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명] 유성기업은 조합원 자결에 대해 사죄하고 노동자 괴롭히기 중단하라!

[성명] 유성기업은 조합원 자결에 대해 사죄하고 노동자 괴롭히기 중단하라!


오늘 새벽 유성기업 영동지회 조합원 한광호 씨가 자결했다. 유성기업은 2011년 노사가 합의한 심야노동을 주간노동으로 전환시키지 않기 위해 온갖 폭력을 저질렀다. 직장폐쇄를 하고 용역들을 동원해 노동자들을 차로 치고 때리며 폭력을 휘둘렀다. 국정감사 결과, 유성기업의 폭력은 우발적인 사고가 아니라 현대자동차의 개입과 창조컨설팅의 조력을 받은 의도적이고 조직적인 폭력이었음이 드러났다. 그러나 그 후에도 유성기업은 노동자의 기본권리가 명시된 단체협약을 해지하고, 노동자들의 노동조건을 뒤로 후퇴시켰다. 항의하는 노동자들을 해고하고 복수노조를 만들더니, ‘기초질서지키기’란 명목으로 노동자들을 옥죄어 징계하고 몰래카메라 감시와 고소고발까지, 모든 수단을 동원해 노동자들을 끊임없이 괴롭혔다. 


그 결과 노동자들의 정신건강은 나빠졌고 이에 2012년 충남노동인권센터 부설 ‘노동자 심리치유 사업단 두리공감’은 유성기업지회 조합원들을 대상으로 정신건강 실태조사를 했다. 고위험군이 40%나 될 정도로 노동자들의 심리상태, 정신건강은 매우 위험했다. 그 후 충남인권센터는 노동자들에 대한 검사와 상담을 지속했다. 또한 금속노조 유성기업 영동지회와 아산지회도 악화되고 있는 조합원들의 정신건강 때문에 현장에 노동자 혼자 남겨지지 않도록 담당자를 정해 서로의 안부를 확인하기도 했다. 그러나 현장에서 노동자들을 차별하고 괴롭히는 상황이 바뀌지 않는 한 노동자들의 상태가 나아질 수 없는 일. 결국 오늘 노동자 한 명이 목숨을 잃었다. 그가 죽음 외에는 다른 것을 선택할 수 없었기에 이는 명백한 타살이다. 지옥 같은 현장을 벗어나는 것은 죽음 밖에 없었다는 사실이 남은 동료들과 가족들의 가슴을 찢는다. 


노동자가 건강을 회복하고 치유되기 위해서는 인권침해 상태가 종결되고 가해자가 처벌받는 일이 반드시 필요하다. 그러나 이러한 반인권적 불법행위를 저지른 유성 경영진은 이제까지 한 번도 처벌받지 않았다. 반면 유성기업 노동자들의 건강상태는 날로 악화되고 있었다. 이에 작년 말 인권단체, 노동안전단체, 법률가단체들이 모여 <노조파괴 범죄자 처벌, 유성기업 노동자 살리기 공동대책위원회(약칭 유성기업 공대위)>를 꾸렸다. 그러나 노동자의 죽음을 막기에는 너무나 역부족이었다. 아직도 불안한 노동환경에서 일하는 유성기업 노동자들이 힘을 얻기 위해서 더 많은 연대가 필요하다. 더 이상 노동자가 죽지 않기 위해서는 함께 싸워야 한다. 유성기업 공대위는 이번 한광호 노동자의 죽음을 계기로 부정의한 기업경영, 노동자 괴롭힘, 노조탄압을 그냥 넘기지 않을 것임을 다짐하며 유성기업과 정부, 사법부에 다시 한 번 요구한다. 


유성기업은 한광호 조합원의 죽음에 대해 사죄하라. 그리고 징계와 고소고발 등 노동자 괴롭히기를 당장 중단하라! 그를 죽게 만든 책임자를 징계하라!

정부에게 요구한다. 유성기업의 가학적 노무관리 및 괴롭힘, 부당노동행위 등에 대한 특별근로감독을 실시하라!

사법부에게 요구한다. 노조탄압, 위법 행위로 일삼는 유시영을 제대로 처벌하라!


2016년 3월 17일 

노조파괴 범죄자 처벌, 유성기업 노동자 살리기 공동대책위원회 (약칭 유성기업 공대위)


[공대위 참여단체]

*노동안전보건단체: 건강한노동세상, 노동건강연대, 마창거제산재추방운동연합, 산업재해노동자협의회, 울산산재추방운동연합, 일과건강, 한국노동안전보건연구소

*심리치유단체: 충남노동인권센터 부설 노동자 심리치유 사업단 두리공감 

* 학계: 민주화를위한교수협의회 

* 법조계: 노동인권 실현을 위한 노무사 모임, 민주사회를위한변호사모임 노동위원회, 민주주의 법학 연구회

* 노동계: 노동자전선, 민주노동자전국회의, 비정규직없는세상만들기네트워크, 사회적파업연대기금, 손잡고, 전국금속노동조합, 

전태일을따르는사이버노동대학, 좌파노동자회, 현장실천사회변혁노동자전선

* 정당: 사회변혁노동자당

* 종교 : 기독교목회자정의평화위원회, 꼰벤뚜알 프란치스코 수도회

* 사회단체: 경제민주화실현네트워크, 손잡고, 장그래 살리기 운동본부, 진짜 사장 나와라 운동본부, 참여연대

* 인권: 인권운동사랑방



[A-Z 노동이야기] 노무사가 없어도 되는 세상을 희망하는 노무사 / 2015.2

노무사가 없어도 되는 세상을 희망하는 노무사
노동자 측 사건만 맡는 공인노무사 인터뷰

 

 

 

 

재현 선전위원

 

 

우리가 흔히 노무사라고 부르는 공인노무사는 국가에서 공인하는 유일한 노동법률 전문가이다. 노동관계법상에서 발생하는 여러 분쟁에서 당사자가 해결을 못할 경우 그 분쟁을 대리하거나, 때론 기업을 위해 각종 인사노무관리 상담이나 자문 등의 업무를 담당한다. 얼마 전 영화 <또 하나의 약속>, <카트>에서 노무사가 주요한 인물로 등장하면서 노무사라는 직업이 사회적으로 새롭게 조명 받고 있다. 영화 속 등장인물처럼 기업을 위한 자문, 분쟁해결업무는 일체 보지 않고 10여 년간 노동자들의 곁에서 든든한 버팀목이 되고 있는 공인노무사 김가명(가명) 씨를 만났다.

 

 

노무사를 하리라곤 생각도 못 했어

 

“저는 딱히 처음부터 무슨 생각이 있거나 그래서 노무사 일을 선택하지는 않았어요. 그냥 제가 대학을 조금 오래 (10년) 다니다 보니까 졸업을 하고 취직하기가 뭣하더라고요. 그래서 지도교수를 찾아가 대학원을 갈 테니 조교로 선임해달라고 요청하니까 교수님이 네가 나한테 10년을 배웠는데 뭘 또 배울게 있냐고 하더니, 노무사란 직업이 있으니 이걸 하면 너한테 좋을 것 같다고 하시더라고요. 그때 계기로 시작하게 되었어요.”

 

지도교수의 조언과 달리 가족들과 주변 지인들은 노무사 시험을 준비한다고 하자 기대보다 걱정과 우려의 시선이 더 컸다고 한다.

 

“졸업하고 처음부터 공부를 시작한 게 아니라 일반 회사에 취직해서 다니고 있었어요. 그런데 갑자기 다니던 직장 때려치우고 이때 아니면 언제가나 싶어서 한 1년 정도 여행을 다녀왔죠. 그 뒤에 이제 맘 잡고 좀 살겠거니 했는데 덜커덕 공부를 한다고 하니까 집에서는 걱정을 많이 하셨죠. 다행히 보통 남들 준비하는 시간만큼 공부해서 시험에 합격했어요. 사실 제가 공부를 잘한 편이 아니라 걱정을 많이 했는데 시험 직전에 책에서 본 내용이 시험 문제로 2개나 나오고, 운이 억세게 좋았던 거죠.”

 

 

오로지 노동자의 편에서 일하는 김가명 씨

 

그렇게 시작한 노무사 생활도 올해로 어느덧 9년째 접어들었다는 김가명 노무사. 그는 이 노무법인에서 특별한 경험과 특별한 인연을 만나게 되었다.

 

“우리 노무법인이 만들어진지 올해로 만 10년인데 저는 수습부터 시작해서 햇수로 9년째 줄곧 여기에서 일했어요. 노무법인의 특성상 돈 때문에 사람들이 이합집산해서 개업하고 동업을 하고 그러다, 결국 돈 때문에 싸워서 찢어지고 그런 일이 많거든요. 하지만 저희는 일하는 동안 단 한 차례 분쟁도 없었어요. 같이 일하는 동료들뿐만 아니라 아내들, 아이들끼리도 잘 어울리고. 아마 이런 직장은 어디 가도 없을 것 같아요.”

 

“제가 일하는 곳은 다른 노무법인과 달리 사용자 자문과 사건을 안 하고, 노동조합 자문과 노동자 사건만을 담당하는 곳이에요. 이런 데는 서울에 5~6군데 정도, 전국을 통틀어도 10개가 안 될 거예요. 저희 같은 노무사들이 모여 ‘노동인권실현을 위한 노무사 모임’을 만들었는데 그 회원 130여 명과, 모임엔 없지만 노동조합에 있는 노무사들 등등 따져보면 총 160~170명 정도가 저희와 같은 삶을 사는 노무사들이죠. 전체 노무사가 3,000명이 넘는다고 봤을 때 5%가 안 되는 것 같네요.”

  

 

노무사는 해고, 노동조합 활동, 산재 관련 사건을 대리하거나 노동조합 활동 또는 기업의 인사경영자문을 한다.

출처: 민주노총 서울남부 노동자 권리찾기 사업단 카페


노동자 측 사건만 맡는 공인노무사 인터뷰

 

노무사들 수입은 자문을 하는 사측에 따라 천차만별이라고 한다. 노무사 중에는 몇 십억씩 버는 사람도 있다고 한다. 반면에, 최저임금 수준으로 받는 노무사도 꽤 있다. 한번은 같은 사건에서 노동자를 대리한 김가명 노무사의 노무법인과 사측 노무법인의 수임료가 100배 이상 차이가 나기도 했다고 말했다.

 

“사실 저는 처음 노무사가 됐을 때 ‘사용자 측 사건은 안 하겠다’, 그런 생각은 안 했어요. 그런데 여기에서 수습기간을 보내면서 많은 걸 보고 생각하게 되니 사용자 측을 대리하는 건 뭔가 적성에 맞지 않는다 싶어서 이렇게까지 왔죠. 아무래도 사용자 측 자문을 안 하다 보니 다른 노무법인에 비해 수익이 많지는 않아요. 그래도 근근이, 잘 살고 있습니다.”

 

 

이랜드 투쟁 때의 기억이 가장 인상 깊게 남아

 

김가명 씨가 일하는 노무법인의 특성상 노동자(노동조합) 자문을 주로 하는 곳이다 보니, 인상 깊었던 사건도 보통의 노무법인들과는 다를 것 같았다.

 

“여러 사건을 맡았지만 제일 기억에 남는 건 아무래도 2007년 이랜드 파업할 때 인 것 같아요. 2008년 10월 29일 중앙노동위원회 재심이 있던 날이었어요. 10월 29일은 원래가 제 생일인데 그날 조합원들 해고 재심판정이 있었던 거죠. 그런데 당시 이랜드 노조 사무국장님의 남편도 생일이라는 거예요. 그러면서 사무국장님이 작년엔 구속 중이라 생일 못 챙겨줬는데 이번에는 챙길 수 있겠다고 하시더라고요. 그때 수석부위원장님은 자기는 결혼기념일이라며 세 명 모두 승리의 기념일을 챙기자고 했는데 사건을 져서 굉장히 마음 아팠던... 그런 날이었죠.”

 

“또 하나는 첫 사건이에요. 2년간 2,600만원 임금을 한 푼도 못 받고 일하다가 찾아오신 방글라데시아 이주노동자 분이었어요. 당시 1월의 굉장히 추운 겨울날 노동부에서 조사가 있어서 먼저 가 있는데, 그때 이 분이 가죽점퍼에 안에 반팔 티셔츠 하나 입고 온 거에요. 그게 어찌나 짠하던지. 지금까지도 잊히지가 않아요. 당시 사장이 도망간 상태라서 할 수 있는 건 많지 않았는데요. 어쨌든 기소되고 그러니까 사장이 밀린 돈을 일부 주고, 국가에서 보장하는 체당금을 받고 고국으로 돌아간 사건이었죠.”

 

 

사용자 측 대변하는 노무사들 이해하고 싶지도 않고 이해할 필요도 없다

 

노동자의 편에서 버팀목이 되고 있는 노무사로서 심종두(‘노조파괴’를 전문으로 하는 <노무법인 창조컨설팅>의 대표, SJM·유성기업 등이 그 예)같은 노무사를 보면 어떤 생각이 들까 자못 궁금해졌다.

 

“그 사람이 선택한 인생이라고 생각해요. 그 사람은 그렇게 사는 삶이 자기 가치관에 부합한다고 생각하는 거겠죠. 저도 처음엔 어떻게 인간의 탈을 쓰고, 사람을 짓밟으면서까지 저런 짓을 하나, 몹쓸 것들, 하면서 욕하고 그랬는데 지금은 사용자의 입장이 돼서(그 사람들 생각에) 회사 말아먹는 노동조합을 탄압하는 걸 자기 사명으로 생각하나 보다 그렇게 생각하게 되었어요. 물론 이해는 안 되지만 애초에 다른 생명체라 생각하고, 이해하고 싶지도 않고 이해할 필요도 없다고 생각해요. 아마 그쪽도 마찬가지 일겁니다.”

 

 

하루빨리 노무사가 없어도 되는 세상이 왔으면

 

“저는요 제가 이렇게 안 살 수 있는 사회가 빨리 왔으면 좋겠어요. 밑도 끝도 없는 이야기처럼 들릴 수 도 있는데... 사실 우리 같은 사람이 있다는 건, 주변에 우리 같은 사람의 도움이 절박한 사람이 있다는 거거든요. 그래서 하루빨리 노동자들이 사측과 대등하고 평등하게 부당한 일을 겪지 않고도 살 수 있어서, 저희 같은 사람이 필요 없는 그런 삶을 살고 싶어요.”

 

우리가 살면서 혹은 활동하면서 노무사를 찾아가게 된다는 것은 내가 있는 현장에서 노·사간 풀기 어려운 분쟁이 발생한 것을 의미한다. 힘과 권력이 있는 사측과의 다툼은 그 과정만으로 노동자에게 분통터지고 고통스러운 일일 것이다. 그렇기에 김가명 노무사가 노동자들이 노무사를 찾지 않아도 되는 세상, 그런 삶을 꿈꾼다는 것이 어떤 의미일지 상상이 된다. 하루빨리 그런 세상을 마주하고 싶다고, 김 노무사가 품은 희망을 함께 마음에 담아본다.

 

[노안뉴스] 설마 하루아침에 30명 모두를 자를까’ 했지만 결국 쫓겨났다 (경향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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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 http://news.khan.co.kr/kh_news/khan_art_view.html?artid=201401142129305&code=940702

 

[간접고용의 눈물]‘설마 하루아침에 30명 모두를 자를까’ 했지만 결국 쫓겨났다

 

김세영 (노무사)

ㆍ노무사가 쓰는 현장보고서 - (3) 병원 간호보조

병원에 들어갈 때는 2006년 3월이었다. 대학 졸업 후 이것저것 모색하다 2년이 훌쩍 지나갔다. 당시 나는 스펙도 없고 나이도 어중간한 20대 중반의 여성이었다. 아르바이트 구인사이트에 ‘서울 강남성모병원에서 간호보조원을 모집한다’는 구인 광고를 낸 회사는 병원이 아니라 메디엔젤이라는 인력공급업체였다. 업무에 대한 간략한 설명, 3교대 근무에 월급여 120만원, 별다른 자격증은 필요없다는 공고를 보고 전화했더니 이력서를 갖고 찾아오라 했다. 사무실은 약수동 뒷골목에 있었다. 담당 실장은 이력서를 보면서 몇 가지 묻더니 대학졸업 경력을 빼는 게 좋겠다고 말했다.

 

(후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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