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Z 노동이야기] 화면 밖에서 방송을 만드는 사람들 / 2017.10·11

화면 밖에서 방송을 만드는 사람들

- 방송작가 황민주 님 인터뷰

재현 선전위원장


우연한 기회에 방송국 조연출로 알바를 하면서 방송작가의 꿈을 키웠다던 황민주님은 지난 3년간 방송국에서 일했다. 최근에는 현장에서 일하는 방송작가 노동자의 노동인권을 위해 ‘공정노동을 위한 방송작가 대나무 숲’를 운영하며 온오프라인 할 것 없이 활동하고 있다. 이번 일터에서는 황민주님이 짧다면 짧고 길다면 긴 방송작가 생활 3년을 어떻게 기억하고 있는지에 대해 자세한 이야기를 들어보았다.

방송작가는 어떻게 시작하게 되었나요.

"대학에서 언론 정보학을 전공했는데 정작 학교 다닐 때는 전공을 살릴 생각이 없었어요. 부모님도 공무원 시험을 준비했으면 좋겠다고 강하게 권유하셨거든요. 그래서 학교 휴학하고 시험 준비를 했는데 도저히 못할 것 같아서 공부는 정리하고 학교 복학 전까지 등록금 마련하려고 알바를 구했어요. 그때 마침 한 파견업체에서 제 전공을 보더니 방송국에 자리가 있으니 오라고 해서 그때부터 1년 반 동안 방송국에서 뉴스 송출하는 조연출 알바를 했어요. 왜 뉴스 진행할 때 앵커가 보는 카메라 화면을 프롬프터라고 하잖아요 그걸 만들었어요.

그리고 뉴스에 필요한 영상 틀어주고 그 밑에 자막 넣고, 앵커 뒤에 있는 배경화면에 맞는 사진이나 영상도 찾고요. 한 달 일해서 받는 월급은 150만 원 정도였는데 그것도 제가 새벽 4시까지 출근이라 하루 교통비 1만 5천 원이 포함된 거였어요. 사실상 최저임금도 못 받으면서 일한 거죠. 그렇게 일하면서 제가 예전부터 글 쓰는 걸 좋아해서 그런지 조연출 일보다 옆에서 방송 작가가 하는 일이 재미있어 보이더라고요. 그때부터 방송 작가가 되기로 했어요."

그 뒤로 황민주님은 KBS 구성작가 협의회 홈페이지에 구인구직 글이 올라오는 걸 보고 이력서를 보내며 일을 찾았다. 이곳 홈페이지가 방송 작가 구인구직이 제일 활발한 곳이기 때문이다. 지상파 3사에서 운영하는 아카데미에서 구성작가 반 수업을 듣지 않는 이상 대부분은 방송사나 외주제작사가 작가의 이력서를 보고 직접 계약하는 형태로 작가 일을 시작한다.

"제가 보낸 이력서를 보고 KTV라고 국가에서 운영하는 정책방송원 방송국에서 연락이 와서 휴먼다큐 프로그램에서 일하게 됐죠. 서울에서 세종시까지 출퇴근 하는 게 힘들어서 6개월 정도 막내 작가로 일했어요. 그다음엔 MBC에서 1년 가까이 일하고, 채널 A에서 1년 반 정도 일했고 입봉도 여기서 했어요."

- 방송국에서 하루 동안 어떤 일을 하나요.
"KTV 방송은 수요일에 한 번 30분 동안 방송했기 때문에 주 단위로 일을 했어요. 방송내용이 다른 사람들을 위해 의미 있는 일을 하는 일반인들을 조명하는 다큐멘터리였어요. 그래서 방송을 하는 수요일부터 금요일까지는 다음 방송 아이템을 찾거나 사람을 섭외했어요. 섭외가 확정되면 전화로 사전 인터뷰하고 어떠한 내용으로 촬영하면 좋겠다는 구성안을 촬영팀에 작성해줘요. 촬영팀은 그대로 주말 내내 영상 찍어서 월요일에 제작팀에 줘요.

그 다음날부터 막내작가들은 촬영한 걸 프리뷰라고 해서 영상에 있는 모든 상황을 말로 풀어요. 누가 등장했다 어떤말을 했다 등등요. 그걸 보고 제작진이 방송에 나갈 영상을 대략 편집한 가편집본을 만들면 저희는 자막 입히고, 더빙하고 작업을 마치죠. 1주일 내내 이렇게 방송을 만들면 수요일 오전에 부장급 임원들이랑 시사회를 열고 수정 의견 있으면 반영해서 저녁에 방송을 내보내요. 그렇게 방송 끝나면 다시 아이템 찾고 지난주에 했던 일을 반복하고요."

황민주 님은 매주 계속되는 방송에 문제가 생기지 않도록 하기 위해 최소 10개 이상의 아이템을 확보하려고, 퇴근하거나 주말에도 아이템 찾기를 쉴 수 없었다고 한다.

"MBC에서는 창사특집 방송이었는데 청년을 주제로 해보자는 것 외에 세부적인 내용이 없어서 방송 제작보다는 가장 처음 기획부터 같이했어요. 그때는 아이템 회의 정말 많이 했는데 하면서 허탈했던 기억이 있어요. 피디나 조연출분들이 요즘 불안정한 청년들, 3포 세대 청년들 취재해보자면서 누가 좋을지 고민하는데, 사실 자기들 눈앞에 방송 작가들이 있잖아요. 최저임금 받으면서 주말도 없이 일하는데 저희가 그렇게 일하는 건 당연하다고 생각했나 봐요. 아무튼, 그래서 기획이 정해지면 방송에 필요한 출연진, 대역배우, 소품, 광고까지 모든 섭외를 다 하는 게 중요했어요. 

채널A에서는 오후 시간대 뉴스 프로그램에서 일했어요. 주간에 있던 뉴스들에 이슈가 된 몇 개를 선정해서 집중적으로 분석하는 방송이었죠. 그때는 점심시간 전까지 주요뉴스를 선정하는 게 중요해서 아침에 늘 쫓기며 일했던 것 같아요. 출근하자마자 회사 내부 홈페이지에서 기자들이 이슈들 발제한 자료 읽고, 오늘 청와대, 국회 등에서 어떤 주요 뉴스가 있는지, 자료를 받으려면 어느 기자에게 연락하면 되는지 확인하고 현장에 연락해서 자료 요청하고 인터뷰를 받고 그랬었죠. 그리고 나서 생방송 때 전체적인 영상을 어떻게 구성할지 스케치해서 제작팀에 넘기고, 앵커한테 순서지랑 대본 주고, 패널한테는 예상 질문과 답변할 때 참고해야 할 자료를 정리해줬죠. 방송 시작하면 작가 몇 명은 부조정실이라고 하는데 거기서 방송을 송출하고 몇 명은 스튜디오에서 앵커랑 패널들한테 진행 상황 알려주고, 속보 있으면 안내하고 그렇게 하루 일을 마무리했어요."

- 일하면서 가장 어려웠던 건 뭐였나요.
"처음 조연출 알바 할 때 세월호 참사가 있었어요. 그때는 저뿐만 아니라 다들 너무 슬퍼해서 평점심을 유지하고 방송하는 게 힘들었죠. KTV에서 일할 때는 일을 해도 해도 끝이 없어서 답답했어요. 일반인들 섭외하는 것도 어려웠고요. 제가 만약 섭외를 못 하면 선배 언니들이 "너가 설득력 있게 말을 못 해서 그런 거라"고 혼낼 때는 서럽기도 하고요. 채널 A에 있을 때는 촛불 정국이라 뉴스가 너무 많았잖아요. 일도 많은데다 박근혜랑 태극기 부대 쳐다보면서 일하는 게 힘들어서, 그때는 진짜 영혼은 집에 두고 몸만 출근해서 기계처럼 일했던 것 같아요. 그리고 방송 작가들은 다 공감 할 텐데 전화하는 일이 어려웠어요. 생판 모르는 사람한테 방송을 출연해달라고 전화하고, 인터뷰도 해야 하는데 용기가 안 나더라고요. 그래도 방송 작가는 전화로 일 시작해서 전화로 일 끝나니까 꾸역꾸역했던 것 같아요. 아 그리고 뉴스 프로그램을 하다 보니까 온갖 시사 문제를 이해하고 내용을 쫓아가는 일도 처음엔 쉽지 않더라고요."

- 방송 작가에 대한 처우는 어떠했나요.
"어디를 가나 막내 작가는 대부분 최저임금 못 받아요. 2~3년 정도 지나야 그나마 최저임금 받으려나요. 여기는 돈이 진짜 안 돼서 서울에서 혼자 살면 월세 내고 남는 것도 없어요. 그리고 만일 방송 촬영을 마쳤어도 방송국에서 내부 사정으로 방송을 못 하거나 안 하잖아요 그걸 방송이 죽는다고 하는데 그랬을 때 우리는 주급을 못 받아요. 내부 사정으로 방송이 죽었는데 그 피해는 방송 작가들이 받는 거예요."

그래서 방송 작가들은 월드컵이나 올림픽 때 경제적으로 제일 어렵다고 한다. 이 기간이 되면 각 방송사는 2~3주 정도 기존 방송 편성을 죽이고 스포츠 경기로 채운다. 이렇다 보니 방송 작가들 세계에서 월드컵이나 올림픽은 불청객 취급을 받는다.

- 그런데도 이 일을 계속하는 이유는 무엇인가요.
"사건은 슬픈 내용이었는데 개인적으로 보람 있었던 기억이 있어요. 얼마 전에 아파트 주민이 외벽 청소하던 노동자 생명줄을 끊어서 죽인 일이 있었잖아요. 제가 사건사고 담당이라서 소식 접하고 유족분에게 전화로 인터뷰를 요청했어야 했는데, 그때 너무 죄송하고 미안해서 머뭇거렸거든요. 그러다 전화를 걸었는데 유족분이 흔쾌하게 인터뷰에 응해주시고, 방송 이후에도 직접 전화를 주셔서 언론 보도 때문에 너무 큰 도움 받았다고 고맙다고 말씀하시는 거예요. 그때 내가 하는 일이 누군가에게 작은 도움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하니까 기쁘더라고요."

- 일하면서 다치거나 아프면 어떻게 해결하나요? 그리고 현장에서 가장 먼저 바뀌어야 할 점은 뭐라고 생각하나요.
"아무래도 컴퓨터 작업이 많으니까 목, 어깨, 손목 이런 데가 늘 아파요. 그런데 산재는 신청도 어렵고 승인받는 것도 어렵잖아요. 저희는 산재보험료를 안 내는 사람들도 많거든요. 정규직으로 일하면 무급으로라도 병가 내고 쉬려고 할 텐데 방송 작가는 99%가 비정규직이니까 병가 내고 쉬는 건 불가능하죠. 지금 당장 꼭 바꾸고 싶은 거는 다운 계약서를 써보는 거예요. 방송 작가들이 평균 6개월이나 1년에 한 번씩 프로그램이나 방송사를 바꾸게 되거든요.

그런데 단 한 번도 제대로 된 계약서를 써본 적이 없어요. 제가 정책방송원에서 일 할 때도 거긴 정부기관인데 계약서를 안 쓰더라고요. 그러니까 정확히 내 월급이 얼마인지 노동조건은 어떠한지 몰라요. 제가 MBC에서 일하게 됐을 때 조연출한테 월급이 얼마냐고 물어보니까 "근데 그걸 왜 물어보세요"라고 답을 하더라고요. 노동부도 우리는 노동자가 아니고 개인사업자라서 보호해줄 수 있는 방법이 없데요. 정권 바뀌고 나서는 노동자성을 인정받을 만한 자료를 찾아오라고는 안내하는데 앞으로 어떻게 될지는 모르겠어요."

그래서 황민주 님은 방송 작가들 스스로 어떤 조건과 환경에서 일하고 있는지 알 수 있고, 부당한 대우를 받았을 때 항의할 수 있도록 근거가 되는 표준 계약서가 필요하다는 이야기를 강조했다.

- 마지막으로 하고 싶은 말씀은.
"사실 방송 작가들이 열악하게 일하는 거 모르는 사람은 없잖아요. 그렇지만 방송 작가들 이 일을 너무 하고 싶어서 시작했거든요. 일하면서 자부심도 느끼고 즐겁게 살고 있고요. 그런데 한쪽에선 방송 작가들이 너무 불쌍하고 열정 페이 받으면서 일하는 사람으로 비치는 것 같아서 마음이 복잡해요.

어떨 땐 열악한 환경이 알려지면 좋겠다는 마음과 우리가 불쌍하게 여겨지는 것 같아서 괜히 불편한 마음 사이에서 늘 왔다 갔다 하게 돼요. 그래서 요즘 생각하는 게 다른 사람들이 우리가 불쌍하다고 생각하는게 아니라 방송 작가들 스스로 어떠한 마음으로 어떠한 환경에서 일하고 있는지, 변화가 필요한 건 무엇인지 말하고 알리는 게 너무나 필요하다는 생각이 들어요. 그렇게 되도록 더 많은 작가들을 만날 거예요."

<일터> 통권 165호 / 2017.10·11



- 목차 - 

특집 : 우리에겐 노조가 필요하다 

26 노동조합 ‘각오해야 하는 선택’이 아니어야 한다 

28 전체 특수고용노동자의 노조 할 권리를 위해 싸우는 대리운전 노동자 

31 저희는 뜨거운 감자가 아니라 민주노조를 하고 싶습니다 

34 택배 노동자들의 권리 찾기 선언 


4 [노동안전건강뉴스] 


6 [지금 지역에서는] 반올림 열 세 번째 집단산재신청 진행 


8 [안전보건동향] 조선업종 중대재해 대책 마련을 위한 국민참여 조사위원회 출범한다 산업재해 은폐 시 형사 처벌한다 ' 


10 [안전과 건강 칼럼] 공포의 집이 아니기를 운에만 맡길 것인가 


12 [현장의 목소리] 사람이 사람답게 살 수 있는 안전사회를 그립니다 


16 [A-Z까지 다양한 노동이야기] 화면 밖에서 방송을 만드는 사람들 


20 [연구리포트] A사업장 위험성평가 연구 결과 


24 [사진으로 보는 세상] 


36 [직업환경의학 의사가 만난 노동자 건강 이야기] 나는 감시, 단속적 노동자인가?  


38 [국제안전보건기준에 관한 검토] 한 아이를 키우려면 온 마을의 노력이 필요하다  


40 [노동시간에세이] “오늘 또 한명의 이주노동자가 스스로 목숨을 끊었습니다”  


44 [노동자 건강상식 집에서도 통증 잡자] 붙이면 편해지는 테이핑 따라잡기 (3) 


46 [문화읽기] 손으로 만드는 즐거움 


48 [발칙X건강한 책방] 질병의 사회적 책임에 대한 질문과 답 


50 [유노무사 상담일기 더불어 與] 정형외과 수술 후 섬망 증세 발현과 요양 중 사망 


52 [진실을 침몰하지 않는다] 우리 사회가 죽음을 대하는 자세 


54 [성명서] 이주노동자 사업장변경 제한 폐지 권고한 유엔사회권위원회 결정을 환영한다! 


56 [한노보연 이모저모]



[노동시간에세이] 밤을 잊은 그대가 놓치고 있는 밝은 시간들 /2015.11

밤을 잊은 그대가 놓치고 있는 밝은 시간들

 

 

 

정하나 상임활동가, 노동시간센터 회원

 

 

 

심야 라디오와 함께 시작된 올빼미형 습관

 

수면패턴에 따라 흔히, 아침형 인간과 올빼미형 인간으로 나눈다. 나는 주로 올빼미형 인간으로 살아왔다. 더듬어보면 초등학교 때에는 깨우지 않아도 7시에 바로 일어나 아침 어린이 프로그램도 보고, 밥도 먹고, 씻고도 시간이 남아 심지어 아이 걸음으로 30분은 넘게 걸리는 학교까지 걸어가기까지 했던 거 같다. 생각해 보면, 라디오를 듣기 시작한 다음부터 올빼미스러움이 내 안에 배양되기 시작했던거 같다. 고등학교 시절, 이제는 고인이 된 신해철의 음악도시는 자정부터 새벽 2시까지 하던 프로그램이었는데 거의 매일 빼놓지 않고 듣고 잤던 기억이 있다. 종종 새벽 2시 음악도시가 끝난 후 ‘***의 영화음악을 듣고 3시에 잤다. 왜인지 모르게 컨디션이 좋은 날이나 다음날 학교 안 가는 토요일 같은 날에는 영화음악 프로그램이 끝나고 난 후 하는 밤을 잊은 그대에게라는 방송까지 들었다.

 

당시 대한민국 고등학생들이 모두 그랬듯, 9시 정식 1교시가 시작되기 전 아침 자율학습이 우리 학교에도 있었다. 아침 7시 반까지 등교를 해야 했는데 매일 새벽까지 라디오를 듣고 잠드니 아침에 일어나는 게 죽을 맛이었다. 다행히 고등학교는 집에서 뛰어가면 10분이면 주파할 수 있었다. 거짓말이 아니라 정말 아침 7시에 엄마의 등짝 스매싱을 맞고 일어나서 세수만 겨우 하고 교복 챙겨 입고 넘어질 듯 뛰며 겨우 등교했다. 학교에 가서도 정신이 차려질리 만무했고, 남들 다 긴장하고 공부하는 고3 때에도 나는 새벽 라디오 청취를 끊지 못해 2교시까지는 거의 비몽사몽 공부 포기 모드의 학생이었다.

 

유흥가에 접근성이 커진 성인이 된 후에는 말할 것도 없었다. 물론 아르바이트나 직장 생활을 시작하면서 출근 시간이 정해져 있고, 밤의 자유를 즐기는 것은 나름의 조절을 해야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올빼미형 인간이라고 스스로 생각한다. 그 근거는 첫째, 전날 일찍 잔다고 하더라도 여전히 아침에 일어나는 것은 힘들다는 것. 물론 (아직 젊다고는 해도) 20대 후반을 지나 30대를 지나면서 나도 몸이 아프지 않은 이상 예전처럼 하루 12시간씩 자거나 하지 않게 되고, 피곤해도 아침 8시면 눈이 떠지긴 한다. 그렇지만 아침은 늘 피곤한 시간이고 그리 생산적인 일을 할 수가 없다. 둘째, 하루 중 집중력이 제일 발휘되는 시간은 오후 3~4시 정도, 그리고 밤 10시 경이다. 읽히지 않던 자료, 안 써지던 글도 이 시간에는 속도가 휙휙 잘 나간다. 비교적 시간 활용이 자유롭던 대학원에 다니던 시절, 수면시간에 변화를 줘보면서 집중력 폭발시간을 바꿔보려고 해봤는데 결과는 별로 변화가 없었다. 고딩시절부터 단련한 올빼미 스타일이 이미 몸에 각인되었나 보다.

 

심야에만 운영하는 N버스 생긴 서울, 한 블로그에는 올빼미족들에게 심야버스 퇴근노선도를 제공하고 있다 (출처 : 한화생명 블로그)

 

노는 것도 밤이 편한 올빼미? 실은 시간이 없다

 

이런 몸이다 보니, 노는 것도 밤에 노는 게 좋다. 일없는 주말에 영화를 한 편 보려고 해도 4시 이후 저녁 타임 걸 예약하게 된다. 가격도 싼 조조할인도 있는데도, 영화는 날 밝을 때 보는 게 왠지 이상하다. 도리어 새벽에야 끝나는 심야영화를 선택하는 판이다. 하루 일과 중 을 하는 시간이 늦게 종료가 되는 탓도, 습관이 그렇게 배긴 탓도 있을 것이다.

 

사실, 나뿐 만 아니라 임노동을 하는 많은 사람들이 주 중에 여가를 갖기란 어려운 일이다. 최소한 퇴근 시간인 6시 이후부터야 가능하다. 9시 출근 전에 수영을 하러 다니거나 외국어 공부학원을 다니는 직장인 친구들을 본 적이 있긴 하지만, 대부분 1~2달 하다가 퇴근 시간 이후로 시간을 변경하였다. 하지만 퇴근 이후에도 그리 넉넉한 여가는 가질 수 없다. 출근 시간 지옥철부터 정신없이 하루를 보내다 보면, 빨리 집에 들어가 드러눕고 싶은 마음이 더 많이 든다. 게다가 칼퇴근하는 날이 뭐 얼마나 많으랴. 체력의 잔여량 정도로나, 하루 중 남은 시간의 양으로나 그리 넉넉하지는 않을 것이다.

 

예전에 방송작가를 하던 지인이 이 일을 시작한 이래, 늘 피곤하고 시간이 없다라는 불평을 하는 걸 들었다. 시사라디오 방송의 대본작가였던 그녀는, 매일매일 새로운 대본을 써야 했다. 당일 방송 녹음이 끝나면 다음 날 아이템회의를 하면서 대본을 쓰고 퇴근 후 잠들기 전까지 계속 실시간으로 뉴스검색 등을 하면서 대본을 완성해 간다고 했다. 녹음과 회의를 마치면 반드시 방송국에 있어야 하는 것은 아니기 때문에, 대본 초고를 잡아놓고 퇴근해 친구도 만나고 문화생활도 즐기긴 하지만 집에 들어가서 완성해야할 일이 있으니 언제나 여유가 없고 뒷 꼭지가 늘 당긴다는 것이었다. 그때 위로랍시고 나는 이런 말을 해주었다. “언니, 일반 직장인들 대부분이 그렇긴 해요. 다음날 출근이 부담스러워서 주중에 약속을 잘 안 잡더라고요.” 물론 그녀에게 전혀 위로가 안 되었을 것이다.

 

 

누구에게나 소중한 밝은 시간의 여유

 

아무리 내가 올빼미이다 손, 요즘 같이 하늘이 높고맑은 날이 많은 이 계절을 이렇듯 스치듯 나가야 하는 게 아쉽다. 나뭇잎의 색깔이 변해가고, 그것이 파란 하늘과 콜라보레이션되어 함께 그려내는 운치는 해 떠 있는 시간에야 감상할 수 있다. 그러나, 이 풍경이 그려내는 시간의 의미를 음미할 시간이 출근 시간 45분 남짓에 불과하다는 게 슬프다. 물론, 사회단체는 일반 기업처럼 엄격한 출퇴근 근태관리가 없으니 커피 한잔을 사서 가느라 늦게 간다 해도 크게 염려할 게 없긴 하다. 그래도 아쉬우면 사무실 옥상에 괜히 더 자주 나가 허리도 펼 겸 가을 공기를 마신다. 건물 앞쪽에서 예쁘게 물들어가는 관악산이 훤하게 보이지만 아쉽게도 옥상에서는 보이지 않는다. 물론, 사무실 안쪽에 있는 큰 유리창으로는 관악산이 훤히 보이긴 하지만, 정작 실내에 있을 땐 창문 쪽으로 고개를 잘 안 들게 된다.

 

그리고 퇴근길에는 시간이 좀 늦었더라도 생각나는 친구에게 전화한다. 언제 만나자거나 특별히 상의할게 있다거나 하는, 그런 전화는 아니다. 그야말로 안부 전화. 약속을 잡아 실제로 면대면으로 보는 건 좀 미루게 될 수밖에 없는 상황 속에, 지금 바로 생각날 때 전화라도 안 하면 점점 더 관계가 소원해질 거 같아 안부로 마음을 전한다. 평일이든, 주말이든 관계에 공들이는 시간이나 에너지가 넉넉지 않으니 이렇게라도 한다.

 

하는 활동이 노동안전보건이다 보니, 장시간노동과 심야노동이 건강에 끼치는 악영향을 많이 알게 된다. 생체리듬을 교란하고 수면장애를 유발한다, 오래 앉아 있으면 뇌심혈관계 질환 발생률을 높인다, 과로사의 원인이 된다, 면역력을 떨어뜨린다는 얘기들이다. 국제암연구소(IARC)가 야간노동을 암을 유발할 가능성이 있는 유해요인’(Group 2A)으로 분류했다는 것도 알게 되었다.

 

이런 과학적인이야기를 마치 증명이라 하듯, 내 몸이 이미 변해가는 것을 본다. 성인이 된 후 알게된 심야까지 이어지는유흥과 공부, 노동은 무엇보다 먼저, 야식습관을 일상화했고 살이 어마어마하게 쪘다. 수면이 부족하고 스트레스가 없으면 코티솔 (코티솔은 혈액 속 지방과 당 수치를 일시적으로 높이기 때문에 코티솔 수치가 높은 상태가 지속되면 비만, 고혈압, 당뇨, 피로, 우울증, 기분저하 등이 생길 수 있다고 한다.)이라는 호르몬이 과다 분비되고, 비만하게 된 다더니 내가 딱 그렇구나 하고 몸소 보여주고 있다. 감기 따위 잘 걸리지 않았는데, 요즘 보면 1년에 한 두 번은 꼭 감기몸살을 앓고 지나간다. 면역력이 확실히 떨어진 것이다. 확실히 나이도 좀 더 들었지만 면역력을 보강할 다른 방도를 취하지 않았으니, 계속 이런 식이면 더 안 좋아질지도 모른다.

 

인생이 하나 쥐면 하나 놓아주는 것이라 그런가. 올빼미형 인간이 밤을 쥐고, 낮을 놓아주며잃고 놓치고 있는 것이 있다. 특히나 건강영향은 인류로 태어난 이상 누구든 피해가기 어렵다. 올빼미로 살기로 그렇게 태어난 것인지, 아니면 여러 사회 구조적 맥락 속에서 그리 택해진 것인지부터 잘 따져봐야 할 노릇이다. 어느새 놓치고 있는 풍경과 관계, 잃어버린 몸과 정신의 건강 중에서 내가 붙잡고 싶었던 것은 없었는지부터 살펴보는 것도 도움이 될 것 같다. 여전히 나는 올빼미처럼 해가 뉘엿한 시간부터 에너지가 더 나는 사람일 수 있겠지만, ‘올빼미로만 살고 싶지는 않다. 아침형 인간으로 개조할 필요도 능력도 없긴 하지만, 날 밝은 시간에 가질 수 있는 삶의 소중함도 느끼고 싶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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