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아보자, Law동건강] 직장 내 성희롱을 바라보는 시선 / 2021. 04

[알아보자, Law동건강]

직장 내 성희롱을 바라보는 시선

임혜인 회원, 노무사

직장 내 성희롱(이하 “성희롱”이라고 함)으로부터 안전한 일터를 조성하는 것. 성희롱 피해자를 보호하고 가해자에 대한 적절한 조치를 취하는 것. 이는 현대사회에서 너무나도 당연한 상식이다. 성희롱 가해자는 절대 해서는 안 될 행동을 한 나쁜 사람이며, 성희롱이 발생할 때까지 방관한 회사는 더 나쁘다는 점에 대해서 부정하는 사람 또한 없을 것이다.

그런데 실제로 성희롱이 발생하면 우리가 너무나도 당연하게 생각하던 상식이 단숨에 무너져버리고 만다. “문제를 키워 봤자 너만 손해다”, “당신이 참아야지 어쩌겠냐”는 식으로 피해자의 고통을 무시하는 언동은 2차 가해 유형 중 아주 귀여운 축에 속한다. “라떼는 이런 거 다 감수하면서 직장생활 했다.”며 피해자가 경험한 성적 굴욕감 등이 사회통념에 어긋나는 것임을 계몽하려는 노력은 아주 보편적인 반응이다. 심지어 피해자가 피해 사실에 대하여 적극적으로 밝히려고 애쓸수록, 이러한 노력은 피해자에 대한 공격으로 변모한다.

성희롱의 당사자는 가해자와 피해자이지만, 실제로 성희롱이 발생하면 가해자는 지워지고 오로지 피해자만이 당사자로 남는다. 법률 및 사회적으로 금지된 행동을 한 가해자보다 피해자에 대한 시선이 뜨겁다 못해 따갑기까지 하다.

성희롱 피해자를 바라보는 시선은 법원의 판단을 통해 재확인되기도 한다. 한 대학교수(이하 “원고”라고 함)가 제자를 수 차례 성희롱하여 징계 해임되자 본인의 행동이 성희롱이 아님을 주장하며 해임처분의 취소를 구하는 소송을 제기하였다. 이때 대학이 징계사유로 삼은 성희롱 사실은 다음과 같다. 

징계사유 1
1) 원고가 학과사무실에서 남자친구와 함께있던 피해자에게 “여기서 뭐하냐?”라며 뺨을 때리고, 이어서 “왜 남자랑 붙어서 있냐?”라며피해자의 뺨을 총 4대 때림

2) 피해자가 봉사활동을 위한 추천서를 받기 위해 친구들과 함께 원고의 연구실을 방문을 때 원고가 뽀뽀해 주면 추천서를 만들어 주겠다고 함

3) 수업 중 질문을 하면 원고는 피해자를 뒤에서 안는 듯한 포즈로 지도함

4) 원고는 피해자가 연구실을 찾아가면 “남자친구와 왜 사귀냐, 나랑 사귀자.”, “나랑 손잡고 밥 먹으러 가고 데이트 가자.”, “엄마를 소개시켜 달라.”고 하는 등 불쾌한 말을 많이 함.
... (중략)
징계사유 2

1) 원고는 피해자의 1학년 학기 초 수업시간에 피해자의 손을 겹쳐서 마우스를 잡고 피해자가 앉아 있는 의자에 같이 앉거나 자신의 무릎에 피해자를 앉히려 하였음. (중략)

2) 원고는 피해자를 연구실로 자주 불러 연애하자, 어머니를 소개시켜 달라.”고 하였으며, 또한 의자에 앉아 있을 때에는 원고의 다리 사이에 피해자의 다리를 끼워 움직이지 못하게 한 경우도 있었음

3) 피해자가 입고 있던 가슴부분의 남방 단추가 떨어지려 할 때 원고가 불필요하게 단추를 만짐

징계사유 3

1) 원고는 수업시간에 피해자를 뒤에서 안는 식으로 지도하고 불필요하게 피해자와 한 의자에 앉아 가르쳐주며 신체적 접촉을 많이 함

... (중략)

4) 학과 MT에서 원고가 아침에 자고 있던 피해자의 볼에 뽀뽀를 2차례 하여 피해자에게 정신적 충격을 줌

5) 원고는 장애인 교육 신청서를 제출하러 간 피해자에게 자신의 볼에 뽀뽀를 하면 신청서를 받아 주겠다고 하고, 다른 학생들도 자신의 볼에 뽀뽀를 하고 신청서를 제출하였다고 거짓말을 하여 피해자가 어쩔 수 없이 원고의 볼에 뽀뽀를 하였으며, 그 상황에서 원고가 피해자의 엉덩이에 손을 대려고 하자, 피해자가 자신의 가방을 이용하여 원고의 행위를 막음

원심 재판부는 원고에 대한 징계사유 중 대부분이 성희롱에 해당하지 않는다고 판단하며, 원고에 대한 해임처분이 부당하다고 판단하였다. 원심이 상기 징계사유를 부정한 요지는 다음과 같다.

징계사유 1-3을 부정한 이유

- 원고의 언동은 원고의 적극적인 교수방법에서 비롯된 것이 아닌가 의심되고, 이 부분 사건에서 드러난 정도의 접촉만으로는 이를 일반적이고도 평균적인 사람으로 하여금 성적 굴욕감이나 혐오감을 느낄 수 있는 행위에 이르렀다고 보기는 매우 곤란하다.

- 교수인 원고가 (중략) 소위 백허그 자세를 취하여 그와 밀착된 자세에서 어색한 타이핑을 시도하였다는 것은 쉽게 상상하기 어렵다. (중략) 익명으로 이루어진 강의평가에서 원고의 부적절한 신체접촉에 대한 언급이 없고 오히려 원고의 1:1 맨투맨 교육방식이 긍정적으로 평가된 점 및 나아가 소외 1조차 원고의 강의에 단점이 없다거나 재미있고 즐겁다고 평가한 점에 비추어 선뜻 납득하기 어렵다.

징계사유 1-2 및 1-4를 부정한 이유

- 원고는 강의뿐만 아니라 동아리 지도를 통하여 학생들과 격의 없고 친한 관계를 유지하였는데, 학생들과 식사를 함께 하거나 원고의 연구실에서 찾아오는 학생들과 자주 농담을 나누었으며, 일상적인 이야기는 물론 가족에 관한 이야기나 연애상담도 나누었다.

징계사유 3-1부터 3-5를 부정한 이유

- 소외 2는 최초 소외 1의 부탁을 받고 이 사건을 신고하게 된 것인데, 자신의 피해사실에 대하여는 형사고소 이후 조사를 거부하는 한편 소외 1에 대한 피해사실에 대하여는 증인으로 출석하여 자유롭게 진술하고 있는 것으로 보이는바, 과연 성희롱 내지 성추행 피해자로서의 대응이라고 볼 수 있을지 의문이다.

- 소외 2가 소외 1의 부탁을 받고 진술서를 작성한 것은 2014. 12. 17. 무렵인데 그 기재된 내용은 전부 2013년부터 2014년 전반기의 사실로서 소외 1의 권유 또는 부탁이 없었다면 소외 2에게 과연 한참 전의 원고 행위를 비난하거나 신고하려는 의사가 있었는지 의심스럽다.

- (중략) 자신의 신고로 인하여 원고가 해임까지 당하는 무거운 결과를 가져온 데 대한 책임추궁을 두려워하기 때문이 아닌가 의심된다.

- 소외 2는 소외 1, 소외 3과 함께 원고에 대한 형사고소를 하지 않을 것을 약속하는 각서를 작성하여 주는 대신 원고에게 자신들에 대한 법적대응을 하지 아니할 것을 요구... (중략), 통상 피해자가 단순히 가해자를 용서하는 합의를 하여주는 행동이라고 보기에는 이례적이다.

즉, 원심은 설령 원고가 피해자와 신체적 접촉이 있었다고 하더라도 이는 적극적인 강의 의욕에서 비롯된 불상사일 뿐이고, 징계사유에 포함된 언동 또한 피해자와 친밀하게 지내는 와중에 성희롱에 대한 고의 없이 이루어진 것을 피해자가 민감하게 받아들인 것에 불과하며, 피해자가 오랜 시간이 경과한 후에야 비로소 성희롱 사실을 문제 삼은 사실이나 법원에서 피해 사실을 자유롭게 주장하고 있는 모습 등에 비추어 일반적인 성희롱 피해자로서의 면모가 보이지 않는다는 것을 이유로 성희롱에 해당하지 않으며, 해임처분 또한 부당하다고 판단하였다. 이러한 원심의 판단은 성희롱에 대한 
전형적인 2차 가해 유형들과 상당히 유사하다.

그렇다면 우리는 직장 내 성희롱을 어떠한 시각으로 바라보아야 할까. 동일한 사건에 대하여 대법원은 성희롱 사건을 심리하는 방법에 대하여 다음과 같이 설명하며, 원심판결을 파기 환송하였다. 

대법원 2018. 4. 12. 선고 2017두7470 판결

법원이 성희롱 관련 소송의 심리를 할 때에는 그 사건이 발생한 맥락에서 성차별 문제를 이해하고 양성평등을 실현할 수 있도록 성인지 감수성을 잃지 않아야 한다(양성평등기본법 제5조 제1항 참조). 그리하여 우리 사회의 가해자 중심적인 문화와 인식, 구조 등으로 인하여 피해자가 성희롱 사실을 알리고 문제를 삼는 과정에서 오히려 부정적 반응이나 여론, 불이익한 처우 또는 그로 인한 정신적 피해 등에 노출되는 이른바 ‘2차 피해를 입을 수 있다는 점을 유념하여야 한다. 피해자는 이러한 2차 피해에 대한 불안감이나 두려움으로 인하여 피해를 당한 후에도 가해자와 종전의 관계를 계속 유지하는 경우도 있고, 피해사실을 즉시 신고하지 못하다가 다른 피해자 등 제3자가 문제를 제기하거나 신고를 권유한 것을 계기로 비로소 신고를 하는 경우도 있으며, 피해사실을 신고한 후에도 수사기관이나 법원에서 그에 관한 진술에 소극적인 태도를 보이는 경우도 적지 않다. 이와 같은 성희롱 피해자가 처하여 있는 특별한 사정을 충분히 고려하지 않은 채 피해자 진술의 증명력을 가볍게 배척하는 것은 정의와 형평의 이념에 입각하여 논리와 경험의 법칙에 따른 증거판단이라고 볼 수 없다.

대법원은 성희롱 사건은 교통사고와 같이 한 순간에 촉발하는 것이 아니고 사회적 구조와 같은 맥락에서 발현된다는 특성이 있고, 그 맥락에 구속될 수 밖에 없는 피해자의 입장을 ‘피해자의 시각’에서 바라보아야 함을 강조한다.

성범죄 피해 사실을 대외적으로 고발하는 미투 운동이 확산되며, 자신의 피해 사실을 적극적으로 고발하는 피해자들 또한 많아지고 있다. 피해자들은 점점 더 크게 목소리를 내며 가해자에 대한 강력한 처벌과 제도 개선을 요구한다. 그런데 이들을 바라보는 사회의 시선은 어떠한가. 여전히 사업장에 성희롱이 발생하면 피해자는 피해자답게 처신해야 그나마 원하는 조치를 사업장으로부터 받을 수 있다. 피해자가 피해 사실을 객관적으로 입증하지 못하면 피해자를 예민한 사람이라 가스라이팅 한다.

피해자의 시각으로 성희롱 사건을 바라보는 것. 성희롱으로부터 안전한 일터를 만들기 위한 첫 걸음이지만 그 발을 내딛기가 어렵기만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