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구리포트] 외주화된 노동에서 위험의 구조화와노동자 권리의 문제 / 2019.09

[연구리포트] 

 

외주화된 노동에서 위험의 구조화와노동자 권리의 문제

– 석탁화력발전소의 중대재해 사고 대응을 중심으로

 

 

전주희 / 노동시간센터 연구위원 

 

1. 문제제기 : 위험은 왜 구조화되는가?

위험은 작업장 설계과정부터 발전소 경영전략, 노사관계, 하청 고용구조 등 구조적 조건 속에서 발생한다. 하지만 원인이 해결되지 않는다면, 사고가 끊임없이 재발한다. 이를 가리켜 구조화된 위험이라고 부르며, 이는 노사 간 위계관계와 맞물리면서 발전사의 지배력을 강화하고 노동자들의 권리를 약화시킨다. 여기서 핵심은 위험이 구조화된 상황에서 위험이 존재하기 때문에 사고가 일어날 수밖에 없다는 식으로 관리자와 노동자들에게 인식의 전도가 이뤄지는 문제다.

왜 발전소에서는 인명피해를 비롯하여 안전사고가 끊임없이 반복되는가.’라는 질문에 대하여원청 및 하청의 안전관리자들은 대부분 비슷하게 답변했다. “위험은 현장 나가자마자 다 위험하죠. 위험을 없앤다? 그럼 발전소를 싹 다 없애야죠.” 발전소의 위험을 고정된 사실로 전제하는 것이다. 이러한 인식은 발전소 위험의 특수성을 삭제할 뿐만 아니라 위험을 매우 자연스럽고 당연한 것으로 여기게 한다. 이렇게 사고원인에서 구조의 문제가 제거되는 순간, 기계나 화학물질, 특히 노동자에게 사고 책임이 전가된다.

그러므로 무엇을 어떻게 사고원인과 위험으로 판단할 것인가?”에 따라서, 위험과 사고를 재생산하는 구조 자체가 해체·변화될 수도 있고 반대로 견고하게 유지될 수도 있다. 핵심적인 문제는 매뉴얼화된 재발방지 대책을 내놓기 이전에 우리가 사고원인을 어떻게 인식하고 밝혀내고 처리하고 있는가다. 왜냐하면, 위험을 둘러싼 행위자들의 인식과 행위가 위험의 구조화를 재생산하고 있기 때문이다.

2. 사고는 어떻게 반복되는가 : 발전소 중대재해의 재구성

1) 사고조사서에서 나타난 주요원인 : “작업자 과실

10개 발전소(태안, 신인천, 하동, 삼척, 보령, 신보령, 당진, 삼천포, 여수)에서 발생한 중대재해 중 총 20건의 중대재해사고 조사서를 토대로 정리한 바에 따르면, 4건은 1차 하청 노동자들이 재해로 사망했으며, 나머지 16건은 2차 하청 노동자에게 발생했다. 특히 OH(Overhaul, 점검)기간이나 발전소 건설과정에서 사망한 노동자들은 2차 하도급업체에 단기 노동력으로 채용된 건설 일용직인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이러한 원·하청 구조의 문제로 인해 재해자들이나 그들과 함께 일하는 동료들은 사고원인 규명과 재발방지대책 마련에 적극적으로 참여하기 어렵다.

반면 위의 사례들에서 안전작업 절차서 미준수로 인한 재해자 과실이 주요 사고원인으로 지목되었다. 하지만 고 김용균 사고 이전에 안전작업 허가서 발행은 형식적으로 이루어졌다. 면접자들은 작업허가서가 있기는 했지만, 공사기한의 압박 때문에 급히 작업하느라 제대로 지킬 수 없었으며, 그러다 사고가 날 경우엔 사측이 절차를 지켰는지 따지며 안전작업 절차서 미준수로 노동자들에게 책임을 전가했다고 진술했다. 매뉴얼은 실효성이 없었으며 오히려 역설적으로 노동자들에게 책임을 전가하는 수단으로 활용되고 있었다유명무실한 안전관리 매뉴얼은 새로운 위험이 증식되는 것과 함께 늘어나고 있었다.

2) 김용균 사망사고의 원인은 김용균? : 보이지 않는 위험과 좀비 공정

특조위의 현장 조사에서 서부발전의 어느 관계자는 벨트가 있는 기계 안쪽으로 고개를 넣고 점검하지 않았어도 된다. 매뉴얼에는 그런 내용이 없다.”고 말했다. 이러한 진술은 하청 노동자 면접조사에서도 반복되어 나왔다. 김용균도 일정 정도 과실이 있다고 응답한 하청 노동자들은 도대체 왜 벨트 안으로 고개를 넣었는지 알 수가 없다고 얘기했다. 노동자들은 왜 김용균의 행동을 이해할 수 없었을까? 그리고 서부발전 관리자처럼 김용균의 과실을 원인으로 이야기하게 되었을까? 바로 김용균 노동자가 당시에 벨트에 접근할 수 밖에 없었던 이유, 근접 촬영이라는 공정 때문이다. 근접 촬영은 연료운전 노동자라면 모두 수행해야 하는 업무이고, 용도는 원청 쪽에 보고하기 위함이다. 매뉴얼 상에 없는 업무이지만 반드시 해야 하는 일, 따라서 위험의 정도도 평가되거나 공유되지 않은 비가시화된 위험이다. 이러한 공정들의 위험은 사고 이후에야 드러난다. 일종의 좀비 공정인 것이다. 안전절차서나 작업공정이 세부화되면 될수록, 여기에 등록되지 않은 행동이나 업무들은 모두 불안전하고 자의적인 행동이 된다. 그 결과, 이제 불안전하고 자의적인 행동만이 사고의 가장 핵심적인 원인이 되는 것이다.

3) 새로운 위험의 발생 : 흐름공정의 분할-외주화로 인한 공정 증식과 책임 공백

흐름공정을 분할해 외주화하게 되면 이전에는 드러나지 않은 새로운 위험이 증식된다. 다시 말해, 분할된 공정의 절단면이 생기면서, 그 사이마다 새로운 위험이 자리 잡는 것이다. 이는 두 가지 수준에서 위험을 발생시킨다. 첫째, 분할-외주화는 단순히 업무를 떼어서 넘기는 것에 그치지 않는다. 수평적인 흐름이었던 작업 구조가 절차 및 위계가 작동하는 수직적 공정이 된다. 이때 발생하는 위계는 업무 중에 반드시 발전본부를 매개하지 않고서는 직접적인 소통이 불가능하다는 것을 의미한다. 즉 분할-외주화는 A-B 흐름에서 a-b 흐름으로의 이전이 아니라, 흐름의 중단과 함께 의사소통의 복잡성을 늘리는 일종의 벽돌쌓기의 모델로 변형된다.

그림1 분할-외주화된 공정에서의 위험1
그림2 분할-외주화된 공정에서의 위험2(2016년 당진 사고를 중심으로 재구성)

[그림 1]에서 보이는 것처럼 흐름공정을 분할 할 때 발생하는 절단면(a’b’)은 이전에는 존재하지 않았던 새로운 위험면인데, 이것은 외주화로 인한 분할이기 때문에 생성된 것이다. 이러한 위험면은 공정상의 공백과 책임의 공백을 야기 하며, 사고의 위험을 증폭시킨다. 흐름공정을 더 촘촘하게 분할할수록, 나아가 원하청 구조로 인해 분할이 중층화될수록 위험이 증식된다(그림 2).

가장 큰 문제는 새롭게 형성된 위험은 사고로 인해 드러나기 전에는 대개 감춰진 채로 공정 안에 잠복해 있다는 점이다. 왜냐하면 주로 원·하청 간, 하청·하청 간의 업무상 책임의 경계 바깥에 놓인 문제이기 때문이다. 이런 경계에서는 업무 상의 단절, 인수인계의 불안정성, 책임의 명확화가 증가할수록 제약되는 노동자들의 자발성이 위험의 요소로 작용한다흐름공정의 분할-외주화와 원·하청 구조가 중첩되면서, 새롭게 형성된 위험은 잠복한 채로 남겨지고, 의사소통 체계는 더욱 복잡해져 제대로 된 예방조치나 신속한 대처가 이뤄지기 어렵게 된다.

이를 우려해 원·하청은 절차를 세분화하면서 동시에 안전관리 매뉴얼에서 책임 주체를 명확히 하려 한다. 객관적인 공정을 기술하는 것에서 행위주체가 누구인가를 명확히 하는 것으로 변화하며, 각종 매뉴얼이 생겨난다. 하지만 매뉴얼에는 안전을 위한 실효적인 조치가 담기기는커녕, 절차와 보고의 책임을 아래로 전가하는 내용만 기술된다. 사고 발생 후 이 매뉴얼은 작업자에게 책임을 묻는 서류상의 증거로 전환된다.

현장노동자들에게 사고예방이나 안전관리에 아무런 권한도 부여하지 않은 채, 사고책임만 부담하도록 하는 모순이 발생한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공백은 도급계약이라는 합법적 구조 아래에서 늘 형성되고 있으며, 하청 구조는 원하청 모두에게 합법적으로 안전관리 의무 및 사고책임을 회피할 수 있도록 해주는 근본적인 요인으로 작용한다.

3. 나가며

현행 산업안전보건법이나 발전본부의 안전매뉴얼은 모두 사용자의 안전관리 의무조항을 중심으로 서술되어 있다. 안전에 있어 사용자의 의무를 강조한 것이다. 그러나 사용자의 의무조항이 강조된다고 해서 노동자의 노동안전권이 자동적으로 보장되지 않는다. 현재 모든 발전소는 원청사용자의 의무, 협력사의 의무가 현장노동자의 안전수칙 지키기, 안전절차서 준수 등의 의무로 이어지면서 실제 안전에 대한 의무가 과잉 생산되고 있다. 하지만 그 어느 조항에서도 노동자들이 자신들의 안전을 위해 사용자의 의무를 강제하거나 자신들의 유해위험 요소들을 해결하고 개선하기 위한 적극적인 권리행사를 보장하고 있지 않다.

가령 설비개선 요구 또한 노동자의 의무사항이지 권리가 아니기 때문에 안전을 위한 피드백 시스템이 작동되지 않는다. 권리가 행사되지 않는 안전은 통제장치가 되어 위험을 숨어들게 만든다통제장치로서의 안전은 위험을 잠복하게 만들어서 사고의 가능성을 증폭시킨다. 그런데 이러한 안전 통제장치는 원·하청 구조에서 필연적이다. 이것이 위험의 외주화의 핵심이다. 위험의 외주화는 위험을 단순하게 외부화시키는 것이 아니라, 위험을 해결할 수 있는 권리와 책임의 문제를 공백 상태로 만들어버린다. 따라서 무엇보다 안전에 대한 권리를 명시하고 실질적으로 권리가 행사되도록 해야 하며 이를 바탕으로 현장의 위험을 개선하는 과정과 절차가 강화되어야 한다.

안전권은 위험에 대해 알 권리, 위험을 해결하기 위한 방법들을 제기할 권리, 안전에 대한 조치들에 대해 이의제기하고 개선하기 위한 참여와 행동할 권리를 포함한다. 또한 위험한 설비와 시설에 대한 개선과 노동강도 및 작업방식 전반에 대해 개선하기 위하여 노동자 간의 집단적인 의견수렴과 행동 그리고 노사 간의 협의를 위한 참여를 포함한다. 이는 노동자들이 현장의 위험을 적극적으로 발굴하고 대처하며 해결할 수 있는 노동안전보건 권리 논의의 흐름을 역류시키기 위하여 가장 우선시되어야 할 조건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