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집2. 5년이 지난 지금도 다 회복되지 않았어요 / 2019.07

[일터괴롭힘 없는 평등한 일터 만들기②] 

 

 

5년이 지난 지금도 다 회복되지 않았어요 

 

 

선전위원회

 

 

“그녀는 여전히 혼란스럽다. 그녀는 자신이 원래 어떤 사람이었는지 잘 모르겠다. 여전히 그녀는 술을 마셔도 되는지, 안 마시면 안 되는지 자신이 없다. 자신이 미안해하지 않고 뻔뻔한 사람 일지도 모른다고 가끔 생각한다. 그러다가 다시 그렇다면 할 수 없다고 생각한다. 그냥 뻔뻔하게 살겠노라고 마음먹는다. 그녀에게는 늘 오늘이 최선이지만, 그 최선이 다른 사람의 발끝에도 못 미칠 수도 있는 것이고, 그렇다고 죽을 수는 없기 때문이다.”
-A씨가 자신의 경험을 짧은 소설로 표현한 ‘그녀의 오늘’ 중에서 인용

 

A씨는 2012년 가을부터 2013년 가을까지 약 11개월간 일했던 사무실에서 일터괴롭힘을 당했다. 일터 괴롭힘으로 인한 피해 얘기뿐만 아니라, 자신의 문제를 일터괴롭힘으로 객관화한 생존자의 목소리를 듣고 싶다고 했더니, 5년이 지난 지금도 이 문제에 객관적이거나 회복됐다고 말하기는 어렵다고 했다.

“지금도 두 가지 완전히 다른 마음이 공존한다. 하나는 내가 좀 더 용기 내서 싸웠어야 하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다. 괴롭힘을 당한 후 우울증 치료를 받게 됐는데 이걸로 산재를 신청하거나 소송을 걸어야 했지 않았나 하는 생각. 강하게 싸웠어야 했는데, 내가 너무 나약하고 당장 먹고 사는 게 급급해서 그렇게 하지 못한 게 아닌가 하는 죄책감이 있다. 그런가 하면, 정반대의 생각도 여전하다. 그래도 처 음에는 나한테 잘 해줬던 사람인데, 대체 무슨 일을 계기로 이상해졌는지 몰라도, 관계가 괜찮은 시기도 있었는데, 내가 좀 더 참았어야 했던 거였을까, 이렇게까지 서로 감정이 나빠지지 않았을 방법이 없었을까 하는 생각도 여전히 한다. 지금도 이 문제를 객관화해서 보거나 회복됐다고 말하기 어렵다.”

매뉴얼에 나온 모든 괴롭힘을 다 당했어요

A씨는 자격증이 있는 전문가다. 회사에 취업하거나, 유사한 자격증을 가진 사람들이 공동으로 사무실을 운영하기도 하는 직종이다. 자격증을 취득한 후 바로 입사한 첫 번째 사무실에서는 성희롱 사건이 있었다. 6개월 만에 자리를 옮겼다. 사장 1인과 A씨는 자격증이 있는 전문가이고, 이들을 도와주는 행정담당자 1명까지 총 3명이 일하는 작은 사무실이었다. A씨는 그 사무실에서 일하는 동안 고용노동부 매뉴얼에 나와 있는 일터괴롭힘 유형을 거의 다 당했다.


“정확히 언제부터, 왜 시작됐는지는 모르겠다. 처음 보고서를 냈을 때 ‘내가 원하던 게 바로 이거’라며 칭찬을 듣기도 했다. 그나마 짚이는 것은 일 시작한 지 얼마 되어 다리를 다친 것이다. 회식 후 귀가하다 한 번, 출장 다녀오다 또 한 번 발목 인대를 다쳐 몇 달간 깁스를 했다. ‘산재 안 된다’는 얘기는 물론이고, ‘꼴 보기 싫으니 깁스를 풀어라, 목발 치워라’는 말을 듣기도 했다. 다리가 불편해 택시를 타고 출근했더니, 둘이서 ‘돈도 많다, 택시 타고 출근하고 건방지다’고 대화하기도 했다. 사장이 나가는 업계 내 모임에도 못 나오게 했다. 다른 사무실 후배의 손을 빌리면서도 내게는 제대로 된 일을 주지 않다가, 일을 달라고 요청하자 골치 아파 ‘처박아 두었던’ 일이라며 행정업무를 시키기도 했다.

사장과 실장이 돌아가면서 혹은 함께 ‘옷을 못 입어 다른 사무실 보기 창피하다’, ‘말귀를 못 알아듣는다’는 직접적인 폭언을 퍼붓고, 회의 시간에 쳐다본 것을 ‘노려본다’고 화내기도 했다. 업계 다른 사람들에게 ‘정말 싫다’며 험담하는 것을 알게 되기도 했다. 심지어 사무실에 바퀴벌레가 나오거나 화장실 변기가 막혀도 내 탓을 했다. 처음에는 장난인가 싶었는데, 어느새 나와 무관한 일들이 내가 한 일이 돼 있었다. 물을 마시면 물을 많이 마신다고, 화장실을 가면 화장실을 자주 간다고 나무라기도 했다. 괴롭힘은 점점 심해졌다. 마지막으로 출근한 날에는, 결국 그 둘이 한쪽씩 팔을 잡고 나를 물리적으로 끌어내기까지 했다. 원래 정해진 계약 기간까지의 3개월치 급여를 주는 것으로 마무리됐다.”

외면하는 주변 사람들


A씨 사례는 소규모사업장, 좁은 업계에서 특히 더 일터괴롭힘 문제를 제기하기 어려운 사정을보여준다. A씨와 사장을 모두 아는 같은 업계 사람들은, 얘기를 꺼내려고 하면 말을 돌려버렸다.

“셋밖에 없는 상황에서 두 사람이 나를 그렇게 대할 때 완전히 고립되어 있다고 느끼게 된다. 내게 너무 무례하다는 생각이 들면서도 동시에 ‘내가 뭘 잘못했을까, 어떻게 하면 잘 지낼 수 있을까’ 생각하게 된다. 지속적으로 그런 대우를 당하면, 모든 것이 내 잘못인 것처럼 느껴진다. 업계 내에서 나보다 선배인 사장이 나에 대해 험담을 하고, 함께 있는 것을 싫어하니 외부 모임에서도 따돌림을 당하게 됐다. 사장과 겹치는 모임에서는 장소가 바뀌었는데 내게만 공지를 안 해줘 틀린 장소에서 기다린 적도 있다. 그 모임 선배로부터 ‘그렇게 눈치를 줬는데 와서 (자신을) 곤란하게 했다’는 소리를 듣기도 했다. 선배들은 사장의 행동에 관해 얘기하려고 하면 아예 말을 못 꺼내게 하기도 했다.”


이런 과정에서 당연히 몸과 마음은 지치게 된다. A씨는 퇴사 이후 오랫동안 우울증 치료를 받기도 했다. 업계 내 다른 사람과의 관계를 회복하고, 자신감을 다시 찾는 데도 오랜 시간이 걸렸다. 이렇게 회복하게 되는 과정에서 주변 사람들은 거의 도움을 주지 않았다.


“내가 가장 크게 도움받은 사람은 차라리 병원 선생님들이었다. 정신과 치료를 받는 과정에서 내 잘못이 아니고, 누구나 힘든 상황이라는 생각을 할 수 있게 됐다. 정신과 의사든 산재 때문에 만나는 직업환경의학과 의사든, 의사 선생님들이 이런 문제에 대해서 잘 알고 지지해주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했다. 의사 입장에선 작은 도움이라 해도 당사자에게는 큰 힘이 될 수 있다.”


업계 내 주변 사람 중 상당히 민주적 혹은 진보적이라는 사람들도 A씨가 도움을 요청할까 회피하기만 했다. 아마도 ‘일터괴롭힘’이라는 잣대를 우리 업계에, 아는 선배에게 똑같이 적용하지 못하게 하는 마음의 벽이 작용했을 것이다. A씨는 괴롭히는 2명하고만 일했기 때문에, 도움을 줄만한 직접적 직장 동료는 없었던 셈이지만, 직장 내에 다른 동료가 있었던들 도움이 되었으리라고 생각하기 어려운 이유다. 가해자와 불편하게 되는 것만으로도 사람들이 외면하는데, 심지어 본인의 직장 내에서 상사가 가해자로 지목되었을 때, 피해자 편에서 상황을 헤쳐나가는 것은 용기가 필요한 일일 수 있다.


당신 잘못이 아니다


이런 상황에서 문제는 흔히 ‘개인적인 갈등’으로 치부된다. 실제로 시간이 지나고 나서 모아놓고 보면 괴롭힘으로 보이는데, 당시에는 ‘그럴 수도 있는 일’, ‘피해자도 일부 책임이 있는 일’이라고 생각하기도 쉽다. 이런 조건에서 A씨는 홀로 지난 일을 글로 적어 내려가며 곱씹는 과정에서 조금씩 다시 일어설 힘을 내게 되었다.


“개인적으로는 내가 당한 사건과 당시 상황을 글로 적어보는 것이 도움이 되었다. 사실 아주 여러 번 쓰고 다시 쓰는 과정이 있었다. 동료에게 내 사정을 알려주려고 쓰기도 하고, 소송이나 산재 같은 법적 절차를 밟는다면 혹시 쓸 일이 있을까 싶어서 써 보기도 했다. 문학성은 거의 없지만, 소설 버전도 있다(웃음). 여러 차례 쓰고 또 쓰면서 ‘누가 겪어도 힘든 일이었다’는 생각이 든 게 나 자신에게 위로가 되었다. 내가 나약해서 못 버틴 것이 아니라, 누가 겪더라도 힘들고 괴로운 일이었다는 것을 스스로 인식하게 되니, 마음이 훨씬 나아졌다.

또 다른 한 가지는 일을 하면서 치유되는 게 있었다. 나도 다른 데서 일을 시작하고, 그 일이 궤도에 올라가니까 힘이 되었다. 사장과 겹쳐서 쫓겨나다시피 한 모임 대신, 업계 내 다른 모임에 나가서 사람들을 새로 사귀고 만난 게 도움이 되기도 했다. 일터괴롭힘이다 보니 당연히 ‘일’과 ‘업무’, ‘커리어’에 영향을 미치게 되는데, 피해자들이 힘들어도 일을 놓지 않았으면 좋겠다.”


자연스럽게, 다른 피해자들에게 먼저 겪고 살아남은 사람으로서 해주고 싶은 말이 있는지로 이야기가 이어졌다. 한국에서 미투운동에 불을 붙인 서지현 검사가 했던 말과 같았다. 당신 잘못이 아니다.


“무엇보다 당신이 잘못한 게 아니고, 당신이 이상한 것도 아니라는 얘기를 해주고 싶다. 그 상황을 겪으면 누구나 그렇게 된다. 나도 그걸 받아들이는 데 오랜 시간이 걸렸다. 5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그때 내가 다르게 했어야 하나’ 후회하는 생각이 자주 나니까. 얼마 전에도, 직장 내에서 찍혀서 따돌림 당하다가 결국 해고당한 분의 한탄을 들을 일이 있었다. 그때도 그렇게 말했다. 당신 잘못으로 벌어진 일이 아니라고. 미투 운동에서 하는 얘기와 같다고 생각한다. 실제 로 일터괴롭힘 피해자 중 많은 사람이 여성일 것이다. 건장한 성인 남성보다 신체적이든 사회적이든 불리한 사람이 타겟이 되기 쉬울 테니까. 나처럼 다친 상황, 정신적으로 약한 상황, 임신 상황 등 여성이 일터에서 약점을 갖게 되는 순간이 많은데, 일터괴롭힘에서도 ‘여성’ 노동자의 문제에 좀 더 신경 써야 한다.”


일터괴롭힘 생존자 A씨가 볼 때, 7월부터 시행 되는 법적 변화에 큰 기대는 없다.

“이번에 생기는 직장 내 괴롭힘 방지법에서는 사업주에게 신고하라고 돼 있는 게 제일 아쉽다. 나도 그랬고, 많은 작은 직장들에서 사업주가 괴롭히는 경우가 대부분일 것이다. 이럴 때는 법에 기대려 해도, 방법이 없다. 이럴 때 누구에게 신고하고 어떤 도움을 받을 수 있을지 보완돼야 실질적인 도움이 될 것이다. 문제를 자꾸만 고객응대 노동자 중심으로 얘기하는 것도 아쉽다. 일터괴롭힘이 감정노동자나 판매노동자들에게서만 일어나는 일이 아닌데, 진상고객에 의한 괴롭힘만 강조되는 것 같다. 이러면서 마치 고객 문제인 것처럼, 기업이나 사업주에게는 책임이 없는 것처럼 문제를 몰아가는 것 같다. 물론 이 와중에 국가나 정부도 딱히 책임을 지려는 것 같지 않다.”


아직 갈 길이 멀다. 언론과 사람들의 입길에 ‘일터괴롭힘’이라는 말이 오르내리고, 법에도 몇 개 조항이 들어간 것은 시작일 뿐이다. 괴롭힘 없는 일터, 나아가 노동자가 존중받는 일터는 곧 시행되는 법 조항만으로 만들어지지는 않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