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업환경의학 의사가 만난 노동자 건강 이야기] 직업을 묻고 대답하는 불편함을 넘어 / 2018.10

직업을 묻고 대답하는 불편함을 넘어

강충원 일터건강을 지키는 직업환경의학과의사회 회장

의대생들에게 "일하는 사람의 건강"이라는 주제로 강의를 하는 경우가 종종 있다. 직업환경의학과라는 정식 수업 이외에 의학 공부에 집중된 의대생들에게 사회의 현실을 알려주는 일종의 교양수업이라고 할 수 있다그때 의대생이나 의전원생들에게 여러분들이 노동자를 진료하는 일이 얼마나 될 것 같으냐고 물어보면 잠시 정적이 흐르고 대부분 고개를 갸우뚱한다. 학생들 머릿속에는 병원에서 보는 환자 이외에는 없기 때문이다.

여기서 덧붙여 이야기하며 여러분들이 만나게 될 환자분들은 일을 하고 있거나 과거에 일을 했거나 앞으로 일을 해야 할 사람일 가능성이 높음을 상기시켜 주곤 한다. 그런데 학생들에겐 의학지식보다 어려운 것이 직업을 묻는 일인 것 같다 환자들에게 "무슨 일 하십니까?" 물어보면 대답이 쉽게 나오지 않는다. 그것은 한국 사회에 흐르는 직업에 대한 편견도 작동하지만, 의사들에게 직업에 관해서 이야기한 적이 별로 없기 때문이다. 그도 그럴 것이 의사들은 직업을 물어보지 않는다.

그것은 직업을 아는 것이 치료에 큰 영향을 주지 않는다고 생각하고 있거나, 직업을 물어보는 것을 배우지 않았기 때문이다. 모든 의사가 그것을 배운다고 가정하더라도 그 직업을 다 이해하거나 그 일이 병의 원인이나 치료, 이후 재활과 어떤 관련이 있는지 쉽게 알아차릴 수 있을까오히려 노동자들이 환자가 되었을 때 자기 일이나 자신이 사용한 화학물질이나 자신이 의심가는 상황에 대해서 조금 더 자세히 설명하고 업무와 관련된 것인지 의사와 상담할 시간을 충분히 주는 것이 더 나을 것이라 생각도 해본다. 둘 다 어느 한쪽의 노력만으로는 쉽지 않은 일이다.

그런데 직업환경의학과 의사들도 "당신은 무슨 일을 하세요?" 같은 질문을 많이 받는다. 막상 우리가 무슨 일을 하는지 질문을 받으면 그것도 쉽게 설명하기 어렵다. 왜 그럴까? 앞서와 비슷한 이유로 아직까지 우리나라에서는 직업, 노동과 의료, 건강이 쉽게 연결되지 않는다. "건강하게 일하기"를 위해서 직업환경의학과라는 전문 과목까지 생겼음에도, 여전히 현실은 이윤을 표방하는 기업 논리 앞에 노동자의 건강권은 한없이 작아지고 만다. 

이렇게 직업, 노동과 괴리된 의료, 건강에 대한 인식 외에 또 하나의 문제가 있다. 직업을 물어보고 일하는 과정에서 노출되거나 문제가 될 수 있는 상황을 설명하는 데는 시간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생명을 다룬다는 병원에서도 시간은 돈이다. 아이러니하게도 돈을 못 버는 과는 공간과 시간이 축소되거나 폐과되고, 돈이 안 되는 행위들은 서서히 자취를 감춘다. 그래서 사실 돈이 안되는 직업환경의학과는 사실상 늘 존재증명을 해야 하는 과이다.

현대인의 질병의 원인이 70%가 흡연이라고 하지만, 의사들이 환자의 금연에 시간을 많이 쓰지 않는 것이나, 질병에 대한 직업의 기여도가 2~10%라고 하지만 의사들이 직업에 관심을 가지지 못하는 이유는 이런 몇 가지 구조적이고 현실적인 이유 때문이다. 불행 중 다행으로 이제는 "무슨 일을 하십니까?"라는 질문을 진료실에서 한번 더 고민할 이유가 몇가지 생겼다.

내년부터 고용노동부에서 보건관리대행이나 근로자건강진단 시에 직업환경의학과 의사들이 산재신청을 도울 수 있도록 체계를 만들기로 한 것이다. 또한 업무상 질병에 대해서는 노동자가 불필요하게 복잡한 과정을 거치지 않고 당연 인정기준에 해당하면 이전보다 쉽고 빠르게 산재로 인정받아 조기에 치료받을 수 있도록 제도를 개선하고 있다또한 산재 인정 여부와 관계없이 근골격계 질환이나 뇌심혈관계 질환 중 고위험 직종이나 업종에서 근무하는 경우 산재 특진 과정에서 진단과 치료에 대한 비용을 공단이 부담하여, 적절한 시기에 치료적 개입을 통해 노동자 건강을 보호할 수 있는 길도 열렸다. 서울시에서는 지자체 예산으로 근골격계 다발 위험업종이나 아파도 경제적 이유로 치료를 미루던 노동자들을 위해 유급 병가제도를 내년에 시행할 계획이다. 

그동안 일하다가 병을 얻었지만, 업무상 질병인정이라는 험난한 길을 걷기 주저했던 많은 분들, 그리고 그 가치가 저평가 되었던 많은 직업환경의학과 의사들에게 좋은 소식이다. 하지만 아무리 좋은 제도라도 반대 세력이 있고, 좋은 무기를 가졌더라도 잘 연마하고 사용하지 않으면 쓸모가 없어지는 것이다노동자와 직업환경의학과 의사들이 "직업을 물어보고, 자신이 하는 일을 잘 설명하여" 변화하는 제도를 통해 서로를 살리는 관계가 되길 바란다. 직업환경의학과 의사도 노동자들이 건강하게 일할 수 있도록 돕는 같은 곳을 바라본다는 사실을 서로가 잊지 않는다면 앞으로의 만남이, 직업을 물어보는 일들이 조금 더 편안해질 수 있을 것 같다.


[토론회] 자살 정신질환 산재판정 무엇이 문제인가



자살 정신질환 산재판정 무엇이 문제인가

근로복지공단의 정신질환 산재 판정구조와 지침 개선 방안을 토론하는 자리


일시 : 2018년 10월 1일 (월) 13시~16시

장소 : 국회의원회관 8간담회실


주제발제

1. 정신질환 요양 자료 분석

- 이이령 (가톨릭대 서울성모병원, 직업환경의학 전공의)

2. 자살 자료 분석

- 김세은 (한국노동안전보건연구소, 직업환경의학 전문의)

3. 법원 판결의 시사점과 판정위 개선사항

- 권동희 (법률사무소 새날, 공인노무사)


토론자

고용노동부 산재보상정책과장 주평식

민주노총 노동안전보건실장 최명선

성신여대 법과대학 교수 권오성

공인노무사 이희자 


주최 더불어민주당 이용득 의원, 한국노동안전보건연구소 

[언론보도] 골병의 악순환을 끊는 단초, 근로복지공단 병원의 시도 (매일노동뉴스)

골병의 악순환을 끊는 단초, 근로복지공단 병원의 시도류현철 직업환경의학전문의(한국노동안전보건연구소)
  • 류현철
  • 승인 2018.09.20 08:00







아프지 않은 날보다 아픈 날이 더 많았다. 허리가 끊어질 듯해도 등허리에 둘러붙인 파스 몇 장에 의지하고 나선 날도 셀 수 없었다. 하루 이틀 일하고 그만두는 친구들을 보며 혀를 끌끌 차며 요즘 젊은 것들의 끈기 없음을 탓할 수도 없었다. 그 역시도 생계를 유지할 다른 방법만 있었다면 벌써 몇 번이고 뛰쳐나갔을 것이기 때문이다.

http://www.labortoday.co.kr/news/articleView.html?idxno=154049

[언론보도] 창립 30주년 대한직업환경의학회 노동자·시민과 함께하길 (매일노동뉴스)

창립 30주년 대한직업환경의학회 노동자·시민과 함께하길김형렬 직업환경의학전문의(한국노동안전보건연구소)
  • 김형렬
  • 승인 2018.09.13 08:00







2018년 11월1일부터 3일까지 대한직업환경의학회 창립 30주년을 기념하는 학술대회가 개최된다. 올해는 문송면군의 수은중독 사망, 원진레이온 직업병 사건이 30년을 맞는 해이기도 하다. 

http://www.labortoday.co.kr/news/articleView.html?idxno=153903

특집2. 일터 괴롭힘 대책에 대한 평가 / 2018.09

일터 괴롭힘 대책에 대한 평가

재현 선전위원장


노동자들이 일터 괴롭힘을 당하고 있다는 보도가 연일 쏟아진다. 시간이 지날수록 일터 괴롭힘 형태 역시 다양해지고 복잡해지고 있다. 하지만 지금까지 법과 제도로 처벌하거나, 예방 대책 마련 등 제대로 대처를 하지 못하고 있다. 게다가 자본은 일터 괴롭힘을 단순히 일하는 사람을 괴롭히는 것을 넘어 노동조합을 파괴하거나, 노무 관리를 하는데 적극 활용하고 있다.

노동·인권 운동 진영은 일터 괴롭힘을 사회적으로 어떻게 정의할 것인지를 시작으로, 그 실태는 어떠한지, 일하는 사람들의 개선 요구는 무엇인지, 해외 사례는 어떠한지를 연구하고 법과 제도, 현장에서 운동으로 해결해야 할 과제를 이야기해왔다.

2017년에는 노동조합·현장 활동가, 노무사, 변호사 등이 모여 직장갑질 119를 만들고 전국에서 벌어지는 다양한 일터 괴롭힘 신고를 받고 해결하며, 근본적인 일터 괴롭힘 예방을 위한 방안과 노동자 조직화를 위해 고민하고 활동해왔다. 한편 정치권은 지난 19대 국회부터 일터 괴롭힘을 예방하고 가해자를 처벌하기 위한 법안을 발의해왔지만 별다른 성과를 남기지 못했다.

그런데 7월 18일 정부가 '직장 등에서의 괴롭힘 근절대책'을 발표하며 그동안 방치했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팔을 걷어 부쳤다.

한국 일터 괴롭힘, EU국가들 2배

정부는 한국의 일터 괴롭힘 피해율이 업종별로 EU 국가들과 비교했을 때 3.6~27.5%로서 2배 이상 높은 점, 일터괴롭힘으로 인한 노동시간 손실에 따른 사회적 비용이 연간 4조 7천억 원에 달하는 점, 일터 괴롭힘에 따른 우울증과 자살 문제가 심각한 점, 직장 괴롭힘 피해자의 자녀가 학교 괴롭힘의 피해자로 대물림되는 점 등을 이번 대책을 마련하게 된 배경이라고 설명했다.

정부는 일터 괴롭힘을 정의함으로써 문제에 개입할 계기를 마련했다. 보도자료에 따르면 일터 괴롭힘은 '사용자 또는 노동자 등이 업무상의 지위 또는 관계 등을 이용하여 업무의 적정범위를 넘어 다른 노동자 등에게 신체적·정신적·정서적 고통을 주거나 업무환경을 악화시키는 행위'다. 또 정부가 정규직 노동자뿐만 아니라 일터 괴롭힘에 노출되기 쉬운 불안정 노동자(파견 노동자, 일부 특수고용노동자)에게도 이 대책을 적용할 수 있도록 방향을 제시했다는 점은 긍정적이다.

노동자가 일터 괴롭힘을 인지했을 때 신고할 수 있는 체계도 만들어진다. 이전까지 이 사회에서 일터 괴롭힘 문제는 개념 자체가 불명확하고 특정 개인, 회사의 일로 치부되어 오면서 피해자들 역시 민간단체인 직장갑질119에만 기댈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다. 정부는 이를 해결하기 위해 8월부터 일터 괴롭힘 피해 노동자나 직장 동료 등 누구든 범정부차원으로 운영하는 신고센터에 사건을 접수하도록 하겠다고 했다.

또 정부는 이번 기회에 사용자에게도 일정 책임과 역할을 당부하면서 일정 규모 이상이 되는 사업장에서는 일터 괴롭힘 신고·대응부서를 설치하거나 지정(노사협의회, 인사·감사부서 등 활용) 하도록 했다. 하지만 범정부차원의 신고센터 설치가 예정한 일정보다 늦어지면서 정부가 약속을 지킬 의지가 있는지 묻지 않을 수 없는 상황이다.

한편 정부는 이번 대책 발표에서 사용자가 일터 괴롭힘 사실을 인지 또는 신고 접수 시 해당 사건을 조사하도록 의무화했다. 만일 사업장에서 일터 괴롭힘 관련하여 관련 법 위반행위를 인지 · 신고 접수한 경우 정부가 직권조사를 실시하며 그 결과에 따라 형사처벌, 과태료 부과 등도 이뤄진다.

또 정신적 괴롭힘 등으로 노동자의 건강장해가 발생한 사업장 의료전문가의 의견을 들어 필요 시 임시건강진단명령 등 조취를 취하기로 했다. 지금까지 임시건강진단명령이 물리적 상해 위주로 진행되는 점을 정신적 괴롭힘 등으로 확장해서 실시하도록 한 것이다.

정부는 이번 대책 발표에서 일터 괴롭힘 피해 노동자 또는 피해 발생을 주장하는 자 및 신고자에 대한 징계, 해고 등 보복행위 및 불리한 조치를 금지하도록 했다. 또 피해자의 심리·경제·법률 지원프로그램도 강화하기로 했다. 산업재해 문제에 있어서도 보상을 강화한다는 계획이다.

자살, 우울증, 법정싸움 등 지원 넓혀

그동안 일터 괴롭힘으로 인한 자살, 부상, 질병, 우울증 등을 산재 보상하는 기준은 지나치게 협소했다. 또 법률적으로는 일터 괴롭힘으로 인한 범죄 피해자가 된 경우 손해배상 청구소송만 지원했다. 앞으로는 복직 소송 및 보복소송에 대응할 때도 피해자들이 도움을 받을 수 있다. 또 가해 입증자료가 부족해 소송과정에서 어려움을 겪는 피해자를 위해 행정청이 직권·현장조사, 감사자료 등을 제공하기로 했다.

이제는 일터 괴롭힘 발생 시 사용자가 피해자 의견을 들어 가해자 징계 등 필요한 조치를 의무적으로 해야 한다. 정부는 사용자가 피해자 불이익 처우 금지나 일터 괴롭힘 예방교육 의무 등 관련 법령을 어길 경우 형사 처벌, 과태료 부과 등 책임을 묻는 기준도 마련할 예정이다.

정부는 또 일터 괴롭힘 예방을 위한 인프라를 구축한다는 계획이다. 앞으로는 사용자가 취업규칙필수 기재사항에 사용자 및 노동자의 일터 괴롭힘 금지의무, 예방 및 해결 등에 관한 사항을 포함해야 한다. 가령 사용자 및 노동자의 일터 괴롭힘 금지 의무, 괴롭힘 예방 · 해결을 위한 사용자의 책무, 괴롭힘 발생 시 처리 절차 및 조치, 고충처리 시스템 등을 마련하는 것이다. 

정부는 사업장 실태에 맞는 자율적 예방·대응 시스템 구축을 위한 컨설팅 지원에도 나선다. 또 사용자의 일터 괴롭힘 예방교육 실시를 의무화하고 이를 위해 일터 괴롭힘 예방교육 표준안과 동영상을 제작하여 배포한다는 계획도 밝혔다.

정부는 일터 괴롭힘과 관련하여 '간호사 태움' 문제가 불거졌던 서울아산병원처럼 병원 업종을 대상으로 TF도 수시로 운영하는 한편 '(가칭) 존중받는 일터 조성을 위한 노사정 선언'도 추진한다. 일터 괴롭힘을 조기 발견하기 위해 노동자 정신건강 연구도 확대할 예정이다.

정부는 이 대책을 실천하기 위해 일터 괴롭힘으로 사회적 물의를 일으킨 사업장의 특별근로감독을 실시하는 한편 캠페인 등으로 사회·문화적 인식 개선을 추구한다. 무엇보다 국회 등과 논의해 사회적 공감대를 바탕으로 일터 괴롭힘 방지법 제정을 검토할 계획이다.

늦었지만... 이제는 구체화하고 실천해야

정부의 이번 대책은 너무 늦었다. 하지만 이제라도 일터 괴롭힘 문제를 사회적으로 정의하고, 정부와 사업주의 역할과 책임을 강제했다는 점에서 긍정적이다. 관건은 정부가 대책을 실질적으로 집행할 예산과 인력 등 집행력을 어떻게 확보할 것인가 하는 문제다. 현재 방향 정도를 제시하고 있는데 이를 구체화하고 집행 할 수 있을지 여전히 물음표를 지울 수 없는 상황이다.

무엇보다 결국 입법 기관인 국회가 법·제도 마련을 위해 가장 중요한 역할을 해야 하는데, 과연 국회가 이 문제를 진지하게 검토하고 실질적인 입법으로 나아갈까.  쉽지 않은 상황이다.

정부와 국회는 일터 괴롭힘 예방을 특별법으로 해결하려고 모색 중이다. 한국노동안전보건연구소는 이전부터 산업안전보건법에서 사업주의 안전·보건 조치 의무 중 하나로 일터 괴롭힘을 예방하고 문제에 따른 해결 방안을 마련해야 한다고 목소리 높여왔다. 이 점에서도 정부와 국회가 시민사회와 지혜를 모아야 하겠다.

[직업환경의사가 만난 노동자 건강 이야기] 이가 없으면 잇몸으로 / 2018.09

이가 없으면 잇몸으로

권종호 선전위원, 직업환경의학 전문의


요긴한 것이 없어지면 다른 것으로 대체하면 된다는 의미로 많이 쓰이고 실제로 그렇게 일이 해결된 후 자신감을 표현하면서 쓰기도 한다. 하지만 잇몸까지 쓰는 상황이 좋을 수는 없다. 그리고 어쩔 수 없이 잇몸을 써야 할 상황이 온다면 훨씬 조심해서 써야 한다. 잇몸까지 상하고 나서는 더 이상 ‘이가 없으면 잇몸으로~’를 외칠 수는 없으니 말이다.

얼마 전 출장을 나간 곳에서 방아쇠 수지로 고생하고 있는 노동자를 만났다. 에어건(air gun)을 온종일 쓰면서 방아쇠를 수시로 당기니 검지 쪽인대에 전형적인 방아쇠 수지가 생겨버렸다. 병원에 다니면서 주사도 맞아봤지만, 그때뿐이고 어차피 검지를 계속 쓰면 더 안 좋아진다는 이야기에 이제는 중지로 방아쇠를 당기기 시작했다고 한다. 그래서 가능하면 왼손, 오른손, 검지, 중지를 번갈아 가면서 쓰는 게 좋겠다고 이야기했더니 그럴 수 있었으면 아플 일도 없었겠다 한다.

컨베이어 벨트를 타고 나오는 물건을 처리하는 동안 쉴 틈 없이 방아쇠를 당겨야 하고 조금만 신경을 못 써도 하자가 생기곤 하니 손가락이든 자세든 바꿀 틈 같은 건 없다고 한다. 결국 할 수 있는 것이라고는 똑같은 일에 검지 대신 중지를 쓰는 것, 이 대신 잇몸을 내어주는 것뿐이다. 식품 포장하면서 철끈을 돌려 묶느라 손목에 수근관 증후군이 생겼던 다른 노동자는 오른손을 수술받고 아껴 쓰는 동안 왼쪽 손목에 수근관 증후군이 생겨버렸다. 자동차 정비를 하던 노동자는 테니스 엘보우를 치료받는 동안 어깨의 충돌증후군이 심해졌다. 쉼 없이 공장이 돌아가는 동안 노동자는 이가 깨지고 결국 잇몸마저 내어주게 되는 것이다.

평생 흔하게 발생하는 질환이 근골격계 질환이다. 특히 오랜 시간에 걸쳐 진행된 퇴행성 근골격계 질환의 대부분은 전업주부든 사무직이든 생산직이든 자영업자든 자신의 직업과 관련성이 매우 클 수밖에 없다. 인생의 가장 많은 시간을 할애하는 부분을 직업이라고 할 수 있고 한국과 같은 장시간 노동 사회에서는 인생의 전부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 때문에 과정 상 그것이 자세와 관련된 것이든 잦은 사용과 관련된 것이든, 개인적인 특성에 의한 것이든 오랜 시간 근골격계가 변형되게 만드는 데 있어서 직업은 배제할 수 없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대부분의 근골격계 질환은 개인이 건강보험을 통해 치료받고 있다. 예를 들어, 사무직 노동자에게 요통이 발생했다고 하자. 오래 앉아서 근무하는 환경, 의자 및 책상의 좋지 않은 구조, 활동량이 적어 생기는 복부비만, 허리를 굽히는 자세 등 수많은 직업과 관련하여 파생된 요인들이 요통의 원인이 되겠지만 결국 그 노동자는 별다른 고민 없이 자비로 병원진료를 받고 치료를 받는다. 산재는커녕 공상조차 이야기하지도 어쩌면 생각하지도 못한다. 오히려 ‘이런 경우에는 산재해줘야 하는거 아냐?’라는 전혀 진지하지 않은 농담을 상사로부터 듣기도 한다. 한편, 병원에서는 ‘너무 오래 안 좋은자세로 앉아있어서 그래요. 계속 앉아만 계시면 안 돼요. 한 시간에 10분은 일어나서 스트레칭 하세요.’라며 가장 중요한 원인을 당연히 가장 오랜시간을 들이고, 불편한 자세를 강제하는 노동자의 직업에서 찾는다.

실제로 독일에서는 이러한 직업 관련한 근골격계 질환에 의한 사회 경제적 손실을 매우 큰 것으로 나타났다. 전체 근로손실일수의 약 25%, 98억 유로의 생산 손실(2009년), 조기 은퇴하고 조기 노령 연금을 수급하는 이유 중 정신 질환에 이어 두 번째로 많은 원인, 치료, 재활, 간병에 연간 250억 유로 사용 등 실제 사회가 근골격계 질환으로 입게 되는 손실은 어마어마했다. 이에 독일의 산업안전보건 종합계획에는 지속해서 근골격계 질환에 대한 예방 대책이 있고 개선을 위해 노력하고 있다.

반면에 한국은 근골격계 질환에 대한 직업 관련 손실이 통계조차 잡히지 않는다. 명백한 재해로 인한 근골격계 질환조차 공상처리를 강요하여 산재를 은폐하며, 질판위에서는 아직도 퇴행성 질환은 직업 관련성이 떨어진다는 논리가 나오고있는 상황이니 앞서 사무직 노동자의 예와 같이 직업 때문이지만 건강보험으로 치료되는 많은 경우는 확인되지도 않을 뿐만 아니라, 이를 확인하려는 관심조차 없다. 이렇게 직업 관련 근골격계 질환의 크기조차 확인이 안 되고 대부분 자비로 치료하는 상황, 이가 없으면 알아서 기꺼이 잇몸을 내어주는 노동자들이 있는 현실에서 어떤 사업주가 나서서 환경을 개선하려 할 것인가.

이제는 직업성 근골격계 질환의 인정 범위를 획기적으로 넓히고 이를 신청할 방법도 매우 간소화 시켜야 한다. 다른 질환보다 특히 근골격계 질환에 대해 이러한 과정을 간소화 시켜야 하는데, 이는 감기처럼 흔하면서 간단하게 진단할 수있는 질환은 동네 병원에서 치료 받는 것과 같은 원리이다. 근골격계 질환이 직업성 암이나 뇌심혈관계 질환과 같은 중증 질환과 꼭 같은 과정을 통해 확인될 필요가 있을까, 현재는 제대로 된 질환의 규모를 먼저 파악하는 것이 우선이다. 이를 통해 직업에 기인할 수밖에 없는 근골격계 질환이 더 이상 건강보험을 잠식하지 않도록 해야 하고 그만큼의 재정 부담을 그 원인 제공자인 사업주에게 산재 보험금 인상 등으로 물어야 한다. 근골격계 사고의 예방, 작업 환경에 대한 인간공학적 개선, 작업 간 휴식 시간을 통한 근골격계 피로 회복 등의 대책은 관리 감독만으로 해결되기보다, 직업에 의한 근골격계 질환의 부담을 사업주가 제대로 지게 될 때 해결될 수 있을 것이다.


[언론보도] 고용노동행정개혁위 산재보상 권고안에 대해 (매일노동뉴스)


고용노동행정개혁위 산재보상 권고안에 대해

권동희 공인노무사 (노동법률원 법률사무소 새날)
  • 승인 2018.08.27 08:00

지난 1일 고용노동부 고용노동행정개혁위원회는 9개월간의 활동을 종료하고, 15대 과제에 대한 권고안을 발표했다. 그중 ‘산재보상 실태와 개선 권고안’은 18개 부분, 65개 세부 권고사항으로 구성돼 있다. 권고안의 기본 방향과 내용을 간략히 설명하고자 한다.

http://www.labortoday.co.kr/news/articleView.html?idxno=153528

[성명] 고용노동부는 금속노조의 요구에 즉각 답하라! - 금속노조 농성 119일차에 부쳐

[성명] 고용노동부는 금속노조의 요구에 즉각 답하라!

- 금속노조 농성 119일차에 부쳐


연이은 폭염속에 고용노동부를 규탄하는 금속노조의 농성이 119일째 지속되고 있다. 산재예방제도가 일터에서 무력화 되어 온 현실 때문이다. 이에 대한 상식적이고, 합리적인 제도개선을 촉구하며 금속노조가 지난 4월 11일부터 농성을 전개 중이다. 


문재인 정부는 작년 8월 중대산업재해 대책을 내놓았고, 올해도 ‘국민생명 지키기 3대 프로젝트’를 통해 2022년까지 산재사망을 절반으로 줄이겠다고 입장을 발표했다. 이를 통해 국민들에게 범정부 차원의 실질적인 산재예방 대책에 대한 기대감을 갖게 했다. 그러나 이러한 정책과 제도가 현장에서는 제 기능을 발휘하지 못하고 있다. 왜 그런가? 이를 적극 추진해야 할 주무부처인 고용노동부가 제도개선이나 보완 등을 요구하는 현장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대표적으로 작년 하반기 고용노동부가 스스로 마련한 ‘중대재해 발생 시 전면 작업중지 원칙’이 일선의 현장에서 여러 차례 무력화 됐다. 지청의 근로감독관과 공무원이 작업중지의 범위를 임의로 축소하고, 작업중지 해제시 반드시 진행해야 할 심의위원회를 졸속운영 하는 문제등이 발생했기 때문이다. 이에 대해 원칙이 제대로 관철될 수 있도록 바로 잡고, 사업주와의 결탁 의혹에 대해 제대로 감찰하라는 목소리는 지극히 당연하다. 


정부가 내놓은 산재예방 대책이 제대로 작동하려면 무엇이 필요한가. 일터에서 발생하는 각종 유해·위험에 대해 가장 잘 알고 있는, 현장의 전문가인 노동자들이 산재예방 역량으로 제 역할을 할 수 있도록 각종 예방제도에 참여를 제도적으로 뒷받침해야 한다. 


폭발, 누출 등의 화학설비 등에 대한 예방제도인 ‘공정안전보고서 제도’, 일터의 모든 유해위험에 대해 노사가 공동으로 위험성을 평가하고 관련 대책을 수립하는 ‘위험성 평가제도’는 노동자의 참여를 통해 제 기능을 발휘할 수 있는 대표적인 제도이다. 이에 대해 실질적 참여 보장을 명시하라는 요구가 과도한 것은 아닐 것이다. 


문재인 대통령이 말했듯이 “산업재해는 한 사람의 노동자만이 아니라 가족과 동료 지역공동체의 삶까지 파괴하는 사회적 재난”이다. 산업재해에서 노동자의 삶을 지키기 위해서는 예방이 필수이며, 예방을 위해서는 무엇보다 노동자의 요구에 귀 기울이고, 노동자가 재해예방의 실질적 역량이 될 수 있도록 제도적 참여를 보장해야 한다. 고용노동부는 시급히 금속노조의 요구에 답하라!


2018년 8월 7일 

한국노동안전보건연구소

[성명] 고용노동부의 ‘산재처리절차 간소화’개선안에 대한 반올림 논평

[성명] "산재노동자 권리보호를 위한 고용노동부의 산재처리절차 간소화 개선안을 환영한다”

- 고용노동부의 ‘산재처리절차 간소화’개선안에 대한 반올림 논평

   

지난 6일 고용노동부(장관 김영주)는 ‘반도체, 디스플레이 종사자, 산재인정 처리절차 개선안을 발표했다. 이번 개선안은 오랫동안 문제제기 되어왔던 산재노동자의 과중한 입증 부담을 덜고, 좀 더 쉽게 산재처리 되도록 하기 위한 안으로 반올림은 이번 노동부의 개선안 발표를 적극 환영하는 바이다.

  

고용노동부는 개선안을 통해 △근로복지공단과 법원의 판결을 통해 업무관련성이 인정된 사례와 동일 또는 유사공정 종사자에게 발생한 직업성 암 8개 상병(백혈병, 재생불량성빈혈, 악성림프종, 다발성경화증, 뇌종양, 난소암, 유방암, 폐암)에 대해 역학조사를 생략하는 등 향후 업무관련성 판단과정을 간소화 △ 8개 상병 이외에도 앞으로 법원 등을 통해 업무관련성이 인정되는 사례가 추가되는 경우에는 해당 상병을 추가하여 개선된 절차를 따르도록 하고 △ 이 외의 다른 업종에서 발생하는 직업성 암에 대해서도 업무관련성 판단 절차를 개선해 나갈 계획이라고 밝혔다. 

  

또한 산재신청인 권리보호 확대를 위해 

△ 산재입증에 필요한 사업장 안전보건자료를 공유하여 재해원인 규명에 활용토록 조치 

△ 신청인(대리인 포함)이 사업장 현장조사에 동행할 수 있도록 참여를 안내하고, 

△ 사업장에서 자료제공을 거부하거나 현장조사 등을 거부하여 사실관계 확인을 못한 경우에는 신청인 주장에 근거하여 업무관련성을 판단하도록 하고, 

△ 신청인이 요청할 경우 역학(전문)조사 보고서를 처분 결정 이전에도 사전 제공하여 신청인의 알권리가 보호되도록 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그간 고용노동부는 산재노동자들의 입증부담에 대해 계속 외면해 왔었다. 유해화학물질 정보에 대한 알권리 등도 철저히 가로막혀 왔었다. 이에 대법원(2017년 삼성전자 다발성경화증, 뇌종양 대법원 판결)은 ‘부실한 역학조사, 사업주의 비협조에 대해 업무관련성 판단에서 노동자에게 유리하게 판단하라’고 한 것이다. 그리고 이번 고용노동부의 개선안은 이러한 대법원의 판결을 반영한 것이다. 재해노동자와 유족의 고통을 처음으로 헤아린 고용노동부의 이번 개선안을 환영하면서, 앞으로는 고용노동부가 더 이상 과거의 적폐를 반복하지 않기를 희망한다. 

  

그런데 경총(한국경영자총협회)에서는 이번 고용노동부의 개선안 발표에 반발하는 입장을 냈다. 경총은 “역학조사를 생략하는 것은 직업병 발생을 야기할 수 있는 해당 공정의 유해화학물질 사용여부나 노출 수준에 대한 검증 없이 무조건 산재를 인정하겠다는 것”이라며 “구체적인 입증 없이 심사하는 것은 산재보험 기본 취지에 부합하지 않는다”고 반발하고 있다. 

  

이러한 경총의 주장은 앞뒤가 맞지 않는 터무니없는 주장이다. 해당 공정의 유해화학물질 사용여부나 노출수준에 대한 검증을 할 수 없었던 것은 그동안 삼성전자 등 사업주가 유해화학물질 정보에 대해 영업비밀 등 핑계로 정보를 은폐하고 자료제출을 거부해 왔던 탓이 크다. 이 때문에 대법원에서도 사업주의 비협조에 대해 노동자측에 유리하게 판정하도록 지침을 내린 것이다. 무엇보다 산재보험 기본취지는 노동자 보호에 있다. 따라서 고용노동부는 경총의 부당한 입장에 흔들리지 말고, 산재노동자 보호와 재해 예방을 위한 개혁조치를 계속 해 나가야 한다. 

  

2018. 8. 9. 

반도체노동자의 건강과 인권지킴이 반올림

<일터> 통권 174호 / 2018.08




노동자가 만드는 <일터> 통권 174호 / 2018.8

특집 : 질판위 10년 평가와 과제 


4 업무상질병판정위원회 10년의 기록  

8 업무상질병판정위원회에 바란다 

10 왜 

13 업무상질병판정위원회 10년 노동자 직업병 산재인정의 성과와 과제는 무엇인가

16 노동자에게 필요한 업무상질병판정위원회가 되어야 한다 

18 [지금 지역에서는] 

향남에서 '우편물에 담긴 일과 건강에 관한 토크콘서트' 열려

20 [국제 노동안전건강뉴스] 

뜨거워지는 지구, 노동자 보호는?

22 [국제 안전보건기준에 관한 비교 검토 연구] 

노동인권의 사각지대, 농업

24 [연구 리포트]

인천공항 수하물시설 노동자들의 근골격계질환 및 작업환경 실태조사 

28 [노동시간 읽어주는 사람]

폭염 속 노동시간 

30 [사진으로 보는 세상]

32 [A~Z까지 다양한 노동이야기]

편의점 알바, 누가 쉽다고 하나요? 

36 [현장의 목소리]

2018 여름건강현장활동 대학생, 모두의 건강을 고민하다 

44 [노동안전보건 활동가에게 듣는다]

건설현장을 안전하게 바꾸고, 노동자의 삶도 바꾼다 

48 [직업환경의학 의사가 만난 노동자 건강 이야기]

폭염 속에 노동자들이 죽어간다 

50 [노동자 건강 상식]

당뇨 이야기 

52 [문화읽기] 

사당동 더하기 25

54 [이러쿵저러쿵] 

문송면 · 원진 산재사망 30주기 추모위 활동을 돌아보며 

56 [한노보연 이모저모]

[노동안전보건활동가에게 듣는다] 건설현장을 안전하게 바꾸고, 노동자의 삶도 바꾼다 / 2018.08

건설현장을 안전하게 바꾸고, 노동자의 삶도 바꾼다- 이준상 건설노조 광주전남지역본부 노동안전부장 인터뷰                                                                                                                                           나래 한국노동안전보건연구소 상임활동가

             ▲ 건설노조 토목분과 노동안전보건 담당자 회의에서 교육을 진행하는 이준상 노동안전부장의 모습 [출처: 한국노동안전보건연구소]
연일 계속되는 폭염 속에서 땀 흘리며 일하는 노동자들이 있다. 바로 건설 노동자들이다. 목수, 철근공, 건설기계, 타워크레인, 전기원 등 다양한 분야의 건설 노동자들이 존재한다. 상가, 주택, 빌라, 아파트의 다양한 건물을 완성해 나가는데 이들의 땀과 노력이 없으면 불가능하다. 하지만 이들의 노동환경은 위험천만하다. 건설 노동자들의 사망 사고 소식은 하루가 멀다고 들려온다. 

최근에는 전주 아파트 공사현장에서 20년 경력 베테랑 목수 노동자가 폭염 중 계속된 작업으로 정신을 잃고 추락해 사망했다. 광주에서도 비슷한 사망사고가 발생했다. 이처럼 건설 노동자들의 안전과 건강을 위협하는 요소는 너무나 많다. 건설현장을 바꾸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건설노조 광주전남지역본부(이하 광전본부) 노동안전부장 이준상님을 지난 7월 19일에 만났다.
"목수 일을 3년 정도 했습니다. 그러다 다쳐서 산재로 쉬는 중에 노동조합 지도부가 투쟁하다 구속됐고, 건강이 회복되면서 노동조합 활동을 본격적으로 시작했습니다. 그 뒤로 활동을 시작한 지 올해, 만 4년 됐네요."

10여 년이 넘은 광전본부는 목수 중심의 200여 명 조합원의 규모였으나 2014년 말 현장 투쟁이 크게 벌어지면서 규모가 10배 이상 늘었다. 그 과정에 함께 했던 이준상님에게 노동조합은 소중한 곳이다.

"원래는 급한 시기에 활동하고 다시 현장 일을 하려고 했어요. 그런데 간부도 부족하고, 큰 투쟁에 승리해서 조직도 확대되니 여러 일이 생겼죠. 그때 마침 전기원지부에서 근골격계 질환으로 산재신청 하는 일이 있었어요. 개인적으로 조직사업 경험은 부족해도, 일용직 건설노동자들이 근골격계 질환으로 산재승인을 받을 수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지만, 관련 법이 있는지도 몰랐어요. 그런데 현장을 돌아보니 아픈 사람이 정말 많았던 거죠. 그때부터 노동안전보건 운동을 본격적으로 시작하게 됐어요."

건설현장의 안전사고는 끊임없이 발생한다. 정부도 심각성을 인지하고 2020년까지 산재 사고사망을 절반으로 줄이겠다고 발표했다. 그러나 건설현장 사망자 수는 매해 늘어나고 있다. 고용노동부가 최근 발표한 5년간 건설업 산업재해 현황을 보면 총재해자 수는 11만 878명이다. 사망재해도 문제지만 추락과 부딪힘 등 전형적인 재래형 사고가 흔하다. 도대체 왜 건설현장에서 사망, 사고가 반복되는 걸까.

"단순히 사고 문제만 놓고 접근할 것은 아닙니다. 건설 현장은 근본적, 절대적으로 적정 공사비와 공사 기간이 확보되지 않아요. 불법 하도급 문제도 심각하죠. 짧은 기간 안에 부족한 비용으로 일을 하려고 하니깐 당연히 급하게 공사 기간을 맞추게 되죠. 그러면 안전문제는 뒷전이고요. 이게 가장 핵심적 문제입니다. 그리고 노동자들 역시 이렇게 방치되어 일한 지 너무 오래됐어요. 안전시설이 부족하지만 갖춰져도 불편해하는 경우도 종종 있고요. 이런 상황에서 사측이 핵심적 역할을 하지 않으면 사고가 발생하는 거죠."

현장에서 계속해서 무리한 공사 기간 단축, 비용 문제를 제기하며 여러 노력을 하는 와중에도 이준상님의 눈길은 노동안전보건 영역으로 향한다. 최근 관심을 기울이고 있는 문제를 물었다.

"가장 먼저 근골격계 질환 사업에 관해 관심을 두고 있습니다. 1~2년 이내에 관심을 둔다고 바뀌는 영역은 아니에요. 구조적, 관행적 문제를 하루아침에 바꿀 수 없기 때문이죠. 2~3년 동안 기초를 쌓고 안정화 되기 위한 중장기적 계획을 노동조합에서 만들어야 합니다. 지금까지 성과를 바탕으로 토대를 어떻게 구축할지가 핵심이죠. 건설현장에서 산재를 은폐하기 위한 공상 처리도 너무 흔하고 노동자들 역시도 익숙해서 이런 것들을 바꿔야 근골격계 질환도 공식적으로 드러낼 수 있겠죠. 최근 하는 중요한 고민입니다."

목수로 일을 하다 노동조합에서 활동하며 여러 좌충우돌이 있었다. 물론 이준상님에게도 노동안전보건 영역이 쉽지는 않았다. 낯설고 어려웠다. 그런데도 어떻게 돌파해 나가며 꾸준히 활동해올 수 있었는지 노하우가 궁금했다.

"방법보다는 당장 목적의식 때문에 여기저기 부딪혔어요. 그냥 했죠. 하다 보니 알게 되더라고요. 현실적 한계는 직면했지만, 생각도 못 했던 일이 되다 보니까, 할 수 있는 가능성을 봤죠. 더디게 가더라도 갈수는 있겠더라고요. 여기저기 자문도 구하고, 자료도 찾아보고요. 그러다 보니 시간이 지나면서 되더라고요."

지금도 많은 조합원과 산재 문제로 상담하고, 술잔도 기울이지만 그에게 가장 기억에 남는 조합원은 마음 한편에 있었다. 이준상님에게는 그분들이 힘들더라도 다시 활동을 다짐하게 되는 원동력이기도 했다.

"2015년 말에 처음 근골격계 질환 산재 신청을 냈던 조합원 두 분이 가장 기억에 남아요. 한 분은 60대 중반이었고, 한 분은 50대 초반이요. 처음에 조합원들에게 꼭 산재 인정받을 거라고 했는데, 조합원들도 안 믿었어요. '노가다 골병'이라는 사회적 통념이 건설 노동자 스스로에게도 있었던 거죠. 산재가 되겠냐, 안 되는 거 해서 회사 불편하고 우리 불편하게 하지 말자는 인식이요. 두 분 다 수술하고 집에서 요양 중인데 산재신청 설득하려고 집까지 찾아갔어요. 가족들도 만났고요. 그렇게 신청하고 결국 인정받았죠. 너무 기뻤어요. 본인도 어려울 거로 생각하면서 돈을 못 버는 상황에서 생계 걱정을 많이 했는데, 소식을 듣고 나서 그분들이 지었던 표정이 아직도 기억나요."

물론 아쉬운 경험도 있다.

"근골격계 질환 산재 인정받고 나서 관심이 생기더라고요. 그래서 전체 교육을 해보자 결심했어요. 한달 반 동안 조합원 대상으로 하루 2시간씩 교육을 했어요. 산재신청 기본 절차, 법적 구조, 사측 압박 문제 등에 대해 이해와 설득시키고 교육했죠. 교육하는 과정에서 조합원들이 소음성 난청 문제를 얘기하더라고요. 교육 때 소음성 난청 있는 분들을 개별적으로 면담 받아서 취합해보니 350명 중 10% 정도 해당됐어요. 알아보니 소음성 난청은 특수건강검진을 받아야 한다길래 안전보건공단에 직접 찾아가기도 했죠. 특히 건설노동자들은 검진을 받으려면 일을 하루 빼야 하는데 그러면 일당을 포기해야 하거든요. 그래서 업체 찾아가서 설득해서 특수검진을 받을 수 있게 만들었죠. 산재신청 추진도 했는데 기간도 오래 걸리고 작업환경측정도 준비가 안 되어있어서 장기적 싸움을 해야 하는 상황이었어요. 그런데 그때 노동조합 조직사업 비중이 커지면서 접게 됐어요. 노동조합에서 집중하고 역량을 투여해야 하는데 그렇게 하기가 어려웠죠. 일단 상황을 파악한 수준에서 중단할 수밖에 없는 사업이어서 굉장히 아쉬워요."

그간 경험을 토대로 본인뿐만 아니라 노동조합에 작은 변화들이 생겨나기 시작했다. 변화들이 이준상님을 비롯해 건설현장에서 노동안전보건운동을 하는 이들에게 에너지가 된다.

"확실히 많은 변화가 있죠. 쉽게 산재 신청을 하고 승인받는 게 지금 구조에서 쉽지 않아요. 그래도 분명 인식은 변했죠. 조합원들도 많은 상담을 해와요. 초기에 본인의 질병을 굉장히 조심스럽게 얘기했어요. 몸이 경쟁력인 건설 현장에서 근골격계 질환은 고용 문제이기도 하니까 동료와 경쟁에서 떨어질 수도 있고요. 사회 관심은 둘째치고 노동조합도 관심이 없으니 본인이 참고 버텼는데 지속해서 사업을 하다 보니 주변 동료들도 건설현장에서 골병든 게 개인 문제가 아니라 구조적 문제이고, 우리가 얘기할 수 있고 산재도 할 수 있다는 걸 깨달은 거죠. 최근 노동조합에서도 이 사업에 대한 인식이 근본적으로 변화하고 있어요."

건설 노동자들의 노동강도를 높이고 안전을 위협하는 문제는 현장에도 있지만, 생활 전반에 놓여있다. 바로 '휴식' 문제다. 건설현장은 촉박한 공사 기간 때문에 날씨 영향만 없다면 주말, 공휴일 없이 매일 돌아간다. 그러다 보니 당연히 몸은 지치고, 위험에 노출될 확률이 높다. 집에 돌아가서 바로 기절하듯 자도 휴식권이 보장되지 않은 삶은 위태롭다. 

이런 문제에 대해 7월 12일 국토교통부는 공공 건설공사 안전강화 방안을 발표했다. 건설 현장의 안전을 강화하고 공사 품질을 높이기 위해 공공 현장부터 견실시공을 강화해 나갈 계획을 밝혔다. 이를 위해 공공 공사로부터 노동자의 휴식을 보장하며, 적정 공사 기간을 확보하는데 일요일 휴무제를 단계적으로 시행하기로한 것이다. 올해 9월부터 시범 도입되며 내년 상반기에는 모든 공공 공사에 적용된다. 하지만 여전히 풀리지 않은 문제가 있다.

"안정적 휴식이 보장되는 건 정말 중요해요. 그러기 위한 전제는 일상적 고용문제가 안정화 되고, 임금이 보전이죠. 쉬고 싶고, 그러면 정말 좋은데 건설현장 작업 특성상 눈, 비가 오면 쉬어야 해요. 그리고 공사가 끝나면 다른 현장에 가기 전까지 일을 못 해요. 당연히 생계 위협을 받죠. 이런 문제들이 해소되는 게 중요합니다."

무엇보다 이준상님은 정부와 건설 자본의 건설 노동자 안전, 건강 문제에 대한 태도와 관점을 지적했다.

"무지하고 무관심해요. 피상적으로 건설 노동자들이 힘들다는 건 누구나 다 알죠. 하지만 구체적으로 건설 노동자들의 노동 가치를 존중하고, 인격적으로 존중하는 구조는 전무해요. 여전히 빠른 시일 안에 공사를 끝내서 이익금을 최대한 많이 남기기 위해 수단으로 활용하죠. 그나마 최근 전국 토목건축 현장에서 단체협약을 체결하고 노동조합을 통해 노동자들이 힘을 가진 조직으로 인정받고 있지만, 여전히 건설 노동자들의 노동 가치, 개별 노동자들의 안전, 복지, 건강을 진정성 있게 고민하진 않아요. 굉장히 형식적이죠."

노동안전보건 문제에 관심을 기울이고 있는 이에게 꼭 해주고 싶은 얘기가 있는지 물었다.

"노동안전보건 활동이 누구나 다 알고 있고, 해야 한다는 인식은 있어요. 그런데 누구도 어떻게 하는게 맞는지, 어떻게 하는 게 잘 되는 거라는 조언을 해줄 사람이 많지 않아요. 굉장히 힘들고 어려운 부분이죠. 일단 노동안전보건 사업을 고민하는 분이 있다면 힘들더라도 지금부터 시작하면 누군가에게 큰 도움이 될 거란 생각을 하면 좋겠습니다. 분명 변해가는 흐름이 있어요. 건설노조도 제가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빠르게 변하고 있어요. 노동조합에서도 하면 좋은 사업 수준이 아니라, 이제는 구조적으로 사업에 대한 장기적 대책과 관심, 고민이 필요할 때입니다. 노동조합의 수준을 한 단계 발전시킬 수 있는 영역인 거죠."

[연구리포트] 인천공항 수하물시설관리 노동자들의 근골격계 질환 및 작업환경 실태조사 / 2018.08

인천공항 수하물시설관리 노동자들의 근골격계 질환 및 작업환경 실태조사

전지인 (건강한노동세상)


1. 한 노동자의 폐암으로부터 시작된 노동안전보건활동

인천공항 여객터미널이 수많은 사람이 이동하는 공간이라면, 같은 넓이의 지하 2층은 수하물이 이동하는 공간이다. 하루에도 수천, 수만 개의 수하물은 얼기설기 놓인 컨베이어벨트를 따라 흘러간다. 수하물처리시설은 기본적으로 무인시스템으로 운영되고 있지만, 유지보수업무는 그림자처럼 보이지 않는 노동자들의 노동이 존재하는 공간이기도 하다.

얼마 전 인천공항 지역지부 노동조합을 통해 17년간 24시간 교대로 하루의 1/3을 수하물시설이 있는 지하 2층에서 보냈다던 노동자가 폐암에 걸렸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이 사건을 계기로 노동조합과 건강한노동세상은 이 노동자에 대한 산재 요양신청을 진행했다. 또, 수하물시설관리공간의 산업안전보건법 위반사항을 찾아 원청인 인천공항공사, 1차 하청업체, 2차 하청업체 6곳 등 총 8개 업체를 대상으로 고발을 진행했다. 고발 이후 고용노동부 인천중부지청장 면담을 통해 수하물시설관리 작업현장에 대한 역학조사와 산업안전보건법 위반 사항에 대한 철저한 조사와 지도 감독을 요구하였다.

고발 이후 노사 입회하에 근로감독관의 현장조사가 시행되었고, 그 결과 작업환경측정미실시, 안전 보건교육 미실시, 산업재해 미보고 등 실태가 드러났다. 이로 인해 원청인 인천공항공사를 비롯한 8개 업체에 총 1억 여 원의 과태료와 시정명령이 내려졌다. 또, 현장 환경에 대한 조사에서 분진이 법적 기준치 이하로는 조사되었지만, 노조는 미세먼지 등의 추가적인 분진조사와 환기장치의 추가 설치 및 충분한 가동, 청소작업 도구 및 방법 개선, 무엇보다 안전보건 사항에 대해 노사 간 협의체 구성을 요구하였다. 노동조합이 요구한 끝에 원청인 인청공항공사와 협의체 구성에 합의하는 성과를 만들어 냈다.

이후 수화물시설관리지회에서는 전 조합원을 대상으로 자체적인 노동안전보건교육과 함께 전반적인 작업환경과 근골격계 질환에 대한 실태조사를 실시하였다. 이번 폐암 사건을 계기로 조합원들은 지금까지 당연하게 받아들였던 분진, 소음, 협소한 공간, 중량물, 어두운 작업환경에 대해 얘기하기 시작했고, 노동자들의 노동안전보건에 대한 인식이 확대됨은 물론 작업환경 개선에 대한 공감대를 형성하게 되었다.

2. 수하물시설 작업환경 및 근골격계 질환 실태조사

수하물지회 조합원 219명을 대상으로 실태조사를 진행한 결과 평균 연령은 45세, 평균 근속연수는 8년으로 10년 이상의 장기근속자도 44.2%로 높게 나타났다. 주간노동시간은 77.6%가 8~9시간 사이로 일하고, 야간노동시간은 60.1%가 15시간 이상 일한다고 응답했다. 주관적으로 희망하는 업무량을 조사해보니 평균 희망업무량이 주간은 82%, 야간은 70%로 줄이고 싶다고 응답해 야간노동에 더 부담을 느낀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노동강도에 대한 설문에서는 72%가 강하다고 느끼고 있었다. 이는 야간에 이루어지는 장시간 노동 때문이기도 하지만 야간에 중량물 작업인 모터와 벨트 교체작업이 이루어지다 보니 점검 및 모터 수리작업을 하는 주간보다 노동강도가 세기 때문으로 짐작할 수 있겠다.

작업현장에 대해 느끼는 주관적 심각성에서 1위 분진, 2위 소음, 3위 협소한 공간, 4위 중량물, 5위 조명(어두움) 순으로 꼽았다. (환산점수가 낮을수록 심각하다고 느낌)


근골격계질환 설문조사에서는 신체 부위별 통증 호소율은 허리, 어깨, 목 순으로 나타났으며, 1개 부위 이상 통증을 호소한 노동자는 84.4%로 나타났다. 이는 수하물시설의 모터와 벨트 교체작업을 진행할 때 모터와 벨트의 무게가 20~40kg으로 작업공간이 협소하다 보니 수동으로 운반해야하는 경우가 많고, 주로 어깨에 지고 이동하기 때문으로 파악할 수 있다.

신체 부위별 통증 호소 유무 및 정도, 통증의 지속시간, 통증의 빈도 등을 조합하여 근골격계 질환의 증상 유무에 대해서 설문했다. 각 조합의 결과에 따라서, 통증호소자, 관리대상자, 유소견자 등으로 구분하였으며, 한 부위 이상 미국 국립산업안전보건연구원을(NIOSH) 기준으로 관리가 필요한 응답자는 2.5%, 인천대 기준으로 근골격계 질환자일 가능성이 상당히 높아 작업환경에 대한 신속한 개선과 면밀한 의학적 검진과 관리가 요구되는 응답자는 43.6%로 조사되었다.


3. 수하물시설관리 현장에서는

질병으로 치료를 받은 경험이 있다고 응답한 117명 중 52%가 근골격계 질환이라고 답할 만큼 많은 수의 수하물시설관리 노동자들이 골병을 앓고 있다. 협소한 작업공간으로 불편한 작업 자세를 강요받고, 중량물인 모터와 벨트의 수리 및 교체작업으로 허리와 어깨가 병들고 있다. 얼마 전 허리로 요양신청을 했던 수하물시설관리 노동자가 요양 불승인 통보를 받았다. 모터와 벨트 교체 작업이 상시작업이 아니라는 이유다. 수하물시설관리는 고장이 나거나 교체가 필요할 때 이루어지기 때문에 상시적인 작업은 아니지만 1회 작업의 노동강도가 훨씬 높은 작업으로 결국 노동강도의 증명도 당사자의 몫으로 남았다.

현재 수하물시설관리 현장은 다소나마 공기 순환이 이루어져 작업현장 온도가 내려갔고, 추락위험이 있었던 곳곳에 안전시설을 설치했으며, 분진청소 방법도 그저 공기중으로 날리는 것이 아닌 흡입의 방식으로 요구하게 되었다. 무엇보다 시설관리책임자인 인천공항공사의 책임을 명확히 하고, 법적인 노사관계를 뛰어넘어 원청과의 협의체를 구성하여 이후 작업환경 개선에 대한 논의가 이루어질 수 있는 구조를 만들었다. 아직 끝나지 않았다. 중량물 취급과 협소한 공간에 따른 불편한 작업 자세를 개선하기 위한 논의가 협의체에서 시작되기를 기대한다.

특집5. 노동자에게 필요한 업무상질병판정위원회가 되어야 한다 / 2018.08

노동자에게 필요한 업무상질병판정위원회가 되어야 한다

조기홍 한국노총 산업안전보건연구소 본부장


업무상질병판정위원회(이하 질판위)는 2008년 7월 산업재해보상보험법을 개정하여 설치된 업무상 질병 판정 전문기구다. 뇌심혈관계질환을 비롯하여 근골격계 질환 및 암 등 업무와의 상당인과관계 판단이 어려운 업무상 질병 판정의 전문성 공정성을 높이기 위해 설치됐다. 과거 업무상 질병의 경우 전문성 부족 및 편파적인 판정으로 당연히 인정되어야 할 업무상 질병이 인정 받지 못하는 경우가 많았으며 인정이 되더라도 상당한 기간이 소요되어 노동자에게 큰 고통을 안겨주었다. 이러한 문제점을 개선하기 위한 목적으로 질판위가 설치된 것이다.

그렇다면 과연 질판위 설치 이후 무엇이 달라졌을까? 질판위가 노동자의 업무상질병 인정에 큰 기여를 했을까? 대답은 '아니다' 일 것이다. 여전히 노동자들은 업무상 질병을 인정받기 매우 힘들 뿐만 아니라 오히려 뇌·심혈관계질환의 경우 인정률이 질판위 설치 이전보다 훨씬 낮아진 결과를 초래했다.

질판위 10주년을 맞이하여 근로복지공단 심경우 이사장은 "업무상질병판정위원회는 노동자의 권리를 보호하고 사회적 가치를 실현하는 명실상부한 업무상 질병 전문 판정기구로서 그 존재가치를 인정받고 있다"고 자평했으나 노동계에서는 질판위의 문제점을 지속해서 제기하고 있고 심지어는 질판위 해체까지 주장하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그렇다면 무엇이 문제일까?

업무상질병판정위원회 설치 목적 잊지 말아야 

첫째, 질판위의 공정성 및 전문성이다. 질판위 구성은 정부, 노동자 단체, 사용자 단체 각각 1/3로 구성되어 있으나 위원장의 경우 근로복지공단 출신 등 정부 인사가 차지하는 경우가 대부분으로 판정에는 참여하지 않으나 부당하게 판정에 영향을 미치는 경우가 많았으며, 이는 노동자에게 피해로 돌아올 수밖에 없다. 따라서 질판위 위원장을 공단 출신보다는 공정하고 산재보험에 이해도가 높은 외부 민간인 전문가로 확대하여야 할 것이다. 더 나아가서 질판위를 산재보험 급여를 지급하는 근로복지공단 산하가 아닌 노동부 직속 독립기구로 확대하여 더욱 공정하고 체계적이고 전문적인 그리고 신속한 판정이 이루어질수 있도록 하여야 한다.

질판위에 참여하는 위원들의 전문성도 문제다. 질판위 위원들 중 산재보험 제도와 업무상 질병에 대해 충분히 이해하고 있는 위원이 얼마나 될까? 질판위에서는 임상 의사를 비롯하여 변호사, 노무사 등 추천 전문가의 능력에 대해 검증은 하고 있지 않다. 과연 이러한 임상 의사를 비롯한 추천 전문가들이 이 노동자의 작업환경을 제대로 이해하고 있을까? 능력도 검증 안 되고 노동현장도 모르는 사람들한테 노동자의 업무상 질병판정을 맡긴다는 게 말이 안 된다. 개인의 잘못된 판단에 의해 노동자가 피해를 받을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향후, 질판위 심의를 2단계로 구분하여, 1차 단계에서 임상 의사의 참여 상병을 확인하며, 2차 단계에서 법률가 및 직업환경의학 의사 등이 참여하여 업무 관련성을 심의하는 구조로 개편하는 방안이 필요하다.

2017년 10월 국회 환경노동위원회 소속 자유한국당 문진국 의원이 25일 근로복지공단으로부터 받은 자료를 보면, 질판위에서 2008년부터 10년간 연이어 활동한 위원 수는 58명이었다. 위원은 임기 2년에 4회 연임할 수 있다. 10년 임기가 불법은 아니지만, 일부 위원들이 장기 연임하면서 일부 심의위원들의 '독식 구조'가 형성돼 판정이 경직되고, 새로운 유형의 판정에 적응하기 어려워 노동자들이 산재 판정에서 불리해진다는 지적이 나온다. 규정을 어기고 노사 동수를 맞추지 않은 상태로 회의를 진행한 사례도 2008년부터 최근까지 169차례였다. 위원들에 대한 검증과 부당한 회의 진행은 금지해야 한다.

둘째, 질판위의 신속성이다. 2008~2017년 상반기까지 질판위는 3970건의 심의 처리기한을 넘겨, 산재 판정을 기다리는 노동자들에게 피해를 줬다고 문진국 의원은 지적했다. 2015년 최장심의 기간이 916일이었던 사건도 있었다. 심의기간이 길어질수록 피해 노동자의 고통은 그만큼 길어질 수밖에 없다. 역학조사, 직업성폐질환연구소, 산재병원의 업무 관련성 조사 등 전문가의 평가를 거쳐 업무 관련성이 높을 경우 질판위를 거치지 않고 소속기관에서 결정하도록 하여야 한다. 노동자를 위해 설립된 질판위의 취지를 되살리기 위해 인력풀 확보와 위원장 위촉방식, 처리기간 및 회의 구성의 개선이 시급하다.

셋째, 보상과 예방의 연계방안이 필요하다. 업무상 질병 판정을 받을 경우 이는 개 별 노동자의 문제가 아닌 사업장 전체 노동자의 문제일 수 있다. 따라서 업무상 질병 발생을 노동부에 통보하고 노동부는 이를 근거로 사업주에게 예방대책을 수립하도록 하고 이행 여부를 감독하여야 한다.

끝으로 산업재해보상보험법 제 1조에는 '근로자의 업무상의 재해를 신속하고 공정하게 보상하며 (생략) 재해 예방과 그 밖에 근로자의 복지증진을 위한 사업을 시행하며, 근로자 보호에 이바지하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로 되어있다. 질판위 또한 산재보험 운영 목적에 따른 운영을 하여야한다. 노동자에게 피해를 주는 질판위가 아니라, 노동자에게 필요한 질판위가 되어야 한다


특집4. 질병판정위원회 10년 노동자 직업병 산재인정의 성과와 과제는 무엇인가? / 2018.08

질병판정위원회 10년 노동자 직업병 산재인정의 성과와 과제는 무엇인가?

최명선 민주노총 노동안전보건실장


업무상질병판정위원회(아래 질판위)가 도입된 지 10년이 되었다. 질판위 도입 이전 직업병 산재심사는 근로복지공단에서 진행되었고, 민주노총은 불공정·불승인 남발과 장기간 소요되는 산재심사의 문제를 제기하며 '독립적· 객관적 심의기구'와 '선(先) 보장 후(後) 평가제도'를 요구했다. 그러나 민주노총이 불참한 가운데 진행된 2006년 산재보험제도 노사정논의에서 직업병심의는 '업무상질병판정위원회 구성'이라는 단 한 줄로 정리됐다.

그러나 그 구성과 운영에 대한 논의 없이 정부의 일방적 추진으로 2008년 제도가 도입됐다. 또 뇌·심질환 등 직업병 인정기준이 나빠지고, 오히려 산재 불승인이 남발되면서 민주노총은 질판위 해체 투쟁을 진행했다. 

이후 2012년 ~2013년 질판위 운영과 직업병 인정기준 제도 개선에 관한 노사정 논의가 이뤄지면서 민주노총은 질판위에 추천 위원을 보냈다. 또 질판위원 워크숍, 지역별 간담회를 진행하고, 2016년 2월 초부터는 민주노총 내부 질판위 사업단을 통해 제도개선안을 만들어 일부 제도 개선을 이뤄냈다.

2012년에는 상병별 심의, 직업환경의학 위원 확대, 사업주 제출 자료 제공, 위원장과 공단 추천 산재보험 전문가 역할 제한, 근골과 뇌심의 현장재해조사 강제 등이 이뤄졌다. 이와 더불어 '역학조사 의뢰에 대한 공단본부 심의, 신청인과 대리인 참여 보장 등의 제도 운영과 퇴행성 근골· 뇌심질환 만성과로·직업성 암 등 직업병 인정기준 개정도 진행됐다. 

이후 한 달여간 농성 끝에 근골격계 재해조사 시트가 만들어졌다. 2016년에는 '상병미확인'으로 불승인이 남발되는 것을 개선하기 위해 소위를 구성하고 재심의하도록 했다. 

또 근골격계 재해조사 동영상 제출 시 당사자 확인, 질판위 위원의 회의참석 균등 배분, 회의자료 일체 사전 제공강화, 위원장 의결권 제한 준수 등으로 제도가 개선됐다. 민주노총 추천 질판위원을 상대로 조사하고 개선 방안을 마련, 노동부와 공단에 제출하고 노사정 논의를 추진하는 과정 등으로 이뤄낸 것이다. 또 금속노조가 심각한 운영 문제를 일으키던 서울 질판위 위원장 퇴진 투쟁을 전개한 끝에 위원장이 바뀌기도 했다.

끈질긴 싸움, 산재 승인으로 이어져

그동안 질판위의 전향적인 심사 승인 뒤에는 노동조합의 투쟁이 있었다. 공공운수노조의 철도 지하철 노동자 정신질환 문제, 유성기업 등 금속노조의 투쟁, 전기원 노동자의 전자파 직업병에 대한 건설노조의 투쟁, 압구정동 경비노동자의 괴롭힘으로 인한 자살 산재 인정 투쟁, 유산과 불임·성희롱의 산재인정, 라돈과 미세먼지 등으로 인한 지하 공간 직업병, 지게차·청소자등의 디젤에 의한 직업병 등 일일이 열거하기도 어렵다. 

산재신청, 재해조사, 역학조사의 전 과정에 개입하고, 불승인에 대한 소송까지 끈질긴 노동조합의 대응 투쟁은 산재 승인으로 이어지고, 이는 다른 노동자의 산재승인과 새로운 직업병 인정기준의 개정으로 이어지고 있다.

노동·시민사회단체의 투쟁 또한 마찬가지다. 반올림에서 진행한 전자·반도체산업 노동자의 직업병 인정 투쟁은 직업성 암 인정기준의 개정은 물론이고, 노동자의 입증 책임 완화, 추정의 원칙(작업 또는 노출기간, 노출량 등이 충족되면 반증이 없는 한 인정하고, 충족 못할 경우에도 의학적 인과관계 있으면 인정)도입 등의 큰 계기가 되었다. 질판위 문제와는 다르지만 광주의 남영전구 수은중독 대응도 중독사고 산재신청 처리에 대한 개선으로 이어졌고, 제주 이민호 군의 산재보상 대응 투쟁도 유족급여기준에 대한 개선으로 이어졌다.

지난 10년 동안 질판위 해체·제도 개선 투쟁을 현장과 중앙에서 이어가면서 답답한 마음에 속이 터지는 상황을 한 두 번 겪은 것이 아니다. 직업병 산재심사승인 과정에서 너무도 당연하고 상식적인 노동자의 권리는 정부와 공단의 안일한 운영, 보수적인 전문가 위원들의 태도에 번번이 좌절되었다. 너무도 상식적인 문제만 갖고도 수많은 집회와 제도개선 논의를 거쳐야 했던 순간마다 "정말 질병판정위원회의 대안은 없는 것일까"라는 고민의 반복이었다. 

여러 제도개선이 진행되었지만, 아직도 산재노동자들은 본인의 신청 건이 다뤄지는 회의에 어떤 위원이 참여하는지, 질판위 심의자료에 회사에서 어떤 근거로 산재가 아니라고 주장하고, 공단에서 조사한 내용의 결과는 무엇인지, 산재 불승인이 어떤 근거와 이유로 된 것인지와 같은 가장 기본적이면서도, 핵심적인 내용에 대해서는 알 권리를 박탈당하고 있다.

지난한 투쟁과 요구에도 불구하고 가장 기본적이면서 핵심적인 내용에 대해서는 '비밀'이 유지되고 있다. 노동위원회가 1회 심의당 3-4건이지만, 산재심사는 여전히 13건을 넘고, 일반적인 소송은 1건당 수차례의 재판이 열리지만, 질판위는 1번 보류를 하더라도 많아야 2회 정도의 심의에 건당 7분 내외를 넘지 않고 처리되고 있다. 

질판위 심의기간의 문제는 졸속심의가 되지 않으면서도, 처리기간도 단축되어야 하는 두 가지 과제를 모두 안고 있다. 장기간 소요되는 직업병 심의문제는 대부분 질판위보다는 역학조사 기간의 장기화 문제여서 이 또한 추가적인 과제이다. 이는 역학조사, 재해조사, 질판위의 인력 문제이기도 하지만, 근본적으로는 질판위의 형식적 심의건수를 축소하는 문제이기도 하다. 이는 다른 측면에서 '당연인정기준 혹은 추정의 원칙'으로 표현되고 있다.

그동안 사실상 당연인정기준의 도입은 경총의 주장이 많았다. 그 이유는 당연인정기준화 되어 있는 외국의 직업병 리스트가 상당히 엄격하고 좁은 기준이었기 때문이다. 오히려 민주노총은 당연인정기준의 도입은 신중해야 한다는 입장이었다. 외국과 달리 질병판정위원회가 직업병 인정기준보다 보수적인 판정이나 불승인 남발을 많이 하는 상황에서 당연인정기준은 제도 취지와 달리 불승인 남발로 귀결되기 때문이다. 또한 당연인정기준을 도입하는 외국의 경우에도 산재신청 건수 대비 승인율이 낮거나 한국과 비슷한 경우가 많았다. 

'추정의 원칙'은 그와는 별도로 입증책임의 문제와 연동되어 기간의 승인사례가 질판위 심의나 판례로 축적되어 있고, 산재가 아니라는 명백한 반증을 못하거나 없다면 산재로 인정한다는 의미에서 제도의 취지나 한국적 현실에서는 매우 중요한 원칙이다. 이후에는 상병별로 당연인정기준과 추정의 원칙을 적재적소에서 발휘, 직업병 심사에서 산재 불승인이 남발되는 것을 해결해야 한다.

산재 불승인 남발, 질판위만의 책임 아니다

이러한 문제의 해결을 위해서도 현재 질판위 위원들의 전문성·객관성을 현격히 높여야 한다. 아울러 산재 심의 자료·결과 공개에 대한 비밀주의가 타파되어야 한다.

그동안 산재 불승인 남발은 질판위 책임 문제로만 여겨진 측면이 있다. 그러나 실상은 직업병 인정기준, 현장재해조사, 역학조사를 비롯하여 근골격계 등 의료기관의 과잉진료 문제가 복합적으로 얽혀 있다.

2013년 이후 프랑스와 독일, 일본, 대만 등의 산재 심사·승인제도 관련 연구가 진행됐다. 국가별로 중요과제는 달랐지만, 기본 심사·승인절차를 확인할 수 있었다. 이제는 '한국에서 직업병의 심사와 승인은 어떤 절차로 이뤄져야 하는가'를 두고 근본적인 논의를 해야 한다. 그동안 노동단체들은 민주노동당 초기 시절의 '선 보장 후 평가, 독립적 심사·승인제도'라는 슬로건 외에 구체적인 대안을 제시하지 못했다. 산재 심사·제도의 종합적 측면보다는 부분적으로 문제를 제기하고, '이름'만 있는 개선 과제를 제출한 채 10년을 흘려보냈다.

민주노총은 질판위 해체 투쟁에서 질판위 위원 추천으로 조직 내 논의를 진행하면서 두 가지를 같이 논의했다. 하나는 위원 추천으로 전체 노동자의 산재 불승인 남발을 줄여나가야 한다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심의 참여로 근본적인 개선책을 찾아 나가자는 것이다. 그동안 참여를 통한 불승인 남발 축소 및 운영과 인정기준 등의 부분적인 개선은 진행되어 왔다. 이제 한걸음 더 나아가 산재 심사·승인제도의 근본적인 개선대안 모색의 시작을 제안 드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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