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장의 목소리] 일하다 죽었는데 자살이라뇨?? / 2014.12

일하다 죽었는데 자살이라뇨?

현대중공업 산재사망 노동자 故 정범식 씨 이야기



재현 선전위원



지난 2014년 4월 26일 11시경 울산 현대중공업에서 블라스팅[각주:1] 작업을 하던 사내 하청 노동자 정범식 씨가 에어호스에 목이 감긴 채 3m 난간에 매달려 사망했다. 이를 발견한 동료들은 에어호스를 끊고 심폐소생술을 했지만, 이미 때는 늦었다. 사고 직후 현장에선 故 정범식 씨가 자살했다는 소문이 돌았다. 마침 오후 3시경엔 수사를 맡은 울산 동부 경찰서는 부검의 소견으로 봤을 때 故 정범식 씨의 사인은 경부압박질식사에 의한 자살로 추정된다는 견해를 밝혔다. 현대중공업은 울산 동부 경찰서의 말을 빌려 언론을 통해 故 정범식 씨가 자살했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이는 사실과 달랐다. 부검은 저녁 6시가 돼서야 이뤄졌기 때문이다. 


울산지역 노동자 건강권 대책위와 현대중공업 사내하청지회, 故 정범식 씨의 부인 김희정 씨는 경찰과 회사, 언론 누구의 말도 믿을 수 없었다. 그렇게 9개월이 흘렀지만, 여전히 진실은 안개 속이다. 대체 어떻게 된 영문일까? 진실을 밝히기 위해 고군분투하고 있는 김희정 씨를 만나 자초지종을 들어보기로 하였다.



조선소가 그렇게 위험한 곳인지 몰랐다


“오전 11시쯤 동료에게 전화가 왔다. 남편이 많이 다쳤으니까 울산으로 왔으면 좋겠다고 했다. 그때까지만 해도 남편이 죽을 만큼 심각한지 몰랐다. 그저 심하게 다친 줄만 알았다. 그러다 성남에서 내려가는 길이었는데 병원에서 전화가 왔다. 병원에 왔을 때 이미 숨이 멎어있었고, 심폐소생술을 계속 해도 차도가 없으니 마음의 준비를 해야 할 것 같다고 말했다.”


故 정범식 씨는 현대 미포 조선에서 10년, 목포에서 3개월, 그리고 15일 전 다시 현대 중공업에서 일을 시작한 비정규직 노동자였다. 그렇다 보니 김희정 씨는 사고 전까지만 해도 현대중공업이 산재사망 사고가 자주 일어나는 곳인지도 몰랐다고 했다. 


“조선소 일이 힘들다는 건 알았는데 이렇게 위험한 곳에서 일하는지는 몰랐다. 주말부부로 멀리 떨어져 지내다 보니 제가 괜한 걱정 할까 싶어 집에 힘든 내색 한번 잘 비추지 않는 성격이었다.”



회사와 경찰 모두 신뢰할 수 없었다


“회사도, 경찰도 남편이 자살했다고 하는데 이유를 이해할 수 없었다. 사고가 있고 하루는 장례식장에 서문기업(하청업체) 사장이 왔었다. 그리고 무릎을 꿇더니 뒷일은 내가 책임질 테니 빨리 장례를 치르자고 했다. 남편을 언제까지 저렇게 둘 수 없어서 사장 뜻대로 하기로 마음먹었다. 그런데 장례 이후에 지금까지 단 한 번 연락이 없었다.”


6월 3일 울산 동부 경찰서에서 최종 수사결과를 발표했다. 결과는 역시 경부압박질식에 따른 자살이었다. 근거로 1) 사고 현장이 故 정범식 씨 작업장과 떨어져 있고 2) 에어호스에 목이 감겼는데 저항한 흔적이 없고 3) 3달 전 부부가 다퉜던 카카오톡 메시지가 있고 4) 신용카드와 통신비를 연체했고 5) 4개월 전 아내에 대한 의심으로 정신과 진료를 받았던 내역을 꼽았다.


울산 동부 경찰서의 수사결과는 김희정 씨와 지역 동지들의 분노를 키웠다. 현장 검증에선 에어호스에 결함이 있던 정황이 밝혀졌다. 또한, 故 정범식 씨 사진을 보면 아래턱에서 왼쪽 가슴, 허벅지에 쇳가루가 박혀있다. 특수 보호구를 쓰고 일했는데도 불구하고 눈에도 쇳가루가 묻었다. 종합해보면 에어호스 결함으로 온몸에 쇳가루가 노출돼 시야 확보가 되지 않았던 故 정범식 씨가 난간에 매달렸을 가능성이 높다.


더군다나 故 정범식 씨 작업장은 항상 쇳가루가 뿜어져 나오는 곳이다. 벌건 대낮에도 손전등이 없인 한 치 앞도 이동이 어렵다. 사고가 일어나기 너무나 쉬운 환경에 있는 노동자가 사망했는데 산재 가능성은 배제하고, 故 정범식 씨를 둘러싼 가족관계, 채무관계 등 개인적인 정황을 근거로 수사를 종결한 울산 동부 경찰서의 발표는 가히 충격적이다.


“부부라면 안 싸울 수 없지 않나. 주말 부부다 보니까 문자를 주고받다 보면 싸울 수도 있고, 또 살다 보면 카드 값이나 휴대폰 요금을 미납할 때도 있는데 그런 것을 이유로 남편이 자살했다는 데 도저히 이해가 안됐다.”


김희정 씨는 경찰 조사 발표 후 진실을 밝히기 위해 싸우기로 결심했다. 


“처음 남편이 죽었을 때부터 울산산추련, 노조에서 도움을 주려고 옆에 계셨다. 그런데 본의 아니게 장례를 치렀다. 그 결과가 이거였다. 그러다 경찰 발표 이후에 울산저널 용석록 기자에게 전화가 왔다. 자기가 봐도 이건 자살이 아니니 지역 활동가들한테 도움을 청해보라고. 그래서 지역 분들께 다시 연락했고 싸우기로 마음먹었다.”



남편의 명예를 찾아주고 싶었다


“큰 애가 고1인데 그 밝던 아이가 아빠가 죽었다는 충격으로 7개월이 지나도록 아빠 영정사진을 못 쳐다본다. 집 밖으로도 안 나가서 학교도 못 가고 있다. 저도 싸우기 전에는 집안에서 매일 우는 게 다였다. 그래서 이대로는 안 되겠다 싶었다. 아빠가 최고라 여기던 애를 위해서, 그리고 남편의 잃어버린 명예를 찾아주겠다는 결심으로 나서게 되었다.”



출처 : 울산산재추방운동연합


공장과 경찰 앞 1인 시위를 시작으로 기자회견도 하면서 故 정범식 씨의 억울한 죽음을 알렸다. 그 결과 지난 10월 17일엔 울산 지방 경찰청에 대한 국정감사에서 故 정범식 씨 사건이 다뤄졌다. 당시 울산 지방 경찰청장은 부실 조사를 인정하며 재조사를 약속했다. 이후 싸움은 새로운 국면으로 접어들었다. 최근엔 수사 결과에 대해 의문을 갖는 법의학자, 정신과 전문의 등 각계각층 전문가들의 목소리를 담은 울산 MBC시사프로그램 ‘돌직구 40’이 방송되기도 했다. 


“아까 1인 시위하는 거 봐서 알겠지만, 다들 새벽부터 바쁘게 출근하지 않나. 인사를 하고 싶어도 참 어려운데. 그중에 그래도 한두 분은 수고하십니다! 말 한마디 건네거나, 손 한번 잡아주는 분들이 있다. 그분들이 힘이 많이 된다.”


현대 중공업은 올해만 벌써 9명의 하청 노동자가 산재로 사망했다. 계열사 전체로 보면 12명이 산재로 사망했다. 울산산재추방운동연합 현미향 활동가는 상황이 이쯤 되니 회사 내 안전 시스템에 대한 사회적 여론과 연이은 산재사망 사고에 관해 부담을 느낀 현대중공업이 책임을 회피하고 싶은 마음에 故 정범식 씨가 자살했다고 주장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현대중공업 입장에선 때마침 이번 사고엔 목격자가 없었고, 손발이 척척 맞는 울산 동부 경찰서가 옆에서 큰 몫을 하면서 시나리오를 완성할 수 있었다. 


이번에 취재하면서 사내 하청 노동자 죽음의 행렬에도 굳건한 현대 재벌공화국의 울타리 안에서 억울하게 죽어간 故 정범식 씨와 세월호 참사를 교통사고쯤으로 치부하며 손바닥으로 하늘을 가리려고 하는 박근혜 정권에 맞선 세월호 유가족의 모습이 겹쳐 마음이 더욱 아팠다.


그래도 여전히 희망을 발견한다. 한 사람의 죽음이라도 소중히 여기는 마음들. 다시는 이와 같은 일이 재발하지 않도록 진실 규명을 규명하고, 책임자를 처벌하고, 재발방지 대책을 마련하라고 싸우는 유가족들과 이들 옆에서 함께하는 노동시민사회단체 활동가들의 애씀이 있기에 그렇다. 이러한 노력과 마음들이 모여 현대 재벌과 조선소 울타리를 넘어 일하는 모든 이들의 죽음의 행렬이 멈추는 그날을 꿈꾼다. 

  1. 금속을 매끄럽게 하고 이물질을 제거하여, 도장을 쉽게 하고 선박 수명을 늘리기 위해 선박 표면에 쇳가루를 쏘는 작업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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