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업환경의학의사가 만난 노동자건강이야기] 우리 사업장이 변할까요? /2016.4

우리 사업장이 변할까요?


강충원 후원회원, 직업환경의학 전문의


보건관리위탁기관 의사의 사업장 방문 횟수는 100인 이상 사업장인 경우 3개월에 1회, 50인 이상인 사업장인 경우 6개월에 1회이다. 일본은 규모에 상관없이 2개월에 1회라고 들었는데, 한국은 특이하게 필수적이고 중요한 안전보건도 작은 기업일수록 더 비중이 작다. 오히려 작은 사업장일수록 작업환경이나 노동조건이 열악한데도 규제라는 측면에서 경제성을 따져서 그렇다.


그렇게 가끔 의사가 사업장을 방문하면 매달 방문하는 사업장의 터줏대감인 보건관리 간호사로부터 많은 정보를 얻게 되고, 그동안 간호사가 귀에 따갑도록 말해도 변화가 없던 노동자나 관리자, 사장님에게 갖은 방법을 동원하여 설득작업에 들어간다. "누가 법 다 지키고 사업하나?” 라는 말을 들어도, “선생님은 그냥 서류만 써주시고 가세요.” 라고 해도, 내가 해야 할 일과 내가 해야 할 말을 할 수 밖에 없다.


가끔 가는 사업장이니 현장순회와 산업안전보건위원회 참석과 근로자건강진단 사후관리를 비롯해서 보건교육 등 할 일은 많은데, 짧은 시간에 많은 것을 하기는 어렵다. 이 사업장 노동자가 안전하고 건강하게 일할 수 있는 일터인가?를 어떻게 평가할 수 있을까? 사실 일할 맛 난다는 것은 무엇일까? 고민을 하게 된다. 


예전에 SNS에서 “직원들은 사장의 현란한 철학보다 사무실, 식당, 화장실, 처우를 통해 회사를 평가한다.”라는 글을 본 이후로, 회사를 보는 눈이 달라졌다. 사실 회사의 분위기, 즉 조직문화는 쉽게 바뀌지 않는다. 다만 그런 분위기에서 사측의 대리자로 선임된 보건관리위탁기관의 의료인들이 사업장에서 조금 더 건강하게 일할 수 있도록 어떤 보탬이 될 수 있을까? 의 관점이 바뀐 것이다.


첫 번째는 노동자와의 건강상담 환경개선이다. 그 회사가 좋은 회사인지는 노동자분들과의 만남의 자리를 보면 알 수 있다. 감정노동으로 인한 고통, 직장 내에서의 어려운 관계, B형간염이나 수술, 개인적으로 민감한 건강문제를 이야기해야 하는 경우도 많은데, 노동자들이 안심하고 누군가와 대화할 수 있는 면담실을 제공하는가가 매우 중요하다. 실제로 문제를 해결하기는 어렵더라도 모든 길이 막힌 상황에서 의료진을 만나서 숨 쉴 공간을 얻는 경우도 많다. 가장 최악이 관리자나 사장님이 옆에서 다 듣고 거드는 경우다. 본인은 남을 생각한다고 하고, 가끔 정말 치료가 필요한데 치료안하고 있는 분들에게는 적극적인 동기부여가 될 수도 있지만, 노동자의 입장에서는 불가한 일이다. 정말 면담이 필요한 분들이 의료진을 멀리하고 면담 시 짜증을 내거나, 불편해 하는 것은 개인의 성격이라기보다는 회사가 건강의 문제에 대해서 함께 배려하고 공감하는 문화인지 아니면 통제하고 핀잔을 주는 문화인지에 따라서 다른 것이다. 산업안전보건법에서도 건강진단의 결과를 활용하여 건강보호를 위한 목적 외에 다른 목적으로 사용하면 과태료가 300만원이다.


두 번째는 휴게실 환경개선이다. 산업안전보건기준 제9장에는 “사업주는 근로자들이 신체적 피로와 정신적 스트레스를 해소할 수 있도록 휴식시간에 이용할 수 있는 휴게시설을 갖추어야 한다.”라는 조항부터, 세척시설, 수면시설, 장시간 서서 일하는 경우 의자의 비치까지 규정하고 있다. 보건관리계약을 맺고 처음 방문하는 사업장에서 내가 제일 많이보는 것은 휴게실이다. 냉난방은 되는지, 천장에서 가루는 안 떨어지는지, 혹시 석면은 아닌지, 물이나 화장실, 목욕탕 사용, 개인 락커는 있는지, 등받이가 있는 의자인지, 누워서 쉴 수 있는지, 파라핀욕조, 안마기, 발마사지기 등의 시설이 있는지, 휴게 시간은 적절한지 등을 본다. 내가 이것을 더 중요하게 생각하는 이유는 “사람다움”에 대한 것이기 때문이다. 어쩔 수 없이 기계처럼 일하더라도 “사람처럼” 쉬면 좋겠다는 작은 타협이다.


세 번째는 산업안전보건위원회에서 개선의견을 내는 것이다. 산업안전보건법에서는 100인 이상, 일부 위험업종은 50인 이상, 일부는 300인 이상 사업장에서 분기별로 산업안전보건위원회라는 회의체를 운영하게 되어있다. 여기에는 노사동수로 위원들이 구성되고 책임자가 참석하게 된다. 실제로 운영되는 경우는 10%내외, 나머지는 매년 반복되는 서류작업이다. 그런데 요즈음은 분위기가 바뀌어서 실제로 회의를 개최하고 의견을 반영하는 경우도 많아지고 있다. 사업장에서 노동자와 면담을 통해서 들었던 불편한 사항에 대한 것이나, 건강검진이나 작업환경측정, 근골격계 유해요인조사의 개선의견 등 관리자 차원에서 차단되거나 관리자가 깜빡한 내용들을 책임자에게 바로 건의할 수 있는 중요한 통로이다. 실제로 회사 내부회의에 참여하면 산재보험을 거치지 않고 회사차원에서 처리되는 수많은 사고와 질병들을 만날 수 있다. 진짜 문제를 발견해야지 제대로 된 해결을 할 수 있기에 산업안전보건위원회 참석은 점점 중요해질 것 같다.


무엇보다 현장순회를 할 때나, 노동자와 면담을 할 때나 사업장에 오는 의사나 간호사가 과연 내편인지 확인이 되어야 진짜 이야기가 가능할 텐데, 그런 관계를 만들어가는 것이 첫 번째 과제이다. 병원에서는 아플수록 의사와 환자의 관계가 더 기밀하게 지속되지만, 노동자와 보건관리의사의 만남은 더 많이 아플수록 만나기 힘들어진다. 건강과 고용이 걸려있기 때문이다. 산업안전보건위원회에서도 회사측 위원이고, 사측의 관리비를 받는 입장에서 보건관리의사가 100% 노동자편이다 말하긴 힘들다. 다만 자신을 도와주는 의료인과의 신뢰관계가 치료에 좋은 영향을 주듯, 현장에서 만나는 의사들과 노동자들이 잘 만나가는 것이 사업장을 변하게 하는 시작이 아닐까 생각해본다.

[직업환경의학의사가 만난 노동자건강이야기]피부병 생겨도 대체 어렵다던 금속가공유가 바뀐 사정 /2016.2

피부병 생겨도 대체 어렵다던 금속가공유가 바뀐 사정


이선웅 후원회원, 직업환경의학 전문의

 


몇 달 전, 같이 보건관리대행을 나가는 간호사로부터 연락이 왔다. 한 사업장에서 직업성 피부질환이 생긴 것 같으니 의사방문을 예정보다 빨리하자는 것 이었다. 며칠 후 사업장을 방문하여 노동자들을 면담했다. 태양광 전지를 만드는 곳이었다


피부증상자는 모두 6개월 전 새로 생긴 웨이퍼 공정의 노동자들이었고, 전체 웨이퍼 작업 노동자 35명중 10명에서 증상이 발생했고, 이 중 일부는 현재도 증상이 있었다. 증상은 대부분 팔 부위에 금속 가공유가 튀어 생긴다고 하였다. 대개 1~2cm 크기의 붉은 발진이 생겨서 가렵다가, 노출이 없어지면 사라졌다. 하지만 오래 남아있던 경우, 약국에서 연고를 사서 증상을 조절한 분도 있었다. 또 정비작업 시 다리에 대량으로 묻은 한 분은 범위가 넓고 증상이 심해 피부과 진료를 받았으며, 다행히 조장이라 관련 업무를 스스로 그만두고 나서야 호전되었다고 했다. 노동자들은 공정에 투입된 직후부터 석달 사이에 주로 증상이 생겼는데, 주기적 정비 과정 중에 묻는 경우가 많다고 하였다. 이전에 쓰던 토시는 효과가 없었고 열흘 전부터 몇몇 증상자에게 제공된 신형내화성 토시는 효과가 있어 이를 사용한 분들은 증상이 호전되기도 하였다.


노동자들은 그동안 사업장에 이에 대한 조치를 요구하지 않고, 스스로 조심하여 작업하거나 개인적으로 치료하다가, 증상자가 여럿임을 뒤늦게 알게됐다. 그래서 지난달에야 안전관리자의 현장방문중에 얘기하여 보건대행기관에 전달된 것이다. 증상 양상으로 볼 때 자극성 접촉성 피부염으로 판단 되었고, 노출이 차단되면 증상도 비교적 잘 호전되는 것으로 보였다. 얼마 전부터 강화된 보호구 착용으로 증상자 수는 최근에 줄어든 것 같았고, 상담 시 발진이 남아있던 세 분도 다행히 불편감이 가벼워 노출만 피하면 호전될 것으로 보였다. 물질안전보건자료를 확인해 보니, 신규 웨이퍼공정의 금속 가공유에 포함된 항균제 성분 이소티아졸론이 원인으로 생각됐다. 이는 일반적인 절삭유 성분은 아니고, 부식성이 매우 강하여 피부에 화상을 일으킬 수 도 있는 강력한 피부자극물질이었다. 또 피부, 호흡기 알레르기 가능성도 보고되어 있어, 다른 질병 발생도 걱정되었다.


현 상태에서 질환의 치료요양보다는 원인 차단과 제거가 중요하니, 전 웨이퍼 공정 노동자에게 내화성 토시, 앞치마, 고글을 지급하여 착용하도록 하였고, 피부접촉 즉시 세척이 가능한 현장 세척실 설치를 권고하여 담당자도 약속하였다. 그렇지만, 원인 물질의 대체에 대해서는, 우리나라에는 거의 최초로 도입된 공정이라 방법이 없다고 했다. 현재 노동자들의 증상이 심하지는 않지만, 발생자가 많고, 사고로 심하게 피부나 눈에 노출될 경우 위험성이 크고, 다른 질환의 발생 가능성도 있어 근본적으로 대체물질을 개발하는 것이 필요하다 했으나, 담당자는 공정상의 불가능함을 얘기할 뿐이었고 상부에 보고할지도 의문스러웠다.


나는 직업성 피부질환은 수시건강진단 항목에 해당하고 노동자 개인, 노동자 대표, 보건관리대행기관 등이 건의하면 피부증상자가 특수검진을 받고 이에 대한 사후관리 보고를 노동부에 해야 한다고 했다. (사업주가 특수건강진단 대상업무에 노출되는 근로자중 직업성 천식, 직업성 피부질환 증상을 호소하는 근로자에 대하여 실시하는 건강진단으로 근로자가 직접 요청 근로자대표 또는 명예산업안전감독관이 당해 근로자 대신 요청 당해 사업장의 산업보건의 또는 보건관리자(보건관리대행기관 포함)가 수시건강진단을 건의하는 경우 시행할 수 있다.) 사실 수시건강진단을 해도 원인파악이나 사후관리는 같기 때문에 이 건에 꼭 필요하다고 생각하지는 않았고 실제로 건의해본 적도 없었다.


하지만 수시건강진단 얘기를 하니 담당자는 좀 더 심각히 받아들였다. 나는 두 달 안에 증상자가 없어지지 않거나, 새 증상자가 생기면 수시건강진단을 하기로 하고 대체물질 개발은 가능한 빨리 조치하며 이에 대해 매달 확인하겠다고 했다. 다음 달 내화성토시와 보호구가 전부 지급되었고 세척실도 설치되었으며 신규 증상자는 없었다.


두 달 후 상담 시, 세척실이 도움되어 증상자는 거의 없었는데, 절삭유가 묻은 작업 셔츠를 하루 이상 입을 경우 가슴에 증상이 생겼던 경우가 두 명 있었다. 이에 매일 작업복을 교체하라고 안내했다. 물질 대체는 계속 어렵다고 했다. 다음 달, 증상자는 더는 없었으며 다른 질병도 다행히 발견되지는 않았다. 시간이 지나자 공정상 물질 대체가 불가능 하다면 어쩔 수 없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고 수시건강진단의 필요성도 스스로 잊고 있었다.


그런데 몇 달 후 위생기사로부터 그 사업장이 물질을 대체했다는 보고를 받았다. 피부 질환 때문이 아니라 원가절감을 목적으로, 이미 시험가동 중이라고 했다. 다행히 운 좋게 예전보다 안전한 물질로 대체되긴 했지만, 결국 나는 노동자들의 건강권이 이윤에 의해 무시되는 현장 속에 같이 있었던 셈이다. 물질 대체를 좀 더 적극적으로 요구하거나 수시건강진단을 시행하여 노동자 건강에 대한 사업주의 책임을 더 인식시켜야 했다는 아쉬움이 들었고, 다음에는 사후관리를 위해서 뿐 아니라 재발방지를 위해서도 직업성 피부질환이나 천식의 경우 수시건강진단을 적극적으로 건의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직업성 피부질환은 증상이 약해 개인적으로 해결하는 경우가 많고, 이 사례와 같이 집단으로 나타나지 않으면 알려지지 않는 경우도 많다. 근본적인 현장 관리를 위해서는 노동자들 역시 수시건강진단을 요구하거나 보건관리대행 기관을 적극적으로 이용하는 것이 꼭 필요할 것으로 보인다.

 

 

[직업환경의학의가 만난 노동자건강 이야기] 장애가 있는 노동자를 어떻게 대해야 하는가? / 2015.2

장애가 있는 노동자를 어떻게 대해야 하는가?

 

 

강충원 직업환경의학의

 

 

2년 전쯤 모 방송국 의학전문기자를 하는 형에게서 전화가 왔다. 장애인들의 건강검진 수검률이나 병의원 방문 횟수, 운동 등 건강습관이 비장애인에 비해 열악하다는 기사를 쓰려고 하는데, 혹시 개선할 방법을 생각해 본 적이 있냐는 것이었다. 그 때부터 일터에서의 장애 노동자들의 건강보호와 증진에 작은 관심이 더 생긴 것 같다.

 

우리나라는 장애인의무고용제도에 따라 국가·지방자치단체나 50명 이상 공공기관은 직원 수의 3%, 50인 이상 민간 기업은 2.7%를 의무적으로 고용해야한다. 우리가 방문하는 보건관리대행사업장도 50인 이상이기 때문에 적어도 사업장별 1.5명 이상의 장애인 노동자를 만나게 된다는 것이다. 사업장을 방문해서 보건담당자에게 장애인 직원을 물어보면 대부분 미준수금을 내고 별도로 고용하지 않는 경우가 많다. 사업장에서 고용한 장애 노동자뿐 아니라, 장애인보호(근로)사업장과 건강 상담을 하는 과정에서 장애를 숨기고 지내는 노동자를 만난 경험이 있어 몇 가지 공유하고자 한다.

 

우리가 일터에서 마주치는 장애를 가진 노동자들은 어떤 분들일까? 일하다가 산재 후 절단·척수장애 등 지체장애나 청각장애, 뇌병변 장애 등을 가지고 복귀하는 경우나 암, 고혈압/당뇨 합병증이나 신장, 심장, 간, 호흡기, 장루·요루 장애를 가진 분들이다. 이러한 장애는 일부 기업에 고용된 시각장애인 안마사 외에 겉모습만 봐서는 알 수 없고 면담하면서 알게 되는 경우가 많다. 혹시나 회사가 알게 되면 불안감에 자신이 계속 일을 할 수 있는지, 건강에 문제가 되는지, 다른 일로 전환하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 문의가 온다(이것을 전문 용어로 ‘업무적합성평가’라 한다). 고용이 불안한 우리나라에서 장애는 숨기는 것이 장땡인 것이 현실이다. 그러나 스트레스나 화학물질, 육체적 부담 등 일하는 환경이 건강에 악영향을 줄 수 있어 숨기는 것이 독이 될 수도 있다.

 

사실 장애 노동자들을 가장 많이 만나는 경우는 장애인보호사업장이나 장애인근로사업장이라는 곳들인데, 이런 곳들의 사업주나 국가는 대부분 일반적인 노동자로 대하기보다는, 자신들이 “갈 곳 없고, 할 것 없는 사람들”을 보호하거나 도와주고 있다는 생각을 하고 있는 것 같다. 그러니 기본적인 노동조건이 최소한의 기준에 미치지 못하는 경우도 많고, 장애 노동자에게는 최저임금도 주지 않는다(장애인은 한명 몫을 다 못한다고 최저임금 적용에서 제외되는 대상임). 이렇게 인가받은 장애 노동자는 2013년 기준 4,500여명이고, 이들의 시급은 최저임금(2013년 4,860원)의 57.1%에 불과한 2,775원이다(한겨레신문). 최근 박근혜정부가 2017년부터 장애 노동자에게 능력에 따른 최저임금 감액제도를 시행한다니, ‘최저’라는 말이 참 무색하다.

 

주로 장애인을 많이 고용한 사업장은 주로 친환경세제나 쓰레기봉투를 만드는 사업장, 토너 재생공장, 인쇄분야, 칫솔이나 생필품을 만드는 공장이다. 지적장애나 지체장애, 발달장애 등 다양한 장애를 가진 분들이 많고 그나마 건강검진이라도 받는 것은 다행이다. 하지만, 현실적으로 검진결과에 따라 병원을 가야될 경우 보호자들이 화를 내는 경우가 많고, 사업장에서 동행도 하고 복약지도도 하는 것을 기대하기 쉽지 않다. 운동이나 식단개선 등 생활습관개선은 개인별 맞춤으로 관심을 가지고 진행해야 하는데 아직까지 그런 시설을 들어본 적이 없다. 더군다나 유기용제나 근골격계질환과 관련된 이야기를 근로자 개인에게 아무리 설명하고 이해시키려 하지만, 짧은 만남으로는 쉽지 않다. 회사에서도 불쾌하게 생각하는데 나는 의사로서 설명의무를 다했다고 면죄부를 줄 수도 없다. 아직 부족하지만 꼭 해야 할 일이라고 생각하기에 애를 써본다. 특히 곁에서 장애인들을 적극 지지, 격려해주는 비장애인 노동자들이 있는 경우에는 많은 희망이 있다.

 

열정을 가지고 방문했던 ◯◯공방이라는 가구제작 공장이 있었는데, 소음이 아주 심했지만 청각장애인분들이 많아서 별 신경을 안 쓰다가 청력이 남아있거나 정상인 분들도 가끔 있었다는 사실을 알고 화들짝 놀랐던 곳이었다. 분진이나 포름알데히드, 도장시 유기용제나 중금속 문제에 대해 회사와 논의하였고, 질병의 기본개념이나 건강에 대한 생각을 소통하는 것을 시작으로 보호구를 지급하고, 특수건강검진도 시작하기로 하였다. 청각장애가 있다 보니, 이분들은 동네 의원을 가서도 설명을 잘 듣지 못하고 오는 경우가 많았고, 그나마 사업장에서는 수화를 통해 소통이라도 가능했기에 많은 시간이 걸렸지만, 조금씩 변화가 보였다. 여러 한계에도 우리 간호사 선생님이 수화도 배우고, 못하는 엑셀로 표도 만들어 그분들과 소통하려고 노력하는 모습이 참 좋았다.

 

굳이 장애 노동자 건강 이야기를 따로 꺼내들었던 이유는 다른 영역에서처럼 사업장 건강관리에서도 쉽게 무시되기 때문이다. 장애가 있다는 이유로 산업안전보건법, 근로기준법에서 소외되어 건강하게 일할 권리를 상실하는 것은 문제가 있다. 사업장을 방문하는 의료인이든, 함께 일하는 비장애 노동자든 ‘편견 없이 대한다’는 것은 똑같은 시간과 노력으로 대하는 것이 아니라, 나와 똑같은 건강을 누릴 수 있도록 대하는 것이다. 일터에서도 장애 노동자들이 “최적의 건강”을 누릴 수 있는 날이 오도록 함께 애를 써야 할 것 같다.

 

[직업환경의학의사가 만난 노동자건강 이야기] 중소사업장 사내하청 노동자와 보건관리대행 / 2014.12

중소사업장 사내하청 노동자와 보건관리대행



이선웅 직업환경의학의



필자는 주로 300인 미만의 중소규모사업장 노동자들을 3개월 또는 6개월 간격으로 방문하여 정기적으로 건강상담을 하고 있다. 그런데 지속적 관리가 필요한 만성질환자가 입사 후 한두 번의 상담만 하고 곧 퇴사하는 경우가 많다. 이는 특히 대부분이 단기계약직인 사내하청업체에서 흔한데, 매달 방문하는 간호사로부터 이번 달 상담예정자가 퇴사하였으며 마지막 상담 이후 치료나 적절한 관리 여부조차 확인되지 않은 상태였다는 말을 흔하게 듣고, 어느덧 이를 당연하게 여기며 다른 노동자를 대하게 된다.



① 대기업 사내하청업체에서 일하는 42세 김◯◯ 씨. 작년 하반기 입사하여 3월 검진 시 공복혈당 152, 5월 상담 시 식후혈당 224로 치료가 필요한 당뇨병 상태라고 하였으나 8월 상담 시 치료받지 않은 상태였으며 이후 곧 퇴사. 

② 같은 회사의 37세 지◯◯ 씨. 검진 시 식후 혈당 230으로 당뇨가 의심되어 추가 검사를 권유하였으나 역시 진단과 치료 여부 확인하지 못한 채 얼마 전 퇴사. 

③ 대기업 사내하청업체에 작년에 입사한 31세 한◯◯ 씨. B형간염 보균자로 검진 시 간 기능 수치가 높아 B형간염 활성화의 가능성이 있으니 추가 검사가 필요하며 항바이러스제의 투여가 필요할 수 있다 하였으나, 얼마 전까지 병원에 가지 않은 상태로 최근 퇴사. 



물론 퇴사 전까지 어떤 치료나 진단을 받지 않은 상태로 상담이 끝났다는 사실만으로 이분들의 앞으로의 건강상태를 예단할 수는 없다. 하지만 이렇게 도급업체를 전전하며 단기 계약직 신분을 벗어나지 못한다면 치료에 들어서기까지 상당한 시간이 걸릴 것이며, 의사 상담은 물론 건강검진까지도 빠질 가능성은 다분해 보인다(일반적으로 비정규직의 특수검진 수검률은 정규직에 비해 낮은 것으로 알려졌다). 결국, 이러한 현실은 정작 산업보건서비스가 필요한 노동자를 소외시키게 하고 사업주에게는 법정 관리 책임으로부터 자유롭게 만든다.



심각한 것은 단기계약직이 대부분인 사내하청업체들이 최근 중소사업장 내에서 너무나 많이 증가하고 있다는 것이다. 



필자가 담당하는 중소사업장들은 대기업의 사내하청이거나 대기업의 외주업체인 경우가 많은데, 언제부터인가 대기업 외주업체 상당수는 다시 사내하청을 두어 사업장을 여럿으로 나누어 놓는 경우가 다반사다. 특히 자동차와 전자산업의 외주업체는 그런 경향이 심한 것으로 보이고 그 외의 다른 제조업도 일반적인 경향이 돼가는 것 같다. 또 대형마트 등의 대형물류센터는 다양한 전문 아웃소싱 업체들로 인력이 나뉘어 있고, 대개 단기계약으로 인력을 관리하고 있다. 100여 개의 담당사업장 중 1/5가량이 중소사업장의 사내하청업체인데 이들은 보건관리대행을 하는 50인 이상 사업장이라 50인 미만으로 나뉜 사내하청업체를 포함하면 그 규모는 2배 이상일 것이다. 



단기 계약직은 일부 대기업 외주업체에서 흔한 고용 형태이나(일례로 00 전자의 한 외주업체는 240명가량의 근무인력이 있으나 작년 한 해 40%가량이 퇴사하고 재입사한 걸로 기억한다), 중소사업장의 사내하청업체에서 더 흔한 것으로 보인다. 이는 원청의 단가인하 압력과 물량변동에 대한 대응을 계약해지로 쉽게 해결하려는 하청업체의 특성이 영세사업장일수록 심해질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또 공단지역 중소 영세업체 노동자의 임금은 최저 임금 수준이며, 정규직 일자리는 찾아보기도 힘들고 설령 정규직 일자리가 있다 하더라도 임금이나 근무조건이 안 좋은 경우가 많다. 따라서 부족한 임금을 초과노동으로 메우기 위해 잔업과 특근이 많은 회사로 물량을 따라 쉽게 이직하는 형편이다. 



이러한 현상은 IMF 이후 대기업 중심의 구조조정과 그 이후에도 지속하는 재벌·대기업 위주의 정책으로 대다수 중소기업을 다단계하청 줄 세우기로 만들어 그들을 무차별적인 생존경쟁으로 내몬 결과이다. 사내하청 같은 간접고용은 -특히 제조업에서-지속해서 확대되었고[각주:1] 2014년 한국은 근속기간이 1년 이하인 단기근로자가 38%로 OECD에서 단기근로자 비율이 가장 높은 나라가 되었다.  

 


보건관리대행과 같은 산업보건사업은 한 사업장 단위로 정기적으로 이루어지는 것이고, 이것은 노동자들이 한 사업장에서 최소 몇 년간은 지속해서 근무하는 것을 전제로 만들어졌다고 본다. 하지만 최근 단기근무와 이직이 만연한 사업장에서 이러한 전제는 어긋나고 있으며, 연쇄적인 하청구조의 가장 하위층인 중소사업장 사내하청노동자는 전반적인 산업안전보건으로부터 방치된 것으로 보인다. 대기업과 재벌의 이윤을 극대화해서 우리의 삶에 무엇이 얼마나 좋아지고, 또 무엇이 남아 있을지 생각해봐야 할 일이다. 

  1. 2001년 대비 2012년 금속노조 사업장내 비정규직은 27.3%에서 51.8%로 증가했으며, 사내하청 노동자는 19.8%에서 41.6%로 증가하였다. [본문으로]

<일터> 통권 131호 / 2014.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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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례


[특집]

2014 현장연구 나눔마당

- 주간연속 2교대 이행 실태와 향후 연구 방향

- 작업중지권, 오늘과 내일

- 체신노동자 재해 실태 : 집배원을 중심으로

- 자동차 판매노동자의 직무스트레스


[뉴스] 

분신 아파트 경비원, 스트레스로 인한 산재 인정 外  l 장영우


[지금 지역에서는] 

물고기 1만 마리 떼죽음, 삼성의 책임을 묻는다  l 재현


[A-Z까지 다양한 노동 이야기]

기술과 예술의 사이에서 소리를 만드는 사람들  l 정하나


[현장의 목소리]

일하다 죽었는데 자살이라뇨?  l 재현


[연구 리포트]

대리운전기사의 직업환경과 안전 및 보건  l 연세대학교 보건대학원 윤진하


[사진으로 보는 세상]

하늘과 땅에서 노동자들은 여전히 농성투쟁 중  l 쌀집아재


[직업환경의학의가 만난 노동자건강 이야기]

중소사업장 사내하청 노동자와 보건관리대행  l 직업환경의학의 이선웅


[작업중지권 기획]

작업중지권은 일상의 전투다  l 중대재해 예방과 작업중지권 실현을 위한 ‘당장멈춰’ 팀


[노동시간센터(준) 기획]

쫓기는 노동, 여유 없는 시간  l 노동시간센터(준) 해미


[문화읽기]

거기 누가 있나요  l 김재광


[유노무사의 상담일기]

경비노동자의 겨울나기  l 노무법인 필 유상철


[일터 다시보기]

감정노동의 가치를 인정하라  l 금속노조 현대자동차지부 판매위원회 교육선전국장 조계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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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업환경의학의사가 만난 노동자건강 이야기] 건강하게 일할 권리, 이제부터 시작이다 / 2014.8

건강하게 일할 권리, 이제부터 시작이다


이진우 운영집행위원



지난 3월 삼성전자서비스지회의 한 활동가에게서 다급하게 연락이 왔다. 사측에서 갑자기 ‘보건관리대행’이라는 것을 하겠다며, 노동자들에게 정보공개 동의서에 서명을 받으려 안달이라는 것이다. 노동자들의 건강과는 담쌓고 지내던 바지사장들이 보건관리를 하겠다고 나서니, 황당하기도 하고 뭔가 꼼수가 숨어 있을 것 같아 연락을 취해 온 것이다. 


삼성전자서비스 AS기사 노동자들은 S 기업 역사상 처음으로 대규모의 노동조합을 만들고 2013년 7월 민주노총 금속노조 삼성전자서비스지회를 출범시켰다. 이들은 S 기업의 직접 지휘 감독을 받는 한편, 노동조건, 임금까지 S 기업의 관리를 받았다. 또한, 근로기준법에 위배되는 건당 수수료 임금체계로 장시간 저임금 노동에 시달리며 비인간적인 삶을 살아왔다. 이를 개선해달라는 노동자들의 요구에 협력업체 사장들은 능력이 없다는 이유로, S 기업 측에서는 하청업체 소관이라는 이유로 모두 책임을 회피했다. 부조리한 현실을 딛고 인간다운 삶을 살고자 삼성전자서비스 노동자들은 노동조합을 만들고 투쟁해왔다. 


이러한 투쟁 과정에서 삼성전자서비스의 문제점들이 언론에 오르내리게 되었고, 사측은 산업안전보건법에 규정된 보건관리대행을 구색 맞추기 차원에서 시작한 것으로 보인다. S 기업에서 운영하는 서비스센터에는 소비자들이 센터에 직접 방문하여 만나게 되는 내근직 AS기사 노동자들뿐만 아니라, 에어컨 등의 대형가전을 수리하러 다니는 외근직도 포함된다. 따라서 센터에 따라 차이는 있겠지만, 보통은 보건관리대행을 반드시 해야만 하는 50인 이상 사업장이 대부분이다. 국내 굴지의 기업 S 에서 지난 20여 년간 산업안전보건법 따위는 무시하다가 이제야 사업주의 의무를 시작한 것이다. 


마침 필자가 일하는 기관에서도 지난 3월 말부터 S 기업에서 운영하는 서비스센터 한 지점의 보건관리대행을 맡게 되었다. 오후 3시경 방문했는데, 외근직 AS기사 노동자들은 모두 외근 중이라 상담이 불가능했고, 내근직 노동자들과의 상담도 여의치 않았다. 센터 관리자는 S 기업 측의 지시로 보건관리대행을 시작하긴 했지만, 어떤 제도인지, 시행해야 하는 이유가 무엇인지, 본인이 무엇을 준비해야 하는지 전혀 알지 못한 채 대행팀을 맞았다. 센터 관리자는 내근직과 외근직 둘이었으나, 생소한 일이라 업무 맡는 것을 서로 꺼리는 것처럼 보였다. 결국, 외근자들은 모두 외근 중이라는 이유로 내근직 관리자가 보건관리대행 업무를 맡기로 결정되었다. 그런데, 우리를 창고방으로 안내하던 관리자는 안절부절 어쩔 줄을 몰라 했다. 내근 AS기사 노동자들이 너무 바빠서 상담을 올 수가 없다는 것이다. 쉬는 시간이 언제인지 묻자,  그런 건 없다는 대답뿐이었다. 나는 상담에 많은 시간이 소요되지 않으니, 한 사람 당 3분이라도 시간을 내달라 요청했다.


출처 : 미디어 충청


결국, 대행팀이 도착한 지 30분이 지나서야 AS 기사들을 만날 수 있었다. 첫 방문이라 기존의 검진자료 등은 제공받을 수 없었고, 과거력, 가족력, 현 상태에 대한 간단한 문진과 혈압, 맥박만 체크했다. 그런데 그 과정에서 이상한 공통점이 발견되었다. 특별한 질환도 없는 20~30대의 젊은 노동자들 다수의 맥박이 100회 전후로 높은 편이었던 것이다. 어떤 노동자의 경우 맥박이 너무 높아 추가 문진이 필요한 상황이었다. 노동환경에 대해 더 질문하려고 붙잡자, 계속 시계를 쳐다보았다. 너무 바빠서 당장 나가봐야 한다는 것이다. 그 뒤에 상담한 노동자들도 비슷한 상황이 반복되었다. 20~30대의 젊은 노동자들의 맥박이 높은 원인은 쉴 틈 없는 노동강도 때문으로 판단되었다. 조합원 중 다수는 관리자의 감시에 비교적 자유로운 외근직 노동자들이고, 내근직은 아직 많지 않은 것도 그 이유였을 것으로 보인다. 짧은 상담 시간이 끝나고 관리자에게 이 같은 사실에 관해 얘기하긴 했지만 무슨 소용인가 싶다. 


사측이 형식적으로나마 보건관리대행을 시작한 것은 분명 노동조합의 힘 때문일 것이다. 지난 3월 방문 이후 노동조합은 큰 변화가 있었다. 염호석 분회장이 자결하고, 800여 명의 조합원이 45일간 삼성 본사 앞 노숙농성투쟁을 벌였다. 6월 28일에는 76년 무노조 S 기업에서 민주노조의 첫 단체협약이 만들어졌다. 조합원이든, 비조합원이든 삼성전자서비스 노동자들 사이에서는 ‘인간다운 삶’을 살겠다는 당연한 요구가 더욱 거세졌을 것이다. 노동자의 건강을 지키기 위한 보건관리제도가 제 역할을 다하기 위해서는 노동자의 힘이 중요하다. 삼성전자서비스 노동자의 건강권을 쟁취하기 위한 싸움은 이제부터 시작이다. 다가올 8월 방문에는 센터의 분위기가 달라졌길 기대해 본다.

<일터> 통권 127호 / 2014.8


 




특집

 1. 여름휴가, 잘 다녀오셨습니까?

 2. 3인 3색 휴가이야기

  (1) 휴가, 내가 가고 싶을 때 가고 싶다

  (2) 카페주인의 여름은 월급쟁이보다 핫(hot)하다

  (3) 휴가는 꿈도 못 꾸는 환상의 나라?

03

[뉴스] 

속초의료원, 제2의 진주의료원 되나 外  l 장영우

06

[지금 지역에서는] 

삶을 바꾸기 위해 투쟁한다  l 부산지하철노동조합 선전부장 이영호 

08

[A-Z까지 다양한 노동 이야기]

고3이 안 쉬면 학원 알바도 못 쉬죠  l 정하나

12

[현장의 목소리]

더 이상 사장이 원하는 아줌마는 되고 싶지 않아요  l 재현

16

[연구소 리포트]

어느 완성차 생산 공장의 교대제 변화 후 삶과 건강의 변화

  l 가톨릭대 서울성모병원 직업환경의학과 김형렬, 최민

21

[사진으로 보는 세상]

바쁜 일상으로부터 잠시, 로그아웃  l 김세은

32

[직업환경의학의사가 만난 노동자건강 이야기]

건강하게 일할 권리, 이제부터 시작이다  l 이진우

34

[작업중지권 기획]

악천후에 편지 배달, 미담이 아니다 

 l 중대재해 예방과 작업중지권 실현을 위한 ‘당장멈춰’팀

37

[노동시간센터(준) 기획]

일과 일상생활의 불균형/성별 불평등은 어떻게 지속되는가?  

 l 노동시간센터(준) 김경근

40

[문화읽기]

함께 키우는 즐거움, Shall We?  l 송윤희

42

[유노무사의 상담일기]

‘직장 내 괴롭힘’, 먼 얘기가 아니다  l 노무법인 필 유상철

44

[일터 다시보기]

일하다 다치면 병원, 약국, 근로복지공단을 함께 가세요  l 후원회원 안태은

46

[이러쿵저러쿵]

병원의 안과 밖, 이윤의 전쟁터  l 장영우

48

[퀴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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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노동안전보건연구소 (Korea Institute of Labor Safety and Health)

서울시 동작구 사당동 64-140

Tel : 02-324-8633

Fax : 02-324-8632

E-mail : laborr@jinbo.net




[직업환경의학의사가 만난 노동자건강 이야기] 보건관리대행과 노동자 건강 / 2014.2

보건관리대행과 노동자 건강


직업환경의학의 이선웅

 

현재 50인 이상의 전임보건관리자가 없는 사업장의 노동자들은 의사, 간호사 및 산업위생기사가 방문하여 노동자들의 건강을 관리해주는 보건관리대행(이하 보대)을 받고 있다. 이 보대 업무는 현장의 노동자들이 산업보건전문가를 정기적으로 만날 수 있는 매우 의미 있는 제도이다. 필자 역시 2년 전부터 지방의 소규모 보대업체에서 보대업무를 하며 100개가량의 사업장 노동자들을 정기적으로 만나왔다. 하지만 내가 만난 노동자들이 그동안 얼마나 실질적인 도움을 받았는지, 심지어는 노동자들의 필요와 동떨어져 있는 형식적 업무가 지속되고 있는 것은 아닌지 의문이 들 때가 있다.

 

현재 보대의 주요 업무는 처방 및 치료가 허용되지 않는 상태에서 건강검진결과를 토대로 하는 건강 상담과 간이검사(혈당, 혈압, 간이콜레스테롤 검사), 그리고 현장순회가 아닐까 싶다. 물론 이 통상적인 업무과정에서 노동자들에게 체감적으로 도움 되는 결과가 생기기도 한다. 고혈압, 당뇨, 고지혈증과 같은 검진 결과로 진단 가능한 질환에서 투약이 필요한 노동자를 병원에 의뢰하게 되거나, 생활습관에 대한 상담으로 질환이 호전되는 경우가 그렇다. 또 특수검진 결과 관찰이 필요한 노동자(요 관찰자)들의 증상이 작업과 관련성이 있는지, 작업 전환을 해야 하는지 평가하는 경우도 그렇다. 물론 후자의 사례는 전자보다 훨씬 적다. 어쨌든 현실에서 약물치료 의뢰는 위에 언급한 질환으로 제한되고 추적 상담 시에도 혈액검사가 제한되어 반복되는 생활습관 상담만으로는 만족감을 주기 어려워 노동자들이 정기 상담을 꺼리는 경우가 많다.

 

직업병을 발견하는 것은 굉장히 중요한데 작업 관련 증상을 가진 노동자가 알아서 상담을 받으러 오기 힘든 면도 있고, 짧은 상담시간 안에 유해공정 노동자를 모두 상담하기도 힘든 현실도 엄연히 존재한다(근무시간 내 상담을 기피하여 점심시간 내 상담을 계약 시 요구하는 사업장도 다반사인 현실이다). 그리고 가장 근본적인 문제는 법에 명시되어 있는 공적 서비스임에도 민간시장에 완전히 일임되어 있다는 것이다. 계약 주체가 사업주인 관계로 노동자들에게 필요한 서비스에는 관심이 없고, 서비스의 가격만으로 경쟁하는 사례가 만연해 있다는 것이다. 이는 현재의 질 낮은 서비스와 맞물려 악순환한다. 그래서 많은 사업장에서는 노동부 감사에 대비하는 형식적 서류업무에 능숙하고 서비스 질과는 무관한 단가가 싼 보건대행업체를 선호하게 된다. 게다가 노동부는 이를 바로 잡을 의지가 있는지 심히 의심스럽다.

 

보건대행서비스가 노동자들이 이용할 수 있는 산업보건서비스 중 매우 큰 부분이라면 현재의 문제점을 조금이라도 개선하려는 노력이 중요하다. 먼저 상담에서는 처방이 불가능함을 인정한다면 외래치료와의 연결고리 역할을 더 명확히 할 필요가 있다. 일례로 투약이나 정밀검사가 필요한 노동자들에게 “현재 이러이러한 상태니 어느 과로 가세요”라고 구두로 설명하는 것보다 1차 진료기관에서 사용하는 진료의뢰서를 의료진이 사용하도록 한다면 좀 더 책임 있는 의뢰가 되어 보대서비스에 대한 노동자의 신뢰를 높일 수 있을 것이다. 또 약물치료는 필요 없으나 관리를 위해서는 지속적인 검사가 필요한 내당능장애, 고지혈증 등의 질환에서는 당화혈색소, 콜레스테롤 검사 등의 혈액검사를 의료법에 저촉하지 않는 범위에서 허용하는 것이 고려되었으면 한다. 또 만성질환 생활습관 관리에 대해서는 뇌심혈관발병위험도나 심혈관위험지수 등의 성과지표를 사업장에 제공하도록 하여 성취정도 및 추이를 노동자들과 공유할 수 있게 한다면 좋을 것이다.

 

직업병과 관련해서는 전반적인 현장 파악은 위생기사의 업무로 되어 있지만, 의사 역시 건강위험요인을 확인하여 적극적으로 상담에 이용하도록 현장 위험요인을 확인하도록 강제하는 것이 필요할 것 같다. 이를 위해 위생기사의 상태보고서 작성 의무를 의사에게도 부과해 건강위험요인 상태보고서를 주기적으로 작성토록 하는 것을 고려해 볼 수 있을 것 같다.

 

하지만 무엇보다 사업의 성과에 큰 관심이 없는 대부분의 사업주와 갑을관계에 놓여 있는 구조가 근본적인 문제다. 이로 인해 실제 사업장 담당자를 만나는 간호사들이 계약 해지의 두려움으로 사업장 담당자들과의 관계에 신경 쓸 수밖에 없어 업무의 힘겨움을 토로하기도 한다. 노동자의 보대이용을 독려하는 사업주도 일부 있지만 이에 무관심한 사업주 역시 많을 수밖에 없으며, 이 경우 보대팀이 개인적으로 노력할 수밖에 없는 것이 현실이다. 만일 이런 사업장에 검진결과마저 입수되지 않아 유소견자마저 파악되지 않으면 상담 인력이 없어 업무자체가 힘들기도 한다. 이러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제도의 전반적 변화나, 노동부의 보대업무에 대한 책임 강화가 필요할 것 같다. 제도적 변화는 ‘3자지불제도’나 ‘보대업체의 지역별 제한’과 같은 공공성 강화 방안을 생각해볼 수 있으며 이러한 제도적 공공성강화 방안은 꼭 논의되어야 한다.

일단 당장에는 노동부의 치밀한 감시 감독과 체계적인 기관 평가가 필요할 것으로 보인다. 점심시간이나 휴식시간에만 상담을 강요하는 사업장 재제를 명확히 하고(현재의 갑을 관계에서 보대업체는 이런 정보를 제공할 수 없으므로 사업장의 무작위 감사와 노동자모니터링 방법이 유효하겠다), 상담이 필요한 노동자에 대해서는 반드시 상담시간을 보장해주는 것이 사업주의 의무임을 명확히 하며, 유소견자의 상담율이 일정기준 이하로 낮은 사업장 역시 재제하도록 하는 것도 필요해 보인다. 또 보대 기관에 대해서도 성과지표와 같은 보대업무의 구체적 성과를 제시하게 하고, 서비스 질 평가를 강화하여 질 저하가 명확한 기관은 업무정지와 같은 강한 제재가 필요하다는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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