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구리포트] 사무금융노동자의 정신질환 사태 / 2021.02

[연구리포트]

 

사무금융노동자의 정신질환 사태

 

김영선, 이유민, 정지윤, 류한소, 김지안, 최민, 장순원, 박경환/연구팀

 

 

1. 들어가며

  <사무금융 노동자 업무상 정신질환 실태 및 대응 연구>는 증권, 여수신, 보험 등 사무금융 노동자를 대상으로 한 정신질환 실태 조사로 2020년 3월부터 11월까지 진행됐다. 금융업 전체의 정신질환 상태를 다층적으로 파악하기 위해 기사분석, 설문분석, 면접분석을 활용했다. 이는 정신질환의 추세, 실태, 의미를 다면적으로 파악하기 위함이었다.
  기사분석은 30여 년 간 미디어화된 금융노동자 자살 사건(109건)을 대상으로 자살의 분포와 추세를 파악했다. 설문분석은 조합원 1181명을 대상으로 정신질환 양상을 기술하고 집단별 차이를 구체화했다. 면접분석은 조합원 16명의 인터뷰를 통해 정신질환의 독특한 분포가 조직의 구조적 요인들과 어떻게 연관되는지를 밝히고자 했다.

2. 기사분석: 추세

  금융노동자의 자살 추세를 보면, 전체적으로 가파른 증가세(90년대 22건에서 2000년대 32건, 2010년대 55건)를 보였다. 특히 2010-2013년(6건, 7건, 7건, 14건)과 2004-2005년(10건, 6건)의 시기가 유독 높았다. 지점 통폐합이나 인력 감축 등의 대규모 구조조정이 크게 작용한 바다.
  자살 사건 가운데 업무관련성 자살의 비율을 시기별로 보면, 90년대 22건의 자살 가운데 업무관련성 자살은 9건(40.9%)이었다. 대부분 은행 노동자의 자살 사건이었다. 2000년대 32건의 자살 가운데 업무관련성 자살은 12건(37.5%)으로 증권 노동자의 자살이 많은 수를 차지했다. 2010년대 55건의 자살 가운데 업무관련성 자살은 26건(47.3%)이었다. 업무관련성 자살 사건이 경향적으로 증가하고 있었고 업무관련성 요인으로는 실적 압박과 연관된 내용들이 많았다. 이런 경향은 특히 2000년대 들어서면서 그리고 증권 노동자의 자살 사건에서 두드러졌다.
  금융노동자의 자살 사건을 다룬 기사에는 유달리 불법적 관행과 연관된 내용들이 많았다. 차명계좌, 지인계약 같이 업무 관행, 불법적 요소, 실적 압박 간의 경계가 모호하고 뒤엉키면서 발생한 사건들이다. 불법이 방조된 채 실적을 채워야 하는 업계 관행이 꽤 빈번했던 것으로 보인다.
  불법적 관행에 문제가 없다는 것이 아니다. 기사에서 불법적 관행이 재현될 때 많은 경우 실적 쥐어짜기 시스템이 유발한 자살 ‘맥락’은 누락되고 만다. 이렇게 위법적 요소가 미디어화 될수록 자살은 개인 문제로 귀착되고 위법적 관행을 방조하는 실적 쥐어짜기는 재생산되는 효과를 발휘하는 것으로 보인다. 자살을 유발하는 맥락으로서의 실적 중심주의 조직문화나 경영방식을 면밀하게 문제화해야 하는 이유다.

3. 설문분석: 실태

  사무금융 노동자의 정신건강 지표는 ‘빨간불’이다. 고위험음주 및 업무 후 정신적 지침을 호소하는 비율이 매우 높았고, 직무스트레스 고위험군에 해당하는 비율이 모든 업종에서 50% 이상이었으며, 감정노동 관련해서는 조직의 보호체계를 통해 지지받지 못한다는 응답이 90% 이상이었고, 감정부조화를 겪는 비율은 80%에 달했다. 또한, 대부분 직장 내 성적·정신적 폭력영역, 고객의 정신적·성적 폭력에 노출되어 있고, 직장 내 괴롭힘에 해당하는 25개 예시에 대해 90.4%가 직장 내 괴롭힘을 한 번 이상은 경험했다.
  둘째, ‘성과 압박’은 사무금융 노동자의 특징적인 위험 요소로 확인됐다. 노동강도를 강화시키는 요인에서 가장 많은 빈도를 보인 것은 “영업·업무 성과에 대한 압박”이었고, ‘업무적으로 성과를 내야 한다는 것에 압박을 느낀다’는 항목에서 80% 이상, ‘불법적인 행위를 해서라도 성과를 내고 싶을 때가 있는가’라는 항목에는 26.4%가 ‘있었다’고 답했다. 또한 성과 압박과 자살 간의 상관분석을 통해 성과 압박이 자살이라는 위험도 높은 상태와 관련성이 높게 나타났다.
  

▲   성과압박에 따른 자살 생각·계획·시도 간의 상관성

 

  정신건강 지표가 전반적으로 빨간불인 가운데, 업종별·직무별 위험의 정도는 달랐다. 첫째, 업종별로는 ‘여수신’의 경우 성과 압박에 대해 가장 높은 부담을 보였고, 특히 여성의 불안, 우울, 자살 생각·계획·시도 비율이 가장 높았다. ‘보험’의 경우 감정노동의 측면에서는 직장 내 지지체계가 부족하다고 느끼는 비율이 가장 높았고, 감정부조화를 가장 많이 느끼고 있었다. 특히 남성의 경우 불안, 우울, 자살 생각·계획·시도에서 가장 높은 비율을 차지했다. ‘증권’의 경우 불법적인 일을 해서라도 성과를 올리고 싶은 성과 압박을 가장 많이 느끼고 있었다.
  둘째, 직무별로는 ‘본사 관리 및 지원’에서 여성의 우울 비율이 가장 높았다. ‘지점현장 관리 및 지원’은 정신적 지침이 가장 많은 직무였으며, 관계갈등 및 직무불안정에서 가장 높은 스트레스를 받고 있었고, 남성의 불안, 우울, 자살 생각·계획·시도가 가장 많은 비율을 차지했다. ‘본사 영업’의 경우 성과 압박을 95%가 경험하고 있었다. 또한 폭력에서 직장 내 정신적·성적 폭력도 높지만 무엇보다 고객의 신체적 폭력에 상당히 노출되어 있었고, 감정노동에서는 ‘직장 내 지지를 받지 못한다’는 응답이 100%였다. 한편, 여성의 경우에는 자살 생각이 가장 높은 비율을 차지하는 직무였다. ‘지점 현장 영업 및 보상’의 경우에는 ‘성과 압박을 느낀다’는 응답이 95%를 차지했고, ‘불법적인 일을 해서라도 성과를 내고 싶다’는 응답이 43.7%로 매우 높았다. 그리고 감정노동 측면에서 감정부조화를 가장 많이 느끼고 있었으며, 여성의 경우에는 불안 및 자살 시도가 높은 비율을 보였다. ‘콜센터’의 경우에는 업무의 어려움 정도를 추정하는 보그지수에서 14.2점으로 가장 높은 점수를 보였고, 정신적 지침에서도 90.3%나 되는 응답자가 어려움을 호소했다. 또한 직무스트레스 항목 중 직무불안정과 직무요구가 가장 높은 수치를 보였으며, 폭력 측면에서 고객의 정신적·성적 폭력의 경험이 93.1%로 가장 높은 비율로 나타났다. 마지막으로 ‘전산 IT’에서는 직장 내 성적·정신적 폭력에 대해 70%나 응답했고, 여성의 경우에는 다른 직무에 비해 자살 생각이 50%로 가장 높았다.

4. 면접 분석: 의미

  첫 번째 키워드 ‘성과 압박’. 사무금융 노동자들의 가장 큰 스트레스 요인은 성과 압박이었다. 2000년대 초반 성과급제 도입 이후 20년이 지난 지금 발견되는 노동자들의 정신질환은 성과를 위한 ‘자기 착취’를 노동자들이 내면화하고 있다는 사실에 대한 방증으로 볼 수 있다. 증권업의 경우, 노동자들의 자살은 증권업 자체의 ‘리스크’를 개별 노동자가 감수하는 구조에서 발생하는 사건으로 볼 수 있다. 위험에 대한 불안 정도가 높고, 24시간 계속되는 전지구적인 금융시스템 아래에서 증권 노동자들은 장시간 노동과 불면에 자주 시달린다. 보험업의 경우, 귀책사유 없이 금감원에 접수되는 소비자들의 ‘억지 민원’ 탓에 많은 노동자들이 공황장애를 호소했다. 한편, 성과 압박 체제는 저성과자 프로그램이 이름만 바뀐 채로 지속되는 모양새였고, 여성들에게 각오나 포기를 요구하는 남성중심적인 조직문화와 꽤 친화적이었다.
  두 번째 키워드 ‘욕 먹는 값’. 보험 보상 노동자들은 죄송함을 달고 살고 있었고, 증권 노동자들은 고객 손실까지 사비로 보전하며, 지점 관리 및 지원직 노동자들은 지점에서 큰 소리가 나지 않도록 사과해야 하는 등 저자세를 취해야 했다. 이들의 친절과 사과는 성과 압박과 긴밀하게 연관되어 있었다. ‘감정노동자 보호법’ 시행에도 불구하고, 많은 사업장은 미미한 대응으로 일관한 탓에 보호장치가 부재한 형국이었다.
  세 번째 키워드 ‘괴물을 키우는 구조’. 상사의 괴롭힘은 관리자의 개인적 속성이 아니라 성과 압박이라는 체제와 연관된 결과라고 보는 것이 적절할 것이다. 과중한 업무부여, 승진 누락, 실적 몰아주기 등 조직 차원의 ‘합리적’ 방식들이 직장 내 괴롭힘이라는 미시적인 관계 폭력으로 발현되고 있었다.
  넷째, 기술 변화 차원. 지점 관리 및 지원직 노동자들은 지점 축소 및 통폐합으로 극심한 노동강도를 호소했다. 신기술 변화의 이면에 여전히 ‘사람’이 해야 할 일이 너무 많다고 강조한다. 노동환경의 변화로 인한 스트레스를 당장 느끼지 않은 직종이라 하더라도 불안감에 휩싸여 있기는 마찬가지였다. ‘신금융’ 상품 개발에 대한 스트레스가 적잖게 발견됐다.
  마지막으로, 대응과 지지의 언어들. 직무스트레스에 대한 대응이나 지지가 조직적이라기보다는 취미 등의 개별적인 전략으로 해결하려는 경향이 강했다. 또한, 낙인에 대한 우려로 정신질환의 치료 자체에 대한 접근성이 떨어졌다. EAP 프로그램과 관련해서는 홍보 부족, 실질적인 접근의 어려움, 회사에 알려질 것에 대한 우려를 지적했다. EAP 프로그램은 정신건강의 문제를 호소하는 노동자를 위해 회사가 제공할 수 있는 “최소한”의 지원이지 최대한의 조치는 아닌 것이다.

5. 개선 방안

  첫째, 회사별 노동자 정신건강 증진 체계 수립. 정신건강 문제가 전반적으로 심각하지만, 개별화된 대응이 빈도 높게 발견됐다. 정신건강 문제의 원인 찾기, 필요한 자원 제공하기, 정신질환 앓고 있는 구성원의 적응 돕기 등 관련 체계를 마련할 필요가 있다. 이러한 체계 수립을 위해 우선 정신질환 문제가 조직 차원의 문제라는 인식이 우선되어야 할 것이다. 한편, 업종별, 직무별, 성별 다양한 원인 차이가 발견되는데, 이를 위한 실태 조사, 대안 토론 조직, 조합원 교육 등의 후속 조치도 요구된다. 서울교통공사의 ‘힐링센터’를 모델 삼은 ‘사업장 기반 정신건강 전담 기구’ 설치도 유효하리라 본다. 마지막으로, 포괄적인 체계 마련과 동시에 고위험군(남성 자살 시도 3.6%, 여성 자살 시도 5.5%)에 대한 예방 프로그램도 절실한 상황이다.
  둘째, 실적주의에 기대지 않은 금융노동 모색. 성과 압박과 자살 생각·계획·시도 간의 상관성이 높았던 결과에서 알 수 있듯이, 실적주의 체계가 핵심 스트레스 요인이었음이 다시 한번 확인됐다. 성과평가와 분배원칙을 개선할 필요가 있다. 노동자가 생각하는 공정한 성과평가 기준 마련, 평가위원회 구성, 사업장별 평가방식에 대한 공개토론 등을 통해 가능할 것이다. 또한 조직 차원의 영업 방식을 개선할 필요가 있다. 위험도가 높은 상품 개발이나 공격적인 영업 방식 대신에 안정적인 운용 방식을 통해 직무스트레스를 줄일 수 있을 것이다. 상품 개발이나 영업 방식에 대한 노동자 관점의 평가 또한 필요하다.
  마지막으로, 노동조합의 전략 및 정책 수립과 관련해 노조 간부 대상의 교육이 우선 실시되어야 한다. 일종의 정신건강 관련한 공감도와 감수성을 키우는 교육이다. 또한 업종 전체의 ‘평균치’를 높이기 위해 법제도를 실질화해야 한다. 산별노조로서의 역할로 금융노동자들의 ‘공통적인 고통’을 매개로 이를 제어할 수 있는 법제도의 변화를 이끌어내야 할 것이다. <자본시장과 금융투자업에 관한 법률>에 ‘작업 중지·대피’를 삽입하거나 산업안전보건법 상의 ‘위험성평가’를 금융업에 적합하도록 개발하는 사업을 우선 실천할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