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업환경의학의사가 만난 노동자건강이야기] 우리 사업장이 변할까요? /2016.4

우리 사업장이 변할까요?


강충원 후원회원, 직업환경의학 전문의


보건관리위탁기관 의사의 사업장 방문 횟수는 100인 이상 사업장인 경우 3개월에 1회, 50인 이상인 사업장인 경우 6개월에 1회이다. 일본은 규모에 상관없이 2개월에 1회라고 들었는데, 한국은 특이하게 필수적이고 중요한 안전보건도 작은 기업일수록 더 비중이 작다. 오히려 작은 사업장일수록 작업환경이나 노동조건이 열악한데도 규제라는 측면에서 경제성을 따져서 그렇다.


그렇게 가끔 의사가 사업장을 방문하면 매달 방문하는 사업장의 터줏대감인 보건관리 간호사로부터 많은 정보를 얻게 되고, 그동안 간호사가 귀에 따갑도록 말해도 변화가 없던 노동자나 관리자, 사장님에게 갖은 방법을 동원하여 설득작업에 들어간다. "누가 법 다 지키고 사업하나?” 라는 말을 들어도, “선생님은 그냥 서류만 써주시고 가세요.” 라고 해도, 내가 해야 할 일과 내가 해야 할 말을 할 수 밖에 없다.


가끔 가는 사업장이니 현장순회와 산업안전보건위원회 참석과 근로자건강진단 사후관리를 비롯해서 보건교육 등 할 일은 많은데, 짧은 시간에 많은 것을 하기는 어렵다. 이 사업장 노동자가 안전하고 건강하게 일할 수 있는 일터인가?를 어떻게 평가할 수 있을까? 사실 일할 맛 난다는 것은 무엇일까? 고민을 하게 된다. 


예전에 SNS에서 “직원들은 사장의 현란한 철학보다 사무실, 식당, 화장실, 처우를 통해 회사를 평가한다.”라는 글을 본 이후로, 회사를 보는 눈이 달라졌다. 사실 회사의 분위기, 즉 조직문화는 쉽게 바뀌지 않는다. 다만 그런 분위기에서 사측의 대리자로 선임된 보건관리위탁기관의 의료인들이 사업장에서 조금 더 건강하게 일할 수 있도록 어떤 보탬이 될 수 있을까? 의 관점이 바뀐 것이다.


첫 번째는 노동자와의 건강상담 환경개선이다. 그 회사가 좋은 회사인지는 노동자분들과의 만남의 자리를 보면 알 수 있다. 감정노동으로 인한 고통, 직장 내에서의 어려운 관계, B형간염이나 수술, 개인적으로 민감한 건강문제를 이야기해야 하는 경우도 많은데, 노동자들이 안심하고 누군가와 대화할 수 있는 면담실을 제공하는가가 매우 중요하다. 실제로 문제를 해결하기는 어렵더라도 모든 길이 막힌 상황에서 의료진을 만나서 숨 쉴 공간을 얻는 경우도 많다. 가장 최악이 관리자나 사장님이 옆에서 다 듣고 거드는 경우다. 본인은 남을 생각한다고 하고, 가끔 정말 치료가 필요한데 치료안하고 있는 분들에게는 적극적인 동기부여가 될 수도 있지만, 노동자의 입장에서는 불가한 일이다. 정말 면담이 필요한 분들이 의료진을 멀리하고 면담 시 짜증을 내거나, 불편해 하는 것은 개인의 성격이라기보다는 회사가 건강의 문제에 대해서 함께 배려하고 공감하는 문화인지 아니면 통제하고 핀잔을 주는 문화인지에 따라서 다른 것이다. 산업안전보건법에서도 건강진단의 결과를 활용하여 건강보호를 위한 목적 외에 다른 목적으로 사용하면 과태료가 300만원이다.


두 번째는 휴게실 환경개선이다. 산업안전보건기준 제9장에는 “사업주는 근로자들이 신체적 피로와 정신적 스트레스를 해소할 수 있도록 휴식시간에 이용할 수 있는 휴게시설을 갖추어야 한다.”라는 조항부터, 세척시설, 수면시설, 장시간 서서 일하는 경우 의자의 비치까지 규정하고 있다. 보건관리계약을 맺고 처음 방문하는 사업장에서 내가 제일 많이보는 것은 휴게실이다. 냉난방은 되는지, 천장에서 가루는 안 떨어지는지, 혹시 석면은 아닌지, 물이나 화장실, 목욕탕 사용, 개인 락커는 있는지, 등받이가 있는 의자인지, 누워서 쉴 수 있는지, 파라핀욕조, 안마기, 발마사지기 등의 시설이 있는지, 휴게 시간은 적절한지 등을 본다. 내가 이것을 더 중요하게 생각하는 이유는 “사람다움”에 대한 것이기 때문이다. 어쩔 수 없이 기계처럼 일하더라도 “사람처럼” 쉬면 좋겠다는 작은 타협이다.


세 번째는 산업안전보건위원회에서 개선의견을 내는 것이다. 산업안전보건법에서는 100인 이상, 일부 위험업종은 50인 이상, 일부는 300인 이상 사업장에서 분기별로 산업안전보건위원회라는 회의체를 운영하게 되어있다. 여기에는 노사동수로 위원들이 구성되고 책임자가 참석하게 된다. 실제로 운영되는 경우는 10%내외, 나머지는 매년 반복되는 서류작업이다. 그런데 요즈음은 분위기가 바뀌어서 실제로 회의를 개최하고 의견을 반영하는 경우도 많아지고 있다. 사업장에서 노동자와 면담을 통해서 들었던 불편한 사항에 대한 것이나, 건강검진이나 작업환경측정, 근골격계 유해요인조사의 개선의견 등 관리자 차원에서 차단되거나 관리자가 깜빡한 내용들을 책임자에게 바로 건의할 수 있는 중요한 통로이다. 실제로 회사 내부회의에 참여하면 산재보험을 거치지 않고 회사차원에서 처리되는 수많은 사고와 질병들을 만날 수 있다. 진짜 문제를 발견해야지 제대로 된 해결을 할 수 있기에 산업안전보건위원회 참석은 점점 중요해질 것 같다.


무엇보다 현장순회를 할 때나, 노동자와 면담을 할 때나 사업장에 오는 의사나 간호사가 과연 내편인지 확인이 되어야 진짜 이야기가 가능할 텐데, 그런 관계를 만들어가는 것이 첫 번째 과제이다. 병원에서는 아플수록 의사와 환자의 관계가 더 기밀하게 지속되지만, 노동자와 보건관리의사의 만남은 더 많이 아플수록 만나기 힘들어진다. 건강과 고용이 걸려있기 때문이다. 산업안전보건위원회에서도 회사측 위원이고, 사측의 관리비를 받는 입장에서 보건관리의사가 100% 노동자편이다 말하긴 힘들다. 다만 자신을 도와주는 의료인과의 신뢰관계가 치료에 좋은 영향을 주듯, 현장에서 만나는 의사들과 노동자들이 잘 만나가는 것이 사업장을 변하게 하는 시작이 아닐까 생각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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