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집2. 이동노동자의 화장실 접근권 문제 / 2020.03

[모두를 위한 화장실과 일터의 평등②] 

 

 

 

이동노동자의 화장실 접근권 문제 

 

 

 

재현 / 운영집행위원 

 

 

 

이동 노동자는 대리운전 기사, 택배 기사, 가전제품 설치·수리 기사, 방문 교사, 집배원, 배달원, 방문 판매원, 방문 점검원 등과 같이 정해진 장소에서 일하지 않고 이동하면서 업무를 수행하는 노동자들을 말한다.

최근 산업 구조와 환경의 변화로 플랫폼(platform)을 기반으로 노동 및 서비스의 수용과 공급이 연계되는 방식을 통해 생산과 소비가 조직되는 디지털 특수형태 노동자가 점차 늘어나고 있는데, 플랫폼 노동이 이동 노동자와 결합하는 양상을 보인다.

이동 노동자의 규모

정부 부처나 연구기관의 자료, 언론 매체를 통해 드러난 업종별 이동 노동자 수를 <표 1>에 정리하였다. 포함되지 않은 노동자들도 있어 명확한 규모를 알기는 어려우나 대략적인 규모를 가늠해 볼 수 있다.

 

<표1> 이동노동자의 규모를 추산했다.

 

기본적인 생리 현상도 해결하지 못하는 현실

이동 노동자들은 열악한 노동조건을 견디며 일하고 있는데, 이 글에서는 아주 기본적인 생리 현상조차 해결하지 못하는 문제를 조명해보고자 한다. 이동 노동자들은 안정적으로 생리 현상을 해결할 수 있는 공간 자체가 없다 보니 각자가 참고 견디는 상황이었다.

"언론사에서 저희가 일하는 것을 보겠다고 동행취재를 왔었어요. 그때 우리가 일하면서 물을 마실 수가 없다고 이야기한 게 기사로 나갔는데, 그걸 본 사람들이 댓글에다가 '웃기지 마라, 가까운 은행도 있고 물 마실 데가 얼마나 많이 있냐' 그러더라고요. 저희는 물이 있어도 그 물을 마실 수가 없거든요. 화장실을 이용하려면 일하던 곳에서 20~30분 정도는 왔다 갔다 해야 하니까 그냥 안 마시는 거죠."(이동 노동자1)

"집에 방문하다 보면 물을 주시는 분들이 있어요. 여름에는 땀을 많이 흘리기 때문에 마셔도 괜찮은데 겨울에는 물을 안 마셔요. 누가 주신다고 해도 죄송하다고 하고 안 받아요. 어떤 분은 뚜껑을 꼭 열어서 음료수를 주니까 안 마실 수가 없는 경우도 있고요."(이동 노동자2)

"저희가 화장실에 못 가는 문제로 방광염에 걸려서 입원할 때가 있어서 그날은 일을 못 한다고 회사에 연락하면 콧방귀도 안 뀌더라고요."(이동 노동자3)

"저는 한 번 정말 화장실이 급해서 참다 참다가 사람들 눈에 안 보이는 곳에 숨어서 볼 일을 해결한 적이 있어요. 제가 담당하는 지역이 평창동이라 집 담벼락들이 높고 걸어서 이동하는 사람이 적은 동네라 몰래 했는데 그럴 때는 창피하고 그래요."(이동 노동자4)

"과외 일을 할 때 저는 주로 전철역을 이용했고 다른 선생님들에게도 보편적인 방법이었어요. 아주 가끔 백화점이나 쇼핑몰 화장실을 이용했고요. 아무래도 쾌적하고 청결하거든요. 정말 급할 때는 과외를 하러 간 학생 집에 있는 화장실을 이용할 때도 더러 있었는데 사실 굉장히 불편했어요."(이동 노동자5) 

공공 화장실을 이용하기 어려운 상황에 놓인 이동 노동자들은 긴 시간 생리 현상을 참으면서 일하고 있었다. 그 결과 이동 노동자들은 방광염 같은 질병을 얻기도 한다.

이동 노동자를 위해 만들어진 쉼터

이동 노동자들의 화장실 이용은 물론 휴식 공간 제공을 위해 2016년 서울시와 서울노동권익센터에서 휴(休)서울이동노동자 쉼터를 열었다. 현재 다섯 곳의 쉼터를 운영 중이며, 이후 경기도, 경상남도, 제주도에서도 쉼터 운영을 시작했다. 초기에 쉼터를 이용하는 노동자는 대리운전 기사들이 다수였지만 버스 운전기사, 퀵서비스 기사, 요양보호사, 보험 설계사, 학습지 교사, 집배원, 우유 배달원, 방문판매원, 가사도우미, 아이돌보미 등으로 점차 다양해졌다.

내용 면에서도 화장실과 휴식 공간을 제공하는 것뿐만 아니라 건강, 법률 상담을 비롯해 인문학 강좌 등 문화 프로그램을 운영하는 방향으로 발전해 나가고 있다. 2019년 쉼터를 설치한 제주도의 경우 전국서비스산업연맹 제주지역본부 노동조합이 위탁 운영을 맡게 되어 이동 노동자의 조직화도 고민할 수 있는 거점이 될 것으로 기대된다.

쉼터를 넘어서는 고민이 필요하다

 

이동/방문노동자 등 모든 노동자가 이용할 수 있도록 공중화장실 개방이 필요하다.

 

쉼터라는 공간이 갖는 의미와 효과를 전국적으로 확대하기 위해 지방자치단체가 예산을 마련하고, 이동 노동자들의 필요와 요구를 반영하여 쉼터를 만들고 운영해나가는 노력을 지속해야 하겠다. 정부와 국회는 20대 국회가 발의한 국가 또는 지방자치단체가 플랫폼노동 종사자의 노동환경을 개선하도록 휴게시설 등을 설치·운영하도록 하는 내용의 '근로복지기본법 일부개정법률안'을 21대 국회에서는 반드시 통과시키도록 힘써야 한다. 그러나 쉼터를 늘리는 것만으로 이동 노동자의 화장실 접근권 문제를 해결할 수는 없다. 이번 기회에 다양한 방안에 대해 고민을 이어나갔으면 한다.

또한 생리 현상을 해결하고 개인위생을 보호하기 힘든 이동 노동자의 노동 조건에 대해 전 사회구성원들이 관심을 가지도록 하는 것 역시 중요하다. 가령 정부가 실태를 알리고 동네 곳곳의 카페, 편의점 등에서 일하는 노동자들이 사용하는 화장실을 이동 노동자들도 이용할 수 있도록 캠페인으로 제안하고 이를 안내하는 것이다. 그뿐만 아니라 종교 시설, 아파트 관리시설 등에 있는 화장실 역시 이동 노동자들이 편하게 이용할 수 있는 분위기가 되도록 정부 차원에서 적극적으로 장려할 수 있겠다. 이동 노동자의 화장실 이용에 대해 사업주가 일정 금액을 급여나 수당으로 부담하도록 하는 방식도 가능할 것이다.

이러한 조치는 단순히 서로에게 호의를 베푸는 문제를 넘어 특히 코로나19와 같은 사회적 재난 상황에서는 모든 사회 구성원의 건강과 안전을 위해서도 꼭 필요하겠다는 생각이 든다. 가령 손 씻기와 마스크 착용 등 철저한 개인위생이 요구되는 지금과 같은 시기에도 이동 노동자들은 손 씻을 곳조차 찾기 힘들다. 그렇다고 이동 노동자에게 충분한 손 소독제와 마스크를 지급할 수 있는 상황도 아니다. 개별화되어 있는 이동 노동이라는 고용 형태로 인해 이것을 지급해야 할 의무가 있는 주체가 명확하지도 않다. 따라서 정부는 물론 이동 노동으로 인한 혜택을 누리고 있는 사회 구성원들에게도 함께 노력해야 할 의무와 책임이 있다고 생각한다.

무엇보다 이동 노동자가 자신의 건강을 위해 마음 편히 생리 현상을 해결할 수 있는 충분한 휴식 시간과 여유가 보장되어야 한다. 이것이 가능해지려면 업무량이나 건수에 의해 임금이 책정되는 노동 조건과 임금 체계 등의 개선과 더불어 고용안정이 보장되어야 한다. 나아가 이동 노동자의 생리 현상뿐만 아니라 미세먼지, 폭염, 혹한 등 기후 환경과 외부 조건으로도 노동자들이 안전하고 건강하게 일할 수 있는 종합적인 대책에 대한 고민이 필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