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회견] '보조출연 관리자 집단 성폭력 사건’ 가해 경찰 조관군 해임‧처벌 요구 기자회견

-일시 : 2020년 9월 24일 (목) 오전 11시 30분 
-장소 : 광명경찰서 앞 

사회: 박희정 (한빛미디어노동인권센터)

- 피해자들에 대한 묵념
- 사건 경과
- [발언] 성상민 한빛미디어노동인권센터 기획차장
- [발언] 김용민 정의당 광명갑 지역위원회 위원장
- [발언] 최민 한국노동안전보건연구소 상임활동가, 직업환경의학전문의
- [발언] 장연록 (유가족)
- 기자회견문 낭독



기자회견문 “여성에게 안전한 일터와 정의를”


지난 8월 28일과 9월 3일은 ‘단역배우 자매’로 알려진 故 양소라‧양소정님의 11주기였습니다. 자매들의 묘 앞에 선 어머니는 그날이 바로 어제 같다며 오열했습니다. 시간이 아무리 흘러도 가슴을 찢은 상처에서는 매일 새로운 피가 흘렀습니다. 생을 놓고 싶어질 때마다 “복수해달라”는 둘째 딸의 유언을 주문처럼 되뇌며 악착같이 이어왔습니다. 


2009년, 두 분의 사망 당시, 언니 양소라님의 나이는 서른넷, 동생 양소정님은 서른둘이었습니다. 원통한 죽음이었습니다. 2004년 여름, 양소라님은 여성학을 전공하던 대학원생이었습니다. 방학을 맞아 경험도 쌓고 용돈도 벌겠다며 나간 일터에서 성폭력을 겪었습니다. 4명의 보조출연배우 관리자들이 포함된 다수의 가해자들은 협박과 위력을 동원해 피해자를 괴롭혔습니다. 피해자가 용기 내 경찰에 고소했지만, 경찰 조사과정 역시 피해자에게는 ‘참사’였습니다. 
피해자의 곁에서 조사과정에 함께 한 유가족 장연록님은 조사를 맡은 경찰이 처음부터 ‘이런 건 사건이 되지 않는다’는 태도로 일관했다고 증언합니다. 경찰은 피해자에게 ‘가해자들의 성기 크기, 색깔 등 구체적으로 그려보라’고 하고, 얇은 가림막만 사이에 둔 채 장시간의 대질조사를 진행했습니다. 경찰서 안의 다른 경찰이 술에 취한 채 피해자에게 다가와 ‘아가씨가 12명이랑 잔 아가씨야?’라는 말을 했다는 증언도 있습니다. 


1년 반 동안 고통을 견디며 조사에 임해온 피해자에게, 담당 경찰은 ‘성인에게 이런 건 죄가 성립하지 않는다’며 합의를 종용했습니다. 피해자가 합의하지 않자, 강제로 합의서에 지장을 찍게 해 수사를 종결시켰습니다. 당시는 성폭력 범죄에 있어서 친고제가 적용되던 시기라 가해자들에게 법적 책임을 묻기는 더 이상 어려워졌습니다. 


양소라님은 부서진 일상을 재건하고자 많은 노력을 했습니다. 새로운 공부를 해보려 학원에 다니고, 공방에 다니고, 아르바이트를 했습니다. 가족과 친구들이 기억하는 ‘양소라의 얼굴’로 돌아가려 애썼습니다. 그러나 존엄에 상처 입고, 납득할 수 없는 일을 겪고, 그 부당한 일을 자행한 자들에게 책임을 묻지 않고 살아간다는 것은 얼마나 어려운 일인가요. 
양소라님은 결국, 2009년 8월 28일 목숨을 던졌습니다. 동생 故 양소정님은 언니에게 일자리를 소개해줬다는 죄책감과 그리움에 6일 후 (9월 3일) 언니의 뒤를 따랐습니다. 두 달 뒤에는 아버지마저 지병이 악화해 사망하고, 어머니 장연록님만이 남아 이제껏 진실규명과 피해자의 명예회복을 위한 싸움을 계속하고 있습니다. 

이 사건은 2018년 미투의 흐름 속에서 재조명되어 재조사를 요구하는 청와대 청원이 이루어졌습니다. 당시 20만 명이 넘는 시민들이 호응해 경찰 재조사가 진행되었지만 요식행위에 그쳤다는 비판을 받았습니다. 


2018년 8월 28일, 피해자의 기일에 여성가족부, 한국여성인권진흥원 등의 지원으로 유가족을 위로하기 위한 장례식이 거행됩니다. 같은 날 한국여성인권진흥원은 <성폭력 피해자에 대한 사회적 치유 : 방관자에서 조력자로>라는 주제로 포럼을 개최합니다. 경찰의 재조사 보고서를 검토한 신경아 한림대 교수는 이 자리에서 "보고서의 한 페이지 넘는 분량이 피해자의 진술이 얼마나 엇갈렸는지에 대한 설명이었다"고 강하게 비판했습니다. 


2004년과 2005년의 경찰조사 당시 피해자는 사건의 트라우마로 정신 장애 증세를 보였는데, 경찰은 재조사에서도 이것을 피해자의 진술을 의심하는 근거로 제시한 것입니다. 재조사를 맡은 경찰은 당시 공소시효가 끝난 사건인데다 고인이 된 피해자가 생전에 고소를 취하했다는 이유로 가해자 대부분이 조사에 불응하자 그들에 대한 조사 자체를 진행하지 않았습니다. 


신경아 교수는 "(경찰 보고서) 그 자체가 피해자를 모욕하는 내용들이었으며, 경찰 조사가 완수되지 못한 책임을 여전히 피해자에게 돌리는 태도라고 할 수 있다"는 말을 덧붙였습니다. 이러한 현실 속에서 스멀스멀 가해자들이 현장으로 복귀한 건 당연한 귀결이라 할 수 있습니다. 


2004년과 2005년, 피해자가 제기한 고소를 담당한 경찰 중 한 명이 조관군입니다. 피해자의 지장을 억지로 찍어 사건을 종결시킨 장본인입니다. 조관군은 광명 철산 지구대장이던 올해 4월 철산 지구대 앞에서 1인시위 중이던 장연록 어머니에게 “진작 니년을 죽였어야 했다”며 폭행하고 질질 끌고 가는 만행을 저질렀습니다. 이 사건은 현재 검찰로 송치된 상태인데, 조관군은 이후 감봉되어 광명경찰서로 발령되었습니다.

고 양소라 님은 어려움 속에서도 큰 용기를 내어 국가에게 정의를 호소했습니다. 그러나 피해자의 최후의 보루가 되어야 할 경찰은 오히려 피해자를 모욕했습니다. 1년 반에 가까운 수사 과정 내내 피해자의 고통을 덜기는커녕 상처를 헤집어댔습니다. 그 책임에 사죄해도 모자랄 판에, 유가족에게 폭력을 행사했다는 것은 국가의 존재 의미를 되묻게 하는 심각한 사건입니다. 


정부를 향해 말합니다. 2018년 여성들의 용기로 만들어낸 미투의 흐름 속에서 국민청원에 못 이겨 재조사를 수행하고 피해자들의 장례식을 치러줬다는 것으로 할 일을 다했다고 할 수는 없습니다. 사건의 ‘해결’이라는 것이 무엇입니까. 사건의 진실이 규명되고, 피해자가 가해자로부터 합당한 사과를 받아야 하며, 유사한 사건이 재발되지 않도록 사회가 함께 변화의 노력을 기울이는 것입니다. 


정부는 2019년 보조출연자들의 노동환경에 대한 전반적인 실태조사를 약속했지만, 제대로 된 결과조차 내놓지 않고 있습니다. 보조출연자의 노동환경은 크게 개선되지 않았고, 사건의 가해자들이 현장에서 활동한다는 소식이 들리며, 피해자는 제대로 된 사과 한 번을 받지 못한 채 여전히 거리에서 목청을 높여야만 합니다. 


방송사와 외주 제작사들도 역시 책임에서 자유롭지 않습니다. 방송 제작 환경에 사각지대가 발생하지 않고 모든 방송 노동자들이 건강하고 안전하게 일할 수 있는 환경이었다면, 여성 노동자가 불안해하지 않고 마음 놓고 일할 수 있는 환경이 구축되었다면 절대 일어나지 않았을 문제입니다. 그러나 공영, 민영을 막론하고 방송사들은 방송 노동환경을 개선을 등한시했습니다. 외주 제작사도 손을 놓고 있기는 매한가지였습니다. 이따금 언론을 통해 사건이 보도되고 여론이 들끓어 오를 때만 바뀌는 척 할 뿐, 실질적인 변화 없이 무려 15년의 세월을 허비했습니다. 이미 많이 늦었지만, 이제라도 방송사와 제작사는 방송 노동환경과 문화를 바꾸기 위하여 최선을 다해야만 할 것입니다.


상처받아야 할 이들은 가해자들입니다. 책임을 져야 할 이들도 가해자들입니다. 이러한 가해를 방조하고 묵인하고, 반복되게 한 구조를 바꾸어야 합니다. 그럴 때 우리는 양소라 양소정 두 여성의 명복을 온전히 빌 수 있을 것입니다. 

우리는 경찰에게 요구합니다. 
- 보조출연자 관리자 집단성폭력 사건의 조사 과정에서 피해자를 모욕한 가해자이자, 유가족 장연록을 폭행한 경찰 조관군의 해임과 처벌을 요구한다.
- 경찰은 조관군에 대한 해임과 처벌과 더불어, 성폭력 사건 수사에 있어 2차 가해 예방을 위한 교육과 정책, 2차 가해 발생 시 처벌 절차 등을 명확하게 공표하라.

우리는 방송사와 제작사에게 요구합니다.
- 방송사와 제작사는 성폭력 예방 교육 사전에 반드시 실시하고, 사건이 발생할 경우 공정한 절차에 따라 사건을 철저하게 조사하여 피해자의 회복을 돕고, 가해자는 현장에서 즉시 배제할 수 있도록 실질적 피해구제절차를 만들어라.
- 방송 현장에서 여성이 차별받지 않고 건강하고 안전하게 활동할 수 있는 문화를 구축하라.

우리는 정부에게 요구합니다.
- 정부는 말로만 실태조사 말고 방송 현장에서 일하는 여성 노동자, 보조출연자를 비롯한 방송 노동자의 다양한 영역에 대한 실태조사와 노동환경 개선을 위한 정책을 수립, 시행하라.


2020년 9월 24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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