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월_특집2] 여성노동자 재생산권 침해와 인정투쟁의 역사

여성노동자 재생산권 침해와 인정투쟁의 역사

 

유청희 상임활동가

 

2020, 제주의료원 간호사들의 2세들이 앓고 있는 선천성 심장 질환을 대법원에서 산업재해로 인정했다. 근로복지공단의 산업재해 불승인 이후 소송으로 승인 받기까지 걸린 시간이 무려 10년이다. 대법원은 산재보험법의 해석상 모체와 태아는 단일체로 취급한다는 점을 분명히 했고, “태아는 모체의 일부로 모()와 함께 근로현장에 있기 때문에 언제라도 사고와 위험에 노출될 수 있다고 판단해, 여성 노동자들이 업무로 입은 재해를 2세 질환의 원인으로 인정했다. 여성 노동자의 안전하고 건강하게 일할 권리가 무엇보다 중요하다는 점이 확인된 판결이다. 이 대법원 판결로 2세 산재가 산업재해보상법 적용 대상임이 확인되었다. 이 판결 이후, 현재는 개정법 시행 이전에 발생한 2세 질환에 대한 산재 소급 적용 여부나 보험 급여 지급 범위 등 많은 쟁점들을 두고 법 개정 논의가 진행중이다.

 

일반적으로 재생산 권리란 차별, 폭력 없이 원하는 시기에 임신을, 또 자녀의 수와 자녀를 가질 시기를 결정할 수 있는 권리를 말한다. 국제적으로 이 개념이 통용되고 있고, 최근 한국에서는 낙태죄 폐지와 함께 성·재생산 건강 및 권리(Sexual and Reproductive Health and Rights, SRHR)가 활발히 논의되고 정리되었다. 성적권리와 재생산정의를 위한 센터 셰어에서 제시한 성·재생산권리 보장 기본법()에 따르면, 일터에서의 성·재생산권리의 보장(46)에서 모든 근로자에 대한 성적 권리와 재생산 권리가 보장될 것, 그리고 성적 건강과 재생산 건강을 침해받지 않을 것을 규정하고 있다.

 

근로기준법에서도 여성 노동자의 재생산 권리를 보장하기 위해 임신한 여성에게 야간 노동을 금지하고, 노동자가 유산할 경우 유산 휴가를 제공하도록 하고 있다. 임신 중 특정 시기에는 근로시간 단축을 허용할 수 있게 한다. 또 노동자가 청구하면 생리휴가를 부여하도록 하고 있다. 하지만 업무로 인해 재생산권이 침해되고, 건강상 문제가 발생하더라도 개인의 문제로 취급되어 드러내지 못했다. 또 드러내더라도 그 문제가 업무상 상관관계가 있음을 인정 받기 어려웠던 오랜 역사가 있다.

 

화학약품 때문에 무월경, 엘지전자 노동자들

 

1995년 경남 양산의 엘지전자부품() 여성 노동자 전체 20명 중 18명이 무월경 진단을 받았다. 노동자들은 전자제품 택트(TACT) 스위치를 조립하는 곳에서 일을 했고, 이 조립 과정에서 솔벤트 5200을 사용해 불순물을 제거했다. 노동부는 즉각 역학조사에 들어갔는데, 솔벤트 5200에 쓰인 2-브로모프로판이라는 물질이 무월경 증상의 원인인 것으로 밝혀졌다. 그런 유해 화학물질을 아무런 보호장치도 없이 노동자들이 사용할 수 있었던 건, 당시 규제하고 있던 697종의 유해 화학물질에 2-브로모프로판은 포함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같은 솔벤트 5200을 사용했지만, 취급 시 필요한 철저한 환기, 방독면과 보안경 같은 보호장치를 해 두었던 일본에서는 동일한 문제가 발생하지 않았다. 휴일에도 환기장치를 가동했어야 했지만 한국에서는 그런 수칙을 지키지 않는 등 관리에 상당한 차이가 있었던 것이 밝혀졌다.

여성노동자들은 불임 판정을 받았고, 남성 노동자들 또한 무정자증 판정을 받는 등 피해가 심각했다. 노동부 역학조사 이후 산업안전보건연구원은 해당 피해 노동자들의 질병을 직업병으로 인정했다.

 

유해 노동환경이 원인이 된 제주의료원 노동자의 유산

 

앞서 언급한 제주의료원 산업재해(이하 산재) 승인건에서는, 여성이 임신 중 업무상 유해요소에 노출되었다가 출산 이후 여성과 2세가 분리된 상황에서 2세의 질환을 모체의 산업재해로 인정할 수 있는지가 쟁점이었으나 결국 산재 승인을 받았다. 그렇다면 유산은 어떨까. 노동자 당사자에게 일어난 일이기 때문에 비교적 명확해 보이는데, 실상은 어떨까?

 

2020년 대법원에서 2세 질환을 산업재해로 인정받은 제주도의료원 노동자들의 동료들 중 같은 시기 유산을 겪은 이들이 있었다. 2009년에서 2010년 사이 제주의료원 간호사 노동자들은 불규칙한 교대 근무, 타 병원 대비 2~3배가 넘는 1인당 환자 수, 약제 조제 시 화학물질 노출 등으로 유산하거나 선천성 심장 질환을 겪는 아이를 출산했다. 이때 유산을 겪은 여성 노동자들은 산재 승인을 받았다. 하지만 이 건 전후로 국내에서 유산으로 산재신청 및 승인된 경우는 극소수로, 2010년도-2019년도 사이 모성보호 관련으로 승인된 산재는 7(유산 6, 불임 1)에 불과하다.

 

반도체 노동자 산재, 태아 산재로까지

 

반올림은 지난 520<반도체 노동자의 2세 직업병 피해자 3명 집단 산재신청 기자회견>을 열고, 삼성반도체 노동자 3명의 2세가 입은 재해에 대한 산재를 신청했다. 제주의료원 이후, 한국의 두 번째 태아 산재 신청 사례였다. 이날 산재보상 신청에 나선 세 여성 노동자들은 1990년대 초중반에 삼성 반도체에 입사해 10년 가까이, 혹은 10년 이상 일 했고 재직 기간 중 임신을 했다는 공통점이 있다.

 

반도체 공정에서 이들은 지속적으로 유독물질을 취급했고, 이 중 한 명은 생식독성 물질을 포함한 유해화학물질에 노출되기도 했다. 이들이 출산한 2세 중 한 명은 선천성 거대결장증으로 태어나자마자 수술을 받았다. 다른 두 명의 2세들은 공통적으로 신장을 한쪽만 가지고 태어났다. 이들은 이 외에도 여러 가지 질환을 겪으며 지속적으로 치료를 받으며 살아가고 있다.

 

근로복지공단은 반올림의 산재 신청 건을 검토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제주의료원 간호사 2세들의 선천성 심장 질환에 대한 산재 승인 대법원 판결 이후 법 개정이 아직 이루어지지 않았고, 또 논의 중인 개정법안에서 소급 적용을 포함할 것인지도 쟁점으로 남아있는 상황이다.

대법원 판결 이후 산재보상보험법 개정 논의가 이루어지는 가운데, 2세 질환에 대해 요양급여 외에 휴업급여, 유족급여, 부모돌봄 휴업급여 등을 포함할지 여부와, 법 시행 전 소급 적용이 이루어질 것인지 귀추가 주목된다.

 

재생산권은 노동권이다

 

월경은 여성의 재생산권과 연결되는 것으로, 임신을 원하건 원하지 않건 건강한 상태로 유지되어야 하고 일터는 그 권리을 보장하기 위한 조건들을 마련해야 한다. 하지만 엘지전자부품()와 정부는 책임지고 점검했어야 할 유해화학물질을 제대로 관리하지 않았다. 이 때문에 여성 노동자들이 겪어야 했던 집단적 무월경 증상은 사회적 이슈가 되었다. 여성 노동자 건강권이 침해되고 있는 현실에 경종을 울리는 사건이었다. 제주의료원 노동자들의 유산과 2세 산재 사례 역시 과로와 더불어 유해 물질 취급 때문에 생긴 노동자 건강권 및 재생산권 침해 사례다. 노동자는 안전한 노동환경에서 일하면서, 임신을 할지 여부와 그 시기를 결정할 권리가 있어야 한다. 하지만 제주의료원의 노동자들은 그 권리를 박탈당했다. 세 명의 삼성 반도체 여성 노동자들의 경우는, 안전하지 않은 노동환경에서 일하는 와중에 임신을 했다는 점에서 위의 두 사례와 같다. 그러나 유해 환경이 태아의 질환으로 이어졌다는 점에서 차이가 있다.

 

여성 노동자들이 무월경을 겪고, 유산하며, 선천성 질환을 가진 2세를 출산하는 일은 모두 유해 물질에 노출되었거나 야간 노동, 과로로 인한 것이었다. 이 사례들은 일터에서의 여성 노동자 재생산권이 침해된 사례의 극히 일부일 것이다. 여성 노동자들이 겪는 유산과 같은 문제는 업무상 재해이고 노동권 침해의 결과이지만, 여전히 노동의 문제로 인식조차 안 되는게 현실이기 때문이다. 배후에는 그러한 재해가 개인이 감당해야 할 일로 치부되고, 공적인 일로 거의 드러나지 못한 뼈아픈 역사가 있다.

여성 노동자들의 재생산권 침해는 안전하지 않은 노동환경에서 발생한다. 개인의 문제가 아닌, 사회적 문제다. 재생산권 역시 노동자가 반드시 보장받아야 할 권리임을 사업주와 정부가 인식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