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호 기획 4. 장애 운동이 제기하는 과제, 안전보건에서의 ‘정상성’을 바꿔내는 일 - 전국장애인철폐연대 정창조 노동위원회 간사, 정다운 활동가 인터뷰 / 2020. 10·11

[기획 - 노동안전보건운동과의 마주침 ]

장애 운동이 제기하는 과제, 안전보건에서의 ‘정상성’을 바꿔내는 일 - 전국장애인철폐연대 정창조 노동위원회 간사, 정다운 활동가 인터뷰

박기형 상임활동가

<일터> 200호를 맞아, '노동안전보건, 사회운동과 만나다'라는 코너를 기획하였다. 이 코너를 통해, 연구소가 그간 만났던, 또는 앞으로 만나갈 사회운동의 이야기를 다뤄보고자 한다. 이를 통해 노동안전보건운동의 경계를 무너뜨리고 전망을 확대함으로써, 운동의 과제를 도출하고 다른 사회운동들과 공동전선을 만들어가기 위한 고민을 담아보고자 했다.

첫 번째 인터뷰에서는 장애운동과 노동안전보건운동과의 접점을 찾아보려 했다. 전국장애인철폐연대(아래 전장연)의 정창조 노동위원회 간사, 정다운 활동가를 지난 10월 8일 혜화에서 만났다. 장애운동에서 다시금 또는 새롭게 제기되고 있는 장애인 노동권이 안전보건 영역에서의 건강하고 안전할 권리를 급진적으로 확장시키는 데 어떤 함의를 던져줄 수 있을지, 반대로 장애인의 노동권을 실현하는 과정에서 안전보건의 쟁점들이 어떤 고민을 안겨줄 수 있을지 얘기를 나눠보았다.

장애인 노동권의 현주소

장애인 노동권에서 가장 중요한 사안은 바로 고용이다. 전반적으로 고용률이 낮으며, 일자리 자체가 없는 상황이다. 2019년 장애인 고용률은 34.9%로 전체 고용률 60.9%의 절반 수준이다. 이를 해결하기 위해 장애인 의무고용제도를 운영하고 있지만, 의무고용률 미준수 시의 부담금 수준이 높지 않아 부담금을 내고서 고용하지 않는 게 대다수다. 노동조건 또한 열악하다. 2019년에는 임금근로자 중 43.9%가 임시 일용직으로서 전체 인구의 임시 일용직 비중 31.4%보다 높다. 전문직, 사무직 숫자 적고 단순노무직(청소, 환경미화 등)이 많다.

정창조: 장애인에게 노동권은 역사적 맥락부터 살펴봐야 합니다. 장애인이라는 용어 자체가 노동할 수 없다는 개념으로부터 출발하기 때문이죠. 자본주의가 형성되면서 노동할 수 없는 사람들과 노동할 수 있는 사람이 구분되기 시작해요. 하층민들을 대량 수용했던 구빈원에서도 중요하게 이뤄졌던 일이에요. 결국 장애인은 (임금)노동을 할 수 없는 자라는 관점 자체가 근본적인 문제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윤 창출을 할 수 없는 활동 전반을 비생산적 활동으로 규정하고, 생산적 활동을 하지 못하는 일들을 배제하는 현 사회의 구조를 문제 삼아야 합니다.

정다운: 이른바 '정상성'이라고 하는 것을 바꿔내는 일이죠. 특정 기준에 부합하지 못하는 것은 배제해버리는 것 말입니다. 무엇이 정상이고 비정상이냐를 가르는 기준과 규범을 새롭게 정립하는 게 중요합니다. 임금노동, 이윤 창출에 도움이 되는 활동만을 노동으로 규정하고, 이 노동을 할 수 있는 신체만을 노동력으로 인정하는 것으로부터 벗어나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결국 장애인 일자리는 시혜적인 성격을 띨 수밖에 없어요. 아무리 고용되더라도, '어차피 일 못 할 텐데'라는 식의 태도로 인해 부수적인 일밖에 받지 못하면서 주변으로 밀려날 수밖에 없어요.

임금과 관련해 최저임금 적용 제외가 특히 문제다. 최저임금법 제7조에서 '정신장애나 신체장애로 근로능력이 현저히 낮은 사람'를 규정하고 있다. 평균적인 생산성에 얼마나 부합하는지 작업능력평가를 한다. 이를 근거로 2018년 기준 9413명이 제외되었다. 최저임금 적용 제외 장애인 대다수는 직업재활시설 노동자, 중증장애인이다. 이렇듯 노동할 능력, 신체에 대한 정상성 기준에 따라 장애인들이 노동권을 보장받지 못하고 있다.

중증장애인 최저임금 적용제외 제도 폐지를 요구하는 퍼포먼스 중인 정다운 활동가(사진 맨 좌측). 출처: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



장애인 노동자의 산업재해

노동시장에서 장애인들이 배제되면서, '산재는 우리에게 사치다', '산재라도 당해봤으면 좋겠다'는 말이 나오기도 한다. 하지만 장애인 노동자가 노동시장에 진입하더라도, 불안정한 일자리에만 들어가게 되고, 이로 인해 위험한 노동환경에 노출되기 쉽다. 그러나 그 실태는 제대로 드러나지 않고 있다.

정창조: 장애인의 일자리 마련 자체가 핵심적인 이슈다 보니, 진보적 장애인 운동 진영 입장에서도 산재 사망사고 등에 집중하지 못하고 있는 게 사실입니다. 고용촉진법 제26조에서 고용노동부 장관이 매년 장애인 노동자 산재 통계를 조사하도록 규정하고 있어요. 최근 조사에 따르면, 장애인 노동자 산재 비율은 0.8%, 장애인 노동자의 산업재해 승인율은 33.1%로 나타났어요. 그러나 굉장히 형식적으로 이루어지고 있어 현황 파악 자체가 쉽지 않고, 산재 예방 활동에도 적극적이지 않은 상황입니다.

정다운: 더 중요한 것은 취약한 이들일수록 불안정한 일자리, 그로 인해 계속해서 위험하고 유해한 노동환경에 노출되고 있다는 점입니다. 결국 사회전반적으로 노동권이 제대로 보장받아야 하는 것이지요. 장애인 이동권 투쟁하면서 이런 얘기를 자주했어요. 장애인의 이동권 보장을 위해 엘리베이터를 만들고 저상버스를 도입하면, 모두에게도 이동권이 더 잘 보장된다라고요. 산업재해의 경우에도 마찬가지예요. 장애인이 안전하고 건강하게 일할 수 있는 일터라면, 모두에게도 안전하고 건강한 일터이지 않을까요?

장애운동에서 제기하는 산재보상제도의 지향점

정다운 활동가의 질문에 비춰볼 때, 일터에서 '안전'과 '건강'이, 우리가 주장하는 안전할 권리와 건강할 권리가 무엇을 기준으로 삼고 있는지 되물어 볼 수 있었다. 산재보상제도를 중심으로 보상·재활·치료에서 정상성이 작동하는 방식, 건강할 권리에서 한 발짝 더 나아가 '잘 아플 권리'를 얘기하는 것의 의미에 관해 얘기를 나눠보았다.

정다운: 산재보상제도에서 보상기준을 살펴보면서, 장애인 등급제를 떠올렸어요. 둘 다 신체적, 정신적 손상을 특정 척도를 기준 삼아 등급을 매기고 제도지원을 받을 대상자를 선정하는 걸로 보였습니다. 이 과정에서 빠지게 되는 것은 결국 정책을 필요로 하는 사람들의 관점과 필요가 아닐까요? 장애인의 경우 사회참여 욕구를 실현하기 위한 요구가, 산재노동자의 경우 직장복귀 등의 다양한 회복을 위한 요구가 있을 거잖아요. 이들이 단순히 평가대상으로 남아있다면, 그건 불평등한 권력 구조라고 할 수 있지 않을까 싶어요. 대상이 아닌 주체로의 전환이 이뤄져야 합니다. 이는 주체의 상태에 대한 존중으로부터, 그 상태를 우선 인정하고 필요한 것을 묻는 것으로부터 출발할 것입니다. 산재보상제도에서도 노동자의 필요와 욕구, 나아가 참여에 기반한 정책이 지향해야 할 바라고 봐요.

정창조: 산재보상제도에서 얘기하는 회복에 이런 의미도 있을까요? 노동자들의 신체와 정신을 치료하여 기존의 생산성에 부합하도록 회복시키는 것. 물론 재활과 직장복귀 등 산재보상제도 자체가 나쁜 것이라고 할 수는 없겠죠. 노동자 입장에서도 자기 삶과 일터에서의 일상을 회복하기 위한 욕구가 있으니까. 그럼에도 재활 개념에 대해서는 달리 접근해볼 수 있을 것 같아요. 장애 운동에서 재활은 주요 쟁점 중 하나인데요. 재활이라는 개념 자체가 개인을 정상적 노동력을 획득하지 못한 이를 정상적 노동력으로 거듭나게 한다는 의미를 갖추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재활에 실패하면 어떻게 되는 건가요? 그러면 또 다시 사회와 일터에서 배제되는 거지요. 이는 장애인이나 산재 노동자의 현재 존재 자체를 자본주의 시스템에서 노동을 할 수 없는 존재이기에 비정상적인 것으로 치부하는 것입니다. 그러니 주류 장애인 노동정책이 개인의 기능 회복, 즉 자본 입장에서 생산성 있는 신체로 거듭나게 하는 데에만 집중하는 것처럼 보여요. 이때 우리는 재활이 충분한지 아닌지를 누구의 기준, 어떤 기준에서 판단하는지를 문제삼아야 한다고 봐요. 자본이나 기업이 요구하는 노동력 상품으로서가 아니라, 상품화되지 않는, 심지어 상품화될 수 없는 그 존재 자체의 역량을 어떻게 확장할 것인가를 물어야 합니다.

장판(장애인운동판)에서는 이러한 관점에서 중증장애인 권리중심형 일자리 확장을 주장하고 있어요. 그 주장의 핵심은 어떤 신체적, 정신적 상태인지 관계없이, 각자의 상태를 인정하고 다양한 삶의 영역에서 의미 있는 활동들을 영위할 수 있도록 정책과 제도가 마련되어야 한다는 것이죠. 이를 산재보상과 연결해서 생각해 보면, 재활이란 단지 개인의 기능 회복을 넘어서, 사회와 일터에서의 관계변화와 노동이나 건강, 안전에 대한 개념 변화를 중심에 두는 것이 되어야 하지 않을까 싶어요.

중증장애인 노동권 쟁취를 요구하는 집회에서의 정창조 간사 출처: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

'잘 아플 권리'가 제기하는 질문

노동안전보건운동에서는 '건강할 권리'를 주장한다. 이때 늘 부딪히는 고민은 우리가 주장하는 건강과 안전이 '정상적인 신체와 정신', '평균적인 생산성을 제공할 수 있는 노동력'으로 규정되고 있는 것은 아닌지다. 이를 풀어가기 위해, 최근 '잘 아플 권리'라는 개념에 주목하고 있다. 장판에서도 건강을 새롭게 바라보는 관점에 관한 얘기가 활발하다고 한다.

정창조: 예를 들어, 만성질환자는 건강한 신체가 아닌가요? 주류 사회 입장에서 보면 당연히 건강한 신체가 아니겠죠. 그러나 100% 건강한 상태란 애초에 없다고 생각해요. 만성질환자나 장애와 질병이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는 이라고 할지라도, 당사자의 존재 차원에서 보자면 질병이나 장애와 잘 사귀어 가며, 사회에서 안정된 삶을 보장받을 수 있고, 자신의 역량을 보존하고 확장해 갈 수 있다면, 곧 그것이 건강하게 살아가는 것이라 생각합니다. 아픈 존재를 그 자체로 인정해 달라는 게, 결코 나는 '건강하지 않겠다'는 선언으로 이어지는 건 아니니까요. 이런 차원에서 국가나 자본이 요구해서 관리되는 건강이 아니라, 다른 차원에서 건강 개념에 접근해야 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장애 내지 질병과 건강을 이분법적으로 구분하고, 아무도 온전히 도달할 수 없는 '건강'을 추구하는 강박을 깨야한다는 것이지요. 전 이런 면에서 건강할 권리와 잘 아플 권리는 충분히 양립가능하다고 봅니다.

정다운: 건강에 대해서 사람들마다 다양하게 생각하잖아요. 안 아프고 안 다치는 게 우선 중요하지만, 아픈 상태가 지속된다고 한다면 의료 서비스를 계속해서 잘 보장받을 수 있는 게 중요하겠죠. 이렇듯 각자의 조건에 따라 다른 규정과 지원이 필요합니다. 장애인이나 산재 노동자처럼 정상적인 수준으로 돌아갈 수 없다면, 그 상태로도 살아갈 수 있는 조건이 무엇인지 찾아내고, 이를 사회적으로 마련해주는 것 말입니다.

인터뷰를 마무리하면서, 정창조 간사는 장애인 노동권이 추구하는 방향은 일반 노동시장에의 편입만으로는 안 되고, 기존 노동체계 바꿀 수 있도록 다양한 노동형태, 방식, 과정을 바꿔내는 계기들을 마련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이는 결국 기존의 노동 개념, 정상 신체 등 정상성을 뒤흔드는 운동이다. 장애인과 산재 노동자가 자유롭고 평등하게 일하고 활동할 수 있는, 그럼으로써 각자의 조건에 맞게 최대한 자기 삶의 역량을 발휘하는 세상. 이를 위한 구체적 실천을 장판과 노동현장에서, 부문과 전체가 교차하며 만들어가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