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업환경의학 의사가 만난 노동자 건강 이야기] 직업을 묻고 대답하는 불편함을 넘어 / 2018.10

직업을 묻고 대답하는 불편함을 넘어

강충원 일터건강을 지키는 직업환경의학과의사회 회장

의대생들에게 "일하는 사람의 건강"이라는 주제로 강의를 하는 경우가 종종 있다. 직업환경의학과라는 정식 수업 이외에 의학 공부에 집중된 의대생들에게 사회의 현실을 알려주는 일종의 교양수업이라고 할 수 있다그때 의대생이나 의전원생들에게 여러분들이 노동자를 진료하는 일이 얼마나 될 것 같으냐고 물어보면 잠시 정적이 흐르고 대부분 고개를 갸우뚱한다. 학생들 머릿속에는 병원에서 보는 환자 이외에는 없기 때문이다.

여기서 덧붙여 이야기하며 여러분들이 만나게 될 환자분들은 일을 하고 있거나 과거에 일을 했거나 앞으로 일을 해야 할 사람일 가능성이 높음을 상기시켜 주곤 한다. 그런데 학생들에겐 의학지식보다 어려운 것이 직업을 묻는 일인 것 같다 환자들에게 "무슨 일 하십니까?" 물어보면 대답이 쉽게 나오지 않는다. 그것은 한국 사회에 흐르는 직업에 대한 편견도 작동하지만, 의사들에게 직업에 관해서 이야기한 적이 별로 없기 때문이다. 그도 그럴 것이 의사들은 직업을 물어보지 않는다.

그것은 직업을 아는 것이 치료에 큰 영향을 주지 않는다고 생각하고 있거나, 직업을 물어보는 것을 배우지 않았기 때문이다. 모든 의사가 그것을 배운다고 가정하더라도 그 직업을 다 이해하거나 그 일이 병의 원인이나 치료, 이후 재활과 어떤 관련이 있는지 쉽게 알아차릴 수 있을까오히려 노동자들이 환자가 되었을 때 자기 일이나 자신이 사용한 화학물질이나 자신이 의심가는 상황에 대해서 조금 더 자세히 설명하고 업무와 관련된 것인지 의사와 상담할 시간을 충분히 주는 것이 더 나을 것이라 생각도 해본다. 둘 다 어느 한쪽의 노력만으로는 쉽지 않은 일이다.

그런데 직업환경의학과 의사들도 "당신은 무슨 일을 하세요?" 같은 질문을 많이 받는다. 막상 우리가 무슨 일을 하는지 질문을 받으면 그것도 쉽게 설명하기 어렵다. 왜 그럴까? 앞서와 비슷한 이유로 아직까지 우리나라에서는 직업, 노동과 의료, 건강이 쉽게 연결되지 않는다. "건강하게 일하기"를 위해서 직업환경의학과라는 전문 과목까지 생겼음에도, 여전히 현실은 이윤을 표방하는 기업 논리 앞에 노동자의 건강권은 한없이 작아지고 만다. 

이렇게 직업, 노동과 괴리된 의료, 건강에 대한 인식 외에 또 하나의 문제가 있다. 직업을 물어보고 일하는 과정에서 노출되거나 문제가 될 수 있는 상황을 설명하는 데는 시간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생명을 다룬다는 병원에서도 시간은 돈이다. 아이러니하게도 돈을 못 버는 과는 공간과 시간이 축소되거나 폐과되고, 돈이 안 되는 행위들은 서서히 자취를 감춘다. 그래서 사실 돈이 안되는 직업환경의학과는 사실상 늘 존재증명을 해야 하는 과이다.

현대인의 질병의 원인이 70%가 흡연이라고 하지만, 의사들이 환자의 금연에 시간을 많이 쓰지 않는 것이나, 질병에 대한 직업의 기여도가 2~10%라고 하지만 의사들이 직업에 관심을 가지지 못하는 이유는 이런 몇 가지 구조적이고 현실적인 이유 때문이다. 불행 중 다행으로 이제는 "무슨 일을 하십니까?"라는 질문을 진료실에서 한번 더 고민할 이유가 몇가지 생겼다.

내년부터 고용노동부에서 보건관리대행이나 근로자건강진단 시에 직업환경의학과 의사들이 산재신청을 도울 수 있도록 체계를 만들기로 한 것이다. 또한 업무상 질병에 대해서는 노동자가 불필요하게 복잡한 과정을 거치지 않고 당연 인정기준에 해당하면 이전보다 쉽고 빠르게 산재로 인정받아 조기에 치료받을 수 있도록 제도를 개선하고 있다또한 산재 인정 여부와 관계없이 근골격계 질환이나 뇌심혈관계 질환 중 고위험 직종이나 업종에서 근무하는 경우 산재 특진 과정에서 진단과 치료에 대한 비용을 공단이 부담하여, 적절한 시기에 치료적 개입을 통해 노동자 건강을 보호할 수 있는 길도 열렸다. 서울시에서는 지자체 예산으로 근골격계 다발 위험업종이나 아파도 경제적 이유로 치료를 미루던 노동자들을 위해 유급 병가제도를 내년에 시행할 계획이다. 

그동안 일하다가 병을 얻었지만, 업무상 질병인정이라는 험난한 길을 걷기 주저했던 많은 분들, 그리고 그 가치가 저평가 되었던 많은 직업환경의학과 의사들에게 좋은 소식이다. 하지만 아무리 좋은 제도라도 반대 세력이 있고, 좋은 무기를 가졌더라도 잘 연마하고 사용하지 않으면 쓸모가 없어지는 것이다노동자와 직업환경의학과 의사들이 "직업을 물어보고, 자신이 하는 일을 잘 설명하여" 변화하는 제도를 통해 서로를 살리는 관계가 되길 바란다. 직업환경의학과 의사도 노동자들이 건강하게 일할 수 있도록 돕는 같은 곳을 바라본다는 사실을 서로가 잊지 않는다면 앞으로의 만남이, 직업을 물어보는 일들이 조금 더 편안해질 수 있을 것 같다.


[언론보도] 산업안전보건법 적용 제외를 없애야 한다 (매일노동뉴스)

산업안전보건법 적용 제외를 없애야 한다송윤희 직업환경의학전문의(한국노동안전보건연구소)
  • 송윤희
  • 승인 2018.10.11 08:00







법의 문구 하나하나는 우리 삶을 규정한다. 하나 마나 한 말이지만 매번 공장들을 다닐 때마다 피부로 느낀다. 어느 날 한 대기업 디스플레이 사업장을 방문했더랬다. 커다란 디스플레이 공장 안에는 대략 수백 개 하청업체들이 있다. 당연히 서로가 서로를 다 파악하지도 못한다. 필자는 이 수백 개 하청업체들 중 서너 사업장과 산업보건의사로 계약을 맺고 상담 일을 한다. 그런데 두 개 업체를 방문했을 때 안전보건 담당자들이 공통된 말을 하는 것을 발견했다.

http://www.labortoday.co.kr/news/articleView.html?idxno=154356

[언론보도] 아저씨, 요즘도 야간순찰 도세요? (매일노동뉴스)

아저씨, 요즘도 야간순찰 도세요?

기사승인 2018.10.04  08:00:01

- 김정수 직업환경의학전문의(한국노동안전보건연구소)

우리는 노동을 하며 살아간다. 내가 일해서 만든 제품이나 서비스를 타인이 사용하거나 이용하고, 나 또한 누군가 생산한 제품과 서비스를 누리고 있다. 이렇듯 우리는 노동을 통해 서로 연결된다.

http://m.labortoday.co.kr/news/articleView.html?idxno=154233

[토론회] 자살 정신질환 산재판정 무엇이 문제인가



자살 정신질환 산재판정 무엇이 문제인가

근로복지공단의 정신질환 산재 판정구조와 지침 개선 방안을 토론하는 자리


일시 : 2018년 10월 1일 (월) 13시~16시

장소 : 국회의원회관 8간담회실


주제발제

1. 정신질환 요양 자료 분석

- 이이령 (가톨릭대 서울성모병원, 직업환경의학 전공의)

2. 자살 자료 분석

- 김세은 (한국노동안전보건연구소, 직업환경의학 전문의)

3. 법원 판결의 시사점과 판정위 개선사항

- 권동희 (법률사무소 새날, 공인노무사)


토론자

고용노동부 산재보상정책과장 주평식

민주노총 노동안전보건실장 최명선

성신여대 법과대학 교수 권오성

공인노무사 이희자 


주최 더불어민주당 이용득 의원, 한국노동안전보건연구소 

[교육 안내] 실전에 사용하는 노동인권교실


<실전에 사용하는 노동인권교실> 

- 일시: 2018년 10월 11일~18일, 11월 1일~15일 목요일 저녁7시 (총 5강)

- 장소: 금속노조 서울지부 남부지역지회 (금천구 디지털로9길 47 한신IT타워 2차 306-1호)

- 대상: 구로/가산디지털단지 직장인, 알바생 누구나

- 신청: 010-9814-8672 

- 참가비: 무료


1. 10월 11일 (목) 19시 / 임금이란 무엇인가? (김요한 노무사, 공공운수노조 비정규전략조직국장)

2. 19월 18일 (목) 19시 / 노동3권, 무엇에 쓰는 물건인고? (한상균, 민주노총 전 위원장)

3. 11월 1일 (목) 19시 / 근로기준법 주요 위반사항과 대응 · 해결책 (송예진 노무사, 민주노총 서울본부 법률지원센터)

4. 11월 8일 (목) 19시 / 노동자 건강권 배우기 (권종호 의사, 직업환경의학전문의/한국노동안전보건연구소)

5. 11월 15일 (목) 19시 / 노동인권, 주인공을 찾다 (이정미 국회의원, 정의당대표) 


전국금속노동조합 서울지부, 서울남부지역 노동자 권리찾기 사업단 노동자의미래 


[언론보도] 창립 30주년 대한직업환경의학회 노동자·시민과 함께하길 (매일노동뉴스)

창립 30주년 대한직업환경의학회 노동자·시민과 함께하길김형렬 직업환경의학전문의(한국노동안전보건연구소)
  • 김형렬
  • 승인 2018.09.13 08:00







2018년 11월1일부터 3일까지 대한직업환경의학회 창립 30주년을 기념하는 학술대회가 개최된다. 올해는 문송면군의 수은중독 사망, 원진레이온 직업병 사건이 30년을 맞는 해이기도 하다. 

http://www.labortoday.co.kr/news/articleView.html?idxno=153903

특집1. 업무상질병판정위원회 10년의 기록 / 2018.08

업무상질병판정위원회 10년의 기록

재현 선전위원장 


근로복지공단 업무상질병판정위원회(이하 질판위)는 2006년 12월 노사정 합의 이후 2008년 7월 1일 발족했다. 질판위는 뇌·심혈관계질환, 근골격계 질환, 정신 질환 등 업무 관련성 평가가 어려운 업무상 질병 판정의 전문성과 공정성을 높이기 위해 만들어졌다.

질판위원은 변호사 또는 공인노무사, 의사, 산업재해보상보험 관련 업무 5년 이상 종사자 등이 판정위원 임무를 수행한다.

지난 7월 산업안전강조주간을 맞아 질판위 10년 기념이 진행됐다. 이 자리에서 근로복지공단 심경우 이사장은 아래와 같이 긍정적으로 자평했다.

"업무상질병판정위원회는 노동자의 권리를 보호하고 사회적 가치를 실현하는 명실상부한 업무상질병 전문 판정기구로서 그 존재가치를 인정받고 있다. 앞으로도 각계각층의 전문가들과 연대하여 업무상질병 판정의 전문성과 공정성 향상을 위해 지속적으로 노력할 것이다."

그러나 아쉬움이 크다. 질판위는 10년간 9만 2000여 건의 산재를 심의했다. 10년간 판정 위원은 218명에서 550명으로 확대되었다. 


질판위 10년... 성과보다 아쉬움 크다

2008년 질판위 발족 이전 업무상질병 불승인율은 2007년 54.6%에서 질판위 발족 이후 56.5%, 2009년에는 60.7%로 증가했다. 연도별 업무상 질병 산재 불승인율 현황을 질병에 따라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뇌·심혈관계 질환의 경우 2007년 59.8%에서 2008년 84.4%, 2009년에는 84.4%로 증가했다. 근골격계 질환은 2007년 44.7%, 2008년 42.5%, 2009년 46.3%이었고, 정신질환의 경우 2007년 69.5% 2008년 68,2%, 2009년 74.5%로 모두 증가세를 보였다.

당시 업무상 질병 승인율이 계속 감소하자 노동계는 질판위가 객관성과 전문성을 이유로 산재를 협소하게 판정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게다가 엉터리로 진행되는 재해조사로 인해 질판위의 객관성과 전문성에 대한 신뢰도까지 낮아졌다.

결국 2016년 금속노조는 질판위 기능에 대해 문제를 제기하며 서울질판위원장 퇴진을 위한 농성 투쟁에 돌입했고, 그해 위원장이 사퇴했다. 서울질판위원장 사퇴를 요구한 것은 전체 업무상 질병 사건 30%를 서울이 담당하기 때문이었다. 이듬해 2017년 서울질판위원장 교체 이후 전체 업무상 질병 승인율은 52.9%로, 전년도(44.1%)에 비해 다소 높아졌다. 이 승인율은 2008년 질판위 발족 후 가장 높았다.

심지어 2010년~2017년 상반기까지 한 번도 회의에 참석하지 않은 심의위원도 627명에 달한다. 결국 질판위는 일부 회의에 참여하는 심의위원이 독식하는 구조로 진행되었다. 결국 이러한 상황은 새로운 화학물질과 위험한 작업환경 등 업무상 질병에 대해 질판위원이 자신들이 주장하는 객관성과 전문성을 가지고 판정하는 데 있어서 부족할 수밖에 없다는 것을 의미한다.

반도체 노동자의 건강과 인권 지킴이 '반올림'에 따르면, 반올림이 반도체 직업병으로 산재를 신청한 노동자가 99명인데 이중 인정받은 사람은 29명에 (약 29%)불과하다고 밝혔다.

이는 2017년 질판위 평균 승인율 52.9%, 직업성 암 승인율이 61.4%인 것을 고려했을 때 매우 낮은 수치다. 이렇듯 질판위가 새로운 반도체·전자산업 노동자들의 산재 문제를 객관적이고 전문성을 가지고 판정할 수 있는지 의문스럽다.

심지어 산재 문제에 있어서 신속한 보상과 요양 이후 복귀도 문제가 생겼다. 질판위가 2008년~2017년 상반기까지 3970건을 법적으로 정해진 기한을 넘겨 처리했기 때문이다.

질판위 심의 과부화도 문제다. 2017년 상반기 기준 한 질판위원이 반나절에 13.6건을 다루고 건당 13분 정도를 다룬다. 이는 노동자가 일하다 왜 병에 걸렸거나 죽었거나 자살했는지 등을 판정하기에 매우 부족한 시간이다. 판정위원에게 사전에 제출해야 할 자료 역시 늦게 제출되면서 더욱 검토할 시간이 부족한 현실이다.

그 결과 실제 산재신청을 했던 유족들이 질판위가 노동의 질적 특성이나 스트레스 상황을 고려하지 않고 판정을 내리는 것, 질판위원들의 성의 부족, 전문성 부족 등이 산재 과정에서 가장 힘들었다고 말하는 상황이다.

법이 지켜지지 않는 것뿐만 아니라 2015년은 916일간 심의하기도 했다. 결국 이 피해는 산재 인정을 기다리는 아픈 노동자들이 입게 된다.

아픈 노동자, 더 아프게 하지 말자

물론 성과도 있다. 질판위 출범 후 업무관련성 전문조사(특별진찰)가 확대되고, 소위원회 운영이 내실화되면서 노동자에게 불리한 미확인 질병에 대해서는 심의 기회가 한 번 더 제공하도록 했다.

근골격계 질환의 경우 재해조사 초기 단계부터 직업환경의학과 전문의를 투입해 신속성과 전문성을 강화했다. 법원 판례조차 반영하지 않을 정도로 보수적이던 뇌·심혈관계질환 산재인정 기준이 완화되었다. 특히 재해조사 결과 유해요인 노출 수준이 당연 인정기준을 충족하면 업무상 질병으로 인정하는 '추정의 원칙'을 도입하면서 눈에 띄는 변화가 나타났다.

10년이라는 짧지 않은 시간, 이제라도 변화가 시작된 것 같아 다행이지만 여전히 갈길이 멀다. 산재보험이 아픈 노동자에 대한 사회적 책임을 보장하고 그 역할을 다 하는 것이라는 점을 잊어서는 안 된다. 

질판위가 업무와 관련한 질병의 원인을 객관적이고 전문적으로 밝히는 것은 매우 중요한 일이다. 그러나 이것을 산재승인 여부에만 중심에 두는 것이 아니라 위험으로부터 어떻게 노동자들을 보호하고 직업병을 예방할 것인가로 무게 중심이 옮겨질 때 비로소 의미 있는 진전이 있을 것이다.

[언론보도] 휴게시설은 복지가 아니다 (매일노동뉴스)

휴게시설은 복지가 아니다김정수 직업환경의학전문의(한국노동안전보건연구소)
  • 김정수
  • 승인 2018.08.09 08:00







최근 일부 노동자들이 이용하는 휴게시설 규모가 지나치게 작거나, 화장실 같은 부적절한 공간을 휴게시설로 사용하는 사례가 알려지면서 사회적 문제가 된 적이 있었다. 특히 휴게시설을 창고로 사용하거나 폐쇄하는 등의 사례도 있어 대중의 공분을 사기도 했다. 고용노동부가 얼마 전 이런 노동자들을 위해 ‘사업장 휴게시설 설치·운영 가이드’를 마련했다고 한다.

http://www.labortoday.co.kr/news/articleView.html?idxno=153219

<일터> 통권 173호 / 2018.07


<일터> 통권 173호 / 2018.7

특집 : 노동자 건강권 vs 기업의 영업비밀


4 작업환경측정결과 보고서와 삼성의 몽니 
8 백혈병 소송을 통해서 본 작업환경측정결과 보고서에 대한 소고 
10 노동자 건강권의 바로미터 
14 노동자 알 권리 거부하는 인천공항공사


16 [지금 지역에서는] 
충남서북부노동건강인권센터 ‘새움터’의 시작과 앞날


18 [국제 노동안전건강뉴스] 
산재 사망증가와 트럼프 정부의 예산 축소


20 [국제 안전보건기준에 관한 비교 검토 연구] 
건설업 안전보건, 근본적인 변화가 필요하다


22 [연구 리포트]
경기도 버스 운전 노동실태(2)


26 [안전과 건강 칼럼]
빛바래선 안될 청사진


28 [노동시간 읽어주는 사람] 
과로와 인종주의 영화 <히든 피겨스>


31 [사진으로 보는 세상]


32 [A~Z까지 다양한 노동이야기]
저희는 영어하는 기계가 아니에요


36 [현장의 목소리]
실적이 인격이라 하는 회사를 향한 IT노동자들의 싸움!


40 [노동안전보건 활동가에게 듣는다]
우리 현장에도 노조가 생겼어요!


46 [직업환경의학 의사가 만난 노동자 건강 이야기]
입사 6개월 만에 폭삭 늙는 신규 간호사들에 대한 이야기


48 [노동자 건강 상식]
B형 간염


50 [유노무사 상담일기 더불어 與] 
근로감독관의 과로사와 워라밸


52 [문화 읽기]
“우리의 죄는 증대하다”

54 [이러쿵저러쿵] 
내 인생의 시간으로 기록될 노벗 수습 노무사


[직업환경의사가 만난 노동자 건강 이야기] 입사 6개월 만에 폭삭 늙는 신규 간호사들에 대한 이야기 / 2018.07

입사 6개월 만에 폭삭 늙는

신규 간호사들에 대한 이야기

이이령, 운영집행위원/직업환경의학 전공의


지난 6월 월드컵 기간 동안 한국 축구 국가대표팀 신태용 감독의 수명은 모르긴 몰라도 한참 줄어들었을 겁니다. 1차전 스웨덴과의 시합 전 결의에 찬 당당한 표정은 두 경기를 내리 진 1주일 만에 폭삭 늙고 지친 표정으로 변했습니다. 한국 축구 국가대표팀 감독의 직무스트레스는 너무 심해 감독 개인의 건강을 위해서는 아무도 안 하는 게 낫겠다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엉뚱한 연상일 순 있지만 짧은 시간에 폭삭 늙어버린 신태용 감독을 보고 나니, 저는 특수건강진단 문진을 할때 만나는 신규 간호사들이 생각 났습니다.

신규 간호사 대상 특수건강진단

#1. 23세 여성 신규 간호사인 김신규(가명)가 ‘배치전 건강진단’을 위해 진료실에 들어온다. 아직 근무시작 전인 그녀는 학생 때 보고 들은 병원 생활에 대한 걱정이 있었지만 그래도 첫 직장에 대한 신기함과 기대감이 있는 밝은 표정이다. 어디 아픈 데 없이 튼튼하다고 한다. 나는 야간근무, 교대근무, 직무스트레스 등 간호사의 근무환경과 건강 영향에 설명한 후, 잘 지내고 6개월 후에 건강한 모습으로 보자고 하였다.

#2. 첫 번째 ‘특수건강진단’ 문진으로 만나게 되는 김신규 간호사는 진료실에 들어오는 순간부터 6개월 전과 다르다. 얼굴의 모든 근육엔 힘이 없는 듯한 무표정으로, 졸린 듯 눈은 반쯤 감긴 상태로 돌을 얹은 듯 축처진 어깨를 겨우 끌고 터벅터벅 들어와 의자에 풀썩 앉는다. 심하다고 느끼는 신체 증상엔 피로감, 눈 충혈, 팔 · 다리 · 어깨· 허리 통증, 하지 부종, 소화불량, 불면증 및 불규칙한 생리 등이 있고, 모두 입사 후 생긴 증상이라고 한다. 이쯤 되면 증상 백화점 수준이다. 증상과 근무환경 등에 대한 이야기를 주고받다 보니 이제야 나에 대한 신뢰가 생겼는지, 여러 어려움에 대해 얘기하며 눈시울이 붉어진다. 나는 조직적 · 개인적 해결책을 나름 얘기해주지만, 그녀의 조건에서 모두 적용할 수 있는지는 확신이 안선다. 그래도 진료실을 나가는 표정과 발걸음은 들어올 때 보다는 그나마 낫다. 내가 해결해준 건 하나도 없지만, 짧지만 얘기를 들어주고 아픔을 공감해주는 사람이 있어서였기 때문이었을 것으로 생각한다.


故 박선욱 간호사도 신규 간호사였다

위의 내용은 특수건강진단 시 흔히 만나게 되는 신규 간호사의 사례입니다. 특수건강진단을 하다 보면 여러 업종의 노동자들을 만나게 됩니다. 그 중 가장 많은 신체 증상을 호소하는 직군은 50대 남성 경비 노동자도 40대 여성 급식 조리 노동자도 아닌, 아이러니하게도 가장 어린 입사 후 6개월가량의 신규 여성 간호사들입니다.

지난 2월 고 박선욱 간호사가 스스로 삶을 마감한 것도 신규 간호사로 근무한 지 약 6개월 만에 벌어진 일이었습니다. 취직하기 어려운 요새 세상에 대학 병원 간호사면 안정적이며 월급도 괜찮은데, 남들 다 참으며 잘 다니는데 그걸 못 참냐며, 적응을 못 하는 개인 탓 아니냐고 생각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하지만 ‘태움’, 부족한 교육, 병원의 고질적인 인력 부족, 고강도 장시간 노동, 생명을 다루는 업무 스트레스, 회사 내 지지체계의 부족 등의 여러 구조적 문제는 신규 간호사가 감내할 수 없는 수준입니다. 신규 간호사의 1년 내 이직률이 40%에 육박하는 국내 현실은 구조적 문제의 심각성을 보여줍니다. 온갖 곳이 아픈 채로 회사에 다니거나, 견디지 못한 채 퇴사하거나, 퇴사도 어려워 급기야 삶을 마감함으로써 퇴사하는 상황까지 벌어집니다. 직무스트레스, 감정노동 등으로 입사 6개월 만에 표정이 없어진 채 몸과 마음이 폭삭 늙어버리는 것은 김신규 간호사, 故 박선욱 간호사뿐만이 아니라 대부분의 신규 간호사들 이야기일 것입니다.


해결은 가능해야한다

이런 상황을 신규 간호사 혼자 해결하긴 어렵고, 직업환경의학과 의사가 야간노동자 특수건강진단으로 해줄 수 있는 것도 많지 않습니다. 하지만 개인이 해결하기 어려운 문제를 누군가가 대신 해결해주는 것이 아니라, 당사자들이 주체적이며 집단적으로 고민하고 제기하고 해결할 수 있는 구조를 만드는 것이 필요합니다. 최근 간호사의 임신순번제, 장기자랑, 야간근무 수당 등의 문제가 사회적 이슈화되어 간호사·간호조무사 등이 노동조합을 만들어 스스로 병원을 바꾸고 있는 대구가톨릭대병원 사례, 민주노총 의료연대를 비롯해 간호사단체 · 개별 간호사 및 노동시민사회 단체들이 공동으로 구성하여 활동하는 ‘고 박선욱 간호사 공대위’ 등이 좋은 사례일 것입니다. 

그리고 노동조합이 있다는 것에 안주하지 않고, 서울대병원 등 여러 노동조합처럼 지속해서 노력하는 것도 중요할 것입니다. 노동자들만 노력한다고 완전히 해결하긴 어려울 것입니다. 보건업은 근로기준법이 개정된 시끄러운 상황 속에서도 여전히 노동시간 특례업종입니다. 교대·야간근무를 하는 보건의료노동자는 건강 측면에서 노동시간이 오히려 더 짧아야 하며, 유럽 등 대부분의 해외에서는 보건업도 노동시간 규제의 예외가 아닌 점 등을 고려하면, 간호사의 장시간 고강도 노동·인력 부족 등을 해결하기 위한 국내 법 · 제도적 변화는 가능하며 필수적입니다. 그리고 당연히 학교와 병원도 신규 간호사 교육의 내실화, 직무스트레스 및 감정노동관리, 이직률 감소를 위한 정책 그리고 학생 때부터의 노동안전보건 교육 등 다방면으로 노력해야 합니다. 체념 · 이직 · 퇴사 그리고 죽음 이외에, 가치 있고 즐거운 병원 간호사 생활은 실현 가능한 목표이며, 같은 병원 동료로서도 꼭 그렇게 됐으면 좋겠습니다.

[언론보도] [커버스토리-노동자 건강진단을 진단한다] 고장 난 직업병 경고등 특수건강진단 (매일노동뉴스)

[커버스토리-노동자 건강진단을 진단한다] 고장 난 직업병 경고등 특수건강진단진단비용 내는 사업주 눈치 보기로 부실 키워 … 사후관리 안되는 반쪽짜리 진단 한계
문재인 정부가 2022년까지 산업재해 사망사고를 절반으로 줄이겠다고 공약했지만 현실은 거꾸로 가고 있다. 지난해 산재사망자는 2016년보다 10.1%(180명) 증가한 1천957명을 기록했다.http://www.labortoday.co.kr/news/articleView.html?idxno=152280

[직업환경의학 의사가 만난 노동자 건강 이야기] 직업환경의학과 의사가 신명나게 일할 수 있으려면 / 2018.06

직업환경의학과 의사가 신명나게 일할 수 있으려면

[직업환경의학 의사가 만난 노동자 건강 이야기]

이정엽 (직업환경의학 전문의)


전공의 3년차가 되어 처음으로 출장 검진을 시작한 지 불과 며칠 되지 않았을 때였다그 날 방문한 곳은 경북 고령에 위치한 사업장으로 불과 8명의 노동자들이 공업용 줄을 만드는 영세한 곳이었다그 곳에서 줄의 표면을 가공하기 위해 탁상 그라인더를 3년 째 다루고 있는 한 50대 노동자를 만나게 되었다. 

그라인더와 같이 진동이 발생하는 공구를 쥐고 장기간 사용할 경우에는 손에 있는 말초혈관과 말초신경 등에 손상이 생기는 수완진동 증후군이 발생할 수 있다그래서 근로자 특수건강진단에서는 착암기연마기굴착기 등 진동공구를 취급하는 작업자들이 진동과 관련된 문진 및 진찰을 받도록 되어 있다. 

손가락이 저리거나 감각이 떨어지는 증상은 없으세요?

"얼마 전부터 양쪽 손이 다 좀 저리고요특히 두 번째 손가락은 좀 얼얼한 것 같습니다." 

아 그러세요혹시 겨울철이나 추울 때 손가락 색깔이 하얗게 변하지는 않으세요?

"맞아요어떻게 아셨습니까추울 때 손가락 끝이 하얗게 변하는 걸 본 적 있습니다." 

진동공구를 다루는 직업력저리거나 감각이 떨어지는 신경 증상그리고 혈액순환 저하로 인해 추운 환경에서 악화되는 손가락 창백 현상까지수완진동 증후군의 전형적인 소견이었다손톱 압박 검사에서도 혈색이 금방 돌아오지는 않는 듯 보였다이러한 증상이 그라인더 사용에 의한 직업병일 수도 있다는 설명과다른 원인의 배제 및 정확한 진단을 위해 추후 병원 방문 및 추가 검사가 필요할 수 있다는 안내를 드렸다. 

이후 몇 명의 검진을 더 진행한 뒤 다른 어떤 직원이 씩씩거리며 내 앞에 앉았다자신은 이곳의 관리자인데 조금 전 그라인더 작업자와의 대화를 들었다며 갑자기 직업병이 대체 무슨 말이냐고 다짜고짜 따졌다. 

"그 사람보다 그라인더 작업을 오래한 사람들도 다 멀쩡한데 그게 무슨 직업병이요그리고 그런 걸 다 직업병이라고 하면 대체 그 작업을 할사람은 누가 있단 말이요?" 

예상치 못한 항의에 나는 적잖이 당황했다나는 그 사람이 직업병이라는 게 아니라 직업병의 가능성이 있으니 설명만 드린 것이고 정확한 진단은 추가 검사를 해보아야 알 수 있다는 식으로 답을 했다. 

더 큰 사건은 출장검진을 마치고 병원에 돌아온 이후 발생하였다그 관리자로부터 병원에 직접 전화가 와서 아까 그 직업병 이야기는 말도 안되는 소리고 직업병 판정이 나면 그 사람은 바로 해고시켜 버릴 거라며 아까 그 의사 전화 바꿔보라고 소리를 질렀다는 것이다. 

나는 허락도 없이 개인 검진 내용을 엿들은 것도 모자라 이미 충분히 설명을 했는데도 그렇게 협박조로 나오는 그 관리자에게 언짢은 감정이 들었다나는 우선 결과가 어떻게 나올지 모르니 2차 검사는 시행해 보려고 했다하지만 2차 검사 비용은 사업주가 부담을 해야 하는데 사업주가 그 비용을 낼 수 없다고 버텨서 어쩔 도리가 없었다. 

매년 검진을 해오던 사업장에서 강한 불만이 나오니 병원 직원들도 부담을 느끼는 것 같았다그리고 나에게는 무엇보다 직업병 판정이 나면 그 사람을 해고시켜 버릴 거라는 그 관리자의 엄포가 가장 무겁게 다가왔다노동자 본인에 있어서 실직으로 인해 경제적으로 어려워지는 상황은 자신의 손가락 색깔이 창백하게 변해가는 것보다 훨씬 더 큰 '재해'일 수 있었다관리자의 협박은 무섭지 않았지만 나의 결정이 그 분의 삶에 도움은커녕 도리어 악영향을 끼칠 수 있다는 가능성때문에 나는 주저할 수밖에 없었다결국 2차 검사는 시행되지 못하였고 '보호구 착용 철저추적관리'라는 다소 무책임한 조치명이 새겨진 결과지를 발송하는 것으로 이 사건은 끝이 나고 말았다. 

그날 저녁 퇴근을 하고 나서 나는 아내에게 그날 겪었던 일과 고민에 대해 털어놓았다직업병의 조기 발견을 위해 시행하는 검진이지만 직업병을 발굴해 내는 과정에서 때로는 회사병원심지어 노동자까지 그 어느 누구도 그 과정을 달가워하지 않을 수 있다는 딜레마를 겪고 난 이후의 혼란스러움과이러한 딜레마 속에서 나는 어떻게 처신하는 것이 직업환경의학과 의사의 본분에 충실할 수 있는 길인지에 대한 고민에 대해 이야기를 했던 것으로 기억한다. 

그리고 아마도 그 즈음부터 나는 의학 서적 내용만 읽어 내려가던 우물 안 개구리에서 벗어나우리나라의 안전보건 및 산재보상 제도노동법에 명시된 노동자의 권리 등에 대해 조금씩 관심을 가지며 그러한 상황이 발생할 수밖에 없었던 사회적 배경을 조금씩 이해하기 시작했다. 

직업환경의학과 의사가 그러한 모순에 빠지지 않고 노동자들의 직업병을 정확하게 진단하며 그들이 합당한 보상을 받도록 적극적으로 돕기 위해서는 어떠한 전제 조건이 필요할까나의 생각에는 '실효성 있는 제도'와 '노동자들의 적극적 참여'의 두 바퀴가 동시에 굴러가야 하며 바퀴가 도중에 멈추지 않도록 윤활유 역할을 하는 '사회적 공감대'가 뒷받침되어야 할 것이다. 

산재 은폐를 조장하는 개별실적요율제검진기관이 사업주의 눈치를 볼 수밖에 없는 계약방식 등 현재의 제도에 대해서는 현장의 목소리를 듣고 노사정이 함께 머리를 맞대어 노동자의 건강보호에 좀 더 기여할 수 있는 방향으로 개선을 하는 것이 필요해 보인다또한 고용에 있어 건강상의 이유로 부당하게 가해지는 불이익은 절대 용납될 수 없다는 원칙 아래 많은 노동자들이 단결하여 목소리를 낸다면 직업환경의학과 의사들도 안심하고 자신의 본분에 충실할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노동자들이 사업주의 부당한 행위에 대해 이의를 제기하고 필요 시 행정절차를 밟는 것이 '불만이 많고 별난일부의 행동이 아니라 노동자라면 누구나 선택할 수 있고 주변으로부터 지지를 받는 '당연한대응 방식으로 사회적 인식이 바뀌게 된다면 노동자들도 비로소 주변의 시선을 불편해 하지 않고 자신의 건강권을 위해 행동할 수 있을 것이다그렇게 된다면 그 사업주도 더 이상 "직업병 받으면 해고시켜 버리겠다와 같이 법과 노동자의 권리는 안중에도 없는 발언을 그토록 당당하게 하지는 못할 것이다. 

우리 공동체가 그러한 사회로 한 발짝 더 내딛는 만큼 직업환경의학과 의사들은 자신들이 그동안 갈고 닦은 능력을 노동자 건강을 위해 더 신명 나게 펼쳐 보일 수 있을 것이다한편으로는 그러한 사회적 변화를 수동적으로 기다릴 것이 아니라 나 자신도 노동자들의 권리 신장을 위한 많은 이들의 노력에 항상 관심을 가지고 함께하리라 다짐해본다.

특집 1. 문송면과 원진 노동자 산재사망 30주기를 맞는 단상 / 2018.06

문송면과 원진 노동자 산재사망 30주기를 맞는 단상

[문송면·원진레이온 직업병 30년 무엇이 달라졌나] 과거와 현재의 만남과 헤어짐

김동수 (한노보연 회원, 직업환경의학전문의)

 

올해로 문송면과 원진 노동자들의 산재사망이 일어나고 사회화된 지 30년이 된다. 이 글은 한국의 노동자 직업병 문제를 대표하는 커다란 두 사건이 30년을 맞는 해에 어떤 부분이 해결되었고 어떤 부분이 문제로 있는지, 왜 그러한지에 대한 단상을 다소 논쟁적으로 기술한 것이다. 그러나 이 글은 그간의 30년을 연대기적으로 정리한 것도 과학적·체계적으로 분석한 글도 아니다. 

이 글은 30년이 주는 무거움을 나누고자 작성하기 보다는 필자의 지극히 개인적인 관점에서 떠오르는 단상들을 펼쳐놓은 글이다. 따라서 독자들께서 이 글 속에 등장하는 여러 사건과 수치들은 보기에 따라서 동의하기 힘든 부분도 있고, 숫자나 통계가 정확하지 않을 수도 있다는 점을 양해해주시기 바란다.


문송면, 원진레이온, 김봉환 장례투쟁과 한국 노동보건운동의 시작

 문송면은 1973년생이다. 충남 서산에서 태어난문송면은 중학교 3학년인 1987125일 서울의 협성계공에 입사한 후 2개월이 지난 198828일 병가를 내고 고향으로 내려갔다. 그후 고향의 의원들에서 원인을 못 찾고 39일 서울대에서 수은중독과 유기용제 중독의심 판정을 받았다. 그리고 629일 성모병원으로 병원을 옮겨 치료를 받다가 72일 사망하였다. 사망할때 그의 나이는 15세였다. 또한, 1988년 원진 노동자들의 투쟁과 1991137일간의 김봉환 씨의 장례투쟁은 한국 노동보건 문제의 획을 그은 사건이었다.

1988년에 당시 나는 의과대학에 다니고 있었다. 1987년 군부독재 타도와 호헌철폐의 거대한 물결과 그해 여름을 달구었던 노동운동과 노동조합 조직화는 의과대학에도 커다란 영향을 주었다. 의과대학의 경우 1980년대 초반부터 '민중의료'라는 고민이 있어서, 사회문제와 학내 문제에 대한 노력이 거부할 수 없는 대세였다. 

1988년 여름 문송면의 죽음을 직면한 젊은 예비의료인(의대, 치대, 약대, 간호대, 한의대)들은 어떠한 의료인이 될 것인가라는 근본적 질문에 자유로울 수 없었다. 문송면이 질병에 이르게 된 사회적 문제와 질병의 진단과정, 산재요양의 어려움 등의 첩첩한 문제들은 당시의 의료계에 매우 큰 고민과 직업적 진로에 대한 고민을 던져주었다. 이러한 동기를 가지고 배출된 의료계의 전문 인력은 이후 보건의료의 사회적 역할이라는 명제에 충실히 하고자 하는 운동과 흐름을 이루게 된다.

 

노동안전보건 문제, 30년 전과 현재 공통점과 차이점 

문송면의 질환을 진단하는 과정에서 드러난 문제는 현재에도 비슷한 양상을 보여준다. 수은중독을 산재로 인정하는 과정은 매우 지난하였으며, 수은중독을 의심하는 의료진도 소수였으며 진단을 증명하는 것이 매우 어려웠다. 현재의 시점에서 석면환자의 경우 과거에는 결핵으로 진단하여 결핵 치료를 받은 경우가 대다수였고, 본인들도 결핵으로 알고 가족과의 살가운 생활을 영위하지 못하였던 이야기를 우리는 흔히 접할 수 있다. 호흡기내과 의사들 역시 석면폐를 미만성 간질성폐 질환(폐섬유화증)으로 진단하는 경우가 다반사고, 영상의학전문의들도 석면폐 판독을 쉽게 하지 못하는 상황이다. 

현상이 이렇게 유사하다고 하더라도, 과거와 현재 약간의 차이가 있는 것도 사실이다. 과거에 수은중독은 매우 희귀한 경우였고, 현재의 석면폐증 또한, 다른 질환에 비해 유병률과 발병률이 낮은 희귀한 질환이라는 공통점이 있다. 따라서 대부분의 의료진들 관심이 떨어진다는 점에서 공통점이 있다. 그러나 과거 중독을 밝히기 위해 생체시료를 분석할 수 있는 곳이 몇 곳밖에 없었다면, 현재는 전국의 많은 기관에서 분석할 수 있다. 과거와 현재를 비교해보면 사회/의료계의 관심이 부족하다는 공통점을 가지면서, 기술적인 발전의 측면에서는 다른 면을 갖고 있다. 과거에 기술적 측면에서 유해물질의 측정과 분석의 어려움이 있었고, 이 때문에 전국의 소수 기관이나 외국에 분석을 보내야 하는 문제가 있었다고 한다면 현재에는 시장성의 문제가 발목을 잡는다. 

2015년 말~2016년 초에 집단적으로 발견된 메탄올 중독의 경우, 이를 진단하기 위한 생체시료 분석은 한국에서 실시하는 기관이 거의 없으며 외국에 분석을 보내야 하는 상황이었다. 그 이유는 기술적 문제가 아니라 시장성이 없기 때문이다. 노동자의 건강문제를 시장성의 문제로 보아야 할 것인가에 대해서는 여러 가지 반성적 성찰이 필요하다. 

수은중독의 문제는 문송면 이후에도 여러 번 발생하였다. 2000년 경북 안동의 폐기물재생사업장의 3명의 노동자에서 집단 발생하였고, 2015년 광주 남영전구에서 형광램프제조시설 철거 작업을 했던 노동자에서 집단적으로 발생하였다. 이 문제들은 수은이라는 공통점 외에 차이점이 존재한다. 과거 문송면의 경우에는 전국의 거의 모든 작업장의 작업환경이 열악하였고 노동자들의 건강에 관한 의식이 낮았다면, 최근 수은중독의 문제는 소규모사업장과 하청노동자에 집중되고 있다는 점이다.

 

제도 개선의 성과, 아직 남은 과제 

중금속, 유기용제 중독 등에 대한 제도적 진전은 여러 가지 경로로 이루어졌다. 과거 진폐를 중심으로 노동자 건강검진 제도가 발전해왔다면, 문송면의 사망과 원진레이온 중독을 시작으로 하여 중금속과 유기용제 등에 대한 사회적 관심과 산업재해추방 운동으로 표현되는 노동자 건강권 운동이 시작되었다. 대표적인 노동자들의 노력은 1995년경의 쇠사슬 투쟁이라고 일컬어지는 대우조선 노동자들의 집단유기용제중독 투쟁이었다.


[출처: 전국노동자연대] 


당시 노동자들은 조선소 노동자들에 대해 특수검진과 작업환경을 제대로 시행하고 임시건강 진단 시행을 요구하였다. 이 결과 1996년 전국 선박건조와 수리조선 업체 도장작업자들을 대상으로 유기용제 임시건강진단을 실시하였고, 요식행위로 인식되던 특수검진과 작업환경측정제도의 실질적 개선을 이루는 계기를 마련한 것으로 판단된다. 이후 금속노조를 중심으로 노동조합이 특수검진과 측정의 기관선정권을 획득하는 사업장이 늘어났다. 이 외에도 포항의 망간중독 집단 발병, 부산의 D.M.F. 중독사망 사건 등을 통해 특수검진의 실효성 증대를 위한 사회적 여건이 마련되었다.

그 결과 대기업을 중심으로 한 작업환경의 개선과 특수검진 유소견자의 감소 등의 효과를 가져왔다. 이러한 성과의 긍정적인 측면에도 불구하고, 여러 가지 과제가 남아있다. 과거에는 열악한 작업환경과 전통적인 직업병의 문제가 일반적인 현상이었다면, 현재에는 소규모사업장과 이주노동자, 하청노동자 등 취약계층에 집중되고 있다는 점이다.

 

더욱 취약한 소규모·하청·이주노동자 

이러한 전체 노동자의 문제로부터 소규모 취약 계층 노동자들로의 문제의 중심이동에도 불구하고, 제도는 여전히 과거의 형태와 방식을 유지하고 있다. 특수검진과 작업환경측정은 시장에 맡겨졌고, 시장을 어렵게 하는 행위는 이적행위(?)로 간주하기 일쑤다. 최근에 와서 노동자 일반에 대한 특수검진 상 유소견율과 작업환경측정상 기준 초과율이 1%가 채 안 됨에도 불구하고 이 제도를 현행대로 유지하여야 하는가에 대해서는 진지한 고민이 필요하다. 반면, 10인 미만 사업장과 하청, 건설업 등에서 작업환경측정과 특수검진 실시율이 매우 낮다는 점과 전통적 직업병이 이들에서 주로 발생하고 있다는 점을 보면 어디에 중심을 둘 것인가는 명확하게 보인다. 

말하자면 대기업 등에서는 기존의 작업환경측정과 특수검진의 유효성이 거의 없어져 가는 상황이지만, 소규모 취약계층 노동자들은 이들 제도의 혜택을 받고 있지 못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소위 교통 오지, 소규모사업장, 취약계층에 대해서는 상업성이 없어서 제도적 접근이 이뤄지고 있지 않다. 이러한 점은 누구나 알고 있는 일이지만, 누구도 진지하게 접근하지 않는 것처럼 보인다. 

2016~2017년의 야간 노동 특수검진 제도 시행을 앞두고서 벌어졌던 일련의 상황에서, 직업환경의학전문의 제도는 이제까지의 전통적 지지세력이자 이 제도의 산파로 자임하던 노동계로부터 차가운 대접을 받았다. 문송면의 사망과 원진레이온 집단 직업병 시절에 직업병 진단을 두고 임상의와 예방의학 간의 갈등이 있었으며, 임상적 직업병(환경병) 진단을 제대로 하는 노동자를 보호하는 학문의 일환으로 출발점을 가진 직업환경의학전문의 제도는 전통적 직업병의 감소와 작업환경의 개선이라는 시대적 변화와 함께 동반 성장하기 보다는 자신의 정체성과 생존이라는 생물체로서의 자기 보호적 측면이 더 강화되는 내외적 성장의 불균형 상태로 가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전통적인 직업병의 규모가 줄어들고 대기업 중심으로 노동환경의 개선에 따라 노동안전보건 운동의 관심도 변화 확장되었다. 2000~2003년 근골격계 질환 집단요양 투쟁은 몇 안 되는 노동안전보건 문제의 사회적 의제화이자 승리한 투쟁으로 판단된다. 근골격계 질환 문제를 IMF를 지나고 노동강도 강화와 결합하면서 노동운동의 핵심영역으로 위치 지웠던 것 또한, 건강의 문제를 사회적 맥락에서 풀어내려는 중요한 시도로 판단된다. 전국에서 들불처럼 일어났던 집단요양 투쟁의 성과로 근골격계 유해요인조사라는 제도적 성과를 얻었다. 그러나 이러한 조직화와 제도적 성과라는 긍정적 측면에도 불구하고, 승리를 씨앗으로 하여 조직적인 확장과 함께 의제의 확장으로 나아가는 데는 부족한 것으로 판단된다.

 

노동안전보건운동, 다시 변화 모색해야 

이러한 점에서 현재까지도 노동안전보건 운동진영은 문제제기집단으로 자신의 역할을 한정하거나 제한되어있고, 대안세력으로 자신을 확장하는 시각을 갖고 계속적인 시도와 연습을 통해 단련되는 기회를 놓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이러 저러한 이유로 근골유해 요인조사제도는 몇몇의 사업장을 제외하고는 시행되지 않거나 형식화되어버렸다. 

30년 전 문송면과 원진 직업병 문제가 산재의 인정과 보상의 문제에서 시작하였고, 그 이후에도 상당 기간 동안 집단요양 투쟁과 산재 인정의 문제가 노동안전보건 운동의 주요한 이슈였던 점은 부인하기 힘들다. 또한, 문제의 해결방식 또한 매우 투쟁적이고 자기희생적이었다. 그러나 전술하였듯이 노동자 건강 관련 이슈는 주요한 대상과 문제가 변화하고 있다고 볼 때, 노동안전보건 운동의 대응도 변화할 필요가 있다. 

산재 인정의 문제가 한국에서 첨예하게 된 이유는 모두가 알고 있다. 사회적 안전망(개인적으로는 별로 좋아하지 않는 용어다)이 부실한 한국에서 산재로 인정받는 것과 그렇지 않은 것의 차이는 너무 극명해서, 이를 무시하는 것은 노동보건 활동가의 책무를 내버려 둠과 동시에 인도적이고 감성적인 문제까지 일으키게 된다. 알다시피 OECD 국가 중에서 상병수당(또는 상병급여)이 없는 나라는 한국이 유일하다. 아플 때 일하지 못하는 것은 당연하며, 국가가 존재하는 이상 노동능력이 없더라도 생계를 보호하는 것은 당연한 국가의 의무이다.

 따라서, 현재 산재인정 투쟁 중심의 노동보건운동의 방식은 변화해야 한다. 상병수당을 도입하고, 산재인정은 곧 예방과 재발 방지로 이어지도록 해야 한다. 고의에 가까운 산재유발사업장에 대해서는 중과실 책임을 묻게 해야 하며, 건강하지 않은 노동자 상태를 가진 사업장은 사회에 공개되고 사회적 비판과 참여를 통한 시장 퇴출의 과정을 겪게 해야 한다. 

위 필자의 부정적 견해에도 불구하고 노동안전보건 운동의 지평 확장 또는 다른 출발점을 가지는 시도는 여러 가지 형태로 진행된 바 있다. 반올림 활동은 삼성반도체 노동자 백혈병 산재인정투쟁으로 시작해서, 최근 삼성 작업환경측정 보고서 공개의 문제라는 기업 영업비밀 대비 알 권리와 건강 문제라는 사회적 가치판단의 이슈를 만들어내고 있다. 이 문제는 작업환경측정보고서에 실제 영업비밀이 들어가 있는가 아니냐는 기술적인 문제를 넘어서, 경제성장과 형평의 문제, 이윤과 생명의 문제라는 핵심적 가치충돌을 내포하고 있다. 

한국노동안전보건연구소는 노동시간센터 등을 중심으로 한 장시간 노동과 야간노동에 대한 문제 제기는, 여러 가지 정치적 상황과 맞물리면서 야간노동 및 장시간 노동의 축소라는 사회적 흐름을 만들고 있다. 다른 예로는, 노동환경건강연구소의 발암물질에 대한 여러 가지 시도는 노동안전보건의 영역을 넘어서 시민사회까지 확장되어가고 있으며, 작업장의 여러 가지 문제가 매개가 되어 노동안전보건 이슈가 시민사회와 연대할 가능성을 보여준다.

 

해외 사례에 비추어 본 노동안전보건 문제 

핀란드의 높은 수준의 노동자 보호제도는 노동조합의 높은 노동자 조직률과 함께 노사정 합의에 근거한 바 있다. 한국에서 이제까지 노동안전보건 영역의 운동은 주로 대기업과 금속노조를 비롯한 민주노총이 주요한 추동력이었다. 그러나 노동자건강문제를 조직노동자들에게만 의존하는 것은 한국 상황에서 적절하지 않을 수 있다.

 한국에서 아직 노동안전보건 문제는 노사정 핵심적 이슈로써 제기된 바가 드물었으며, 다른 의제에 묻히거나 노사정 관계가 어려워지면 자동 소멸되는 상황이다. 물론 노동안전보건 문제가 다른 사회적 또는 노동문제에 우선한다는 것은 아니지만, 다른 문제가 해결되면 연속적으로 해결되는 성격을 가지고 있는 것도 아니라는 점에서 상대적 독자성을 가지면서 지속해서 문제를 제기할 주체와 시도가 필요할 것이다. 

또한, 노동자의 안전과 보건의 문제가 독자적으로 떨어진 섬과 같은 존재가 되어서는 다른 사회세력과 연대도 어려울뿐더러 사회적 주요 이슈로 자리 잡을 가능성도 낮아진다. 네덜란드와 핀란드 등 국민의 수가 수백만 정도로 소규모 경제를 가지면서 수출 등 외부 국가와의 교역이 중요한 국가에서는 노동력이 국가생산력의 근간이며 노동력 고령화는 이를 가로막는 중요한 문제이다. 

이들 국가에서 노동자의 안전보건의 문제는 국가생산력의 문제로 접근한다. 한국에서 이러한 접근의 필요성과 가능성에 대해서는 철학적·윤리적 정당성과 함께 현실적인 경로와 주체의 문제 등 에 대한 고민이 필요하다.

 4차 산업혁명이 시대의 화두이다. 4차 산업혁명은 플랫폼 노동 등 노사관계의 변화와 노동형태의 변화 등을 일으키고 있다. 수많은 비정형 노동과 아동과 취약계층 노동이 증가할 것이다. 이러한 노동형태의 변화와 새로운 직업성 질환과 상태에 대한 고민과 대응이 필요하다. 이와 더불어, 4차 산업혁명을 바라보는 다른 각도에서의 우리의 시각 확대도 필요하다. 4차 산업혁명이 가져오는 기술적 발전과 변화를 일하는 사람들의 건강 보호에 활용할 방법을 고민하는 것은 아직 노동보건 운동의 시야에 들어와 있지 않다.

 

30년을 넘어, 새롭게 나아가야 

문송면과 원진 문제로부터 30년이 흘렀다. 30년이 한 세대라면, 이제 그 이후에 태어난 세대가 성인이 된 시대가 되었다. 노동자 건강과 관련 한 문제 또한 과거의 전반적인 열악한 노동조건과 엄혹한 사회적 억압에 대한 투쟁과 희생의 시대에서 이제 소수 또는 취약계층에게 문제가 집중되는 반면 노동자 건강문제에 대한 지평과 연대의 확대가 필요한 다양한 중층구조로 변화되고있다. 

문송면과 원진 30년이 지난 시점에 이제까지 직업적 원인으로 유명을 달리하신 분들의 희생 위에 수많은 노동자 건강권의 발전과 함께 과제도 쌓여있다. 과거의 유산과 부채로부터 자유로운 세대들이 중첩된 문제들을 다양하고 다른 관점에서 풀어가야 할지도 모를 일이다.

 

[언론보도] 유해화학물질 관리 산업안전보건법 개정 무력화 시도 경계해야 (매일노동뉴스)

유해화학물질 관리 산업안전보건법 개정 무력화 시도 경계해야김형렬 직업환경의학전문의(한국노동안전보건연구소)
  • 김형렬
  • 승인 2018.05.25 08:00







정부가 산업안전보건법 개정을 통해 화학물질을 제조하는 기업이 그 성분이나 함량 등을 영업비밀로 하고자 할 때 이를 심사하겠다는 영업비밀 사전심사 제도를 도입하겠다고 했다. 이를 통해 화학제품 제조사들이 원료 성분을 확인하고 안전한지 검토할 수 있는 기초를 마련하고, 이를 사용하는 노동자·소비자들의 알권리를 충족시키겠다는 취지다.

http://www.labortoday.co.kr/news/articleView.html?idxno=1517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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