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A-Z 노동이야기] 도서관 선생님을 꿈꾸는 서점 직원 / 2014.9 도서관 선생님을 꿈꾸는 서점 직원 최민 선전위원장 대형 서점에서 일했다는 손00 씨를 소개받았을 때는 당연히 ‘매장 직원’일 줄 알았다. 책을 사는 일 외에 대형 서점과 관계할 일이 없는 내 눈에는 매장 직원들만 보였으니까. 하지만 손00 씨가 한 대형 서점의 직원으로 1년 남짓했던 일은 ‘검수팀’ 업무였다. 오히려 매장 직원들은 모두 이 대형 서점 직원이 아니라고 한다. 제조업 공장에 하청업체가 들어와 있는 것처럼, 백화점 안에 있는 각종 매장이 해당 업체에 의해 운영되는 것처럼, 매장은 2개 소사장이 나누어 운영하고 있다. 매장 직원들은 이 소사장에게 고용돼 있다. “일반서적과 전문서적 크게 두 부문으로 나뉘어 각각 소사장이 있어요. 매장 직원들은 이 소사장이 거느린 직원이죠. 물론 거기에도 정직원,.. 더보기
월 간 「일 터」/[A-Z 다양한 노동이야기]

[A-Z 노동이야기] 도서관 선생님을 꿈꾸는 서점 직원 / 2014.9

도서관 선생님을 꿈꾸는 서점 직원



최민 선전위원장



대형 서점에서 일했다는 손00 씨를 소개받았을 때는 당연히 ‘매장 직원’일 줄 알았다. 책을 사는 일 외에 대형 서점과 관계할 일이 없는 내 눈에는 매장 직원들만 보였으니까. 하지만 손00 씨가 한 대형 서점의 직원으로 1년 남짓했던 일은 ‘검수팀’ 업무였다. 

오히려 매장 직원들은 모두 이 대형 서점 직원이 아니라고 한다. 제조업 공장에 하청업체가 들어와 있는 것처럼, 백화점 안에 있는 각종 매장이 해당 업체에 의해 운영되는 것처럼, 매장은 2개 소사장이 나누어 운영하고 있다. 매장 직원들은 이 소사장에게 고용돼 있다. 


“일반서적과 전문서적 크게 두 부문으로 나뉘어 각각 소사장이 있어요. 매장 직원들은 이 소사장이 거느린 직원이죠. 물론 거기에도 정직원, 계약직 직원, 알바생이 있고요. 서울에도 이 서점 매장이 여러 군데인데 모두 각각 이렇게 운영되고 있어요.”



매장 뒤에도 수많은 서점 직원이 있어요.


대신 대형 서점의 역할은 매장 전반적인 관리와 영업이다. 매장의 소사장이 팔 책을 대형 서점의 이름으로 들여온다. 


“대형서점의 직원으로는 매장을 전체적으로 관리하기도 하고 기획도 하는 영업지원부가 있어요. 홈페이지 관리하는 분들이 3명 따로 있었는데, 홈페이지 관리에는 책 스캔하고 초록, 목차를 쳐서 홈페이지에 올릴 내용 만드는 일이 모두 포함되죠. 가끔 출판사에서 파일을 같이 보내주기도 하지만, 대부분은 직접 쳐서 우리 홈페이지용으로 편집해요. 


신간팀은 하루에 70~80종 정도 쏟아지는 신간 정보를 서점 자체의 데이터베이스로 만드는 일을 해요. 이 정보에는 일반 고객들이 보는 정보뿐 아니라 매입율(정가 대비 서점이 출판사로부터 구매하는 금액), 출판사 정보까지 포함된 것이죠. 이 정보를 모두 만들어 두면 이걸 보고 매장에서 주문을 해요. 매장 각 파트별로 주문서를 입력하면 이를 출판사에 보내서 책이 서점으로 배달오는 거죠. 제가 일한 검수팀의 기본적인 업무는 여기서 시작되는데, 책이 도착하면 매장에서 애초 발행했던 주문서 내용과 도착한 책이 맞는지 확인하고 매장으로 올려보내는 일이에요.


차이가 뭐가 그렇게 날까 싶은데, 이게 그렇지가 않아요. 같은 책을 50권 주문하면 48권 들어올 때도 있고, 50권 중에 한 두어 권 예전 판이 끼어 있거나 심지어 다른 책이 끼어 있는 경우도 있어요. 하나라도 안 맞으면 매장에 확인 전화하고, 필요하면 출판사에 확인 전화하고 어느 쪽 실수인지 확인해서 다시 맞추는 일을 하는 거죠. 이게 딱 맞아야만 매장으로 책을 들여놓을 수가 있어요.”



갑질하는 대형 서점, 직원 월급은…


하루에 열 통 이상 여기저기 전화를 돌리다 보면 스트레스가 이만저만 아니었지만, 그래도 그녀는 이런 전화에서는 ‘갑’의 역할이었다. 의외로 이 ‘검수팀’에서 출판사를 상대로 거래하는 역할까지 하고 있었다. 


“일단 매장에 있는 직원들은, 이 대형서점 직원이 아니잖아요. 그런데 저는 이 서점 직원이고. 그리고 제가 전화해서 매장 직원이 주문서를 맞게 작성해서 보낸 것인지, 아니면 출판사에서 책을 잘못 보낸 것인지 확인하는 거니까요. 출판사랑 중간 연결하는 전화를 직접 하기도 해요. 예를 들어, 지난 겨울에 ‘겨울왕국’이 갑자기 유행하면서 책이 여러 가지가 갑자기 나왔잖아요. 그림책, 동화책 등등. 그러면 영업지원부에서는 ‘겨울왕국은 매입률은 어느 정도로 해야 하고 현금 거래로 받아라’는 정도의 큰 가이드라인을 줘요. 그러면 주로 매입률을 보고 각 출판사에 우리 이 책 받겠다, 혹은 안 받겠다 전화를 하죠. 그러면 거절당한 출판사에서는 다른 출판사에서 받는지 물어보고, 자기들 매입률을 낮춰 주겠다고 하기도 하죠. 그러면 다시 매장에 연락해서 매입률 바뀌었으니 원래 했던 주문을 취소하고 주문장을 바꿔 내라고 하는 거죠. 그리고는 원래 주문하려던 출판사에 또 전화를 해서, ‘다른 출판사와 낮은 매입률로 거래하겠다’ 얘기하는 거죠. 매일 이렇게 말을 바꿔야 한다는 것 자체가 스트레스더라구요.”


일반적으로 출판사들은 정가의 60~70% 정도 가격에 책을 서점에 공급해야 하지만, 대형 서점들에는 40~50% 가격에 책을 보내기도 한다. 몇 개 대형 서점이 전체 매출의 절반을 넘기 때문에, 이들 대형 서점에서 책이 좋은 자리에 진열되고 팔리는 것이 너무 중요하기 때문이다. 작은 서점은 당연히 이런 걸 못 한다. 작은 서점은 출판사와의 관계에서 을이다. 


“저희 이모부께서 대학로에서 ‘풀무질’이라고 작은 인문사회과학서점을 운영하고 계시거든요. 풀무질 거기에선 이렇게 못 하죠. 출판사에서 80%에 보낸다 하면 ‘네’하고 받는 거죠 뭐. 대형 서점에서는 이렇게 싸게 책을 들여오니 할인 행사도 할 수 있는 거예요. 저는 서점에서 일한 뒤부터는 서점이나 온라인 서점, 쇼핑몰 같은 데서 하는 반값 도서 할인전 봐도 놀라지도 않아요. 그렇게 할인해도 남겠네 하는 거죠.”


반값 할인을 해도 남는 장사라는 대형 서점 직원으로 손 씨가 실제 손에 쥐는 돈은 한 달에 120만 원이 채 되지 않았다. 추석처럼 명절 있는 달에는 상여금이 100% 나왔다고 하니 1년 전체 평균 내면 한 달 130만 원 정도 되었을 거라고 했다.



일만 한 게 억울해서 사표 던졌죠


지금은 서점일을 그만두고 약국에서 일하고 있는 손00 씨. 서점을 그만둔 건 너무 못 논 것이 억울해서, 제대로 좀 쉬고 싶어서였다고 한다. 아르바이트와 학업을 병행했던 대학생활, 졸업 후엔 조교로 일하다가 대형 서점에 입사해서 1년 넘게 일하기까지 몇 년 동안 그녀는 여행 한 번을 가본 적 없다.


  출처 : www.flickr.com


“2년 내내 매일 9시간씩 아르바이트를 하며 학교를 다녔는데... 지금 생각하면 내가 왜 그렇게까지 했는지 모르겠어요. 집이 어려운 것도 아닌데, 일을 안 하면 불안했어요. 서점일 시작하고 나서요? 연월차도 있다고는 하고 아프면 쉴 수 있다고 했어요. 그런데 직원 중 한 명이 병원에 입원 한 적 있었는데, 입원해 있는 동안 하루에도 몇 번씩 회사에서 전화를 했대요. 오늘은 무슨 검사 했냐고. 심지어 지금 무슨 주사 맞고 있냐고 묻기도 했대요. 그런 일 당했다는 얘기 들으면 누가 휴가를 쓰고 싶겠어요. 그러니 어느 날 갑자기 억울하더라고요. 쉬어야겠다는 생각이 들고 여행도 가고 싶고. 그래서 사표 쓰고 나와버렸죠.”


사표까지 쓰고 손00 씨가 다녀온 휴가는 제주도 2박 3일이 전부. 막상 가려고 보니 같이 갈 친구들과 시간 맞추기가 어려웠다며 쑥스럽게 웃는다. 그렇게 몇 일 쉬고 바로 다시 일을 시작했다. 지금은 직원 5명이 일하는 약국에서 처방전을 입력하는 일을 하고 있다. 어떻게 그렇게 일을 빨리 구했냐고 묻자, ‘알바 천국’이라고 답한다. 놀지 말고 알바나 하자고 급히 구한 일인데, 일하는 게 마음에 들었는지 한 달 만에 정직원 하자고 해서 근로계약을 다시 했다니 잘 됐다.   



손00 씨가 정말 하고 싶은 일은


하지만 손00 씨가 정말 하고 싶은 일은 따로 있다. 


“근처 고등학교 도서관 사서 선생님이 이모부가 하는 서점을 통해서 매 학기 책을 사시거든요. 일부는 이모부가 아예 책을 추천하기도 하고요. 도서관 책들 보면 청구 기호 매겨져 있고, 라벨도 다 붙어 있잖아요. 이모부가 책을 보낼 때, 그 책들에 라벨을 다 매기고, 그 사서 선생님네 학교 도서관 프로그램을 이용해서 표지 스캔하고 목차, 색인, 페이지 수를 모두 등록해드렸어요. 


사실 그 전에 있던 그 도서관 분류가 엉망이었거든요. 역사면 900번 한 가지로 붙여 놓은 거예요. 생각해보면 한국사, 서양사, 일본사 등 얼마나 많겠어요? 제가 책 보내면서 분류를 제대로 해 준거죠. 색인도 열심히 만들었어요. 예를 들어 작가 ‘베르나르 베르베르’면 애들이 이름을 다 기억 못 할 수도 있잖아요. ‘어? 베르 뭐였는데?’ 할 수도 있잖아요. 그러니까 ‘베르’만 쳐도 나오게. 저자 색인, 제목 색인 다 열심히 만들어줬죠. 


그러면서 보니까 이 일이 너무 재미있더라고요. 예전에 다른 중학교 도서관에서 일해본 적 있는데 아이들하고 있는 것도 좋고요. 학교 도서관에서 일해보고 싶어요. 저는 지금 준(准)사서거든요. 4년제를 졸업하면 2급 정사서 자격이 나오는데, 정사서 자격도 따려고 해요.”



문헌정보학과가 옛날 문헌 보는 과인 줄 알고 들어갔지만, 들어가서 책 분류하고 라벨 붙이는 게 재미있었다며 웃는 이 밝은 청년이 하고 싶던 일, 재미있는 일을 할 기회를 얻기를 바란다. 그리고 어떤 일을 하더라도 이제는 좀 더 긴 휴가도 마음껏 다녀올 수 있는 세상이 되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