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월_과로사통신] 과로자살, 개인의 취약성이 아니라 노동조건의 문제로

과로자살, 개인의 취약성이 아니라 노동조건의 문제로

 

김다연 상임활동가

 

낮은 과로자살 산재 신청률, 과소보고 된 업무관련 자살

 

2018년 과로자살 산업재해(이하 산재’) 신청 건수는 95건으로, ‘직장 및 업무상의 문제로 자살한 이들 487명 중 19.51%에 불과했다. 2019년도에는 자살한 598명 중 72명만이(12%)신청했다. 그나마 공식적으로 보고되는 과로자살 건수도 실수치를 반영하기 어렵다. 이유는 경찰청에서 전체 자살 건을 자살 동기(원인)별로 분류하는 방식에 있다. 경찰청은 정신적정신과적 문제와 여타 다른 자살 원인들을 각자 독립적인 원인으로 설정하고, 이 중 한 가지를 선택하여 분류한다. 2014~2019년까지 여러 동기 중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한 건 정신적정신과적 문제였다. 하지만 설사 정신적정신과적 문제가 자살을 야기하는 직접적 원인이라 할지라도, 이는 동시에 다른 근본적인 원인으로 인해 나타난 결과일 수 있다. 혹은 다른 원인들과 혼재했을 수 있다. 하지만 그러한 복잡한 면면들은 고려되지 않는다. 결국 과로자살을 포함한 여러 자살 사건들이 단순한 정신적/정신과적 문제로 묻히는 경우들이 발생한다. 과로자살 현황이 온전히 집계되지 않고, 그나마 과로자살이라는 제 이름을 입고도 산재를 통해 공식적으로 드러나는 경우가 매우 적은 현실. 정신적인 고통을 유발하는 노동현장의 조건들이 제대로 조명되지 않고, 많은 자살이 개인과 그 가족의 비극으로만 남고 있다.

그럼에도, 고무적인 변화도 있었다. 업무상 정신질환이나 자살에 관한 산재승인 기준이나 법원의 판결은 노동자의 자살이 그 개인의 취약성이 아니라 노동조건을 봐야 할 문제라는 점을 보다 인정하는 쪽으로 개선되어왔다.

 

과로자살 산재승인율의 증가

기본적으로 한국의 산재보험법에서는 자살을 스스로 고의적으로자해를 하여 사망한 것으로 보고 업무상 재해로 보지 않는다. 기본적으로 자살의 원인은 개인에 있다고 보는 것이다. 다만 업무가 정신질환을 포함한 정상적인 인식능력이 뚜렷하게 저하된 상태혹은 정신적 이상 상태를 유발했고, 그 이상 상태에서 비자발적으로자살로 내몰린 경우는 업무상 재해로 본다. 자살 그 자체가 아니라 업무로 유발된 정신 이상 상태가 있었는지에 방점을 찍는다. 산재보험법 대통령령에서는 후자에 해당하는 3가지 사유를 명시하고 있다.

(1) 업무상의 사유로 발생한 정신질환으로 치료를 받았거나 받고 있는 사람이 정신적 이상 상태에서 자해행위를 한 경우
(2) 업무상의 재해로 요양 중인 사람이 그 업무상의 재해로 인한 정신적 이상 상태에서 자해행위를 한 경우
(3) 그 밖에 업무상의 사유로 인한 정신적 이상 상태에서 자해행위를 하였다는 상당인과관계가 인정되는 경우

[1] 산재보험법 시행령 제36(자해행위에 따른 업무상의 재해의 인정기준)/2020.01.07. 개정안 기준

 

이 때문에, 일반 질병의 경우 산재승인을 받으려면 그 질병이 업무와 관련이 있다는 것만 입증하면 되지만 과로 자살의 경우는 이중 증명의 부담이 있다. 자살하는 당시 정신적 이상 상태였고 그 이상 상태가 업무와 관련성이 있다는 것 모두를 밝혀야 하기 때문이다.

 

다행인 점은, 법원의 판정과 근로복지공단의 <정신질병 업무 관련성 조사 지침>모두 과로자살의 산재승인 가능범위를 확대해왔다는 것이다. 과거에는 정신적 이상 상태를 의학적과학적으로 명확하게 정신질환으로 판단되는 경우에 한정했다. 또 업무 때문에 발생한 정신질환과 자살의 인과성을 소극적으로 해석하거나, 당사자가 겪었던 정신질환과 자살이 업무와 관련이 있다고 해도 비슷한 업무를 하는 사회평균인에 비해 그 조건이 더 극심하지 않았다면 자살은 환경이 아니라 개인의 특이성에 기인한다고 봤다. 그러나 근래 법원은 개인의 내성적인 성격(현재까지도 일명 정신적 취약성으로 간주되는)이나 기존에 보유하고 있던 정신질환 유발 소인, 혹은 업무 외 다른 스트레스 요인이 있었다고 할지라도 업무가 자체가 정신질환을 발생시켰거나 혹은 악화시켰고 그로 인해 자살을 했다면 산재로 인정해야 한다는 판결을 내리는 추세다. 근로복지공단의 <정신질병 업무 관련성 조사 지침> 역시 몇 차례 개정되면서, ‘정신적 이상 상태를 보다 폭넓게 해석하는 방향으로 개선되어왔다.

 

3차 개정 정신질병 업무관련성 조사 지침(2016년도 개정)에서는 자살의 업무관련성 조사 시 정신병적 이상 상태확인을 요구하고 있어, ‘정신적 이상 상태를 정신질환을 보유한 상태로 협소하게 규정한다. 하지만 제4차 개정지침(2019년 개정)은 정신질환에 국한되지 않는 이상 상태, 정상적인 인식능력이 뚜렷하게 저하된 상태로 완화했다. 또한 제4차 개정 조사지침은 업무와 재해발생 사이의 인과관계를 의학적자연과학적으로 한 명백한 증명이 아니더라도 사회규범적 관점에서 상당인과관계의 추정으로 증명할 수 있고, 망인의 내성적인 성격이나 자살 직전 정신병적 증상(환각, 망상, 와해된 언행 등)이 없었다는 사실도 그 인과관계를 증명하는데 영향을 주지 않는다고 판시한 판결(대법원 2017. 5. 31.선고 201658840)을 참고사례로 싣고 있다. 이는 지침이 지향하는 방향성을 보여준다.

 

이러한 변화들은 산재 승인율에도 영향을 미쳤다.


2015년도 2016년도 2017년도 2018년도 2019년도 2020년도
신청() 59 58 77 95 72 87
승인() 22 20 44 76 47 61
승인율(%) 37.3 34.5 57.1 80 65.3 70.1

[2] 2015-2020 과로 자살 산재 현황(출처 : 근로복지공단)

 

물론 산재 신청률 자체가 매우 낮다. 게다가 자살이 산재일 수 있다는 인식 자체가 보편적이지 않은 문화에서도 산재를 신청한다는 건, 근거가 명확해서 승인 확률이 높다고 판단하는 경우가 주를 이룰 것이다. 그러니 폭넓은 범위의 다양한 사례들을 포함한 시기의 승인율은 또 다를 수 있겠다. 그래도 2015년과 2020년을 비교할 시 2배 가까이 증가한 승인율은, 개인의 성격이나 유전적 특성보다 그가 처해 있었던 노동조건을 중요하게 고려해야 한다는 쪽으로 변화한 질병판정위원회 내부의 가치관과 법원의 판결 추세, 산재에 대한 사회적 태도의 변화 등이 반영된 결과라 볼 수 있다.

 

여기서 더 나아가, 산재보험법 시행령 제36(1) 중 세 번째 기준인 정신적 이상 상태에서 자해행위를 하였다는 것이 의학적으로 인정되는 경우(20194차 개정지침)조항이 정신적 이상 상태에서 자해행위를 하였다는 상당인과관계가 인정되는 경우로 변경되었고, 이는 올해 1월 제4차 개정지침에 추가로 반영되었다. 여기서 상당인과관계의 인정이란 일반적인 경험과 지식에 비추어 그러한 사고가 있으면 그러한 재해가 발생할 것이라고 인정되는 범위에서 인과관계를 인정해야 한다는 것을 말하며, 반드시 의학적과학적으로 명백하게 입증되어야 하는 것은 아니라는 뜻이다. 물론 그 인정되는 범위의 크기는 논쟁 지점이다. 그렇더라도 의학적 인정이라는 말이 빠졌다는 건 나름 큰 의미를 가진다. 바뀐 지침을 적극적으로 해석하면, 정신질환으로 치료를 받았던 이력이 없고 유서도 남기지 않은 경우나 급작스러운 환경변화로 단기간 내 큰 충격을 받아 자살한 경우와 같이 정신적 이상 상태를 의학에 의거해 입증하기 어려웠던 사례라도, 노동환경이 큰 정신적 고통을 유발할만 했다면 자살과 업무 사이 상당인과관계가 있다고 보고 산재를 승인할 수 있는 가능성이 열린 것이다.

 

과로자살, 정신적 이상상태 매개 없이 산재 승인 받을 수 있어야

 

정신적 이상 상태입증 요건이 이렇게 변화왔음에도 불구하고, ‘정신적 이상상태를 과로자살의 산재승인 요건으로 두는 법 제도에는 여전히 비판 지점이 있다. 이미 기존의 여러 연구들은 자살이 이미 정신질환을 전제한다거나, 또는 자살은 본래 원천적으로 고의성을 부정할 수 없는 현상이고(위에 언급했듯 정신질환을 매개하지 않은 자살은 고의성이 있다고 판단해 산재인정을 하지 않는다) 또 정신질환 발병 없이도 자살로 이어지는 경우들이 존재하는 현실을 간과하고 있다는 등의 다양한 의견들을 내놓아왔다. 어떤 근거가 더 합당한지는 논의가 필요하지만, 중요한 것은 노동자의 과로자살에서 정확히 지목해야 할 것은 정신질환이나 정신적 이상상태 여부가 아닌, 그 노동자가 얼마나, 어떤 식으로, 어떤 대우 속에서 일을 했는가를 봐야한다는 점이다. 법 제도 역시 이러한 현실을 반영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