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업환경의사가 만난 노동자 건강이야기] 노동현장도, 건강검진 실시도 험난한 물류업계 / 2021. 03

[직업환경의사가 만난 노동자 건강이야기]

노동현장도, 건강검진 실시도 험난한 물류업계

김지원 후원회원, 직업환경의학 전문의

언제부터인가 우리는 스마트폰 쇼핑앱으로 터치 몇 번이면 새벽배송으로 제품을 받아볼 수 있게 되었다. 포털 사이트나 쇼핑몰에서도 주문만 하면 늦어도 다음날이면 문 앞에 택배 상자가 놓여 있다. 코로나 덕분에 가속화된 이러한 일상은 가히 물류의 혁신이라고 부를 만하다. 편리함에 우리 모두 길들고 있다.

물론 모두가 편리해 보이는 혁신 뒤에는 많은 물류 노동자들의 피와 땀이 있다. 미국 나스닥 상장을 추진한 기업의 경우 개별주문 확인과 소포장, 분류, 배송까지 수많은 인력이 상당량 수작업으로 진행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기존의 전통적인 대형마트와 백화점 등을 운영해온 대기업의 경우 좀 더 자동화와 전산화가 진행되었다고 알려져 있다. 사실 여기서 혁신이 더 지속된 미국의 아마존 같은 글로벌기업의 경우에는 로봇화, 자동화, 무인화가 이루어지면서 고용유발 증가량보다는 단순 인력 감소량이 커진다고 한다.

분류 업무를 하는 노동자들. 출처: 김지원



거절할 수 없는 제안을 했다

군포 복합 물류 센터로 향한다. 최근에는 곤지암, 이천 등 타 물류단지로 물량을 다소 뺏겨 규모가 줄어들긴 했지만 주로 서울 남부의 물류가 집결하는 곳이다. 물류 노동자들은 산재 사고나 근골격계 질환 등에 취약하다고 알려져 있고 최근에는 과로사 문제 등 뇌심혈관계 질환이 대두되기도 하였다.

또한 물류의 연속 선상에서 떠맡게 되는 부수적인 업무가 많고 장시간 야간노동을 하기 때문에 보건학적 관심이 필요한 직종이다. 관련 산업보건제도에 의해서도 야간작업은 특수건강진단의 대상으로 관리되기 시작하면서 일반건강진단뿐만 아니라 특수건강진단을 통해 뇌심질환과 수면장애, 위장관계 증상 등에 대한 정기적인 조사가 이루어지게 되었다.

물류센터 인력도급업체들의 건강진단 요청을 받게 되면 각오를 단단히 하게 된다. 패딩 조끼와 핫팩은 필수다. 일단 물류단지 건물들 자체가 윙바디 트레일러와 트럭 등의 박차를 위해 모두 뚫린 구조라 냉난방의 의미가 없고 건물의 안과 밖이 구별되지 않는다. 혈압과 채혈을 하는 장소는 그대로 외부환경에 노출되어 사실상 야외나 다름없고, 그나마 문진실이라고 내어주는 행정사무실이나 창고도 가건물에 가까운 판넬 구조라 전열기구의 도움을 받아 조금 나은 정도이다. 끊임없는 소음과 컨베이어 벨트의 진동은 덤이다. 부지런히 몸을 움직이는 현장 물류 노동자들은 이러한 추위와 더위에 익숙해진 터라 건강검진을 받으러 오게 되면 외려 '안 추우세요?'라고 병원 직원들에게 되묻곤 한다.

이러한 상황이니 특히 혈압측정의 신뢰성을 담보하는데 상당한 주의를 기울이게 된다. 뿐만 아니라 많은 인력도급 업체들이 야간 분류작업이 시작되는 오후 5시경에 검진을 요청하는데 노동자들에 대한 체계적인 관리 시스템이 부족한 편이라 건강진단의 기본인 '공복 상태'를 고지받지 않고 오는 노동자들이 많다. 오히려, 몸 쓰는 일을 하는 사람들인데 그때까지 공복을 하라는 게 말이 되냐며 채혈하는 병리사에게 화를 내기도 한다.

의사는 노동자들의 직업력 등을 먼저 확인하기 시작한다. 도급업체들을 통한 간접 고용이 일상인 분야이기 때문에 대부분 1년 미만 근무를 하거나 매년 재계약을 통해 입사와 퇴사를 반복하는 형태로 일하고 있다. 여기에 코로나로 인해 타격이 컸던 분야인 예술계, 관광업 종사자들이 물류센터로 많이 유입되고 있다는 뉴스를 현장에서 체감하게 되었다. 고용환경 변화의 풍랑 속에서 완충 역할을 해주고 있어 다행이다.

건강검진 후 결과 판정을 하다 보면 이들에게서 고혈압, 당뇨 등 만성질환이 발견되는 빈도가 높다. 특히 기존에 일반건강진단을 전혀 강제 받지 않았던 특수고용이나 프리랜서를 전전하던 노동자들이 이러한 물류센터에 적을 두게 되면서 비로소 확진 받는 사례가 많다. 사실 성적표를 읽지 않고 서랍 속에 넣어두는 학생처럼, 본인의 건강진단 결과서도 제대로 읽지 않고 치료나 추가검사를 받지 않는 사람도 많다. 다양한 직장을 전전하다 보면 때로는 좀 더 강한 보건관리 규제의 그물망에 들어왔다 나가기를 반복하는 것이다.

재검사를 사업장에 통보하면 일단 반응은 두 가지다. '멀어서 가지 않겠다. 그날 밥을 좀 먹고 와서 당이 높게 나온 것 같다. 왜 재검이 나오는 거냐. 귀찮다' 혹은 '그분 퇴사했다'이다. 사실 후자의 경우는 추가검사를 강제할 수단이 마땅치 않다. 마침 이 글을 쓰는 중, 근로자 공복혈당 수치가 당뇨 진단수치를 상회하여 확진검사가 필요하나 알아서 판정해달라는 근로자와 사업주의 '요청'이 있다는 내용을 행정 직원에게 전해 받았다. 서두에서 말한 기업 중 한 곳이었고, 마침 해당 회사 물류 직원 과로사 문제로 최근 논란의 중심에 있는 회사였다. 이에 나는 신중하게 단어들을 가다듬어 회사 담당자에게 전달하도록 하였다. 거절할 수 없는 제안을.

"...정당한 사유 없이 이 규정을 위반하는 경우, 건강진단을 하지 아니한 사업주의 경우 1천만 원 이하의 과태료가 부과되며(산업안전보건법 제72조 제4항 제5호) 건강진단을 하지 아니한 근로자의 경우도 300만 원 이하의 과태료가 부과됩니다. (산업안전보건법 제72조 제5항 제2호). 귀사의 경우 현재 과로사 문제로 사회적 문제가 대두되고 있으며, 노동자에 대해서 특수건강진단 등의 안전보건업무를 소홀히 하게 된다면 추후 책임문제가 발생할 수 있음을 알려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