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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장의 목소리] 빼앗긴 노동, 빼앗길 수 없는 희망을 위한 투쟁 / 2020.02 빼앗긴 노동, 빼앗길 수 없는 희망을 위한 투쟁 - 금속노조 시그네틱스 분회 윤민례 분회장 인터뷰 정재현 상임활동가 시그네틱스(주)는 1966년 9월 12일 산업의 쌀이라고 불리는 반도체 전자산업을 한국에서 처음 시작한 기업이자 최초의 외국인투자기업이었다. 한국에서 반도체 사업 이끌었던 사업장이다보니 삼성전자, 엘지전자 등이 기술을 배우러 올 만큼 시장에서의 영향력이나 높았고, 이곳에서 일하는 노동자들의 자부심 역시 상당했던 현장이었다. 그런데 1975년에는 필립스가 1995년에는 거평 그룹이 지분을 인수했다가 기업 부도로 2000년 영풍 그룹의 계열사로 넘어가면서 시그네틱스 노동자들의 삶은 완전히 바뀌었다. 18년의 세월동안 3번의 해고를 당하며 소소하고 평범했던 일상은 까마득한 과거가 되었고 눈물겨운.. 더보기
월 간 「일 터」/[현장의 목소리]

[현장의 목소리] 빼앗긴 노동, 빼앗길 수 없는 희망을 위한 투쟁 / 2020.02

빼앗긴 노동, 빼앗길 수 없는 희망을 위한 투쟁

- 금속노조 시그네틱스 분회 윤민례 분회장 인터뷰

 

정재현 상임활동가

 

시그네틱스()1966912일 산업의 쌀이라고 불리는 반도체 전자산업을 한국에서 처음 시작한 기업이자 최초의 외국인투자기업이었다. 한국에서 반도체 사업 이끌었던 사업장이다보니 삼성전자, 엘지전자 등이 기술을 배우러 올 만큼 시장에서의 영향력이나 높았고, 이곳에서 일하는 노동자들의 자부심 역시 상당했던 현장이었다. 그런데 1975년에는 필립스가 1995년에는 거평 그룹이 지분을 인수했다가 기업 부도로 2000년 영풍 그룹의 계열사로 넘어가면서 시그네틱스 노동자들의 삶은 완전히 바뀌었다. 18년의 세월동안 3번의 해고를 당하며 소소하고 평범했던 일상은 까마득한 과거가 되었고 눈물겨운 투쟁을 겪어야 했다. 그리고 지난해 12월 시그네틱스 노동자들의 이야기가 <빼앗긴 노동 빼앗길 수 없는 희망 : 시그네틱스 노동자 18년 투쟁의 기록>이라는 책으로 세상에 나왔다.

 

반도체 전자산업 현장의 어두웠던 이면

 

전남 곡성에서 태어나고 자란 윤민례 분회장은 19882월 고등학교를 졸업하자마자 3월 서울 염창동에 있는 시그네틱스에 입사했다. 윤민례 분회장에게 시그네틱스 현장은 첫 직장이자 마지막 직장인데 2001년에 해고 되어 지금껏 출근하지 못하고 있다.

 

서울 화곡동에 언니가 살고 있었는데 동네에서 시그네틱스가 굉장히 유명했다. 언니가 나를 입사시키려고 직원 모집하는데 접수를 했고 회사에서 면접 보고 국영수 시험을 봤다. 반도체 공장 설비가 미국에서 사용하던 것들이라 키가 157CM 이상 넘어야 하고 영어를 아는 여성 직원만 선발하는 게 기준이었던 거다. 1차 모집은 서울에 주소지를 두고 있는 사람만 선발해서 떨어졌고 2차 모집에서 합격했다. 이후 6차까지 모집이 이어졌다.”

 

윤민례 분회장과 같은 시기에 입사한 노동자들은 시그네틱스가 새로운 제품 제작을 시작하면서 만들어진 공정에서 일했는데 그해 연말 이상한 일이 벌어졌다.

 

“1년 내내 일했는데 갑자기 12월 연말이 되니까 회사에서 사람을 해고한다는 이야기가 나왔다. 지금 미리 사직서를 제출하면 1달치 월급을 주고 아니면 그냥 나가야 하니까 미리 제출하라고 사람들을 압박했던 거다. 그래서 나도 사직서를 썼는데 같이 일하던 언니들이 이거는 월급 많이 받는 선배들 나가라고 하는 거니까 너는 가만히 있으라고 했다. 게다가 우리는 황산을 온종일 쓰면서 일하는데 누가 오려고 하겠냐고 걱정하지 말라고 했다. 그때는 필립스 자본이었는데 이런 식으로 매년 사람을 뽑고 정리하는걸 알게 됐다.”

 

윤민례 분회장은 일하면서 노동조합을 만나고 새로운 세상을 눈을 뜨게 되었다. 입사 당시 1988년은 87년 노동자 대투쟁 이후 현장에서 노동운동이 활발했고 시그네틱스가 유니온샵이었기 때문에 노동조합 활동을 자연스럽게 만날 수 있었기 때문이다.

 

현장은 87년 노동자대투쟁의 열기가 남아있을 때라 아주 활동이 활발했다. 개인적으로는 대의원을 할 때 같이 일하던 부서 사람들이 황산을 사용한 것 때문인지 부인과 질환으로 수술하거나 유산한 경우가 있었다. 그래서 관리자들에게 적어도 임신 중에는 직접 황산을 사용하지 않는 다른 부서로 배치해달라든지, 특수건강검진을 요구하고 받도록 하는 것, 위험수당 도입 이런 것들을 제안하고 요구하는 활동을 했다. 나도 나중에 첫째 아이를 임신했을 때 다른 부서에 배치 받았다가 다시 돌아왔다.”

 

시그네틱스 노동자들을 불행하게 한 거평과 영풍

 

1995년 건설업과 부동산업의 성공으로 갑자기 덩치를 키운 거평 그룹은 필립스로부터 시그네틱스를 인수했는데 이후에도 무분별한 계열사 확장으로 경영이 어려워졌다. 게다가 염창동 공장 부지를 담보로 융자를 받아 파주에 땅을 사들여 새로운 공장을 짓기로 하면서 부채 비율이 높아지면서 경영은 더 어려워졌고, 노동조합을 인정하지 않으려 진행한 직장폐쇄에서 노동조합은 패배했다. 결국 거평 그룹은 워크아웃 상황에 놓였고 노동조합은 임금 동결, 상여금 반납 등 위기를 벗어나기 위해 많은 권리를 양보하면서 2000년 워크아웃 상태를 벗어났다. 노동자들은 회사와의 상생을 위해 많은 것을 포기했는데 영풍 그룹은 이런 노동자들을 탄압했다. 안산으로 공장이전하기 전 이주불가자라는 이름으로 희망퇴직을 받으면서 190명이 사직하게 된 것이다. 2000년 거평 그룹을 인수한 영풍 그룹은 거평 보다 더 악날했다. 본사가 있는 파주에 모든 노동자들을 데려가는 것으로 사람들은 알고 있었는데, 갑자기 경기도 안산에 공장을 만들고 모두 이곳으로 내쫓으려고 한 것이다.

 

영풍 그룹은 안산으로 공장을 이전하면서 최대한 많은 노동자들을 해고하고 노동조합 역시 무력화 시키려고 했다. 그리고 파주공장은 노동조합이 없는 100% 비정규직 공장으로 만든다는 것이 큰 계획이었다. 파주공장은 노동조합이 없는 100% 비정규직 공장으로 만든다는 큰 계획이 있었다. 이후 영풍 자본은 끊임없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3번의 해고를 비롯해 노조파괴를 일삼았다. 윤민례 분회장은 노동조합 간부로써 2007년부터 현재까지는 분회장으로써 시그네틱스 투쟁을 승리로 만들어야 한다는 책임감을 어깨에 지고 살아야 했다.

 

어떤 조합원들은 제가 장기 집권한다고 이야기들을 하는데 워낙 현장 상황이 긴박하게 돌아갔기 때문에 지금까지 시간이 어떻게 흘러갔는지도 실감이 나질 않는다. 해고 싸움해서 이기고 현장으로 복직하면 출근을 못하게 하고, 하청 회사로 들어가라고 하고 또 싸우다가 해고되고 복직하면 몇 년째 일을 안주고 휴업해버리고 늘 전쟁을 치루는 상황이었다.”

출처: 알라딘

 

빼앗긴 사람들에게 희망이 되고 싶었던 투쟁

 

오랜 기간 시그네틱스 노동자들의 투쟁에 관심을 기울여왔던 박일환 작가는 18년이라는 기나긴 시간동안 왜 이들이 싸움을 멈출 수 없었는지, 오늘도 거리에서 싸우고 있는 이들과 연대하기 위해 노동조합에 책 작업을 제안했다.

 

작가 선생님께서 우리 투쟁에 관심이 있었다고 들었고 현장에서 조합원들과 만나면서 책을 쓰고 싶다는 연락을 주셨다. 우리는 그렇지 않아도 지금까지의 투쟁을 백서로 남기고 싶은데 그럴 예산이나 여력이 없어서 못하고 있다고 말씀드렸다. 시간이 지날수록 여기저기 찾아서 나오는 기록들 말고 뭐랄까 조합원들이 직접 겪었던 경험이나 기억이 잊혀지는 것이 너무 아쉬웠다. 43일부터 책 작업을 시작하기로 했고 저희가 127일에 조합원들과 연말 송년회를 앞두고 있다고 하니 이때 우리에게 선물로 꼭 주고 싶다며 작업을 진행하셨다.”

윤민례 분회장에게 이번 책 작업에서 느낀 점, 의미는 무엇이라고 생각하는지 물었다.

 

우선 글이 너무 좋았다. 작가님이 제가 하나를 표현하면 열을 담아주신 것 같다. 다른 동지들도 역대 투쟁 사업장 백서보다 이번이 훨씬 좋은 책이다, 하루 만에 쭉 읽을 수 있었다는 분들이 있었다. 그래서 자신 있게 이야기한다. 이 책을 꼭 저희한테 사시라. 한 권 사면 저희한테 투쟁 기금이 들어온다. 그리고 꼭 읽어 봐주셨으면 좋겠다. 왜냐하면 영풍 자본이 우리를 이렇게 힘들게 했지만 견디었고, 지나간 세월을 기억해주는 것만으로도 어쩌면 우리는 승리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영풍 자본의 만행을 시간이 지나면서 잊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하고 누군가 꼭 기억해주기를 바란다.”

 

이번 책 제목인 <빼앗긴 노동 빼앗길 수 없는 희망>은 어떻게 정해졌는지, 어떤 부분이 와 닿았는지 궁금했다.

 

가제목으로 몇 개 주셨는데 처음부터 이 제목이 확 와 닿았다. 우리는 빼앗기고 버림받은 사람들인데 이러한 처지에 있는 사람들에게 시그네틱스 투쟁으로 희망을 만들어보고 싶다. 저희는 노동조합도 있었고 정규직이었는데 영풍 그룹은 노동조합을 없애려 단체협약 해지 통보와 해고를 반복했다. 그러나 19년간 투쟁사업장으로 지내오면서 3번의 해고도 이겨서 극복해왔다. 2001600여명의 조합원에서 202025명이 되었지만 저는 그 숫자가 적지 않다고 생각한다. 영풍은 우리의 것을 다 뺏어가려고 탄압했지만 버티고 견디었다. 다시 되찾고 싶고. 못 되찾더라도 이를 알려내는 것이 남아있는 과제라고 생각한다.”

 

윤민례 분회장은 분회장 역할과 함께 금속노조 경기지부 가)안산시흥지역지회에서 안산반월시화공단에 있는 영풍전자, 코리아써키트, 인터플렉스, 테라닉스 등 영풍 그룹 산하의 전자 계통 계열사 노동자들에게 시그네틱스 투쟁 상황과 영풍 자본의 악독함을 알려내는 활동을 하고 있다. 훗날 이들과 함께하게 될 날을 기약하면서 말이다.

 

여전히 끝나지 않는 싸움

 

시그네틱스는 2016년 폐업 수순을 밟았고 위로금을 받고 퇴사한 조합원을 제외한 9명이 끝까지 남았고 해고 되었다. 이후 소송을 통해 해소 무효 판정을 받았다. 판정 이후에도 영풍 그룹은 경기도 광명에 있는 아파트형 공장으로 이전하고 공장 설비를 갖추지 않고 일을 시작할 수 없다며 1년 넘게 휴업을 시켰다. 이후 노동조합은 영풍 그룹이 위장휴업을 하고 있으니 즉시 고용해달라고 다시 소송을 걸었고 2019920일 위장휴업과 강제휴직 철회를 요구하는 소송에서 또다시 승리했다. 그러나 여전히 노동자들은 일을 하지 못하는 상황이고 영풍 그룹은 다시 항소를 했고 2심 재판은 아직 진행 중이다.

 

매일 출근은 하는데 일이 없어서 대기하다가 퇴근하는 일을 반복하고 있다. 2주에 한 번씩 임단협 교섭을 하고 있는데 회사는 늘 사정이 어렵고 무급휴직, 희망퇴직, 구조조정이 필요하다 이런 이야기를 흘린다. 이렇게 하는 게 법원에서 노동조합과 충분히 협의하고 있는데 상황이 어려워서 공장 가동이 어렵다는 이야기를 하고 싶어서다. 그래서 우리도 회사가 뭔가 꾸미기 위해 움직이고 있는 것 같으니 상황을 지켜보면서 이후 대응을 할 것이다. 만일 다시 해고한다면 싸워야 할 것 같고 지금과 같은 무한정 휴업이 계속 길어지면 그것에 맞는 판단을 다시 할 것이다.

 

윤민례 분회장에게 지금까지 옆에서 함께 싸워준 조합원들에게 한마디 말씀을 부탁드렸다.

조합원들이 예전에는 파업 몇 일인지 계산하다가, 해가 바뀌면 파업 몇 년 하다가 그것도 지나니까 이제는 투쟁 20년이라고 한다. 지금껏 3번의 해고 싸움을 하면서 많이 지쳤고 고생도 많이 했지만 조합원들이 함께 싸웠기에 여기까지 올 수 있었다. 그 힘으로 여기까지 왔으니까 조금만 힘내서 같이 가면 좋겠다.”

인터뷰 이후 윤민례 분회장에게 연락이 왔다. 202023일 전면휴업 공고문이 붙었단다. 무기한 휴업이 시작 된 것이다. 조합원들은 올 것이 왔다고 생각하며 또 다시 가보자고 생각하고 있다고 한다.

- 투쟁 연혁 -

1996912일 한국시그네틱스() 설립

1975년 필립스가 한국시그네틱스() 인수

1995년 거평 그룹이 필립스로부터 인수

199812월 거평시그네틱스 워크아웃(기업개선작업) 대상 업체 선정

1999년 거평시스네틱스에서 한국시그네틱스로 회사 개명

2000년 영풍 그룹이 거평 그룹으로부터 한국시그네틱스 인수

20008월 노동자들의 임금동결, 상여금 반납, 퇴직금 누진제 폐지 등 희생으로 워크아웃 종료

20001130일 파주 공장으로 이전 불가자 모집으로 정리해고 시작

200012월 영풍 그룹 계열사인 영풍산업주식회사 소유로 안산 공장 부지 마련

20012월 노동자들을 파주가 아닌 안산 공장으로 배치하겠다는 계획 발표

20016월 민주노총 금속산업연맹으로 상급단체 변경하고 본격 투쟁 돌입

20015610여 차례 염창동 공장 장비를 파주 공장으로 반출 시도

2001723일 노동자 전원에게 안산 공장으로 인사 발령, 노동조합은 전면 파업 선포

20018월 약 160명 노동자중 130명에게 해고 통보

20021월 성실교섭 촉구와 파주 이전 승리를 위한 34일 영풍 본사 앞 노숙 투쟁

20025월 임영숙 부지회장, 윤민례 사무국장, 정승현 대의원, 이미경 조합원 한강대교 아치 위 고공농성

2002610일 조합원 집단 단식농성 돌입

2003218일 중앙노동위원회에서 95명에 대한 해고는 정당, 28명은 복직 명령

20076년의 재판 과정을 통해 대법원에서 64명 조합원은 안산공장으로 복집, 29명은 복직 불가 판정

201010월 시그네틱스 부사장이 안산공장을 인수하고 유앤씨라는 하청업체를 만듦. 조합원들 모두를 하청업체로 강제 이직하면서 자진 퇴사를 강요.

20117월 회사 방침을 받아들이지 않은 28명에 대한 2차 해고

20121123일 재판에서 전원 복직 명령, 회사는 항소하지 않기로 결정

201212월 공장 휴업

20144월 공장 재 휴업과 함께 광명으로 이전하고 근무량을 점차 줄임

201699명에 대한 3차 해고

20179월 재판에서 해고 무효 판정

20189월 대법원에서 복직 확정 판정

20199월 회사의 휴업과 강제휴직을 철회하라는 판정

현재 회사로 출근하면서 임·단협 체결을 위한 협의, 해고자 복직 투쟁 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