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업중지권 기획] 작업중지권, 다른 나라에서는? /2016.1

작업중지권, 다른 나라에서는?


중대재해 예방과 작업중지권 실현을 위한 당장멈춰


지난 2년간 중대재해와 작업중지권 실현을 위한 당장멈춰 팀은 작업중지권을 실천하고 있는 현장 활동가 인터뷰를 통해 현실에서 작업중지권을 실천하는데 있어 어려움과 시급하게 개선해야 할 과제를 정리하고자 했다. 그 뒤 현장 활동가들과 워크숍을 통해 현장에서 필요한 구체적인 지침과 매뉴얼의 필요성과 상에 대한 토론을 진행했다. 또한, 산업안전보건법과 관련 판례를 검토하면서 법적 개선 방향에 대해서도 고민했다. 2016년은 이제 구체적인 현장에서, 조직/미조직 노동자들 사이에서, 혹은 법적인 측면에서 본격적인 변화를 만들어야 할 때이다. 이중 해외 사례를 살펴보고 법적 측면에서 배울 만한 점이 있는지 찾아보고자 한다이번 기사는 한국노동연구원에서 발행한 국제노동브리프 20157월호의 "기획특집: 작업중지권"과 정진우 저, 산업안전보건법론(2014, 한국학술정보), 당장멈춰팀이 20153월 금속노동자 신문에 게재했던 해외의 작업중지권 사례 비교를 바탕으로 작성했다.


프랑스, 작업 중지했던 사고가 다시 발생하면?

프랑스는 1982년부터 법적으로 노동자에게 자신의 생명 또는 건강에 심각하고 즉각적인 위험을 초래한다고 믿을 만한 이유가 있는 경우 작업 상황으로부터 철수할 수 있는 권리를 보장하고 있다. 법에서 말하는 심각한 위험은 해당 상황이 관련 노동자의 사망 또는 영구적이거나 장기적인 장해를 초래할 가능성이 있는 사고나 질병을 야기할 것으로 예상할 수 있는 경우를 뜻한다. 이런 위험은 기계, 생산 공정, 위험하고 비위생적인 업무 환경 뿐 아니라, 산업보건당국이 정한 안전보건 규칙에 위배되는 작업장 등과 같이 노동자의 건강에 유해할 수 있는 다양한 요인으로부터 기인할 수 있다.

이 법이 특별히 중요하게 생각되는 점이 몇 가지 있는데 첫 번째, 사용자는 노동자가 위험작업을 중지하기 전에 공식 절차를 거치도록 의무화하여 작업중지권 사용을 불편하게 만들거나, 작업중지권을 전반적으로 제한하는 내부 규정을 정할 수 없다고 따로 못 박고 있다.

두 번째, 작업이 중지되면 사용자는 상황 개선을 위해 필요한 조치를 취해야하는데, 만일 작업중지가 보고된 후에도 사용자가 아무런 조치를 취하지 않았는데 나중에 이 위험과 관련하여 사고가 다시 발생한다면 사용자에게 더 큰 책임을 묻는다. 가령 작업중지 이후 조치를 취하지 않은 상황에서 재차 발생한 모든 사고는 변명의 여지가 없는 사고 (inexcusable accident)’로 간주되어 피해 노동자에게 더 높은 금액의 보상금을 지급해야 한다. 세 번째, 위험작업 수행을 거부한 노동자가 작업중지권을 행사했다는 이유로 노동자를 처벌할 수 없고, 노동자가 작업을 중지한 이유가 되는 위험이 시정되기 전에는 작업을 재개할 의무가 없다.


사업주의 안전배려의무를 규정한 독일

독일 산업안전법도 한국과 유사하게 사업장에서 산업안전보건조치에 관한 예방 및 사후적 조치를 계획적, 조직적으로 수행하여야 할 의무를 원칙적으로 사용자에게 부여하고 있다. 그래서 사업장에 존재하는 위험요소에 대해서 노동자가 작업중지권을 행사하기에 앞서 사용자에게 안전조치를 취할 의무를 이행하도록 요구하는 것이 우선시돼야 한다. 현재 한국의 산업안전보건법에서 규정하는 작업중지 요청과 유사하다. 특수한 위험상황, 직접적이고 중대한 위험에 직면한 경우에만 노동자가 사용자에게 해당 위험을 통지하고 지시받기에 앞서 노동자 스스로 안전을 위한 조치를 우선적으로 시행할 수 있도록 규정하는데, 여기에 노동자가 작업을 중지하고 작업장을 즉시 이탈하여 안전을 확보하는 행위도 포함한다.

그런데 독일 법체계에서는 산업안전법 외에 민법상으로, 근로계약의 경우 임금의 지급종속적 노동 제공이 계약 당사자의 주된 상호 주고받을 의무지만, 이 상호간의 의무 이행을 위해 필요한 사용자 측의 부수적인 의무로서 안전배려의무를 규정하고 있다. 이 안전배려의무는 공법인 산업안전법과 별도로 사법(私法) 상의 노동보호에 대한 근거규정으로서 기능하고 있다.

민법상의 안전배려의무를 통해 사용자는 근로 제공이 이루어지는 장소 및 이를 위해 사용되는 장비나 기구를 설치하고 유지하는 과정에서 발생할 수 있는 위험을 최소화할 의무를 지게 된다. 즉 이런 의무를 제대로 이행하지 않으면, 노동자가 종속적 노동 제공을 하기 어렵다는 것이다. 작업장 환경이 충분히 안전하고 위험이 최소화되지 않으면, 돈을 받았더라도 일하지 않을 수 있다는 것이다. 결국 이 안전배려의무의 내용은 무엇인가? 산업안전법 등의 안전관련 규정을 통해 구체화된다. 그래서 사업장에서 안전에 관한 노동보호법인 산업안전법 등이 위반됐을 경우 노동자가 노동 급부를 거절할 수 있는 권리가 생기는 것이다.


모든 노동자에게 작업중지권을 부여하고 있는 정유회사"안전하지 않은 것을 발견하면일을 멈추시오"

출처_richmondstandard.com


캐나다, 작업중지권의 절차를 법에

캐나다에서도 법률상 상황이 개선되거나 활동이 변화되기 전에 노출되었을 경우 개인의 생명이나 건강에 즉각적이거나 심각한 위협을 야기할 것으로 타당하게 예상되는 모든 피하기 힘든 위험, 상황 또는 행위가 있는 경우, 위험 작업을 거부할 권리를 보장하고 있다캐나다의 법 규정이 특별한 점은 작업중지권 적용을 정당화할 수 있는 조건과 작업중지권 행사 이후 사업주의 의무, 사업주와 노동자가 위험에 대해 다르게 판단할 때 분쟁에 접근하는 원칙을 법에 명시하고 있다는 점이다.

작업중지권을 사용하고자 하는 노동자는 고용주에게 위험 상황을 즉시 보고해야 한다. 그런데, 노동자의 작업중지 결정은 노동자와 사용자 모두 동의 할 때에만 번복할 수 있다. , 노동자는 위험하다고 생각해 작업을 중지했는데, 사용자는 위험하지 않다고 윽박지르거나, 안전사고가 아니라 설비 트러블이었을 뿐이라며 작업 재개를 강요할 수 없다는 것이다. 한국에서 비일비재하게 발생하는 일방적인 사업주 판단에 따른 작업 재개와 이후 징계나 고발 등으로부터 노동자를 보호하기 위한 조치다. 노동자가 작업중지권을 행사했다는 통보를 받으면, 사용자는 즉시 노동자의 입회하에 상황을 조사해야 한다. 조사 결과 사용자도 위험이 존재한다고 동의하면 고용주는 노동자를 그 위험으로부터 보호할 즉각적인 조치를 취하고, 위원회 또는 대표에게 상황과 이를 해결하기 위한 조치를 통보해야 한다. 그런데, 만일 사용자가 조사를 한 결과가 노동자의 판단과 다르거나, 사용주의 조치 결정에 노동자가 동의할 수 없다면 노동자는 계속해서 작업을 중지 할 수 있는 권리가 있다.

이렇게 노동자가 작업중지를 지속하겠다고 통보하면, 위원회 또는 대표는 즉시 해당 노동자의 입회하에 조사를 시작해야 한다. 위원회는 위원들 중 노동자 대표 1인과 고용주 대표 1인을 지명하여 조사를 해야 한다. 이 조사 결과에도 노동자가 동의할 수 없다면, 노동자는 계속해서 작업을 중지하고 이번에는 노동부에서 개입하여 조사한다. 노동부의 조사가 진행되는 동안에도 노동자는 계속해서 작업을 중지할 수 있다. 대신, 이 때 사업주가 다른 노동자에게 중지된 작업을 수행하도록 할 수 있다. , 그 노동자는 해당 업무를 수행할 자격이 있는 사람으로, 계속적인 작업중지와 그 이유를 통보받아야 하고, 위험에 노출되어서는 안 된다.


대피권과 거부권이 따로 있는 중국

중국의 경우 법체계는 사회주의를 지향한다고 하지만, 실제 현장에서 노동인권이 지켜지지 않는 국가라는 보고가 많기에 실제 현실과는 거리가 있을 수 있다. 그러나 최소한 한국의 산업안전보건법에 해당하는 중국 안전생산법은 산업재해 발생 위험이 있는 경우의 대피권과 작업거부권을 따로 구분하고 있다.

중국 안전생산법 52조는 노동자가 신체안전에 직접 위험을 미치는 긴급 상황을 발견한 경우에는 작업을 정지하거나 가능한 응급조치를 취한 후 작업 장소를 이탈할 권리가 있다고 규정하고 있다. 이는 한국의 산업안전보건법상 작업중지 조항과 유사하다. 그런데 이와 별도로 안전생산법 51조는 노동자가 규칙에 어긋나는 지휘와 위험작업을 강제적으로 명령하는 경우에는 거부할 권리가 있다고 따로 규정해두고 있다. 산업재해 발생 위험이 있는 경우, 작업장소를 이탈하고 대피할 수 있는 권리를 보장하는 일반적인 작업중지권 보장이 실은 대피권에 불과하다는 것을 명확히 보여주는 사례라고 하겠다. 그럼에도 최소한 중국의 법체계는 여기서 한발 더 나아가, ‘규칙에 어긋나는 지휘와 위험작업으로까지 작업 거부 권리를 확장하고, 규칙에 맞는 지휘와 안전한 작업을 하도록 하는 견제와 감시의 역할을 노동자에게 부여하고 있는 셈이다.


우리에게 시사점은?

현장에서 노동자들이 자신의 안전과 생명을 기준으로 작업중지권을 행사하는 것이 가장 중요한 과제이겠지만, 제도적으로 법적 개선을 통해 현장에서 작업중지권 활용이 쉬워지도록 조건을 만드는 것 또한 중요하다. 현 정부가 산업안전보건 대책의 핵심 목표로 잡고 있는 중대재해를 줄이기 위해서라도 노동자가 할 수 있는 최후의 보루로써 작업중지권을 적극 보장해야한다.

장기적으로는 중국의 사례에서처럼 대피권과 구분되는 거부권을 보장하는데 까지 나아가야 한다. 나날이 증가하는 서비스, 사무직 노동자들은 산업재해 발생의 급박한 위험으로 분류될 수 있는 위험을 맞닥뜨리기보다는 주로 낮은 강도의 지속적인 위험에 노출되는 경우가 훨씬 많다. 예를 들어, 10시간 근무 후 곧바로 회사 단합대회로 야간 산행을 하다 사망한 노동자 사례나 감정 노동에 시달리는 판매 노동자의 사례를 생각해볼 수 있다. 대피권만으로는 이런 위험에 처한 노동자들을 보호하기 어렵다. 따라서 중국 법안처럼 대피권과 중지권을 분리하여보장하고, 중지권을 사용할 수 있는 조건을 따로 명시하는 방안을 모색해볼 수 있다.

그러나 당장은 산재 발생 위험을 인지한 노동자들의 대피권이라도 제대로 보장하는 것이 필요하다. 산재 발생 위험이 있었느냐를 두고 법적 분쟁이 잦다는 점, 이로 인해 작업중지권 사용이 위축되고 있다는 점을 볼 때, 캐나다처럼 사용자와 노동자 간 이견이 발생했을 때, 노동자 편에서 접근할 수 있는 구체적인 수단을 법적으로 명시하는 것이 필요하다. 구체적으로 사용자와 노동자 간 이견이 발생했을 때를 포함하여 작업중지권 실행 이후 조사 및 대응 과정을 산업안전보건법에 정비하는 것이다. 세월호 참사 이후 중대재해 기업처벌법처럼 중대재해의 원인을 제공한 기업에게 책임을 더 제대로 물어야 한다는 여론이 높다. 기업이 사고 발생에 대해 책임을 지게하고, 이것이 예방으로 이어질 수 있도록 강제해야 한다는 맥락에서 프랑스의 사례는 시사하는 바가 크다. 작업중지가 있었던 사업장에서 향후 같은 사고가 발생할 경우, 가중하여 처벌하거나 보상할 수 있도록 하는 방안도 고민할 수 있을 것이다.




[특집] 3. 작업중지권의 법리적 쟁점 / 2014.9

작업중지권의 법리적 쟁점

 - 금속노조 법률원 김유정, 김태욱 변호사 인터뷰



최민 선전위원장



실제로 법정에서 작업중지권은 작업중지권 행사에 따른 손해배상 및 징계와 같은 민사·행정사건, 혹은 업무 방해와 같은 형사 사건의 형태로 다루어진다. 전국금속노동조합 법률원 김유정, 김태욱 변호사를 만나 실제 법정 및 법조계에서 작업중지권이 주로 어떤 측면에서 쟁점이 되는지 들어보았다. 이들은 작업중지권을 행사했던 노동자가 받은 징계처분이 부당하다는 취지의 ‘부당징계 구제재심판정취소사건’을 담당한 바 있다. 




당시 재판에서 노동자 측의 핵심적인 주장은 무엇이었나?


김유정 : 문제가 된 재해는 완성차 사업장에서 벌어진 것이었다. 라인에 문제가 생겨 보전작업자가 혼자서 보전작업을 하던 중, 기계가 작동되던 상태에서 신체적 접촉이 필요한 보전작업을 수행하다가 손가락을 협착했다. 


라인을 정지하고 보전작업을 했으면 발생하지 않았을 사고다. 그러나 이 공장에서는 일반적으로 수리를 할 때 라인을 세우지 않고 보전작업을 해 보전작업자가 상시적으로 산재 위험에 노출돼 있었다. 그리고 문제가 된 고장이 어떤 원인에 의한 것인지 밝혀지지 않은 상태였기 때문에 구체적인 위험이 남아 있는 상태였고, 이런 위험이 완전히 해소되지 않은 상태에서 다시 작업하는 것은 위험하므로  산안법상 작업중지권의 정당한 행사에 해당한다고 생각했다.


설령 그렇지 않다 하더라도 사용자에게는 안전배려의무가 있어서 노동자들이 일할 때 생명이나 신체를 위해 당하지 않도록 조치를 행할 의무가 있고, 그에 대한 반대급부로서 이런 안전배려의무가 지켜지지 않을 경우 노무제공을 정당하게 거부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이 부분, 안전배려의무와 노무제공 거부에 관한 명확한 판결은 지금까지는 없었고, 이 사건에서도 이런 논의가 본격화되거나, 구체적인 사례로서 판결이 되지는 못 했다. 1심 판결은 안전배려의무에 대한 반대급부로서 노무제공 거부권을 입법화시킨 것이 산안법의 작업중지권이라고 본 것이다. 그렇게 제한시켜 버리고 더 넓은 논의를 피해버렸다. 


또 설사 그렇지 않다 하더라도 반복되는 보전작업자 사고가 있었는데 회사가 안전 조치나 원인 규명을 제대로 하지 않았기 때문에 이를 개선하기 위한 목적을 가진 정당한 행위였다. 그래서 징계사유가 되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사용자 측의 핵심 주장은 어떤 점이었나?


김유정 : 무엇보다 사고원인이 개인 과실이었다는 점을 들었다. 회사 내 안전규정을 보전작업자가 안 지켜서 사고가 났다는 것이다. 그런데 사실 라인을 멈추고 보전작업을 하라는 안전규정은 사문화 돼있었다. 생산 손실을 최소화하기 위해 보전작업자들은 라인을 멈추지 않은 상태에서 수리를 하는 것이 다반사였다. 이렇게 사고원인을 개인과실로 돌리면, 남아있는 구조적인 위험성이나 문제는 쟁점이 안 되고 개인 과실에 의한 사고의 경우 노동자에게는 작업을 중지할 권리가 없다는 것이다. 사고가 기계랑 상관이 없으니까, 다시 발생하지는 않을 것이기 때문에 작업 중지 요건이 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또 재판부는 개선 목적이 있다 하더라도 ‘27분 작업 중단으로 3억 3천만 원이나 손해가 발생하였는데 이것을 어떻게 정당한 행위라고 볼 수 있나? 아주 심각한 사고도 아니었던 것 같은데?’ 이런 관점을 가지고 있었던 것 같다. 




처음 부당노동행위 구제 신청을 하겠다고 했을 때 패소에 무게를 두었던 것은 무엇 때문이었나?


김유정 : 산안법에 작업중지권이 매우 엄격하게 규정돼 있는데, 이 사건은 중대재해가 아니었다. 또 라인 중지한 시점이 사건 발생 직후가 아니라 1시간 10분 이후였다. 외부에 있던 대의원에게 뒤늦게 연락이 취해져서 그 대의원이 공장으로 돌아온 후에 작업을 중단했기 때문이다. 이런 점에서 직접적으로 산안법이 정한 것에 딱 맞아떨어지는 것은 아니었다.


또 재해 성격 면에서 재해가 구조적인 원인과 사업주의 과실에 의한 것이라는 점이 명확하게 드러나면 재판 진행이 좀 더 쉬울 수도 있었는데 재해를 당한 해당 보전작업자가 스스로 그 재해의 원인을 자신의 과실에 의한 것이라고 인정 아닌 인정을 하고 있었던 점도 불리한 점으로 생각되었다. 



김태욱 : 이 사건에서 아쉬운 점이 이 부분이었다. 보전작업자 당사자가 사고 발생이 자기 개인 과실 때문이라고 증언한 것이다. 차가 쌩쌩 달리는 도로에 횡단보도가 없으면 당연히 위험하다. 보행자가 부주의해서 사고가 나더라도, 근본적인 문제는 횡단보도 없는 거 아닌가. 기계를 멈추고 보전작업을 하는 것이 일반화되어 있어서, 이 작업자도 그렇게 일했다면 혹시 그가 부주의했더라도 사고가 안 났을 것이다. 


또 판결문 중 보전작업이 말 그대로 고장이 발생하면 수리를 하는 건데, 그 때마다 라인을 멈출 수는 없다는 논리가 나온다. 사실 라인을 멈추고 수리하라는 것은 이 회사 작업 지침에도 나오는 내용인데, 오히려 재판부가 회사의 경제적 손실을 더 고려한 것이다. 이 얘기는 횡단보도 만드는 데 돈이 많이 드니 어쩔 수 없다, 잘 피해서 건너가라는 얘기랑 같다. 




실제로 법정 싸움을 진행하면서 느끼는 현행 법률의 가장 핵심적인 한계는 무엇인가?


김유정 : 산안법 규정이 불명확하다. 산업재해가 발생할 위험이 있을 때와 중대재해가 발생했을 때가 병렬적으로 써 있는데 이 재판부에서는 두 가지 조건을 모두 만족할 때, 즉 중대재해가 발생할 위험이 있을 때로 해석한 셈이다. 이렇게 되면 정말 죽음의 위협을 느낄 때에만 작업을 중단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이러면 작업중지권 행사가 가능한 상황이 매우 협소해질 수밖에 없다. 또 작업중지권이라고 말은 하지만, 권리로 명확히 인정이 되어 있지 않다. 이걸 권리로 명시하고, 그 권리행사 요건에 대해서 명확히 하는 것이 필요하다.  



김태욱 : 정리해고 요건에 대한 법원 판례와 비교해보면, 정리해고 요건 중 ‘긴박한 경영상의 필요’ 에 대해서는 법원이 아주 넓고 융통성 있게 해석 해주는 반면 산안법에서 말하는 ‘급박한 위험’ 은 정말 엄격하게 해석한다. 이것이 지금 법원의 위치를 보여주는 것이라고 생각된다. 




작업 중지권과 관련해서 법정에서 이겼던 경우는 어떤 점이 달랐나?


김태욱 : 금속법률원에서 한 것은 아니지만 노동자가 이겼던 사례(형사 사건)가 2번 정도 있는데, 정확한 사고 원인이 밝혀지지 않은 상태에서 계속 작업하면 또 다시 사고가 발생할 위험이 있었고, 이렇게 사고가 발생한 경우 작업을 중단하는 관행이 있었던 사례이다. 그런데, 작업 중지 관행 존재 여부를 근거로 삼는 논리는 관행이 없던 곳에서의 작업 중지를 어렵게 하는 문제도 있다. 우리는 위 사건에서 보전작업자의 사고 시 작업 중지권 행사 관행을 만들어야 한다고 생각했는데 재판부는 이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작업중지권을 확대하기 위해 앞으로의 과제는 무엇이라고 생각하나?


김유정 : 얼마 전 현대제철 하청업체에서 감전사하신 노동자 사례를 상담했는데, 작업시간도 아닌 시간에, 제대로 된 절연 장비도 없이 가서 일하다가 감전사한 경우였다. 이처럼 제대로 된 예방 조치가 없고 이로 인하여 사망 같은 중대재해가 발생할 가능성이 많은 상황에서는 재해로부터 생명과 신체적 안전을 지키기 위한 작업중지권이라는 관념이 들어설 여지가 거의 없다. 사용자의 예방 조치가 없는 상황에서 노동자가 일을 하는 것을 실제로 거부할 수 있어야 하는데, 전혀 그럴 수 없는 현실이 안타깝다. 


산안법상 구체적인 안전보건상의 사업주 의무가 상당히 구체적으로 제시되어 있는데, 이런 것들이 지켜지지 않으면 노동자들이 작업거부를 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 산업 재해 예방과, 사용자들이 산안법을 지키도록 하는 것에도 실효성이 있을 것이다. 벌금을 더 매기는 것보다도 더 강력한 압박이 될 수 있다. 징벌적 손해배상 도입 논의도 있지만 형벌 강화와 징벌적 손해배상 이런 것은 사후적이고 재판절차를 통해 이루어지는 것이다. 일정한 절차를 통해 증명을 요하는 재판절차에서 사업주들이 빠져나갈 수 있는 여지도 많다. 그렇기 때문에 노동자들에게 안전보건상의 조치가 이루어지지 않은 경우 적극적으로 작업을 거부하도록 하는 것이 예방적인 의미를 더 가질 수 있을 것 같다.



김태욱 : 계약을 맺는다고 하면, 계약 당사자 간 주된 의무와 부수적인 의무가 있다. 법원의 다수 입장은 근로계약에서 근로제공과 임금만을 주된 의무라고 생각하고 안전배려의무는 부수적이라고 생각한다. 임금을 안 주면 계약 이행이 안 되는 거라고 보지만, 안전배려의무가 안 지켜진다고 근로제공을 안 할 수는 없는 것이 원칙이라는 것이다. 이는 근로계약을 다른 계약 관계를 똑같이 보기 때문이다. 하지만 노동자가 노무를 제공할 때 노동력과 노동자 인격을 분리할 수 없기 때문에 다른 민사상 계약과 같다고만 볼 수 없다. 이런 측면에서 노동자 인격권 보장을 위해 ‘작업 거부나 거절’로 확대해야 한다는 논의가 학계 일부에서 제기되고 있지만 실제 법적 다툼 과정에서 인격권이 본격적으로 논의되었던 경우는 거의 없었다. 지금은 재판에서 전향적인 변화를 기대하기는 어렵다고 생각된다. 현장의 운동과 투쟁, 또 이와 함께 하는 입법과정이 우선이다.

[특집] 2. 노동자의 안녕을 위한 권리 구성 / 2014.9

노동자의 안녕을 위한 권리 구성


김재광 선전위원



앞서 작업중지권의 현실을 살펴보았다. 최근에 산업안전보건법에서 규정하는 “작업중지권”과 같은 맥락이면서도 그 이상의 다른 무엇이 제기되고 있다. 갈수록 복잡해지는 작업장의 환경과 본질적으로 쉽게 침해받기 쉬운 노동자의 존엄을 보호하기 위해서는 보다 폭넓은 작업 거절권의 실현, 인격권의 구체적 확보 등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이에 대하여 문답 형식을 통해 소개하고자 한다.



문 : ‘작업 거절권’이라는 용어가 생소한데 이것은 무슨 뜻인가? 

답 : 근로 계약서를 썼든 아니든 간에 사용자(기업주)와 노동자는 상호 주요한 권리 의무관계를 맺게 된다. 다시 말해 노동자는 노동력제공의무, 사용자는 임금제공의무이다. 그런데 이때 사용자는 임금제공의무뿐 아니라, 안전배려의무를 가진다. (상식적 차원에서 보더라도 안전하지 않은 곳에서 일할 것을 강요할 수는 없기 때문이다) 이때 사용자가 안전배려의무를 다하지 않아 노동자가 피해를 입는다면 이후에 손해배상을 청구할 수 있겠으나, 배상청구는 사후적이며, 보상을 받기 위해서는 현실적으로 상당한 시간이 필요해서 충분한 권리행사라 볼 수 없다. 따라서 사전에 권리를 보장할 필요성이 있고, 이것이 작업거절권의 의의라 하겠다. 요약하자면 작업 거절권은 사용자가 충분한 의무(안전배려의무)를 행사하지 않았기에 이에 대한 급부(노동력제공)를 제공하지 않는 것이다.     



문 : 그렇다면 이는 현재 산안법의 작업중지권과 다를 바 없는 것이 아닌가?

답 : 일면 그렇다. 현재 산안법에 규정된 작업중지와 맥락을 같이 하는 것은 맞다. 그러나 산안법 상의 작업거부 및 중지는 작업거절권의 일부라 할 수 있다. 작업 거절권은 현재 산안법이 ‘급박한 위험’을 어떻게 규정하고 있건 간에, 이것 이상(넓은 의미)의 사용자의 안전배려의무를 요구하는 것이며 동시에 이것 이상(넓은 의미)의 거부의 권리를 의미한다. 이래야만 비로써 작업거절권의 실익이 발생한다. 이러한 논리가 노동자를 신체적, 정신적, 사회적으로 보다 폭넓게 보호할 수 있다. 



문 : 알 듯 말 듯 하다. 보다 이해하기 쉬운 예가 있나?

답 : 최근 서울시의 다산 콜센터의 상담원들에게 통화종료권이 부여되었다. 성희롱 또는 고의 악성 민원인에 대해서는 통화를 종료할 수 있다는 것이 핵심 내용이다. 이러한 통화 종료권은 일종의 작업 거절권 행사라 할 수 있다. 산안법에 규정된 내용이 무엇이건 간에 정신적, 신체적 위해를 가하는 작업 환경을 거부할 수 있다. 예컨대 운송, 배달업무의 경우 악천후 상황 시 스스로 업무의 진행 여부를 판단할 수도 있다. 한편으로는 ‘급박한 위험’ 상황이 아니더라도 사업주가 법상의 안전조치나 보건조치를 제대로 하지 않았을 경우 노동자는 작업을 거절할 수 있다. 이러한 권리 구성은 건설 및 제조업 위주의 현행 산안법 구조나 적용을 여타의 산업으로 확산할 수 있는 법리적 근거가 된다.




문 : 좋은 이야기이나 현재 작업중지권도 행사하기 어려운데 이것이 실현될 수 있겠는가?

답 : 법 구조적으로 보면 현재 작업중지권은 오히려 행사하기 어렵게 만들어 놓았다고 보는 것이 맞다. 상식적 수준에서 안전 및 보건 조치가 안 되거나, 심각한 신체적, 정신적 위협이 있을 때 이를 거부하는 것은 오히려 자연스러운 것이다. 이렇게 자연스러운 행위 또는 권리를 특별한 권한처럼 만들고 있는 것이 문제이다. 물론 이런 말이 현행 작업중지권의 무용론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다. 상식을 보장할 확장된 논의와 복안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문 : 외국에서는 이를 입법화한 사례가 있나?

답: 법 규정과 해석의 차이를 보이고는 있으나, 맥락상 같은 수준의 입법이나 적용을 하고 있다. 독일의 경우 민법을 통해 안전배려의무를 명문으로 규정하고 있으며, 이에 기반을 두어 노동자의 작업거절권은 폭넓게 지지받고 있다고 한다. 미국의 경우도 노동법적 차원에서 인정하고 있고, 집단적 거절도 인정하고 있다. (물론 구체적인 기준이 때에 따라 까다롭기는 하다) 일본의 경우 법원 판결을 통해 일부 인정하고 있다.



문 : 작업 거절권이 무엇인지 감을 잡을 수 있겠다. 그렇다면 노동자의 인격권 보장과 안전 보건과 무슨 관계가 있는가?

답 : 일반 계약과 달리 임노동관계(근로계약 관계)에서 노동과 인격은 불가분하다. 이러한 특징으로 인하여 노동자의 인격권 침해의 가능성은 매우 높다. 인격권의 침해는 노동자의 안전과 보건을 위협할 개연성이 상당하다. 다시 말해 노동자의 인격권 모두가 안전과 보건의 문제는 아니나, 상당 부분을 차지하고 있다. 특히 인격권은 노동자의 정신건강과 긴밀히 연관된다. 직장 내 성희롱, 집단적 괴롭힘, 폭언, 프라이버시 침해, 개인정보의 무분별한 수집, 양심에 반하는 노동의 강요, 건강 및 가정생활의 양립에 반하는 장시간노동의 강요 등은 근로자의 인격권을 위협하는 다양한 사례이기 때문이다.



문 : 좀 더 구체적 설명을 듣고 싶다. 

답 : 인격권의 구체범주를 보면 신체적 측면, 정신적 측면, 퍼블리시티권으로 구분할 수 있다. 노동법적 차원에서 근로자의 인격권은 사용자의 지시권과 충돌하여 분쟁을 일으킨다. 예컨대 정해진 복장 의무, 양심에 반하는 일 강요 등은 사용자의 지시권과 충돌한다. 사용자의 노무지휘권, 기업자산의 소유권 및 시설관리권을 인정하고 근로계약에서 사용자의 구체적인 지시권을 인정한다고 하여 노동자의 인격권을 사전에 포기하였다고 볼 수는 없다. 예컨대 방송사 파업의 경우 현행 노조법에 따른 정당성 문제와 별도로 인격권과 지시권의 충돌문제로 다루는 것이 가능하다. 



문 : 설명을 들으니 흥미롭긴 한다. 결국 작업거절권, 인격권을 운운하는 것은 산안법의 작업중지권을 보완하자는 것인가?

답 : 당장은 그렇게도 보일 수 있다. 그러나 현재 산안법을 보완한다는 것은 과정상의 결과이고, 결국 노동자의 신체적, 정신적, 사회적, 영적 안녕을 위해서 이러한 권리가 필요하다. 또한, 이러한 권리는 노동자를 인간으로 존중한다면 상식적으로 구현될 권리가 아닌가를 주장하는 것이다. 우리가 작업중지권 등을 주목하고 주장하는 것은 안전하고 쾌적한 작업환경을 구현하는 것뿐 아니라, 일하는 주체로서의 노동자의 자기 결정권에 주목하기 때문이다. 



문 : 여러 권리의 법리적 구성이 무엇이건 간에 정작 현장에서 행사할 수 있어야 하지 않은가? 지금은 어떠한 좋은 명분이 있어도 쉽지 않은 시기 아닌가?

답 : 그렇게도 볼 수 있다. 그러나 어려운 시기이기에 더욱더 정당성의 논리와 명분을 만들고 우리 노동자들의 인정과 사회적 동의를 확대해야 한다. 역사적으로 노동자가 쟁취한 모든 것은 정당성에 대한 논리와 권리의식이 전제되어 있음을 잊어서는 안 된다. 자본은 자신들의 이해논리를 노동자에게 내면화하려 하고, 때로는 노동자가 먼저 이를 인정하는 경향이 있다. 때문에 더욱 더 노동자의 논리와 정당성의 구성은 멈추어서는 안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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