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장] 삼성반도체 노동자 3인의 백혈병ㆍ림프종에 대한 산재 불승인 판에 대한 입장

「삼성반도체 노동자 3인의 백혈병ㆍ림프종에 대한 산재 불승인 판결」에 대한 입장


대법원의 부당한 산재불승인 판결, 그리고 삼성을 규탄한다.


오늘(30일) 대법원 제3부(주심 김신 대법관)는 삼성반도체 노동자 세 명의 백혈병과 비호지킨 림프종이 산업재해가 아니라고 했다. 함께 소송을 제기한 다섯 명의 원고 중 두 명(고 황유미, 고 이숙영의 유족)에 대해서는 산재를 인정하고 다른 세 명(고 황민웅의 유족, 김은경, 송창호)에 대해서는 부인했던, 2년 전 서울고등법원의 원심판결을 그대로 유지한 것이다.


이 사건 당사자들은 ‘삼성반도체 직업병 문제’를 처음 세상에 알린 이들이다. 가장 먼저 나섰던 황상기 씨(고 황유미 씨의 아버지)가 근로복지공단에 산재신청을 한 때(2007. 6.)로부터, 무려 9년이 흘렀다.


길고 긴 9년의 시간 동안, ‘삼성반도체 직업병’ 문제에 관하여는 적지 않은 변화들이 있었다.


삼성반도체ㆍLCD 공장에서의 직업병 피해를 호소하는 제보자가 223명에 이르렀고 그 중 76명은 사망했다. 공장 내부의 문제들도 상당부분 드러났는데, 회사가 수백 종의 화학물질을 취급하면서 그 유해성조차 제대로 파악하지 않았다는 점, 취급되는 화학제품으로 부터 실제 발암물질이 검출되었고 정전ㆍ설비 고장 등의 상황에서는 유해물질이 고농도로 노출되었다는 점, 공장 설비로부터 전리방사선 노출도 가능했다는 점 등이 여러 전문기관의 조사 결과 드러났다.


그러한 자료들이 근거가 되어 고 황유미 씨를 포함한 삼성반도체 노동자 11명의 백혈병, 악성림프종, 재생불량성빈혈, 유방암, 뇌종양, 난소암 등이 법원과 근로복지공단에 의해 산재인정을 받았다.


무엇보다 반도체 산업을 향한 사람들의 인식이 바뀌었다. 더 이상 그 누구도 이 산업을 ‘청정무해한 첨단 산업’이라 할 수 없게 되었고, 삼성전자를 안전보건 관리에 있어 최고 기업이라 말할 수 없게 되었다.


하지만 9년이 지나도 변하지 않는 게 있다.


첫째, ‘질병의 업무관련성’에 대한 입증책임을 재해자 측에 부과하는 산재보험법과 그러한 입증책임 문제를 바라보는 법원의 기본 시각이 바뀌지 않았다.


특히 이번 대법원 판결은 “근로자들의 업무 내용에 따른 개별적 심리”를 강조하였는데, 그러한 ‘개별적’ 심리를 함에 있어 ‘공통적’으로 존재하였던 입증 곤란의 문제는 고민하지 않았다. 대법원은 “원고가 발암물질에 노출되었을 가능성”은 인정하면서도 “그 노출의 정도가 질병을 유발하였다고 볼 증거가 부족하다” 하였는데, 그러한 ‘증거 부족’의 원인에 대해서는 주목하지 않았다. 회사의 관리 부실이나 자료 은폐, 근로복지공단의 조사 잘못으로 인해 업무환경의 유해성을 알 수 없게 된 상황에 대하여 규범적 판단 자체를 하지 않은 것이다.


결국 입증 곤란의 상황은 회사나 근로복지공단의 잘못으로 초래되었으나 그에 따른 불이익은 다시금 재해노동자 측에 전가함으로써, 직업병 피해가족들의 치료와 생계를 보장하기 위한 산재보험제도의 존재 의의를 무너뜨리고 말았다. 


그 과정에서 대법원은 국제암연구소가 일찍이 1급 발암물질(“인간에게 암을 일으킨다는 증거가 충분한 물질”)로 지정하였고 원고가 업무 중 수시로 취급하였던 ‘트리클로로에틸렌(TCE)’을, “인간에게 암을 일으킨다고 할 수 없는 것”으로 단정하는 명백한 오류까지 범했다.


둘째, 이 문제를 대하는 삼성전자의 태도가 전혀 바뀌지 않았다.


삼성전자는 여전히 반도체 노동자들의 질병과 죽음에 대해 아무런 책임이 없다는 입장이다. 특히 공장의 안전보건관리에 대해 어떠한 잘못도 인정하지 않고 있다. 


안전보건 관리 실태에 대한 총체적인 문제점을 지적하는 노동부의 진단 보고서를 ‘영업비밀’이라고 감춘 채, “반도체 산업은 어떤 업종보다 안전하며, 특히 우리 반도체 생산라인은 세계 최고 수준의 안전성을 확보하고 있다” 하였고(2015. 10. 2.), 산재소송에서 조차 재해자의 업무환경에 관한 법원의 자료제출 요청을 계속 거부한 채, “우리는 요구되는 모든 정보를 투명하게 공개함으로써 법원과 근로복지공단에 전적으로 협조하고 있다” 하였다(2016. 8. 10. ).


직업병 피해가족들에게는 먼저 “대화로 문제를 해결하자”더니(2013. 1. 11.) 그 대화가 뜻대로 되지 않자 “조정위원회의 출범”을 일방적으로 선포하였고(2014. 10. 21.), 그 조정위원회가 만든 권고안을 내자 그마저 거부한 채 자체 보상절차를 강행하였다(2015. 9. 18.). 보상의 기준과 내용은 물론 사과의 내용마저 스스로 정하겠다며, 보상신청 기한까지 일방적으로 통보했다. 그렇게 내몰린 피해자들과 개별 합의를 마치고는 “백혈병 이슈 9년 만에 해결”, “조정의 3대 쟁점은 모두 해결됐다”는 선언까지 했다(2016. 1. 14.).


삼성은 직업병 피해가족들이 힘겹게 싸워 온 9년이라는 긴 시간 동안, 무책임과 거짓으로 일관해 온 것이다. 


그러나 직업병 피해가족들과 반올림은 희망을 잃지 않는다. 


더디지만 조금씩 긍정적인 변화가 계속되고 있기 때문이다. 일부 사건에서 법원과 근로복지공단은 “근로자에게 책임 없는 사유로 사실관계가 규명되지 않은 사정”들을 적시해 가며, 반도체 노동자들의 각종 질병을 직업병으로 인정해 왔다. 앞으로도 더 많은 노동자들의 더욱 다양한 질병들이 산업재해로 인정받게 될 거라 믿는다.


그러한 변화 앞에 이번 판결문에 이름을 올린 대법관들은 직업병 피해가족들이 겪어온 입증문제의 현실과 산재보험제도의 취지를 이해하지 못하였다는 뼈저린 반성을 하게 될 것이다. 또한 삼성전자도 뒤늦게나마 자신의 잘못을 인정하고 변화된 자세를 보여주길 바란다.


지난 9년간, 삼성반도체 직업병 피해가족들과 반올림은 ‘영업비밀’이라는 베일에 가려진 반도체 공장의 유해성을 규명하고, 직업병 피해를 인정받기 위해 힘겨운 싸움을 이어왔다. 삼성이 독단적인 보상절차를 강행한 직후부터 시작된 반올림의 노숙 농성도 어느덧 1년이 되어간다. 


오늘 대법원의 부당한 판결에도 불구하고, 직업병 피해가족들과 반올림의 농성, 직업병 인정 투쟁은 계속 될 것이다. 우리의 정당한 활동을 지지하는 많은 연대단체, 전문가들, 일반 시민들과 함께 계속 외칠 것이다.


“삼성반도체 노동자들의 백혈병은 직업병이다.”

“정부는 질병의 업무관련성에 대한 입증책임을 전환하고 산재인정 범위를 확대하라”

“삼성은 노동자들의 질병과 죽음 앞에 사죄하고, 투명하게 보상하라”


2016. 8. 30. 

반도체 노동자의 건강과 인권지킴이, 반올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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