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강한 노동이야기] ‘과로사’에 대한 왜곡과 잘못된 변명(2020.11.3, 최민, 민중의소리)

어떤 노동자의 ‘과로사’ 여부는 사망 순간에 결정되는 것이 아니라, 사망의 원인이 드러나야 결정된다. 그래서 과로사는 ‘의학적’이라기보다 ‘사회적’이고 ‘법적’인 개념이다. 2019년 한 해에만 과로로 인한 뇌심혈관질환 사망으로 산재 승인을 받은 사람이 503 명이었다. 이제는 과로사의 이런 점이 잘 알려질 때도 된 것 같은데, 꼭 그렇지도 않은 것 같다.

때 아닌 ‘과로사와 지병’ 논란이 한창이다. 한진택배는 지난 10월 12일 과로사한 것으로 추정되는 36세 택배노동자 사망 사건에 대해 “김씨가 평소 지병이 있었고 배송량도 200개 내외로 적은 편이었다”라고 해명하며 업무 관련성을 부인하였다. 이 업체는 약 2주 뒤인 10월 27일, 협력업체 트레일러 운전 노동자가 심야노동 중 사망했을때도, 다시 그의 지병을 거론하며 과로사가 아닐 가능성이 있다고 주장했다.

민중의소리 자료 화면

 

www.vop.co.kr/A00001523719.html

[만평] 산재노동자, 일터로 돌아가는 길 / 2020. 09

[직업환경의사가 만난 노동자 건강이야기] 꿀잠 이야기 / 2020. 09

[직업환경의사가 만난 노동자 건강이야기]

꿀잠 이야기

권종호 회원, 직업환경의학과 전문의

 

이불 밖은 위험해

어느 날 저녁 여느 때처럼 7살 딸과 5살 아들이 자기들 방에서 잠자리에 들었다. 둘이 장난도 치고 수다도 떨다가 몇 번 주의를 받고서야 잠이 들곤 하는 게 일상이라 그날도 그러려니 하고 아이들 소리에 귀 기울이고 있는데 갑자기 5살 아들의 짜증 섞인 목소리가 들려왔다. “누나~~ 누나 때문에 나 꿀잠 못 자잖아~~”

적당히 주의를 주고 잠들게 하려던 나와 아내는 5살 인생의 뜬금없는 꿀잠 욕심에 키득거리기 시작했다. 어른들의 키득거림과는 달리 동생의 꿀잠을 위한 누나의 진지한 배려가 있었던 것인지 아이들 방은 이내 조용해졌고 누나 동생 모두 행복한 꿀잠에 빠져들었다.

아이들이 잠든 시간에도, 이불 밖 세상은 불이 꺼지지 않는다. 바로 옆에 있는 우리 아파트 경비실부터 골목 곳곳에 자리 잡은 편의점, PC방을 거쳐, 소방서, 경찰서, 병원을 넘어 밤새 돌아가는 공장들, 물류센터들, 이 많은 곳들을 사이로 부지런히 움직이는 배달 노동자까지... 밤에는 꿀잠을 자는 것이 당연한 아이들에게는 생경한 세상일 것이다. 실제로 특수건강진단을 하며 만나는 야간 작업 노동자들의 잠 이야기는 아이들의 공감 능력을 훨씬 넘어서는 힘든 이야기이다.

정상 수면 패턴과 수면 유지 장애

야간 작업 노동자들의 수면 상담을 진행하면서 자주 활용하는 그래프이다. 정상 수면 상태에서 깊은 잠 얕은 잠이 수 차례 반복되는 것을 잘 보여주는 그래프인데 이게 정상 수면이라고 하면 많이들 놀란다. 보통 깊은 잠 한 번으로 잠이 끝나는 줄 알고 있는데, 실제로는 본인도 모르게 잠에서 깨거나 꿈을 꾸거나 하는 얕은 잠과 누가 업어가도 모를 정도의 깊은 잠을 반복하며 신체적 정신적 휴식을 번갈아 취하고 한 번의 수면이 끝난다.

정상 수면 패턴

이러한 수면의 과정이 잘 이루어지면 한 번의 꿀잠을 잔 것처럼 수면이 이루어지지만 그렇지 않고 과정 중 나타나는 얕은 잠이나 꿈수면 중에 자주 깨고 다시 잠들지 못하게 되면 수면의 질이 매우 떨어지게 된다. 흔히들 불면증이라고 하면 잠들기 어려운 형태(입면 장애)만 생각하기 쉬운데 실제로는 잠이 들었다가 너무 자주 깨거나 다시 잠들지 못하고 아침까지 뜬 눈으로 지새는 형태(수면 유지 장애)의 불면증이 두 배 가량 더 많고 심한 불면증의 경우 이 둘을 모두 가지고 있는 경우가 많다.

수면 유지 장애는 일반적으로도 흔하게 경험한다. 기분 나쁜 꿈 때문에 새벽에 깨거나 어렴풋이 깨는 느낌이 들어 시계를 보니 새벽 3시이거나, 잠깐 화장실 가느라 깬 잠이 이런저런 스트레스 때문에 이어지지 않는 경우도 있고, 코골이 때문에 수면 무호흡증으로 자주 깨는 경우도 있다. 이런 경우 중간에 깨는 듯한 느낌이 들더라도 몇 시인지 확인하려 시계를 보거나 굳이 눈을 뜨지 말 것, 실제 불면증이 아니라 원래 정상적인 수면의 한 과정으로 얕은 잠이 반복되는 것이니 스트레스 받지 말고 편안히 자신의 호흡에 집중할 것, 높은 온도, 밝은 조명, 소음, TV, 핸드폰 같은 수면에 방해되는 요인들을 최소화할 것 등을 권고하기도 한다.

낮잠은 밤잠이 될 수 없다

야간 작업 노동자의 수면 장애에서도 이러한 정상 수면 과정에서의 얕은 잠 패턴을 잘 알고 넘어가거나 일반적인 수면 환경을 개선하는 것으로 도움이 되는 경우가 있다. 하지만 낮 시간의 생체 리듬은 깊은 잠을 유지할 수 없도록 프로그램되어 있기 때문에 낮잠은 근본적으로 편안한 잠이 될 수 없다. 실제로 10년 이상 고정 야간 근무를 하며 낮밤을 바꿔 생활하더라도 수면의 질이 더 나빠질 뿐 적응되지 않는다는 연구들도 있고, 특수건강진단을 통해 만나는 야간 작업 노동자들의 이야기도 별반 다르지 않다. 낮잠을 잘 수 밖에 없는 야간 근무 주간은 힘들어도 그냥 버티는 거지 편안한 잠을 기대할 수는 없다.

낮잠은 길어야 네시간, 아무리 깜깜하게 해놓고 귀마개를 해도 저절로 깨요’, ‘야간 출근 전에 한번 더 자려고 해도 잠이 안와요’, ‘심장이 요동을 치며 한번 깨버리면 다시 잘 수 없어요’, ‘야간 있는 주는 주중에 겨우 버티다 주말에 몰아서 자요’, ‘낮잠으론 제대로 못 자니 여기저기 아프고 그러니 더 못자고 악순환이에요

늘어가는 야간 노동, 잃어버린 꿀잠의 가치는?

얼마 전 한 TV 프로그램에 나온 외국인은 몇 년간의 한국 생활이 그립다고 했다. 돌아간 고국에서는 저녁만 되어도 문 여는 가게가 없다며 새벽에도 배달 음식을 시켜먹고 밤새 PC방과 노래방에서 놀 수 있는 한국은 최고의 나라라고 했다. 불과 1~2년 사이에 이제는 저녁에 인터넷 주문을 하면 새벽 배송까지 해주는 나라가 되었으니 더 좋은 나라가 되었을까?

다시 한번 이야기하지만, 낮잠은 마지못해 잠들 뿐 밤잠만큼 편할 수 없다. 늘어난 야간 노동의 양만큼, 우리가 누리는 편리만큼 누군가의 꿀잠은 사라졌다. 그런데 밤 시간을 활용하는 외연의 확장으로 일자리를 만들고 생산성을 높여준 만큼, 잃어버린 건강한 수면의 가치도 평가되었을까? 그만큼 야간 작업 노동자는 보호받고 있을까? 한국의 밤이 활기찬 것은 그만큼 야간 노동을 쉽게 생각해서는 아닐까? 늘어난 야간 노동만큼 이제는 더욱 중요해진 꿀잠의 가치를, 함께 고민할 수 있는 사회적 배려가 절실하다.

[노동안전보건 활동가에게 듣는다] 현장에서 전망을 찾다 -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 정재현 노동안전보건부장 인터뷰 / 2020. 09

[노동안전보건 활동가에게 듣는다]

현장에서 전망을 찾다 -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 정재현 노동안전보건부장 인터뷰

정경희 선전위원

지난 7년간 한국노동안전보건연구소에서 활동해오던 정재현 노동안전보건활동가는 지난 2월 민주노총 노동안전보건실로 거취를 옮겼다. 그리고 6개월이 흘렀다. 8월 24일 오후 프란치스코회관 산타미아노라 카페에서 노동안전보건활동가로 또 다른 전환기를 맞고 있는 그를 만났다.

노동자 건강권 운동을 시작한 계기

못 본 사이 얼굴이 더 작아졌다 했더니 예전보다 일은 줄었다며 반갑게 웃는다. 수다는 뒤로하고 인터뷰를 먼저 시작했다. 노안(노동안전)활동 8년 차를 맞은 그가 대학 전공과 무관한 노동자 건강권 활동을 시작하게 된 계기가 궁금했다.

"소위 운동권 학생이었는데 학교 다닐 때 노안활동이라는 말을 들어본 적이 없어요. 학생 때는 안전보건 문제에 대해 생각해본 적도 없었죠. 그러다 졸업을 앞두고, 선배로부터 반올림 자원 활동을 제안받았어요. 두 달간 반올림 상근활동가와 일정을 같이하며 피해자 가족도 만나고 활동도 알게 되면서 사람의 생명과 안전을 위한 활동이고, 여성노동자의 문제이기도 해서 반올림 활동을 해야겠다고 생각했죠. 

한노보연과 반올림이 사무실을 함께 사용했는데 연구소 활동가들도 자주 보게 되고 자연스럽게 연구소 활동도 접하게 되었어요. 그동안 익숙한 노조와 같이하는 활동이 인상 깊었고, 현장에서 꼭 임금만이 아니라 안전보건 활동을 오랫동안 해왔고 노안부가 있다는 것도 그때 알게 되면서 관심 있어 시작하게 되었어요. 현장 활동 중에서도 또 다른 영역이나 의제가 있는 운동이어서 의미 있게 다가왔던 것 같아요."

부정은 긍정보다 강렬하다. 관심 있어 시작했고, 의미 있어 보람된 활동이더라도 어디서든 무슨 일이든 곤혹스러울 때는 있기 마련이다. 그동안 노동안전보건활동을 하면서 어려웠던 점은 무엇이었는지 물었다.

"한노보연에서 현장성, 계급성, 전문성이 있잖아요. 전문성이 제게는 화두였고 늘 마음의 짐처럼 있었던 것 같아요. 안전보건을 전공한 것도 아니고, 애초부터 알았던 게 아니니 현장성이 있거나 전문직인 경우와는 다르게 현장에서 부딪히며 배워야 했어요. 현장 가서는 조합원들한테 '현장안전점검 최고 전문가가 누구냐, 현장에서 일하는 조합원 여러분들이다. 그래서 현장을 바꿀 수 있는 것도 여러분들이다'라고 말했지만, 정작 스스로는 위축되고 자신감도 부족했죠. 일례로 현장에 안전보건교육 갔을 때 사측 안전관리자들이 나이가 어리다고 깔보거나 어디 대학 출신이냐, 전공은 뭐였냐 질문을 받을 때 할 말이 없는 거예요. 스스로 자신이 없어 지금도 잘 하는 건가 하는 생각이 들어서 올해 방통대 환경보건학과에 편입해서 공부를 시작했는데 바쁘다는 핑계로 잘 안 하게 되더라고요."

전문성은 기술 지식적 방법론에 지나는 것 아닐지, 그보다 더 중요한 것은 계급성이라 표현하는 일하는 사람의 관점이 아니겠냐는 질문에 연구소 상임활동가의 경험이 묻어나는 답변을 주었다.

"현장노동자에게 공감받는 연구를 책임 있게 해야 하고, 또 한 축으로는 노동조합과 사측 모두 설득할 수 있는 연구 활동을 해야 하니 무겁고 어려운 것이죠. 그렇지만 전문성이 가장 중요하다고는 생각하지 않아요. 연구소 선배들을 보면 다 전문가잖아요. 자격증이 있어서가 아니라 노동자적 관점으로 현장을 볼 수 있어야죠. 현장활동가들도 몸으로 부딪치면서 산재나 노안활동 전문가가 되잖아요. 그런 걸 보면서 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어 여기까지 오게 된 것 같아요. 연구소에서 전문성을 갖도록 이끌어주고, 역량을 쌓을 수 있도록 기다려주었던 것도 좋은 기회였던 것 같아요."

지난 2019년 인권재단 사람의 <일단, 쉬고> 프로젝트로 다녀온 뉴욕에서의 재충전 시간들. 출처: 인권재단 사람


활동에 대한 고민과 변화

지난 3월, 돌연 7년째 함께했던 한노보연에서 민주노총으로 활동을 옮겼다. 단체에서는 충족하지 못했던 부분이나 노동조합의 최고의사결정기구인 민주노총 활동에 대한 갈망이 있었을까? 솔직한 고민 지점을 듣고 싶었다.

"앞서 말씀드린 전문성이라는 부분, 또 하나는 현장의 안전보건활동이 활발하지 못한 이유인 것 같아요. 상근을 시작했을 때에 비하면 최근 사회적 관심과 인식이 많이 높아졌고, 언론에서 중대 재해를 다루는 관점이 달라졌어요. 운동의 힘으로 여기까지 왔다고 생각하는데 계속 반복하는 느낌이 있었어요. 중대재해가 벌어지고 그걸 대응하는 활동, 사고가 나면 대책을 세우고, 현장에서 일상적인 노동안전보건활동이 잘 점검되지 않은 것 같았어요. 누구의 잘못이라기보다 노동운동의 흐름 속에서 그렇게 된 것으로 생각하는데, 연구소 활동의 축도 현장과 같이하는 활동이 줄어들지 않았나 생각이 들어 아쉬웠어요. 연구소 선배들이 현장과 같이 연구하고 투쟁으로 만들어왔던 경험이 저 때는 많지 않았거든요.

가령 연구소 신입회원을 보더라도 현장활동가보다는 전문가이면서 활동하고자 고민하는 분들의 가입이 많은 추세잖아요. 회원이 늘어 좋긴 한데 현장회원 가입률이 저조한 이유를 현장에서 확인하고, 잘 안 되는 과정에서 제가 할 수 있는 역할은 없을까, 연구소 활동의 장점을 살려 현장과 더 잘 만나게 할 수는 없을까 하는 생각을 했었죠. 지금도 그건 고민이에요. 연구소에서 받은 걸 잘 살려서 현장노안활동을 활성화하고, 이것이 연구소가 추구하는 현장노안활동을 만들어갈 수 있으니 연구소 회원들도 제 선택을 존중해줬다고 생각해요."

분위기를 전환하고자 조직체계나 환경이 많이 달라졌을 것 같은데 적응과정에서 겪은 에피소드를 물었다.

"일단 여기는 100만 명의 조합원이 있는 곳이고 오랜 시간 동안 체계와 관행이 있어 제가 익숙해지면 되더라고요. 예를 들어 뭘 하나 하더라도 공문이나 결재를 받거나 그런 것들이요. 그리고 예전에는 저를 보는 분들이 재현 동지 이렇게 불러주셨는데 여기에서는 노안부장 이렇게 불러주시니까 호칭에서 가장 큰 변화가 있는 것 같아요. 제가 부를 때도 호칭을 잘 못 부른다든가 그럴 때 민망할 때가 있었죠."

바쁜 일정으로 정신없겠지만 현장을 그 전보다 많이 만나면서 이것만은 내가 지키겠다고 생각하는 노안활동가가 잊지 말아야 할 중요한 덕목은 무엇이라 생각하는지 여쭤봤다.

"적어도 현장에서 일하다 아프거나 다쳤을 때 조합원은 노조에 알리고, 노조 간부들은 어떻게든 그 문제를 해결하려는 문화를 만드는 것 이것이 일단 중요하지 않을까 생각해요. 아프면 아프다고 말하고 그것에 대해 조직이 같이 고민하고 책임지고 모두 해결하지 못하더라도 산재승인 여부를 떠나서 그런 조직문화를 만드는 것, 그리고 사실은 현장조합원 300명 있는데 한두 명 전임한다고 해결될 수 있는 문제가 아니잖아요. 노안부장 혹은 노안활동가에게 전가하는 현장 분위기는 아니어야 하지 않을까 그래야 같이 고민하고 같이 집행하는 구조가 되잖아요. 적어도 우리 현장에서 누가 죽거나 다치면 안 된다는 것을 조직 전체가 공유하고 그렇게 하기 위한 문화와 시스템을 만들어가야 하지 않을까 해요.

3~4년 정도면 공부나 활동을 통해 조금씩 알아 가는데 그때 집행부가 바뀌잖아요. 그래서 노안활동은 적어도 10년은 해야 한다는 긴 호흡으로 갈 수 있고, 조합도 그렇게 길게 갈 수 있도록 보장하는 것이 필요할 것 같아요. 코로나19 때문에 더 안 되고 있는데 적어도 알 권리 보장 차원에서 안전보건교육은 꼭 해야 한다는 게 가장 중요한 사항이 아닐까 생각이 들어요."

향후 목표와 포부

중대재해기업처벌법 제정 운동본부 활동을 주로 하는 것으로 알고 있는데 코로나19로 인해 어려움이 많으실 거라 짐작되었다. 중대재해기업처벌법 제정은 현장이나 지역사회에서 필요성에 의해 준비하는 것을 아는데, 실제 현장의 요구는 어떠하고, 어떻게 조직하고 있는지 물었다.

"기업 살인법으로 시작해서 오랜 시간 요구해왔던 의제잖아요. 현장에서는 당연히 관심 있고, 건설노조의 경우 전태일3법 중 중대재해기업처벌법이 있으니까 적극적으로 받아 앉아 가자고 투쟁하고 있어요. 방식이 온라인 청원방식이잖아요. 건설노조는 9월 한 달간 모든 행사는 오프라인으로 하고, 이것을 진행한다고 하고 있어요. 21일대 국회 개원하면서 5~6월 농성 투쟁도 했고, 민주노총은 제정 원년으로 선포하고 코로나19로 어렵긴 하지만 반드시 하겠다는 의지를 가지고 전 조직이 가동되고 하반기 싸움을 준비하고 있어요.

전태일3법을 20만 명 조직해서 청원하는 것이 목표예요. 민주노총은 전태일3법 성공을 위해 실천단을 조직하고, 이들이 현장에서 20만 명을 조직하는 교육이나 총회, 집회를 통해서 입법 청원을 한다고 결의하고 선전 활동을 하고 있어요. 19대, 20대 국회에서 모두 발의를 했는데 국회 상임위에서 논의된 적이 단 한 번도 없어요. 10만 명을 모으는 게 쉽지 않지만, 국민적 여론이 있지 않으면 국회가 움직이지 않는다는 것을 목도해왔기 때문에 이번에 이런 방식을 선택하게 됐어요."

짧은 인터뷰 시간을 안타까워하며, 시민사회단체, 현장, 각 전문분야에서 활동하는 노안활동가에게 동지로서 하고 싶은 말씀을 부탁했다.

"현장을 많이 가보자. 특별한 것을 하지 않아도 현장을 보는 것 자체가 배우는 게 많아요.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건강권 활동에 대해 현장노동자들은 어떤 생각을 하는지, 현장 상황은 어떤지를 볼 수가 있어요. 건강권 현장 활동은 엄청난 정치적 문제잖아요. 자본 입장에서 안전보건활동은 규제고 귀찮은 것들이라 여기기 때문에 대립해야 하고, 현장에서 이런 것이 어떻게 작동되고 있는지를 읽을 수가 있고, 결국 안전보건활동이라는 것이 현장노동자적 관점에서 시작하는 것이고, 현장에서 벌어지고 있는 일들이 제도적으로 어떻게 바뀌어야 하는지를 확인할 수 있어서 현장에 가는 경험이 도움 되고 역량이 많이 쌓일 수 있어요.

조합원은 연구소 활동가라고 하면 다 알 것 같고, 질문하면 답을 바로 줄 거라는 눈빛을 해요. 부담스러울 때가 있어요. 금속사업장은 연구소에서 경험이 많으니 조금만 노력을 기하면 답을 드릴 수가 있어요. 이전 사례들도 있고. 다른 업종의 경우 현장이 어려우니 경험이나 자료가 부족한데, 그런 현장과 활동을 너무나 하고 싶고, 막상 가면 제도적 한계가 있고 이분들은 기대하는 경우는 어렵지만, 현장보고 조합원들과 대화하다 보면 이 활동하길 잘했다, 같이 바꾸고 싶다고 느끼면서 중요성을 인식하게 되지 않을까 생각해요."

[A-Z 다양한 노동이야기] 유예된 권리, 인턴의 ‘노동력’은 어떻게 활용되는가 - 인턴 노동자 A씨 인터뷰 / 2020. 09

[A-Z 다양한 노동이야기]

유예된 권리, 인턴의 ‘노동력’은 어떻게 활용되는가 - 인턴 노동자 A씨 인터뷰

지안 상임활동가

인턴/실습 노동 형태의 일자리는 저임금·불안정 형태의 열악한 노동을 양산하고 있다는 점에서 주목할 필요가 있다. 특히 인턴/실습 노동의 가장 큰 특징은 '교육'과 '경험'이라는 명목 아래 열악한 노동조건이 특수한 것으로 정당화된다는 것이다. 따라서 '교육/경험'이라는 명목으로 어떻게 '인턴'과 '실습생'들의 노동력이 활용되고 열악한 노동조건이 정당화되는지, 이 기제에 대해 비판할 필요가 있다.

인턴, 실습 노동은 각기 형태가 다른 만큼 여러 층위의 문제가 섞여 있다. 먼저 기업이 정식 채용 이전에 '인턴' 기간을 두는 방식에 대한 비판이 있다. 기업은 고용의 부담을 줄일 수 있도록 신입 직원을 '교육'의 명목으로 테스트하는 기간을 갖지만, 노동자에게 그 기간은 채용 확정 여부가 걸린 대단한 압박감이 된다. 한편, 인턴 일자리는 만성적인 인력 부족을 해결하기 위한 한 방편으로 값싼 노동력을 공급받는 방식이 되기도 한다. 인턴으로 채용했으나 업무 분장은 정규 직원과 다름없이 이루어져 과로에 시달리는 경우도 있었으며, 대학교 현장실습 경험을 통해서는 방학 기간 실습을 명목으로 무임·장시간 노동에 시달린 경험을 듣기도 했다.

A씨는 영상계열 전공을 했던 2010년대 초반부터, 대학 졸업을 한 최근까지 여러 기업의 인턴으로 근무했다. 짧게는 2~3달부터 길게는 7개월가량에 달하는 이력들은, 기업에 입사하기 위한 '스펙'이란 명목하에 저임금·불안정 노동을 감당해온 시간이다. 지난 8월 31일, 서울대입구역 근처에서 A씨를 만나 인턴 노동 당시의 경험을 들어보았다.

인턴 노동의 양산, 어떤 일자리가 만들어지고 있는가?

이번 인터뷰를 통해 주목한 지점은, 인턴 노동자가 임금/노동조건 상의 불평등뿐만 아니라, 일터라는 공간 안에서 관계의 불평등을 경험한다는 사실이다. 기본적으로 채용에 대한 기대감과 압박감을 가지고 인턴 일자리에 지원하는 노동자들은 일차적으로 불평등한 관계 속에서 일터를 경험하게 된다. 이런 관계 속에서 인턴 노동자들이 경험하는 일터란 어떤 공간일까? 이러한 경험으로부터 인턴을 단기간노동력으로 활용하고 있는 기업의 전략을 어떤 식으로 비판할 수 있을까?

-여러 인턴 일자리를 경험하셨는데, 주로 어떤 업무를 담당하셨는지 소개해주세요.
 "최근 졸업하기까지 언론사, 엔터테인먼트사 등 다양한 업계에서 짧게는 2~3달 길게는 7달 정도를 인턴으로 일해왔어요. 기업마다 담당한 업무는 달랐는데, 주로 언론사에서는 제보 접수, 사실관계 확인, 보도자료 취합 등을 통해 초벌 기사를 작성해 담당 기자에게 넘기는 일을 했어요. 다른 업계에서도 유사한 형태였는데 정직원들이 기획 업무를 할 수 있도록 제반 작업이나 자료조사, 아이디어 기획 등을 했어요. 예를 들어 최근 신간 소설을 읽고 요약 분석을 해 자료를 넘기는 식이죠."

-근데 설명하신 업무들을 보면 상당히 중요성이 있는 구체적인 업무들이네요.
"맞아요. 그런데 반대의 경우들도 있어요. 특별히 인턴을 채용해서 어떤 업무나 교육하겠다는 계획 없이 막연하게 정부 지원금이나 기업 이미지를 목적으로 인턴 공고를 내는 기업이 많아요. 그러면 출근해서도 의미 있는 업무를 하며 경험을 쌓는 게 아니라 무작정 대기하면서 업무를 기다리고 있어야 하는 거죠."

-인턴이라고 하더라도, 비용이나 인적 자원이 투여되는 일인데, 이런 식의 일자리를 기업에서 왜 만든다고 생각하시나요?
"인턴은 어차피 6개월 정도 출근하는 거고, 유튜브나 SNS 관리 등 정직원에게 시키고 싶지 않은 일들을 인턴에게 시킬 수 있는 명목이 생기는 거죠. 한 인턴이 일하다가 나가면, 다음 기수에 다른 인턴이 들어와요. 기업에서는 정규직 채용에서 가산점을 준다고 하지만, 그게 그렇게 의미 있는 점수는 아니에요. 심지어 어떤 대기업에서는 인턴 월급을 회사 포인트로 지급했어요. 그 회사 인턴 채용 공고에는 애초부터 임금이 아닌 '소정의 활동료'를 지급한다고 게재되어 있었어요. 인턴을 한 명의 노동자로 생각했다면 절대 할 수 없는 일이겠죠."

-인턴 노동이 흔히 '열정페이' '무급노동'으로 이어지는 한 가지 이유는 교육이나 경험, 경력의 일환이기 때문이라는 이야기들이 있어요. 이런 논리에 대해서는 어떻게 보시나요?
"노동이라는 개념이 아주 이상하게 잡혀있다고 생각해요. 반드시 어떤 결과물을 계속 내고 있어야만 '노동'이 되는 건 아니에요. 업무를 기획하거나 구상하는 단계, 사전 조사하는 단계도 충분히 노동하는 시간이라고 생각합니다. 교육에 필요한 시간이나 출근해서 책상 앞에 대기하고 있는 시간도 마찬가지예요. 경중을 따졌을 때 부차적인 '잡일'로 여겨지는 업무도 그렇고요. 인턴을 하러 가면, 첫 출근 날 책상 하나가 있어요. 그럼 앉아서 종일 대기하고 있는 거예요. 그럼 아무도 저를 찾지는 않지만, 누군가 인턴이 필요할 때, 필요한 곳에 있어야 한다는 생각으로 내내 긴장이 돼요. 8시간을 꼬박 그런 상태로 있다가 집에 오면 퇴근을 하자마자 곯아떨어질 정도로 긴장이 심했어요. 이렇게 업무에 대기하고 있는 시간을 노동이 아니라고 할 수 있을까요?"

-그럼 실무 경험이나 업에 대한 이해나 역량이 향상될만한 교육을 회사 차원에서 진행한 것이 있나요? 혹은 인턴들을 담당하는 직원이 따로 있다든지요.
"말씀하신 것처럼, 실무교육이라도 진행해야 최소한 인턴 기간은 교육/경험의 기간이니 임금이 낮거나 없어도 된다는 논리가 설득력이라도 있을 거예요. 제 경험상 인턴에게 교육이라고 할 만한 시간이 10%는 될까요? 하루 대부분은 눈치 익히기, 심기를 거스르지 않으면서 대기하는 거로 생각해요. 반대로 실무에 곧바로 투입하는 경우들은, 그 일에 필요한 체계적인 실무교육을 사전에 진행해야 한다고 생각해요. 그게 아니면 일을 주고 인턴 혼자 아이디어 구상해오고 알아서 해오라는 것밖에 되지 않아요."

-대부분의 일자리는 정규 노동시간 동안 진행된 거죠? 초과 노동이 발생하는 경우도 있었는지 궁금합니다.
"대부분 10시에서 7시까지가 정해진 업무 시간이었어요. 업계마다 차이가 있는데, 엄격한 마감 기한이 있는 언론사 같은 경우는 일이 못 끝나면 초과수당이나 이런 게 따로 없더라도 집에 가긴 어렵죠. 만약 주에 금요일이 마감일이라고 치면 최소한 2~3일 정도는 야근했던 것 같아요. 또 특이하게 언론사는 인턴 일자리가 24시간 운영되었어요. 방송국 스케줄 그대로 맞춰서요. 처음에는 낮에 일하다가 경력이 차고 나서는 심야 시간으로 옮겼어요. 야간에는 당직 기자들 뿐이라 훨씬 심적 부담이 덜하거든요."

-노동강도의 측면에서 인턴 일자리는 어떤가요.
"유튜브 매니지먼트에서 일하던 선배가 있어요. 지금은 과로로 너무 부담이 커 그만두었는데, 당시에 정식 채용 후에 3개월 인턴 생활을 거쳐 시험을 보고 정규직 전환이 되는 상황이었어요. 인턴 하는 동안 너무 극심한 노동강도 때문에 힘들어했어요. 3명이 한 주에 영상 2개를 업로드 해야 하는데, 그럼 촬영/편집 및 그래픽/미팅 작업이 각각 주에 2번씩 진행되어야 한다는 의미예요. 너무 작업량이 많다 보니 매일 자정에 퇴근해서 오전 6시에 첫차를 타고 출근했다고 해요. 일하는 방식도 편집해가면 자막 색깔, 배열 하나하나 지적을 당했는데 일을 한다는 느낌이 아니라 로봇처럼 입력을 받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해요. 과로로 신체 부담도 크고 탈모도 생겨서 결국 일을 그만두었어요."

유예된 노동, 유예된 권리

기업은 계속 사람을 바꿔가면서 '인턴' 형태로 필요한 노동력을 제공받고 있다. 하지만 새로운 노동자를 고용해 그가 업무에 적응하기 위한 교육이 필요하다면 그건 신입 노동자를 고용한 기업이 부담해야 하는 일이다. 그러나, 그 대신에 기업은 교육 기간을 명목으로 '인턴' 기간을 두거나, 특정 제반 업무를 수행하도록 하는 목적으로 인턴을 뽑아 저임금·불안정 노동력을 활용한다. 그런 과정에서 실제 인턴노동자들이 호소하는 정신적 압박감이나 일터 내 관계에서의 낮은 대우의 경험은 장기적으로 어떤 영향을 미칠까?

-말씀하신 내용 중에 '눈치 보였다' '심기' 같은 표현들이 눈에 띕니다. 아무래도 일터 내에서 인턴의 위치라는 게 불안정하고, 또 관계 내에서 취약하다 보니 주변의 눈치가 많이 보였나 봐요.
"인턴 일자리가 채용으로 이어질 수도 있다는 기대감 속에서 잘 보여야 한다는 생각이나 압박감이 있죠. 무슨 업무가 들어오면 빨리 잘 해내야겠다는 스트레스를 받기도 하고요. 설사 당장 처리하는 업무가 없더라도 가만히 있는 게 아니라 덜덜 떨고 있는 거예요. 점심시간이나 퇴근도 옆에서 말을 해줘야 움직일 수 있고요. 막막하고 초조한 시간이었죠."

-여러 명을 인턴으로 뽑고 있는데, 정규직 전환과 관련해서 경쟁해야 한다든지 이런 문제는 없었나요?
"저 같은 경우는 1곳을 제외하고 대부분 한 팀에 저 혼자 인턴으로 일한 경우였어요. 그래서 경쟁 관계에서 오는 스트레스보다는 혼자서 압박감을 오롯이 견뎌야 하는 분위기 속에 있었다는 게 가장 힘들었어요. 지인 중에 대기업 인턴으로 취직한 경우가 있었는데, 몇천 명이 지원해서 인적성 검사, 1차 시험, 면접을 거쳐 최종 2명을 뽑았어요. 그리고 그 두 인턴은 6주 동안 인턴 생활을 거쳐 정규 채용 여부를 결정하는 방식이었죠. 상관들도 "너희 둘 중 한 명만 될 거야. 둘 다 안될 수도 있어. 그러니 제대로 잘해야 돼"라고 했다고 해요. 저라면 정말 하루하루 숨이 막혔을 것 같아요. 결과적으로 그해에 정규직 채용은 하지 않았어요."

-인턴의 경우에는 대개 4대보험 가입을 안 하는 경우가 많아서, 일하다 다치거나 건강 문제가 생겨도 사회보험을 통해 보상받고 치료받기도 어려운데요.
"인턴은 대부분 4대 보험 가입은 되지 않고 원천징수세만 떼요. 그리고 만약에 일을 하거나 출퇴근 시 다치는 일이 생기더라도, 보험의 유무를 떠나서 회사에 말하기는 거의 어려운 구조예요. 저 역시 직접적인 경험은 없지만 만약에 다치거나 아픈 곳이 있어도 알아서 처리했을 것 같아요."

A씨와의 인터뷰를 통해 어떻게 인턴 노동자가 '노동'과 '노동이 아닌 것'의 경계 속에서 일터의 불평등을 경험하고 있는지 들어볼 수 있었다. 특히 이 기간을 상당한 정신적 압박감 속에서 보내고 있다는 점이 이번 인터뷰의 중요한 주제였다. 인턴 일자리를 계속해서 채우는 노동력과 이 시스템을 악용하는 기업은, 실재하는 노동을 노동이 아닌 것으로 만듦으로써 노동자의 권리 또한 유예시키고 있다. 이 유예된 권리의 경험은 이후의 일경험에서 어떤 영향을 미칠까? 이런 고민의 지점들이 단기적인 일자리에서도 '노동자의 권리'가 보장되어야 하는 중요한 이유일 것이다.

[동아시아 과로사통신] 배달의 나라, 택배노동자의 과로사 / 2020.09

[동아시아 과로사통신]

배달의 나라, 택배노동자의 과로사

최민 상임활동가

8월 13일 열린 "택배노동자 과로사 대책 외면하는 노동부 규탄 기자회견"

한국은 유명한 '배달의 나라'이다. 한국의 택배 시장은 이미 2018년 5조 6600억 원, 2019년 6조 1400억 원 규모였다. 게다가 코로나19 이후, 외출이 줄어들고 비대면, 비접촉 판매가 선호되면서, 온라인 플랫폼 기반의 음식 배달 서비스나 전통적인 '택배' 시장 모두 급격한 성장세를 보인다. CJ 대한통운과 롯데택배, 한진택배 등 한국의 대표적인 재벌 택배 회사들의 2020년 1분기 매출과 영업이익은 모두 크게 증가했다. 택배 회사 호황의 그늘에는 택배노동자들의 과로가 있다. 택배노동자들은 2020년 상반기 동안 최소 12명이 과로사한 것으로 추정된다. 근로복지공단의 '택배업 산업재해 현황'에 따르면, 올해 1~6월 업무상 사망한 택배노동자 9명 중 7명이 과로에 따른 뇌심혈관계 질환으로 숨졌다.

그런데 정부 공식 통계는 택배노동자의 과로사를 정확히 반영하지 못한다. 올해 5월 기준 택배업 등록종사자 1만 8792명 중 1만 1348명은 산업재해보상보험에 가입돼 있지 않다. 택배노동자는 근로기준법상의 노동자가 아니라서 산재보험에 당연 가입 대상이 아니다. 특수형태근로종사자에 대한 특례에 따라 산재보험에 가입할 수 있지만, 비용을 사용자와 노동자가 절반씩 부담하고, 가입을 거부할 수도 있어, 실제로 산재보험 가입률이 이렇게 낮다. 8월 11일 택배노동자 과로사 대책위원회가 밝힌 과로사 사례 5건은 모두 공단 통계에 포함되지 않았다. 그래서 공식 자료와 대책위가 파악한 내용을 합쳐, 올해 상반기에만 최소 12명의 택배노동자가 과로로 사망한 것으로 보인다.

근로기준법상 노동자가 아니기 때문에 택배노동자들은 근로기준법의 노동시간 제한(주 40시간, 연장을 포함하여 52시간)을 적용받지 못한다. 1주 평균 1회 이상의 유급휴일도 보장받지 못한다. 배달한 물량만큼 받는 수수료는 십수 년째 동결이어서 '자발적으로' 장시간 노동을 선택하게 된다. 2018년 한 연구에서는 택배노동자들이 하루평균 12.7시간, 월평균 25.6일을 일하는 것으로 나타나기도 했다. 
이렇게 과로에 시달리던 택배노동자들은 노동조합을 결성한 이후, 계속해서 모두 함께 쉬는 날을 요구해 왔다. 택배노동자들의 계속된 투쟁과 최근 과로사에 대한 사회적 관심 증가, 코로나19 유행으로 더욱 격화된 택배노동자 과로 등이 배경이 되어, 한국에서 택배산업이 시작된 지 28년 만에 처음으로 지난 8월 14일이 '택배 없는 날'이 되었다. 이어진 주말과 연휴로, 많은 택배노동자가 사흘간 휴가를 보낼 수 있었다. 

8월 14일 노동조합은 성명을 통해 이번 '휴가' 덕에 8년 만에 처음으로 가족여행을 간다, 이번 기회에 아픈 곳을 치료하기 위해 병원을 다녀오겠다, 아이가 아파도 병원을 데려가지 못했는데 아이와 함께 병원을 다녀오겠다는 등 다양한 택배노동자들의 소식을 전했다. 평소 택배노동자들이 얼마나 제대로 쉬지 못하고 일하고 있는지 드러나는 장면이다. '택배 없는 날'과 같은 이벤트만으로 택배노동자의 과로 문제에 접근해서는 안 된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이기도 하다. 

이에 정부도 나서는 듯했다. 고용노동부는 한국통합물류협회, 주요 택배사와 함께 '택배 종사자의 휴식 보장을 위한 공동의 노력 사항'을 발표했다. 이 선언에는, 매년 8월 14일을 "택배 쉬는 날"로 정하고, 택배노동자의 충분한 휴식 시간을 보장하기 위해 심야까지 배송을 하지 않도록 노력한다는 내용이 있다. 또 택배노동자가 질병, 경조사 등의 사유가 있는 경우에는 쉴 수 있도록 적극 지원하고, 앞으로 택배노동자들의 건강을 보호하기 위해 노력한다는 내용을 포함하고 있다.

하지만 이 선언에 대해 택배노동자들은 답답함과 분노를 표했다. 전국택배연대노동조합은 8월 13일 기자회견을 열고, 이를 강력하게 비판했다. 사실상 이 합의문에는 재벌택배사들이 부담을 느끼거나, 재정을 투입해야 할 조항이 단 하나도 없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택배노동자들은 과로를 줄이기 위해 '분류 작업 인력 투입'을 주장해왔다. 현재 택배노동자 대부분은 아침 일찍 출근해 3~4시간 동안 당일 배달할 물건을 직접 분류한 뒤, 배송 업무를 시작한다. 이 분류 작업은 사실상 무료 노동이다. 이를 전담할 분류 담당 노동자가 있으면, 택배노동자의 노동시간을 매일 2~3시간은 줄일 수 있다. 이런 구체적이고 현실적인 내용은 선언에 전혀 담기지 않았다. 노동조합은 단기적으로 코로나19 확산이 끝날 때까지만이라도 분류작업을 담당할 인력을 투입하라고 요구하고 있다. 

 택배노동자들의 요구로 8월 14일이 택배없는 날로 지정되었다. 출처: 전국택배연대노동조합


노동조합은 택배노동자의 쉴 권리 보장 역시 공허한 선언에 불과하다고 지적한다. 택배노동자가 필요할 때 쉬기 위해서는 직영 기사를 확충하거나, 대리점 간 연합형태로 상시로 대체 기사를 운용하는 등 실질적인 대체 인력이 필요하다. 그러나 이번 선언에서 택배사들은 이런 구체적인 쉴 권리 보장 방안에 대해 전혀 언급하지 않았다. 택배노동자들이 과도한 물량을 소화하도록 만드는 낮은 수수료 역시 마찬가지다. 택배 박스당 평균 단가는 2000년 3500원에서 2018년 2229원까지 꾸준히 낮아졌다. 택배업체 간 경쟁 심화 때문에 운송 단가가 낮아지면서, 택배노동자의 수수료도 낮아졌다. 급여 대신 수수료로 수입을 얻는 대다수 택배노동자는 소득을 보전하기 위해, 점점 더 많은 물량을 배송해야 하고, 장시간 노동을 할 수밖에 없다. 적정 수수료 보장이 과로를 방지하기 위해 꼭 필요한 이유다. 

정부나 택배업계의 생색내기식 선언만으로 택배노동자들의 연이은 죽음을 막을 수 없다. 지난 8월 16일에도 혼자 물류 터미널에서 청소하던 택배노동자가 사망했다. 택배 산업이 더는 택배노동자의 희생을 거름 삼아 성장하지 않도록, 구체적이고 실질적인 조치들이 이어져야 한다. 답은 이미 나와 있다.

[현장의 목소리] 여성 프리랜서·플랫폼 노동자와 불안정 노동 - 웹소설 작가 A씨, 전 여행업 인솔자 B씨 인터뷰 / 2020. 09

[현장의 목소리]

여성 프리랜서·플랫폼 노동자와 불안정 노동 - 웹소설 작가 A씨, 전 여행업 인솔자 B씨 인터뷰

지안 상임활동가

코로나19 이후 노동의 위기는 비정규직, 그중에서도 프리랜서 노동자들에게 더욱 집중됐다. 서비스·돌봄·여행업 등 대면이 필수적인 특정 업종의 일자리들이 사라졌고, 그런 일자리들을 지탱하고 있던 프리랜서들은 해고도 아닌 방식으로 실직을 하고 있는 상황이다. 특히 이런 업종에서는 주로 여성 노동자들이 일하고 있었다는 점에서 이 문제를 '여성 노동'의 맥락으로 읽어낼 수 있을 것이다. 왜 이런 업종들에 주로 여성이 고용되어 있었으며, 이들이 고용된 일자리의 형태는 불안정했을까. 전 사회가 코로나19를 경험하면서, 사회적 재난이 사회보험 체계에서 배제된 노동자, 그리고 불안정 노동자에게 얼마나 불평등하게 집중되는지 목도하고 있는 시점이다. 즉 이런 일자리에 대한 근본적인 질문과 변화가 필요하다.

꾸준히 일해왔으나 '노동자'가 아닌 사람들, 프리랜서 노동자의 인터뷰를 담았다. 한 축으로는 두 프리랜서 노동자가 코로나19 이후를 어떻게 보내고 있는지도 주요하게 물었다. 여행업 종사자였던 B씨의 경우에는 코로나19의 확산 초기부터 무급휴직에 들어갔고, 그동안 저축한 자금과 특수고용노동자에 대한 한시적 정부지원금으로 버티다 현재는 전혀 다른 분야로 이직한 상황이었다. 한편 웹소설 작가인 A씨의 경우에는 코로나19 이후 온라인으로 수업을 받는 두 자녀를 돌보는 데 필요한 시간이 급증했다. 결국, 일과 가사를 병행하며 총 노동시간이 증가했고, 그만큼 정신적 스트레스와 더딘 작업으로 인한 수입 감소를 우려하는 상황이다. 여성의 노동, 또는 여성의 노동시간은 코로나19 이후 어떻게 변화했을까.

출처: 전국여성노조 디지털콘텐츠창작 노동자지회


'프리랜서' 자유로운 일의 형태?

- 먼저 두 분이 하는 일을 소개해주세요. A씨 같은 경우는 전국여성노조 산하 '디지털콘텐츠지회' 소속 조합원이기도 한데요. 가입 계기도 궁금합니다.

A(웹소설 작가): 저는 5년차 웹소설 작가입니다. 처음으로 도전한 소설이 정식 출간으로 이어진 후로 웹소설 작가를 업으로 삼게 됐어요. 노조에 가입하게 된 배경은, 웹진/웹소설 플랫폼 기업에서 일방적으로 몇몇 웹소설 서비스를 중단하면서 관련된 대응 활동을 시작했고, 그것이 노조 결성과 가입, 활동으로 이어졌어요.

B(전 여행업 인솔자): 저는 코로나19 이전까지 여행 인솔자로, 2년간 일했습니다. 많은 분들이 '가이드'라는 직업은 익숙할 것 같아요. 인솔자는 패키지 상품 형태의 여행에 동행해서 가이드가 담당하는 업무 외 고객들의 각종 요구사항이나 불편사항을 해결해주는 역할을 해요. 저는 주로 스페인 등 남유럽 국가들을 담당했어요.

- '프리랜서' 노동을 보통 시간 운용이 자유로울 것이라고 생각해요. 실제로 노동의 측면에서는 노동시간이 불규칙하다는 특성도 있을 것 같고요. 그런 측면에서 어떻게 일해 오셨는지 소개를 해주실 수 있을까요.

B씨: 인솔자가 담당하는 역할은 출국 전부터 시작됩니다. 함께 동행할 고객들에게 주의사항과 안내 연락을 돌리죠. 출발 당일 공항에서 첫 미팅을 가진 후 탑승부터 시작해 전 스케줄을 동행하고 귀국 후 공항에서 헤어지는 일정이죠. 물론 경우에 따라서 여행이 끝나고 나서 발생하는 민원을 담당해 대응하기도 해요.

제 근무 스케줄을 놓고 보면 한 달에 9박 10일 정도의 비행을 2번 정도 나가고, 일정 사이에 3~4일 정도의 휴식기간이 있어요. 쉬는 날도 많다고 생각하실 수 있겠지만, 일하는 기간 동안에는 비행 중에도, 자다가도 민원이 발생하면 해결해야 하죠. 보통 오전 7시 정도부터 오후 9시까지 여행 스케줄이 이어지는데요. 9시 이후는 각자 숙소에서 휴식을 취한다고 해도 어떤 이슈가 생기면 바로 대응해야 해요. 한번은 고객이 새로운 객실을 달라고 해서 제 숙소를 사용하라 하고 로비에서 잔 적도 있어요. 여행 일정 동안은 사실상 퇴근이 없다고 할 수 있을 것 같네요.

A씨: 저 같은 경우는 작품이 매주 월요일 마감이었는데, 1만 4천 자 정도의 분량이었어요. 거기에 휴재할 경우를 대비하여 비축분량도 마련해야 했고요. 일주일에 5일을 작업한다고 치면 하루에 무조건 5천 자 분량의 완성도 있는 글을 써내야 하는 거죠. 마감일 최소 2일 전에는 항상 밤샜던 것 같아요. 저는 당시 미취학 자녀가 있었는데, 거의 주말에 함께 있어주질 못했죠.

- 상당히 장시간을 일하시는 것 같아요. 거기다 웹소설 작가의 경우에는 마감 기간, 인솔자의 경우에는 여행 일정이라는 기간 내에 상당히 긴 노동시간을 소화해야 할 것 같은데요. 관련해서 경험하신 건강 문제들도 있었나요?

B씨: 남유럽 국가들이 보통, 스페인을 예로 들자면 비행시간만 13시간이 걸리고, 경유지를 거칠 경우에는 대기 시간까지 포함해 총 18시간이 걸려요. 한 달에 평균 2번 비행을 나간다고 치면, 편도로 4번을 비행하는 셈이죠. 비행기에서 문득 자다 일어나면 여기가 한국행인지 스페인행인지 헷갈린다고 하는 인솔자들이 많을 정도였어요. 뿐만 아니라 여행 기간 동안은 전용 버스를 타고 이동하는 시간이 하루 대부분이에요. 허리 등 근골격계질환 문제는 특히 취약할 수밖에 없죠.

A씨: 작가들의 경우에는 모이면 가장 많이 하는 이야기가 어느 병원이 좋냐는 거예요. (웃음) 대부분 포털사이트에 올라가는 웹소설의 1회 분량이 5천 자 정도예요. 또 보통 일주일에 3번에서 많은 경우 5번까지 웹소설이 업로드되길 원하죠. 작업량이 너무 많아요. 하루 종일 앉아서 타자를 치고 있으니 손목이나 손가락 관절, 허리디스크는 정말 흔한 질환이예요.

- 이렇게 장시간을 일하는데 고용형태가 매우 불안정하다는 점은 흔히 '프리랜서'라고 하는 용역계약 형태의 가장 큰 문제점이기도 한데요.

A씨: 보다 근본적으로는 레진코믹스가 일방적으로 연재중단 결정을 통보했던 사건처럼 하루아침에 일 자체가 사라질 수도 있어요. 아무런 고지 없이 작가들이 하루아침에 생계가 막막해진 상황이 발생했던 거죠. 저는 개인적으로 플랫폼의 '사과' 한마디만을 원했는데 끝까지 사과는 없었어요. 노동청이나 국회의원실을 찾아가도 노동자가 아니라 해결하기 어렵다는 답변이 오더군요.

B씨: 가장 우선적으로는 한 달에 9박 10일에 달하는 일정을 평균 2번씩 진행하는데, 이걸 마냥 프리랜서라고 볼 수 있을까요. 또 프리랜서로 일하는 인솔자들은 여행사 소속 인솔자로 일하는 경우와 급여가 거의 2배 차이가 나요. 임금뿐 아니라 일하다 보면 부당 대우도 워낙 많이 겪고요. 본사 소속 가이드에게 현지에서 성희롱을 당하거나 하는 경우들이 있는데, 회사에 이야기하면 그냥 해당 가이드를 다른 팀으로 옮기면 된다는 생각이에요.

- 불안정한 고용뿐 아니라 회사와의 관계, 또는 회사 내 동료와의 관계에서도 불평등을 경험하신다는 거군요.

B씨: 맞아요. 고객과의 관계에서도 마찬가지고요. 고객에 의한 민원이 3회 이상 접수되면 차후 계약에 지장이 있는 조항이 있어요. 그래서 많은 인솔자가 혹시라도 다음 일감을 못 받을까봐 고객이 너무 과도한 요구를 하거나 성희롱을 하거나, 무시하는 태도를 보여도 꾹 참을 수밖에 없죠.

A씨: 플랫폼과 작가의 관계도 마찬가지로 플랫폼이 홍보나 노출 지면 등 일방적인 권한을 가지고 있기에 매출에 대한 수수료 비율뿐 아니라 여러 측면에서 우위를 가지고 있죠. 레진코믹스에서 문제가 되었던 '지각비' 같은 경우가 대표적이죠. 플랫폼에서 메인에 노출해줄테니 정해진 수수료보다 더 많은 수수료를 요구하는 경우도 있고요. 다른 플랫폼에 일정기간 동안 출간되지 못하게 요구하는 경우도 꽤 있어요.

여성노동자는 코로나19 이후를 어떻게 경험하고 있나 

- 특히 코로나19 이후 프리랜서 노동자들의 불안정 노동이 조명되고 있어요. 두 분은 이 시기를 어떻게 겪고 있으신가요.

B씨: 코로나19 확산 초기에는 사무실에서 계속 재근무를 한다고 문자가 왔어요. 그래서 금방 상황이 종결될 거라고 생각했지, 이렇게 장기화될 거라곤 생각 못 했죠. 모아둔 여유자금으로 몇 달을 생활하다 급하게 이직을 했어요.

A씨: 웹소설이라는 업계는 코로나19의 영향이 없을 수 있겠지만, 아이를 양육하는 입장에서 코로나19 이후에 정말 돌봄 시간이 많이 증가했어요. 그만큼 작업이 늦어지고, 늦어지니 인세가 안 들어오고. 하루하루 버티고 있다는 것 뿐입니다.

- 여행업 인솔자 같은 경우는 워낙 이동이 많아서 안전사고도 잦을 것 같은데, '프리랜서'들은 사회보험 체계에서 배제되어 있어요. 그건 웹소설 작가들도 마찬가지이고요. 고용보험이 있었다면 B씨처럼 일감이 끊긴 노동자들이나, 레진코믹스 사태에서 잘린 작가들이 일단 실업급여라도 신청할 수 있었을 거예요. 말씀하신 건강 문제들의 경우도 산재보험을 통해 치료를 받을 수 있을 거고요. 이런 문제에 대해서는 어떻게 보고 계신가요? 

B씨: 이전에 이탈리아에서 이동 중 교통사고를 당한 인솔자가 있다고 들었어요. 여행 기간 중 다치거나 몸이 아픈 경우에는 일정에서 빠져서 알아서 병원에 가서 치료를 받아야 해요. 물론 숙소나 비용은 자부담해야죠. 일하다 사고를 당하신 분도 자비로 타지에서 치료를 받아야 했고요. 현재로써는 해외에서 일하다가 다쳤더라도 회사에 얘기하지 못할 거예요. 오히려 일감이 끊길 수도 있으니까요.

특히 고객들 같은 경우에는 1만 5천 원 정도 하는 여행자 보험에 가입하지만, 인솔자들은 그마저도 없어요. 회사에서 따로 비용이 나오지 않는 부분도 있지만, 보험사에서도 인솔자는 여행객이 아니라고 보기 때문에 받아주지 않아요. 무보험으로 한달에 대부분을 타지에서 일하고 있는 거죠. 인솔자들은 이걸 알고 있기 때문에 일단 최대한 스스로 조심하려고 하죠. 이번 코로나19의 경우에도 제가 저축해둔 여유자금이 없었다면 몇 달 버티기도 어려웠을 거예요. 특히 부양가족이 있는 경우는 더 심각한 상황일 것이고요. 프리랜서 노동자들의 안전망이 필요합니다.

A씨: 최근 고용보험 개정안에 특례로 포함된 '예술인'에 웹소설 작가는 해당 안 된다고 해요. 고용보험의 보편적인 적용이 필요해요. 프리랜서 형태로 일하는 예술인들이 생계 위협 없이 일할 수 있도록 개선이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이번 인터뷰를 통해 코로나19를 두 명의 여성 노동자가 어떻게 경험하고 있는지 들어보았다. 정기적으로 일해왔으나 '프리랜서'라는 노동의 형태로 인해 아무런 보장 없이 실직했다는 B씨의 경험은 왜 모든 노동자에게 사회보험의 권리가 주어져야 하는지를 알 수 있게 한다. A씨의 경우는 재택근무를 하는 여성 노동자들의 증가된 노동시간, 임금 노동을 하는 시간 외에도 육아·돌봄·가사와 같은 것들이 포함된 '총 노동시간'과 같은 것을 사회적으로 고민해야할 필요성을 던진다.

이런 상황에서 현재 '프리랜서'라는 불안정한 노동 형태와 '여성 노동자'가 경험하는 노동과정의 어려움, 배제를 고민하기 위해 필요한 논의는 충분히 이루어지고 있는 걸까? 새로운 질문과 전환이 필요한 시기다.

[문화로 읽는 노동] 로봇이 간병을 한다면?! - 시네마틱드라마 <간호중>이 던지는 돌봄 노동의 미래 이미지 / 2020. 09

[문화로 읽는 노동]

로봇이 간병을 한다면?! - 시네마틱드라마 <간호중>이 던지는 돌봄 노동의 미래 이미지

김성윤 문화사회연구소 연구원

출처: MBC 시네마틱드라마 SF8 - 간호중 스틸컷

근미래의 대한민국. 오늘날 누구나 예상하고 있는 것처럼 그곳에서는 로봇이 인간의 노동을 대신하고 있다. 그것도 돌봄 노동을 말이다. 로봇이 만족할 만한 수준의 돌봄 노동을 할 수 있는가에 관한 문제는 여전히 논쟁적이긴 하지만, 1999년작 <바이센테니얼 맨>으로부터 시작해서 원제 <Her>로 더 잘 알려진 최근의 <그녀>(2013)에 이르기까지 로봇이 인간의 신체를 어르고 감정을 매만질 수 있다는 상상력은 꾸준히 제기되고 있다.

영상 콘텐츠 플랫폼 웨이브에서 스트리밍하고 MBC를 통해 방영되기도 한 <에스에프 에잇>(SF8, 2020)의 첫 번째 이야기, <간호중>도 바로 이런 맥락을 담고 있다. 이 시네마틱 드라마의 기저에 깔린 질문은 매우 극단적이고 그런 점에서 또한 급진적이다. 식물인간 환자의 보호자가 생활고에 지쳐 극단적 선택을 하려 할 때 돌봄 로봇은 선택의 기로 위에 놓인다. 환자를 살릴 것인가, 보호자를 살릴 것인가. 이 질문을 짧게 번역하자면 이런 것이다. 생명의 존엄을 지킬 것인가, 차안의 고통으로부터 해방할 것인가.

돌봄노동의 디스토피아

돌봄이라는 사회적 행위는 우리 인간을 끝없이 시험 들게 한다. 사실 돌봄이 노동이 됐다는 것은 극적인 측면이 없지 않다. 가사 및 육아와 더불어 친밀성의 행위가 임금노동이 된다는 것은 보기에 따라 거부감이 들 수도 있기 때문이다. 실제로 자본주의적 관계 바깥에 있을 것으로 기대되는 행위가 자본주의의 대표적 상품인 노동으로 변환된다는 것은 서글픈 일처럼 보이기도 한다(또 하나의 상투어가 되고 있는 예술 노동이란 말에서도 마찬가지의 흔적을 찾을 수 있다).

하지만 돌봄과 노동의 연결을 마냥 거부하기도 어렵다. 돌봄의 수행은 오랫동안 불평등의 지표로 자리를 잡아왔었다. 특히나 누군가는 공적 세계에서 노동의 사회적 가치를 인정받으며 자아실현과 임금노동의 아슬아슬한 평형감각을 발휘할 기회를 얻고 있는 동안, 다른 누군가는 현모와 양처라는 상징적 보상 외에는 아무런 대가 없이 돌봄의 독박을 쓰면서 자기 자신을 희생해야 했다. 더군다나 오늘날처럼 성차에 관계없이 누구나가 평등한 개인이라는 이상이 그 어느 때보다 강하게 통용되는 세상에서, 현대인의 적정한 사회적 삶의 유지를 위해 돌봄이라는 행위는 개인 또는 가족의 구매력 수준에 따라 얼마든지 외주화가 가능한 세상이 되기도 했다.

<간호중>은 돌봄 노동에 대한 미래 이미지를 구현하는 것임과 동시에 현재적 상황에 대한 철저한 은유이기까지 하다. 도시 곳곳에 요양 병원이 줄 서 있는 풍경은 우리가 살고 있는 사회적 상태에 대한 초점화인 셈이다. 우리는 이렇게 미래를 보는 구슬로부터 현재와 맞닥뜨린다. 섬뜩한 감정까지 자아내는 이 장면은 현실의 현재와 영화의 미래를 이어주는 가장 중요한 영상적 장치이기도 하다. 이미 우리는 노부모에 대한 가족 간병이 사실상 불가능한 세계에 살고 있지 않은가. 효심이라는 오랜 가치를 통해 어떻게든 버티며 스스로를 돌봄의 주체로 갈아넣을 수도 있지만, 이런 선택은 부득불 불만족스러울 수밖에 없다. 누군가는 요양 보호에 대한 자신의 전문성 부족에 가슴 아플 것이고, 누군가는 다른 삶에 대한 기회를 버리고 있는 것에 아파할 것이며, 또 누군가는 환자와의 소통불가능성 때문에 지쳐 감정 조절조차 불가능한 상황에 빠질 수도 있다. 우리가 맞이할 디스토피아는 이와 같은 불행들이 켜켜이 쌓인 풍경과 다를 바 없다.

위주화되는 돌봄노동

간병을 비롯한 돌봄 노동이 외주화되는 것은 현대인들이 자신의 정상적 삶을 유지하기 위한 거의 유일한 출구일 수밖에 없다. 가족을 돌보는 것과 나의 삶을 유지하는 것 그리고 어쩌면은 상해의 충동에 빠지지 않는 것. 이런저런 조건들을 충족하기 위해 우리가 취할 수 있는 합리적인 선택은 지극히 제한적이기 마련이다. 돌봄의 외주화. 그런데 이렇게 하면 환자가 느낄 불안감과 고립감은 또 어떻게 해야 하는 걸까. 물론 기술이 발전한다면 내가 아닌 남이 가족을 돌보더라도 가족적 친밀성의 유지 강화는 보충될 수 있을지 모른다. <간호중>은 간병 로봇이 보호자 얼굴의 외피를 씀으로써 보호자로부터 버림받을 수 있다는 환자의 공포, 나아가서는 환자 가족에 대한 보호자의 도덕적 죄책감이 유예될 수도 있다는 흥미로운 상상력을 제시한다.

하지만 이런 문제해결 방식을 극단으로 밀어붙인다 한들 끝내 회피할 수 없는 문제가 다가오게 된다. 간병노동자를 통해서든 또는 가장 완벽한 로봇을 통해서든 돌봄의 외주화가 근본적인 해법이 될 수는 없기 때문이다. <간호중>은 어쩌면 가장 우울한 시나리오를 제시하는 셈인데, 근미래의 대한민국에서 어떤 보호자들은 뛰어나고 사려깊은 고급형로봇을 구매할 수 있지만 다른 보호자들은 어쩔 수 없이 기본 기능만 갖춘 보급형로봇밖에는 구매할 수가 없다. 별다른 이유는 없다. 보호자의 금전 능력이 그 차이를 가져올 뿐이다. 우리는 환자 가족이 느낄, 또는 보호자 당사자가 느낄 서비스 편차와 상대적 박탈감을 어떻게 견딜 수 있을까.

증발된 돌봄 노동의 온기

다른 하나의 문제는, 이것은 좀 더 근본적이기까지 한데, 아무리 그럴 듯하게 돌봄을 외주화하더라도 보호자 자신은 사회적으로 요구되는 효심은 물론이거니와 가족적 우애를 성취할 수 없다는 데 있다. 환자와 가장 밀접한 이는 어차피 간병 로봇이 아니겠는가. 혈연 가족에 관한 신화가 유지되는 한 돌봄을 독박 쓰거나 외주화함으로써 얻을 수 있는 이상적 가족 상황이라는 것은 궁극적으로 불가능하다는 뜻이다. 게다가 그런 상황에서 주인공 연정인처럼 생활고까지 겹쳐 더 이상 고급형 로봇을 사용할 수 없고 봉양의 의무를 충실히 수행할 수 없게 된다면? 답은 뻔하다. 우리 인간은 더 이상 온전한 의미에서 사회적 존재로서의 삶을 유지할 수가 없다.

여기서 극단적 선택을 고민하는 연정인을 보면서 간병 로봇 간호중은 또 다른 고민에 빠지게 된다. 사실 합리적 선택이라는 기준에서 본다면, 즉 환자와 보호자 사이에서 최대 행복을 추구해야 한다면 사실 살려야 하는 존재는 환자가 아니라 보호자가 아닐까라고 말이다. 이 지점에 이르게 되면 <간호중>은 단순한 SF를 넘어 한편의 사이코 드라마로 읽히기까지 한다. 실제로 감독 민규영이 로봇 간호중과 보호자 연정인을 배우 이유영의 12역으로 연출한 것도 바로 이런 측면을 내포한다. 극단적 선택과 합리적 선택이라는 두 가지 내적 고민이 일종의 거울 이미지처럼 외화되어 나타나는 장치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여기에 더해 수녀 사비나가 생명 존엄성에 위협이 되는 간호중을 처단하고자 할 때면 마치 초자아가 작동해서 패륜에 가까워가는 우리의 행위를 차단하고 심판하려는 것 같기도 하다. 물론 그것이 패륜일지 아니면 합리적 선택일지는 불분명하다. 수녀에게 결박되어 포효하는 간호중의 외침은 어떤 식의 판단도 최선일 수 없다는 현재의 상황을 떠올리게끔 하기 때문이다. 간호중은 내지른다. “위선자, 알량한 자기 양심의 무게를 덜기 위해서 도움을 거부해?”

돌봄노동의 미래가 제기하는 질문

여느 로봇물처럼 이 작품 역시 인간성이란 무엇인가에 대한 질문과 관계되어 있다. 흔한 말처럼 우리는 인간은 가축화되고 동물이나 사물은 인간처럼 취급되는 세상, 나아가 인간이야말로 비인간적이고 로봇이 오히려 인간적일 수 있는 세상으로 들어가고 있는 것 같다. 인간다운 삶이란 대체 어떤 것일까? 이에 대한 답을 구한다는 것은 늘 어려운 일일 수밖에 없다. 다만 확실한 것은 <간호중>이 이와 같은 내면적 갈등에 대한 형상적 외화이자, 우리가 현재 직면하는 곤란들에 대한 일종의 은유적 시도라는 점이다.

이렇게 불행이 다가오는 순간들에 맞서, 우리들 중 대다수는 알량한자기기만으로 내면의 목소리 중 몇몇을 억압하면서 위태위태하게 현재와 미래를 버텨나갈지도 모른다. ‘나는 효부, 효자, 효녀니까 버틸 수 있어!’라든가, ‘나의 행복이 부모의 행복이니까 날 이해해주실 수 있을 거야!’라든가, 그것도 아니면 긴 병에 효자 없으니 어쩔 수 없는 거야라든가. 물론 콘텐츠 바깥의 실제 세계에서는 전혀 다른 선택지가 있을 수도 있긴 하다(가령 사회적으로 여전히 논의가 부족한 돌봄의 사회화 같은 것들). 그렇지만 작품은 돌봄 노동의 독박과 외주화라는 양자택일적 선택지를 통해 이야기의 산만함을 줄이고 인간적 삶의 아이러니를 조명하는 데 집중했다. 어쩌면 그것만으로도 충분할지 모른다. 어떤 선택의 정당성도 부정하는 <간호중>은 진정으로 취해야 할 선택은 선택지 바깥에 있다는 점을 역설하는 작품으로도 볼 수 있기 때문이다.

[일터 정신질환 짚어보기] 직장내 자살 위험을 낮추기 위한 지침/사례 / 2020. 09

[일터 정신질환 짚어보기]

직장내 자살 위험을 낮추기 위한 지침/사례

장향미 노동시간센터 연구위원

직장내 자살

국내 통계청 자료에 따르면 2017년 전체 자살 사망자수는 12,463명이다. 이중 15~64세 생산인구 연령대의 자살사망자수는 9,053명이며, 이들 중 직업이 있는 자살사망자수는 4,231명으로 약 47%를 차지한다. 한국은 직장내 자살을 다룬 공식 통계수치가 아직 없다. 다만 전체 자살 사망자의 73%가 생산인구이며 이들 중 약 절반 가까이 직업을 가지고 있음을 보여주는 통계 수치는 자살의 주요 원인 중 하나로 직장내 문제가 있을 수 있음을 미루어 짐작하게 한다.

직장내 자살 문제는 비단 한국만의 문제는 아니다. 올해 초 발표한 미국 노동국 통계자료에 따르면 2018년 직장내 자살 사망자수는 304명으로 전년보다 11% 증가하였으며 지난 26년간 가장 높은 수치를 기록하였다. 자살은 미국의 사망 원인 중 10번째 요인이다. 또한 영국에서는 아직까지 정부차원에서 공식적인 직장내 자살 자살통계수치는 집계 관리되지 않고 있지만 통계청 자료에 따르면, 2018년 영국에서 6,507명이 자살로 보고되었는데, 인구 10만명당 자살인구 11.2명에 해당하는 것으로 전년대비 11.8%가 증가하였고 2002년 이래 최고치를 기록하였다.

개개인의 자살의 원인은 복잡하지만 소중한 생명의 손실일 뿐만 아니라 커다란 사회적 손실이며 이를 막기 위한 즉각적인 행동에 나설 필요가 있다. 자살로 인한 죽음은 모두에게 비극이다. 본인 자신과 그들의 사랑하는 가족들에게, 그들의 동료들에게, 그리고 사회 전체에. 자살은 우리 모두의 일이다.

직장내 자살 위험 예방을 위한 조치

영국 정부는 우선적인 자살예방을 위해 정신건강 5개년 계획을 수립하여 2020/21년까지 자살률을 10% 낮추는 목표를 세웠다. 또한 이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보건 전문가들뿐만 아니라 전체사회의 광범위하고 조직화 된 노력이 필요하다고 보았다. 이러한 정책 기조의 연장선 위에 직장내 자살 위험을 예방하기 위한 지침을 마련하고 전파하였다.

해당 지침서에서는 직장내 자살을 직장 안팎에서 일어난 자살을 모두 포괄하여 정의하고 있다. 여기에는 직원 혹은 하청업자, 직원이나 하청업자의 가족 혹은 가까운 친구가 포함될 수 있으며 또한 주요 고객 혹은 공급업자 혹은 노조대표와 같은 조직내 주요인사도 포함될 수 있다.

지침서에 따르면, 사업주는 자살예방에 결정적인 역할을 한다. 직업을 가진 사람들은 일생의 삼분의 일의 시간을 직장에서 보낸다. 동료와 직속상사는 같은 경험을 공유하며 그에 기반하여 중요한 사회적 감정적 지지 연결망을 제공할 수 있다. 직장내에서 사업주는 직원들이 웰빙과 정신 건강의 중요성, 안전준수에 대한 지식과 안 좋은 징후를 포착하는 법을 이해하도록 도울 수 있는 유일한 위치에 있기 때문이다.

또한 지침서에서는 직장내 자살예방을 위한 가장 좋은 토대는 직원들이 건강에 대한 중요성을 이해하고 그들의 고민과 불안을 공개적으로 이야기할 수 있도록 만드는 전제적인 접근이라고 설명하고 있다. 지침서에서 제시한 직장내 자살 예방 프로그램에 포함해야 할 핵심 요소는 다음과 같다.

<직장내 자살 예방 프로그램에 포함해야 할 핵심 요소>
- 직원과 그들의 가족들을 가치있게 여기는 업무 환경 구축
- 상호존중, 오픈된 의사소통, 소속감, 정서적인 웹빙 장려
- 필요할 때 사람들이 서로 도움을 청하고 지지하도록 장려하는 것
- 모든 직원, 특히 직속상사를 대상으로 자살 이해를 포함한 정신 건강에 대한 교육과 훈련 실시
- 직원 모두가 이용 가능한 자원과 지원에 대해 인지할 수 있도록 내부 의사소통 및 소개 프로그램 진행
- 정신건강을 포함해, 장기간 건강, 가정폭력, 재정불안 같은 문제에 대해 지원이 필요한 직원들을 도울 수 있는 명확한 정책, 프로세스, 실제적인 가이드 마련
- 직장내 직원 지원 프로그램 혹은 인사 직원을 위한 전문적인 자살 이해와 예방 훈련 실시
- 가정폭력상담소, 정신건강상담소와 같은 국가 지원기관 연락망을 사내에 비치
- 자살시도 혹은 사망에 대한 대응 계획 마련

또한 안전하고 건강한 일터를 만들기 위한 지침으로 첫째, 정신건강을 증진시키고 정신건강 문제를 낙인찍지 않는 것. 둘째, 업무 스트레스를 낮추는 것. 셋째, 직장 괴롭힘과 성희롱 예방 및 대응조치. 넷째, 정신건강 서비스 지원 확대. 다섯째, 관리자와 주요 직원에 대한 교육과 훈련을 들고 있다. 이 중 일과 관련된 정신적 스트레스 요인을 검증하기 위한 질문으로 다음의 내용을 제시하고 있다.

<일과 관련된 정신적 스트레스 요인 검증 문항>
-직원들이 지시사항 및 그들의 업무량을 수정할 수 있는가?
-직원들이 주기적으로 질병, 사망, 위협과 같은 감정적인 상황에 직면하는가?
-교대근무나 야간근무가 있는가?
-시간압박이 큰가?
-업무시간을 쉽게 스케쥴링할 수 있는가?
-정기적인 휴식을 가질 수 있는가?

또한 직장 괴롭힘과 성희롱 예방과 관련하여 주의해서 살펴봐야 할 회색지대로써 다음 내용을 언급하였다.

<주의해서 살펴봐야 할 회색지대에 대한 예시>
-악성루머 퍼뜨리거나 특히 동료 앞에서 말이나 행동으로 상대방을 모욕하는 것
-상대방을 괴롭히거나 잘못하게 만들고 희롱하거나 욕설하는 것
-업무에서 배제시키거나 혹은 희생시키는 것
-상대방을 협박하기 위해 근거없는 위협을 하거나 인사관련 발언을 하는 것
-유능한 직원에게 업무량을 과도하게 주면서 의도적으로 퍼포먼스를 약화시키고, 지속해서 비판하는 것
-의도적으로 승진을 막거나 교육 기회를 박탈하면서 개인의 발전을 막는 것
-원치않는 성적 관심, 신체 외형 혹은 행동에 대해 가벼운 말을 하는 것

해당 지침서는 사업주를 대상으로 직장내 자살 위험을 예방하기 위한 지침으로 사람 중심의 근무환경 마련과 이를 통한 직원들의 정신건강 증진을 통해 결과적으로 기업의 이윤에도 도움이 된다고 보았는데, 결국 기업의 성과와 효율만을 강조하는 비인간적인 근무환경과 그로 인한 업무 스트레스가 직장내 자살 위험을 높인다는 근본적인 문제인식에서 출발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영국 노조단체에서도 직장내 자살 위험 예방과 관련한 노조 대표의 역할에 대해 다음과 같이 안내하고 있다.

<노조 대표를 위한 체크리스트>
-사업주가 자살 문제와 직장내 문제로써 자살 예방에 대해 알고 있고 적절한 조언과 지원을 얻을 수 있는지 확인할 것
-스트레스 관리, 괴롭힘/성희롱, 정신건강, 직원 지원, 징계 프로세스 정직에 대한 기존 정책을 함께 살펴볼 것
-관련 기관 혹은 노조로부터 정신 건강 문제에 대응하는 훈련을 요청할 것
-사업장에 건강 혹은 웰빙 이벤트를 조직할 수 있는 관련기관이 초청되는지 확인할 것
-징계 프로세스 동안 정직처분된 직원과 계속 연락을 유지하여 필요한 지원을 확인할 것
-업무 도중 문제가 있는 직원이 있으면 와서 말을 하도록 독려할 것

건강하고 안전한 일터를 위해

지금까지 직장내 자살 위험 예방을 위한 영국의 사례를 살펴보았다. OECD 국가 중 자살율 1위라는 오명을 벗어나기 위해서라도 한국은 자살 예방을 위해 자살을 개인의 문제로만 국한 짓는 기존의 편협한 시각에서 벗어나 사회적인 문제인식으로 접근하여 다각적인 부분에서 본질적인 문제를 찾고 개선하는 것이 필요해 보인다. 이러한 점에서 영국의 직장내 자살 위험 예방 지침은 눈여겨 참고할 부분이 많다.

오늘도 누군가는 죽음을 떠올리게 만드는 악몽 같은 일터로 출근을 할 것이다. 직장내 자살이 발생하면, 단순히 한 사람의 죽음으로 끝나지 않으며 함께 일을 했던 직장동료들과 회사조직에도 오랫동안 깊은 트라우마를 남긴다. 자살은 피할 수 없는 사고가 아니라 예방 가능한 문제이다. 물론 자살의 원인은 복잡하고 당사자가 왜 그런 선택을 했는지 명확하게 다 알 수는 없다. 하지만 직장내 자살을 야기할 수 있는 다양한 문제의 원인을 찾고 이를 개선해나가는 노력을 통해 우리는 최소한 직장내 문제로 인한 자살 위험은 낮출 수 있을 것이다.

[연구리포트] 코로나 시대, 돌봄 노동의 시간은? / 2020. 09

[연구리포트]

코로나 시대, 돌봄 노동의 시간은?

 

최민 노동시간센터, 상임활동가

코로나로 언택트가 유행이자 대세라고 한다. 비대면 수업, 비대면 회의, 비대면 배달에 이어 비대면 회식까지 한다니, 대세가 맞긴 맞는 것 같다. 바로 몇 달 전만해도 상상도 못 했을 활동들이 비대면으로 이루어지고 있다. 그런데도 역설적으로 코로나 시대는 실은 우리 삶의 많은 부분이 비대면으로 대체할 수 없는 여러 필수적인 노동에 기대어 있었다는 점이 드러나는 계기가 되기도 했다. 코로나가 노동시간에 미친 영향 중 많은 논의가 일자리 감소 관련 직종 아니면 재택근무’, ‘디지털 업무등에 쏠려 있는 지금, 대신할 수 없는 노동을 하는 이들의 노동시간은 어떻게 달라졌을까?

올해 1월부터 스스로 안식년을 맞이해 주부역할을 주로 맡고 있는 프리랜서 기록활동가 림보, 공공운수노조 전국활동지원사지부(이하 활동지원사노조) 고미숙, 전덕규 활동가, 국공립 어린이집 보육교사 신지선(가명) 씨를 만났다. 가까이에서 사람들을 직접 돌보는 일을 하는 이들은, 코로나로 인한 일상의 영향이 커진 것에 비례해 노동의 내용과 구성이 상당히 달라졌다.

돌봄노동의 변화 양상

어린이집의 경우, 노동강도가 높아졌다고 하기는 어렵다. 어린이들의 등원 자체가 줄었기 때문이다. 신입은 5월 이후에야 받았고, 원래 다니던 어린이들도 재원율이 3월에는 30% 정도였다. 수도권에서 확진자가 줄어들면서, 6월쯤 되어 대부분 출석하게 됐지만, 8월 초 다시 유행이 증가하게 된 거다. 원래 한 번 하던 소독을 두 번 하고, 놀잇감 세척은 매일 소독기 돌리는 것과 별도로 일주일에 두 번은 물로 씻고, 추가로 일주일에 두 번 정도 어린이집 전체 방역을 하지만, 원래 하던 것이 조금 더 늘어난 정도라고 느낀다. 더 큰 변화는 어린이 돌봄 그 자체다.

신지선(보육교사): “낯가림이 한참 심한 아이들도 있는데, 그 어린이도 너무 힘든 거다. 선생님들이 다 마스크 하고 있으니, 매일 낯설어하고, 낯가림이 별로 나아지질 않는다. 아침마다 울면, 마스크 내려서 얼굴 보여주면서 웃어야 겨우 따라 웃는다. 3~4세만 돼도 모두 테이블 하나당 한 명씩 떨어져 앉고, 각자 자기 놀잇감 가지고 놀고 있다. 소꿉놀이도 금지다. 혼자 할 수는 있겠지만. 어린이집이 그저 아이를 맡겨놓는 것만은 아니고, 사회성 발달도 기대하는 건데, 지금은 그걸 기대할 수가 없는 상황이다. 게다가 어린이들은 부모의 감정 상태에도 영향을 많이 받는데, 지금은 부모도 불안해하는 시기이다. 그런 영향에다, 9명 정도 나와서 같이 놀던 어린이집에 혼자 혹은 둘이 나와서 각자 앉아 있으니 어린이집에 나와 있는데도 고립감을 느끼는 거다.”

장애인 활동지원사의 경우도 난감한 경우가 많다고 한다. 꼭 이용자나 활동지원사가 직접적으로 감염되거나 하는 극적인 상황이 아니라 하더라도, 원래 이용하던 복지관, 운동 강습이나 수업 등의 사회활동이 모두 중단되니 활동지원사의 부담이 매우 높아진다.

고미숙(활동지원사노조): “복지관을 못 다니게 되어도, 좁은 집에만 있을 수도 없는 노릇이다. 발달장애인의 경우는 일정한 시간에 나가서, 일정한 신체활동을 하는 것이 필요하다. 그런데 정작 밖에 나와도 갈 곳이 없으니, 공원으로 산으로 하천으로 돌아다니느라 힘들다는 조합원들 소식이 많다. 멋쟁이였던 한 조합원은, 요즘 자기 꼴이 말이 아니라고 우스갯소리 할 정도다. 심지어 보통 복지관에서 활동하면, 거기서 점심도 해결했었는데, 복지관에서 식당 운영을 안 하니, 어떤 경우는 활동지원사가 도시락을 두 개 싸서 자기랑 이용자가 같이 먹으면서 지내고 있다고도 한다. 당연히 도시락까지 싸는 것은 의무가 아니지만, 이용자가 이용을 중단하면 언제든 고용이 중단되는 활동지원사 입장에서는 알아서 하게 되는 역할이다.”

다시 호명되는 가족여성에게 전가되는 부담

이런 부담은 다시 가족의 역할로 소환되고 전반적으로 여성의 부담으로 나타난다는 것은 모두 뚜렷이 느끼고 있었다.

림보(기록활동가): “가장 큰 변화는 어린이가 태어난 이후로 가장 긴 시간을 붙어 지내게 됐다는 점이다. 코로나로 다른 친구들을 만나기도 어려워지다 보니, 키즈 카페를 운영하는 집 자녀인 친구랑 그 키즈 카페 가서 노는 것 말고는 어린이가 종일 집에 있게 됐다. 그런데 사실 가정주부에게는 집이 일터. 그런데 여기에 갑자기 하루 종일 누군가가 같이 있게 되는 거다. 당연히 이러저러한 갈등도 많아졌고, 어린이에게 쏟는 감정노동이나 노력도 훨씬 강도가 높아졌다. 그럼에도, 그래서 나는 적어도 밤 10시부터 2~3시간은 오롯이 혼자 있는 시간을 가지려고 노력을 많이 했다. , 약속이나 세미나 때문에 나가던 일정도 크게 줄이지는 않았다. 가사도 남편이 있을 때는 혼자 하지는 않으려고 의식적으로 애쓰기도 하는데, 그런 걸 다 직접 챙기는 이들은 어떻게 지내고 있을지 모르겠다.”

신지선(보육교사): “돌봄 노동의 중요성이 다시 얘기된다고 하지만, 사회적 역할을 강조하는 흐름은 전혀 아니다. 오히려 반대다. 돌봄은 필수적으로 필요한 것인데, ‘사회적 거리두기를 해야 한다는 지금 같은 시기에는 믿을 것은 가족뿐이고, 돌봄 책임은 가족이 져야 한다는 생각이 훨씬 강해진 것 같다. 벌써 여성 일자리들이 먼저 위협받는 것 같고, 여성이 가정에서 돌봄 담당해야 한다는 논리로 이어지고 있는 것 같다. 우리 어린이집 원아 어머니 중에도 육아휴직이 끝나가는데 퇴직 당했거나, 출산 후 구직 준비 중이었는데 구직 포기한 경우가 벌써 나타나고 있다.”

전덕규(활동지원사노조): “장애인 중에는 가족조차 돌봄을 맡기 어려운 경우가 많아, 육아 영역보다 일자리가 급격히 줄어드는 것 같지는 않다. 애초 활동지원은 재가서비스였기 때문에 어린이집처럼 이용이 극적으로 줄어드는 것도 아니다. 그렇지만 새로운 부담이 생기면 가족, 그것도 여성에게 전가되는 것은 확실하다. 진주에 있는 한 이용자는 감염 우려 때문에 2주간 이용 중단을 요구하고, 누나가 와서 그이를 돌보게 되었다. 이용자와 지원사가 모두 자가격리해야 하는 경우가 발생했는데, 결국 이용자의 언니가 와서 2주간 돕게 되었다.”

위기마다 등장하는 가족이 다시 사회적 부담의 구원자로 등장하고 있기 때문이다. 림보는 사회적 거리두기라는 말 자체가 가족을 사회의 바깥으로 보고 있다고 일갈했다.

림보(기록활동가): “사회적 거리두기 자체가, 가족은 사회의 바깥에 있다고 자연스럽게 전제한 것이다. 공적 영역인 사회와 가정을 구분하고, 가정을 사적 공간으로 여긴다. 공적인 공간에만 침범하지 않는다면, 가족끼리 이전보다 훨씬 오랜 시간 붙어 지내든 말든 전혀 고려하지 않는다는 태도가 노골적으로 드러났다고 본다. 코로나 이후, 유럽 어느 나라에서는 가정 내 여성폭력이 하도 늘어서 SOS를 요청하는 비밀 신호도 나왔다고 하더라. 가족 역시 권력관계가 존재하며, 각자의 시간과 공간이 확보되지 않으면 위험해질 수 있다는 점을 인정해야 한다. 몇 년 전에 유행한 저녁이 있는 삶이 실은 전업주부의 희생을 기본값으로 놓고 그리는 환상이었다. 언제든 가족이 사회적 돌봄을 메꿀 수 있다는 우리 사회의 시선 역시 전업주부든, 임노동을 하는 여성이든, 가족 내에서 희생을 전제로 하고 있다고 본다.”

출처: 고용노동부

돌봄노동 변화의 계급적 효과

특히, 돌봄과 관련된 역할을 최전선에서 맡고 있는 이들은, 코로나가 돌봄에 미친 영향이 전 사회에 미칠 계급적 효과에 대해서도 주목했다.

신지선(보육교사): “어린이들과 어린이집에 있으면 아주 밀접하게 접촉하게 되니, 서로 보호를 위해 마스크를 쓴다. 그런데 이게 아이들에게 지대한 영향을 미친다. 밥 먹을 때도 일렬로 앉아, 대화를 안 하니 식사 지도도 안 된다. 아이들 양치 지도도 교사는 마스크를 화장실에 한 명씩 데리고 들어가서 양치질을 씻긴다. 그런데 아직 말을 배우고 있는 상태인 이 어린이들은 선생님이 마스크를 쓰고 ~ 해보세요.’ 하면 입을 벌리는 것을 못 하더라. 아직은 라는 언어적 단서만으로 안 되고, 선생님이 입을 벌린 것을 시각적으로 보고, 동시에 선생님이 턱을 눌러주면 저절로 입이 벌어지면서, 따라 해야 하는데, 선생님 입 모양이 안 보이니, ‘하라는 말을 알아듣지를 못하는 것이다.

이런 상황이니, 사실 이런 시기에 공적 육아, 사회적 돌봄 얘기를 꺼내기가 힘들 지경이다. 사적 도움을 구할 수 있는 집에서, 마스크를 하지 않고 보살핌 받은 어린이와 어린이집에서 긴급 돌봄 받는 어린이 사이에 격차가 있을 수밖에 없다. 그런데 긴급 돌봄 받는 어린이들은, 부모가 일할 수밖에 없는 경우, 할머니 등 조력을 구할 수도 없는 경우다. 이런 기간이 길어지면, 그 영향은 정말 클 거라고 생각한다.”

림보(기록활동가): “아주 어린 이들의 돌봄만이 문제가 아니라, 공교육 전체의 문제라고 생각한다. 지금 온라인 수업을 계속 밀어붙이는 것은, 사실상 온라인 수업을 옆에서 챙겨줄 사람이 있거나, 선행학습으로 이미 학교 교과 공부가 어렵지 않은 학생들, 50분의 온라인 수업을 알아서 집중해서 들을 수 있는 능력이 있는 학생들을 중심에 놓은 구상이다. 우리 집 어린이는 선행학습을 하지 않아서, 수업을 집중해서 들어야 새로 익힐 수 있는데, 아무래도 온라인 수업은 집중을 어려워한다. 3학년이라서 처음 영어를 배우는데, 담임 선생님이 어머니가 알파벳 좀 챙겨주세요.’하는데, 내가 영어까지 가르쳐야 하나, 그게 당연한 건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리코더를 열 곡 연습하라는데, 앞에 한두 곡은 알겠는데, 뒤쪽 어려운 노래들은 나도 모르겠더라. 학교에서 같이 배운다면, ‘나만 어려운 거 아니구나, 쟤도 어려워하는구나, ? 저 친구는 잘하네, 나도 해볼까뭐 이런 다양한 반응과 생각을 하면서 잘하든 못하든 수업에 참여할 텐데, 혼자 앉아서 재미도 없고 어려운 공부를 하고 있으니, 학업은 물론 정서적으로도 부정적 영향이 클 것 같다. 장애인 어린이나 특별히 학습에 어려움을 많이 겪는 어린이라면, 그 영향이 더 클테다.

옆에서 챙기기 어려운 집, 학교 수업도 겨우 따라가는 많은 학생을 중심으로 고민했다면, 아예 1년 휴업을 선언하거나 온라인으로도 따라갈 수 있을 만큼 학습 목표량을 조정했어야 했다. 저절로 격차가 나게 해 놓고, 1년 뒤에 너는 이제 4학년이니 4학년 수업을 하자고 할 건가? 우리 사회의 교육이 사실상 누구를, 어떤 사람을 중요한 대상으로 여기고 있는지 민낯이 드러났다고 생각한다.”

상황은 이런데, 정부의 역할은 거의 없어 보인다는 것이 공통적인 의견이다. 마스크는 보육교사도, 장애인 활동지원사도 따로 지급받지 못 하고 있다. 활동지원사노조 전덕규 활동가는 인터뷰 때마다 마스크 물어보는데, 지자체에서 5장 받은 게 전부라고 손사래를 쳤다. 공적 마스크 공급할 때, 보육교사는 감염 위험이 커질 수 있다는 이유로, 웬만하면 평일에 출근한 뒤 나갔다 들어오지 말라고 해서 주말에만 사도록 압력을 받기도 했다. 장애인 활동지원사는 자기 마스크도 사고, 서비스 이용자 마스크도 구하느라 바빴다.

긴급 돌봄을 보낼 수 있는 학부모 규정이 정확하지가 않아, 어린이집 교사들과 학부모 사이에서 보이지 않는 신경전이 벌어진다. 온라인 교육 시대에도, 배추흰나비를 키워야 한다고 해서, 애벌레가 담긴 통을 집에 들고 왔지만, 애벌레를 어떻게 운반하고 다뤄야 하는지 정보는 제대로 알려주지 않아, 하루 만에 애벌레가 죽은 집이 여럿이라고 한다.

코로나가 던진, ‘누구를 위한, 어떤 공교육인가’, ‘공적인 돌봄의 모양과 구성이 어때야 하는가’, ‘자본주의는 위기 시에 가족을 어떻게 소환하는가하는 근본적인 질문을 놓치지 않으면서, 코로나 시대 우리의 돌봄 노동을 좀 더 자세히 들여다보아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