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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집 4.괴롭힘 없는 일터를 만들기 위해서 /2016.5 괴롭힘 없는 일터를 만들기 위해서 - 해외사례를 중심으로 이종희 공익인권변호사모임 희망을만드는 법 분노와 답답함, 이를 표현할 언어의 부재 지난 겨울, 인권연구소 창과 함께 ‘Daum 스토리펀딩’에서 ‘일터괴롭힘’에 대해 연재했다. 각자의 일터에서 겪어 왔던 괴롭힘을 토로하는 댓글이 많이 달렸다. 비정규직에게 갑질하는 학교, 성과를 쥐어 짜는 조직, 투명인간 취급하며 따돌리는 동료들 등등. 남 일 같지 않다고 했다. 공감, 분노, 답답함의 감정이 느껴졌다. 그동안 일터에서 겪었던 고통을 표현할 적절한 언어가 없었던 것 같았다. 해외에서는 일터에서 노동자들이 겪는 존엄 침해, ‘일터 괴롭힘’에 대해 다루는 언어가 있을까? 법제도적으로는 어떻게 다루고 있을까? 일터에서의 괴롭힘(Workplace harass.. 더보기
월 간 「일 터」/[특 집]

특집 4.괴롭힘 없는 일터를 만들기 위해서 /2016.5

괴롭힘 없는 일터를 만들기 위해서

- 해외사례를 중심으로

 

 

 

이종희 공익인권변호사모임 희망을만드는 법

 

 

 

분노와 답답함, 이를 표현할 언어의 부재

 

지난 겨울, 인권연구소 창과 함께 ‘Daum 스토리펀딩’에서 ‘일터괴롭힘’에 대해 연재했다. 각자의 일터에서 겪어 왔던 괴롭힘을 토로하는 댓글이 많이 달렸다. 비정규직에게 갑질하는 학교, 성과를 쥐어 짜는 조직, 투명인간 취급하며 따돌리는 동료들 등등. 남 일 같지 않다고 했다. 공감, 분노, 답답함의 감정이 느껴졌다. 그동안 일터에서 겪었던 고통을 표현할 적절한 언어가 없었던 것 같았다. 해외에서는 일터에서 노동자들이 겪는 존엄 침해, ‘일터 괴롭힘’에 대해 다루는 언어가 있을까? 법제도적으로는 어떻게 다루고 있을까?

 

일터에서의 괴롭힘(Workplace harassment 또는 bullying)에 대한 문제제기는 1980년대 북유럽 국가들을 중심으 로 시작되었다. 실증 연구, 심리학적 연구 등이 이루어지고 언론 보도, 재판 사례 등으로 관심이 대두되면서 일터에서의 괴롭힘을 노동자의 인격권을 침해하고 신체적·정신적 건강에 큰 위해를 초래하는 행위로 점점 인식하게 되었다. 유럽 각국, 캐나다, 오스트레일리아 등에서 괴롭힘을 규제하는 법제도를 만들어 왔고, 법률이 아니더라도 지침, 행정감독 등을 통해 반(反) 괴롭힘 정책을 표방해 온 국가들이 많이 생겼다.

 

프랑스 법에 규정된 ‘정신적 괴롭힘,’노동자의 ‘정신’건강도 고려

 

일터 괴롭힘에 관한 법제도로 한국에 비교적 많이 알려진 국가는 프랑스이다. 프랑스의 심리학자인 Marie-France Hirigoyen이 1998년 『정신적 괴롭힘, 무자비한 폭력(Le harcélement moral, laviolence perverse au quotidien)』라는 책을 발간하고, 이 책이 사회적 반향을 일으키면서 프랑스 사회 내에서 일터에서 괴롭힘에 대한 논의가 본격적으로 이루어졌다.

 

법적으로는, 2002년 ‘정신적 괴롭힘’(harcélement moral)의 개념을 노동법전과 형법전에 도입하여 일터에서의 괴롭힘을 규율하기 시작하였다. 프랑스 법전에서는 “어떠한 노동자도 자신의 권리들과 존엄을 침해하거나 신체적·정신적 건강을 훼손하거나 직업적 전망을 위태롭게 할 수 있는, 노동 조건의 훼손을 목적으로 하거나 그러한 결과를 초래하는 반복되는 정신적 괴롭힘의 행위들을 겪어서는 안 된다” 라며 정신적 괴롭힘의 의미를 설명한다. 노동자의 존엄 침해를 중심으로 둔 점이나, 건강에 관해 정신과 신체를 통합적으로 다룬 것이 정신적 괴롭힘의 규정에서 두드러지는 요소이다. 노동법전의 내용을 좀 더 살펴보면, 정신적 괴롭힘을 금지하는 규정을 두는 한편, 정신적 괴롭힘을 겪다 불이익 처분을 받는 경우 이를 무효로 보는 규정을 두고 있으며, 사용자에게 정신적 괴롭힘을 예방 할 의무를 지우고 있다. 괴롭힘의 피해자가 괴롭힘의 존재를 추정할 수 있는 사실을 제시하면, 그 행위가 괴롭힘과 관계없는 정당한 행위라는 것에 대하여 상대방에게 입증책임을 지우는 등 구제를 실질화하기 위한 내용도 담고 있다.

 

프랑스 사회에서도 정신적 괴롭힘에 관한 입법을 시도할 때, 호의적인 의견만 있었던 것은 아니다. 정신적 괴롭힘은 다양한 양태로 나타나기 때문에 법률적으로 개념화하기 어렵고 그 개념이 지나치게 확대될 우려가 있다거나, 기존의 법제에서도 정신적 괴롭힘을 규율할 수 있는 수단이 있다는 비판이 제기되었다. 그러나 현재 정신적 괴롭힘에 관한 판례가 많이 축적됨으로써 정신적 괴롭힘의 의미와 판단기준이 구체화되었고, 그동안 수면 위로 떠오르지 않았던 정신적 괴롭힘을 가시화함으로써 예방과 구제의 실효성도 도모할 수 있게 되었다. 하급심에서 한 때 논란이 되기도 하였으나, 행위자가 괴롭힘을 의도하지 않았더라도 괴롭힘의 결과를 가져오는 행위도 규율 대상에 포함되는 것으로 최고법원에서 확고하게 해석하고 있다. 그래서 경영방식이라는 이유가 정신적 괴롭힘의 혐의를 벗어날 수 있는 근거가 되지 않는다고 본다. 또한 프랑스 법원은 사용자가 직접 개입하지 않은 괴롭힘 사건이라도 사용자가 예방조치를 다 하지 않았음을 근거로 결과적 안전의무에 따른 책임을 질 수 있다고 판단함으로써 괴롭힘을 직업상의 위험의 하나로 보고 그에 대한 사용자의 의무를 확대시켰다.

 

* 프랑스 심리학자 Marie-France Hirigoyen이 1998년 발간한 책 <정신적 괴롭힘, 무자비한 폭력>

 

안전보건 상 위험을 초래하는 괴롭힘 행위에 중단 명령내릴 수 있는 호주

 

오스트레일리아나 캐나다는 주(州) 정부 차원에서 직업안전 관련법에 일터 괴롭힘에 관한 조항을 넣는 방식으로 입법적 해결을 모색하거나, 일터 괴롭힘에 관한 비교적 상세한 지침을 채택하여 인식 개선과 절차 마련을 촉구하는 모습을 보여 온 국가들이다. 오스트레일리아는 2013년 공정노동법(Fair Work Act 2009)의 개정으로 연방 차원에서도 일터 괴롭힘(Bullying)에 관한 조항이 들어왔다. 이 법에서 는 “개인 또는 집단이 노동자 또는 이 노동자가 포함된 노동자 집단에 반복적이고 비합리적으로 행위하며, 이 행동이 안전과 보건에 위험을 초래할 때” 괴롭힘을 겪는다고 정의한다. 그리고, 그러한 괴롭힘을 겪을 때 공정노동위원회(the Fair Work Commission)에 괴롭힘 중단 명령을 요청할 수 있도록 규정하여, 괴롭힘을 겪고 있는 당시에 신속한 구제를 도모할 수 있도록 하고 있다. 특기할 점은 이 규정이 연방의 노동건강안전법(Work Health and Safety Act 2011)의 적용범위와 동일하게 직접 고용된 노동자뿐만 하청, 외주, 교육생, 자원봉사 자 등에게도 적용된다는 점이다.

 

사용자의 괴롭힘 방치 촉진하는 미국의 ‘건강일터 법안’ 운동

 

미국은 반차별 법리가 발달했지만, 일터 괴롭힘을 독자적으로 다룰 수 있는 법률조항을 별도로 가지고 있지 않다. 인종, 성별, 성적 지향 등의 차별적 속성이 없는 경우라면 괴롭힘을 받더라도 그에 대한 적절한 구제 수단이 없는 형편이었다. 그로 인해 차별사유와 결합되지 않은 괴롭힘에 대한 보호의 필요성이 대두되면서, 사용자의 괴롭힘 방지 조치를 촉진하는 ‘건강일터법안(Healty Workplace Bill)’ 입법운동이 진행되게 되었다. 2016년 5월 현재 30개 주와 2개 자치령에서 건강일터법안이 발의되었다. 건강일터법안은 노동자가 가학적 근무환경에 처해서는 안 된다는 것을 명시하고 그에 관한 소송을 통한 구제를 규정하고 있다. 사용자의 책임에 관해서는 기존에 성적 괴롭힘(성희롱)에 관해 형성된 법리를 법안에 그대로 들여왔다. 관리자의 괴롭힘이 해고, 징계 등 사용자의 처분으로 끝나는 경우 사용자는 그에 관해 반드시 책임이 있고, 사용자의 처분으로 연결되지 않는 경우는 사용자가 합리적 주의를 했다는 점을 입증하여야만 면책될 수 있도록 규정하여 사용자책임 법리의 강화를 모색하고 있다.

 

단지 법의 문제는 아니지만

 

 

 

한국에서는 일터괴롭힘에 대한 사회적 인식이 아직 부족할뿐더러 일터괴롭힘을 직접 다루는 법령이나 지침 같은 것이 없다. 그렇다고 전혀 법제도가 없는 것은 아니다. 유성기업에서의 노조파괴 사례는 부당노동행위제도를 통해 규율할 수 있는 것임에도 그 불법성을 제대로 묻지 못하고 있으며 그러는 사이 노동자들의 건강 상태는 날로 심각해지고 있다. 단지 법이 없기 때문에 괴롭힘이 방치되고 있다고는 볼 수 없을 것이다. 단지 법의 문제는 아니다. 그렇지만 가학적인 노무관리에 맞서 적극적 대응의 수단 중의 하나로서 노동자의 존엄을 선언하고 노동으로부터 이익을 얻는 사용자에게 노동자의 존엄 침해에 대한 책임을 원칙적으로 지우게 하는 법제도를 추진해볼 수 있다. 괴롭힘에 관한 해외의 법제도에서 공통적으로 찾을 수 있는 것은, 일터에서 발생하는 폭력과 괴롭힘을 노동자의 인격권과 건강권을 심각하게 침해할 수 있는 행위로 보고 사용자에게 방지의무가 있는 행위로 접근하고 있다는 점이다. 이를 참고해 볼 수 있을 것이다.

 

참고문헌
- David Yamada, "Workplace Bullying and the Law: AReport from the United States", 2013 JILPT Seminar on Workplace Bulling and Harassment.
- 조임영, 「직장 내 괴롭힘과 프랑스 노동법」 , 『노동법논총』 제25권, 2012.
- Ellen Pinkos Cobb. (2013). Bullying, Violence, Harassment, Discrimination and Stress: Emerging Workplace Health and Safety Issues, The Isosceles Group, 201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