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Z까지 다양한 노동이야기] 저희는 영어하는 기계가 아니에요 / 2018.07

저희는 영어하는 기계가 아니에요

- 국제회의 통역사 전소희 님 인터뷰

재현 선전위원장


최근 한반도를 비롯해 전 세계가 평화의 길에 큰 관심을 가지고 있다. 4.27 판문점 남북정상회담과 6.12 북미 정상회담을 진행하는 동안 언론은 방대한 양의 기사를 쏟아냈다. 그 과정에서 각국 정상들 못지않게 ‘그림자’들이 주목을 받았다. 바로 통역사이다. 어느 때보다 중요하고 역사적인 순간이기에 각국 정상과 그들의 입에 전 세계가 주목했다. 이번 <A~Z까지 다양한 노동이야기>는 통역사로 일하는 전소희 님을 지난 6월 26일에 만났다.


사람들에게 정확한 메시지를 전달해야 하는 역할

“한국에서 통역사는 주로 한국어를 영어로, 영어를 한국어로 통역하죠. 때로는 번역일도 하고요. 통역과 번역 중에 더 많이 하는 일은 대중없어서 뭐라 딱 말하기 힘들어요. 통역한다고 했을 때 방식도 다양해요. 정상회담이 열리는 걸 보면, 각 정상 옆에 앉아서 통역하는 사람들이 있잖아요. 그분들은 어떤 장비나 기계 없이 한 사람 말이 끝나면, 다른 사람에게 통역해서 전달하는데 그걸 순차통역이라고 해요. 

순차통역은 정확도가 높다는 장점이 있어요. 그게 아니면 강연이나 포럼에서 외국인이 발제 할때 바로 통역해서, 청중들이 사용하는 통역기로 말을 전달하는 동시통역 방식이 있어요.”

통역사들은 현장에서 직접 일을 하는 경우도 많지만, 방송이나 언론에서 통역을 요구받는 일도 많다. 전소희 님도 얼마 전 북미 정상회담이 진행되는 동안 3일간 한 방송사에 출근해서 통역 일을 전담했다.

“방송국에서는 트럼프가 하는 말을 국민에게 바로 전달하고 싶으니까 저희 같은 통역사들을 섭외해요. 방송사에는 장비가 있으니까 트럼프가 현장에서 하는 말을 바로 듣고 즉각 통역해서 아나운서, 기자, 시청자에게 바로 전달하죠. 이럴 경우엔 장비가 굉장히 중요한데 방송국은 좋은 장비를 사용하는 편이에요. 그런데 가끔 무슨 이유인지 모르겠는데 시끄러운 잡음이 들린다던가, 단어가 중간중간 하나씩 안 들린다던가, 버퍼링이 발생하고. 그럴 때면 스트레스가 극심하죠. 뉴스는 생방송이니까 편집도 불가능하거든요. 스트레스를 이렇게 받는 날은 머리도 아프고 몸도 힘들어요. 게다가 온종일 소음을 차단하기 위해서 비좁은 부스에 들어가 있는데 거기에서 이어폰 끼고 초집중을 하니까 피곤하죠.”

전소희 님은 그나마 이번 북미 정상회담은 시차가 크지 않은 싱가포르에서 해서 다행이지, 다른 해외에서 정상회담이 있었으면 그 나라 시차를 맞춰서 일하느라 밤낮도 바뀌면서 생체리듬이 완전히 무너져힘들다고 했다.


업무를 위해 수 많은 준비가 필요한 통역사

“통역하는 분야 역시 엄청 다양해요. 어느 특별한 한 분야가 없죠. 통역사들이 한 분야에서만 일해도 먹고 살 수 있을 만큼 충분한 수요가 없거든요. 그래서 일이 들어오는 대로 다해요. 정말 도저히 감당하기가 어려울 거 같다 그럴 때만 가끔 거절해요. 우리 같은 프리랜서들은 어떤 시기에는 일을 쉬엄쉬엄하면서 아이도 돌보고 그러고 싶을 수 있잖아요. 그런데 통역사는 그게 불가능해요. 한번 거절하면 일이 안들어오거든요. 일 자체도 성수기, 비수기 이렇게 딱 나뉘어서 성수기 때 부지런히 일해야 1년을 먹고 살 수가 있어요.”

통역사들은 다양한 분야를 그것도 외국어로 많은 사람과 국가 정상 등에게 정확한 언어와 뜻으로 전달해야 하기 때문에 공부하는데 상당히 많은 시간이 필요하다.

“공부를 정말 많이 해야 해요. 그런데 문제는 대체로 일을 줄 때 어떤 분야, 주제인지 자세히 알려주지 않는 경우가 더 많아요. 그런 게 참 어렵죠. 보통은 제가 속한에이전시에서 문자로 일이 있는지 알려주거든요. ‘○월 ○일 ○시 장소 : ○○○’ 이렇게요. 일정표 확인하고 시간이 된다고 하죠. 정 못할 거 같으면 안 된다고 하고요.

그리고 나면 나중에 에이전시에 의뢰한 회사 쪽에서 연락을 줘요. 어떤 주제로 할 거고, 자료는 언제까지 줄 수 있고 이런 거 저런 거 미리 숙지해 달라 이렇게요. 그러면 그때부터 공부를 해야 돼요. 그나마 다행인 건 공부가 어렵고 쉽고를 떠나서 자료를 미리 주는 게 제일 좋거든요. 그런데 많은 곳에서 자료를 행사 당일 현장에서 줘요. 이런 상황도 예측이 불가능하죠. 한 달정도 먼저 주는 곳부터, 며칠 전에 주는 곳, 현장에서 주는 곳까지 다양하거든요. ”


급변하는 상황을 대처하며 일해야 하는 어려움

“하루 스케줄도 상황에 따라 너무 달라요. 보통 행사들을 생각해보면 이렇겠네요. 통역이 있는 날은 보통 오전 9시에 행사를 시작하니까 오전 8시까지 현장에 가요. 가서 발표자랑 관계자분들과 인사하고, 동시통역일 경우에는 장비를 체크하죠. 현장에서 새로 들어오는 자료도 있으니 파악하고 있고요. 동시통역으로 진행하는 경우에는 혼자서 오랫동안 할 수가 없어서 두 명의 통역사가 같이하거든요. 시간은 20~30분씩 교대로요. 두 명이 행사 시작해서 점심 먹을 때까지 쭉 교대하면서 통역하고 점심 먹어요. 물론 식사도 제대로 못 먹는 경우가 더 많아요. 오후에 들어오는 자료도 봐야 하고 새롭게 변하는 내용도 많고 그래서요. 오후에 일 시작하면 역시 교대로 오후 5~6시까지 일을 하고 마치면 진이 다빠지죠. 하루에 일을 얼마나 하는지도 상황에 따라 달라요. 1시간부터 시작해서 반나절, 온종일 뭐 이렇게요.”

전소희 님은 통역사들이 일하는 동안 굉장한 집중력을 발휘하다 보니 힘이 드는데 일하는 시기 자체도 몰려있어서, 일이 바쁜 시기에 체력 소모가 더 크다고 어려움을 토로했다.

“아까도 이야기했지만 일을 하는 시기가 몰려있어요. 여름, 겨울에는 일이 거의 없고 봄, 가을에 일이 다 몰려있죠. 사람들 생각이 다 비슷해서 공휴일, 샌드위치 연휴, 날씨가 궂은날 이런 날에는 행사를 피하잖아요. 그리고 나면 날짜가 몇 개 안 나오니까 일하는 시기도 요일도 몰려 있어요. 전체적으로 1년 달력으로 보면 절반은 일하고 절반은 일이 없는 거 같아요.”

통역사 중 일부는 일이 없는 비수기 때 책 번역 일을 하는 경우가 있다고 한다. 전소희 님도 그러한데 번역일은 일하는데 들어가는 시간이 긴 데 비해서 그 시간이 보장되지 않는 경우가 많고, 비용 역시 적어서 일하지 않게 된다고 말했다.


열악한 처우에서 일하는 통역사

“프로젝트나 당일 행사에 따라서 다르겠지만 6시간 일한다고 하면 90만 원 정도 받아요. 이 중 세금 떼고 에이전시에 수수료 내고 그러면 많이 깎여요. 만일 방송국이나 언론사에서 동시통역 한다 그러면 페이를 조금 더 받아요. 페이를 떼먹거나 깎아 달라는 경우는 정말 잘 없는데 가끔 에이전시에서 안주거나 일 끝나고 몇 주 지나서 돈을 주는 경우가 있어서 그때 페이가 얼마였는지 메모를 잘해야 해요.”

전소희 님에 노동조건이나 환경에 있어서 어려운 점은 무엇인지 물었다.

“아무래도 오랫동안 고도로 집중 해야 하니까 그 점이 가장 힘들어요. 집중하는 게 정신적인 측면이라면, 물리적인 측면은 귀를 잘 보호해야 해요. 어쨌든 소리가 안 들리면 통역을 못 하니까 늘 귀를 보호해야 하죠. 그리고 스트레스 때문인지 몰라도 두통이 심해요. 통역사들 대부분이 두통을달고 살아요. 내용이 어려울 때 스트레스도 많이 받아요. 특히 의학, 제약 이 분야는 정말 어려워요. 물리적으로 부스에서 일할 때 평수가 1평도 안 되는데 바람이 아예 안 통해서 답답한 것도 있어요. 전혀 쾌적하지가 않거든요. 다른 나라랑 비교해서 조금 그렇지만 유럽은 통역사들 협회가 있는데 거기는 입김도 세고 유럽 사회 제도나 문화가 있어서 통역사들 부스 환경과 노동조건을 이렇게 조성해야 한다는 강제조항이 있어요. 크기는 어느 정도 해야 하고 환풍기가 반드시 있어야 한다. 이런 걸 정하는 거죠.”

반면 한국은 통역사들이 조직되어 있지않고 그들의 노동에 대한 사회적인 인식이 낮다 보니 강제하는 조치가 없다. 결국 한국의 통역사들은 현장 환경에 맞추거나 주최 측에 항의하는 등 개인적으로 문제를 해결해야 하는 상황이다.

“일이 몰릴 때가 정해져 있으니까 이때는 밤새워서 일하고 과로하고 이럴 때가 힘들죠. 무엇보다 제일 힘든건 점심 먹고 쉬는 것부터 시작해서 모든 상황을 내가 통제할수 없다는 게 제일 스트레스에요. 내가 일을 잘한다고 일이 잘되는 것도 아니고요. 정말 내가 흥미가 있고 잘 알고 있는 주제라고 해도 말을 이상하게 하는 사람이 있으면 너무 힘들어지는 거죠. 본인이 발표를 못 해놓고 일이 안 풀린다고 통역사를 탓하는 사람들도 많아요. 저를 전혀 고려 안 하고 자기가 하고 싶은 말을 굉장히 빨리하는 사람도 있고요. 그럴 때가 아주 힘들죠.”

전소회 님은 통역사가 아무리 업무 준비를 오래 하고 경력이 쌓이더라도 상황이 꼬이면 스스로 어떻게 할 방법이 없다고했다.


우리는 기계가 아니라 사람입니다 

“프리랜서의 유일한 장점 중 하나라고 해야 하나요? 지루해질 일이 없다는 거예요. 일이 따분하지가 않죠. 제가 내용을 충분히 이해하고 발표자랑 저랑 빙의가 돼서 소통을 잘했다, 그럴 때도 기뻐요. 반면에 발표자랑 저랑 동문서답하고 있고 내용 숙지가 안 되고 그러면 힘들죠. 그리고 아무래도 프리랜서니까 자유로운 게 있죠. 일이 성수기에 몰려서 힘들기도 한데 반대로 비수기는 한가하니까 넉넉하게 공부도 하고 쉴 수 있는 시간도 있고요.”

앞으로도 통역사들이 즐겁게 보람을 가지고 일하기 위해서 어떤 점이 바뀌어야 할지 물었다.

“기본적으로 통역사를 기계 취급하는 사람들이 많아요. 저 방구석에서 일하거나, 단추 하나 누르면 알아서 내용이 나오니까 또 하나의 기계 취급을 하거나 투명인간이라고 생각하는 걸 바꿔야겠죠. 외국은 행사를 주최하는 책임자나 사회자들이 공식적인 자리에서 통역으로 수고한 스태프에게 인사를 꼭 해요. 그런데 한국이 주최하는 행사에서는 그러는 경우가 거의 없어요. 그리고 외국은 통역사 중에 남성들이 많은데 한국은 절대다수가 여성이에요. 왜 그럴까요? 아무래도 우리가 하는 일이 별로 중요하지 않은 일로 취급되고, 페이도 많지 않고, 열악한 환경이라 그런 거 같아요. 남성들은 아무래도 더 좋은 환경에서 일할 기회가 많잖아요.”

인터뷰를 읽는 독자와 통역사를 꿈꾸는 사람들, 관계자들에게 마지막으로 전하고 싶은 말을 물었다.

“글쎄요 방금 말씀드렸듯이 통역사들을 단추 하나 누르면 자동으로 영어 하는 기계가 아니라는 점을 알아줬으면 해요. 앞으로 오랫동안 이 일을 해야 하고 싶거든요. 그리고 통역사들이 조금이라도 인간답게 일할 수 있는 환경이 갖춰졌으면 해요.”

[A-Z 노동이야기] 화면 밖에서 방송을 만드는 사람들 / 2017.10·11

화면 밖에서 방송을 만드는 사람들

- 방송작가 황민주 님 인터뷰

재현 선전위원장


우연한 기회에 방송국 조연출로 알바를 하면서 방송작가의 꿈을 키웠다던 황민주님은 지난 3년간 방송국에서 일했다. 최근에는 현장에서 일하는 방송작가 노동자의 노동인권을 위해 ‘공정노동을 위한 방송작가 대나무 숲’를 운영하며 온오프라인 할 것 없이 활동하고 있다. 이번 일터에서는 황민주님이 짧다면 짧고 길다면 긴 방송작가 생활 3년을 어떻게 기억하고 있는지에 대해 자세한 이야기를 들어보았다.

방송작가는 어떻게 시작하게 되었나요.

"대학에서 언론 정보학을 전공했는데 정작 학교 다닐 때는 전공을 살릴 생각이 없었어요. 부모님도 공무원 시험을 준비했으면 좋겠다고 강하게 권유하셨거든요. 그래서 학교 휴학하고 시험 준비를 했는데 도저히 못할 것 같아서 공부는 정리하고 학교 복학 전까지 등록금 마련하려고 알바를 구했어요. 그때 마침 한 파견업체에서 제 전공을 보더니 방송국에 자리가 있으니 오라고 해서 그때부터 1년 반 동안 방송국에서 뉴스 송출하는 조연출 알바를 했어요. 왜 뉴스 진행할 때 앵커가 보는 카메라 화면을 프롬프터라고 하잖아요 그걸 만들었어요.

그리고 뉴스에 필요한 영상 틀어주고 그 밑에 자막 넣고, 앵커 뒤에 있는 배경화면에 맞는 사진이나 영상도 찾고요. 한 달 일해서 받는 월급은 150만 원 정도였는데 그것도 제가 새벽 4시까지 출근이라 하루 교통비 1만 5천 원이 포함된 거였어요. 사실상 최저임금도 못 받으면서 일한 거죠. 그렇게 일하면서 제가 예전부터 글 쓰는 걸 좋아해서 그런지 조연출 일보다 옆에서 방송 작가가 하는 일이 재미있어 보이더라고요. 그때부터 방송 작가가 되기로 했어요."

그 뒤로 황민주님은 KBS 구성작가 협의회 홈페이지에 구인구직 글이 올라오는 걸 보고 이력서를 보내며 일을 찾았다. 이곳 홈페이지가 방송 작가 구인구직이 제일 활발한 곳이기 때문이다. 지상파 3사에서 운영하는 아카데미에서 구성작가 반 수업을 듣지 않는 이상 대부분은 방송사나 외주제작사가 작가의 이력서를 보고 직접 계약하는 형태로 작가 일을 시작한다.

"제가 보낸 이력서를 보고 KTV라고 국가에서 운영하는 정책방송원 방송국에서 연락이 와서 휴먼다큐 프로그램에서 일하게 됐죠. 서울에서 세종시까지 출퇴근 하는 게 힘들어서 6개월 정도 막내 작가로 일했어요. 그다음엔 MBC에서 1년 가까이 일하고, 채널 A에서 1년 반 정도 일했고 입봉도 여기서 했어요."

- 방송국에서 하루 동안 어떤 일을 하나요.
"KTV 방송은 수요일에 한 번 30분 동안 방송했기 때문에 주 단위로 일을 했어요. 방송내용이 다른 사람들을 위해 의미 있는 일을 하는 일반인들을 조명하는 다큐멘터리였어요. 그래서 방송을 하는 수요일부터 금요일까지는 다음 방송 아이템을 찾거나 사람을 섭외했어요. 섭외가 확정되면 전화로 사전 인터뷰하고 어떠한 내용으로 촬영하면 좋겠다는 구성안을 촬영팀에 작성해줘요. 촬영팀은 그대로 주말 내내 영상 찍어서 월요일에 제작팀에 줘요.

그 다음날부터 막내작가들은 촬영한 걸 프리뷰라고 해서 영상에 있는 모든 상황을 말로 풀어요. 누가 등장했다 어떤말을 했다 등등요. 그걸 보고 제작진이 방송에 나갈 영상을 대략 편집한 가편집본을 만들면 저희는 자막 입히고, 더빙하고 작업을 마치죠. 1주일 내내 이렇게 방송을 만들면 수요일 오전에 부장급 임원들이랑 시사회를 열고 수정 의견 있으면 반영해서 저녁에 방송을 내보내요. 그렇게 방송 끝나면 다시 아이템 찾고 지난주에 했던 일을 반복하고요."

황민주 님은 매주 계속되는 방송에 문제가 생기지 않도록 하기 위해 최소 10개 이상의 아이템을 확보하려고, 퇴근하거나 주말에도 아이템 찾기를 쉴 수 없었다고 한다.

"MBC에서는 창사특집 방송이었는데 청년을 주제로 해보자는 것 외에 세부적인 내용이 없어서 방송 제작보다는 가장 처음 기획부터 같이했어요. 그때는 아이템 회의 정말 많이 했는데 하면서 허탈했던 기억이 있어요. 피디나 조연출분들이 요즘 불안정한 청년들, 3포 세대 청년들 취재해보자면서 누가 좋을지 고민하는데, 사실 자기들 눈앞에 방송 작가들이 있잖아요. 최저임금 받으면서 주말도 없이 일하는데 저희가 그렇게 일하는 건 당연하다고 생각했나 봐요. 아무튼, 그래서 기획이 정해지면 방송에 필요한 출연진, 대역배우, 소품, 광고까지 모든 섭외를 다 하는 게 중요했어요. 

채널A에서는 오후 시간대 뉴스 프로그램에서 일했어요. 주간에 있던 뉴스들에 이슈가 된 몇 개를 선정해서 집중적으로 분석하는 방송이었죠. 그때는 점심시간 전까지 주요뉴스를 선정하는 게 중요해서 아침에 늘 쫓기며 일했던 것 같아요. 출근하자마자 회사 내부 홈페이지에서 기자들이 이슈들 발제한 자료 읽고, 오늘 청와대, 국회 등에서 어떤 주요 뉴스가 있는지, 자료를 받으려면 어느 기자에게 연락하면 되는지 확인하고 현장에 연락해서 자료 요청하고 인터뷰를 받고 그랬었죠. 그리고 나서 생방송 때 전체적인 영상을 어떻게 구성할지 스케치해서 제작팀에 넘기고, 앵커한테 순서지랑 대본 주고, 패널한테는 예상 질문과 답변할 때 참고해야 할 자료를 정리해줬죠. 방송 시작하면 작가 몇 명은 부조정실이라고 하는데 거기서 방송을 송출하고 몇 명은 스튜디오에서 앵커랑 패널들한테 진행 상황 알려주고, 속보 있으면 안내하고 그렇게 하루 일을 마무리했어요."

- 일하면서 가장 어려웠던 건 뭐였나요.
"처음 조연출 알바 할 때 세월호 참사가 있었어요. 그때는 저뿐만 아니라 다들 너무 슬퍼해서 평점심을 유지하고 방송하는 게 힘들었죠. KTV에서 일할 때는 일을 해도 해도 끝이 없어서 답답했어요. 일반인들 섭외하는 것도 어려웠고요. 제가 만약 섭외를 못 하면 선배 언니들이 "너가 설득력 있게 말을 못 해서 그런 거라"고 혼낼 때는 서럽기도 하고요. 채널 A에 있을 때는 촛불 정국이라 뉴스가 너무 많았잖아요. 일도 많은데다 박근혜랑 태극기 부대 쳐다보면서 일하는 게 힘들어서, 그때는 진짜 영혼은 집에 두고 몸만 출근해서 기계처럼 일했던 것 같아요. 그리고 방송 작가들은 다 공감 할 텐데 전화하는 일이 어려웠어요. 생판 모르는 사람한테 방송을 출연해달라고 전화하고, 인터뷰도 해야 하는데 용기가 안 나더라고요. 그래도 방송 작가는 전화로 일 시작해서 전화로 일 끝나니까 꾸역꾸역했던 것 같아요. 아 그리고 뉴스 프로그램을 하다 보니까 온갖 시사 문제를 이해하고 내용을 쫓아가는 일도 처음엔 쉽지 않더라고요."

- 방송 작가에 대한 처우는 어떠했나요.
"어디를 가나 막내 작가는 대부분 최저임금 못 받아요. 2~3년 정도 지나야 그나마 최저임금 받으려나요. 여기는 돈이 진짜 안 돼서 서울에서 혼자 살면 월세 내고 남는 것도 없어요. 그리고 만일 방송 촬영을 마쳤어도 방송국에서 내부 사정으로 방송을 못 하거나 안 하잖아요 그걸 방송이 죽는다고 하는데 그랬을 때 우리는 주급을 못 받아요. 내부 사정으로 방송이 죽었는데 그 피해는 방송 작가들이 받는 거예요."

그래서 방송 작가들은 월드컵이나 올림픽 때 경제적으로 제일 어렵다고 한다. 이 기간이 되면 각 방송사는 2~3주 정도 기존 방송 편성을 죽이고 스포츠 경기로 채운다. 이렇다 보니 방송 작가들 세계에서 월드컵이나 올림픽은 불청객 취급을 받는다.

- 그런데도 이 일을 계속하는 이유는 무엇인가요.
"사건은 슬픈 내용이었는데 개인적으로 보람 있었던 기억이 있어요. 얼마 전에 아파트 주민이 외벽 청소하던 노동자 생명줄을 끊어서 죽인 일이 있었잖아요. 제가 사건사고 담당이라서 소식 접하고 유족분에게 전화로 인터뷰를 요청했어야 했는데, 그때 너무 죄송하고 미안해서 머뭇거렸거든요. 그러다 전화를 걸었는데 유족분이 흔쾌하게 인터뷰에 응해주시고, 방송 이후에도 직접 전화를 주셔서 언론 보도 때문에 너무 큰 도움 받았다고 고맙다고 말씀하시는 거예요. 그때 내가 하는 일이 누군가에게 작은 도움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하니까 기쁘더라고요."

- 일하면서 다치거나 아프면 어떻게 해결하나요? 그리고 현장에서 가장 먼저 바뀌어야 할 점은 뭐라고 생각하나요.
"아무래도 컴퓨터 작업이 많으니까 목, 어깨, 손목 이런 데가 늘 아파요. 그런데 산재는 신청도 어렵고 승인받는 것도 어렵잖아요. 저희는 산재보험료를 안 내는 사람들도 많거든요. 정규직으로 일하면 무급으로라도 병가 내고 쉬려고 할 텐데 방송 작가는 99%가 비정규직이니까 병가 내고 쉬는 건 불가능하죠. 지금 당장 꼭 바꾸고 싶은 거는 다운 계약서를 써보는 거예요. 방송 작가들이 평균 6개월이나 1년에 한 번씩 프로그램이나 방송사를 바꾸게 되거든요.

그런데 단 한 번도 제대로 된 계약서를 써본 적이 없어요. 제가 정책방송원에서 일 할 때도 거긴 정부기관인데 계약서를 안 쓰더라고요. 그러니까 정확히 내 월급이 얼마인지 노동조건은 어떠한지 몰라요. 제가 MBC에서 일하게 됐을 때 조연출한테 월급이 얼마냐고 물어보니까 "근데 그걸 왜 물어보세요"라고 답을 하더라고요. 노동부도 우리는 노동자가 아니고 개인사업자라서 보호해줄 수 있는 방법이 없데요. 정권 바뀌고 나서는 노동자성을 인정받을 만한 자료를 찾아오라고는 안내하는데 앞으로 어떻게 될지는 모르겠어요."

그래서 황민주 님은 방송 작가들 스스로 어떤 조건과 환경에서 일하고 있는지 알 수 있고, 부당한 대우를 받았을 때 항의할 수 있도록 근거가 되는 표준 계약서가 필요하다는 이야기를 강조했다.

- 마지막으로 하고 싶은 말씀은.
"사실 방송 작가들이 열악하게 일하는 거 모르는 사람은 없잖아요. 그렇지만 방송 작가들 이 일을 너무 하고 싶어서 시작했거든요. 일하면서 자부심도 느끼고 즐겁게 살고 있고요. 그런데 한쪽에선 방송 작가들이 너무 불쌍하고 열정 페이 받으면서 일하는 사람으로 비치는 것 같아서 마음이 복잡해요.

어떨 땐 열악한 환경이 알려지면 좋겠다는 마음과 우리가 불쌍하게 여겨지는 것 같아서 괜히 불편한 마음 사이에서 늘 왔다 갔다 하게 돼요. 그래서 요즘 생각하는 게 다른 사람들이 우리가 불쌍하다고 생각하는게 아니라 방송 작가들 스스로 어떠한 마음으로 어떠한 환경에서 일하고 있는지, 변화가 필요한 건 무엇인지 말하고 알리는 게 너무나 필요하다는 생각이 들어요. 그렇게 되도록 더 많은 작가들을 만날 거예요."

[A-Z 노동이야기] 음식의 종합예술가, 푸드스타일리스트 / 2017.9

음식의 종합예술가, 푸드스타일리스트

- 푸드스타일리스트 김아름 님 인터뷰

재현 선전위원장


바야흐로 먹방의 시대다. 방송과 SNS에선 언제든 음식을 먹는 장면과 그 음식을 아주 저렴하고 쉽게 만드는 영상들이 수없이 방영된다. 이러한 먹방 컨텐츠가 최근 인기가 점차 줄고는 있지만 1인 가구와 혼밥족에게 여전히 상당한 영향력을 미치고 있다. 이번 일터가 만난 김아름 님도 그 영향력을 매일 같이 확인하며 일하고 있다.


▲ 화려한 조명 뒤에 보이지 않는 푸드스타일리스트 


본인 소개 부탁드려요

“안녕하세요. 저는 김아름이고요 컨텐츠 회사에서 1년 차 푸드스타일리스트로 일하고 있어요. 컨텐츠 회사란 말이 익숙하지 않을 수 있는데 SNS에서 음식 만드는 영상이 나오는 회사들은 다 컨텐츠 회사라고 생각하시면 돼요. 먹방부터, 요식업, 구매대행, 책 발간 등 다양한 사업을 하고 있어요.”

요리사를 할 수도 있었을텐데 이 일을 하게 된 계기가 있나요?

“고등학생 때부터 요리를 좋아해서 대학 진학을 푸드스타일리스트학과로 했어요. 본격적으로 공부하고 졸업해서 처음엔 레스토랑에 매니저로 취직해서 일했어요. 레스토랑 운영과 관련해서 전반을 배울 수 있어서 좋았는데 일이 너무 힘들고 저랑 맞지 않는 것 같아서 그만두고 무역 회사에서 사무직으로 일했어요. 그런데 몸은 편해도 너무 무료하니까 다시 하고 싶은 일을 찾고 싶어서 고민하다가 지금 이 회사에서 푸드스타일리스트로 일을 하게 되었어요. 요리사를 할 수도 있었을 텐데 굳이 이 일을 하게 된 건 요리도 기본 잘하면서, 음식과 함께 공간을 연출하면서 다양한 소품을 사용하고, 사진과 영상도 촬영하면서 종합적으로 일을 할 수 있어서 저랑 맞고 재미도 있겠다고 생각했어요. 푸드스타일리스트는 일할 수 있는 분야도 다양해요. 요리책을 만들기도 하고 호텔, 웨딩홀, 출장뷔페, 파티룸 등에서 음식 세팅하는 일을 푸드스타일리스트가 하거든요. 방송이나 광고, 음식점 메뉴판에 들어가는 사진이나 영상을 제작하는 일도 하고요.”

지금은 회사에서 주로 어떤 일을 하고 있고, 운영은 어떻게 하나요?

“이 회사가 10대~20대층을 주 타깃으로 SNS, YouTube 채널에서 음식 만드는 방송을 하다 보니, 그 음식을 정하고 만들기 위한 레시피와 재료 준비를 하고 직접 만들어요."

김아름 님의 회사와 비슷한 컨텐츠 회사가 요즘 매우 많아지다 보니 경쟁이 아주 치열하다고 한다. 그래서 푸드스타일리스트들은 동영상 조회수나 좋아요와 공유 횟수, 댓글 반응 등에 굉장히 민감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방송할 때 보는 사람이 나중에 혼자서 만드는 법을 따라 할 수 있도록 쉽게 만들어요. 그래야 사람들이 직접 요리를 하게 되고, 그러면 외식업계 광고주나 회사에서 저희 회사에 광고를 문의하고 계약하죠. 그다음부턴 저희가 요리를 정하고 레시피를 만들 때 계약을 한 회사 제품을 사용해요. 요리를 할 때 사람들이 사고 싶은 마음이 들게 하거나 계속 그 제품을 노출해서 판매에 도움이 되게 하는 거죠.”

사회적으로 1인 가구가 증가하면서, 이른바 혼밥으로 간편하게 먹을 수 있는 음식에 대한 요구가 높아지다 보니, 각종 컨텐츠 회사와 외식업계 이러한 방송을 통해 시장을 창출하고 수익을 내고 있었다.

출근해서 퇴근까지 일과가 어떻게 되나요?

“집에서 아침 5시에 일어나요. 준비해서 나가면 5시 반이고 버스랑 지하철 타고 한시간 반 정도 가요. 회사 근처에 도착하면 헬스장 가서 운동하고 씻고 10시에 출근해요. 출근하면 오늘 어떤 요리를 할 지 확인하고 스튜디오에 가서 냉장고 확인하고 없는 재료가 있으면 회사 차 끌고 재래시장, 백화점 등에 가서 장을 봐요. 회사 도착하면 12시쯤 되고 장바구니 들고 스튜디오로 가요. 저희는 어차피 요리할 때 음식 맛보고 먹어야 하니까 점심을 따로 안 챙겨 먹어요. 1시쯤 되면 이제 요리를 해요 하루에 4~5개 정도 만드는데 평균적으로 저녁 8~9시가 돼야 끝나요. 그나마 쉬운 요리가 많아서 빨리 끝난다고 해도 7시에요. 이렇게 촬영하는 게 1주일에 한 두 번 정도 돼요.”

김아름 님은 요리를 마쳐도 일이 끝이 아니라고 한다. 뒷정리하는데 만 1시간 정도 걸리고 사무실에 올라가서 업무 일지 쓰고 영수증 정리해야 퇴근하는 것이다. 그렇다면 요리가 없는 날은 어떻게 일과를 보낼까?

“보통 금요일에 긴 회의를 해요. 회사에서 방송 반응이 어땠는지 SNS 좋아요 횟수, 댓글 반응 같은거 정리해서 피드백을 주거든요. 그럼 그거 평가하면서 다음 한주는 어떤 요리를 할지 레시피는 뭐로 할지 논의해요. 요리를 정하는 방식은 회의 때 푸드스타일리스트 각각 한 명씩 레시피를 제출하고 이건 어떤 층이 좋아할 것 같고, 이렇게 하면 더 간단할 것 같다 등등 설명을 해요. 그 음식이 채택되면 미리 손질해야 할 재료 같은 게 있으면 준비해서 방송을 대비하죠.”

레시피 연구하면서 스트레스를 많이 받을 거 같아요?

“그나마 촬영이 없을 때 레시피를 연구하니까 몸은 살짝 여유가 있는데 정신적으로 스트레스가 상당해요. 주로 대부분 먹방 TV에 나와서 사람들이 알 만한 거, 방송에서 입체적으로 보이기 쉬운 치즈 요리를 많이 연구하는데 사실 워낙 먹방이 많고 오래되면서 사람들이 식상해 하는 게 있어요. 그런데다 저희는 광고 계약 한 회사 제품을 사용해서 레시피를 만들어야 하니까 요리에 제한이 많아요.”

상황이 이렇다 보니 최근 이 회사는 최근 해외에서 유명한 음식을 구매대행 하거나 레스토랑을 운영하는 등 새로운 수익 모델을 만들고 있다고 한다.

“요즘엔 요리하는 것도 계속하면서 회사에서 낸 레스토랑메뉴를 음식으로 만들고 사진이랑 영상 촬영하는 일이 많아요. 그리고 책도 내려고 해서 그거 작업하고 있고요. 사실 이런 게 회사한테 수입이 되니까 일할 때 시간을 많이 쏟게 되는데, 방송은 돈은 별로 안 돼도 회사 인지도가 쌓이는 거니까 그것대로 해야 하거든요. 이러니 매일 새벽에 퇴근하고 회사 간이 침대에서 쪽잠 자고 일어나서 헬스장 가서 씻고 다시 일하고 이 루트를 반복하고 있어요."

일하면서 속상했던 점은 없나요?

"아무래도 다치거나 아플 때 마음이 안 좋죠. 요리하면서 손에 물이 많이 닿으니까 주부습진, 포진 이런 게 심해요. 약 바르고 고무장갑 끼고 별 방법을 써봐도 손에 물이 들어오니까 내가 이렇게까지 일을 해야 하나 싶어요. 그리고 매일 서서 일하니까 허리도 아프고 부종이 너무 심해요. 집에 와서 꼭 족욕을 하는데 그런데도 안 풀려요. 다리에 쥐가 나니까 새벽에 자다가 깬 적도 많고요. 공간 연출할 때 무거운 나무판 같은 거 들고 다니고, 시장도 한꺼번에 많이 보니까 그 무게도 부담이 돼요.

아픈 거 말고는 아무래도 같이 일하는 동료들 나잇대가 저랑 비슷하다 보니 또래 친구들보다 일을 못 한다는 생각이 들 때 속상해요. 선의의 경쟁이라고 해야 하나 그런게 없지 않아 있거든요. 살이 계속 찌는 것도 짜증이 나고 스트레스에요. 일하면서 음식 맛보고 해야 하니까 입사해서 지금까지 살이 8kg 나 쪘어요. 내 능력으로 최선을 다했는데 남들이 그건 아니라고 질책 할 때도 힘들고 속상해요. 이럴 때 친구들한테 속 시원히 마음에 있는 이야기하고 싶은데 친구들은 대부분 학교에 다니니까 공감도 안되고 제가 회사 힘든 이야기를 하면 하루 이틀이면 들어주지만 제가 매일 그러니까 이젠 듣기 싫어하죠."

반대로 일하면서 즐거웠던 적은 언제에요?

"누구나 다 아는 방송이나 책에서 제 손이 나올 때 기쁘고 뿌듯해요. 음식점 갔을 때 메뉴판에 제가 만들고 촬영한 음식이 있으니까 자부심이 느껴지더라고요. 그런 재미라도 있어야죠. 그리고 촬영할 때 어려운 요리인데 뭔가 쉽게 척척 될 때가 있어요. 자주는 없는데 그럴 때가 기쁜 것 같아요. 말하고 나니 속상한 게 더 많네요."

사람들이 푸드스타일리스트라는 직업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 것 같아요? 그런 인식이 불편하거나 그렇지는 않나요?

“대부분 신기해하거나, 우와 그런 것도 있어요! 와 멋있다 대박이다!는 이야기를 가장 많이 듣는 것 같아요. 어떤 분들은 요리 엄청 잘하겠네! 이렇게 말씀하시는데 그럴 땐 속으로 조금 찔려요. 요리를 기본 하는 거지 요리사처럼 그렇게 잘하는 건 아니거든요. 아 연세가 있으신 분들은 결혼해서 남편 밥 하나는 잘하겠다고 1등 신붓감이라는 이야기를 하세요. 특히 회사에서 청소하는 아주머니들이 저만 보면 매번 그 말씀을 하세요.”

5년 뒤나 10년 뒤에는 어떻게 살고 있을 것 같아요?

"글쎄요 이 일은 계속할 것 같은데 지금 회사에 있을지는 모르겠어요. 신생 회사라서 체계가 계속 바뀌고 자리도 불확실해서요. 동료들도 이 회사는 한 번 쯤 경험해보고 더 큰 회사를 가거나 프리랜서로 일하려고 해요. 지금도 일을 하고 있는데 앞으로 뭐 해먹고 살지 이걸 진짜 많이 생각해요. 지금 일이 워낙 힘들고 만족도가 떨어져서 그런지 이 생각을 계속하게 돼요. 그리고 독립도 하고 싶어요."

마지막으로 하고 싶은 이야기가 있어요?

"인터뷰 하다 보니 대학 입학할 때 이 일을 너무 하고 싶어서 자기소개서에 큰 포부를 쓰고 면접 보고 했던 기억이 떠올랐어요. 지금 일이 조금 익숙해지면서 나태해진 게 없지 않아 있는데 인터뷰하면서 그때의 포부 자신감을 다시 찾아가는 느낌이 들어요. 고맙습니다."

여행을 좋아하는 아름 씨는 언젠가 반드시 세계일주의 꿈을 이루고 싶다고 한다. 많은 사람에게 유익하고 즐거움을 주는 푸드스타일리스트로써 꼭 성공하길 바라며 원하는 세계일주의 꿈도 꼭 이룰 수 있기를 늘 응원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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