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동안전보건 활동가에게 듣는다]
노동자가 건강한 사회, 간절함으로 만들고 싶어요
-민주노총 세종충남지역본부 이정호 노동안전보건부장
나래 / 상임활동가
일터의 안전은 노동자의 안전이자 동시에 시민의 안전이다. 그렇기 때문에 일터의 문제는 지역사회와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다. 노동안전보건 문제는 중앙 정부만으로 는 해결하기 어렵다. 지자체가 지역의 특성과 위험요소를 제대로 파악하고 그에 맞는 다양한 정책과 지원을 펼쳐야 한다. 고민의 시작은 바로 자기가 서 있는 곳에서부터 출발한다.
약 10년 동안 노동자 33명이 사망한 사업장이 있다. 바로 '현대제철 당진공장'이다. 이 공장이 위치한 곳은 충남이다. 이에 충남 지역에서 활동하면서 노동안전보건 활동을 한 지 2년 반가량 되어 가는 민주노총 세종충남본부의 이정호 노동안전보건부장을 지난 2019년 12월 26일 한국노동안전보건연구소 사무실에서 만났다. 지역의 노동안전보건 활동가는 어떤 고민과 활동을 펼쳐나가고 있는지에 대해 나누어보았다.
'지역' 노동안전보건활동가의 활동과 고민들
이정호 부장은 민주노총세종충남본부 활동을 시작하기 전까진 노동안전보건 문제를 집중적으로 다뤄보거나 고민하지 못했다고 한다. 실제 지역에서 활동을 시작하면서, 그리고 관련된 활동을 하는 사람들을 만나면서 지금의 고민을 이어나가고 있다. 일상 활동을 이어나가며 중대재해 사고가 발생하면 대응 활동을 하는 등 바쁘게 지내고 있다.
"특별한 걸 하고 있는 건 아니에요. 기본적으로 산재 신청 요청이 들어오면 함께 하고 있어요. 교육을 제가 다 직접 하진 않지만 사업장 상황에 필요한 교육을 기획하고 함께 준비해요. 2020년부터는 명예산업안전감독관 활동을 지역에서 본격적으로 만들어가려고 해요. 그리고 중대재해가 발생했을 때 대응하고 있고, 충청권 노동안전보건 활동가대회도 준비하고 만들어 가고 있습니다."
일상의 긴 호흡을 이어가며 중대재해 사고나 긴급하게 발생하는 사건 대응에도 힘쓰고 있는 이정호 부장은 노동안전보건 운동은 특정한 직업과 자격증을 갖춘 사람들만 역할을 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는 점을 강조했다.
"모든 운동에는 전문적 역량이 있죠. 노동조합을 조직하고 만들 때도 그 부분에 깊숙이 들어가면 근로기준법이라던가 내용적으로 공부를 해야 하는 게 있어요. 전문가 영역이라고 하는 건 역으로 특수한 몇몇 사람만의 문제, 산재와 현장개선 문제는 전반적인 문제임에도 남의 일로 생각하는 경향이 있죠. 이런 태도가 노동안전보건 운동을 어렵게 한다고 생각해요. 오히려 이 운동이 대중적으로 충분히 공유되지 못하고 있는 것에 대한 표현이 아닐까요?"
'간절함'과 '제발'에서 비롯되는 노동안전보건활동
최근 몇 년 동안 언론 기사를 통해 노동자의 산재사고, 사망 문제를 어렵지 않게 접할 수 있게 되었다. 긍정적이라고 볼 순 없겠지만 이전보다 노동안전보건 문제가 사회적 관심을 받기 시작했고, 해결을 촉구하는 목소리 또한 높아지기도 했다. 산업안전보건법이 김용균 투쟁을 통해 28년 만에 전부 개정되기도 했고, <닥터탐정>이라는 노동자의 산재 문제를 다룬 드라마도 등장했다.
이정호 부장 역시 이러한 변화들, 사회적으로 올라오는 분위기를 느끼고 있다며 속도의 차이는 있겠지만 앞으로 점차 노동안전보건 문제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지 않겠냐고 이야기를 이어나갔다. 본인 역시도 노동안전보건 활동을 시작하게 되면서 많은 것이 바뀌었다고 했다.
"노동안전보건 특히 중대재해를 접했을 때 그래서 그런지 몰라도 물러날 수 없는 것들이 있더라고요. 이건 흑백이 있어요. 명확해요. 목숨이나 건강과 직결되는 문제이기 때문에 사람이 최소한 지켜야 할 것들이 있는 거죠. '돈보다 사람이 먼저다'가 지켜지지 않더라도 그 자체를 부정할 순 없죠.
지난해 서울에서 열린 고 김용균 북콘서트에 갔었는데 그때 토크 참여자였던 안재범 당시 민주노총 세종충남본부 노동안전보건위원회 위원장이 그런 얘기를 하더라고요. '간절함이란 게 생긴다'고요. 그 마음이 이해가 가요. '제발'이란 생각이 들어요. 어떻게든 이 고개를 넘어가야 한다는 게 생긴 거죠. 거기서 방향타가 분명해져요. 가다가 못갈지언정 안 갈 순 없는 거예요. 노동안전보건 활동은 저에게 계속 무엇인가 하라고 계속 얘기해요. 지역에서 산재 사건이 발생하잖아요. 그럼 저는 밑도 끝도 없이 장례식장에 가봐요. 안가면 마음이 불편해요. 가서 산재 신청하는 방법이라도 말씀드리고 나와요."
'간절함'과 '제발'이라는 사이에서 이정호 부장은 일상에서 벌어지는 일들에 관심을 기울이고 자기 역할을 하고자 노력하고 있었다. 노동조합에 가입을 한 사람이든, 가입하지 않거나 못한 사람이든 사람의 목숨과 삶이라는 가장 중요한 가치를 지키기 위해서 말이다. 하지만 죽음과 다치는 문제를 겪고, 다루다 보면 때론 지치기도 한다. 그에게 노동안전보건 활동을 하면서 겪는 어려움에 대해 물었다.
"아무래도 무겁죠. 스트레스도 받고요. 덜 받는 편이라고 생각을 하는데도 어려움은 있어요. 그런데 어쩔 수 없죠. 하다가 안 되는 일을 겪기도 하고 그러니까요. 가장 큰 어려움은 그런 거에요. 한 발도 나아가지 못했구나 싶을 때요. 한 발이라도 나아가지 못한 게 아니라 많이 어려워졌구나란 생각이 들어요. 현장을 개선하고 대책을 마련하는 게 제가 할 수 있는 것만은 아니고, 같이 만들어야 하는데 꽤 쉽지 않을 때도 있어요. 그런 부분이 제일 어렵더라고요."
아프고 다치고, 죽는 사람과 사건을 대면하고 바꾸고자 하는 의지로 활동해 나가는 이정호 부장은 그래도 이 운동을 하길 잘했다고 생각한다고 했다.
"산재 신청해서 승인될 때가 좋아요. 제가 승인을 한 건 아니지만요. (웃음) 일을 해서 현장이 조금이라도 개선되는 것도 기쁘고요. 할 수 있는 사람이 많이 생겨나는 것도 좋아요. 모든 게 다 실패는 아니잖아요? 사람이든 뭐든 구체적으로 보이고 만들어나가는 것도 즐거워요. 그런 게 좋아요. 운동이라는 게 끝이 없지만 그런데도 마무리는 시점이 존재하고 명확하죠. 뭔가 대응하고 결과가 있고요."
산재 대응과 보상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어려운 직장 복귀
"최근 가장 기억에 남는 일은 직장 내 괴롭힘으로 정신질환이 생기고, 해고까지 당한 분의 사례에요. 산재 신청을 했는데 불승인이 됐어요. 그런데 불승인이 났다고 해고가 정당하다는 결과가 나온 거에요. 근로복지공단에 문의하니 해고의 정당성 여부를 갖고 산재를 판단하지 않고, 그 역도 맞지 않는다고 하더라고요. 사실 해고와 산재 문제는 법리 자체가 다른 문제잖아요? 그런데 지방노동위원회가 이걸 근거로 해고가 정당하다고 판단한 거죠.
다시 재조사를 요청했고, 실제 조사를 했더니 중간에 조사가 완전히 잘못된 게 확인이 돼서 해고가 무효가 됐어요. 그러나 결국 그분은 일을 그만뒀어요. 복직을 할 수 있긴 했지만, 직장 내 괴롭힘이 있었기 때문에 복귀한다는 게 쉽지 않으셨던 거죠. 이분은 조합원이 아니었어요. 이렇게 개별 상담만 받아서 산재 승인 받은 게 30건이 넘어요. 그런데 한 번도 직장 복귀를 한 분은 없어요. 노동자들이 상담받으러 올 때는 회사에 다닐 마음조차 없을 때 오시는 거예요. 관계를 끊겠다는 마음을 먹어야 산재 신청을 할 수 있는 상황인 거죠."
정부는 지난해 일하는 중 재해를 당하거나 질병에 걸린 산재 노동자들이 일터로 복귀하는 비율이 증가한 것으로 확인됐다며 긍정적인 보도자료를 냈다. 2019년 6월 산재노동자 직업복귀율이 65.03%로 2018년 동월 61.58%보다 3.45%P(포인트) 증가했다는 것이다. 하지만 지역에서 겪는 문제들을 접한 이정호 부장은 이런 수치를 체감하기 어렵다고 했다.
여전히 노동자들에게 산재 신청은 높은 문턱이다. 게다가 건강을 악화시킨 요인이 그대로 남아있는 직장으로 다시 돌아간다는 것은 다시 아플 것을 각오하고 가야 한다는 것과 동일하다. 개선이 이뤄지지 않은 채 돌아가는 것은 노동자에겐 견디기 힘든 상황이다.
안전하고 건강한 일터-지역 사회 만들어가기 위한 과제들
"근로복지공단도 공단이지만 사실 병원도 어려워요. 여러 번의 일을 겪으면서 의사분들이 노동자 건강권과 산업재해에 대한 이해를 높이셔야 하지 않을까란 생각을 해요. 산재신청을 위해 함께 병원에 동행했어요. 그런데 담당 의사가 퇴행성이기 때문에 산재라고 보기 힘들다는 거에요. 대전지역 질병판정위원회 지침으로 퇴행성이라고 불승인을 못 내게 되어 있어요. 업무상 악화이기 때문에 그런 부분을 고려해야 하죠. 그런데 병원에선 퇴행성이라고 소견서를 안 써주려고 하더라고요. 그런 문제로 여러 번 어려움이 있었죠. 병원에서 산재 노동자는 을이에요."
아픈 노동자의 문제를 함께 겪으며 깊어지는 고민도 있다. 바로 중대재해기업처벌법 제정운동이다. 이정호 부장이 최근 가장 관심을 가지며 지역에서 제대로 해보고 싶다고 했다.
"중대재해기업처벌법 제정운동은 지금으로 가면 어려움이 있을 것 같아요. 왜냐면 실제 처벌받는 기업이 없거든요. 법제도 변화는 현실변화가 있어야 가능한데, 아무 기업도 처벌을 안 받고 있죠. 처벌받는 기업이 생겨야 법제정도 된다고 봐요. 운동과 법 제정이 만나야 해요. 실제 그런 싸움부터 하고 바꿔나가야죠. 사업주에게 안전과 보건에 관한 책임이 있어요. 이걸 실제 하도록 해야 해요. 실제 어떤 해당 사업장에 문제가 있고, 사업주가 안전보건 의무 조치를 충분히 안 하면 정말 처벌을 받을 수 있는 운동을 하고 싶어요. 지역에서 놓치지 않고 집요하게 받고 들면서 말이죠. 그래야 바뀔 것 같아요."
이정호 부장은 마지막으로 노동조합을 비롯해 우리 사회가 노동안전보건 문제에 관심을 기울여야 한다고 힘주어 이야기했다.
"어떻게 살아갈 것인지가 중요해요. 우리가 함께 건강할 수 있는 것, 내가 재벌이 아니어도 돈을 많이 벌지 않아도 행복한 삶을 살아갈 수 있어야죠. 앞으로 노동안전보건 문제에 대한 사회적 관심을 더 높아질 거라고 봐요. 사람들은 행복하게 살고 싶어 하잖아요. 권리로서 우리가 더 이야기를 많이 했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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