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환의가 만난 노동자 건강 이야기] 보이지 않던 고통 / 2020.03

[직환의가 만난 노동자 건강 이야기] 

 

 

보이지 않던 고통 

 

 

 

김세은 / 선전위원 

 

 

 

3.4kg로 태어난 우리 집 어린이는 만 9개월이 됐고 체중은 조만간 두 자리수가 될 예정이다. 그동안 숱하게 아이의 통통한 두 다리를 들어올리며 기저귀를 갈았고, 품에 안아 먹이고 재웠다. 안는 횟수는 줄어들고 있지만 안아 달라고 기어올 때는 내 손목이 아프다는 건 잊게 된다.

예전부터 육아로 인한 손목 통증 이야기를 많이 들어봤지만 사실 잘 와닿지 않았다. 그랬던 이유가, 내가 유독 튼튼한 손목를 가졌기 때문이 아니라 지금껏 손목에 부담 가는 일을 지속적으로 해본 적이 없어서였다는 걸 아이를 키우며 분명히 알게 됐다. 손목에 힘을 줄 때 조금씩 느껴지던 통증은 차차 심해지더니 문고리를 돌리거나 가만히 누워있을 때도 느껴지곤 했다. 아이가 크기 전엔 별 수 없다고 대수롭지 않게 여겼는데 그쯤 되니 조금 겁이 났다. 병원에 가봐야겠다고 생각만 하던 시기를 지나 다행히 통증은 그럭저럭 완화되어 가고 있다.

이런 경험을 하고 나니 만약 출근해서도 손목에 부담되는 일을 늘 해야 하면 어떡하나, 자연스레 생각이 이렇게 이어졌다. 손목뿐이랴. 친한 친구 한 명은 출산과 육아를 거치며 요통이 심해져 꽤나 고생했더랬다. 교사인 그녀는 최대 3년의 육아휴직을 택할 수 있었고 다행히 몸을 잘 추스려 출산 1년 반만에 복직했다.

그런데 주로 서서 일하는 그 친구가 90일 출산휴가를 간신히 쓰고 허리 통증이 여전한 채 복직해야 하는 상황이라면 어땠을까. 병가를 쓰거나, 그마저 여의치 않다면 일을 그만둬야 했을지도 모른다.

몇 달 전 직업환경의학회 가을학술대회에서 어업인의 근골격계 통증에 관한 포스터 발표를 듣고 있었다. 남성 노동자에 비해 근골격계 통증을 호소하는 여성 노동자의 비율이 더 높다는 분석결과가 나왔다. 몇 가지 요인을 보정한 결과였던 것으로 기억한다. 발표가 끝나자 여성 노동자에게서 통증이 더 흔한 이유를 찾아보았는지, 예상되는 이유가 있는지 누군가 물었다. 발표자의 대답은 뾰족한 내용이 없어서였는지 잘 기억나지 않지만, 그때 내가 했던 질문은 나 자신에게도 또렷이 남았다.

"여성 노동자들이 집에서 가사 노동을 더 많이 한다면 근골격계 통증을 호소하는 비율이 더 높지 않을까요? 그 점에 대해 혹시 고려해보셨나요?"

언젠가 이런 내용을 어디선가 본 기억이 있긴 하지만, 그 순간 순전히 내 경험에서 떠오른 질문이었다. 발표자가 다음 분석에는 그런 것을 고려해주길 간절히 바라는 마음에서 질문한 것이기도 했다.

지난달부터 주 5일 출근하는 워킹맘(물론 필자는 이 말을, 육아의 책임과 부담을 여성에게 더 지운다는 점에서 비판한다)의 삶이 본격적으로 시작됐다. 시어머니께서 아이를 봐주시기로 한 터라 일찌감치 한가지 걱정을 덜고 시작할 수 있었다. 그러나 어머니 연세에 10시간이상 아기를 돌보는 일이 무리라는 것을 가족 모두가 깨닫는 데는 며칠이 채 걸리지 않았다. 어린이집에 보낼 대기 순번이 되지 않았고, 당장 다른 방법이 없었던 터라, 시터 선생님을 찾아보기로 했다.

가족이 아닌 누군가에게 어린 아기를 맡긴다고 생각하니, 마음이 무거워졌다. 시터 선생님이 갑자기 아파서 못 오시면 어떻게 하지? 아이가 자꾸 보챈다고 티 안 나게 때리는 건 아닐까? 물론 이런 걱정을 남편도 하고 있다는 것을 잘 안다.

이제 막 워킹맘의 세계에 진입한 나는 궁금해졌다. 이 모든 걱정과 근심을 짊어지고서 내가 일도 잘하고 아이에게도 소홀하지 않을 수 있을까? 갑자기 늦게 퇴근하는 일이 생기면 아기는 어떻게 하지? 이 모든 것만큼이나 중요한 나 자신을 잘 돌볼 수 있을까? 이런 고민을 하는 사람이 나뿐만은 아닐 거라고 생각하면, 조금은 위안이 된다. 한편으로는 다른 '워킹맘'들도 이런 마음으로 위태롭게 일하고 있겠다는 데 생각이 닿으면 걱정이 된다.

지금 일하는 병원에서 검진센터 개소 준비를 하고 있다. 진료실에서 가장 많이 만나게 될 이들은 같은 병원에서 교대근무로 일하는 간호사들이다. 여성 비율이 매우 높지만 이직율이 높아 아이키우면서 간호사로 일하는 분들이 그리 많지는 않을 것 같다.

예전에도 교대근무하는 간호사들을 진료실에서 만나면 미처 생각하지 못했던 이야기를 듣곤 했었다. 그런데 이젠 '워킹맘'이 되고 보니 마주 앉은 사람의 고충과 힘듦을 예전보다 더욱 무겁게 받아들이게 될 것 같다. '잠을 잘 못자요', '항상 피곤해요' 혹은 '허리가 아파요'라는 호소를 들으면 병원의 교대근무 형태나 노동강도가 어떤지는 물론 그 사람이 집에서는 어떤 일을 하는지, 아이가 있다면 몇 살인지도 궁금해질 것이다.

반드시 어떤 일을 경험해야만 공감할 수 있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그런데 어떤 것들은 직접 경험하고 나서야 분명 조금 다른 차원의 앎이 열리는 느낌이 든다. 나의 안녕을 챙기면서, 주어진 역할들을 조화롭게 해낼 수 있을지 여전히 걱정된다. 하지만 그 덕에 새로운 렌즈를 하나 더 장착한 것 같아 기대되기도 한다. 보이지 않던 고통이 보일지도 모른다는 기대 말이다.

[문화로 읽는 노동] 플랫폼 속 밀레니얼 리얼리즘 / 2020.03

[문화로 읽는 노동] 

 

 

플랫폼 속 밀레니얼 리얼리즘-장류진 소설집 <일의 기쁨과 슬픔> 

 

 

 

김상민 / 문화사회연구소 소장 

 

 

 

'일의 기쁨과 슬픔이라… 일에는 당연하게도 슬픔도 기쁨도 있는 법이지' 하면서 책을 넘기다 보면 어느새 작가가 만들어 놓은 가공의 이야기와 실재하는 사물들 사이에 걸쳐진 묘한 덫에 걸려들어 소설의 기쁨과 슬픔을 맛보고 있음을 깨닫는다.

아니, 다 읽고 책을 접을 때까지 그 사실을 깨닫지 못한다. 그렇다고 환상적 리얼리즘을 이야기하는 것은 아니다. 환상적이라기에는 너무나 현실적이고, 리얼리즘이지만 웃음을 잃지 않는다. 이 소설(집)을 밀레니얼 세대, 페미니즘 리부트, 소확행, 워라밸, 플랫폼의 시대에 길어 올려진 (이렇게 이름 붙일 수 있다면) '밀레니얼 리얼리즘'의 전형이라고 한다면, 작가가 슬퍼할까?

 



밀레니얼 세대의 노동 이야기

'우리 동네 중고 마켓'의 준말인 '우동마켓'이라는 중고거래 앱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는 이 스타트업에서 "사실상 막내"인 나는 서비스 기획자다. 앱 개발자들이 서비스를 런칭하거나 수정하면 제대로 작동하는지, 사용상 문제는 없는지를 테스트하고 피드백하는 역할도 한다.

나는 앱 사용자들의 편의를 위해 어떤 기능을 개선해야 하는지, 어떤 과정에서 버그가 생기는지에 무척 관심이 많다. 아니나 다를까 소규모 스타트업에서 유행하는 '스크럼 시간'에 나는 '거북이알'이라는 특이한 우동마켓 사용자를 만나서 조사해보라는 대표의 지시를 받는다. '거북이알'은 "하루에 거의 백 개씩 글을 올리고 ... 가격은 늘 인터넷 최저가보다 조금씩 싸게 책정"하는 데다가 "파는 물건에도 일관성이 없"어서 혹시 어뷰저가 아닌가 하는 의심을 사고 있기 때문이다.

나는 결국 우동마켓 직원임을 숨기고 의심스러운 사용자 '거북이알'과 직거래함으로써 그의 실체를 알게 된다. 우동마켓은 플랫폼이다. 플랫폼은 사용자(소비자)와 생산자(판매자), 나아가 광고주까지 포함하여 모두가 하나의 앱 안에서 나름의 독자적 생태계를 유지하고 확장할 수 있어야 성립되는 기술적, 경제적, 문화적 토대다.

그런데 여기에 앱 개발자, 즉 마치 사용자나 생산자와는 달리 객관적 관점을 가져야 할 플랫폼의 직원이 상품을 매개로 생산자와 접촉한다. 그야말로 이 플랫폼은 플랫폼 개발자로 하여금 플랫폼을 통해 (혹은 플랫폼의 방식으로) 노동하게 만든다. 그런데 그 만남(혹은 노동)을 통해 '거북이알'이 들려준 이야기는 소설 밖에서 듣고 있던 이의 무릎을 털썩 꺾이게 만든다.

이웃 건물에 입주해 있는 카드사의 사원증을 걸고 나타난 '거북이알'과 물건을 거래한 뒤 우연히 점심을 같이 먹게 된 나는 "포인트로 사는 거니까 부담 갖지 말아요. 나 포인트 엄청 많아요. 아마 우리나라에서 제일 많을걸?"이라는 수수께끼 같은 말을 듣는다.

이 포인트라는 것은 말하자면 신용카드로 물건을 구매하면 구매액수에 따라 부여하는 숫자인데, 소비자가 이것을 (아주 많이) 모아 사은품을 받거나 현금화할 수 있는 가상의 화폐(아직 블록체인을 떠올리진 말자) 비슷한 것이다. 클래식 마니아이자 인스타그램 셀럽인 회장의 심기를 불편하게 만든 죄로 월급을 카드 포인트로 받게 된 슬픈 사연.

노동의 대가가 화폐가 아니라 소비의 보상으로 주어지는 포인트라니. 물론 포인트도 화폐의 기능을 하기는 하지만, "회사 생활 십오 년 하면서 한 번도 운 적이 없었"던 그녀는 그 포인트를 보고는 결국 눈물을 흘리고 만다. 이유는 "포인트가 너무 많아서." 마치 수십만 SNS 팔로워를 거느린 현실의 그 유명한 회장님인 것만 같은 그분은 자신이 '짠~' 하며 SNS에 올렸어야 할 깜짝 뉴스를 '거북이알'이 그만 미리 누설하는 바람에 김이샜고 찌질하게 월급-포인트 갑질로 응대한 것이다.

인스타그램에서 카드 적립 포인트로 이어지는, 소셜미디어 플랫폼과 가상 화폐 사이의 매끄러운 전환을 그려내는 소설적 묘사는 아마도 우리 시대의 노동과 자본의 본질을 보여주는 모범적인 사례라고 칭하고 싶다. 소셜미디어를 통한 회장님의 사회적 자본의 축적과 개인적 유명세를 위한 허세가 어떻게 한 노동자 개인의 노동과 소비의 대가인 포인트로 귀결되는지는 깊이 연구해볼 가치가 있을 정도다.

일은 일일 뿐…

이 심각한 사태는 '거북이알' 특유의 긍정적인마인드와 밀레니얼다운 생존 방식으로 극복되는 것처럼 보인다. 그녀는 "포인트를 돈으로 전환하는 가장 효율적인 방법"으로 중고거래를 선택한다. 포인트를 써서 "잘 팔릴 법한 물건들"을 직원 할인가에 "근무시간에" 구매해 우동마켓에 올리고, "점심시간이나 외근 나갈 때 직거래"하면서 "나름대로 손해를 최소화"하는 방법을 터득한다.

자신의 개인 시간은 쓰지 않으면서도 근무시간에 틈틈이 (어쩔 수 없는) 제2의 밥벌이를 해나가는 그녀의 지극히 생존주의적 워라밸은 존경스럽지 않을 수 없다. 포인트로 월급을 주는 회사를 위해 어떻게 나의 소중한 시간을 1분이라도 더 쓸 수 있겠는가.

그렇다고 이들이 자기 일을 증오하거나 두려워하는 것은 아니다. 일은 일일 뿐이다. 거의 유일하게 실명으로 등장하는 회사인 '엔씨소프트' 사옥을 바라보며, 두 사람은 이런 대화를 나눈다.

"저희 대표나 이사는 매일매일 그런 생각을 하겠죠? 어떻게 돈 끌어오고, 어떻게 돈 벌고, 어떻게 3퍼센트의 성공한 스타트업이 될지 잠들기 직전까지 고민하느라 걱정이 많을 거예요. 전 퇴근하고 나면 회사 생각을 안 하게 되더라고요."

"나도 그래요. 사무실을 나서는 순간부터는 회사 일은 머릿속에서 딱 코드 뽑아두고 아름다운 생각만 하고 아름다운 것만 봐요."

대표가 편애하는 남성 동료 개발자에게 치이고, 유명인사인 갑질 회장님에게 무시당하는 이 밀레니얼 여성 노동자들은 너무나 적절하고 우아한 자신들만의 노동윤리를 통해 거대한 시스템에 보이지 않는 미세한 균열을 만들어 낸다. 언제나 마치 자연스럽게 강요되는 퇴근 후 업무, 잔업, 야근, 특근, 회식은 임금노동자를 회사의 노예로 만들고 만다는 것을 사무치게 잘 알기라도 한 듯, 칼퇴와 퇴근 후 회사잊기를 실천하고 있다.

밀레니얼 세대의 노동관, 이해가 아닌 윤리와 실천의 문제

그런데 회사는 끈질기기 때문에 퇴근 후에도 우리를 계속해서 호출한다. 회사를 생각하고 염려하게 만든다. 그것에 저항하기 위해서는 "아름다운 생각"과 "아름다운 것"이 필요하다. 거북이라든가 "루보프 스미르노바"라든가. 반려동물에 대한 사랑이든 아티스트에 대한 덕질이든, 임금 노예가 아닌 자유로운 존재로 살아가기 위해서는 뭔가 다른 것들이 필요하다.

하지만 그것들은 거창하거나 대단할 필요가 없다. 금요일 저녁 사무실에 혼자 남아 있는데 퇴근한 줄 알았던 대표가 들어온다. 하지만 "사실 야근하려고 남아있던 것은 아니었다." 저녁 아홉 시에 시작하는 루보프 스미르노바 리사이틀 온라인 예매를 위해 회사에서 시간을 때우고 있을 뿐이었다.

기다리는 동안 "고독한 조성진" 채팅방에서 그의 카네기홀 연주사진을 업로드하고 홍콩행 항공권을 예매하면서. 조성진은 들어봤지만 루보프 스미르노바가 궁금하여 굳이 검색해보지 않기를 권한다. 누구에게나 덕질은 숨기고 싶은 것일 테니까.

다만 일의 슬픔이 있지만 기쁨 또한 있어서 우리를 살게 하고 우리 삶을 아름답게 한다는 것은 언제까지나 진리일 것이다. 밀레니얼 세대의 이해 못 할 노동관은 장류진의 소설이 그려내듯 지금의 기술적, 경제적, 문화적 상황에서 기쁨을 찾아내어야만 (그래서 생존해야) 하는 특별한 조건으로부터 온다. 따라서 그것은 이해의 문제가 아니다. 노동의 새로운 윤리와 실천의 문제다.

"사시는 동안 적게 일하시고 많이 버세요." 

 

[노동안전보건활동가에게 듣는다] 노동안전보건활동가로 거듭나기 위해 뒷받침되어야 할 것들 / 2020.03

[노동안전보건활동가에게 듣는다] 

 

 

노동안전보건활동가로 거듭나기 위해 뒷받침되어야 할 것들

-KB오토텍 지회 원종만 노동안전보건부장 인터뷰 

 

 

박기형 / 상임활동가 

 

 

 

 

지난 2월 24일 노안활동의 모범사례로 많이 언급되는 금속노조 충남지부 KB오토텍 지회를 찾아갔다. KB오토텍 지회는 오랜 기간 노동조합의 재생산과 활동의 지속·강화를 고민하였다가, 올해 드디어 집행부의 세대교체를 단행했다. 이러한 세대교체는 사업장의 상황에 따른 것인데, 1990년대 말 이후 신규 입사자가 없었다가 2010년대에 들어서 신규채용이 이뤄졌다. 그러다 보니 조합원 간에 20년의 격차가 발생했고, 노동조합 지도부도 큰 변화 없이 지속해 온 것이다.

몇 년 전부터 정년 문제 등을 고려해 노조 내에서도 지도부 교체를 고민했지만, 사측의 노조파괴에 맞선 일련의 투쟁들이 전개되면서, 세대교체를 충분히 준비할 수 없었다. 이후 2020년에서야 노조 내에서 세대교체를 위한 첫발을 내딛게 되었다. 노안활동에서도 새로운 담당자가 선임되었고, 바로 인터뷰이인 원종만 노동안전보건부장(이하 노안부장)이다.

 

   2019 민주노총 노안활동가 대회에서 발표하는 원종만 노동안전보건부장의 모습이다.


머리만이 아닌 몸으로 익혀가는 노안활동

원종만 노안부장은 2018년부터 노안활동을 시작했다고 한다. 노안위원을 2년간 맡았고, 올해부터 신임 노안부장으로 지회의 노안활동을 담당하게 되었다. 지난 2년 동안의 활동에 대한 후기를 듣고 싶었다. 노안부장으로 활동을 하는 데 도움이 되는지, 본격적으로 노안활동을 하게 된 계기는 무엇이었는지 물었다.

"노안위원을 시작하면서 사업장이 특별근로감독을 받게 되었어요. 근로감독관과 함께 사업장 곳곳을 함께 점검했었죠. 다른 사업장의 경우엔 근로감독관이 사업주와 논의해서, 지적하지 않고 넘어갈 수 있는 부분도 있었을 텐데, 노안부에서 주도적으로 감독관과 사업주에게 문제를 제기하고 위험성을 지적했어요. 그러니까 감독관도 하나라도 더 보려고 하고, 사업주도 더 신경을 쓰게 되더라고요. 그걸 보면서, 노조의 적극적 역할이 중요하다는 걸 깨달을 수 있었죠.

그리고 특별근로감독을 함께 한 경험이 이후에도 도움이 되었던 것 같아요. 금속노조 노안활동가 양성학교에 참여했는데, 거기서 기초부터 응용까지 다양한 내용을 배우잖아요. 현장에서 체감하고서 교육을 들으니 더 잘 이해가 되었어요. 예를 들어, 다른 노안간부들은 '저걸 어떻게 해', '저런 것까지 지적해야 하나'라고 많이들 얘기하세요. 하지만 사소하다고 생각되는 사항들이 큰 위험을 초래하기도 하잖아요. 실제로 사업장을 점검하다 보니, 어떤 게 유해위험요소인지, 어떤 게 산안법상 위반사항인지, 그리고 그걸 개선하도록 어떻게 요구해야 하는지를 느낄 수 있었죠.

정확한 말이나 법률용어로 설명할 수는 없어도, 이게 문제야 또는 이건 바꿀 수 있어 이런 확신을 가질 수 있었던 것 같아요. 교육 내용이 더 잘 와닿고 사업장에 돌아가서도 교육내용을 잘 실천해볼 수 있었던 것 같아요."
 

원종만 노안부장은 지난 2년간 활동 내용 외에도 현장과의 소통에 대한 중요성도 배울 수 있었다고 얘기했다.

"노안위원 2년 차인 2019년도에 사업장에서 근골격계유해요인조사와 위험성 평가를 진행했어요. 그때 한노보연의 손진우 상임활동가가 자문을 맡아주셔서 큰 힘이 되었죠. 당시 노안부에서 주요 업무를 맡되, 조합원의 현장 의견을 최대한 반영하기 위해 '안전보건 지킴이'라는 실행위원을 선정했어요. 각 공정별로 30여 명을 구성했죠. 이 조사들을 진행하면서, 현장을 많이 알게 되었어요.

제가 속한 곳 외에 다른 부서나 라인에서 어떤 작업을 하는지, 어떤 게 위험한지, 어떤 점을 개선해야 하는지 등을요. 그리고 실제 조사를 수행하면서 조사 방법도 배우고, 자료를 정리하는 법도 알게 되었고요. 무엇보다 조사가 조사로 그치는 것이 아니라, 개선과 예방으로 이어질 수 있도록 지속해서 노력해야 한다는 자세도 갖게 되었어요. 그래서 20년도에는 작년에 위험성 평가의 결과를 바탕으로 개선사업을 중점적으로 진행해보려고 해요. 그리고 '안전보건 지킴이'를 상시 운영해서 일상적으로 사업장 내 유해위험요인을 진단하고 개선할 수 있는 현장과의 소통 창구를 내실화하려고 해요."

떠맡듯 시작한 노안활동, 그 뒤에 자리한 산재 경험

활동을 배워가면서 건강과 안전의 중요성을 확인할 수 있지만, 정작 활동을 시작하기 전에는 내 일터에서 건강을 챙기고, 안전을 지킨다는 것이 얼마나 어렵고 소중한 일인지를 알기란 쉽지 않다. 그런 점에서 어떻게 노안활동을 낮은 수준에서라도 시작해보겠다고 마음먹은 것일까 궁금했다.

"처음 노조 간부를 맡은 것은 문체부장이었어요. 그때는 별 고민이 없었던 것 같아요. 문체부장을 제안받은 친한 형이 해낼 수 있을지 고민하며 힘들어했어요. 그때 제가 맡아보겠다고 나섰어요. 그런데 갑자기 '너도 이제부터 노안위원이야'라고 되어버린 거예요. 고민할 틈도 없었어요. 얼떨결에 노조 간부와 노안위원을 겸직하게 된 거죠. 뭔지도 모른 채 시작한 거죠. 만약 그때 '이건 아닌데'라는 생각이 들었으면 그만뒀을지도 몰라요. 하지만 현장에서 안 보이던 게 보이고, 바뀌는 게 보였어요. 그래서 계속해보고 싶다는 마음이 들었던 것 같아요.

돌이켜보면, 저에게도 산재경험이 있었더라고요. 로봇 협착사고였죠. 다행히 심각한 수준은 아니었지만, 병원에서 2주 진단이 나왔어요. 당시 회사 관계자와 함께 갔었는데, 2~3일만 쉬고 나오라고 하는 거예요. 입사한 지 3달 좀 안 되었을 때니까, 더 쉬겠다고 말하는 게 눈치가 보여서 말하지 못했어요. 그런데 당시 노안부장이었고 지금은 부지회장인 안재범 동지가 소식을 듣고 달려와서 문제제기했던 게 기억나요. 2주 이상 충분히 치료를 받고 요양할 수 있도록 하라고요.

'한쪽 손이 아프면 다른 손으로 일하면 되겠지', '조금 참고 일하면 괜찮겠지' 이렇게 생각했던 거죠. 그건 제 잘못이 아니라, 노동자의 위치와 조건을 생각하면 회사가 작업자 탓으로 돌리듯, 노동자 스스로도 개인 책임으로 생각하기 쉬운 거죠. 노조활동, 특히 노안활동을 통해서 노동자의 권리를 쟁취하고 안전과 건강을 지켜내는 일이 얼마나 중요한가를 막연하게나마 느꼈죠. '모르면 빼앗긴다.', '알아야 하고 스스로 맞서서 권리를 주장해야 한다'는 것을요."

그런데도 원종만 노안부장은 직책을 맡은 이후의 걱정과 부담을 토로하기도 했다.

"산재처리 외에도 일상 노안활동이 있잖아요. 다른 지회들에서는 노안부장이 비전임인 경우도 많은데, KB오토텍 지회는 전임이어서, 일상 노안활동과 함께 다양한 것들을 해낼 수 있었던 것 같아요. 그런데 아무래도 저는 배우면서 하다 보니, 이전에 10개면 10개를 다 할 수 있었던 선배들에 비해, 업무가 계속 부하가 걸리는 어려움이 커요. 아직은 배우는 단계라고 생각하고, 더 열심히 해보려고 해요.

이보다 더 어려운 것은 노안위원과 달리, 노안부장은 결정하는 자리라는 거죠. 문제가 있다고 지적하고, 내 할 말만 해버리는 것으로 그칠 수 없어요. 회사와 협상도 해야 하고, 안건에 관한 결정도 내려야 해요. 이에 따른 부담도 확실히 있죠. 그런데도 이걸 이겨내고, 지회에서 유지해온 노안활동의 기풍을 유지해나가야죠."
 
노안활동을 뒷받침하는 건 바로 노조 전체의 관심과 지지다

원칙적으로 산재처리를 하는 기풍을 유지해나갈 것이라고 얘기하며, 원종만 노안부장은 산재처리를 하는 데 있어서, 이전 활동가들의 도움이 크다고 덧붙였다.

"지회에서 산재처리 프로세스를 잘 만들어놨다고 생각해요. 솔직히 처리 프로세스가 갖춰져 있지 않다면, 쉽지 않을 것 같아요. 산재 하나를 신청하고 승인받을 수 있도록 하는데, 상당한 노력과 시간이 투여되잖아요. 자료 준비를 어떻게 하는 게 좋을지 판단도 어렵고, 자료 자체를 준비하는 것도 오래 걸리고요. 그래도 KB오토텍 지회에는 전 노안부장이 명감으로 활동하고 있고, 안재범 동지도 부지회장으로 있다 보니, 조언을 구할 수 있죠.

노조 차원에서 경험 많은 노안활동가가 계속해서 노조 내에서 활동하는 것이 정말 소중한 거로 생각해요. 그리고 관련 사례를 많이 축적한 것이 큰 도움이 되었어요. 신청서류부터 각종 자료가 다 오프라인과 온라인에 보관되어 있어요. 이렇게 축적된 자료를 참고하고 활용해서 산재를 진행할 수 있는 게 큰 도움이 되죠."

활동 경험의 공유와 자료축적이 새내기 노안활동가가 성장하는 데 있어서, 나아가 노조의 노안활동을 유지·강화하는 데 중요하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그런데도 원종만 노안부장은 이러한 모든 요소를 뒷받침하는 건 노동조합 전체의 노안문제에 대한 관심과 지지라고 강조했다. 인터뷰를 마무리하며, 원종만 노안부장은 노안활동의 연속성을 보장하기 위한 시스템 구축의 필요성 또한 언급했다.

"2주 전에 신임간부학교에 참석했고, 노안간부들도 많이 왔었어요. 그때 다른 지회 간부들과 얘기를 나눠봤어요. 그런데 산재처리 관련해서 배운 것들에 대해 회의적인 태도를 보이는 분들도 있었어요. 배웠다고 해서, 사업장에 돌아가 산재처리를 원칙대로 할 수 없다고요. 소속 지회의 지회장과 임원들이 여태 공상처리를 해왔다고 하면서, 지회 차원에서 제동 거는 경우도 빈번하다고요. 한 번 공상처리를 용인하면, 계속 공상처리할 수밖에 없는 어려움이죠. 아무리 좋은 교육을 하고 배운들. 활동가와 지회의 의지가 없으면 실현하기 어렵다는 걸 느꼈어요. 결국 임원과 지회의 분위기가 따라줘야 하는 것이죠.

금속노조 소속 경주의 어느 지회 사례가 인상 깊었어요. 집행부가 바뀌더라도, 노안팀을 해체하거나 완전히 새롭게 바꾸지 않아요. 생뚱맞게 노안활동을 안 하던 사람이 하는 게 아닌 거죠. 이전 집행부에서 노안활동을 해온 담당자들과 노안위원들 내에서 노안팀을 꾸리는 것이죠. 일부 신규 활동가를 충원하겠지만, 지도부와는 독립적으로 노안팀의 활동이 갖는 성격을 감안해, 연속성을 보장하고, 활동가를 재생산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죠. 이런 독립적 운영 시스템을 KB오토텍 지회에서도 잘 구축해 나가보려고 하고, 노안활동 전반에도 자리 잡았으면 좋겠어요."

[현장의 목소리] 수탁법인의 부당해고 방관하는 경기도 각성해야 / 2020.03

[현장의 목소리] 

 

 

수탁법인의 부당해고 방관하는 경기도 각성해야

 

 

 

정경희 / 선전위원 

 

 

 

 

유난히 찬바람이 기승을 부린 2월 17일. 경기도청 앞에서는 '공정한 세상을 만들겠다는 경기도는 제대로 시정을 펼쳐라'는 목소리가 확성기를 통해 울려 퍼지고 있었다. 공공운수노조 경기마을공동체지원센터분회가 해고의 부당함을 알리는 점심 선전전을 진행 중이었다. 피켓팅을 함께 한 후 투쟁 중인 류태희, 장희진님을 천막농성장에서 뵈었다.
  
장희진님은 공동체지원실장으로 업무를 수행해왔고, 류태희 님은 정책지원팀장으로 일해 왔다고 한다. 두 분 다 경기도마을공동체지원센터가 생긴 2015년부터 일하다 2019년 12월 31일로 수탁법인으로부터 고용불가 통보를 받았다고 한다.
 
류태희: "기존에는 마을공동체, 사회적 경제 두 영역을 묶어놓은 사업이었는데 사회적 경제는 공공기관 위탁으로 일자리재단으로, 마을공동체는 민간위탁으로 나뉘게 되면서 사회적협동조합 문화숨, 더좋은 공동체 두 업체가 컨소시엄으로 마을공동체지원센터를 수탁 받게 된 거죠."
 

마을공동체지원센터는 지자체마다 존재하는 것 같은데 어떤 사업이나 활동을 하는지 설명을 부탁드렸다.
 
장희진: "현대사회에서 관계망이 깨지면서 범죄나 사각지대가 생기는데 이런 문제를 행정에서 다 해결할 수 없다는 판단 하에, 구성된 공동체끼리 서로 안전망이 되어주고 그 속에서 관계망이 회복되면서 사회가 건강해지기를 바라는 차원에서 시작했습니다. 경기도에서는 10명 이상이 모이면 공동체라고 보거든요. 그래서 10명 이상의 사람들이 모여 뭔가 의미 있는 사회적 활동을 한다고 평가하면 지원해주면서 컨설팅도 해주고 교육도 해주는 사업을 진행합니다. 또한 영역별로 분야별로 다양한 지원사업들을 진행합니다."
 

지역에서 관계망 형성이라는 것이 장기계획 속에서 지속성을 담보로 진행해야 하는 사업인데 운영주체가 이렇게 자주 바뀌게 되면 실제 현장에서 겪는 어려움은 어떠한지 두 분이 서로 말을 이어갔다.
 
장희진: "사업 특성상 성과가 눈에 보이기 어렵고 시간이 오래 걸려요. 경기도의 한 시군에서는 올곧게 7년을 지원을 하며 그야말로 7년 동안 행정력이나 예산을 들여가면서 성과를 기다리는 반면 전반적인 경기도는 1년 단위로 성과평가를 하면서 계속 점검을 하는 거죠."
 
류태희: "민간위탁제도 자체의 근본적인 한계를 지적하는 분도 계시고, 이게 바뀌지 않는 한 마을공동체지원센터나 사업을 단발적으로 하다 단체장의 의지나 성향에 따라서 엎어지기거나 왜곡하는 우려를 하시더라고요. 사실 센터에는 1세대 운동가뿐 아니라 청년층, 새로운 사람들이 이로운 변화를 만들기 위해 진입하는데, 1~2년이라는 짧은 위탁기간동안은 안정적으로 자기 비전을 가지고 일하기 어려운 조건이죠. 자기전망을 가지고 계속 성장할 수 있는 최소한의 근로조건으로 개선돼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유명무실한 민간위탁 노동자 근로조건 보호 가이드라인
 
정부는 2019.12.04.에 민간위탁 근로자의 근로조건 보호를 위해 위탁기관(공공부문)은 수탁기관(업체)을 모집하고 선정할 때, 반드시 "민간위탁 근로자 근로조건 보호 관련 확약서"를 제출받고, 특별한 사유가 없는 한 제출 내용을 이행하지 않은 경우 계약을 해지할 수 있다는 내용을 포함한 "민간위탁 노동자 근로조건 보호 가이드라인"을 발표했다. 그럼에도 현재 벌어진 상황이 이해가 가지 않았다.
 
류태희: "마을공동체, 도시재생, 사회적 경제, 청년활동, 최근에는 사회적 자본, 사회혁신 등사회를 변화시키는 업무특성을 반영한 중간지원조직에 대한 개념정립, 정의가 필요하고 이것에 맞는 민간위탁관리매뉴얼이 없으면 안 될 것 같아요. 여기에 있는 개개인은 부속품은 아니잖아요. 저희도 지역과 주민들과 관계 속에서 성장하기도 하고, 그 관계를 바탕으로 사업 혹은 활동을 이어나가고 있거든요. 비단 경기도만의 문제가 아니라 전국적으로 시급한 문제이고 행정의 경직된 구조가 아닌 사업의 자율성과 전문성은커녕 생존권도 위협받고 있는 상황에다 사업의 자기결정권도 하나도 없습니다. 지역마다 운영의 구조나 특성은 달라질 수 있다고 생각돼요."
 
수탁법인에서 고용승계를 하지 않은 이유는 무엇이었는지 여쭤봤는데, 질문이 되돌아왔다. '고용승계를 하지 않을 특별한 명백한 사유라면 어떤 것이 있을까요?' 상식적으로 특별한 사유란 직무를 수행함에 있어 공금횡령, 성폭행 등 결정적 사유가 있는 것을 말하지 않나.
 
장희진: "해고자 넷 중 저는 전(前) 법인의 경영진이라는 이유로 면접조차 보질 못했어요. 사실 팀장으로 근무하다가 실장직이 공석이라 승진을 한 케이스였거든요. 그런데 문제제기가 이어지자 두 달이 다 되어가는 시기에 형식적인 면접을 보고 불합격통보를 주더라고요. 그런데 해고자 모두 우선채용 대상자임에도 불구하고 불합격된 이유를 모르는 거예요. 업무를 수행할 수 없는 사유가 있었더라면 저희가 지난 5년동안 업무를 수행할 수 없었겠지요. 저희가 문의했더니 말할 의무가 없다는 것이 법인대표의 답변이었고, 저희는 해고수준에 준하는 잘못을 저지른 적이 없기 때문에 부당해고라고 주장하고 있는 거죠."
 

그러나 이 문제는 어느 정도 예견됐었다고 했다.

류태희: "재작년 12월부터 업무, 인력의 분리, 고용승계 안정화에 대한 내부이슈는 계속 있어왔고, 경기도의 방침 분리는 예상되나 인력과 내용을 어떻게 가져갈지에 대한 결정 자체가 계속 지연되고, 작년 11월 말~12월 초까지 늦어지면서 위수탁공고가 나고 위수탁계약이 12월 19일 체결되면서 고용승계, 우선 고용에 대한 흐름 자체가 너무 촉박하게 진행됐던 거죠. 하지만 경기도는 그 문제를 계속 우려하고 있었기 때문에 위수탁 공고상에도 우선 고용의 방침, 위수탁협약서 안에도 우선 고용에 대한 의무사항을 계속 명시해두고 있었어요. 그런데 신규 수탁기관은 제대로 이행하지 않은 거죠."
 
법인이 정부의 가이드라인을 무시하면서 고용승계를 하지 않고, 경기도는 이런 법인에 대해 계약해지 등 강력한 조치를 취하지 않고 있는 이유가 무엇이라고 생각하는지 의견을 들어보았다.

장희진: "법인입장에서 주요 보직을 맡는 사람들을 교체해서 조직을 쇄신하겠다는 의지, 혹은 법인의 사람을 앉힘으로서 이것들을 장악하려는 심정도 있을 것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마치 민간영역의 중간지원조직 혹은 관례처럼 해왔던 거고, 노동권이라는 건 딴 세상 얘기고, 아프더라도 참아야 되지 않을까가 관행처럼 흘러왔던 겁니다. 그런데 지금은 그런 악행을 좌시하지 않은 직원들이 함께 투쟁을 한 것이고, 오늘부터 생계 때문에 일터에 복귀했습니다만, 다들 그런 문제의식들이 있기 때문에 여기까지 왔다고 생각합니다."
 
해고에 대한 책임 회피와 해결되지 않는 문제들
 
천막농성 29일차, 해고일수 48일차이신데 해고는 살인이라고 얘기할 만큼 해고는 노동자에게 치명적인 조치인데 개인적 생활은 어떠신지, 혹시 가장은 아니신지, 집에서는 어떠신지 어리석은 질문을 던졌다.
 
장희진: "모두 가장이지요. 집에서는 당연히 그만하라고 하죠. 뭐 하는 짓이냐고, 다들 낯선 행동들이에요. 저희뿐 아니라 함께 연대해 준 복귀한 직원들 역시 이런 행동이 생애 처음이에요. 초반에는 뭔가 낯설음에 대한 설레임 때문에 왔다면 어느 순간부터는 이런 노동권이라는 것을 우리가 주장하면서 약간의 생활, 생계에 대한 위협이 점점 다가오니 어떤 형태로든 다른 방식으로 이 투쟁을 이어가야하지 않을까 생각까지 이르게 되더라고요. 함께했던 동료들이 동참해준 투쟁에 감사하고 복귀할 수 있다면 자기자리에서 생활을 유지하면서 할 수 있는 새로운 방식을 생각하기에 이르렀습니다."
 
현 상황을 경기도나 시의원들은 어떻게 대응하고 있고, 점심선전전에는 여러분들이 함께하셨는데 함께 연대해주시는 분들은 어느 정도인지 여쭤봤다.
 
류태희: "도의 입장은 계속 법인의 권한입니다. 행정이 개입하면 법인의 인사권을 침해한다고 하는데, 직책이나 직급의 변화에 대한 인사권이 아닌 고용에 대한 지휘감독의 책임을 다하라는 것인데, 인사권 침해는 말이 안 되는 거예요. 모 도의원이 수탁법인에서 새로운 직원에 대한 모집공고를 내자 싸움에 동참했던 직원들이 생계의 문제로 계약을 맺고 오늘부터 출근했는데 마치 모든 문제가 해결된 것처럼 페이스북에 장문의 글을 썼어요. 지인한테 타결됐냐고 연락이 온 거예요. 세 명의 해고자는 여전히 남아있고, 해결된 것은 아무것도 없는데, 본질을 호도하고 본인에 의해서 해결된 것인 양 말하는 도의원의 태도에 문제의식을 느낍니다."
 
장희진: "중간조직 협의체에서도 찾아오시고 관심을 갖고 있는 것으로 보이고, 저희와 같이 활동가들, 현장에 있는 주민들 내방하셔서 도대체 무슨 일이냐 우리가 신규수탁법인에 들을 때는 이런저런 내용을 들었는데, 내방해서 듣고 보니 그게 다가 아니라고 알고 가시기도 합니다. 마을 활동가들도 관심은 많으나 정보가 고르게 전달되지 않으니 확인, 판단 자체가 어려운 것 같아요. 종종 사실관계를 명확히 아시는 분들은 문제의식을 느끼고 개별적인 지역단위에서 문제해결을 촉구하는 성명서도 발표해주시고 합니다. 오늘 선전전에는 아주대비정규직분들이 함께 해주셨습니다. 노조차원에서 연대투쟁오신 겁니다."
 
투쟁의 끝에 마주할 따뜻한 봄날을 기다리며
 
마지막으로 집이 멀어서 이른 새벽에 일어나 초반에는 철야까지 하셨는데, 천막생활하시면서 육체적, 정신적 건강을 물었는데 서로를 걱정하고 계셨다.
 
장희진: "사실 힘들어요. 자존감도 떨어지고..... 그나마 동료들이 와서 같이 지켜주고 함께 할 때는 이런 감정을 미뤄뒀었나 봐요. 근데 동료들이 들어간 후 한꺼번에 폭발하는 거예요. 텔레비전에서 비슷한 낱말 나오면 눈물 쏟고 대개 힘들더라고요. 저희에게 지속적으로 관심을 가져주시는 것이 좋을 거 같아요. 공동체를 지속가능하게 하는 일을 하며 헌신적인 활동과 품을 내는 사람들이 정치적인 선전 도구에 이용당하지 않고, 건강하게 활동할 수 있도록 제대로 된 실상이 반영된 연구, 공론이 필요합니다."
 
전체 직원이 싸움을 함께하다 빠져 어느 때보다 개인적 소진이 우려되는 시기이다. 주변의 관심과 소통이 위기를 극복할 수 있으리라 생각한다. 말씀처럼 제대로 해결돼서 함께한 모든 직원들과 마음 편히 걸으며 마음을 정리할 따뜻한 봄날을 기대해본다.
 
류태희: "직원들도 복귀는 했지만 마음이 여러 갈래일 거예요. 숨겨왔던 갈등, 상황에 대한 서로 다른 판단 등이 있을 테고. 그래서 이 일이 정리되면 같이 좀 걷자고 한 적이 있어요. 걷는 행위가 굉장히 자기성찰도 되거든요. 서로 위로하고 정리하면서 파하는 자리를 갖자고 했거든요. 저희도 그렇지만 들어간 직원도, 퇴사한 직원도 뭔가 정리할 계기는 있어야 하고, 이대로 살아나간다는 것은 개인에게 굉장히 힘든 일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A-Z 다양한 노동이야기] 신입노동자의 교육기간, '인턴 일자리' 말고 조직차원 고민으로 다뤄져야 / 2020.03

[A-Z 다양한 노동이야기] 

 

 

신입노동자의 교육기간, '인턴 일자리' 말고 조직차원 고민으로 다뤄져야

-전국영화산업노조 후반작업지부 J님, K님 

 

 

 

김지안 / 상임활동가 

 

 

 

 

지난 호를 통해서 인턴노동의 경험을 듣기 위해 출판업, 패션산업에서 일하는 노동자들을 만났다. 전혀 다른 산업이지만, 각 업계가 인턴을 고용하는 공통적인 이유는 만성적인 인력부족을 해결하기 위한 임시적 방편이거나 정직원을 고용하기 전 예비적인 역량 확인 절차가 필요하다는 동기가 있었다.

 

이번 호의 인터뷰이는 2019년 결성된 전국영화노동조합 산하의 영화후반작업노조 조합원들이었다. 영화후반작업에는 여러 가지 필요한 기술과 작업 단계가 있는데, 그 중 음향작업을 담당하는 노동자들이었다. 두 인터뷰이는 현재 일하고 있는 각각의 회사에 인턴으로 채용된 후 3개월의 수습 기간을 거쳐 정직원으로 고용승계된 상황이었다.

지난 3월 신림역 인근에서 인터뷰이 j님과 k님을 만났다. J님은 영화후반작업을 하는 기업 중에서 꽤 큰 규모에 속하는 A 회사에서 일한지 6개월이 안된 상황이었고, k 님은 소규모 업체에서 4년간 근무했다.

 

먼저 영화후반작업이 무엇인지, 어떤 작업과정을 거치는 지 궁금하다

 

k: 보통 영화를 볼 때 대사에 집중하는 경우가 많겠지만, 그 외에도 영화 안에는 우리가 일상생활에서 접하는 것과 동일한 소리들이 입혀져 있다. 촬영장에서는 배우들의 대사가 잡음 없이 녹음되는 게 최우선이기 때문에 촬영본이 저에게 도착하면 아무 소리 없이 대사만 들어있는 상태인 것이다. 영화후반작업은 영화 안의 인물이 내는 소리들, 주변 환경 소음들, 액션효과 등의 모든 소리를 담당하는 작업으로 보면 된다.

 

j: 이 음향작업을 단계별로 나누면, 현장에서 녹음된 소리를 깔끔하게 만드는 대사 파트, 여러 가지 효과음을 주는 이펙트 파트, 기존에 가진 소스로 만들어낼 수 없는 주인공이 문여는 소리나, 발소리와 같은 소리들을 만들어 입히는 폴리 파트, 음향의 공간적인 부피감과 톤을 입혀주는 앰비언스 파트가 있다.

 

작년 영화후반작업노조가 결성되었다. 두분은 시작부터 함께 한 조합원들인데, 어떤 계기로 노조를 만들게 되었는지 궁금하다

 

k: 전체 영화 제작 예산에서 후반작업에 할당되는 비중이 매우 낮다. 영화후반작업 업계 자체가 아마 일하는 사람을 전부 합쳐도 100명쯤이다. 여기서 5년차 미만은 대부분 최저임금 정도를 받는다. 이것도 상황이 나아진 것이고, 최근까지 100만원 혹은 그 이하 저임금을 받는 일도 허다했다. 노조에서 조사했을 때 1개의 회사를 제외하고는 전부다 근로계약서 작성도 안했더라. 퇴직금 등 기본적인 처우도 미비된 회사가 많아 문제의식을 느꼈다.

 

j: 처우가 이런데, 업계 전반이 노동시간이 매우 길다. 일년 중에 반은 10~12시간 씩 장시간 노동을 하고, 반은 정시퇴근을 하는 정도다. 마감을 앞두고서는 더 바빠진다. 작업 일정이 너무 짧게 측정되있는 것도 문제다. 개봉일을 두고 그 안의 여러 일정들이 세팅되어있으니 그 마감일에 어떻게든 맞춰야 한다. 야근을 많이 할 수 밖에 없는 것 같다.

 

극장도 성수기가 있다. 그럼 전체 제작기간이나 작업의 마감일을 맞추기가 더 힘들 것 같은데 어떻게 체감하고 있나

 

j: 보통 1개 작품을 작업하는데 한달 정도의 시간이 걸린다. 성수기 시기에는 영화가 몰리고 하면, 한번에 2개의 작품을 동시에 진행하거나 하는 일도 발생한다. 영화의 제작 상황이나 일정 등에 따라서 작업량이 매우 유동적이니 개인의 삶도 예측하기가 어렵게 된다. 퇴근하고 별도로 운동을 한다던지, 병원에 간다던지, 최소한 잘 휴식을 취한다던지 하는 것이 전혀 불가능한 구조다.

 

k: 우리 회사가 특이하게 자율출퇴근제로 운영되고 있다. 평일에 개인 일정을 보는 등 시간 사용이 자유롭다는 장점이 있지만, 4년 정도 근무한 입장에서 단점이 더 많다고 느낀다. 우선 음향작업이 전체 영화의 제작 안의 한 파트라는 점에서 마감에 대한 압박도 크고, 마감일에 가까울수록 노동시간도 늘어나게 된다. 그러니 사실상 조금 늦게 출근해서 밤늦게까지 일을 하는 정도라고 보면 된다.

 

각각 독립된 스튜디오 칸에서 작업이 이루어지는데, 작업 자세도 문제지만 종일 소리를 듣는 직업이니 청각질환이나 정신적 스트레스도 우려된다

 

j: 맞다. 영화관의 음향시스템과 동일한 환경으로 맞추고 작업을 하기 때문에 후반작업자들이 일하는 환경은 작은 극장 같은 느낌의 1인 스튜디오다. 음량도 정확히 체크하기 위해서는 영화관에서 듣는 소리와 동일하게 두고 작업을 해야한다. 그러니 이명 같은 건 워낙 잦은 문제다. 종일 큰 소리를 듣기 때문에 작업을 하고 나면 귀도 먹먹하고 힘들다. 또 같은 자세로 장시간을 앉아 있다 보니 다들 허리나 목도 전반적으로 아프고 좋지 않다.

 

k: 액션영화의 경우, 효과음도 많고 음량도 크기 때문에 더욱 힘든 것 같다. 아직 주변에서 산재 신청했다는 분은 본적이 없다. 업계를 떠날 각오를 하고 신청하는 사례를 한번 보긴 했는데, 그 외에는 못 봤다. 산재 신청을 하는 것에 대해서 업계 내부에서 낙인이 워낙 심하다.

 

인턴노동에 대해 질문하려 한다. 두 분은 어떤 경위로 인턴으로 일하게 됐나.

 

j: 업계가 매우 좁다. 공채를 하는 경우는 잘 없고, 대부분 지인을 통해서 입사한다. 처음 인턴으로 일하게 되었을 때, 계약서를 작성했는데 계약서에는 3개월의 인턴 기간과 더불어 야근을 할 수 있고 본 급여의 90%를 지급한다고 명시되어있었다. 평균적으로 정직원 초봉이 최저임금 정도 되는데 포괄임금제라 야근 등 수당에 대한 지급도 없다.

 

k: 영화후반작업 일이 궁금해 대학 선배를 통해 채용에 응하게 되었다. 다른 일자리도 있었지만 영화 일이 해보고 싶어 인턴직임에도 일을 시작했다. 당시에 주변 사람들이 인턴 일자리가 고용도 불안정하고 처우도 좋지 않으니 걱정을 많이 했었다. 그럼에도 해보고 싶은 직업이고 업계가 공채도 잘 없고, 일자리도 잘 나오지 않아서 어쩔 수 없는 것이라 생각했다.

 

인턴으로 근무하면서는 주로 어떤 일을 했나.

 

j: 이전에는 오자마자 실무에 투입된 경우도 있다고 들었는데, 나는 채용된 당시에 회사가 덜 바쁜 시기였다. 덕분에 3개월 간 충분히 교육기간을 거칠 수 있었다. 그런데 회사가 ()시와 ()시에 나눠져있다. 선배들은 모두 ()시 사옥에 있고 또 일의 특성상 모두 개별 스튜디오에 들어가 일을 한다. 일과 중에도 서로 볼 일이 잘 없다. 나와 동기 인턴 2명만 ()시 사옥에 있었는데, 누가 작업을 시켜서 결과물을 내도 아무도 컨펌을 안해주고 사실상 방치된 기간이기도 했다.

 

k: 3개월 동안은 거의 참관하는 형식으로 있었다. 그리고 한 영화를 담당하는 것은 못하고 특정 장면만 담당한다던지 하는 식으로 일했다. 영화후반작업 일 자체가 전공자여도 실무는 회사에서 거의 새로 배우는 측면이 커서, 교육의 느낌이 강했다.

 

인턴으로 일했던 시기의 경험에 대해 스스로 어떻게 평가하는지 궁금하다.

 

j: 특이한 건, 거의 모든 후반작업 업체들이 경력직을 제외하고서는 인턴 기간을 무조건 거치는 방식으로 신입을 고용한다. 듣기로는 어느 회사가 인턴으로 3개월 일하고 정식 채용하기로 했는데, 마음에 막상 마음에 안 드니 몇 달 더 수습기간을 거치자고 한 일도 있다고 한다. 내 경험으로는 인턴기간이 꼭 필요할까 의문이 든 것은 사실이다. 인턴 일자리의 처우도 그렇고, 바로 실무에 투입되는 것이 좌충우돌을 겪더라도 빨리 적응할 수 있는 길이라 생각한다.

 

k: 당시에는 첫 직장이고 정말 열심히 하고 싶다는 마음이 강했다. 주변에서도 인턴으로 일한다고 하니 걱정이 많았지만, 당시에는 음향 작업 자체가 좋았다. 시간이 흐른 지금, 인턴제도가 너무 불안정하고 열악한 처우였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회사가 자율출퇴근 제도를 시행하고 있는데, 정직원들이 오후에 출근해 밤에 퇴근하는 패턴으로 일하는데, 인턴은 10시부터 7시가 근무시간이었다. 그래서 7시에 퇴근하기도 눈치가 보였고, 옆에서 더 보고 배우고 싶다는 생각에 일부러 야근을 하기도 했다. 지금 생각하면 이러한 기준들이 명확했어야 하는 것 같다. 그걸 처음 들어온 신입직원, 그것도 인턴인 경우에 조율하기가 어렵기 때문이다.

 

조직문화에 대해서도 궁금하다. 일터 괴롭힘 등 문제도 있었다고 들었는데, 인턴 노동자에게 이런 조직문화는 더 어려운 조건이 되지 않을지 궁금하다.

 

j: 업계에 5년차 이상 직원이 거의 없다. 일한지 아주 오래된 시니어급 아니면 대부분 5년 미만의 직원들로 이루어져 있다. 영화후반작업은 외주 프리랜서들까지 다 합쳐봐야 100명도 안되는 좁은 판이다. 한 회사의 문제라기보다 업계 전체가 근속년수가 너무 짧고 이직률도 높다. 그런 배경으로 저임금, 장시간노동과 같은 처우상의 문제들도 있지만 말한 것처럼 괴롭힘 등 상사의 막말 사건, 물건을 집어 던진다던가 하는 일도 많았다. 최근에는 업계를 떠나 사회 분위기도 달라졌고, 신고할 수 있는 채널도 많아져 나아지긴 했다.

 

회사의 입장에서는 어떤 업계나 검증된 사람을 채용하고 싶은 것은 당연하다. 그러나 경력직이 아닌 신입직원을 뽑을 때, 면접과정을 거치더라도 필요한 역량들을 확인한다는 것은 사실 어려운 일이다. 그러니 우선 인턴으로 채용을 해 실력도 확인하고, 정식 채용하기 적합한 인물인지 확인하는 절차를 갖고 싶은 것이다. 그러나 이 기간은, 반대로 인턴의 입장에서는 검증 기간 동안의 실적과 태도, 적응력 등에 이 채용의 여부가 달린 시간이기도 하다. 이만 퇴근을 하라고 해도 회사에 남아있었던 k님의 비/자발적인 야근이 아마 인턴 기간 동안의 불안정함과 심리를 잘 드러내주는 대목이 아닐까.

물론 실제로 실무에 투입되기 전 필요한 업무에 필요한 지식과 기술, 절차들을 익히는 기간은 모든 직원들에게 주어질수록 좋은 일이다. 그러나 이 기간이 정식 채용 이후 신입 직원에 대한 조직 차원의 투자, 즉 교육 기간이 못하고, 기업의 기회비용을 인턴의 형태로 노동자에게 전가시킬 때 그가 느낄 불안정함, 저임금, 적응에 대한 압박 역시 쉽게 상상할 수 있다. 이렇게 검증 기간내지는 신입직원에 대한 교육기간을 개별 인턴 노동자의 힘과 노력에 대한 문제로 전화시킬 것이 아니라 조직이 함께 풀어가고 투자할 문제로 다뤄져야 할 것이다.

 

[동아시아 과로사통신] 한국은 과로자살이 뜨거운 이슈입니다 / 2020.03

[동아시아 과로사통신] 

 

 

한국은 과로자살이 뜨거운 이슈입니다 

 

 

 

최민 / 상임활동가 

 

 

 

대만과 일본, 한국의 독자 여러분 반갑습니다. 저는 한국노동안전보건연구소에서 일하는 활동가입니다. 동아시아는 역사적, 문화적 공통점을 많이 가지고 있습니다. 안타까운 공통점 중 하나는 노동시간이 길고, 과로사와 과로자살이라는 말이 일상적인 곳이라는 점입니다. 그래서 한국과 대만, 일본의 노동인권과 노동자 건강을 위해 활동하는 NGO들이 모여 '동아시아 과로사 감시'를 시작하기로 했습니다.

세 나라의 과로사나 과로자살 사건을 공유하면서, 서로가 처한 상황의 공통점과 차이점을 발견하고 싶습니다. 이를 통해 노동자들이 스스로 일터의 주인이 되어 과로사나 과로자살이라는 말이 사라지도록 만들기 위해 함께 할 수 있는 일을 찾아가 보려고 합니다.

   "동아시아 과로사 통신"을 통해 공통적인 문제 양상을 발견하고, 동아시아 국가 차원에서 공동의 대응을 모색할 수 있기를 기대한다.

 

첫 번째 이야기는 한국의 '과로자살'로 시작하려고 합니다. 한국에서는 과로사 못지않게, 과로자살이 뜨거운 이슈입니다. 과로사는 조금씩 변화를 기대해보고 있습니다. 2018년 근로기준법 개정으로, 그전까지 매주 68시간까지 합법적으로 일 시킬 수 있던 조항이 바뀌어 이제 주당 노동시간이 52시간으로 제한되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운수업이나 감시 업무 등은 여전히 이 조항의 예외가 되어 무제한 노동을 시킵니다. 결국 많은 택시운전기사나 경비노동자들이 뇌심혈관질환으로 사망하고 있습니다. 연장노동시간 제한이 엄격해지자, 노동강도가 높아진 일터도 많습니다. 여전히 남은 과제가 많습니다.

그에 비해 과로자살은 최근에야 관심을 받기 시작했습니다. 한국은 자살률이 매우 높은 나라입니다. 2018년 총 1만3670명이 자살로 사망했습니다. OECD 평균 자살률의 2배가 넘습니다. 교통사고사망자 수의 3배에 달하는 숫자입니다. 한국의 자살률은 동아시아 경제위기가 있던 1998년 급격히 증가했고, 그 뒤 신자유주의 체제가 본격적으로 도입된 이래로 줄어들지 않고 있습니다. 뚜렷한 사회경제적 변화 상황에서 자살률이 크게 늘어났는데도, '노동자들이 일터에서의 괴롭힘과 스트레스 때문에 자살하고 있다'는 인식은 최근에야 높아졌습니다.

한국 정부의 자살예방대책 역시 사회적 원인을 찾아 해결하기보다 자살에 대한 인식 개선, 자살예방을 위한 홍보와 정신보건 서비스 강화, 정신의학적 고위험군 관리에만 맞춰져 왔습니다. 사회적으로 자살자는 '유리 멘탈'이라는 낙인이 강해 일 때문에 발생한 자살을 업무상 재해로 인정하는 경우가 별로 없었습니다.

하지만 점점 더 많은 노동자의 자살이 언론에서 다뤄지고 있습니다. 2019년 연말과 2020년 연초에도 사회적으로 이슈가 된 과로자살(Karo-jisatsu)이 여러 건 있었습니다. 여기서 우리는 '장시간 노동'뿐 아니라 업무과정에서 발생한 과중한 스트레스로 인해 노동자가 선택한 자살을 모두 과로자살이라고 부르고 있다는 점을 먼저 말씀드려야겠네요.

이런 정의는 먼저 과로사와 과로자살이 이슈가 된 일본의 사례를 따른 것입니다. 사실상 한국에서 하는 과로자살은 '업무 관련성 자살'(Work-related suicide)과 같은 말입니다. 2019년 12월 5일, '중증장애인 지역맞춤형 취업지원' 시범사업의 동료지원가였던 25살 뇌병변장애인 설요한씨가 스스로 목숨을 끊었습니다.

취업을 원하는 중증장애인 참여자를 발굴하고 상담을 제공하는 역할이었습니다. 그에게는 한 달에 60시간 일하면서 4명의 참여자를 발굴해서 한 명당 5번씩 상담을 해야 한다는 목표가 주어졌습니다. 임금은 고작 66만 원이었습니다. 사업을 주관한 공공기관은 중간 실사를 진행하겠다면서 실적을 채우지 못하면 그 동안 받은 임금 일부를 반납하라고 압박했습니다. 실적 채우랴 실사 준비하랴 부담이 컸던 설요한씨는 동료들에게 미안하다는 문자를 남기고 생을 저버렸습니다.

그런가 하면 2019년 11월에는 42세의 경마 기수가 자살했습니다. 한국에는 공식 경마장이 세군데인데, 그 중 부산경남경마장에서만 지난 10년간 7명이 자살했습니다. 이번에도 그 경마장이었습니다. 문중원씨는 경마장 운영과 관련된 비리를 고발하고, 말을 타다 다쳐도 보상도 받지 못하며, 위험한 말이나 부당한 지시를 거부할 수 없는 기수의 현실을 알리는 유서를 남겼습니다. 그의 고용상 지위가 노동자가 아니었기에 통계상 산업재해로 계산되지 않겠지만, 우리는 그의 죽음 역시 '노동자가 일 때문에 선택한 과로자살'이라고 생각합니다.

우리는 조금은 달라 보이는 두 사건을 모두 과로자살이라고 부릅니다. 일터에서 노동자의 권리가 보장되지 못하고, 성과 압박과 경쟁 구조에 노동자가 벌거벗은 채 던져져 발생한 사건이기 때문입니다. 이런 극도의 스트레스가 무기력과 절망감으로 이어지는 순간 노동자 자살은 어디서든 발생할 거라고 생각합니다.  

우리는 이런 문제가 동아시아만의 문제라고 보지는 않습니다. 미국의 직장에서 벌어지는, 총기 난사 후 자살 사건이나 프랑스에서 대규모 구조조정 이후 연달아 발생한 자살 사례들도 같은 맥락에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이런 상황은 플랫폼이다, IT 혁명이다 하면서 노동자가 점점 더 개별화되는 지금, 더 많아지지 않을까하는 우려도 듭니다. '동아시아 과로사 감시'가 이런 걱정스러운 상황을 바꿔나가는 작은 힘이 되기를 기대합니다.

[산재보험 톺아보기] 노동자 건강을 위협하는 산재보험 민영화 / 2020.03

[산재보험 톺아보기] 

 

 

노동자 건강을 위협하는 산재보험 민영화

 

 

 

김형렬 / 노동시간센터 

 

 

 

 

우리나라에서 산재보험을 운영하는 보험자(보험회사)는 근로복지공단이다. 우리나라 산재보험은 1963년에 제정된 이후, 1964년에 노동청 출범과 함께 시행되었고, 1995년부터는 국가에서 운영하던 산재보험을 근로복지공단에 위탁하여 운영하고 있다. 일본은 국가에서 직접 관리운영하고 있고, 오스트리아, 독일, 프랑스 등이 우리와 유사한 공단 중심의 공공운영을 하고 있다. 그러나 미국의 일부 주와 몇몇 나라에서는 민간에서 산재보험을 운영하고 있다. 그동안 효율성, 포괄성 등을 중심으로 산재보험의 운영체계에 대한 논쟁은 지속되어 왔다. 국내에서도 산재보험의 운영을 민영화하자는 주장이 민간 보험사를 중심으로 이루어지고 있다. 새로운 시장을 창출한다는 주장과 공공 운영의 경직성을 근거로 정부에서도 구체적인 도입 방안을 논의한 적도 있다. 산재보험을 민간에서 운영하게 된다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 그동안 산재보험 민영화에 대해 다양한 논의와 부적절함에 대한 합의가 있었지만, 여전히 이러한 시도는 금융자본에 의해 계속되고 있다.

산재보험 민영화를 주장하는 논리

산재보험 민영화를 주장할 때 가장 먼저 이야기되는 근거는 산재보험이 사회보험으로서의 속성을 갖추지 못했다는 것이다. 산재보험은 사업주의 보험으로 국가가 법으로 제도화한 의무보험에 불과하며 이미 사회보험으로서의 산재보험이 개별실적요율제와 같은 민영보험의 방식을 활용하고 있고, 사회보험임에도 강제가입에서 누락된 다수의 노동자가 있어, 사회보험의 기능에 이미 한계가 있음을 제시한다. 즉 민영보험의 기능이 존재한다는 주장이다.

다음으로 민영보험사의 운영능력이 더 있다는 주장이다. 다원적 운영체계를 통해 독점관리체계의 경직성을 줄이고 개인맞춤형의 개별성 향상의 효과가 있을 수 있고, 경쟁체제 도입으로 비용절감과 성과향상을 가져올 수 있다고 주장한다. 이때 성과향상은 불필요한 급여지급을 줄이는 방식의 효율 추구를 의미한다. 관리운영 효율화는 보험료 인하를 가져올 수 있고, 보험료 산정에서도 원가분석, 개별성 강화 등을 통해 보험료 인하를 가져올 수 있다고 주장한다. 마지막으로 사회보장이 노동의욕 위축, 경제 성장저해를 가져온다는 주장이다.

 

 사회보험으로써 산재보험, 산재 노동자의 재활과 복귀를 위한 여러 가지 공공적 프로세스가 필요하다.



민영화 도입시 나타날 문제점

민영화를 도입할 경우 드러날 여러 문제를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첫째, 산재보험의 사회보험으로서의 포괄성을 해친다. 단지 산재 노동자의 치료뿐 아니라 재활과 직장 복귀, 예방이라는 포괄적 목표를 침해할 가능성이 크다. 민영 보험에서는 재활과 직장복귀, 예방의 역할은 관심 밖의 문제다. 민영보험에서 생각하는 산재보험은 치료의 문제에 한정된 것이고, 민영화가 되더라도 예방, 재활의 문제는 공공이 담당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둘째, 보험가입자를 철저히 개별화하여 사회보험이 가질 수 있는 소득재분배 효과를 무력화하고, 이로 인해 보험의 수혜가 필요한 대상자의 가입이 오히려 축소될 위험이 있다. 보험가입자의 개별화는 업종별 요율제, 개별실적요율제 강화를 통해 고위험 업종과 사업장에 대한 보험료 부과를 높이고, 상대적으로 산재발생위험이 낮은 업종과 대기업에게 보험료 부과를 줄이는 정책이다. 이로 인해 보험의 필요성이 높은 고위험 업종에서는 높은 보험료 부담으로 인해 보험가입이 어려워지는 문제가 발생할 수 있다.

셋째, 민영관리체계의 효율화는 급여의 축소를 의미하며, 오히려 일반적 관리 비용은 공공운영에 비해 높을 수밖에 없어, 실제적인 효율에 도달하기 어렵다. 민영보험의 관리 비용은 모집인의 활동비용, 보험회사 간 판매경쟁 유발로 광고 및 선전비용 그리고 영리기관으로서 이윤 확보 등이 필요하여 증가할 수밖에 없다. 이밖에 민영화 주장의 핵심인 관리체계의 다원화는 체계의 산만성으로 미가입 사업장이 증가할 가능성이 높다.

이러한 우려 지점에도 산재보험 민영화 주장은 보험업계를 중심으로 지속적인 요구가 있었고, 앞으로도 지속될 가능성이 있다. 적어도 관리운영체계를 민간과 경쟁체제로 운영하자는 주장과 사회보험과 보완적 형태의 민간 산재보험을 도입하자는 주장이 지속될 가능성이 있다. 민간에 의한 운영체제의 핵심적 주장은 완전 민영화보다는 엄밀한 의미에서의 운영주체의 다원화에 있다. 근로복지공단의 독점 운영체제가 아니라 민간에서도 산재보험을 운영하여 보험가입자의 선택의 자유를 보장하고, 경쟁체제 도입으로 운영의 효율을 가져오자는 주장이다. 운영체계 다원화는 경쟁체제로 인한 관리운영비 감소가 아닌 증가가 우려되며, 가입자 이원화 문제로 민영보험사는 위험이 낮은 사업장을 선호할 가능성이 커서 공공운영의 재정적 어려움을 야기할 수 있으며, 급여 축소로 질 향상을 오히려 저해하거나 산재예방과 재활 사업의 축소를 야기할 위험이 크다. 
 

공공이 운영하는 산재보험이 바람직하다

산재보험 제도 본연의 역할을 수행하기 위해서는 공공이 운영하는 사회보험 형태가 바람직하다. 산재 발생을 줄이는 예방정책과 산재노동자의 장애를 최소화하고 직장복귀를 촉진하는 재활사업 그리고 모든 기업이 산재가입을 쉽게 하고 급여를 신속하고 적절하게 확보할 수 있어야 하고, 사회 총비용의 감소와 효율을 위해서도 사회보험으로서 공적 기관에 의한 관리운영체제가 유지될 필요가 있다. 여러 나라에서 다양한 제도 변화 과정을 거쳐 사회보험으로 정착한 것 자체가 사회보험으로서 산재보험이 가장 효율적일 수 있음을 보여주는 증거라 할 수 있다. 사회보험으로서의 산재보험이 구축해 온 예방-보상-재활의 과정을 통해 재해 발생을 줄이고, 장애를 최소화함으로써 재정 안정성을 확보할 수 있다.

민간 보험회사의 새로운 시도와 우려

민간 보험회사에서는 특수형태근로자의 산재보험 적용 범위 확대에 따라 산재보험 가입을 해야하는 보험모집인에 대해 자사 보험에 가입하게 하고 산재보험 가입을 포기하게 했다. 왜 내가 다니는 보험회사를 두고 산재보험을 가입하느냐는 주장이었다. 노동자 개인에게 선택의 자유를 주어 더 좋은 질의 민간보험을 선택하게 하겠다는 주장을 연이어 하고 있다. 보험모집인의 자사 가입 주장의 논리는 예방, 재활을 포괄하는 사회보험의 역할을 고려하지 않은 매우 협소한 시각의 접근이다.

또한 실제 급여에 있어서도 비급여 영역의 확대, 장해보상 등을 적극적으로 추진하고 있는 현재의 산재보험에 비해 우수하다고 볼 수 없다. 실손 보험 등에서 추진하고 있는 공공 사회보험의 보완적 역할을 하겠다는 시도 역시, 사업주 비용 부담이 늘어나는 만큼 실제 사회적 혜택으로 이어질 가능성이 사회보험에 비해 낮을 수 밖에 없다. 사업주가 비용 부담을 늘려야 한다면 민간보험 가입이 아닌 현재 산재보험의 급여의 범위와 규모를 더 늘리는 방향의 접근이 효과적일 것이다.

근로복지공단의 개선 방향

민영화 반대의 주장이 현재 근로복지공단 운영의 문제를 덮어 버려서는 안 된다. 공공운영기관의 존립근거가 재정 효율에 있지 않고, 충분한 보상과 이전 생활로의 복귀, 노동력 회복에 있음을 잊지 말아야 한다. 이를 위해 승인과 종결 중심의 판단을 위한 행정을 대폭 축소하고 산재노동자의 효과적인 치료와 요양이 이루어질 수 있도록 하고, 재활과 직장복귀, 예방을 위한 서비스와 행정이 확대될 수 있도록 업무 효율을 높이는 노력이 지속되어야 한다. 근로복지공단이 개별실적요율제와 같은 개별화, 효율화에 집착할수록, 경영효율을 주요한 운영목표로 정할수록 민영화 주장과 위협은 더해질 것이고, 스스로 사회보험 운영자로서 사회보험의 성격을 강화하는 방향으로 변화를 시도할 때 민영화 시도는 줄어들고, 공공기관으로서 존재의 의미는 더욱 부각될 것이다.

특집3. '평등한' 노동안전보건을 위한 요구, 일터에서의 성중립화장실 / 2020.03

'여자처럼' 꾸미고 '여자처럼' 말하는 일은 정현 인생에 없다. 그러나 회사 사람들은 정현의 성별을 의심하지 않는다. 내 주변에 성소수자는 없다고 믿으니까

 - <퀴어는 당신 옆에서 일하고 있다>(오월의봄, 2019) 중에서

 
위의 문장에서 나오는 '정현'이란 사람이 바로 나다. 먼저 내 소개를 하자면 나는 이력서 성별란에 '여자'라고 적히고, 주민등록번호 뒷자리가 2로 시작하는 '남자'다. 다시 말해서 트랜스젠더 남성이고 30년 전에 여자로 이 세상에 태어남을 '당'했다. 고등학생 시절, 처음으로 내가 가지고 태어난 성별과 실제로 느끼는 성별이 불일치하다는 '젠더 디스포리아(성별불쾌감)'을 경험했다. 이후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나서 나는 트랜스젠더 남성으로 정체화했다. 현재는 성소수자인권 단체인 행동하는성소수자인권연대의 노동권팀과 트랜스젠더퀴어인권팀에서 활동하고 있기도 하다.

트랜스젠더 남성의 화장실 이야기  

 

성중립화장실의 표지판


본격적인 이야기에 앞서 트랜스젠더 남성으로서 겪었던 일화 몇 개를 소개하고 싶다. 첫 번째 일화는 어떤 학원에서 일할 때였는데, 퇴근시간 후 아무도 없는 줄 알고 남자화장실에 들어갔다가 회사 동료랑 마주쳤던 적이 있었다. 다음 날 팀장님과 면담할 때, 내가 트랜스젠더 남성이고 퇴근시간 이후라 아무도 없는 줄 알고 남자화장실을 사용했다고 커밍아웃을 했다. 다행히 그 팀장님은 자신의 주위에도 퀴어가 있는 엘라이(성소수자 지지자)셨고, 팀장님께서는 잘 넘겨주셨다.

두 번째로 가장 최근에 다녔던 직장 이야기다. 장애인 인권단체였는데 입사한 지 한 달도 되지 않아 같이 일하는 센터 활동가들에게 커밍아웃을 했다. 나는 내가 트랜스남성이며 나를 남자로 대해 달라고 했는데도, 나를 여자로 대하거나 나를 여자로 가정하고 이야기하는 걸 들은 적이 여러 번 있었다.

또 장애인 당사자이기도 한 동료 활동가들은 그들의 활동지원사와 같이 사무실에서 지내는데, 어느 날 장애인인권활동가들이 모이는 행사가 열렸다. 그곳은 내가 트랜스남성이라는 사실을 아는 사람이 많았지만, 내가 남자화장실에 들어가려 하자 한 활동가의 활동지원사가 여기는 남자화장실이라고 막아 세웠다.

일터에서의 평등, 젠더분리화장실만으로 가능할까?

트랜스젠더 남성으로서 노동을 해오면서 많은 어려움이 있었지만, 그중에서도 '화장실'은 중요한 문제였다. 최근 몇 년간 성소수자의 화장실의 이용 또는 성중립화장실에 대한 사회적 합의는 여러 가지 측면에서 어려움을 겪었다.

지난 2015년, 강남역 인근 상가 화장실에서 한 여성이 살해 당하는 사건이 있었다. 많은 페미니스트의 분노로 현재 페미니즘 운동과 담론이 활성화됐지만, 한편에서는 사건 이후 성중립화장실에 대한 문제도 제기되었다. 당시 서울시는 모든 공중화장실을 남녀 분리하겠다고 발표했는데, 트랜스남성인 나는 그 말을 듣고 "역시 세상은 시스젠더(타고난 생물학적 성과 젠더 정체성이 일치하는 사람) 중심이구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지금은 법적 성별을 정정하기 위한 호르몬 치료를 시작했고 머리도 짧아서 남자화장실에 들어가도 큰 문제는 없지만, 그 당시만 해도 목소리를 내면 톤이 높아 패싱이 깨져 버리는 상황이었기에 외부에 있는 화장실을 사용한다는 것은 상상할 수조차 없었다.

 

화장실과 관련된 한 가지 일화를 더 얘기해 보려 한다. 몇 년 전, 외출해 활동을 하고 있었는데 급히 화장실을 가야 하는 상황이 생겼다. 그때 남자화장실이든 여자화장실이든 사람이 많은 상황이었는데, 어느 곳을 가야 할지 무척 고민이 되었다. 과거에 내가 여자화장실에 들어가면 사람들이 잘못 들어온 줄 알고 다시 나가서 표지판을 확인하고 들어오는 경험이 여러 번 있었고, 트랜스젠더가 받아들여지지 않는 사회에서 남자화장실을 들어가는 것 또한 어려웠다. 결국 나는 2시간 넘게 화장실을 가지 못하고 참았다.

이렇게 트랜스젠더들은 일터 화장실이나 공중화장실을 이용할 때, 어느 곳에 내가 속할 수 있을지를 알 수 없는 상태에서 스트레스를 많이 받는다. 사회의 모든 시스템이 젠더이분법을 기준으로 구성되어 있기 때문이다. 앞서 개인적 경험을 들어 설명했지만, 이는 트랜스젠더 남성인 나만의 문제가 아니다. 비시스젠더들이 일하거나 외부활동을 할 때 화장실을 사용하지 못해서 방광염 등의 질환에 걸리는 사례를 주변에서 자주 접하곤 한다.

여전히 대한민국의 건물 중 상당수는 남녀구분이 없는 화장실이 자리하고 있다. 특히 오래된 건물이나 일반 상가의 경우에서 흔히 볼 수 있다. 이때 젠더분리된 화장실이 필요하다는 요구가 제기되기도 한다. 하지만 과연 젠더분리된 화장실이 일터에서의 평등을 온전히 실현하도록 해주는가? 나와 주변의 경험에 비춰볼 때, 남녀로 구분된 화장실 또한 성별이분법에 근거하고 있는 건 아닌지 묻지 않을 수 없다. 화장실 접근에 있어서 불평등 문제는 어디서부터 해결해나갈 수 있을까? 다시 말해, 화장실이라는 일상공간을 안전하고 자유롭게 누릴 수 있는 권리를 보장받는 일은 무엇으로부터 출발할 수 있을까?

회사생활을 하는 나는 오늘도 내가 일하는 사무실이 있는 층의 '여자'화장실을 사용하지 못하고 다른 층의 '남자'화장실을 사용하거나 다른 건물의 '남자'화장실을 사용한다. 나는 바이너리 트랜스젠더(본인의 성별정체성을 남성 혹은 여성으로 규정하는 사람)라 이렇게라도 대안이 있지만, 논바이너리 트랜스젠더(본인의 성별정체성을 남성 또는 여성과 같이 이분법적으로 규정하지 않는 사람)의 경우에는 더 복잡해진다. 우리들은 언제나 화장실 앞에서 어느 곳에도 속하지 못하는, 그래서 발걸음을 돌리고 자꾸만 망설이게 되는 '젠더 디스포리아'를 느끼게 된다.

모든 사람이 평등하고 안전하게 누릴 수 있는 공간을 바라며  

 


그동안 화장실 이용에 배제된 당사자로서, 성중립화장실에 대한 담론을 보며 고민이 들었던 것은 성중립 화장실의 필요성과 성별분리 화장실이 제기된 맥락 사이에서 논점이 자꾸만 흐려진다는 것이다. 이를테면 성중립 화장실에 대해서 그것이 성폭력 위험을 더 조장하는 것 아니냐는 반문 또는 성중립화장실을 만들기 전 성별 분리부터 해야 한다는 주장 등이 제기된다. 그러나 일터나 일상활동 속에서 성폭력을 예방하고자 할 때, 젠더 분리화장실을 설치하는 것이 과연 안전한 일터와 일상을 만드는 적합한 대책일까?

어쩌면 이 문제는 단순히 화장실 이용의 대상을 규정하는 문제로 국한되지 않는 게 아닌가 싶다. 이용 대상의 기준을 나누는 우리 사회의 성별이분법과 그로부터 비롯되는 젠더불평등이 우리의 일터와 일상공간에서 우리의 안전을 위협하고, 우리의 건강을 저해하는 것이 아닐까.

이런 점에서 화장실 이용에 관한 평등은 다음의 요구로부터 시작될 수 있을 것이다. 모든 사람이 편하게 이용할 수 있는 화장실, 바로 성중립화장실 말이다. 상대의 젠더가 무엇이든 상관없이 편하게 화장실을 사용할 수 있는 성중립화장실의 형태는 생각보다 무척 다양할 수 있다. 그러니 평등한 화장실의 형태란 무엇일지 상상하고 실험해 보는 것, 누구든 배제되지 않는 화장실을 생각해 보는 것, 나름 발칙하고 재밌는 일이 되지 않을까. 이때 그 상상과 실험은 일터에서 우리가 공유하는 평등에 대한 감각을 바꿀 것이다.

특집2. 이동노동자의 화장실 접근권 문제 / 2020.03

[모두를 위한 화장실과 일터의 평등②] 

 

 

 

이동노동자의 화장실 접근권 문제 

 

 

 

재현 / 운영집행위원 

 

 

 

이동 노동자는 대리운전 기사, 택배 기사, 가전제품 설치·수리 기사, 방문 교사, 집배원, 배달원, 방문 판매원, 방문 점검원 등과 같이 정해진 장소에서 일하지 않고 이동하면서 업무를 수행하는 노동자들을 말한다.

최근 산업 구조와 환경의 변화로 플랫폼(platform)을 기반으로 노동 및 서비스의 수용과 공급이 연계되는 방식을 통해 생산과 소비가 조직되는 디지털 특수형태 노동자가 점차 늘어나고 있는데, 플랫폼 노동이 이동 노동자와 결합하는 양상을 보인다.

이동 노동자의 규모

정부 부처나 연구기관의 자료, 언론 매체를 통해 드러난 업종별 이동 노동자 수를 <표 1>에 정리하였다. 포함되지 않은 노동자들도 있어 명확한 규모를 알기는 어려우나 대략적인 규모를 가늠해 볼 수 있다.

 

<표1> 이동노동자의 규모를 추산했다.

 

기본적인 생리 현상도 해결하지 못하는 현실

이동 노동자들은 열악한 노동조건을 견디며 일하고 있는데, 이 글에서는 아주 기본적인 생리 현상조차 해결하지 못하는 문제를 조명해보고자 한다. 이동 노동자들은 안정적으로 생리 현상을 해결할 수 있는 공간 자체가 없다 보니 각자가 참고 견디는 상황이었다.

"언론사에서 저희가 일하는 것을 보겠다고 동행취재를 왔었어요. 그때 우리가 일하면서 물을 마실 수가 없다고 이야기한 게 기사로 나갔는데, 그걸 본 사람들이 댓글에다가 '웃기지 마라, 가까운 은행도 있고 물 마실 데가 얼마나 많이 있냐' 그러더라고요. 저희는 물이 있어도 그 물을 마실 수가 없거든요. 화장실을 이용하려면 일하던 곳에서 20~30분 정도는 왔다 갔다 해야 하니까 그냥 안 마시는 거죠."(이동 노동자1)

"집에 방문하다 보면 물을 주시는 분들이 있어요. 여름에는 땀을 많이 흘리기 때문에 마셔도 괜찮은데 겨울에는 물을 안 마셔요. 누가 주신다고 해도 죄송하다고 하고 안 받아요. 어떤 분은 뚜껑을 꼭 열어서 음료수를 주니까 안 마실 수가 없는 경우도 있고요."(이동 노동자2)

"저희가 화장실에 못 가는 문제로 방광염에 걸려서 입원할 때가 있어서 그날은 일을 못 한다고 회사에 연락하면 콧방귀도 안 뀌더라고요."(이동 노동자3)

"저는 한 번 정말 화장실이 급해서 참다 참다가 사람들 눈에 안 보이는 곳에 숨어서 볼 일을 해결한 적이 있어요. 제가 담당하는 지역이 평창동이라 집 담벼락들이 높고 걸어서 이동하는 사람이 적은 동네라 몰래 했는데 그럴 때는 창피하고 그래요."(이동 노동자4)

"과외 일을 할 때 저는 주로 전철역을 이용했고 다른 선생님들에게도 보편적인 방법이었어요. 아주 가끔 백화점이나 쇼핑몰 화장실을 이용했고요. 아무래도 쾌적하고 청결하거든요. 정말 급할 때는 과외를 하러 간 학생 집에 있는 화장실을 이용할 때도 더러 있었는데 사실 굉장히 불편했어요."(이동 노동자5) 

공공 화장실을 이용하기 어려운 상황에 놓인 이동 노동자들은 긴 시간 생리 현상을 참으면서 일하고 있었다. 그 결과 이동 노동자들은 방광염 같은 질병을 얻기도 한다.

이동 노동자를 위해 만들어진 쉼터

이동 노동자들의 화장실 이용은 물론 휴식 공간 제공을 위해 2016년 서울시와 서울노동권익센터에서 휴(休)서울이동노동자 쉼터를 열었다. 현재 다섯 곳의 쉼터를 운영 중이며, 이후 경기도, 경상남도, 제주도에서도 쉼터 운영을 시작했다. 초기에 쉼터를 이용하는 노동자는 대리운전 기사들이 다수였지만 버스 운전기사, 퀵서비스 기사, 요양보호사, 보험 설계사, 학습지 교사, 집배원, 우유 배달원, 방문판매원, 가사도우미, 아이돌보미 등으로 점차 다양해졌다.

내용 면에서도 화장실과 휴식 공간을 제공하는 것뿐만 아니라 건강, 법률 상담을 비롯해 인문학 강좌 등 문화 프로그램을 운영하는 방향으로 발전해 나가고 있다. 2019년 쉼터를 설치한 제주도의 경우 전국서비스산업연맹 제주지역본부 노동조합이 위탁 운영을 맡게 되어 이동 노동자의 조직화도 고민할 수 있는 거점이 될 것으로 기대된다.

쉼터를 넘어서는 고민이 필요하다

 

이동/방문노동자 등 모든 노동자가 이용할 수 있도록 공중화장실 개방이 필요하다.

 

쉼터라는 공간이 갖는 의미와 효과를 전국적으로 확대하기 위해 지방자치단체가 예산을 마련하고, 이동 노동자들의 필요와 요구를 반영하여 쉼터를 만들고 운영해나가는 노력을 지속해야 하겠다. 정부와 국회는 20대 국회가 발의한 국가 또는 지방자치단체가 플랫폼노동 종사자의 노동환경을 개선하도록 휴게시설 등을 설치·운영하도록 하는 내용의 '근로복지기본법 일부개정법률안'을 21대 국회에서는 반드시 통과시키도록 힘써야 한다. 그러나 쉼터를 늘리는 것만으로 이동 노동자의 화장실 접근권 문제를 해결할 수는 없다. 이번 기회에 다양한 방안에 대해 고민을 이어나갔으면 한다.

또한 생리 현상을 해결하고 개인위생을 보호하기 힘든 이동 노동자의 노동 조건에 대해 전 사회구성원들이 관심을 가지도록 하는 것 역시 중요하다. 가령 정부가 실태를 알리고 동네 곳곳의 카페, 편의점 등에서 일하는 노동자들이 사용하는 화장실을 이동 노동자들도 이용할 수 있도록 캠페인으로 제안하고 이를 안내하는 것이다. 그뿐만 아니라 종교 시설, 아파트 관리시설 등에 있는 화장실 역시 이동 노동자들이 편하게 이용할 수 있는 분위기가 되도록 정부 차원에서 적극적으로 장려할 수 있겠다. 이동 노동자의 화장실 이용에 대해 사업주가 일정 금액을 급여나 수당으로 부담하도록 하는 방식도 가능할 것이다.

이러한 조치는 단순히 서로에게 호의를 베푸는 문제를 넘어 특히 코로나19와 같은 사회적 재난 상황에서는 모든 사회 구성원의 건강과 안전을 위해서도 꼭 필요하겠다는 생각이 든다. 가령 손 씻기와 마스크 착용 등 철저한 개인위생이 요구되는 지금과 같은 시기에도 이동 노동자들은 손 씻을 곳조차 찾기 힘들다. 그렇다고 이동 노동자에게 충분한 손 소독제와 마스크를 지급할 수 있는 상황도 아니다. 개별화되어 있는 이동 노동이라는 고용 형태로 인해 이것을 지급해야 할 의무가 있는 주체가 명확하지도 않다. 따라서 정부는 물론 이동 노동으로 인한 혜택을 누리고 있는 사회 구성원들에게도 함께 노력해야 할 의무와 책임이 있다고 생각한다.

무엇보다 이동 노동자가 자신의 건강을 위해 마음 편히 생리 현상을 해결할 수 있는 충분한 휴식 시간과 여유가 보장되어야 한다. 이것이 가능해지려면 업무량이나 건수에 의해 임금이 책정되는 노동 조건과 임금 체계 등의 개선과 더불어 고용안정이 보장되어야 한다. 나아가 이동 노동자의 생리 현상뿐만 아니라 미세먼지, 폭염, 혹한 등 기후 환경과 외부 조건으로도 노동자들이 안전하고 건강하게 일할 수 있는 종합적인 대책에 대한 고민이 필요하다.

특집1. 갈 수 없는 화장실: 단일한 ‘노동자’란 없다

[모두를 위한 화장실과 일터의 평등①]

 

 

 

갈 수 없는 화장실: 단일한 ‘노동자’란 없다 

모두를 위한 화장실, 일터부터 설치하자

 

 

 

김지안 / 상임활동가 

 

 

 

통제되는 노동자의 권한과 인권

 

갈 수 없는 화장실의 문제는 어떤 조건 속에서 발생하고 있을까? 모든 사람은 매일 일정 횟수 이상 화장실에 가야 하며, 그렇기에 누구든 화장실에 가고 싶을 때 화장실을 이용할 수 있어야 한다. 이러한 대전제에 대해서 반대할 사람은 없을 것이다. 예를 들어 20세기까지 횡행했던 인종 분리 화장실에 대한 지적은 굳이 자세한 이유를 대지 않아도 대부분의 사회구성원이 인권침해로 여길 것이다. 인종을 이유로 화장실 이용을 거부해선 안 되고, 인종을 떠나 모든 사람이 이용할 수 있도록 적절한 거리 간격, 크기와 공간설계로 화장실이 존재해야 한다.

 

그렇다면 성별로 봤을 때는 어떨까. 현재 한국 사회에서 누구든 성별과 관계없이 원활히 화장실을 이용할 수 있을까? 아마 누군가는 고개를 끄덕이고, 누군가는 아니라고 답할 것이다. 2019, 대다수의 건설 현장에 여성 화장실이 없다는 사실이 알려졌다. 실제 건설 현장에서 일하는 여성 노동자의 수는 전체 노동자 대비 10% 정도인데 이들이 용변을 볼 수 있는 화장실과 작업복을 환복 할 수 있는 탈의실이 일하는 현장에 제대로 구비되어있지 않았다는 것이다.

 

놀랍게도 이 갈 수 없는 화장실의 문제는 많은 일터에서 벌어지고 있는 노동자의 문제이기도 하다. 건설 현장의 사례처럼 성차별의 결과로만 한정되는 것도 아니다. 서비스·판매직의 경우에는 노동생산성이나 고객의 편의를 위해 화장실 이용이 제한되기도 하고, 이동·방문노동자와 같이 특정한 사업장에 속하지 않고 이동하며 일하는 경우에는 노동의 형태 문제이기도 하며, 젠더와 장애 등 노동자의 정체성에 따라갈 수 있는 화장실 자체가 없다는 점도 중요하다.

 

결국 문제의 양상은 다르더라도 문제의 핵심은 누구나 화장실을 가야 하지만, 현재의 화장실이라는 공간이 누구나 갈 수 있도록 만들어지지 않았다는 점일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갈 수 없는 화장실의 문제란 단순히 화장실의 변기 대수와 설치를 늘려야 한다는 말이 아니라 화장실에 갈 수 없는 상황에 놓인 사람들, 노동자들의 조건을 밝히고 바꿔야 하는 일이다.

 

가령 일터에서 노동자들이 필요할 때 화장실에 가지 못하는 것은 자본이 노동자의 인권보다 고객의 편의를 우선하고, 노동을 통제하려는 것, 그러면서 (특히 이동·방문 노동자의 화장실 접근 및 휴게시간·공간이 부재하다는 측면에서) 노동환경에 대한 사업주의 책임은 갈수록 개별 노동자들에게 전가되고 있는 현상과 맞물려있다.

 

또한 화장실은 인권의 문제이기도 하다. 누구나 가야 하는 화장실에서 어떤 사람들의 필요는 배제되며, 이 배제된 이용자들은 생리현상과 위생, 그리고 자기 몸에 대한 통제력을 상실하게 되기 때문이다. 물론 여기서도 과연 누가 화장실을 이용할 수 있는 사람인지, 누가 이용할 수 없는지를 가르는 것은 일터를 지배하는 뿌리 깊은 정상성, 정상적인 몸의 기준이라는 비판이 필요하다. 그래서 일터의 화장실이라고 하는 이 소박해 보이는 주제는 노동자와 그의 삶이 상상되는 방식과 노동자의 인권, 그리고 일터에서의 평등과 관련된 많은 문제점을 시사한다.

 

누가 일을 할 수 있다고 여겨지는지, 누가 일을 하고 있다고 생각되는지, 그 일을 하는 노동자의 삶과 필요들은 어떻게 상상되는지 등등. 그러니 이런 조건에서 화장실 이용이 불가능하거나 제한되는 노동자들의 문제는 사회와 일터가 누구를 포함하고 배제하는지 또는 비가시화하는지, 또는 어떤 노동자의 상을 전제로 노동과정과 속도, 생산시스템이 구성되는지의 문제와도 동떨어질 수 없다.

 

모두를 위한 화장실의 표지판이다.

 

모두를 위한 화장실’: ‘모두에 포함되지 못한 사람들

 

화장실 이용에서 배제된 구성원의 문제를 다루기 위해, 우선 공중화장실의 경우를 보자. 어떤 경우에는 자신이 이용 가능한 화장실이 없어서 문제가 되고, 어떤 경우는 화장실이 있어도 제대로 설치되어있지 않아서 문제가 된다. 즉 화장실이 누구나 자유롭게 사용할 수 있는 공간이 되기 위해서는, 단순히 화장실이 존재하면 되는 것이 아니라, 필요한 때에 이용할 수 있으며 필요한 곳에 필요한 설계로 화장실이 설치되어있어야 한다. 예를 들어 장애인 화장실이 마련되어있지 않은 건물에서 일하게 된 장애인이 있다고 하면 그가 느낄 당혹스러움은 전자의 예시고, 고속도로 휴게소에서 끝이 보이지 않는 여성 화장실 줄은 후자의 예시가 될 수 있을 것이다.

 

어느 쪽이든 갈 수 없는 화장실의 문제란 기본적으로 화장실-설계, 이용방식, 이용의 대상, 분배-에 누군가는 배제되었다는 사실과 관련된다. 그래서 모두를 위한 화장실’(또는 성중립화장실)에 대한 담론은 그 말 자체를 통해서 문제의 근본적 원인을 드러낸다. 현재의 화장실이 모두를 위한 것이 아니라는 간단한 사실이다.

 

그래서 가장 우선적으로 이 담론은 이원화된 젠더 체계에 기반한 공중화장실의 설계가 젠더규범에서 벗어나는 성소수자로 하여금 화장실을 이용할 수 없도록 만든다는 점을 비판한다. 이로 인해 화장실에 갈 수 없는 성소수자들의 삶은 제약되고 배제되는데, 지속적인 삶의 제약은 다시 경제적 빈곤과 사회적 배제라는 악순환을 낳기에 더욱 문제적이다.

 

한편에서 성중립화장실의 설치가 여성의 안전과 대립하는 것으로 상상되는 경향이 있다. 그러나 많은 사회에서 성중립화장실이란 화장실의 남/여 구분을 아예 없애는 방식이 아니라 기존의 성별분리화장실에 누구나 이용할 수 있는 성중립화장실을 하나 더 설치하는 것을 의미한다. 게다가 성중립화장실 모델은 반드시 젠더에 대한 접근만으로 설계되는 건 아닌데, (성별과 무관하게) 아이를 돌보고 있는 사람, 몸이 불편하거나 장애를 가진 사람, 타인의 시선이나 접촉 없이 독립된 화장실을 이용하고 싶은 사람 등 그야말로 모두를 위한 디자인인 것이다.

 

화장실에 못 가는 노동자들

 

일터의 경우는 어떨까? 화장실과 관계된 일터의 문제들 역시 갖가지다. 수많은 노동자가 일하는 과정에서 화장실에 대한 접근이 차단되어있거나, 실질적으로 이용할 수 없는 상태에 놓여있다 먼저 화장실을 자유롭게 사용하기 어려운 조건을 만드는 중요한 원인에는, 화장실의 이용이 노동생산성을 방해한다는 생각에서 노동자들을 통제하고자 하는 자본의 입장이 있을 것이다. 이를테면 콜센터 노동자들은 화장실 출입을 하기 위해서 전체 메신저에 화출’(화장실 출발)화착’(화장실 착석)이라는 기록을 남겨야 한다. 일종의 보고 내지 허가를 받아야 하는 셈이다. 콜이 쏟아지는 시기에 여러 명이 동시에 화장실에 갈 경우 그만큼 콜을 받는 생산성도 떨어지고 대기하는 고객도 증가한다는 명목이다. 이런 경우 화장실 가는 것도 눈치가 보이고 불편할 콜센터 노동자들의 문제는 쉽게 상상할 수 있겠다. 실제로도 다수의 콜센터 노동자들은 아예 물 섭취를 하지 않는 방식으로 이 문제를 조율하기도 하며 만성적인 방광질환에 시달린다. 이런 문제는 비단 콜센터 노동자뿐 아니라 손님이 몰리는 시기를 피해서 화장실에 가야하고, ‘허가를 받아야 하는 서비스직 노동자들이 공통으로 겪는 문제점이다.

 

백화점 판매직 노동자들의 경우에는 층마다 화장실이 있더라도 그곳이 고객 전용 화장실이기에 출입을 할 수 없는 문제가 있는데, 2018년 서비스연맹의 조사 결과에 의하면, 시간이나 인력의 부족 등으로 매장을 비울 수 없기 때문에 59.8%의 노동자가 일하던 중 화장실을 가지 못하는 경험을 했다고 답했다. 게다가 직원용 화장실은 일하는 위치와 멀리 떨어져 있고, 변기 대수 역시 부족하기에 이용은 더 불편하다. 이런 경우들은 모두 화장실이 있어도 실질적으로는 사용할 수 없는 상태에 놓인 사례들이다.

 

반면 이동, 방문 형태로 일을 하는 노동자들은 사업장에서 근무하는 것이 아니기에 이용할 수 있는 화장실 자체가 없다는 게 주된 문제다. 한 예로, 도시가스안전점검원들은 안전점검 업무를 할 때는 고객의 집에 들어가서 가스누출 등을 확인하지만, 검침 업무를 할 때는 건물 바깥에 부착된 검침기를 체크한다. 물론 고객의 집에 있는 화장실을 이용하는 것도 방문노동자들의 안전이 심각하게 위협되고 있는 현 상황에서 쉬운 일은 아니지만, 주거 밀집 지역을 검침하는 경우에는 주변에 이용할 수 있는 공중화장실이나 상가건물조차 없어서 큰 문제다. 그래서 대개 근무 중에는 식사도 거르고, 물도 마시지 않으며 방광염은 직업병으로 달고 산다.

 

한편, 앞서 말한 건설 현장의 예시는 여성 건설노동자가 건설 현장에 있지 않을 것이라는 사회통념과 더불어, 분명히 여성 노동자들이 현장에 존재하고 있었지만 없는 것으로 치부된 성차별의 결과다. 그 속에서 여성 노동자들의 필요와 욕구는 무시되고 비가시화되어왔다. 왜 기업은 노조가 문제를 제기하기 전까지 10%나 되는 여성 노동자가 매일 몇 번씩 화장실을 가야 한다는 간단한 사실을 방치하고 있었을까?

 

이 문제가 이슈가 된 직후 고용노동부는 지난 6, <2019 사업장 세척시설 및 화장실 설치 운영 가이드>를 발표했는데, 여기서 화장실 운영의 가장 첫 번째 조항은 남녀분리화장실이다. 이때, 건설 여성 노동자의 사례와 동일한 맥락에서 성소수자 노동자들의 갈 수 없는 화장실문제를 생각할 수 있다. 물론 일터에, 특히 건설 현장처럼 이동 화장실이 설치된 경우에는 여성의 안전을 위해 남녀분리화장실이 필요하다고 말해지는 맥락이 있다. 수많은 성폭력, 불법 촬영 범죄가 공중화장실과 일터 내 화장실을 매개로 저질러지고 있는 현실 때문이다.

 

하지만 성별분리화장실을 설치한다는 것이 일상과 일터에 만연한 성폭력 문제에 대한 충분한 예방과 해결이 될까? 모든 공중화장실을 남녀분리하면 성폭력은 예방될 수 있는 것일까? 그건 성폭력이 발생하는 근본 원인과 작동을 단순히 성폭력이 발생하는 단 한 가지 공간의 문제로 환원시키는 게 아닐까? 그보다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성폭력과 불법 촬영에 대한 강도 높은 규제와 처벌 등의 정책이다.

 

오히려 성별분리화장실로 모든 화장실을 개선하겠다는 정책은 갈 수 없는 화장실문제가 성소수자 노동자에게 심화 되는 결과를 만든다. 그래서 일터에도 모두를 위한 화장실이 필요하다는 주장은 사실 너무 당연한 말이다. 이미 일터에 존재하고 있는, 일터를 구성하고 있는 다양한 노동자들과 그들의 삶이 있기 때문이다. 이런 실재하는 노동자를 고려했을 때 필요한 것은 화장실 이용대상과 시간, 설계, 분배에서의 적극적인 평등이다.

 

일터의 모두를 위한 화장실’, 건강과 인권의 문제

 

일하는 도중 화장실을 이용할 수 없다는 것이 얼마나 불편한 일인가. 이런 경우에 많은 노동자가 화장실을 자유롭게 갈 수 없으니 식사는 물론 물 섭취도 자제하고, 화장실에 못 가서 발생하는 방광질환도 만연하며, 늘 갈증이 나기에 과식을 하게 되는 등 생활습관도 망가지며 전반적인 생리작용이 좋을 수 없다.

 

또한 한편에서 화장실은 단순히 용변을 보는 곳으로만 기능하지 않는다. 화장실은 생리대를 교체하거나 손을 씻는 공간이기도 하다. 그래서 지금같이 전염병이 사회적으로 심각하게 다뤄지는 시기에 화장실은 공중보건과 위생 차원에서도 주기적으로 손을 씻을 수 있는 공간으로써 감염으로부터 스스로를 보호하고 전염을 예방할 수 있는 수단이 된다. 그리고 무엇보다 화장실 이용조차 통제되고 제대로 마련되지 않는다는 사실로 인한 노동자들의 불안감과 정신적 스트레스야말로 가장 중요하게 다뤄야 할 문제다.

 

결국 화장실의 이용과 설계, 분배가 평등해야 한다는 말은 인권의 문제인 동시에 노동자 건강과 관련된 중요한 노동의 권리이다. 나아가 노동자가 스스로의 몸과 속도를 기준으로 노동과정과 시간을 조절할 수 있어야 한다는 권한의 문제도 제기해보고 싶다.

 

성별분리화장실에 들어갈 수 없는 트랜스젠더 노동자, 이뇨제를 먹어야 하는 질환을 가진 노동자, 생리대를 주기적으로 교체해야 하는 여성 노동자 등등···. 너무 많은 현실의 삶이 있다. 어떤 노동자의 삶도 일터에서 배제되지 않아야 한다. 화장실이 모든 문제의 결론은 아니지만 일터부터 모두를 위한 화장실이 설치되어야 하는 까닭이다.

 

 

 

 

<일터> 통권 193호 / 2020.03

[특집]
1. 갈 수 없는 화장실: 단일한 '노동자'란 없다 
2. 이동노동자의 화장실 접근권 문제 
3. '평등한' 노동안전보건을 위한 요구, 일터에서의 성중립화장실 


[지금 지역에서는] 

'중대재해 대응 매뉴얼'에 대한 토론을 시작하며 

[산재보험 톺아보기]

노동자 건강을 위협하는 산재보험 민영화 

[연구리포트] 

고 문중원 기수 죽음과 관련한 마사회 구조와 실태조사 보고서 

[동아시아 과로사 통신]

한국은 과로자살이 뜨거운 이슈입니다

[A-Z까지 다양한 노동 이야기] 

신입노동자의 교육기간, '인턴 일자리' 말고 조직차원 고민으로 다뤄져야 

[사진으로 보는 세상] 
[현장의 목소리] 

수탁법인의 부당해고 방관하는 경기도 각성해야 

[노동안전보건활동가에게 듣는다]

노동안전보건활동가로 거듭나기 위해 뒷받침되어야 할 것들
[문화로 읽는 노동] 

플랫폼 속 밀레니얼 리얼리즘-장류진 소설집 <일의 슬픔과 기쁨>

[직업환경의학 의사가 만난 노동자 건강 이야기] 

보이지 않던 고통

[유노무사 상담일기 더불어與]

코로나19로 변화된 노동현장

[노동자 건강상식]  

면역(Immunity)

[발칙 건강한 책방]

덕분에 불편해졌습니다. 고맙습니다. 

[이러쿵 저러쿵]

삶을 연명하는 치료를 넘어서기 위한 고민 

[안전보건동향] 
[한노보연 이모저모]

 

https://issuu.com/kilsh2003/docs/__3_-___3_

 

일터 2020년 3월호

 

issuu.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