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집2. 여성 노동자의 재생산권을 보장하지 않는 산재보험제도 / 2019.03

[특집 지워지지 않는 존재여성 노동자 ] 





여성 노동자의 재생산권을 보장하지 않는 산재보험제도  





조애진 / 한노보연 회원, 법률사무소 시대 변호사 





지난 227일 통계청이 발표한 2018년 인구동향조사에 따르면, 한국의 합계출산율은 0.98명으로 기록되었고, 이는 출생통계 작성 이래 최저치라고 한다. 통상 가임기간에 낳을 것으로 기대되는 출생아 수가 채 한 명도 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언론은 큰 일이 난 것처럼 출산율 수치를 보도했고, 인터넷 뉴스 댓글에는 결혼하지 않는 젊은이들, 출산하지 않는 여성들을 싸잡아 비난하는 댓글이 심심찮게 달렸다.



과연 우리 사회는 여성의 재생산권을 얼마나 보장하고 있으며, 출산과 양육과정을 얼마나 두텁게 보호하고 있기에, 이같이 근거 없는 비난이 통용되는 것일까. 출산과 양육을 둘러싼 우리의 사회보장제도를 진지하게 들여다본다면, 가임기 여성의 출산파업에 대해 그 누구도 함부로 말할 수 없을 것이다.



노동하는 여성의 임신과 출산을 둘러싼 수년에 걸친 재판이 진행되고 있다. 바로 제주의료원 간호사들이 낸 요양급여 반려처분 취소소송이 그것이다. 제주의료원에 비슷한 시기에 입사하여 근무하다가 2009년경 임신한 여성 간호사 4명이 선천성 심장질환아를 출산하였고, 다른 5명은 유산을 했다. 의료원에 대한 역학조사 결과 간호사들은 임신 중 주·야간 교대로 업무상 과로와 스트레스에 장기간 노출되었을 뿐만 아니라, 임산부에게 치명적인 약물 등 유해한 작업환경에 노출되었음이 드러났다. 선천성 심장질환아를 출산한 간호사들은 자녀의 질환이 업무와 관련되어 있음을 주장하며 근로복지공단에 요양급여를 청구하였으나, 근로복지공단은 산업재해보상보험법 및 그 시행령과 시행규칙에서 업무상 재해란 근로자 본인의 부상·질병·장해·사망만을 의미하고, 자녀는 산재보험법의 적용을 받는 근로자로 볼 수 없다는 이유로 요양급여 부지급 처분을 하였다. 간호사들은 공단에 심사청구를 하였지만 기각되었고, 처분결과에 불복하여 행정소송을 제기, 1심에서 승소하였으나 2심에서 원심판결을 취소함에 따라 현재 대법원에 사건이 계류 중이다.



이 사건의 쟁점은 노동자가 임신 중 업무상 유해요인에 노출되어 태아의 건강이 손상됨으로 인해 아이가 선천성 질병을 가지고 태어난 경우, 이 아이의 질병을 산업재해로 인정할 것인지, 산재보험급여의 수급권은 누구에게 귀속되는 것인지 여부에 관한 것이었다.



1심 법원은 선천성 심장질환의 발병 원인과 메커니즘이 의학적·자연과학적으로 명백히 밝혀지지 않았다 하더라도, 원고들이 제주의료원에서 임신 중에 근무하면서 업무상 과로와 스트레스, ·야간 교대근무, 임산부와 태아에게 유해한 약물 등과 같은 작업환경상의 유해요소들에 일정기간 지속적·복합적으로 노출된 후 원고들이 선천성 심장질환이 있는 아이를 출산하였으므로, 이러한 선천성 심장질환의 발병과 업무 사이에 상당인과관계가 있다고 넉넉히 추단할 수 있다.”고 밝혔다.



이에 반해 항소심 법원은, 산재보험급여의 수급권자는 업무상 사유로 부상을 당하거나 질병에 걸린 사람 본인에 한정되고 업무상 사유로 사망한 경우에는 그 유족이 된다는 점, 여성노동자에게 업무상 질병을 야기할 정도의 유해요인으로 태아에게 건강 손상이 발생한 것을 보험사고로 본다 하더라도, 출산 이후에는 보험급여 수급권의 주체를 출산한 자녀로 볼 수 있음은 별론으로 하고, 여성노동자 본인이 급여수급권자가 될 수는 없다는 점, 여성노동자에게 출산한 자녀를 위한 보험급여수급권을 인정하지 않은 것 자체만으로 임신한 여성노동자를 불리하게 차별하는 것으로서 헌법상 평등원칙에 위반된다거나 모성보호의무 및 사회보장·복지증진의무 등에 위배된다고 할 수도 없는 점, 출산으로 모체와 출산아가 분리된 이상 그 질병은 출산아가 지닌 것이므로 업무상 재해도 출산아에 대한 것으로 보아야 하고, 태아의 건강손상에서 비롯한 선천성 질병을 가진 자녀의 출산은 여성노동자 본인의 신체 기능이나 노동능력 감소에는 별다른 영향이 없다는 점 등을 논거로 1심 판결을 취소하고 말았다.



헌법상 국가의 기본권 보호의무·사회보장의무·평등원칙 등에 대한 진지한 고려 없이 법률의 문언해석에만 천착하여 내린 항소심의 판단에 동의할 수 없다. 다만 항소심 역시 출산아에게 보험급여의 수급권이 있는지는 별론으로 하고라거나, “출산으로 모체와 출산아가 분리되는 이상 그 질병은 출산아가 지닌 것이므로 업무상재해도 출산아에 대한 것으로 보아야 한다라고 하는 등 모체의 업무와 태아의 질병 사이에 상당인과관계가 인정된다면, 출산아가 급여수급권자가될 수 있다는 취지를 설시한 것으로 보인다. 그렇다면 현행법 해석상 원고인 여성 노동자들에게는 급여수급권이 인정되지 않는다 하더라도 출산아에게는 그것이 인정된다는 취지를 보다 적극적으로 판결이유에 명시함으로써, 판결 주문에서의 청구기각 여부와 무관하게 근로복지공단으로 하여금 재처분의 여지를 제공할 수 있지 않았나 하는 아쉬움이 있다.



한편, 이 소송 중에 산재보험법 대상조항이 불완전·불충분하게 규정되어 헌법에 위배된다는 점을 들어 위헌법률심판 제청신청을 하거나, 헌법해석상 특정인에게 구체적인 기본권이 생겨 이를 보장하기 위한 국가의 행위의무 내지 보호의무가 발생하였음이 명백한데도 입법자가 아무런 입법조치를 취하지 않는 경우라고 하여 입법부작위에 대한 헌법소원을 하는 방법도 필요하지 않았나 싶다. 항소심 법원의 판단은 입법권자의 광범위한 입법권을 침해하지 않으려는 권력분립의 원칙에 입각한 것이라기보다, 우리 사회가 여성노동자를 대하는 시선을 고스란히 반영한 것으로 보인다. 국가인권위도 2심 판결의 위헌성을 지적하며, 지난 129일 대법원에 헌법이 규정하는 모성보호와 여성 근로의 특별보호, 국제인권기준, 산재보상보험법 제정 목적 등을 고려할 때, 임신한 여성노동자와 태아는 업무상 유해요소로부터 특별히 보호받아야 한다는 취지의 의견을 제출한 바 있다. 오늘날 임신부터 출산에 이르기까지의 과정과 양육의 과정이 더 이상 여성 또는 개인만의 문제로 치부될 수 없음에도, 여성 노동자의 출산을 사회연대적 관점으로 보지 않고 개인의 문제로 치부하려는 경향은 쉽사리 변하지 않고 있다. 태아

의 건강손상과 업무 사이에 상당인과관계가 인정된다 하더라도 민사상 손해배상을 청구하는 것 이외에 모()와 자() 모두 현행 산재보험법으로 보상받을 방법이 없다는 사실은 매우 부조리하다. 이는 그간의 노동시장이 남성 중심으로 조직되어 왔고, 산재보상제도 또한 남성의 노동을 중심으로 설계되었으며, 여성의 노동은 주변화 되고 소외되어 왔음을 방증하는 것이기도 하다. 현행 산업안전보건제도 및 산재보상제도에서 여성노동자 특유의 임신·출산·육아·가사노동과 관련한 보호와 보장 방안을 찾기란 쉽지 않다. 그만큼 국가와 사회가 여성 노동자의 재생산권 보장 의무는 방기한 채 여성에게 재생산의무의 이행만을 강요해 왔던 것이다.



이 사건으로 말미암아 태아와 모성보호를 위한 산재보험법 개정논의가 시작되었고, 2018.5.3. 산재보험법 일부개정 법률안이 발의되었다. 늦은 감이 없지는 않으나 여성 노동자의 재생산권보장을 위한 개정법률안의 조속한 통과를 바라는 동시에, 제주의료원 노동자들의 기나긴 법정투쟁이 헛되지 않도록 대법원이 전향적 판단을 내리길 기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