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호 기획 7. 청소년 노동건강권 활동을 돌아보며 - 청소년노동인권네트워크 이수정 활동가 인터뷰 / 2020.10·11

[노동안전보건운동과의 마주침 ]

청소년 노동건강권 활동을 돌아보며 - 청소년노동인권네트워크 이수정 활동가 인터뷰

이숙견 상임활동가

2014년 1월 24일, CJ 진천공장 현장실습생으로 나간 김동준군은 폭언과 폭행, 장시간 노동에 시달리다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왜 현장실습 과정에서 죽을 수밖에 없었을까?"로 시작한 청소년 노동인권활동은 연구소 내 청소년 노동건강팀을 구성하게 하였으며, 이 과정에서 청소년노동인권네트워크(아래 청노인넷)와 소중한 인연을 만들어주었다. 청노인넷에서 2006년부터 핵심적인 역할을 해오고 있는 이수정씨를 만나 청소년 노동인권 활동과 과정에서 고민 그리고 향후 청소년 노동안전보건 활동 방향을 나누었다.

청소년노동인권네트워크 활동의 시작

"2003년 실업계고 현장실습생이 엘리베이터 설치하는 과정에서 사망사고가 발생하게 되면서 현장실습 문제에 대한 고민이 있었던 단체 전교조 실업위, 인권운동사랑방, 불안정노동철폐연대, 민주노동당 등들이 모이게 되었어요.

자연스럽게 실업계고 현장실습 실태조사를 하게 되었고, 당시 열악하고 위험한 현장실습 상황을 드러내면서 문제를 제기하였습니다. 이러한 활동이 교육부의 2006년 직업계고 현장실습 정상화 방안을 이끌어 냈고요. 저는 2006년 '노동자의 벗' 프로그램을 통해 청소년노동인권네트워크를 알게 되었고, 이후 한국비정규노동자센터 소속(민주노무법인)으로 청노인넷 활동에 참가하게 되었습니다"

청노인넷은 네트워크로 모인 활동 단체로 많은 성과를 냈다. 실제로 '똑똑, 노동인권교육 하실래요?(아래 똑똑)'를 함께 만들고 워크숍을 진행하면서 많은 지역에서 청소년노동인권네트워크 확산과 교육과정에서 노동인권교육의 필요성을 제기하고 전국화에 큰 역할을 하였다. 더불어 교육을 통해서 만난 청소년은 미래의 노동자가 아닌 현재 일하는 청소년 노동자로서 밑바닥 노동 현실을 직면하게 했다.

"현장실습 대응활동으로 시작했으나 청노인넷에 모인 단위가 공통으로 교육에 관심이 많았어요. 2006년 현장실습제도 정상화 방안을 끌어내면서 현장실습대응보다 자연스럽게 교육활동으로 모아졌어요 노동인권교육의 필요성을 느끼면서 함께 만든 내용이 '똑똑'이었지요.

처음부터 완결된 내용이 아니기에 워크숍을 통하여 내용을 보완하고 함께 프로그램을 만들어냈어요. 공부방, 학부모, 청소년단체, 노동조합활동가 등이 전국에서 참석하였습니다. 첫 번째 워크숍을 2005년에 시작하였고, 2010년까지 매년 워크숍을 하면서 전국단위 활동가들과 함께 하였습니다. 더불어 학교 안에서 노동인권교육의 필요성도 느끼고 있었기에 전교조 교사 대상의 직무연수도 함께 배치했죠.

학교나 지역에서의 교육은 실제로 일하는 청소년의 심각한 노동현실을 직면케 하였고, 이 과정에서 필요한 실태조사-예를 들어 2008년 최저임금 실태조사, 2011년 10대 배달노동실태, 2014년 10대 밑바닥 노동 등-로 이어졌으며, 문제 제기와 대응을 요구하는 활동으로 연결되었습니다. 네트워크로 구성되었지만, 참가자가 관심과 이슈를 가지고 참석하였고, 과정에서 실태조사와 문제에 대한 방안 마련을 요구하는 대응활동으로 자연스럽게 연결할 수 있었어요."

하지만 2011년 광주 기아자동차에서 발생한 현장실습생 뇌출혈사건은 엄청난 충격을 안겨주었다. 대부분 직업계고 현장실습문제에 관한 상담은 취업 이후 임금문제 정도였는데, 기아차 사건을 통해 확인된 현장실습제도의 문제점은 확인할수록 심각했다. 이 사건은 현장실습생이 도장부서에서 주 70시간 이상의 장시간 노동과 야간노동을 하는 과정에서 발생한 문제이며, 취업률을 위해 산업체의 단기간 노동으로 활용될 수밖에 없는 현장실습 제도 자체의 근본적인 문제가 있음을 확인하게 되었다.

그러나 청노인넷에 함께 했던 청소년단체와 인권단체는 2012년 학생인권조례 활동에 집중하면서 네트워크 활동을 중단하게 되었고, 결국 남은 단체의 역량으로 현장실습제도를 바꾸기에는 벅찬 상황이 되었다. 하지만 이 사건을 통하여 현장실습제도와 실습생에 대한 금속노조 등 노동조합의 관심과 연계를 모색하는 실마리가 되었다.
 
"그전까진 노동조합이 현장실습제도와 현장실습생에 관한 관심이 없었어요. 잠깐 왔다 가는 학생으로만 생각했지 동료로 생각하지 못했었죠. 노동조합이나 금속노조에서 관심갖게 되었고, 대책위가 만들어지면서 적극적으로 결합하였지만 이후 청노인넷 활동으로 함께 이어지지는 못하였습니다.

더불어 직업계고 현장실습제도를 바라보는 입장 차이와 지역과의 소통과정에서의 여러 문제로 현장실습제도는 개선방안을 마련하는 정도로 마무리되었어요. 청노인넷도 단체들이 빠지면서 단체결합에서 개인이 결합하는 방식으로 바뀌게 되었죠.
이렇다 보니 이슈를 중심으로 모여 집중하고 빠른 대응이 가능했던 네트워크의 활력이 떨어지게 되었고, 자발성과 책임성이 요구되는 네트워크 활동의 지속성을 유지하기가 쉽지 않았습니다."

이후 현장실습생의 사망사건은 지속적으로 발생된다. 현장실습생이 야간작업 중 폭우로 바다에 빠지는 사고, 야간에 폭설로 공장지붕이 무너지면서 작업 중인 실습생이 사망하였고, 괴롭힘과 과로노동으로 자살사건이 발생하였다. 이 과정에서 연구소는 현장실습생의 산재사망사건 대응과 노동안전보건 현황을 확인하기 위해서 청노인넷을 방문하였다.

한노보연의 결합

"현장실습생 고 김동준님 사건 이후 연구소에서 최민 활동가와 김형렬 소장이 찾아왔어요. 당시 충북지역에서 대응하고 있었고 청노인넷은 여력이 없는 상황에서 대응 수위를 고민 중이었기에 연구소가 제안한 현장실습 실태조사와 대응활동에 적극적인 노력을 할 수 없었어요.

하지만 기존 단체와는 다른 노안단체이기에 기대가 있기도 했습니다. 그리고 2015년부터 최민 동지가 연구소 상임활동가로 청노인넷에 함께하면서 현장실습 제도 문제에 대한 고민을 다시금 하게 되었어요.

2015년 전교조, 민주노총, 금속노조 등 3차례 단위별 간담회를 진행하였고, 2016년 직업계고 실습실 실태조사는 기간 직업계고 대응활동에서 다른 돌파구를 보여주는 활동이기도 했다. 당시 단체들이 빠지면서 침체되어 있던 청노인넷의 상황에서 연구소의 결합(특히 무게감을 싣는 상임활동가의 결합)은 활력이 되었어요."
 
연이어 발생한 전주 LG유플러스 사망사건과 제주 음료수 제조공장 현장실습생 사망사건은 전국 현장실습대책위원회를 구성하게 하였고, 간담회에 참석한 단위(민주노총, 금속노조, 전교조실업위원회, 비정규직없는세상, 불안정노동철폐연대 등)가 대책위 구성에 함께할 수 있었다.

이번에는 산업체파견 현장실습 폐지를 내세우며 공세적인 대응을 하였으나, 결국 현장실습제도 개선에 더 초점을 맞춘 당사자 조직의 요구와 지역 및 전국 대책위 내 여러 버거움으로 결국 지금의 현장실습제도로 머물게 된다. 이 과정에서 대책위도 해소하면서 결국 개인의 활동가와 한노보연이 함께하는 청노인넷으로 남게 되었다.

그리고 직업계고 현장실습제도 대응활동은 연구소에도 많은 경험을 하게 한 활동이었으나, 과정에서 현장실습생, 직업계고학생, 그리고 교사와 노동조합 등 모두의 동력이 함께하지 않는 한 근본적인 해결방안 마련이 힘들다는 것도 확인하였다. 2019년부터 연구소는 우리가 잘할 수 있는 활동으로, 청소년과 교사, 활동가를 대면하고 함께 할 수 있는 활동으로 전환을 모색 중이다. 그중 하나가 청소년 노동인권활동가 대상 노동안전보건 워크숍이었다.

"2019년에 이어 청노인넷과 함께 준비 중인 청소년 노동안전보건 워크숍은 청노인넷에서도 시너지가 되는 활동이며, 청소년 노동안전 이슈의 전국화로 연결할 수 있는 계기가 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하였어요. 하지만 다시 지역과 만났을 때 그러지 못한 상황을 확인하게 되었고, 올해 심화과정을 준비하면서 코로나까지 겹치면서 기대했던 사업이 될까, 오히려 교육 아이템 중 하나가 되어버리진 않을까 하는 우려도 됩니다.

교육이 중요하다고 생각한다면 지금은 교사와의 접촉면을 더 넓혀서 교사들이 수업에서 풀 수 있도록 해야 합니다. 교과과정도 융합교과, 선택 교육 등으로 바뀌는 상황이어서 더욱 그렇습니다. 교사가 교육 내용을 잘 소화해야지 학생들에게 전달을 잘할 수 있습니다.

최근 나오는 안전보건 교과서도 내용이 문제가 많은 것도 있고, 안전보건에 관한 내용을 교사가 잘 모르니까 교육이 잘 안됩니다. 한노보연이 그러한 역할을 해주게 너무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연구소의 콘텐츠를 잘 전달하는 것', 노동교육원이 출범했는데 노동안전보건 부분에 대한 콘텐츠가 전혀 없어요. 그러한 비워 있는 부분을 잘 채우는 것이 필요합니다.

만나서 내용을 잘 전달하고, 방향과 고민을 제대로 전달할 수 있게 하는 것이 필요한 시점이에요. 지금과 같이 안전보건에 관한 연구소의 역량을 투여하는 것이 필요하며, 지금의 한노보연은 그러한 역할을 해주면 좋겠습니다."

현장실습생의 노동 현실을 쫓아가며, 청소년 노동권과 건강권이 실현될 수 있도록 활동과 연대를 이어나가고자 한다.

청소년 노동안전보건운동의 과제

연구소는 실습실 실태조사를 통한 직업계고 실습실의 작업환경개선 필요성을 의제화하였고, 청소년의 노동안전보건 플랫폼 구축 연구를 통하여 알 권리 실현의 중요성도 제기 중이다. 이러한 활동은 청소년의 노동안전보건 감수성 키우기를 토대로 청소년이 당사자로서 중심성을 가지고 안전과 건강의 주체로서 세우기 위함이다. 연구소의 청소년 노동건강권 활동을 다년간 지켜본 청노인넷 활동가로서 좀 더 연구소가 집중해야 할 과제가 있다면 무엇일까?

"한국노동안전보건연구소(아래 한노보연)의 무기는 전문성이고, 청소년 노동에 대한 높은 감수성과 남다른 관점이 강점이기에, 그러한 강점을 필요로 하는 곳에서 제대로 발휘하는 것입니다. 연구소의 역할은 역량을 계속 축적해서 여기저기에서 내용으로 순환되고, 그게 바탕이 되어서 당장 드러나지 않더라도 지속성을 갖고 연구소가 할 수 있는 전문성을 발휘하는 것, 집중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그리고 심화 워크숍이 마무리되면 다른 형태의 고민도 해보면 좋겠어요. 청노인넷만 파트너로 생각하지 말고 한노보연이 중심이 되어서 청소년팀에 자문위원이나 운영위원회를 구성하여 회원들을 결합하고, 자문하는 방식도 고민할 필요가 있겠죠. 청소년과의 접촉면을 넓히기 위한 다양한 노력도 중요하지만, 오히려 지금은 역량의 한계도 있기에 에너지가 분산되지 않도록 한두 군데로 사업을 집중하거나, 몇 개년 계획으로 집중할 장기계획을 세우는 것도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마지막으로 일터 200호를 맞이하는 10월호 인터뷰에 함께 해주셔서 감사하다는 인사를 나누며, 200호를 맞이한 일터가 더욱 발전하기 위해서 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무엇인지 들어보았다.

"꾸준히 목소리를 낸다는 것 자체가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200호가 되었다는 것 자체만으로도 대단한거 같아요. 전문적으로 활동하는 것, 컨텐츠를 축적한다는 것은 노력하지 않으면 대단히 어렵습니다. 청노인넷 활동 중 아쉬운 것은 네트워크 활동이니 총회 등 행사가 없다는 것입니다. 그러다 보니 청노인넷 활동에 대하여 시기별로 정리된 내용이 없습니다. 그러한 부분에서 아카이빙은 대단히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일터는 여러 매체의 홍수에서 관점을 담은 몇 안 되는 매체로서 의미가 크고, 누군가 이 분야에서 관심을 가질 때 도움이 될 것입니다. 더불어 연구소의 전문적인 이야기는 기획기사로 집중적으로 다루고, 나머지는 회원들 이야기, 어설프긴 하지만 쉬어가면서 이런저런 고민을 함께 나누는 지면이 할애되었으면 해요. 연구소에서 '이런 사람들이 함께하고 있구나' 알 수 있는 지면이 많으면 좋겠습니다. 축하합니다."

200호 기획6. 이주노동자 노동권 보장으로 안전한 현장 만들자! - 이주노동자노동조합 우다야 라이 위원장, 포천 이주노동자센터 김달성 대표 인터뷰 / 2020.10·11

[노동안전보건운동과의 마주침 ③]

이주노동자 노동권 보장으로 안전한 현장 만들자! - 이주노동자노동조합 우다라이 위원장, 천 이주노동자센터 김성 대인터

유청희 상임활동가

지금까지 한국에서 노동안전보건 운동은 현장 노동자들의 투쟁, 산업재해 피해자와 사망자의 유가족들의 기나긴 싸움이 만들어냈다. 많은 산업재해보상보험법과 산업안전보건법 조항이 이들의 싸움으로 바뀌고 개선되었다고도 할 수 있다. 자본은 노동자의 건강과 안전은 나 몰라라 한 채 이윤만을 좇으며, 노동자의 죽음까지도 비용으로 처리할 뿐 현장을 바꾸는 데 관심을 보이지 않는다. 노동자들의 끈질긴 싸움으로 안전과 보건 관련 제도가 조금씩 나아지고 있는 가운데 법과 제도의 사각지대에 있어 현장 변화가 너무나도 더딘 곳이 있다. 바로 이주노동자들의 일터다.

이주노동자들의 산재발생률은 한국인의 7배로 수치 면에서 압도적으로 높다. 또 하나의 심각한 문제는 이주노동자들이 산재신청에 대해 잘 모르거나 사업주가 승인하지 않아서, 또는 미등록 신분이 불안해 많은 경우 산업재해 신청으로 이어지지 않았다는 것이다. 더군다나 사업장에서 일상적으로 듣고 겪는 고성, 인종차별 발언, 폭행은 이들의 정신 건강을 갉아먹기도 한다.

이런 이주노동자들에게 필요한 노동안전보건 운동은 무엇일지, 이주노동자들이 운동의 주체로서 서기 위해서는 노동안전보건 운동이 무엇을 해야 하고 어떻게 연대할 수 있을지, 법의 사각지대를 어떻게 메꿀 수 있을지를 묻기 위해 이주노동자노동조합(아래 이주노조)의 우다야 라이 위원장과 포천 이주노동자센터의 김달성 대표를 만나보았다.

우다야 라이 이주노조 위원장은 사업장 변경 자유를 위해, 또 이주민 차별을 막기 위해 싸워왔다. 2014년부터 노조 위원장직을 맡아 이주노동자 처우 개선과 조직화를 위해 노력 중이다. 김달성 포천 이주노동자센터 대표는 과거 노동운동 활동 후 일반 교회 목회 활동을 이어가다가 3년 전부터 영세 소규모 제조업 사업장과 농업 사업장이 분포해있는 포천 지역에서 이주노동자 지원 활동을 하고 있다.

이주노동자 병들게 하는 사업장 변경 제한

고용허가제는 이주노동자에게 최초 3년간의 노동 시간을 준다. 사업주가 승인한다면 1년 10개월간 더 일을 할 수 있고, 또 한 번의 승인이 있으면 본국으로 돌아갔다가 재입국할 기회가 생긴다. 사업장 변경은 온전히 사업주의 권한이기 때문에 사업주가 근로계약 해지를 원할 경우, 사업장의 휴업, 폐업, 사용자의 근로조건 위반 또는 부당한 처우가 있을 경우 사업장을 옮길 수 있다.

그 외에는 사업주 승인이 있어야만 사업장을 옮길 수 있다. 직장에서 한국인 관리자에게 폭행당하거나 괴롭힘을 당한다 해도 사업주가 승인하지 않으면 다른 사업장으로 이동할 수가 없는 것이다. 산업재해로 신체적, 정신적 고통을 호소하더라도 사업주 승인 없이 직장을 옮길 수 없는 이들에게 강제노동은 먼 얘기가 아니라 매일 맞닥뜨리는 현실이다.

우다야 라이: "이주노동자들은 한국에 노동자로 들어와 있는데 직장 변경 권리가 보장되지 않습니다. 강제노동에 노출되는 거죠. 육체적으로 할 수 있는 것에 한계가 있고 한계를 넘어서면 건강이 나빠지는 것은 당연합니다. 그런데 이런 건 전혀 고려가 되질 않아요. 사업장에서 산재사고, 또 산재사망도 일어나는데 열악한 근로조건이 개선되지를 않습니다.

이주노동자들은 저임금, 장시간 노동을 계속하고 있어요. 사업주가 마음대로 해도 된다고 생각하고 개선 노력을 하지 않아요. 권리가 인정되어야 사업주에게 당당하게 요구할 수 있는데 이런 상황에서는 이주노동자들이 할 수가 없죠. 우울증에 걸리거나 자살하는 이주노동자도 있습니다. 사업장 이탈해서 미등록 상태가 되는 노동자도 있고요."
     
김달성: "산재보상신청 하는 데 거기서부터 걸려요. 사업주 동의가 없어도 산재신청할 수 있지만 방해받는 경우가 많습니다. 합법적인데도 못 하는 거죠. 고용허가제 첫 기간은 3년이고 1년 10개월 연장하기 위해서 사업주 승인이 필요하고, 그 후 본국에 돌아갔다가 재입국을 할 때도 사업주 승인이 필요합니다. 그런 법과 제도하에서 노동자의 건강을 위한 산재보상보험 신청조차 이주노동자가 포기하게 만드는 거예요. 법과 제도적 문제가 노동자의 건강을 심각하게 위협하는 거죠. 고용허가제가 산재를 조장하기도 합니다.

올해 1월, 양주에 있는 회사에서 보일러가 폭발해서 노동자 2명이 사망하고 8명이 중대재해를 당했는데 사망자 중 1명이 이주노동자였습니다. 재해자 중 절반이 이주노동자였고요. 재해당한 이주노동자가 사고 충격이 심해서 불안해 일을 못 하겠다고 하면서 사업장 변경을 신청했는데 사업주가 수락하지 않았습니다. 세 노동자가 외상 후 스트레스를 심각하게 앓았고 담당 의사도 사고로 인한 것일 가능성이 있다고 했거든요. 사업장 변경하려고 5개월 넘게 요구하다가 겨우 승인받았습니다."

한국인의 7배 산재발생률

2018년 이주노동자의 산재발생률은 1.42%로, 0.18%인 한국인 노동자보다 7배가 높다. 그만큼 열악하고 위험한 환경에서 일한다는 것이다. 영세 사업장이 대다수이다 보니 사업주 역시 위험한 환경에 노출된 경우가 많다. 사용하는 화학물질이 유해하다고 지적하니 어떤 사업주는 "30년간 내가 썼지만 아무 문제 없었다"고 했다는 우다야 라이 위원장의 말이 씁쓸하다.

이주노동자들은 한국에서 단기간 머물다 가지만 유해 물질을 취급한 후 당장 나타나지 않을 질환이 나중에 나타날 수 있어 그 위험 정도를 알기 어렵다. 이런 위험을 알고 제대로 대처하기 위해서는 안전보건 교육이 이루어져야 하고 안전장치가 필수적이겠지만, 그런 사업장에서 일한다는 이주노동자는 극히 소수에 불과하다.

김달성: "3년간 만나 본 이주노동자 중 안전교육을 받았다는 사람은 한, 두 명 정도뿐이에요. 99%가 받지 못했다고 했습니다. 거의 없는 거죠. 공장에 안전장치도 설치되어있지 않고요. 올해 초 양주 가죽공장 사고를 보면 폭발이 엄청 크게 나서 주변 공장들이 파편 맞을 정도였습니다. 가죽공장은 안전관리사가 있어야 하는 업종인데, 안전 관리사를 두지 않고 안전조사를 하지 않아 기소됐거든요. 큰 보일러를 쓰기 때문에 안전 관리사가 있어야 하는 공장인데 없었습니다. 안전장치가 있어도 빼놓고 일하게 하는 것이 현실이고요."

산재예방을 위한 제도는 전무

산업안전보건법이 시행되지 않는 소규모 사업장이기에 산재예방은 먼 얘기일 뿐이다. 예방은 고사하고 산업재해가 빈번히 일어나는데도 산재보상보험법이 적용되지 않는 경우도 많다. 이주노동자들이 고용되는 농축산어업의 경우 법인이 아닌 5인 미만 사업장에서는 사업주가 산재보상보험에 가입하지 않아도 되기 때문이다. 사고나 질병이 발생하는 사업장에 법을 적용해 산재를 예방하게 만들고 정부가 작업 환경 감시를 통해 안전을 유지하게 만들어야 하지만 정부 정책에 그런 고려는 전혀 없어 보인다.

농축산어업에서는 법인이 아닌 사업주에게 이주노동자를 고용할 수 있게 문을 열어두지만, 이들에게 산재보상보험법이나 건강보험에는 가입을 강제하지 않아 노동자 보호가 전혀 이루어지지 않는 경우가 허다하다. 기본적인 산재보상보험과 건강보험 보장이 시급해 보인다.

김달성: "농어촌은 대부분 기계화되어 있습니다. 산재가 적지 않아요. 그런데 5인 미만 사업장이 대다수라서 산재보상보험 적용이 안 되죠. 어떤 이주노동자는 과수원에서 일하다가 허리뼈가 부러지는 재해를 입었는데, 산재보상도 안 되고 근로기준법으로도 보상을 못 받았습니다. 1년간 1억 넘는 비용이 들었는데 네팔 공동체, 일반 시민들이 기금 모아서 병원비를 지원해줬습니다.

5인 이상 농어촌 사업장은 산재보상보험법 적용 대상이지만 이주노동자와 사업주가 주종관계나 마찬가지라서 산재보상 신청 못 하는 경우가 허다합니다. 근로기준법 63조(농축산어업 등에 근로시간, 휴게, 휴일 등 적용 제외) 때문에 제조업보다 더 옥죄는 상황이고, 하루도 안 쉬고 일하는데 수당도 없습니다."

이주노조에서는 이주노동자들이 입국하는 인천공항에서 직접 사전 교육을 하기도 한다. 공항에 막 입국한 이주노동자들에게 고용허가제, 고용허가제의 문제점과 개선할 점, 노동3권에 대해 설명한다. 노동자에게 문제가 생길 때 어디로 가야 하는지, 무엇을 할 수 있는지, 또 산업재해가 발생할 경우 산재신청, 보상 안내 등도 교육 내용이다.

이런 기본 교육은 사업주가 실시해야 하지만, 고용허가제는 사업주가 이주노동자를 '사용'하는 데만 초점이 맞춰져 있기 때문에 노동자의 노동권, 건강하게 일할 권리에 관심이 없다. 이런 상황에서 이주노동자들은 예상도 못 한 채 다치고 폭력에 시달리며 일을 하게 되는 것이다.

일터 108호(2012.12) 표지에 실린 사진. 이주노동자들은 죽기 위해 이 곳에 온 게 아님을, 이 땅에 일하는 모든 이들의 안전과 건강을 요구해나가야 함을 잊지 말아야 한다. 출처: 부경이주공대위



안전한 현장을 위한 과제

그렇다면 앞으로 한국 사회는 이주노동자들이 일하는 사업장을 더 안전하게 만들기 위해서 무엇을 해야 할까?

우다야 라이: "노동강도를 낮춰야 합니다. 그래야 건강하게 일할 수 있죠. 사업주가 산재보상보험법을 엄격하게 지키도록 만드는 것도 필요하고요. 산재가 발생하면 사업주가 이주노동자를 다시 고용하지 못하게 해야 안전에 신경 쓰게 만들 수 있습니다. 사업장 점수가 높으면 이주노동자를 많이 고용할 수 있는데요. 성폭력이나 사고가 나면 감점 몇 점주는 식이죠.

이주노동자가 정해진 날짜에 귀국하거나 사고가 안 나면, 또 문제가 있어도 정부에 들키지 않으면 점수 잘 받아요. 노동자가 사망해도 감점 몇 점 받을 뿐 이주노동자 고용하는 데 전혀 지장이 없습니다. 사업장을 안전하게 만드는 것이 가장 중요하고, 사고가 나도 폭행이 나도 사업장 변경이 어려운 상황을 바꿔야 해요. 사업장 변경 권리가 산재개선에 핵심적인 부분이에요."

이주노동자들의 싸움이 어려운 것은 이들이 한국에 장기간 머물지 않는 데서 오는 한계 때문이기도 하다. 자신의 노동 환경을 바꾸기 위해서는 당사자가 상당한 시간이 걸리는 싸움을 해야 할 때도 있는데 현실적으로 이주노동자들에게 어려운 것이다. 이런 한계로 인해 사업주나 정부에서도 변화하지 않고 오히려 악용하고 있기도 하다. 그러나 실제 필요한 체류 기간을 쪼개는 현 정책은 이주노동자를 단기간 사용하고 본국으로 보내겠다는 뜻이 분명히 담겨 있다.

우다야 라이: "체류기간을 연장할 필요가 있어요. 체류기간이 더 길면 부당함을 더 잘 알 수 있으니까요. 이주노동자들이 의식을 높일 수 있는 시간도 더 있어야 합니다. 현 제도가 노동자 권리를 보장할 수 있도록 바꿔야 해요. 이주노동자 유입되기 시작한 지 30년이 됐습니다. 지금까지 참 오랫동안 똑같은 요구를 하고 있어요.

제도, 정치인, 국민들의 인식까지 바꿔야 해요. 동남아시아 출신 무시하고 선진국 출신은 다르게 생각하는 인종차별 문제도 바꿔야죠. 한국인도 똑같이 이주민이 될 수 있는데, 이걸 깨닫고 차별 없애야 해요. 한국 사회에 있는 차별에 대해서도 이야기할 수 있어야 합니다. 나쁜 것은 나쁘다고 말할 수 있어야죠."

노동안전보건 운동을 가열차게 진행하는 동안에도 변화는 더디고 어떤 곳은 빛을 받지 못한 채 그대로 남아있기도 한다. 소규모 영세 사업장은 노동자들과 이주노동자들의 노동안전보건은 때로 교집합이면서 때로 합집합 상태가 된다.

산재보상보험법과 산업안전보건법을 모든 노동자에게 적용하라는 지금까지의 노동안전보건 운동의 요구가 이주노동자에게도 중요한 요구임을 강조할 필요가 있다. 모든 노동자에게 노동3권을 보장하라는 요구는 이주노동자에게도 해당되는 문제로, 이에 더해 사업장 변경 제한 폐지가 함께 들어가는 것까지 확장한다면 이주노동자가 함께 건강하고 안전하게 일할 수 있는 사회를 기대해볼 수 있지 않을까?

200호 기획5. 노동안전보건을 ‘젠더’ 관점으로 바라보기 - 권영은 반올림 상임활동가, 신경아 한림대 사회학과 교수 인터뷰 / 2020.10·11

[노동안전보건운동과의 마주침 ②]

노동안전보건을 ‘젠더’ 관점으로 바라보기 - 반올림 상임활동가, 경아 한림대 사회수 인터

지안 상임활동가

우리가 '노동자의 건강'을 노동자의 조직적인 힘과 역량을 통해서 획득할 수 있는 것으로 사고할 때, 건강한 일터란 단순히 주어진 노동조건이 아니라 노동자의 요구와 투쟁을 통해 쟁취한 '권리'가 된다. 일터의 건강이 노동자의 권리라는 메시지는, 노동자 스스로가 자신의 몸과 작업환경, 생산 속도의 주체가 될 수 있어야 한다는 점에서 특히나 중요하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이렇게 노동자의 건강을 보는 방식이 구체적인 '조직'을 전제한다는 점에서, 앞으로 더 소수적인 영역에서의 노동안전보건 문제를 다룰 다른 관점과 역량을 발굴해야 하지 않을까? 특히나 갈수록 고용 형태가 다양화되고, 일 자체가 유동적으로 변화하는 사회에서 노동자의 건강 문제가 개별화되지 않기 위해 필요한 틀은 무엇일지 고민이 필요한 시점이다.

이런 점에서 '젠더'는 우리가 '노동자의 건강' 문제를 다룰 때 그 사람이 속한 집단이나 정체성을 고려해야 한다는 점을 상기시킨다. 여성이 당면하고 있는 현실적 조건들은 어떻게 개별적 여성 노동자들의 문제가 아니라 노동, 또는 노동안전보건의 의제로써 쟁점화될 수 있을까? 이러한 문제의식을 가지고 본 글의 기획을 두 가지 방향으로 구성했다.

먼저 2007년부터 전자 산업 노동자들의 산재 피해 활동을 해온 반올림의 상임활동가 권영은님과 함께 기존의 노동안전보건 활동을 젠더의 관점에서 돌아보고 읽어내는 작업이 필요하다는 고민을 나눴다. 두 번째로는 한림대 사회학과 신경아 선생님을 만나 현재 한국의 여성노동자가 처한 다양한 문제점들을 사회적인 맥락에서 짚어보았다.

여성 노동자의 관점에서 '산재' 다시 읽기

반올림의 꾸준한 투쟁을 통해서 전자산업 반도체 공장에서의 산재 피해는 사회적으로 잘 알려지게 되었다. 이 활동을 통해서 반도체 공장 노동자의 직업병 문제가 조명받았지만 한편에서는 피해자 중 많은 수가 여성이기도 했다는 점은 특별히 사건의 중요한 측면으로 부각되지 못했다. 지난 투쟁을 돌아보며 우리가 '젠더'의 눈으로 산재 피해를 읽어낼 부분은 없을지 물었다.

권영은: "반도체 공장 클린룸에서 일하는 대부분의 오퍼레이터가 여성인데도 불구하고, 이 활동이 '여성'에 방점이 찍히지는 않았습니다. 반도체공장의 작업환경 상 유해성이나 직업병 자체에 집중된 측면이 있는 것 같습니다. 돌이켜보면, 여성 노동자의 비율이 높다는 점 외에도 생리불순 등 재생산 건강 문제에 대한 제보도 초기부터 많이 들어오는 등 여성에게 특수하게 발생하는 문제점들이 초기부터 많이 보였어요. 대다수의 오퍼레이터가 여성이었던 배경에도 성역할의 고정관념이 존재한다는 것도 중요해요. 여성들이 꼼꼼하니 더 세밀하고 빠르게 작업을 할 것이다, 라는 생각에서 기인한 결과였죠."

그렇다면 실제 전자산업에서 일하고 있는 여성노동자의 규모는 어느 정도일까. 직업병 피해자 중 여성 노동자의 숫자, 그리고 반도체 공장 여성 노동자 중에서도 사업장 규모에 따른 집단적 특성은 없을까? 반올림은 이렇게 구체적인 수치를 파악하기 어려운 현실을 한계로 지적했다.

권영은: "전자산업에 어느 정도의 노동자가 있는지 세세한 수치를 파악하는 것이 어려운 상황이에요. 산업별 국가 통계에서도 별도로 조사되는 것이 아니라 여전히 '제조업' 분류에 묶여있어 알고 싶은 만큼 자료가 확보되지는 않는 상황이죠. 반올림이 함께 하고 있는 안산지역네트워크에서 안산지역의 반도체 공장 중에서 소규모 사업장 노동자에 대한 실태조사를 해보려고 하는 중인데, 작게나마 통계로 확인하기 어려운 실제 영세사업장 노동자의 현실을 파악하기 위한 노력으로 볼 수 있어요."

물론 반도체 산업의 산재 피해는 '여성 문제'로만 국한시켜 볼 것은 아니다. 대표적으로 클린룸 엔지니어 직종의 경우 남성이 대부분이다. 하지만 피해자의 집단적 특성이 존재하고, 특별히 여성의 재생산 건강과 관련된 문제점들이 초기부터 발견되었다면 이를 '여성 노동자'의 문제라 할 수 있지 않았을까? 조명되지 못한 이유가 있다면 무엇 때문이었을까.

권영은: "사실 해외에서는 반도체 공장의 유해성이 입증되기 시작한 단계에서, 먼저 유산, 불임, 기형아 출산 등 생식독성 문제가 중요하게 이야기가 되었어요. 한국의 경우는 2017년 불임으로 첫 산재 승인을 받게 되었습니다. 한편 이런 문제들이 비교적 조명이 덜 된 이유는 생식독성 문제, 또는 여성의 재생산과 관련된 건강 문제가 여성에 대한 사회적 낙인과 쉽게 연결될 수 있다는 점과도 연결된다고 봐요.

이전 상담기록을 살펴보면, 피해자 중에서 본인뿐 아니라 아이도 질병에 걸리는 경우들이 있었는데, 이 경우 본인은 산재인정을 신청할 자격이 주어지는데 아이는 그렇지 않아 제보 기록으로만 남아있었던 것이죠. 그래서 2세 질환 문제를 '산재'로 인정하고 인식하는 변화도 필요합니다. 한편 이런 경우 '어머니'에게 가해질 주변의 비난도 쉽게 상상할 수 있어요. 산재인정 투쟁뿐만 아니라 이런 사회문화적 인식과도 싸워나가야 할 것입니다."

산재 피해 노동자의 2세 질환 문제는 특히 최근 10년 만에 대법원에서 제주의료원 태아산재 인정 판결이 나오면서 새로운 국면을 맞게 되었다. 이 판결이 유사한 피해 사례들을 드러내는 유의미한 시작점이 되기 위해서는 우선적으로 관련 법제도가 뒷받침되어야 한다. 2세 질환의 산재 인정기준을 낮추고, 보상체계를 제대로 만듦으로써 피해자를 돕고 다양한 산업에서 유해요인과 직업병의 연관성이 제대로 밝혀질 수 있어야 한다.

권영은: "앞으로 2세 질환의 산재 신청을 준비하고 있어요. 뿐만 아니라 제주의료원 판결을 계기로 여성노동자들의 생식질환, 2세 질환 문제에 초점을 맞춰 인터뷰집을 내려고 해요. 한국뿐 아니라 대만, 베트남 등 아시아 지역에서도 여러 피해 사례들이 있는데, 단순히 화학물질 등 노동환경의 유해성에 대한 지적을 넘어서, 여성 노동자의 몸의 문제를 드러낼 수 있도록 그간 국내외 연구에서 제기되어왔던 전자산업에서의 2세 질환 문제가 더 많이 제기되고 조사되어 예방까지 이어지길 바랍니다."

한편, 반올림은 이전부터 젠더와 노동자의 건강 문제라는 주제를 고민한 바 있다. 2014년 전자산업여성노동자모임은 직업성 암 등 질병의 문제를 넘어서 전자산업의 노동환경이 노동자의 건강에 미치는 여러 수준의 유해성을 살펴보고자 했다. 이 시기에는 그동안 상대적으로 등한시된 여성 재생산 건강 문제도 고민하기 시작했다.

권영은: "성인지적 관점에서 반올림 사건을 '여성 노동자'의 문제로 다루려는 시도는 이전에도 있었습니다. 관심이 있는 다양한 연구자, 활동가, 피해자들이 모여 여성 건강권 문제를 공부하기도 하고, 산재 피해를 단순히 '피해' 그 자체로 다루기보다 여성 노동자들의 생애사적인 측면에서 다뤄보자는 이야기도 했어요. 즉 여성 노동자의 삶 차원에서 문제를 다시 보려는 시도라고 볼 수 있습니다."

다시 '여성 노동'의 관점에서 반올림 활동을 돌아보고, 앞으로 문제의식을 이어간다고 할 때 어떤 것들이 조명되어야 한다고 보는지 물었다.

권영은: "산재라는 것이 단순히 일하는 노동자 개인의 보상으로 끝나는 문제가 아니라는 점이 부각되었으면 해요. 2세의 건강, 나아가 노동자의 삶과 가족들에게도 큰 영향을 주는 사건이라는 점, 그래서 사회의 안전과도 연결이 된다는 인식으로 확장되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삼성전자 반도체 기흥공장에서 7년간 일했던 여성 노동자의 모습이다. 추후 유방암으로 집단산재신청을 진행하기도 했다.



여성노동 의제, 면밀한 현황 조사부터 다양한 의제 발굴해야

'여성 노동자'의 노동, 그리고 노동안전보건 문제에는 어떤 주제가 있고 무엇에 주목해야 하는지 구체화해나가기 위해서는 먼저 현재의 여성노동자가 딛고 선 현실을 진단해야 할 것이다. 여러 가지 연관된 주제 중에서도 '노동시간'은 가장 중요한 주제 중 하나다. 여성이 시간제 일자리 등 저임금 인력으로 활용되어온 노동의 역사나, 보조 인력으로 상상되고 주변화되어온 맥락 때문이다.

그뿐만 아니라 돌봄·가사노동이 여성 개인의 부담으로 맡겨진 사회에서 여성의 '일하는 시간' 문제는 단순히 임금 노동시간만의 문제를 넘어 다양한 측면에서 고려될 필요가 있다. 이런 점에서 '여성' 그리고 '노동시간'이라는 키워드를 가지고 최근 몇 년간의 노동정책을 봤을 때 어떤 변화점이 있는지 물었다.

신경아: "시간제 일자리 정책은 초기부터 대단히 비판받았어요. 공공일자리 등 시간제 일자리가 대거 양산되었죠. 그러나 노동자의 자율성 측면에서 노동시간이 줄어드는 것이 아니라 아예 '시간제 일자리'로 노동시장에 진입하도록 하는 정책은 저임금, 고용차별 문제를 낳을 뿐입니다. 이를 방증하는 것이 최근 정부 조사에서 80%에 가까운 여성들이 시간제 일자리를 선호하지 않는다는 응답이 나왔다는 점이에요. 한편 문재인 정부의 노동정책이 집중하는 것은 '노동시간'이기도 합니다. 그러나 주52시간제도 대단히 제한적인 방식으로 운영되고 있는 상황에서 여성 노동정책은 정말 '안 보인다'고 할 수 있어요. 고용노동부에 양성평등정책과는 신설되었지만, 그 외 미미한 수준에서 돌봄 관련 규정들이 남녀고용평등법 개정에서 마련된 것에 불과합니다. 제대로 된 여성 노동 정책이 있다고 보기 어렵죠."

향후 어떤 정책적 방향이 필요하다고 보는지 물었다.

신경아: "예를 들어, 비정규직 일자리 중에서도 특수고용 노동자, 초단시간 일자리 등에 여성이 더 많습니다. 이들은 이중적 차별에 직면하고 있어요. 하나는 현재의 고용제도 안에서 여러 법적 보호의 밖에 밀려나 있다는 점입니다. 이에 대해서는 노동법 체계의 근본적 변화, '노동자' 개념 정의를 재구성하는 문제 등이 과제입니다. 한편, 노동운동 역시 정규직 남성 노동자 중심으로 구성되어왔기 때문에 이들의 의제가 운동의 핵심 주제로 다루어지기 어렵다는 점이 또 하나의 차별이죠. 이런 점에서 한국사회를 지탱해오던 전통적인 노사관계를 바꾸어나갈 필요가 있어요."

성별 임금 격차뿐 아니라, 저임금·비정규직 등의 사안은 IMF 이후 뿌리 깊은 여성 노동 현안이며 그만큼 여전히 유효한 문제이기도 하다. 그러나 최근 들어 여성노동운동에 있어 주요한 변화가 있다면, 어떤 문제나 경향일지 궁금했다.

신경아: "가장 큰 변화는 여성노동자들이 자기 문제를 직접적으로 제기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물론 비정규직, 저임금, 경력단절 등의 문제는 여전히 큰 문제죠. 그러나 시민사회단체, 연구자들이 문제를 드러내 왔던 방식을 넘어서 2015년 강남역 사건, 2018년 미투 운동 등 이후 시기에서 여성 개개인의 주체가 굉장히 변화했어요. 그에 따른 실천들이 이어지고 있는데, 차후 이런 것들이 개인적 저항 수준을 넘어서 사회적, 운동적 차원으로 끌어올려져야 한다고 봅니다. 특히 섹슈얼리티에 대한 관심이 증가한 만큼 노동 의제가 부각되진 못했어요. 미투 운동 역시 여성 노동자들이 어떤 노동환경 속에서 일 해왔는지를 단적으로 보여주는 사건으로 볼 수 있죠.

그렇지만 한 사람의 삶에 있어서 두 가지 문제가 떨어질 수 없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젠더와 노동이 교차하는 지점에서 발생하는 문제에 대해 개인적 수준의 저항을 넘어서 노동의제로 확장시켜 다뤄나갈 필요가 있죠."

전시 상황에서 어떻게 미국의 여성노동자들이 노동력으로 동원되었는지를 보여주는 대표적인 포스터 이미지다. 차후 이 시기의 이미지들은 여성운동을 상징하는 이미지로 의미화되었다. 출처: national museum of american history

한편, 현재 여성노동운동에게 무엇보다 중요한 이슈는 코로나19일 것이다. 코로나19 위기가 특히 여성 노동자에게 집중되었다는 통계가 드러났다. 동시에 많은 사람들이 이 상황을 독립적인 사건으로 보기보다는 한국사회가 이미 경험한 두 번의 경제위기와의 연관성 속에서 주목하고 있다. 1997년 IMF와 2008년 금융위기 이후 노동시장이 재편되는 과정에서 수많은 여성노동자들이 일자리를 잃었고, 차후 더 열악한 조건의 일자리로 밀려났다. 이런 사회적 맥락에서 현재 많은 여성단체들이 코로나19를 '여성 노동자의 위기'로써 선제적으로 명명하고 있다.

신경아: "자본주의, 가부장제 사회에서는 경제위기가 있을 때 어떤 집단을 희생시키는 방식으로 해결해나갔어요. 희생의 대표적인 집단은 '여성 노동자'였죠. IMF의 경우, 대기업 생산직, 사무직 중간관리자 여성들이 대거 일자리를 잃었어요. 현재는 서비스직·임시직 여성 노동자들이 심각한 타격을 입었어요. 그러나 여성이 위기 국면에서 도구화되는 것을 초기부터 문제제기하고 있다는 것을 긍정적으로 전망합니다. 이런 변화가 과거의 해결책과 다른 결과를 만들어낼 큰 변수이자 지속적인 변화를 만들어나갈 수 있는 기반이라고 봐요."

한편, 여성 노동자의 구체적인 현실은, '여성'에 대한 시선과 인식, 나아가 근본적 차원의 젠더 불평등 문제 등 여러 층위의 문제들과도 복합적으로 이어진다. 이런 점에서 여성 노동운동과 연구가 가야 할 길은 다양한 층위에 있는 문제 간의 연관성을 밝히고 드러내는 일일 것이다.

신경아: "여전히 성 역할에 대한 고정관념, 특히 남성 생계부양자 모델은 중요한 비판 대상입니다. 이런 인식 속에서 같은 일에서의 성별임금격차, 직무의 성별분리 등 결과가 만들어져요. 의식의 차원에서 혁명이 필요해요. 또한 노동자의 정체성, 인권과 관련된 다양한 의제들을 노동운동의 과제로 가져가면서 교차하는 지점들을 보려는 노력 역시 필요합니다."

이번에 진행한 두 가지 인터뷰를 통해서 '젠더'와 노동자 건강의 관련성을 지속적으로 고찰해나가기 위해, 그리고 '여성 노동'의 문제의식을 가지고 노동안전보건 활동을 해나가기 위한 관점들을 확인해볼 수 있었다. 노동안전보건의 활동을 '젠더'라는 새로운 관점으로 되짚어보는 것, 그리고 노동안전보건 운동이 향후 고민해야 하는 다양한 의제들을 발견하는 작업을 연구소의 집중사업인 '여성노동자 건강권' 활동을 통해 풀어나가야 할 후속 과제로 남겨두며 글을 마친다.

 


 

200호 기획 4. 장애 운동이 제기하는 과제, 안전보건에서의 ‘정상성’을 바꿔내는 일 - 전국장애인철폐연대 정창조 노동위원회 간사, 정다운 활동가 인터뷰 / 2020. 10·11

[기획 - 노동안전보건운동과의 마주침 ]

장애 운동이 제기하는 과제, 안전보건에서의 ‘정상성’을 바꿔내는 일 - 전국장애인철폐연대 정창조 노동위원회 간사, 정다운 활동가 인터뷰

박기형 상임활동가

<일터> 200호를 맞아, '노동안전보건, 사회운동과 만나다'라는 코너를 기획하였다. 이 코너를 통해, 연구소가 그간 만났던, 또는 앞으로 만나갈 사회운동의 이야기를 다뤄보고자 한다. 이를 통해 노동안전보건운동의 경계를 무너뜨리고 전망을 확대함으로써, 운동의 과제를 도출하고 다른 사회운동들과 공동전선을 만들어가기 위한 고민을 담아보고자 했다.

첫 번째 인터뷰에서는 장애운동과 노동안전보건운동과의 접점을 찾아보려 했다. 전국장애인철폐연대(아래 전장연)의 정창조 노동위원회 간사, 정다운 활동가를 지난 10월 8일 혜화에서 만났다. 장애운동에서 다시금 또는 새롭게 제기되고 있는 장애인 노동권이 안전보건 영역에서의 건강하고 안전할 권리를 급진적으로 확장시키는 데 어떤 함의를 던져줄 수 있을지, 반대로 장애인의 노동권을 실현하는 과정에서 안전보건의 쟁점들이 어떤 고민을 안겨줄 수 있을지 얘기를 나눠보았다.

장애인 노동권의 현주소

장애인 노동권에서 가장 중요한 사안은 바로 고용이다. 전반적으로 고용률이 낮으며, 일자리 자체가 없는 상황이다. 2019년 장애인 고용률은 34.9%로 전체 고용률 60.9%의 절반 수준이다. 이를 해결하기 위해 장애인 의무고용제도를 운영하고 있지만, 의무고용률 미준수 시의 부담금 수준이 높지 않아 부담금을 내고서 고용하지 않는 게 대다수다. 노동조건 또한 열악하다. 2019년에는 임금근로자 중 43.9%가 임시 일용직으로서 전체 인구의 임시 일용직 비중 31.4%보다 높다. 전문직, 사무직 숫자 적고 단순노무직(청소, 환경미화 등)이 많다.

정창조: 장애인에게 노동권은 역사적 맥락부터 살펴봐야 합니다. 장애인이라는 용어 자체가 노동할 수 없다는 개념으로부터 출발하기 때문이죠. 자본주의가 형성되면서 노동할 수 없는 사람들과 노동할 수 있는 사람이 구분되기 시작해요. 하층민들을 대량 수용했던 구빈원에서도 중요하게 이뤄졌던 일이에요. 결국 장애인은 (임금)노동을 할 수 없는 자라는 관점 자체가 근본적인 문제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윤 창출을 할 수 없는 활동 전반을 비생산적 활동으로 규정하고, 생산적 활동을 하지 못하는 일들을 배제하는 현 사회의 구조를 문제 삼아야 합니다.

정다운: 이른바 '정상성'이라고 하는 것을 바꿔내는 일이죠. 특정 기준에 부합하지 못하는 것은 배제해버리는 것 말입니다. 무엇이 정상이고 비정상이냐를 가르는 기준과 규범을 새롭게 정립하는 게 중요합니다. 임금노동, 이윤 창출에 도움이 되는 활동만을 노동으로 규정하고, 이 노동을 할 수 있는 신체만을 노동력으로 인정하는 것으로부터 벗어나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결국 장애인 일자리는 시혜적인 성격을 띨 수밖에 없어요. 아무리 고용되더라도, '어차피 일 못 할 텐데'라는 식의 태도로 인해 부수적인 일밖에 받지 못하면서 주변으로 밀려날 수밖에 없어요.

임금과 관련해 최저임금 적용 제외가 특히 문제다. 최저임금법 제7조에서 '정신장애나 신체장애로 근로능력이 현저히 낮은 사람'를 규정하고 있다. 평균적인 생산성에 얼마나 부합하는지 작업능력평가를 한다. 이를 근거로 2018년 기준 9413명이 제외되었다. 최저임금 적용 제외 장애인 대다수는 직업재활시설 노동자, 중증장애인이다. 이렇듯 노동할 능력, 신체에 대한 정상성 기준에 따라 장애인들이 노동권을 보장받지 못하고 있다.

중증장애인 최저임금 적용제외 제도 폐지를 요구하는 퍼포먼스 중인 정다운 활동가(사진 맨 좌측). 출처: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



장애인 노동자의 산업재해

노동시장에서 장애인들이 배제되면서, '산재는 우리에게 사치다', '산재라도 당해봤으면 좋겠다'는 말이 나오기도 한다. 하지만 장애인 노동자가 노동시장에 진입하더라도, 불안정한 일자리에만 들어가게 되고, 이로 인해 위험한 노동환경에 노출되기 쉽다. 그러나 그 실태는 제대로 드러나지 않고 있다.

정창조: 장애인의 일자리 마련 자체가 핵심적인 이슈다 보니, 진보적 장애인 운동 진영 입장에서도 산재 사망사고 등에 집중하지 못하고 있는 게 사실입니다. 고용촉진법 제26조에서 고용노동부 장관이 매년 장애인 노동자 산재 통계를 조사하도록 규정하고 있어요. 최근 조사에 따르면, 장애인 노동자 산재 비율은 0.8%, 장애인 노동자의 산업재해 승인율은 33.1%로 나타났어요. 그러나 굉장히 형식적으로 이루어지고 있어 현황 파악 자체가 쉽지 않고, 산재 예방 활동에도 적극적이지 않은 상황입니다.

정다운: 더 중요한 것은 취약한 이들일수록 불안정한 일자리, 그로 인해 계속해서 위험하고 유해한 노동환경에 노출되고 있다는 점입니다. 결국 사회전반적으로 노동권이 제대로 보장받아야 하는 것이지요. 장애인 이동권 투쟁하면서 이런 얘기를 자주했어요. 장애인의 이동권 보장을 위해 엘리베이터를 만들고 저상버스를 도입하면, 모두에게도 이동권이 더 잘 보장된다라고요. 산업재해의 경우에도 마찬가지예요. 장애인이 안전하고 건강하게 일할 수 있는 일터라면, 모두에게도 안전하고 건강한 일터이지 않을까요?

장애운동에서 제기하는 산재보상제도의 지향점

정다운 활동가의 질문에 비춰볼 때, 일터에서 '안전'과 '건강'이, 우리가 주장하는 안전할 권리와 건강할 권리가 무엇을 기준으로 삼고 있는지 되물어 볼 수 있었다. 산재보상제도를 중심으로 보상·재활·치료에서 정상성이 작동하는 방식, 건강할 권리에서 한 발짝 더 나아가 '잘 아플 권리'를 얘기하는 것의 의미에 관해 얘기를 나눠보았다.

정다운: 산재보상제도에서 보상기준을 살펴보면서, 장애인 등급제를 떠올렸어요. 둘 다 신체적, 정신적 손상을 특정 척도를 기준 삼아 등급을 매기고 제도지원을 받을 대상자를 선정하는 걸로 보였습니다. 이 과정에서 빠지게 되는 것은 결국 정책을 필요로 하는 사람들의 관점과 필요가 아닐까요? 장애인의 경우 사회참여 욕구를 실현하기 위한 요구가, 산재노동자의 경우 직장복귀 등의 다양한 회복을 위한 요구가 있을 거잖아요. 이들이 단순히 평가대상으로 남아있다면, 그건 불평등한 권력 구조라고 할 수 있지 않을까 싶어요. 대상이 아닌 주체로의 전환이 이뤄져야 합니다. 이는 주체의 상태에 대한 존중으로부터, 그 상태를 우선 인정하고 필요한 것을 묻는 것으로부터 출발할 것입니다. 산재보상제도에서도 노동자의 필요와 욕구, 나아가 참여에 기반한 정책이 지향해야 할 바라고 봐요.

정창조: 산재보상제도에서 얘기하는 회복에 이런 의미도 있을까요? 노동자들의 신체와 정신을 치료하여 기존의 생산성에 부합하도록 회복시키는 것. 물론 재활과 직장복귀 등 산재보상제도 자체가 나쁜 것이라고 할 수는 없겠죠. 노동자 입장에서도 자기 삶과 일터에서의 일상을 회복하기 위한 욕구가 있으니까. 그럼에도 재활 개념에 대해서는 달리 접근해볼 수 있을 것 같아요. 장애 운동에서 재활은 주요 쟁점 중 하나인데요. 재활이라는 개념 자체가 개인을 정상적 노동력을 획득하지 못한 이를 정상적 노동력으로 거듭나게 한다는 의미를 갖추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재활에 실패하면 어떻게 되는 건가요? 그러면 또 다시 사회와 일터에서 배제되는 거지요. 이는 장애인이나 산재 노동자의 현재 존재 자체를 자본주의 시스템에서 노동을 할 수 없는 존재이기에 비정상적인 것으로 치부하는 것입니다. 그러니 주류 장애인 노동정책이 개인의 기능 회복, 즉 자본 입장에서 생산성 있는 신체로 거듭나게 하는 데에만 집중하는 것처럼 보여요. 이때 우리는 재활이 충분한지 아닌지를 누구의 기준, 어떤 기준에서 판단하는지를 문제삼아야 한다고 봐요. 자본이나 기업이 요구하는 노동력 상품으로서가 아니라, 상품화되지 않는, 심지어 상품화될 수 없는 그 존재 자체의 역량을 어떻게 확장할 것인가를 물어야 합니다.

장판(장애인운동판)에서는 이러한 관점에서 중증장애인 권리중심형 일자리 확장을 주장하고 있어요. 그 주장의 핵심은 어떤 신체적, 정신적 상태인지 관계없이, 각자의 상태를 인정하고 다양한 삶의 영역에서 의미 있는 활동들을 영위할 수 있도록 정책과 제도가 마련되어야 한다는 것이죠. 이를 산재보상과 연결해서 생각해 보면, 재활이란 단지 개인의 기능 회복을 넘어서, 사회와 일터에서의 관계변화와 노동이나 건강, 안전에 대한 개념 변화를 중심에 두는 것이 되어야 하지 않을까 싶어요.

중증장애인 노동권 쟁취를 요구하는 집회에서의 정창조 간사 출처: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

'잘 아플 권리'가 제기하는 질문

노동안전보건운동에서는 '건강할 권리'를 주장한다. 이때 늘 부딪히는 고민은 우리가 주장하는 건강과 안전이 '정상적인 신체와 정신', '평균적인 생산성을 제공할 수 있는 노동력'으로 규정되고 있는 것은 아닌지다. 이를 풀어가기 위해, 최근 '잘 아플 권리'라는 개념에 주목하고 있다. 장판에서도 건강을 새롭게 바라보는 관점에 관한 얘기가 활발하다고 한다.

정창조: 예를 들어, 만성질환자는 건강한 신체가 아닌가요? 주류 사회 입장에서 보면 당연히 건강한 신체가 아니겠죠. 그러나 100% 건강한 상태란 애초에 없다고 생각해요. 만성질환자나 장애와 질병이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는 이라고 할지라도, 당사자의 존재 차원에서 보자면 질병이나 장애와 잘 사귀어 가며, 사회에서 안정된 삶을 보장받을 수 있고, 자신의 역량을 보존하고 확장해 갈 수 있다면, 곧 그것이 건강하게 살아가는 것이라 생각합니다. 아픈 존재를 그 자체로 인정해 달라는 게, 결코 나는 '건강하지 않겠다'는 선언으로 이어지는 건 아니니까요. 이런 차원에서 국가나 자본이 요구해서 관리되는 건강이 아니라, 다른 차원에서 건강 개념에 접근해야 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장애 내지 질병과 건강을 이분법적으로 구분하고, 아무도 온전히 도달할 수 없는 '건강'을 추구하는 강박을 깨야한다는 것이지요. 전 이런 면에서 건강할 권리와 잘 아플 권리는 충분히 양립가능하다고 봅니다.

정다운: 건강에 대해서 사람들마다 다양하게 생각하잖아요. 안 아프고 안 다치는 게 우선 중요하지만, 아픈 상태가 지속된다고 한다면 의료 서비스를 계속해서 잘 보장받을 수 있는 게 중요하겠죠. 이렇듯 각자의 조건에 따라 다른 규정과 지원이 필요합니다. 장애인이나 산재 노동자처럼 정상적인 수준으로 돌아갈 수 없다면, 그 상태로도 살아갈 수 있는 조건이 무엇인지 찾아내고, 이를 사회적으로 마련해주는 것 말입니다.

인터뷰를 마무리하면서, 정창조 간사는 장애인 노동권이 추구하는 방향은 일반 노동시장에의 편입만으로는 안 되고, 기존 노동체계 바꿀 수 있도록 다양한 노동형태, 방식, 과정을 바꿔내는 계기들을 마련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이는 결국 기존의 노동 개념, 정상 신체 등 정상성을 뒤흔드는 운동이다. 장애인과 산재 노동자가 자유롭고 평등하게 일하고 활동할 수 있는, 그럼으로써 각자의 조건에 맞게 최대한 자기 삶의 역량을 발휘하는 세상. 이를 위한 구체적 실천을 장판과 노동현장에서, 부문과 전체가 교차하며 만들어가야 할 것이다.

 

200호 기획3. 이윤보다 노동자의 ‘몸과 마음’을- <일터> 200호로 살펴본 한국 사회 노동자의 정신건강 문제 / 2020. 10·11

[기획 - 노동안전보건운동의 발자취 ]

이윤보다 노동자의 ‘몸과 마음’을- <일터> 200호로 살펴본 한국 사회 노동자의 정신건강 문제 

최민 상임활동가

한국노동안전보건연구소는 창립 초기부터 '노동자 정신건강'이라는 주제에 주목해왔다. 도시철도 기관사 공황장애 및 자살 사건, 청구성심병원과 하이텍알씨디 집단 정신질환 산재신청, 요양 중인 산재 노동자 정신건강 문제 등으로부터 시작된 고민은, 일터괴롭힘과 가학적 노무관리, 자살 대국에서 과소평가되고 있는 노동자 자살 문제, 감정노동과 작업거부권 등으로 확장되어 왔다.

그 사이 정신건강에 대한 관심도 높아지고, 정신질환 산재 신청 건수와 승인율이 증가하는 등 사회적 변화도 있었다. 최근에는 직장내괴롭힘과 감정노동과 관련된 중요한 노동법상의 변화도 있었다. 하지만 동시에 세계적으로 높은 수준의 노동자 자살을 반복하게 하는 구조적 요인은 변화가 없고, 치료, 심리상담, 산재신청 등 개별적인 대응만 활발해진 것은 아닌가 하는 우려도 든다. 200호까지 <일터>가 다뤄왔던 노동자 주요 이슈를 훑어보면서, 노동자 정신건강을 둘러싼 사회적 논의를 돌아보고, 향후 과제를 짚어본다.

산재 요양 중인 노동자의 정신건강
 

노동자 정신건강과 관련한 문제의식은 '산재 요양 중인 노동자의 정신건강' 문제에서 출발해야 할 것 같다. 일터 초기에 소개된 노동자 자살은 주로 산재 요양과 관련된 것이었다. 다쳤지만 산재를 신청하지 못하거나 승인을 받아도 불충분한 요양으로 요양 중, 혹은 회복되지 못한 채 일터에 복귀한 후의 자살을 꾸준히 소개했다. 사실 <일터> 발간이 시작되기도 전인 1999년 이상관 투쟁이 있었다. 1999년 대우국민차 창원공장에서 일하다 허리를 다쳐 산재로 요양하던 20대 청년 노동자 이상관은, 제대로 걷지도 못할 정도로 몸 상태가 좋지 않았는데도 요양을 종결하라는 근로복지공단 직원의 종용을 받다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IMF 사태에 따른 근로복지공단의 예산 절감 방편으로 세워진 '산재보험급여 거품 제거 대책'의 희생양 중 하나였다.

당시 근로복지공단 앞에서 155일간의 농성 투쟁이 이어졌고, 이 과정에 시민사회단체와 현장 노동자, 의사 등 다양한 사람들이 연대했다. 이 연대투쟁 과정에서 산업재해, 산업안전보건, 산재추방운동이라는 말 대신 노동재해, 노동안전보건, 노동안전보건운동이라는 말이 생겨났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럼에도 이상관의 죽음은 끝내 산재로 인정되지 않았고, 책임자인 근로복지공단 이사장도 자리를 보전했다.

하지만 이 투쟁으로 산재 요양 중인 노동자의 정신건강 문제가 위기라는 것이 알려지게 되었고, 산재 요양 중 이와 관련하여 발생한 정신질환이나 자살의 경우 산재로 인정되는 건이 늘었다. 2005년 당시 근로복지공단은 요양 중 발생한 우울증은 업무상 재해와는 무관한 것이라는 일관된 판단을 내리고 있었는데, <일터>에서는 산재요양 과정 중 발생한 우울증이 산재라고 인정한 법원 판결을 소개하기도 했다.

최근에도 산재 요양 노동자 자살이 지속되고 있다. 얼마 전 발표된 논문에 따르면, 2003년에서 2014년 사이 업무상 사고를 당해 산업재해보상보험 요양급여를 수급한 15~79세 노동자 약 77만 명 중 2796명이 2003년에서 2015년 사이 자살로 생을 마감했다. 이들 산재 노동자의 자살 사망률은 전체 경제활동인구에 비해 2.21배 높게 나타났다. (Hye-Eun Lee, Inah Kim, Myoung-Hee Kim, Ichiro Kawachi. 2020."Increased risk of suicide after occupational injury in Korea." Occupational & Environmental Medicine, BMJ Journals.)

사고 당시 임시직에 종사한 노동자는 상용직보다 자살 사망률이 더 높았고, 특히 남성 산재 사고 노동자의 경우 장해가 발생하지 않은 노동자가 중증 장해를 앓는 노동자보다 자살 사망률이 더 높은 역설적인 결과가 나타났다. 장해가 없는 산재 사고 노동자는 장해등급 1~3급의 중증 장해 노동자에게 지급되는 연금을 받지 못하고 계속해서 경제적으로 불안정한 처지에 놓이기 때문으로 보인다. 산재 사고를 예방하기 위한 정책 개입뿐 아니라, 산재 사고 노동자들이 신체적, 정신적 건강을 회복하고 사회에 복귀할 수 있도록 정책 지원이 필요하다.

논문의 주저자인 이혜은 직업환경의학전문의는 이메일을 통해 "산재 요양 중 자살이 산재로 인정된 지 많은 시간이 흘렀다. 그렇지만 정작 산재 노동자의 자살을 예방하는 노력은 부족했던 것이 아닌가 싶다. 향후 산재노동자 자살의 구체적인 경로 파악과 예방 대책이 필요하다"라고 말했다. 또, "장해 수준과 상관없이, 오히려 장해가 없는 산재노동자들의 자살률이 더 유의하게 높았다는 점"이 연구의 중요 결과라며, "산재요양이 종결되어 산재보험의 경제적 지원이 끝나고 산재 이전보다 소득이 줄어든 경우에 대해 특별히 대책이 필요"하다고도 지적했다.

열차를 운영 중인 지하철 기관사. 위 사진은 일터 통권 12호(2004.07) "스크린 도어로 기관사 정신건강을 보장할 수는 없다"에 수록되어 있다.

도시철도 기관사 이야기

일상적 노동환경의 문제로 발생한 최초의 집단적인 정신질환 직업병 사례로 <일터>가 주목한 것이 도시철도 기관사들의 공황장애와 자살이었다. 2003년 당시 서울 지하철 5~8호선을 운영하던 서울도시철도공사에서 기관사 2명이 연달아 자살했다.

당시 도시철도노동조합 승무본부 사묵국장이었던 윤성호 기관사는 "처음부터 정신건강 문제가 있다고 생각하고 접근했던 건 아니었다"라고 기억한다. 처음으로 자살이 연달아 발생한 2003년은 노동조합 집행부의 대폭 물갈이가 있던 해였다. 선거운동하던 중 기관사 한 명이 자살했고, 당선되고 새로운 임기를 준비하던 중 다른 한 명이 연달아 자살했다. 두 명이 연달아 이런 일을 당하자, 뭔가 있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을 했다. 1~4호선을 운영하는 1기 지하철에서는 자살하는 노동자가 없는데, 도시철도에서만 기관사가 자살한다면, 노동환경에 원인이 있는 것이 아닐까?

당시 한국노동안전보건연구소의 공유정옥 직업환경의학 전문의가 '정신질환도 직업병으로 발생할 수 있다'고 안내해줬다. 새로운 노동조합 집행부의 첫 활동이 되었다. 도시철도는 지하철공사에서 분사하면서 권위적이고 위계적인 조직문화가 만들어져 있었다. 거기에 혼자 전철을 운전하며, 서비스까지 담당해야 하는 기관사들은 책임감과 서비스 강요에, 자주 혼나고 억눌려 있었다. 연달아 발생한 자살이 노동환경 때문일지도 모른다고 얘기하자 주변에서 그동안 참고 있던 울분을 터뜨렸다. 윤성호 기관사는 정신건강 문제는 조합원들에게 길게 설명할 필요도 없었다고 기억한다. 다들 공감하던 문제였기 때문이다.

노동자들은 개별 사건의 산재 보상을 청구했을 뿐 아니라, 서울도시철도공사 내 모든 기관사에 대해 직무스트레스와 정신건강 실태조사를 실시했다. 그 결과, 정신건강 상태가 매우 좋지 않은 기관사가 다수 발견되었고, 먼저 공황장애를 진단받은 기관사들이 연달아 업무 관련성을 인정받기도 했다.

정신건강과 관련이 높은 요인으로, 운전 중 사상사고 경험 여부뿐만 아니라, 도시철도에서 운영 중인 1인 승무제도와 권위적인 인사노무관리도 문제로 지적됐다. 하지만, 사상사고를 줄이기 위한 안전문 도입과 사고가 발생했을 때 기관사가 '피의자' 신분으로 조사받지 않도록 하는 등의 대책에만 합의할 수 있었다. 2인 승무 제도 도입은 결국 합의되지 못했다. 사상사고와 같은 극적인 단일 사건에 의한 정신질환 발생은 산재로 인정해도, '1인 승무' 등과 같은 일상적인 스트레스 요인에 따른 정신건강 영향은 좀처럼 인정하지 않는 것은 여전한 관행이다.

그래도 안전문 설치는 인명 사고 발생 가능성 때문에 운전 내내 긴장할 수밖에 없던 기관사들의 압박감을 상당히 낮춰주었고, 승객 안전 측면에서도 진일보한 정책이었다. 그 후 일상적인 개선결과 평가와 피드백이 잘 이루어지지는 않던 차에, 2011년 다시 기관사 자살 사건이 발생했다. 2013년 다시 기관사 전체를 대상으로 실태조사에서, 사상사고 이외에도 권위적 조직문화 등이 직무스트레스에 중요한 원인임을 알게 되었다. 그리고 고위험군 노동자들을 잘 관리하고 있지 못하다는 점 또한 확인하였다.

이를 교훈 삼아, 작업장 기반의 노동자 정신건강 관리를 위해 '도시철도 힐링센터'가 문을 열었다. 의사, 간호사, 임상심리사 등이 상주하며 개별 노동자 혹은 노동자 가족의 심리상담과 치료 지원, 조직 차원의 정기적인 직무스트레스 검사와 작업복귀 프로그램, 정신건강 증진 프로그램 등을 시행하고 있다.

도시철도공사의 정신건강 관리 프로그램 도입 과정은 크게 두 가지 점에서 주목할 필요가 있다. 우선 정신건강 관련 논의가 본격화되기 전에 일찍이 종합적 접근의 중요성을 깨닫고, 체계적으로 문제 해결을 도모하였다. 다음으로 긴 시간에 걸쳐 노동자 당사자들의 요구와 참여를 바탕으로 개선 방안 마련했다. 노동자 정신건강의 예방 및 치료에서 개별적이고 단편적 접근이 아닌 집단적이고 총체적인 접근이 무엇보다 중요하다는 걸 보여준 사례였다.

윤성호 기관사는 특히 "그전까지 노사는 항상 대립하는 상대였는데, 힐링센터가 세워지면서, 직무스트레스를 줄이고, 기관사를 보호해야 한다는 같은 방향의 고민을 노사가 함께 한다는 것이 신기한 경험이었다"라고 회상한다. 회사로부터 독립적이고, 단순히 심리상담뿐 아니라 전직이나 업무 복귀 상담까지 포괄하고. 직무스트레스 관리와 노동환경 평가까지 다면적으로 접근하는 힐링센터의 경험은 "웬만한 규모가 있는 회사에서는 다 했으면 좋겠다"라고 추천한다.

일터괴롭힘에서 조직은 '중재자'가 아닌 '반성의 대상'

200호까지 발간되는 동안, <일터>가 꾸준히 다뤘던 문제 중 하나가 '일터괴롭힘'이다. 2000년대 중후반부터 상사의 폭언에 의한 정신질환, 직장 내 따돌림 등 관련된 이슈가 간헐적으로 있었다. 여기에 '직장갑질', '일터괴롭힘'이라는 이름이 붙여지면서, 지난 3~4년 사이 한국 사회에서 가장 뜨거운 노동 인권 이슈가 되었다.

노동인권 의식이 매우 낮은 한국 사회 일터에서 일하는 많은 노동자가 '직장갑질'이라는 말에 열렬히 호응했고, 그동안 인식되지 않았던 다양한 인격 침해를 '일터 괴롭힘'이라고 명명함으로써 각자의 고통을 얘기하기 시작했다. 억압적인 일터로부터 겪은 각자 경험이 흩어지지 않고 하나의 서사로 묶이면서, 한국의 노동현실을 드러냈다. 물론 처음에는 일부 자극적인 사건들을 중심으로만 화제가 되기도 했다.

하지만 직장갑질119 등에서 지속적으로 문제제기가 이뤄지면서 해당 사업장에서 노동조합을 결성하는 조직적 움직임이 나타났다. 그리고 각 기관에서 일터괴롭힘 예방 가이드라인을 제정했을 뿐 아니라, 근로기준법에 '직장 내 괴롭힘 금지' 조항을 도입하는 등 유의미한 변화를 가져오고 있다.

이 중 특별히 한국노동안전보건연구소가 주목해 온 부분은 조직적 괴롭힘이다. 조직적 괴롭힘은 일터괴롭힘을 실적이나 성과 향상 수단, 노무관리의 수단으로 활용하는 것을 말한다. 조직적 괴롭힘이 중요한 이유는 집단적 노사관계, 자본의 착취 구조와 형태 등이 노동자 정신건강에 매우 직접적인 영향을 주기 때문이다. '가학적 노무관리'라는 말에서도 드러나듯, 회사가 최고의 성과를 거두기 위해서 또는 자본이 이윤을 내기 위해서라면, 언제든 노동자의 인격과 정신을 파괴할 수 있다. 조직적 괴롭힘에 주목할 때, 비로소 우리는 이와 같은 사실들을 드러내보일 수 있다.

일터 148호(2016.05) 표지 사진. 당시 <일터>는 유성기업 고 한광호 열사 투쟁을 "가학적 노무관리" 측면에서 바라보고자 했다.

조직적 괴롭힘의 역사는 면면히 이어지고 있다. 2000년대 초반부터 청구성심병원, 하이텍알씨디코리아 등에서 노동조합 활동을 억누르기 위해 일터괴롭힘이 활용된 사례들이 <일터>에 소개됐다. 2010년대 들어서는 KT와 유성기업의 노조탄압, 증권사의 저성과자 퇴출 프로그램 등의 사례가 부각되었다. 이러한 조직적 괴롭힘 또한, 한국에서 일터괴롭힘이 본격적으로 논의되는 데 있어 중요한 계기 중 하나였다.

조직적 괴롭힘은 개인 간의 괴롭힘보다 대규모로 이뤄질 뿐만 아니라, 훨씬 더 분명하고 악의적이고 체계적으로 이뤄지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이런 조직적 괴롭힘은 멀리 있는 일처럼 느껴지기 쉽다. 개인 사이에 발생한 괴롭힘에 비해 개선이 어렵고, '어쩔 수 없는 것'으로 여겨지기도 한다. 더욱이 문제로 인식되더라도, '노동자 정신건강 침해'라는 관점보다 '노사갈등', '공격적 경영' 등의 틀로 설명되기 쉽다.

예를 들어, 경비원에게 막말을 한 입주자는 손쉽게 가해자로 지목되지만, 은근하게 모멸감을 주면서 마치 자발적으로 퇴사하는 것처럼 노동자들을 해고하는 회사는 비난의 대상이 되지 않는 경향이 있다. 이처럼 조직적 괴롭힘의 양상은 모호하기에, 사람들로 하여금 문제제기를 어렵게 한다. 오히려 자본과 기업은 이를 빌미삼아 피해자와 그에 연대하는 사람들의 요구를 왜곡 또는 희석시킨다.

지난 2005년 하이텍알씨디코리아 노동자들의 집단 우울증을 둘러싼 말들이 이를 잘 보여준다. 노사갈등으로 인한 것이기 때문에 업무상 질병이 아니지 않느냐는 반문과 아프다면서 어떻게 농성할 수 있냐는 비아냥거림 등등. 이러한 공격은 2016년 유성기업에서 스스로 목숨을 끊은 한광호 조합원의 산재 승인 후 회사가 승인 취소를 요구하는 행정 소송을 거는 방식으로 되풀이되고 있다.

이에 대해, 유성기업 노동자들의 일터괴롭힘 대응과 심리상담을 오랫동안 지원해 온 충남 노동인권센터 노동자심리치유사업단 두리공감의 장경희 활동가는 "'조직'에 의한 구조적 괴롭힘은 비가시성 때문에 잘 조명되지 않는다. 사내 규칙과 규율 또는 제도, 경영자의 암묵적 메시지는 괴롭힘을 행사하는 도구이자 은폐하는 장치"라고 지적한다. 그러나 그는 '조직적' 괴롭힘과 '개인 간' 괴롭힘이 따로 있다고 얘기하는 것도 또 다른 은폐의 위험이 있다고 지적한다. 사실 노동자 개인들 사이의 폭력(괴롭힘) 역시, 그 배후에는 조직이 있다는 것이다.

피해자를 위한 연단은 확대되어야 하지만, 괴롭힘을 "개인 일탈로의 치부, 방관하면 괴롭힘은 재생산"된다는 것이 장경희 활동가의 주장이다. "조직이 더이상 중재자가 아닌 반성과 변화의 대상임을 제기"하고 조직 자체를 변화의 대상으로 삼을 때, 일터괴롭힘을 줄여나갈 수 있다.

노동자 자살, 죽음 너머 노동환경을 보라

이런 다양한 이슈들이 우리의 시야로 들어오는 과정에 대부분 '노동자 자살'이 있었다. 노동자들은 일터 괴롭힘에 시달리다가, 적대적인 노동환경에 적응하려 애쓰다가, 아픈 몸을 이끌고 일해 보려다,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산재 요양 중 목숨을 끊은 이상관 노동자를 통해, 경제적 동기에 따른 산재요양 관리가 산재 노동자를 얼마나 압박하는지 드러났다. 도시철도 기관사의 잇따른 자살로 과도한 책임, 억압적인 조직문화 등이 집단적인 직업적 정신질환 발병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것을 배웠다. 쌍용차 정리해고 이후 스스로 세상을 등진 노동자들을 통해, 정리해고가 노동자에게 얼마나 큰 상처이며, 그 과정에서 벌어진 국가 폭력이 이 트라우마를 어떻게 확대하는지 알게 되었다.

이런 점에서 일과 관련한 자살은 노동자의 정신건강을 위협하는 노동환경으로 인한 침해를 드러내는 여러 징후 중 하나로 봐야 한다. 자살이 하나의 극단적이거나 이례적인 사건이 아니라, '자살 정도는 돼야 주목하는 한국사회'가 극단적이라고 해야 옳을 것이다.

오히려 지금까지 한국사회는 '자살'의 경우에도 죽음 너머 노동환경을 제대로 들여다보지 못했다. 한 해에 1만 3000여 명이 자살하고, 2003년부터 자살예방대책을 운영하면서도, 그동안 정부의 자살예방대책에서 노동자는 빠져있다시피 했다. 1, 2차 자살예방정책에서는 '직업'이 전혀 고려되지 않았다. 매년 발간하는 '자살예방백서'에서도 직업군에 대한 분석은 매우 단순하여, 직업군별 사망자수만 제시될 뿐, 사망률도 분석되지 않는다. 2019년에야 정부가 심리부검을 실시하고 경찰청 조사 기록을 확보하는 등 자살의 원인에 대해 심층적인 접근을 시작하면서, 노동환경에서의 스트레스가 자살 경로에서 매우 중요하다는 것이 드러났다.

중앙자살예방센터가 펴낸 '2018 심리부검 면담 결과 보고서'에 따르면, 자살사망자의 사망 전 스트레스 사건 중 정신건강 관련 문제가 84.5%로 가장 많았지만, 직업 관련 스트레스 사건이 68%로 뒤를 이었다. 직장 내 대인관계, 퇴직 및 해고, 이직 또는 업무량 변화 등이다. 또 한 가지 중요한 것은, 자살 경로의 시작점인 첫 번째 위험 요인에서 가장 빈도수가 높았던 것이 업무부담이었다는 점이다. 직접적인 자살 동기는 정신적 건강 때문일지라도, 그 정신적 건강 문제가 시작되는 요인이 업무일 수 있다는 얘기다. 자살 예방 정책에서 일터와 직무스트레스를 반드시 고려해야 하는 이유다.

한국노동안전보건연구소의 '업무상 정신질환 연구모임'에 함께 하고 있는 류한소 사회학 연구자는 그래도 노동자 자살과 관련해 한국 사회에 긍정적인 변화가 크다고 본다. "경비노동자 자살 사건을 보면서 사람들이 공분하거나 아이돌 가수가 자살로 사망했을 때 '이것도 산재'라는 기사들이 뜨는 것"을 보면서 이를 느꼈다고 한다. 그러나 아직 노동자 자살은 구체적인 규모와 원인도 공백으로 남아 있다. "일단은 노동자 자살의 규모를 파악할 수 있는 통계들이 생겨야 한다. 심리부검 수준의 세부적인 통계가 생겨서 일단 이 사람이 왜 자살을 했는지 추정이라도 해볼 수 있는 국가통계가 있어야" 예방을 위한 활동도 시작될 수 있을 것이다.
  
감정노동은 '고객'의 문제가 아니라 '사업주'의 책임

일터가 200호까지 발행되는 동안, 노동자 정신건강 분야에서 가장 극적인 변화가 있었던 주제가 감정노동이 아닐까 싶다. 2006년 3월 서비스연맹과 한국노동사회연구소가 진행한 감정노동 연구를 소개한 단신 기사로 <일터>에 처음 등장했던 감정노동은 콜센터 노동자, 판매 노동자, 교사, 금융노동자 등 다양한 노동자들의 문제제기로 이어졌고, 다양한 개선책도 제안되었다. 감정노동수당, 감정노동휴가 등의 보상 방법이 개별 사업장마다 시도되었다. 무엇보다 노동자가 고객의 과도한 요구에 시달리지 않도록 예방과 지지체계를 사업주가 만들어야 한다는 내용이 산업안전보건법에 도입되기도 했다.

감정노동을 수행하던 노동자에게서 발생한 정신질환도 산재로 보상받게 되었다. 특히 콜센터 노동자가 먼저 통화를 끊을 수 있는 권리를 얻어낸 것은 서비스 노동, 감정노동에서 작업중지권이 어떻게 노동자를 보호할 수 있는지 잘 드러내는 사례였다. 희망연대노조 다산콜센터지부 투쟁의 성과로, 2014년 2월 콜센터 상담사들의 인권실태조사 이후 원스트라이크아웃 제도가 도입됐다. 성희롱, 언어폭력, 무의미한 통화 등의 악성 민원에 대해 상담사들이 안내 후 전화를 끊을 수 있게 하고, 곧바로 법적 조치를 할 수 있도록 한 것이다.

이런 조치가 중요한 이유는 감정노동자 '보호'를 위한 정책 마련과는 달리, 노동자에게 스스로를 보호할 수 있는 힘과 권리를 부여하는 방식이기 때문이다. 나아가 이 사례를 통해 작업중지권이 반드시 재래식 사고 위험이 임박했을 때에만 활용되는 권리가 아니라는 인식이 확산되기도 했다.

물론 여전히 콜센터 노동자들의 전화 끊을 권리 보장은 쉬운 일이 아니다. 코로나 이후, 마스크공급, 방역수칙, 재난지원금 등 정부 문의가 폭주하면서, 업무량이 엄청나게 증가한 정부민원안내콜센터의 석소연 분회장은 "끊을 권리가 있다고 하지만, '차단하겠다'는 멘트를 하면서 팀장에게 허락을 받아야만 끊을 수 있다. 결국 허락받을 때까지, 욕설이나 고성을 다 들어야 한다"라고 토로했다. 감정노동자에 대한 시민들의 인식이 높아졌다고 해도, 콜센터 업무의 특성상 결국 본인이 원하는 것을 얻지 못하면 악성 민원인으로 돌변할 수 있다. 필요한 것은 이럴 때 스스로 빠르게 대처할 수 있는 노동자의 자율권이다.

또한, 감정노동에 대한 문제제기는 여성 노동자가 처한 특수한 위험 요인을 드러내는 데에도 기여했다. '타인의 감정을 맞추기 위해 자신의 감정을 억누르고 통제하는 일을 일상적으로 수행'하는 역할은 꼭 임노동에서만이 아니라 많은 여성이 가족, 일터, 사회관계에서 일상적으로 수행하던 일이기도 했다. 이런 맥락에서 감정노동에서 흔히 문제가 되는 '친절과 미소' 요구는 대부분 여성 노동자에게 집중된다. 이런 요구는 업무에 성별화된 역할과 지위를 부여하고, 해당 업무를 수행하는 여성 노동자를 성적 괴롭힘에 취약하게 만든다. 특히 야간에 안내하는 여성 상담원들의 경우, 더 자주 성폭력에 노출되는 것처럼 보인다. 석소연 분회장의 동료 중에도 심한 성폭력 발언을 들은 뒤, 자살 충동을 느껴 옥상에 올라가기까지 한 사례도 있었다.

고객을 상대하는 모든 업무가 노동자를 소진시키는 것은 아니다. 감정노동은 노동자의 감정조차 자본에 의해 어떻게 이윤 추구의 도구로 활용되는지를 보여주는 개념이다. 이를 염두에 둬야만, 다음과 같은 중요한 질문을 놓치지 않을 수 있다. 회사와 자본은 노동자의 감정을 어떻게 착취하는가? 반대로 노동자의 권리와 주체성을 보장하기 위한 체계를 가지고 있는가? 고객 응대 등의 업무를 하는 노동자에게 노동과정에 내재된 감정노동이 노동자에게 얼마나 영향을 미치는가는 업무 자체에 더해, 노동시간과 노동강도, 작업환경은 어떠한가에 따라 달라진다. 감정노동과 관련된 과제가 '감정노동' 그 자체로만 국한되어서는 안 되는 이유다.

석소연 분회장에 따르면, 코로나로 문의 전화가 폭주하고, 이 때문에 쉬는 시간을 지키지 못하고 있는데도, 여전히 매달 통화품질평가(QA)를 실시하고 있다고 한다. 이런 상황에서 감정노동으로 인한 스트레스는 더 높아질 수밖에 없다. 감정노동을 진상 고객과 서비스 노동자 사이의 문제가 아니라, 사업주의 관리 책임 문제로 인식해야 한다.

KT 직장내 괴롭힘 보고서 표지 사진. 해당 사안과 관련해서는 일터 138호(2015.07)에서 "이것은 '학대'다 - 사례로 본 가학적 노무관리" 기사로 다룬 바 있다. 출처: KT 직장 내 괴롭힘 조사연구팀.



마음 다치지 않고 일하는 일터는 가능한가?

노동자의 정신질환과 자살은 이윤축적 과정에서 노동자를 정신적으로 건강하고 안전할 수 없는 상태에 빠뜨리는 자본주의 자체로부터 비롯된다. 어떻게 마음 다치지 않고, 인간답게 일할 수 있을 것인가. ILO 산업보건서비스의 원칙 중 '적응의 원칙'이 있다. 일터의 속도와 질서에 노동자를 맞추는 것이 아니라, 노동자의 몸과 삶에 일터를 맞춰가야 한다. 예를 들어, 근골격계 부담을 줄이기 위해 중량물을 줄이고, 컨베이어 벨트의 속도를 늦추는 것이다.

정신건강 문제도 마찬가지다. 우리 각자가 더 참고 견디는 법을 익히는 것이 아니라, 유리멘탈인 사람도 일할 수 있는 일터가 되어야 한다. 이렇게 일터를 바꾸는 데 있어, 노동자 참여가 반드시 전제되어야 한다. 신체건강이나 정신건강 모두 마찬가지다. 노동자가 참여할 때에야 제대로 문제제기할 수 있으며, 실효성 있는 개선방안을 제안할 수 있다. 이러한 과정에서 노동자들 스스로도 일터를 변화시키는 주체로 설 수 있다. 이를 위해 도시철도에서 노동자, 노동조합이 시도했던 것과 같은 다양한 경험이 공유될 수 있기를 바란다.

산재보상과 관련해, 그동안 주로 정신질환 산재 승인률을 높이는 데에 관심의 초점이 맞춰져 왔다. 앞으로는 정신질환으로 인한 산재 요양의 질과 재활 과정, 노동자와 사업장 양 측면에서 업무 복귀를 위해 필요한 지원, 다른 질환 요양 중 발생하거나 악화되는 정신질환 문제 등이 폭넓게 다뤄져야 한다. 아직 연 200건이 채 되지 않는 정신질환 산재 신청 자체가 늘어나고, 치료받을 권리를 보장받는 것도 중요한 과제다.

한국 사회 전체적으로 정신건강에 대한 인식이 높아지고 있어, 앞으로 노동자 건강 영역에서도 정신건강과 관련된 관심과 요구는 증가할 것이다. 하지만 류한소 연구자가 지적하듯이, 일과 관련된 정신질환이나 자살에 대한 관심이 "여러 방식의 심리치료, 다양한 힐링문화나 서비스 상품들, 하다 못해 스트레스를 풀기 위해 충동구매를 하는 '시발비용'에 대한 유행까지 또 다른 힐링상품에 대한 소비로 끝나지 않을 수 있도록" 해야 한다. 각자 참아내거나, 각자 다른 상품을 소비하는 방식이 아니라, 함께 일터를 바꿔내기 위한 시도를 월간 <일터>가 지속적으로 알리고 엮어나가기를 기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