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터 정신질환 짚어보기] 캐나다 온타리오 주(州)의 자살 사례 검토- 산재보상심판소 사례를 중심으로 / 2020. 08

[일터 정신질환 짚어보기]  

 

산재보험 취지에 부합하는 업무상 정신질환 판정을 요구한다캐나다 온타리오 주(州)의 자살 사례 검토- 산재보상심판소 사례를 중심으로 

 

 최혜란 업무상 정신질환연구팀, 직환의

캐나다의 온타리오주에는 우리나라의 근로복지공단에 해당하는 WSIB(Workplace Safety and Insurance Board)가 있다. 여기서 업무상 질병에 대한 승인 여부를 먼저 판단하고, 불승인되는 경우 재심사를 요청할 수 있다. 재심사에서도 불승인되면 WSIAT(Workplace Safety and Insurance Appeals Tribunal, 산재보험심판소)에 제소를 할 수 있다. 캐나다의 각 주에는 온타리오주의 WSIAT과 같이 산재 사건만을 전문적으로 다루는 특수 법원이 설치되어 있다. 한국에는 산재를 전문으로 하는 특수법원은 없고, 행정법원이 이와 비슷한 역할을 수행한다.

WSIAT에 제소된 사례는 처음부터 전면 재검토를 한다. 재검토 과정 중에는 검토 대상이 되는 자료에 대해 신청인과 피신청인이 모두 확인하고 추가로 자료를 제출할 수 있는 절차를 거친다. 이러한 절차를 걸쳐 나온 WSIAT의 결정은 사실상 최종 판정이다. 아주 드물게 연방대법원에서 법리 검토를 하는 경우가 있지만 WSIAT의 결정이 바뀌는 일은 거의 없다. 

온타리오주 산재보험심판소(WSIAT)의 자살 판정 사례 소개

WSIAT은 1984년 설립 이후 현재까지 모든 제소 건에 대한 판결문을 홈페이지에 공개하고 있다. 1984년부터 2018년까지 '자살'을 키워드로 하여 검색한 결과 총 29건의 사례를 발견할 수 있었다. 승인된 사례 대부분은 업무상 사고를 겪은 뒤에 발생한 우울증이나 약물의존 상태에서 자살한 경우였다.

캐나다에서도 업무상 스트레스로 인한 정신질환을 산재보험에서 적극적으로 수용하기 시작한 것은 2018년부터이므로 최종 판결기구인 WSIAT에 제소된 사례는 많지 않았을 것으로 파악된다. 또한, 캐나다의 자살률은 인구 10만 명당 11.8명으로 25.6명인 한국의 절반 이하인 점을 고려할 필요가 있다. 자살로 승인 또는 불승인된 사례 중 인상 깊은 사례 2건을 소개한다.

(사례1) A씨는 1987년에 업무상 사고로 허리 부상을 당했다. 이후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로 인정되어 장애 연금을 수령했다. 그 후 1997년 9월에 자살하였다. A씨는 자살 전, 딸과 손녀가 교통사고로 사망하는 등 업무와 무관한 심각한 스트레스 사건을 겪었으나, 이 사건을 판정한 패널들은 정신적 외상 장애도 A씨가 자살에 이르게 한 중요한 기여 요인이었다고 판단하여 업무상 사망이라고 승인하였다.

위의 사례에서는 산재 사고 이후 발생한 정신질환이나 심리적 곤란함을 연속적인 맥락에서 판단하였다. 매우 중대한 개인적인 요인이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자살을 업무상 사망으로 보고 승인하였다. 즉 기존의 정신질환이나, 업무와 무관한 갈등이 있는 사례일지라도, 심리적인 곤란함이 개인의 영역과 업무의 영역으로 명백하게 분리될 수는 없다는 관점이 드러난다.

(사례2) B씨는 2013년 10월 우측 어깨와 윗 등 부상을 입었다. 이로 인해 만성통증이 생겼고 이에 대해 장애급여를 지급받고 있었다. 이후 통증으로 인해 자살시도를 하였으나 실패하였고 B씨는 자살시도에 대해 수급 자격요청을 했다. 그러나 자살할 경우 노동자의 피부양자에게 급여를 지급하도록 규정한 요건이 있어서 불승인하였다.

의도적인 '자해'는 산재보상의 대상이 아니지만, 심각한 부상 이후 만성통증이 입증된 사례라면 그 당시의 자살시도는 정상적인 판단하에 이루어진 '의도적' 행동이라고 보기는 어려울 것이다. 그러나 이 사례는 '성공하지 못한 자살시도'는 급여 지급의 조건을 충족하지 않는다고 판단하였다. 만일 이와 같은 사례가 누적되면 '성공한 자살시도'만이 보상 대상이라는 메시지를 전달하게 될 위험이 있어 보인다.

2018년 이후 업무상 정신질환 승인 3배 증가

온타리오주는 업무상 정신질병에 대한 산재보험 적용 규칙(policy)을 신설하고 2018년 1월부터 적용하기 시작하였다. 2002년~2010년까지는 전체 산재 승인 건수 중 업무상 정신질환은 1% 미만이었고 2011년~2016년까지는 1%대에 그쳤다. 그러나 2017년에는 2.6%, 2018년에는 3.1%로 증가하던 것이 2019년에는 9%로 약 3배 급증했다(그림 1).

온타리오주는 최근 몇 년간 보수정당이 행정부를 운영하며 업무상 질병 승인에 대해서도 보수적인 판정을 내리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럼에도 업무상 정신질환에 대한 신청이 증가하면서 이에 대한 대응으로 새로운 규칙을 제정하였고 그 여파로 업무상 정신질환의 승인이 크게 증가한 것으로 보인다. 제정한 규칙에 업무상 스트레스 요인으로 직장 내 괴롭힘, 업무와 관련한 만성적인 고강도 스트레스 등을 명시하고 있다. 전체 산재 중 차지하는 부분은 적지만 캐나다에서도 역시 국내와 같은 맥락의 업무상 정신질환 문제가 사회적 이슈로 대두되고 있음을 알 수 있는 대목이다. 

그림 1. 온타리오 주 산업재해 원인(2019년). 출처: WSIB 별표2 가입사업장의 2019년 연례보고서

한국과는 어떻게 다른가? 

첫째, 현저한 자살률의 차이를 들 수 있다. 앞서 언급했듯이 캐나다의 자살률은 우리나라의 절반 이하이다. 이런 상황은 고혈압 환자 수가 2배나 차이 나는 두 국가에서 심근경색으로 인한 사망을 비교하는 문제와 비슷하다고 볼 수 있다. 또한, 대만, 일본, 한국 등 동아시아에서 이슈인 '과로사'나 '과로자살'은 캐나다에서 그다지 주목하지 않는다. 이 분야는 소위 '선진국 모델'이란 건 없으니 우리 사회가 안고 해결해야 할 문제임을 실감한다.

두 번째 차이는 행정력에 있다. 앞서 소개한 WSIB 직원 수는 3800명이며 산재보험 가입자는 약 540만 명이다. 반면, 한국 근로복지공단 직원은 6900명이고 산재보험 가입 노동자는 1856만 명에 달한다. 업무의 범위에는 차이가 있겠으나 한 사람의 직원이 담당해야 하는 가입자 수가 WSIB는 1421명, 근로복지공단은 2690명으로 크게 차이가 난다. 즉, 한국의 산재보험 행정력이 상대적으로 약하다. 캐나다와 한국 모두 업무상 정신질환에 대한 신청이 증가하는 상황에서 양쪽의 행정력의 차이가 장기적으로 어떤 결과를 가져오게 될지는 알 수 없다. 그러나 산재신청시 신속한 처리와 조사의 신뢰성이 담보되기 위해서는 개선될 필요가 있는 영역이다. 

셋째는 최종 판결에서 정보의 투명성이다. WSIAT에서는 제출된 자료를 검토한 뒤 당사자의 확인 절차를 반드시 거친다. 또한, 최종 판정문을 홈페이지에서 쉽게 다운로드 받을 수 있고(개인정보 등은 삭제됨) 심지어 판정인의 실명도 공개된다. 이처럼 투명한 정보공개를 통해서 WSIAT는 신뢰를 얻고 한편으론 사회적인 갈등을 잠재우는 수단으로 기능하기도 한다. 산재 판정을 두고 발생하는 국내의 갈등을 비추어보면 노동자와 사업주 간의 정보공개의 중요성과 행정 처리의 투명함도 사회적 상호 신뢰를 형성하는 데 매우 중요한 부분이다.

물론 캐나다와의 단순 비교나 어떤 제도 등을 그대로 도입하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다. 해외 사례와 비교할 때는 국내의 사정에 맞는 평가와 비교가 필수적이기 때문이다. 캐나다와 우리나라는 산재보험의 역사도 다르고 작동하는 기제 또한 차이가 있다. 다만, 두 나라에서 공통적인 것은 산재보험을 둘러싼 각각의 이해당사자들(특히 노동자 측)이 제도의 개선을 위한 목소리를 계속 내야 합리적인 수준의 합의가 이루어진다는 점이다. 우리 사회에서 업무상 정신질환이 산재보험의 영역에서 논의되기 시작했다. 그만큼 앞으로의 발전을 위해서는 이해당사자들의 적극적인 참여와 논쟁이 필요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