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업환경의학 의사가 만난 노동자 건강 이야기] 노동자 건강의 현실세계(real world)와 실시간(real time) 확인 / 2020.01

[직업환경의학 의사가 만난 노동자 건강 이야기] 

 

 

 

노동자 건강의 현실세계(real world)와 실시간(real time) 확인

-과학기술이 노동자건강에 기여하도록

 

 

 

예병진 / 후원회원, 인제대 부산백병원 

 

 

 

몇 년 전부터 노동자 건강검진을 하다보면 고혈압이나 콜레스테롤 기준을 적으면서 설명해준 문진표 자체를 사진으로 찍어가는 노동자들이 일년에 꼭 한 두 명은 있다.

왜 그러시냐고 물어보면 건강검진 결과를 받았을 때 무슨 내용인지 잘 몰라서 건강검진과 관련된 내용이면 일단은 찍어간다고 한다. 스마트폰의 사진 기술이 고맙다기 보다 카메라를 적절하게 잘 사용하는 그 분들이 대단해 보였다. 하지만 이런 분들보다 검진 결과를 집으로 보내주느냐, 회사로 보내주느냐를 거듭 물어보시는 분들이 더 많은데 작년에 검진 결과를 받은 적이 없다고 기억하고 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대부분의 노동자는 작년에 했던 건강 검진의 결과를 알지 못하고 검진결과표를 어디에 두었는지도 기억하지 못한다. 

건강검진은 병이 발생하기 전 단계에서 적절한 건강관리를 통해 질병 발생을 예방하는 것이라고 알고 있지만, 대부분의 노동자는 건강검진 결과에 대해서 진료를 보러 가야 하는지 아닌지만을 어렴풋하게 기억하고 있는 정도이다. 건강검진의 목적이나 배경이 어찌 되었든 이런 모습이 현재 노동자 건강검진의 현실이라 생각한다.

10년 넘게 특수건강검진을 하면서 만난 노동자들에게 가장 많이 해주었던 말은 "고혈압 기준은 140/90"이라는 말이었던 것 같다. 그다음은 "이 물질은 몸의 어디에 영향을 주어서 이런 검사를한다" 정도가 아닐까 싶다. 특수건강검진을 하면서도 고혈압 기준에 대한 설명을 가장 많이 해준 이유를 생각해 보면 실시간으로 결과를 알 수 있고, 관리나 치료가 필요한 수준이면 혈압 측정의 올바른 방법이라든지 체중을 조절하는 방법이나 금연하는 방법과 같은 구체적인 관리 방법도 설명해 줄 수 있어서 그런 것이 아닐까 싶다. 결국 일반건강검진이든 특수건강검진이든 검진의 목적은 검진 자체의 시행이 아니라 검진 결과에 따른 관리일 수밖에 없는 것 같다.

작년에 IT전문가의 도움을 받아서 비록 낮은 버전이지만 노동자 일반건강검진 결과 및 사후관리용 챗봇 프로그램을 만들어 본 적이 있다. 본인의 동의하에 개인의 건강검진 결과 및 건강 상태에 따른 구체적인 관리 방법을 스마트폰에 있는 메세징앱(카카오톡)을 통해 본인이 확인 할 수 있는 프로그램이다.

앞으로 사용자 편리성이 조금만 더 좋아지면 자신의 건강검진 결과를 보고 싶을 때나 필요할 때 확인 할 수 있는 장점이 있다. 하지만 지금의 노동자 건강검진의 현실은 지금 당장 맛집을 찾을 수 있고 최단 경로를 확인 할 수 있는 시대임에도 불구하고 기억에 의존하는 일회용일 뿐인 것 같다.

최근에 한 워크숍에서 '유해물질 복합노출의 건강 영향 추정을 위한 통계분석 방법'이라는 강의를 들은 적이 있다. 노출 기준치 이하의 복합물질에 노출된 경우에도 노동자에게 유의한 건강 영향이 있었다는 과거 연구들이 이번 연구를 하게 된 배경이었는데 통계분석 방법의 생소함이나 어려움을 떠나서 'real world'라는 단어가 눈에 먼저 들어왔다. 현재는 특수건강검진이나 물질안전보건자료의 내용을 바탕으로 각각의 유해물질에 의한 건강 영향을 확인하고 있지만 '유해물질의 복합노출'은 말 그대로 노동자들이 현장에서 마주치고 있는 'real world'라는 생각이 들었다.

작년에 국내 건설회사 중에서 안전모 또는 이름표에 센서를 부착하고 센서에서 감지하는 유해물질의 농도를 본인의 스마트폰에 실시간으로 보내주는 시스템을 도입한 곳이 있었다. 처음에는 안전사고에 대비해서 노동자의 위치를 파악하고자 계획했던 아이디어가 과학기술이 결합하면서 유해물질의 실시간 농도를 측정하고 알람 신호를 주는 프로젝트가 추가되었다.

그 프로젝트에 참여했던 한 연구진은 많은 유해물질의 실시간 측정이 가능할 정도의 기술개발이 되어 있다고 알려주었다. 비록 과학 기술의 한계로 모든 유해물질의 농도를 실시간 측정하는 건 가능하지는 않을 수 있지만 조금 먼 미래에는 현재와 같이 6개월이나 1년마다 작업환경을 측정하는 방법보다 작업환경의 현실을 더 잘 반영할 방법이 개발되어야 하지 않겠냐는 생각을 하게 된다. 

세상의 변화가 너무 빨라 따라가지 못할 정도의 아찔함을 느끼는 반면 생활에 유용하거나 편리한 기술들이 계속해서 개발되고 많은 사람이 사용하고 있다. 모든 기술의 발전이 인간의 행복과 존엄을 지켜주는 것은 아닐 테지만 노동자 건강권의 한 축인 작업환경측정과 특수건강검진의 영역에서 기술의 발전이 현실세계(real world)를 더 잘반영하고 현실을 극복하는 도구로 사용되기를 희망한다.

 

[노동시간 읽어주는 사람] 내일을 위한 시간: 영화 <내일을 위한 시간>, 2014 / 2020.01

[노동시간 읽어주는 사람]  

 

 

내일을 위한 시간: 영화 <내일을 위한 시간>, 2014 

 

 

 

천주희 / 문화사회연구소 

 

 

 

병가 후 복직을 앞둔 어느 날, 회사에서 전화 한 통이 걸려온다. 사장이 직원들에게 1000유로의 보너스와 자신의 복직 중 어떤 것을 선택할 것인지 투표로 결정했다는 통보였다. 투표 결과 2명을 제외한 나머지는 보너스를 택했다.

복직도 전에 해고라니! 이 전화를 받은 당신은 어떻게 하겠는가?

영화 <내일을 위한 시간(Deux jours, une nuit)>은 이렇게 황당한 상황으로 시작한다. 복직을 앞둔 주인공 산드라(마리옹 꼬띠아르 분)는 갑작스러운 해고 소식에 절망한다. 동료에 의한 해고라는 말에 더 충격을 받는다. 산드라 남편은 요리사지만 네 식구 생활비를 마련하기에는 수입이 부족하다. 이대로 산드라가 일자리를 잃으면, 가족은 대출금을 갚지 못하고 다시 임대 아파트로 돌아가야 할 상황이다. 
  
망연자실한 산드라에게 친구는 전화를 걸어 아직 결정된 것이 없으니 사장에게 함께 찾아가자고 제안한다. 그렇게 사장을 만난다. 산드라가 일하던 곳은 태양열판을 만드는 제조업체로, 사장은 아시아와 경쟁이 치열해서 회사가 위기 상황이라고 한다. 그는 완고했다. 직원들이 무엇을 원하는지에 따라 결정하겠다고 했다. 단 보너스와 복직은 양립할 수 없는 것, 둘 중 하나만 선택해야 한다.

산드라는 친구의 도움으로 사장을 설득해서 월요일에 다시 재투표할 기회를 얻는다. 이제 주어진 시간은 주말뿐. 영화 원제처럼 '두 번의 낮과 한 번의 밤' 사이에 그녀는 16명의 동료를 만나서 설득해야 한다. 보너스 대신 자신을 선택해달라고.

보너스를 선택할 것인가? 동료의 복직을 선택할 것인가?
 

만약 당신이 산드라 직장 동료라고 가정해보자. 보너스를 선택했고, 주말에 산드라가 찾아왔다. 산드라와 무슨 이야기를 하겠는가? 영화를 보는 내내 마음이 조마조마한 이유는 동료들이 제각각 어떤 반응을 보일지 예측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저마다 돈이 필요한 이유는 다양했다. 자녀 학비, 생활비, 가전제품 구입비 등등. 어느 한 사람 여유로운 사람이 없었다. 

동료들은 그녀에게 "네가 해고되는 건 싫지만 돈도 놓치고 싶지 않다"고 말하거나, 집에 없는 척한다거나, "너를 반대하는 게 아니라 보너스를 택한 것"뿐이라고 상처를 주기도 한다. 또 아팠기 때문에 예전처럼 일하지 못할 거라는 말도 한다. 회사는 이미 산드라 없이도 16명으로 충분한 상황이었다. 주당 3시간씩 추가 근무를 해야 하지만 그만큼 추가 수당을 받아서 좋다는 말까지 듣는다. 

물론 모두가 산드라 대신 보너스를 원하는 건 아니었다. 산드라의 복직을 선택하고 싶었지만 계약직인 상태에서 재계약을 위해서 반장의 지시에 따랐고, 남편 요구에 못 이겨 보너스를 택했다가 산드라를 지지하겠다고 마음을 돌렸다. 또 보너스를 선택한 후에 후회했다며 사과한 사람도 있었다. 

산드라에게 동료를 만나서 설득하는 과정은 쉽지 않았다. 자신을 지지해주는 사람만 있으면 좋겠지만, 거절하는 동료를 만날 때마다 안정제를 먹지 않으면 버티기 어려웠다. 일자리를 구걸하는 사람처럼 느껴지기도 하고, 불안감은 커지고, 동료를 괴롭히는 것 같은 마음이 들기도 한다. 그럴 때마다 남편과 동료들은 산드라가 다른 동료를 만나 설득할 수 있도록 지원하고 격려한다.
     
이 영화의 흥미로운 점 중의 하나는 시간 설정이다. 이틀이라는 짧은 기간에 다양한 이야기를 담아내는 것도 탁월하지만, 무엇보다 '주말'이라는 휴일에 직장 동료를 만난다. 또 아직 복직하지 않은 상태, 즉 일터 현장에 완전히 포함되지도 않고 그렇다고 외부인도 아닌 상태에서 동료를 만난다. 이러한 경계적 성격의 시간성은 오히려 일터 내에서 다루지 못한 동료들의 상황과 마음을 잘 드러낸다. 일터에서 강하게 작동하는 규율에서 보다 한 발자국 벗어나 있고, 대부분의 장소가 각자의 집이라는 점에서 동료들의 삶을 엿볼 수 있다. 

영화는 내내 동료에게 보너스를 선택할 것인지, 동료를 선택할 것인지 묻는 것처럼 보이지만, 관객 또한 그 선택지에 말려들어 갈 필요는 없다. 오히려 산드라가 동료에게 자신을 선택해달라고 설득하는 과정을 바라보면서 관객은 두 가지 선택보다 더 큰 맥락을 보게 된다. 동료 사이의 관계, 그들의 역사, 그들의 가족, 생활 등. 일터를 배경으로 삼았다면 잘 드러나지 않았을 개인사들이 산드라의 방문을 통해 조명되는 것이다. 

'내일을 위한 시간'을 살아가는 힘 

드디어 월요일 아침, 재투표가 진행됐다. 결과는 찬성 8표, 반대 8표. 찬성이 과반을 넘지 못했기 때문에 산드라는 복직할 수 없었다. 하지만 사장은 주말 동안 다른 직원을 설득한 산드라의 모습을 보고 복직과 보너스 모두 제공하겠다고 한다. 단 당장 복직하는 것은 어렵고 계약직 직원이 나간 후에 복직할 수 있다고 했다. 

산드라는 복직을 간절하게 바랐지만 "남을 해고하고 복직할 수 없어요"라고 단번에 거절한다. 사장은 어차피 계약직이기 때문에 재계약을 안 하는 것뿐, 해고가 아니라고 말했지만 산드라에게 재계약을 안 하는 것이나 복직을 못 하는 것은 누군가 직장을 잃는다는 점에서 같은 것이었다. 

영화 초반에 산드라는 상황을 판단할 수 없을 정도로 기운도 없고 정서적으로 힘든 상태였다. 그럴 때 남편과 친구들은 그녀가 어떤 길로 가야 하는지 안내하고 이끌었다. 그런데 영화가 끝날 무렵 그녀는 스스로 삶을 주도하고 있었다. 사장의 제안이 다른 동료의 삶에 미칠 영향에 대해 명확하게 알고 있었고, 그런 선택을 강요한 것이 부당한 것임을 '거절'을 통해 표현했다. 
      
이 영화는 애초에 보너스를 선택할 것인지, 산드라를 선택할 것인지를 묻는 게 아니었다. 한 사람이 자기 일과 미래를 위한 시간을 어떻게 만들어 가고, 어려운 상황을 마주하며 해결하는지 그 과정에서 성장하는 이야기를 담고 싶었는지도 모른다. 그러면서 산드라는 이전과 다른 존재가 된다. 동료도, 관객도.

사장의 제안을 거절하고 나가는 산드라의 발걸음은 가벼웠다. 이틀 사이에 그녀는 그다음을 살아갈 힘이 생긴 것이다. 산드라는 회사를 나서면서 남편에게 전화를 걸어 말한다.
  
"우리 잘 싸웠지? 난 행복해"라고.

[노동안전보건 활동가에게 듣는다] 노동자가 건강한 사회, 간절함으로 만들고 싶어요 / 2020.01

[노동안전보건 활동가에게 듣는다] 

 

 

 

노동자가 건강한 사회, 간절함으로 만들고 싶어요

-민주노총 세종충남지역본부 이정호 노동안전보건부장 

 

 

 

나래 / 상임활동가

 

 

 

일터의 안전은 노동자의 안전이자 동시에 시민의 안전이다. 그렇기 때문에 일터의 문제는 지역사회와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다. 노동안전보건 문제는 중앙 정부만으로 는 해결하기 어렵다. 지자체가 지역의 특성과 위험요소를 제대로 파악하고 그에 맞는 다양한 정책과 지원을 펼쳐야 한다. 고민의 시작은 바로 자기가 서 있는 곳에서부터 출발한다.

약 10년 동안 노동자 33명이 사망한 사업장이 있다. 바로 '현대제철 당진공장'이다. 이 공장이 위치한 곳은 충남이다. 이에 충남 지역에서 활동하면서 노동안전보건 활동을 한 지 2년 반가량 되어 가는 민주노총 세종충남본부의 이정호 노동안전보건부장을 지난 2019년 12월 26일 한국노동안전보건연구소 사무실에서 만났다. 지역의 노동안전보건 활동가는 어떤 고민과 활동을 펼쳐나가고 있는지에 대해 나누어보았다. 
  
'지역' 노동안전보건활동가의 활동과 고민들

이정호 부장은 민주노총세종충남본부 활동을 시작하기 전까진 노동안전보건 문제를 집중적으로 다뤄보거나 고민하지 못했다고 한다. 실제 지역에서 활동을 시작하면서, 그리고 관련된 활동을 하는 사람들을 만나면서 지금의 고민을 이어나가고 있다. 일상 활동을 이어나가며 중대재해 사고가 발생하면 대응 활동을 하는 등 바쁘게 지내고 있다. 

"특별한 걸 하고 있는 건 아니에요. 기본적으로 산재 신청 요청이 들어오면 함께 하고 있어요. 교육을 제가 다 직접 하진 않지만 사업장 상황에 필요한 교육을 기획하고 함께 준비해요. 2020년부터는 명예산업안전감독관 활동을 지역에서 본격적으로 만들어가려고 해요. 그리고 중대재해가 발생했을 때 대응하고 있고, 충청권 노동안전보건 활동가대회도 준비하고 만들어 가고 있습니다."

일상의 긴 호흡을 이어가며 중대재해 사고나 긴급하게 발생하는 사건 대응에도 힘쓰고 있는 이정호 부장은 노동안전보건 운동은 특정한 직업과 자격증을 갖춘 사람들만 역할을 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는 점을 강조했다. 

"모든 운동에는 전문적 역량이 있죠. 노동조합을 조직하고 만들 때도 그 부분에 깊숙이 들어가면 근로기준법이라던가 내용적으로 공부를 해야 하는 게 있어요. 전문가 영역이라고 하는 건 역으로 특수한 몇몇 사람만의 문제, 산재와 현장개선 문제는 전반적인 문제임에도 남의 일로 생각하는 경향이 있죠. 이런 태도가 노동안전보건 운동을 어렵게 한다고 생각해요. 오히려 이 운동이 대중적으로 충분히 공유되지 못하고 있는 것에 대한 표현이 아닐까요?" 

'간절함'과 '제발'에서 비롯되는 노동안전보건활동
 

    
최근 몇 년 동안 언론 기사를 통해 노동자의 산재사고, 사망 문제를 어렵지 않게 접할 수 있게 되었다. 긍정적이라고 볼 순 없겠지만 이전보다 노동안전보건 문제가 사회적 관심을 받기 시작했고, 해결을 촉구하는 목소리 또한 높아지기도 했다. 산업안전보건법이 김용균 투쟁을 통해 28년 만에 전부 개정되기도 했고, <닥터탐정>이라는 노동자의 산재 문제를 다룬 드라마도 등장했다. 
  
이정호 부장 역시 이러한 변화들, 사회적으로 올라오는 분위기를 느끼고 있다며 속도의 차이는 있겠지만 앞으로 점차 노동안전보건 문제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지 않겠냐고 이야기를 이어나갔다. 본인 역시도 노동안전보건 활동을 시작하게 되면서 많은 것이 바뀌었다고 했다. 

"노동안전보건 특히 중대재해를 접했을 때 그래서 그런지 몰라도 물러날 수 없는 것들이 있더라고요. 이건 흑백이 있어요. 명확해요. 목숨이나 건강과 직결되는 문제이기 때문에 사람이 최소한 지켜야 할 것들이 있는 거죠. '돈보다 사람이 먼저다'가 지켜지지 않더라도 그 자체를 부정할 순 없죠. 

지난해 서울에서 열린 고 김용균 북콘서트에 갔었는데 그때 토크 참여자였던 안재범 당시 민주노총 세종충남본부 노동안전보건위원회 위원장이 그런 얘기를 하더라고요. '간절함이란 게 생긴다'고요. 그 마음이 이해가 가요. '제발'이란 생각이 들어요. 어떻게든 이 고개를 넘어가야 한다는 게 생긴 거죠. 거기서 방향타가 분명해져요. 가다가 못갈지언정 안 갈 순 없는 거예요. 노동안전보건 활동은 저에게 계속 무엇인가 하라고 계속 얘기해요. 지역에서 산재 사건이 발생하잖아요. 그럼 저는 밑도 끝도 없이 장례식장에 가봐요. 안가면 마음이 불편해요. 가서 산재 신청하는 방법이라도 말씀드리고 나와요."

'간절함'과 '제발'이라는 사이에서 이정호 부장은 일상에서 벌어지는 일들에 관심을 기울이고 자기 역할을 하고자 노력하고 있었다. 노동조합에 가입을 한 사람이든, 가입하지 않거나 못한 사람이든 사람의 목숨과 삶이라는 가장 중요한 가치를 지키기 위해서 말이다. 하지만 죽음과 다치는 문제를 겪고, 다루다 보면 때론 지치기도 한다. 그에게 노동안전보건 활동을 하면서 겪는 어려움에 대해 물었다.

"아무래도 무겁죠. 스트레스도 받고요. 덜 받는 편이라고 생각을 하는데도 어려움은 있어요. 그런데 어쩔 수 없죠. 하다가 안 되는 일을 겪기도 하고 그러니까요. 가장 큰 어려움은 그런 거에요. 한 발도 나아가지 못했구나 싶을 때요. 한 발이라도 나아가지 못한 게 아니라 많이 어려워졌구나란 생각이 들어요. 현장을 개선하고 대책을 마련하는 게 제가 할 수 있는 것만은 아니고, 같이 만들어야 하는데 꽤 쉽지 않을 때도 있어요. 그런 부분이 제일 어렵더라고요." 

아프고 다치고, 죽는 사람과 사건을 대면하고 바꾸고자 하는 의지로 활동해 나가는 이정호 부장은 그래도 이 운동을 하길 잘했다고 생각한다고 했다. 

"산재 신청해서 승인될 때가 좋아요. 제가 승인을 한 건 아니지만요. (웃음) 일을 해서 현장이 조금이라도 개선되는 것도 기쁘고요. 할 수 있는 사람이 많이 생겨나는 것도 좋아요. 모든 게 다 실패는 아니잖아요? 사람이든 뭐든 구체적으로 보이고 만들어나가는 것도 즐거워요. 그런 게 좋아요. 운동이라는 게 끝이 없지만 그런데도 마무리는 시점이 존재하고 명확하죠. 뭔가 대응하고 결과가 있고요."

산재 대응과 보상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어려운 직장 복귀

"최근 가장 기억에 남는 일은 직장 내 괴롭힘으로 정신질환이 생기고, 해고까지 당한 분의 사례에요. 산재 신청을 했는데 불승인이 됐어요. 그런데 불승인이 났다고 해고가 정당하다는 결과가 나온 거에요. 근로복지공단에 문의하니 해고의 정당성 여부를 갖고 산재를 판단하지 않고, 그 역도 맞지 않는다고 하더라고요. 사실 해고와 산재 문제는 법리 자체가 다른 문제잖아요? 그런데 지방노동위원회가 이걸 근거로 해고가 정당하다고 판단한 거죠.

다시 재조사를 요청했고, 실제 조사를 했더니 중간에 조사가 완전히 잘못된 게 확인이 돼서 해고가 무효가 됐어요. 그러나 결국 그분은 일을 그만뒀어요. 복직을 할 수 있긴 했지만, 직장 내 괴롭힘이 있었기 때문에 복귀한다는 게 쉽지 않으셨던 거죠. 이분은 조합원이 아니었어요. 이렇게 개별 상담만 받아서 산재 승인 받은 게 30건이 넘어요. 그런데 한 번도 직장 복귀를 한 분은 없어요. 노동자들이 상담받으러 올 때는 회사에 다닐 마음조차 없을 때 오시는 거예요. 관계를 끊겠다는 마음을 먹어야 산재 신청을 할 수 있는 상황인 거죠." 

정부는 지난해 일하는 중 재해를 당하거나 질병에 걸린 산재 노동자들이 일터로 복귀하는 비율이 증가한 것으로 확인됐다며 긍정적인 보도자료를 냈다. 2019년 6월 산재노동자 직업복귀율이 65.03%로 2018년 동월 61.58%보다 3.45%P(포인트) 증가했다는 것이다. 하지만 지역에서 겪는 문제들을 접한 이정호 부장은 이런 수치를 체감하기 어렵다고 했다.

여전히 노동자들에게 산재 신청은 높은 문턱이다. 게다가 건강을 악화시킨 요인이 그대로 남아있는 직장으로 다시 돌아간다는 것은 다시 아플 것을 각오하고 가야 한다는 것과 동일하다. 개선이 이뤄지지 않은 채 돌아가는 것은 노동자에겐 견디기 힘든 상황이다. 

안전하고 건강한 일터-지역 사회 만들어가기 위한 과제들

"근로복지공단도 공단이지만 사실 병원도 어려워요. 여러 번의 일을 겪으면서 의사분들이 노동자 건강권과 산업재해에 대한 이해를 높이셔야 하지 않을까란 생각을 해요. 산재신청을 위해 함께 병원에 동행했어요. 그런데 담당 의사가 퇴행성이기 때문에 산재라고 보기 힘들다는 거에요. 대전지역 질병판정위원회 지침으로 퇴행성이라고 불승인을 못 내게 되어 있어요. 업무상 악화이기 때문에 그런 부분을 고려해야 하죠. 그런데 병원에선 퇴행성이라고 소견서를 안 써주려고 하더라고요. 그런 문제로 여러 번 어려움이 있었죠. 병원에서 산재 노동자는 을이에요."

아픈 노동자의 문제를 함께 겪으며 깊어지는 고민도 있다. 바로 중대재해기업처벌법 제정운동이다. 이정호 부장이 최근 가장 관심을 가지며 지역에서 제대로 해보고 싶다고 했다. 
 
"중대재해기업처벌법 제정운동은 지금으로 가면 어려움이 있을 것 같아요. 왜냐면 실제 처벌받는 기업이 없거든요. 법제도 변화는 현실변화가 있어야 가능한데, 아무 기업도 처벌을 안 받고 있죠. 처벌받는 기업이 생겨야 법제정도 된다고 봐요. 운동과 법 제정이 만나야 해요. 실제 그런 싸움부터 하고 바꿔나가야죠. 사업주에게 안전과 보건에 관한 책임이 있어요. 이걸 실제 하도록 해야 해요. 실제 어떤 해당 사업장에 문제가 있고, 사업주가 안전보건 의무 조치를 충분히 안 하면 정말 처벌을 받을 수 있는 운동을 하고 싶어요. 지역에서 놓치지 않고 집요하게 받고 들면서 말이죠. 그래야 바뀔 것 같아요."

이정호 부장은 마지막으로 노동조합을 비롯해 우리 사회가 노동안전보건 문제에 관심을 기울여야 한다고 힘주어 이야기했다.

"어떻게 살아갈 것인지가 중요해요. 우리가 함께 건강할 수 있는 것, 내가 재벌이 아니어도 돈을 많이 벌지 않아도 행복한 삶을 살아갈 수 있어야죠. 앞으로 노동안전보건 문제에 대한 사회적 관심을 더 높아질 거라고 봐요. 사람들은 행복하게 살고 싶어 하잖아요. 권리로서 우리가 더 이야기를 많이 했으면 좋겠습니다."

[언론보도] “6월 항쟁이 직업환경의학을 깨웠다” [인터뷰] 김형렬 서울성모병원 직업환경의학과 교수 (20.02.06,

“6월 항쟁이 직업환경의학을 깨웠다”
[인터뷰] 김형렬 서울성모병원 직업환경의학과 교수

“어디가 아프냐”보다는 “어디서 일하냐”고 묻는 의사
직업 또는 환경과 질병의 인과관계를 밝히는 역할 수행
“일 때문에 아픈 노동자 없는 사회 위해 계속 노력”


 서정필
 승인 2020.02.06 08:16

 

김 교수는 “노동자가 건강하게 일을 하려면 단지 건강검진 열심히 받고, 술, 담배 적게 하고, 운동하고, 건강한 식습관을 갖는 것만은 아니다”라며 “이러한 불건강 행위를 유발하는 노동조건을 개선하는 것이 병행되어야 한다”고 당부했다.

직업환경의학은 노동자들의 건강을 해치는 직무스트레스, 장시간노동, 저임금, 열악한 작업환경을 바꾸어내는 역할을 자신의 주요한 역할로 삼아야 한다는 것이다.

 

https://www.hkn24.com/news/articleView.html?idxno=309388

 

“6월 항쟁이 직업환경의학을 깨웠다” - 헬스코리아뉴스

[헬스코리아뉴스 / 서정필] “1987년 6월 항쟁 후 9월까지 이어진 노동자 대투쟁을 겪으며 우리 사회가 노동자의 건강에 대해 관심을 갖게 됐다. 이듬해인 1988년 ‘문송면 씨 사건’과 ‘원진레이온 사건’이 잇...

www.hkn24.com

 

[언론보도] [신종 코로나 확진자 지나간 자리] 사업장 폐쇄로 일 못하게 된 특수고용직 ‘생계 막막’ (20.02.07, 매일노동뉴스)

[신종 코로나 확진자 지나간 자리] 사업장 폐쇄로 일 못하게 된 특수고용직 ‘생계 막막’

기사승인 2020.02.07  08:00:01

 

 

감염병 확산을 방지하기 위한 정부 정책으로 일손을 놓게 된 특수고용 노동자의 생계대책을 정부가 마련해야 한다는 주문이 나온다. 윤중현 위원장은 “2015년 중동호흡기증후군(메르스) 사태 때도 고용노동부는 비정규 위탁계약직의 경우 휴업수당 등의 기준이 없다는 입장이었다”며 “확인해 본 바에 따르면 아직도 기준이 구체적으로 마련되지 않았다”고 지적했다. 노동부 관계자는 “당장 노동부에서 할 수 있는 조치가 없다”며 “자영업자 생활지원금은 보건복지부 소관”이라고 했다.

최민 직업환경의학전문의(한국노동안전보건연구소)는 “특수고용 노동자가 근로기준법의 적용을 받지 못해 4대 사회보험 사각지대에 놓였다는 사실이 이번에 극적으로 드러났다”며 “정부는 모든 산업이 아니라 하더라도 당장 방역을 위해 시급히 폐쇄 조치를 취해야 하는 업종·산업의 특수고용 노동자 생활비를 보전해 줄 수 있는 재원을 긴급히 마련해야 한다”고 제안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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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종 코로나 확진자 지나간 자리] 사업장 폐쇄로 일 못하게 된 특수고용직 ‘생계 막막’

“하루하루 노동의 대가를 받아 성실하게 살아가고 있는데 격리조치로 갑갑하게 됐습니다. 새학기가 곧 시작되는데 아들 등록금이며 차량할부금·전세금 이자, 생각하면 막막하고 답답합니다. 어디 가서 막노동이라도 해야 하나 생각이 들고….”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확진자의 밀접 접촉자 근무지로 5일 임시폐쇄된 광주우편집중국에서 일하는 위탁택배 노동자 A씨가 답답함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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