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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Z 노동이야기] 오래 일하면 허리 휠까 무서워요 /2015.7 오래 일하면 허리 휠까 무서워요 - 은행 퇴직 후 병원에서 청소하는 여성 노동자, 김민숙(가명) 씨 장영우 선전위원 나는 약 350병상의 서울의 한 공공병원에서 일하는 내과 의사이다. 병원이란 공간에서 10여 년 넘게 일하고 있지만 청소노동자와 대화다운 대화를 한 적이 없었다. 병원은 의사, 간호사뿐만 아니라 여러 직종이 톱니처럼 맞물려 돌아가는 곳인데, 나와 같은 종류의 일하는 분들 외에 다른 직종의 직원들하고 대화를 나눈 경우가 없었다. 사실, 병원 청소 노동자 인터뷰가 어렵지 않을 것으로 생각했다. 같은 병원에 있고 매일 얼굴을 보는 사이니 말이다. 하지만 정작 인터뷰를 하려고 다가가면, 인터뷰의 '인'자만 들어도 바쁘다며 손사래를 치며 거부하시는 분들이 대부분이었다. 하루 일과가 바쁘기도 하고 개.. 더보기
월 간 「일 터」/[A-Z 다양한 노동이야기]

[A-Z 노동이야기] 오래 일하면 허리 휠까 무서워요 /2015.7

오래 일하면 허리 휠까 무서워요

- 은행 퇴직 후 병원에서 청소하는 여성 노동자, 김민숙(가명) 씨

 

 

장영우 선전위원

 

 

 

 

나는 약 350병상의 서울의 한 공공병원에서 일하는 내과 의사이다. 병원이란 공간에서 10여 년 넘게 일하고 있지만 청소노동자와 대화다운 대화를 한 적이 없었다. 병원은 의사, 간호사뿐만 아니라 여러 직종이 톱니처럼 맞물려 돌아가는 곳인데, 나와 같은 종류의 일하는 분들 외에 다른 직종의 직원들하고 대화를 나눈 경우가 없었다. 사실, 병원 청소 노동자 인터뷰가 어렵지 않을 것으로 생각했다. 같은 병원에 있고 매일 얼굴을 보는 사이니 말이다. 하지만 정작 인터뷰를 하려고 다가가면, 인터뷰의 '인'자만 들어도 바쁘다며 손사래를 치며 거부하시는 분들이 대부분이었다. 하루 일과가 바쁘기도 하고 개인적인 일을 얘기하는 게 불편하실 수도 있을 것 같았다. 여러 번의 거절. 쉽게 생각했던 섭외가 되지 않아 고민하던 중(어쩔 수 없이 병원 내에서 나 의 '지위'를 이용하여...) 평소 인사하고 지내던 청소 소장님을 찾아가 부탁을 했다. 소장님은 "말씀 잘하는 분을 보내겠다"며 김민숙씨를 소개해주었다.

 

"이런 일 할 수 있겠어요? 은행 퇴직 후 시작한 이 일"

 

"제가 원래는 은행에서 약 20년 정도 근무하고 명예퇴직했어요. 그리고 보험설계사 일을 잠시 했지요. 은행에서 명퇴했을 땐 퇴직금을 좀 받았지요. 퇴직금을 잘 관리했으면 여기서 이런 고생 안 해도 되지요. 근데 퇴직금을 빌려주고 못 받기도 했고 강원도에 땅도 좀 사서 퇴직금이 거의 안 남은 거죠. 퇴직금을 확 날린 건 아닌데, 점점 없어지다가 이젠 유동자금이 없어요. 아들 하나 딸 하나 있는데 딸은 회사 다니고 아들은 지금 호주에 가서 워킹홀리데이 하는데, 타일 만드는 일을 하고 있대요. 자기 생활비는 벌어서 쓰고 있어요. 아들, 딸은 자기 밥벌이를 하는데 정작 내 수중에 생활비가 없는 거예요. 그래서 고정수입을 얻을 수 있는 일을 찾아보다가 구청을 통해 이 병원에서 청소 아줌마를 구한다는 것을 알게 됐어요. 지난 6월 1일에 첫 출근 했으니깐 정말 얼마 안 된 거죠. 채용면접 볼 때 소장님이 내 이력 보고 이런 일 할 수 있겠느냐고 물어봤는데 남들도 다 하는데 못할 거 뭐 있느냐고 대답하니 바로 뽑아 주시더라고요. 중졸 이상, 60대 이하의 나이 제한이 있었는데 몇 년 더 나이 먹었으면 이 일도 못 할 뻔 했어요. 이 병원이 총 25명의 청소 아줌마들이 있는데 6개월 단위로 계약을 해요. 근데 이번에 16명을 뽑은 거죠. 내가 지원번호가 25번이더라고요. 이런 일도 요즘은 지원 많이 해요. 근데 막상 일 해보면 힘드니까 금방금방 그만둬요."

 

그러고 보니, 한 달 전 내 방을 청소하던 노동자 분 생각이 난다. 일하러 방에 들어오시면 간단한 인사 정도 나누던 차였는데, 갑자기 다른 분으로 교체되었었다. '그만두셨나 보다' 하고 막연히 생각했었는데, 알고 보니 병원 청소 일이 너무 힘들어서 딱 보름 일하고 그만두셨던 거였다. 그분은 그만둔 후 요양보호사로 일하고 계신다고 한다. 인터뷰 시도를 몇 번 해보면 대부분이 '일한 지 얼마 안 되어, 할 말이 없다'고 곤란해 하셨는데 이제야 그게 무슨 말인지 알 것 같았다.

 

5시 반, 무료노동 30분으로 시작해서 하루 10시간 노동

 

"우린 평일에는 아침 6시부터 오후 4시까지, 토요일은 오후 1시까지 일해요. 하루 10시간을 일하니까 근무시간은 긴 편이죠. 대부분 이 시간에 일하는데, 야간에도 청소할 구역이 생기니까 야간조 두 명이고요. 주말엔 사람들 출입이 적으니까 이때를 이용해서 복도 왁스 작업을 해요. 그래서 주말에도 일하는 조가 따로 있어요. 또 누가 휴가가거나 결원이 생겼을 때 일하는 사람도 있어요. 난 5시 30분에 출근해요. 그나마 근처에 사니까 걸어서 20분 정도 걸려 도착해요. 하지만 대부분 사람들은 버스 타고 출근해요. 이렇게 이른 시간에도 버스가 있나 봐요."

 

아무리 근처에 사신다지만 새벽 5시 30분까지, 그것도 하루 9~10시간씩 꼬박 일하고 다음 날 새벽에 또 나오려면 얼마나 피곤할까? 그것도 정시 출근 시간보다 30분이나 당겨서 말이다. 단 30분이지만 좀 더 자지 않고 나오시는 이유는 뭘까?

 

"아침에 진료 시작하기 전에 청소를 다 해놓아야 하는데 여섯시부터 출근하면 너무 바빠 요. 그래서 30분 일찍 출근하죠. 1층 외래 담당인데 외래 진료실이 10개가 넘잖아요. 우선 외래 진료실부터 청소해요. 쓰레기통 비우고 로비도 닦고 화장실 네 군데 청소, 창문, 창틀 청소, 외래대기실, 의자 청소 등등 생각보다 일이 많아요. 게다가 의료용 폐기물은 또 따로 분류해서 버려야 하잖아요. 귀찮지요. 제가 만보기를 차고 다녀요. 보통 2만5000보에서 3만 보가 찍혀요. 이렇게 많이 몸을 움직이니. 힘들죠. 근데 병동은 더 힘들더라고요. 잠시 거기 대타로 일해 봤는데 거긴 오물이며 세탁물이며 의료폐기물이 더 많잖아요."

 

1만 보는 약 4~5km 정도 된다고 한다. 이 노동자는 일하면서 10~15km 정도 움직이는 것이다.

 

몸은 힘들지만, 은행 다닐 때보다 맘은 편해

 

"점심은 도시락 싸 온 걸로 먹어요. 엊그젠 병원 직원식당에서 밥 먹었는데 맛있더라고요. 아침에 귀찮게 도시락 싸느니 앞으론 간편하게 병원식당에서 밥 먹어야겠어요. 점심 먹고 또 오후에도 청소일하고 퇴근하면 피곤해서 일찍 자게 돼요. 내가 지병은 없는데도 새벽에 손발이 저리고 아파서 자주 깨요. 손마디, 허리, 무릎 뭐 온몸이 아파요. 전에 은행에서 돈 세고 만지고 나르는 고된 일을 몇 달 한 적이 있어요. 그때도 아프고 저려 서 밤에 자다가 자주 깼거든요. 거의 퇴직을 앞두었을 때였는데 위에선 내가 나이가 많으니 인건비 절감 차원에서 내보내려고 나를 그런 일 시킨 거 같아요. 나름 잘 버티고 명예퇴직했죠. 대신에 여긴 몸은 힘들어도 맘은 편해요. 전에 보험설계사 일 할 때는 육체적으론 하나도 안 힘들어요. 근데 실적에 따라 월급을 받다 보니 실적이 적으면 월급이 거의 없어요. 또 상대방 만나서 밥도 사고 선물도 주면서 마음을 움직여서 계약을 따내는 게 알다시피 쉬운 일이 아니잖아요. 처음에는 가족 친구를 상대로 영업하다가 그게 다 떨어지면 좀 더 발을 넓혀서 계약을 따내야 하는데 이게 말처럼 쉽지가 않더라고요. 또 계약했던 사람들이 보험금 안 내면 계약 유지하려고 내 돈 박기도 했고요. 근데 여기는 각자 맡은 구역 청소하는 단순한 일이라 은행 다닐 때처럼 머리를 쓰지 않아도 되고, 보험 일처럼 사람 때문에 스트레스 안 받아도 돼요. 스트레스, 동료와 갈등 이런 건 없어요. 이런 건 장점이겠네요."

 

고된 노동, 겨우 최저임금

 

"근데 솔직히, 일하는 거에 비해 월급이 진짜 적어요. 제가 하루 10시간 일하잖아요. 근데 월급이 한 달에 120만 원 정도 되거든요. 거기다 4대 보험 다 떼니까 손에 쥐는 건 100만 원이 될 진 모르겠어요. 7월 7일 첫 월급 받으면 알 수 있겠죠. 지금 최저임금이 시간당 5580원이잖아요. 딱 최저임금으로 받는 거죠. 내년에 최저임금이 6150원으로 오른대요. 그래서 계약도 올해 말까지 6개월로 시급 5580원으로 계약한 거죠. 과거에는 병원에서 직접 고용을 했는데 지금은 다 외주를 주잖아요. 내가 일하는 곳도 외주하청업체인데 중간관리자가 월급을 낮출 수가 있으니 이렇게 낮은 거 같아요."

 

딱 최저임금 5580원. 병원뿐만 아니라 우리나라 곳곳에서 노동자들의 임금이 다 5580원에 걸려 있을 것이다. 최저임금을 올리는 세계적 추세에 맞추어 올해 최저임 금이 많이 오르면 좋겠다는 생각을 좀 더 절실히 느낄 수 있었다.

 

오래 일하면 허리 휠까 무서워

 

은행보다 마음은 편하지만, 고된 노동에 최저임금인 이 직장. 명예퇴직하고도 일을 해야 해서 시작했지만, 다들 힘들어서 쉽게 들고 나는 이 직장. 김민숙씨는 이 일을 얼마나 할 생각일까?

 

"하하. 여긴 진짜 금방 그만둬요. 면접만 보고 안 나오기도 하고 하루 일하고 그만두기도 하고. 오래 일한 사람들은 일년 정도 하더라고요. 근데 오래 일한 사람을 보니 허리가 휘었더라고요. 제가 보기엔 밀대 질을 너무 많이 해서 그런 거 같아요. 나도 저렇게 되는 거 아닌가 싶기도 하고. 하는 일이 어렵진 않아도요. 일단 6개월 계약했으니까 올해 말까진 일할 생각인데. 모르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