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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호 기획 1. 근골격계 직업병과 근골유해요인조사, 노동자가 현장을 바꾸는 무기?! / 2020. 10·11 [기획 - 노동안전보건운동의 발자취 ①] 근골격계 직업병과 근골유해요인조사, 노동자가 현장을 바꾸는 무기?! 푸우씨 상임활동가 들어가며 인류의 역사가 시작된 이래, 인간을 끊임없이 괴롭혀왔던 질환이 있다. 바로 '근골격계 질환'이다. 살아가기 위해 어느 누구든 몸을 사용하지 않을 수는 없기 때문에, 사람의 신체를 구성하는 근육, 뼈, 인대, 신경조직 등에서 나타나는 다양한 병증은 그 역사만큼이나 오랫동안 인류를 괴롭혀왔다. "아이고, 삭신이야", "젊을 때 너무 고생해서, 일찍 골병이 들어서 그래"와 같이 사람들은 이 질환을 '삭신이 아픈 병', '골병'이라는 이름으로 불러왔다. 이제 포털 사이트에서 '근골격계 질환'을 검색하면 페이지 가득히 다양한 내용이 나열된다. 뉴스란에는 체중 증가와 비만이 근골격.. 더보기
월 간 「일 터」/[특 집]

200호 기획 1. 근골격계 직업병과 근골유해요인조사, 노동자가 현장을 바꾸는 무기?! / 2020. 10·11

[기획 - 노동안전보건운동의 발자취 ]

근골격계 직업병과 근골유해요인조사, 노동자가 현장을 바꾸는 무기?!

푸우씨 상임활동가

들어가며

인류의 역사가 시작된 이래, 인간을 끊임없이 괴롭혀왔던 질환이 있다. 바로 '근골격계 질환'이다. 살아가기 위해 어느 누구든 몸을 사용하지 않을 수는 없기 때문에, 사람의 신체를 구성하는 근육, 뼈, 인대, 신경조직 등에서 나타나는 다양한 병증은 그 역사만큼이나 오랫동안 인류를 괴롭혀왔다. "아이고, 삭신이야", "젊을 때 너무 고생해서, 일찍 골병이 들어서 그래"와 같이 사람들은 이 질환을 '삭신이 아픈 병', '골병'이라는 이름으로 불러왔다.

이제 포털 사이트에서 '근골격계 질환'을 검색하면 페이지 가득히 다양한 내용이 나열된다. 뉴스란에는 체중 증가와 비만이 근골격계 질환을 악화시킬 수 있다는 건강 상식을 담은 기사도 있고, 다양한 근골격계 질환에는 도수 치료가 근본적인 치료법이라며 이를 시행하는 병원을 홍보하는 기사도 눈에 띈다. 이렇듯 '근골격계 질환'은 지금도 여전히 누군가에게는 입에 잘 붙지 않고 낯선 질환일 수도 있지만, 포털 사이트에서 누구나 손쉽게 주요 질환, 증상과 일반적인 특징, 치료방법과 전문 치료기관을 알 수 있는 대한민국의 대표적인 질병 중 하나가 되었다.

이렇게 근골격계 질환이 사회화된 배경에는 IMF-구조조정을 거치며 분출된 노동자들의 역사적인 투쟁이 있었다. 그러나 여전히 '근골격계 질환'이 노동자를 병들게 하는 '가장 흔한 직업병'이며, 이를 예방하기 위해서는 노동강도를 낮추기 위한 현장개선이 동반되어야 하고, 이를 위해 3년에 한 번씩 정기 근골격계 유해요인 조사를 실시해야 한다는 사실을 찾아보기는 힘든 것이 현실이지만 말이다.

감히 말하자면, '근골격계 직업병'은 한국노동안전보건연구소가 창립하게 된 배경이다. 이를 현장에서 제기하며, 노동자의 직업병으로 조직하는 과정에서 다양한 주체들이 결집하여 연구소가 결성됐다. 그만큼 200호를 맞이하는 <일터>의 현재까지, 주요하게 다뤄지고, 언급된 노동자의 직업병이기도 하다.

작업대 앞 두원정공 노동자들. 출처: 금속노조 두원정공지회, 일터 통권 1호(2003.08) 수록.

근골격계 질환은 어떻게 직업병이 되었나?

"지난 2002년 초 비 내리는 새벽 거제 옥포 매립지에 허리, 어깨, 팔, 다리가 아파 버스에 오르던 노동자들이 있었다. 얼마 지나지 않아 근골격계 직업병으로 판명난 노동자 중 회사의 압력과 회유 속에서도 30% 정도인 76명의 노동자가 근골격계 직업병으로 집단 산재요양에 들어갔고, 전원 산재 인정을 받았다. 사측에서는 노동자들이 심하지 않은 증상을 침소봉대한다고 하며, 일을 하기 싫으니까 노동조합의 힘을 빌어 산재에 들어간다는 말이 나돌았다. 예전에 유기용제에 의한 직업병이나 망간중독증처럼 한 번 스쳐가는 일시적인 현상이라고도 하였다.

그러나 그들의 예상은 빗나갔다. 2002년 7월에는 한라공조 11명, 카스코 등 32명, 11월에는 대우상용차 27명이 집단 산재 요양에 들어갔다. 올해에도 어김없이 삼호중공업 33명, 두원정공 21명, 대한이연 10명의 근골격계 직업병 집단 요양 투쟁을 시작으로, 풀무원, 도시철도, 철도, 현대자동차, 쌍용자동차에 이르기까지 업종을 초월하여 여러 지역의 사업장에서 근골격계 직업병에 대한 집단 산재요양 및 노동강도 강화저지 투쟁이 봇물을 이루고 있다." - 일터 통권 1호(2003. 08), 기획2, "근골격계 직업병의 현황과 실태", 고상백(한국노동안전보건연구소(준) 연구기획실), p.18

연구소가 창립을 준비하던 시기에 작성된, 위의 <일터> 기사를 통해 확인할 수 있듯이, '근골격계 질환'은 2002년 대우조선 노동자들을 필두로 한 2003년 금속제조업 노동자들의 연이은 집단요양 투쟁을 통해 '노동자의 직업병'으로 세상에 등장했다. 물론 그 이전에도 한국통신 전화교환원, 현대정공 노동자들의 근골격계 질환 집단요양이 없었던 바는 아니지만, 2003년을 정점으로 진행된 금속제조업 노동자의 집단요양 투쟁은 그 성격을 달리하는 것이었다.

특정한 직업군에서 근골격계 질환이 발견되거나 전문가들에 의해 밝혀진 것이 아니었다. 노동자들이 현장조직화를 기반으로 "허리 아파 어깨 아파 사업주가 책임져라", "노동자가 철인이냐? 근골격계 대책 마련하라!", "아프나? 치료하자! 힘드나? 쉬었다 하자!"를 외치면서, 자신의 망가진 몸과 훼손된 신체를 '증거'로 내세워 이것이 직업병임을, 문제해결이 필요함을 요구하였다. 그리하여 근골격계질환이 주요한 사회문제로 등장하게 되었던 것이다.

1997~1998년 IMF-신자유주의 구조조정의 일환으로 대량의 정리해고가 횡행하던 노동현장에서, 함께 일하던 동료가 '산 자'와 '죽은 자'로 분류되어 공장 밖으로 밀려나가는 것을 지켜봤던 노동자, 동료들이 잘려나간 그 자리가 하청, 비정규직 등 불안정한 일자리로 채워지는 것을 지켜봤던 노동자, 누군가 떠난 몫까지 고스란히 할당되어 강화된 노동강도를 감내하며 생존을 위해 버텨왔던 노동자들. 바로 이들이 당시에는 생소했던 근골격계 질환을 '골병'으로 명명하였다. 나아가 집단요양 투쟁이라는 방식으로 운동을 조직했고, 근본적인 대책으로 '노동강도 강화 저지'를 내세웠던 것이다.

이러한 금속제조업의 집단요양 투쟁은 조직노동자들에게 '근골격계 질환이 직업병이며, 산재신청을 통해 치료받을 수 있다'라는 걸 널리 알리는 계기이자, 이 직업병의 원인이 노동강도 강화와 같은 집단적 요인에 있음을 깨닫게 하는 계기가 됐다. 이를 통해 '일하면 아픈 게 당연한 것', '나이 들면 아픈 게 자연스러운 것'이 아님을 알게 되었다. 나아가 나이, 키, 몸무게, 취미생활 등 개인적 요인이나 중량물 취급, 불안정한 작업자세, 진동 등 개별적 작업요인만이 아니라, 근골격계 질환의 집단적 발생에서 확인할 수 있듯이 노동과정의 조건(노동강도, 노동조건, 노동시간, 직무스트레스 등), 집단적 요인이 가장 밑바탕에 있음을 알게 됐다.

또한, 이 과정을 거치며 노동조합은 현장 조직화와 현장 개선의 소중한 경험을 축적하게 됐다. 당시 집단요양의 목표를 단순히 요양 승인에 두지 않았기 때문에, 요양자만이 아니라 현장조합원 전체가 자신의 노동조건을 개선하고 노동강도를 완화하는 현장 투쟁의 주체가 될 수 있었다. 이와 함께 노동자들의 투쟁은 '근골격계질환 유해요인조사의 도입'이라는 성과를 이끌어냈다. 국가가 주도하는 근골격계 질환 예방제도인 '유해요인 조사'는 세계적으로도 유례가 없는 것이었다. 유해요인조사와 관련한 법제도적 근거는 2003년 하반기 당시 산업안전보건법 제24조(보건조치), 산업보건규칙 제9장을 신설함으로써 새롭게 마련됐다.

그림. 연도별 업무상 질병자와 근골격계질환자 수. 출처: 직업성 근골격계질환의 발생 현황과 특성, 2010, 김규상·박정근·김대성, 한국산업안전보건공단 산업안전보건연구원.

발빠른 자본의 대응, 제도 안에 갇혀버린 노동자의 '골병'

앞서 밝혔듯이, 2003년 당시 '근골격계 유해요인 조사'의 법제화는 금속제조업 노동자들이 전개한 집단요양 투쟁의 성과였다. 하지만 동시에 더이상 투쟁이 진전되지 않는 한계 속에서 형성된 타협의 산물이기도 했다. 자본과 정부는 당시 확산 일로에 있었던 근골격계 투쟁을 효과적으로 막아서기 위한 제도적 수단이 필요했고, 노동 측에서는 직업병 인정 투쟁을 넘어 노동강도 저하 및 현장 통제력의 복원으로까지 투쟁을 확장하지 못하는 한계에 봉착한 상황이었다.

당시 자본은 근골격계 투쟁이 '아픈 노동자의 치료'를 넘어 실질적인 '구조조정 저지, 노동강도 강화 저지' 투쟁으로 나아가는 데 두려움을 느끼며, 이를 저지하기 위해 사활을 걸고 있었다. '골병'으로 아프지 않은 현장을 만들겠다는 노동자들의 투쟁은 적정 인력과 생산량 등에 대한 현장통제를 요구하는 운동으로 진전될 성격을 띠었기 때문이다. 자본은 이 투쟁이 이윤에 심각한 타격을 주고, 자신들의 고유영역인 경영권을 침해하는 것임을 재빠르게 간파했다.

이에 반해, 노동조합은 근골격계 투쟁이 가지고 있는 '노동강도 저지' 투쟁으로서의 본질적인 의미를 되새기는 데 한 발짝 늦었던 것이 사실이다. 실제 전면에는 '노동강도'의 문제를 내세웠으나, '당장 직업병으로 인정받아, 치료라도 받는 게 어디야'라는 인식들이 도처에 자리잡고 있는 현실도 존재했다.

"대부분의 사업장에서는 집단요양 투쟁을 전개한다는 자체만도 그리 쉬운 일이 아니다. 무엇보다도 사측의 유무형의 탄압, 건강진단 감시, 조사요원 사업장 진입방해(진입시 형사고발), 요양신청 철회 압력, 잔업특근 불이익, 계약직의 경우 계약만료, 폭력행사, 교섭 전면 거부 등등은 노동자가 기계 부품만도 못하다는 것을 뼈 저릴만큼 느끼게 한다. 그런데 집단요양 투쟁을 하고 그 다음에 해야 할 것을 보자면 이것이 일도 아님을 알게 된다." - 2) 일터 통권 1호(2003.08), 기획1, "근골격계 직업병 투쟁 어디를 향하여 갈 것인가", 김재광(노동강도강화저지와 현장투쟁승리를 위한 전국노동자연대), p.15

 
이 투쟁을 조직하는 과정은 2003년 8월호(통권 1호) <일터>가 당시 분위기를 전하고 있듯이, 대단한 각오를 필요로 하는 것이었다. 따라서 치료를 받는 데 있어, 자본과의 마찰을 최소화하는 것이 노동자에게 유리하다는 현실적 판단을 하는 경우들도 존재했던 것이 사실이었다. 이에 따라 법 조항과 노동부의 11개 근골격계 부담작업 고시 등 세세한 부분을 규정하는 데 있어 일부 마찰이 있기는 했으나, 현재 수준의 '절충된 타협안'이 도출되었다.

'근골격계 유해요인 조사'는 당시의 자본과 노동의 힘관계를 반영한 제도적 산물이었으며, 빠른 속도로 법제화되었다. 기존의 산업안전보건법에 규정된 다른 제도와 비교했을 때, 유해요인조사는 (정기 유해요인 조사뿐 아니라 질환자 발생에 따른 조사, 새로운 공정 도입에 따른 조사 등에서) 노동조합의 참여와 개입을 상당히 허용하였다. 그렇기에 현장 개선을 이끌어낼 수 있는 유력한 기제가 될 수 있었다는 점에서 다소간의 '긴장감 있는 절충안'으로 받아들여졌다고 평가할 수 있다.

한편, 집단요양 투쟁이라는 형태로 제기되었던 근골격계질환 산재 인정 요구는 승인율의 변화를 통해서도 확인할 수 있다. 투쟁 이후, 근골격계질환 승인율은 그 투쟁의 파고만큼이나 이전과는 다른 양상을 보여주었다. IMF-신자유주의 구조조정 시기인 1998년에는 업무상 질병자 중 근골격계 질환자는 124명(7%)에 그쳤었다. 집단요양 투쟁이 정점에 이른 2003년도에는 업무상 질병의 4532(49.6%)명에 이르며 승인율도 93.7%에 달했다. 이후 근골격계 질환이 정부와 자본의 적극적인 관리하에 들어가면서 2005년 2901명(38.7%)까지 하락했으나, 이후 점차 회복되며 2008년 이후 현재까지 70% 내외에 이르고 있다.

이러한 현실은 근골격계질환으로 고통받는 노동자들이 그만큼 많다는 것, 그만큼 산재 신청이 늘어나고 있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그러나 동시에 근골격계질환으로 치료를 받는 데 있어서, 여전히 산재 승인이라는 장벽이 존재하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는 지점이기도 하다.

제도화된 근골격계 유해요인조사의 현실

'근골격계 유해요인조사' 제도가 법제화된 이후, 총 6회의 정기 유해요인조사(3년마다 실시하는 정기 유해요인조사는 최초인 2004년, 2007년, 2010년, 2013년, 2016년, 2019년)가 이뤄졌다. 하지만 '근골격계 유해요인 조사'가 사업주의 의무로서 시행됨에 따라, 초기의 취지를 잃어버리고 형식적으로 시행하는 수준에 머물게 되었다. 현장에서 근골격계질환의 직업병 인정을 둘러싼 지형은 법제화 이전과 다른 형태를 띠게 된 것이다.

아래로부터의 조직화를 바탕으로 거리에서 분출했던 근골격계 투쟁은 개별 사업장의 담벼락 안으로 갇히고 말았다. 노동자가 주도권을 갖고 실시했던 현장조사는 회사와 이를 대행하는 전문기관의 손에 주도권을 내주게 되었다. 현장개선과 노동강도의 문제는 예방관리프로그램으로 봉합되며, 현장개선을 통한 예방의 영역으로부터 질환자 관리 및 치료의 영역으로 협소화되었다. 요컨대, 법제도의 틀 내로 운동이 포섭되어가면서, 노동강도 완화, 노동시간 단축, 노동자에 의한 현장 통제 등을 요구했던 정치적 투쟁으로서의 의미가 형해화되는 과정이었다고 할 수 있다.

그렇다면, 유해요인조사는 현재 어떻게 실시되고 있을까? 이를 2019년 안전보건공단이 실시한 작업환경실태조사 결과에서 일부 확인할 수 있다. 간략히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이 조사는 5인 이상 제조업과 5인 미만 제조업 중 산재발생의 가능성과 위험도가 높은 업종 9개를 표적업종으로 삼아 전수조사를 실시하고, 이에 해당하지 않는 제조업과 비제조업 중 유해·위험인자 다수 보유업종 13개를 표본조사한 것이다. 이 중 전수조사 대상인 10만 7665개 사업장 중 유해요인조사를 실시하고 있는 곳이 2만 7221개소(25.3%)인 것으로 나타났다. 그중 3년마다 정기적으로 실시하는 곳은 16.3%이며, 표본조사의 경우 유해요인조사를 실시한 비율이 전수조사보다 적은 7.6%로 그쳤다.

물론 이 자료를 통해서 더 자세한 현황을 파악할 수 없고 유해요인조사 실시 여부만을 확인할 수 있다. 하지만 이를 통해서 근골격계 유해요인 조사가 3년마다 실시해야 하는 사업주의 의무로 제도화되었음에도, 시행하는 곳에 비해 실시하지 않는 곳이 그만큼 많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이러한 결과는 초기 취지가 퇴색되었다는 평가와 별개로, 유해요인조사가 제대로 시행되고 있지 않다는 비판을 불러일으켰다. 이에 현재 정부 차원에서 실시율 자체를 높이기 위한 방안을 모색 중이라고 한다. 결국 법적 의무로 협소화되면서, 현장에서 유해요인조사를 실시할 내적 동력을 잃어버린 것은 아닐지, 돌아봐야 할 지점이라고 할 수 있다.

나아가 유해요인조사를 제대로 실시하도록 강제한다고 하더라도, 조사 자체의 실효성에 대해서도 의문이 제기된다. 2019년 고용노동부의 산재발생 현황을 살펴보면, 업무상 질병으로 치료를 받은 노동자의 67.2%가 근골격계질환으로 요양을 하고 있다. 이에 따른 사회적·경제적 비용은 상당히 크다. 유해요인조사를 통해 일차적으로는 산재 실태를 드러내고, 산재승인율을 높이는 데 일정한 도움이 될 수 있다. 그러나 조사가 궁극적으로 지향하는 바는, 이를 넘어서 작업환경 개선 등 근골격계질환 자체를 예방하는 것이다. 하지만 유해요인 조사의 실시율이 낮을 뿐만 아니라, 형식적으로 조사가 이뤄지고 있다. 이로 인해, 인간공학적 요인 개선 외에는 노동시간 단축, 교대제 전환 등을 통한 작업환경 및 노동강도 개선 논의로 이어지지 않고 있다.

이러한 상황에도 불구하고, '근골격계 유해요인 조사'를 활용하여 노동자가 주도권을 가지고 실시하는 현장조사를 통해 현장을 개선해가고 있는 금속제조업 현장의 모범사례들이 있다. 전문가들의 손에 맡겨져 대행하는 것이 아니라, 노동자 스스로 진행하는 근골유해요인조사 방식(현장조사 시트 등의 개선)을 끊임없이 모색하고 있다. 객관적·과학적이라는 이름으로 수행되는 인간공학적 평가 중심의 조사방식을 넘어, 수차례의 근골격계 유해요인조사 경험을 바탕으로 노동자의 현장 경험을 반영한 주관적 노동강도 평가를 적극 도입하고 있다.

또한 노동자의 치료·요양 경험을 진단하여 질환자에 대한 조치를 개선하고자 한다. 그리고 조사결과에 근거한 개선조치를 목록화화고 이행현황을 점검함으로써 작업환경을 실질적으로 개선해나가고 있다. 금속제조업 현장에서는 근골격계 문제를 사회화하는 '1라운드'를 거쳐, 본격적으로 현장에서 이를 둘러싼 현장개선과 노동강도의 문제를 둘러싼 '2라운드'를 치루고 있다고 할 수 있다.

이와 함께 최근 몇 년간의 노동조합 조직률의 증가와 함께 2000년대 초반 금속 제조업을 필두로 근골격계질환에 시달리던 노동자들이 이 문제를 사회화한 것처럼, 학교급식, 마트, 청소, 건설 등 다양한 업종의 노동자들도 산재신청과 근골격계질환 현황 드러내기를 통해 대책을 요구하고 있다. 이제 다른 현장 곳곳에서도 '1라운드'를 본격화하고 있다고 할 수 있다.

노동강도 완화 투쟁 중인 풀무원노조 조합원들. 출처: 풀무원 춘천지역 노동조합, 일터 통권 1호(2003.08) 수록.

유해요인조사 실효성 증진을 위한 개선과제

근골격계 유해요인조사가 예방을 위해 도입되었다는 본래 취지를 살려내기 위해서는, 보완되어야 할 지점들이 상당히 존재한다. 유해요인조사가 형식적 조사로 그치도록 하는 현실적 조건들이 있기 때문이다. 이는 노동자 투쟁을 통해 제도변화를 강제해야 할 부분이라고 할 수 있다. 당면한 과제를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첫째, 11개 부담작업으로 제한된 고용노동부 고시 기준의 폐기다. '근골격계 유해요인 조사'는 11개 부담작업을 기준으로 평가하도록 규정되어 있다. 그러나 이것은 도입 당시부터 상당한 비판을 받아왔다. 제조업의 라인 업무나 조선업 등만을 기준삼았기 때문이었다. 다양한 업종과 작업의 비정형적인 업무는 반영되지 않는 점, 성인 남성을 기준으로 하여 여성이나, 장년 등 일터에서 일하는 성별과 연령 차이에 대한 고려가 없다는 점, 하루 2시간, 5kg 등 시간과 무게를 일률적으로 제시하여 마치 그에 해당하지 않으면 근골격계질환이 발생하지 않는 것처럼 규정하고 있다는 점 등을 현장 노동자와 전문가들이 지속해서 비판해왔다.

그러나 해당 고시는 여전히 바뀌지 않고 있다. 대다수 사업장에서는 이를 기초로 본 조사에 앞서 예비조사를 실시하는데, 고시 기준에 부합하지 않는 상당수의 작업은 아예 조사 대상에서 제외되고 있다. 만약 본 조사에 포함되었다고 하더라도, 고시에 제시된 시간과 무게 등을 근거로 부담이 없는 작업으로 평가받기도 한다. 따라서 고시 기준을 폐기하기 위한 제도 개선이 필요하다.

둘째, 유해요인조사의 내용이 인간공학적 평가로만 제한되고 있는 현실을 바꿔내는 일이다. 대다수 현장에서 유해요인조사를 실시할 때, 작업장 상황이나 작업조건 등 사업장 현실 전반에 대한 종합적인 조사를 수행하지 않는다. 단지 인간공학평가와 그에 따른 개선만 다루고 있다. 이는 근골격계질환의 주요 부담요인, 근본요인을 제대로 반영하지 못하는 결과로 이어진다. 또한 인간공학평가 중심의 유해요인조사는 외부전문가에 대한 의존도를 높이고, 이로 인해 현장 노동자의 참여를 어렵게 만든다. 그 결과, 노동자가 현장조사의 주체가 아니라 조사 대상으로만 머물게 될 위험이 있다.

셋째, 유해요인조사가 근골격계질환의 예방에 있어 실질적 역할을 하도록 개선해야 한다. 이는 본래 취지를 되살리는 일이다. 예를 들어, 유해요인조사가 특정 평가로 제한되고 형식적으로만 시행되면서, 사업주에게 작업환경개선 조치를 요구해야 할 사항들이 '운동범위의 축소, 쥐는 힘의 저하, 기능의 손실 등'과 같이 노동자 개인들이 유의해야 할 사항, 개별적 조치 사항으로 협소해지고 있다. 또한 현장개선요구조차 '인간공학적으로 설계된 인력작업 보조설비 및 편의설비를 설치' 등 인간공학적 개선에 편중되어 있다. 또한 사업장 인력 대비 일정 규모 이상의 근골격계 질환자 발생 및 산업재해 인정 여부를 기준 삼아, '예방관리프로그램의 시행을 의무화'하고 있기에 배제되는 사업장들이 다수 발생하여, 보호·예방에 실효성을 갖기 어렵다.
   
앞으로 주목해야 할 것

근골격계질환은 특정 업무, 특종 직군에게만 나타나는 질병이 아니다. 일하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이 병에 노출될 수 있고, 누구든지 이 병의 고통에 시달릴 수 있다. 다만, 그 고통의 현실을 노동조합 등 조직적 운동을 통해 세상에 드러내 '직업병'임을 알리고 앞서서 대책을 요구하며 현장을 개선한 노동자들과 뒤늦게 이를 '직업병'으로 자각하고 현장 개선을 고민하기 시작하는 노동자들이 있을 뿐이다.

현재 '일하다 보면 아픈 게 당연한 것이 아니다'라는 것을 자각한 노동자들이 일부 조직되어 있다면, 여전히 대다수의 노동자는 '일하다 보면, 아픈 게 당연하다'는 생각에 머물고 있고, 자본은 이윤 축적을 위해 끊임없이 노동자들을 골병들게 하고 있다. 그렇기에, 근골격계질환은 앞으로도 지속적으로 사회문제로 등장할 가능성이 있으며, 이에 대한 적극적인 고민이 필요하다.

특히 전통적인 제조업을 넘어 노동시장, 고형태의 변화에 따른 다양한 현실을 반영하여 근골격계질환에 대한 대책이 적극적으로 수립될 필요성이 있다. 앞서 고용노동부의 11개 고시를 폐기할 필요성을 언급하며 지적했던 제조업 남성노동자에 국한된 범정부적 인식은 노동시장과 고용 형태 변화에 매우 취약할 수밖에 없다. 이미 노동시장은 전통적인 제조업으로부터 다양한 서비스직군의 출현에 따라 그 중심이 변화하고 있으며, 여성이나 고령 노동자가 고용시장에 진입하면서 단속적 노동, 비정형 노동, 불안정 노동 등이 지배적인 노동형태로 등장하고 있다. 이를 반영한 근골격계질환에 대한 '보호와 예방' 대책뿐 아니라, '치료와 재활'을 위한 대책이 절실하다.

한편, 이러한 현실은 근골격계 유해요인조사를 진행해 왔던 금속제조업 현장에서도 변화의 필요성을 제기하고 있다. 실제 신규 고용이 창출되지 않는 제조업 현장에서 노동자들의 고령화는 매우 시급한 문제가 되었다. 장년 노동자에게 적합한 근골격계 유해요인조사 기준을 새롭게 마련하는 것이 더이상 미뤄져선 안된다.

마치며
 

일하는 사람이면, 누구나 노출되며, 고통받을 수 있는 근골격계질환은 한국 사회에서 역사적인 금속제조업 노동자의 투쟁을 통해 비로소 '직업병'으로 등장했다. 이후 이를 둘러싼 투쟁과 싸움은 그 진폭은 줄었지만, 다양한 형태로 반복·변주되고 있다. 근골격계질환은 일하고 있는 이들 모두에게 '당신은 얼마나 인간적인 노동을 하느냐'의 질문을 던진다. 동시에 우리 사회에도 끊임없이 되묻고 있다. '골병 들지 않는 일터', '인간다운 노동을 하는 일터'가 어떻게 가능하며, 그 기준이 어떻게 설정되어야 하느냐고 말이다. 그 기준은, 다른 무엇이 아닌 노동자의 몸과 삶이어야 하지 않냐고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