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터> 통권 161호 / 2017.6



[특집] 한국 사회 이주노동자의 오늘

28 이 사회에서 이주노동자는 어떻게 존재하는가!

30 우리가 먹는 상추와 깻잎의 진실

32 농어촌 이주노동자의 현실

34 이주노동자의 건강권을 위하여

36 이주노동자의 인권과 노동권을 위해 싸우는 이주노조

 

4 [노동안전건강뉴스]


6 [지금 지역에서는] 편의점 알바 노동자에게 안전과 건강을 


8 [동향체크] 국민안전처, 안전관리헌장 제정안 제출,

미세먼지로부터 노동자 보호해야

 

10 [포커스] 새 정부가 노동안전보건 정책 위해 지금 당장 실시할 것

 

12 [알기 쉬운 위험성평가] 작업자의 참여 배제 할 우려가 있다

 

14 [현장의 목소리] 특성화고·마이스터고 현장실습 문제, 우리사회의 노동인식 바로미터

 

18 [A-Z까지 다양한 노동이야기] 서로 다름을 이해하고 어우러지는 노란들판을 찾다

 

22 [연구소리포트] 2017 근골격계 유해요인조사 결과 보고서

- 금속노조 A지회 설문조사 분석결과

 

26 [사진으로 보는 세상]

 

38 [직업환경의학 의사가 만난 노동자 건강 이야기] 직업환경의학 의사가 만나지 못 한노동자 이야기


40 [노동시간_기획] 대선 이후, 우리의 시간은 어떻게 바뀌어야 하나?

 

44 [국제안전보건기준에 관한 검토] 한국과 핀란드의 야간 교대근무

 

46 [문화읽기] 인간의 조건

 

48 [발칙X건강한 책방] 이 책은 슬픔에 대한 책이 아니다

 

50 [유노무사 상담일기 더불어 ] 노원구 경비노동자의 의로운 죽음

 

52 [진실은 침몰하지 않는다] 너무나도 오랜 기다림

 

54 [이러쿵저러쿵] 꿈 같았던 한 달간의 휴가

 

56 [한노보연 이모저모]

 


[노동시간에세이] 일상이 '일'로만 채워진다면 /2015.7

일상이 '일'로만 채워진다면

 

 

김세은 노동시간센터(준), 직업환경의학 전문의

 

 

3년 전인가, 한 프로젝트에 참여하게 됐다. 어쩌다 보니 마무리 단계 작업이 내게 몰렸다. 돌이켜 생각해보면 분명히 나 혼자 하기에는 벅찬 작업이었다. 결국 그 일은 내게 떨어졌고 혼자서 마무리를 감당했다. 기한이 촉박하게 정해졌던 일이라, 아침에 출근해 새벽 2~3시에 퇴근하는 생활을 며칠간 지속했다.

 

그 기간 동안, 집에 가서는 정말 최소한의 잠만 자고 다시 출근했다. 생애 처음으로(!) 식욕 저하를 겪으며 밥을 먹는 둥 마는 둥 하며 지냈다. 몸은 피곤했지만 밤늦게 누워도 쉬이 잠이 오지 않았다.

 

주말을 포함해 며칠간, 나는 '그 일'을 하는 것 외에는 다른 일을 전혀 할 수 없었다. 그 상황을 피해 어디론가 도망가고 싶다는 생각이 드는 순간도 있었다. 괴로운 나날들이었다. 내 마음을 살필 여유 따위는 없었다. 지금까지도 그 날의 순간들이 여전히 마음에 남아 있는 것은 한 가지 강렬한 기억 때문이다.

 

그 시기의 어느 날 새벽 퇴근길, 병원을 나와 택시를 잡기 위해 도로변을 향해 걷고 있을 때였다. 30m 정도의 거리를 그저 걸어가고 있을 뿐이었는데, 갑자기 숨이 턱 막혔다(물론 실제로 숨이 막힌 것은 아니었지만 처음 겪어본, 숨이 막힐 듯한 느낌이었다). 심장이 갑자기 멈춰버릴 수도 있을 것 같았다. 그 순간, 과로사 하는 사람들이 사망하기 전 어떤 상태일지 짐작할 수 있었고, 건강에 별다른 문제가 없더라도 계속 이렇게 살다가는 나도 갑자기 죽을 수 있겠다는 생각이 스쳐 지나갔다.

 

어쨌든 우여곡절 끝에 별 탈 없이 그 일을 곧 마무리할 수 있었고, 결국 지나간 일이 되었다. 나는 원래의 적절한 출퇴근 패턴을 되찾을 수 있었다. 그 후로도 이따금 하루 이틀씩 밤늦게 퇴근하는 일이 있긴 했지만, 휴식 없이 며칠을 연이어 밤늦도록 일한 적은 다시 없었고, 숨이 턱 막히는 일도 없었다. 다행이었다.

 

 

 

 

▲ 뉴욕 마천루 꼭대기에서 낮잠자는 노동자들

 

 

일에서 벗어날 수 없는 '여가' 없는 며칠

 

이전에도, 장시간 노동이 우리의 삶과 건강에 미치는 부정적인 영향, 그리고 많은 이가 장시간 노동을 하도록 내몰리는 여러 가지 사회적 환경과 여건에 대해 늘 관심을 놓지 않으려 나름대로 애써 왔다. 장시간 노동은 바람직하지 않은 것이며, 세상에서 사라져야 할 것 중 한 가지라고 생각해왔다.

 

그 숨 막히던, 죽을 것 같은 느낌을 경험한 후 나는 장시간 노동이 개개인의 삶과 일상을 얼마나 피폐하고 괴롭게 만드는지 이전보다 더욱 생생하게 짐작할 수 있었다. 강연이나 수업, 문헌 등을 통해 알아왔던 장시간 노동의 영향에 관한 여러 연구 결과들을 일부나마 몸소 체험했다고나 할까. 그 체험은 괴로움 투성이었는데 그 중 한 가지는, 그 일에서 벗어날 수가 없다는 것, 그 일 외에는 다른 것을 전혀 할 수 없다는 그 자체였다. '느긋하게 밥 먹으며 이야기하고 싶다', '소설책이나 주간지를 읽고 싶다'와 같은 소박하고 사소한 바람조차 이루기 힘들었다. 원래의 적절한 노동 시간을 유지할 때는 늘상 하던 일인데도 말이다.

 

또한, 다른 이와 대면해서 이야기를 나눌 여유조차 없었으므로 그런 어려움에 대한 공감이나 상황을 벗어나기 위한 도움을 얻는 것도 힘들었다. 같은 공간에서 동료 여럿이 함께 일하고 있었지만, 그 중 해당 프로젝트에 참여했던 것은 나 혼자였던지라, 나는 혼자 일하는 것이나 다름 없었다. 그런 상황에서 필연적으로 찾아온 외로움과 고립감도 나를 더욱 힘들게 했다.

 

다행히 사려 깊은 나의 동료들은 내 어려움을 먼저 알아채고 어떻게든 도움을 주려고 시도했다(하지만 그러한 시도가 실질적인 도움으로 이어지지는 못했다). 하루 중 가장 많은 시간을 가까이서 지낸 동료에게서도 도움을 얻기 어려웠으니, 당연히 친구나 가족에게 하소연조차 하기 어려웠다. 정신 없이 시간에 쫓기는 동안 나 자신이 '일하는 기계'처럼 느껴지는 순간도 있었다.

 

 

 

 

▲  자료 출처 : 2014 국민여가활동조사보고서  
 

세상에서 하나뿐인 '나'라는 인간이 지극히 자연스럽게 일상에서 누릴 수 있는 크고 작은 사건이나 감정들은 완전히 배제된 채, 그저 최소한의 잠을 자고 최소한의 음식을 먹으며 그 외 대부분의 시간 동안 정해진 목표대로 일하는 생활. 단 며칠뿐이었지만 그 동안 내 삶은 전혀 내 것이 아니었다.

 

꼭 필요하고 옳은 일을 하고 있다거나 경제적 대가를 충분히 받을 수 있을 테니 괜찮다고 스스로 위로하며 그런 상황을 견디는 것이 정말 괜찮은 것일까?

 

아무리 사회적으로나 개인적으로 소중한 가치를 지닌 일이라고 해도, 그 노동으로 평범하고도 소중한 일상을 무너뜨리게 된다면 바람직한 상황이라 할 수 없을 것이다. 내가 참여했던 프로젝트 역시 분명히 사회적으로 좋은 목적을 가진 일이었지만, 프로젝트를 마무리하기 위해 시달리며 일상을 빼앗긴 나는 어느새 그 일이 지닌 훌륭한 가치 나 목적은 이미 잊어버렸던 것 같다.

 

'일'을 마무리하기 위해 그저 내달려야 했을 뿐이었다. 그렇게 괴롭도록 일에 내몰렸던 시간이 그리 길지 않았음에도 상황이 종료된 후에도 나는 한동안 자존감이 낮아진 상태가 지속돼 꽤 힘든 시간을 보냈다. 일에 대한 회의감이 들었고, 어느 정도 의욕을 회복하기까지 생각보다 긴 시간이 걸렸다. 약 일주일, 그리 긴 시간은 아니었지만 내겐 제법 깊은 생채기를 남긴 셈이었다.

 

일상이 무너진 노동, 그 삶의 주인은?

 

그 후로는 어떤 일을 시작할 때, 또다시 이전과 같은 괴로운 상황에 놓이지 않도록 주어진 시간에 대해 좀 더 신중히 고려하게 됐다. 그나마 이러한 고려와 선택이 가능한 것은 내게 일에 대한 선택권이 있고 시간에 대한 통제가 어느 정도 허락된 덕분이다. 그 사실만으로도 이 팍팍한 사회에서는 비교적 운이 좋은 축에 속한다는 점을 알고 있다.

 

그저 며칠이 아니라 그 이후로도 그렇게 긴 시간 동안 일에서 벗어날 수 없는 생활을 오래 지속해야했다면 내 삶은 어떻게 되었을지 상상해본다. 어쩌면 지금과는 좀 달라졌을 거라고 생각한다. 하루가 멀다 하고 울면서 어떻게든 견뎌냈을 수도 있다. 견뎌냈더라도 그 후 더 오랫동안 무력감과 회의감으로 괴로워하지 않았을까.

결국 참다 못해 사표를 쓰고는 일터를 박차고 나왔을지도 모를 일이다. 실제로 직장 생활을 하는 거의 내내 장시간 일하도록 내몰리는 많은 이를 생각하게 된다. 개인이

 

처한 상황은 저마다 다르겠지만, 특정 업무를 약속한 기한에 맞춰 마무리하기 위해 단기간 동안 내몰리는 정도가 아니라, 낮은 임금 때문에 먹고 살기 위해서 선택의 여지없이 훨씬 절박한 이유로 긴 시간동안 쉼 없이 일을 해야만 한다면, 과연 그 삶이 어떨지...

 

내가 단지 며칠간 겪었던 여러 괴로움을 오래도록 감내해야 한다면, 그가 과연 그 삶의 주인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인가. 자신의 의지와 무관하게 오랜 시간동안 일에 얽매여 일상이 무너진 삶, 그 삶의 주인은 누구인가.
 

[직업환경의학의사가 만난 노동자건강이야기] 열사병의 원인은 태양이 아니라 저열한 제도/ 2015.7

열사병의 원인은 태양이 아니라 저열한 제도

 

 

류현철 회원 (직업환경의학 전문의)

 

 

얼마 전 반가운 산재 승인 소식을 전해 들었다. 내심 재판까지 가야 하는 것이 아닐까 걱정했던 사안이 업무상질병판정위원회에서 인정되어 승인됐다는 것이다.

 

지난해 늦여름이나 초가을이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조선소에서 일하던 만 23살의 젊은 하청 노동자의 '돌연사' 건으로 연락이 왔다. 그는 8월 한여름 낮에 조선소에서 작업하던 도중 혼자 쓰러진 상태로 동료 작업자에 발견돼 응급실로 후송됐으나 결국 사망했다.

 

담당 의사는 심근경색을 사망 원인으로 의심했고, 돌연사의 가장 흔한 원인이 되는 것이 뇌심혈관계 질환이기에 그쪽으로 가능성을 두고 있었으나 국과수의 부검 결과 뇌심혈관계 질환의 가능성은 배제됐다는 것이다.

 

"의사 선상, 뭐라도 쫌 방법을 찾아보소! 어떻게 안 되겠능교?"

 

부검 소견으로 산재의 가능성도 멀어지는 듯해 답답한 마음에 내게 연락을 넣었던 모양이었다. 부검 소견상 사인은 불명이었지만, 응급실 진료 기록상 간 수치가 높아서 급성 간 부전에 의한 사망의 가능성을 배제하기 어렵다는 언급은 있었다고 했다.

 

당일 오전까지도 멀쩡하게 일하던 젊은 노동자의 급작스러운 죽음을 급성 간 부전으로 인한 것이라고 보는 것은 적절해 보이지 않았지만, 간 효소 수치가 급성 간 부전을 언급할 정도로 높았다는 점이 마음에 걸렸다. 열성 질환(열사병)의 경우에 간 효소 수치의 급격한 상승이 있을 수 있다는 사실을 떠올렸기 때문이었다.

 

뭐라도 '쫌' 해봐야 했다

 

최초 발견 후 후송된 응급실 진료 기록 전체, 부검 소견서, 과거 건강 검진 기록을 다시 검토했다. 최초 발견자의 진술을 다시 확인하고 고인이 일하던 조선소 현장을 찾아갔다. 그의 일은 선체 외부 용접을 하기 위해서 선체 안에서 용접할 철판을 100~120도까지 예열하고 용접이 잘 이뤄지도록 백킹제라는 것을 탈부착하는 업무였다.

 

그가 쓰러진 날은 8월, 한여름 낮의 날씨는 작업장의 열기를 더했을 것이다. 열사병의 가능성은 컸다. 그러나 열사병의 경과로는 너무 급작스러운 사망이었다. 의료 기록에서 응급 검사 기록상 높은 간 효소 수치, 심근경색으로 인한 사망으로 의심했던 심근 효소 수치의 증가(열사병의 경우에도 심근효소 상승 이 있을 수 있다)를 확인했다. 이 역시 열사병에서 나타날 수 있는 상황이었으나 역시 발견부터 사망에 이르는 시간 경과상 열사병으로 인한 사망의 가능성은 적었다.

 

그러나 최초 도착 시 질식 상태에 대한 언급, 응급 간호 기록지에서 기도 흡인을 할 때 음식물이 배출됐다는 사실 역시 확인했다. 최초 발견자가 말했던 구토의 흔적이나 얼굴이 검게 돼 있었다고 언급한 정황과 맞춰보면 기도 폐색으로 인한 질식의 가능성이 있었다. 일반적으로는 열사병으로 그렇게 이른 시간에 사망에 이르기는 힘들 것이고, 또한 정상적인 경우라면 술에 취하거나 뇌 손상도 없는 젊은 성인 남자가 구토로 질식에 이르는 경우는 거의 없다. 그러나 열사병으로 활력과 의식이 떨어진 상태에서의 구토라면 다르다.

 

"열중증(열사병)으로 인한 활력 및 의식 저하를 동반한 구토, 구토물의 기도폐색으로 인한 질식사"가 의심됐고 기존의 문헌 자료 검토와 의무 기록, 현장 검토 기록을 첨부해 업무와 관련한 사망이었을 가능성이 크다는 업무 관련성 평가 소견서를 작성했다. 그 건이 다행히 산재로 인정되었다.

 

필사의 노동, 목숨까지 앗아갔다

 

근간의 일 중 적지 않은 의미가 있는 일이었다. 먼저 젊은 조선소 하청 노동자의 외로운 죽음이 업무와 관련된 것이었음이 입증된 것이 중요한 의미이다. 남겨진 가족에게는 아주 작은 위안이라도 될 것이다. 또 한편으로 직업환경의학을 하는 의사로서의 작은 의미와 보람을 일깨워준 일이기도 하다.

 

응급실에서 처음 고인을 접한 의사 의견도, 국과수 부검의의 의견도 의학적 사실에서 벗어난 것은 아니었으며 그들의 책무를 다하지 않은 것도 아니다. 다만 그들은 고인의 직업과 일을 돌아볼 자리에 있지 않았기 때문에 그 죽음이 의미하는 바를, 그 죽음의 진짜 원인을 찾기 어려웠을 것이다. 사인은 열사병, 기도 폐색이면서 또한 원·하청 제도이기도 하다. 그것을 밝히고 이야기하는 것이 직업 환경 의학 의사의 일이다.

 

8월 한여름 거대한 강철 구조물 안에서 벌어지는 필사의 노동. 조선소 하청 업체 노동자는 추천을 받아 직영으로 들어가게 해준다는 직영 추천제가 주는 작은 희망에 매달려 그렇게 일하다가 쓰러졌다. 스물세 살이었다. 고인이 남긴 휴대 전화의 문자 대화들을 보라. 이런 현실에서 빚어진 노동자의 죽음이 업무와 관련한 사망임을 밝히게 된 것은 다행스러운 일이지만 사후약방문일 뿐이다.

 

 

 

 

▲ 열사병으로 사망한 노동자 휴대폰에 남아 있던 문자

 

이런 애달픈 죽음이 다시는 일어나지 않게 하는 것이 바로 이제부터 할 일이다. 열사병에 이르게 하는 혹독한 작업 환경이 개선돼야 할 것이며, 더불어 자신의 건강과 안전에 위협을 느끼게 되는 상황에서는 작업을 중단할 수 있는 당연한 권리를 줘야 한다. 어떻게든 직영이 되고자 가혹한 조건의 노동을 감내하고 휴식의 기회조차 내놔야 하는 현실 속에서 하청 노동자들의 건강과 안전은 위협받기 마련이다.

 

다시 뜨거운 여름이 다가온다. 노동자들의 건강을 열사병으로부터 지키기 위해서 맞서야 할 것은 무심한 태양이 아니다. 열사병의 원인은 태양이 아니라 저열한 제도(制度)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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