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평] '불법'인 사람은 없다 / 2019.09

[직업환경의학 의사가 만난 노동자 건강 이야기] 누구를 위한 D1인가 / 2019.09

[직업환경의학 의사가 만난 노동자 건강 이야기] 

 

 

누구를 위한 D1인가

 

 

권종호 / 선전위원, 직환의 

 

*여기서 D1과 D2는 다음을 의미한다. 특수건강진단의 판정 소견으로 D1은 직업에 의한 질병이 의심되는 경우를, D2는 직업 관련성이 적은 일반적인 질환이 의심되는 경우를 의미한다. 

오후 느즈막이 진료실 안으로 노동자 두 분이 불쑥 들어왔다. 그날도 200명 가까이 진료를 본 터라 몸은 지칠 대로 지쳤고 남은 시간 버텨야 한다는 생각뿐이었다. 최대한 사무적인 말투로 "한 분은 밖에서 기다리다 순서대로 들어오세요."라고 했다. 쭈뼛쭈뼛 서 있던 두 분 중 50대쯤 되어 보이는 분이 청력 재검 결과지를 내밀며 조심스레 말을 꺼냈다.

"이 친구 청력 검사결과입니다. 잘 좀 봐주십시오." 양쪽 청력 모두 상당히 안 좋은 상태였다. "청력이 상당히 안 좋네요. 시끄러운 데서 오래 일하셨어요?"

"저랑 같은 팀에서 15년 동안 일해 온 친구입니다. 워낙 성실하고 착해서 건설현장 데리고 다니면서 용접도 가르치고 함께 먹고 자고 해왔는데 귀가 많이 안 좋다고 하네요. 이번에 들어가는 사업장에서는 D2(일반질병 유소견자) 판정 까지는 일을 할 수 있는데 D1(직업병 유소견자) 받으면 일 못한다고 합니다. 잘 좀 봐주십시오."

왼쪽 청력은 어려서부터 안 좋아서 장애 판정을 받았다고 하는데 오른쪽은 일하면서 나빠져버렸다고 했다. 안타깝게도 오른쪽은 직업력, 소음성 난청의 특성, 손상된 정도까지 D1에 부합하는 소견이었다. 왼쪽이 안 들리니 오른쪽에 귀마개를 할 엄두도 못 내었을 것이다. 성실했다니 더욱 더…. 하지만 피곤함을 핑계로 사람이 얼마나 매정해질 수 있는가. 다소 짜증 섞인 말투가 튀어나왔다.

"제가 이렇게 오시는 분들이 한 두 분도 아니고 이전에 이런 소견으로 오셨던 분들은 모두 D1을 받아가셨는데 특별히 D2를 드릴 수는 없을 것 같습니다. 어쨌든 결과 나오는 대로 제출하셔야겠어요."

"선생님, 이 친구 생계가 달려있어서 그렇습니다. 일하다가 좀 나빠지긴 했지만 일하는데 전혀 지장도 없고 이제 30대인 친구가 이렇게 되어버려서 앞으로 어떻게 일을 하겠습니까."

"제가 그런 사정을 다 봐드리면 한도 끝도 없습니다. 사정에 맞춰 판정이 나가면 그 판정이 뭐가 됩니까."

그날 저녁 내내, '그 판정이 뭐가 됩니까'가 아닌 '그 판정이 무슨 의미가 있습니까'라는 생각이 떠나질 않았다. 소음성 난청으로 판정하는 것이 그 노동자의 건강에 있어서 어떤 의미가 있을까.

일터에서 망가진 귀 때문에 다시 일터에 돌아갈 수 없는 상황. 심지어 사업장에서는 D2는 채용이 되어도 D1은 채용이 불가능하다고 한다. 이는 소리를 못 듣는 것으로 발생하는 작업의 위험과는 상관없이, 직업 관련 소음성 난청이 라는 이유만으로 사업장이 채용을 꺼리고 있다는 말이다.

이렇게 D1의 채용을 꺼리는 이유는 무엇인가. 보건관리자에게 물어보면 백이면 백 소음에 대한 관리 감독이 들어올까봐 사업장에 D1 노동자가 아예 없는 것이 좋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실제로 D1 노동자가 있는 사업장은 모두 강력한 소음 관리 감독을 받는 것일까? 또는 배치 전 검진에서 D1을 받은 노동자를 채용한 것만으로도 그런 관리 감독이 시작되는 것일까?

전자에서도 제한적일 것이고, 적어도 후자에 있어서는 아무런 불이익이 없는 것이 맞다. 또한, 원칙적으로는 배치 전 건강 진단이 노동자의 건강 보호 목적 이외에 (채용 상의 불이익과 같은) 다른 용도로 활용되지 못하게 되어 있다. 결국 소음성 난청이 있는 노동자들만 보건관리자 혹은 근로감독관의 잘못된 인식과 배치 전 건강 진단의 잘못된 활용으로 채용 상의 불이익을 받고 있다.

이제는 '소음성 난청을 가진 노동자를 채용'해서 불이익을 당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채용하지 않아서' 처벌받을 수 있다는 점을 보건관리자들에게 주지시킬 수 있는 계도가 시급하다. 특수건강진단으로 발견된 직업병, D1의 97%가 소음성 난청임에도, 전혀 관리되지 않는 노동 환경의 소음으로 인해 한 번, D1 판정자라는 낙인으로 또 한 번 고통 받는 노동자를 보며 도대체 누구를 위한 D1인가 되묻고 싶다.


[노동시간 읽어주는 사람] 핵발전소 노동자가 치르는 '거짓의 대가'는 무엇인가 / 2019.09

[노동시간 읽어주는 사람] 

 

핵발전소 노동자가 치르는 '거짓의 대가'는 무엇인가

 

박기형 / 상임활동가 

 

요즘 전 세계적으로 주목받고 있는 드라마가 있다. 미국 HBO에서 제작한 <체르노빌>이라는 5부작 드라마다. 그동안 체르노빌 원전 사고를 조명한 여러 다큐멘터리, 영화, 에세이 등이 있었지만 <체르노빌>은 드라마로서의 높은 완성도와 긴장감 그리고 선명한 문제의식 등으로 사람들에게 큰 울림을 주며, 원전 사고 당시 상황과 사고 대응 및 조사 과정 전반에 이르기까지 체르노빌 원전 사고를 섬세하게 재현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넷플릭스만 구독하던 필자는 부랴부랴 왓챠플레이를 구독하고서 5부작을 정주행했다. 각 잡고 보지 않으면 안 된다는 말에 마음을 굳게 먹고서 5시간에 걸쳐 손에 땀을 쥐고 시청했다. 마지막 엔딩 크레딧이 올라가고 난 후 하나의 대사가 머릿속에 맴돌았다. 많은 사람이 명대사로 꼽을 정도로 원전 문제의 핵심을 함축한 질문이자 드라마를 여는 레가소프의 첫 마디 "거짓의 대가는 무엇인가?"
   
거짓의 대가는 무엇인가?

인류가 자초한 최악의 재앙으로 손꼽히는 1986년의 체르노빌 원전 사고는 2011년 3월 11일 발생한 후쿠시마 원전 사고를 자연스레 떠올리게 한다. 두 참사 모두 우리가 마주할 수밖에 없었던, 거짓의 대가가 무엇인지 여실히 보여주었다. <체르노빌>에서 무채색에 가까운 이미지로 펼쳐 보인 비참함, 즉 황폐해진 삶의 터전과 자연, 피폭으로 인해 죽거나 다친 사람들과 살처분 당하는 동·식물 등 사회와 자연이 송두리째 파괴당한 참혹한 현장 말이다.

특히 <체르노빌>에서는 피폭을 당한 원자력 부근 주민의 아픔뿐만 아니라 발전소에서 일한 노동자들과 이미 벌어진 사태를 수습하기 위해 또는 더 큰 참사를 막기 위해 살인적인 수준의 방사선에 그대로 노출되며 고군분투한 소방관, 군인, 의료인 등 수많은 노동자의 얼굴과 몸짓을 볼 수 있다. 자신이 상대하고 있는 것이 무엇인지도 모른 채, 그것이 자신의 삶을 어떻게 파괴해버릴 수 있을지 알지 못한 채 그들은 온몸으로 거짓의 대가를 받아야 했다.

그 참혹한 사태가 일어나기까지 거짓의 굴레를 뒤얽히도록 한 사람들, 아니 그 사회는 어떤 책임을 졌는가. 우리는 누구에게 어떤 책임을 물을 수 있을까. 오히려 후쿠시마 원전 사고에서도 확인할 수 있었듯 체르노빌 원전 사고가 벌어진 지 30여 년이 지난 지금도 여전히 거짓의 굴레가 우리를 짓누르고 있다. 언제 또다시 사고가 벌어지지 않으리라고 예측할 수 없기에 우리는 언젠가 또 한번 거짓의 대가를 치러야 할 수도 있다.

하지만 거짓의 대가는 이런 극단적인 상황에만 치러지는 게 아니다. 거대한 수준의 참사가 벌어지지 않더라도 우리는 일상적으로 거짓의 대가를 치르고 있다. 다만 내가 아닌 다른 누군가가 치르고 있을 뿐이다. 그 '다른 누군가'는 바로 '핵발전소 노동자'들이다.

일상적으로 벌어지는 핵발전소 노동자의 저선량 피폭

후쿠시마 원전 사고 이후 한국에도 탈원전 논의가 촉발되면서 핵발전소에서 일하는 노동자들의 이야기에 주목하는 책들이 출간되었다. 그중 한 권을 꼽자면, 반핵의사회·사회건강연구소가 공동기획한 <핵발전소 노동자>가 있다. 이 책은 핵발전소 노동자들의 증언을 통해 일상적으로 벌어지는 피폭 및 각종 사고, 발전소와 국가의 조직적 은폐 나아가 다단계 하청을 통한 위험의 전가 등을 다루고 있다.

저자인 테라오 사호는 이 책에서 '나는 알 수 없어요'라는 노래를 언급한다. 그 노래의 가사 중 한 구절은 다음과 같다. '핵발전소에서 노가다 일로 방사선에 피폭된 아저씨가 벌레처럼 약해지는 데도 도시의 밤은 묵살한다.' 우리가 아름다운 도시의 야경을 즐기는 순간에도 빛을 만들어내는 핵발전소 노동자의 생명은 점차 빛을 잃어간다.
 
<체르노빌>을 본 사람들의 후기를 살펴보면 다들 하나 같이 심각한 수준의 방사능 노출에도 아무 보호장비를 갖추지 않은 채, 심지어 마스크도 제대로 끼지도 않고 방사능 피해자를 만지거나 폐기물을 치우는 등의 모습을 보며 경악을 금치 못했다고 말한다. 그러나 이런 헛웃음 나는 끔찍한 상황은 비단 무너져가는 소련, 가난하고 꽉 막힌 '사회주의' 사회에서만 벌어지는 게 아니다. 우리가 살아가고 있는 자유롭고 평등한 '자본주의' 사회에서도 공공연히 일어나고 있다. 거기서는 국가의 체면 때문에 거짓말했다면, 여기서는 자본의 이윤 때문에 거짓말하는 게 유일한 차이일 뿐이다. 핵발전소가 돌아가는 작업현장에서 위와 같은 일은 비일비재하게 일어난다.

은폐된 저선량 피폭 문제

거짓은 단지 핵발전소에서 일어난 각종 사고, 위험 상황을 은폐하는 것에서 그치지 않는다. 오히려 그런 특별한 상황이 벌어지기 전부터 노동자들은 일상에서 언제나 방사선에 노출된다. 병원에서 방사선 검사 및 치료를 하는 사람이 방사선에 노출되지 않을 수 없듯이, 핵발전소에서 일하는 노동자들도 '당연히' 방사선에 노출된다. 문제는 '당연히'라는 말을 어떤 의미로 해석할 것이냐다.

핵발전소 노동자의 생명을 위협하는 거짓은 위험을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이면서 시작된다. 혹자는 이렇게 말할 것이다. "핵발전소에서 방사선에 노출되지 않고 어떻게 일하라는 말이냐. 핵발전소는 원래 위험한 곳이다." 그 이후엔 위험이 당연하다고 전제하고서 어느 수준이 정말 위험한 것인가를 묻기 시작한다. 인체에 유해한 방사능의 수준, 즉 한계선을 설정하고자 한다. 이를 위해 피폭 선량 기준을 각종 연구를 통해 객관적이고 과학적으로 도출하려 한다.

하지만 정말 피폭 선량 기준은 객관적·과학적인가? 아니다. 반대로 피폭 선량 기준은 자의적이다. 왜냐하면 고선량 피폭의 위험성은 명확하지만 저선량 피폭의 위험에 관해서는 여전히 불확실하기 때문이다. 어떤 질병을 일으키는지, 어떤 인과관계로 그렇게 되는 건지, 발병까지 어느 정도 기간이 걸리는지 등 여전히 논쟁이 벌어지고 있다. 그러나 혹자는 불확실하기에 입증되지 않았고 그래서 유해하다고 단정 지을 수 없다고 주장한다.

이 점에서 <체르노빌> 1화에서 사고의 규모가 어느 정도인지 가늠하기 위해 방사능 수치를 놓고 갑론을박이 벌어지는 장면은 의미심장하다. 원자로의 핵연료를 담고 있는 노심이 폭발하지 않았다고 사안을 축소하고 싶은 이들은 측량 한계가 낮은 기계의 수치를 그대로 따른다. 그래서 위험하지 않은 상황이라고 판단한다. 그 기계가 측량할 수 있는 최고치가 나왔음에도 말이다. 결국 고성능 측량 장비를 통해 원자로가 폭발했음을 확인한 후에야 순순히 인정했다. 이미 수십 시간이 지난 후였고, 엄청난 양의 방사능에 수많은 사람이 노출되고 수백km의 지역이 오염된 후였다.

이와 같은 일이 핵발전소에서 일상적으로 벌어지고 있다. 위험이 입증되지 않았으니 안전관리 비용이나 인건비를 들이지 않으려는 태도, 저선량 피폭이 있었다고 하지만, 기준상 위험하지 않았고 그게 정말 암을 비롯한 특정 질병의 발생에 주요 원인이라고 입증되기 어려우니 산재 인정을 하지 않겠다는 논리 등 체르노빌 원자력 발전소의 책임자들처럼 저선량 피폭의 유해성이 아주 오랜 뒤에 입증되면 그때에야 피폭자들에게 보상하고 안전조치를 취할 것인가?

정말 우리가 방사능의 위험으로부터 사람들을 안전하게 지키고자 한다면 불확실하기에 최대한 안전할 수 있도록 조치하는 것, 일상에서부터 모든 예측 가능한 위험에 대비하는 것, 조그만 방사선 노출에도 주의를 기울이고 관리하는 것 등이 아닐까. 그러한 원칙들에 입각할 때에야 비로소 거짓의 굴레에서 벗어날 수 있고 나아가 거짓의 대가를 핵발전소 노동자가, 우리 사회구성원 모두가 치르지 않을 수 있는 출발점을 마련할 수 있을 것이다.

[현장의 목소리] 50대 여성 노동자들, 고공농성, 노숙농성하며 힘나는 이유 / 2019.09

[현장의 목소리]

 

50대 여성 노동자들, 고공농성, 노숙농성하며 힘나는 이유

-전국민주연합노조 톨게이트본부지부 부지부장 박순향 인터뷰

 

최민 / 상임활동가 

 

 

톨게이트 요금수납원들도 한국도로공사 정규직 노동자였던 때가 있었다. 비정규직이라는 말이 이렇게 흔해지기 전 얘기다. 1997년 외환위기 후 도로공사는 요금소 수납 업무를 점차 민간용역업체에 위탁 운영하게 됐다. 용역업체 사장은 대부분 도로공사의 명예 퇴직자들이었고 계약 연장을 빌미로 요금수납원에 대한 횡포가 만연해졌다.

노동자들은 도로공사의 지휘와 명령에 따라 요금 수납 업무를 하고 있다며 근로자지위확인 소송을 냈다. 법원은 노동자의 손을 들어줬다. 1, 2심에서 모두 도로공사가 요금수납원들을 직접 고용하라는 판결이 났다. 2017년의 일이다. 하지만 도로공사는 상고했고 현재 대법원의 판결을 기다리고 있다. 

문재인 정권 출범 후 공공부문 비정규직 근로자 정규직 전환 발표가 있었지만 도로공사가 내놓은 건 '자회사 전환'이었다. 대법원판결만 나면 도로공사가 직접 고용해야 하는 상황에서 노동자들로서는 받아들이기 힘든 제안이었다. 게다가 도로공사는 자회사 전환 과정에서 노동자들에게 '소송에서 노조 측이 승소하더라도 직접 고용으로 가지 않고 자회사에 잔류하겠다'는 내용의 서명을 받기도 했다.


6월 1일부터 일부 톨게이트영업소에서 자회사 전환 시범 운영을 시작했다. 이때부터 자회사 전환을 거부한 요금수납원들이 해고되기 시작했다. 7월 1일 전국의 톨게이트 영업소를 자회사로 전환함에 따라 6천여 명의 요금수납원 중 자회사 전환에 동의하지 않은 요금수납원 1500명이 일시에 해고됐다. 

이에 6월 30일 톨게이트 요금수납원 43명이 경부고속도로 상행선 서울 톨게이트 지붕에 올랐고, 500여 명이 청와대와 서울요금소 주변에서 노숙 농성을 시작했다. 고공과 노숙 농성 41일째인 8월 8일 박순향 전국민주연합노조 톨게이트본부지부 부지부장을 만났다.

고용 매개로... 위탁업체 사장과 관리자들의 폭력
   
"우리는 지금까지 하루살이 인생이었다. 단기간 근로계약을 맺고 계약 연장 때문에 온갖 눈치를 보았다. 너무 억울해서 근로자지위확인소송을 했고 직접고용해야 한다는 판결을 받았다. 곧 직접고용이 되겠구나 생각했다. 그런데 자회사라니. 직접고용을 회피하려는 꼼수로밖에 볼 수가 없다.

7월 1일부로 대량 해고 됐지만, 우리는 그전부터 지금까지 계속 해고당했다. 내가 안 잘리면 옆 동료가 잘렸다. 아 소리도 못 냈다. 싫다 소리 못하고 뒤돌아서 울고, '내가 아니라 다행이다' 한숨 쉬던 시절이었다. 지금은 어차피 잘리던 삶이니, 두렵지 않다. 쥐도 구석에 몰리면 고양이를 문다. 우리가 그렇다. 정규직 전환으로 해고 고통에서 벗어나자는 것이고 대법원 판결에 자신감이 있어서 더 잘 버틸 수 있는 것 같다."

농성에 참여하는 여러 노동자들이 자주 하는 말은 '이기적인 요구가 아니'라는 것이다. 임금 인상이 아니라 이미 법원에서 판결한 직접고용의무를 다하라는 것이다. 거기에는 고용불안을 매개로 수년 동안 당해온 위탁업체 사장과 관리자들의 폭력과 전횡이 있다. 

"모여서 얘기해보니 정말 별의별 일이 다 있다. 중년 여성노동자들이 대부분인데 바로 그런 특성을 이용하는 갑질들이 많았다. 한 조합원의 얘기다. 오전 6시에 교대를 들어가느라 남편 밥도 못 차려주고 나왔는데, 출근해서 외주업체 사장을 위해 밥을 지어줬다고 한다. 전기밥솥에 지은 밥은 안 먹는다고 해서 1인용 돌솥에 밥 지어주고 일 시작했다고 한다. 

술을 못 먹는 조합원을 대리기사로 쓰려고 회식 자리에 부른 적도 있다고 한다. 성추행은 비일비재다. 사장을 싣고 집에 가고 있는데 뒤에서 가슴에 손을 집어 넣은 사례도 있었다. 도로공사랑 위탁업체가 회식을 하면 비교적 젊고 예쁜 조합원들은 억지로 불려나갔다. 우리끼리 못생겨서 다행이라는 농담이 있을 정도였다. 회식 후에 노래방에 갔는데 어떤 도로공사 직원은 못볼 꼴을 보여주기도 했다. 심지어 도로공사 본사에만 권한이 있는 사항에 대해 전화로 요청을 했더니 '나랑 자면 삭제해주겠다'고 말한 직원도 있었다. 

앉아서 하는 일이다 보니 지체 장애가 있는 직원들도 꽤 많다. 계단 다니는 게 어렵다든지, 의족이나 의수 쓰는 분들도 있다. 장애인 고용하면 보조 수당이 3년간 지원된다. 3년이 지나면 그들 말로는 쓸모가 없는 셈이다. 서로 다른 영업소랑 장애인 직원을 교환한다. '너무 멀어 못 가겠다'고 하면 계약 만료되는 거다. 

조합원들에게 마이크를 줬더니 이런 얘기가 터져나왔다. 우리가 얼마나 우스웠으면 이런 일이 벌어졌을까 싶다."


'중년 여성' 노동자들의 저력이 빛을 발하다

 
막상 싸움이 시작되자 그들이 무시하던 바로 그 '중년 여성' 노동자들의 저력이 드러났다. 현재 한국노총 소속의 톨게이트노동조합 조합원들은 서울요금소 근처에서, 민주노총 투쟁본부 소속의 노동자들은 청와대 사랑채 앞에서 노숙농성을 이어가고 있다. 특히 청와대 사랑채 앞에서 200여 명이 장기간 노숙농성하는 경우는 처음이다. 

"처음 청와대 앞 노숙농성 시작했을 때 고데기를 가져온 조합원이 있을 정도였다. 노숙농성이 이 나이대 여성들이 흔히 겪는 경험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뭐가 뭔지 몰랐던 거다. 텐트도 천막도 없이 맨바닥에서 홑이불 하나씩 덮고 잤다. 단 며칠만에 조합원들이 정말 잘 적응해줬다. 대부분 중년이라 엄마 손이 한참 가는 어린 자녀를 둔 조합원이 많지 않았다. 도로공사에서는 남편들이 투쟁을 방해하고 괴롭힐 거라고 생각했는데 오산이었다. 조합원들은 '남편이 투쟁하지 말라고 하면 이참에 갈라선다'고 농담 반 진담 반 말했다. 중년 여성들한테는 이혼 얘기가 두렵지가 않다. (웃음). 남이 해 주는 밥 먹으면서 온 종일 투쟁만 하면 되니 너무 좋다는 조합원도 있다. 

늘 집안 일 챙기던 여성들이라 노숙 농성도 잘 하는 것 같다. 자고 일어난 자리 청소, 분리수거도 정말 잘한다. 매주 금요일은 서울요금소에 와서 지붕 위 동지들을 만나고 여기서 자는데, 우리가 떠난 자리 바닥에 떨어져 있는 건 가로수 은행잎 뿐이다. 빌려 쓰는 경찰서 화장실 휴지통이 꽉 차면 우리 조합원들이 봉투 가지고 가서 직접 다 치운다. 

노숙 농성은 3박4일씩 2조로 나눠서 교대하고 있다. 여성 조합원들은 집에 가도 나머지 3일을 제대로 쉬는 게 아니다. 밀린 집안일 하고, 농성하면서 입었던 옷 몰아서 빨고, 다음 농성하러 올라갔을 때 가족들이 먹을 밑반찬 만들다보면 3일이 금세 지나간다. 그러면 다시 1인용 텐트랑 돗자리 챙겨 전국에서 버스타고 기차타고 서울로 올라온다."

7월 1일부터 해고 상태이기 때문에 현재 투쟁에 참여하고 있는 노동자들은 급여가 나오지 않는다. 벌써 급여 없는 월급날이 한 번 지나갔다. 노동조합은 해고와 동시에 실업급여를 신청하고, 실업급여 받아가면서 같이 싸우자고 설득했다. 첫 번째 월급날 조합원들이 충격 받지 않을까 걱정되었는데 큰 흔들림 없이 지나갔다. 

"생각보다 다들 정말 잘 해주고 있다. 청와대 앞에서는 매일 오후 6시 문화제를 한다. 열명씩 조를 짜서 트로트 가사 바꿔 부르기 대회를 했는데 준비하는 4시간 동안 팀별로 구석에서 노래 틀어놓고 율동을 만들었다. 정말 적극적으로 참여했다. 그걸 보고 톨게이트 지붕 위에 있는 조합원들이 자기들도 참여하겠다며 'DOC와 춤을' 노래를 '톨게이트와 춤을'로 개사하고, 핸드폰에 대고 불러 녹음하고, 율동까지 만들어서 공연했다. 

양대 노총에 5개 노동조합 조직 소속 노동자들이 함께 투쟁하고 있다. 한 조직이 아니기에 같이 싸우는 게 쉬운 일이 아니었다. 사실 친해지기 어렵기도 하다. 하지만 수납원으로 십수년을 같이 살아왔다. 공동의 정체성, 끈끈함이 있다. 지금도 도로공사는 나누고 회유하려고 온갖 시도를 하지만 우리에겐 함께 해야 이길 수 있다는 확신이 있다."

박순향 부지부장은 투쟁이 끝나면 조합원들과 같이 1박2일로 여행을 간다고 했다. 노숙은 문제 없으니 버스만 대절해 계곡이든 바다든 산이든 가서 신나게 놀고, 아무 데서나 하루 자고 오자고 약속했다고 한다. 40일이 넘게 노숙하고 '사람 있을 곳이 못 되는' 톨게이트 지붕 위에서 버티면서도 이런 신나는 약속을 할 수 있는 힘은 이기적인 싸움이 아니라는 자신감, 우리가 옳다는 확신, 수납원으로 함께 고생한 노동자 사이의 연대감이다.

기자와 인터뷰를 한 날 저녁, KBS1 <거리의 만찬>에는 '고속도로 로망스'라는 제목으로 톨게이트 요금수납원 노동자들의 농성 이야기가 방송됐다. 투쟁과 연대로 성장하는 노동자 이야기가 로망스다. 

"우리가 옳다는 확신이 투쟁의 동력"
  
박순향 부지부장과 인터뷰를 마친 후, 서울톨게이트 농성 현장으로 이동해 지붕 위의 도명화 지부장과 전화 인터뷰를 했다. 박순향 부지부장은 지붕 위 조합원들에게 미안하다며 울었는데, 도명화 지부장은 밑에서 싸우는 조합원들에게 미안하다고 한다. 이런 끈끈한 마음이 조합원들을 계속 한 자리에 묶어 세워두고 있었다.

다음은 톨게이트 지붕 위 도명화 전국민주연합노조 톨게이트본부 지부 지부장과 나눈 일문일답이다.

- 매우 더울텐데 어떻게 지내나?
"비 올 때는 비가 와서 힘들다고 생각했는데 폭염이 오니 비오는 게 낫다. 그늘막 밖에 햇빛을 피할 곳도 없다. 더울 때는 그냥 죽은 듯이 숨만 쉬고 있다."

- 건강 문제는 없나?
"오늘도 설사가 심해서 한 분이 내려갔다. 다른 조합원은 진드기에 얼굴을 물려 진물이 나고 퍼져서 내일 내려가기로 했다. 나는 발가락이 부러졌는데 일단 임시처방으로 붕대를 감아뒀다. 토요일마다 인도주의실현의사협의회에서 올라와 진료해주는데 엑스레이가 안 되니 한계가 많더라. 청년한의사회는 수요일마다 올라와 침을 놔주신다." 

- 정신적으로도 힘들지 않나?
"힘든 것은 오히려 무감각해졌다. 소음과 진동 때문에 잠 못자는 것도 처음에는 힘들었는데, 이런 상황에서 잠을 잘 자면 그것도 이상하다며 받아들이자고 했다. 서로 얘기하면 자꾸 눈물짓는 분들도 있지만 허심탄회하게 얘기하는 게 좋다 해서 얘기하는 시간 자주 가지려고 하고 있다."

- 아래 있는 조합원들에게 하고 싶은 말은?
"올라올 때까지만 해도 밑에 있는 동지들이 잘 싸워줄 수 있을까 걱정을 많이 했다. 우리는 버티기만 하면 되지만 밑에서는 시간을 내 몸을 움직여 싸워야 한다. 그런데 오히려 밑에 있는 동지들이 우리를 걱정하고, 우리를 내려오게 하려고 애쓰는 마음에 항상 미안하고 고맙다. 생각보다 잘 싸우고 있어서 매일 감동이다."

- 이렇게 잘 싸우고 있는 동력은 무엇일까?
"처음 하는 투쟁이라 잘할까 불안했는데 지나고 보니 처음이라 잘할 수 있었던 것 같다. 같이 버틸 수 있는 동지들이 많고 우리가 하고 있는 투쟁이 욕심으로 얘기하는 게 아니라는 생각, 우리가 옳다는 확신이 투쟁의 동력이다." 

<일터> 통권 187호 / 2019.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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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터> 187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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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집] ‘불법’인 사람은 없다 
1. 안전보건 영역에서 배제 되는 이주노동자 실태와 문제점
2. 이주노동자의 건강권 증진을 위한 지자체의 역할
3. “이주노동자의 인권은 우리 사회 인권 수준의 바로미터입니다.”

[지금 지역에서는]

지역의 노안운동, 출발선에 서서 

[산재보험 톺아보기]

모든 산재를 산재로 : 산재보험 적용 확대 1

[연구리포트]
외주화된 노동에서 위험의 구조화와 노동자 권리의 문제
[A-Z까지 다양한 노동 이야기]

'비정규적' 복지사업을 떠받치는 방문간호사
[사진으로 보는 세상]
[현장의 목소리]

50대 여성 노동자들, 고공농성, 노숙농성하며 힘나는 이유  
[노동안전보건활동가에게 듣는다]

"안전과 생명은 가장 중요하기에 꾸준히 활동하고 있습니다."
[노동시간 읽어주는 사람]

핵발전소 노동자가 치르는 거짓의 대가, 저선량 피폭  
[직업환경의학 의사가 만난 노동자 건강 이야기]

누구를 위한 D1인가
[유노무사 상담일기 더불어與]

노동존중인간에대한예의
[노동자 건강상식] 

가을철 열성 질환
[문화읽기]

어떤 기다림, 어떤 사랑의 노래 낭독노래극 <기다림>
[발칙 건강한 책방]

근대화가 열어놓은 타자들의 시공간
[이러쿵 저러쿵]

우리의 노동을 연민하지도, 비난하지도 마세요
[안전보건동향]
[한노보연 이모저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