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터> 통권 179호 / 2019.01





[특집] 변화를 맞이한, 2019년 노동안전보건 행정 

1. 개정된 산업안전보건법, 노동자의 건강과 삶을 온전히 지킬 수 있도록 만들자 

2. 산재 보상 제도의 변화와 과제 

3. 도돌이표만 반복되는 노동시간 단축과 최저임금 

4. 2019년 건설현장 달라지는 것과 달라져야 할 것들  

[지금 지역에서는]

노동자 정신건강 돌봄을 위한 현장치유활동가 기획강좌를 마치며 

[국제안전보건기준에 관한 비교 검토 연구]

2017년, 미국 내 일터에서 5천여 명이 사망했다 

[안전과 건강 칼럼]

어떤 경영자 눈으로 본 최저임금, 탄력근로제, 위험의 외주화 

[A~Z까지 다양한 노동 이야기]

놀이로 아픈 마음과 몸을 치료하는 놀이치료사를 만나다 

[사진으로 보는 세상]

[현장의 목소리]

"전태일의 정신을 이어갑니다"

[노동안전보건 활동가에게 듣는다]

보석세공 노동자들의 삶도 보석처럼 빛나길  

[직업환경의학 의사가 만난 노동자 건강이야기]

그는 일할 수 있는 다니엘 블레이크였다

[유노무사 상담일기 더불어 여(與)]

외주화의 종말, 노동자의 생명, 안전 위협 

[노동자 건강상식]

건강검진 이야기(2)

[문화읽기]

우리는 죄는 중대하다

[발칙 건강한 책방]

이 세상에서 하나뿐인 나로, 함께 산다 

[노동시간 읽어주는 사람]

돌봄노동자 마리아의 '어머니 되기'  

[이러쿵 저러쿵]

한노보연 활동을 시작하며 여는 글 

[안전보건동향]

[한노보연 이모저모]

[만평] 아직... / 2019.01


[직업환경의사가 만난 노동자 이야기] 그는 일할 수 있는 다니엘 블레이크였다 / 2019.01

그는 일할 수 있는 다니엘 블레이크였다

송윤희 (직업환경의학 전문의, 회원)


다니엘 블레이크는 심근 경색을 앓은 후 직장에 복귀하지 못했다. 노동 말고는 생계를 유지할 길이 없었던 그는 주치의에게 가서 일을 다시 할 수있게 해달라고 호소했다. 그러나 그의 심초음파 결과를 본 심장 내과 의사는 걱정스러운 얼굴로 단호하게 말했다. “일하면 죽을 수도 있어요. 절대 일하지 마세요.”

다니엘은 심한 심부전 상태였기에 의사는 업무부적합 소견을 철회하지 않았다. 월세도 못 내고 전기세도 밀린 다니엘은 실업자 연금을 받으려고 이리 뛰고 저리 뛰었다. 그러다 전기도 끊기고 월셋집에서 쫓겨나기 바로 전 연금 혜택을 결정하는 자리에 간신히 인터뷰를 따냈다. 죽느냐 사느냐의 인터뷰였다. 그 인터뷰를 앞두고 다니엘은 화장실에서 쓰러져 죽는다. 지나친 스트레스가 그의 심장을 멈추게 한 것이다. 영국의 유명 좌파감독 켄 로치의 영화 <나, 다니엘 블레이크>의 내용이다.

내가 만난 노동자 이 씨는 다니엘 블레이크와 유사한 상황이었다. 나는 심근 경색을 앓은 그의 작업 복귀에 대한 업무적합성 평가를 해야 했는데 다니엘과 차이가 있다면 그의 심장 상태는 노동 자체를 아예 금할 정도는 아니었다는 것이다. 그래도 심초음파 결과는 좌심실 구혈률(심실이 수축하며 피를 짜내는 정도)이 정상의 반 정도로 떨어져 있었기에 그냥 일하게 내버려 두어도 불안한 상황이었다. 이 씨에게 제대로 <업무 적합성 평가>를 하려면 철저히 객관적인 자료들이 바탕이 되어야 했다. 3차 병원에서의 운동부하 검사, 주치의의 소견서, 진단서, 처방전을 토대로 환자의 현재 건강 상태를 정확하게 평가하고자했다. 또 하루 날을 잡아 그와 인터뷰를 하고 현장도 돌았다. 이 씨는 자동차 부품 제조회사의 보전반에 속해 있었다. 특정 라인에 배정되어 있는게 아니라 대기하고 있다가 고장 난 기계를 고치거나 필요한 부품들을 만들어내는 등의 불규칙적이고 일정치 않은 업무들이었다. 현장을 돌며 심장에 영향을 미칠 요인들을 살폈고, 그 시간 내내 나는 사측과 노측에 “의사로서 중립을 지킬 것이며, 모든 잣대는 ‘노동자의 건강’ 하나만으로 삼을 것”이라고 피력했다. 예상할 수 있듯이 결과는 일정 조건 하 업무 적합으로 나갔다. 그러나 내가 단 조건들은 현장 동료 노동자들의 반발을 샀다.

그런 작업 조건을 걸면 이 씨한테 시킬 일이 거의 없다는 것이 반발의 요지였다. 이 씨는 급작스러운 상황을 대비하여 혼자 일해서도 안 됐고, 20kg 이상의 심한 하중의 일에서 배제되어야 했으며 그 외에도 페인트나 신너 등 유기용제를 사용하는 작업에서도 배제되어야 했다. (이 모두는 심장에 악영향을 미치기에 필수적인 조건들이었다) 노조가 강한 곳이었고, 비교적 노동자들의 관계도 강한 노조 덕에 팍팍하지는 않은 사업장이었다. 그러나 매번 아픈 그를 위해 더 힘들고 더 유해한 일을 누군가가 대신해준다는 것은 무리였을 것이다. 결국 회사는 그에게 갑작스러운 작업변경 발령을 내렸다. 나는 다시 사업장에 가서 그가 일할 수 있는 공정들을 살피고 그중 가장 심장에 하중이 안 가는 좌식 업무인 부품 검사직을 권했다. 나름 만족스러웠다. 플랜 A가 현실에 적용되지 못했지만 플랜 B도 나쁘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제 제대로 업무 적합성 평가를 하고, 노동자의 건강에 가장 적합한 공정으로 작업 변경을 시켰다는 생각에 뿌듯했다.

그러나 한 달 뒤 이 씨는 회사를 그만두었다. 충격이었다. 여러 가지 이유가 있었다. 우선 급여가 적었다. 비록 좌식 업무였으나 20년 넘게 해온 기존 업무를 그만두고 새 업무를 배운다는 부담감이 있었다. 검사 작업의 노동 강도는 약했지만, 대기하고 있다가 필요시 출동해서 힘 한 번 쓰고 오는 예전 업무보다, 종일 좌식으로 앉아서 쭈그린 자세로 검사를 하는 작업이 더 힘들었다고 했다.

그는 일할 수 있는 다니엘 블레이크였다. 적절히 현장에서 배려만 해준다면 업무에 적합한 노동자였다. 하지만 사측도 노측도 아파서 죽다 살아난 환자를 위해 깍듯한 배려를 지속할 수 없었다. 그러기엔 우리나라 노동 환경이 너무나 척박하다. 노동자는 격무에 시달리고 회사는 산재 하나 일어날까 벌벌 떤다. ‘노동자의 건강’ 역시 조금 더 전인적(全人的) 관점으로 살펴져야 할 것이다. 나는 이번 사례로 노동자의 건강에 영향을 주는 것 중 객관적 의학검사 수치 외에도 너무나 다양한 사회·심리·경제적 요인들이 작동한다는 것을 다시 한 번 실감했다. 업무 적합성 평가는 일할 수 있는 사람을 일하게 하는 데에 쓰여야 한다. 누군가를 더 낙인찍히거나 어우러져 작업하기 어렵게 만들어서도 안 될 것이다. 하지만 현실적용은 절대 녹록치 않다. 이 과정에 더 많은 현실적/철학적 고민이 함께 진행되어야 하는 이유다.

[연구리포트] 일을 마친 후 지치지 않는, ‘적절한’ 노동강도 찾기 -형틀목수 노동강도 평가 사업 소개 / 2019.01

일을 마친 후 지치지 않는, ‘적절한’ 노동강도 찾기

- 형틀목수 노동강도 평가 사업 소개

최민 (상임활동가)


현장 방문 조사 중 연구진이 하나에 18kg쯤 나가는 유로폼을 양손에 하나씩 들고 이동하는 노동자에게, “유로폼 무게가 얼마나 나갈 것 같으세요?” 물었습니다. “이거? 한 5kg 나가려나?” 말끝을 흐리는 노동자에게 실은 하나당 20kg 가까이 나간다고 말씀드렸더니, 본인이 깜짝 놀랍니다. 쌀 한 가마니가 얼마나 무거운데, 내가 지금 그걸 두 개 들고 있는 거냐고 되묻습니다. 

본인들이 하는 일의 강도에 대한 건설 노동자들의 인식이, 이 장면에서 잘 드러납니다. 건설 노동자가 얼마나 힘든 일을 하는지 이미 잘 알려진 것 같지만, 본인들조차 그 ‘힘듦’이 어느 정도인지, 이렇게 수십 년을 일해도 되는지 잘 모릅니다. 사실 건설 현장에서 어떤 사람들이, 얼마나 힘든 일을, 어떻게 하고 있는지, 그것 때문에 어떤 문제를 경험하는지 제대로 평가하고 드러낸 적은 별로 없었습니다.

그래서 2017년부터 건설노조와 한국노동안전보건연구소가 함께 건설노동자 중 먼저 형틀목수 노동강도 평가 사업을 했습니다. 2년에 걸쳐 설문조사, 면접조사, 현장조사, 심장박동수 측정 등의 생체지표 측정 조사를 현장 중심으로 실시하여, 형틀목수 노동자들이 느끼는 노동강도를 평가하고자 했습니다. 나아가 노동강도를 강화하는 근본적 원인을 밝혀, 이후 적정 노동강도 쟁취를 위한 노동조합의 기준과 대안을 모색해보는 것도 중요한 연구 목표였습니다.

건설현장 노동강도는 “생애 최고”

두 차례 심층 면접 조사를 실시했는데, 면접 참여자 모두 형틀목수 노동자의 노동강도는 “최고”라고 답했습니다. 가장 큰 원인으로, 적정 공사비를 왜곡시켜 무리하게 공사 기간을 단축하는 불법 하도급이 지적됐습니다. 조사에 참여한 건설노조 조합원은 하도급으로 일하지 않는 경우가 많고, 점심시간 1시간과오전 오후 참시간 각 30분을 잘 챙기려고 노력하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주변의 비조합원 노동자들은 불안정한 고용과 임금 때문에, 쉬는 시간도 지키지 않고 늦은 시간까지 일하고 있죠. 건설 현장에서 노동조합 조직률이 높아지고, 함께 ‘시간을 지켜’, ‘적절하게’ 일할 수 있다면 건설현장 산업재해도 훨씬 줄어들지 않을까요?

무리한 공사 기간 단축으로 인한 빠른 작업속도와 강도는 근골격계질환과 사고 위험을 함께 높이게 됩니다. 게다가 발판이나 안전대가 제대로 돼있지 않고, 바닥이 안전하지 않은 환경에서 하는 일은 그 자체로도 위험 작업이 되기도 합니다. 피곤한 체력을 회복하고 피로를 풀 수 있는 휴게실, 화장실이 부족한 문제나 식당의 음식 질이 낮은 것처럼 기본적인 위생시설이 열악한 것은 신체적으로 불편함을 줄 뿐만 아니라, 노동자들의 자긍심을 떨어뜨리고 있었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형틀목수 노동자들은 정부정책을 실효성 없게 느끼고 있었습니다. 현장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는 안전관리자, 노후에 대한 불안을 가중시키는 퇴직공제부금 문제 등 정부를 신뢰하기 어려운 상황인 것입니다.

형틀목수 노동자를 둘러싼 부정적 환경과 조건은 부실공사로까지 이어집니다. 건설노동자의 적정 노동강도 현실화와 노동환경 개선은 비단 형틀목수 노동자들뿐만 아니라 시민들의 안전을 위해서도 반드시 필요한 조치입니다.

30~40대 건설노동자가 50~60대보다 더 아프다?

그런데, 막상 설문조사 결과에서는 이런 결과가 뚜렷하게 나오지 않았습니다. 건설노동자들의 노동강도 체감 정도는 제조업 등 다른 생산직 노동자들보다 오히려 더 낮았습니다. 건설노동자들 본들이 얼마나 힘들게 일하는지 별로 의식하지 못한 채 일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물론 높은 노동강도를 짐작케 하는 설문 응답도 많았습니다. 설문 참여 노동자의 평균 연령은 53.2세, 60세 이상이 28%가 넘었습니다. 어떤 일을 하던 나이 때문에라도 일이 힘들다고 할 법도 한 상황입니다. 게다가, 형틀목수 노동자들은 계속 서 있거나 반복적 손과 팔 사용, 중량물 취급, 불편한 자세 등 인간공학적 유해요인, 한랭과 고열, 소음, 진동 등 물리적 요인, 각종 분진과 2차 흡연 등 화학적 유해요인에 일반 노동자 집단보다 2~10배 많이 노출되는 ‘위험한’ 작업환경에서 일하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어느 한 부위 이상 근골격계질환 증상을 호소한 비율은 62.2%. 이런 비율은 제조업 노동자나 학교급식노동자들에 비해 그렇게 높은 비율도 아닙니다. 한 분씩 만난 면접에서는 다른 어떤 직업보다 힘들다고 호소했지만, 동시에 ‘이 정도는 참고 일해야지, 이 정도 아픈 것은 아픈 것도 아니다’라고 생각하고 있는 것일까요? ‘예전보다는 나아졌다’, ‘도급팀보다는 낫다’는 생각이 아프거나 피곤하다는 평가에 인색하도록 만드는지도 모릅니다. 일이 많이 힘든 분들은 이미 건설 현장을 떠났고, 상대적으로 더 건강한 노동자들만 형틀목수로 남아있는지도 모릅니다.

신기하게도 근골격계질환 증상 호소율은 50~60대보다 오히려 30~40대에서 더 높게 나타났습니다. 형틀목수라면 유사한 업무를 하고, 오히려 경력이 오래된 노동자들이 힘든 일을 하는 경우도 많아서, 구체적으로 하는 일의 차이로는 이 결과가 설명되지 않았습니다. 건설현장의 높은 노동강도에 적응한, 오랜 경력의 노동자들은 근골격계 통증도 덜 호소하고 있다고 보는 것이 더 정확할 것 같습니다. 그런데 그것이 정말 힘들지 않고 아프지 않아서인지, 아프거나 피곤하다는 평가를 꺼리기 때문인지는 더 자세히 들여다봐야 합니다. 면접 과정에서, 몸이 재산인 건설 노동자는 아픈 경우에도 스스로 나쁜 건강 상태를 숨길 수밖에 없다는 얘기도 있었기 때문입니다. 함께 일하는 동료들 역시 아픈 노동자에게 안타까움을 느끼지만, 같이 일하기는 부담스러운 것도 사실입니다.

형틀목수 현장평가,

제조업 노동자의 2.33배 노동강도

실제로 현장에 가서 들여다보니, ‘괜찮다’던 설문 조사 결과는 더욱 믿기 어려웠습니다. 현장 평가 결과 형틀목수 노동자들의 하루 작업 대부분이 거의 모든 부위의 근골격계 부담 작업에 해당한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지나치게 무거운 자재 운반, 두 사람이 나눠 들지 못 하므로 발생하는 중량물 작업, 불편한 자세 등은 물론이고 빠르고 수월하게 작업하기 위해 생략하는 안전 수칙들, 지나치게 이른 시간에 시작하는 작업 등 안전하지 못한 작업은 그 자체로 높은 노동강도의 작업이 되었습니다.

형틀목수 노동자들이 노출되는 소음, 분진, 화학물질, 직사광선과 고온 등의 유해요인 역시 형틀목수 노동자의 노동강도를 높이는 이유가 됩니다. 같은 일을 할 때, 더 열악한 물리적 환경에서 일하는 노동자, 더 많은 직무스트레스를 받는 노동자는 더 쉽게 피로를 느끼고, 더 많은 근골격계 증상에 시달리게 됩니다. 여전히 낮은 사회적 인식과 평가, 상대적으로 낮은 보상, 고용 불안정 등 직무스트레스 역시 건설현장 노동자의 노동강도를 높이는 중요한 조건입니다.

형틀목수 노동자들의 높은 노동강도는 직접 신체활동량을 측정한 결과에서도 여실히 드러났습니다. 형틀목수 노동자의 노동시간 한 시간당 칼로리 소모량은 평균 약 115.2kcal였습니다. 아파트 본층, 주택, 아파트 지하 순으로 칼로리 소모량이 높아 아파트 본층의 노동강도가 가장 높은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본층에는 건설노조 조합원들은 거의 일을 하지 않고, 이주 노동자들이 하도급으로 일하는 경우가 많은 것은 사실입니다. 하지만, 주로 조합원들이 일하는 아파트 지하팀의 칼로리 소모량도 사무직 노동자보다 4.6배, 제조업 생산직 노동자보다 2.33배 높았습니다.

측정한 심장박동수를 활용하여, 최대적정노동시간과 과로지수를 산출한 결과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심장박동수가 잘 측정된 11명 중 10명이 과로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심장박동수를 사용해서 계산한 최대적정노동시간은 평균 5시간으로, 현재의 노동강도로는 하루 5시간 정도 일하는 게 적당하다는 의미입니다. 일부 노동자의 경우 현재 작업량의 절반 이하로까지 작업을 줄이는 것이 바람직하다는 결과도 있었습니다. 평균 과로지수는 1.97로 절반 정도로 노동시간 혹은 노동강도를 줄여야 한다는 의미이며, 유난히 과로지수가 컸던 2명의 노동자를 제외한 경우에도 과로지수 1.76으로 현재 작업보다 43% 가량 노동강도를 줄여야 한다는 의미입니다.

우리의 노동이 할 만한 일이 되려면

이런 결과를 보면, 건설노동자들이 자신의 노동이 ‘힘든 일’이라는 것을 제대로 인정하는 것이 모든 활동의 기초가 되어야 할 것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지금은 누구나 건설 노동이 힘든 일이라고 생각하면서도, 동시에 ‘건설 일이니까 어쩔 수 없다’, ‘원래 이 정도는 힘들다’고 쉽게 포기해버리고 있습니다. 이런 태도 대신 우리의 일이 얼마나 힘든지, 왜 힘든지, 어떻게 힘들지 않고, 안전하고 건강하게 일할 수 있을지를 스스로가 먼저 자세히 들여다보는 것이 건설 노동을 ‘할만한 일’로 만드는 시작점이 될 것입니다.

이번 노동강도 평가를 바탕으로, 건설노조에서는 조합원 근골격계질환 산재 승인 확대와 예방활동을 본격적으로 확대해가기로 했습니다. 건설노동이 위험한 일일 뿐 아니라 ‘힘든’ 일이라는 것을 알리자는 뜻도 모았습니다. 허리나 어깨가 아픈 노동자가 눈치 보지 않고, 당당하게 치료받도록 하는 활동에서 시작해서, 예방을 위한 활동까지 나아가는 것이 과제입니다.

이것은 건설노동자에게만 해당하는 과제는 아닐 것입니다. 다른 일터와 노동현장, 직장에서도 여러 노동자가 각각 본인이 현재하는 일이 적절한 노동강도로 이루어지고 있는지 곱씹어보고 평가해보기를 기대합니다. 일을 마친 후에도 지치지 않을 만큼, 적당히 일하고 있나요? 아니, ‘지치지 않을 만큼’은 제대로 된 기준이 아닌 것 같습니다. 우리는 일을 마친 후, 가족과 즐거운 시간을 보내고, 보고 싶은 영화를 보고, 좋아하는 사람을 만나서 행복한 시간을 보낼 수 있을 만큼의 적당한 일을 하고 있나요? 한번 같이 평가해보고, 어떻게 하면 그렇게 일할 수 있을지 함께 궁리해보실래요?

[A~Z까지 다양한 노동이야기] 놀이로 아픈 마음과 몸을 치료하는 놀이치료사를 만나다 / 2019.01

놀이로 아픈 마음과 몸을 치료하는 놀이치료사를 만나다

- 놀이치료사 박선영 님 인터뷰 

나래 (선전위원) 


놀이로 '치료'를 한다는 사실, 많이 낯설다. 치료 행위는 보통 약물치료, 물리치료 등으로 이해된다. 병을 낫기 위해선 필요한 치료이지만, 만약 아동의 마음이 아프다면? 방법은 달라진다. 놀이를 매개로 마음이 아픈 아동과 가족, 더 넓게는 우리 사회 전체가 건강할 수 있도록 노력하는 이들이 바로 놀이치료사다. 지난 1월 2일 박선영(가명)님을 만나 놀이치료사가 어떤 일을 하는 사람인지 자세한 이야기를 나누었다.

▲ 박선영 님의 일터 [출처: 박선영]


박선영님은 30대 초반으로 2012년에 대학원을 졸업하고 바로 일을 시작해, 2017년 출산과 함께 1년 6개월 가량 육아휴직을 한 뒤 다시 복귀해 놀이치료사로 일하고 있다. 여성에게 출산과 육아는 곧 경력단절로 이어져 불안함이 크기도 하지만, 다행히 당시 일했던 기관에서 4대 보험을 들어줘 출산 및 육아휴직을 사용할 수 있어 안정적으로 아이와 시간을 보낼 수 있었다.

덕분에 주변 놀이치료사의 부러움을 샀던 경험도 동시에 떠올렸다. 실제 취업포털 사람인이 '300인 미만 규모 기업'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육아휴직을 사용한 여성 노동자의 비율은 47%로 채 절반이 되지 않았다.

"어렸을 때부터 아이들에게 관심이 많아서 유치원 교사가 꿈이었어요. 사회복지학과에 입학했는데 공부하면서 뭔가 나랑 잘 안 맞는 다는 생각이 우선 들더라고요. 저는 일대 다수가 힘들어요. 일 대 일, 일 대 소수는 편한데 말이죠. 그래서 제 꿈을 찾으려고 이런저런 워크숍에 참여해봤어요.

마침 대구에서 재활심리학회 워크숍이 열려 참여했어요. 그 중 3시간짜리 한 과목이 놀이치료였죠. 놀이로 아이들을 변화시킬 수 있다는 점이 확 끌리더라고요. 그때부터 놀이치료를 해야겠다고 생각하고, 많이 알아봤어요. 저에게 터닝포인트였죠."


프리랜서로 감춰진 놀이치료사의 노동조건

놀이치료사의 하루는 오후에 시작된다. 보통 아이들이 어린이집, 유치원 마치고 치료를 받으러 오기 때문이다. 주로 만나는 아동의 연령은 아주 어린 경우는 15개월부터 초등학교 고학년까지다. 치료 40분, 부모상담 10분 총 50분 동안 일을 마치면 10분의 휴식 시간이 주어진다.

하지만 제대로 쉬진 못한다. 치료 기록을 남겨야 하고, 장난감 정리, 다음 상담 준비도 연이어 해야 하기 때문이다. 1시간 마다 상담 하나를 하는 셈이다. 보통 하루 4~5건을 하는데, 그러다 보면 어느새 하루가 간다.

전문적 지식과 기능이 요구되기 때문에 기본적으로 대학원에 진학해야 한다. 일을 하는 동안에도 필요한 자격증 취득, 세미나 참가 등 밀도 높은 공부와 경험이 필요하다. 그러나 직무에 대한 높은 요구에 비해 안정적 일자리는 찾기 어렵다.

일반적으로 놀이치료사는 계약직, 파트타임으로 일하는 경우가 대다수다. 만약 본인이 정규직으로 취업하길 원해도 애초에 파트타임, 프리랜서 등 형태의 구인만 한다. 그렇다 보니 임금은 상담 건당 보수를 책정하고, 4대 보험엔 가입되지 않는다. 심지어 지역마다 치료비용도 다르다.

"저희는 정해진 임금 가이드라인이 없어요. 임금인상도 거의 없죠. 5백 원 올리기도 힘들어요. 자격증 하나 더 따면 본인이 요구해요. 안 받아주면 나와요. 개인이 협상하는 거에요.

게다가 지역마다 책정 비용도 달라요. 서울은 1건당 3~4만 원, 경기도의 한 지역은 센터장들끼리 맞춰 2만2천 원으로 정해졌어요. 강원도의 경우 2만5천 원~3만 원까지 준다고 하더라고요. 차이가 많이 나죠. 심지어 1건당 1만5천 원 받는 분도 봤어요."


아동의 주체적 힘을 길러주는 놀이치료의 매력

"저는 놀이라는 매개를 가지고 아동이 지니고 있는 발달적ᄋ심리적 어려움을 해소하도록 역할을 해요. 최적의 발달을 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거죠. 놀이치료가 끌렸던 이유는 바로 스스로 힘을 갖게 한다는 점이었어요. 치료사는 조력자인거죠. 제가 강제로 아동을 이끄는 것이 아니라 놀이치료 안에서 스스로 성장하는 힘을 갖게 해주는 거예요. 그게 굉장히 매력이 있고, 지금도 좋아하는 점이예요."

아동의 주체적 힘을 길러주는 놀이치료. 그렇다면 놀이가 어떻게 치료로 작용하는 걸까? 인터뷰 전 사진을 통해 본 놀이실의 색이 눈에 띄었다. 푸른 바다색부터 강렬한 빨간색 장난감까지 색이 다채로웠다. 다채로운 공간에 발을 디딘 아동과 놀이치료사 간의 치료 과정을 물었다.

"처음에 아동이 오면 놀이실을 설명해줘요. 여기서는 너가 하고 싶은 대로, 마음대로 놀이를 하는 곳이고 소중한 곳이라고도요. 참고로 발달치료와 심리치료는 방식이 달라요. 심리치료의 경우 아동 주도적으로 아동이 선택하는 놀이를 읽어주고 반영해주고 촉진시켜줘요. 놀이실 안에서 아동이 존중 받는다는 느낌을 갖게 하죠. 거의 아동이 선택한 놀이를 하고 그 흐름을 끌고 가는 식이에요.

반면 자폐, 지적장애 등을 대상으로 하는 발달 놀이치료의 경우 치료사가 먼저 적극적으로 놀이를 제안하고 아동 스스로 할 수 있게 해요. 두 치료 방식이 다르죠. 아동의 상태가 다르니까요. 그래서 예민한 치료사는 심리치료와 발달치료를 중간에 섞어서 하지 않아요. 왜냐면 본인의 치료 태도가 흐트러진다고 생각해서요.

치료 과정을 좀 더 구체적으로 설명하자면 만약 아동이 나무를 꺼내요. 그럼 제가 '어? 나무 장난감을 꺼냈네'라고 하면서 그 놀이를 그대로 읽어줘요. 마치 스포츠 중계를 하듯요. 그러면서 아동 스스로 생각할 수 있게 하고, 의미가 없는 것은 의미를 부여해주는 거죠.

놀이 중에 좌절감을 느낄 수도 있는데 충분히 좌절감을 느꼈지만 다시 할 수 있다는 것을 알려줘요. 사실 부모와 지낼 때 그런 것들을 놓칠 때가 많거든요. 놀이치료사는 그런 것들을 다 들여다봐주죠. 아동에게 수용해주는 느낌을 주는 거예요."


아동의 상태와 양육자의 노력, 환경에 따라 케이스 마다 다르긴 하지만 짧으면 6개월에서 길면 2~3년 동안 치료를 한다. 심리치료의 경우 아동이 치료 과정에서 이뤄지는 것들을 빠르게 빨아드리고, 자기를 드러내는 친구들의 경우 치료가 빠르게 진행된다. 반면 자신을 드러내지 않고, 감추는 친구들의 경우 더 기다려준다. 발달 놀이치료의 경우 길게 5년 동안 치료를 한 아동도 있다고 했다.

박선영님은 무엇보다 놀이치료는 치료를 받는 아동도 중요하지만 부모의 역할도 굉장히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7~8년 동안 많은 아동과 부모를 만나면서 경험한 사실이다.

"부모가 엄청 중요해요. 저는 일단 어머니에게 어떤 점이 아이를 키우는데 힘든지 들어봐요. 사실 기술이 부족해서 자녀와의 관계가 저해되는 것도 있거든요. 만약 그런 양육팁을 알면 '그래서 그랬구나'가 되는 거예요. 그래서 양육팁을 알려주기도 해요.

치료 방향도 사실 부모가 어느 정도 정하는 것이거든요. 갑자기 치료를 중단할 수도 있어요. 그래서 저 같은 경우는 부모 상담 때 숙제처럼 부모에게 어떤 것들을 해달라고 내줄 때가 많아요. 이번 주는 이런 것들을 해보면 어떻겠냐고 제안하는 거죠. 당연히 성실히 하는 부모가 치료 결과도 좋아요.

그렇기 때문에 처음부터 얘기를 하는데, '놀이치료 시작할 때 어머님이 함께 해야 하고, 본인은 1주일에 40분을 만나지만 어머니는 그 외 시간을 엄청 많이 보내고 있기 때문에 어머님이 변하지 않으면 안된다. 그러면 치료는 시작할 필요가 없다'고 강하게 얘기해요. 같이 해야 한다는 점을 강조하죠."


성대 결절에 걸리는 치료사들

문제와 어려움을 해결하기 위해 어렵게 치료실 문을 두드린 사람들이기 때문에 치료사 입장에서 치료를 할 때, 사람을 항상 마주해야 하는 일의 어려움이 있진 않은지 궁금했다.

"아직도 치료에 대한 부정적 편견이 있다는 점이 가장 힘들어요. 본인 아이 치료하는 걸 비밀로 해달라고 하기도 하죠. 저는 처음에 병원에서 일을 배웠는데, 거기서는 한 아동이 여러 치료를 받는 경우가 많았어요. 발달장애 아동의 경우 많이 그래요.

그런데 사설센터에 와보니 협업하는 과정이 없더라고요. 세 명의 치료사가 한 아동을 치료하는데 서로 지원하고 소통하지 않는 거죠. 각자 하는 거죠. 물론 치료 영역이 다르긴 하지만 같이 할 수 있는 방향이 분명 있을 텐데 그런 체계가 없는게 아쉬운 점이에요. 아동들이다 보니 어린이집, 유치원, 학교 등 다양한 공간에 가는데 그런 곳들과 연계되면 치료에도 훨씬 좋을 텐데, 우리나라에선 그렇게 하지 않아요.

만약 어린이집에 연락해 아동 생활이 궁금하다고 물어보면 반응이 반반이에요. 어떤 선생님은 받아주기도 하지만, 반면에 완전 싫어하고 정보를 줄 수없다고 해요. 업무 외 일로 취급하기 때문이죠. 사실 맞기도 하고요. 하지만 아쉽죠. 조력자가 필요하고 같이 하는 회의나 과정이 필요한데 말이에요.

그리고 아무래도 사람을 상대하는 일이다 보니 어려움이 있긴 해요. 그래서 주변 놀이치료사들과 교류를 통해서 많이 풀어요. 동시에 노력도 하죠. 치료를 해주기도 하지만 자기 문제가 있기도 하거든요. 그런데 그런 것들이 치료에 엮이면 안되기 때문에 주의하기 위해 자기 분석이란 걸 받기도 해요. 일종의 상담이죠."


어려운 점도 있겠지만 보람에 찼던 경우도 많다고 했다. 치료를 마치고 종결할 때 뿌듯한데 바로, 아이들이 주는 기쁨이라고 했다. 처음 만났을 때 소통이 잘 안됐는데 종결할 때 최소한의 사회 규칙을 알게 되는 등의 변화를 함께 할 때의 경험을 떠올리기도 했다.

기쁘고 보람찬 경험, 어렵고 힘든 점을 이야기 하면서 놀이치료사가 많이 겪게 되는 신체적 건강의 어려움은 없는지 물었다.

"우스갯소리로 항상 앉았다 일어나기 때문에 나이 더 들어서 무릎 아프겠단 이야기를 하기도 해요. 무엇보다 직업적으로 말을 많이 하기 때문에 목이 정말 아파요. 특히 언어치료사의 경우 성대 결절을 많이 겪어요. 그래서 저도 목이 안다치게 하려고 노력해요. 직업적으로 말을 크게 하고, 또박또박 하려는 직업적 습관이 모두 있죠."

"노동환경이 바뀌어야 부모도, 자녀도 행복할 수 있어요"

박선영님이 그동안 일 해오며 최근 두드러지는 문제 사례는 바로 아동의 영상물 중독이다. 자녀와 놀아주기 힘들고, 어려운 부모의 조건에서 아동의 영상물 노출은 하지 않기 어렵다. 부모의 장시간 노동, 교대근무, 심야노동은 바로 부모와 아동이 보내는 절대적 시간을 줄인다. 그렇기 때문에 아동과 부모의 개인적 문제로만 치부하고, 접근하는 것이 아니라 노동 측면을 잘 살펴봐야 한다고 강조했다.

"환경적 요인이 바뀌어야 해요. 상담하면 보통 어머님들이 많이 오세요. 아버님들이 오는 경우는 굉장히 적죠. 어머님만 아이를 보는 경우 주 양육자의 스트레스도 증가해요. 만약 아버지들의 노동시간이 줄어들면 양육에 함께 할 수 있기 때문에 확실히 양육의 질은 높아질 거예요."

마지막으로 하고 싶은 말을 묻자 "놀이치료사가 치료사로서 신념을 제대로 지킬 수 있도록 모두가 노력하면 좋겠어요"라는 자신의 다짐을 전했다.

[현장의 목소리] “전태일의 정신을 이어갑니다” / 2019.01

“전태일의 정신을 이어갑니다”

서울봉제노동조합 이정기 지회장 인터뷰

장영우 (선전위원)


작년 11월 봉제노조 창립총회를 했다는 소식을 듣고 봉제노조 이정기 지회장을 보문동 일터에서 성탄일에 만나 현장의 목소리를 들어보았다. 이정기 지회장은 성탄절임에도 불구하고 쉬지 않고 출근했다. 인터뷰 중에도 이정기 지회장의 재봉틀은 계속 돌아갔다. 



- 봉제 일하는데 노동환경은 어떻습니까?

"저희는 일이 있을 때 일을 하고 없을 때는 놉니다. 객공이라고도 합니다. 좋은 말로 프리랜서로고도 하겠네요. 재단사, 미싱사의 직종마다 차이는 좀 있겠지만 일감이 들쑥날쑥 합니다. 일이 몰릴 때는 햇볕한번 보지 못하고 하루 16시간씩 일하기도 해요. 일이 없을 때는 아예 놉니다. 부지런한 사람들은 부업을 하는 경우도 있고요. 봉제업하는 사업주이자 노동자인 경우가 많습니다. 저 같은 경우 아내랑 둘이서 일하고 있습니다.

요즘은 대규모로 옷 만드는 건 중국이나 베트남으로 이전해서 소규모로 부부가 같이 일하거나 몇 명이서 일합니다. 이러니 사장이라고 해도 일을 하지 않을 수 없지요. 주 52시간 노동시간, 최저임금 같은 건 다른 나라 이야기예요. 4대 보험 같은 사회보장이 없어요. 일이 많을 때는 사람을 구하기 힘들고 일감이 없을 때는 일을 구하기 힘들어요. 이러니 월급제로 일하는 노동자들이 많지 않아요. 예전에는 그래도 일감이 꾸준하게 있어서 요즘은 일감이 없어서 더 문제긴 하고요.

저는 18살 때부터 30년 미싱 일을 했어요. 그런데 제가 막내뻘이에요. 더 이상 젊은 친구들은 이 일을 하지 않으려 하죠. 일이 규칙적이지 않으니 임금은 낮고, 4대보험도 안되는데 좁은 데서 계속 앉아 있는 등 작업환경은 열악하니깐요. 젊은 사람들은 거의 없고 간혹 젊은 사람들이 있다면 이주노동자들이예요."


- 여기서는 어떤 옷들을 만드나요?

"저는 주로 남자 상의를 만들지만 일감이 없는 경우에는 바지나 다른 옷도 만들어요. 미싱사는 여자가 많은데 남자 옷 만드는 남자미싱사들도 있어요. 요즘 양복은 기성복 많이 입지만 예전에는 대부분이 남자들이 양복을 재단도 하고 미싱도 했어요. 여기서 옷을 만들어 동대문에 납품합니다."


- 일하다 보면 건강에 좋지 않으신지요?

"예전에는 재단사들이 옷감을 자르다가 손가락, 손가락 사이가 잘리기도 했는데 지금은 이런 사고는 별로 없고요. 미싱하는 사람들은 바늘에 가끔 찔리기도 하는데, 큰 사고는 아니니깐요. 대신 한 자세로 오래 일하다보니 많은 사람들이 허리, 어깨의 관절통을 호소해요.

예전처럼 일감이 꾸준하게 있었을 때는 일정하게 수입이 보전이 되었어요. 그때는 누가 시켜야 일하는 구조였다면 지금은 일감이 있으면 자발적으로 열심히 일할 수밖에 없어요. 미싱하는 사람들도 일감이 있을 때는 누가 시키지 않아도 알아서 열심히 일해요. 저 또한 20년 전 보다 지금 일을 더 많이 하는거 같네요.

그리고 여기 옷 먼지가 많아요, 옷 운반하다가도, 옷감을 가위질로 자르다가도 눈에 보이지 않는 옷 먼지가 많이 생겨요. 여기 책상도 손가락으로 한 번 문지르면 옷 먼지가 손가락에 까맣게 묻어 있어요. 그래서 저도 그렇고 제 주변에는 비염이 많아요. 목이 칼칼하기도 하고요. 그래도 30년 전에는 좁은 공간에 소설에 나오는 다락을 만들어 다닥다닥 붙어서 일하고 거기서 잠도 자고 했는데 요즘은 다락에서 일하는 데는 거의 없다고 봐야죠."


- 노동조합을 만드신 이유는요?

"작업환경이 안 좋다보니 예전부터 개선해야겠다는 생각을 했어요. 요즘은 자기 목소리를 내는 단체가 많잖아요. 근데 저희는 아직까지 목소리를 낼 수 있는 공간이 없잖아요. 우리 봉제노동자들은 제조업처럼 한 곳에 모여있지 않고 서울에 뿔뿔이 흩어져 조직하기 힘들었던 점이 있고 노동자도 있고 노동을 하는 사업주도 있으니깐 노조가 안 만들어졌던 거요. 상황이 이러니 노조를 만든다고 해서 다른 노조처럼 노동시간이나 임금협상을 이야기할 수도 없잖아요.

그런데 요즘 소상공인 이야기 많이 하잖아요. 우리도 소상공인인데 우리를 대변하는 단체가 없었고 아무도 우리의 이야기를 하지 않았어요. 정치하는 사람들도 우리를 도와주겠다고 했지만 선거 때 잠시 이야기할 뿐이라서 현장에서 바뀐 건 없어요. 근데 봉제노동자들은 정말 많아요. 서울의 지하에 있는 공장은 봉제공장이라고 보면 되요. 창신동, 신당동, 보문동, 길음동, 중곡동, 면목동 등 봉제 공장이 상상보다 많아요.

시에서 낸 통계를 보면 봉제 노동자가 9만3000명이나 되요. 물론 80년대는 27만 명으로 지금보다 훨씬 많았지만요. 이렇게 많은 사람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우리 목소리를 내지 못하니깐 사회적인 관심도 못 받았어요. 그래서 우리의 목소리를 내기 위해 노조를 만들게 된 거예요. 사람들을 모으면 뭔가 할 수 있는게 생길 거 같기도 하고요."


- 노동조합을 통해 어떤 일을 하고 싶으세요?

"우선은 노조를 통해 복지나 처우를 향상시키는 것을 생각하고 있어요. 공제회를 만들어 퇴직금을 조성하고 비영리의료기관과 협약을 맺어 의료적인 필요가 있을 때 쉽게 이용할 수 있게 하고 기금을 마련해서 급전이 필요한 경우 이 기금을 통해 대출 받는 것 같은 사업을 할 수 있을 거 같아요.

더 나아가 당장은 해결방안이 없어 보이는 일감문제도 해결할 수 있는 방법을 찾아보려고 해요. 우리끼리 할 수 있는 부분은 우리가 하고 우리가 하고 우리가 못하는 건 관청이나 서울시에 이야기 해보려고 해요."


- 봉제일 하는 분들의 반응은 어떤가요? 

"봉제 일을 오래한 분들은 비록 학력은 초졸이나 중졸로 짧고 사회적으로 소외된 채로 살아왔지만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누구의 도움도 받지 않고 30년 이상을 살아왔기 때문에 자부심이나 자존심이 있어요. 한편으로는 대체적으로 순응하는 편이라 수입이 줄어들 경우 싸워서 쟁취하기 보다는 '내가 좀 더 일하면 되지'라는 생각하는 편이예요.

노조에 대해서 좋지 않게 인식하는 분들이 많아요. 지난번에 공제 관련하여 시급한 서비스를 논의하려고 설문지를 돌렸어요. 필요성을 느끼고 호응해주는 사람들이 있는가 반면 사업주들은 크게 손해 보는 게 없는데도 불구하고 예전에 청계노조에 대한 반감, 노조하면 시위나 폭력 같은 선입견이 있어 반응이 좋지않은 경우도 있어요. 이건 시간이 지나면 해결될 거라고 생각되는데 다들 나이가 있다 보니 설득이 쉬울 것 같진 않아요. 노조홍보를 겸해서 일일이 방문해서 설문지를 돌렸는데 아직까지도 설문지 작성하는 것도 겁먹고 불안해하는 사람들이 있어요.

한편으로는 노조 만들어서 할 수 있는 게 뭐냐고 회의적인 사람들도 있어요. 저희는 노조를 만들어 임금을 교섭하고 노동시간을 줄이려는 걸 하는 건 아니니깐요. 하지만 소외되고 관심 받지 못하고 살아왔던 분들한테 사소한 것들이지만 챙겨주고 신경써주는 단체가 있고 이 단체를 통해 소속감을 느끼면 좋겠어요. 이분들이 생각이 잘 안 바뀌어 그렇지 우리들의 진실성을 알아준다면 노조를 끝까지 믿어줄 거 같아요."


- 지회장은 어떻게 하시게 되었는지요?" 

"저는 과거에 청계피복노조활동을 했어요. 하지만 생계에 바쁘다 보니 이런 쪽 일은 잊고 살았어요. 그래서 지회장을 생각해 본적은 없어요. 우리 환경이 워낙 열악하다 보니 노조가 만들어지면 참여해야겠다는 생각은 했었는데 주변에 사람이 없다보니 지회장을 하게 된 점도 있고, 제가 미싱사다 보니 상황도 잘 알아 노조일 하는 것이 일하는 분들한테 설득력도 있는 거 같아 하게 됐습니다."


- 마지막으로 한 말씀만 더 하시자면요.

"어떤 분들은 옷감을 기계에 찍으면 옷이 바로 만들어지는 줄 알아요. 하지만 옷 만드는 일은 처음부터 끝까지 사람 손이 많이 가는 노동이라는 걸 알아줬으면 합니다. 그리고 아직까지 많은 사람들이 힘든 환경에서 봉제 일에 종사한다는 것입니다. 요즘 소상공인들이 힘들다는 이야기는 많이 하지 않습니까? 소상인들도 임대료나 인건비 때문에 힘들고 저희 소공인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리고 힘든 사업주에게 임금 받는 노동자들도 더 힘들 거예요. 우리 노조는 노동자와 사업자와 함께 살길을 찾아보자는 겁니다. 사업자와 노동자를 분리하여 갈등을 일으키자는 목적으로 노조를 만드는 것이 아니라는 것임을 알려드리고 싶네요. 그래서 많은 분들 같이 하고 우리 목소리를 내고 사회적으로도 관심을 가져주면 좋겠습니다."

[노동안전보건 활동가에게 듣는다] 보석세공 노동자들의 삶도 보석처럼 빛나길 / 2019.01

보석세공 노동자들의 삶도 보석처럼 빛나길

- 금속노조 서울지부 동부지역지회 종로주얼리분회 김정봉 분회장 인터뷰

재현 (선전위원) 


이번 <일터>는 많은 사람이 소중한 사람과 기쁘고 행복한 날을 축하하고, 기억하기 위해 필요로 하는 각종 주얼리를 만드는 노동자이자 노동조합의 분회장인 김정봉님을 만났다. 김정봉님은 우연히 보게된 <전태일 평전>에서 만난 그때와 자신이 일하는 현장이 다르지 않은 것을 확인하고 다른 삶을 위해 노동조합을 선택했다고 했다. 인터뷰는 지난 12월 28일 영하 16도의 강추위를 뚫고 종로 주얼리타운 근처에 있는 카페에서 진행하였다.


일터를 바꾸기 위해 만든 노동조합

"안녕하세요. 저는 종로에서 반지, 팔지, 목걸이, 귀걸이 등을 만드는 보석세공 노동자면서 금속노조 조합원이에요. 노동조합을 만들게 이유는 현장이 너무나 열악했기 때문이에요."

김정봉 분회장은 2018년 4월, 같은 회사에서 일하는 동료 6명과 노동조합을 만들기로 결심했다.

"간단히 설명해 드리자면 분야로 나눌 때 주물과 왁스 작업을 시작으로 해서 주물 마친 물건을 다듬는 캐스팅, 광택, 조각, 세척, 출고, 디자인, 캐드까지가 있는데, 이렇게 각각 일하는 사람들이 보석세공사라고 보면 돼요."

김정봉 분회장은 보석세공 노동자들의 이야기를 하기에 앞서 세상 사람 모두에게 이전의 인식을 꼭 깨고 싶다고 말했다.

"저희가 노동조합을 만들고 서울지방노동청에도 계속했던 이야기인데요. 흔히 종로 보석세공업체들은 영세사업장 아니냐. 그래서 현장이 열악한 건 어쩔 수 없고, 노동조합 만들면 사업주가 망하는 거 아니냐고요."

1980년대에는 그랬을지 몰라도 지금은 전혀 사실과 다르다고 강조했다. 반면에, 보석세공업체는 규모가 커지고 발전했지만, 그 일을 하는 노동자들의 작업환경은 1980년대에 머물러 있다고 말했다.

"예전에는 보석세공사 1명이 다양한 분야의 일을 혼자 다 했거든요. 그런데 이 시스템은 굉장히 수공업적이고 생산력이 떨어졌어요. 결국 업체들이 업무 자체를 분화하고 전문화하는 거로 바뀌었고 생산성과 매출이 올라가니까, 이제는 한 업체당 최소 10명 이상 보석세공사 노동자를 고용할 정도로 성장했어요. 게다가 이쪽은 업체마다 조금씩 차이는 있겠지만 가장 더운 여름, 겨울 한 달씩만 비수기이고 나머지는 일도 많고 정말 바빠요."

김정봉 분회장은 현재 정확한 통계는 없지만 종로 전체 보석세공업계 규모가 업체 500여 개, 매장 700여 개, 종사자 1만 명 정도 된다고 말했다.

나이 마흔에 경력 20년차, 퇴직 앞둔 노동자들은 불안

"우연히 고등학교 때 금속공예를 전공해서 일을 시작했어요. 현장이 워낙 열악하니까 젊은 사람들이 일을 안 하려고 하니 친구 한 명 데려오면 사장님이 10만 원씩 주고 그랬거든요. 저도 소위 배운 게 도둑질이라고 할 줄 아는 게 이거니까 친구 소개로 입사했고 그때 받은 10만 원으로 고기 사 먹었어요."

김정봉 분회장은 어느덧 19년 차 보석세공 노동자가 되었다. 이쪽 업계에서 버티고 일한 사람들은 나이 마흔이면 대부분 20년 차라고 말했다. 

"그만두는 사람도 많아요. 특히 대학에서 공예를 전공한 사람들은 좋은 스펙이 있어서 다른 직업을 선택하는 경우가 많더라고요. 고등학교 친구들도 꽤 많이 있었는데 지금은 5명 남아있는 것 같아요."

청년인 김정봉 분회장이 벌써 20년 가까이 일했다고 하니, 보석세공 노동자들은 보통 언제까지 일을 하는지 궁금해졌다.

"정년이 따로 있는 게 아니니까 일은 오래 할 수 있고 60세 넘어서도 일하는 형님들이 있는데요. 그런데 아무래도 경력이 30년 넘어가면 제일 먼저 해고되는 것 같아요. 보석세공사들이 초보자 생활이 긴데 이때 엄청나게 고생하거든요. 그래서 이직이 잦아요. 다른 업체에서는 경력자 대우해준다고 하니까요.

이렇게 옮기다가 업체들이 잠깐 비수기 때 일 없다고 나이 많고 제일 돈 나갈 때 많은 50대부터 잘라요. 문제는 이분들이 다시 취업하기도 어렵고 4대 보험에 가입한 것도 아니고 따로 노후 대책이 있지도 않다는 거예요."

김정봉 분회장은 노동조합을 만들고 서울노동청과 협의를 하는 과정에서 최근 3년간 보석세공노동자의 퇴직금과 관련한 진정만 800여 건이었다고 했다. 업체들이 비수기에는 보석세공 노동자들에게 퇴직금 일부를 지급하면서 해고하고, 성수기가 되면 다시 고용하는 악순환을 계속하는 것이 문제라고 지적했다.

"눈에 보이지 않는 위험과 해고가 가장 두려워요"

"일하면서 제일 심각하다고 생각하는 건 아무래도 위험이 눈에 보이지 않는다는 거예요. 각종 화학물질 증기에 노출되고 다 마시면서 일하는 게 제일 문제 같아요. 저도 노동조합을 만들고 활동하기 전에는 솔직히 안전불감증이라고 하나요, 그랬었어요.

아무렇지 않게 제 눈앞에서 황산, 유산, 양잿물, 공업용 과산화수소, 세척제를 사용하고 동료들은 청산가리로 작업하고요. 가끔 일하다 입술에 혀가 닿을 때가 있는데 그때는 철 맛도 나더라고요."

김정봉 분회장은 화학물질 위험 못지않게 안전사고 역시 자주 발생한다고 말했다.

"지금이 1980년대도 아니고 2018년인데 아직도 광택 작업하는 분들은 그라인더로 일하는데, 거기에 손이 말려서 절단 사고가 나는 경우도 있었죠."

김정봉 분회장에게 만일 보석세공 노동자가 일하다 다치거나 병들었을 때 업체에서 어떠한 조치를 하는지 여쭤보았다.

"제가 아는 한 누가 산재를 한 적 없어요. 업체에서 병원비는 내주는데, 다시 출근하면 나가라고 한다고 해요. 일하다 다치면 해고에요."

이런 와중에 김정봉 분회장의 한마디로 마음은 더 무거워졌다.

"며칠 전에 처음으로 특수건강검진을 받았어요. 솔직하게 말씀드려서 유쾌하지는 않더라고요. 진료받는 내내 혈압이 높다, 난청이 있다, 심장이 빨리 뛴다, 폐의 40%가 기능을 못 한다고 말씀하셨는데, 의사 선생님이 상담하면서 작업 환경 때문은 아닐 것 같고, 담배 피우는 걸 줄이라는 거예요."

처음 건강 검진을 통해 몸에 이상을 확인하고 놀랐을 김정봉 분회장에게 왜 이러한 증상이 있는지, 이후 무엇을 해야 하는지, 혹시 업무와 관련이 있는 것은 아닐지 물어본 사람이 아무도 없었다. 김정봉 분회장은 이러한 현실을 마주하며 노동조합을 만들고 지속해서 조합원들과 노동법 교육, 산업안전보건 교육을 하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 깨닫고 있다고 했다.

김정봉 분회장은 짧은 활동이지만 조금씩 현장이, 현장에서 일하는 사람들이 변화하고 있다고 말했다.

"처음에 종로에 노동조합이 등장했을 때 보석 세공업체들이 다 영세업체인데 노동조합을 어떻게 하냐 이런 이야기가 팽배했어요. 저희가 노동조합을 만들고 매일 캠페인을 했는데 그때도 첫 달에는 신기하게 선전물을 받더니 두 달째는 사업주가 눈치를 줘서 안 받더라고요. 그러다 세 번째 달에는 노동자들이 수고하라고 응원해주더니 네 번째 달에는 노동조합이 주는 선전물은 받아야지라고 인식하더라고요.

앞으로는 노동조합이 만들어졌더니 뭐가 바뀌더라 이런 생각을 하도록 성과를 만들고 싶어요. 며칠 전에 2년 전에 해고 된 노동자가 서울노동청에 진정해서 그동안 못 받았던 퇴직금 50%를 바로 다음날 받았다고 하더라고요. 이런 결과들을 만들어가고 싶어요."

처음 써본 근로계약서, 처음 즐겨본 연차휴가

노동조합을 낯설어할 수 있는 보석세공 노동자들에게 노동조합의 필요성을 어떻게 알려나가는 활동을 했는지 궁금했다.

"종로에서 같은 업계 노동자, 업체 사장들에게 며칠 남지 않은 이번 노동절에는 꼭 쉬자는 캠페인을 했어요. 이후에는 업체들이 근로계약서는 쓰고 일 시켜야 한다, 건강하게 일할 권리가 있으니까 산안법을 지켜라 이런 기본권에 대한 캠페인을 했어요."

김정봉 분회장은 노동조합의 활동이나 이후 목표가 대단히 아이러니 하게도 법을 지키도록 하는 것이라 했다. 업체들이 법을 지키지 않으니 노동조합을 만들어서 법을 지키도록 하고, 노동자들은 법에서 보장하는 권리를 요구한다는 것이다.

"우리 노동조합의 목표는 간단해요. 종로에 있는 보석세공업체는 모두 법을 지키도록 하는 거예요. 이번에 제가 일하는 업체와 노동조합이 단체협약을 맺었는데요. 내용이 근로계약서 써라, 연차는 줘라, 출산 휴가 보장해라, 부당해고 금지하라는 거에요. 다 법에서 보장하는 것들이고 다른 업체들도 모두 이 정도는 지켜줘야 한다고 봐요."

그렇다면 노동조합이 생기고 일터에는 어떤변화가 일어났을까?

"뭐 특별히 바뀐 건 없는데요. 일하고 처음으로 근로계약서를 써봤고 연차를 써봤어요. 성희롱 예방교육, 안전교육을 받아봤고요. 회사에서 화학물질정보(MSDS)를 준비해서 비치하더라고요. 작업환경측정은 지금 하고 있어요."

김정봉 분회장이 아닌 인간 김정봉, 남편이자 아버지 김정봉으로서 변화는 없는지 여쭤보았다.

"처음 연차 썼을 때가 생각나네요. 아내는 출근해야 해서 6살 딸이랑 저랑 둘이 에버랜드를 갔거든요. 그때 아이가 저랑 눈만 마주쳐도 아빠 사랑해라고 하는데 정말 울컥하고 기쁘더라고요. 요즘은 한 달에 한 번 아내랑 연차 맞춰서 데이트를 해요.

뭐 대단한 걸 하는 건 아닌데 둘이 영화보고 밥 먹고 차 마시고 그러면서 서로 더 아껴주고 존중해주게 되더라고요. 얼마 전에는 아내가 선전전 할 때 춥다고 롱패딩을 사주면서 당신한테 이런 모습이 있는지 몰랐다면서 건강해 보인다고 앞으로도 잘하라고 응원해주는데 정말 고마웠어요."

'김정봉이란 사람의 꿈은 무엇인지'에 대해 물었다.

"글쎄요. 이상적인 걸 좋아하지 않아서 특별한 꿈은 없는데요. 이제는 4대 보험에 가입해서 나중에 아내랑 국민연금이랑 퇴직금으로 노후를 대비할 수 있으면 좋겠어요."

마지막으로 꼭 하고 싶은 말에 대해 김정봉 분회장은 눈을 반짝이며, 힘주어 말했다.

"이제야 사람답게 사는 것 같고요. 권리를 보장하라는 주장이 너무나 정당한데 이걸 얻으려면 요구해야 한다는 것도 명확해진 것 같아요. 보석세공업계에서 노동조합이 처음 만들어지기도 하고 워낙 인식 자체가 없어서 앞으로 오랜 시간이 걸리겠지만, 더 많은 사람들이 노동조합과 함께 하고 현장에서 안전하고 건강하게 일할 수 있었으면 좋겠어요."

[국제안전보건기준에 관한 비교연구 검토] 독일 산업안전보건 체계가 한국 산안법 전면개정안에 주는 메시지 ③ - 산업안전보건에서 노동자 참여 보장 / 2019.01

독일 산업안전보건 체계가 한국 산안법 전면개정안에 주는 메시지 ③

- 산업안전보건에서 노동자 참여 보장

권종호 (선전위원) 


<머리말>

산업안전보건 국제기준 비교 연구팀에서는 2018년 9월부터 독일 산업안전보건법과 체계를 공부하면서, 한국 산업안전보건 체계가 나아갈 방향을 고민하는 시간을 가지고 있다. 세 번째 글로 산업안전보건에서 노동자 참여를 다룬다.


캐나다 드라마 <바이킹>을 보면 파리를 침략하기 위해 강을 거슬러 올라가던 바이킹이 적군의 병력에 막혀 난관을 겪게 되는 장면이 나온다. 당시 전설적인 바이킹 왕 라그나는 배를 이용해 갈 수 있는 길이 막히자 배를 산으로 끌어올려 예상치 못한 경로를 찾아가는 기지를 발휘한다.

이렇게 배를 들고 산에 오르는 전술은 적군을 당황하게 만들고 결국 전투를 승리로 이끌기도 한다. 1453년에도 오스만제국군이 동로마제국의 지원군과 보급로를 차단하기 위해 배를 끌고 언덕을 넘었다는 기록이 있다. 당시 동로마제국군은 언덕을 넘는 군함을 보고 크게 사기가 꺾였다고 한다. 이렇게, 중요한 목적을 위해서라면 배를 산으로 올리는 것조차 매우 효과적이다.

산업안전보건 관련 문제에서 노동자 참여도 이와 같은 효과를 가져올 수 있다. 2018년 10월 완공된 충남 서산의 엘지(LG)화학 탱크 건설현장에서는 노동조합이 노동자로부터 작업장의 위험요소를 제보 받아 회사 쪽과 함께 현장을 돌며 해결책을 모색하는 안전관리를 실시했다.

시공사 건설사업부 책임은 "옛날 사고를 가진 사람은 회사가 노동조합에 끌려 다닌다고 오해하겠지만, 직접 일을 하는 사람은 회사가 못 보는 위험을 본다"며 "작업자들의 요청으로 전에는 비용 등 문제로 꺼렸던 낙하 방지망을 이중으로 설치했다"고 말했다.

플랜트건설노조의 노동안전국장은 "회사 안전관리자는 현장을 구석구석 알기 어렵고 인력도 부족하다. 노동조합이 현장을 구역별로 나눠 살피기 시작하면서 안전 사각지대를 금방 잡아 낸다"고 했다. 이렇게 노조의 참여를 보장하고 권한을 나눠준 결과 실제 지난 여름 폭염으로 작업 속도가 늦어져 납기를 놓칠 수도 있었지만, 중대 재해가 한 건도 없어 품질·공사비·기한을 모두 맞출 수 있었다고 한다.

하지만 대부분 노동 현장의 현실은 전혀 노동자의 목소리가 반영되지 않는다. 심지어 눈 앞의 사망 재해에 대해서도 제대로 된 조치가 시행되지 않는다. 작년 말 김용균 군의 사망 재해가 발생했던 서부발전은 김용균 군 사고 이전인 2017년 11월 사망사고 직후에도 ▲공정별 협력기업의 안전컨설팅팀 운영 ▲현장위험성 발굴을 위한 안전패트롤 활동 강화 ▲발주처, 협력기업간 위험성 공유를 위한 안전회의 강화 ▲협력기업 안전담당자 실무 워크숍 시행 ▲일용직 종합관리대책 강화 및 현장 안전교육 확대 등 대책을 세웠다고 한다.

하지만 김용균 군이 사망할 때까지 어느 것 하나 효과적인 것이 없었다. 정작 노동자들이 끊임없이 요구했던 '점검 작업시 2인1조 운영'이 시행되었다면 함께 점검하던 동료가 컨베이어벨트 옆에 설치된 정지버튼을 눌러 사고를 막을 수도 있었다.

독일과 한국의 노동자 참여, 어떻게 다른가

먼저 독일은 '사업조직법'에 노동자 대표를 민주적으로 선출할 근거를 마련해두었다. 상시 노동자 5인 이상의 사업장은 전체 노동자의 투표를 통해 6개월 이상 근무한 피선거권 노동자 중 한 명 이상을 노동자 평의회(노동자대표위원회, Betriebsrat) 대표 위원으로 선출할 수 있다.

사업장 노동자 수에 따라 상시 노동자 9000명까지는 사업장에 35명의 대표 위원을 선출하도록 규정되어 있고 그 이상은 매 3000명당 2명씩 증가하는 규모로 노동자 평의회가 구성된다. 이렇게 구성된 노동자 평의회는 산업안전보건 관련 모든 사항에 대한 감독권/ 감독을 위한 정보(사업장 설계, 기계 설비, 작업 공정, 전문가 의견 등) 요청권/ 모든 점검 및 사고조사 입회권/ 위험성 평가, 위험방지 대책 및 그 효과점검, 노동자 요구에 대한 인간공학적 처방, 안전보건 관련 전문가 선임 등에 있어 공동 결정권을 가진다.

실제 노동자 평의회의 권한은 더 방대한데, 기업의 전반적인 운영 현황이나 예산운용 등에 대한 정보 공유부터 노동시간, 휴가, 급여 정산 방식, 인사이동, 채용, 승진, 전출 등과 관련한 공동결정권까지 막대한 권한이 법적으로 보장되어 있다.

반면 한국은 100인 이상 사업장에 설치하도록 되어있는 산업안전보건위원회, 그리고 그에 참여하는 노동자 대표와 9명 이내의 당해 사업장 노동자가 독일의 노동자 평의회 역할을 맡고 있다. 하지만 100인 이하 사업장은 설치할 의무조차 없으며, 노동자 평의회가 가진 중요 권한들(감독권, 모든 정보 요청권, 전문가 선임 등에서 공동 결정권)은 법령에 언급조차 없다.

또한 노동자 대표나 9명 이내의 위원회 참여 노동자 선출 방식도 불분명해 제대로 된 노조가 없는 사업장에서는 사측에 우호적인 노동자가 형식적으로 참여하는 경우가 많다. 30인 이상의 사업장에서는 노사협의회가 산업안전보건 관련 협의를 담당하는데, 마찬가지로 제대로 된 노조가 없는 경우 노동자 대표의 선출 방식이 불분명하고 심지어 산업안전보건 관련 사안에 대해서는 '협의'만 가능하고 '의결'권조차 없다.

사공이 많으면 배가 산으로도 간다. 배를 들고 산을 넘어야 한다면 사공이 많을수록 좋다. 독일의 노동자 참여는 산재 사망률을 한국의 1/10 수준으로 유지하게 해주고 산재보험료율도 20% 이상 낮게 유지해 주었다(한국의 산재 은폐, 누락을 감안하면 실제로는 훨씬 낮은 수준이다).

현장의 위험을 직접 확인하는 노동자이기에, 그 현장에 가장 많이 다녀 본, 가장 많이 투입된 전문가이기에 산업안전보건은 노동자의 이야기를 듣는 것부터 시작되어야 한다. 김용균 군 사망 이전의 그 어떤 대책도, 위험성 평가도 서부화력 노동자의 요구 사항보다 중요하지 않았다. 개정된 산안법은 '김용균법'으로 가는 과정에 불과하다. 노동자가 자신의 안전보건에 대한 결정권을 가지고 건강한 노동을 할 때 진정한 '김용균법'이 완성될 것이다.

[노동시간 읽어주는 사람] 돌봄노동자 마리아의'어머니 되기' / 2019.01

돌봄노동자 마리아의 '어머니 되기'

 신희주 (노동시간센터 회원, 가톨릭대 사회학과) 
영화 <사운드 오브 뮤직(Sound of Music)>은 제작된 지 50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전 세계 사들에게 사랑받는 영화이다. 많은 이들은 아마 이 영화를 주인공 마리아가 7명의 아이와 함께 잘츠부르크의 광활한 자연과 아름다운 도시를 배경으로 도레미 송을 부르는 장면같이 음악을 통해 전해지는 감동으로 기억할 것이다. 그러나 이 영화의 주제곡들을 수도 없이 반복해 듣곤 했던 시절로부터 30년 훌쩍 지난 지금 내게 이 영화는 또 다른 모습으로 나타났다. 견습 수녀이자 가정교사 마리아가 한 가족에게 행한 '돌봄'에 대한 문제로 말이다.

▲ 영화의 한 장면 [출처: 갈무리]

우리가 가족이라는 일차적 사회집단 속에 태어나고 성장하면서 늘 인지하고 있지는 않지만 부인할 수 없는 사실 하나는 돌봄이라는 것이 인간사회의 가장 본원적인 가치 중 하나라는 점이다. 모든 인간은 삶의 첫 순간부터 돌봄이 필요한 의존을 경험하며, 자신의 현재 모습을 형성시킨 돌봄의 가치를 기억한다. 아동, 노인, 장애를 가진 사회구성원과 같은 취약한 의존인의 돌봄은 매우 절박한 도덕적 요구에 대한 응답이다.

영화 <사운드 오브 뮤직> 속 마리아의 돌봄 노동은 다섯 살의 막내 그레틀부터 사춘기를 지나고 있는 열여섯 살 첫째 리즐까지 일곱 아이가 살아가는 위기의 가족 내에서 이루어진다. 마리아는 엄격한 규율과 통제 속에서 가족 이외의 타인들과 관계 맺는데 서툰 이 아이들을 이해하고, 그들에게 마음을 여는 법을 가르치며, 노래와 웃음을 찾아주고, 놀이의 즐거움을 알려준다.

돌봄은 한 개인의 태도, 동기 혹은 심성의 미덕으로 설명될 수 없다. <모성적 사유>의 저자 새라 러딕에 의하면 돌봄은 노동이지만 노동 그 이상이기도 하고, 동시에 본질적으로 관계적인 것이다.

다른 사람의 필요를 이해하고 그 필요에 어떻게 응답할 것인가에 대해 대답을 하기 위해서는 동감(同感)과 감정적 개입이 꼭 필요하다. 돌봄 노동을 주고받는 것은 자신과 타인의 감정 그리고 사람 사이의 관계가 교류되는 과정이기 때문이다. 타인을 돌보는 나 역시 다른 사람의 돌봄이 필요한 의존적 존재였거나 그런 존재가 될 것이며, 내가 돌보지 못한 나에 대한 돌봄도 타인에 의해 제공된다.

이러한 돌봄이 단지 미덕의 측면에서 평가될 때 생길 수 있는 문제는 무엇일까. 최근 같은 시간대 시청률 1위를 달리는 주말드라마를 잠깐 살펴보자. 가난한 가정에서 자란 주인공은 부유한 치매 노인과의 인연으로 노인의 손자와 결혼까지 하게 되고, 결혼 후 치매노인에 대한 돌봄을 둘러싸고 끊임없이 가족들과 갈등하다가, 결국은 치매노인을 돌보기 위해 '어쩔 수 없이' 직장을 그만두게 된다.

'착한' 심성을 가진 이 드라마의 주인공은 약자가 불공정한 세계에서 어떻게 살아남을 수 있는지에 대한 수세적 처세술을 보여줄 뿐만 아니라, 부조리하고 폭력적인 가족관계를 침묵과 인내로 감내하는 '이타적' 가치를 구현한다. 여기서 상호 의존적, 시혜적 관계란 존재하지 않는다.

그러나 <사운드 오브 뮤직>은 그러한 전통적 미덕 윤리에서 일정 정도 거리를 둔다. 돌봄 윤리는 윤리의 문제를 이기적 개인의 자기 이해와 보편적 도덕률이라는 두 극단 간 갈등보다는 그사이의 영역에 주목한다. 좋은 돌봄 관계는 그 관계 자체를 건강하게 유지할 뿐 아니라 그 관계 속의 사람들이 서로 협력할 수 있게 하는 것이다.

이러한 돌봄의 윤리는 일차적 관계성을 넘어 그 영역을 넓히며 대안적 사회윤리를 제시하기도 한다. 영화가 제작된 시대를 고려하면 감독이 의도하든 의도하지 않았든 영화 속에 돌봄의 가치와 돌봄의 윤리가 서툴게나마 구현되고 있다는 점은 상당히 놀랍다.

그러나 영화는 돌봄 노동에 관한 젠더적 편향을 피해가지는 못한다. 마리아가 떠난 후 트랩 대령은 자녀들에게 약혼자인 슈레이더 부인과의 결혼을 발표하며 이렇게 말한다. "다른 가정교사는 더 이상 오지 않아. 너희들에게 새엄마가 생길 것이거든." 하지만 대령은 아이들을 돌보는데 서툴고 로맨틱한 사랑의 욕구를 가진 슈레이더 부인 대신에, 돌봄에 익숙한 가정교사 마리아에게 마음이 움직이고 결국 마리아가 아이들의 새엄마가 된다.

돌봄을 담당하는 사람으로서의 여성의 경험이 어머니로서의 이야기로 환원되고, 특정인의 경험들이 여성의 보편적 속성으로 받아들여지는 과정이다. 출산과 수유로 대표되는, 피할 수 없는 경험으로서 돌봄이라는 행위는 여성 전체 삶에서 극히 일부분이거나 실현되지 않는 경우도 많지만, 돌봄은 어차피 여성의 영역이라는 점을 사람들에게 자연스럽게 받아들이도록 한다.

가족 안에서 이루어지는 돌봄은 그 제공자가 누구인가와 관계없이 중요하고 본질적이라는 점을 누가 부인할 수 있을까. 물론 많은 경우 그 제공자는 대개 여성, 특히 어머니가 되고 있지만 말이다.

그러나 사적 영역을 벗어나면 돌봄은 전혀 다른 현실에 놓여있다. 이 영화에서 나타난 돌봄의 여성화는 사실 현실에서는 매우 중요한 노동 문제로 나타난다. 여성들의 사회진출이 늘어나며 전통적 돌봄의 영역은 가족과 친족이 아닌 다른 누군가가 담당하게 되었고, 사회가 고령화되면서 노인에 대한 돌봄은 사회적 과제가 되었다.

돌봄 대상의 범위가 친밀한 관계를 벗어나 전 사회로 확대된 것이다. 돌봄 노동의 이러한 가치를 반영하듯, 최근 한국에서는 아이돌보미, 보육교사, 요양보호사, 장애인 활동지원사 등 돌봄 노동의 다양한 직업이 공공 서비스의 영역으로 포함됐다.

그러나 현실에서 이들은 최저임금 수준의 (때로는 그에 미치지 못하는) 저임금에, 많은 경우 사회 보호의 사각지대에 존재하고 있다. 돌봄 활동은 저평가되고, 그 본질적 가치가 폄훼된다. 전형적인 여성노동으로 인식되어 온 돌봄 노동은 세계화된 세계에서 점차 직업의 성차 논리까지 넘어서 인종, 계급적 속성까지 드러낸다. 요양병원의 간병노동이 더 저임금 여성 이주노동자에 의해 이루어지고 있다는 것은 사회 서비스로서의 돌봄 노동에 대한 권력적 특성을 잘 보여준다.

돌봄은 그 자체가 사회적이고 공공의 책임으로 인식되어야 하는 가치이자 윤리임에도 불구하고, 돌봄을 상품화, 상업화시키는 시장의 논리는 가장 왜곡된 방식으로 돌봄을 평가하는 것이다.

영화 속 마리아의 아이들에 대한 돌봄은 어떠한 물질적 대가로 이루어진 것인지 영화는 말하지 않는다. 단지, 우리가 보는 마리아의 돌봄 가치는 효용성을 중심으로 움직이는 시장이 판단할 수 없다는 점만은 명확하다. 어머니의 지위를 얻음으로써 마리아의 돌봄이 완성된 것으로 그려지는 것이 못내 아쉽긴 하지만, 시장의 변덕과 왜곡에 마리아의 돌봄이 내던져지지 않아 그래도 다행이라는 것은 나만이 느끼는 안도일까.


특집4. 2019년 건설현장 달라지는 것과 달라져야 할 것들 / 2019.01

2019년 건설현장 달라지는 것과 달라져야 할 것들

이승현 (건설노조 정책국장) 


2019년 건설업은 안전예방 및 보상 분야에서 많은 부분이 변경되었다. 무엇보다도 정책적으로 그동안 현장에서 만연했던 '공상'(산재사고에 대한 개별합의)을 억제하고, 산재보험을 통한 보상을 받는 방향으로 정책이 개편되었다.

이를 위해, 건설업 산재 은폐의 주요 원인으로 지목되었던 여러 제도가 변경되었다. 산업안전보건법 시행규칙을 개정하여 건설업체의 입찰참가자격 사전심사(PQ)에 반영하는 산업재해지표를 사망사고로 개편하였다. 이에 따라, 2019년 1월 1일부터 '산업재해 발생률' 산정기준을 부상재해자(환산재해율)를 제외한 사고사망자(사고사망 만인율)로 개편되었다.

개별실적요율제도 개선이 되었다. 보험수지율에 따라 산재보험료율을 증감해주는 개별실적요율제도 적용대상이 30인 이상 사업장으로 조정되고, 보험료 수지율 증감 폭도 사업장 규모와 상관없이 ±20%로 개선되었다. 아울러 개별실적요율 적용을 위한 보험수지율 산정 시 사업주 예방 노력과 연관성이 낮은 모든 업무상 질병을 제외하여 보험료 인상에 따른 산재 은폐요인도 해소되었다.

그동안 건설사들은 은폐할 수 없는 사망사고를 제외한, 일반 산업재해의 경우, 노동부에 산재 보고를 하지 않고, 피해 노동자와의 개별합의를 통해 이를 처리하였다. 산재 은폐가 일상화되어 있었던 것이다.

추락에 의한 골절 등 일반 사고의 경우에도 산재처리를 하기 힘들었으니, 근골격계 질환 등 직업병의 경우에는 말을 꺼내기도 힘든 상황이었다. 현장에서 30년 넘게 일한 목수가 추간판탈출(허리디스크)로 수술을 하면서 산재신청을 하기 위해 결국 현장을 퇴사하는 등의 일 등이 비일비재했다.

그동안 건설사들은 보험료 인상, 관급공사 입찰불이익, 노동부 감독 등의 핑계를 대며, 산재 은폐가 불가피하다고 주장해왔으나, 이번 제도변경으로 더 건설사들은 산재 은폐의 핑계를 댈 수 없게되었다. 이제는 정말 산재를 드러내야 한다. 있는 그대로의 현실을 까발릴 때만이 실효성 있는 예방대책이 나올 수 있기 때문이다.

또한 1월 1일부터 산업재해보상보험법 시행령·시행규칙 개정으로 건설기계 노동자(1인 차주)도 산재보험이 적용된다. 시행령 개정을 통해 27개 직종의 건설기계 노동자 전체가 특수고용노동자로 산재보험이 적용되게 되었다. 건설기계 노동자는 산재 발생 위험이 높아 보호의 필요성이 컸음에도, 그간 산재보험의 혜택에서 철저히 배제되어 있었다.

현장에서 철거 작업 중 건물 붕괴로 사망한 굴착기 노동자가 어디로부터도 보상을 받지 못하고, 남아있는 가족은 고인을 잃은 슬픔과 함께 극심한 생활고에 빠지는 등, 그동안 건설기계 노동자들은 예방과 보상 정책 모두로부터 어떠한 보호도 받지 못하고 있었다.

원청의 관리적 요인에 의해 발생하는 사고가 대부분임에도, 건설기계 노동자들은 막대한 차량 수리비와 함께 병원비, 입원 기간의 생계비 등을 모두 자비로 해결해야 했다. 건설 현장의 위험을 건설기계 노동자들이 스스로 통제할 수 없음에도, 그 책임은 온전히 사회적 약자인 건설기계 노동자들에게 전가하는 방식이 개선되었다는 점에서 그 의미가 크다. 이번 제도개선을 통하여 다수의 건설기계 노동자들이 산업재해로 인해 벼랑 끝으로 내몰리는 상황은 막을 수 있을 것이다.

제도 운영과정에서 원청의 산재보험 가입의무(원청 산재보험료 일괄징수)를 명확히 한 것도 의미가 있다. 추가로 실태를 반영하지 못하는 기준임금으로 인하여 보상액이 충분하지 못한 문제, 통상근로계수 적용문제, 구상권 문제 등 후속적인 제도개선이 연이어 진행되어야 한다.

산업재해 예방 측면에서도 진전이 있었다. 무엇보다 28년 만에 산업안전보건법이 전부개정되었다. 부족한 점이 있음에도, 건설업 별도의 절 신설, 건설기계 원청책임, 특수고용직 산안법 일부 적용, 건설업 발주처 책임 신설 등이 포함되어, 건설업 산업재해를 예방의 초석이 될 것으로 기대된다.

다만, 건설기계 사고 원청책임은 타워크레인을 제외한 나머지 건설기계는 시행령으로 위임이 되어있다. 건설기계에 의한 중대 재해가 갈수록 증가하고 있는 현실을 반영하여, 건설기계 27개 기종의 사고 모두가 원청책임 강화가 필요하다. 특수고용직의 산안법 적용도 구체적 내용은 시행령에 위임되어 있다.

안전교육 등 극히 일부만 적용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오는데, 현실을 모르는 주장이다. 어차피, 원청은 '건설 현장'이라는 장소를 전체적으로 관리를 하고 있다. 건설기계 장비 운전사의 법적지위를 확인하여, 장비 소유주는 안전보건 대책에서 배제하는 것이 현실적으로 가능하지도 않다.

무엇보다도 '건설현장'이라는 장소에서 발생하는 위험에 대한 이익과 책임을 모두 가지고 있는 원청이 책임을 지는 것이 산안법 개정 취지에도 맞다. 발주처 책임의 경우에도, 구체적인 대상이 시행령에 위임되어 있다. 이번 태안화력 비정규직 청년노동자 사망 사건에서 보듯이, 전력산업에서 일하는 하청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문제는 발주처가 책임을 져야 한다.

발전업무뿐만이 아니라, 배전업무도 마찬가지이다. 시행령 제정 과정에서 '건설공사'에 '전기공사업법에 따른 전기공사'가 반드시 포함되어, 배전 활선 노동자의 산업재해에 한국전력이 법적인 책임을 져야 한다.

2019년은 건설업 사망사고 및 중대재 해를 줄이고, 산업재해를 드러내고, 발생한 산업재해를 누구든지 충분히 보상을 받는 해로 만들기 위한 투쟁이 필요하다.

특집3. 도돌이표만 반복되는 노동시간 단축과 최저임금 / 2019.01

도돌이표만 반복되는 노동시간 단축과 최저임금 

조은혜 (돌꽃노동법률사무소 노무사, 회원) 


지난해 7월 1일부터 공공기관 및 300인 이상 사업장에 '주 52시간제'가 본격적으로 시행되었다. 고용노동부 행정해석으로 연장근로와 휴일근로를 별도로 봤다. 따라서  그동안 1주일에 휴일을 2일로 지정하여 주 52시간(연장근로 포함) 외에 휴일근로를 별도로 노동자에게 지시해왔던 사업장의 경우, 이번 근로기준법 개정안이 시행됨에 따라 무조건 1주 52시간(휴일, 연장 포함)의 노동시간을 준수하여야 한다.


또, 근로기준법 제59조의 특례업종들도 이번 개정안에서 대거 제외되었다. 그래서 휴식시간과 노동시간을 자의적으로 운영했던 과거와 달리 근로기준법상 근로시간의 제한을 받게 되었다. 2019년 7월부터는 1주 52시간의 노동시간을 준수해야 한다. 최근 유명드라마들이 장시간 근로로 쟁점이 되고 있는 것 또한 방송업이 특례업종에서 제외되고 근로기준법상 노동시간을 준수해야 할 의무가 발생하면서 더욱 불거지기 시작한 것이다.

이런 노동시간 단축 개정안이 발표되자 뉴스 등 언론에서는 '저녁이 있는 삶'이 실현될 수 있을거라는 희망의 메시지들을 전하기 시작했다. 그런데 그런 희망이 너무 섣불렀던 걸까? 시행일인 7월 1일을 열흘가량 앞두고 정부는 6개월의 계도기간을 건의한 경총의 요구를 수용하여 지난해 연말까지 처벌을 유예하는 6개월의 계도기간을 시행하였고, 시정 기간도 기존 3개월에서 6개월로 확대하였다.

심지어 고용노동부는 그동안 근로기준법에 있지만 주목받지 않았던 유연근로시간제에 대한 매뉴얼을 제작하여 배포하기 시작했다. 마치 주 52시간 제도가 시행되지만, 이 방식을 활용하면 예전과 같이 노동을 시킬 수 있다고 안내해주는 듯 했다.

유연근로시간제에서도 현재 가장 논쟁거리가 되고 있는 것은 탄력근로제이다. 탄력근로제는 일정 단위 기간 내에 그 평균 시간은 법정 시간한도 내로 맞추되 일이 많은 주의 노동시간을 늘리고, 일이 적은 주의 노동시간을 줄일 수 있는 제도이다. 업종, 업무 특성상 일정 기간에 업무가 가중되는 경우에 활용할 수 있도록 만들어진 것이다. 예를 들어 제조업, 운수업, 전기·가스 등 물량이나 소비량의 변동으로 일정 기간에 근무량이 많아지는 경우라면 2주 또는 3개월 단위 내에서 탄력근로제를 활용할 수 있다.

문제는 현재 2주 또는 3개월 단위로 시행할 수 있게 되어있는 탄력근로제를 6개월 혹은 1년으로 기간을 확대하자는 논의가 이루어지고 있다는 것이다. 현행 탄력근로제에서도 3개월 단위로 하는 경우 연속 6주 동안 주 64시간의 노동이 허용된다. 그러나 이를 6개월 단위로 확대하게 되면 1주 64시간의 노동을 연속 13주 동안 할 수 있고, 1년으로 하면 연속 26주 동안 할 수 있게 된다.

단위 기간 확대는 사실상 주 52시간제 시행의 의미가 상실되는 것과 다름이 없다. 정부는 주 52시간제의 계도기간으로 정한 6개월이 지나는 시점인 작년 연말에 다시 올해 3월 말까지 계도기간을 연장하였다. 현재 국회는 2월안에 탄력근로제 관련 입법을 마무리하겠다는 견해를 밝히고 있어 사실상 탄력근로제 관련 입법을 염두에 두고 계도기간을 연장한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탄력근로제의 단위기간 확대는 합법적으로 연장근로수당을 지급하지 않고 장시간 노동을 연속적으로 더 길게 허용할 수 있도록 하는 것으로 주 52시간제를 시행한 의미를 무시하는 개악에 불과하다.

사실 노동시간과 더불어 노동자들의 삶에 큰 영향을 미치는 최저임금도 지난해 많은 진통을 겪어야 했다. 올해 최저임금이 전년도보다 820원이 올랐다는 이유로 최저임금은 중소 영세 상인을 망하게 하는 주요 원인으로 몰려야 했다. 그러고 나서 상여금과 복리후생비 일부가 최저임금산입범위에 들어가는 개악이 이루어졌다. 또 내달 중으로 최저임금의 결정구조에 대한 개편이 이루어질 예정이어서 이 개편이 어떤 풍파를 가져올지 이목이 쏠리고 있다.

최저임금제도는 노동자의 생계유지를 위해 필요하다고 생각되는 최저수준의 금액을 정하는 제도이다. 그러나 우리나라에서는 최저임금이 곧 노동자의 임금수준인 경우가 비일비재하다. 게다가 주 52시간제 시행으로 노동시간이 감소하게 되는 경우 노동자들의 임금 보전을 위해서라도 최저임금의 인상은 지속해서 이뤄져야 하는데, 법 개정을 통해 그 인상속도를 저지하고 있는 현실이다. 노동자들이 과중한 노동에서 벗어나 조금 더 사람답게 살 수 있으려면 노동시간 단축과 최저임금 인상은 함께 연계해서 이루어져야 한다. 특히 최저임금은 생활임금 수준까지 끌어올려야 한다.

노동자를 위한 정책을 펼치겠다고 한 정부는 지난해 그 발걸음을 힘차게 시작하는 듯했으나 얼마 가지 않아 다시 도돌이표를 하고 있다. 이번 기회에 돌파하지 않으면 노동시간 단축과 최저임금의 문제를 개선할 기회가 언제 다시 돌아올지 모른다. 노동자의 건강한 노동환경을 위해 더 지체하지 말고 완전한 노동시간 단축과 최저임금 보장을 위한 결단이 필요한 시점이다.

특집2. 산재 보상 제도의 변화와 과제 / 2019.01

산재 보상 제도의 변화와 과제 

이진우 (민주노총 노동안전보건국장)

작년 12월 27일, 산업안전보건법 전부 개정안이 28년 만에 개정되었다. 2월 입법 예고된 이후 노동계와 시민사회단체들은 꾸준히 대응을 해왔고, 태안화력 비정규직 김용균 노동자의 죽음을 계기로 유족들의 완강한 법 개정 요구와 노동안전보건 단체와 전문가들의 투쟁이 확산 강화되면서 본회의까지 통과된 것이다.


산재보상 제도도 오랜 출퇴근 산재, 산재신청 사업주 날인제도 폐지, 소규모 건설공사 적용, 뇌심혈관질환 산재 인정기준 고시 개정 등 최근에 많은 변화가 있었다. 그 외에도 노동현장에서 꼭 점검하고 적용해 나가는 실천이 중요한 내용도 많다. 2019년에 주목해야 할 산재 보상 제도의변화와 과제를 살펴보자.

산재보험 적용이 확대되었다. 산업재해보상보험법 시행령 일부 개정안이 통과되면서 건설기계업종 특수고용노동자 산재보험 적용 확대, 서비스업종 1인 자영업자 산재보험 가입이 가능해졌다.

기존에는 특수고용노동자 9개 직종(①보험설계사 ②골프장캐디 ③학습지교사 ④레미콘기사 ⑤택배기사, ⑥퀵서비스기사 ⑦대출모집인 ⑧신용카드회원 모집인 ⑨대리운전기사)에 한해 산재보험이 특례적용 되고 있었다.

건설기계 1인 사업주의 경우, 전체 27개 건설기계 중 '콘크리트믹서 트럭(레미콘)' 1개 직종만 특수형태고용으로 적용(26개 직종은 임의가입 대상)되고 있었는데, 이번 개정안을 통해 전체를 특수형태근로종사자로 보고 산재보험에 당연히 가입할 수 있게 되었다. 건설기계 종사 특수형태고용 약 11만 명에게 적용확대가 되리라는 것이 노동부의 설명이다.

1인 자영업자의 산재보험 가입 가능 업종도 확대되고 있다. 기존에는 △여객운송업자, △화물운송업자, △건설기계업자, △퀵서비스업자, △대리운전업자, △예술인 등 6개 직종에 대해서만 적용되었다. 2018년 7월부터는 △자동차 정비업 △금속 가공제품 제조업 △1차 금속 제조업 △전자부품·컴퓨터·영상, 음향 및 통신장비 제조업 △의료 정밀 광학기기 및 시계 제조업 △전기장비 제조업 △기타 기계 및 장비 제조업 △귀금속 및 장신용품 제조업 등 8개 제조업종에 종사하는 자 영업자 5만6천여 명이 산재보험에 가입할 수 있게 되었다.

이에 더해 2019년 1월 1일부터는 △음식점업, △소매업, △도매 및 상품중개업, △기타 개인서비스업 등 4개 서비스업종이 추가되어, 약 65만 여명에게 산재보험 가입자격이 열릴 것으로 보인다.

그 외에 주목해야 할 제도 변화는 다음과 같다.

우선, 산업재해 은폐와 미보고에 대한 처벌 강화는 2017년에 개정이 되었지만, 아직 현장에 널리 알려지지 않아 꼭 점검이 필요하다. 노조 전임활동 중 발생한 재해의 산재인정 기준이 정리되었다. 전임자의 노동자성과 전임활동의 업무를 인정하여, 사업장 노무관리업무와 관련된 노조 전임자의 전임활동(행사 포함) 중에 발생한 사고·질병은 업무상 재해로 인정해야 하는 것으로 되었다(단, 사용자 사업과 무관, 쟁의단계 이후 활동은 현행과 같이 불인정).

점심시간 중 사고에 대한 업무상재해에 대해 점심 식사도 출퇴근과 같이 사회 통념상 본래 업무와 밀접한 행위이므로 그 취지에 맞게, 구내식당 유무 등과 관계없이 통상 이동시간 편도 10분 이내(도보, 차량 무관) 인근 식당에서의 식사를 위해 왕복 도중 발생한 사고는 업무상 재해로 인정(점심식사 목적이 아닌 사적 행위의 경우는 불인정)하는 것으로 개선되었다.

산재 해당 여부를 판단하기 위한 특별진찰 기간 중 증상이 위독하거나 증상 악화 방지가 필요한 경우에는 치료비용을 지급할 수 있다고 되어 있으나, 그동안은 구체적 가이드라인이 없어 실제로는 치료비용이 지급된 사례가 없었다. 이제는 뇌·심혈관질환 또는 근골격계질환의 업무상 재해(질병) 여부 판단을 위해 업무관련성 전문조사(특별진찰) 기간 중 치료비용을 인정하고, 추가로 산재로 인정될 가능성이 높은 경우는 특별진찰 실시 일부터 업무상 재해 결정 일까지 치료비용을 공단이 부담하게 된다.

직업성 암과 원인적 연관성이 밝혀진 '석면, 벤젠'의 노출기준이 개선되었고 '도장작업'의 인정 업무 범위를 늘리는 내용의 시행령 개정이 진행되어, 직업성 암 산재 인정기준 확대되었다.

직장 내 괴롭힘 예방 및 피해노동자 보호에 관한 법안이 통과되었고, 이에 상응하여 직장 내 괴롭힘, 고객의 폭언 등 업무상 정신적 스트레스가 원인이 되어 발생한 질병에 대한 인정도 가능해질 예정이다.

산재보상은 노동자의 최소한의 기본권이다. 하지만, 한국은 산재보상 관련 과제들이 산적해 있다. 이번에 개선된 내용마저도 그렇다. 특수형태고용의 경우 노동자와 사용자가 보험료를 절반씩 부담해야 할 것에 더해, 적용제외 신청허용이 가능한 상황이라 사업주가 이를 악용하여 강요와 협박으로 대상 노동자의 9%만이 적용되고 있다.

적용제외 신청허용제도 폐지 개정안이 19대국회에 정부 입법으로 발의되었으나 삼성생명을 필두로 하는 보험 사업주 단체의 반대와 로비로 법사위를 통과 못 하고 폐기된 바 있다. 산재 입증 책임 전환이 필요하다. 산재 입증책임이 노동자에게 있지만, 업무 관련성을 증명할 정보는 사측이 보존하지 않거나 영업비밀로 감추고 있어 문제가 많다. 산재 치료가 건강보험 기준에 준용되어, 비급여가 많은 것도 여전한 문제이다. 산재 처리 절차가 어려워 제대로 보상받지 못하는 사례가 많이 발생하고 있어 국선 산재노무사 제도의 도입도 절실하다.

'마지막으로 산안법 전면개정안이 보호 범위를 '근로자'에서 '노무 제공자' 등으로 확대하는 추세인 것을 고려하면, 여전히 배제되는 업종이 많은 산재법은 적용 범위 더욱 확대될 필요가 있다.

특집1. 개정된 산업안전보건법, 노동자 온전히 지키도록 만들자 / 2019.01

개정된 산업안전보건법, 노동자 온전히 지키도록 만들자

 이종란 (반도체노동자의건강과인권지킴이 반올림 활동가)


산업안전보건법 전부 개정안이 2018년 12월 27일 국회를 통과했다. 이에 따라 고용노동부는 3월에 시행령 및 시행규칙을 입법 예고한다. 불과 개정안 통과 한 달 전만 해도 국회에서 이 법안을 통과시키려 나서는 국회의원을 찾기 힘들 정도였는데, 극적으로 법안이 통과된 것이다.

그 주요한 동인에는 지난 12월 11일 태안화력발전소(한국서부발전)에서 석탄을 이송하는 컨베이어벨트를 혼자 점검하다 기계에 끼어 목숨을 거둔 하청노동자 고 김용균님의 죽음과 슬픔을 뒤로하고 또 다른 아들들을 살려달라며 거리에 나선 유족, 시민대책위, 노동자 시민의 촛불 그리고 이를 여과 없이 내보낸 언론이 있었다. 

이렇게 28년 만에 극적인 통과를 거친 산안법 전부개정 법률안의 주요 내용은 다음과 같다. 첫째, 매년 6백 명 가량 죽어 나가는 건설 현장의 발주처 안전책임과 타워 크레인 등 건설기계 원청책임이 강화된다. 또 특수고용노동자, 배달노동자, 프랜차이즈 지점 노동자에 대한 안전 및 보건 조치가 일부 도입된다.

둘째, 도급인(원청) 책임 강화다. 종전에는 도급인 사업장에서 화재·폭발·붕괴 위험이 있는 22곳만 도급인이 안전보건 조치를 책임지도록 했다. 즉 삼성반도체 불산누출 사망사고나 태안화력발전소 사고처럼 22개 위험장소가 아닌 곳에서 산업재해가 발생하면 도급인에게 책임을 물을 수 없었다.

그런데 이번 개정안은 도급인 책임 범위를 '도급인 사업장 전체'와 사업장 밖이더라도 '도급인이 제공·지정하고 지배·관리하는 대통령령으로 정하는 장소'로 확대했다. 다만 도급인이 제공·지정하고 지배·관리하는 장소가 어디인지는 시행령에서 정한다. 하위법령에 위임된 만큼 치열한 다툼이 예상되는데 노동부는 기존 22개 위험장소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겠다는 방침이다. 따라서 시행령을 개정할 때 축소되지 않도록 해야 한다.

셋째, 개정안에는 그동안 사업주에게만 맡겨져 왔던 물질안전보건자료(MSDS)를 노동부에 제출하도록 하였다. 또한 사업주의 영업비밀 주장 남용에 제한을 두는 조항이 생겼다. 즉 화학물질을 양도하거나 제공하는 자는 그간 물질안전보건자료에 영업비밀을 이유로 화학물질의 명칭과 함유량을 자의적으로 기재하지 않아 왔었는데, 개정안에는 고용노동부장관의 승인을 받아 그 화학물질의 명칭 및 함유량을 대체할 수 있는 자료를 적도록 하였다.

삼성 옴부즈만위원회 보고서에 따르면 2017년 기준으로 삼성반도체 기흥/화성 사업장에서 사용하는 907종의 화학제품 중 영업비밀이 포함된 화학제품 수는 무려 407종으로 절반에 달한다. 이번 개정안을 통해 기업들이 제멋대로 영업비밀이라며 유해 화학물질 정보를 감추어 노동자들의 생명건강권이 훼손되는 일이 줄어들기를 기대해본다. 다만 국회 심의 과정에서 원안에 있던 MSDS 일부 내용을 온라인상에 공개하는 조항이 삭제됐다. 국민의 알권리 확대를 위한 추가 논의가 필요하다.

넷째, 일부 유해위험작업 즉 도금작업, 수은·납·카드뮴 관련 작업 등 12개 화학물질을 다루는 작업에 도급이 금지된다. 이를 위반 시 10억 원 이하 과징금을 내야 한다. 그러나 방사선 작업, 철도와 지하철의 선로 및 스크린도어 수리보수, 화력발전 및 화학물질 설비 수리 보수업무는 포함되지 않았다. 위험의 외주화 금지를 외치며 산업안전보건법 통과를 위해 싸웠지만 고 김용균 씨의 죽음을 초래한 태안 화력발전소는 위험작업을 하청에 계속 떠넘길 수 있다는 얘기다.

다섯째, 노동자 작업중지권을 별도의 조항으로 명문화했다. 그러나 작업중지권에 대한 실효성 있는 대안으로 제시되어 왔던 노동자 대표 등의 작업중지권은 명시되지 않았다.

마지막으로, 처벌조항이 강화되었다. 도급인이 안전·보건조치 의무를 위반한 경우 3년 이하 징역 또는 3천만 원 이하 벌금에 처한다. 안전·보건조치 위반으로 노동자가 사망하면 사업주 처벌수준과 같게 7년 이하 징역 또는 1억 원 이하 벌금이 부과된다. 사업주가 안전보건 조치를 안 해서 노동자가 죽는 사고가 5년 내 2번 이상 발생할 경우 형(7년 이하 징역 또는 1억 원 이하)의 2분의 1을 가중한다.

법인에 대한 벌금도 현행 1억 원에서 10억 원으로 대폭 올랐다. 그간 산재사망에 대해 평균 5백만 원 이내의 솜방망이 벌금보다 처벌조항이 강화된 것은 사실이나, 산재사망 예방효과를 보기위한 처벌강화로 보기에는 미흡하다. 애초 산업안전보건법 전부 개정안 원안에는 처벌 하한형(징역1년 이상)이 있었으나 경총 등과 보수 전문가들의 공세에 밀려 삭제되었다.

이상과 같이 산업안전보건법개정안은 원안보다 상당히 후퇴하였고, 노동자의 안전보건조치를 충분히 담았다고 보기 어렵다. 처벌강화, 도급 금지의 범위가 현실을 제대로 반영하지 못했다는 본질적인 한계가 분명하다. 그런데도 원청에 대한 책임 범위가 확대되고, 많은 국민들이 산업안전보건법의 존재를 인식하고 위험의 외주화와 산재사망 처벌강화에 대한 커다란 공감대가 형성된 측면에서 의미도 적지 않다.

하지만 산재사망을 획기적으로 줄이는 효과를 가져왔던 영국의 기업살인법을 토대로 만든 '중대재해 기업처벌법'도 여전히 국회에서 잠자고 있다. 우리는 아직 갈 길이 멀다. 나아진 내용은 현장에 적용하는 살아있는 법으로 활용해야 하고, 부족한 부분은 바꿔나가도록 더욱 힘을 모아야 한다. 생명과 안전이 최우선 가치이기 때문이다.


[활동소식] 고 김용균 경기지역 추모제 진행


지난 1월 12일(토) 오후4시 경기도 수원역에서 故 김용균 경기지역 추모제를 진행했습니다. 손진우 집행위원장은 죽음의 외주화를 멈추기 위한 방안에 대해 발언했습니다. 

[활동소식] 다큐멘터리 영화 <사수> 부산지역 공동체 상영회 진행


지난 1월 16일(수) 저녁에 영화 다큐멘터리 <사수> 부산지역 공동체 상영을 진행했습니다. 연구소도 참석하여 영화부터 관객과의 대화까지 함께했습니다. <사수>는 유성기업 노동자들의 노조파괴에 맞선 싸움을 담은 영화입니다. 아직 못 보신 분들은 꼭 <사수>를 봐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