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집] 1. 미소의 무게 / 2014.11

[특집] 판매서비스 노동자의 웃음과 눈물


11월 특집에서는 감정 노동을 중심으로 판매서비스 노동자의 안전보건 문제를 살펴본다. 판매 서비스 노동자들의 감정 노동을 이론적으로 정리하고, 최초로 감정노동 수당을 쟁취해낸 로레알 코리아 노동조합 사례로 현장을 만났다. 마지막으로 감정노동에 국한되지 않는 판매서비스 노동자들의 다양한 안전보건 문제를 짚어보았다.

 

 

 

미소의 무게


정하나 선전위원

 

 

매우 만족…….하십니까?

 

오래전 모회사 휴대폰 구입을 만류하던 직장동료에게서 들은 말이다.

 

“제 친구가 **전자 단말기 개발 연구원이잖아요. 옛날에는 ○○콜이 부품도 좋고 튼튼했는데, 요즘엔 정책이 바뀌었대요. 중국산 부품 쓰고 대신 A/S센터에서 고객서비스 친절하게 해주는 걸로 승부 보기로…….”

 

며칠 뒤 **전자 A/S센터에 방문했던 나는 이 ‘서비스’의 실체를 경험할 수 있었다. ‘엔지니어’ 직원이 현관 앞에서 나를 맞이하고 손수 의자를 빼주었다. 시종일관 웃으며 눈을 맞추고 민원사항을 접수했다. 수리될 때까지 기다리는 동안 차 마시기를 권했다. 수리를 다하고 물건을 돌려주며 친절한 설명을 해주었다. 마지막 서비스로 문 앞까지 배웅하면서 한 가지 부탁을 했다.

 

“전화가 올 거예요. 서비스에 대해 꼬~옥 ‘매우 만족’ 한다고 답해 주세요~”

 

문을 나서기 무섭게 전화가 왔고, 당부 받은 대로 ‘서비스에 매우 만족했다.’ 고 답했다. 내가 답한 ‘매우 만족’은 무엇에 대한 만족인가? 나의 ‘매우 만족'을 얻어간 그는 정말 ‘매우 만족’ 했을까?

 

 

서비스 사회와 감정 노동, 그 속성

 

위의 이야기는 서비스업의 속성과 판매 ‧ 서비스산업에 종사하는 노동자들의 노동형태를 아주 잘 드러내 주고 있다. ① 대면서비스 부문에 총력을 기울이고 있는 기업 측의 경영전략 ② 원래의 업무 외 감정 노동을 포함한 서비스 노동에 적극적으로 투입되는 노동자 ③ 기업의 더욱 정교해진 관리·감독 즉, ‘노동자들이 생산물을 잘 생산하였는가’ 뿐만 아니라 ‘소비자가 생산물을 구입하러 왔을 때 기분 좋게 하려고 최선을 다했는가’, ‘소비자의 기분을 만족시켰는가’ 등 이른바 감정까지 관리·감독하는 것이 그 특징이다.

제조업 위주에서 서비스업이 주종을 이루며 ‘서비스 사회(산업)’ 로 전환된 현재, 산업 경향 혹은 소비 성향은 ‘더 좋은 서비스’로 수렴된다. 질 좋은 상품들끼리 대결하던 것에서 한 발 더 나아가 ‘구입 전후 서비스도 좋은 상품’ 이 진짜 질 좋은 상품인 시대가 된 것이다. 이제는 무엇을 생산하거나 소비할 때 어느 것이 더 흡족하고 감동스러운 느낌을 주는가도 기준이 되었다. 이미 포화상태였던 시장으로서는 ‘사람과 사람 사이의 상호작용을 통해’ 새롭게 공략할 수 있는 소비자 욕구(감정)에 대한 발견이 마치 신대륙을 발견한 것과 같았을 것이다.

이에 개인의 감정과 정서 같은 영역마저 상품화되었다. 노동자들은 생산물을 제조하는 노동(육체 및 지식 노동)과 더불어, 그 생산물을 제공하는 것이 자기의 기쁨인 냥 표현해야 하는 노동(감정 관리의 노동) 모두를 해내야 한다. ‘더 공손하고 더 친절하게 그리고 더욱 진심으로’ 고객을 응대하여 소비자로 하여금 특정 상품이나 서비스를 즉각적으로 구매하도록 하며, 나아가 당시 고객을 대면한 노동자의 감정관리(노동)을 통해 긍정적인 기업의 이미지를 판매, 추후 ‘재구매’로 연결되도록 하는 이른바 ‘고객만족경영’ 전략의 출발도 맥을 같이 한다.

 

 

구조적 감정 착취, 가장 심각한 노동 소외로

 

이제 감정은 더 이상 개인의 것이 아니다. 내 감정을 내 마음 가는 대로 표현 할 수 없고 해서도 안 된다. 뿐만 아니라 ‘특정한 감정 상태로 보이게끔’ 적극적으로 표현해야 할 때도 왕왕 있다. 속한 조직(기업)의 감정표현 규칙대로 감정의 표면과 내면을 길들여야 하는 것이다. 이것이 감정이 노동이 된 서비스 사회에 추가된 노동규범이다.

하지만 감정 관리의 수준이 심화될수록, 감정노동을 자주 깊게 할수록 실제 자신의 감정(인격)과 분리되는 감정부조화 현상이 일어나 노동자의 마음은 병들 수 있다. 감정부조화의 병리적 예로는 화병, 우울증, 폭력성이 비치는 히스테리, 자기비하 등이 있고 이러한 정신적 불건강은 육체까지 직접적으로 영향을 미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특히 우울증의 경우 여러 가지 질환 및 사회적·직업적·신체적 장애를 가져오기도 하며, 우울증을 앓는 사람 중 10~15%가 결국 ‘자살’에 이를 정도로 심각한 정신질환이다.

 

“스트레스 달고 사는 직장인들…….정신질환 자살자 갈수록 늘어, 산재신청 4년 새 5배 껑충……. 실적 경쟁·감정노동 탓” 이는 작년 4월 1일자 한국경제 기사 제목이다. 기사에서는 최근 4년 간 우울증 등 정신질환으로 자살한 근로자의 유족들이 근로복지공단에 산재신청을 한 건수와 실 승인 건수의 증가치를 보여주며 그 심각성에 주목했다. ‘업무 관련’ 자살의 증가원인으로 ①서비스업의 비중이 커지며 생긴 감정노동의 스트레스 ②근로환경의 변화로 인해 장시간 홀로 업무상 긴장상태에 놓이는 것 ③실적에 대한 과도한 부담 ④고용 불안정을 꼽았다.

 

 

정신질환으로 인한 사망건수

(제공 : 근로복지공단)

 

2009

2010

2011

201206

신청

24

22

46

28

승인

9

7

14

7

사망원인 : 자살(투신, 음독, 목맴 등)

 

이 통계는 판매를 포함한 생산 과정에서 기업과 자본에 의해 철저하게 관리되는 노동자의 감정에 대해 그 과정이 끝나고 나면 순전히 ‘개인의 것’으로 돌려보낸다는 것을 보여준다. 영업팀장과 텔레마케터들은 좋은 물건임을 소개하고 많이 팔기 위해, 그리고 불만에 가득 찬 고객들의 마음을 달래기 위해 미소와 밝은 목소리를 유지하는 노동을 매우 힘들어 하고 있었다. 그러다가 스트레스가 너무 심해져서 자살이라는 극단적인 선택을 하는 경우도 점점 늘어나는 것으로 나타났다. 목숨을 끊을 정도로 스트레스 받는 감정 노동. 그런 강도 높은 감정 관리의 업무를 지시하고 스트레스 낮춤 조치는 없는 기업. 아프고 죽어도 산재 승인은 잘 안 해주는 정부. 이것이 우리의 현실이다. 쓸 데로 써먹은 후 노동자의 감정이 마모되고 녹스는 것에 대해 책임지지 않는 것이다.

 

본래 인간의 노동은 육체·정신·감정의 다양한 영역으로 구성되는데, 고강도의 감정 관리까지 해야 하는 현대의 노동자들은 육체 및 정신노동으로 인하여 발생하는 소외현상과 부가적 감정노동에 시달리는 것까지 더하면, 이중고, 삼중고의 소외를 겪는 셈이다. 앞서 짚었듯 서비스업 종사자라고 해도 감정만으로 노동하지 않는다. 대부분 기존의 업무에서 감정노동을 추가로 한다. 휴대폰 A/S센터의 엔지니어가 기계도 고치고 고객을 직접대면하면서 친절기업의 이미지를 강조하고 있는 것처럼, 입출금 수납업무를 전담하던 은행원들이 금융상품을 하나라도 더 팔기 위해 바쁜 중에도 일일이 기립인사를 하기 시작한 것처럼 말이다. 노동자들은 구조적으로 더욱 치밀하게, 이제까지 경험하지 못한 수준의 가장 적극적인 소외로 몰리고 있다.

 

 

외주․하청, 감정 착취의 수직계열화

 

앨리 러셀 혹실드가 1983년 처음으로 감정노동이라는 개념을 주창했을 때만 해도 감정노동은 한정된 직업군이 경험하는 노동의 형태였다. 당시에는 이런 직업군이 변호사나 상담가, 의사, 스튜어디스 정도였고, 이들의 서비스와 노동에 대한 사회적 인정은 높은 편이었다.

서비스에 대한 산업적 기대치가 확연히 달라진 지금, 감정을 동원하여 서비스를 제공하는 직업군 및 서비스의 질과 제공범위에 대한 소비자의 기대치가 전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확대되었다. 하지만 희소성의 가치가 사라져서일까? 많은 노동자들이 마트, 식당, 주유소, 고객센터 등등 우리 생활 곳곳에서 기업에게는 이윤을 벌어다 주고 소비자에게는 더한 만족감을 주기 위해 물심양면으로 애쓰고 있건만 이에 대한 가치는 전에 없이 떨어져 있다. 아마도 서비스업의 대부분의 일자리가 하청의 하청, 외주의 외주를 거쳐 만들어져 ‘저임금, 장시간 노동’의 나쁜 일자리로 고착되는 것이 큰 영향인 것 같다. 판매와 실적, 고효율과 고이윤을 둘러싼 기업의 노동자 감정 팔기 횡포가 심해지는 만큼, 소비자들 역시 감정노동자의 감정을 인간의 그것이 아닌 쉽게 사고팔고, 망가지면 뚝딱 고칠 수 있는 물건으로 대하는 풍토가 강해지는 게 아닐까?

 

 

무거운 짐을 진 감정노동자의 미소

 

‘나’를 ‘매우 만족’ 시키기 위해 짓는 판매․서비스 노동자의 미소는 쓰디쓰고 무겁디무거운 것이다. 실적과 평가의 압박, 이와 연결되는 고용의 불안정성, 매일 수차례 진상 손님들로부터 받는 인격모독, 직장의 동료를 판매․서비스업 특성상 동료라기보다 경쟁상대로 대할 수밖에 없는 외로움. 이는 한 사업장에서 일하는 한 노동자의 괴로움이 아니다. 서비스산업 비중이 이미 50%가 넘는 한국 노동시장과 그 시스템 속에 있는 많은 수의 우리, 어쩌면 나의 이야기이다.

 

감정노동이 자본의 필요에 따라 구조적으로 발생·심화되듯 감정노동으로 인한 부정적 후과 역시 구조적으로 발생한다. 그럼에도 이 노동의 후유증과 그 책임은 노동자 개인에게만 지워지고 있다. 이 모든 무거운 짐을 개인이 홀로 몽땅 짊어지고 웃음 지어내야 한다는 것, 이는 참 폭력적이지 않은가!

보이지 않는 손의 거대한 주먹, ‘서비스 압박’ 폭력에 의해 노동자의 감정이 병들고 죽어가고 있다. 감정 노동자들이 미소를 띤 채, 미소의 무게에 눌려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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