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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동시간 에세이] 대선 이후, 우리의 시간은 어떻게 바뀌어야 하나? /2017.3 노동시간의 문제를 공론의 장으로 김형렬 노동시간센터장 칼퇴근법, 저녁이 있는 삶, 노동시간 단축을 통한 일자리 창출, 연간 노동시간 상한제 등, 벌써 노동시간에 대한 논의가 활발해지고 있다. 그러나 장시간노동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최소한의 기본적인 제도조차 오랫동안 국회에서 통과되지 못하고 있는 것도 현실이다. 국회 환경노동위원회는 지난 2월 주당 최대 근로시간을 현행 68시간에서 52시간으로 낮추는 내용을 담고 있는 근로기준법 개정안을 처리하지 못했다. 주당 노동시간에는 주말근무는 포함되지 않는다는, 잘 이해되지 않는 셈법이 지금까지 대한민국 정부의 공식적 입장이다. 최근 정부에서 내놓은 또 하나의 분노 자극 패키지가 있었다. "금요일에는 4시에 퇴근하자". 이런 정부의 정책안에 대해 시민들은 "집에 .. 더보기
월 간 「일 터」/[문화로 읽는 노동] 구) 노동시간 읽어주는 사람

[노동시간 에세이] 대선 이후, 우리의 시간은 어떻게 바뀌어야 하나? /2017.3

노동시간의 문제를 공론의 장으로


김형렬 노동시간센터장


칼퇴근법, 저녁이 있는 삶, 노동시간 단축을 통한 일자리 창출, 연간 노동시간 상한제 등, 벌써 노동시간에 대한 논의가 활발해지고 있다. 그러나 장시간노동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최소한의 기본적인 제도조차 오랫동안 국회에서 통과되지 못하고 있는 것도 현실이다. 국회 환경노동위원회는 지난 2월 주당 최대 근로시간을 현행 68시간에서 52시간으로 낮추는 내용을 담고 있는 근로기준법 개정안을 처리하지 못했다. 주당 노동시간에는 주말근무는 포함되지 않는다는, 잘 이해되지 않는 셈법이 지금까지 대한민국 정부의 공식적 입장이다.


최근 정부에서 내놓은 또 하나의 분노 자극 패키지가 있었다. "금요일에는 4시에 퇴근하자". 이런 정부의 정책안에 대해 시민들은 "집에 가서 일하라는 거냐?" "탁상공론이다" "그동안 사내 소등제, PC 셧다운제, 수요일 가정의 날. 모두 해봤지만, 결국 바뀌는 건 없었다." 등의 의견을 드러냈다. 정책이 실제로 작동되기 위한 구체적인 방안이 마련되지 않는다면 이런 논의구호는 분노만을 가져올 뿐이다.


그런데도 노동시간 문제가 사회적 논의의 장으로 들어온 것은 분명하다. 그것도 우선순위가 비교적 높은 문제로 인식되고 있다. 최근 스웨덴의 요양병원 간호사를 대상으로 하루 6시간 노동을 하는 실험이 이루어졌다. 그 결과 간호사들의 병가가 줄어들고, 건강상태가 좋아지고, 서비스의 질이 높아졌다는 결과가 보고되었다. 이 연구는 추가비용의 발생 등으로 지속하지 못하고, 당장은 실험으로 그치긴 했지만, 노동시간 단축과 삶의 질 향상이라는 사회적 논의를 촉발하는 효과가 있었다. 


모든 집단에서 이루어지는 이러한 노동시간 관련 논의는 그 자체로 긍정적이다. 다만, 노동시간 단축에 대해 어떤 관점으로 접근해야 하는가는 매우 중요한 문제다. 노동시간 유연화를 통해, 노동시간의 양극화가 발생하고 파트타임, 비정규직이 증가하는 방향으로 노동시간 단축이 이루어지는 것도 노동시간 단축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노동시간을 어떻게 단축할 것인가

유럽에서 진행된 노동시간 단축의 유형을 네 가지로 구분해 놓은 연구가 있다. 첫째는 장시간노동 단축유형이다. 극단적인 노동시간을 줄이는 것이 당연히 필요해서 생겨난 유형이다. 산업화가 진전되면, 장시간노동은 기업의 경쟁력에 효과적이지 않을 뿐 아니라, 노동자들의 건강권을 위해서, 혹은 소비 주체로서의 노동자를 만들어 내기 위해 장시간 노동을 줄일 필요가 있기 때문이다. 극단적인 장시간 노동을 줄이기 위해 노동조합이 주도적인 역할을 수행하였다. 여러 정치적 캠페인이 진행되었고, 하루 8시간, 주 40시간 쟁취를 위한 대사용자 투쟁이 이어졌다. 


이러한 19세기-20세기 초에 벌어졌던 극단적인 장시간 노동을 줄이기 위한 전략은 여전히 한국사회에 유효하게 남아있다. 특정 산업이나 직종에서 초과근무를 당연시하거나, 생활임금 확보를 위해 자발적인 장시간 노동을 수행하는 경우가 많다. 이를 해결하기 위해 노동법 개정을 통해 표준 노동시간을 규정하거나, 노동시간의 최고한도를 설정하는 방식 등이 유효할 수 있다. 민주노총은 최근 연간 1,800시간 노동시간 상한제를 주장한 바 있다. 이러한 정치적 캠페인이 노동법 개정 등을 통해 반영되는 방식이다.


둘째는 진보적 노동시간 단축 유형이다. 자본주의의 생산성 향상과 잉여 가치를 노동자들도 함께 나누는 것에 대한 요구이다. 노동시간 단축을 통해 가족과 공동체 활동의 증가, 삶의 질 향상을 요구하는 것이다. 


셋째는 일자리 나누기 유형이다. 대부분의 대선 주자들이 노동시간 단축을 꺼낼 때 일자리 창출과 연관하여 주장한다. 특히 이러한 일자리 나누기 유형은 경제불황기에 고용유지, 정리해고 회피 목적으로 주장된다. 우리나라 민주노총, 한국노총에서도 노동시간 단축을 통한 일자리 창출을 주된 정책 방향으로 주장하고 있다. 


넷째는 노동시간 유연화 유형이다. 이는 월요일부터 금요일까지 오전 9시부터 오후 6시까지 일하고 주말에는 쉬는 소위 표준노동시간의 개념을 바꾸는 전략이다. 노동자 입장에서는 자신의 시간을 잘 활용하기 위해 자신이 원하는 시간에 노동하고자 하는 것이고, 사업주는 노동시간과 영업시간을 일치시키지 않아도 되는, 24시간 이윤을 창출하는 구조를 만들 수 있는 방법이 되기도 한다. 


이러한 유연화를 통한 노동시간 단축은 주말노동과 다양한 형태의 파트타임 증가를 낳고 있다. 돌봄노동을 위한 목적과 삶의 시간에 대한 재량적 사용이라는 노동자의 목적이 온전히 고려되기보다는 노동에 대한 효과적 사용이라는 사용자의 목적에 맞게 활용되는 양상이다. 그래서 비정규직의 증가, 교대제 확대, 노동시간의 양극화 발생 등의 문제가 드러나기도 한다.


노동시간의 문제는 노동법 개정이나 단체협약을 통해 노동시간을 단축하는 것만으로 해결될 수 있는 문제는 아니다. 개별 기업 수준의 이행 과정은 업종이나 기업별 특성, 노동자들의 요구에 영향을 받기 때문이다. 또한, 사회보장 수준, 교육, 주거 등의 사회 문제와도 연결되며, 직접적으로 임금 수준의 문제와 관련이 있다. 생활임금이 확보되지 않은 노동시간 단축은 있을 수 없으며, 사회보장 수준이 부족한 상황에서 임금확보를 위해 자발적인 노동시간을 늘리는 현상을 막아내기 어렵다.


대선 이후, 우리의 노동시간은 어떻게 바뀌어야 하나

대선을 준비하는 것이 꼭 대선후보들만의 몫은 아니다. 대선 시기에 우리 사회의 주요한 사회적 의제를 만들고 논의를 통해 정책적 대안을 만들어 내는 것은 우리 모두의 역할일 수 있다. 노동시간센터에서는 "대선 이후, 우리의 노동시간은 어떻게 바뀌어야 하나?" 라는 기획연재를 준비했다. 이 기획의 첫 번째 주제로, 사회 정책 차원에서 육아를 비롯한 돌봄노동에 대한 노동시간 문제를 다룰 예정이다. 육아휴직에 대한 다양한 정책 제안이 쏟아져 나오고 있고, 이는 저출산 예방대책으로도 논의되고 있다. 육아를 위한 단시간 노동도 이미 많은 논의와 비판이 있었다. 돌봄 노동을 위한 우리의 시간은 어떻게 사회적으로 확보되어야 하는지에 대한 고민이 담길 것이다. 두 번째 주제로는 "노동시간 특례제도와 과로의 기준"을 다룰 예정이다.


이미 과로사의 문제가 우리 사회에서 심각한 쟁점이 되고 있고, 극단적인 장시간 노동의 문제가 여전히 중요한 해결과제로 남아있다. 그런데도 우리나라 노동자 절반이 노동시간 특례제도에 의해 주당 12시간까지만 연장근무를 허용하는 현재근로기준법의 예외 업종에서 일하고 있다. 주요 서비스 노동자, 운전노동자, 경비 업무 등 다양한 분야의 노동자들은 52시간, 68시간을 넘어 주 80시간 노동도 불법이 아닌 상태에 놓여 있다. 이런 법 규정에서는 장시간노동 문제를 해결하기 어렵다. 또한, 우리나라에서 직업병으로 인정되는 과로의 기준을 고찰하는 글이 될 것이다. 


세 번째 주제는 야간노동과 교대근무를 줄이기 위한 정책적 방안을 다룰 것이다. 야간노동이 암 발생을 유발한다는 것은 이미 잘 알려진 사실이다. 병원, 소방, 경찰 등의 공공서비스 영역에서 야간노동은 불가피한 측면이 있다. 그러나 그 외 영역에서 수많은 야간노동과 교대근무는 우리 사회에서 꼭 필요한 것일까 고민해야 한다. 이를 최소화할 수 있는 정책적 방안에 대한 고민을 담을 예정이다. 


네 번째 글은 과연 노동시간만 줄이면 되는지에 대한 질문을 던진다. 노동시간은 줄였으나, 노동하는 시간 '동안'의 문제가 여전히 남아있다면? 단위 노동시간 동안 노동강도가 증가하거나, 감정노동, 직무 스트레스 등의 문제가 있다면, 이는 노동시간을 줄이는 것만의 문제로 해결될 수 없는 또 다른 논의를 만들어 낼 수 있다.


노동시간을 둘러싼 사회적 논의는 이번 기획에서 다루는 주제만 있는 것은 아니다. 앞서 언급 했던 임금, 교육, 주거의 문제 등 다양한 사회 문제들과의 연결고리를 다루는 것 역시 매우 중요하다. 관행화되어 있는 야근 구조, 조직 내 권위적인 문화, 심야 공공 교통 서비스 정책, 시간제 임금 구조, 관행적인 기한 압박으로 인한 몰아치기 노동 등도 지속적인 고민이 필요한 주제들이다. 


이제 곧 선거를 앞두고 있다. 선거가 끝나도 이 고민이 중단되지 않기를 바란다. 세상을 바꾸기 위한 고민과 과제가 많지만, 당장 먼저 해야 할 것도 있으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