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집3. 견디는 사람의 얼굴을 보라-산재 유가족들의 활동에 함께 하자 / 2019.04

[특집 산재 유가족 ,슬픔을 안고 연대로 나아가다③]

 

 

 

 

견디는 사람의 얼굴을 보라

-산재 유가족들의 활동에 함께 하자 

 

 

 

 

최민 / 상임활동가

 

 

 

 

홀로코스트 생존자인 빅터 프랭클은 인간은 이성으로 사유하는 존재이기 이전에 먼저 고통 받는 존재이며, 그것이 인간을 인간이 되게 하는 더 중요한 측면이라는 점에서 호모 파티엔스(고통 받는 인간)라는 말을 제안했다고 한다.

문학평론가 신형철은 빅터 프랭클의 논의를 이어, 인간이 단순히 고통을 받는 위치에만 있는 것이 아니라 그것을 감당해내고 견뎌내며, 그 점이 인간을 인간이 되게 하는 것은 아닌가 질문한다.¹ 고통을 받으면서 인생의 비참을 보여주지만, 동시에 고통을 견디면서 인간임을 증명해내는 사람들이 견디는 사람이다. 견디는 사람이 보여주는 것은 인생의 비참, 삶의 비극, 개인이 어찌하기 어려운 구조의 폭력이지만, 동시에 비극을 넘어선 삶 그 자체의 숭고함, 폭력 너머 새로운 구조에의 꿈이기도 하다.

 


아픔을 함께 견디는 산재 유가족들

최근 모여서 함께 움직이기 시작한 산재 유가족을 보면서 '견디는 사람'이라는 말을 떠올리지 않을 수 없었다. 이들이 함께 모여 이야기 나누는 모습은, 둥그렇게 둘러서서 어깨를 옹송그리고 남극의 겨울을 버티는 펭귄들을 떠올리게 한다. 유가족은 무엇보다 함께 모여 아픔을 '견디는' 중이다.
 
"세월호 예은 아빠 유경근씨가 민호 1주기 때 왔어요. '많이 아프지? 많이 아플 거야.' 이 말 한마디 해주는데, 그게 저한테는 너무 큰 위로가 됐어요." - 2017.11. 현장실습 도중 사고로 목숨을 잃은 이민호 님의 아버지 이상영씨 


"씩씩한 얼굴로 외출을 해도 당신이 지금 어떤지 안다라고 누군가가 위로를 해줘도 '대체 뭘 알아?'라고 소리치고 싶었습니다. 하지만 여기에 와서 같은 감정을 공유할 수 있는 사람들을 만날 수 있었습니다. 담당 변호사 외의 사람에게도 내 이야기를 할 수 있어 너무 기뻤습니다." - 일본 과로사 유가족 모임 ㅇㅋㅁㅌ
 
하지만 가족들이 함께 모여 견디는 것은 단순히 가족을 잃은 '슬픔'만은 아니다. 일하다 발생한 노동자의 죽음은 개인 탓이 아닌 구조의 문제다. 제대로 된 안전교육도 받지 못하고 일하다 숨진 비정규직 청년 노동자의 죽음은 개인 부주의 탓이 아니다.

근로기준법 상 노동시간 관련 조항이 모두 적용 제외되어, 일주일에 80시간 근무해도 아무런 문제가 되지 않아서, 장시간 일하다 숨진 60대 학교 경비 노동자의 죽음은 개인 탓이 아니다. 일터에서 폭력과 폭언을 당하고, 지속적인 괴롭힘에 시달리다 스스로 목숨을 끊은 노동자의 죽음은 개인의 탓이 아니다. 

 


울분을 함께 견디는 산재 유가족들 


하지만 산업재해로 사망한 노동자의 죽음은 쉽게 '동정'의 대상이 되거나, '불운'의 상징이 되고, 결국 개인의 문제로 돌아간다. 심지어 남겨진 가족들은 '왜 그런 험한 일을 시켜서', '그렇게 힘들게 일하는지 몰랐냐?', '평소에 건강 좀 잘 챙겨주지 그랬냐'와 같은 비난에 부닥치기도 한다.

이런 상황에서 산재 유가족들은 거대한 울분에 휩싸이게 된다. 일하다가 생긴 사고인데 왜 책임지는 사람은 없는가? 일하다 죽은 것도 억울한데 왜 우리가 숨을 죽이고 손가락질을 받아야 하는가? 우리 가족에게 이런 일이 벌어지기 전에도, 수없이 많은 사람이 일하다 죽어갔다는데, 왜 세상은 아무 일 없는 듯 돌아가는가?

최근 정신보건학계의 연구에 따르면 관심이 높아지고 있는 '울분'은 분노와는 조금 다른 개념이라고 한다. 울분은 '이런 처사는 부당하다'는 생각이 지속되면서 감정적 고통이 격화된 상태라 공정성이나 정의에 대한 감각과 뗄 수 없다고 한다. '세상은 공정해야 한다'는 기대와 '실제 세상은 공정하지 않다'는 경험 사이의 괴리에서 발생한다는 것이다.² 산재유가족의 고통은 여기에 정확히 들어맞는다.


"제 아들은 현장실습으로 나간 업체에서 일하다 자살했습니다. 전공과도 맞지 않는 실습처였고, 학교에서 체결했다는 표준계약서에는 엉뚱한 사람의 사인이 들어 있을 정도로 엉망인 채 나간 실습이었는데 학교에서는 끝내 사과 한마디가 없었어요." - 직업계고 현장실습 피해가족모임 김용만 씨 


"(산재를) 입증해야 하는 책임이 유가족들에게 있다는 게 너무 힘들었어요. 회사가 자료를 다 가지고서 개인의 책임으로 돌릴 뿐이에요. 자료를 요청할 때 우울증이 있었기 때문에 개인의 문제이지 회사랑은 관계없다고 얘기하기까지 했어요." -한국과로사·과로자살유가족모임 장향미씨

 


현실을 바꾸려 손을 잡는 산재 유가족들 


이렇게 고통을 함께 견디고, 울분을 함께 견디던 유가족들은 끝내 울화통 터지는 현실을 함께 바꿔보기로 결심하기도 한다. 유가족들이 피해자로서만 머무는 것이 아니라 문제를 해결해가는 주체로 나서는 모습은 한국 사회에서 낯설지 않다. 가까이에는 참사에 대한 국가의 책임을 물으며 싸워 온 세월호 유가족이 있다. 독재 정권 시절 사망한 열사들의 가족들이 결성해 민주화운동에 함께한 전국민족민주유가족협의회도 있다.

일본에서는 좀 더 특수한 산재 유가족 모임이라고 할 수 있는 과로사·과로자살 유가족 모임이 있다. 공식 명칭은 '전국과로사를생각하는가족회'이다. 약 300여 명의 과로사·과로자살 유가족이 가입된 이 모임은 1991년 결성되어 서로의 아픔을 보듬고, 과로사·과로자살을 낳은 구조적 원인에 대해 학습하고, 과로사·과로자살에 대한 사회적 관심을 끊임없이 환기해, 결국 2014년 '과로사 등 방지대책 추진법'(과로사 방지법)의 제정을 이끌어냈다.

한국에서도 2018년 반올림이 10년 넘는 싸움 끝에 삼성과의 합의에 도달하고, 김용균씨의 어머니가 나서 산업안전보건법을 고치는 모습을 보면서 산재 유가족들도 힘을 내기 시작했다.

이전부터 조금씩 모임을 이어 가던 '한국 과로사·과로자살유가족모임', '직업계고현장실습희생자가족모임', '재난· 참사가족모임', '산재피해자및가족모임' 등 다양한 형태의 모임들이 활동의 싹을 틔우고 있다.

한 해에 2천여 명이 산재로 사망하는 현실에 비추어 이런 모임들이 생기는 것은 당연하다. 산재 사망자의 1차 가족만 해도 한 해에 8천~1만 명이 발생하고 있다. 홀로, 각개로 견디고 견디던 그들이 이제 함께 세상을 바꾸자고 손을 잡은 것이다.


"제 남편의 자살은 산재로 인정받지 못했습니다. 하지만 저는 여전히 유족모임과 함께하고 있습니다. 비록 승소하지 못했지만, 여전히 남편과 같은 사람들이 발생하고 있고 열심히 목소리를 내고 다른 유족들을 보니 '그래! 이들과 함께라면 끝까지 싸워보자!'란 생각이 들었고, 이젠 남편 산재를 위해 싸우는 것이 아닌 일본사회에 과로사와 과로자살문제를 없애기 위해 싸우고 있습니다."  -일본 과로자살 유가족. ㅅㅇㄹㅋ


견디는 사람의 얼굴을 보라. 거기에는 인생의 비참, 삶의 비극, 구조의 폭력이 있지만, 동시에 비참함을 견디는 인간의 숭고함이 있고, 비극에도 다시 이어지는 인생의 이야기가 있고, 다른 구조, 다른 삶을 떠올리게 하는 사람의 얼굴이 있다.

한국에서 이제 본격화되는 산재 유가족들의 활동에 함께 하자.

 

 


각주1) 신형철, '호모 파티엔스'에게 바치는 경의, 권여선 소설집 <안녕 주정뱅이> 해설 259면.
각주2) 박권일, 한국인의 대표감정, 한겨레신문 칼럼, 2019.3.8
*일본 과로사·과로자살 유가족 구술은 모두 <<과로자살 사례 연구>>보고서에 실린 「과로자살 이후 남겨진 유가족들의 이야기」(강민정, 2018)에서 인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