험을 적용해야 한다. 부득이한 경우에만 예외를 허용하는 부당한 법조항도 개정되어야 한다. 건강보험공단도 문제가 크다. 아픈 노동자는 단지 몰랐을 뿐이다. 이러한 사정을 건강보험공단에 수차 이야기해도 자신들이 고려할 사항이 아니란다. 건강보험공단은 이제라도 산재 노동자를 부정수급자 취급하며 1400만원을 반환하라는 독촉과 협박을 멈추길 바란다.

2007년 국민고충처리위원회(현 국민권익위)는 ‘산재환자의 요양급여 지급제도 개선 권고안’을 냈다. 요지는 “산재보험법의 적용대상 이 아니라는 이유만으로 국민건강보험법을 적용하지 않는 것은 사회보험이익을 과도하게 제한하는 것일 뿐만 아니라. 사회보장제도의 본질에도 반하는 것이므로 산재보험급여 대상이 되지 않는 요양은 건강보험법을 적용하도록 함이 타당하다”는 것이다. 또 ‘산재노동자가 건강 보험료를 납부하고 있는데 건강보험을 적용하지 않는 것은 국민의 기본권을 과도하게 제한하고 있는 것이니 국민건강보험법이 개정될 때까지 지침을 마련하거나 관련 지침을 개정하라’고 권고했다. 당시 보건복지부 장관이 이를 수용한다고 밝혔다.

권고안이 나온 지 14년이 흘렀다. 이제라도 법이 바뀌어야 한다. 법이 바뀌기 전이라도 건강보험공단은 부당한 환수조치를 멈춰야 한다. 두 보험 간의 연계성이 떨어지고 보장성이 떨어지는 문제를 재해노동자에게 전가하는 것은 원칙적으로 금지시켜야 한다.

아프면 쉴 권리, 건강보험 ‘상병수당’ 도입에 거는 기대

코로나19 감염병 시대에 아프면 쉴 권리를 제도상 정착하기 위한 논의가 한참이다. ‘업무 외 질병’에 있어서도 아프면 쉴 권리를 구현하기 위해 건강보험에 상병수당 도입을 추진하려는 것이다. 구체적인 내용은 이제 논의 중이라는데, 부디 단기적 대안으로 그치지 않길 기대해본다.

아프면 쉴 권리가 제대로 구현되기 위해서는 지급 기간과 보장수준에서 충분한 수당이 되어야 한다. 휴업급여처럼 지급에 있어 까다로운 조건을 걸지 말아야 한다. 또한 직장에 복귀하는데 있어 어떠한 불이익도 없어야 권리가 실현될 수 있을 것이다.

건강보험의 상병수당 논의는 모든 노동자들의 문제이자 보편적 복지의 문제이다. 사실, 아픈 이유가 일 때문인지, 또 다른 이유 때문인지 파악하기는 쉽지 않다. 이유가 혼재되어 있기도 하고 이유를 밝히기 어려운 경우가 태반이다. 산재라 하더라도 규명이 어렵기도 하고, 산재가 아니면 휴업급여 같은 것이 필요 없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병의 원인과 무관하게 아프면 치료비와 생계비 걱정 없이 잘 치료받고 다시 복귀할 수 있도록 상병수당이 제대로 설계되길 바란다.

[건강한노동이야기] 죽을 때까지 일하길 원하는 사람은 없다

이번주 <건강한 노동이야기>는 정흥준님이 끊이지 않고 발생하고 있는 택배노동자의 과로사, 그 중 쿠팡의 심각한 과로문제와 노동환경의 문제를 다루어주셨습니다. 제목처럼 죽을 때까지 일하길 원하는 사람이 없지만 계속 죽고 있는 현실을 바꾸기 위해선 사회가, 기업이 무엇을 해야 하는지를 짚어주셨습니다.

"다시 택배 노동을 돌아보자. 죽을 때까지 일하고 싶은 사람이 있을까. 그것도 자발적인 선택으로 말이다. 아마 없을 것이다. 현재 대책으로는 죽을지도 모르는 시스템에 사람을 밀어 넣고 알아서 죽지 말고 일하라는 택배 회사의 이기심을 바꾸기 어렵다. 그래서 지금 필요한 것은 택배 회사에 선의를 요청하는 것이 아니라, 죽지 않고 일할 택배 산업 시스템을 새로 만드는 것이다. ‘탓’ 좀 하지 말고, 말이다."

http://www.vop.co.kr/A00001563547.html

 

[건강한 노동이야기] 죽을 때까지 일하길 원하는 사람은 없다

현재 택배 시스템은 죽을지도 모르는 곳에 사람을 밀어 넣고 알아서 죽지 말고 일하라는 것이다

www.vop.co.kr

 

[일터4월_특집1]만성질환자의 몸과 마음을 담은 사회제도, 있어? - 삼성반도체직업병(전신 홍반성 루프스) 피해자 구진선(가명) 님 인터뷰 / 2021. 04

[만성질환 노동자의 자리]

만성질환자의 몸과 마음을 담은 사회제도, 있어?

- 삼성반도체직업병(전신 홍반성 루프스) 피해자 구진선(가명) 님 인터뷰

정경희 선전위원

구진선 님은 IMF 이후 갑작스런 부서이동 이후 1999년 삼성전자(주) 기흥공장에서 퇴사 하였다. 웨이퍼 가공공정의 포토공정에서 4년 7개월간 3교대 근무를 하였고, 2020년 ‘전신성 홍반 루프스’로 업무상 질병 승인을 받았다. 지난 26년간 그녀의 삶을 통해 만성질환자가 겪 고 있는 현실을 직시하고자, 3월 17일 요양을 목적으로 이사한 여주 시골집을 찾아 인터뷰하였다.

구진선 님이 여주 시골집에서 창밖을 바라보고 있다. 출처: 구진선

퇴사 후 결혼, 임신 중에 나타난 몸의 이상 증상

구진선 님이 근무하던 라인은 정예 멤버만 남기고 인원감축에 들어갔다. 자진퇴사여부를 가리는 면담과정을 거쳐 그녀는 반자동 신규라인에 남기로 했다. 그러나 신규라인은 납기일에 맞춰 물량을 빼기도 하고 반자동이다 보니 그만큼 일도 많았다. 무엇보다 라인멤버의 유대관계가 예전 같지 않아 퇴사를 결심했다고 한다.

“퇴사의사를 밝힌 후부터 퇴사당일까지 아무 일도 시키지 않고 장비만 돌아가는 곳에 혼자 있게 했어요. 그동안 열심히 일해 왔는데, 일하다 퇴사하는 것은 선택 가능한 당연한 권리 아닌가? 당시 스트레스도 많이 받고 힘들었죠. 근무 할 당시 피로감이나 편두통 같은 두통이 많았어 요. 눈의 피로가 심했고, 한번 라인에 들어가면 방진복을 입고, 담당설비가 있으니 화장실을 자유롭게 갈 수가 없으니 방광염 등으로 병원 다니는 친구들도 있었어요. 우리가 취급하는 물질이 무엇이고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들어본 적도 교육받은 적도 없어서 누구나 아프니까 아픈 게 당연하다 생각했던 것 같아요.”

퇴사한 해 남자친구였던 현재 남편의 청혼으로 결혼을 했고, 임신 7개월쯤 다니던 산부인과에서 단백뇨가 나오니 큰 병원에 가보라는 말을 들었다. 그 순간이 지난 20년 동안 겪고 있는 고통의 시작이었다고 구진선 님은 회고했다. 가정을 꾸리고 새 가족을 맞이할 중요하고도 행복한 시기에 어려움을 겪게 된 것이다.

“몸이 붓고 다리도 부었는데 정확한 진단을 못 내리는 거예요. 임신중독 증상인지, 루프스인지 애매하게 생각만 할 뿐이었어요. 그런데 원주 기독병원 갔을 때 애기 심장소리가 안 들린다고 하는 거예요. 8개월에 1.43kg 미숙아로 태어나서 인큐베이터에 한 달 반가량 있었고 저는 먼저 퇴원했어요. 애기 낳고나니 친정엄마가 병원에 면회 오셨어요. 몸이 붓기도 하고 얼굴에 나비모양 반점이 있어서인지 엄마가 저를 못 알아보시는 거예요. 퇴원하고 여러 병원을 전전하다 아산 병원에서 검사하고 남편이랑 결과 들으러 갔더니 ‘이건 완치가 없는 병이라 치료가 안 돼요.’ 라고 했어요. 당황스러워서 남편과 서로 쳐다만 봤어요. 지금은 신장이 안 좋지만 다음에는 어디로 갈지 모르고 눈에도 가고, 머리에도 가고 전신을 다 공격한다고 무서운 얘기를 들으며 ‘루프스’라는 것을 알게 되었죠.

달수를 채우고 퇴원할 때도 애기는 2.5kg 밖에 되지 않았고, 한돌 쯤 됐을 때 코에 동그랗게 낭종이 생긴 거예요. 검사하니 뇌종양이었이라 고 하더라고요. 머리를 열어서 수술할 뻔 했는데 캐나다에서 소아신경외과 선생님이 오셔서 코로 수술했어요. 병원 다니면서부터는 온 집안이 난리가 났으니 남편이나 저나 결혼해서 신혼의 달콤함은 남의 말이었어요. 병원생활하기도 어렵고 힘들었죠.”

루프스 자가면역질환자로 살아가기

잠복기와 활동기를 반복하는 루프스는 활동기에 생명을 위협하고, 잠복기에는 드러나지 않는 통증과 언제 나타날지 모르는 활성화로 늘 불안의 연속이라고 한다. 고통의 시간을 다시 떠올리시게 해서 죄송했지만, 루프스 자가 면역질환 투병생활에 대해 여쭤보았다.

“잠복기에는 일반사람들과 겉으로는 똑같아요. 그렇지만 저는 계속 약을 먹고 염증을 일으키지 않게 조심해야 되고, 햇볕을 보면 안 되고, 거의 외부활동도 못하죠. 애기 낳고 퇴원했을 때 관절이 너무 아팠어요. 기어다녀야해서 애기 케어를 못하는 거죠. 우유도 못 탈 정도로요.

2005년도쯤 심해져서 병원에 입원했을 때 염증수치가 높았던 어느 날 친정 부모형제가 모두 병문안을 왔어요. 나중에 안 사실인데 죽는다 고 마지막으로 가족들 다 모셔오라고 의사선생 님이 말씀하셨다고 하더라고요. 저로 인해 애기 가 아팠고, 뇌종양 수술을 했고, 남편은 신장을 떼 줬어요. 그래서 남편도 사회활동을 하는 게 힘들어요. 남편이 감기만 걸려도 제 입장에서는 엄청 미안한 거예요. 나 때문이라는 죄책감. 원래 건강한 사람인데 신장이 하나 없어서 그럴까 미안함도 크고요.

저는 신장이식수술, 자궁적출술도 했어요. 자궁에 염증이 있었는데 일반인 같으면 간단하 게 치료를 받으면 되지만, 면역억제제를 먹기 때문에 모든 장기 문제가 암으로 갈 수 있는 확률이 엄청 높대요. 그래서 건강검진하고 1년 뒤에 자궁을 적출했어요. 자궁적출하고 신장이식하고 퇴원하려는데 후유증으로 눈에 바이러스가 침투한 거예요. 퇴원은 하고 버스타고 병원 다니 면서 약을 먹었어요. 신장 이식 초기에는 감염에 취약한데 마스크 쓰고 감염내과, 안과에 같이 다녔죠. 지금도 좌안이 시력이 떨어져있고, 비문증이 있어서 운전도 조심스럽고 컴퓨터 보는 것도 힘들어요. 지금은 신장이식센터에서 약이랑 관리하고, 거기 약이랑 루프스에 쓰는 면역억제제가 같아서 6개월에 한 번씩 류마티스내과에 가고 있어요.”

발병 후 15년이 지나서 산재신청을 했고, 20년이 지나서야 업무상 질병 승인을 받았다. 그렇다면 기나긴 투병기간 동안 그녀는 생활비와 의료비를 어떻게 감당할 수 있었을까!

“루프스가 희귀질환이라 진료비는 10~20% 정도 본인부담금을 낼 수 있었는데, 약값이 비싸서 남편 월급으로는 감당이 안 되는 거예요. 의 사선생님은 매일 아침, 저녁으로 두 알씩 먹으라고 했는데, 하루는 아침에만 두 알 먹고, 다음날 은 저녁에만 두 알 먹고 이렇게 빼먹은 적도 있었어요. 대출, 식구들 도움도 한계가 있었고, 약 값 때문에 남편이 밤에 대리운전도 했어요. 누가 건강보험공단에서 재난지원금이 있다고 알려줘서 혜택 조금 받았고, 보건소에 본인부담금 지원해주는 제도가 있어 조금 받았고요.

병원비도 그렇고, 애기 인큐베이터 값도 엄청 나왔고, 경제적으로 힘드니까 몸이 좀더 나은 잠복기가 되면 일을 다녔어요. 애기 4살 무렵에 는 집 가까이 걸어갈 수 있는 곳에서 아르바이트 를 했었거든요. 힘든 일 아니고 시청에서 오래된 문서 정리하는 간단한 일이요. 집에 있으면서 우울증이 있었거든요.”

일했다면 일할 수 있는데 왜 안하냐, 휴업수당 못 준다는 근로복지공단

황산, 염산, 불산이 있는 베쓰에 흄이 올라 오는 걸 쳐다보면서 세척하고, 먼지에 예민한 반도체와 장비를 아세톤으로 청소를 했다. 웨이퍼로 코팅을 할 때는 케미칼이 많이 튄 볼도 장비에 올라가 직접 교체하고, 주변에 튀면 손수 닦아주었는데 그 작업들이 자신의 몸을 망가뜨렸다는 사실을 너무 늦게 알았다는 그녀는 2020년에야 업무상질병 승인을 받았다. 그런데 아무런 느낌이 들지 않았다고 한다.

“아픈 몸으로 여기저기 20년 가까이 진료 본 수많은 자료를 냈는데 2015년 10월에 신청해서 승인받기까지 기간이 너무 길었잖아요. 발병 초기 검사하고 수술, 치료하느라 비용이 많이 들었는데 병원 진료비 세부 영수증 보관기관이 5년밖에 안 돼서 자료를 찾을 수가 없었어요. 중 간에 일을 할 수 있는데 왜 안 했냐고 휴업수당도 줄 수 없다더라고요. 공단에도 자문의가 있으면 신장이식을 한 사람은 평생 다시 투석이나 신장이 망가져서 이식을 하거나 평생 면역억제제를 먹고 계속 진료를 해야 한다는 것을 더 잘 알텐데, 계속 자료를 원하더라고요.

승인 이후라도 마음 편하게 병원 다녔으면 좋겠는데 의사선생님 만나서 요양연기신청서도 내야 해요. 바쁜 의사선생님께 ‘연장신청서 써주세요’ 어떻게 말을 꺼낼지 엄청 고민되고요. 공단에서 환자의 동의를 받아서 의료기관에 조치를 취해주면 되는 것이지 그것을 환자가 직접 받 으러 다니는 것은 아닌 것 같아요. 아픈 사람이 중심에 있지 않고 공단이나 기관이 더 중심에 있는 것 같아요.”

서로의 몸 상태가 다름을 인정하고 상처 주고받지 않게 살아가기

건강함이 정상성으로 인정되는 사회에서 질병을 개인의 잘못이나 부족함으로 치부하는 시선은 또 다른 고통이다. 구진선 님 역시 그런 시선 때문에 상처를 받아왔다. 그녀가 경제적 어려움과 우울증을 극복하기 위해 다녔던 일과 동료의 반응, 그녀의 기대에 대해 들었다.

“그 사람이 아프다는 걸 알면, ‘너 오늘은 어 디가 안 좋아 보인다’, ‘오늘은 얼굴이 왜 이래?’ 등 신체적으로 콕 집어서 대놓고 하는 말들이 다 상처거든요. 그냥 저 사람이 아프니까 그런가보 다 속으로만 생각하고 그런 말은 하지 않았으면 해요. 다름을 인정하고 이상하게 보지 않는 태도 도 필요해요. 최선을 다하고 있는데 자기만큼 못 한다고 해서 ‘야 힘 좀 써라’, ‘그것도 못 드냐’, 이 런 말들이 다 상처니까 저 사람이 아프다고 생각 하면 그런 말들은 삼갔으면 좋겠어요.”

아픈 사람도 정규성 있는 직업을 가질 수 있으면

“언제 발병할지 모르니까 업무를 하다가 갑자기 아플 수 있고 피해를 주게 되니까 정규직으 로 일하지 못했어요. 관공서 같은 데서 10~11개월 일하고 조금 쉬었다가, 또 몸이 괜찮다 싶으면 다시 했지 퇴사 이후 제대로 된 직장을 가져보질 못 했어요. 잠복기에는 멀쩡해도 조금씩 아프거나 관절이 아플 수 있는데 어디가 아프다는 말을 안 했어요. 관공서에서 사무보조로 의자에 앉아서 서류 정리, 입력해주는 정도 일을 주로 했죠.

저 같은 만성질환을 가진 사람이 일하기 위해서는 휴게시설이 있어야 할 것 같아요. 계속 일을 하는 건 안 되고, 질병의 특성을 동료들이 이해하고 어느 정도 일하고 쉴 때 눈치 안 주는 분위기, 단순한 일이라도 서로 공감할 수 있게 만성질환자들끼리 모여서 일을 할 수 있는 직장이면 더 좋겠고요. 주변에서 눈치를 안 준다고 해도 우리가 눈치를 봐요. 만성질환자들은 폐, 신장 등이 안 좋기 때문에 공기나 환경적으로 깨끗하면 좋을 것 같아요.

만성질환자는 평생을 병원에 다니는데 일 하다가 아프다고 쉬면서 치료 받고, 다시 직장에 들어가려면 힘들거든요. 솔직히 건강한 사람을 쓰지 누가 아픈 사람을 쓰겠어요. 그러니까 아프다는 얘기를 안 하고 일하다 아프면 그만 두는데, 아픈 사람도 꾸준히 일을 할 수 있게끔 했으 면 좋겠어요. 솔직히 아픈 사람들이 점점 사회하고 멀어지고 우울해지거든요. 잠깐 일을 하더라도 나가게 되면 일어나서 씻고 챙기고 자기를 가꾸면서 살아갈 수 있으니까요.”

건강함을 유지하기 위한 건강권 활동, 그러나 이미 사고나 질병으로 아픈 사람은 제대로 치료받을 권리가 있고 사회는 이를 보장해야한다. 구진선 님의 인터뷰를 통해 아픈 사람이 살아가기에 제도적 장치가 부족하다는 것, 서로 다른 몸들이 살아가기 위해 가져갈 삶의 태도에 대해 알 수 있었다. 기꺼이 고통의 시간을 소환해주신 구진선 님께 감사드리며, 활동기로부터 불안감을 떨쳐버릴 만큼 잠복기가 지속되길 기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