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론보도] '주 52시간 도입'... 집배원들이 불친절한 이유 (오마이뉴스)

'주 52시간 도입'... 집배원들이 불친절한 이유

[근로기준법 개정 이후 현장의 변화 추적기 ②] 우편업

18.11.07 09:58l최종 업데이트 18.11.07 10:13l




집배 노동자들의 연이은 죽음이 알려지면서 집배 노동자들과 여러 시민사회의 요구로 집배원 노동조건 개선 기획추진단이 만들어졌다. 10월 22일, 이들은 1년여의 활동 결과를 발표하는 자리에서 10년간 166명의 집배 노동자가 교통사고, 심혈관계질환, 자살 등으로 사망했다고 밝혔다. 이어 심장질환, 뇌혈관질환, 사고에 의한 부상 등의 위험이 크다고 보고했다.

http://omn.kr/1chtv

[노동시간 읽어주는 사람] 일, 방치나 탈주 혹은 주체되기 영화 <잠깐만 회사 좀 관두고 올게> / 2018.10

일, 방치나 탈주 혹은 주체되기 

- 영화 <잠깐만 회사 좀 관두고 올게>

김재광 노동시간센터 회원


한낮 주인공 다카시는 약간 실성한 듯 기뻐하며 건널목을 건너고 있다. 그에 비하면 주변의 사람들은 별다른 표정이 없다. 정장을 차려입은 그는 마치 운동복을 입은 듯 사뿐사뿐 발걸음이 가볍고, 자유롭다. 그는 방금 사표를 쓰고 회사에서 탈출했다. 반인권적 괴롭힘과 출근과 퇴근 그리고 평일, 휴일이 구분이 없었던 회사를 때려 치운 것이다.


다카시를 바라보는 관객은 다카시와 같은 자유로움과 쾌감을 느낀다. 소설이 원작인 영화 <잠깐만 회사 좀 관두고 올게>는 제목 자체로 탈주의 욕망을 '쿨(cool)'하게 대변한다.

이미 관용어가 된 '워라밸(Work and Life Balance)', 일과 삶의 균형은, 당장 가능하지 않아도, 우리 사회가 달성해야 할 목표가 된 듯하다. 일에 종속된 피폐한 삶이 워낙 비일비재한지라, 지극히 당연히 장시간 노동에서 벗어나고, 휴가나 휴일을 제대로 누려야 된다는 사회적 요구와 방향에 대해 반대할 이유가 전혀 없다.

이런 연장선에서 보자면 밤낮없이 일하고, 자살까지 감행한 <잠깐만회사 좀 관두고 올게>의 다카시의 고뇌에 찬 결단도 충분히 공감하고, 응원하게 된다. 그런데 찜찜하다. 고뇌에 찬 결단이 분명 결단이 맞는데 말이다.

'워라밸'은 일과 삶이 서로 마주 본다. 일은 삶의 일부도 아니고 분명한 대칭이다. '워라밸'의 목표는 일에 포식된 삶을 일로부터 분리하여 삶의 독자적인 것을 구축하고, 균형을 맞추어야 한다는 것 이다. 이러한 설정에 이르게 된 배경을 물론 모르는 바는 아니나, 노파심인지 몰라도 이러한 설정은 일이 삶에서 분리되어 노동자에게 주체적 영역이 되고, 일을 제외한 그 외의 삶만이 노동자의 주체적 영역으로 분리되는 기이한 이데올로기가 성립될 위험이 있다.

이러한 분리 사고는 일은 사용자에 처분에 맡겨진 비주체적 영역으로, 삶의 방치영역으로 고립될 수 있다. 어떠한 자에게 일은 대부분을 차지할 수도 있고, 어떤 자에게는 작은 부분일 수 있다. 분명한 것은 크건 작건 간에 일은 삶의 일부이고, 모두 주체적 영역이 되어야 하며, 일관된 자기 결정이 동반되어야 한다는 점이다.

노동자의 일과 삶을 분리하려는 것은 현실을 인정한 한편의 개량적 모색이기도 하고, 아예 현실을 은폐하고 현실을 공고히 하기 위한 전략적 포석일 수도 있다. 다시 말해 전자는 자본주의 사회에서 어차피 노동은 소외되는 것이므로, 노동력에 대한가격에 대한 흥정이나, 그 외의 부수적 처우에 대해 논할 수 있지만, 노동소외 자체를 극복할 수 없으므로, 일(노동)을 삶의 영역에서 분리하여 가능한 노동에서 벗어나는 것을 도모하고자 하는 것이다.

후자는 아예 노동의 소외를 언급할 근거도 없이 판매된 노동력에 대한 독점적 처분권을 자본(사용자)이 행사하고, 나머지 시간만을 주체적으로 처분 가능한 삶으로 규정하여 판매된 노동에 대한 노동자 스스로의 개입을 원천적 차단하고자 하는 것이다. 전자가 되었건 후자가 되었건 결과적으로 일은 주체적 삶에서 분리되어 방치되기는 마찬가지이다.

다카시는 맨 처음 자기 일과 삶을 일치시키려 했다. 그러나 하루 24시간 가까이 일을 했음에도 일은 자기 삶의 일부 조차 될 수가 없었다. 일은 자신의 것이 아니라, 부장으로 대표되는 자본의 것이었다. 다카시의 의도와 무관하게 일은 삶 속에서 방치되게 되었는데, 이에 대해 다카시는 괴로워는 했지만 이를 극복하려는 엄두도, 시도도 하지 않는다.

종국에는 사표를 쓰고, 일을 삶 속에서 드디어 주체적으로 단절시켰다. 다카시를 응원 했던 것은 사표를 쓴 것이 아니라, 주체적 삶속에서 배치되는 일을 다시 용기 있게 찾았기 때문이다. 그러나 다카시의 선택을 모두가 할 수 없고, 바람직하지도 않다.

방치가 당연시되고, 탈주가 마냥 칭송된다면 도대체 정작 삶은 무엇이란 말인가? 그저 일은 짧은 시간만 하는 것이 답이고, 휴일과 휴가를 가능한 많이 향유하면 되는 것인가? 일과 삶은 분리된 것이고, 분리되어야만 하는 것일까? 일과 직장은 그저 호구지책에 지나지 않는 것일까? 호구지책 이상의 일은 특정하게 한정되는 것이 맞는 것인가?

직장에서의 노동을 포함한 삶은 사용자의 것이고, 직장을 벗어나서야 온전한 내 삶이 성립되는 것이 맞는 것인가? 그 삶은 실제 온전히 자신의 삶일까? 노동시간이 짧건 길건, 여유롭건 고되건 간에 그 공간과 시간에서 내가 내 노동의 주인이 되고자 하는 것은 불가능한 것인가? 모두 다카시와 같이 먼 이국땅 아이들과 함께 보내는 일과 삶을 가질 수 없기에 묻고 또 묻게 된다.

[언론보도] 노동시간센터 김영선 연구위원 “근면 이데올로기 뿌리 뽑고 시간권리 찾아야" (투데이신문)

노동시간센터 김영선 연구위원 “근면 이데올로기 뿌리 뽑고 시간권리 찾아야”
김도양 기자 승인 2018.07.28 14:36

‘워라밸(Work & Life Balance)’에 대한 관심이 들불처럼 번지고 있다. 많은 이들이 일과 생활 사이의 균형을 고민하는 동시에 의미 있는 여가시간을 누릴 방법을 찾아 동분서주한다. 이러한 가운데 주 52시간제가 도입되며 우리나라의 노동 환경에 혁신적인 변화가 일어날 것이라는 기대도 점점 더 높아지고 있다. 출처 : 투데이신문(http://www.ntoday.co.kr)

http://www.ntoday.co.kr/news/articleView.html?idxno=62640

[현장의 목소리] 간호사 침묵을 깨다 / 2018.06

간호사 침묵을 깨다

[현장의 목소리] 고 박선욱 간호사 공대위 박고은님 인터뷰

재현 (한노보연 상임활동가)


지난 215일 오전 서울 송파구의 한 아파트에서 고 박선욱 간호사가 숨진 채 발견됐다. 고 박선욱 간호사는 서울아산병원 신규간호사로 약 6개월간 일했다. 이 소식을 들은 유가족과 전·현직 간호사들은 고 박선욱 간호사가 서울아산병원의 높은 노동강도와 태움 문화로 인해 스스로 목숨을 끊을 수밖에 없었다며 병원에 책임을 물었다. 

그러나 지금까지 서울아산병원은 묵묵부답이다. 언론을 통해 소식을 접한 시민들 기억에서도 점점 잊히고 있다. 그래서 이번 <일터>는 현직 간호사로서 "나도 너였다"며 제2, 3의 박선욱을 막기 위해 싸우고 있는 박고은님을 지난 523일에 만났다.


박고은과 고 박선욱, 다르지 않았던 간호사의 삶 

"저는 2010년에 간호학과 졸업하고 간호사가 되었는데요. 직장을 구하자마자 결혼하고 아이를 낳으면서 다른 동기들과 다르게 일을 연속해서 못했어요. 그래서 제 친구들은 8~9년 차 경력이 있는데 저는 어느 병원을 가나 박선욱 간호사처럼 신규였죠. 그래서인지 몰라도 이번 일에 마음이 더 쓰이고 공감 됐어요. 저는 심지어 박선욱 간호사보다 더 오랜 시간 신규 생활을 했으니까요." 

박고은님은 대학병원 간호사로 일을 시작했는데 그때부터 태움과 각종 부조리의 연속이었다고 했다. 

"대학병원 정규직으로 입사를 했어요. 그런데 정규직으로 채용이 돼도 자리가 나는데 시간이 조금 걸리거든요. 그때 병원이 prn(pro re nata: "필요하면"라는 뜻)이라고 정규직 간호사들이 자리가 날 때까지 대기하는 동안 계약직으로 일을 시키려고 했어요. 간호부 관리자들이 신규 간호사들이 다 모이는 자리에서 어차피 자리 나려면 기다려야 하는데 그 시간에 놀다가 입사하면 동료들에게 뒤처지니까 알바 한다 생각하고 와서 일 배우라고 하더라고요. 뭔가 그럴싸하게 말하면서 사실은 말도 안 되는 제안을 강요하는 거라 너무 황당했어요." 

박고은님과 다른 간호사들은 이 제안을 거부하기 쉽지 않았다. 결국 prn 신청서를 작성하고 일을 시작했다. 이때를 다시 기억하면 처음 직장에 갔는데 학교 실습 때는 전혀 생각지도 못했던 상황을 마주할 때가 가장 힘들었다고 했다. 

"일을 시작했는데 제가 예상치 않게 임신했어요. 그리고 설 연휴 동안 무리하게 일하다가 조기 진통이 와서 일주일 병가를 받았죠. 그렇게 쉬고도 회복이 안돼서 복귀 전날 부서장님을 찾아뵙고 조금 더 쉬면 안되냐고 했더니 막 뭐라 그러더라고요. 그렇지 않아도 다른 간호사들이 신규 간호사가 임신해서 병가로 쉬고, 나이트도 빠지고 일 시키기도 불편하다고 불만들이 많은데 대체 나한테 뭘 어떡하라는 거냐고 짜증을 내는 거죠." 

결국 부서장은 박고은님에게 '너에게 더 줄 수 있는 휴가는 없으니 계속 출근하든지 일을 그만두든지 결정'하라면서 사실상 퇴사를 종용했다.

"그때는 아무리 여기가 좋은 대학병원이라고 해도 제 컨디션이 더는 일을 할 수 없을 것 같았어요. 아이를 가진 엄마로서 위험 부담을 감수하면서까지 일을 하고 싶지는 않더라고요. 그렇게 사직서를 쓰고 나왔죠." 

박고은님은 직장을 그만두고 육아에 전념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경제생활도 해야 하고 간호사로서 경력이 끊어진다는 불안함과 부담감 때문에 대학병원에서 운영하는 건강검진센터 내시경실에서 다시 일자리를 구했다. 그런데 여기에서도 아이 문제로 결국 일을 그만둬야 했고 국내 로컬 병원으로 일자리를 옮겼다. 

"제가 그전에는 대학병원이거나 대학병원에서 운영하는 검진센터에서 일했거든요. 병원들이 좋아서 그랬다기보다는 대학병원 체계가 굉장히 익숙했어요. 그런데 국내 로컬 병원에서 일 해보니까 상상했던 거 이상으로 너무 충격적이었어요. 기본적으로 일회용품을 재사용하거나 재소독 하고, 간호사들이 의사가 해야 할 일을 대신하더라고요. 의사들은 환자들 감염관리나 안전문제에 관심이 없고 간호사들한테 일을 다 떠넘기고요. 이런 데서는 도저히 양심적으로 환자를 못 보겠다, 생각해서 병상 규모가 큰 로컬을 가봤는데 역시 똑같더라고요. 그렇게 3개월 다니다 그만두고 2일 다니다 그만두고 몇 번은 더 이직했어요." 


'못난 사람, 못난 간호사'로 만드는 인력부족과 태움문화 

박고은님은 여러 경력 중 학생 때부터 가고 싶었던 종합병원 중환자실에서도 일했다. 고 박선욱 간호사도 같은 중환자실에서 일했던지라 감정이입이 더 된다고했다. 

"제가 중환자실 경력이 없었는데 병원 쪽에서 관계 없다고 해서 면접을 보고 합격했어요. 그런데 첫날 출근해서 수간호사랑 면담하는데 제가 무경력자인지 몰랐더라고요. 병원이랑 중환자실이랑 소통이 잘 안된 거죠. 중환자실 선생님들은 사람이 부족해서 경력자를 구해달라고 했는데 신규가 와서 자기 일도 하고 저도 가르쳐야 할 판이니 화가 났겠죠. 그래서 매일 혼나고 몇 간호사들이 제 프리셉터 없을 때 윽박 지르고, 눈칫밥 먹고 살았어요. 근데 사실 이런 거 때문에 힘든 건 두 번째였고요, 뭐가 가장 힘든 줄 아세요? 내가 생각해도 나 자신이 여기서 쓸모없는 사람이라는 생각이 들 때요. 나는 중환자실에서 할 수 있는 게 없구나, 도움이 못 되는 사람이구나, 그래서 이런 싫은 소리 들어도 마땅하다고 스스로 이런 생각이들 때가 사실 제일 힘들었어요." 

박고은님은 극심한 스트레스로 인해 일하다 계속 쓰러졌고, 결국 병원도 그만두게 되었다. 

"이사하면서 그만둔 거긴 한데 지금 생각해보면 도망치고 싶었던 마음도 없지 않아 있었던 것 같아요. 아마 박선욱 간호사도 많은 순간 도망치고 싶었겠죠. 게다가 서울아산병원 중환자실은 국내에서 가장 위급하고 위중한 사람들이 오는 병원인데 다들 일도 제대로 안 가르쳐주고 사람을 태웠는데 어떻게 일을 잘할 수가 있겠어요." 

박고은님은 본인이야 살면서 여러 풍파를 겪고 이제야 마음이 조금 단단해졌다고 생각하지만, 막 학교 졸업하고 사회로 나온 박선욱 간호사는 얼마나 힘들었을지 마음이 아프다고 했다. 


개인의 탓이 아닌 무책임한 병원 문제에 집중해야 

"언론이나 사람들이 이야기하는 걸 들어보면 서울아산병원이 문제라기보다 박선욱 간호사를 괴롭힌 프리셉터나 같은 병동 사람들을 악마화하는 경향이 있더라고요. 저는 그건 잘못됐다고 생각해요. 저번 집회 때도 이야기했지만 그 병원이나 부서 분위기가 어떤지, 구조는 어떤지를 파악하고 시스템에 관해서 이야기 해야지 개인을 먼저 손가락질하는 건 옳지 않다고 생각하거든요. , 한편에서는 박선욱 간호사가 일을 진짜 못해서 선배들이 참다, 참다 그런 거라는 이야기가 있던데요. 저는 박선욱 간호사가 아무리 일을 못 했다고 해도 '그럼 일 못 하는 사람은 꼭 죽어야 하냐'고 되묻고 싶어요. 아니, 일을 못 하면 트레이닝을 해주라고 선배들이 있는 거 아닌가요. 

그리고 병원에서 박선욱 간호사가 학교 성적도 좋고 긍정적인 성격이니까 일 잘할 것 같다고 채용했으면 잘하든 못하든 병원이 끝까지 책임을 져야 하잖아요. 그리고 일한 지 겨우 몇 달 된 신규 간호사가 일을 못 하면 또 얼마나 못했겠어요. 쉬는 날에도 도서관에서 공부하고 자기 스스로를 탓했던 게 박선욱 간호사예요." 

이런 이야기가 도는 건 바로 이 사건 때문이다. 고 박선욱 간호사는 동료 3~4 명과 함께 해야 하는 환자 체위변경을 간호조무사와 단 둘이 하던 중 중환자의 담즙을 배액 하는 관을 빠지게 하는 실수를 저질렀다고 한다. 이런 경우 환자는 재시술 해야 해서 책임이 있는 의사와 간호사들은 이루 말할 수 없을 정도로 압박감을 느낄 수 밖에 없다. 박고은님은 박선욱 간호사는 이 일뿐만 아니라 일상적으로 일하는 내내 태움을 당하는 것도 모자라 환자에게 실수까지 했으니 낭떠러지로 몰리는 기분을 느낄 수밖에 없었을 거라고 했다. 

"그 일은 환자한테 폐를 끼치고 잘못한 건 맞아요. 하지만 그 일에 대해서 실수를 인정하고 사과하면 되는 거잖아요. 어떤 사람들은 자기가 잘못한 게 있어서 책임감을 느끼고 죽었다고 하는데, 이 실수가 본인이 죽음으로 갚아야 할 만큼 중대한 과실은 아니라고 생각해요만약에 저라도 제가 일을 잘못해서 환자가 죽었다면, 내가 죽어서라도 죄를 갚아야 하는거 아닐까 고민했을거예요. 하지만 그런 상황도 아니었고 사실 박선욱 간호사가 실수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 있었어요. 

보통은 중환자실 환자는 많은 장비를 달고 있고 의식이 없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4명 정도가 같이 환자 체위변경을 하는 게 맞아요. 아무리 적어도 3명이 같이 환자 자세 바꾸고, 처치하고, 장비 고정하고 이런걸 해요. 그런데 병원에서 박선욱 간호사한테 2명만 가서 그 일 하고 오라고 시키면서 사고가 생겼죠. 그 일이 있고 나서 박선욱 간호사는 너무 괴롭고 외로웠을 거예요. 병원은 자기한테만 잘못을 뒤집어 씌우고 도와는 사람은 없고 나 힘들다고, 일에 대해 아무것도 모르는 엄마한테 도와달라고 할 수도 없었겠죠. 

정말이지 만일 이때 단 한 사람이라도 다음부터는 안그러면 되니까 너무 힘들어하지 말라고, 그리고 2명만 환자 체위변경하게 한 병원도 잘못이 있다고 박선욱 간호사의 책임을 덜어줬다면 어땠을까요."

 

병원을 바꿔야 간호사의 삶도 바뀌어 

"우리 사회는 이런 일이 벌어지면 몇몇 개인의 문제로만 이야기하면서, 다른 문제들은 묵인하거나 방관해 왔다고 생각해요. 그런데 지금은 달라요. 전국에 있는 간호사들이 병원 시스템의 문제다, 신규 간호사 교육 과정이 잘못됐다고 목소리 내고 있잖아요. 서울아산병원같이 한국에서 제일 큰 병원에서도 이런 일이 벌어지는데 다른 소규모 병원은 얼마나 더 심각하겠어요. 그러니까 이번 일을 계기로 우리가 힘을 모아서 병원을 바꿔야 한다고 생각하는데 서울아산병원은 사과는커녕 아무런 말도 없네요. 어떻게 그럴수가 있죠. 박선욱 간호사가 결국 죽음을 선택한 게 자기 직장에서 일하다 죽은 거잖아요. 그러면 사과해야죠. 산재를 인정받도록 도와줘야죠."

 박고은님은 마지막으로 자신도 매일 태움을 당하면서도 이 문제를 방관하는 사람들에게 하고 싶은 이야기가 있다고 했다. 

"통계, 연구 보고서들 보면 학대받은 아동이 학대를 저지를 가능성이 높고 가정폭력을 당한 사람이 폭력을 저지를 가능성이 높다고 하잖아요. 저는 간호사도 비슷한 거 같아요. 간호사들은 이미 학생 때 실습하면서 선배들한테 혼나고, 또 혼나는 걸 보거든요. 그러니까 직장 구하면 혼나는 게 당연하다고 생각해요. 

그런데 제가 아이를 키우다 보니까 생각이 든 게 어떨 때 아이 행동을 바꾸기 위해서 소리 지르고 매를 들 때가 있잖아요. 그게 굉장히 잘못된 방법인데 아이한테 소리 지르고 눈 한번 부릅뜨고 매를 들면 아이가 눈치를 보거든요. 그건 에너지도 별로 안 들고 당장 아이 행동을 바꿀 수 있어서 편해요. 그런데 이런 폭력적인 방식은 결국 인간의 영혼을 훼손하는 거라고 생각해요. 그런데도 쉽지 않은 게 아이를 존중 하면서 행동을 바꾸게 하려면 하나를 만 번 설명해야 한다고 하더라고요. 

물론 성인은 만 번까지는 아니겠지만 신규 간호사를 가르친다고 했을 때 선배가 만 번 가까이 이야기할 만큼 에너지와 노력이 필요한데, 생각해보세요. 병원 인력은 늘 부족한데 선배가 신규 간호사가 들어오면 어떤 식으로 가르치게 되겠어요. 화내고 눈 부릅 뜨는 게 편하고 빠르겠죠. 저는 그래서 이런 상황을 만들지 않을 수 있는 제도적인 변화가 필요하다고 생각해요. 물론 간호사들도 사람과 사람이 하는 일이니까 조금 더 상대방을 인간적으로 대하고 존중하려는 노력도 해야겠지만요." 

현재 박고은님은 민주노총 공공운수노조 의료연대를 비롯해 간호사단체와 개별 간호사, 노동시민사회 단체들이 공동으로 구성한 '고 박선욱 간호사 공대위'에 함께하고 있다. 공대위는 앞으로도 서울아산병원의 사과, 산재인정, 재방방지 대책 마련을 요구하며 끝까지 싸울 것이다.

[언론보도] '교육공룡' 에스티유니타스 '두 얼굴'…"벤처 신화"vs"직원 착취" (뉴스1)

'교육공룡' 에스티유니타스 '두 얼굴'…"벤처 신화"vs"직원 착취"

"매일 야근했지만 보상 없어, 까라면 까는 문화 잘못"
"30대 CEO 혁신 추구" 기업 이미지에 심각한 '타격'

(서울=뉴스1) 이승환 기자 | 2018-05-14 08:00 송고

30대 최고경영자(CEO), 설립 6년 만에 매출 4000억원 돌파, '공단기(공무원단기학교) 교육 서비스, 공격적인 인수합병(M&A), 내년 상장 목표…….

'교육 공룡'이라 불리는 기업 에스티유니타스를 대변하는 화려한 수식어들이다. 그러나 최근 화려한 '교육 벤처 신화'의 이면이 드러나면서 논란이 확산되고 있다.  

http://news1.kr/articles/?3315843

[A~Z까지 다양한 노동이야기] 82년생 김지영의 또 다른 이야기 / 2018.05

82년생 김지영의 또 다른 이야기

- 컴퓨터 그래픽과 캘리그라피 디자이너 이현진 님 인터뷰

재현 선전위원장


이번 'A-Z 다양한 노동이야기'가 만난 사람은 컴퓨터 그래픽 디자이너로 활동했고 지금은 캘리그라피 작가로서 새로운 출발을 시작하는 이현진 님이다. 이현진 님은 디자인 노동자로 겪었던 어려움, 한국의 남성 중심적이고 전체주의적인 문화로 인해 겪었던 상처, 사회적으로 큰 반향을 일으킨 소설 <82년생 김지영>과 같은 나이의 여성으로서 느끼는 여러 고민을 솔직하게 들려주었다. 이 인터뷰는 지난달 18일 서울역 인근 카페에서 진행했다. 

나를 소개한다면




"제 이름은 이현진이고요 아도르 캘리그라피 작가로 활동 중이에요. 아도르라는 이름도 많이 궁금하실 텐데, 어도얼이라는 고어에요. 러브라는 뜻인데 사람들이 편하게 아도르라고 불러서 지금 이름으로 사용하고 있어요. 컴퓨터 그래픽 디자이너가 돼야겠다 생각한건 아버지가 표구사를 하셨거든요. 그 영향도 받고 재능도 물려받은 것 같아요. 무엇보다 386 컴퓨터 시대가 되고 컴퓨터로 그림을 그리는 일이 멋져 보여 컴퓨터 그래픽 디자이너가 돼야겠다 마음먹었고 대학에서 시각디자인을 전공했어요."

이현진님은 본인을 소개하면서 지금껏 주어진 상황에서 창의적으로 재미있게 살아가려고 노력하는 사람이라고 말했다. 인터뷰를 진행하는 내내 어려운 상황을 지나왔던 이야기를 들으며 어떤 의미로 이 말을 해주셨는지 알 수 있었다.

사람들에게 치였던 회사 생활

"저는 15년 동안 컴퓨터 그래픽 디자이너로 일했어요. 규모 있는 회사 디자인팀에서도 있었고 작은 에이전시 회사에도 있었고요. 회사 생활이 쉽지는 않았어요. 한국은 집단주의 사회잖아요. 그래서 저처럼 혼자 일 잘하는 사람을 싫어해요. 저는 항상 동료나 상사한테 미움을 받았어요. 저를 좋아하는 사람은 좋아하지만 반대로 생각하는 사람은 '나댄다'고 싫어하더라고요. '제발 일 좀 적당히 하자, 왜 그렇게 혼자 튀냐' 그런 얘기를 많이 들었어요. 개의치 않으려고 했지만 그래도 당연히 상처가 됐어요."

이현진님은 계속해서 사람들과 관계가 틀어지면서 본인 탓이 아닌데도 나중에는 자신을 탓하게 될 정도로 마음에 상처가 생겼다.

"저는 회사 다닐 때 마지노선이 2년이었어요. 그러다 보니까 어느 면접장에선제가 계획적으로 2년마다 그만두는 거냐고 물어보더라고요. 만약에 제 성격에 문제가 있었으면 한 달도 못 버티고 그만뒀겠죠. 이런 상황이 서른 살부터 작년까지 계속 됐어요. 저는 잘못한 게 없는데, 억울한데 결국에 나만 회사를 그만두고 도망 나오니까 나한테 문제가 있는 건가 싶었죠. 한국은 참 이상한 게 무조건 회사에서 오래 버티는 자가 칭찬을 받는 것 같아요. 그런데 저는 일도 못 하면서 무능력하게 회사에 오래 버티고 있는 게 사회의 악이라고 생각하거든요. 그런데 그런 사람이 정말 많아요. 흔히 말하는 꼰대들이죠."

회사를 다니는 많은 노동자들이 이현진님에 이야기에 공감하고 다들 그런 경험들이 한 두 번쯤은 있을 것 같다.

"맞아요, 정말 많아요. 그리고 정말 본인 문제가 아닌데 당사자는 그렇게 생각하기가 쉽지 않아요. 본인이 '내 탓이 아니다'를 깨닫지 못하고 인정하지 못하면 이 고민이 계속되는거죠. 저는 회사에서는 사람들과 관계가 좋지 못했지만, 밖에만 나오면 제 실력을 다들 인정해주는 거예요. 그래서 오랜 시간 끝에 결심해서 밖으로 나오기로 했죠."

마지막으로 다녔던 회사는 남성 상사에게 여성이라는 이유로 차별까지 받았었다고 한다.

"남자 상사들이랑 후배 여자 직원이 저를 왕따 시켰어요. 저를 어떻게든 회사에서 내보내려고 그랬다는데 처음에는 왕따 당하는 줄도 몰랐는데 나중에 막내 직원이 저한테 이야기를 해주더라고요. 그런데 왕따를 시키는 이유는 없데요. 그런데 이번에도 또 이런 일을 겪게 되니까 '아 회사에서 일을 잘 하면 그저 더 많은 일이 올뿐이고 열심히 하면 동료들에게 왕따를 당하겠구나' 이런 생각이 들더라고요. 게다가 하루는 남자과장이 회의실로 불러내더니 자기한테 좀 싹싹하게 굴 수 없냐고 그러는 거예요. 그래서 저 되게 싹싹한데 모르시냐고 물었더니 아니 여자답게 웃으면서 상냥하게 대해 달라는 거죠. 너무 화가 나서 당신 딸이 나중에 회사 다니는데 남자 상사한테 이런 이야기 들으면 어떨 것 같냐고 따지니까 또 그런 뜻은 아니래요. 결국, 그 일로 회사 생활을 정리하기로 했어요."

컴퓨터 그래픽 디자이너의 삶

"디자인 쪽은 3D도 아니고 4D라고 봐야 해요. 어느 회사나 디자이너 인건비를생각 안해줘요. 최소한의 인권도 보장해주지 않는 회사도 태반이고요. 저녁 있는 삶도 어렵죠. 회사는 마감 끝나서 조금 쉴만하면 일을 들고 오고, 퇴근이 6시인데 5시 반에 담당자한테 연락 와서 디지안 수정하고 퇴근하라고 연락 오고요. 일은 많이 하는데 돈은 또 안돼요. 제일 어려운 부분이죠. 십 년을 일해도 대기업 초봉도 안돼요. 그리고 갑인 회사에서 요청하는 디자인을 만드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을이다 보니 갑에서 요청하는거에 일일이 맞춰주는 스트레스가 있어요."

어려운 일도 많았지만 그래도 15년이라는 시간 동안 디자이너로서의 삶을 포기하지 않았던 이유가 무엇인지 궁금했다.

"저는 일을 너무 좋아했어요. 스트레스를 많이 받는데 결과적으로 이거 아니면 다른건 없었던 거예요. 저의 언어, 회사가 원하는 언어를 시각적으로 만드는 작업이 너무 좋았어요. 사실 사람들이 오해하는 부분이 있어요. 디자인이라는 게 새로운 걸 만드는 거라고 생각하는데 그렇지 않아요. 디자인은 사람들이 모르고 지나치는 것들 혹은 관찰하지 않는 것을 조합
해서 하나의 작품으로 탄생시키는 작업 같은 거예요. 그래서 디자이너는 관찰력이 좋아야 한다고 생각해요. 또 하나 디자인은 재배치가 중요한 것 같아요. 닌텐도 게임기가 나왔을 때 대중들이 그랬죠. 어떻게 이 게임기를 만들게 되었냐고요. 그랬더니 닌텐도 사장이 그런 말을 했죠. '사람들이 손쉽게 들고 다닐 수 있는 무엇과 게임을 합쳤다' 그말이 굉장히 인상적이었고, 의미하는게 있다고 생각해요."


캘리그라피 작가로 새로운 출발

이현진님은 회사 생활을 하면서 병행했던 캘리그라피 작가 활동을 본격적으로 시작하기로 했다. 그리고 이번에 회사에서 겪었던 이야기를 소재로 작품을 만들고 전시하는 행사를 준비하고 있다.

"제가 소설 <82년생 김지영>과 같은 나이거든요. 그래서 여성으로서 회사에서 일하면서 겪는 고민과 고충을 2015년부터 카카오 그룹에서 운영하는 브런치라는 곳에 글을 썼어요. 그랬더니 이번에 만년필을 만드는 회사에서 제 이야기를 소재로 작품을 전시해보자고 이야기가 돼서 진행하고 있어요."

어떤 이야기가 사람들에게 공감을 불러일으켰는지 궁금했다.

"제일 인기 있던 글이 '싹싹하게 굴지마' 인데 아까 저를 조용한데로 불러내서 자기한데 싹싹하게 굴면 안 되냐고 했던 남자 과장하고 나눴던 이야기인데요. 많은 사람이 공감해줬는데 사실 씁쓸하기도 했어요. 많은 사람이 이런 이야기를 들으면서 사는구나 그런 마음이 들었죠."

몸과 마음이 지칠 수밖에 없는 디자이너의 일상

아무래도 오랜 시간 작업을 하다 보니 아픈 곳은 없는지, 최근 과로와 일터 괴롭힘으로 사망한 웹디자이너의 이야기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는지 물어보았다.

"저는 목이랑 허리 디스크 있고요. 터널증후군은 기본이에요. 근육 주사도 맞고 MRI, 위내시경 검사도 정기적으로 받아요. 디자인 할 때는 한 번 자리에 앉으면 5∼6시간 이렇게 작업을 하거든요. 이렇다보니 거의 모든 병이 다있다고 보면 돼요. 웹디자이너분이 자살했다는 이야기는 지금 처음 들었는데요. 저도 스타트업 회사에서 일해 봤는데 그런데는 대부분 사장이 스티븐 잡스 병 걸린 애들이 많아요. 젊은 꼰대라고 해야 하나 어린 나이에 한 번 성공을 해봐서 그런가 자기가 천재인 줄 알고 다른 사람 말도 잘 안듣죠. 진짜 디자이너가 일하는 환경이 빨리 바뀌어야 할것 같아요."

디자이너의 삶이 바뀌려면 어떤 변화가 필요할까

"디자이너의 일에 대해서 가치를 인정해주지 않는 게 가장 문제예요. 이쪽 업계에서 하는 말이 남산에서 돌 던지면 맞는 사람이 디자이너라고 할 정도로 많은 디자이너가 일하고 있거든요. 그런데 현장은 너무 열악하죠. 그래서 일단은 디자이너에 대한 인식, 디자인 일에 대한 가치를 생각하는 사회 인식이 바뀌어야 할 것 같아요."

마지막으로 캘리그라피 작가로써 언제까지 활동할 생각인지 물었다.

"재미있어서 하는 일이니깐 죽을 때까지 해야죠. 좀 거창하게 말하면 제가 붓을 들 수 있을 때까지 하고 싶어요. 그리고 <82년생 김지영> 소설이나, 미투운동이 사회적 이유가 되고 있는데 이런 문제들이 계속해서 이슈가 되기를 바래요. 남자든 여자든 이 문제에 심각성을 알았으면 해요."


* 아도르 캘리그라피
@adore_calligraphy, 
brunch.co.kr/@adore

[현장의 목소리] 어느 웹디자이너의 과로자살 / 2018.05

어느 웹디자이너의 과로자살

- 에스티유니타스 웹디자이너 유족 장향미 님 인터뷰

나래 상임활동가


“제 이름은 장향미입니다. 제 동생은 장민순이고요. 게임회사에 재직 중인 평범한 직장인입니다.”



그는 ‘평범한’이란 단어에 힘을 줬다. 동생 죽음 이후 모든 것이 변했다. 무엇이 동생을 그렇게 만들었는지, 무엇이 문제였고 해결되어야 다시는 이런 일이 발생하지 않을지 수 없이 생각했다. 그는 자신이 다니고 있는 회사 앞에서 유인물을 나눠주던 곳의 문을 두드렸다. 바로 서울남부지역 노동자 권리찾기 사업단 ‘노동자의 미래’였다. 함께 자료를 모아 분석하고 결국 회사의 강압적 ‘야근’이 문제였다는 걸 확인했다. 그렇게 장향미씨도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꾸려진 ‘공인단기·스콜레디자이너 과로자살 대책위원회(아래 대책위)’에 참여하고 있다. 쉽지 않은 선택을 하게 된 진심을 물었다.

“제 동생의 일이기 때문에 제가 하는 건 당연하다고 생각했어요. 동생이 왜 죽었는지, 뭐가 문제인지 꼭 알아야 했거든요. 저는 그만둘 수가 없었어요. 그만두면 제가 살 수 없을 것 같아서, 하겠다고 했습니다. 무엇보다도 동생이 하고자 했던 일을 제가 하고 싶어요. 저 혼자 힘으론 불가능할거라 생각했고, 그래서 대책위 여러분들이 함께 해주셔서 여기까지 오게 된 것 같아요.”

디자이너로서 열정이 많았던 동생의 죽음

“제 동생은 디자인을 굉장히 좋아했어요. 천부적으로 디자인 실력이 뛰어난 건 아니었지만 열정이 많았어요. 자기 꿈도 방에다 써놓았죠. 디자인에 도움이 되는 건 뭐든 배우려고 했어요. 서양화부터 디자인 강연같은 것도 찾아다녔죠. 디자인에 영감 주는 건 뭐든 사진으로 찍어놓고 기억했어요. 저는 디자인을 전혀 모르는데, 그런 저를 붙잡고 디자인 얘기를 한 게 동생이었죠.”

그런 그가 왜 스스로 목숨을 끊었을까. 장민순씨는 2015년 5월부터 2017년 12월까지 총 2년 8개월을 근무하는 동안, 거의 1년을 야근 제한 기준을 넘기도록 일했다. 그의 포괄임금계약, 실제 근무 시간은 근로복지공단에서 만성 과중한 업무로 인한 뇌·심혈관 질환의 산재인정 여부 판단 기준인 발병 전 12주 평균 업무시간인 60시간에 거의 근접한다. 특히 2017년 11월 한 달 간 집중적 야근이 이뤄졌다. 20시 이후 퇴근이 14회에 이르고 밤0시 이후 퇴근도 4일이나 됐다.

“야근문제가 굉장히 심하다는 건 처음부터 알고 있었어요. 그래서 그만두라고 얘기를 많이 했죠. 하지만 그만두지 않았어요. 잘해보고 싶다고 그랬거든요. 우선 잠 잘 시간이 없는 게 제일 큰 문제였어요. 동생이 평소에도 불면증이 있었거든요. 그런데 잠 잘 시간도없어서 늘 피곤해 했죠. 주말이면 자기 방에서 잠만 잤어요. 밥 먹으라고 깨우면 일어나지도 못하고 계속 잠만 자는 경우도 있었고요. 평일에는 잠을 거의 못잔다고 했어요. 회사 일 때문에 스트레스 받아서요. 당연히 건강도 좋지 않았죠. 초반엔 몸무게가 굉장히 많이 빠졌어요.”

회사에 매여 있는 시간이 길다보니 당연히 친구, 가족의 얼굴조차 볼 시간도 없었다. 아침에 화장 할 시간조차 사치였다. 동생은 집에 와서 화장을 지울 기력조차 없이 잠드는 때가 많았다. 결국 장민순 씨는 지난해 12월 2일 언니 앞에서 무너지는 모습을 보였다. ‘잠은 자면서 하냐? 머리가 맑을 때 일해야 한다’는 상사의 말에 폭발한 장민순 씨는 대성통곡을 하며 업무의 과중함과 상사의 문제를 털어놓았다. 견딜 수 없이 화가 났다. 그리고 결심했다. 이 문제를 더 이상 덮어놓을 수만은 없다고. 바로 다음날 12월 2일 자매는 고용노동부 강남지청에 근로감독 진정을 접수했다. 하지만 고용노동부 강남지청은 ‘올해(2017년) 근로감독을 나가는 일정이 모두 끝났으니, 내년(2018년) 2월 이후에 신고 들어온 다른 업체들과 묶어서 근로감독을 나가겠다, 갑자기 단독으로 이업체만 근로감독을 나가면 이상하게 생각할 수도 있다’는 따위의 답변을 내놓고 자매의 SOS 신호를 무시했다. 결국 자매가 나서서 진정 준비에 들어갔고, 필요한 자료를 조금씩 모으기 시작했다.

해가 넘어가고 18년 1월 2일 동생은 언니에게 출퇴근 교통카드 기록을 보냈다. 그게 동생의 마지막이었다.

야근, 업무과중, 일터 괴롭힘… 동생을 괴롭혔던 것들

“한 명, 두 명씩 계속 만나면서 동생이 왜 죽었는지를 알고 싶어 계속 만났어요. 만난 분들이 공통적으로 한 얘기가 있어요. 권위적이고 강압적인 업무지시, 체계적인 관리나 운영시스템이 전혀 없고, 업무성취감을 느끼기 어려운 환경, 투명하지 않은 의사결정 구조, 심각한 야근 문제요. 이게 다 에스티유니타스라는 회사에 다녔던 분들이 한 얘기예요.

문제가 많은 곳이니 경력이 있는 분들은 오래 남지않고 퇴사해요. 그러다보니 신입분들이 잘 몰라도 일을 맡아요. 여기 디자인부서는 디자인 말고도 요구 받는 게 많았어요. 예를 들어 디자이너가 기획도 볼줄 알아야 했죠. 그런 것까지 디자이너가 다 한 거예요. 제 동생도 그랬고요. 그런 식의 야근이 많았다고해요. 문제는 그 야근이 생산적인 게 아니고, 대표나 상사에게 보고 디자인 시안을 만드는데 그게 계속 까이고, 까이고 그러다 보니 야근이 잦아지고요. 그런 식으로 일을 하게 되면 자기 이름 걸고 디자인이 나가는데 만족스럽지 않게 나가니 자기 성취감도 없죠. 그냥 시키면 시키는 대로 기계처럼 뽑아내니까요.”

더불어 중요하고 충격적인 사실을 알게 됐다. 장시간 노동과 업무 과중도 문제였지만, 직장상사에 의한 괴롭힘과 주말 무료 노동도 고인을 힘들게 한 요인이었다.

“회사 홈페이지만 보면 권위적인 것과 정반대를 강조해요. 저도 이번 일이 있기 전에 여기가 그렇게 문제가 많은 곳일줄 몰랐죠. 모두 회사가 홍보하는 이미지는 가짜라고 하시더라고요. 회사의 사내문화도 자유롭게 참여한다고 하지만 사실 다 강압적이고, 인사고과에 반영한다고 했어요. 주말 응원 이벤트부터 시작해서 사내 합창대회, 체육대회 이런 행사도 모두요. 도대체 이게 자발적인 건가요?“

야근 없는 일터는 가능하다

흔히 IT(정보기술) 업계와 같은 열정, 창의, 젊음을 강조하는 산업에선 야근은 어쩔 수 없다는 소위 불문율이 존재한다. 이 말의 함정과 문제점, 그리고 정말 IT 업계에서 야근은 없앨 수 없는 것일까.

“넷마블도 불가피하다고 했어요. 하지만 지금은 거의 없어졌죠. 그건 회사의 의지예요. 야근을 없앨 수 없다는 건 말이 안돼요. 사실 이 문제는 공짜로 사람을 부릴 수 있기 때문이에요. 포괄임금제로 묶어서 야간수당을 넣어버리면 얼마든지 일을 시킬 수 있죠.”

대책위와 장향미 씨의 요구는 ▲ 직장 내 야근근절, 직장내 업무 스트레스 야기 환경 개선 ▲ 에스티유니타스의 진정성 있는 사과 및 재발방지대책 마련 ▲ 책임 있는 직장 상사에 대한 징계이다. 그 중 가장 우선순위는 에스티유니타스의 야근 근절이다. 유족으로서 쉽지 않은 결정이었을 텐데, 왜 그런 결정을 하게 됐는지 물었다.

“동생이 하고 싶었던 일이라서요. 동생이 죽기 열흘 전 가족들에게 얘기했거든요. 야근을 없애고 싶다고요. 그래서 제가 이걸 계속 해야 한다고 생각해요. 동료 분들 만나면서도 생각이 확고해졌어요. 우울증상을 겪은 게 제 동생만의 일이 아닌 걸 알게 됐고, 재직자 중에서도 많이 겪고 있을 거예요. 그래서 빨리 야근을 없애는 게 시급하다고 생각해요."

과로로 인한 동생의 우울증 악화 

회사가 얘기한 대로 고인은 평소 우울증을 앓아왔다. 에스티유니타스에 입사하기 전 2015년 5월엔 완치에 가까울 정도로 호전된 상태였다. 하지만 회사에서 근무하는 2년 7개월 동안 비인간적 근무환경, 과중한 업무 스트레스로 우울증이 악화 되었고 과중한 업무로 인해 주치의에게 제때 상담, 치료를 받지 못했다. 겨우 가까운 병원에서 약처방전으로 대신한 것이 무려 10차례나 됐다. 결국 장민순 씨는 2017년 9월 우울증 악화로 휴직했다 복직했지만, 회사는 11월 한 달간 살인적인 야근을 시켰다. 4명이 해야 할 일을 고인에게 모두 맡겼다. 인력 충원도 없이 말이다. 그러면서 회사는 고인의 죽음의 원인은 우울증이라고 책임을 회피하고 있다.

“제 동생의 죽음은 우울증이 원인이 아니고, 과로로 인한 결과라고 생각해요. 명백히 사회적, 회사의 타살입니다. 유난히 회사에 충성하는 분위기가 강한 우리나라와 일본에 과로자살이 있다고 하더라고요. 그렇기 때문에 이 문제를 개인적 문제가 아니라, 사회적 요인으로 제대로 바라보고 해결해야 해요.”

“야근 없는 회사가 제 동생의 유지예요”

그는 대책위 활동을 통해 사회 곳곳의 아픔을주목하게 됐다. 

“사실 저는 사회 이슈에 적극적으로 의견을 개진하거나 참여하는 사람이 아니었어요. 오히려 방관자였죠. 내 가족만 아니면 되고, 직접 나서기는 귀찮고, 내가 이걸 하다가 혹시 불이익이라도 받으면 어쩌나, 내가 안 해도 누군가 해주겠지... 이런 생각을 하면서 지내왔어요. 뉴스에 나오는 일들이 저한테 일어날 거라고 생각해본 적이 없거든요. 그런데 막상 제가 당사자가 되고 보니깐 나쁜 일은 누구한테나 일어날 수 있더라고요. 다 각자를 위해 조금씩 이 사회를 바꾸기 위해 노력한다면 내가 약자가 됐을 때 조금은 나은 세상이 되어 있겠죠? 그리고 이번 일을 계기로 온라인 교육업계의 근본적 문제를 드러내고 바꾸고 싶어요.”

[언론보도] 장시간·야간 노동, 우울증 발병 확률 높인다 (한겨레)

장시간·야간 노동, 우울증 발병 확률 높인다

등록 :2018-05-09 14:35수정 :2018-05-09 15:52


“그렇게 힘들면 회사를 그만뒀어야지”, “개인적 문제인 우울증과 회사가 무슨 상관이냐”

‘공단기’(공무원단기학교), ‘자단기’(자격증단기학교) 등으로 알려진 온라인 강의업체 ‘에스티유니타스’에서 일했던 웹디자이너 고 장민순(36)씨가 과로에 시달리다 지난 1월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는 소식이 알려지자 일부 누리꾼이 보인 반응이다. 하지만 이 회사 직원들의 우울증 진료율은 다른 직장인들에 견줘 2배 가까이 높았다. 장씨의 사망에 이 회사의 노동 조건이 작용했을 가능성을 시사하는 대목이다.

http://www.hani.co.kr/arti/society/labor/843864.html

[언론보도] 인건비 떼어먹는 '보도방'까지... 대한민국 IT산업의 민낯 (오마이뉴스)

인건비 떼어먹는 '보도방'까지... 대한민국 IT산업의 민낯

[에스티유니타스 웹디자이너는 왜 힘들어했는가 ⑥] IT 노동자의 그림자

18.05.06 14:59l최종 업데이트 18.05.06 14:59l



대한민국의 국민이라면 "대한민국은 IT 강국" 이란 말을 숱하게 들어왔을 것이며, 이런 자긍심으로 살아가시는 분도 많다. 대한민국의 경쟁력, 우리 산업의 중추는 바로 IT산업이고 나는 그 복무자라고 말이다. 많은 이들은 이 산업 분야에서 일하기 위해 교육을 받고 준비를 하며, 일자리를 찾고, 또 열심히 일하고 있다. 이렇게만 보면 참 좋은 일이고 경쟁력 있는 산업의 '느낌'이다. 정말로 실상도 이러한지 한 꺼풀 벗기고 들어가 보자. 

http://omn.kr/r6gb

[언론보도] 야근, 과로, 감정노동... 내 우울증은 '회사 탓'이다 (오마이뉴스)

야근, 과로, 감정노동... 내 우울증은 '회사 탓'이다

[에스티유니타스 웹디자이너는 왜 힘들어 했는가 ③] 과로와 정신건강

18.04.25 11:15l최종 업데이트 18.04.25 11:15l



많은 사람이 정신질환을 개인의 취약성 때문에 발생하는 질병으로 생각한다. 이러한 인식은 질병 발생에 대한 생의학적 이해가 주류를 이루고 있는 정신의학계에 의해 더욱 공고해지고 있다. 과연 우울증이나 불안장애는 개인의 취약성에 의해서만 발생하는 것일까? 우리의 상식과 경험, 수많은 역학적 연구의 결과들은 이에 대해 '그렇지 않다'고 대답하고 있다.

http://omn.kr/r2x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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