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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Z 노동이야기] 마트에는 ‘까대기 치는’ 그 사람이 있다/ 2015.6 마트에는 ‘까대기 치는’ 그 사람이 있다 대형 할인마트에서 일하는 권혜선 씨 선전위원 정하나 물류창고에서 L카로 물건을 실어와 신선가공쪽 매대에 물건을 진열하고 있는 권혜선 조합원(사진제공: 홈플러스 노동조합) “작은 애가 초등학교 3학년 올라간 해에 그때부터 시작했어요. 일 시작하기 전이야 큰 마트 장 보러 가면 ‘깨끗하고 좋네~’ 이렇게만 생각했죠. 그게 다 저절로 된 게 아니더라고요.” 마트에 가면 과일도 있고, 채소도 있고, 장난감도 있고, 그리고 무엇보다 사람이 있다. 홈플러스 합정점에서 일하는 권혜선 씨는 지난 13년 동안 마트에 물건을 사러 가기보다는 물건을 채우러 다녔다. ‘까대기’. 그녀가 마트에서 하는 일을 부르는 속칭이다. 화물차로 배달 온 제품들을 창고에서 실어와 매대에 보기 좋게,.. 더보기
월 간 「일 터」/[A-Z 다양한 노동이야기]

[A-Z 노동이야기] 마트에는 ‘까대기 치는’ 그 사람이 있다/ 2015.6

마트에는 ‘까대기 치는’ 그 사람이 있다

대형 할인마트에서 일하는 권혜선 씨

선전위원 정하나



물류창고에서 L카로 물건을 실어와 신선가공쪽 매대에 물건을 진열하고 있는 권혜선 조합원(사진제공: 홈플러스 노동조합)


“작은 애가 초등학교 3학년 올라간 해에 그때부터 시작했어요. 일 시작하기 전이야 큰 마트 장 보러 가면 ‘깨끗하고 좋네~’ 이렇게만 생각했죠. 그게 다 저절로 된 게 아니더라고요.”


마트에 가면 과일도 있고, 채소도 있고, 장난감도 있고, 그리고 무엇보다 사람이 있다. 홈플러스 합정점에서 일하는 권혜선 씨는 지난 13년 동안 마트에 물건을 사러 가기보다는 물건을 채우러 다녔다. ‘까대기’. 그녀가 마트에서 하는 일을 부르는 속칭이다. 화물차로 배달 온 제품들을 창고에서 실어와 매대에 보기 좋게, 사기 쉽게 진열하는 작업을 말한다. 대형마트에서 파는 많은 물건 중에서도 혜선 씨는 신선가공품, 즉 우유를 비롯해 각종 유제품, 햄과 반찬류 등 각종 냉장식품을 진열하는 일을 하고 있다.



깨끗한 매장, 절로 되는 게 아니다


만나자마자 사진을 한 장 보여줬다. 갓 지점에서 도착해 혜선 씨의 정리 손실을 기다리고 있는, 여러 물건이 물류창고에 쌓여 있는 모습이었다. 얼기설기, 플라스틱 팔레트 위에 각종 식품이 쌓여있었다. 포장김치 같은 상품도 신선가공 쪽에서 취급하는데, 그런 것들은 혹시나 떨어져서 터질까 봐 옆의 다른 제품들과 랩으로 칭칭 감아놓았다. 쌓은 높이가 성인 키보다 높다.


“오픈 시간 전까지 모든 물건을 체크해서 진열해야 해서 정말 바빠요. 아침에 출근해서 창고에 가면 이런 팔레트가 매일 아침 적게는 6개, 제일 많을 때는 8개가 꽉꽉 채워져서 저희 지점으로 배달이 와 있거든요. 낑낑대면서 랩 같은 거 다 벗겨내고 L카에 품목별로 실어서 매장까지 옮겨가는 거죠. 저희 매장은 아침 10시에 오픈인데, 8시에 출근해서 오픈하기 전까지 다 비우고 매대에 가져다 놔야 해요.

아, 저희 마트는 2교대인데요. 오전 팀은 8시에 출근해서 오후 4시 반까지 근무하고, 오후 출근 할 때는 오후 3시 반부터 12시까지예요. 신선가공 쪽은 전부 6명인데, 오전 조는 2명이 다 해요. 손님이 아무래도 오후에 더 많으니까 그렇게 인력배치를 한 건데, 매장 오픈 준비해야 하는 아침도 정말 정신이 없거든요. 물류가 우리 출근 시간 전에 배달 오기도 하지만, 전날 밤 10시에 한 번 더 오는데, 오후 근무 조에서 이걸 진열하고 갈 수가 없어요. 그래서 오전조가 출근해서 매장오픈 가능할 정도로 다 옮겨놔야 하니 엄청나게 바쁘지요. 예전에는 1시간 일찍 출근해서 커피 한 잔 마시고 바로 일 시작하고 그랬어요. 휴식시간이요? 요즘에는하루 30분 쉴 수 있게 보장은 되어 있는데, 물론 잘 챙겨서 쉬는 사람들도 있지만, 저희 신선가공 쪽 2명은 중간에 잠깐 화장실 다녀오는 것도 잘 못해요.”



진열도 경력자가 하면 다르다


혜선 씨는 마트 진열일을 처음 시작하던 때부터 지금까지 일하는 매장과 고용형태만 몇 번 바뀌었을 뿐 취급 품목은 계속 식품/신선가공 쪽이었다. 현재는 마포 쪽 대형마트에서 직고용 무기계약직으로 일하고 있다. 2012년 가을, 이 지역에 마트가 새로 생기면서 회사는 혜선 씨를 신선가공 쪽 ‘알바’에서 ‘담당’으로 계약을 변경해 주고 새 마트로 발령을 내었다. 나름의 승진이었다. 마트가 정식으로 입점오픈을 하기 전 매대를 설치하고, 같이 일할 팀을 짜는 등 하나하나 다 신경을 썼다. 굳이 말을 만들자면 그녀를 ‘개점공신’이라고 부를 수 있을 것이다.


“마트에 보면 파견이 많다고 그러잖아요. 저도 처음에는 파견이었어요. ○○햄 소속으로, 대형마트는 아니고 동네에 있는 큰 슈퍼마켓으로 파견되어 1년 정도 일을 했지요. 그러다가 일 잘한다면서 영등포에 마트 들어서는데 거기서 일해 보겠느냐고 하대요. 그때부터 대형마트 파견직으로 일하기 시작한 거죠. 나중에 ○○라면으로 옮겼는데 한 2년 정도 일하다 본사에서 라면 매출이 별로 안 좋다면서 전체 파견직 줄인다고 하기에 또 그만두었어요. 그때 완전히 일 그만두려고 했는데, 당시 마트 우리 담당 선임님(관리자)이 ‘여사님 그만두지 마세요. 알바로 쫌만 참고 계시면 신선가공 담당으로 올려드릴게.’ 라고 해서 그 약속 믿고 또 계속 일했어요. 그러다가 여기 새로 지점이 생기면서 이쪽으로 온 거에요.

여기 매장이 다른 데에 비해 크지는 않아도 유동인구가 많은 동네라 고객 수가 정말 많은 편이에요. 그래서 물류양도 많고, 매대도 수시로 빨리빨리 채워 넣어 줘야 해요. 게다가 저희는 ‘유통기한’도 체크해야 하지요. 마트 일이라는 게 힘들어서 가뜩이나 안 해 본 분들은 오래 버티기 힘든 일인데, 이 일은 더 그렇죠. 유통기한까지 있어 매대 상황을 이중삼중으로 확인해야 하니 신경이 더 쓰이지요.

물건 채워 넣는 게 단순해 보이지만 이것도 다 노하우가 있어요. 배치하는 안목도 있어야 하고 시야도 넓어야 일을 ‘잘’ 할 수 있어요. 처음 들어오신 분들은 매장확인 할 때 백이면 백, 우유 빈 곳, 치즈 비어서 빵꾸난 곳 딱 그거 하나만 보고 와서 빈 제품 그거 딱 하나만 깔고 오시죠. 근데 경력이 쌓이면 다르죠. 이를테면, 한번 딱 둘러볼 때 한 매대에 있는 제품 전부가 한눈에 들어와요. 어떤 물건이 비었고, 얼마큼 어떻게 추가 진열해야 하는지를 한 번에 하는 거죠. 아침에 엄청나게 바쁘다고 그랬잖아요. 그때 이렇게 시야가 넓은 사람이 진열을 맡으면 오픈준비가 훨씬 원활하죠.

그리고 물건이 잘 팔리게 하려면 솔직히 진열이 정말 중요하거든요. 매대에서 고객님들 눈높이 라인을 ‘골든라인’이라고 하는데 여기를 중심으로 물건을 어떻게 진열할지 짜임새 있게 잘 판단해야겠죠. 잘 나가는 물건이나 유통기한 짧은 거 위주로 돌아가면서 잘 배치해 주는 것도 노하우가 쌓이지 않으면 잘할 수 없어요.”




사진 : 아침이면 배달되어 있는 물류들, 파렛트 위에 얼기설기, 랩으로 감겨 쌓여 있다. (사진제공: 홈플러스 노동조합)

마트 노동 그리고 직업병


오랫동안 물건을 나르고 위에서 아래로 옮기는 노동을 해온 혜선 씨. 특히나 아침부터 물류양이 많은 신선가공 식품을 주로 취급해, 손님이 없는 오전 시간에도 늘 시간에 쫓기듯 일해 온 그녀의 건강 상태가 걱정됐다.


“지금 매장에서 일하면서 더 힘들어 진 거 같기도 해요. 예전에 파견일 때는 다른 제품 진열해야 할 때도 종종 있긴 했지만 일단 자기회사 물건만 잘 깔면 되거든요. 지금은 다른 제품도 다 진열하고 관리해야 하는 ‘담당’이 되기도 했고, 직영은 다른 곳보다 직영물류센터 통해서 오는 물건들이 더 많아서 저희가 직접 깔아야 하는 제품양이 훨씬 많거든요. 예를 들면, 영등포점 같은 경우는 우유 업체의 물류배달해 주는 소장들이 진열까지 해주고 그쪽 파견 직원들이 나중에 없는 물건 채워 넣는 걸 다 해줬어요. 그런데 지금 여기는 우유 업체 8개 사의 제품 전부가 본사를 통해 한꺼번에 오고 그걸 우리가 전부 매장에 깔아야 하니 어마어마한 거죠. 사실 인력이 문제인데, 회사에서는 절대 사람 더 보충해 주진 않을 거 같아요.

다른 쪽은 아침 배달량이 많지 않고 손님도 오후에나 몰리니 한 10시 반쯤이면 쉴 틈이 나거든요. 저희는 정말 전화 한 통, 문자한 통이 와도 받을 수도 없고 받지도 않아요. 게다가 우유 1리터짜리 같은 건 너무 무겁잖아요. 오전 중에만 창고와 매장을 L카로 몇 번은 왔다 갔다 하는데, 점심시간이면 진이 쭉 빠져서 밥 먹는 것도 귀찮고 힘도 없고 그래요. 제가 팔이 후들후들 거려 반찬을 그냥 숟가락으로 떠먹고 그런다니까요. 오후 출근일 때가 좀 낫기는 하지만 그래도 12시 퇴근이잖아요? 집에 들어가면 새벽 1시, 씻고 잠자리에 누우면 2시죠. 어떨 때는 들어가자마자 이불에 쓰러져요. 애들이 ‘엄마 안 씻어? 그러고 그냥 잘 거예요?’ 이러는데 ‘엄마 잠깐만 누워 있을게.’ 그렇게 대답하고 아침 녘 깨서 화장 지우고 다시 잔적도 많아요. 아휴 정말 그런 거 생각하면 대한민국 마트 제~발 10시까지만 했으면 좋겠네요.

저희는 또 냉장창고를 들락날락해야 하니 1년 내내 냉방병을 달고 살죠. 원래 열이 많은 사람이라 더위도 잘 참았는데, 요즘에는 마트에서 꼭 입어야 하는 반소매 유니폼이 입는 게 싫을 정도네요. 감기에 안 걸려도 평소 기침도 많이 해요. 마른기침 같은 건데 지금처럼 한번 하면 길게 하더라고요.혜선 씨는 인터뷰 중간 서너 차례 기침을 했다. 한번 하면 1분 정도 지속되어 잠시 인터뷰를 끊고 물을 가져다 드리기도 했다.

사진 설명 : 아침이면 배달되어 있는 물류들, 파렛트 위에 얼기설기, 랩으로 감겨 쌓여 있다. (사진제공: 홈플러스 노동조합)

 

사람 손이 닿지 않으면


판매가격이 재래시장보다 높지만 그래도 사람들은 대형마트 가는 걸 선호한다. 대형 마트의 잘 정리된 물건들, 깨끗하고 쾌적한 환경 때문일 것이다. 환한 조명 아래 잘 포장되어 반듯하게 놓여있는 물건들은 어느 누군가의 손을 타 비로소 바로 내가 눈에 익은 그 자리에 내가 사기 좋게 놓여 있게 된다. 혜선 씨 말마따나 “사람 손이 닿지 않으면” 그렇게 될 리가 없는 것이다. 이제까지 마트에서 내가 사야 할 ‘물건’ 생각만 하지 않았는지, 내가 그 물건을 사서 집에 가져갈 수 있게 해주는, 노동하고 있는 그 ‘사람’을 주목한 적 있는지, 다시 한 번 돌아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