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Z 노동이야기]취객만 상대해야 하는 노동의 고달픔 /2015.10

취객만 상대해야 하는 노동의 고달픔

- 주말 대리운전 아르바이트 박준형(가명)씨



정하나 선전위원


"살림살이 좀 나아지셨습니까?"


지난 2002년 대선 때 권영길 당시 민주노동당 대표가, 팍팍해진 국민의 삶에 대해 질문을 던지며 외친 문구이다. 오늘 만난 박준형(가명)씨는 투잡(two-job)족이다. 그야말로 '살림살이'가 녹록지 않아 투 잡을 뛰고 있다. 주말 저녁, 준형씨는 나이트클럽에서 음주가무를 즐기다 나오는 손님들을 태우기 위해 콜을 기다린다. 겹벌이로 대리운전을 하는 것이다.


"최저임금 겨우 받다 보니 생활이 힘들어서요. 그래서 시작하게 되었어요. 생활비 딱 떼면 단 얼마라도 저축도 하고 싶고, 하다못해 친구들이랑 간단하게 맥주 한 잔을 마시려 해도 영 여윳돈이 안 생기더라고요. 그래서 대리운전이라도 해서 투잡 뛰는 거죠. 일반 대리기사들은 업체에 대리기사로 등록하고, 각자 휴대전화에 해당 업체 앱을 깔아서 손님 전화를 받잖아요. 저는 그렇게 정식으로 하는 건 아니고요. 나이트클럽 지배인으로 일하는 지인이 업소에서 직접 연결해 주는 대리기사 조로 일하고 있어요. 업체 애플로 콜을 받는 게 아니니 건당 수수료를 떼는 것은 없죠. 대신 4대 보험이 안 되니 산재 적용 같은 건 안 되고요."


치열한 업계, 그래도 '용돈벌이'라도 하려고

평일 근무시간을 빼고 밤에, 그리고 출근 안 하는 주말에 할 수 있는 일을 찾다 보니 대리운전이 가장 손쉽게 구할 수 있는 일이었다. 20대 때 유흥업소에서 홀 관리 매니저를 한 경력이 있던 준형씨는, 과거 웨이터로 있었던 후배한테 연락했다. 지배인이 된 그 후배를 통해 지금 하는 일을 운이 좋게 연결받았다.


"한 달에 못해도 10번 정도는 나가려고 해요. 최소한 40만 원 정도는 벌 수 있게요. 원래는 비정기적으로 그냥 돈 필요할 때 후배에게 전화해서 '오늘 콜 연결하게 해 달라'고 했는데, 3~4년 전부터는 주말에는 꼬박꼬박 안 빠지고 다 채워 나가려고 하고요. 주중에도 일이나 약속 없을 때는 대리 뛰어요."


2010년 한 취업정보업체가 직장인 790명을 대상으로 한 설문조사에 따르면, '투잡을 하고 있다'고 응답한 사람은 10명 중 6명이었다. 이들이 주로 선택하는 일은, 주로 직장생활의 연장선에서 할 수 있는 일, 집에서도 가능한 일, 퇴근 후 할 수 있는 단순 시간제 아르바이트, 주말에 할 수 있는 일이 대부분이라고 한다. 그런 의미에서 대리운전은 손쉽게 구할 수 있고 시간 선택이 비교적 자유로운 두 번째 일자리(second job)가 된다.


하지만 이미 여러 언론 보도로 알려진 것처럼, 시장 경쟁이 너무 치열해 버티기가 힘들다고 한다. 서울노동권익센터에서 낸 '대리운전기사의 노동조건과 환경실태 분석(2015)'에 따르면, 대리운전 수입에 불만족한 비율이 62.6%다. 또한, 지난 3년간 수입이 줄었다는 응답이 80.4%에 이르렀으며 가장 큰 이유는 '건당 운임 감소'를 꼽았다고 하니 업계의 경쟁이 얼마나 치열한지 짐작이 된다.


"밤에 하는 거라 피곤하고, 원래 일도 있으니 그리 자주 나가는 편은 아니죠. 용돈 정도 번다고 생각하면 맞아요. 나이트 후배한테 전화해서 '형 오늘 한다'고 얘기하고 저녁 7시부터는 손님 연결해 주길 기다리고 있죠. 나이트클럽에 나가서 기다리는 건 아니고 퇴근 후 집에 와서 대기하고 있을 때가 많아요.


그러다가 전화 받으면 나이트클럽 주차장으로 손님 태우러 가는 거죠. 대부분 나이트 주변 강남 동네들로 가시는 경우가 많아요. 서울 시내 안에서는 2만~2만5000원 받거든요. 아귀가 잘 맞아떨어지는 날이면 다 나이트 근방 고만고만한 행선지로 가는 사람들로 채워질 때가 있는데 그러면 손님 3~4명 받아서 1시간에 10만 원 훅 벌 때도 있죠."


수도권의 일반적인 대리운전서비스 요금은 2만5000원이다. 대리운전 업체의 대리운전 기사들은 소속된 대리업체와 대리운전 요청을 알려주는 프로그램 업체에 이 중 5000원 정도의 수수료를 지급한다. 나이트클럽 전용 혹은 프리랜서 대리기사인 준형씨는 손님에게서 받은 돈이 온전히 자기 몫으로 들어오니 좀 나은 편이다. 


"나이트클럽은 저 말고도, 4개 대리업체에 손님을 나눠주고 있어요. 저랑 4개 업체에 웨이터(혹은 지배인)들이 적절히 손님을 나눠주는 그런 식인 거예요. 제가 오후 7시부터 새벽 2시까지는 대리 요청받으려고 대기를 타고 있는데요. 물론 한 명도 없는 날도 있지만, 만약 서울근교 원거리 가시는 분들이 있으면 자다가도 일어나서 당장에 가죠. 근데 분당이나 성남 같은 특별케이스는 드물어요."


나이트클럽과 연결된 대리업체들도 자체적으로 기사수급이 안 되면 준형씨에게 콜을 넘겨준다. 그럴 땐 받은 대리비 일부를 수수료 조로 업체에 보낸다. 그 업체의 소속 기사가 아니라 수수료를 줄 필요가 없긴 해도, 나름의 상도를 지켜야 서로 좋고 오래 할 수 있다는 게 준형씨의 생각이다.


가장 편한 손님은 타자마자 자는 손님

택시 운전 노동자들에게 물어보면 야간 운전이 몸도 힘들지만, 취객들 주사에 정신적으로 스트레스가 너무 심하다고들 한다. 그래서 벌이는 좋지만, 일부러 야간 택시 안 뛰는 분들도 있을 정도이다. 유흥업소가 많은 시내에서 손님을 태울 때 일부러 너무 취한 사람은 태우지 않으려고 한다고 들었다. 그런데 준형씨 같은 대리기사들의 경우 늘 취한 사람만 태워야 하니 고충이 클 것 같았다.


"제일 편한 케이스는 타자마자 바로 자는 손님이죠. 다 취한 상태에서 대리를 부르는 거라서 보통 말이 짧습니다. 어느 정도 주사 부리는 건 기본이에요. 욕하는 손님도 많고요. 자꾸 반말하고 욕하면 '손님, 반말(혹은 욕)하지 마세요, 안전하게 태워드릴 테니 주무시고 계십시오'라고 합니다.


그래도 취기에 안 자고 더 뭐라 뭐라 하시는 분들이 있어요. 그러면 룸미러로 쳐다보면서 한마디 하죠. '저도 긴 시간 세상 험하게 살다가 최근 마음잡고 운전대 붙잡고 있는 겁니다, 착하게 살게 좀 도와주십시오!' 시커먼 놈이 저런 멘트 날리면 아무래도 좀 무섭겠죠?"


준형씨도 이쪽 업계 오래 하신 선배 기사분들한테 배운 말이다. 이런 위협적인 멘트를 날리고 나면, 손님들이 신기하게도 주사를 접고 뒷좌석에서 잠든다고 한다. 취한 사람만 태우는 운전이다 보니 '진상' 손님들이 정말 많지만 준형씨는 그런 일로 크게 스트레스받거나 마음에 담아두는 편은 아니라고 했다. 그런 그도 잊지 못할 희대의 진상을 한 번 만난 적 있다.


"한 번은 저보다 한참 어린 젊은 사람 2명이 탔어요. 어느 동으로 가자고 그래서 '네 손님, 알겠습니다'하고 출발했죠. 손님들이 보면 차에 탔을 때는 비교적 멀쩡한데 자기 차에 딱 타고나면 그때부터 긴장이 풀리는지 가다 보면 더 취하고 거칠어지는 손님들이 많거든요. 이분들 이 딱 그랬는데 한 몇 분 지나니까 말이 짧아지면서 계속했던 얘기 또 하고 또 하고 그러는 거예요.


'아저씨, 어느 동으로 가 달라고요!'라고 그러면 제가 '네, 손님, 지금 가고 있습니다, 창밖 보세요. 지금 어디까지 왔고 가는 길이지 않습니까?'라고 답했습니다. 그런데 이렇게 아무리 설명해도 막무가내인 거죠. '아 씨! 야 어느 동으로 가 달라니까!' 이렇게 말이 짧아지더니. 막 상욕도 하더라고요. 둘이서 난리를 치는 거예요. 그때 참다 참다 안 되겠다 싶어서 차를 세우고 뒤에 두 손님 내리라고 했죠.


술 취한 사람들이 뭐 이성적인 얘기가 귀에 들어가겠어요? 내리게 한 다음 밖에 세워놓고 '나랑 싸우고 싶어서 그러는 거냐, 그럼 한 번 싸워보자, 덤벼라'하면서 겁 좀 줬죠. 그랬더니 바로 깨갱 하고 그다음부터는 조용히 가더라고요. 대리운전 이용하는 사람들도 좀 알아야 해요. 기사들 우습게 보고, 함부로 대하고, 욕하고 그러면 안 된다는 걸 손님들도 좀 인식을 해야 합니다."


서울시 대리운전 기사 300명 중 손님에게 폭행을 당한 경험이 있는 노동자는 85.9%나 되는 것으로 조사되었다. 폭행 횟수는 한 해 3~5회가 47.2%, 10회 이상도 15.5%나 된다. 또한, 폭행을 당하고 트라우마를 경험했다는 응답도 57.3%나 나온 것을 보면 대리기사들이 처한 노동환경이 참 만만치 않은 것을 확인할 수 있다.


많은 대리기사가 노동과정 중 폭력을 경험하고 있지만, 박준형씨가 그랬듯 참고 넘기거나 자력으로 해결하는 경우가 많다. 대리기사들을 위한 이렇다 할 법적 보호책이 있는 것도 아니고 사회적 인식도 저열하니, 대리운전 노동자들이 강력하게 대응하기 어렵다.


퀵돌이 대리기사, 나름 단골도 생겼다

반면 기억에 오래 남을 만큼 좋은 손님도 만났다. 가는 내내 이런 저런 얘기를 하다가 마음이 잘 맞는 손님이 있었다고. 선생님으로 보이는 그 손님이 해 준 얘기가 준형씨에게 그날따라 위로도 되고 힘도 되었다. 행선지에 도착했는데 몸을 잘 못 가누시기에 집 대문 앞까지 부축해드렸더니, 고맙다고 하면서 급기야 잠깐 들어와서 물이라도 한잔 마시고 가라고 집 안까지 데리고 들어갔다.


"부축해서 집에 들어갔더니 가족들은 제가 같이 술 마신 지인인 줄 안 거죠. 아내 되시는 분이 처음에는 '우리 양반, 술을 왜 이렇게 먹었느냐, 좀 말리지 그랬냐'라고 핀잔을 주시다가 '저 대리기사인데요'하니 깜짝 놀라시면서 모시고 와줘서 고맙다고 하시더라고요. 그러더니 과일 깎아 주시고, 커피 타주시고. 그런 좋은 사람도 있고. 그래도 아무튼 제일 편한 손님은 타자마자 바로 자는 손님이고. 하하하."


준형씨는 벌써 6년째 대리운전 아르바이트를 하고 있다. 이제는 그를 특별히 지목해서 불러달라고 하는 손님이 생겼을 정도이다. 운전을 잘, 빨리하는 준형씨의 스타일이 맘에 드는 손님들이다. 나이트클럽에서 직접 소개해 주는 기사이니 신원도 확실해서 안심되어 준형씨를 찾는 듯하다. 인터뷰하는 날도, 술 마시러 오라는 친구의 전화를 거절하고 손님 태우러 대기하러 가던 퀵돌이 대리기사 준형 씨. 그의 늦은 귀갓길이 손님들만큼 편안하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